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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고위 공직자 가족 재산 공개 거부

■ 천암함, 5주년

■ 하나금융 CEO 연봉 인상 구설수

■ 경기 부양의 몇몇 방법들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고위 공직자 가족 재산 공개 거부

 

[한겨레신문 사설-20150327금] 힘 있는 공직자일수록 거부하는 ‘가족 재산공개’

 

국회의원과 장관, 청와대 수석비서관, 대검찰청 고위간부, 국세청 고위공무원…. 이들의 공통점은 공직자 가운데서도 이른바 ‘힘 있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국회와 행정부 등 5개 공직자윤리위원회가 26일 공개한 고위공직자 2300여명의 재산신고 현황을 보면, 공통점이 또 하나 발견된다. 부모나 자녀 등 직계 존·비속의 재산 공개를 거부한 비율이 다른 기관 공직자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이런 추세라면 공직자 가족의 재산공개 제도는 갈수록 사문화할 수밖에 없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재산공개 대상자인 행정부 고위공직자 1825명 가운데 26.9%인 491명이 부모 또는 자녀의 재산 공개를 거부했다. 4명 중 한 명이 넘는다. 기관별로 보면, 국세청은 공개 대상자 4명 중 3명(75%)이 직계 존·비속의 재산 공개를 거부했고 대검찰청 고위간부 35명 중 절반이 넘는 20명(57.1%)이 일부 가족의 재산 공개를 거부했다. 장관은 16명 가운데 7명(43.8%)이, 대통령실은 대상자 50명 가운데 18명(36%)이 역시 일부 직계 존·비속의 재산 공개를 거부했다고 한다. 국회에서도 사무처 고위직의 거부 비율은 19.4%인 데 비해, 국회의원의 거부 비율은 37.3%에 이른다.

 

물론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직계 존·비속이 독립적으로 생계를 유지하면 재산 고지를 거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독립 생활을 하는 공직자 가족의 인권과 프라이버시를 고려한 처사다. 하지만 가족 간에 위장 증여나 편법 상속 등의 사례가 적지 않은 우리 현실에서 이 조항은 재산을 숨기거나 축소 신고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여지가 매우 크다. 특히 공직자 중에서도 직급이 높고 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가족의 재산 공개를 거부한다면, 이 제도의 취지는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1993년 김영삼 정부 때 처음 도입한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는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직사회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 게 사실이다. 그런 관점에서 공직자 가족의 재산신고 조항 역시 재산 은닉이나 축소 신고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도록 고쳐야 한다. 권력기관의 핵심 고위공직자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막으려면, 일정 직급 이상 공직자의 직계 존·비속에 대해선 재산 신고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그래야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가 국민 신뢰를 계속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20150327금] 직계 존비속 고지 거부하면 재산공개 하나마나 아닌가

 

고위 공직자 1825명이 지난해 재산을 공개했다. 평균 재산이 12억9200만원으로 1년 전보다 1400만원 늘어났다. 땅값 상승과 급여 저축 등으로 66%(1212명)가 재산을 불렸기 때문이다. 1억원 이상 재산이 늘어난 공직자도 20.6%(377명)였다. 고위 공직자들이 일반 국민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같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위 공직자라고 재산이 늘어난 걸 무턱대고 의혹의 눈길로 바라봐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직계 존비속 재산 고지를 거부한 고위 공직자가 491명(26.9%)에 달한 점은 재산 공개의 근본 취지를 위협하는 큰 문제다. 이 비율은 지난해 27.0%와 큰 차이가 없고 2011년 26.0%, 2012년 26.6%보다 높다. 정부가 신고를 거부할 수 있는 ‘분리 거주 기간’을 신고일 이전 6개월에서 1년 이상으로 늘렸음에도 거부율이 줄지 않고 있어 심각성이 더하다. 국회의원(37.3%)과 법원 고위 공직자(46%)의 거부율이 유독 높은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공직자 가족 보호 차원에서 독립 생계나 타인 부양 등의 경우 직계 존비속의 재산 비공개를 허용하고 있다. 법 논리상으로는 틀린 게 아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고위 공직자가 저지른 비리 사건에 직계 존비속이 연루된 경우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가 부정한 돈을 직계 존비속에게 명의신탁하거나 변칙 증여한 뒤 고지를 거부하면 밝혀낼 길이 없다. 특정 기업의 주식을 자식 이름으로 보유한 공직자가 이를 숨긴 채 해당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 있어도 막을 길이 없다면 제대로 된 나라인가.

 

  고위 공직자들은 직계 존비속의 재산까지 합산하면 자신의 재산 규모가 부당하게 부풀려진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국민이 관심을 갖는 건 액수가 아니다. 공직자가 부모·자식의 재산까지 낱낱이 밝혀야 할 이유는 본인의 재산 형성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는지, 보유한 자산으로 이해충돌이 발생할 우려는 없는지 국민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정 직급 이상은 직계 존비속의 재산 공개를 의무화해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327금] 공직자 가족재산 ‘고지 거부’ 손봐야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어제 고위공직자 2302명의 정기재산변동 신고 내용을 공개했다. 공개 대상 고위공직자의 평균 재산은 15억3400만원에 10명 중 7명꼴로 재산을 불린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침체에도 이들 고위공직자가 늘린 재산이 평균 2억원에 달한 데 대해 서민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클 수밖에 없다.

 

단순히 재산이 늘고 줄고의 문제를 떠나, 공직자 재산 공개 제도의 실효성을 허무는 직계 가족의 ‘고지(告知) 거부’는 반드시 짚고 가야 한다. 매년 공직자 재산 공개 때마다 문제점과 보완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유야무야되면서 올해에도 어김없이 심각한 행태가 재연되었기 때문이다. 재산 공개 대상 고위공직자 중 부모나 자식 등 직계 존비속 재산을 신고하지 않은 ‘고지 거부’ 비율이 26.9%에 달했다. 4명 중 1명꼴로 가족 재산 고지를 거부한 셈이다. 게다가 직계 존비속의 재산 공개를 거부하는 비율은 힘 있는 기관과 공직자일수록 높다. 국회의원은 37.3%가 부모나 자식의 재산을 신고하지 않았고, 법원 고위공직자는 그 비율이 46%에 달한다. 장관과 청와대 비서관들의 고지 거부 비율도 평균보다 높다. 권력과 지위가 높은 공직자들이 이렇게 ‘고지 거부’를 남발할 경우 재산 공개 제도 자체가 형해화되기 십상이다.

 

공직자는 재산 변동 내용을 신고할 때 본인뿐 아니라 직계 존비속의 재산을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독립 생계를 유지하는 가족의 경우, 공직자윤리위원회 허가를 받아 재산 고지를 거부할 수는 있다. 공직자 가족이라고 해도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있다면 사생활을 침해해선 안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다. 하지만 그 취지를 인정하더라도, 위장양도나 편법상속 등 공직자의 재산은닉 수단으로 ‘고지 거부제’가 이용될 소지가 크다. 가령 공직자가 재산을 부모나 자녀에게 명의신탁하거나 변칙증여한 뒤 고지를 거부하면 실체를 규명해낼 도리가 없다.

 

가족 재산 고지거부제가 공직자의 성실한 재산신고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가족 재산을 공개한 공직자들이 외려 불이익을 받는 현행 제도는 불공정하다. 직계 존비속의 재산 고지 거부를 아예 못하도록 하거나, 최소한 일정 직급 이상 공직자는 가족 재산 공개를 의무화해야 한다. 공직사회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공직자 재산 공개 제도가 부실한 ‘고지거부제’ 같은 구멍 때문에 단순 통과의례로 전락하게 놔둬서는 안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327금]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고지거부 개선책 찾아야

 

지난 한해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들은 10명 가운데 7명꼴로 재산을 불렸다. 26일 발표된 고위공직자 정기 재산변동 신고 내용에 따르면 국회의원·법관·고위공무원 등 2,302명 중 69%인 1,583명의 재산이 늘었고 평균 재산도 15억3,400만원으로 전년의 13억2,000만원에 비해 2억원 이상 증가했다. 공직자 재산증식 상태는 3%대의 낮은 경제 성장률에 견줘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물론 불경기 속 고위공직자의 재산증식을 곱지 않게 보는 시각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단지 고위공직자라는 이유로 비난할 수는 없다. 시장경제라면 누구든 자신의 재산을 합당한 방법으로 공정하게 운용해 늘릴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 재산증식 결과가 대부분 토지와 아파트 등 부동산 가격 상승에 기인했다는 점이다. 특히 국회의원 292명 가운데 81.8%인 239명이나 재산이 늘어났다. 의원들이 자신의 이익에 경도된 입법활동을 일삼지는 않았겠지만 논란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민생이 피폐한 가운데 국회의원 절대다수의 재산이 늘어난 것을 선뜻 수긍할 국민이 얼마나 있겠는가. 박근혜 정부의 장관급 인사 27명의 평균 재산이 18억1,000만원에 1년 전 대비 2억2,000만원이나 늘어난 것도 민망한 부분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도한 부동산 부양정책의 수혜를 장관들이 받았다고 꼬집어도 할 말이 군색해지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상습적인 재산고지 거부다. 이번에도 고지 거부율이 26.9%나 됐다. 심지어 국회의원은 무려 37.3%나 공개를 거부했다. 드러난 재산만으로도 위화감이 커지는 판에 숨겨진 부분이 이토록 크다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나. 불투명 정도가 이 지경이라면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는 있으나 마나다. 일정 직급 이상은 직계 존비속의 재산공개를 의무화하는 등의 제도개선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국회는 스스로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의 정상화를 위한 법 개정작업에 즉각 나서라.

 

 

 

■ 천암함, 5주년

 

[한국일보 사설-20150327금] 새정치연합 1년, 변화 긍정적이나 책임감 더 보여야

 

천안함 사건 5주년인 어제는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1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지난해 6ㆍ4 지방선거를 불과 2개월여 앞두고 민주당과 안철수신당 추진세력이 손잡고 통합야당을 출범시킨 지 어느덧 1년이다. 그 동안 새정치연합은 창당 두 주역인 김한길ㆍ안철수 공동대표가 6ㆍ4지방선거의 사실상 패배에 이어 7ㆍ30 재보궐선거 참패로 취임 4개월 만에 도중하차 하는 등 극심한 혼란과 부침을 겪었다. 국정의 한 축인 제1 야당의 지리멸렬한 모습에 국민들의 실망과 우려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좀 다르다. 2ㆍ8 전당대회 후 문재인 대표체제 아래 비교적 안정을 찾고 존재감을 높여가고 있다. 당 지지도도 30% 안팎으로 회복하면서 여당인 새누리당을 추격하는 형세이고, 문 대표는 차기 대권주자군 가운데 20%대의 높은 지지율로 10주째 1위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여당을 견제ㆍ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할 임무를 갖는 제1 야당이 무기력증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새정치연합의 변화는 반대를 위한 반대나 편협한 운동권 의식에 머물러서는 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반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연말 새해예산의 법정기한 내 통과와 핵심 쟁점법안 합의처리 등은 본회의장 난장판을 불사했던 과거와는 다르다. 문 대표가 공약대로 탕평 당직인사를 실천하고 당내 강경파에 휘둘리지 않는 것도 당의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유능한 경제정당ㆍ안보정당을 내걸고 중도층을 포함한 지지기반 넓히기에 적극적인 것 역시 긍정적인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이 구태를 완전히 벗고 수권정당으로 거듭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중산층과 서민의 지갑을 두둑하게 해 성장을 이끈다는 소득주도형 성장론이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정책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창당 날짜를 천안함사건 발생일로 잡을 정도로 무신경했던 당이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 등은 진일보다. 하지만 여당과 보수세력의 종북공세에서 벗어나려는 제스처 수준을 넘어서야만 국민들이 진정성을 인정할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안 늦장 제시 등 그간 주요 현안에 취했던 무책임한 태도 탓에 더욱 그렇다.

 

또 지금은 숨죽이고 있지만 당내 강경파 세력이 언제 목소리를 높이고 나설지 모르고, 통합야당 창당의 한 축이었던 안철수의원의 존재감과 역할이 미미한 것도 잠재적인 불안요인이다. 정동영 천정배 전 의원 탈당 등에 의한 야권분열도 큰 부담이다. 당장 4ㆍ26재보선 승패가 걸렸다. 하지만 눈앞의 득실에 연연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지속적인 변화의 길을 갈 때 비로소 국민들의 마음을 얻게 될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20150327금] 한국사 교과서, 왜 천안함 폭침을 빼먹는가

 

5년 전 천안함 폭침은 북한의 군사 도발 측면에서나 남북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대 사건이다. 북한의 기습 도발로 우리 해군 장병 46명이 희생됐다. 합동조사단에는 외국 전문가도 참가해 북한의 어뢰 공격이 침몰 원인이라고 밝혔고, 국제사회는 북한의 만행을 규탄했다. 사건의 여파는 이명박 정부를 넘어 박근혜 정부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해부터 일선 고교에서 사용 중인 한국사 교과서 8종 가운데 천안함 피격 사건을 기술한 것은 교학사·지학사·두산동아 출판사의 3종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한선교 의원(새누리당)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상교육 출판사를 비롯한 4종은 남북관계 경색을 기술하면서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만 언급하고 천안함 사건은 생략했다. 연평도 포격 사건은 천안함 사건의 연장선상에 있는 만큼 남북 경색국면의 모체가 되는 부분을 뺀 셈이 됐다. 금성출판사 교과서는 당시의 남북 갈등에 대해 ‘서해안에서 양측 간 군사적 충돌이 연이어 발생하면서’라고 기술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은 물론 도발 주체도 명시하지 않았다.

 

  이런 교과서로 배우는 학생들이 어떻게 천안함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겠는가. 교과서가 이러면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둘러싼 일각의 좌초설 등 각종 음모설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청소년들의 건전한 안보관도 함양될 수 없다. 교과서에서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을 기술하는 것과 북한의 도발에 관한 기초적 사실을 적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천안함 사건을 빼먹은 교과서가 진보 성향 단체 소속 인사들이 대거 제작에 참여해서 생긴 일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치적 편향성을 가진 인사들을 배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교육부도 문제다. 2011년 마련한 ‘북한의 도발 등으로 남북 간의 갈등이 반복되었으나…’로 된 집필 기준이 너무 모호하다. 보다 명확한 집필 기준을 내놓아야 한다. 천안함 사건의 교훈은 정확한 이해에서 나온다.

 

 

■ 하나금융 CEO 연봉 인상 구설수

 

[한국일보 사설-20150327금] 불황에 난데없는 금융사 CEO 연봉인상 움직임

 

금융지주사들이 연봉 수십 억 원에 달하는 최고경영자(CEO) 보수한도를 또 다시 대폭 인상하려고 나서 물의를 빚고 있다. 현재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 회장들의 연봉은 현금 및 보너스, 성과연동 주식보상 등을 합쳐 줄잡아 30억 원 내외다. 그런데 하나금융은 이번 주총에 이사 성과주식보상 한도를 기존 5만주에서 7만주로 2만주(현 시가환산 약 5억7,000만원) 올리는 안건을 상정했다. 신한금융 역시 현행 30억 원인 이사 보수한도를 45억 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온 나라가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터에 해도 너무 한다는 비난이 들끓고 있다.

 

해당 금융사들도 설명이 없지는 않다. 하나금융은 “하나ㆍ외환은행 통합을 앞두고 조직개편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한도를 늘려 잡은 것”이라고 했다. 신한금융은 “임기 5년차를 맞은 현 회장이 올해 장기성과급을 일시금으로 받을 예정이어서 한도를 높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은행 이익이 사상 최저치로 떨어지고, 대부분 금융사들이 인력감축을 추진 중인 현실에서 이사회가 그런 안건을 상정한 것 자체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금융권 내에서조차 “사외이사를 포함한 이사들이 감시와 견제는커녕 여전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의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개탄하고 있다.

 

금융사들로서는 민간기업 이사보수를 사정에 맞춰 조정하는 게 무슨 문제냐고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국내 금융사들은 수시로 막대한 부실을 국민 혈세로 충당하며 성장해온 엄연한 공공재이기도 하다. 더욱이 지금은 가뜩이나 심각한 소득양극화 해결이 사회적 과제로 떠오른 상황이다. 정규직 임금과 근로조건 악화를 감수하고서라도 비정규직의 소득과 처우를 개선키 위한 노사정 대타협을 추진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오죽하면 경총에서 어제 “6,000만원 이상 근로자 임금을 5년간 동결하여 청년고용 확대에 나서자”는 얘기까지 나왔겠는가.

 

차제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CEO 연봉의 적정성도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없지 않다. 1990년대 이후 시장주의가 득세하면서 국내에서도 CEO 연봉이 100억 원을 넘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됐다. 금융지주 CEO들이 받는 30억 원만 해도 지난해 전체 근로자 평균연봉 약 3,800만원의 79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생산력의 개인차를 감안해도 납득하기 쉽지 않은 격차다. 스위스에서는 2013년 CEO의 연봉을 해당 기업 최저임금의 12배 이내로 제한하자는 국민투표까지 실시됐을 정도로 국내외에서 소득양극화에 대한 반감이 쌓여가는 상황이다. 끝없는 욕심에 앞서 경제계 지도자 입장에서 사회 전체를 배려하는 양식이 아쉽다.

 

 

[서울신문 사설-20150327금] 직원은 내쫓고 회장 연봉은 올리는 금융지주사

 

30억원 정도나 되는 연봉을 받는 금융지주사 최고경영자(CEO)들의 모럴해저드가 도를 넘어섰다. 수익이 나빠지자 직원들은 희망퇴직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사실상 길거리로 쫓아내면서 자신의 연봉은 올리고 있다. 고통 분담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 듯 내 뱃속만 챙기면 된다는 발상이나 다름없다. 이런 후안무치(厚顔無恥)도 없다. 주요 금융사의 CEO들은 고액 연봉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지난해 연봉을 깎았다. 하지만 올 주총 시즌을 맞아 ‘억지’로 내렸던 연봉을 1년 만에 슬그머니 경쟁하듯 다시 올리고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2013년 기본급 9억원과 성과연동주식 17억 4000만원 등 26억 4000만원을 받았다. 하는 일에 비해 연봉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나오자 30%를 반납했다. 오늘 정기 주총을 개최하는 하나금융은 이사의 ‘성과연동 주식 보상’ 한도를 5만주에서 7만주로 늘리는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성과연동 주식 보상은 3년간 경영성과를 평가해 경영진에게 주식으로 주는 제도다. 한도를 높이면 전체 연봉도 높아진다. 하나금융은 지난해 주총에서 7만주에서 5만주로 줄였던 성과연동 주식 보상 한도를 다시 7만주로 원상복귀하겠다는 것이다.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은 2013년에 기본급·상여금 14억원과 성과연동주식 14억 2000만원을 합해 28억 2000만원을 받았다. 신한금융은 60억원이었던 이사보수 한도를 지난해 30억원으로 삭감했다가 그제 열린 주총에서 45억원으로 올렸다. ‘여론’의 눈치를 보며 지난해 삭감한 것을 1년 만에 올린 것이다. 일부 금융지주사의 이러한 행태는 국민과 고객들을 우롱하는 짓이다.

 

국내 금융사 CEO의 연봉은 지나치게 많다. 2001년 금융지주체제가 출범할 때 3억~4억원이던 게 지금은 20억~30억원까지 치솟았다. 주요 금융사의 자산과 순익은 모두 일본 리딩뱅크의 10분의1 수준이지만 CEO의 연봉은 오히려 3배가량 많다. 이러한 상식 밖의 일은 사외이사와의 ‘공생’으로 가능하다. 회장의 측근인 사외이사가 회장의 연봉을 결정하고 회장은 사외이사의 연봉을 결정한다. 이런 식의 임금 결정은 주주에 대한 배신이다. CEO의 성과 체계와 보수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금융 당국은 적정성 여부를 철저하게 감독해야 한다.

 

금융권에도 요즘 찬바람이 쌩쌩 분다. 수익이 줄면서 직원들은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신한은행은 올 초 310여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냈다. 국민은행도 희망퇴직을 논의 중이다. 정부가 채용 규모를 늘리라고 압박하지만 지난해보다 더 뽑기는 어려운 구조다. 저금리가 고착화하면서 수익은 더 줄 것으로 보인다. 인건비를 절감하고 싶다면 오히려 CEO가 먼저 연봉 삭감에 나서는 게 도리다. 제대로 된 수장(首長)이라면 그렇게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는 세계 15위지만 금융시장의 성숙도는 80위다. 저개발국 수준이다. 세계 50대 은행이 한 곳도 없다. 이대로는 우리 금융업에 미래가 없다. 글로벌 경쟁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금융 CEO들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몫이다. 금융지주 회장들은 어떻게 하면 연봉을 더 챙길까를 고민해서는 안 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327금] 실적 나 몰라라… CEO 연봉 다시 올리는 금융지주

 

금융지주사들이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아 최고경영자(CEO) 보수 한도를 내린 지 1년 만에 다시 원위치시키고 있다. 하나금융은 '성과연동 주식보상' 한도를 지난해 5만주로 줄였다가 이번에 7만주로 원상 복귀하기로 했고 신한금융은 기존 60억원이던 이사 보수 한도를 지난해 30억원으로 삭감했다가 올해 다시 45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나머지 금융지주사도 회장 연봉을 덩달아 올릴 가능성이 크다.

 

불과 1년 전 금융지주사들은 수익성 악화에도 회장의 연봉이 지나치게 많다는 금융당국의 지적을 받아들여 일제히 내렸다. 당시 일부 금융지주사 회장은 하루 1,000만원의 임금을 받을 정도였다. 여론의 눈치를 보다 못해 연봉을 내렸다고 하지만 수익성을 고려하면 여전히 높다는 여론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회장 연봉을 1년 만에 원위치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수익성이 그새 훌쩍 좋아져 수익성 개선에 큰 역할을 한 회장의 연봉을 올린다면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수익성은 오히려 더 나빠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봉 올리기에만 혈안이 돼 있는 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금융지주사 이익의 70~80%를 차지하는 은행 수익성을 가름하는 잣대는 순이자마진(NIM)이다. 지난해 KB국민은행 등 7개 시중은행의 NIM은 평균 2.31%로 전년의 2.40%에 비해 0.09%포인트 내려갔다. 올해는 이 수치가 2.25%로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상황이 개선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이 큰데다 경남기업 등 부실기업이 속출하는 점도 영업실적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은행들은 올 초부터 직원을 대상으로 잇따라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한쪽에서는 비용절감을 위해 어쩔 수 없다며 사람을 잘라내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회장의 연봉을 올리는 행태가 도덕적 해이 아니면 뭔가.

 

 

■ 경기 부양의 몇몇 방법들

 

[경향신문 사설-20150327금] 경기부양 따로, 소비자 체감 따로

 

소비자들의 경제 불안감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재정확장, 금리 인하 등 정부와 한은의 쌍끌이 경기부양이 무색할 지경이다. 특히 소득 및 소비지출에 대한 우려가 크다. 가계의 곳간은 비어있는데 고용과 고령화 등 미래불안이 겹치면서 활력을 찾지 못한 탓이다. 정부가 공을 들여온 부동산은 반짝하고 있지만 덩달아 가계부채를 늘리면서 경기를 데우는 데에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어 가계 친화적인 정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어제 발표된 한국은행의 소비자동향 조사 결과는 꽤 우울하다. 매달 발표되는 수치가 주목받는 것은 정부의 경기부양이 실물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는 이유에서다. 당장 소비자심리지수는 101로 나타나 세월호 참사 직후인 지난해 4월보다 더 얼어붙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소비자들의 경제상황에 대한 심리를 나타내는 지표다. 100보다 크면 미래를 낙관적으로 본다는 뜻으로 수치만으로는 나쁜 게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추세가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것은 ‘부양 따로’ ‘체감 따로’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예사롭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더구나 이번 조사는 한은이 1%대로 금리를 인하한 뒤 실시됐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당장 가계의 생활 형편, 수입 지출, 경기 등에 대한 인식은 모두 후퇴했다. 향후 물가 전망인 기대인플레는 2.5%로 통계 집계 이래 최저치였다. 인플레 기대가 없으면 금리를 내려도 부양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 그나마 유의미하게 나아진 것은 집값 전망이다. 결과적으로 부양책이 오롯이 부동산 심리 부분에서만 효과를 발휘한 꼴이 됐다. 기업의 경우 재고조정과 국제경제 불확실로 투자에 애로를 겪고 있고 가계는 빚 부담 때문에 소비에 제약이 큰 상황이다. 정부가 지고의 선으로 여겼던 수출은 성장 기여도가 20여년 전의 60% 수준으로 약화된 데다 취업유발계수도 크게 떨어진 터다. 이런 측면에서 내수활성화는 곧 경제활성화나 다름없다.

 

이를 위해 가계 소득확대가 절실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지난해 정부의 배당확대 정책이 내수활성화에 크게 도움이 안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들어 최경환 부총리가 임금인상론을 들고 나왔지만 재계의 반발 등에 밀려 주춤하고 있다. 결국 해법은 가계소득 증대다. 돈만 푼다고 내수가 결코 살아나지 않는다. 내수를 회복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그리 넉넉지 않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327금] 경제활성화법·구조개혁으로 경기회복 밀어붙여라

 

새봄을 맞아 우리 경제에 미약하나마 봄바람이 불고 있다. 2·4분기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회복세로 돌아서고 꽁꽁 얼어붙었던 부동산시장도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고 있다. 금리 인하와 재정 투입이 시장의 투자심리를 북돋우고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심리가 여전히 얼어붙어 있으며 실업 문제도 좀처럼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우리 선택에 따라 한국 경제의 미래가 결정될 수 있는 중대한 시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4월에는 공무원연금과 노동시장 구조개선 등 핵심 구조개혁의 향방이 판가름나는데다 뜨거운 감자인 최저임금 문제도 본격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오른다. 국민대타협기구와 노사정위원회가 어떤 결론을 내느냐에 따라 각 부문의 구조개혁도 확고한 추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경제 활성화 법안의 국회 처리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다. 국회는 4월7일부터 한달간 임시국회를 열어 청와대와 정부에서 요청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관광진흥법 등 9개 경제 활성화 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현재로서는 야당이 의료 영리화 등을 이유로 강력히 반대해온 의료법 2개를 제외하면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니 일단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하지만 세월호 1주기와 재보궐선거, 민노총 총파업 등 사회 갈등을 증폭시킬 변수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자칫 우리 경제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된다.

 

숱한 정치·경제적 과제가 쌓여 있는 4월이야말로 한국 경제의 분수령이다. 특히 구조개혁은 우리 사회의 성장잠재력 확충으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미래 세대의 앞날이 달린 중차대한 문제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확고한 리더십을 갖고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와 양보를 이끌어내야 한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일관성 있는 대책을 과감하게 실천해 경기회복의 온기를 최대한 살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정치권을 비롯한 모든 경제주체가 위기의식을 갖고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한국일보 사설-20150327금] ‘중진국 함정’ 탈출 위한 구조개혁 서두르라

 

지난해에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달러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제 한국은행이 발표한‘2014년 국민계정(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GNI는 전년(2만 6,179달러)보다 7.6% 늘어난 2만8,180달러에 그쳤다. 2006년 이래 9년 째 2만 달러 대에 발이 묶여 있다.

 

그나마 지난해 1인당 GNI가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은 2013년 연평균 1,095원이던 원ㆍ달러 환율이 지난해 1,053원으로 하락한 덕분이다. 원화로 환산하면 전년 대비 증가율이 3.5%로 지난해 경제성장률 3.3%와 비슷한 수준이다. 올해는 경제가 게걸음을 거듭하고 있는 데다 미 달러화의 강세 흐름도 거세다. 미국이 연내에 단행할 금리 인상이 원화 환율을 더욱 끌어올리리란 점에서 올해 또한 1인당 GNI 3만 달러 달성은 기대난이다. 인구 5,000만 명 이상으로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은 나라들로 이뤄진 ‘30-50 클럽’가입 희망도 다시 늦춰지는 셈이다.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 벽을 넘어서는 데 일본이 6년, 미국을 비롯한 구미 선진국이 8~9년이 걸린 것에 비하면 마음이 급해진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성장이 한계에 봉착한 듯한 상황이다. 지난해 3.3%에 그친 경제성장이 올해 더 나아지리라고 보기 어렵다. 한국은행은 지난 1월 올 성장률 전망치를 3.9%에서 3.4%로 낮추었고, 4월의 수정 전망에서는 추가 하향 조정에 나서리란 관측이 무성하다. 국내 민간경제연구소들의 성장률 전망치는 3%에 근접했고, 노무라 증권처럼 2.5%까지 낮춰 보는 경우도 있다. 유가 하락과 저공 비행하는 물가도 성장률 상승을 가로막고 있다. 날로 늘어나는 가계부채가 소비심리를 냉각시키고 있음도 물론이다. 지난해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전년(160.3%)보다 3.9% 포인트 높은 164.2%에 이르렀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 133.5%보다 눈에 띄게 높다.

 

결국 GNI 2만 달러대의 늪을 탈출하려면 경제 체질개선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수밖에 없다. 현재의 인위적 부양책 같은 단기처방도 멈출 수 없는 처지지만 공공ㆍ노동ㆍ금융ㆍ교육 등 4대 분야 구조개혁을 앞당겨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정부와 국회가 함께 매달려야 한다. 그래야 소득이 오르고 투자와 생산이 늘어날 수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끝내 신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는 ‘중진국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짙다. 급물살을 타고 있는 공무원연금 개혁과 노동 개혁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남은 제도개선 과제들에 곧바로 매달려야 할 때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겨레신문 사설-20150327금] 유신 망령에 손짓하는 대법원 판결

유신 시절 국민의 자유를 짓밟는 도구였던 긴급조치는 2013년 대법원 판결로 위헌으로 선언됐다. 그런데 이 긴급조치를 발동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위는 아무런 불법행위도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26일 나왔다. 앞뒤가 맞지 않는 황당한 판결이자 시대를 거스르는 퇴행적 판결이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긴급조치가 당시로서는 유효한 법규였던 만큼 이를 따른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곧바로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놔 비판을 받았다. 경찰·검찰 등이 영장 없이 무고한 시민을 체포·구금했어도 공무원으로서 당시의 실정법인 긴급조치를 집행해야 하는 처지였으므로 불법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극히 형식적이고 몰역사적인 논리였다. 하지만 이에 근거하더라도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동 행위는 불법성이 인정될 수 있었다. 주어진 의무에 따라 행동한 다른 공무원들과 달리 대통령은 국정의 최정점에서 그 스스로 위헌적인 긴급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마저도 부정했다.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대통령은 이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뿐 아무런 법적 의무도 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논리라면, 독재자가 아무리 위헌적인 조처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탄압하더라도 사후적으로 법적 책임을 묻지 못하고 국민의 피해도 구제받지 못하게 된다.

반 면 2심 판결은 국가긴급권 행사가 원칙적으로 정치적 책임만 지는 행위이더라도 그 내용이 명백히 헌법에 위반되는 경우에는 위법행위가 인정된다고 봤다. 대통령에게는 헌법수호의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는 유신헌법에 비춰 보더라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도 반하는 명백한 위헌이므로 대통령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인정된다는 게 2심의 결론이었다.

 

대법원과 2심 판결을 비교하면 누가 봐도 2심의 설득력이 높아 보인다. 판결문을 보면 대법원은 2심의 논리를 제대로 반박하지도 않은 채 서둘러 정반대의 결론을 냈다. 이러고도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는 대법원의 책무를 다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이번 판결은 과거 독재체제에 면죄부를 주는 동시에 미래의 독재자에게 법리적으로 뒷문을 열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독재정권 아래에서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 박상옥 검사가 대법관 후보자로 제청된 상황까지 겹치니 대법원의 민주주의 인식에 심각한 의문을 떨칠 수 없게 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327금] ‘사회적 경제 기본법’ 처리 합의, 의미 크다

여야 원내대표가 ‘사회적 경제 기본법’을 4월 국회에서 합의처리하기로 했다고 한다. ‘사회적 기업 육성법’과 ‘협동조합 기본법’이 지난해 발효된 데 이어 이 법안의 통과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사회적 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기본 토대를 갖출 수 있게 됐다. 세계금융위기 등을 계기로 시장경제의 폐해가 크게 드러나면서 사회적 경제는 갈수록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여야 원내대표의 법안 처리 합의는 의미가 작지 않다.

 

사회적 경제는 이윤 추구를 가장 앞세우는 시장경제와는 지향점이 많이 다르다. 이윤을 좇되 사회적 가치를 함께 추구한다. 빈곤, 환경, 취약계층 실업문제 해결 등이 그것이다. 실제로 국회에 제출된 법안을 보면, 사회적 경제 조직은 “사회적 가치 실현과 확산을 위해 성실히 노력해야 한다”, “발생한 이윤을 구성원 공동의 이익과 사회적 목적의 실현을 위해 우선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장경제가 무한경쟁의 이미지가 강하다면, 사회적 경제는 연대의 이미지가 돋보인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농어촌공동체회사 등으로 구성된 이런 사회적 경제가 시장경제의 대안이 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경쟁력 등에서 취약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장경제의 그늘과 빈틈을 없애는 데 한몫을 할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서의 구실도 기대된다. 이는 사회적 경제에서 앞서가는 나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경제는 빠르게 커나가고 있다. 사회적 경제의 주축인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은 곳이 지난해 말 1251곳으로, 2007년에 견줘 25배가 됐다. 또 고용인원이 4만2000여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취약계층이 약 60%나 된다.(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자료) 사회적 경제 기본법이 통과되면 성장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여야 의원 3명이 제출한 법안이 계류돼 있다. 내용에서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평가되는 만큼 잘 협의해서 좋은 법을 탄생시키길 기대한다. 사회적 경제에 물과 거름을 줘서 원래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사회적 경제 관계자들이 더 노력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모델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한편, 걸맞은 경영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327금] AIIB 참여 결정, 늦었지만 잘했다

 

정부가 어제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정부는 관계 부처 간 논의를 거쳐 창립회원국으로 AIIB 설립에 참여키로 하고, 참여 의사를 어제 중국에 서한으로 정식 통보했다고 밝혔다.

 

가입을 권유하는 중국과 만류하는 미국 사이에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해온 박근혜 정부가 결국 참여하는 쪽으로 최종 방침을 정한 것이다. 비록 늦은 감은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정부가 참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잘한 결정이라고 본다.

 

  중국이 아시아 지역의 인프라 확충을 위해 설립하겠다는 AIIB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관심을 모아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설립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중심의 국제 금융질서는 미국을 위한 금융 질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시아 경제 개발을 위해 설립된 아시아개발은행(ADB)도 사실은 일본을 앞세워 미국이 주도해 온 체제였다. AIIB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미국 중심의 아시아 금융 질서에 대항해 만든 은행이다. 당연히 미국의 반발은 예견됐었다. 미국은 중국의 AIIB 설립 움직임에 이런저런 시비를 걸며 한국·호주 등 아시아 동맹국의 참여에 제동을 걸어왔다.

 

  동맹국 미국과 최대 교역국 중국 사이에서 한국 정부가 고민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본다. 지난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AIIB 참여를 권유했지만 박 대통령이 확실한 입장 표명을 유보한 것은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이 런 우리의 고민과 부담은 외부 변수에 의해 한결 가벼워졌다. 미국의 유럽 내 최고 동맹국인 영국이 AIIB 참여 의사를 밝힌 데 이어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들이 참여 의사를 천명함으로써 우리도 입장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우리가 좀 더 일찍 참여 의사를 밝혔더라면 AIIB의 지분 확보나 고위직 배분 등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늦었지만 우리가 창립회원국으로 참여하기로 한 만큼 중국 정부와의 당당하고 주도면밀한 교섭을 통해 최대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해야 한다.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군사적으로는 미국, 경제적으론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의 처지인 게 사실이다. 중국이 요구한 대로 AIIB 창립 멤버로 참여하기로 했으니 안보적으론 미국이 원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 체계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게 도식적으로 볼 문제는 아니다. 안보는 안보고, 경제는 경제다. AIIB는 중국 편, 사드는 미국 편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판단은 옳지 않다. 경제든 안보든 냉정한 판단에 따라 독립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327금] 한국이 모르는 ‘한·미·일 MD 협력체제 진전’이라니

어제 방한한 마틴 뎀프시 미국 합참의장이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체계에 한국이 편입되고 있음을 확인해주는 발언을 했다. 그가 지난 24일 “아시아·태평양 역내의 통합된 미사일 방어 우산을 구축하는 데 진전을 보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또 “한국과 일본은 각기 자신들의 입장에서 (MD 체계를) 획득하는 데 부분적인 진전을 보고 있으며 이는 (한·미·일 3국 MD 체제 간) 상호 운용성을 높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한국형 MD(KAMD)를 구축하고 있을 뿐, 미국 MD에 편입되거나 한·미·일 MD 간 상호 운용성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렇다면 뎀프시 의장이나 한국 정부 중 한쪽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뎀프시 의장이 거짓말을 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 의회는 미국 정부에 3국 MD 협력을 강화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라고 결정했으며 미 국방부는 이 결정을 집행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구형 요격 미사일인 PAC-2를 도입하고도 부족하다며 최신형 PAC-3를 구매키로 한 사실을 뎀프시 의장이 과장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PAC-2, PAC-3 구매가 미국 MD와 무관한 것이라는 한국의 주장이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다. 정부는 요격 고도가 더 높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배치하더라도 미국 MD와 상호 운용성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 체결, 한국의 미국산 MD 무기의 지속적인 구입, 미국 MD의 핵심인 사드의 한국 배치 추진을 한국의 미국 MD 체계 편입 과정이 아닌 다른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3국의 MD 협력체제 진전은 이 협력체제가 겨냥하고 있는 북·중·러 3국의 반응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은 물론 북한과 러시아도 최근 각각 외교부 대변인 담화와 논평을 통해 사드의 한국 배치가 동북아 지역의 군비경쟁을 촉발하고 냉전구도를 조성한다며 비판했다. 한국 정부가 인정하든 안 하든 한·미·일 3국 간 MD 협력체제의 진전과 그에 따른 동북아의 갈등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은 미·중 사이에 양자택일해서도 안되고, 동북아를 한·미·일 남방 3각 동맹 대 북·중·러 북방 3각 동맹의 대립 구도로 이끌어서도 안된다. 그런 구도는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개별 협력 구상과도 충돌한다. 정부는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위해 미국 MD 편입 행진을 멈추고 북·중·러와의 관계 개선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 평화는 첨단 무기가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다.

 

 

[서울신문 사설-20150327금] 공직사회 일탈 막을 사정활동 더 강화해야

 

경찰이 서울과 경기 지역의 조직적인 세무 비리에 대한 전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국세청과 세무서 직원 수십 명이 세무조사 무마를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는 게 수사 내용이다. 뇌물을 받은 세무 직원 리스트에는 100여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고 한다. 또 서울 강남에서 성매수를 하다 경찰에 붙잡힌 감사원 공무원들은 한국전력 직원들에게서 1인당 40만원짜리 식사를 대접받고 성상납까지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힘 있는 권력기관들이 어떤 식으로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지 실체가 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세무 비리 사건을 보면 세무서 직원이나 국세청의 조사담당 직원들의 조직적인 비리 실태를 알 수 있다. 세무사가 중간에서 로비스트가 돼 병원 원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뒤 세무 공무원들에게 뿌린 것이다. 강남의 한 병원만 연루된 사건인데 다른 병원이나 기업들까지 뒤지면 얼마나 많은 비리가 쏟아져 나올지 짐작도 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인 것이다. 정부는 세입이 부족해 아우성인데 공무원들은 세금을 덜 받도록 해 주고 뇌물을 받았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감사원의 성매매 사건은 더욱 한심하다. 엄정한 감사를 해서 공기업의 비리를 캐내야 할 감사원 공무원들이 도리어 성상납을 받은 이 사건은 도저히 용납하기 어렵다. 한전은 한전 소속 모 부장의 진급 자리였다고 해명하는데 설령 그 말이 사실이더라도 그동안 감사원과 한전이 얼마나 유착됐으면 축하 식사를 고급 요정에서 하고 성매매까지 했겠는가.

 

두 사건에서 우리는 썩을 대로 썩은 공직자의 실상과 땅에 떨어진 공직사회의 기강을 확인했다. 이제 남은 것은 정부가 정보력과 수사력을 총동원해 대대적인 공직 사정에 나서는 일뿐이다. 왜 김영란법이 필요한지 이번 사건은 확실히 증명해 주었다. 특히 세무 직원들의 뇌물수수 사건은 부패가 국가의 경쟁을 떨어뜨리고 경제 활성화에도 해악을 끼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완구 국무총리의 부패척결 선언 이후 검찰과 경찰은 기업과 공직 비리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수사를 하고 있다. 이제 그 사정의 칼날을 더 강하게 휘둘러야 한다. 사정 정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 아랑곳할 필요도 없다.

 

드러나지 않은 공직사회의 비리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국세청이나 감사원 같은 권력기관과 인허가권이 있는 지방자치단체, 단속 권한을 가진 기관들은 어디서 어떤 비리를 저지르고 있을지 알 길이 없다. 공직사회, 특히 권력기관의 비리를 잡지 않고서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

 

 

[서울신문 사설-20150327금] 변협이 밝힌 ‘대법관 변호사 도장값’ 3000만원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엊그제 상고 이유서에 찍는 ‘도장값’으로 한 번에 3000만원을 챙겼다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사례를 공개했다. 하 회장은 “그는 당시 사건 내용도 모른 채 도장만 찍어 주고 이름을 빌려주는 식으로 떼돈을 벌고 있다고 소문나 있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 주변에는 그동안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소송대리인에 이름을 올리는 도장값 3000만원, 담당 판사나 검사에게 전화 한 통 거는 데 5000만원이니 은퇴한 뒤 곧바로 100억원을 모으지 못하면 바보’라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듯 믿기지 않는 일이 결코 헛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하 회장이 서울지방변호사회장으로 있던 2008년 여름 개업한 동료 변호사가 직접 겪은 일이라고 한다. 벌써 7년 전이니 “도장 한 번 찍고 3000만원 받은 것도 벌써 옛날”이라는 비아냥도 과장이라고만 할 수 없게 됐다.

 

법조계의 잘못된 전관예우 관행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반 판·검사도 ‘부장’ 자(字)만 붙으면 퇴직하고 거액의 변호사 수임료를 챙기는 판국이다. 그러니 대법관 출신이라면 수임료의 단위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당사자들은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오랫동안 공직에 봉사한 대법관 출신 법조인에 대한 글자 그대로의 예우 차원이라도 전관예우는 미풍양속일 수 없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에게 엄청난 액수의 수임료를 부담하는 쪽에서는 재판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어 내겠다는 현실적 기대를 갖게 마련이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은 후임 법관들도 적지 않은 심리적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전관예우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의 본질은 재판의 공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누구도 모르지 않는다.

 

앞서 대한변협은 차한성 전 대법관에게 변호사 개업 신고를 철회해 달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차 전 대법관은 거절했고, 결국 하 회장의 ‘도장값’ 발언이 나온 것이다. 대법관은 지금도 전관예우금지법으로 퇴임한 뒤 1년 동안은 상고심 사건을 수임할 수 없다. 대법관 출신의 전관예우가 옳지 않다는 사회적 합의는 이루어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대법관 출신의 수임 금지 기간을 3년으로 늘리는 법안도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다. 대한변협의 권고에는 일부 논란도 없지 않은 만큼 법적 보완은 빠를수록 좋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327금] 수출한국 비상! 국민소득 무역비중 크게 줄었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수출입 비중이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져 지난해 처음으로 100% 밑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2011년 113.5%, 2012년 112.8%, 2013년 106.1%에서 지난해에는 99.5%로 낮아진 것이다. 이 비중은 과거 지속적으로 높아지다가 2011년을 정점으로 하락세로 반전했다.

 

GNI 대비 수출입 비중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대외의존도가 줄어든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이를 긍정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수출의 성장 기여도가 높은 한국에서는 일종의 위험 신호다. 성장여력이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GNI 대비 수출입 비중이 낮아진 결정적 이유는 수출입 가격이 모두 떨어져서다. 석유제품(-11.8%), 반도체(-6.2%) 의 수출가격이 내려가는 등 수출물가가 평균 2.0% 싸졌다. 수입물가도 석유 등 원자재 가격 하락(-9.8%)으로 크게 내렸다. 특히 심각한 것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대표적 수출 제조업체들이 중국의 추격 등 경쟁 격화로 수출가격을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수출경쟁력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최근 세계 경기가 부진한 것도 한국 기업에는 부담이다.

 

한국처럼 국토가 좁고 자원도 많지 않은 국가가 살 길은 무역으로 경제영토를 확장하는 것 외에는 없다. 내수시장을 갖추기 어려운 한국에서는 그래서 무역이 필수다. 그런 점에서 대외의존도 내지는 무역 활동수준의 하락은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는 내수를 부양한다며 기업에 임금인상을 종용하고 있다. 하지만 임금인상은 비용 증가로 경쟁력만 떨어뜨린다. 또 채용여력을 줄여 내수 부양에 역행할 수도 있다. 우리 경제 주력은 역시 수출이자 교역이다. 수출이 없이는 경기회복도 내수부양도 모두 공염불이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특별기고/홍세화(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장발장은행 공동대표)-20150327금] 이 땅의 장발장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돈 있으면 죄 없고 돈 없으면 죄 있다”는 의미에서 훨씬 확장되어야 한다. 돈 없으면 죄가 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죄를 짓도록 밀어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상황에서는 생존 자체가 범법의 경계에 서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왜 우유를 안 사?” 세월이 흘러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일곱살 딸아이가 순진하게 묻던 모습도 그중 하나다. 우리는 그때 우유를 사지 않은 게 아니라 못 샀다. 최근 장발장은행에 참여하여 벌금 대출을 신청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만나면서 그 장면이 다시 돌아왔다. 벌금 100만원이나 200만원을 내기 어려운 사람들, 자신에게도 없지만 가족과 친지에게서 빌리기도 어려운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내 주변에서 직접 만난 기억이 거의 없는데 세상에는 무척 많았다. 세상은 고급아파트와 임대아파트 사이처럼 분리되어 있었고, 나 또한 “소외되고 버림받은 민중”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그것은 관념에 가까운 것이었다. <감시와 처벌>을 쓴 미셸 푸코가 동료, 후배들과 감옥감시단을 꾸렸던 일을 소개하면서 실천하지 않는 지식인을 비판했던 화살은 나부터 맞아야 했다.

 

파리에서 갑자기 외톨이로 남게 된 우리는 어떻게 우유를 살 수 있었을까? 말도 서툰 남의 땅,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아내의 생활력이 발휘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넘기게 해준 것은 나의 학벌이 준 인간관계와 프랑스의 복지제도였다. 나는 학교 선배의 소개로 관광 안내 알바를 할 수 있었고, 두달치 아파트 월세를 내지 못해 전전긍긍했었는데 앞서 신청했던 주거수당(소득이 적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월세 중 일부를 국가가 보전해주는 제도) 여러달치를 한꺼번에 받아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인간관계와 복지제도, 이것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복지체계가 허술한 한국에서 사회관계망도 열악한 사람들은 가난의 질곡 속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국가로부터 벌금형을 받은 사람들 중 벌금을 못 내 교도소에서 강제노역을 해야 하는 구성원들이 매년 4만명에 이른다는 점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의 일부가 될 것이다.

 

무이자 무담보로 벌금을 빌려주는 장발장은행이 지난 2월25일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한달 동안 510명의 시민과 단체가 1억원이 넘는 성금을 보내주었고 4차에 걸친 심사를 거쳐 47명에게 8000여만원을 대출해주었다. 언론의 관심도 컸지만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것은 대출 신청자들의 쇄도였다. 불똥 튀는 전화는 하루종일 멈추지 않았다. 한정된 재원에 비해 신청자가 워낙 많아 국가로부터 이미 심판받은 사람들을 다시 심판한다는 심리적 곤혹스러움과 함께 신청자들 중에서 일부만을 선택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4만명 모두에게 벌금을 대출해준다고 가정하면 평균 150만~200만원으로 계산할 때 총 600억~800억원이 필요하다. 장발장은행은 그들 중 기껏해야 2~3%의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뿐이다. 벌금형 제도의 개선,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2009년 한해 동안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들어갔던 4만3199명에서 따와 ‘인권연대’가 3년 전부터 벌여온 ‘43,199 캠페인’에 담겨 있는 내용을 보면, 징역형에 있는 집행유예 제도를 벌금형에도 적용하고, 총액벌금제를 일수벌금제로 바꾸어 소득과 재산에 따라 차등을 두고, 분납제도를 폭넓게 적용하며, 사회봉사제를 활용하는 것 등이다. 가난이 이미 불평등을 겪는 일인데 징벌에서 또 불평등을 겪게 하는 제도는 오래전에 고쳤어야 마땅한데 그러지 않은 것은 왜일까? 몫 없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돈 있으면 죄 없고 돈 없으면 죄 있다”는 의미에서 훨씬 확장되어야 한다. 돈 없으면 죄가 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죄를 짓도록 밀어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상황에서는 생존 자체가 범법의 경계에 서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가령 가난에 찌들어 사는 나는 이름을 빌려주면 매달 100만원씩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할 수 있을까? 성인용 비아그라를 전해주면 푼돈이나마 벌 수 있는 지하철 택배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평생 고아로 살아온 나는 찜질방에서 눈에 띈 지갑을 슬쩍하여 2만원을 훔치지 않을 수 있을까? 병든 두 아이의 치료비가 많이 들어 밤에 이유식 배달이라도 하여 수입을 늘리고 싶은데 자동차 보험료 낼 돈이 없다고 그 일을 포기할 수 있을까?

 

그뿐이 아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유전무병, 무전유병’을 결합시켜야 한다. 벌금형을 받은 사람들 중엔 기초생활수급자도 많은데 그 자신이 아프거나 식구들이 아픈 경우가 너무 많다. 병이 들어도 치료받지 못하는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김수영 시인도 개탄했듯이 작은 일에만 주로 분개한다. 작은 도둑들은 빠짐없이 법망에 걸릴 때 큰 도둑들은 법망도 잘 피하는데 우리가 비난하고 냉대하는 쪽은 후자가 아니라 전자다. 적절한 비교는 아니겠지만, 한국의 기업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 동안 성공불융자금이라는 제도로 3677억원의 융자금을 탕감 또는 감면받았다고 한다. 기업이 해외자원개발을 위해 투자할 때 위험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시행하고 있는 이 제도는 실패했을 때 융자금을 탕감 또는 감면해준다. 기업에는 이처럼 국민 세금을 너그럽게 사용하는 국가지만 가난한 국민에겐 야박하기 그지없다.

 

“선행은 자만과 쌍둥이다.” <주홍글자>로 널리 알려진 너새니얼 호손이 남긴 말로 전해진다. 엄격한 청교도주의를 비판했지만 청교도의 엄격성이라는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은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이 말은 19세기에 속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부르주아 여성들에게 ‘빈민가 방문’은 ‘취미’에 속했다고 한다. 그 모습은 분명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진 않았다. 프랑스에서 19세기 후반 보통교육이 실시되었을 때 대부르주아의 자식도 청지기(후에 운전기사)나 하인의 자식과 같은 학교에 다녔는데 그것은 사회통합의 토대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 차차 주거 공간과 학교가 분리되기도 했지만 그 비워진 데를 채워준 게 복지제도였다. 19세기에 같은 공간의 만남에서 선행과 온정이 있었다면, 20세기에는 복지제도가 생겼고 그만큼 진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가 고귀하다면 보이지 않는 사회적 연대의 실현이 정치의 기본 소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내던지고 ‘기업 하기 좋은 나라’의 대통령답게 “경제가 불쌍하다”고 말할지언정 정작 이 땅의 ‘장발장’들은 잘 보이지 않는 대통령처럼,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 지식인, 언론인들에게도 이 땅의 장발장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21세기 한국의 장발장들은 19세기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온정과 선행에서도, 20세기의 복지에서도 먼 존재들인 것이다.

 

서해성 작가가 기획하고 ‘인권연대’가 활동 중심에 선 장발장은행은 ‘평화인문학’을 통해 교도소 수감자들과 직접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벌금을 대출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마움을 표시하고 상환을 약속했다. 하지만 상환하지 못한들 어떠랴. 은수저를 훔쳐 도망친 장발장에게 미리엘 주교는 은촛대까지 건네주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영혼을 사겠다.” 그 차원까진 아니더라도 국가로부터는 징벌을, 사회로부터는 무관심과 냉대를 받은 구성원들에게 시민사회가 따뜻한 손길을 내민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상환받고 남은 게 아닐까. 성금을 보내준 분들, 앞으로 보내줄 분들에게 두 손 모아 감사 인사 드린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나현철(경제부문 차장)-20150327금] 나는 왜 연말정산의 피해자가 됐나

 

지난달 월급을 받고 난 뒤 통장이 부쩍 가벼워졌다. 연말정산 탓이다. 1년 전과 비교해보니 세금이 꼭 200만원 늘었다. 월급에도, 가족 수에도 변동이 없으니 정부는 아니라고 하는 ‘증세’의 피해자가 된 게 분명하다.

 

  속은 쓰리지만 ‘증세’ 자체를 반대할 생각은 없다. 더 낸 세금이 적잖은 돈이지만 그렇다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은 아니다. ‘많이 버는 사람에게 더 걷어 적게 버는 사람에게 지원한다’는 명분에 딴지를 걸 생각도 없다. 없는 사람이 더 가난해져서는 공동체의 미래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나 사회적 안녕도 기약할 수 없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

 

  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이번 연말정산은 아무래도 명분 따로 내용 따로다. ‘증세’의 내용부터 국가 백년대계와 거꾸로다. 내가 더 낸 세금 200만원이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 따져봤다. 먼저 노후 생활과 큰 병에 걸릴 때를 대비해 10년 이상 연 400만원씩 들고 있는 연금저축과 보험에서 48만원이 더 나갔다. 힘들게 알아서 노후 대비하지 말고 나이 들면 국가에 손 벌리라고 하는 꼴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초(超)고령화 사회가 곧 닥쳐 온다고 부산을 떨고 있으니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둘째로 다자녀 공제가 사라지면서 세 아이 몫의 세금이 또 비슷하게 늘어났다. 출산 공제까지 사라진 걸 생각하면 “2014년에 애 안 낳은 게 다행”이란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지경이다. 지난달 대통령이 저출산에 대해 “정부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합심해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데, 어느 장단이 맞는 건지 헷갈리기 짝이 없다.

 

  문제가 어디서 왔는지는 모두가 안다. 증세를 증세라 말하지 못하는 ‘꼼수 증세’다. 정부가 말한 애초 취지를 살리려면 소득세율을 조금씩 올리는 게 가장 투명하고 공평했다. 억지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고, 교육비와 의료비 같은 필수적 지출에 대한 공제를 확 줄이면서 세제 개편의 명분도, 실리도 사라졌다.

 

  다음주 정부가 연말정산 분석 결과를 내놓는다고 한다. 최경환 부총리는 벌써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며 분위기를 잡고 있다. 문득 그의 ‘예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해진다. 부디 ‘방식과 내용은 몰라도 숫자는 맞았다’는 강변은 아니길 빈다. “풀이 과정은 틀렸어도 답은 맞혔으니 만점을 달라”고 하는 것과 똑같으니 말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석종(논설위원)-20150327금] 어린이 놀이헌장

 

전국 시·도 교육감들이 공동으로 ‘어린이 놀이헌장’ 초안을 만들었다고 한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어린이는 놀 때 가장 행복하며 누구든 놀 권리가 있다.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는 어린이가 놀 시간과 놀 터를 마련해주고 놀 권리와 가치, 중요성을 존중해야 한다.” 경향신문의 ‘놀이가 밥이다’란 기획기사(2014년 2월25일~3월21일)가 놀이헌장 제정으로 이어졌다는 소식이다. 어린이 놀이헌장은 다양한 의견수렴을 거쳐 5월5일 어린이날을 전후해 공식 선포될 예정이다.

 

한국인은 전형적인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라고 했다(조흥윤 <한국문화론>). 그만큼 다양하고 독특한 놀이문화가 존재했다. 옛날의 어린이들은 학교, 등·하굣길, 동네 골목이 모두 놀이터였다. 놀기 위해 마실을 다녔다.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사방치기, 술래잡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숨바꼭질, 오징어놀이, 자치기, 말뚝박기, 깡통차기, 공기놀이 등으로 하루 해가 짧았다. 규칙에 따라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났다. 언니·형들은 놀이를 이끄는 훌륭한 리더였다.

 

마을 공동체의 해체와 핵가족화는 놀이의 몰락을 가져왔다. 요즘 어린이들은 집·학교·학원이라는 쳇바퀴를 돌며 성적 스트레스에 짓눌린 채 살고 있다. 아이들이 놀이의 즐거움을 맘껏 누리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린 시절의 ‘놀이 결핍’이 이 나라를 미움과 독을 품은 분노사회로 만든 건 아닐까. ‘세상 모든 어린이는 충분히 쉬고 놀 권리가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31조다. 이번에 제정하는 놀이헌장도 어른들이 빼앗은 아이들의 ‘놀 권리’를 돌려주자는 게 목적이다.

 

교육청이 이제라도 어린이 놀 권리에 주목하는 건 크게 환영할 일이다. 다만 놀이를 통해 뭘 가르치겠다는 발상은 아니었으면 한다. 돈과 시간을 따로 들여 아이들을 강제로 놀이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것도 틀렸다. 진정한 놀이는 자발성이 핵심이고, 오직 즐거움이 목적이다. 적어도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수업시간을 줄이고 노는 시간을 확 늘렸으면 좋겠다. “얘들아, 이번 방학숙제는 그냥 ‘놀기’다.” 아이들이 공부의 감옥에서 해방돼 재미있게 놀아야 온 나라가 행복하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문소영(논설위원)-20150327금] ‘심쿵’

 

“솔까말,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시대가 열린다고 해도 서민은 여전히 어려워요.” 어느 날인가부터 사람들이 말을 시작할 때 ‘솔까말’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무슨 말인지 모른 채 그냥 넘어가다가 급기야 ‘솔까말이 뭐냐’고 묻지 않을 수가 없는 지경이다. 솔까말은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의 약자로 ‘반도의 흔한 신조어’ 중 하나인데, 모르면 뒷방 노인네 취급을 당한다. 그러나 낯선 단어 때문에 당혹해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영어도 일본어도 중국어도 아닌데 대화 중간에 들어가는 특정한 단어를 이해할 수가 없는 탓이다. 그때마다 ‘심쿵’인데,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을 정도로 놀랍다는 말이다.

 

50~60대들이 특히 요즘 골치를 않는 단어가 ‘뇌섹남’이다. ‘뇌가 섹시한 남자’를 줄여 놓았다. 이 단어는 풀어 놓아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이두박근 삼두박근으로 어깨가 떡 벌어지고 배에 식스팩 근육을 장착한 역삼각형의 늘씬한 남자가 아니라, 뇌가 섹시한 남자라니 대체 무슨 뜻이냐는 항변이다. 문화·영화평론가로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끄는 수초(水草) 같은 허지웅처럼 지성과 유머가 풍부해 매력이 있는 남자이거나 최현석 같은 훈남 요리사들을 말한단다. 젊은 시절부터 폭탄주로 단련한 원팩의 배와 부엌에 들어가면 남자가 아니라는 소신으로 사는 50~60대 중년 남자들에게 ‘뇌섹남’은 언감생심인 단어다.

 

한글 문장을 줄여 놓은 유행어들 탓에 그렇잖아도 어려운 디지털 세상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4~5년 전에 ‘짤방’이라는 단어가 많이 돌아다녔는데, 노래방에 아가씨들을 보내는 소개소를 말하는 은어 ‘보도방’을 말하는 것인가 싶었는데, ‘잘림 방지 사진’이라는 뜻이었다. 짤방에서 파생된 ‘움짤’은 ‘움직이는 잘림 방지 비디오’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터넷에서 시작해 오프라인까지 확산한 젊은이들의 유행어와 행동 양식을 이해하려면 임성순의 2012년 장편소설 ‘문근영은 위험해’가 도움이 된다. 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한글이 난수표같이 널려 있는 이 장편소설을 인내심으로 읽다 보면 요즘 세대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도 있다. 인스타그램에 먹는 방송을 올린다는 의미의 ‘먹스타그램’이나, 진중권씨가 모욕죄로 고소돼 300만원을 지급해야 했던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이란 단어들도 신조어다.

 

국립국어원은 그제 일간지 등 온·오프라인 대중매체에 새로 나온 낱말 334개를 선정해 ‘2014년 신어’로 발표했다. 뇌섹남이나 심쿵 등은 발표한 신어에 들어 있다. 2000년 초 인터넷이 활성화돼 신조어들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국어 파괴 현상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는데 유연하게 대처하는 국어원의 자세가 놀랍다. 새 단어가 지속적으로 사용되면 국어사전에 등재되거나 표준어로 인정된다니 디지털 시대 언중(言衆)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오춘호(논설위원)-20150327금] 인공위성 이름

 

옛 소련이 1957년 세계 최초로 발사한 인공 위성 이름은 스푸트니크다. 러시아어로 동반자란 뜻이다. 과학자들의 우주 여행에 길동무 역할을 해달라는 바람에서 붙였다고 한다. 이후 러시아에선 인공위성이나 우주선을 그냥 스푸트니크라고 부르고 있다.

 

스푸트니크에 충격을 받은 미국은 곧바로 위성 개발에 착수해 이듬해인 1958년 과학위성 익스플로러(Explorer)호를 발사한다. 미국이 우주에서도 개척자요 선구자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익스플로러는 이후 49호까지 발사되면서 명칭의 수명이 오래갔다. 인터넷 세상의 항해사를 자임했던 빌 게이츠가 인터넷 웹 브라우저를 개발하면서 익스플로러라고 붙인 것도 물론 이 인공위성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인공위성 개발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명칭 싸움도 치열해졌다. 과학자들은 새 인공위성에 얼마만큼 상징적이고 창의적인 이름을 붙이느냐에도 승부를 걸고 있다. 유명한 과학자나 탐험가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마르코 폴로(영국)나 케플러(EU), 갈릴레오(EU) 위성이 대표적이다. 제미니, 머큐리(이상 미국) 등 각종 행성이나 별자리 이름도 활용한다. 마르스(옛 소련), 아폴로(미국) 등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신과 영웅의 이름 또한 많이 따고 있다. 인공위성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많다.

 

1962년 쏘아올린 통신위성 릴레이(Relay)는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속보를 TV로 전 세계에 생중계하면서 유명해졌다. 위성에 의한 생중계는 지금도 릴레이 생중계로 부른다.

 

일본은 꽃 이름을 많이 쓴다. 통신위성에 아야메(붓꽃), 사쿠라(벚꽃), 유리(백합), 기쿠(국화), 기상위성에 히마와리(해바라기) 등을 사용한다. 최근 행성 탐사위성에는 하야부사(매)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처음 발사된 위성인 우리별 1호는 이 위성을 개발한 KAIST 학생들이 붙인 이름이다. 최초의 통신위성인 무궁화나 기상위성 천리안은 명칭 공모를 통해 확정했다. 아리랑도 1995년 국민으로부터 명칭공모를 통해 확정한 이름이다.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3A’호가 어제 러시아 야스니에서 발사에 성공했다고 한다. 아리랑 시리즈의 5번째 위성이다. 3A를 붙인 것은 아리랑 3호와 구조 및 역할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다만 적외선 센서를 탑재해 야간이나 날씨의 변화에 상관없이 촬영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고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좀 무미건조한 이름이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온종훈(논설위원)-20150327금] '가상 공간 이동'

 

'스타트랙'은 1966년에 나온 미국 공상과학(SF)드라마다. 첫회가 방영된 후 50년간 총 6개의 TV용 시리즈와 30개 시즌, 726편의 에피소드가 소개됐고 지금도 영화와 컴퓨터·비디오게임 등으로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역사상 최고 흥행 콘텐츠로 평가 받는다. 이를 보고 자란 우리 세대는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의 커크 선장과 외계인 선원 스팍 등이 펼치는 우주 여행,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는 각종 신기술 등을 보면서 상상력을 키우기도 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조악한 방송국 세트에서 만들어져 다소 어설퍼 보이지만 드라마 속 과학기술은 당시로서는 놀라움의 대상이었다. 공간을 순간적으로 이동하고(텔레포트), 웜홀을 통한 광속 비행을 하며 우주공간의 불가사의와 맞닥뜨리고 이를 해결하는 주인공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현실의 과학기술도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을 하나씩 실현하고 있다.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업체인 페이스북은 25일 개발자 회의인 'F8 2015'에서 '텔레포테이션 스테이션'이라는 가상현실(VR) 체험공간을 선보였다. 비록 가상이지만 스타트랙에 나오는 순간이동 기술처럼 50㎞ 떨어진 샌프란시스코만의 멘로파크 페이스북 본사를 실제처럼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줬다. 그동안 다른 곳에서 보여줬던 VR보다 사각(死角)이 전혀 없는 등 기술 진전도 확인됐지만 실물처럼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는 등 과제도 남겼다. 여기에 사용된 헤드셋 기구인 '기어 VR'은 삼성전자와 오큘러스가 공동개발했다고 한다.

 

물론 '텔레포테이션' 개념은 스타트랙에서 빌려온 것이다. 김영기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해 "순간이동 기술, 즉 텔레포트는 네트워크 기술이 궁극적으로 나아갈 방향"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원격으로 자동차 운전이 가능하고 집에서도 사무실과 마찬가지로 업무를 볼 수 있게 하는 미래사회의 핵심 기술이 '가상공간 이동'이고 이것이 삼성전자의 비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가난한 시절 미국 공상과학 드라마에서나 가능했던 일이 우리 기술로 현실화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고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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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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