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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조선일보]

1. 오늘 시험대 오르는 대한민국, '역사적 승복'으로 위기 끝내자

헌법재판소가 오늘 11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선고한다. 작년 10월 5일 검찰이 최순실 사건 수사를 시작한 지 5개월여, 국회가 12월 9일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지 3개월 만이다. 이 긴 시간 동안 밖에서 태풍이 불어오는데도 나라 전체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여기까지 왔다. 오늘은 여기에 종지부가 되는 날이다. 정치·사회적 모든 논란과 불투명성도 함께 종결돼야 한다.



​선고를 하루 앞둔 9일 헌법재판소 주변에서는 탄핵 찬반 집회가 열렸다. 탄핵 반대 측 대변인은 탄핵 각하를 반대한 재판관을 국가반역자로 규정해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 걱정스러운 일이다. 탄핵 찬성 쪽에서도 '기각되면 혁명' 같은 말을 반복해왔다. 경찰은 10일 헌재 주변 100m 안쪽에서는 집회를 전면 봉쇄키로 했다. 또 서울 전역에 최상위 경계령인 갑호 비상을 발동키로 했다. 상황이 그만큼 엄중하다.



​그러나 불복 조짐을 경계하고 승복을 주문하는 각계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보수적 성향의 한국기독교단체총연합회, 진보적 성향의 천주교 주교회의가 각각 승복을 주문하는 호소문을 냈다. 불교 조계종도 호소문을 낸 뒤 정당 대표들을 방문했다. 모두 "승복이 민주주의의 출발점" "불복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거리에 나서지 않은 많은 시민들도 같은 뜻일 것이다. 지난 몇 달간 군중의 무절제한 목소리가 국가의 앞날을 위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점점 커져왔다. 그러나 이제 승복 외에는 어떤 다른 길도 존재하지 않는다.


헌재 선고가 있은 뒤 있을 수밖에 없는 한쪽의 상실감을 수습하는 일도 중요하다. 원하는 헌재 선고를 받아 든 사람들의 자중(自重)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자중이란 언행을 신중하게 한다는 뜻이다. 오늘처럼 그것이 필요한 날이 없다. 이 모든 문제를 제도권으로 수렴해야 할 책임이 정치권에 있다.


대선 주자들과 각 정당 지도부는 그 반대 역할만 해왔다. 대선 여론조사 선두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집회 참석을 자제해달라는 많은 주문을 거스르고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촛불 집회에 참석했다. 집회 참석을 그만둔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극성 군중에게 몰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자유한국당 일부 인사들도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 국회와 특검을 비난했다.


오늘부터라도 달라져야 한다. 각 정당 대표들과 대선 주자들은 함께 만나 실질적인 수습책을 논의해야 한다. 치유해야 할 상처들이 너무 많이 났다. 오늘 이후에도 자극적인 분열 책동을 펴는 사람이 있으면 대선 주자로는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퇴출시켜야 한다.


지금 우리는 탄핵 사태만을 보고 있지만 실은 그보다 더 큰 안보·경제 복합 위기가 눈앞에 닥쳐와 있다. 그동안 북은 중거리탄도미사일 도발을 두 차례 감행했고 중국은 사드 보복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미 트럼프 정권은 북을 향한 선제타격·정권교체까지 포함한 모든 방안 검토에 들어갔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경제도 수출 홀로 버텨나가고 있을 뿐 투자와 내수, 소비 심리, 고용 모두 침체가 깊어지고 있다.


만약 탄핵이 인용돼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경우라면 두 달 동안 선거라는 소용돌이에 또다시 모든 것이 휩쓸려 들어갈 것이다. 기각되면 또 그에 따른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오늘 헌재는 역사적 법정으로 기록될 것이다. 국민은 탄핵 찬성이든 반대든 입장을 떠나 '역사적 승복'으로 대혼돈을 끝내야 한다. 정치권은 여기에 앞장서 그동안 방치해온 숱한 국가 현안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와 법치가 한 단계 성숙할 수도 있다. 중대한 역사적 갈림길이다. 대한민국이 시험대에 섰다.


2. 시진핑 주석, '스트롱맨' 아닌 존경받는 지도자 되길
북한의 핵·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경북 성주에 설치 중인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에 중국이 반발하면서 한·중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 국가 관계에서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경제 보복을 하고 관광객의 발길을 막는 것은 과도한 것으로 중국의 위상을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다.



올해는 한·중 양국이 수교한 지 25년 되는 해다. 그 사이 한국에 중국은 최대 교역국, 중국에 한국은 넷째 교역국이 됐다.



1주일에 양국 간 항공기가 900편 오간다. 두 나라 대학에서 공부하는 양국 학생 숫자도 모두 1위다. 이런 관계가 사드 문제 하나로 흔들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중국 처지에서 어쨌든 동북아시아에서 미군 전력이 증강되는 것은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부도 사드 배치를 놓고 오랜 기간 고심을 거듭했다. 그러나 북핵과 미사일이 고도화를 거듭해 무방비 상태에 빠진 한국에 사드 배치는 선택 문제가 아니게 됐다. 중국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이것은 사실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취임 후 북한을 방문하지 않고 김정은을 초청하지도 않았다. 2014년 한국을 먼저 방문하면서 중국의 한반도 정책을 합리적, 현실적으로 재조정할 지도자로 기대를 모았다. 한국 대통령이 동맹국 미국의 우려를 무릅쓰고 중국의 항일 전쟁 기념 군사 퍼레이드에 참석한 것은 그런 기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결단이었다. 그러나 시 주석의 지난 4년을 돌아보면 한국민의 이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거듭되는 도발과, 그에 따라 동북아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명백한 사실을 앞에 두고도 중국은 양비론을 견지해 사실상 북한을 지원해 왔다. 최근에는 북한이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김정남을 화학무기 VX로 암살한 일까지 감싸고 있다. 말레이시아 장관이 북을 "깡패 국가"로 부른 며칠 뒤에 중국 외교부장이 북한 외교 관리와 나란히 서서 "중·북 우호"를 다짐하는 것을 보면서 깡패 국가와 함께해야 하는 중국의 국익이 과연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은 '북핵 폐기보다 북한 정권 안정이 중요하다'는 한반도 정책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북한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달려가는 21세기에 '완충지대'와 같은 19세기적 지정학 사고방식은 유효하지 않다. 이 시효가 끝난 '완충지대론'이 북한을 동북아의 폭탄으로 만들고 '국제 깡패'로 키워왔다.


시 주석은 마오쩌둥에게 부여됐던 '당 핵심' 칭호를 듣는 지도자다. 중국 정치는 시 주석 1인 체제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시 주석의 지도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 주석이 이 지도력을 실효성도 없는 '북한 완충지대'를 지키는 데 사용하면 국제사회에서 또 한 명의 '스트롱맨'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 주석이 강력한 리더십을 중국의 한반도 고정관념을 깨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발휘하면 세계의 존경받는 지도자 반열에 오를 것이다. 무엇이 시 주석과 중국이 가야 할 길인지는 자명하다.



시진핑 체제는 '낡은 사회주의'와 결별하겠다고 했다. 시 주석이 낡은 지정학 패러다임과도 결별했으면 한다. 중국이 북핵을 폐기시킨다고 북한이 붕괴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핵 폐기 때문이 아니라 비인간적 모순 때문에 결국 무너지게 돼 있다. 통일 한국은 중국에 명백하게 이롭다. 좋은 미·중 관계를 세계에서 가장 원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우리는 시 주석이 새로운 한반도, 새로운 동북아 시대를 여는 결정적 역할을 해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중국을 만든 위대한 정치가로 기록되기를 희망한다.


[중앙일보]

3. 중국 방송에 “사드 철회” 약속한 이재명

유력한 대선 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의 안보관이 도를 넘었다. 지난 두 차례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 토론회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에 대해 편향된 인식을 드러내더니 이번에 제대로 사고를 쳤다. 그는 7일 중국 최대 방송사인CC-TV에 나와 “사드 배치는 대한민국 국익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원점에서 재검토해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명하다”고 말한 뒤 기자가 ‘대통령이 되면 사드 배치를 철회할 것이냐’고 묻자 “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이 시장의 발언이 중국과 중국인에게 얼마나 값진 얘기였는지 CC-TV는 이날 하루 동안 네 차례 같은 장면을 방영했다고 한다. 중국 기자와의 인터뷰는 전날 이 시장이 자기의 대선 캠프에서 주최한 ‘전국 사드 피해 상인 간담회’에서 이뤄졌다.

사드는 한·미 상호방위조약(1953년)과 행정협정(SOFA·1966년)에 따라 양국 정부가 합의하고, 이미 장비 일부가 오산 미군기지에 도착해 규정된 절차에 따라 배치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다.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 위협에 주한미군이 자기들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 방어 무기다. 만일 한국이 이를 거부하면 6·25전쟁 이래 60여 년간 안보와 번영의 기반이었던 한·미 동맹 체제가 깨질 위험이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안보를 돕기 위해 와 있는 주한 미군이 자기 방어를 위한 무기조차 한국인의 반대로 들여놓지 못한다면 그들이 한국 땅을 떠난다 해도 붙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뻔히 예견됨에도 이재명 시장이 중국 방송에 나가 “사드 철회”를 약속한 것은 어이가 없다. 설사 그가 현직 대통령이라 해도 역사적·문화적·지정학적 뿌리가 깊은 한·미 동맹을 그렇게 쉽게 뒤흔들어선 안 된다. 이 시장의 사드 철회론은 그가 사드를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미의 자위적 수단’으로 보지 않고 ‘미국의 대륙 봉쇄 전략에 한국이 첨병으로 동원됐다’는 친중·반미적 안보관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친중·반미 안보관은 야당에 널리 퍼져 있는데, 이런 위험한 사고방식을 정비하지 않고는 차기 대선 때 정권 교체가 어려울 수 있다.


[서울신문]

4. 분열 아닌 통합의 길 가는 역량 보여 주자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의 심리를 마무리 짓고 오늘 오전 선고한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로부터 탄핵소추 의결서를 접수한 지 91일 만에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헌재의 선고 결과는 당장 정치 일정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수밖에 없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해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파면하면 60일 안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대통령 임기가 1년 남짓 짧아지면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은 물론 ‘국민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탄핵이 기각돼 박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한다 하더라도 탄핵 정국 후유증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촛불’과 ‘태극기’로 쪼개진 민심이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는 상처 난 국민의 마음을 보듬어 다시 통합의 길로 이끄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 우리가 향유하는 민주주의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일본제국주의의 강점과 6·25 전쟁에 이은 남북 분단으로 만신창이가 된 나라를 다시 세우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민주주의 선진국들이 놀라워하고 민주주의로 발전하는 과정에 있는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국민이 흘린 피의 대가다. 지금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과정에서는 한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뜻을 합쳤던 결과가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오늘 헌재 선고에 승복하느냐, 불복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한 단계 도약할 수도, 수십 년 전으로 뒷걸음질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으로 돌아간다. 서울 재동의 헌재 청사 앞에서 벌어지는 탄핵 찬반 진영의 시위는 선고가 다가올수록 과격해지는 양상이다. 어제도 헌재 정문 앞에서는 “탄핵 각하”를 외치는 시민들이, 그 맞은편에서는 “탄핵 인용”을 주장하는 시민들이 돌아가며 1인 시위를 벌였다. 양측은 치열한 설전을 넘어 언제라도 폭력 사태가 벌어질 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찬반 진영은 오늘 이곳에서 각각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고 있다. 선고 이후 어떤 모습이 펼쳐질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지금은 힘을 합쳐도 나라를 정상화시키기가 쉽지 않다. 구성원 하나하나의 뼈를 깎는 노력이 더해지더라도 탄핵 소추 이전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게다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사드 보복’ 등 안보 및 경제 환경은 최악이다. 그럼에도 헌법 가치를 부정하며 헌재 결정에 불복하는 사태까지 빚어진다면 대한민국호(號)는 결국 항해 불능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5. 이 시국에 외유에 정신 팔린 의원, 공무원

국회의원, 공무원 등 모범을 보여야 할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탄핵 정국에도 외유성 해외 출장에 대거 나선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고 있다. 해외 유명 관광지에서 성매매로 국가적 망신을 산 공기업 직원들도 있다.

한 시민단체가 그제 공개한 국회의원들의 해외 출장 현황은 다소 의아하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해 12월 9일 이후 1개월여 동안 무려 64명의 의원이 해외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는 현지 대사관이나 박람회 방문 등 출장 목적에도 맞지 않는 일정에다 출장 후 20일 이내에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조차 아직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온 국민이 혼미한 정국에 불안해할 때 국회의원들은 태연히 외유를 즐긴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이 단체는 보고서를 통해 “국내 정치 상황이 불안한 시점에 해외로 발길을 돌린 국회의원들의 활동이 적정한지 논란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공직자들의 일탈 행위도 국민을 실망시켰다. 한 자치단체 공무원 10여명은 업무 관련성도 없으면서 세계문화유산을 벤치마킹하겠다며 중국의 관광지를 다녀왔다가 비난을 샀다. 또 다른 자치단체 공무원은 국제 교류 목적으로 다녀온 5건의 해외 출장에 민간인 14명을 포함시켜 주의 처분을 받기도 했다. 여기에다 해외여행 때 업무 관계자들로부터 경비 명목으로 수백만원을 받아 챙겨 기소된 공무원과 필리핀의 유명 관광지에서 성매매로 적발돼 망신을 산 공기업 직원들도 있다.

탄핵 정국이라고 해서 국회의원이나 공무원들의 해외 출장이 중단돼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국내외 정국이 불안한 시기에 나간 해외 출장이 외유성이거나 일탈 행동으로 이어졌기에 볼썽사나울 수밖에 없다. 해외 출장은 목적과 일정, 활동 내용 등을 더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 예산이 확보돼 있기 때문에 다녀와야 한다는 식의 해외 출장은 사라져야 한다.

꼭 필요한 해외 출장이라면 다녀온 후에 사용한 경비를 보전받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만큼 배우기 마련이다. 해외 출장에 나서기 전에 관련 국가나 업무에 대한 사전 지식과 정보를 충분히 습득한다면 출장보고서 또한 충실해질 수밖에 없다. 외유성 출장이라는 오해는 자연히 사라진다. 배 밭에서는 갓끈을 고치지 말고, 오이 밭에서는 신발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


6. 사법개혁 요구의 싹부터 자르겠다는 대법원

대법원이 사법개혁 방안을 고민하는 내부 논의를 시작부터 묵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실이라면 이만저만 심각한 일이 아니다. 사법부를 향한 국민 불신은 더 떨어질 데 없이 추락한 실정이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따져 보자면 대법원이 스스로 조직 쇄신에 소매를 걷어도 만시지탄이다. 그런 마당에 내부의 자발적 고민에 지도부가 나서 발목을 잡았다면 묵과하기 어렵다.

현직 판사들이 회원인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최근 전국의 판사들을 대상으로 사법 독립과 법관 인사제도에 관해 익명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지나치게 대법원장에게 권한이 쏠린 현행 대법관 선출 방식, 눈치 보기 자기 검열 분위기를 조장하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 등 민감한 설문 항목이 포함됐다. 그러자 대법원장 직속인 법원행정처가 학술 모임을 정비하겠다고 나선 데다 모임 실무를 맡은 판사를 갑자기 인사 조치했다. 법원 내부는 연일 뒤숭숭하다.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현직 부장판사가 진상 조사를 요구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폐쇄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조직이 법원과 검찰이다. 그런 울타리 안에서 현직 판사들이 오죽 위기감이 컸으면 그런 설문 작업을 했겠는가. 양 대법원장과 수뇌부가 독려해도 모자랄 일이다.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 났던 모임의 해당 판사를 부임 첫날 일선 법원으로 복귀시켰다니 누가 봐도 징계성 인사다.

대법원만 지금 딴 나라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온 나라를 혼돈으로 몰아넣은 국정 농단 사태는 따져 보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사법부의 책임이 지대하다. 법과 원칙의 소신으로 똑바로만 서서 권력을 견제했더라도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다. 자성과 쇄신의 목소리가 아래로부터 터져 나오는 한계 상황이라면 사법부의 수장이 눌러 덮을 게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압도적 여론이 특검의 수사 연장을 갈망했던 까닭이 뭐였겠는가. 우리 사법부의 신뢰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급이다. 국정 농단의 몸통들이 제대로 단죄될 수나 있을까 국민은 당장 그 걱정이 크다. 외풍을 살피는 수뇌부의 찍어 누르기 단속에 판사들이 자기 검열에 빠지게 된다면 괜한 걱정도 아닐 것이다.

대법원장의 과도한 권한에 사법부가 관료화하고 법관 독립성이 흔들리는 문제점은 밖에서 봐도 쇄신이 급하다. 사법 불신의 걸림돌을 스스로 돌아보고 치우지 않으면 조만간 국민적 개혁 요구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매일경제]

7. 남녀 임금격차 37%, OECD 최대 불명예 언제까지

우리나라 남녀 임금 격차는 3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이 100만원 받을 때 여성은 63만원밖에 못 받는다는 것이다. 전 세계 평균 남녀 임금 격차가 23%인 것을 감안하면 실로 불명예스러운 수치다.

이 같은 남녀 임금 격차는 고액 임금을 받는 고위직 여성 비율이 적은 탓이다. 출산, 육아로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들이 많고, 여성의 일자리 중 40%가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인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이처럼 과도한 격차가 나는 것은 여성에 대한 사회·경제적 차별의 벽이 높다는 의미다. 

오죽하면 '여성의 날'이었던 지난 8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성들이 조기퇴근 시위를 벌였겠는가. 한국여성노동자회를 주축으로 구성된 여성 1500여 명은 남녀 임금 격차를 고려할 때 여성들은 오후 3시부터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라며 '3시 스톱'을 외치면서 거리로 나왔다.

대한민국 여성들의 불평등한 삶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통계는 이뿐이 아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유리천장 지수' 최하위로 직장 내 여성 차별이 가장 심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한국의 기업과 공공부문에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미미하다. 올해 30대 그룹 임원 승진자(1517명) 가운데 여성은 37명으로 고작 2.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그룹 전체 직원 중 여성 비중이 24%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견고한 '유리천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각료 중 여성 장관 비율도 5.9%(2015년 기준)로 OECD 평균(29.3%)에 크게 못 미쳤다.

여성 대통령이 나오면서 여성 차별 문제가 해소될 거라고 전망했지만 여성의 지위는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여야 대선주자들은 여성의 날을 맞아 "단계적으로라도 남녀 동수 내각 실현"(문재인), "여성 장관 비율 OECD 평균인 30%로 상향"(안철수), "공공부문 여성 임원 30%로 확대"(안희정) 등의 공약을 쏟아냈다.


여성 표심을 잡기 위한 선거용 말잔치로 끝나서는 곤란하다. 여성에 대한 사회·경제적 차별은 세계 최저 출산율(1.17명)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등 선진국들은 공공·민간에서 여성 임원 비율을 30~40%까지 높이는 여성 임원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다. 말로만 남녀 평등을 외칠 게 아니라 우리도 여성 임원 할당제 도입을 실천해야 할 때다. 


[매일신문]

8. 포항시의 예산 낭비 악순환, 백서로 남겨 반면교사 삼자

포항시의 여러 시설이 부실 행정 탓에 수십억원의 아까운 예산만 낭비한 채 철거되거나 또다시 보수로 큰돈을 들이는 등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지만 마땅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산 낭비 행정이 되풀이되는 까닭이다.



먼저 2013년 7월 70억원을 들여 개관한 복합체육시설인 만인당(萬人堂)의 사례다. 포항시는 부실 공사로 안전성이 문제가 되자 20억원을 들여 보수키로 했다. 보수해도 추가 하자 발생 예방을 장담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직원 2명이 견책의 징계를 받았지만 포항시는 돈 먹는 하마 시설을 그냥 두고 사용하기로 한 셈이다.



음폐수병합처리시설도 문제다. 2011년 69억7천만원으로 공사를 시작, 2013년 1월부터 가동키로 했지만 법적 보증수질을 못 맞춰 2013년 9월 18억7천만원을 더 들여 시설 개선 공사를 했지만 여전히 부실로 놀리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시는 음폐수처리를 위해 4억6천만원을 지출했고 올해도 5억2천만원을 책정한 채 손을 놓고 있다.



2007년 16억원을 들여 설치해 해마다 7천만~9천만원의 유지관리비가 들어간 영일대해수욕장 고사분수는 잦은 고장 등으로 2016년 12월 7천만원을 들여 철거했다. 그동안 유지관리비로만 6억7천만원을 날렸다. 2013년 15억원으로 지은 드라마 제작용 시설도 여러 문제에다 재난위험 등급 판정을 받아 지난해 6천만원을 들여 없앴다.



이런 예산 낭비가 되풀이되는 것은 무책임 행정 탓이다. 앞 사례에서 만인당 외에는 처벌받은 직원이 없는 것이 증거다. 눈치 보는 단체장의 나약한 의지도 문제다. 책임을 묻지 않아서다. 지방자치 20년의 검은 그림자이다. 끝까지 업체에 책임을 따지지 못하는 포항시의 병폐도 한몫을 한다. 공사를 둘러싼 뭇 의심을 살 만하다.



과제는 분명하다. 부실 행정에 대한 엄정한 책임이다. 선거를 의식 않는 단체장의 의지도 필요하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 않고 반면교사로 삼기 위한 부실 행정의 백서 발간도 있다. 부끄럽지만 포항을 위해서다. 그리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포항은 경북 최대 도시이니 파급효과도 클 것이다.


9. 사드 배치는 속전속결, 지역민 지원 대책은 감감무소식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배치 지역인 성주`김천 주민들을 다독일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지원책과 대책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러다가는 성주`김천 지역민들이 희생만 강요당한 채 사드만 떠안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최근 들어 사드 발사대 2기가 반입된 데 이어 이달 중으로 사격통제레이더가 국내에 들어올 것으로 알려졌다. 운용시험과 장비 전개 절차가 끝나는 대로 사드는 작전 운용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해당 지역민들은 여전히 사드 배치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사드 배치를 대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성주군은 정부에 성주국방산업단지, 전파레이더산업집적화단지 조성 등 보상책 마련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김천에서는 반대 여론이 워낙 강해 지원사업 논의조차 금기시되고 있지만, 이곳이 지역구인 이철우 국회의원은 혁신도시 내 대형병원 유치 등 여러 가지 지원을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부는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방부는 지역의 요구 사항 대부분이 기획재정부와 통일부 등과 겹쳐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현재로서는 속 시원한 답을 줄 수 없다며 원론적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해 성주가 사드 배치 지역으로 전격 발표됐을 당시 지역민들의 저항과 분노가 상상을 초월하고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자 정부는 사드만 받아주면 무엇이든 해 줄 것 같은 자세를 취한 바 있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 반발의 강도가 약해지고 국민적 관심사도 예전 같지 않다고 판단한 것인지 사드 배치 과정에서 성주`김천 주민들의 의견을 구하는 기본적 절차마저 정부는 생략했다. 이래가지고서야 ‘화장실 들어갈 때하고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드는 국가 안보에 불가결한 군사시설이어서 어디에든 들어서야 하지만, 특정 지역의 일방적 희생을 바탕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국가 이익에 부응하기 위해 희생을 감수한 지역에 정부는 상응하는 보상과 지원을 해줘야 한다. 아울러 사드 배치 과정에서 지역민이 받은 상처와 불안감을 위무하는 대책도 세워야 한다.


[이데일리]

10. 미국 금리 인상에 대응책은 있는가

국내 은행들의 대출금리가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조만간 기준금리를 올리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데 따른 당연한 반응이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최근 “고용과 물가 동향에 따라 금리의 추가 조정이 적절하다”며 금리 인상을 예고한 바 있다. 미국 금리가 오를 경우 국내 유입 자금이 높은 금리를 찾아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고, 이를 막으려면 국내 시장금리가 함께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에 속한다.

문제는 가계대출 분야다. 금리가 오른다면 어느 수준까지 이자 부담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다. 이미 정부가 가계대출에 대해 최대한 고삐를 죄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금리 인상 움직임까지 더해져 위험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가 이미 1300조원 규모를 넘어섰다는 점에서도 가계의 이자 부담은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꼽힌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일시적인 조치에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서도 우려를 더해준다. 미국 연준이 올해 안으로 기준금리를 3차례 올릴 것이며, 따라서 금리가 현행 0.5~0.75% 수준에서 0.75%포인트 올라갈 것이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당장 내주로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 조치가 내려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러한 움직임이 진작부터 예고돼 왔지만 미리 대응책이 마련되지 못한 것이 잘못이다. 그중에서도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저소득층의 충격이 우려된다.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를 경우 이른바 한계가구의 금융부채가 25조원 급증한다는 게 한국은행의 조사 내용이다. 그중에서도 주택담보 대출이 위험 요인이다. 주택시장이 침체 상태에 빠질수록 위험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더욱이 우리 경제 여건이 미국 금리 인상에 곧바로 대처하기에는 불확실한 요인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탄핵 결정 반발 움직임에 중국의 사드 보복만 해도 심각한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에 맞춰 금리가 따라 오르는 게 정상이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활동에 걸림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유일호 경제팀과 이주열 총재가 이끄는 한국은행 간의 긴밀한 정책 공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주요신문칼럼


1. [세계일보][양경미의영화인사이드] 신의 침묵 ‘사일런스’

할리우드에서 일본을 소재로 한 영화는 그동안 많이 제작되었다. ‘쇼군’, ‘라스트 사무라이’… 최근 ‘핵소고지’까지 그렇다.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많은 이유는 선진화된 경제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이 지닌 독특한 문화에 있다. 지난 28일 개봉한 ‘사일런스’는 일본에서의 천주교 박해를 다룬다.

‘사일런스’는 선교사 페레이라 신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침묵’이 원작이다. 17세기 일본에서 천주교 박해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포르투갈 예수회 신부 로드리게스(앤드루 가필드)와 가루페(에덤 드라이버)는 배교한 스승 페레이라(리암 니슨)를 찾아 일본으로 간다. 그러나 그들 또한 강한 탄압으로 결국 배교하거나 사망하게 되면서 고통에 침묵하는 신에 대해 깊이 고뇌한다.



일본이 지닌 문화적 특성이 잘 드러난다. 어느 나라나 자기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중시하고 보존한다. 그러나 일본은 서구문물을 빨리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재창조했다. 반면 정신을 지배하는 종교와 같은 정신문화의 유입은 철저히 차단했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상인들의 교역을 통해 천주교가 전파되자 당시 일본 지배층은 천주교를 일본의 정신을 병들게 하는 위험요소로 간주해 종교를 탄압한 것이다.



16세기 일본 막부가 단행한 박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영화에서 보듯이 일본 위정자들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집요하고 체계적으로 천주교를 박해했을 뿐 아니라 신부들 또한 배교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지금도 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도의 비중은 지극히 낮다.

감독의 신앙에 대한 열정과 고민이 담겨 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여러 차례 “최종 목표는 소설 ‘침묵’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1988년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그린 ‘예수 최후의 유혹’ 이후 ‘침묵’을 각색하기까지 15년, 작품을 완성하는 데 30년이 걸렸다.



영화는 신자들이 고문과 학살을 당하는 모습, 간절히 기도하지만 침묵하는 신, 한 인간의 종교적 신념이 뿌리째 흔들리는 과정을 차분하고 집요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아카데미 시상식 촬영후보에 오를 만큼 영상미가 빼어나며 배우들의 연기 또한 훌륭하다. 할리우드 유명배우들은 물론 쓰카모토 신야를 비롯한 일본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열연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숙연해진다. 무엇이 진정한 신앙이며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고난의 순간, 신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의 배교로 신도들을 살리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신부 로드리게스의 딜레마는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강력한 국가주의도 엿볼 수 있다. 영화에서 신도들과 주민들은 관료의 지시나 국가의 권위에 대해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침묵한다. 이러한 일본의 국가주의는 ‘쇼군’이나 ‘라스트 사무라이’, ‘핵소고지’에서도 잘 나타난다. 종교영화인 ‘사일런스’를 보면서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에서도 최근 강화되고 있는 국가주의 성향이 걱정되는 것은 괜한 기우일까.



2. [경향신문][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국밥과 토렴

<흥부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자식들이 돌아가며 먹고 싶은 걸 말하는데, 한 녀석이 이런다. “고깃국에 이밥이나 실컷 말아먹었으면.” 피자나 치킨, 짜장면이 없던 시절이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없는 이에게 고깃국은 대단한 음식이었을 테다. 

돈 받고 파는 요식(料食) 중에 고깃국, 즉 국밥처럼 실감나는 음식은 드물었다. 김치나 된장은 사먹는다는 느낌이 적다. 밖에서 돈 내고 먹는다고 하면 짜장면 말고는 국밥이 오랫동안 주인공이었다. 

국밥은 누구나 한 술 뜰 수 있는 음식이기도 했다. 국밥에는 찬이 적다. 국에 밥을 말아내고 찬 없이 빨리 싸게 먹는 형식으로 발전했다. 조선후기에 김홍도가 그린 주막 풍경에도 뚝배기를 기울여가며 국밥을 퍼넣는 장정의 모습이 나온다. 상업이 발달하지 않아 유럽에 비해 레스토랑의 역사가 짧은 조선에서 주막은 그나마 ‘돈 주고 사먹는 외식’의 한 역사를 이루어 왔던 것이다. 

그 주막의 메인 메뉴는 역시 국밥이었다. 국밥은 어지간한 장시가 있는 곳에서는 다 성행했다. 사람이 모이면 허기가 지고, 싸게 한 그릇 먹기에 국밥만 한 게 없었다. 나중에 미국 밀가루가 값싸게 풀리기 전에는 역시 국밥이 즉석 음식의 왕이었다. 장꾼들이 먹는 음식이 국밥이요, 한번에 많이 끓여서 빨리 낼 수 있는 음식도 국밥이었다.

토렴도 그렇게 발달했다. 미리 썰어둔 밥과 고기를 따뜻하게 데우는 기술, 건더기가 든 뚝배기에 펄펄 끓는 국물을 부었다 내렸다 하면서 딱 먹기 좋은 온도에 맞추어내는 기술이다. 토렴은 전기보온밥솥이 없던 때, 밥을 데우는 데 최적의 방법이었다. 

밥풀에서 전분이 풀려서 국물이 탁해지는 걸 막아주는 것도 토렴이었다. 그렇게 상에 내면 차갑던 밥이 입에서 부드럽게 풀리면서 적당한 온도에서 씹혔다. 질이 좋지 않은 밥도 먹어낼 수 있는 마술이기도 했다.



국밥은 이렇게 본디 토렴과 한 뚝배기를 이루면서 ‘패스트푸드’로 민중에 자리 잡았다. 토렴한 밥과 국은 딱 먹기 좋은 온도였고, 일에 바쁘고 허기진 민중들이 빨리 먹어낼 수 있었다. 이제 토렴하는 집을 찾는 건, 어지간히 헤아리지 않으면 어렵다. 펄펄 끓는 뚝배기가 주력이다. 언제나 따끈한 밥이 있는데, 굳이 밥을 식혀 토렴할 일이 없기도 하지만, 토렴이 결국 그놈의 ‘인건비’가 되기 때문이다. 식당 기술자들이 없어서 토렴을 하라고도 못한다. 국만 뜨고, 퍼 둔 밥 꺼내주면 될 일을 누가 펄펄 끓는 국솥에 뚝배기 기울여 손에 화상 입어가며 토렴하겠는가.

토렴 잘하기로 유명했던 여러 오래된 국밥집들이 점차 토렴을 버리고 있다. 손님들도 뜨거운 밥을 따로 내주는 걸 좋아하는 이가 많다고 한다. 

토렴에는 본디 기대하지 않았던 효과도 있다. 음식의 온도가 적당(섭씨 80도 미만)해서 입이나 식도의 화상을 예방할 수 있다. 암 예방수칙에 뜨거운 음식을 조심하라는 건 의사들의 공식적인 의견이기도 하다. 토렴하는 국밥집을 응원하고 싶다.



3. [매일신문][야고부] 올랭피아의 기억

“세상에! 저런 그림이 전시회에 걸리다니….”



1865년 파리 시민들은 살롱전에 전시된 그림 한 점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작품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Olympia)였는데, 옷을 벗은 창녀가 비스듬히 누워 있고 그 뒤에는 흑인 하녀가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림 속의 모델은 관객을 쏘아보면서 마치 “나는 창녀인데, 그럼 너는?”이라고 도발적으로 묻는 듯했다.



당시에도 여성 누드가 많이 등장하긴 했지만, 신화와 매혹적인 이야기의 여주인공 같은 ‘환상 속의 여인’만 그려졌다. ‘성처녀로의 순결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예술작품 속의 누드는 비인격화되어야 하며, 특정 인물을 생각나게 해서는 안 된다.’ 19세기의 미적 개념으로 볼 때 비너스나 요정도 아니고, 창녀가 모델로 등장했으니 경천동지할 사건일 수밖에 없다. 전통과 관습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었다. 미술사에서 이만큼 대중의 조롱과 비난을 받은 작품도 없다.



재미있는 것은 주말이면 관람객이 너무 많아서 작품을 가까이에서 보기 불가능할 지경이었다는 점이다. 관람객의 분노로 그림이 훼손될까 봐 경찰관 2명이 지킬 정도였다. 세상의 비웃음과 야유에도 불구하고, 흥행 측면에서는 폭발적인 성공을 거둔 셈이다. 

   
화가로서의 성공을 꿈꾸던 마네는 평생 좌절감과 실의에 빠져 허덕댔다. 1883년 마네가 죽을 때까지 ‘올랭피아’는 ‘역겨운’ 그림일 뿐이었고, 1890년에 들어서야 모네 등 동료 화가들의 도움으로 격이 낮은 뤽상부르 미술관의 귀퉁이를 겨우 차지했다. 1907년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다가 1986년 오르세 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길 때에는 ‘세계 최고의 그림’이 돼 있었다.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이구영 씨의 ‘더러운 잠’을 둘러싼 논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를 희화화하려는 목적이었는데, 그 결과는 ‘표현의 자유’ ‘성 상품화’ ‘좌파의 책동’ ‘사생활 보호’ 등 온갖 파생적인 논쟁으로 확대됐다. 며칠 전에는 표창원 의원의 부인을 덧씌운 현수막이 걸리는, 웃지 못할 사건까지 벌어졌다.



‘더러운 잠’은 예술 작품이라기보다는 시사적인 패러디물일 뿐이어서 그렇게 치열하게 싸울 대상이 되는지 의아스럽다. 한국에서 정치는 무엇이든 잡아먹는 블랙홀이나 다름없기에 예술이나 표현의 자유와는 공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정치 현실 못지않게 씁쓸한 풍경이다.



4. [서울신문][이재무의 오솔길] 삶

모진 겨울 넘기고 나오셨구나/ 서울역 앞 몸에 좋은 약초 파는 할아버지

그 사이 공손하던 허리가 땅에 더 가까워지셨구나(이시영, 시, ‘삶’, 전문)



삶이란 무엇인가. 삶을 과학적 개념으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감정과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실존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을 수치나 물량의 척도로 계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스펙트럼이 넓고 변화무쌍한 인간 삶에 대해 누구도 함부로 그 의미를 확정적으로 규정짓거나 정의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삶의 의미와 가치에 유클리드 기하학 같은 공준을 적용할 수 없으며 절대성과 객관성을 부여할 수 없다.



그것은 저마다 타고난 유전적 기질과 주어진 처지와 환경,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경험의 총체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대성과 차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삶에서 절대성과 객관성을 벗어날 수 없는 단 하나의 예외적 사실이 있다. 그것은 누구나 태어난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죽게 된다는 사실이다.

삶은 유한하고 죽음은 영원하다. 이 만고불변의 진리를 누구라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삶이 끝나는 자리에서 죽음이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의 근대적 사유 체계인 이원론적 세계관은 삶과 죽음을 분리해 사고하지만 유서 깊은 동양적 사유 체계, 즉 일원론적 세계관에 따르면 삶과 죽음은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대립 쌍이 아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활과 리라’의 저자, 남미의 작고 시인 옥타비오 파스에 따르면 삶과 죽음은 유기체의 한 몸 안에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고 있다. 삶이 끝나면 죽음도 끝난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감과 동시에 죽어 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 우리는 날마다 살아가지만 날마다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첨단과학이 발달해도 이것만은 부정할 수 없고 물리, 수학에 능한 이라 할지라도 삶에서 죽음을 따로 분리해 내거나 솎아 낼 수는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관념론자들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나날의 일상 속에서 죽음을 살면서(경험하면서) 시나브로 죽음(자연)에 다가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삶의 진실을 도덕학으로 규명하는 일 또한 명쾌하지 않을뿐더러 옳은 일도 아니다.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윤리와 도덕은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윤리는 공공적 진리를 추구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으로서 공공적 실천을 통해서 구현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반면에 도덕은 개인이 속한 사회의 상규나 관습”(김명인)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윤리와 도덕은 서로 대립하고 갈등할 수 있다. 그가 말의 온전한 의미에서 삶의 진실을 추구하는 이라면 현실 너머를 꿈꾸는 자로서 도덕에 얽매이거나 안주하는 것이 아닌 윤리적 태도와 실천으로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그가 속한 사회의 전통과 관습이 낡고 고루하다면 이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삶의 진실을 구현하는 데 종교학도 적절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종교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의 방편으로 추구될 수는 있다. 하지만 종교는 인간의 제 갈등을 신의 논리로 수렴해 각 개인이 처한 실존적 정황과 세목을 추상화함으로써 삶의 진실을 굴절 또는 왜곡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서울역은 다종다양한 한국적 삶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시적 공간이다. 모진 겨울을 넘기고 나온, 허리가 땅에 더 가까워진 할아버지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몸에 좋은 약초를 팔고 있다. 죽음이란 땅의 중력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는 언젠가 삶과 함께해 온 죽음을 보내고 영원한 안식처인 자연으로 귀환할 것이다. 하지만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주인공이 보이고 있는 죽음에 대한 예민한 자의식과는 달리 시 속 노인은 죽음에 대한 의식이 없다. 시 속의 노인은 삶과 죽음을 분별하지 않는 일원론적 세계를 보여 준다.

우리는 위 단시를 통해 과학과 도덕과 종교가 규명하지 못한 삶의 구체적 진실을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다. 새삼 생각하노니 문학(시)이란, 삶이란 얼마나 넓고도 깊은 것인가.



5. [동아일보][광화문에서/이동영] 소주 7800병 파는 나라

한 대학 총학생회가 신입생 환영행사에 쓰겠다며 소주 7800병을 구입했다. 단일 행사에 이렇게 많은 소주를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마실 사람이 1700명이란 점을 감안해도 1인당 5병에 가까운 수치다. 술을 마실 다수는 몇 주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대학 신입생이다. 여성이나 종교 신념 또는 체질적으로 안 마시는 사람을 감안한다면 두 번의 밤을 보내는 동안 실제 술잔 잡는 사람은 소주 8병 이상을 들이켠다는 의미다.

암 전문의들은 한결같이 “이 정도면 치사량”이라며 한숨을 내쉰다. 전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1군 발암요인’은 음주다. 음주는 간암 유방암 대장암 식도암 구강암 인후두암 직장암을 직접적으로 유발하는 요인이란 뜻이다.

담배의 독성과 다를 바 없다. 담배와 소주를 나란히 놓고 보자. 담배에는 섬뜩한 경고 그림과 문구가 들어가 있다. 담배 자체가 독성물질이니 거기에 ‘순하다’ ‘마일드’ 같은 멋진 문구로 소비자를 유혹하지 못하게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주에는 청정함을 느끼도록 참이슬, 순하리, 처음처럼 같은 상표가 쓰이고 있다. 건강음료도 아닌데 ‘천연암반수 100%’라는 문구까지 쓴다. 아이유, 수지 같은 인기 연예인이 광고 모델일 뿐 아니라 소주병 라벨과 판촉용 소주잔 아래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톱클래스 연예인이 흥겹게 파티하면서 술 마시는 광고 영상을 보면 누구나 한잔 들이켜고 싶은 충동이 일지 않겠나. 돈보다 국민 건강을 생각하는 연예인이라면 최소한 술 광고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란 게 내 생각이다.

이 나라에선 누가 어디서 얼마나 마시는지 상관없이 얼마든 술을 살 수 있다. 아무런 규제가 없는 탓이다. 음주의 나라로 알고 있는 러시아에서도 오후 9시 이후에는 마트에서 술을 팔지 않는다. 한국에선 언제 어디서든 소주에서 양주까지 살 수 있고 길거리든 지하철 안에서든 술병을 기울여도, 운행하는 차 안에서 동승자가 술을 마셔도 이를 막을 근거가 없다.



일정 도수의 주류는 허가받은 전문 업소에서만 판매하게 하고, 공공장소에선 빈 술병만 들고 있어도 처벌하는 선진국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렇게 관대하다 보니 술에 취해 남에게 해를 입히는 뉴스는 매일 숱하게 쏟아진다. 술에 취해 살인을 저지르고 불을 지르고 난동을 부리거나 운전대를 잡고 질주하다 일가족의 목숨을 앗아간다.



시간과 장소와 양을 적절히 규제해 과하지 않게 막는 장치가 나오지 않는다면 ‘만취 상태에서 … 저질렀다’는 뉴스는 그치지 않을 게 뻔하다. 지난해 국민 한 사람이 마신 소주는 97병 정도라고 한다. 매주 2병 가까운 양이다.

담배 못지않은 폐해가 분명하게 확인되는데 왜 비슷한 수준의 규제를 내놓지 않느냐고 정부 당국자에게 물었다. 술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상 규제를 신설하기 쉽지 않다는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자, 내 잔 받게”라며 자신의 잔에 술을 따라 남에게 주는 이 말이 친근감과 신뢰를 상징하는 사회이니 그의 푸념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소주를 담배 수준으로 규제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온 국민이 그 부작용을 뉴스로 간접 체험할 뿐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목격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 정도라면 사회 분위기를 말하며 강력한 드라이브 거는 일에 주저하는 정부 당국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놓지 않을 수 없다. ‘서민의 술’이라든가 ‘영세상인의 주 수입원’이라는 말도 중요하지만 어느 대학의 소주 7800병 뉴스를 듣고 나니 이젠 소주 명칭과 광고, 판매를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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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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