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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중앙일보]
1. 대선 사전투표 개시 … 소신있게 한 표 행사하자
제19대 대통령 선거(9일)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표심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많다. “지지후보를 정하지 않았다”는 응답자가 20%가 넘고, “지지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응답자까지 합하면 50%에 육박한다. 보통은 투표일이 다가오면 부동층이 줄어드는데 이번 대선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부동층의 규모도 역대 어느 대선보다 많다.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에 따른 돌발 선거라 유권자들이 후보들을 검증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나마 후보들의 능력을 판단할 잣대로 기대를 모은 TV토론도 네거티브와 상대방 헐뜯기로 메워졌다. “대통령감으로 믿고 딱부러지게 찍을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이 투표권 포기 사태다. 특히 보수 후보들의 분열로 표류 중인 보수층이나 노년층의 기권율이 높을 것으로 우려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근간인 투표는 무슨 이유로도 포기해선 안 되는 권리이자 의무다. 최선이 없다면 차선, 심지어 차차선의 선택을 하더라도 “내 대통령은 내가 뽑는다”는 주인 의식 아래 투표장에 나가야 한다. 비록 유권자가 던지는 한 표가 그가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을 이끌어내진 못하더라도 대선 뒤 국정에 나름의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낙선했지만 적지 않은 표를 얻은 후보의 존재는 그 자체로 새 대통령을 견제하는 효과를 낸다. “투표 용지는 총알보다 강하다”는 링컨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는 표 하나 하나가 등가의 지위를 갖는 게 본질이다.
투표를 포기하면 안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투표율이다. 어느 선거나 투표율이 높아야 하지만 이번 대선은 그럴 필요성이 더욱 크다. 땅에 떨어진 대통령과 정부의 권위를 되살려 국정이 제대로 굴러가게 만드는 계기가 돼야 한다. 투표율이 낮다면 당선자의 정통성과 대표성이 흔들려 대선 이후 정국이 수습되기는커녕 혼란이 더욱 가중될 우려가 생긴다. 그런 점에서도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가 절실하다.
때마침 대선 사전투표가 오늘(4일)과 5일 실시된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핵심 공약들을 꼼꼼히 살펴본 뒤 최선의 선택을 하기 바란다. 후보들의 공약은 선관위가 발송한 공보물이나 정책 공약 알리미 사이트(policy.nec.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국 3507곳의 사전투표장소도 휴대전화의 ‘선거정보’ 앱으로 금방 찾을 수 있다. 이번 대선은 응답률이 한 자릿수에 불과한 부실 여론조사와 가짜뉴스, 그리고 “누구 찍으면 누구 된다”는 식의 마타도어가 유달리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권자들은 이런 사술에 휘둘리지 말고 후보들의 공약과 인품에 대한 본인의 판단을 근거로 소신껏 한 표를 행사해야 할 것이다.
2. 과거사 반성 없이 개헌 시동 건 아베를 우려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제 자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을 새 헌법 시행의 목표 연도로 제시했다. 아베 총리가 구체적인 개헌 스케줄을 처음으로 밝힌 것은 ‘전쟁할 수 있는 일본’으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줄 개헌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침략으로 얼룩진 과거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반성과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약속 없는 아베의 개헌 밀어붙이기는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가 우려하는 이유다.
더구나 아베가 “내 세대가 자위대를 합헌화하는 것이 사명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자위대 합헌을 개헌의 주요 과제로 내세운 것은 우려를 더욱 가중시킨다. 아베는 북한 정세가 긴박하고 안보 환경이 엄중해지고 있는 상황을 합헌화 추진의 배경으로 꼽았다. 하지만 이는 핑계일 뿐 실제로는 국제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북한 리스크를 자신이 원하는 개헌과 장기 집권을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는 “헌법 9조의 1항(무력 행사의 영구 포기)과 2항(육해공군 전력 보유 금지와 교전권 포기)을 그대로 두고 자위대의 존재를 기술하겠다”며 한발 물러나긴 했다. 하지만 이는 야당과 국민의 반발을 고려한 현실적인 일시 후퇴일 뿐이다. 그 본질은 지금까지 평화헌법에는 기술돼 있지 않았던 자위대를 새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합헌적 존재로 위상을 바꿔놓겠다는 것이다.
자위대는 1954년 창설 뒤 지속적인 전력 확충과 활동 영역 확장으로 실질적인 ‘보통 군대’가 됐음에도 헌법에 아무런 규정이 없어 ‘위헌’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자위대를 우선 합헌적 존재로 만들고 기회를 봐서 슬그머니 정식 군대로 바꾸겠다는 아베의 계산이 엿보인다.
어제로 공포 70주년을 맞은 평화헌법은 그동안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이끄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아베는 개헌 시도에 속도를 내기에 앞서 과거 침략 전쟁의 피해를 입었던 주변국의 우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불식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부터 곰곰 생각해야 한다.
[이데일리]
3. 여전한 대·중소기업 갑을관계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우월한 지위를 남용하는 ‘갑을문화’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최근 학계 등 전문가 1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가 이러한 갑을관계 타파를 위해 동반성장 정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중에서도 ‘공정한 거래질서 준수’가 첫손에 꼽혔다. 불공정거래 행위가 그만큼 만연하다는 얘기다.
우리 현실에서 대·중소기업 간 수직관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 밀어내기 강요, 하청 관계에서의 갑질 등 시장의 힘만으로 개선하기에는 골이 너무 깊다. 갑이 횡포를 부려도 을은 보복이 두려운 나머지 그냥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건설, 유통, 식품 등 업종도 가리지 않는다.
지난 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일어난 크레인 사고도 따지고 보면 대·중소기업의 갑을문화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위험한 작업을 하청에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로 하청업체 직원들만 피해를 입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근로자의 날’인데도 하청업체 직원들은 공기를 맞추려 출근했다가 변을 당하고 말았다.
비뚤어진 갑을문화가 존재하는 한 대·중소기업 상생은 요원하다. 대기업 책임이 크며 공정거래위원회의 솜방망이 처벌도 지나칠 수 없다. 불법행위로 얻는 이익이 과징금보다 크다면 누가 제대로 법을 지키려 하겠는가. 정부는 지속적인 관리·감독은 물론 엄중한 처벌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대기업들 스스로 잘못된 관행을 고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중소기업을 상생과 협력의 동반자로 여기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4. 대선 후보들의 ‘도깨비 방망이’
제19대 대선이 불과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새 대통령 선출을 앞두고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크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당장 처리해야 할 국가적 과제가 쌓여 있는데도 후보들이 내세우는 공약은 우선 당선되고 보자는 차원을 넘지 못한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공약 처리에 허둥대다가 5년 임기를 보내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는 얘기다.
그제 실시된 마지막 TV토론회에서 논란이 됐던 공약들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거의 주먹구구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후보들이 내세우는 기본소득보장제나 서민복지정책, 사교육비 저감대책 등이 잘못됐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원론적으로는 대체로 타당하다. 우리 사회가 더욱 안정된다면 그런 정책들이 점진적으로 추진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물론 당장이라도 대학 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추고 유치원 과정을 모두 무상으로 운영할 수는 있다. 국민연금 최저 수령액을 높이겠다는 방안도 마찬가지다.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열쇠다. 한번쯤 실시하다가 손을 들고 말 것이라면 차라리 실시하지 않는 게 낫다. 공연히 유권자들의 기대감만 부풀려 결과적으로 불만을 야기할 게 뻔하다. 선거가 실시될 때마다 생겨나는 사회적 부작용이다.
더구나 후보들마다 내세우는 공약이 한두 가지로 그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모두 해내겠다는 것이니, 오히려 믿음이 떨어진다. 마치 ‘도깨비 방망이’ 하나쯤은 남몰래 감추고 있다는 것일까. “돈 나와라, 뚝딱” 하고 주문을 외면 아무 때라도 돈이 쏟아지는 것은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장면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허황된 얘기일 뿐이다. 후보들이 먼저 꿈속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다. 그보다는 세계 속에 처한 우리 현실을 직시하면서 서로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 유권자들의 깨어 있는 의식을 기대한다.
[서울신문]
5. ‘평화헌법’ 수정, 2020년 새 헌법 시행 밝힌 아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제 전쟁 포기와 함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른바 ‘평화헌법’을 개정해 2020년에 시행하고 싶다고 밝혔다. 아베는 헌법 제정 70주년을 맞아 우익 단체인 일본회의 등의 주도로 열린 개헌 행사에서 영상 메시지를 통해 “헌법 9조 1항(전쟁포기)과 2항(군사력 보유 금지)을 남기고 자위대를 명확하게 포함한다는 생각은 국민적 논의를 할 만하다”고 밝혔다.
“자위대 합헌화가 내 시대의 사명”이라고까지 강조했다. 당초 평화헌법을 상징하는 제9조 1항과 2항까지 손대려다 국민들의 거센 저항을 감안해 그대로 놔두면서 자위대를 명문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일단 개헌의 문을 연 뒤 제9조를 뜯어고치려는 구상이나 마찬가지다.
1954년 창설된 자위대는 자국 방어만을 목적으로 하는 역할을 점점 확대해 군대처럼 활동하고 있다. 자위대는 세계 10위권에 들어갈 만큼 막강한 육·해·공군의 전력을 갖고 있다. 특히 해상자위대의 전력은 세계 5위다.
일본은 지난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한 안전보장관련법의 시행에 따라 ‘전쟁 가능한 국가’의 토대를 마련해 놓았다. 까닭에 지난 1일 해상자위대는 미군 보급함 방어를 위해 경항공모함 이즈모함을 출동시킬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이 승전국인 미군 보호에 나선 첫 군사작전이다. 아베의 의도는 헌법 조문을 고쳐 자위대의 현실적 한계를 해소해 분쟁 지역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을 터놓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일본 자위대의 지위를 ‘국방군’으로 재무장시키는 데 있다.
또 아베는 북핵과 미사일 도발로 인한 한반도의 안보 불안을 이용해 입지를 굳히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이럴 경우 동북아의 안보 긴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개헌 여부를 결정할 일본 국민들도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지난해 37%에서 올해 41%로 높아졌다. 반면 고칠 필요가 없다는 55%에서 50%로 줄었다. 제9조에 대해서는 바꾸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63%다.
아베는 ‘평화헌법’이 제정된 경위와 가치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개헌이 ‘군국주의로의 회귀’라는 주변국들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는 한 전범국가라는 오명을 결코 지울 수 없다. 한반도의 위기를 핑계 삼아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꾀하려는 꼼수일 뿐이다. 아베 총리는 개헌을 밀어붙이기에 앞서 과거 국군주의 아래 저지른 만행부터 진정성을 갖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할 것이다.
6. ‘세월호 인양 거래說’ 대선 쟁점화 무리다
어제는 한 공중파 방송사의 보도로 하루 종일 논란이 일었다. SBS가 전날 ‘8시 뉴스’에서 세월호 인양이 늦춰진 배경에 정치적 거래가 있다는 투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SBS는 기자 리포트로 “해양수산부가 세월호를 뒤늦게 인양한 것은 차기 권력의 눈치를 본 것이라는 취지의 공무원 발언이 나와 관련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적 슬픔을 안겨 준 세월호 참사를 특정 후보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불의를 파헤친 기자와 매체는 찬사를 받아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차기 권력’으로 지목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진영은 즉각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또 다른 당사자인 해수부도 “왜 거짓말로 세월호 인양 작업을 한순간에 정치적 사안으로 만들어 버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SBS도 해당 뉴스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고 사과했으니 사실상 잘못을 스스로 인정했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는 뭐니 뭐니 해도 오는 9일 치러지는 대선이다. 2년 만에 인양된 세월호 선체 수색 작업의 진척 상황도 국민적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파괴력이 큰 이슈가 중첩된 내용을 다루는데 조금 더 사려 깊지 못했던 것을 보도 당사자들도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대선이 불과 닷새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근거가 부실한 문제 제기는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불러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SBS 보도 이후 자유한국당은 기자회견을 열어 ‘뒷거래 의혹’이라는 표현을 써 가며 ‘충격’이라고 민주당을 비난했다. 국민의당은 한 걸음 나아가 “문 후보의 즉각 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이제라도 선거 보도 종사자들은 자신의 기사가 결과적으로 ‘가짜뉴스’가 되지 않도록 깊이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세월호 인양 작업이 기술적 이유로 늦어지면서 상하이샐비지가 계약금액보다 훨씬 많은 자금을 투입하는 등 고의 지연이 불가한 상황”이라는 해수부 설명에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반면 ‘정부의 고의지연설(說)’이 나돌 때는 인위적 조작 가능성을 극구 부인하던 일부 정치권마저 ‘특정 후보 연루설’에 맞장구를 치고 나서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당연히 보도 내용의 진위는 밝혀져야 한다. 뉴스에 등장한 해수부 공무원이 실존 인물이라면 발언 경위도 조사해야 한다. 그럴수록 각 후보 진영도 높아진 유권자 수준을 감안해 대응해야 할 것이다.
7. 국민은 내우외환 돌파할 ‘정치적 능력’ 원한다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후보를 선택하지 못하고 있는 부동표가 아직도 남아 있지만 유권자들의 선택 기준은 보다 명확해지는 분위기다. 서울신문과 엠브레인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유권자들의 최우선 선택 기준은 정치적 능력인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2000명) 가운데 지지 후보 결정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인으로 ‘후보의 정치적 능력’(33.0%)을 꼽은 것이다.
‘후보의 이념과 노선’(32.1%)과 ‘후보의 도덕성’(20.8%), 당선 가능성(6.7%) 등이 뒤를 이었다. 정치적 능력은 후보자의 자질과 리더십, 국정을 이끄는 통합 능력 등이 총망라된 의미를 담고 있다.
국민들이 후보 선택시 정치 능력을 최우선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은 대한민국이 직면한 엄중한 현실과 직결된다. 오는 10일 취임할 차기 대통령은 국내적으로 구조적인 부정부패 구조를 바로잡는 적폐청산에다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된 국가를 통합하는 막대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북핵·미사일뿐만 아니라 사드 문제로 얽힌 주변국들과의 관계 복원 등 한반도 안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하는 책무를 안고 있다.
저성장의 덫에 걸려 침체에 빠진 경기도 살려야 한다. 최악의 청년실업 등을 해결하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동시에 4차 혁명을 이뤄내야 함은 물론이다. 국민들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국내외 현안을 풀어 가기 위한 후보 능력을 선택 기준으로 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국민들은 이념과 노선에 따라 서로를 맞상대할 수 없는 적으로 돌리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난 새로운 대한민국을 희망하고 있다. 갈등과 분열을 넘어 국민 대통합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 후보를 밝혔음에도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부유층(浮遊層)도 적지 않았다. 후보 난립에 따라 ‘흔들리는 표심’의 향배도 막판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세대 차이를 떠나 국민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 구태의연한 선거 관행으로 나타났다.
선거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37.9%가 ‘서로 비방하는 네거티브 전략’을, 19.4%가 실현을 위한 재원도 제시하지 못하는 ‘무분별한 공약 남발’을 지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확인과 검증할 시간이 없다는 점을 악용해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내지르는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심판할 수밖에 없다.
닷새밖에 남지 않는 선거일까지는 여론조사의 공표도 없어 판세를 파악하기 힘든 ‘깜깜이 기간’이다. 이 때문에 흑색선전 등을 담은 가짜뉴스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한층 기승을 부릴 것은 뻔하다. 국민의 수준이 정치의 수준이듯 깨어 있는 유권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내 손에 있다는 자세로 후보자들의 자질과 능력 등을 꼼꼼히 따져 투표해야 한다.
[조선일보]
8. 해외 나간 일자리 109만개, 들어온 일자리는 7만개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에 투자해서 새로 만들어낸 일자리가 109만개나 된다. 반면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 투자해 신규로 창출한 일자리는 같은 기간 7만개에 불과하다고 대한상공회의소가 보고서를 냈다.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자 해외 투자와 현지 생산을 늘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기는 하다. 문제는 나가고 들어오는 것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국내 투자를 꺼리는데 외국인 투자 유치는 세계 37위 수준에 그친다.
지금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자리 유치 전쟁을 미국 조사 기관 갤럽은 '3차 대전'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만큼 절박하고 치열하다는 뜻이다. 15세 이상 세계 인구 가운데 일하거나 일하고 싶어 하는 인구는 30억명인데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는 전 세계적으로 12억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다. 그래서 각국 정부는 규제를 풀고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서 외국 기업을 유치하고 해외로 나간 자국 기업까지 다시 불러들이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규제 하나를 신설할 때 규제 두 가지를 없애는 제도를 도입했다. 법인세를 35%에서 15%로 확 낮추겠다고도 했다. 일본의 아베 정부도 국가 전략 특구를 지정해 신산업 규제를 대폭 풀고 법인세를 낮춰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반대로 간다. 규제 혁신도, 노동시장 개혁도 헛돌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평가한 우리나라의 정부 규제 환경은 138국 가운데 105위다. 외국인 투자 규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국 가운데 30위다. 대한상의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새 정부가 파격적 규제 혁신에 나서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당선 유력 후보의 공약은 '세금으로 공공 일자리 81만개 만들기'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9.8%)이 전체 실업률(3.7%)의 2.65배로 높아졌다. 올 3월에는 이 비율이 2.74배로 더 높아졌다. 미·일의 경우 통상 청년 실업률이 전체 실업률의 2배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만 해도 이 비율이 2배 미만이었다. 정치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 이 비율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9. 바른정당 탈당 의원들이 맞는 逆風을 보며
집단 탈당한 바른정당 의원 12명이 역풍(逆風)을 맞고 있다. '보수 단일화'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불과 석 달 전에 탄핵을 주도하고 찬성했던 의원들, 탄핵에 반대하는 측과 당을 같이할 수 없다며 탈당해 바른정당을 만든 의원들이 갑자기 원래 당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데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추구하는 가치, 정강과 정책을 따라 모인 정당의 당원들이 자기 당 후보의 지지율이 낮다고 투표 며칠 전에 집단 탈당한다는 것도 아무리 별일이 다 있는 한국 정치라지만 전에 볼 수 없었던 일이다.
그런데 이들의 탈당 이후 예상치 못했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바른정당과 유승민 후보에게는 오히려 후원금과 격려 전화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유 후보의 개인 페이스북 친구도 하루 만에 1만명이 증가했다. 일부에서는 야권 지지자들이 보수 표심을 분리하려고 조직적으로 유 후보 지원에 나선 것이라고 한다.
그런 움직임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엔 민심 전체의 역풍이 예상을 넘어섰다. 실제 탈당한 의원 1명은 탈당을 철회했고 탈당을 검토 중이던 의원도 잔류를 선언했다. 탈당 철회를 고민하는 의원이 더 있다고 한다. 이 현상이 실제 투표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단정할 수는 없다. 어쨌든 홍준표 후보로 사실상 단일화되는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고 오히려 유 후보가 지금의 5% 안팎을 넘어서 의미 있는 득표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정치를 바라보는 눈이 한층 매서워진 유권자들이다. 바른정당 의원들의 집단 탈당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인터넷에는 이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탈당 의원들의 명분 뒤에 있는 계산까지 다 읽고 있었다. 인터넷 공간이 야권 지지자들 마당이라고는 하지만 이 많은 목소리를 그렇게만 치부할 수는 없다.
이들이 분노한 것은 무엇보다 눈앞의 이익에 따라 처신을 180도 바꾸는 정치인의 행태였다. 앞으로 어떤 명분으로도 이런 행태는 통하지 않을 듯하다. 이제 유권자들은 낡은 정치 행태와 분명히 단절하기를 바라고 있다. 특정인을 맹종하는 시대는 끝나고 과정을 중시하는 문화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선을 1주일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벌어진 이번 사태에서 우리 정치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국민을 설득하는 절차를 무시한 정치인들의 일방통행은 이제 즉각 제동이 걸린다. 국민은 소신과 인내를 갖고 어렵더라도 자기 길을 걸어가는 정치인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보았다. 특히 위기에 빠진 보수 정치권이 이 교훈을 새기면 기회는 곧 다시 오게 될 것이다.
[매일경제]
10.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놓고 벌어진 무책임한 정치공방
세월호 참사를 둘러싸고 '잠수함 충돌설' '대통령 7시간' 등 악의적인 의혹제기와 유언비어가 지난 3년 동안 숱하게 쏟아져 국민들을 힘들게 했다. 세월호 선체 인양과 함께 스러지는 듯하던 그 망령이 대선을 며칠 앞둔 지금 정치권에서 되살아나고 있으니 황당하다.
'세월호 인양 고의지연 의혹'을 둘러싼 공방이 그것이다.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을 고의로 지연하면서 차기 정권과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 있다'는 이 의혹은 2일 저녁 어느 방송의 단독 보도가 발단이다. 이 방송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해수부 2차관 신설을 공약했다. 세월호 인양은 문 후보에게 갖다 바치는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익명의 해수부 공무원 발언을 소개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2014년 단식 농성까지 했던 문재인 후보 측은 즉각 이 보도에 항의하고 정정과 사과를 요구했다. "해수부 2차관을 약속한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도 인양시기는 기술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됐을 뿐이라며 보도내용을 부인했다. 이철조 세월호 현장수습본부장은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해 고의 인양 지연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파문이 커지자 해당 방송사는 3일 "본래 취지와 다르게 오해가 빚어졌다"며 사과했는데 애초 더 신중한 확인 절차를 거쳤어야 할 의혹이다. 돌이켜보면 세월호와 관련해 아니면 말고식 '다이빙벨 구조론'처럼 국민 가슴을 멍들게 한 허황된 주장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도 정치권은 이런 의혹을 물 만났듯 기정사실화하고 증폭시키고 있으니 참으로 무책임하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온 국민이 경악했는데 문 후보가 사죄는커녕 언론에 보복과 고발 운운으로 맞선다"며 공세를 펼쳤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도 "문 후보가 3월 팽목항을 방문해 '얘들아 고맙다'고 한 말뜻을 이제야 알겠다"며 의혹 부풀리기에 나섰다.
세월호 인양은 기술적인 한계나 전문가 진단을 통해 판단해야지 불쑥 터져나온 누군지도 모르는 공무원의 발언으로 따질 사안이 아니다. 3일부터 여론조사 결과 공표가 금지되는 '깜깜이 선거국면'이어서 그러잖아도 가짜뉴스 발호가 우려되는 판국이다. 엄격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는 언론과 이를 토대로 일단 의혹부터 확대 재생산하려는 정치권이 깊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주요신문칼럼
1. [연합뉴스][김은주의 시선] 흥사단과 도산 안창호
"조상 나라 빛내려고 충의 남녀 일어나서 / 무실역행 깃발 밑에 늠름하게 모여드네 / 맘을 매고 힘을 모아 죽더라도 변치 않고 / 한 목적을 달하고자 손을 들어 맹약하네."
도산 안창호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한 민족운동단체 흥사단의 입단가 1절이다.
1913년 5월13일 청년 강영소의 집에서 흥사단 창립식이 거행됐다. 지방색을 없애기 위해 조선 8도에서 한 사람씩 지역대표를 뽑아 8도 대표가 창립위원으로 참여했다.
안창호는 흥사단 약법에서 설립 목적을 "우리 민족전도의 대업의 기초를 준비함에 있음"이라고 밝혔다. '민족전도'는 민족부흥, 곧 민족의 독립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무실·역행·충의·용감의 4대 정신으로 무장, 덕성을 함양하고 신체를 단련하며 전문지식과 과학기술을 습득하고 건전한 인격을 기르고자 했다.
1919년 3.1운동 이전까지 흥사단은 미주에서 단우 모집, 동맹수련, 인격수양, 재정적 기초를 만들기 위한 북미실업주식회사 사업 등에 주력했다. 그러나 미주동포 중에서만 단우를 선발할 수 있었고, 고학하는 유학생들과 이주 노동자 중심이었으므로 독립운동에 필요한 인재 양성에는 한계가 있었다.
3.1 운동 이후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흥사단은 1920년 상하이에 흥사단 원동위원부를 조직했다. 이어 1922년 서울에 수양동맹회, 1923년 평양에 동우구락부를 각각 창립했다. 국내의 두 단체는 1925년 수양동우회로 통합됐고 그 뒤 동우회로 개칭했다. 기관지 월간 '동광'을 창간해 40호까지 발행했다. 중국과 미주, 국내에서 흥사단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주요 사건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안창호는 1878년 11월9일 평안남도 강서의 가난한 선비 집안에서 출생했다.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국력배양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16세이던 1894년 상경, 이듬해 구세학당(언더우드 학당)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3년간 수학하며 서구 문물을 접했다. 그는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해 평양에서 관서지부 조직을 맡았다. 1898년 다시 서울로 올라가 만민공동회 청년 간부로 활약했으며 1899년에는 강서군 동진면에 강서지방 최초의 근대학교인 점진학교를 설립했다.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인 친목회를 조직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한인공립협회를 설립했다. 회원 교육을 위해 야학을 개설했고 공립신보를 발행해 교포들의 생활 향상 및 의식계몽에 힘썼다. 을사늑약 체결 소식을 듣고 국내에서 구국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1907년 귀국했다.
안창호는 같은 해 윤치호, 이갑, 신채호 등과 비밀결사조직 신민회를 만든 뒤 대한매일신보를 기관지로 해 민중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1908년 평양에 대성학교를 설립하고 평양과 대구에 출판기관인 태극서관을 건립했으며 민족산업 육성을 위해 평양에 도자기회사를 설립했다. 1909년에는 박중화, 최남선, 김좌진, 이동녕 등과 함께 국내 최초의 청년운동 단체인 청년학우회를 조직, 민족계몽 및 지도자 양성에 주력했다.
1909년 10월 안중근 의거 배후 혐의로 체포됐다가 두 달 만에 석방된 후 1910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안창호는 민족지도자들과 함께 북만주에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만들어 영농과 군사양성을 기하려는 계획을 추진했으나 자금관계와 급진파의 반대로 실패했다. 이에 시베리아를 거쳐 1911년 미국으로 망명해 1913년 흥사단을 창설했다.
안창호는 3.1 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교민들이 모금한 돈을 갖고 상하이로 건너갔다. 임시정부에서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를 맡았으며 임시정부 내 계파 갈등이 심해지자 1921년 국민대표회의 소집을 주장했다. 1923년 상하이에서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되어 부의장에 선임됐으나 63회 회의를 끝으로 결렬됐다.
1924년 만주 일대의 독립군 대표들과 회동하고 난징에 동명학원을 설립했다. 같은 해 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각지를 순행하며 국민회와 흥사단의 조직을 강화했다. 1926년 중국에 돌아와서 만주 지린(吉林)성 일대를 답사한 뒤 독립전쟁의 근거지를 만들기 위한 이상촌 사업을 추진했다.
1929년 '미국에 재류하는 동지 여러분께'라는 글을 통해 흥사단은 단순한 수양단체가 아니라 한국의 독립을 위한 혁명 훈련 단체임을 천명했다. 1930년 다수의 흥사단원이 참석한 가운데 이시영, 김구 등과 한국독립당을 결성했다. 1932년 4월 윤봉길 의거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서울로 압송됐다. 4년의 실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와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35년 2년 6개월 만에 가출옥하여 평안남도 대보산 송태산장에서 은거했다.
1937년 6월 동우회사건으로 다시 수감됐다가 같은 해 12월 병으로 보석됐고 이듬해 3월10일 경성대학부속병원에서 간경화증으로 사망했다. 안창호는 취조 과정에서 흥사단이 독립운동 단체라고 당당하게 진술했다.
흥사단은 1937년 이른바 동우회사건으로 200여명의 회원이 검거되면서 강제로 해산됐다. 이때 수감된 안창호는 병보석으로 출감했다가 1938년 3월 경성대학부속병원에서 사망했다.
해방 후 흥사단은 1948년 8월15일 본부를 국내로 옮기고 미국에는 미주위원부를 개설하는 등 조직을 재정비했다. 5.16 군사정변이 일어날 때까지 시민 계몽을 위한 금요강좌를 운영했고 1963년에는 청년학생 아카데미를 발족해 대학생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청소년 리더십 캠프, 나라사랑 국토순례 등의 아카데미운동을 시작했다.
현재 흥사단 산하 전국 25개 지부와 미국, 캐나다에 9개 지부가 활동하고 있다. 또 부설조직으로 민족통일운동, 투명사회운동, 교육운동 등 3개 운동본부와 청소년회관, 도산아카데미 등 22개 청소년 시설을 운영하며 지역사회 풀뿌리 시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나라 잃고 이국만리 서러운 삶을 영위하던 교민들이 민족의 독립을 열망하며 모여 만든 흥사단.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요구하는 흥사단의 역할도 달라졌다.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흥사단은 시민단체로 자리 잡았다. 100여 년 전 어느 봄날 저녁 가난한 한인 청년의 집에서 조촐하다 못해 초라하기까지 한 창립식을 가졌다. 이렇게 출범한 흥사단은 차츰 틀을 갖춰 중국과 미국, 국내에서 험난한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 단우들은 직접 몸을 던져 싸웠는가 하면, 피눈물 나게 번 돈 한푼 두푼을 모아 독립자금에 보탰다. 이제 시대가 변해도 흥사단의 초심, 안창호의 그 뜨거운 조국 사랑은 기억해야 한다.
2. [서울신문][말빛 발견] 따라가지 못한 사람 '미망인'
‘영윤’은 중국 초나라 때 최고 직위의 관직이다. 초의 문왕이 죽자 당시 영윤이었던 자원이라는 사람이 문왕의 부인을 유혹하고 싶어졌다. 그는 궁 옆에 새 건물을 짓고 ‘만’(萬)이라는 의식을 치른다. 이것은 군대를 훈련할 때나 하는 행사였다. 이 소식을 들은 문왕의 부인은 이렇게 한탄한다. “영윤은 적을 치는 데는 생각이 없나 보다. ‘미망인’ 곁에서 이러고 있으니.”
‘춘추좌씨전’에 전하는 내용이다. 여기서부터 ‘미망인’이 보이기 시작한다. ‘미망인’은 이렇게 아주 오래된 말이다. 이천 년도 넘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리도 쓰게 되고, 의미에도 변화가 온다.
문왕의 부인은 ‘미망인’을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 ‘미망인’은 본래 이렇게 일인칭으로 쓰였다. 그것도 자신을 한껏 낮춘. 원뜻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아직(未) 따라 죽지(亡) 못한 사람(人)’이 ‘미망인’이었다. 문왕 부인은 ‘미망인’에 이런 뜻을 담았다. 당시의 풍습과 생각, 시대상을 보여 준다. 아내는 남편에게 딸려 있고 죽음도 같이해야 한다는 사고가 지배하던 시절이다.
지금 우리에게 ‘미망인’은 일인칭이 아니다. 제삼자를 가리키는 삼인칭으로 쓴다. 그러면서 고결함으로 포장된 말처럼 사용하려 하기도 한다. ‘과부’가 비하적이라면, ‘미망인’은 반대인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이천 년 전의 생각은 아직 강하게 묻어 있다. ‘미망인’에 대응해 남자를 가리키는 말은 없다. 남성 중심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오래 써 온 관습이어서 버리기는 만만치 않다.
3. [중앙일보][새미 라샤드의 비정상의 눈] 대중교통, 한국은 편리 … 이집트는 인간적 매력
외국인으로서 한국에 살다 보면 여러 가지를 비교하게 된다. 일상생활과 관련 있는 대중교통은 자주 비교하게 되는 대상이다. 한국의 대중교통은 정보기술(IT)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편리하다. 이집트 대중교통도 나름 장점이 많다. 사실 버스·기차·지하철·전철 등 한국에 있는 대중교통은 이집트에서도 다 볼 수 있다. 한국보다 오히려 가격이 싸고 인간적인 매력까지 있다.
게다가 한국에 없는 독특한 대중교통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마이크로버스다. 이름에 ‘마이크로’가 붙었지만 사실은 14명이 탈 수 있는 소형 승합차다. 한국에선 업무용으로 많이 쓰지만 이집트에선 개인이 운행하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주로 쓴다. 수도인 카이로 같은 대도시에선 국가 대중교통기관에서 운영하는 대형버스보다 더 인기를 끈다.
이집트 국민이 마이크로버스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적인 매력이다. 대형버스는 노선표대로 큰길만 다니지만 마이크로버스는 대형버스가 가지 않는 작은 길도 달려 동네 깊숙한 곳까지 운행한다. 승객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타고 내릴 수 있다. 심지어 타기 전에 운전기사와 협의만 하면 원래 운행하는 노선에서 조금 벗어나 원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도 있다.
마이크로버스의 가장 큰 장점은 24시간 운행이다. 국가 대중교통기관에서 운영하는 일반 버스는 자정 무렵에 운행을 종료하기 때문에 카이로에서 막차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탈 수 있는 대중교통은 개인이 운영하는 마이크로버스밖에 없다.
마이크로버스는 시골과 대도시를 연결하는 유익한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관광회사들이 운행하는 대형버스는 주로 대도시에서 대도시로, 큰 도로로만 다닌다. 하지만 마이크로버스는 소도시나 시골까지 데려다준다. 따라서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든든하게 여기면서 믿고 타는 대중교통이 바로 마이크로버스다.
일부 운전기사는 슬그머니 요금을 올리려 하는데 승객들이 항의하고 흥정해서 낮은 요금에 합의하기도 한다. 마이크로버스 운전기사는 대개 14명의 승객이 모두 차기 전에는 출발하지 않는다. 그러면 미리 온 승객들이 요금을 조금 더 주겠다고 제안해 손님이 다 차기 전에 떠나기도 한다.
마이크로버스는 대중교통 수단일 뿐 아니라 이집트 사회와 사람들의 사고방식, 그리고 딱딱하지 않고 정이 많은 정서까지 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한국은 첨단기술이 자랑이라면 이집트는 인간적인 매력이 장점이다.
4. [조선일보][양해원의 말글 탐험] 아울렛? 아웃렛!
얼굴도 몸집도 오동통해 떡보. 늘 불콰하고 화난 듯한 핏대. 퀭한 눈, 움푹한 볼이 만화영화 주인공 닮아 황금박쥐. 근엄한 분위기에 머리칼 치렁하다고 예수. 심심하면 "아시시(으스스)한 얘기 해줄까" 해서 아시시. 긴 턱에 부라린 눈으로 야단치는 품이 영락없이 악어. 눈썹 짙은 독일어 선생님 게슈타포….
교사(校舍)의 먼 불빛에 소리 죽여 농구하던 고교 시절. '야자' 시간 '땡땡이'라야 그게 고작이라, 성함(姓銜) 대신 별명으로 선생님들 흉보며 알량하게 스트레스 풀곤 했다. 그중 특히 잊지 못할 별명이 '사스콰치(Sasquatch)'. 하지만 아무도 그리 부르지 않았다. 사람 닮은 털북숭이로 전설 속에 살아 있는 괴물(怪物). 그 느낌 살리려면 '싸스콰치' 하고 된소리를 내야 했으니까.
소리 그대로 쓰면 법(法)에 어긋나는 줄은 나중에 알았다. 사람 혼내주는 법 말고 '외래어표기법'(실은 외국어도 포함) 말이다. 된소리 표기를 하지 않는 원칙(ㄲ→ㅋ, ㄸ→ㅌ, ㅃ→ㅍ, ㅆ→ㅅ, ㅉ→ㅊ) 때문인데.
이탈리아 상표 '구찌'는 그래서 '구치'가 원칙에 맞는다. 그 설립자 이름 역시 '구초 구치(GuccioGucci)'로 써야 한다. 구치가 만든 회사 '구찌'라…. 빵집 이름은 '파리 바게뜨'지만 일반명사인 프랑스 빵 이름은 '바게트'로 표기하게 돼 있다. 주로 고유명사에서 이렇게 외국어 표기가 뒤엉킨다. 규정 신경 안 쓰고 한글 이름을 붙인 탓. 문제는 된소리에서 그치지 않는다.
훼미리마트(패밀리마트), 휴렛팩커드(휼렛패커드), 폭스바겐(폴크스바겐), 크리스챤 디올(크리스티앙 디오르)…. 실제 표기와 원칙에 따른 표기(괄호 안)가 조금씩 다르다. 이런 게 한 기사에 같이 나오면 아주 골칫거리다.
'롯데아울렛 이천점은 어린이 공간 증축으로(…) 롯데몰 동부산을 제치고 국내 최대 규모 아웃렛으로 올라섰다.'
아웃렛(outlet)이 늘어나면서, 규정에 어긋나는 '아울렛' 표기가 주류를 이뤘다. 상호(商號)에 맞추자니 표기법이 무색해진다. 표기법에 맞추자니 남 이름 함부로 바꾸는 꼴이다. 법이 물렁한 탓일까, 지킬 만하지 못한 걸까.
외국어 표기에 정답은 없다. 다만 원칙과 약속, 합리성이 중요할 텐데…. 아무튼 이건 괜찮으려나,
5. [중앙일보][분수대] 조선시대 사랑가
‘뜨거운 사랑과 욕망의 노랫말들이 모여 있는 공간입니다. 청소년과 아이들을 인솔하는 부모님과 선생님께서는 각별히 신경 써 주세요’. 전시장 한쪽에 붙은 안내문구다. 이른바 ‘19금 노래’,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하지만 약간 엄포성이다. 표현 농도가 그리 진하지 않다. ‘사랑 사랑 긴긴 사랑 개천같이 내내 사랑. 구만 리 먼 하늘에 흩어지고 남는 사랑’은 곱고 예쁘기만 하다. ‘사랑이 어떻더냐 둥글더냐 넓적하더냐 길더냐 짧더냐’는 요즘 트로트 유행가 같다.
더러 농염한 대목도 있다. ‘들입다 바드득 안으니 가는 허리 자늑자늑’. 여인네 신체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이다. ‘중놈도 사랑인 양하여 자고 가니 그립다’며 지난밤을 아쉬워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은 젊음의 상징일까. ‘진실로 나의 평생 원하기는 말 잘하고 글 잘하고 얼굴 단아하고 잠자리 잘하는 젊은 서방’이라고 고백한다. ‘샛서방 밥을 담다가 놋주걱을 부러뜨렸다’는 며느리를 시어머니가 위로하기도 한다. ‘저 아기 너무 걱정 말아라. 우리도 젊었을 때 많이 꺾어 보았노라’. 시쳇말로 쿨하다. 지금 봐도 낡지 않다.
위의 노래는 한글로 기록한 최초의 가곡 모음집인 『청구영언(靑丘永言)』에 등장한다. 1728년 가객(歌客) 김천택이 구전 노랫말 580수를 일일이 옮겼다. 그 원본이 요즘 서울 용산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일반에게 처음 공개되고 있다. 이방원의 ‘하여가’, 정몽주의 ‘단심가’ 등 교과서 단골 시조도 많지만 옛사람의 풍류·흥취가 담긴 노래가 정겹다. 세상살이 맨살을 드러낸다. “한때 입으로 불리다가도 저절로 드러나지 않게 돼 후에 연기처럼 사라짐을 면치 못하게 되니 어찌 슬프고 안타깝지 않겠는가”라는 김천택의 열정 덕분에 오늘에 전해지게 됐다.
전시장은 현대적이다. 옛 노랫말을 오늘날 도시 뒷골목 풍경과 겹쳐 놓았다. 『청구영언』 전체를 주제·작가별로 살펴보는 코너도 있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모습이 지금이나 300년 전이나 다름없다는 걸 일러 준다. 삶이 곧 노래요, 노래가 곧 시 아닌가.
나라의 평안을 비는 마음도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선인들은 ‘우리 동방 산하의 견고함이여 태평성대 풍속이 오래도록 이어질 성지(城池)’ ‘임금은 덕을 닦고 신하는 정사를 돌보니 예의 있는 동쪽 나라’가 되기를 희망했다. 요즘으로 따지면 사랑하기 좋고, 아이 낳기 좋은 곳이다. 나라 안팎으로 갈등과 위기의 시절, 철부지 사랑타령을 또 하나 꺼내 본다. ‘아마도 임과 외따로 살라 하면 그건 그리 못하리라’.
주요신문사설
[중앙일보]
1. 대선 사전투표 개시 … 소신있게 한 표 행사하자
제19대 대통령 선거(9일)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표심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많다. “지지후보를 정하지 않았다”는 응답자가 20%가 넘고, “지지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응답자까지 합하면 50%에 육박한다. 보통은 투표일이 다가오면 부동층이 줄어드는데 이번 대선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부동층의 규모도 역대 어느 대선보다 많다.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에 따른 돌발 선거라 유권자들이 후보들을 검증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나마 후보들의 능력을 판단할 잣대로 기대를 모은 TV토론도 네거티브와 상대방 헐뜯기로 메워졌다. “대통령감으로 믿고 딱부러지게 찍을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이 투표권 포기 사태다. 특히 보수 후보들의 분열로 표류 중인 보수층이나 노년층의 기권율이 높을 것으로 우려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근간인 투표는 무슨 이유로도 포기해선 안 되는 권리이자 의무다. 최선이 없다면 차선, 심지어 차차선의 선택을 하더라도 “내 대통령은 내가 뽑는다”는 주인 의식 아래 투표장에 나가야 한다. 비록 유권자가 던지는 한 표가 그가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을 이끌어내진 못하더라도 대선 뒤 국정에 나름의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낙선했지만 적지 않은 표를 얻은 후보의 존재는 그 자체로 새 대통령을 견제하는 효과를 낸다. “투표 용지는 총알보다 강하다”는 링컨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는 표 하나 하나가 등가의 지위를 갖는 게 본질이다.
투표를 포기하면 안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투표율이다. 어느 선거나 투표율이 높아야 하지만 이번 대선은 그럴 필요성이 더욱 크다. 땅에 떨어진 대통령과 정부의 권위를 되살려 국정이 제대로 굴러가게 만드는 계기가 돼야 한다. 투표율이 낮다면 당선자의 정통성과 대표성이 흔들려 대선 이후 정국이 수습되기는커녕 혼란이 더욱 가중될 우려가 생긴다. 그런 점에서도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가 절실하다.
때마침 대선 사전투표가 오늘(4일)과 5일 실시된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핵심 공약들을 꼼꼼히 살펴본 뒤 최선의 선택을 하기 바란다. 후보들의 공약은 선관위가 발송한 공보물이나 정책 공약 알리미 사이트(policy.nec.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국 3507곳의 사전투표장소도 휴대전화의 ‘선거정보’ 앱으로 금방 찾을 수 있다. 이번 대선은 응답률이 한 자릿수에 불과한 부실 여론조사와 가짜뉴스, 그리고 “누구 찍으면 누구 된다”는 식의 마타도어가 유달리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권자들은 이런 사술에 휘둘리지 말고 후보들의 공약과 인품에 대한 본인의 판단을 근거로 소신껏 한 표를 행사해야 할 것이다.
2. 과거사 반성 없이 개헌 시동 건 아베를 우려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제 자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을 새 헌법 시행의 목표 연도로 제시했다. 아베 총리가 구체적인 개헌 스케줄을 처음으로 밝힌 것은 ‘전쟁할 수 있는 일본’으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줄 개헌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침략으로 얼룩진 과거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반성과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약속 없는 아베의 개헌 밀어붙이기는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가 우려하는 이유다.
더구나 아베가 “내 세대가 자위대를 합헌화하는 것이 사명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자위대 합헌을 개헌의 주요 과제로 내세운 것은 우려를 더욱 가중시킨다. 아베는 북한 정세가 긴박하고 안보 환경이 엄중해지고 있는 상황을 합헌화 추진의 배경으로 꼽았다. 하지만 이는 핑계일 뿐 실제로는 국제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북한 리스크를 자신이 원하는 개헌과 장기 집권을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는 “헌법 9조의 1항(무력 행사의 영구 포기)과 2항(육해공군 전력 보유 금지와 교전권 포기)을 그대로 두고 자위대의 존재를 기술하겠다”며 한발 물러나긴 했다. 하지만 이는 야당과 국민의 반발을 고려한 현실적인 일시 후퇴일 뿐이다. 그 본질은 지금까지 평화헌법에는 기술돼 있지 않았던 자위대를 새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합헌적 존재로 위상을 바꿔놓겠다는 것이다.
자위대는 1954년 창설 뒤 지속적인 전력 확충과 활동 영역 확장으로 실질적인 ‘보통 군대’가 됐음에도 헌법에 아무런 규정이 없어 ‘위헌’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자위대를 우선 합헌적 존재로 만들고 기회를 봐서 슬그머니 정식 군대로 바꾸겠다는 아베의 계산이 엿보인다.
어제로 공포 70주년을 맞은 평화헌법은 그동안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이끄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아베는 개헌 시도에 속도를 내기에 앞서 과거 침략 전쟁의 피해를 입었던 주변국의 우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불식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부터 곰곰 생각해야 한다.
[이데일리]
3. 여전한 대·중소기업 갑을관계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우월한 지위를 남용하는 ‘갑을문화’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최근 학계 등 전문가 1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가 이러한 갑을관계 타파를 위해 동반성장 정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중에서도 ‘공정한 거래질서 준수’가 첫손에 꼽혔다. 불공정거래 행위가 그만큼 만연하다는 얘기다.
우리 현실에서 대·중소기업 간 수직관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 밀어내기 강요, 하청 관계에서의 갑질 등 시장의 힘만으로 개선하기에는 골이 너무 깊다. 갑이 횡포를 부려도 을은 보복이 두려운 나머지 그냥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건설, 유통, 식품 등 업종도 가리지 않는다.
지난 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일어난 크레인 사고도 따지고 보면 대·중소기업의 갑을문화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위험한 작업을 하청에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로 하청업체 직원들만 피해를 입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근로자의 날’인데도 하청업체 직원들은 공기를 맞추려 출근했다가 변을 당하고 말았다.
비뚤어진 갑을문화가 존재하는 한 대·중소기업 상생은 요원하다. 대기업 책임이 크며 공정거래위원회의 솜방망이 처벌도 지나칠 수 없다. 불법행위로 얻는 이익이 과징금보다 크다면 누가 제대로 법을 지키려 하겠는가. 정부는 지속적인 관리·감독은 물론 엄중한 처벌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대기업들 스스로 잘못된 관행을 고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중소기업을 상생과 협력의 동반자로 여기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4. 대선 후보들의 ‘도깨비 방망이’
제19대 대선이 불과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새 대통령 선출을 앞두고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크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당장 처리해야 할 국가적 과제가 쌓여 있는데도 후보들이 내세우는 공약은 우선 당선되고 보자는 차원을 넘지 못한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공약 처리에 허둥대다가 5년 임기를 보내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는 얘기다.
그제 실시된 마지막 TV토론회에서 논란이 됐던 공약들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거의 주먹구구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후보들이 내세우는 기본소득보장제나 서민복지정책, 사교육비 저감대책 등이 잘못됐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원론적으로는 대체로 타당하다. 우리 사회가 더욱 안정된다면 그런 정책들이 점진적으로 추진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물론 당장이라도 대학 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추고 유치원 과정을 모두 무상으로 운영할 수는 있다. 국민연금 최저 수령액을 높이겠다는 방안도 마찬가지다.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열쇠다. 한번쯤 실시하다가 손을 들고 말 것이라면 차라리 실시하지 않는 게 낫다. 공연히 유권자들의 기대감만 부풀려 결과적으로 불만을 야기할 게 뻔하다. 선거가 실시될 때마다 생겨나는 사회적 부작용이다.
더구나 후보들마다 내세우는 공약이 한두 가지로 그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모두 해내겠다는 것이니, 오히려 믿음이 떨어진다. 마치 ‘도깨비 방망이’ 하나쯤은 남몰래 감추고 있다는 것일까. “돈 나와라, 뚝딱” 하고 주문을 외면 아무 때라도 돈이 쏟아지는 것은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장면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허황된 얘기일 뿐이다. 후보들이 먼저 꿈속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다. 그보다는 세계 속에 처한 우리 현실을 직시하면서 서로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 유권자들의 깨어 있는 의식을 기대한다.
[서울신문]
5. ‘평화헌법’ 수정, 2020년 새 헌법 시행 밝힌 아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제 전쟁 포기와 함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른바 ‘평화헌법’을 개정해 2020년에 시행하고 싶다고 밝혔다. 아베는 헌법 제정 70주년을 맞아 우익 단체인 일본회의 등의 주도로 열린 개헌 행사에서 영상 메시지를 통해 “헌법 9조 1항(전쟁포기)과 2항(군사력 보유 금지)을 남기고 자위대를 명확하게 포함한다는 생각은 국민적 논의를 할 만하다”고 밝혔다.
“자위대 합헌화가 내 시대의 사명”이라고까지 강조했다. 당초 평화헌법을 상징하는 제9조 1항과 2항까지 손대려다 국민들의 거센 저항을 감안해 그대로 놔두면서 자위대를 명문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일단 개헌의 문을 연 뒤 제9조를 뜯어고치려는 구상이나 마찬가지다.
1954년 창설된 자위대는 자국 방어만을 목적으로 하는 역할을 점점 확대해 군대처럼 활동하고 있다. 자위대는 세계 10위권에 들어갈 만큼 막강한 육·해·공군의 전력을 갖고 있다. 특히 해상자위대의 전력은 세계 5위다.
일본은 지난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한 안전보장관련법의 시행에 따라 ‘전쟁 가능한 국가’의 토대를 마련해 놓았다. 까닭에 지난 1일 해상자위대는 미군 보급함 방어를 위해 경항공모함 이즈모함을 출동시킬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이 승전국인 미군 보호에 나선 첫 군사작전이다. 아베의 의도는 헌법 조문을 고쳐 자위대의 현실적 한계를 해소해 분쟁 지역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을 터놓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일본 자위대의 지위를 ‘국방군’으로 재무장시키는 데 있다.
또 아베는 북핵과 미사일 도발로 인한 한반도의 안보 불안을 이용해 입지를 굳히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이럴 경우 동북아의 안보 긴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개헌 여부를 결정할 일본 국민들도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지난해 37%에서 올해 41%로 높아졌다. 반면 고칠 필요가 없다는 55%에서 50%로 줄었다. 제9조에 대해서는 바꾸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63%다.
아베는 ‘평화헌법’이 제정된 경위와 가치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개헌이 ‘군국주의로의 회귀’라는 주변국들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는 한 전범국가라는 오명을 결코 지울 수 없다. 한반도의 위기를 핑계 삼아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꾀하려는 꼼수일 뿐이다. 아베 총리는 개헌을 밀어붙이기에 앞서 과거 국군주의 아래 저지른 만행부터 진정성을 갖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할 것이다.
6. ‘세월호 인양 거래說’ 대선 쟁점화 무리다
어제는 한 공중파 방송사의 보도로 하루 종일 논란이 일었다. SBS가 전날 ‘8시 뉴스’에서 세월호 인양이 늦춰진 배경에 정치적 거래가 있다는 투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SBS는 기자 리포트로 “해양수산부가 세월호를 뒤늦게 인양한 것은 차기 권력의 눈치를 본 것이라는 취지의 공무원 발언이 나와 관련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적 슬픔을 안겨 준 세월호 참사를 특정 후보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불의를 파헤친 기자와 매체는 찬사를 받아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차기 권력’으로 지목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진영은 즉각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또 다른 당사자인 해수부도 “왜 거짓말로 세월호 인양 작업을 한순간에 정치적 사안으로 만들어 버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SBS도 해당 뉴스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고 사과했으니 사실상 잘못을 스스로 인정했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는 뭐니 뭐니 해도 오는 9일 치러지는 대선이다. 2년 만에 인양된 세월호 선체 수색 작업의 진척 상황도 국민적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파괴력이 큰 이슈가 중첩된 내용을 다루는데 조금 더 사려 깊지 못했던 것을 보도 당사자들도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대선이 불과 닷새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근거가 부실한 문제 제기는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불러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SBS 보도 이후 자유한국당은 기자회견을 열어 ‘뒷거래 의혹’이라는 표현을 써 가며 ‘충격’이라고 민주당을 비난했다. 국민의당은 한 걸음 나아가 “문 후보의 즉각 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이제라도 선거 보도 종사자들은 자신의 기사가 결과적으로 ‘가짜뉴스’가 되지 않도록 깊이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세월호 인양 작업이 기술적 이유로 늦어지면서 상하이샐비지가 계약금액보다 훨씬 많은 자금을 투입하는 등 고의 지연이 불가한 상황”이라는 해수부 설명에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반면 ‘정부의 고의지연설(說)’이 나돌 때는 인위적 조작 가능성을 극구 부인하던 일부 정치권마저 ‘특정 후보 연루설’에 맞장구를 치고 나서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당연히 보도 내용의 진위는 밝혀져야 한다. 뉴스에 등장한 해수부 공무원이 실존 인물이라면 발언 경위도 조사해야 한다. 그럴수록 각 후보 진영도 높아진 유권자 수준을 감안해 대응해야 할 것이다.
7. 국민은 내우외환 돌파할 ‘정치적 능력’ 원한다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후보를 선택하지 못하고 있는 부동표가 아직도 남아 있지만 유권자들의 선택 기준은 보다 명확해지는 분위기다. 서울신문과 엠브레인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유권자들의 최우선 선택 기준은 정치적 능력인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2000명) 가운데 지지 후보 결정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인으로 ‘후보의 정치적 능력’(33.0%)을 꼽은 것이다.
‘후보의 이념과 노선’(32.1%)과 ‘후보의 도덕성’(20.8%), 당선 가능성(6.7%) 등이 뒤를 이었다. 정치적 능력은 후보자의 자질과 리더십, 국정을 이끄는 통합 능력 등이 총망라된 의미를 담고 있다.
국민들이 후보 선택시 정치 능력을 최우선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은 대한민국이 직면한 엄중한 현실과 직결된다. 오는 10일 취임할 차기 대통령은 국내적으로 구조적인 부정부패 구조를 바로잡는 적폐청산에다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된 국가를 통합하는 막대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북핵·미사일뿐만 아니라 사드 문제로 얽힌 주변국들과의 관계 복원 등 한반도 안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하는 책무를 안고 있다.
저성장의 덫에 걸려 침체에 빠진 경기도 살려야 한다. 최악의 청년실업 등을 해결하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동시에 4차 혁명을 이뤄내야 함은 물론이다. 국민들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국내외 현안을 풀어 가기 위한 후보 능력을 선택 기준으로 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국민들은 이념과 노선에 따라 서로를 맞상대할 수 없는 적으로 돌리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난 새로운 대한민국을 희망하고 있다. 갈등과 분열을 넘어 국민 대통합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 후보를 밝혔음에도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부유층(浮遊層)도 적지 않았다. 후보 난립에 따라 ‘흔들리는 표심’의 향배도 막판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세대 차이를 떠나 국민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 구태의연한 선거 관행으로 나타났다.
선거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37.9%가 ‘서로 비방하는 네거티브 전략’을, 19.4%가 실현을 위한 재원도 제시하지 못하는 ‘무분별한 공약 남발’을 지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확인과 검증할 시간이 없다는 점을 악용해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내지르는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심판할 수밖에 없다.
닷새밖에 남지 않는 선거일까지는 여론조사의 공표도 없어 판세를 파악하기 힘든 ‘깜깜이 기간’이다. 이 때문에 흑색선전 등을 담은 가짜뉴스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한층 기승을 부릴 것은 뻔하다. 국민의 수준이 정치의 수준이듯 깨어 있는 유권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내 손에 있다는 자세로 후보자들의 자질과 능력 등을 꼼꼼히 따져 투표해야 한다.
[조선일보]
8. 해외 나간 일자리 109만개, 들어온 일자리는 7만개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에 투자해서 새로 만들어낸 일자리가 109만개나 된다. 반면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 투자해 신규로 창출한 일자리는 같은 기간 7만개에 불과하다고 대한상공회의소가 보고서를 냈다.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자 해외 투자와 현지 생산을 늘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기는 하다. 문제는 나가고 들어오는 것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국내 투자를 꺼리는데 외국인 투자 유치는 세계 37위 수준에 그친다.
지금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자리 유치 전쟁을 미국 조사 기관 갤럽은 '3차 대전'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만큼 절박하고 치열하다는 뜻이다. 15세 이상 세계 인구 가운데 일하거나 일하고 싶어 하는 인구는 30억명인데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는 전 세계적으로 12억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다. 그래서 각국 정부는 규제를 풀고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서 외국 기업을 유치하고 해외로 나간 자국 기업까지 다시 불러들이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규제 하나를 신설할 때 규제 두 가지를 없애는 제도를 도입했다. 법인세를 35%에서 15%로 확 낮추겠다고도 했다. 일본의 아베 정부도 국가 전략 특구를 지정해 신산업 규제를 대폭 풀고 법인세를 낮춰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반대로 간다. 규제 혁신도, 노동시장 개혁도 헛돌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평가한 우리나라의 정부 규제 환경은 138국 가운데 105위다. 외국인 투자 규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국 가운데 30위다. 대한상의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새 정부가 파격적 규제 혁신에 나서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당선 유력 후보의 공약은 '세금으로 공공 일자리 81만개 만들기'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9.8%)이 전체 실업률(3.7%)의 2.65배로 높아졌다. 올 3월에는 이 비율이 2.74배로 더 높아졌다. 미·일의 경우 통상 청년 실업률이 전체 실업률의 2배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만 해도 이 비율이 2배 미만이었다. 정치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 이 비율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9. 바른정당 탈당 의원들이 맞는 逆風을 보며
집단 탈당한 바른정당 의원 12명이 역풍(逆風)을 맞고 있다. '보수 단일화'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불과 석 달 전에 탄핵을 주도하고 찬성했던 의원들, 탄핵에 반대하는 측과 당을 같이할 수 없다며 탈당해 바른정당을 만든 의원들이 갑자기 원래 당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데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추구하는 가치, 정강과 정책을 따라 모인 정당의 당원들이 자기 당 후보의 지지율이 낮다고 투표 며칠 전에 집단 탈당한다는 것도 아무리 별일이 다 있는 한국 정치라지만 전에 볼 수 없었던 일이다.
그런데 이들의 탈당 이후 예상치 못했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바른정당과 유승민 후보에게는 오히려 후원금과 격려 전화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유 후보의 개인 페이스북 친구도 하루 만에 1만명이 증가했다. 일부에서는 야권 지지자들이 보수 표심을 분리하려고 조직적으로 유 후보 지원에 나선 것이라고 한다.
그런 움직임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엔 민심 전체의 역풍이 예상을 넘어섰다. 실제 탈당한 의원 1명은 탈당을 철회했고 탈당을 검토 중이던 의원도 잔류를 선언했다. 탈당 철회를 고민하는 의원이 더 있다고 한다. 이 현상이 실제 투표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단정할 수는 없다. 어쨌든 홍준표 후보로 사실상 단일화되는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고 오히려 유 후보가 지금의 5% 안팎을 넘어서 의미 있는 득표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정치를 바라보는 눈이 한층 매서워진 유권자들이다. 바른정당 의원들의 집단 탈당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인터넷에는 이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탈당 의원들의 명분 뒤에 있는 계산까지 다 읽고 있었다. 인터넷 공간이 야권 지지자들 마당이라고는 하지만 이 많은 목소리를 그렇게만 치부할 수는 없다.
이들이 분노한 것은 무엇보다 눈앞의 이익에 따라 처신을 180도 바꾸는 정치인의 행태였다. 앞으로 어떤 명분으로도 이런 행태는 통하지 않을 듯하다. 이제 유권자들은 낡은 정치 행태와 분명히 단절하기를 바라고 있다. 특정인을 맹종하는 시대는 끝나고 과정을 중시하는 문화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선을 1주일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벌어진 이번 사태에서 우리 정치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국민을 설득하는 절차를 무시한 정치인들의 일방통행은 이제 즉각 제동이 걸린다. 국민은 소신과 인내를 갖고 어렵더라도 자기 길을 걸어가는 정치인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보았다. 특히 위기에 빠진 보수 정치권이 이 교훈을 새기면 기회는 곧 다시 오게 될 것이다.
[매일경제]
10.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놓고 벌어진 무책임한 정치공방
세월호 참사를 둘러싸고 '잠수함 충돌설' '대통령 7시간' 등 악의적인 의혹제기와 유언비어가 지난 3년 동안 숱하게 쏟아져 국민들을 힘들게 했다. 세월호 선체 인양과 함께 스러지는 듯하던 그 망령이 대선을 며칠 앞둔 지금 정치권에서 되살아나고 있으니 황당하다.
'세월호 인양 고의지연 의혹'을 둘러싼 공방이 그것이다.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을 고의로 지연하면서 차기 정권과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 있다'는 이 의혹은 2일 저녁 어느 방송의 단독 보도가 발단이다. 이 방송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해수부 2차관 신설을 공약했다. 세월호 인양은 문 후보에게 갖다 바치는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익명의 해수부 공무원 발언을 소개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2014년 단식 농성까지 했던 문재인 후보 측은 즉각 이 보도에 항의하고 정정과 사과를 요구했다. "해수부 2차관을 약속한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도 인양시기는 기술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됐을 뿐이라며 보도내용을 부인했다. 이철조 세월호 현장수습본부장은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해 고의 인양 지연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파문이 커지자 해당 방송사는 3일 "본래 취지와 다르게 오해가 빚어졌다"며 사과했는데 애초 더 신중한 확인 절차를 거쳤어야 할 의혹이다. 돌이켜보면 세월호와 관련해 아니면 말고식 '다이빙벨 구조론'처럼 국민 가슴을 멍들게 한 허황된 주장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도 정치권은 이런 의혹을 물 만났듯 기정사실화하고 증폭시키고 있으니 참으로 무책임하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온 국민이 경악했는데 문 후보가 사죄는커녕 언론에 보복과 고발 운운으로 맞선다"며 공세를 펼쳤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도 "문 후보가 3월 팽목항을 방문해 '얘들아 고맙다'고 한 말뜻을 이제야 알겠다"며 의혹 부풀리기에 나섰다.
세월호 인양은 기술적인 한계나 전문가 진단을 통해 판단해야지 불쑥 터져나온 누군지도 모르는 공무원의 발언으로 따질 사안이 아니다. 3일부터 여론조사 결과 공표가 금지되는 '깜깜이 선거국면'이어서 그러잖아도 가짜뉴스 발호가 우려되는 판국이다. 엄격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는 언론과 이를 토대로 일단 의혹부터 확대 재생산하려는 정치권이 깊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주요신문칼럼
1. [연합뉴스][김은주의 시선] 흥사단과 도산 안창호
"조상 나라 빛내려고 충의 남녀 일어나서 / 무실역행 깃발 밑에 늠름하게 모여드네 / 맘을 매고 힘을 모아 죽더라도 변치 않고 / 한 목적을 달하고자 손을 들어 맹약하네."
도산 안창호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한 민족운동단체 흥사단의 입단가 1절이다.
1913년 5월13일 청년 강영소의 집에서 흥사단 창립식이 거행됐다. 지방색을 없애기 위해 조선 8도에서 한 사람씩 지역대표를 뽑아 8도 대표가 창립위원으로 참여했다.
안창호는 흥사단 약법에서 설립 목적을 "우리 민족전도의 대업의 기초를 준비함에 있음"이라고 밝혔다. '민족전도'는 민족부흥, 곧 민족의 독립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무실·역행·충의·용감의 4대 정신으로 무장, 덕성을 함양하고 신체를 단련하며 전문지식과 과학기술을 습득하고 건전한 인격을 기르고자 했다.
1919년 3.1운동 이전까지 흥사단은 미주에서 단우 모집, 동맹수련, 인격수양, 재정적 기초를 만들기 위한 북미실업주식회사 사업 등에 주력했다. 그러나 미주동포 중에서만 단우를 선발할 수 있었고, 고학하는 유학생들과 이주 노동자 중심이었으므로 독립운동에 필요한 인재 양성에는 한계가 있었다.
3.1 운동 이후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흥사단은 1920년 상하이에 흥사단 원동위원부를 조직했다. 이어 1922년 서울에 수양동맹회, 1923년 평양에 동우구락부를 각각 창립했다. 국내의 두 단체는 1925년 수양동우회로 통합됐고 그 뒤 동우회로 개칭했다. 기관지 월간 '동광'을 창간해 40호까지 발행했다. 중국과 미주, 국내에서 흥사단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주요 사건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안창호는 1878년 11월9일 평안남도 강서의 가난한 선비 집안에서 출생했다.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국력배양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16세이던 1894년 상경, 이듬해 구세학당(언더우드 학당)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3년간 수학하며 서구 문물을 접했다. 그는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해 평양에서 관서지부 조직을 맡았다. 1898년 다시 서울로 올라가 만민공동회 청년 간부로 활약했으며 1899년에는 강서군 동진면에 강서지방 최초의 근대학교인 점진학교를 설립했다.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인 친목회를 조직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한인공립협회를 설립했다. 회원 교육을 위해 야학을 개설했고 공립신보를 발행해 교포들의 생활 향상 및 의식계몽에 힘썼다. 을사늑약 체결 소식을 듣고 국내에서 구국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1907년 귀국했다.
안창호는 같은 해 윤치호, 이갑, 신채호 등과 비밀결사조직 신민회를 만든 뒤 대한매일신보를 기관지로 해 민중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1908년 평양에 대성학교를 설립하고 평양과 대구에 출판기관인 태극서관을 건립했으며 민족산업 육성을 위해 평양에 도자기회사를 설립했다. 1909년에는 박중화, 최남선, 김좌진, 이동녕 등과 함께 국내 최초의 청년운동 단체인 청년학우회를 조직, 민족계몽 및 지도자 양성에 주력했다.
1909년 10월 안중근 의거 배후 혐의로 체포됐다가 두 달 만에 석방된 후 1910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안창호는 민족지도자들과 함께 북만주에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만들어 영농과 군사양성을 기하려는 계획을 추진했으나 자금관계와 급진파의 반대로 실패했다. 이에 시베리아를 거쳐 1911년 미국으로 망명해 1913년 흥사단을 창설했다.
안창호는 3.1 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교민들이 모금한 돈을 갖고 상하이로 건너갔다. 임시정부에서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를 맡았으며 임시정부 내 계파 갈등이 심해지자 1921년 국민대표회의 소집을 주장했다. 1923년 상하이에서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되어 부의장에 선임됐으나 63회 회의를 끝으로 결렬됐다.
1924년 만주 일대의 독립군 대표들과 회동하고 난징에 동명학원을 설립했다. 같은 해 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각지를 순행하며 국민회와 흥사단의 조직을 강화했다. 1926년 중국에 돌아와서 만주 지린(吉林)성 일대를 답사한 뒤 독립전쟁의 근거지를 만들기 위한 이상촌 사업을 추진했다.
1929년 '미국에 재류하는 동지 여러분께'라는 글을 통해 흥사단은 단순한 수양단체가 아니라 한국의 독립을 위한 혁명 훈련 단체임을 천명했다. 1930년 다수의 흥사단원이 참석한 가운데 이시영, 김구 등과 한국독립당을 결성했다. 1932년 4월 윤봉길 의거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서울로 압송됐다. 4년의 실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와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35년 2년 6개월 만에 가출옥하여 평안남도 대보산 송태산장에서 은거했다.
1937년 6월 동우회사건으로 다시 수감됐다가 같은 해 12월 병으로 보석됐고 이듬해 3월10일 경성대학부속병원에서 간경화증으로 사망했다. 안창호는 취조 과정에서 흥사단이 독립운동 단체라고 당당하게 진술했다.
흥사단은 1937년 이른바 동우회사건으로 200여명의 회원이 검거되면서 강제로 해산됐다. 이때 수감된 안창호는 병보석으로 출감했다가 1938년 3월 경성대학부속병원에서 사망했다.
해방 후 흥사단은 1948년 8월15일 본부를 국내로 옮기고 미국에는 미주위원부를 개설하는 등 조직을 재정비했다. 5.16 군사정변이 일어날 때까지 시민 계몽을 위한 금요강좌를 운영했고 1963년에는 청년학생 아카데미를 발족해 대학생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청소년 리더십 캠프, 나라사랑 국토순례 등의 아카데미운동을 시작했다.
현재 흥사단 산하 전국 25개 지부와 미국, 캐나다에 9개 지부가 활동하고 있다. 또 부설조직으로 민족통일운동, 투명사회운동, 교육운동 등 3개 운동본부와 청소년회관, 도산아카데미 등 22개 청소년 시설을 운영하며 지역사회 풀뿌리 시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나라 잃고 이국만리 서러운 삶을 영위하던 교민들이 민족의 독립을 열망하며 모여 만든 흥사단.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요구하는 흥사단의 역할도 달라졌다.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흥사단은 시민단체로 자리 잡았다. 100여 년 전 어느 봄날 저녁 가난한 한인 청년의 집에서 조촐하다 못해 초라하기까지 한 창립식을 가졌다. 이렇게 출범한 흥사단은 차츰 틀을 갖춰 중국과 미국, 국내에서 험난한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 단우들은 직접 몸을 던져 싸웠는가 하면, 피눈물 나게 번 돈 한푼 두푼을 모아 독립자금에 보탰다. 이제 시대가 변해도 흥사단의 초심, 안창호의 그 뜨거운 조국 사랑은 기억해야 한다.
2. [서울신문][말빛 발견] 따라가지 못한 사람 '미망인'
‘영윤’은 중국 초나라 때 최고 직위의 관직이다. 초의 문왕이 죽자 당시 영윤이었던 자원이라는 사람이 문왕의 부인을 유혹하고 싶어졌다. 그는 궁 옆에 새 건물을 짓고 ‘만’(萬)이라는 의식을 치른다. 이것은 군대를 훈련할 때나 하는 행사였다. 이 소식을 들은 문왕의 부인은 이렇게 한탄한다. “영윤은 적을 치는 데는 생각이 없나 보다. ‘미망인’ 곁에서 이러고 있으니.”
‘춘추좌씨전’에 전하는 내용이다. 여기서부터 ‘미망인’이 보이기 시작한다. ‘미망인’은 이렇게 아주 오래된 말이다. 이천 년도 넘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리도 쓰게 되고, 의미에도 변화가 온다.
문왕의 부인은 ‘미망인’을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 ‘미망인’은 본래 이렇게 일인칭으로 쓰였다. 그것도 자신을 한껏 낮춘. 원뜻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아직(未) 따라 죽지(亡) 못한 사람(人)’이 ‘미망인’이었다. 문왕 부인은 ‘미망인’에 이런 뜻을 담았다. 당시의 풍습과 생각, 시대상을 보여 준다. 아내는 남편에게 딸려 있고 죽음도 같이해야 한다는 사고가 지배하던 시절이다.
지금 우리에게 ‘미망인’은 일인칭이 아니다. 제삼자를 가리키는 삼인칭으로 쓴다. 그러면서 고결함으로 포장된 말처럼 사용하려 하기도 한다. ‘과부’가 비하적이라면, ‘미망인’은 반대인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이천 년 전의 생각은 아직 강하게 묻어 있다. ‘미망인’에 대응해 남자를 가리키는 말은 없다. 남성 중심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오래 써 온 관습이어서 버리기는 만만치 않다.
3. [중앙일보][새미 라샤드의 비정상의 눈] 대중교통, 한국은 편리 … 이집트는 인간적 매력
외국인으로서 한국에 살다 보면 여러 가지를 비교하게 된다. 일상생활과 관련 있는 대중교통은 자주 비교하게 되는 대상이다. 한국의 대중교통은 정보기술(IT)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편리하다. 이집트 대중교통도 나름 장점이 많다. 사실 버스·기차·지하철·전철 등 한국에 있는 대중교통은 이집트에서도 다 볼 수 있다. 한국보다 오히려 가격이 싸고 인간적인 매력까지 있다.
게다가 한국에 없는 독특한 대중교통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마이크로버스다. 이름에 ‘마이크로’가 붙었지만 사실은 14명이 탈 수 있는 소형 승합차다. 한국에선 업무용으로 많이 쓰지만 이집트에선 개인이 운행하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주로 쓴다. 수도인 카이로 같은 대도시에선 국가 대중교통기관에서 운영하는 대형버스보다 더 인기를 끈다.
이집트 국민이 마이크로버스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적인 매력이다. 대형버스는 노선표대로 큰길만 다니지만 마이크로버스는 대형버스가 가지 않는 작은 길도 달려 동네 깊숙한 곳까지 운행한다. 승객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타고 내릴 수 있다. 심지어 타기 전에 운전기사와 협의만 하면 원래 운행하는 노선에서 조금 벗어나 원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도 있다.
마이크로버스의 가장 큰 장점은 24시간 운행이다. 국가 대중교통기관에서 운영하는 일반 버스는 자정 무렵에 운행을 종료하기 때문에 카이로에서 막차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탈 수 있는 대중교통은 개인이 운영하는 마이크로버스밖에 없다.
마이크로버스는 시골과 대도시를 연결하는 유익한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관광회사들이 운행하는 대형버스는 주로 대도시에서 대도시로, 큰 도로로만 다닌다. 하지만 마이크로버스는 소도시나 시골까지 데려다준다. 따라서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든든하게 여기면서 믿고 타는 대중교통이 바로 마이크로버스다.
일부 운전기사는 슬그머니 요금을 올리려 하는데 승객들이 항의하고 흥정해서 낮은 요금에 합의하기도 한다. 마이크로버스 운전기사는 대개 14명의 승객이 모두 차기 전에는 출발하지 않는다. 그러면 미리 온 승객들이 요금을 조금 더 주겠다고 제안해 손님이 다 차기 전에 떠나기도 한다.
마이크로버스는 대중교통 수단일 뿐 아니라 이집트 사회와 사람들의 사고방식, 그리고 딱딱하지 않고 정이 많은 정서까지 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한국은 첨단기술이 자랑이라면 이집트는 인간적인 매력이 장점이다.
4. [조선일보][양해원의 말글 탐험] 아울렛? 아웃렛!
얼굴도 몸집도 오동통해 떡보. 늘 불콰하고 화난 듯한 핏대. 퀭한 눈, 움푹한 볼이 만화영화 주인공 닮아 황금박쥐. 근엄한 분위기에 머리칼 치렁하다고 예수. 심심하면 "아시시(으스스)한 얘기 해줄까" 해서 아시시. 긴 턱에 부라린 눈으로 야단치는 품이 영락없이 악어. 눈썹 짙은 독일어 선생님 게슈타포….
교사(校舍)의 먼 불빛에 소리 죽여 농구하던 고교 시절. '야자' 시간 '땡땡이'라야 그게 고작이라, 성함(姓銜) 대신 별명으로 선생님들 흉보며 알량하게 스트레스 풀곤 했다. 그중 특히 잊지 못할 별명이 '사스콰치(Sasquatch)'. 하지만 아무도 그리 부르지 않았다. 사람 닮은 털북숭이로 전설 속에 살아 있는 괴물(怪物). 그 느낌 살리려면 '싸스콰치' 하고 된소리를 내야 했으니까.
소리 그대로 쓰면 법(法)에 어긋나는 줄은 나중에 알았다. 사람 혼내주는 법 말고 '외래어표기법'(실은 외국어도 포함) 말이다. 된소리 표기를 하지 않는 원칙(ㄲ→ㅋ, ㄸ→ㅌ, ㅃ→ㅍ, ㅆ→ㅅ, ㅉ→ㅊ) 때문인데.
이탈리아 상표 '구찌'는 그래서 '구치'가 원칙에 맞는다. 그 설립자 이름 역시 '구초 구치(GuccioGucci)'로 써야 한다. 구치가 만든 회사 '구찌'라…. 빵집 이름은 '파리 바게뜨'지만 일반명사인 프랑스 빵 이름은 '바게트'로 표기하게 돼 있다. 주로 고유명사에서 이렇게 외국어 표기가 뒤엉킨다. 규정 신경 안 쓰고 한글 이름을 붙인 탓. 문제는 된소리에서 그치지 않는다.
훼미리마트(패밀리마트), 휴렛팩커드(휼렛패커드), 폭스바겐(폴크스바겐), 크리스챤 디올(크리스티앙 디오르)…. 실제 표기와 원칙에 따른 표기(괄호 안)가 조금씩 다르다. 이런 게 한 기사에 같이 나오면 아주 골칫거리다.
'롯데아울렛 이천점은 어린이 공간 증축으로(…) 롯데몰 동부산을 제치고 국내 최대 규모 아웃렛으로 올라섰다.'
아웃렛(outlet)이 늘어나면서, 규정에 어긋나는 '아울렛' 표기가 주류를 이뤘다. 상호(商號)에 맞추자니 표기법이 무색해진다. 표기법에 맞추자니 남 이름 함부로 바꾸는 꼴이다. 법이 물렁한 탓일까, 지킬 만하지 못한 걸까.
외국어 표기에 정답은 없다. 다만 원칙과 약속, 합리성이 중요할 텐데…. 아무튼 이건 괜찮으려나,
5. [중앙일보][분수대] 조선시대 사랑가
‘뜨거운 사랑과 욕망의 노랫말들이 모여 있는 공간입니다. 청소년과 아이들을 인솔하는 부모님과 선생님께서는 각별히 신경 써 주세요’. 전시장 한쪽에 붙은 안내문구다. 이른바 ‘19금 노래’,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하지만 약간 엄포성이다. 표현 농도가 그리 진하지 않다. ‘사랑 사랑 긴긴 사랑 개천같이 내내 사랑. 구만 리 먼 하늘에 흩어지고 남는 사랑’은 곱고 예쁘기만 하다. ‘사랑이 어떻더냐 둥글더냐 넓적하더냐 길더냐 짧더냐’는 요즘 트로트 유행가 같다.
더러 농염한 대목도 있다. ‘들입다 바드득 안으니 가는 허리 자늑자늑’. 여인네 신체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이다. ‘중놈도 사랑인 양하여 자고 가니 그립다’며 지난밤을 아쉬워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은 젊음의 상징일까. ‘진실로 나의 평생 원하기는 말 잘하고 글 잘하고 얼굴 단아하고 잠자리 잘하는 젊은 서방’이라고 고백한다. ‘샛서방 밥을 담다가 놋주걱을 부러뜨렸다’는 며느리를 시어머니가 위로하기도 한다. ‘저 아기 너무 걱정 말아라. 우리도 젊었을 때 많이 꺾어 보았노라’. 시쳇말로 쿨하다. 지금 봐도 낡지 않다.
위의 노래는 한글로 기록한 최초의 가곡 모음집인 『청구영언(靑丘永言)』에 등장한다. 1728년 가객(歌客) 김천택이 구전 노랫말 580수를 일일이 옮겼다. 그 원본이 요즘 서울 용산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일반에게 처음 공개되고 있다. 이방원의 ‘하여가’, 정몽주의 ‘단심가’ 등 교과서 단골 시조도 많지만 옛사람의 풍류·흥취가 담긴 노래가 정겹다. 세상살이 맨살을 드러낸다. “한때 입으로 불리다가도 저절로 드러나지 않게 돼 후에 연기처럼 사라짐을 면치 못하게 되니 어찌 슬프고 안타깝지 않겠는가”라는 김천택의 열정 덕분에 오늘에 전해지게 됐다.
전시장은 현대적이다. 옛 노랫말을 오늘날 도시 뒷골목 풍경과 겹쳐 놓았다. 『청구영언』 전체를 주제·작가별로 살펴보는 코너도 있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모습이 지금이나 300년 전이나 다름없다는 걸 일러 준다. 삶이 곧 노래요, 노래가 곧 시 아닌가.
나라의 평안을 비는 마음도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선인들은 ‘우리 동방 산하의 견고함이여 태평성대 풍속이 오래도록 이어질 성지(城池)’ ‘임금은 덕을 닦고 신하는 정사를 돌보니 예의 있는 동쪽 나라’가 되기를 희망했다. 요즘으로 따지면 사랑하기 좋고, 아이 낳기 좋은 곳이다. 나라 안팎으로 갈등과 위기의 시절, 철부지 사랑타령을 또 하나 꺼내 본다. ‘아마도 임과 외따로 살라 하면 그건 그리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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