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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일그러진 전직 대통령 모습 참담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정식 재판이 어제 시작됐다. 구속 53일 만에 모습을 처음 드러낸 박 전 대통령은 한마디로 초라했다. 수인번호 배지를 달고 수갑을 찬 채 호송차에서 내린 그녀의 얼굴은 수척했고, 집게핀 몇 개로 추스른 올림머리는 예전처럼 단아하지 않았다. 3시간 넘게 진행된 재판을 마치고 서울구치소로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설픈 동정론은 금물이다. 아무리 전직 대통령이라도 법 앞에선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유죄를 예단한 요식절차성 재판이나 여론에 떠밀리는 인민재판을 극력 피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보수 궤멸의 책임을 통감해야 할 처지에 우르르 몰려나와 “대통령 당장 석방하라”며 억지 부리는 일부 친박 세력의 몰지각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도 그래서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18개 혐의가 적용됐지만 핵심은 삼성 등 대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한 혐의다. 본인은 혐의들을 모두 일축했다. 검찰 조사에서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돕는 대가로 최순실씨 딸의 승마훈련 지원을 요구했느냐고 추궁을 받고 “사람을 어떻게 그리 더럽게 만드느냐”라고 항변했다고 한다. 앞으로 전개될 검찰과 박 전 대통령의 치열한 법리 공방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수갑을 찬 전직 대통령의 일그러진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의 심경도 참담하기만 하다. 1996년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3번째다. 당시 친구 사이인 2명의 군 장성 출신이 반란죄 등의 혐의로 피고석에 나란히 앉았고, 이번엔 박 전 대통령과 그녀의 40년 지기인 최순실씨가 국정농단 공범 혐의로 그 자리를 대신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법정에 서는 치욕은 면했지만 다른 전직 대통령들도 지금처럼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비슷한 신세를 면키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비극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어 지구촌을 휩쓰는 한류로 세계의 부러움을 받는 대한민국이 정치 리더십에서는 이토록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 이젠 부끄러운 역사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앞으로는 자랑스럽고 떳떳한 대통령의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2. 새 정부 공약사업, 결국 증세로 가는가

소득이 많은 사람일수록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당연하다. 고소득자인데도 세금을 적게 낸다면 공평한 처사가 아니다. 세금을 빼돌린다면 마땅히 세금을 내도록 강제해야 한다. 그것이 조세의 투명성을 높여 ‘조세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경제정책을 이끌어갈 핵심 책임자들이 연달아 비슷한 얘기를 했다면 의미는 약간 달라진다. 증세를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운용을 책임질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공통된 언급이다. “법인세 실효세율을 높이겠다”는 방향도 제시됐다. 현행 제도상 세금감면 혜택을 부여하는 예외 조항이 산재해 있어 고소득층이나 대기업이 실제 부과된 세율보다 세금을 적게 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례 조항이 자꾸 덧붙여짐으로써 복잡해진 세제를 손 볼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새 정부 정책 운용에 소요되는 재원을 모두 조달하기 어렵다는 게 현실적인 고민이다. 당장 공공부문 충원을 확대해야 하며,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아동·노인수당을 인상하고 병사들 월급도 올리도록 예정돼 있다. 저소득층의 소액 부채를 탕감해 줄 것이라는 얘기도 들려온다. 숨겨진 세원을 찾아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결국은 증세를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증세에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끌어가기 위해 필요하다면 마땅히 세율을 올려야 한다. 그러나 세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법인세율 인상에 있어서는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에서는 오히려 법인세를 낮추려는 추세다. 법인세 인상이 경제 활력을 떨어뜨릴 소지를 염두에 둬야만 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문 대통령이 제시한 공약을 한꺼번에 실현하기보다 우선순위에 따라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옳다.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도할 경우의 부작용이나 후유증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증세가 추진된다 해도 이러한 전제 아래서 실시돼야 한다. 세금이 사회적 갈등 요인이 돼서는 곤란하다.



[세계일보]

3. 박근혜 재판 시작… 권력 전횡 막을 ‘역사의 거울’ 삼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제 시작된 첫 정식 재판에 출석했다.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지 53일 만이고 기소된 지 36일 만이다. 서울법원종합청사에 도착해 호송차에서 내렸을 때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가슴에는 수인번호 ‘503번’이 쓰인 배지가 달려 있었다. 재판에서 ‘피고인’으로 불렸고 “박근혜 피고인, 직업이 어떻게 됩니까”라는 재판장의 질문에 “무직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불과 두 달여 전까지 대통령이었던 그의 법정 출석 모습을 지켜본 국민의 심정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선 것은 1996년 3월 12·12 쿠데타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 재판이 열린 417호 형사대법정은 전·노씨가 섰던 곳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불행한 헌정사가 되풀이되는 것은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박 전 대통령은 대기업으로부터 592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약속한 혐의 등 18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전·노씨 단죄가 ‘역사 바로세우기’였다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국민 주권 바로세우기’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을 남용해 국정을 농단한 위헌·위법 행위의 실체를 분명히 밝혀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어제 재판에서 검찰의 공소 사실 설명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의 변호사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추론과 상상에 의해 기소됐다”고 반박했다. 박 전 대통령도 “피고인도 부인 입장이냐”는 재판장 물음에 “네. 변호인 입장과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과 피고인석에 나란히 앉은 40년 지기 최순실씨도 혐의를 부인했다. 치열한 법리 공방을 예고한 것이다.



재판부는 “아무런 예단이나 편견 없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재판하겠다”며 “백지 상태에서 충분히 심리하고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증거에 입각한 공정 재판이 이뤄져야 갈등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첫 재판은 3시간 만에 끝났다. 앞으로 재판은 당분간 매주 2∼3차례 열린다. 박 전 대통령의 법정 출석 모습에 전 국민의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지금은 무엇보다 국정농단의 진실을 밝히는 일이 중요하다.



정치권은 박 전 대통령이 혐의를 부인하자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법원 앞에선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석방을 요구했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가 자중해야 한다. 차분히 재판을 지켜보면서 권력의 전횡으로 인한 ‘헌정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4. 국민 모두 동참해야 '나라다운 나라'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서 “저의 꿈은 국민 모두의 정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손을 놓지 않고 국민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꿈을 참여정부를 뛰어넘어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 나라다운 나라로 확장해야 한다”며 “다 함께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보자”고도 했다.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국민통합으로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메시지다. 집권 세력은 추도식이 열린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총집결해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다짐했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선 국민통합이 선행돼야 한다. “지역주의와 이념 갈등, 차별의 비정상이 없는 나라가 노 전 대통령의 꿈이었다”고도 문 대통령은 전했다. 가뜩이나 우리 사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으면서 촛불과 태극기의 충돌로 찢어질 대로 찢어진 상태다. 분열 치유는 새 정부의 최대 국정 과제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와 5·18 기념사 등 대국민 메시지를 내놓을 때마다 통합을 외치는 이유다. 취임 후 10여일 동안 나름의 탕평 인사와 탈권위주의적 행보로 국민 기대에 부응한 것도 사실이다. 80% 이상의 지지율은 그 결과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여섯 차례 업무지시를 통해 내린 조치들을 보면 국민 모두를 끌어안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국정교과서 폐지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진보 진영의 요구 사항이다. 최순실 게이트 재수사와 4대강 사업에 대한 정책 감사 지시는 과거 정부와 관련 있는 ‘적폐 청산 드라이브’의 성격이 짙다. 문 대통령이 지지층 목소리를 반영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특히 전전(前前) 정권을 겨냥한 4대강 감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 측과 보수 야당들로부터 정치보복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권한대행은 “노 전 대통령 서거일을 앞두고 한풀이식 보복을 지시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출신인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님을 그렇게 떠나보낸 분들의 응어리가 조금씩 풀리고 대통령님이 못다 이룬 꿈을 이루어나가는 계기로서의 추도식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연한 얘기다. 통합을 내세우면서도 응어리를 푸는 식으로 개혁을 추진해선 안 된다. 반문재인 세력의 반발이 커지면 통합은 어렵다. 문 대통령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통합의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나라다운 나라’는 국민 모두가 참여해야 성공할 수 있다.



5. 일상화한 테러 척결 위해 국제 연대 강화해야

영국 맨체스터 아레나에서 그제 최악의 경기장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맨체스터 아레나는 유럽 최대의 실내 경기장으로, 이곳에서는 미국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갈 즈음 폭탄이 터지면서 경기장은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어린이를 포함해 22명이 숨지고, 59여명이 심한 부상을 입었다.



2005년 런던 지하철 테러 이후 영국에서 발생한 최악의 테러다. 폭탄이 터진 뒤 실종된 가족을 찾는 애끊는 사연은 온라인을 도배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영국 경찰은 한 남성에 의해 저질러진 자살 폭탄 테러로 보고 조사 중이다.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폭탄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무시리킨(기독교인)을 공포에 떨게 하기 위해 맨체스터 십자군 모임에 폭발물을 설치했다”고 했다. IS 지지자들은 이번 테러를 두고 소셜미디어에 축하를 하며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공격을 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심지어 “유혈과 시신을 더 많이 보기를 원한다”는 글도 올랐다. 될 법이나 한 말인가. 살인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정신병자의 소리다.

테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고 있다. 2015년 11월에는 프랑스 파리 연쇄 폭탄테러로 130명이 목숨을 잃고, 지난해 3월에는 벨기에 브뤼셀 국제공항과 말베이크 역에서 32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7월에는 프랑스 니스에서 트럭 테러로 84명이 숨지고, 12월 독일 베를린에서는 트럭 테러로 또 12명이 숨졌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이번 테러를 “어린이들로 가득한 공연장에서 벌어진 피도 눈물도 없는 테러 공격”이라며 규탄했다.

테러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천인공노할 반인륜적 범죄다. 어떤 명분으로도 선량한 시민을 희생양으로 삼는 행위는 허용될 수 없다. 국제사회는 테러 축출을 위한 연대를 더욱 강화해 테러의 싹을 잘라야 한다. 이 땅에서 테러가 발붙이지 못할 때 세계평화의 싹은 비로소 돋아날 수 있다. 이번 테러로 유럽의 반난민 정서는 한층 확산될 소지가 있다. 하지만 포용의 정신으로 난민을 끌어안을 때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



[서울신문]

6. 北 비행체 도발, 대북정책 일관되고 정교해야

새 정부 출범 후 두 차례나 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북한이 어제 오후에는 무인기로 추정되는 비행체를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강원도 철원 상공으로 날려보냈다. 우리 군은 기관총으로 경고사격을 했다. 북한 비행체가 MDL 상공을 넘어온 것은 작년 1월 이후 처음이다.

새 정부를 시험이나 하듯 북한은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마치 인도적 지원 검토 등 ‘남북 관계 유연화’에 나서고 있는 우리 정부를 비웃는 듯하다. 새 정부의 대북 정책은 지난 9년간 보수 정부의 제재·압박 일변도 정책이 한반도 평화 정착과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에 한계를 드러냈다는 판단에 따라 햇볕정책의 발전적 계승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이 계속될 경우 대북 정책의 변화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은 남북 관계 복원의 마중물적 성격이 있다. 모든 대화 창구가 폐쇄된 상황에서 남북 민간 사이의 대화 채널을 복원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방향이다.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에 위배되지 않는 인도적 지원과 사회·문화적 교류를 재개하는 것은 인류애적 관점에서 결단의 문제로도 볼 수 있다. 유엔이나 국제 사회 역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강하게 규탄하고 있지만 식량과 분유, 의약품 등 인도적 지원은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남북 관계 개선 속도다.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지 않고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인도적 교류 이외의 남북 협력에는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최근 문정인 신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금강산 관광 재개와 5·24 조치 해제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원칙적인 방향 제시일 뿐이다. 통일부가 어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장기적 과제라고 밝힌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는 현 단계에서는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 틀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향하는 남북 관계의 변화는 필요하다. 다행스럽게 미국 트럼프 정권 역시 대화와 압박의 투트랙 전략으로 전환 중이다.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북한과 비핵화를 요구하는 한·미 간 입장 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우선 대화 공간을 넓힐 필요는 있다. 관계 개선은 필요하지만 급격한 대북 정책의 변화는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그동안 국론 분열의 뇌관이 됐던 대북 정책은 명확한 로드맵 속에서 정교하게 추진돼야 한다.



7. 盧 추도식서 '국민 대통령' 선언한 文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저의 꿈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추도식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며,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돼 임무를 마친 뒤 다시 찾아뵙겠다”고 다짐했다.



대통령이 되어 추도식에 참석하겠다는 그의 희망과 약속은 이뤄졌다. 그러나 어제 추도식은 문 대통령이 정치적 동지인 노 전 대통령에게 정권교체 성공을 신고하는 자리가 아니라 아름다운 이별식이자 새로운 대한민국의 가야 할 길을 천명하는 대국민 보고 자리였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지금까지 모두 세 차례 대국민 메시지를 공개했고, 그것을 관통하는 요체는 바로 ‘통합’이었다. 현재 국민의 80% 이상이 문 대통령이 국정을 잘 수행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좌파, 친문·친노 정권으로 낙인찍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우리 내부의 분열상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대한민국은 기약할 수 없으며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다. 보복으로 점철된 불행한 역사만 되풀이될 것이다.



문 대통령이 말한 대로 지금 문 대통령은 많은 국민의 칭찬과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정 농단 사태에서 촉발된 대립과 분열상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추도식이라는 상징적 자리를 통해 ‘국민 모두의 정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을 선언한 것은 통합의 길을 열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우리는 문 대통령의 통합 의지가 단순한 외침이나 정치적 수사에 끝날 것으로 보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한 말에 대해 강박관념을 가질 만큼 약속 이행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인물이다. 문 대통령이 간절히 원하는 것처럼 국민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는 것은 국민에게도 좋은 일이다. 해답은 멀리 있지 않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참여정부를 넘어 완전한 대한민국으로 가겠다”는 노무현 극복론이나 “김대중·노무현 정부뿐만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부 등 지난 20년을 성찰해 성공의 길로 가겠다”는 국민 통합 정부론에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은 정치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추도식 날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섰고, 다른 전직 대통령은 4대강 정책감사에 반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말한 대로 국민이 원하고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개혁이 돼야 하며, 그래야 우리 역사의 악순환 매듭이 끊길 것이다.



[조선일보]

8. '검찰은 악마'라는 경찰, 국민 눈엔 둘이 다르지 않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22일 기자 간담회에서 검찰 간부들의 '돈 봉투 만찬' 사건에 대해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 있는지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사실상 수사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경찰이 수사 지휘권을 가진 검찰 간부를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비치는 건 드문 일이다. 이 상황은 내부 비리가 계속 터지는데도 자정(自淨)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검찰이 자초한 것이다.



'공짜 주식으로 126억원 대박' '친구 사업가에게 뇌물 5000만원' 등 검사 비리는 전부 밖에서 문제가 돼 검찰이 할 수 없이 떠밀려 수사했다. 검찰에 대한 외부 견제 장치가 없는 탓이다. 앞으로 검사 비리까지 수사하는 공직자비리수사처가 신설되면 달라질 것이다. 그때까지 검찰 비리는 경찰이 검찰 지휘를 받지 않고 조사하게 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찰이 검찰을 '악마'로 몰면서 자신들은 '정의'인 듯 나서는 현상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를 담당하는 경찰 책임자는 "검찰은 정권의 충견(忠犬)이고 반칙과 특권의 상징이 돼 개혁 대상 1호가 됐다"고 했다. 그는 두 달 전엔 "검찰은 악마 같다"고도 했다.

새 정부는 검찰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겠다고 공약했다. 많은 국민은 검찰의 행태에도 분노하지만 경찰이 검찰 권력을 넘겨받는 것 역시 걱정하고 있다. 검찰이 대통령의 충견이 돼 부린 행패는 경찰이 수사권을 잡을 경우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다. 내부 비리는 경찰이 훨씬 더 심각하다. 하급직 비리는 말할 것도 없고 1991년 경찰청 출범 이래 경찰청장의 절반가량이 검찰 수사를 받고 법정에 섰다.

검찰은 개혁해야 한다. 그 핵심은 대통령과 검찰을 완전히 떼어놓아 검찰이 더 이상 '정치 수사'를 할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대통령이 검찰총장 인사권을 사실상 행사하지 못하게 하면 된다. 그리고 검찰 비리는 공수처로 견제해야 한다. 이를 넘어서 수사권을 검찰에서 경찰로 넘기는 것은 신중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고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매일신문]

9. 불법 어업의 진화, 어민 앞날 스스로 망치는 일이다

경북 동해안의 연근해 어획량이 2000년 14만3천466t에서 지난해는 11만9천658t으로 줄어드는 등 해마다 감소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 동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대게나 오징어, 가자미류 등이 그렇다. 어획량 감소에 따라 어장과 어자원 보호를 위해 불법 어업 행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면서 적발 건수가 2015년 76건에서 지난해 55건으로 줄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올해 현재까지 17건의 불법 어업이 단속될 정도로 근절은 되지 않고 있다.



경북 동해안의 어획량 감소 현상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이는 오랜 기간에 걸친 남획에 따른 어자원의 고갈에다 지구촌 차원으로 진행된 기후 이상으로 빚어진 바다 환경의 변화, 중국 어선의 싹쓸이 조업 등 다양한 원인이 작용한 결과이다. 인위적인 요인에다 자연적인 요소까지 겹친 어획량 감소가 아닐 수 없다. 인위적인 요인에는 어민들의 불법 어업 활동도 한몫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최근 들어 비록 감소 추세이긴 하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불법 어업 행위 적발 자료가 잘 말해준다.



그런데 최근 불법 어업 행위 단속에서 새로운 사례들이 적발됐다. 이달 17, 18일 영덕과 포항, 경주 앞바다에서의 불법 어업이 그렇다. 적발 어선들은 몰래 잡은 어린 대게와 암컷 대게를 통발 미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으로 잡은 대게를 유통하는 대신 통발 미끼로 활용, 단속을 피하려 했다. 암컷 대게나 어린 대게를 불법으로 잡은 만큼 유통할 경우, 대게 자원 보호를 위해 강화된 단속활동에 적발될 것을 우려해 바다에 돌려보내지 않고 대신 미끼로 쓰는 꼼수를 부렸다. 불법의 진화인 셈이다.



수산 당국은 오래전부터 어자원 보호를 위해 ‘잡은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정책을 바꿨다. 하지만 어자원 보호에 앞장서야 할 어민이 되레 불법 어업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열 명이 지켜도 도둑 하나 못 당한다’는 말처럼 어민이 나서지 않으면 불법은 막을 수 없다. 불법은 또 다른 불법을 낳고 부추긴다. 이는 어민 스스로의 앞날을 망치는 일이다. 불법 어업의 진화 같은 꼼수는 더욱 안 된다. 당국의 지속적인 단속과 함께 어민들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매일경제]

10. 알파고가 도약하는 동안 말만 요란했던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어제 중국 우전에서는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세계 바둑 최고수인 중국의 커제 9단이 세기의 대결을 벌였다.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 다섯 차례 대국에서 4승을 거두며 이름을 떨친 알파고가 이번엔 한층 진화한 수 싸움으로 커제를 압도했다. 이전에는 인간이 두었던 기보를 익히며 실력을 키웠지만 이제는 혼자 바둑을 두며 기발한 수를 두는 경지까지 올랐다니 인간 창의력을 뛰어넘는 AI가 등장할 날도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알파고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지 바둑을 잘 두어서가 아니다. 알파고의 근간이 된 머신러닝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기 때문이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가 이세돌과 대국이 끝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알파고는 바둑에 특화된 인공지능일 뿐이고 에너지와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범용성을 가진 AI 개발이 목표"라고 밝힌 것도 4차 산업혁명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그가 공언한 대로 알파고의 머신러닝 기술은 이미 구글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여러 산업에 적용돼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니 부러울 따름이다.

알파고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한국의 4차 산업혁명은 소리만 요란했지 눈에 띄는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산업연구원이 그제 발표한 '한국 제조업의 4차 산업혁명 대응 현황과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대응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4년 뒤떨어져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인공지능과 로봇 등 원천 기술이 부족한 점도 있지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규제와 제도 탓이 크다고 하니 산업 정책에서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은 4차 산업혁명 육성을 주요 국정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대통령 직속으로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해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을 확대하고 인공지능과 로봇,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등 혁신 기술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벤처기업 지원을 확대하고 창의적 인재 육성과 규제 완화를 천명했는데 말로만 그칠 게 아니라 실천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



특히 혁신 분야에 대해서는 꼭 필요한 것만 규제하고 나머지는 풀어주는 네거티브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 빠른 속도로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고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





주요신문칼럼



1. [중앙일보][노트북을 열며] 어느 영화 청년의 21년

해마다 이맘때 프랑스에서 열리는 칸영화제는 영화인이나 영화광에게는 꿈같은 잔치다. 전 세계 주목할 만한 예술영화를 한자리에 불러모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한껏 비추기 때문이다. 권위와 명성을 자랑하는 이 영화제도 시작은 미미했다. 칸은 본래 이름난 휴양지다. 그 비수기에 사람을 북적이게 할 생각으로 지역 상인들이 구상한 게 영화제였다. 초기 언론 보도를 보면 영화에 대한 비평보다는 어쩌다 칸에 온 할리우드 스타가 단연 뉴스였다.

그에 비하면 부산국제영화제의 출발은 뜨겁고 순수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몇몇 청년이 한국에서도 영화제란 걸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여러 영화인과 지자체와 기업이 힘을 더해 1996년 첫 번째 영화제가 열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요즘처럼 유명 스타가 대거 레드카펫에 선 것도 아닌데 전국에서 18만 명의 관객이 모였다. 이후 부산영화제의 역사는 90년대 중반부터 가시화된 한국 영화의 질적·양적 성장사에서 큰 장을 차지한다.

물론 늘 순탄하진 않았다. 초창기 영화제가 열린 낡은 극장에선 쥐가 나와 외국인 심사위원을 무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몇몇 청년’ 중 하나이자 출범 이래 줄곧 아시아 영화를 담당한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들려준 얘기다. 그를 인터뷰한 건 영화제가 어느덧 열 돌을 앞둔 2005년이었다.



프로그래머는 결코 화려한 일도, 여유 있는 일도 아니었지만 그는 부산예술대 교수도 그만두고 영화제에 전념하던 참이었다. 영화제 출범 이듬해 태어난 아들이 ‘아시아 프로그래머가 꿈’이라고 하더라는 말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요즘 말로 ‘성공한 덕후’, 즉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 부러운 경우였다.

한데 그로부터 약 10년 뒤 부산영화제는 전례 없이 혹독한 시련을 맞는다. 세월호 소재 다큐 ‘다이빙벨’ 상영을 두고 부산시와 겪은 갈등이 시차를 두고 부메랑이 되어 영화제를 흔들었다. 요 몇 해 동안 그를 직접 보진 못했지만 21년간 영화제를 지켜온 그가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보냈으리란 건 쉬운 짐작이다.

올가을 22회 영화제는 그 없이 열린다. 지난주 칸영화제 출장 중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여러 나라, 특히 아시아 각국 영화인이 애도의 말을 남겼다. 취재에 도움을 청할 때마다 그가 꼼꼼하게 들려준 아시아 각지의 영화 동향, 정치적 이유로 자국에서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감독에 대한 살뜰한 걱정을 되새기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는 영화에, 특히 아시아 영화에 성실했다.

프랑스 감독 트뤼포는 영화광의 3단계를 이렇게 꼽았다. 첫째는 좋아하는 영화를 거듭 보는 것, 둘째는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것, 셋째는 직접 영화를 만드는 것. 지난 18일 세상을 떠난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는 영화를 참 좋아했고 영화제를 만들었다. 어쩌면 이런 게 문화의 힘이다. 그 열정과 애정이 잊히지 않기를, 부산영화제가 성장통을 딛고 다시 아낌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2. [서울신문][씨줄날줄] 기계 신선(神仙)

공중파 방송의 한 주말 프로그램에서 로봇과 인간의 공존 모습을 보여 주는 개그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로봇 역할의 개그맨은 “나는 심장이 없어~”라며 주인이 시키는 일에 무조건 복종하는 기계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로봇은 번번이 자신을 구입한 주인을 골탕 먹이고, 놀리기까지 하며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개그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기계 인간 로봇이 인간만이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감정 표현까진 어렵겠지만 인간처럼 생각하고 스스로 학습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지능을 갖춘 로봇들은 이미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지난해 국내 바둑팬들과 전 세계인을 놀라게 한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는 이제 인간의 상대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해 있다. 바둑계의 어느 고수도 이제 알파고를 이길 수 없다고 한다.



바둑계에서 9단은 ‘입신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를 말한다. 그런 고수들이 알파고의 바둑 실력에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바둑계에서는 알파고의 수가 계산 차원을 넘어 예술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이세돌 9단과의 대결 때만 해도 알파고는 고수들이 둔 기보를 학습해 유사한 수를 찾아내는 정도였다고 한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자율 학습 능력으로 한층 실력을 업그레이드했다. 전설상 바둑의 발생지로 알려진 란커산(爛柯山)이 위치한 저장(浙江)성 자싱(嘉興)시에서 23일 알파고와 대국을 벌인 중국의 커제(柯潔) 9단은 “현재 알파고가 쓰는 수는 신선의 수”라고 인정했다. 기계 신선(神仙)이 탄생한 셈이다.

앞으로 알파고와 같은 기계 신선은 각 분야에서 수도 없이 나타날 게 뻔하다. 수년 내에 우리 곁에 다가와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할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경제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운전기사, 비서, 계산원, 은행원, 웨이터, 부동산 중개인 등이 기계 신선들로 대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특히 현재 시험 운용 단계에 있는 자율주행차가 10년 내에 당장 일상화될 경우 미국에서만 매월 2만 5000명, 연간 30만명의 운전기사가 기계 신선들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했다. 심지어 의사나 판사, 변호사가 하는 일도 기계 신선들이 맡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전망처럼 현재 인간들이 하는 웬만한 일들을 기계 신선들이 맡아 준다면, 우리 인간들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그때도 개그 프로그램처럼 로봇과 공존하며 신선놀음 같은 삶을 이어 갈지, 일자리를 빼앗긴 채 고통스럽게 살아갈지 궁금해진다.



3. [한국경제][천자칼럼] 맨체스터

영국 브리튼 섬은 BC 55년 카이사르의 침공 이후 약 450년간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켈트족을 막기 위한 하드리아누스 성벽, 안토니우스 성벽 등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도시명에 ‘체스터(chester)’가 많은 것도 로마의 영향이다. 개인 성곽, 작은 요새를 뜻하는 라틴어 ‘castellum’에서 유래했다. 성(城)을 뜻하는 영어 ‘캐슬(castle)’, 프랑스어 ‘샤토(chateau)’, 스페인어 ‘카스티요(castillo)’나 인도의 ‘카스트(caste)’도 어원이 같다. (쓰지하라 야스오, 《지명으로 알아보는 교실 밖 세계사》)

이름부터 로마 흔적이 뚜렷한 도시가 맨체스터(Manchester)다. AD 79년 건설된 로마 군사요새 겸 정착지인 ‘만쿠니움(Mancunium)’에서 비롯됐다. 중세부터 직물수공업이 발달한 맨체스터는 18세기 방적기, 직조기가 발명되자 산업혁명 중심지로 부상했다. 그래서 별칭이 ‘코트노폴리스(Cottonopolis)’, 즉 ‘면(綿)의 도시’다.

세계 최초의 산업도시답게 그늘도 컸다. 인구 폭증, 빈민, 열악한 노동환경 등 사회문제의 압축판이었다. 토크빌이 “가장 발전했으면서 가장 야만적 상태”라고 비판했을 정도다. 특히 엥겔스가 맨체스터의 공장을 경영하며 쓴 신문기사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1845)는 3년 뒤 마르크스와 함께 ‘공산당선언’을 발표하는 기폭제가 됐다. 만약 엥겔스가 다른 도시에서 살았다면 그들의 자본주의 분석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맨체스터와 리버풀은 철도(1830년)가 개통되면서 공업도시와 항구도시로 나란히 성장했다. 그러나 1893년 맨체스터 운하가 뚫리면서 리버풀 항구의 필요성이 감소했다. 20세기 들어 맨체스터는 발빠르게 상업·금융·교통 중심도시로 변신해 런던 버밍엄에 이은 3대 도시로 여전히 건재하다. 반면 리버풀은 배후 산업을 잃고 쇠락해 지금도 지역감정이 남다르다. 리버풀FC와 맨유가 격돌하는 축구경기(노스웨스트 더비)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리버풀은 비틀스, 맨체스터는 브릿팝의 거장 오아시스를 배출하기도 했다.

또한 맨체스터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며 19세기 곡물법 폐지에 앞장선 맨체스터학파로도 유명하다. 맨체스터대학은 2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냈다.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튜링이 이 대학 출신이다. 영국 대표 신문인 가디언, 고급자동차 롤스로이스도 맨체스터에서 시작했다.

22일(현지시간) 맨체스터의 공연장에서 폭탄테러로 20여 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전혀 방비없는 ‘소프트 타깃’을 노려 세계인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극단으로 치닫는 게 21세기의 뉴노멀인가.



4. [한겨례][유레카] 마누엘라 카르메나

독재정권에 맞선 인권 변호사,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 법률상담, 동료 변호사 5명을 극우세력의 테러로 잃은 아픔, 늦깎이 나이에 정치인으로 변신, 과감한 개혁과 피부에 와닿는 진보적 정책으로 사람들의 삶과 정치를 바꿔놓고 있는 사람.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마누엘라 카르메나(73) 시장 이야기다. 얼핏 문재인 대통령의 이력을 떠올린다.

카르메나는 마드리드 법원장과 스페인 사법부 최고기구 대변인을 지낸 여성 법조인 출신이다. 꼭 2년 전인 2015년 5월 지방선거에서 좌파연합 ‘아오라 마드리드’의 후보로 당선했다. 보수우파 거대정당인 국민당은 24년 만에 스페인 심장부에서 패배했다. 국민당은 1936년 쿠데타로 집권한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 독재정권에 뿌리가 닿는 현 집권당이다.



젊은 시절 카르메나는 프랑코 정권에 맞서 싸우다 투옥된 이들의 변론을 도맡았다. 독재가 무너진 뒤에는 ‘민주주의를 위한 판사들’ 모임의 창설에 참여했고, 약자들의 인권 보호와 공직사회의 부패 척결에 온 힘을 쏟았다.



시장 취임 뒤에도 특권과 권위를 내려놓고 낮은 걸음을 걷는다. 시장의 전통적 특권인 오페라 하우스와 투우장 무료 입장권을 거부하고, 부유층 전유물이던 시 소유 골프장을 대중에 개방했다. 관용차 대신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시민과 만난다. 공감과 정의감을 강조하면서도, ‘감정적 복수’와 폭력에는 반대한다.(<바꾸어라, 정치>, 푸른지식)

그는 지난해 <가디언> 인터뷰에서 신생 좌파정당의 승리 요인으로 두 가지를 들었다. 기성 정치권의 부패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 그리고 스페인 민주주의의 젊음이다. 그는 그러나 정치와 민주주의에 시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선 “(위정자들이)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개인적 인기나 대중의 일시적 감정만을 연료 삼은 정치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가장 깊은 지구의 구멍

미국 항공우주국(NASA) 무인탐사선 보이저 1호가 지구를 떠난 게 1977년 9월이었다. 우주선은 초속 70km 속도로 날아 2012년 8월 태양계 너머 성간 공간으로 진입했다. 지금쯤 보이저 1호는 지구에서 최소 44억km 이상 먼 우주의 어둠 속을 날고 있을 것이다.

7년 전인 1970년 5월 24일 구소련 서쪽 끝 콜라(Kola)반도의 페첸스키라는 곳에서 지구중심을 향한 굴착작업이 시작됐다. 우주(탄생)의 비밀을 먼 데서만 찾을 게 아니라 우주의 일부인 이 행성에서, 우리 발 밑에서 찾아보자는 취지였다.



당시로는 첨단 굴착장비였을 ‘우랄매쉬(Uralmash-4E, 나중에는 업그레이드 된 우랄매쉬-15000)’로 중심 시추공과 방사선 상의 직경 9인치(22.86cm) 구멍 몇 개를 동시에 파 들어갔다. 목표는 1만5,000m. 하지만 장비 고장과 드릴 비트 파손, 예상보다 높은 지열 등 난관에 부딪쳐 1992년 굴착이 중단됐고, 2005년 재정난으로 프로젝트가 백지화됐다.

그로써 1989년 도달한 1만2,262m 구멍(SG-3)이 육지에 존재하는 가장 깊은 구멍으로 남게 됐다. 2011년의 사할린 유정 시추공 깊이가 1만2,345m지만 그건 해양이었다. 서울 종로 피맛골 재개발 과정에서 발견된 조선시대의 유적은 지하 1.5~6m에서 드러났다. SG-3의 바닥은 약 25억년 전, 그 지구는 단세포 원핵생물이 주인이던 시생누대(Archean)의 땅이었다. 

이른바 딥-홀 프로젝트(Deep-Hole Project)를 처음 시작한 건 미국이었다. 1957년 멕시코 태평양 연안에서 벌인 ‘모홀(Mohole) 프로젝트’. 그건NASA의 스펙터클한 우주프로젝트에 밀려 자금난 끝에 1966년 중단됐다. 

지질학자들로선 그 중단이 무척 안타까운 일이었겠지만, 이른바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에서 화강암이 현무암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용융상태의 변성암으로 변이된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건 성과였다.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이란 대륙과 맨틀이 만나는 경계지점으로, 지진파 이동속도가 급속히 빨라지는 점에 착안해 1909년 지진학자 안드레이 모호로비치치가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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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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