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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뜨겁지만 미흡했던 대선 선거운동
제19대 대선 선거운동이 오늘 저녁 자정으로 모두 막을 내린다. 헌정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사태에 따라 실시되는 조기 대선이 마지막 결승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다. 후보자 등록이 끝나고 지난달 17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지만 이미 국회에서 탄핵이 거론되고 촛불시위가 이어지면서부터 사실상 선거 국면에 돌입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드디어 내일 선거가 실시되고, 모레는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새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다.
선거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주요 후보들 사이에 치열하게 물고 물리는 선거 판세는 막판까지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시종 앞서 온 상황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역전 각축전이 시도되는 중이다. 막판에 터져 나온 바른정당 의원들의 집단탈당 논란이 보수성향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유권자들의 호응도 만만치 않다. 지난 4~5일 이틀 동안 실시된 사전투표 투표율이 무려 26.06%를 기록했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107만 표가 이미 투표를 마친 셈이다.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대통령을 뽑기 위해 미리 한 표를 행사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라면 이번 투표율이 80%를 훌쩍 넘어설 가능성도 충분하다.
문제는 후보자들에 대한 인물·공약 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느냐 하는 점이다. 주요 후보들이 참석한 가운데 모두 6차례에 걸쳐 TV토론이 진행됐지만 세부 검증이 이뤄지기에는 한계가 없지 않았다. 선거 막판까지 후보들에 대한 온갖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것이 그런 때문이다. 여기에 ‘투표용지 조작설’ 등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가짜뉴스까지 나돌고 있다. 열기는 뜨겁지만 올바른 선택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투표가 사분오열 찢어져 사표(死票)가 대거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만약 30~40%의 득표율로 당선자가 결정된다면 향후 국정운영에서 구심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는 결선투표제 도입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을 떠나 유권자들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경향신문]
2. 조기 대선전, 성과 있었지만 과제도 많이 남겼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에 실시된 19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오늘로 끝난다. 이번 대선은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을 심판한 시민의 열기가 유지되면서 큰 무리없이 치러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심판론을 희석하는 개헌론과 특정인을 반대하기 위한 후보단일화는 힘을 얻지 못했다. 종북이니 주적이니 하는 색깔론도 먹히지 않았다. 촛불집회를 통해 각성한 시민들이 일부 정치집단의 구태에 놀아나지 않은 결과다.
시민들의 높은 관심 속에 6차례의 TV토론을 통해 후보의 자질과 정책을 검증하는 기회도 가졌다. 국정 현안에 대한 후보들의 이해 수준과 관점이 유권자들의 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상대적으로 약세인 후보가 토론을 통해 선전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TV토론이 선거전을 진일보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유권자의 4분의 1이 사전투표에 참여하면서 촛불혁명을 정치 현실에 투영하려는 의지도 보였다.
하지만 부정적 현상도 있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정책선거를 구현하지 못한 점이다. 국가 비전과 심화하는 양극화에 대한 대책, 그리고 이를 둘러싼 후보 간 토론이 어느 때보다 절실했으나 이런 의제들은 공약으로 내실 있게 제시되지 못했다.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이 난무했다.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에도 분명한 재원 마련 방안이 없었다. 재벌·언론·정치 개혁 논의도 구체성을 띠지 못했다. 후보들이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기는 했지만 그에 관한 토론 대신 도덕성 검증을 빙자한 네거티브 선거전에 몰두했다.
여론조사가 선거전을 지배한 것도 큰 문제였다. 참고사항에 그쳐야 할 후보 지지율에 관한 여론조사가 언론의 경마식 보도와 맞물리면서 선거전을 주도하고 정당 간 갈등을 부추겼다. 선거전의 주요 통로로 부상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기능도 긍정·부정적 평가가 교차한다. SNS 선거운동은 정당과 유권자들 간 쌍방향 소통을 유도하기도 했지만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통로로 기능하는 등 네거티브 선거전에 이용되는 단점도 노출했다.
이번 선거에서 크게 희석된 지역·이념 대결이 향후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단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명분 없는 개헌론과 후보 단일화를 차단한 민심이 정치권의 퇴행을 좌시하지 않을 것만은 분명하다. 각성된 시민의식은 정치권의 더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여론조사 정치, 네거티브 선거전을 넘어 정책선거와 정당정치를 강화하는 풍토를 확립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선거법도 개정해 여론조사 공표 제한 및 공약 비교 평가 금지를 없애고 18세 투표,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조선일보]
3. '미세 먼지' 새 정부 최우선 과제 돼야
중국 황사 영향으로 지난 주말 전국의 미세 먼지(입자 크기 10㎛ 미만) 농도가 크게 올라 전국 대부분 지역에 주의보가 내려졌다. 전국 지도에 나타난 빨간색 '매우 나쁨' 표시가 사람들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경기 안산은 6일 오후 한때 건강한 성인도 실외 활동을 피해야 하는 '매우 나쁨' 수준의 4배를 넘었다.
미세 먼지가 건강을 해치고 초미세 먼지는 암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안감은 크게 높아지고 있다. "도망갈 곳도 없다"는 비명이 나온다. "봄이 없어졌다"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학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운동회를 하는 사진이 시민들을 기막히게 한다. 공기청정기는 물론이고 한 번 쓰고 버려야 하는 마스크 값도 서민들에겐 작지 않은 부담으로 등장했다. 이제 미세 먼지 문제는 환경문제 중의 하나가 아니다. 온 국민이 위협을 피부로 느끼게 된 국가 최대 현안의 하나가 됐다.
미세 먼지 오염의 일정 부분은 중국 탓이다. 특히 황사가 그렇다. 그러나 미세 먼지의 상당 부분은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할 일만 제대로 해도 공기는 달라진다. 작년에 정부가 노후 경유차 수도권 운행 제한, 친환경차 보급 확대 방안 등을 특단의 대책이라고 내놓았지만 무언가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국민은 거의 없다.
대선 후보 대부분이 미세 먼지 대책을 '10대 공약'에 처음으로 포함시켰다. 그러나 듣던 얘기의 반복이거나 실현성이 떨어지는 내용이 많아 믿음이 가지 않는다. 각 후보는 석탄 발전 감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원전도 줄인다고 한다. 결국 이도 저도 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은 미세 먼지 때문에 아우성인데 선거 때만 넘겨보자는 식이다.
후보들은 미세 먼지를 한·중 정상급 의제로 격상(문재인), 중국과 환경 외교 강화(안철수), 한·중·일 정상회의체 운영(유승민) 등으로 문제를 풀겠다고 한다. 다 좋은 얘기다. 그러나 중국에 문제를 제기하려면 중국이 미세 먼지 배출원이라는 과학적 데이터를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연구 자료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선 중국이 들어줄 리 만무하다.
새 정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연구 자료를 축적해 중국 환경오염이 미치는 피해에 대해 계속해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정부 외에 학계, 환경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중국도 공기 오염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으니 공동 연구가 가능하다. 국내적으론 가격이 너무 싼 전기값을 올려 발전소 가동을 줄여야 한다. 도심 경유차 운행과 노후 경유차 문제는 근본적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전문가 중에는 노후 경유차만 줄여도 공기가 달라질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국민에게 고통이 따를 수 있다. 국민도 미세 먼지 대책에 동참해야 한다. 다른 길이 없다.
4. 洪 후보의 친박 핵심 징계 해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그제 최순실 게이트로 친박(親朴) 핵심 인사 7명에게 내려졌던 당원권 정지 징계를 전격 해제했다. 또 바른정당의 탈당파를 포함해 국회의원 14명 등에 대한 일괄 복당 조치를 내렸다. 홍 후보는 '대선 후보는 당무에 관해 우선권을 가진다'는 당헌 규정을 활용해 아무런 절차 없이 직권으로 이런 조치를 내렸다.
홍 후보의 이 조치는 대선을 3일 앞둔 상태에서 보수 세력 결집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이 석 달 만에 도로 '양박'당이 됐다"고 했고, 국민의당도 "국정 농단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새 대한민국에 대한 열망을 잊었느냐"고 비판했다. 바른정당은 "구태로 돌아가는 것이고 한국당이 전혀 변화가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친박 핵심 세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지난해 4·13 총선 때 공천의 기준을 '진박(眞朴)이냐, 아니냐'로 삼은 끝에 패배하려야 패배할 수 없는 선거에서 참패했던 책임도 함께 졌다. 지금 보수 정당이 분열돼 있는 것은 이 친박 의원들이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당이 비상체제로 들어간 뒤에야 당원권 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당시 이 징계는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보수 진영 전체를 붕괴시키다시피 한 사태의 책임으로는 가볍다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책임을 피하는 듯한 모습이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대선판을 만드는 데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선거를 목전에 둔 홍 후보 입장에선 표를 모을 모든 조치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여론조사상 크게 뒤지는 상황에서 비상한 수단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친박이 징계받은 뒤 바뀐 사정이라곤 대통령 탄핵과 구속밖에 없다. 그런데 모든 징계가 해제되려면 투표가 눈앞이라는 것 이상의 명분이 필요하다.
홍 후보 측은 "홍 후보의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갈등이 일거에 해결됐다"고 했다. 이번 조치로 한국당 기대대로 보수층이 결집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고 바른정당 집단 탈당 때와 같은 역풍이 불 수도 있다. 결국 유권자들이 판단을 내릴 것이다.
[중앙일보]
5. '구글세' 해외 확산, 우리도 조세주권 내세울 때
구글세가 유럽 주요국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은 이탈리아 국세청에 지난 10여 년간 미납 세금 3억600만 유로(약 3800억원)를 납부한다고 최근 밝혔다. 영국 정부가 지난해 초 이 회사에서 1억3000만 파운드(약 1900억원)의 세금을 추징한 데 이어 두 번째다.
구글세(稅)란 인터넷 등 정보통신(ICT) 기업들이 특정국에서 번 돈을 세율이 낮은 제3국 소재의 지사 몫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세 부담을 줄인 데 대해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구글뿐만 아니라 애플·아마존·페이스북처럼 독과점 이익을 오래 누려온 미국 간판 ICT 다국적 기업들이 표적이다. 이탈리아 당국은 구글이 자국 내에서 번 돈을 법인세율이 상대적으로 낮은(12.5%) 아일랜드로 돌린 혐의를 잡고 끈질기게 조사를 벌여왔다.
구글세는 먼 유럽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이다. 구글·애플의 경우 인터넷·ICT 분야 강국인 우리나라 안방에 들어와 한 해 수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미국·일본에 이은 3위권 시장으로 꼽힌다. 그동안 법인세법을 비롯해 관련 법 개정 논의가 더러 있긴 했지만 국회나 정부 차원에서 구글세에 대한 뚜렷한 과세 의지를 밝힌 기억이 없다.
디지털 기업은 무형의 콘텐트에 대한 저작권료·사용료가 주된 수익원이라 전통업종보다 조세 회피가 용이하다. 그만큼 앞선 세원 발굴 기법이 필요하다. 그래야 국내 ICT업체들이 과세나 인허가 면에서 외국계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민원도 제대로 풀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정부가 지구촌의 구글세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에 대비해 외교통상 방안도 마련해 둬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이 2015년 ‘국가 간 소득이전 및 세원 잠식(BEPS)’ 국제 공조에 나선 걸 계기로 구글세 도입은 대세가 됐다. 프랑스·스페인 등도 동참할 태세다. 구글세를 방치하는 건 우리의 조세주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6. 처벌 강화해야 산불 재앙 막는다
대형 산불은 비슷한 패턴을 밟아 왔다. 봄철 건조한 날씨와 강풍이라는 자연적 요인과 함께 사람의 부주의와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안일한 대응이라는 인위적 요인이 결합해 재앙을 불러왔다. 지난 6일 강원도 강릉과 삼척, 경북 상주에서 발생한 산불도 이러한 패턴을 벗어나지 않았다. 100㏊가 넘는 울창했던 산림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민가 30여 채를 집어삼켜 300여 명이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이재민 구호와 피해 복구를 최우선으로 하면서 더 이상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 근본적 원인도 철저히 따져야 한다.
봄철은 산불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계절이다. 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2000년 동해안 산불, '천년고찰' 낙산사를 폐허로 남긴 2005년 강원도 양양 산불도 봄철에 발생했다. 산불이 났을 때 바람이 불면 확산 속도가 26배 이상 빨라진다고 한다. 이처럼 자연적 요인이 크지만 연례행사처럼 사전에 예견되고 반복되는 일이라면 우리의 노력에 따라 산불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행정기관의 느슨한 자세는 빠지지 않는 고질병이 되다시피 했다. 이번에도 재난 안전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기상청·한국도로공사 등은 국민안전처에 재난 문자 발송을 요청하지 않았다. 국민안전처는 "관련 기관의 요청이 없어 문자를 발송하지 않았다"며 '네 탓' 공방만 하고 있다니 답답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인재(人災)라는 점이다. 강릉과 삼척, 상주 3개 지역의 산불은 모두 입산자의 실화 또는 논두렁 소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수'라고 너그럽게 봐주는 온정주의가 대형 산불을 만드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때다. 불이 날 수 있음을 뻔히 알면서 라이터 등 인화물질을 가져가거나 마른 나뭇잎을 곁에 두고 불을 피우는 행위는 미필적 고의(未必的 故意)에 해당할 수 있다.
산불의 원인 제공자와 부적절한 대응에 대해 가혹하게 처벌해야 사전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불탄 생태계가 완전히 복원되기까지는 100년 이상이 걸린다. 예고 없는 재앙은 없다.
[세계일보]
7. 대선후보, 나라 걱정하는 민심 무겁게 받아들여야
19대 대통령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오늘 밤 12시 종료된다. 후보들은 서울, 대전 등에서 마지막 유세를 갖고 22일간의 레이스를 마무리한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심판에 따른 조기 대선의 60일 대장정이 투표만 남기고 막을 내리는 것이다.
이번 대선은 기간이 짧은 탓에 후보 자질 검증과 공약 경쟁이 기대 이하였다. TV토론을 빼곤 후보의 장단점을 비교할 방법이 사실상 없었다. 대신 상호 비방, 흑색선전 등 네거티브가 판을 쳤다. 특히 표심을 왜곡하는 ‘가짜뉴스’가 SNS를 통해 무차별 살포됐고 최근엔 투표용지를 둘러싼 음모론도 제기됐다.
국민들은 그러나 거짓 선동에 현혹되지 않고 대선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지난 4, 5일 이틀간 실시된 사전투표에 무려 1107만명이 참여했다. 전체 선거인 4248만명 가운데 26.06%가 투표장을 찾은 것이다. 어떤 투표소에는 사람이 몰려 100m 넘는 줄이 이어졌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국정 공백과 혼란을 하루빨리 수습하라는 민심의 반영으로 읽힌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려는 국민 열망이 그만큼 뜨거운 셈이다. 안보·경제 쌍끌이 위기가 고조되는 국가 비상시기이니 후보들의 자세가 과거와는 달라야 한다.
하지만 후보들은 사전투표 결과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기 바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쪽은 2030 젊은층이 대거 사전투표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보수층의 위기의식이 반영됐다며 어제 페이스북 글에서 “(문 후보를 앞지른) ‘골든 크로스’를 넘어 승리의 길로 가고 있다”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쪽은 지역 기반이 강한 호남의 투표율이 높았던 만큼 문 후보와 양강 대결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나라를 걱정하며 투표장으로 달려간 유권자들의 마음을 자기 편한 대로 떠들어대는 것은 옳지 않다. 국정을 똑바로 운영해 국가 위기를 극복하라는 민심의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게 후보들의 당연한 덕목이 아닌가. 대선에서 이기는 것을 무슨 전리품을 얻은 양 여겨선 곤란하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한 표 한 표를 소중히 받드는 자세가 필요하다.
후보들은 마지막까지 네거티브나 가짜뉴스 등을 통해 표를 얻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유권자들은 이제 그런 것에 속을 만큼 어리숙하지 않다. 깨끗한 경쟁으로 최선을 다한 뒤 겸허한 자세로 민심의 심판을 기다려야 한다.
8. 미·중 대북 압박 강화… 주도적 안보태세 갖출 때다
미국 의회와 정부가 대북 압박 강화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 하원이 4일(현지시간) ‘대북 차단·제재 현대화 법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북한의 원유 수입 봉쇄, 노동자 해외 송출 차단 등으로 자금줄을 전방위 차단하는 게 골자다. 북한 핵·미사일 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미 의회의 의지가 담겼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미·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외교장관회의에서 대북 외교관계 중단·축소와 돈줄 차단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중국도 가세하고 있다. 중국의 북한산 석탄 수입 중단 조치로 3월 북한 석탄수출이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이 추가 도발하면 수개월간 대북 원유공급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북한 관영매체가 ‘중국이 북·중 관계의 레드라인을 넘어섰다’고 맹비난한 데 대해서도 신랄하게 반박했다.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북한 핵개발이 북·중상호원조조약에 위배된다고 질타했고, 인민일보의 소셜미디어매체는 ‘김일성이 한반도를 통일하려 했기에 중국군 수십만 명이 죽었다’며 새로운 양국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압박을 무시하고 제 갈 길을 가겠다는 입장이다. 평안북도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인근에서 대규모 굴착공사 장면이 위성사진에 포착된 것에 비추어 핵·미사일 개발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서해 최전방 부대를 방문해 북한군의 새 화력타격 계획을 검토했다고 공개했다. 북한은 이어 김 위원장에 대한 한·미 정보기관의 생화학테러 모의를 적발했다고 억지를 부리면서 반(反)테러 타격전을 벌이겠다고 위협했다.
국제사회는 10일 출범하는 한국 새 정부의 대북정책을 주시하고 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미국 전략이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고 전했다. 대북 압박에 중국까지 동참한 마당에 새 정부는 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 없다. 지금은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
최우선 과제는 북한 관련 협의에서 우리가 배제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없애는 것이다.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 국면이 열릴 때 새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떠맡을 준비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한반도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국제사회와 공유하는 일부터 서둘러야 한다. 우리가 주도적인 안보태세를 갖춰야 가능한 일이다.
[한국일보]
9. 일본의 저열한 유네스코 압박, 우리 정부 무능이 더 큰 문제
일본 정부가 위안부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막기 위해 올해에도 분담금을 무기로 유네스코를 압박하고 있다. 산케이 신문에 따르면 일본정부는“유네스코가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여 최근 마련한 세계기록유산 심사의 투명성 확보 개선안을 즉시 적용할 것을 요구할 방침”이라며 올해 유네스코 분담금 34억8,000만엔(약 350억원) 지급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한다.
일본이 유네스코 분담금을 내지 않겠다고 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5년 난징 대학살 관련 자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자 “이 제도가 정치적으로 이용됐다”며 분담금 지급을 미루다 연말에서야 낸 적이 있다. 당시 일본은 난징 대학살 자료 등재 외에도 한국 중국 일본 네덜란드 등 8개국 시민단체가 위안부 관련 자료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해 달라고 신청한 것에 대한 불만으로 분담금 지급 보류라는 일방적 조치를 들고 나와 큰 파문을 불렀다.
유네스코 분담금 부담 비율이 9.6%로 미국(22%)에 이어 세계 2위인 지위를 악용해 세계기록유산 심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겠다는 반역사적인 발상이다. 일본 내에서도 “돈을 앞세운 치졸한 짓”이라는 비판이 나왔을 정도다.
유네스코는 일본의 압박에 굴복해 견해 차가 있는 세계기록유산 신청에 대해 당사국 간 사전협의를 요구하는 내용의 심사제도 중간보고서를 최근 채택했고, 올해 10월 최종보고서가 나오면 공식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일본 정부의 주장은 이마저도 시기를 앞당겨 지금 당장 시행하라는 것이다.
2015년 12ㆍ28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에도 역사를 부정하는 퇴행적 망언을 거듭하고 있는 일본의 태도로 볼 때 유네스코를 상대로 벌이는 이런 작태는 새삼스러울 게 없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안이하고 무기력한 자세다. 정부도 아닌 여러 나라의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위안부 기록 등재를 일본 정부가 개입해 노골적으로 방해하는데도 마치 남의 나라 일인 듯 뒷짐만 지고 있다. 우리가 등재신청 지원을 하면 일본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12ㆍ28 합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본의 행동은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면서 우리의 눈과 입만 스스로 묶겠다는 것인가. 합의의 정신을 생각한다면 일본의 행태를 강도 높게 비난하며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시켜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렇잖아도 12ㆍ28 합의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높아지고 대선 주자들도 일제히 폐기ㆍ재협상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국의 각성을 촉구한다.
10. 일상이 된 미세먼지, 새 대통령 국가재난으로 관리해야
올 들어 최악의 미세먼지와 황사가 전국을 덮쳐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황금연휴 막바지 예정했던 야외모임을 취소하거나 마스크를 쓰고 길을 나서는 등 답답한 주말을 보냈다. 호흡기 질환과 각막 장애 등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미세먼지는 건강뿐 아니라 우리 경제에까지 실질적 타격을 주고 있다. 당초 업계에서는 긴 연휴가 소비 회복의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직격탄을 맞았다. 시민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와 레저, 서비스업 등 대부분의 내수 업종 매출이 급감했다. 2015년의 메르스 사태 때 소비가 곤두박질쳤던 상황을 연상케 한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서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현안으로 떠올랐다. 실제 올해 1~3월 미세먼지주의보는 최근 3년래 가장 많은 86회나 발령했다. 서울의 초미세먼지 오염도는 평균 34㎍으로 연간 기준을 넘어선 것은 물론 미국과 일본 기준의 두 배를 초과했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굼뜨거나 겉돌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라고는 미세먼지 발령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한 게 고작이다. 연휴기간 기록적인 미세먼지 습격에 정부가 한 일은 야외 활동 자제와 외출 시 마스크 착용 권고가 전부였다. 오죽하면 “정부의 미세먼지 무대책에 이민 가고 싶다”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겠는가.
미세먼지의 발생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것부터가 심각한 문제다. 상당부분 중국에서 유입된다고 하나 그게 어느 정도인지, 국내는 어디서 얼마나 나오고 있는지 아직도 명확하지가 않다. 미세먼지 대책을 놓고도 정부 부처간 엇박자가 나는 것도 한심하다. 한쪽에서는 미세먼지 저감조치를 내놓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신규 석탄발전소 증설 계획을 발표하는 식이다. 미세먼지 배출량이 적은 LPG 차량 규제 완화를 둘러싼 부처간 갈등과 교육부와 각 시ㆍ도교육청의 야외 수업 금지 기준이 제각각 인 것도 마찬가지다.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발표한 미세먼저 대책 공약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정부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거나 그간 논의돼온 대책을 취합한 수준에 머물렀다. 목표 제시에 그칠 게 아니라 실효성이 있고 실천 가능한 대책 마련이 우선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40년 뒤 한국이 대기오염에 따른 조기 사망률 1위 국가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새 대통령은 취임하는 즉시 미세먼지 대책을 대통령의 의제로 삼고, 국가적 재난으로 관리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경향신문][여적] 카네이션의 운명
카네이션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보내며 성모 마리아가 흘린 눈물의 흔적에서 핀 꽃이라고 한다. 15세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카네이션을 든 성모>를 그렸고, 16세기 산치오 라파엘로도 같은 이름의 작품을 남겼다. 모두 마리아가 한 손으로는 아기 예수를 안고, 다른 손으로는 카네이션을 쥐고 있는 모습이다. 카네이션은 마리아가 아기 예수에게 베푸는 모성애의 상징이다.
붉은색 카네이션의 꽃말은 사랑·존경, 분홍색은 열애, 흰색은 추모를 뜻한다. 어버이날에 붉은 카네이션을 부모님의 가슴에 달아드리는 전통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20세기 초 미국 필라델피아의 아나 자비스라는 여성이 자신의 어머니 추모식에서 흰 카네이션을 교인에게 나누어주며 어머니의날 제정을 촉구한 것이 출발이다.
1914년 토머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5월 둘째주 일요일을 어머니의날로 정했다. 살아 계신 어머니에게는 붉은 카네이션을 선물하고, 돌아가신 어머니 무덤에 흰 카네이션을 놓는 전통의 시작이다. 한국에서는 1930년대 기독교 단체에서 5월 둘째주를 부모님 주일로 지켜왔으며, 1958년 정부는 5월8일을 ‘어머니날’로 정했다. 이어 1973년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를 포함하는 어른, 노인들을 공경하자는 취지의 ‘어버이날’로 거듭났다.
‘스승의날’에도 선생님께 카네이션을 선물한다. 스승을 존경하는 한국 문화의 산물이다. 1965년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15일을 기념일로 정했다. ‘사은의 선물로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다’는 기사(경향신문 1967년 5월15일)가 실린 것으로 보아 ‘카네이션 선물’은 스승의날 제정과 함께한 것 같다.
5월 특수를 누렸던 카네이션의 가격이 올해는 오르기는커녕 대폭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어버이날과 스승의날을 앞둔 4월부터 밀려들던 주문은 자취를 감추었다. 지난해보다 출하물량을 줄였는데도 가격은 25% 이상 떨어졌다고 한다. 화훼농가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수요가 급감했다고 말한다. 5월 초 장기간의 황금연휴에 카네이션을 찾는 이는 더욱 줄었다. 카네이션에 먼지가 쌓인다. 하지만 부모와 스승을 향한 단심은 시들거나 변하지 않기를.
2. [서울신문][월요 정책마당] 진화하는 푸드트럭
푸드트럭이 진화하고 있다. 푸드트럭은 한국에서는 2014년 3월 처음으로 합법화된 새로운 자영업 사업 모델이다. 새로운 사업 모델은 언제나 시장 상황과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진화하면서 성공의 길을 걷거나 소멸의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그러면 푸드트럭은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진화를 거쳤을까. 우선 영업장소의 진화이다. 유원시설에서 시작해 도시공원, 관광단지, 공용재산까지 차례로 영업장소가 확대됐다. 이제는 일반도로에서도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곳이라면 푸드트럭 운영이 가능하게 제도가 개선됐다.
이처럼 영업장소를 차례로 확대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푸드트럭이 비즈니스 모델로 정착한 미국을 보면 모든 도시에서 푸드트럭이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로스앤젤레스가 푸드트럭에 가장 우호적인 도시인 반면 뉴욕은 가장 비우호적인 도시이다. 인구밀도가 높고 도로 여건이 비좁은 데다 상업지구가 도시 곳곳에 들어차 있는 뉴욕에서는 푸드트럭 영업장소를 찾아내는 게 쉽지 않다.
한국의 대부분 도시가 뉴욕과 비슷하다. 특히 어디에서든 기존 상권과의 마찰을 피해 나가기가 쉽지 않다. 또 도심 곳곳에 자리잡은 불법 노점상들 역시 푸드트럭의 실체적 경쟁자들이다. 그러다 보니 영업 가능한 장소를 단계적으로 늘릴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형태의 진화도 선보였다. 푸드트럭을 축제와 결합시킨 축제결합형 사업모델이 탄생한 것이다. 서울시가 성공적으로 출범시켜 이미 3년째를 맞은 서울밤도깨비 야시장이다. 지정된 영업장소를 제공하는 데 한계를 느낀 서울시는 야시장이라는 형태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등에서 야간축제를 개최하고 푸드트럭 사업자들을 초청해서 영업하도록 했다. 매년 3~10월 금·토요일 야간에 개최되는 이 축제는 영업시간의 제약에도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올해는 132대의 푸드트럭이 이 행사에 초대받았다.
또 하나의 진화 형태가 청년창업지원형이다. 이번엔 한국도로공사가 적극 나섰다. 고속도로 졸음쉼터에 매점이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 전국 곳곳 졸음쉼터의 평균 이용객 수를 파악한 후 14곳을 골라 푸드트럭을 넣었다. 그런데 특징이 있다. 바로 도로공사가 푸드트럭을 구입해 청년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2년간 임대한 것이다. 2년 동안 열심히 일해 창업자금을 마련해 독립하라는 뜻이다. 졸음쉼터 푸드트럭당 월평균 매출은 1500만원이다.
전통시장상생형도 자리를 잡았다. 전통시장은 야간에는 한산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전통시장을 외면한다. 경기 수원시가 이에 착안했다. 역시 청년창업의 일환으로 시가 푸드트레일러를 임대해 주고, 청년들은 전통시장 상인회에 상인회비를 내고 어엿한 상인으로 대접받는다. 18명의 청년이 각기 독특한 메뉴로 경쟁하면서 젊은이들을 전통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애초의 목적도 달성했다.
여기서 열거한 성공 사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푸드트럭을 청년 일자리 창출사업과 연계시킨 기관장들의 적극적인 자세이다. 서울시와 수원시에서는 시장이, 한국도로공사에서는 사장이 직접 나섰다. 경기도 역시 초기부터 푸드트럭 문화 창출에 적극적이었다. 경기도의 푸드트럭 숫자가 125대로 서울시 120대를 앞서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서울 서초구에서는 이동영업 푸드트럭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푸드트럭 진화에서 중요한 요소는 바로 메뉴다. 밤도깨비 야시장에서 성공한 삐삣버거의 경우를 보자. 처음에 과일주스로 시작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이어 철판볶음밥, 철판스테이크 메뉴를 내놓았지만 이 역시 실패했다. 차별화된 메뉴가 아니면 성공하지 못함을 알게 됐다. 결국 전국의 수제버거 전문점을 5개월 동안 찾아다니며 찾아낸 것이 삐삣버거다. 헝그리베어라는 푸드트럭은 이태리식 피자를 직접 구워서 판다. 목살스테이크와 칵테일 버터갈릭핫도그를 파는 칠링키친은 이미 푸드트럭 5대 소유자가 됐다. 독립매장에서 파는 것과 경쟁해 맛과 독특함, 창의성으로 승부한다는 생각으로 메뉴를 진화시키지 않으면 푸드트럭은 성공할 수 없다.
푸드트럭 진화의 마지막 단계는 아마도 사유지에서의 영업을 허용하는 일일 것이다. 공공이 아닌 민간인도 곳곳에 수목원, 미술관, 테마공원들을 갖고 있다. 이러한 장소에서 부지사용계약을 통해 푸드트럭이 영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반드시 풀어야 할 푸드트럭 생태계 조성사업 중 하나이다. 또 미국식으로 푸드트럭 식재료의 전처리 가공을 한곳에서 할 수 있는 공동의 장소를 마련하는 것도 푸드트럭이 1000대 이상까지 늘어날 경우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다.
3. [데일리안][하재근 문화평론가] 윤식당 한국인이 내지르는 비명의 판타지
tvN '윤식당‘이 다른 방송사들의 동시간대 프로그램 시청률을 일제히 끌어내리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5월 예능 프로그램 브랜드 평판에서 절대 강자인 ’무한도전‘에 이어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라디오스타‘, ’복면가왕‘ 등 지상파 프로그램들까지 모두 제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느리다. 그것이 우리네 현실과 달랐다. 신구가 서빙을 시작했을 때 음식을 고르는 손님들 앞에서 기다렸다. 그러자 이서진이 그렇게 급할 거 없다고 천천히 하면 된다고 했다. 그 말이 한국 시청자들 가슴을 쳤다. ‘아, 세상을 그렇게 동동거리며 사는 길만 있는 건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이다.
우리는 여행조차도 전투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카메라를 들고 정신없이 일정을 소화하며 기념사진 ‘실적’을 올리는 것이다. ‘윤식당’ 속의 외국인 여행자들은 전혀 달랐다.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며 대화하고, 음식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맛을 음미했다. 왜 이렇게 음식을 늦게 주느냐고 타박하는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윤식당’ 출연자들만 바빴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음식이 너무나 늦게 제공됐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보통 10분 내외의 시간에 거의 모든 음식 차림이 완료된다. 이 프로그램에선 간단한 식사 종류가 수십여 분이나 걸렸다. 당연히 출연자들은 좌불안석으로 불안에 떨며 음식을 바삐 만들었다. 하지만 외국 손님들은 태평했다.
제작진이 해당 지역의 다른 식당에 가서 음식이 제공되는 시간을 측정했다. 놀랍게도 두 곳 모두에서 주문한 것들 중 첫 번째 음식이 나오는 데에만 30분 이상이 걸렸다. 우리로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곳. 시계를 들여다보며 사람을 닦달하고 얼굴 붉히지 않는 곳. 바로 그런 곳의 정취를 프로그램은 전해줬다. 여기에 한국 시청자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외국인이 한국 공사장 같은 곳에 취업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말 중의 하나가 ‘빨리빨리’라는 말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경주마처럼 달렸다. 그래서 한강의 기적도 가능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다음엔, 오히려 더 달렸다. 산업발전기엔 국가경제를 살리는 산업전사로서 달렸다면, 한강의 기적 이후엔 내가 죽지 않기 위해 달려야 했다. 외환위기로 죽느냐 사느냐의 극단적인 경쟁사회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2000년대까지는 죽을 각오로 달리면 한 밑천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닥친 건 한 밑천이 아니라 탈진 증후군이었다. 이제 아무리 동동거리며 일해도 경쟁의 승자가 되는 것이 어차피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패러다임 그 자체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간다.
‘윤식당’의 느림이 호응을 받은 건 그런 이유에서다. 느림도 탈출이려니와, 외국에 식당을 열었다는 점도 역시 탈출이다. 정서적으로, 공간적으로, 모든 면에서의 탙출을 그린 것이다. ‘헬조선 탈출’ 트렌드하고도 맞물린다.
프랑스 철학자인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통해서 느림의 가치가 주목 받았었다. 일본의 환경운동가인 쓰지 신이치의 ‘슬로 라이프’를 통해 ‘캔들(Candle)족’이란 신조어가 알려지기도 했다. 캔들족이란 하루 한 번이라도 밤에 촛불을 켜고 삶의 여유를 음미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슬로비(Slobbie)족’도 있다. 천천히 그러나 더 훌륭하게 일하는 사람(Slow ButBetter Working People)의 약칭으로 속도를 늦추고 성공보단 마음의 행복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신조어들은 세계가 무한경쟁 체제로 재편된 후 ‘피로사회’가 대두했고 어디서나 사람들이 느림을 꿈꾸게 됐다는 걸 말해준다. 우리에게도 그런 흐름이 전개되다가, 최근 들어 폭발적으로 강해졌다. 피로가 울화가 되고 우울에 무기력으로까지 발전했는데, 그 댓가로 자신이 얻을 보상이 별로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느림을 간절히 꿈꾸기는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실천하진 못한다. 한국사회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편의점 간편식 매출 상승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전히 사람들은 발을 동동거리며 끼니조차 순식간에 때운다. ‘윤식당’이 판타지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윤식당’의 인기는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도록 헐떡거리며 뛰어야 겨우 밥벌이를 하는 한국사회의 비명인 셈이다.
4. [한국경제][천자 칼럼] 삼세판 증후군
현대 사법제도의 근간인 3심제(三審制)는 근대 유럽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1000여년 전부터 3심제가 있었다. 1047년 고려 문종은 ‘사수삼복계법(死囚三覆啓法)을 도입해 사형수에 한해 3복(3심)을 거치도록 했다. ‘인명은 소중하고 죽은 자를 되살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3복제는 조선으로 이어져 태종 때 《경제육전》(1397년), 성종의 《경국대전》(1485년)에 담겼다.
그렇다고 고려·조선에서 인권이 보장됐다고 보긴 어렵다. 신문고가 있었지만 널리 활용되지 못했고, 왕명에 따른 의금부 특수사건은 단심제였다. ‘네 죄를 알렸다’는 원님재판에다 연좌제로 범죄자의 처자를 노비로 만드는 일도 허다했다. 향리들의 전횡까지 더해져 민초의 삶은 늘 고달팠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억울함의 역사가 뿌리 깊어서일까. 오늘날에도 ‘사법 불복(不服)’이 두드러진다. ‘2016 사법연감’에 따르면 형사재판의 경우 1심 합의부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비율이 2006년 51.9%에서 2015년 68.1%로 뛰었다. 2심 상고율도 30~40%에 이른다. 심지어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범들도 2심 감형에도 모두 대법원에 상고했다. ‘밑져야 본전’이란 심리일 것이다.
언제부턴가 재판은 ‘웬만하면 삼세판’이 돼버렸다. 한 전직 대법원장은 “고려가 망한 이유 중에 하나가 과도한 사법비용”이라며 우리 사회의 삼세판 증후군을 우려하기도 했다. 한국인이 유독 숫자 3을 좋아해서일까. 승부는 적어도 세 번은 겨루고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재판 불복의 이면에는 사법 불신이 깔려 있다. ‘전관 변호사’를 잘 썼느냐에 따라 판결 결과가 달라진다고 믿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민사재판의 경우 항소심서 4건 중 1건이 뒤집히고 대법원에 가면 다시 7%의 결과가 바뀐다. 뭐든지 할 수만 있다면 대법원까지 끌고간다. 그 결과 대법관 1인당 하루 8건, 연간 약 3000건을 처리해야 할 정도다. 상고허가제나 상고법원(간단한 상고사건 전담) 도입이 대법원의 숙원인 이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3심제로도 만족 못 하면 헌법재판소로 달려간다. 한 해 약 2000건의 위헌심판, 헌법소원이 쏟아진다. 실질적으론 3심이 아니라 4심제라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어제 헌재가 결혼 전에 산 TV 모니터를 홧김에 부순 남편에게 재물손괴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발표해 눈길을 끈다. 다툼의 자초지종은 차치하고, 이런 일까지 헌재로 간다니 놀랍다. 승복 못 하는 사회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 점점 커져간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앙투안 라부아지에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가 1794년 5월 8일 자코뱅 혁명정부의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그는, 이견이 없진 않으나 프랑스 민중의 고혈을 쥐어짜 축재한 세리(稅吏)그룹의 일원이었다.
부유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마자랭대학서 화학과 식물학, 수학 등을 공부했다. 당시 과학은 귀족 등 부유층의 취미이기도 해서, 그는 직업을 얻기 위해 법학을 따로 공부했지만 변호사가 되지는 않았다. 대신 벌이로 삼은 게 일종의 법인체인 수세조합(收稅組合, The Ferme Generale) 일원이 되는 거였다.
별도의 국세 징수기관이 없던 루이 16세의 프랑스는 징세 독점권을 팔았는데, 국가에 세액을 대납한 뒤 수수료를 얹어 세금을 징수하던 조직이 수세조합이었다. 세금에다 수수료까지 내야 했던 시민들은 고통스러웠지만, 귀족들은 국가가 보증한 그 짭짤한 독점 투자 수익을 누리며 좋게 말하자면 당대 파리의 패션과 예술과 과학을 성장시켰다. 세상이 그러했으니 라부아지에로선 자기 선택에 별 죄의식을 지니지 않았을지 모른다. 더군다나 그는 과학에 미쳐 있었다.
그는 집에다 첨단 실험실을 갖추고 왕립 병기창 일을 도우며 양질의 화약 제조기법을 연구했다. 훗날 미국으로 이민 가 굴지의 화학회사 뒤퐁을 설립한 창업주가 그의 제자 중 한 명이었다. 화학실험에 정밀 천칭저울을 활용하며 정량 분석을 중시한 최초의 과학자 중 한 명이 그였다. 거대 확대경으로 다이아몬드를 연소시켜 기체로 변한 뒤의 무게가 처음과 같다는 사실을 확인했고(질량 불변의 법칙), 고열을 이용해 물을 산소와 수소로 분리하고, 또 같은 질량의 수소와 산소 기체로 물을 합성하기도 했다.
물이 원소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원소의 화합물이란 사실이 그렇게 그의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호흡과 발효, 부패 등이 산소 작용의 동일 원리(연소이론)로 진행된다는 사실도 그가 이룬 업적 중 하나였다. 최초의 근대화학 교과서로 꼽히는 원소 목록과 화학물 명명체계 등을 정리한 그의 ‘기초화학 총설’이 대혁명의 해인 1789년에 출판됐다.
그가 남긴 실험 자료와 연구성과를 정리해 세상에 내놓은 이는, 그의 둘도 없는 실험 조수이자 아내 마리 앤 라부아지에(1758~1836)였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뜨겁지만 미흡했던 대선 선거운동
제19대 대선 선거운동이 오늘 저녁 자정으로 모두 막을 내린다. 헌정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사태에 따라 실시되는 조기 대선이 마지막 결승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다. 후보자 등록이 끝나고 지난달 17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지만 이미 국회에서 탄핵이 거론되고 촛불시위가 이어지면서부터 사실상 선거 국면에 돌입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드디어 내일 선거가 실시되고, 모레는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새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다.
선거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주요 후보들 사이에 치열하게 물고 물리는 선거 판세는 막판까지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시종 앞서 온 상황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역전 각축전이 시도되는 중이다. 막판에 터져 나온 바른정당 의원들의 집단탈당 논란이 보수성향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유권자들의 호응도 만만치 않다. 지난 4~5일 이틀 동안 실시된 사전투표 투표율이 무려 26.06%를 기록했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107만 표가 이미 투표를 마친 셈이다.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대통령을 뽑기 위해 미리 한 표를 행사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라면 이번 투표율이 80%를 훌쩍 넘어설 가능성도 충분하다.
문제는 후보자들에 대한 인물·공약 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느냐 하는 점이다. 주요 후보들이 참석한 가운데 모두 6차례에 걸쳐 TV토론이 진행됐지만 세부 검증이 이뤄지기에는 한계가 없지 않았다. 선거 막판까지 후보들에 대한 온갖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것이 그런 때문이다. 여기에 ‘투표용지 조작설’ 등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가짜뉴스까지 나돌고 있다. 열기는 뜨겁지만 올바른 선택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투표가 사분오열 찢어져 사표(死票)가 대거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만약 30~40%의 득표율로 당선자가 결정된다면 향후 국정운영에서 구심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는 결선투표제 도입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을 떠나 유권자들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경향신문]
2. 조기 대선전, 성과 있었지만 과제도 많이 남겼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에 실시된 19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오늘로 끝난다. 이번 대선은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을 심판한 시민의 열기가 유지되면서 큰 무리없이 치러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심판론을 희석하는 개헌론과 특정인을 반대하기 위한 후보단일화는 힘을 얻지 못했다. 종북이니 주적이니 하는 색깔론도 먹히지 않았다. 촛불집회를 통해 각성한 시민들이 일부 정치집단의 구태에 놀아나지 않은 결과다.
시민들의 높은 관심 속에 6차례의 TV토론을 통해 후보의 자질과 정책을 검증하는 기회도 가졌다. 국정 현안에 대한 후보들의 이해 수준과 관점이 유권자들의 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상대적으로 약세인 후보가 토론을 통해 선전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TV토론이 선거전을 진일보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유권자의 4분의 1이 사전투표에 참여하면서 촛불혁명을 정치 현실에 투영하려는 의지도 보였다.
하지만 부정적 현상도 있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정책선거를 구현하지 못한 점이다. 국가 비전과 심화하는 양극화에 대한 대책, 그리고 이를 둘러싼 후보 간 토론이 어느 때보다 절실했으나 이런 의제들은 공약으로 내실 있게 제시되지 못했다.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이 난무했다.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에도 분명한 재원 마련 방안이 없었다. 재벌·언론·정치 개혁 논의도 구체성을 띠지 못했다. 후보들이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기는 했지만 그에 관한 토론 대신 도덕성 검증을 빙자한 네거티브 선거전에 몰두했다.
여론조사가 선거전을 지배한 것도 큰 문제였다. 참고사항에 그쳐야 할 후보 지지율에 관한 여론조사가 언론의 경마식 보도와 맞물리면서 선거전을 주도하고 정당 간 갈등을 부추겼다. 선거전의 주요 통로로 부상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기능도 긍정·부정적 평가가 교차한다. SNS 선거운동은 정당과 유권자들 간 쌍방향 소통을 유도하기도 했지만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통로로 기능하는 등 네거티브 선거전에 이용되는 단점도 노출했다.
이번 선거에서 크게 희석된 지역·이념 대결이 향후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단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명분 없는 개헌론과 후보 단일화를 차단한 민심이 정치권의 퇴행을 좌시하지 않을 것만은 분명하다. 각성된 시민의식은 정치권의 더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여론조사 정치, 네거티브 선거전을 넘어 정책선거와 정당정치를 강화하는 풍토를 확립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선거법도 개정해 여론조사 공표 제한 및 공약 비교 평가 금지를 없애고 18세 투표,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조선일보]
3. '미세 먼지' 새 정부 최우선 과제 돼야
중국 황사 영향으로 지난 주말 전국의 미세 먼지(입자 크기 10㎛ 미만) 농도가 크게 올라 전국 대부분 지역에 주의보가 내려졌다. 전국 지도에 나타난 빨간색 '매우 나쁨' 표시가 사람들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경기 안산은 6일 오후 한때 건강한 성인도 실외 활동을 피해야 하는 '매우 나쁨' 수준의 4배를 넘었다.
미세 먼지가 건강을 해치고 초미세 먼지는 암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안감은 크게 높아지고 있다. "도망갈 곳도 없다"는 비명이 나온다. "봄이 없어졌다"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학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운동회를 하는 사진이 시민들을 기막히게 한다. 공기청정기는 물론이고 한 번 쓰고 버려야 하는 마스크 값도 서민들에겐 작지 않은 부담으로 등장했다. 이제 미세 먼지 문제는 환경문제 중의 하나가 아니다. 온 국민이 위협을 피부로 느끼게 된 국가 최대 현안의 하나가 됐다.
미세 먼지 오염의 일정 부분은 중국 탓이다. 특히 황사가 그렇다. 그러나 미세 먼지의 상당 부분은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할 일만 제대로 해도 공기는 달라진다. 작년에 정부가 노후 경유차 수도권 운행 제한, 친환경차 보급 확대 방안 등을 특단의 대책이라고 내놓았지만 무언가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국민은 거의 없다.
대선 후보 대부분이 미세 먼지 대책을 '10대 공약'에 처음으로 포함시켰다. 그러나 듣던 얘기의 반복이거나 실현성이 떨어지는 내용이 많아 믿음이 가지 않는다. 각 후보는 석탄 발전 감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원전도 줄인다고 한다. 결국 이도 저도 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은 미세 먼지 때문에 아우성인데 선거 때만 넘겨보자는 식이다.
후보들은 미세 먼지를 한·중 정상급 의제로 격상(문재인), 중국과 환경 외교 강화(안철수), 한·중·일 정상회의체 운영(유승민) 등으로 문제를 풀겠다고 한다. 다 좋은 얘기다. 그러나 중국에 문제를 제기하려면 중국이 미세 먼지 배출원이라는 과학적 데이터를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연구 자료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선 중국이 들어줄 리 만무하다.
새 정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연구 자료를 축적해 중국 환경오염이 미치는 피해에 대해 계속해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정부 외에 학계, 환경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중국도 공기 오염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으니 공동 연구가 가능하다. 국내적으론 가격이 너무 싼 전기값을 올려 발전소 가동을 줄여야 한다. 도심 경유차 운행과 노후 경유차 문제는 근본적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전문가 중에는 노후 경유차만 줄여도 공기가 달라질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국민에게 고통이 따를 수 있다. 국민도 미세 먼지 대책에 동참해야 한다. 다른 길이 없다.
4. 洪 후보의 친박 핵심 징계 해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그제 최순실 게이트로 친박(親朴) 핵심 인사 7명에게 내려졌던 당원권 정지 징계를 전격 해제했다. 또 바른정당의 탈당파를 포함해 국회의원 14명 등에 대한 일괄 복당 조치를 내렸다. 홍 후보는 '대선 후보는 당무에 관해 우선권을 가진다'는 당헌 규정을 활용해 아무런 절차 없이 직권으로 이런 조치를 내렸다.
홍 후보의 이 조치는 대선을 3일 앞둔 상태에서 보수 세력 결집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이 석 달 만에 도로 '양박'당이 됐다"고 했고, 국민의당도 "국정 농단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새 대한민국에 대한 열망을 잊었느냐"고 비판했다. 바른정당은 "구태로 돌아가는 것이고 한국당이 전혀 변화가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친박 핵심 세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지난해 4·13 총선 때 공천의 기준을 '진박(眞朴)이냐, 아니냐'로 삼은 끝에 패배하려야 패배할 수 없는 선거에서 참패했던 책임도 함께 졌다. 지금 보수 정당이 분열돼 있는 것은 이 친박 의원들이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당이 비상체제로 들어간 뒤에야 당원권 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당시 이 징계는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보수 진영 전체를 붕괴시키다시피 한 사태의 책임으로는 가볍다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책임을 피하는 듯한 모습이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대선판을 만드는 데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선거를 목전에 둔 홍 후보 입장에선 표를 모을 모든 조치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여론조사상 크게 뒤지는 상황에서 비상한 수단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친박이 징계받은 뒤 바뀐 사정이라곤 대통령 탄핵과 구속밖에 없다. 그런데 모든 징계가 해제되려면 투표가 눈앞이라는 것 이상의 명분이 필요하다.
홍 후보 측은 "홍 후보의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갈등이 일거에 해결됐다"고 했다. 이번 조치로 한국당 기대대로 보수층이 결집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고 바른정당 집단 탈당 때와 같은 역풍이 불 수도 있다. 결국 유권자들이 판단을 내릴 것이다.
[중앙일보]
5. '구글세' 해외 확산, 우리도 조세주권 내세울 때
구글세가 유럽 주요국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은 이탈리아 국세청에 지난 10여 년간 미납 세금 3억600만 유로(약 3800억원)를 납부한다고 최근 밝혔다. 영국 정부가 지난해 초 이 회사에서 1억3000만 파운드(약 1900억원)의 세금을 추징한 데 이어 두 번째다.
구글세(稅)란 인터넷 등 정보통신(ICT) 기업들이 특정국에서 번 돈을 세율이 낮은 제3국 소재의 지사 몫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세 부담을 줄인 데 대해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구글뿐만 아니라 애플·아마존·페이스북처럼 독과점 이익을 오래 누려온 미국 간판 ICT 다국적 기업들이 표적이다. 이탈리아 당국은 구글이 자국 내에서 번 돈을 법인세율이 상대적으로 낮은(12.5%) 아일랜드로 돌린 혐의를 잡고 끈질기게 조사를 벌여왔다.
구글세는 먼 유럽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이다. 구글·애플의 경우 인터넷·ICT 분야 강국인 우리나라 안방에 들어와 한 해 수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미국·일본에 이은 3위권 시장으로 꼽힌다. 그동안 법인세법을 비롯해 관련 법 개정 논의가 더러 있긴 했지만 국회나 정부 차원에서 구글세에 대한 뚜렷한 과세 의지를 밝힌 기억이 없다.
디지털 기업은 무형의 콘텐트에 대한 저작권료·사용료가 주된 수익원이라 전통업종보다 조세 회피가 용이하다. 그만큼 앞선 세원 발굴 기법이 필요하다. 그래야 국내 ICT업체들이 과세나 인허가 면에서 외국계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민원도 제대로 풀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정부가 지구촌의 구글세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에 대비해 외교통상 방안도 마련해 둬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이 2015년 ‘국가 간 소득이전 및 세원 잠식(BEPS)’ 국제 공조에 나선 걸 계기로 구글세 도입은 대세가 됐다. 프랑스·스페인 등도 동참할 태세다. 구글세를 방치하는 건 우리의 조세주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6. 처벌 강화해야 산불 재앙 막는다
대형 산불은 비슷한 패턴을 밟아 왔다. 봄철 건조한 날씨와 강풍이라는 자연적 요인과 함께 사람의 부주의와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안일한 대응이라는 인위적 요인이 결합해 재앙을 불러왔다. 지난 6일 강원도 강릉과 삼척, 경북 상주에서 발생한 산불도 이러한 패턴을 벗어나지 않았다. 100㏊가 넘는 울창했던 산림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민가 30여 채를 집어삼켜 300여 명이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이재민 구호와 피해 복구를 최우선으로 하면서 더 이상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 근본적 원인도 철저히 따져야 한다.
봄철은 산불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계절이다. 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2000년 동해안 산불, '천년고찰' 낙산사를 폐허로 남긴 2005년 강원도 양양 산불도 봄철에 발생했다. 산불이 났을 때 바람이 불면 확산 속도가 26배 이상 빨라진다고 한다. 이처럼 자연적 요인이 크지만 연례행사처럼 사전에 예견되고 반복되는 일이라면 우리의 노력에 따라 산불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행정기관의 느슨한 자세는 빠지지 않는 고질병이 되다시피 했다. 이번에도 재난 안전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기상청·한국도로공사 등은 국민안전처에 재난 문자 발송을 요청하지 않았다. 국민안전처는 "관련 기관의 요청이 없어 문자를 발송하지 않았다"며 '네 탓' 공방만 하고 있다니 답답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인재(人災)라는 점이다. 강릉과 삼척, 상주 3개 지역의 산불은 모두 입산자의 실화 또는 논두렁 소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수'라고 너그럽게 봐주는 온정주의가 대형 산불을 만드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때다. 불이 날 수 있음을 뻔히 알면서 라이터 등 인화물질을 가져가거나 마른 나뭇잎을 곁에 두고 불을 피우는 행위는 미필적 고의(未必的 故意)에 해당할 수 있다.
산불의 원인 제공자와 부적절한 대응에 대해 가혹하게 처벌해야 사전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불탄 생태계가 완전히 복원되기까지는 100년 이상이 걸린다. 예고 없는 재앙은 없다.
[세계일보]
7. 대선후보, 나라 걱정하는 민심 무겁게 받아들여야
19대 대통령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오늘 밤 12시 종료된다. 후보들은 서울, 대전 등에서 마지막 유세를 갖고 22일간의 레이스를 마무리한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심판에 따른 조기 대선의 60일 대장정이 투표만 남기고 막을 내리는 것이다.
이번 대선은 기간이 짧은 탓에 후보 자질 검증과 공약 경쟁이 기대 이하였다. TV토론을 빼곤 후보의 장단점을 비교할 방법이 사실상 없었다. 대신 상호 비방, 흑색선전 등 네거티브가 판을 쳤다. 특히 표심을 왜곡하는 ‘가짜뉴스’가 SNS를 통해 무차별 살포됐고 최근엔 투표용지를 둘러싼 음모론도 제기됐다.
국민들은 그러나 거짓 선동에 현혹되지 않고 대선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지난 4, 5일 이틀간 실시된 사전투표에 무려 1107만명이 참여했다. 전체 선거인 4248만명 가운데 26.06%가 투표장을 찾은 것이다. 어떤 투표소에는 사람이 몰려 100m 넘는 줄이 이어졌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국정 공백과 혼란을 하루빨리 수습하라는 민심의 반영으로 읽힌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려는 국민 열망이 그만큼 뜨거운 셈이다. 안보·경제 쌍끌이 위기가 고조되는 국가 비상시기이니 후보들의 자세가 과거와는 달라야 한다.
하지만 후보들은 사전투표 결과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기 바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쪽은 2030 젊은층이 대거 사전투표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보수층의 위기의식이 반영됐다며 어제 페이스북 글에서 “(문 후보를 앞지른) ‘골든 크로스’를 넘어 승리의 길로 가고 있다”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쪽은 지역 기반이 강한 호남의 투표율이 높았던 만큼 문 후보와 양강 대결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나라를 걱정하며 투표장으로 달려간 유권자들의 마음을 자기 편한 대로 떠들어대는 것은 옳지 않다. 국정을 똑바로 운영해 국가 위기를 극복하라는 민심의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게 후보들의 당연한 덕목이 아닌가. 대선에서 이기는 것을 무슨 전리품을 얻은 양 여겨선 곤란하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한 표 한 표를 소중히 받드는 자세가 필요하다.
후보들은 마지막까지 네거티브나 가짜뉴스 등을 통해 표를 얻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유권자들은 이제 그런 것에 속을 만큼 어리숙하지 않다. 깨끗한 경쟁으로 최선을 다한 뒤 겸허한 자세로 민심의 심판을 기다려야 한다.
8. 미·중 대북 압박 강화… 주도적 안보태세 갖출 때다
미국 의회와 정부가 대북 압박 강화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 하원이 4일(현지시간) ‘대북 차단·제재 현대화 법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북한의 원유 수입 봉쇄, 노동자 해외 송출 차단 등으로 자금줄을 전방위 차단하는 게 골자다. 북한 핵·미사일 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미 의회의 의지가 담겼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미·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외교장관회의에서 대북 외교관계 중단·축소와 돈줄 차단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중국도 가세하고 있다. 중국의 북한산 석탄 수입 중단 조치로 3월 북한 석탄수출이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이 추가 도발하면 수개월간 대북 원유공급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북한 관영매체가 ‘중국이 북·중 관계의 레드라인을 넘어섰다’고 맹비난한 데 대해서도 신랄하게 반박했다.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북한 핵개발이 북·중상호원조조약에 위배된다고 질타했고, 인민일보의 소셜미디어매체는 ‘김일성이 한반도를 통일하려 했기에 중국군 수십만 명이 죽었다’며 새로운 양국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압박을 무시하고 제 갈 길을 가겠다는 입장이다. 평안북도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인근에서 대규모 굴착공사 장면이 위성사진에 포착된 것에 비추어 핵·미사일 개발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서해 최전방 부대를 방문해 북한군의 새 화력타격 계획을 검토했다고 공개했다. 북한은 이어 김 위원장에 대한 한·미 정보기관의 생화학테러 모의를 적발했다고 억지를 부리면서 반(反)테러 타격전을 벌이겠다고 위협했다.
국제사회는 10일 출범하는 한국 새 정부의 대북정책을 주시하고 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미국 전략이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고 전했다. 대북 압박에 중국까지 동참한 마당에 새 정부는 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 없다. 지금은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
최우선 과제는 북한 관련 협의에서 우리가 배제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없애는 것이다.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 국면이 열릴 때 새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떠맡을 준비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한반도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국제사회와 공유하는 일부터 서둘러야 한다. 우리가 주도적인 안보태세를 갖춰야 가능한 일이다.
[한국일보]
9. 일본의 저열한 유네스코 압박, 우리 정부 무능이 더 큰 문제
일본 정부가 위안부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막기 위해 올해에도 분담금을 무기로 유네스코를 압박하고 있다. 산케이 신문에 따르면 일본정부는“유네스코가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여 최근 마련한 세계기록유산 심사의 투명성 확보 개선안을 즉시 적용할 것을 요구할 방침”이라며 올해 유네스코 분담금 34억8,000만엔(약 350억원) 지급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한다.
일본이 유네스코 분담금을 내지 않겠다고 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5년 난징 대학살 관련 자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자 “이 제도가 정치적으로 이용됐다”며 분담금 지급을 미루다 연말에서야 낸 적이 있다. 당시 일본은 난징 대학살 자료 등재 외에도 한국 중국 일본 네덜란드 등 8개국 시민단체가 위안부 관련 자료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해 달라고 신청한 것에 대한 불만으로 분담금 지급 보류라는 일방적 조치를 들고 나와 큰 파문을 불렀다.
유네스코 분담금 부담 비율이 9.6%로 미국(22%)에 이어 세계 2위인 지위를 악용해 세계기록유산 심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겠다는 반역사적인 발상이다. 일본 내에서도 “돈을 앞세운 치졸한 짓”이라는 비판이 나왔을 정도다.
유네스코는 일본의 압박에 굴복해 견해 차가 있는 세계기록유산 신청에 대해 당사국 간 사전협의를 요구하는 내용의 심사제도 중간보고서를 최근 채택했고, 올해 10월 최종보고서가 나오면 공식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일본 정부의 주장은 이마저도 시기를 앞당겨 지금 당장 시행하라는 것이다.
2015년 12ㆍ28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에도 역사를 부정하는 퇴행적 망언을 거듭하고 있는 일본의 태도로 볼 때 유네스코를 상대로 벌이는 이런 작태는 새삼스러울 게 없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안이하고 무기력한 자세다. 정부도 아닌 여러 나라의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위안부 기록 등재를 일본 정부가 개입해 노골적으로 방해하는데도 마치 남의 나라 일인 듯 뒷짐만 지고 있다. 우리가 등재신청 지원을 하면 일본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12ㆍ28 합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본의 행동은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면서 우리의 눈과 입만 스스로 묶겠다는 것인가. 합의의 정신을 생각한다면 일본의 행태를 강도 높게 비난하며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시켜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렇잖아도 12ㆍ28 합의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높아지고 대선 주자들도 일제히 폐기ㆍ재협상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국의 각성을 촉구한다.
10. 일상이 된 미세먼지, 새 대통령 국가재난으로 관리해야
올 들어 최악의 미세먼지와 황사가 전국을 덮쳐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황금연휴 막바지 예정했던 야외모임을 취소하거나 마스크를 쓰고 길을 나서는 등 답답한 주말을 보냈다. 호흡기 질환과 각막 장애 등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미세먼지는 건강뿐 아니라 우리 경제에까지 실질적 타격을 주고 있다. 당초 업계에서는 긴 연휴가 소비 회복의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직격탄을 맞았다. 시민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와 레저, 서비스업 등 대부분의 내수 업종 매출이 급감했다. 2015년의 메르스 사태 때 소비가 곤두박질쳤던 상황을 연상케 한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서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현안으로 떠올랐다. 실제 올해 1~3월 미세먼지주의보는 최근 3년래 가장 많은 86회나 발령했다. 서울의 초미세먼지 오염도는 평균 34㎍으로 연간 기준을 넘어선 것은 물론 미국과 일본 기준의 두 배를 초과했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굼뜨거나 겉돌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라고는 미세먼지 발령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한 게 고작이다. 연휴기간 기록적인 미세먼지 습격에 정부가 한 일은 야외 활동 자제와 외출 시 마스크 착용 권고가 전부였다. 오죽하면 “정부의 미세먼지 무대책에 이민 가고 싶다”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겠는가.
미세먼지의 발생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것부터가 심각한 문제다. 상당부분 중국에서 유입된다고 하나 그게 어느 정도인지, 국내는 어디서 얼마나 나오고 있는지 아직도 명확하지가 않다. 미세먼지 대책을 놓고도 정부 부처간 엇박자가 나는 것도 한심하다. 한쪽에서는 미세먼지 저감조치를 내놓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신규 석탄발전소 증설 계획을 발표하는 식이다. 미세먼지 배출량이 적은 LPG 차량 규제 완화를 둘러싼 부처간 갈등과 교육부와 각 시ㆍ도교육청의 야외 수업 금지 기준이 제각각 인 것도 마찬가지다.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발표한 미세먼저 대책 공약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정부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거나 그간 논의돼온 대책을 취합한 수준에 머물렀다. 목표 제시에 그칠 게 아니라 실효성이 있고 실천 가능한 대책 마련이 우선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40년 뒤 한국이 대기오염에 따른 조기 사망률 1위 국가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새 대통령은 취임하는 즉시 미세먼지 대책을 대통령의 의제로 삼고, 국가적 재난으로 관리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경향신문][여적] 카네이션의 운명
카네이션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보내며 성모 마리아가 흘린 눈물의 흔적에서 핀 꽃이라고 한다. 15세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카네이션을 든 성모>를 그렸고, 16세기 산치오 라파엘로도 같은 이름의 작품을 남겼다. 모두 마리아가 한 손으로는 아기 예수를 안고, 다른 손으로는 카네이션을 쥐고 있는 모습이다. 카네이션은 마리아가 아기 예수에게 베푸는 모성애의 상징이다.
붉은색 카네이션의 꽃말은 사랑·존경, 분홍색은 열애, 흰색은 추모를 뜻한다. 어버이날에 붉은 카네이션을 부모님의 가슴에 달아드리는 전통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20세기 초 미국 필라델피아의 아나 자비스라는 여성이 자신의 어머니 추모식에서 흰 카네이션을 교인에게 나누어주며 어머니의날 제정을 촉구한 것이 출발이다.
1914년 토머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5월 둘째주 일요일을 어머니의날로 정했다. 살아 계신 어머니에게는 붉은 카네이션을 선물하고, 돌아가신 어머니 무덤에 흰 카네이션을 놓는 전통의 시작이다. 한국에서는 1930년대 기독교 단체에서 5월 둘째주를 부모님 주일로 지켜왔으며, 1958년 정부는 5월8일을 ‘어머니날’로 정했다. 이어 1973년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를 포함하는 어른, 노인들을 공경하자는 취지의 ‘어버이날’로 거듭났다.
‘스승의날’에도 선생님께 카네이션을 선물한다. 스승을 존경하는 한국 문화의 산물이다. 1965년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15일을 기념일로 정했다. ‘사은의 선물로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다’는 기사(경향신문 1967년 5월15일)가 실린 것으로 보아 ‘카네이션 선물’은 스승의날 제정과 함께한 것 같다.
5월 특수를 누렸던 카네이션의 가격이 올해는 오르기는커녕 대폭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어버이날과 스승의날을 앞둔 4월부터 밀려들던 주문은 자취를 감추었다. 지난해보다 출하물량을 줄였는데도 가격은 25% 이상 떨어졌다고 한다. 화훼농가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수요가 급감했다고 말한다. 5월 초 장기간의 황금연휴에 카네이션을 찾는 이는 더욱 줄었다. 카네이션에 먼지가 쌓인다. 하지만 부모와 스승을 향한 단심은 시들거나 변하지 않기를.
2. [서울신문][월요 정책마당] 진화하는 푸드트럭
푸드트럭이 진화하고 있다. 푸드트럭은 한국에서는 2014년 3월 처음으로 합법화된 새로운 자영업 사업 모델이다. 새로운 사업 모델은 언제나 시장 상황과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진화하면서 성공의 길을 걷거나 소멸의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그러면 푸드트럭은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진화를 거쳤을까. 우선 영업장소의 진화이다. 유원시설에서 시작해 도시공원, 관광단지, 공용재산까지 차례로 영업장소가 확대됐다. 이제는 일반도로에서도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곳이라면 푸드트럭 운영이 가능하게 제도가 개선됐다.
이처럼 영업장소를 차례로 확대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푸드트럭이 비즈니스 모델로 정착한 미국을 보면 모든 도시에서 푸드트럭이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로스앤젤레스가 푸드트럭에 가장 우호적인 도시인 반면 뉴욕은 가장 비우호적인 도시이다. 인구밀도가 높고 도로 여건이 비좁은 데다 상업지구가 도시 곳곳에 들어차 있는 뉴욕에서는 푸드트럭 영업장소를 찾아내는 게 쉽지 않다.
한국의 대부분 도시가 뉴욕과 비슷하다. 특히 어디에서든 기존 상권과의 마찰을 피해 나가기가 쉽지 않다. 또 도심 곳곳에 자리잡은 불법 노점상들 역시 푸드트럭의 실체적 경쟁자들이다. 그러다 보니 영업 가능한 장소를 단계적으로 늘릴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형태의 진화도 선보였다. 푸드트럭을 축제와 결합시킨 축제결합형 사업모델이 탄생한 것이다. 서울시가 성공적으로 출범시켜 이미 3년째를 맞은 서울밤도깨비 야시장이다. 지정된 영업장소를 제공하는 데 한계를 느낀 서울시는 야시장이라는 형태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등에서 야간축제를 개최하고 푸드트럭 사업자들을 초청해서 영업하도록 했다. 매년 3~10월 금·토요일 야간에 개최되는 이 축제는 영업시간의 제약에도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올해는 132대의 푸드트럭이 이 행사에 초대받았다.
또 하나의 진화 형태가 청년창업지원형이다. 이번엔 한국도로공사가 적극 나섰다. 고속도로 졸음쉼터에 매점이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 전국 곳곳 졸음쉼터의 평균 이용객 수를 파악한 후 14곳을 골라 푸드트럭을 넣었다. 그런데 특징이 있다. 바로 도로공사가 푸드트럭을 구입해 청년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2년간 임대한 것이다. 2년 동안 열심히 일해 창업자금을 마련해 독립하라는 뜻이다. 졸음쉼터 푸드트럭당 월평균 매출은 1500만원이다.
전통시장상생형도 자리를 잡았다. 전통시장은 야간에는 한산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전통시장을 외면한다. 경기 수원시가 이에 착안했다. 역시 청년창업의 일환으로 시가 푸드트레일러를 임대해 주고, 청년들은 전통시장 상인회에 상인회비를 내고 어엿한 상인으로 대접받는다. 18명의 청년이 각기 독특한 메뉴로 경쟁하면서 젊은이들을 전통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애초의 목적도 달성했다.
여기서 열거한 성공 사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푸드트럭을 청년 일자리 창출사업과 연계시킨 기관장들의 적극적인 자세이다. 서울시와 수원시에서는 시장이, 한국도로공사에서는 사장이 직접 나섰다. 경기도 역시 초기부터 푸드트럭 문화 창출에 적극적이었다. 경기도의 푸드트럭 숫자가 125대로 서울시 120대를 앞서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서울 서초구에서는 이동영업 푸드트럭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푸드트럭 진화에서 중요한 요소는 바로 메뉴다. 밤도깨비 야시장에서 성공한 삐삣버거의 경우를 보자. 처음에 과일주스로 시작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이어 철판볶음밥, 철판스테이크 메뉴를 내놓았지만 이 역시 실패했다. 차별화된 메뉴가 아니면 성공하지 못함을 알게 됐다. 결국 전국의 수제버거 전문점을 5개월 동안 찾아다니며 찾아낸 것이 삐삣버거다. 헝그리베어라는 푸드트럭은 이태리식 피자를 직접 구워서 판다. 목살스테이크와 칵테일 버터갈릭핫도그를 파는 칠링키친은 이미 푸드트럭 5대 소유자가 됐다. 독립매장에서 파는 것과 경쟁해 맛과 독특함, 창의성으로 승부한다는 생각으로 메뉴를 진화시키지 않으면 푸드트럭은 성공할 수 없다.
푸드트럭 진화의 마지막 단계는 아마도 사유지에서의 영업을 허용하는 일일 것이다. 공공이 아닌 민간인도 곳곳에 수목원, 미술관, 테마공원들을 갖고 있다. 이러한 장소에서 부지사용계약을 통해 푸드트럭이 영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반드시 풀어야 할 푸드트럭 생태계 조성사업 중 하나이다. 또 미국식으로 푸드트럭 식재료의 전처리 가공을 한곳에서 할 수 있는 공동의 장소를 마련하는 것도 푸드트럭이 1000대 이상까지 늘어날 경우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다.
3. [데일리안][하재근 문화평론가] 윤식당 한국인이 내지르는 비명의 판타지
tvN '윤식당‘이 다른 방송사들의 동시간대 프로그램 시청률을 일제히 끌어내리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5월 예능 프로그램 브랜드 평판에서 절대 강자인 ’무한도전‘에 이어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라디오스타‘, ’복면가왕‘ 등 지상파 프로그램들까지 모두 제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느리다. 그것이 우리네 현실과 달랐다. 신구가 서빙을 시작했을 때 음식을 고르는 손님들 앞에서 기다렸다. 그러자 이서진이 그렇게 급할 거 없다고 천천히 하면 된다고 했다. 그 말이 한국 시청자들 가슴을 쳤다. ‘아, 세상을 그렇게 동동거리며 사는 길만 있는 건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이다.
우리는 여행조차도 전투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카메라를 들고 정신없이 일정을 소화하며 기념사진 ‘실적’을 올리는 것이다. ‘윤식당’ 속의 외국인 여행자들은 전혀 달랐다.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며 대화하고, 음식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맛을 음미했다. 왜 이렇게 음식을 늦게 주느냐고 타박하는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윤식당’ 출연자들만 바빴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음식이 너무나 늦게 제공됐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보통 10분 내외의 시간에 거의 모든 음식 차림이 완료된다. 이 프로그램에선 간단한 식사 종류가 수십여 분이나 걸렸다. 당연히 출연자들은 좌불안석으로 불안에 떨며 음식을 바삐 만들었다. 하지만 외국 손님들은 태평했다.
제작진이 해당 지역의 다른 식당에 가서 음식이 제공되는 시간을 측정했다. 놀랍게도 두 곳 모두에서 주문한 것들 중 첫 번째 음식이 나오는 데에만 30분 이상이 걸렸다. 우리로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곳. 시계를 들여다보며 사람을 닦달하고 얼굴 붉히지 않는 곳. 바로 그런 곳의 정취를 프로그램은 전해줬다. 여기에 한국 시청자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외국인이 한국 공사장 같은 곳에 취업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말 중의 하나가 ‘빨리빨리’라는 말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경주마처럼 달렸다. 그래서 한강의 기적도 가능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다음엔, 오히려 더 달렸다. 산업발전기엔 국가경제를 살리는 산업전사로서 달렸다면, 한강의 기적 이후엔 내가 죽지 않기 위해 달려야 했다. 외환위기로 죽느냐 사느냐의 극단적인 경쟁사회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2000년대까지는 죽을 각오로 달리면 한 밑천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닥친 건 한 밑천이 아니라 탈진 증후군이었다. 이제 아무리 동동거리며 일해도 경쟁의 승자가 되는 것이 어차피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패러다임 그 자체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간다.
‘윤식당’의 느림이 호응을 받은 건 그런 이유에서다. 느림도 탈출이려니와, 외국에 식당을 열었다는 점도 역시 탈출이다. 정서적으로, 공간적으로, 모든 면에서의 탙출을 그린 것이다. ‘헬조선 탈출’ 트렌드하고도 맞물린다.
프랑스 철학자인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통해서 느림의 가치가 주목 받았었다. 일본의 환경운동가인 쓰지 신이치의 ‘슬로 라이프’를 통해 ‘캔들(Candle)족’이란 신조어가 알려지기도 했다. 캔들족이란 하루 한 번이라도 밤에 촛불을 켜고 삶의 여유를 음미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슬로비(Slobbie)족’도 있다. 천천히 그러나 더 훌륭하게 일하는 사람(Slow ButBetter Working People)의 약칭으로 속도를 늦추고 성공보단 마음의 행복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신조어들은 세계가 무한경쟁 체제로 재편된 후 ‘피로사회’가 대두했고 어디서나 사람들이 느림을 꿈꾸게 됐다는 걸 말해준다. 우리에게도 그런 흐름이 전개되다가, 최근 들어 폭발적으로 강해졌다. 피로가 울화가 되고 우울에 무기력으로까지 발전했는데, 그 댓가로 자신이 얻을 보상이 별로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느림을 간절히 꿈꾸기는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실천하진 못한다. 한국사회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편의점 간편식 매출 상승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전히 사람들은 발을 동동거리며 끼니조차 순식간에 때운다. ‘윤식당’이 판타지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윤식당’의 인기는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도록 헐떡거리며 뛰어야 겨우 밥벌이를 하는 한국사회의 비명인 셈이다.
4. [한국경제][천자 칼럼] 삼세판 증후군
현대 사법제도의 근간인 3심제(三審制)는 근대 유럽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1000여년 전부터 3심제가 있었다. 1047년 고려 문종은 ‘사수삼복계법(死囚三覆啓法)을 도입해 사형수에 한해 3복(3심)을 거치도록 했다. ‘인명은 소중하고 죽은 자를 되살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3복제는 조선으로 이어져 태종 때 《경제육전》(1397년), 성종의 《경국대전》(1485년)에 담겼다.
그렇다고 고려·조선에서 인권이 보장됐다고 보긴 어렵다. 신문고가 있었지만 널리 활용되지 못했고, 왕명에 따른 의금부 특수사건은 단심제였다. ‘네 죄를 알렸다’는 원님재판에다 연좌제로 범죄자의 처자를 노비로 만드는 일도 허다했다. 향리들의 전횡까지 더해져 민초의 삶은 늘 고달팠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억울함의 역사가 뿌리 깊어서일까. 오늘날에도 ‘사법 불복(不服)’이 두드러진다. ‘2016 사법연감’에 따르면 형사재판의 경우 1심 합의부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비율이 2006년 51.9%에서 2015년 68.1%로 뛰었다. 2심 상고율도 30~40%에 이른다. 심지어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범들도 2심 감형에도 모두 대법원에 상고했다. ‘밑져야 본전’이란 심리일 것이다.
언제부턴가 재판은 ‘웬만하면 삼세판’이 돼버렸다. 한 전직 대법원장은 “고려가 망한 이유 중에 하나가 과도한 사법비용”이라며 우리 사회의 삼세판 증후군을 우려하기도 했다. 한국인이 유독 숫자 3을 좋아해서일까. 승부는 적어도 세 번은 겨루고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재판 불복의 이면에는 사법 불신이 깔려 있다. ‘전관 변호사’를 잘 썼느냐에 따라 판결 결과가 달라진다고 믿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민사재판의 경우 항소심서 4건 중 1건이 뒤집히고 대법원에 가면 다시 7%의 결과가 바뀐다. 뭐든지 할 수만 있다면 대법원까지 끌고간다. 그 결과 대법관 1인당 하루 8건, 연간 약 3000건을 처리해야 할 정도다. 상고허가제나 상고법원(간단한 상고사건 전담) 도입이 대법원의 숙원인 이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3심제로도 만족 못 하면 헌법재판소로 달려간다. 한 해 약 2000건의 위헌심판, 헌법소원이 쏟아진다. 실질적으론 3심이 아니라 4심제라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어제 헌재가 결혼 전에 산 TV 모니터를 홧김에 부순 남편에게 재물손괴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발표해 눈길을 끈다. 다툼의 자초지종은 차치하고, 이런 일까지 헌재로 간다니 놀랍다. 승복 못 하는 사회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 점점 커져간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앙투안 라부아지에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가 1794년 5월 8일 자코뱅 혁명정부의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그는, 이견이 없진 않으나 프랑스 민중의 고혈을 쥐어짜 축재한 세리(稅吏)그룹의 일원이었다.
부유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마자랭대학서 화학과 식물학, 수학 등을 공부했다. 당시 과학은 귀족 등 부유층의 취미이기도 해서, 그는 직업을 얻기 위해 법학을 따로 공부했지만 변호사가 되지는 않았다. 대신 벌이로 삼은 게 일종의 법인체인 수세조합(收稅組合, The Ferme Generale) 일원이 되는 거였다.
별도의 국세 징수기관이 없던 루이 16세의 프랑스는 징세 독점권을 팔았는데, 국가에 세액을 대납한 뒤 수수료를 얹어 세금을 징수하던 조직이 수세조합이었다. 세금에다 수수료까지 내야 했던 시민들은 고통스러웠지만, 귀족들은 국가가 보증한 그 짭짤한 독점 투자 수익을 누리며 좋게 말하자면 당대 파리의 패션과 예술과 과학을 성장시켰다. 세상이 그러했으니 라부아지에로선 자기 선택에 별 죄의식을 지니지 않았을지 모른다. 더군다나 그는 과학에 미쳐 있었다.
그는 집에다 첨단 실험실을 갖추고 왕립 병기창 일을 도우며 양질의 화약 제조기법을 연구했다. 훗날 미국으로 이민 가 굴지의 화학회사 뒤퐁을 설립한 창업주가 그의 제자 중 한 명이었다. 화학실험에 정밀 천칭저울을 활용하며 정량 분석을 중시한 최초의 과학자 중 한 명이 그였다. 거대 확대경으로 다이아몬드를 연소시켜 기체로 변한 뒤의 무게가 처음과 같다는 사실을 확인했고(질량 불변의 법칙), 고열을 이용해 물을 산소와 수소로 분리하고, 또 같은 질량의 수소와 산소 기체로 물을 합성하기도 했다.
물이 원소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원소의 화합물이란 사실이 그렇게 그의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호흡과 발효, 부패 등이 산소 작용의 동일 원리(연소이론)로 진행된다는 사실도 그가 이룬 업적 중 하나였다. 최초의 근대화학 교과서로 꼽히는 원소 목록과 화학물 명명체계 등을 정리한 그의 ‘기초화학 총설’이 대혁명의 해인 1789년에 출판됐다.
그가 남긴 실험 자료와 연구성과를 정리해 세상에 내놓은 이는, 그의 둘도 없는 실험 조수이자 아내 마리 앤 라부아지에(1758~1836)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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