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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주요 이슈

 

■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 오룡호 사고, 국가안전처의 대처?

■ 예산안 처리, 말말말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한국일보 사설-20141204목] 청와대 잘못된 대응이 '문건 진실게임' 부추겨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을 둘러싼 관련자들의 공방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언론 매체를 통해서 중구난방으로 터져 나오는 폭로성 주장들이 달라도 너무나 달라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왕조시대의 궁중암투나 다름없는 진흙탕 싸움에 국민들의 한탄과 분노도 높아만 가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 국정인들 제대로 굴러갈지 걱정이다.

 

검찰은 어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 근무 당시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문건 작성자로 알려진 박관천 경정이 근무하는 서울 도봉경찰서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며 수사를 본격화했다. 박 경정은 오늘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정상적이라면 당연히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통해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무엇이 진실인지가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정씨의 국정개입 등은 근거가 없다고 지레 일축하고, 해당 문서 유출을 국기문란으로 규정한 마당에 검찰 수사로 진실이 드러나겠느냐는 의구심이 국민들 사이에 팽배하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너무 안이하게 대응해 진실공방을 키우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측면이 없지 않다. 뒷북치기 해명과 말 바꾸기도 의혹을 키우고 있다. 정씨의 국정개입 여부와는 별개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과 이른바 문고리권력이라는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3인 사이에 인사문제 등을 둘러싸고 갈등이 심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진실게임의 한 축인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의 언론 인터뷰 내용에는 주요 인사가 공식라인과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뤄졌음을 뒷받침하는 대목이 여럿 나타나고 있다.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일축하기 어려운 정황이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문고리권력 3인방이 사실상 수석 위의 비서관 역할을 하고 있으며 3인방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는 말이 많았다고 한다. 권력 생리상 그들이 박 대통령 국회 입성 때부터 곁을 지켜온 측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런 말이 나오기 쉬운 게 우리의 정치풍토다. 결국 박 대통령은 청와대 안팎에서 측근 3인방을 둘러싼 갈등이 곪아터지도록 방치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적어도 이 점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개선하겠다는 자세와 의지를 보였어야 마땅하다.

 

박 대통령이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어떤 검찰수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국민들은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그 동안 수 차례 구설과 의혹에 휩싸인 정윤회씨의 행적이 분명하게 밝혀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문고리권력으로 불리는 3인도 월권 여부 등을 엄정하게 밝혀 응분의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을 둘러싼 논란을 말끔하게 정리하지 못하면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은 무기력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

 

 

[한겨레신문 사설-20141204목]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 동반 퇴진이 우선

 

검찰은 3일 ‘정윤회씨 국정개입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박아무개 경정이 근무하는 경찰서와 집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박 경정에게 피의자 신분으로 4일 오전 검찰에 출석할 것도 통보했다. 외견상 수사가 급물살을 타는 모습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예상대로 검찰 수사의 초점은 주로 ‘문건 유출’에 맞춰져 있는 듯하다. 수사 진행 과정을 더 지켜봐야겠지만 검찰이 과연 ‘비선 세력의 국정개입’이라는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파헤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더욱 커진다.

 

지금의 상황은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문제의 보고서를 사실상 ‘찌라시’로 규정했을 때와도 크게 바뀌었다. 우선 ‘청와대 비서관들과 연락이 끊겨 인간적으로 섭섭했다’(정윤회), ‘정씨를 10년 전쯤 보고 안 만났다’(이재만 총무비서관)는 따위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증언이 나오고서야 정씨는 말을 바꿔 4월 이 비서관과 통화한 사실을 시인했다.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청와대 파견 경찰 인사에 개입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박 대통령이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정해버린 상황에서는 검찰이 이런 모든 것을 속시원히 파헤칠 수 없는 형편이다.

 

사실 문건 유출만 해도 제대로 조사하려면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한 강도 높은 직접 조사가 필수적이다. 청와대는 이미 4월께 문서 유출 사실을 인지했고, 문제의 심각성이 김 실장에게도 보고됐다는 것이 조 전 비서관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그런데도 김 실장이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해온 경위를 외면하면 문건 유출 사건 수사는 핵심을 잃게 된다. 필요하면 문건이 작성된 장소인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압수수색도 해야 한다. 하지만 검찰은 고소인 조사 단계부터 3인방을 직접 조사하지도 못하고 이들이 보낸 법률대리인의 진술을 받는 데 그쳤다.

 

비선 세력의 국기문란 행위 조사는 더욱 첩첩산중이다. ‘4월 전화통화’ 사실을 뒤늦게 시인한 데서도 나타났듯이 이들이 감추고 있는 내용이 얼마나 더 있는지는 현단계에서 아무도 모른다. ‘경찰 인사 개입’의 구체적인 증언이 나오는 상황에서 ‘국정에 개입한 적이 없다’는 말도 신빙성이 크게 떨어진다. 조 전 비서관도 “문서의 신빙성은 6할 이상”이라고 말했지만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찌라시’를 만들어 윗선에 보고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도 지금의 수사는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전직 근무자들을 ‘범죄집단’으로 설정해놓고 시작하는 분위기다.

 

청와대가 정말 진상규명 의지가 있다면 우선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을 청와대에서 내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들이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한 속시원한 진상규명을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격이다. 그리고 검찰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아도 국민은 믿지 않을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20141204목] 왜 권력 암투로 국민이 피해를 봐야 하나

 

한국의 역대 정권은 청와대 권력과 비선 권력에 얽힌 비리와 갈등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사건마다 불거진 파열음은 국정 동력을 크게 훼손했다. 결국 정권은 물론 국민과 국가가 피해를 보았다.

 

 김영삼 정권 때는 대통령 아들이 최고 비선 실세였다. 그는 인사에 개입하고 이권을 챙기면서 국정을 농단했다. 한보그룹 비리를 둘러싸고는 ‘대표 가신(家臣)’ 홍인길 청와대 수석이 “나는 깃털”이라고 주장해 가신과 비선의 암투로 발전했다. 김대중 정권 때는 대통령의 세 아들이 비선이었다. 특히 둘째 아들은 청와대 비서관들과 깊이 연결돼 국정에 개입했다. 세 아들 중 2명이 감옥에 갔다.

 

 이명박 정권 때는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파동이 정권을 흔들었다. 대통령과 출신 지역이 같은 청와대 핵심 비서관이 사건과 깊이 엮였다. 사찰 대상이 됐던 여당 의원들이 폭로에 나서고 수사 과정에서 관련자들이 책임을 서로 미루면서 정권의 신뢰도는 추락했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은 여러 위험 요소가 엉켜 있다. ‘비선 소문’의 심리적 배경이 되는 대통령의 불투명, 정권 내내 계속된 인사 잡음, 대통령 측근 3인 비서관과 공직기강비서관의 갈등, 문건 유출이라는 1급 보안사고, 청와대 공식 보고서가 부실 투성이라는 의혹, 대통령의 동생이 사건에 개입돼 있다는 정황 등이다. 이런 요소들을 보면 이번 일이 전임 정권들이 겪었던 사태보다 훨씬 심각하다.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건 왜 이런 권력 갈등으로 국가와 국민이 피해를 봐야 하느냐는 것이다. 지금 이 나라는 대화와 대결의 갈림길에 선 남북한 관계의 돌파구 모색, 침체에 빠진 경제 살리기, 공무원 연금 개혁 같은 국가적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정의 중심을 잡고 야당까지를 포함한 정치권이 협력해도 헤쳐나가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제 집권 2년도 되지 않은 정부가 유령 같은 권력 암투라는 악재에 휩싸여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그리고 바르게 정리해야 한다. 검찰은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로 문건의 내용과 작성·보고·유출, 청와대의 조치 등을 둘러싼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사회는 차분히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 특히 정치권은 불필요한 정쟁을 배제하고 예산안 처리 이후 필요한 각종 입법조치에 매진해야 한다.

 

 검찰 수사와 별도로 박근혜 대통령은 소통이 부족한 국정 운영 스타일을 재점검하고 내부 기강을 단속해야 한다. 특히 측근 3인 비서관이 권력을 남용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가차없이 정리해야 할 것이다. 3인은 대통령의 정치인 시절부터 가까이에 있던 보좌진이다. 그런 만큼 대통령을 효율적으로 보좌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문고리’를 쥐고 있어 권력의 유혹에 노출될 위험도 크다. 역대 정권에서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이 터지곤 했다. 이를 관리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결국 이번 사태가 수습되고 국정 운영이 정상화되는 길은 대통령의 냉철한 상황 인식과 결단에 달려 있다.

 

 

[서울신문 사설-20141204목] 비선 논란 틈탄 무차별 의혹 제기도 삼가야

청와대 비선 권력 논란이 확산되면서 정윤회씨의 행적에 대한 추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어제 김진선 전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의 사퇴가 정씨와 관련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안민석 새정치연합 의원은 “지난 7월 갑작스레 이뤄진 김 전 위원장의 사퇴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씨의 암투와 무관하지 않다는 여러 근거가 있다”며 정씨와 청와대의 해명을 요구했다. 그는 그러나 구체적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야당의 의혹 제기와 별개로 어제 한 언론은 지난 4월 정씨와 대한승마협회 측이 벌인 승마 국가대표 선발 부정 논란을 끄집어내 당시 정씨가 문화체육관광부에 인사 압력을 행사했다는 승마협회 관계자들의 주장을 보도했다. 정씨의 딸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자 정씨 부부가 심판 부정 의혹을 제기했고, 뒤이어 승마협회 등에 대한 경찰 수사와 문체부 국·과장 교체 등이 이뤄진 것과 관련해 승마협회 관계자들이 “정씨 쪽에 저항한 사람들은 다 날아갔다”고 말한 내용을 보도한 것이다.

 

임기를 1년 3개월 남겨 둔 김 전 위원장의 돌연한 사퇴는 지금까지도 이런저런 의구심을 낳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그는 조직위의 새로운 리더십 필요성을 내세우며 외압설을 부인했으나 주변에선 내부 갈등과 올림픽 개최 준비 혼선, 문화체육관광부와의 갈등 등이 맞물리면서 청와대의 퇴진 압박에 따라 물러난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안 의원도 바로 이 같은 당시 정황에 근거를 두고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설령 김 전 위원장의 사퇴가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고 해도 그게 정씨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또 정부가 준정부기구인 조직위의 수장에게 내부 파행이나 실적 부진 등의 책임을 묻는 행위를 외압이라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암투설이나 외압 의혹을 거론하려면 구체적인 근거부터 제시했어야 마땅하다는 점에서 야당의 주장은 비선 논란을 확산시켜 여권을 궁지로 몰려는 정치 공세라는 비난을 자초할 소지가 충분하다. 정씨와 승마협회 측 공방도 이미 관련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사법적 판단을 지켜보는 게 마땅하다. 이해관계가 부닥치는 일방의 주장을 앞세워 의혹을 제기한다면 이 또한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청와대 비선 권력의 존재 여부는 마땅히 검찰의 철저한 수사로 명명백백하게 가려져야겠으나 이를 빌미로 한 무분별한 의혹 제기도 경계하고 삼가야 한다. 검찰 수사가 막 시작된 터에 마치 비선 권력의 실체가 다 드러난 양 단정 지으며 공세를 펴는 것도 국민이 보기엔 볼썽사나운 일이다.

 

 

 

■ 관련 칼럼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상언(중앙SUNDAY 차장)-20141204목] 비서는 참모일 뿐이다

영어 ‘시크리터리(secretary)’만큼 해당자들의 신분 차가 큰 경우도 드물다. 미국과 영국에서 이는 ‘장관(長官)’의 직책명이다. 또한 회사나 기관의 고위직을 보좌하는 ‘비서(<7955>書)’의 직업명이기도 하다. 프랑스어 ‘세크레테르(secr<00E9>taire)’도 마찬가지다. s를 대문자로 쓰고 그 뒤에 ‘국가의(d’Etat)’라는 표현이 있으면 장관, 아니면 통상의 비서다.

 

 두 갈래의 크게 다른 일이 동일한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는 이유는 원래 장관과 비서의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글을 읽고 쓰는 이가 드물던 시절에 문서 해독·작성 능력이 있는 이들이 국가의 사무를 맡기도 하고, 다양한 사람의 개인적 일을 돕기도 했던 데서 유래한 일이다. 문자로 기록하는 일을 맡는 ‘서기(書記)’가 소련이나 중국에서 공산당 고위직을 일컫는 용어로 쓰이고, 북한에서 노동당 간부가 ‘비서’라는 직함을 가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됐다.

 

 시크리터리의 어원은 라틴어 ‘세크레타리우스(secretarius)’다. 비밀을 다루는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정부 문서를 정리하거나 중요 인물의 일을 돕는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를 유포하지 않는다는 직업적 책무가 표현에 담겨 있다. 더 근원적인 어원은 라틴어 ‘세체르네레(secernere)’다. ‘분리된’ 또는 ‘구별된’이라는 뜻의 단어다. 책무와 자아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비서는 조력자 역할에 충실해야지 주인 행세를 하려 들면 안 된다는 원칙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만큼 비서는 그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에 빠지기 쉽다는 경고의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우리 역사에 권력 실세와 비서가 구별되지 않던 때가 있었다. 쿠데타로 단종을 몰아내고 집권한 세조는 가신 한명회·신숙주·구치관 등을 승정원으로 출근시켜 승지의 일까지 보도록 했다. 이에 따라 승정원이 최고 권력기관이 됐다. 승정원은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 승지는 비서관에 해당된다. 세조의 결정은 국가 최고 의결기관인 의정부의 기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세조는 가신과 공신들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뒤 승정원을 정상화시켰지만 그 이후 다른 왕의 시대에도 승정원으로의 과도한 권력 집중이나 승지의 권한 남용이 문제가 되곤 했다.

 

 청와대 비서관은 문자 그대로 비서다. 비서실장, 수석비서관, 비서관 모두 대통령의 참모일 뿐이다. 자신을 실권자라고 여긴다면 장관과 비서를 구별 못하는 정도의 착각이다.

 

 

■ 오룡호 사고, 국가안전처의 대처?

 

[한국일보 사설-20141204목] 오룡호 사고 대응에 국민안전처가 안 보인다

 

지난 1일 러시아 서베링해에서 발생한 사조산업 원양트롤어선 ‘501오룡호’의 침몰 사고는 국내 원양어업 사상 최대 참사로 기록되게 됐다. 승선원 60명 중 구조된 사람은 7명뿐이고 3일 현재 사망자는 12명, 나머지 41명은 실종 상태다. 선박의 노후화와 악천후 속 무리한 조업 등 총체적 안전불감증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가운데, ‘재난안전 컨트롤타워’를 표방한 신설 국민안전처의 부실한 대응에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사고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세계 3위의 원양어업 대국에 걸맞은 철저한 안전관리가 뒤따르지 못했다는 정황은 뚜렷하다. 1978년 스페인에서 건조해 사용되다 2010년 사조산업이 인수한 오룡호처럼 국내 원양어선은 대부분 낡은 배를 들여와 수리해 쓰는 실정이다. 전체 원양어선 342척 중 91%가 선령 21년 이상이고, 30년 넘은 배도 38%에 달한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여객선 선령 제한을 30년에서 25년으로 단축했지만 원양어선은 선령 제한이 없다. 초속 25m의 강풍에 파도가 5~6m에 달하는 악천후 속에서 어획쿼터를 채우려 무리하게 조업을 하다 사고를 당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사고 후 대응도 허점투성이다. 특히 국민안전처의 대처는 재난안전 컨트롤타워라는 간판을 무색하게 했다. 국민안전처의 역할은 산하 해양안전센터에서 오룡호의 조난 사실을 파악해 외교부를 통해 러시아에 구조 요청을 하는 데 그쳤다. 이 정도는 안전처에 흡수 통합된 옛 해경에서도 하던 일이다. 정부는 사고 인지 3시간 후에야 해양수산부에 사고대책본부를 꾸렸다가 다시 5시간이 지난 이날 밤 이를 외교부로 옮겼다.

 

국민안전처는 뒤늦게야 해외재난의 경우 외교부 장관이 중앙대책본부장을 맡도록 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랐다고 해명했다. 결국 이런 기본원칙조차 몰랐다는 사실을 자인한 꼴이다. 더구나 관련 부처간 업무 분장을 명확히 하고 조율하는 역할은 컨트롤타워의 몫인데도 국민안전처는 뒷짐을 진 모양새다. 실종자 가족들이 구조와 관련한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받지 못해 분통을 터뜨리는 상황도 세월호 참사 당시와 다를 게 없다.

 

정부는 적극적인 국제 공조를 통해 실종자 구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노후 원양어선 및 원양조업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해 재발 방지책도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출범 한 달도 못돼 부실이 드러난 국민안전처의 역할과 기능 재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도 누차 지적했지만, 재난관리체계 통합 방안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과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국민안전처는 관련 조직을 한데 모아 덩치만 키운 꼴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번 사고로 그런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방치한다면 국내외를 망라해 제2, 제3의 세월호, 오룡호 참사를 막을 수 없다.

 

 

[한겨레신문 사설-20141204목] ‘세월호 참사’의 판박이, 원양어선 침몰사고

 

한국인 11명 등 60명의 선원이 탄 사조산업 소속 원양어선 501오룡호가 1일 오후 러시아 인근 베링해에서 침몰해, 3일 현재 실종됐거나 숨진 이가 모두 53명에 이른다. 수색작업을 계속하고 있지만 사고 해역의 파도가 높고 수온도 낮아 매우 비관적인 상황이라고 한다. 이대로라면 한국 원양어업 사상 최악의 사고가 될 것 같다. 실종자와 사망자 가족의 안타까움과 비통함은 오죽하겠는가.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정황을 보면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잘못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해양수산부는 기상 악화로 배의 어창에 한꺼번에 많은 바닷물이 들이치면서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사조산업도 갑작스런 기상 악화를 탓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만은 아닌 듯하다. 당시 사고 해역은 4m 이상의 파도와 초속 20m 이상의 바람으로 조업 자체가 매우 위험했다. 부근에 있던 한국 어선 4척은 이미 해안 쪽으로 피항 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501오룡호만 조업을 했기에 불안정한 상태에서 배가 기울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종 선원 가족들은 본사에서 어획 쿼터가 추가로 내려오는 바람에 악천후 속에 무리하게 조업을 강행하다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선박의 노후화가 직간접 원인일 수도 있다. 501오룡호는 건조된 지 36년 된 배다. 배가 낡은 탓에 어창의 배수시설이 고장 났거나 배 밑바닥에 구멍과 균열이 생겨 물이 차올랐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결함이 사전에 점검됐는지 궁금하다. 501오룡호 말고도 국내 선사의 원양어선 가운데 30년 이상 된 배가 38.6%이고, 21년 이상인 배까지 합치면 91%라고 한다. 노후 선박의 사고를 막으려면 선령을 제한하거나 선령에 따른 점검을 강화하는 등의 대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나 501오룡호처럼 외국에서 낡은 배를 들여와 무리한 운항·조업을 강행해 수익을 챙기는 구조는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배에 이상이 발견된 뒤 침몰하기까지는 서너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런 ‘골든타임’에 제때 퇴선명령이 내려졌거나 매뉴얼대로 탈출을 준비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구조가 제때 시작됐는지, 정부가 구조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는지도 의문이다. 이런 점을 비롯해 사고 과정에서 어떤 잘못이 있었는지는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 이를 계기로 원양어선의 안전 실태도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언제까지 비슷한 잘못을 반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경향신문 사설-20141204목] 국민안전처, 컨트롤타워 역할 제대로 하고 있나

 

재난 안전 컨트롤타워인 국민안전처가 닻을 올린 지 2주가 지났다. 안전처는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딛고 태어난 조직이다. 정부의 무능·무사안일을 혁파하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국민적 염원이 담겨 있다. 구성원도 1만명을 웃돈다. 정부는 육·해상과 자연·사회 재해를 불문하고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갖췄다고 자랑했다. 안전처 출범과 함께 국민들은 “이젠 발 뻗고 잘 수 있을까”라고 기대를 해온 게 사실이다.

지난 1일 베링해에서 침몰한 사조산업의 명태잡이선 ‘501 오룡호’ 사고는 사망·실종자가 53명에 달하는 최악의 원양사고로 기록됐다. 이번 참사는 안전처 출범 후 처음 맞은 대형 재난이라는 점에서 정부 대응이 어느 때보다 주목받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실망스럽다. 재난 총괄부서인 안전처의 존재감은 찾아볼 수 없다. “해외 사고는 소관사항 밖”이라는 안전처 설명을 듣고 보면 컨트롤타워라는 의미 자체가 무색해진다.

이번 사고는 지리적 한계와 현지 기상여건 탓에 구조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해외 재난은 외교부가 사고대책본부를 맡는다는 규정도 있다. 그렇지만 정부 초동대응은 세월호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 안전처와 해수부·외교부가 주관 부서가 어딘지를 놓고 허둥댔다. 초기 해수부에 사고대책본부가 꾸려졌다가 사고 8시간이 지난 뒤에야 정부합동대책회의를 거쳐 외교부로 일원화됐다. 컨트롤타워 기능은 오간 데 없이 책임 소재를 따지다 시간을 허비한 꼴이다. 현지 수온이 0도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실종자 구조는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었다.

재난 발생 시에는 소관부서를 다투는 것 자체가 비극이다. 안전처가 출범한 것도 구조작업의 컨트롤타워 기능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런 국민적 기대는 공무원들의 무사안일한 관행 탓에 또다시 대정부 불신으로 바뀌었다. 더구나 초대 박인용 안전처장 내정자는 비위 의혹에 휘말려 인사청문회 통과마저 불투명한 상황이다. 연평도 포격 이틀 후 군 골프장을 이용한 사실이 들통난 데 이어 다운계약서와 위장전입, 이중 소득공제 의혹이 맞물리면서 점입가경이다. 이런 인물이 국민안전을 책임질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국회는 내년 안전예산을 14조원 이상 증액했다. 여야 모두 “더 이상의 억울한 죽음이 없어야 한다”는 다짐일 터다. 하지만 예산과 조직을 늘린다고 국민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번 사고로 여실히 드러났다. 어제 사고 선박인 오룡호 김계환 선장의 마지막 통화내용이 공개됐다. 그는 “이 배와 함께 끝까지 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세월호 이후 민은 달라졌지만 구태가 여전한 관의 실체를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 예산안 처리, 말말말

 

[중앙일보 사설-20141204목] 예산안 처리시한 지켰지만 부실심의는 문제다

 

국회가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인 2일 375조4000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을 확정해 통과시켰다. 국회가 예산안 처리시한을 지켜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을 의결한 것은 2002년 이후 무려 12년 만이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정부안이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된 게 기한 내 예산안 의결을 이끌어 내는 데 적지 않은 압력으로 작용했지만 어쨌든 볼썽사나운 몸싸움이나 날치기 없이 여야 합의로 예산안이 원만하게 처리된 것은 다행스럽다.

 

 국회가 수정 의결한 내년 예산 규모는 정부가 당초 제출한 예산안에서 3조6000억원을 삭감하고, 3조원을 증액해 전체로는 6000억원이 줄어든 것이다. 복지를 중시한 정부안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가업 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예산부수법안으로 상정된 상속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에도 불구하고 본회의에서 부결된 것은 아쉽다. 예산 심사 과정에서 여야 일부 실세 의원의 지역구에 배정된 이른바 쪽지 예산이나 민원성 예산이 과거보다 덜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근절되지 않은 점도 앞으로 개선해야 할 대목이다.

 

 무엇보다 법정시한에 쫓겨 예산 심의가 충분히 심도 있게 이뤄지지 못한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받고도 한 달이나 늦게 예산 심의를 시작한 데다 무상복지를 둘러싼 갈등으로 예산 심의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런 식이라면 국가 예산으로 집행되는 각종 사업의 타당성과 재원 조달 방안들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기 어렵다. 시간에 쫓기다 보면 국민의 세금을 한 푼이라도 아껴 쓰고, 보다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머리를 맞대기보다 정략적으로 예산사업을 주고받는 정치적 일괄타결로 처리될 수밖에 없다. 국민이 내는 혈세로 운영되는 나라 살림의 계획을 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국회의 책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탓이다.

 

 국회가 예산안 처리의 법정시한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년부터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심도 있는 예산 심의를 통해 국회의 본분을 다하기 바란다.

 

 

[서울신문 사설-20141204목] 국회 민생 살리기 현안 해 넘길 생각 말라

국회는 그제 새해 예산안을 처리한 데 이어 어제부터 민생 법안과 쟁점 현안을 심의하기 위해 상임위들을 가동했다. 그러나 여야가 당략을 앞세워 동상이몽의 ‘입법 전쟁’을 벌일 기미가 보여 사뭇 걱정스럽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공무원연금 개혁 등에 집중해야”, “사자방 국정감사 결론 없이 연말 못 보내”라는 등 서로 억양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야는 국민이 절실히 원하는 법안부터 처리하는 합리적 자세를 견지하기 바란다.

 

정기국회에 계류 중인 안건은 산더미다. 공무원연금·공기업·규제개혁 등 이른바 3대 개혁안은 물론 경제 활성화와 관피아 척결 등을 겨냥한 민생개혁 법안이 산적해 있다. 그런데도 상임위별 법안 심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형편이다. 세월호특별법에 합의하기까지 국회가 몇 달간 공전한 데다 한 달 이상 끈 예산 공방 탓이다. 9일 정기국회 개회일까지 남은 닷새 동안 수백 개의 법안을 심사해 처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응당 12월 임시국회를 열어 개혁법안 모두를 연내에 처리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임시국회를 열더라도 절충과 타협이란 대의정치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여든 야든 다수결 원칙에 따른 표결 대신에 법안의 합의 처리를 요구하는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를 잘 살려야 한다. 여야, 특히 야권은 그러지 못할 경우 국회법을 재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증폭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각종 개혁 입법과 민생 현안을 먼저 처리하는 등 입법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다수 국민과 눈높이를 맞춰야 할 이유다. 무엇보다 디플레 우려까지 제기되는 등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는 벌써 엄동설한임을 직시하기 바란다. 민생 안정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법안들을 최우선 심의하란 얘기다.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을 육성해 양극화 해소와 사회적 낙오자의 자활을 돕기 위해 여야가 경쟁적으로 내놓은 사회적경제기본법도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맥락에서 개혁 법안을 다른 쟁점 현안과 연계하는 구태를 되풀이해선 안 될 것이다. 새누리당이 공무원연금 개혁법의 연내 처리에 ‘올인’하는 경위는 십분 이해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연내 처리를 강조했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전현직 관료 집단이나 교사·군인 등 이해 당사자들의 거센 반발을 고려하면 각급 선거 캠페인 국면에 들어가기 전에 처리해야 할 시급한 과제임은 틀림없지 않은가. 그렇다 하더라도 여당이 이른바 ‘사자방’(4대강사업·자원외교·방위산업) 국정조사나 최근 불거진 ‘비선 의혹’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야당과의 빅딜에 매달리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사자방이든 비선 의혹이든 감사원 감사나 검찰 수사의 추이를 보며 필요할 때 하면 될 일이 아닌가. 공무원 표를 의식해 연금 개혁에 소극적으로 나오는 정당은 다수 국민의 지탄을 받게 해야 한다.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 및 이해충돌방지법) 처리에도 꼼수가 끼어들어선 안 될 것이다. 이 법의 적용 대상에 언론사 기자를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니 하는 얘기다. 법리상 맞느냐를 따지자는 게 아니라 정치권이 내키지 않는 김영란법 처리를 무산시키려는 방편이 아니어야 한다는 말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민생을 살리려면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 각종 개혁 입법들과 경제 활성화 법안들만큼은 반드시 연내에 매듭짓기를 당부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04목] 국가예산을 형님동생 하며 나눠 가져도 좋은 것인가

 

법정시한은 겨우 지켰지만 예산안 처리과정을 보면 구습은 여전하다. 그렇게 비판해도 쪽지예산은 그대로다. 예산심의라는 명분으로 국회를 대한민국 제일의 ‘슈퍼 특갑’으로 만든 관행도 공고해졌다. 국회의 예산심의권과 정부의 예산편성권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와 제도개선이 절실해졌다.

 

확정된 내년 예산은 375조4000억원, 정부안보다 6000억원 줄었다. 이 와중에 지역 SOC예산은 4000억원 증가했다. 힘깨나 쓴다는 지역구 출신 의원들이 슬쩍슬쩍 번갈아 끼워넣은 쪽지예산이다. 선수(選數)에 따라, 실세 입김에 따라 춤춰온 해묵은 예산전쟁은 올해도 여야가 따로 없다. 예결위원장인 홍문표 의원의 지역구 사업에 46억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김재원 의원의 지역구에 15억원이 증액됐다고 한다. 새정치연합 쪽에서도 원내대표 우윤근 의원과 문희상 비대위원장의 지역구에 각각 25억원, 13억7000만원 늘었다는 분석이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인 이정현 의원의 전남 지역구에는 정부안보다 200억원이 더 배정됐다는 말도 들린다. 사실 이런 비판조차 함부로 쓸 수 없다. 이들 의원에게는 “내가 욕을 먹으면서까지 이렇게 더 당겨왔노라”며 자랑삼을 증거가 될 뿐이다.

 

예산안 편성은 한정된 국가의 자원을 가치 원칙에 따라 배정하는 과정이다. 국방과 복지, 연구개발(R&D) 등 국정 전반에 걸쳐 철저하게 합리적이며 냉정한 배분이 필요하다. 한쪽에서 늘리면 다른 쪽을 조정해야 한다. 칼자루 잡았다고 장물을 나누듯 해치우면 국가 전체의 이익기준은 훼손되고 만다. 국가의 이익이 지역 이익에 종속될 수는 없다. 올해는 쪽지예산이 없을 것이라던 여야의 호언은 또 빈말이 됐다. 이때만큼은 여야가 누이 좋고 매부 좋게 한통속이 된다.

 

각 정당의 위계질서라는 것도 그렇다. 선수에 따라 소위 끗발이 정해지다 보니 정당의 분위기에 무슨 봉숭아학당 비슷한 느낌까지 풍긴다. 여기에 다시 실세 여부에 따라 나랏살림을 찢어 갖는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타락에 불과하다. 지역구를 봉토화하는 것과도 다를 바 없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41204목] 금융권 '비정상의 정상화' 가로막는 서금회 논란

 

우리은행 행장 선임을 둘러싸고 금융권이 시끄럽다. 우리은행 행장후보추천위원회(행추위)는 2일 차기 은행장 후보로 이광구 부행장 등 3명을 면접 대상자로 선정하고 5일 심층면접을 거쳐 이 가운데 한 사람을 9일 임시이사회에서 최종후보로 추천한다. 하지만 이런 정상적 절차가 진행되기도 전에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서금회’ 회원인 이 부행장이 은행장에 내정됐다는 소문이 보름 전부터 파다하다. 연임이 유력시되던 이순우 현 행장이 최근 돌연 연임 포기를 선언한 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윗선이)이 부행장을 찍어서 냈는데 행추위에서 후보가 안되면 난리가 나지 않겠나. 내가 연임되면 (버티다가 물러난)KB 임영록 전 회장처럼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금융권의 요직을 독식하던 ‘관(官)피아’ 시대가 저무는가 싶더니 그 자리에 청와대 등 정권의 힘을 등에 입은 민간출신 인사들이 득세하는 형국이다. 이를 신(新)관치로 표현하든, 정치금융으로 명명하든, 새로운 형태의 낙하산이고, 금융산업을 망치는 ‘비정상화’의 표본들이다. 얼마 전 민간기구인 은행연합회장 선출 사례도 다르지 않다. 후보추천을 위한 이사회가 열리기 전부터 하영구 전 한국씨티은행장에 대한 당국의 내정설이 파다하더니 실제 그가 회장에 선임됐다.

 

무엇보다 최근 논란의 핵심엔 현정부 들어 급부상한 서금회가 자리한다. 서금회는 박 대통령이 2007년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 서강대 출신 금융권 동문이 결성한 모임으로 회원이 3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올 초 서강대 출신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이 임명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최근 논란 끝에 선임된 홍성국 대우증권 사장, 정연대 코스콤 사장이 모두 서금회 출신이다. 정권 초반 임명된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서금회는 아니지만 역시 서강대 출신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KBㆍ우리ㆍ하나ㆍ산은금융지주 회장 자리를 휩쓴 고려대 출신 ‘4대 천왕’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가뜩이나 국내외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최고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경영자로 모셔와도 모자랄 판에 특정 학교나 특정 인맥 출신들이 정권에 줄을 대서 금융계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권력의 도움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외풍을 막고 금융경쟁력을 강화하리라 기대한다면 또 다른 ‘비정상화’가 불가피해질 것이다. 자산규모 270조원에 이르는 우리은행 행장을 뽑으면서 공식 선출기구를 당국의 거수기로 전락시켜서는 안 되는 이유다. 차기 우리은행장 선출 결과는 우리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박 대통령이 천명한 “비정상화의 정상화” 실행 여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한겨레신문 사설-20141204목] 담뱃값 인상 이유, ‘국민건강’ 아닌 ‘세수 증대’였네

 

정부·여당은 담뱃값 인상이 금연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서민 증세’가 아니냐는 지적에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세수 목적이 아니라 국민 건강을 고려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런데 2일 예산안 처리 때 담뱃값 2000원 인상은 통과됐지만, 정작 흡연의 유해성을 알리는 담뱃갑 경고 그림 의무화는 제외됐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행태다. 이에 동조한 야당도 무책임하긴 마찬가지다.

 

경고 그림은 담뱃값 인상과 함께 대표적인 금연정책 수단이다. 증세 논란의 여지도 없는 간편한 정책이다. 예산부수법안으로 다룰 성격이 아니어서 이번 예산안 처리 때 제외했다는 변명을 내놓고 있지만, 뻔한 눈속임이다. 숱한 논란을 감수하면서 담뱃값 인상을 밀어붙일 만큼 국민 건강을 염려한다면 예산 정국 이전에 경고 그림 의무화부터 도입할 수 있었다. 최소한 이번에 동시 처리할 수 있도록 사전 심의 절차를 완료해뒀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이미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을 비준해 2008년까지 경고 그림을 도입했어야 한다는 사실까지 더해 보면, 이번 누락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 담뱃값 인상의 목적은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서민들의 주머니를 터는 ‘서민 증세’였던 셈이다. ‘증세 없는 복지’가 거짓말임도 더욱 분명해졌다. 담뱃값 인상으로 더 거둬들이는 세금 2조8000억원(정부 추산)은 올해 예상되는 세수 부족분 10조원의 30%에 육박하는 규모다. 한국납세자연맹은 3일 ‘담뱃값 인상의 더러운 진실 10가지’라는 자료를 내어 “가난한 서민들도 모두 부담하는 간접세를 이렇게 파격적으로 올리는 것은 극히 부당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담뱃값은 손쉽게 올리면서 경고 그림은 한사코 도입하지 않는 걸 지켜보면서 담배회사의 로비 때문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정부·여당은 처음부터 속내를 털어놓고 이해를 구했어야 한다. 선량한 보호자 행세를 하며 뒤통수를 치니 국민의 마음이 더 불편한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21041204목] 통합시청률은 '제2의 미생' 텃밭이다

 

비정규직, 저학력자 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 ‘미생’이 장안의 화제다. 주인공 ‘장그래’의 고군분투기에 많은 시청자가 공감하면서 ‘국민 드라마’가 됐다. 어디 가도 ‘미생’ 내용이 한 번쯤 언급될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정작 시청률을 보면 갸우뚱해진다. 최근(지난달 28일) 방송분의 평균 시청률은 6.3%대였다. 회를 거듭할 때마다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음에도 아직 6%대다. 시청 방식은 변했는데 시청률 측정 방식은 옛날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내년부터 통합시청률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통합시청률 방식은 TV ‘본방’ 시청률에 스마트폰·PC·태블릿PC 시청을 더해 시청률을 정하는 것이다. 기존의 시청률은 주로 전국 4000여 가구의 안방 TV를 대상으로 집계해 왔다. 직장인이 많이 이용하는 VOD(다시보기) 시청은 빼고 본방만 측정했다. 그러다 보니 기존 시청률에는 장시간 안방 TV를 보는 노년층이 과다하게 잡혔다. ‘미생’같이 직장인이 좋아하는 드라마는 평균 시청률이 5%만 넘어서도 ‘대박’이라고 할 정도로 시청률과 실제 영향력은 일치하지 않았다.

 

 국민 10명 중 3명은 TV가 아닌 다른 스크린을 통해 방송을 보고 있다.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이 세계에서 손꼽히고, 특히 스마트폰 보급 비율이 단연 1위인 나라에서 기존 시청률 집계 방식은 현실을 반영하기 어렵다. 이런 괴리는 콘텐트 생산자의 창작의지를 감퇴시키고 광고시장의 왜곡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일부 선진국은 시청률에 PC와 태블릿PC의 시청률을 합산 중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구상처럼 스마트폰 시청까지 합산해 발표하는 나라는 아직 한 곳도 없다. ‘스마트형’ 통합시청률 집계 방식이 순조롭게 정착된다면 선진국에 우리 방식을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무엇보다 통합시청률은 제2의 미생을 만들어 내는 텃밭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경향신문 사설-20141204목] ‘사랑의 트리’가 ‘분쟁·갈등의 트리’ 돼서야

 

보수 성향의 기독교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서부전선 최전방인 경기 김포시 애기봉 전망대에 성탄 트리를 다시 세워 불을 밝히기로 했다고 한다. 국방부는 그제 성탄절 전후로 애기봉에 임시 성탄 트리를 설치하고 점등 행사를 열겠다는 한기총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발표했다. 한기총은 오는 23일 신도 200여명이 모여 애기봉 트리 점등식을 연 뒤 2주간 불을 밝힐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기총의 애기봉 트리 점등이 북한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대단히 우려스럽다. 북한은 그동안 애기봉 성탄 트리 점등에 대해 “대북 심리 모략전”이라며 포격 위협까지 가하는 등 반발해 왔다. 이번에도 상당한 비난과 함께 군사적 위협을 가할 게 불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국방부가 트리 점등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애기봉 점등은 2004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로 중단됐다가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재개됐다. 그런데 지난 10월 해병대가 안전성 등을 이유로 노후된 등탑을 철거한 뒤 일부에서 대북 저자세 논란이 일었다. 이때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적절치 못한 조치였다며 군을 질책했다고 한다. 국방부가 남북 간 긴장 조성을 예상하면서도 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기총 역시 대통령의 진노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성명서를 발표하고 철거된 기존 등탑의 3배인 54m 높이의 전망대를 설치하겠다고 나섰다. 이번 성탄 트리 설치도 앞으로 이곳에 전망대를 설치하고 트리 점등 행사를 계속하겠다는 의미다. 애기봉 트리 점등은 기독교계 내에서도 찬반이 엇갈린다. 특히 지역 주민들은 북한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한기총이 등탑 점등을 강행하는 것은 순수한 종교활동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행동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렇듯 트리 점등은 대북 전단 살포에 이어 또다시 불필요하게 남북 간 긴장만 조성할 공산이 크다. 한기총은 “성탄 트리가 남북한에 ‘복음의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탄생을 기뻐하는 성탄절에 주민을 불안에 떨게 하는 트리가 진정한 성탄 트리의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성탄 트리가 남북한 ‘분쟁과 갈등의 트리’가 돼서는 안된다. 기독교계에서도 북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애기봉 성탄 트리는 답이 아니다.

 

 

[경향신문 사설-20141204목] 법관윤리강령 위반이 헌법 위반보다 큰 잘못인가

 

법관징계위원회가 어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1심 판결을 공개 비판한 김동진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에게 정직 2개월의 중징계를 결정했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 9월 법원 내부게시판에 ‘법치주의는 죽었다’라는 글을 올리고 원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무죄 선고를 비판한 바 있다. 징계위는 김 부장판사가 ‘품위유지 의무’와 ‘구체적 사건에 관한 공개 논평 금지’를 명시한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우리는 사법부가 형식논리에 치우쳐 사안의 본질을 외면하지 않았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김 부장판사는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대선기간 중 정치에는 관여했지만 선거에는 개입하지 않았다’는 서울중앙지법 판결을 ‘궤변’이라 못 박았다. 국민의 상식과 순리에 어긋나는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함)’의 판결이라고도 했다. 이 같은 지적이 징계 사유에 해당하는지는 별론으로 하자. 먼저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원 고위층에 묻고 싶은 것들이 있다. 왜 부장판사까지 오른 중견 법관이 불이익을 무릅쓰고 이런 주장을 폈는지 생각해보았는가. 법리 측면에서든 법감정 측면에서든 김 부장판사의 지적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보는가.

 

대법원은 법관윤리강령이 실재하는 이상 징계조치는 불가피했다고 할 것이다. 이 같은 입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최소한 형평성의 문제는 남는다. 2009년 신영철 대법관이 일선 판사들의 ‘촛불 재판’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 대법원은 경고조치에 그쳤다.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부장판사가 법관윤리강령을 어겼다면, 신 대법관은 헌법을 어긴 것이다. 그럼에도 신 대법관은 징계 한 번 받지 않고 내년 1월 무사히 임기를 마치게 된다. ‘막말 판사’와 비교해봐도 마찬가지다. 법정에서 증인에게 “늙으면 죽어야 해요”라고 막말을 한 유모 전 부장판사는 정직이나 감봉보다 가벼운 견책 처분을 받았을 뿐이다. 김 부장판사의 글이 증인 모독보다 비난받을 일인가.

법원 판결은 존중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성역이 될 수는 없다. 시대 변화에 맞춰 법원 내부에도 토론문화가 보장돼야 한다. 우리는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이후 사법부의 보수화 경향에 대한 우려를 여러 차례 표명한 바 있다. 사법부가 상식과 정의로부터 멀어지고 권력의 편에 가까이 갈수록 시민의 불신은 커질 것이다. 사법부의 자기성찰을 촉구한다.

 

 

[서울신문 사설-20141204목] 서울시향 대표의 황당한 막말과 성희롱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어처구니없는 일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들의 주장에 따르면 박현정 대표는 지난해 취임 이후 직원들에 대한 일상적인 폭언과 욕설, 성희롱 등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공개 채용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지인의 자녀나 제자를 채용하는 등 인사 전횡을 일삼았다고 한다. 박 대표가 직원들에게 했다는 말은 그야말로 사복개천이 따로 없다. 추잡하기 짝이 없다. “술집 마담 하면 잘할 것 같다”, “네가 애교가 많아서 늙수그레한 노인네들한테 한번 보내 볼려구”, “내가 재수때기가 없어 이런 X 같은 회사에 들어왔지”…. 술을 마시고 남성 직원의 신체 주요 부위 접촉을 시도하는 이상한 짓을 저질렀다는 주장도 나왔다.

 

서울시 공무원 행동강령 지방공무원 징계 기준에 따르면 직권을 남용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성희롱을 하는 등의 비위는 성실의무,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다. 즉각 파면을 당한다 해도 할 말이 궁할 수밖에 없다. 감사원이 사실관계를 가리기 위해 서울시향에 대한 감사에 착수한 만큼 우선 진위부터 명백히 밝혀야 할 것이다. 본인의 소명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그가 더이상 서울시향 대표 자리에 머물 수 없음은 자명하다. 박 대표가 취임한 이후 지금까지 사무국 직원 27명 가운데 48%인 13명이 퇴사했고 일부 직원은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하니 이를 우연으로 봐야 하나, 필연으로 봐야 하나. 상위기관인 서울시는 산하기관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박 대표 자신은 이번 사태로 개인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정작 명예가 손상되고 상처를 크게 입은 쪽은 인성 자체가 의심스러운 인물을 예술 관련 공공기관의 장으로 둔 국민이다. 애초 금융계 출신인 그에게 서울시향 대표 자리를 맡긴 것은 자신의 경력을 예술경영에 접목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도록 하겠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하다. 혹시 번지르르한 스펙에 현혹돼 영입한 것이라면 박원순 시장 또한 도덕적인 책임을 비켜 가기 어렵다고 본다. 서울시향 대표직을 그만두는 선에서 어물쩍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최근 서울대가 성추행 교수의 사표를 수리하고 의원면직 처리해 해임·파면 등에 따른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하려 했다는 ‘오해’를 자초한 일을 참고하기 바란다. 막말이나 성희롱 등 인격의 그루터기까지 파괴하는 저질 행태에 대해서는 결코 관용이 있을 수 없다. 형벌의 엄정함을 보여 줘야 마땅하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04목] 국제 금융시장에 울려퍼지는 유가급락 경고음

 

국제유가 급락세가 이어지면서 이에 따른 각종 부작용과 시장혼란도 발생하고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이 1주일 만에 10% 넘게, 그리고 6개월간 38%나 떨어져 배럴당 60달러대 중반으로 추락하는 등 유가가 단기 급락하자 이에 따른 후폭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우선 글로벌 채권시장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경 보도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후 유가가 오르자 에너지 관련 업체들이 앞다퉈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최근 유가가 하락하면서 채권가격이 급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719조원에 달하는, 에너지 관련업체가 발행한 정크본드들이 문제다. 정크본드의 평균 금리는 올초 연 5.6%에서 지난달 말 연 7.3%로 급등(가격 하락)했다. JP모간은 “유가가 배럴당 65달러 밑에서 3년 이상 지속되면 정크본드의 40%가 디폴트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정크본드 시장에 유동성 문제가 생길 경우 글로벌 자금시장 전체에 급속히 위험회피 현상을 불러올 수 있다.

 

러시아를 비롯해 산유국 통화 및 주식 채권 시장도 상태가 심각하다. 루블화 가치는 지난 1일 하루에만 6.5% 떨어지는 등 1998년 이후 최저수준이다. 2018년 만기 러시아 국채 수익률은 연초 연 7%에서 최근 10%대로 치솟았다. 브라질 헤알, 호주 달러, 노르웨이 크로네 등 주요 원자재 생산국 통화가치 역시 5년래 최저 수준이고 중동 증시는 폭락세다.

 

유가 약세는 디플레이션 압력을 높여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인상 시기도 늦출 수 있다. 미국 제조업 부활을 이끌고 있는 셰일업계에도 지나친 유가하락은 달갑지 않다. 달러 강세와 겹치면 자칫 미국 경제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과거에는 ‘고유가=독(毒), 저유가=약(藥)’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지만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당장 휘발유 값이 당 1500원대에 진입하는 등 기름값이 싸지니 좋긴하다. 하지만 정유 화학업종의 손실확대가 우려되고 건설업계의 중동 수주 감소 등 업종별 지역별 편차는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다. 유가하락의 득실과 파장을 꼼꼼히 따져 대비해야 한다. 글로벌 경제에 또 하나의 시한폭탄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04목] 결과적으로 대학개혁 막고나선 교원소청심사委

 

연구실적 부진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징계처분을 받은 중앙대 교수에 대해 정부가 ‘징계 취소’ 결정을 내려 논란이 무성하다.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지난달 회의를 열고 중앙대가 지난 8월, 5년 연속 논문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A교수에게 내린 ‘정직 1개월’의 징계 처분이 부당하다며 ‘취소’ 판결을 내렸다(한경 12월3일자 A33면)는 것이다. 교수사회의 혁신을 위한 진일보라고 평가받았던 이 인사조치를 교육부 소속기관이 제동을 건 셈이니 도대체 무슨 일인가.

 

알고 보면 징계 취소 결정을 내린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자체에 문제가 있다. 1991년 5월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에 의해 교육부 산하기관으로 설립된 이 위원회는 목적 자체가 교원의 신분보장과 권익보호다. 구체적으로는 교원의 징계와 기타 불리한 처분에 대한 소청 그리고 교육공무원의 고충에 대해 심사한다. 이러다 보니 학교에서 징계 등의 처분을 받은 대부분 교원들이 이 단체에 기대어 징계를 무력화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5년 사이만 해도 징계 감경률이 40%에 달했다고 한다.

 

교수직 보장을 미끼로 금품을 요구한 교수도, 제자를 성추행해 파면당한 교수도, 제자 상습폭행으로 세간에 화제가 된 교수도 일단 이 위원회로 달려갔다. 그뿐만 아니다. 수업시간에 음란동영상을 틀었던 교사도, 불륜 행위로 징계를 당한 교사도, 또 학생을 ‘분이 풀리도록 때렸던’ 폭행 교사도, 카지노를 상시 출입했던 선생님도 무조건 소청심사청구나 이의신청을 내고 본다.

 

이런 식이니 중앙대 징계 과정에서 소급적용이 문제였다며 A교수의 편을 들어준 결정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중앙대가 바로 행정심판을 청구키로 한 것도 교육계의 이런 관행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교사들이 과보호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그리고 교권이란 교육할 권리이지 교사가 누릴 특권은 아니다. 더구나 대학교수의 문제다. 보호받을 지위에 있지 않은 신분이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대체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되는 것인가.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04목] 수공, 퇴직자에 선심 쓸 돈 있으면 14조 빚부터 갚아라

정부가 공공기관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고질적인 방만경영은 개선될 기미가 없다. 감사원이 3일 공개한 한국수자원공사·도로공사의 경영관리실태 보고서는 공기업 부실경영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수공은 퇴직직원 모임에 매년 3,000만원씩을 특별회비 명목으로 지원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근거 없이 퇴직자 모임을 돕기 위해 3억2,000만원의 혈세를 낭비한 것이다.

 

부채가 급격히 늘기 시작한 2009년 이후에도 1억원 가까이 이 모임에 지원했다. 수공은 지난해 기준으로 빚이 14조원에 달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빚 갚기는커녕 최근 5년간 공사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19개 기관에 협력비 명목으로 2억8,000만원을 퍼주기도 했다. 2012년부터 236억원을 들여 추진 중인 충남 부여, 전남 나주 일대 친수구역 조성사업은 사업타당성 조사가 잘못된 것으로 밝혀지기까지 했다. 관광객 수를 중복 계산해 수요를 부풀리고 기준보다 분양·대금수납 기간을 짧게 적용해 사업성을 과대평가했다는 것이다. 재검토 결과 이들 사업은 실제로 사업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손실발생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가 우려된다고 하니 부채감축에 대한 의지가 있기나 한지 의아할 따름이다.

 

주먹구구식 경영은 도공도 마찬가지다. 경쟁입찰 대신 수의계약을 통해 49개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업체로 2개사를 선정한 뒤 이들에게 사실상 특혜를 제공해왔다. 이로 인한 도공의 이자손실액만도 2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무책임한 경영이 반복되는 지경인데 '제2창업 수준의 혁신' 다짐을 누가 믿겠는가. 등 떠밀려 만든 경영개선계획으로 생색을 내면서 수도요금이나 도로통행료 인상 타령만 해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그건 사업 구조조정, 원가절감을 비롯한 피나는 자구노력을 실시한 후에나 할 수 있는 주장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04목] 온실가스 감축 목표 신기후체제 맞춰 재조정해야

한국·중국 등이 2020년부터 온실가스 의무감축 대상국에 편입되는 '유엔 신(新)기후체제'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12일까지 페루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20차 당사국총회에서 선진국은 물론 개발도상국도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동참시키는 신체제 합의 초안이 도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유럽연합(EU) 등에 비해 소극적이던 미국과 중국이 최근 정상회담에서 감축계획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 주효했다.

 

어떤 형태로든 이번에 초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우리 경제와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교토의정서 체제는 선진국들만 의무감축 대상인데다 미국의 불참, 일본·러시아·캐나다 등의 탈퇴로 힘을 잃었다.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자체적으로 알아서 하면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의무감축국이 되면 감축량과 감축방법 등을 둘러싼 국제사회, 특히 선진국들의 압력과 검증 공세가 강화될 게 뻔하다. 배출허용량, 즉 배출권을 둘러싼 정부와 업계 간 갈등도 치열해질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신기후체제가 우리 경제와 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는 게 급선무다. 국제사회에 우리의 실력 이상으로 뭔가 보여주려는 과시욕을 자제하는 것도 중요하다. 녹색 드라이브를 건 이명박 정부는 개도국 최고 권고 수준인 온실가스배출전망치(BAU) 대비 30% 감축목표를 정하고 국제사회에 이행을 약속했다. 결국 내년부터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됨에 따라 기업 부담이 크게 늘어나게 됐다. 정부가 1일 525개 제조업체에 배출권 할당량을 통보하자 부담이 큰 발전·철강·석유화학 업계에서는 배출권 할당량이 실제 필요량보다 턱없이 부족해 생산량을 줄여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발생할 정도다. 정부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감축계획을 현실성 있게 재검토해야 한다. 신체제에 대비해 2020년 이후 BAU 전망 작업을 한다니 2015~2020년 BAU도 함께 재조정해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04목] "성장률 높이려면 수출보다 내수 주도로 가야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내수중심국의 경제 성장률이 우리나라와 같은 수출주도국들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전, 내수성장'이라는 보고서에서 "수출중심국이 고성장하고 내수중심국이 저성장한다"는 기존 공식이 깨졌다는 내용의 분석자료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1970년 이후 수출중심국의 성장률이 연평균 3.5%로 내수중심국(3.1%)보다 지속적으로 높았으나 금융위기 이후에는 내수중심국(3.4%)이 수출중심국(2.6%)을 추월해 역전했다.

 

수출 비중과 성장률 사이의 상관관계가 이렇게 뒤집어진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수출에 적극 나서면서 교역환경이 크게 악화된 측면과 수출경쟁력 우위 확보를 겨냥한 통화약세 경쟁이 배경으로 꼽힌다. 제 살 깎아먹기식의 당연한 결과로 글로벌 교역 증가율은 금융위기 이후 평균 2.6%로 줄었으며 2013~2014년에는 1% 안팎에 머물렀다.

 

만성적 저성장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경제에 이 보고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전자·철강·화학·조선 등 주요 수출기업들의 실적악화가 현실화하면서 우리 경제로서는 신성장동력 확보가 절박한 만큼 기존의 경제운용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게다가 수출주도 경제는 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른 변동성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내수시장 확대다. 아시아개발은행(ADB)도 최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내수주도 경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내수기반 확대를 위해서는 결국 서비스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의료·교육·관광 등 서비스 산업은 '고용 없는 성장'의 덫을 벗어날 탈출구이기도 하다. 이 부문의 규제만 제대로 풀어도 2020년까지 9조6,000억원의 부가가치, 9만7,000개의 신규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 탈출을 위한 해법은 이미 제시돼 있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유레카/이경(논설위원)-21041204목] 석유수출국기구

 

국제 유가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 2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내년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 원유는 하루 전보다 2.12달러 내린 배럴당 66.88달러에, 영국 런던 선물시장의 브렌트유는 2.00달러 떨어진 70.5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가 11월27일 기존의 원유 생산량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뒤 유가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회원국 사이 이견으로 감산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해 빚어지는 현상이다.

 

석유수출국기구의 영향력이 예전만은 못한 것 같다. 미국의 셰일 원유 생산 등으로 더 그렇다. 석유수출국기구의 전성시대는 아무래도 1970년대라고 할 수 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때 이 기구는 미국을 비롯한 일부 서방 국가들의 이스라엘 지지에 항의해 석유 수출 중단을 선언했다. 감산과 함께 이뤄진 이 조처로 유가는 배럴당 3달러 선에서 12달러 선으로 치솟았다. ‘오일쇼크’(석유파동)가 빚어진 것이다. 그 여파는 엄청나게 커, 여러 나라가 불황과 고물가(=스태그플레이션)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2차대전 이후의 ‘자본주의 황금기’가 막을 내린 것이다. 케인스 경제학이 밀리고 밀턴 프리드먼을 필두로 한 시카고학파가 세를 얻기 시작하는 계기도 됐다. 석유수출국기구는 1970년대 후반 2차 오일쇼크를 통해서도 큰 힘을 발휘했다.

 

현재 12개국이 활동 중인 석유수출국기구는 1960년 석유 메이저들의 ‘횡포’에 맞서 출범했다. 당시 과잉생산 징후가 보이자 국제 석유시장을 지배하던 엑손, 모빌, 걸프 등은 일방적으로 원유 공시가격을 내렸다. 산유국들은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모임을 만들어 생산량과 가격 결정에서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이들 회원국은 세계 원유 매장량의 81%를 보유하고 있으며, 회원국 안의 비중은 베네수엘라(24.7%)가 가장 많고 다음이 사우디아라비아(22.0%) 등의 차례다.(기구 누리집)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상언(중앙SUNDAY 차장)-20141204목] 비서는 참모일 뿐이다

영어 ‘시크리터리(secretary)’만큼 해당자들의 신분 차가 큰 경우도 드물다. 미국과 영국에서 이는 ‘장관(長官)’의 직책명이다. 또한 회사나 기관의 고위직을 보좌하는 ‘비서(<7955>書)’의 직업명이기도 하다. 프랑스어 ‘세크레테르(secr<00E9>taire)’도 마찬가지다. s를 대문자로 쓰고 그 뒤에 ‘국가의(d’Etat)’라는 표현이 있으면 장관, 아니면 통상의 비서다.

 

 두 갈래의 크게 다른 일이 동일한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는 이유는 원래 장관과 비서의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글을 읽고 쓰는 이가 드물던 시절에 문서 해독·작성 능력이 있는 이들이 국가의 사무를 맡기도 하고, 다양한 사람의 개인적 일을 돕기도 했던 데서 유래한 일이다. 문자로 기록하는 일을 맡는 ‘서기(書記)’가 소련이나 중국에서 공산당 고위직을 일컫는 용어로 쓰이고, 북한에서 노동당 간부가 ‘비서’라는 직함을 가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됐다.

 

 시크리터리의 어원은 라틴어 ‘세크레타리우스(secretarius)’다. 비밀을 다루는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정부 문서를 정리하거나 중요 인물의 일을 돕는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를 유포하지 않는다는 직업적 책무가 표현에 담겨 있다. 더 근원적인 어원은 라틴어 ‘세체르네레(secernere)’다. ‘분리된’ 또는 ‘구별된’이라는 뜻의 단어다. 책무와 자아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비서는 조력자 역할에 충실해야지 주인 행세를 하려 들면 안 된다는 원칙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만큼 비서는 그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에 빠지기 쉽다는 경고의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우리 역사에 권력 실세와 비서가 구별되지 않던 때가 있었다. 쿠데타로 단종을 몰아내고 집권한 세조는 가신 한명회·신숙주·구치관 등을 승정원으로 출근시켜 승지의 일까지 보도록 했다. 이에 따라 승정원이 최고 권력기관이 됐다. 승정원은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 승지는 비서관에 해당된다. 세조의 결정은 국가 최고 의결기관인 의정부의 기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세조는 가신과 공신들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뒤 승정원을 정상화시켰지만 그 이후 다른 왕의 시대에도 승정원으로의 과도한 권력 집중이나 승지의 권한 남용이 문제가 되곤 했다.

 

 청와대 비서관은 문자 그대로 비서다. 비서실장, 수석비서관, 비서관 모두 대통령의 참모일 뿐이다. 자신을 실권자라고 여긴다면 장관과 비서를 구별 못하는 정도의 착각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이대근(논설위원)-21041204목] 동명이인 불가

 

아직도 귀빈장, 희싸롱이 많다. 귀빈장은 여관, 희싸롱은 작부가 있는 술집 이름이다. 고유명사지만 보통명사 대접을 받는다. 고급 호텔이 귀빈장, 우아한 카페가 희싸롱이란 이름을 쓴다면 귀빈장, 희싸롱은 그 고유한 이미지를 잃을 것이다. 이렇게 처음 보는 장소라도 이름을 알면 이미 형성된 이미지를 통해 그 장소의 쓰임새를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이름에는 정보가 담겨있다. 동명이인이 많은 것도 이미 축적된 좋은 이미지의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명을 떨친 사람과 동명이 되는 우연은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이 경우 자기 이름을 자기가 지을 수 없는 운명을 탓하며 법적 절차를 통해 개명하는 수밖에 없다.

개명효과를 내는 다른 방법으로는 필명, 예명이 있다. 가령 마리온 마이클 모리스, 노르마 진이라는 이름은 별로다. 그러나 그가 존 웨인, 마릴린 먼로는 다르다. 두 사람이 계속 마리온, 노르마였다면 그 이름만큼 평범한 인생이었을지도 모른다. 존 웨인에게는 듀크라는 다른 이름도 있었다. 어릴 때 애완견 이름을 따 스스로 별명을 가진 것이다. 보통 친지들은 그를 듀크라고 불렀다. 얼마 전 존 웨인 후손이 버번 위스키 듀크를 팔다 듀크대학교와 상표권 분쟁을 벌인 적이 있다. 그때 존 웨인 후손은 듀크라는 이름이 듀크대의 전유물이냐고 반발했다.

 

듀크는 전유물이 아닐 수 있지만,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은 전유물이다. 북한 주민은 두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 동명이인의 조선족들은 그 이름으로 방북할 수도 없다. 그 동명이인 불가 명단에 하나가 추가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1년 주민에게 김정은이란 이름을 고치도록 했다는 것이다. 김정은 개명은 북한에서 강제적이지만 남한에서는 자발적이다. 그러나 여배우 김정은은 아직 바꾸지 않고 있다. 혹시 방북할 때 그 이름 그대로 갈 수 있을지.

 

그런데 동명이인이 신경쓸 일일까. 단 한 사람에게라도 사랑받는 이름이면 족한 것 아닌가.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김소월의 시 ‘초혼’처럼 죽을 때 절절하게 이름 불러줄 단 한 사람을 이 세상에 남겨 놓을 수 있다면 족하지 않을까.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오춘호(논설위원)-20141204목] 종교인 과세

 

종교개혁가 장 칼뱅이 처음 펴낸 책은 ‘세네카 관용론 주석’이었다. 그는 네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의 철학을 깊이 흠모하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종교 체제를 연구했다. 세네카는 스토아 학파의 대표적 철학자다. 현세주의적이며 합리적 인식을 중시했던 세네카는 종교에 대해서도 다양한 관점에서 비판했다. 세네카는 “종교는 일반 대중에게는 진실로 여겨지고 현자들에겐 거짓으로 여겨지며 정치가들에게는 유용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말까지 했다.

 

칼뱅이 세속인이 돈을 버는 것을 정당화한 것은 이런 세네카의 영향이 크다. 칼뱅은 돈은 기본적으로 중립적이므로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신자들이 돈을 많이 벌어 부자로 살면서, 가난한 이웃과 나누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후세 사가(史家)들이 칼뱅주의를 기독교의 세례를 받아 새롭게 탄생한 스토아주의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칼뱅은 무엇보다 세속 정부에 세금을 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성직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켜주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당시로서는 혁명적 발상이었다. 이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사상적 기반이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칼뱅의 철학은 프랑스대혁명의 사상적 뿌리가 되기도 했다. 프랑스대혁명에 참여한 시민 중 칼뱅주의자는 30%였다. 이들이 만든 국민의회는 ‘성직자공민헌장’을 제정해 교회의 토지를 몰수하고 교회 재산에 대한 세제 혜택을 폐지했다. 대신 성직자에게 보수를 주어 국가가 생계를 책임지게 하는 정책을 폈다. 국가와 교회의 대립이 가장 치열한 시기였다. 1801년 나폴레옹과 교황 피우스 7세가 정교분리를 골자로 하는 종교협약에 합의하면서 논란은 마무리됐다. 이웃 독일은 1826년부터 교회세를 걷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이 대통령령인 소득세법시행령을 통해 종교인에게 과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보도다. 지난해부터 종교인 소득 과세를 추진해왔으나 국회 논의과정에서 유야무야된 상황이다. 천주교는 1994년부터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고 있고 불교도 과세를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일부 개신교 교단이 종교 영역은 경제 영역과 다르기 때문에 특수성을 인정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1968년부터 46년이나 종교인 과세는 논란을 불러왔다. OECD 국가 중 종교인이 소득세를 내지 않는 유일한 국가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 개신교 교단은 대부분 칼뱅의 정신을 이어받았다. 지금 칼뱅이 살아 있다면 뭐라고 얘기할까.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문성진(논설위원)-21041204목] 호킹의 예언

 

50년 넘도록 루게릭병을 앓아온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소통방식 개선에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힘쓰고 있다. 미국 인텔은 호킹 박사의 문자입력 속도를 2배 높일 수 있는 신형 커뮤니케이션 솔루션 시연에 성공했다고 3일 발표했다. 앞서 영국의 스위프트키는 호킹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공지능 음성합성장치를 제공했다. 새 음성장치를 써본 호킹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007영화'에 악당으로 출연하고 싶다며 농담을 했다. 그러나 "생각하는 로봇 개발을 위한 완전한 인공지능의 등장은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우울한 예언도 호킹은 잊지 않았다.

 

호킹과 비슷한 예언을 한 이들이 적지 않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 물리학자 프랭크 윌첵, 컴퓨터 과학자 스튜어트 러셀 등은 최근 공동 기고문에서 "인공지능 개발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 될 것이고, 그것은 불행하게도 최후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반면 미국의 IT 사업가 찰리 오티즈는 "지능이 높아질수록 더 선하고 평화적으로 된다"면서 인공지능 로봇의 심성을 옹호했다.

 

영화에 비친 로봇의 모습도 선과 악으로 엇갈린다. '에이 아이'에서의 꼬마 로봇 데이비드는 2,000년을 넘도록 엄마의 정을 잊지 않는 숭고함이 빛나고 '바이센테니얼맨'에 등장하는 로봇 앤드루는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지고지순한 순정파다. 반면 '아이, 로봇'에 나오는 로봇들은 스스로 진화한 결과 인간의 주인이 되고 싶어 반란을 일으키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컴퓨터가 자기방어를 위해 인간을 해친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의 언행은 묘하다. 그는 "인공지능에 특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잠재적으로 핵무기보다 더 위험하다" "5년 혹은 최대 10년 안에 중대한 위험을 줄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하는 한편 올 3월에는 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 등과 공동으로 인공지능 회사에 4,000만달러를 투자했다. 로봇이 인류에 종말을 가져올지를 따지기에 앞서 인간 스스로 선과 악의 '야누스 얼굴'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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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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