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아베 신조 일본총리 일본군 위안부 발언 ■ 안심전환대출 ■ 공무원연금 개혁 ■ 무상급식 논쟁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아베 신조 일본총리 일본군 위안부 발언 [한국일보 사설-20150325수] 어떻게든 위안부 본질 비껴가려는 아베의 꼼수
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일본군 위안부를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의 희생자”라고 표현했다. 내달 말 미국을
방문, 일본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상ㆍ하원에서 합동연설을 하게 된 것을 계기로 미국 일간신문 워싱턴포스트와 가진 인터뷰(27일자
보도ㆍ현지시간)에서다. 아베 총리는 그러면서“측량할 수 없는 고통과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을 겪은 이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프다”라고 덧붙였다.
국제사회에서‘인신매매’란 여성이나 아동 등 약자를 상대로 ‘본인의 의사에 반해’강제적으로 이뤄지는 인권유린적 착취행위를
통칭한다. 그간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태도를 보여왔던 아베 총리가 이런 뜻의 인신매매라는 용어를 처음 쓴 것 자체는 언뜻
진일보라는 평가도 나올 법하다. 그러나 언급 배경과 의도를 조금만 들여다 보면 국제사회가 ‘성노예 사건’으로 규정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는 계산된 말장난임이 금방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아베 총리는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인신매매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다분히 일제와 일본군에 의해
조직적으로 저질러진 인권유린 사건임을 부정하고 호도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일본측은 그 동안 일본군 위안소는
민간업자들이 운영했으며 당시 일본정부나 군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비춰 아베 총리는 인신매매가 민간업자들이나 그들이
부렸던 하수인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강변하며 책임을 비껴가기 위해 “인신매매 희생자”라는 자락을 깔았을 개연성이 높다.
만일 진짜 의도가 그렇다면 역겹기 짝이 없는 행태다. 일부 연구자들은 조선인 군위안부 징모가 업자의 취업사기로 이뤄진 형태가
압도적이었다고 주장한다. 또 그 과정에 동족인 조선인들이 적극 개입했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나 이조차 일제가 강제방식을 피하려는 눈
가리기 식 술수였음은 숱한 연구가 입증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인신매매 논리가 종당에는 위안부 책임이 조선인들에 있었다는 황당한
주장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어떤 궤변을 늘어놓는다 해도 일제가 군대 위안부를 침략전쟁의 도구로 적극 활용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20세기 최악의 성노예 사건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다. 이 명백한 사실 앞에 일본군과 정부가 위안부 강제
모집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했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아베 총리는 내달 29일 갖는 미 상ㆍ하원 합동연설에서 이런
본질을 덮고 교묘한 말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비껴가려고 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서 진정한
화해는 불가능하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330월] 위안부 본질 호도하는 아베의 ‘인신매매’ 발언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인신매매의 희생자”라고 표현했다.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인신매매’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달 29일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을 앞두고
여러가지 깊은 계산 끝에 나온 용어 선택임이 분명하다.
인신매매란 말은 주로 여성이나 아동들을 성적 착취나 강제 노역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 각종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해 본인의 의사에
반해 사고파는 행위를 말한다. 지금까지 아베 정부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아온 점에 비추어 보면 인신매매란 말은
한걸음 진전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치장을 한꺼풀 벗기고 보면 이 발언은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절묘한 말장난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아베 총리의 발언에는 인신매매의 ‘주체’가 빠져 있다. 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일본군이 모집 과정에서부터 위안소
설치·운영·관리에까지 직접 개입했음을 인정하는 데 있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범죄행위의 부당성을 말하면서도 막상 그 범죄행위를
누가 저질렀느냐는 가장 핵심적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발언의 밑바탕에는 위안부 문제는 민간업자들의 책임일 뿐
일본군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발뺌이 담겨 있다. 아베 총리가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겪은 이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프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해자로서 ‘사과와 반성’은 전혀 없이, 그냥 제3자적 입장에서 가슴이 아프다는 개인적
연민만 표시했을 뿐이다.
아베 총리의 물타기 시도는 “역사상 많은 전쟁이 벌어졌고 거기서 여성들의 인권이 침해됐다”는 말에서도 확인된다. 위안부들이
고통을 겪은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은 일본군이 저지른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면 늘 벌어지는 ‘보편적 비극’이라는
취지가 짙게 배어난다. 아베 총리는 미국 의회 연설을 앞두고 위안부 문제를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침해한 행위임을 부각시켜
국제사회의 비판을 무마하면서도 일본의 책임은 교묘히 벗어나려는 절묘한 용어 선택을 한 셈이다.
아베 총리의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 소식이 알려진 뒤 우리 외교당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표명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이번 아베 총리의 발언을 보면 이런 기대도 무망해 보인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베 총리의 인식은 전혀 변한 게 없다. 오히려 위안부 문제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미국 사회에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충분히 사과·반성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가능성마저 있다. 아베는 과거사 문제에 관해 국제사회에서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교묘한 행보를 계속해나가는 반면에, 우리 외교당국은 ‘무대책’으로 일관하며 계속 뒤통수를 맞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중앙일보 사설-20150330월] 아베의 궤변에 워싱턴이 넘어가면 안 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7일자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의
희생자’라고 표현했다. 위안부 강제 동원을 민간 소행으로 돌리며 일본 정부·군의 개입을 은폐하려는 술수다. 아베가 다음달 29일
일본 총리로선 처음 미 상·하원에서 합동연설을 앞두고 이런 궤변을 했다는 데서 심각성이 더하다.
위안부에 관한 한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강제적인 성노예’ ‘극악무도한 인권침해’라 규탄할
만큼 강경한 입장이다. 아베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상·하원 연설에서 위안부를 언급하되 ‘인신매매 희생자’란
물타기식 표현으로 빠져나가려 할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포스트 인터뷰는 그런 속셈 아래 미국의 반응을 미리 떠보려는 계산된 발언으로
보인다.
문제는 아베가 상·하원에서 이런 궤변을 하더라도 미국이 넘어갈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협력이
절실한 나머지 “큰 틀에서 위안부 존재를 인정한 것”이라며 면죄부를 줄 우려가 있다. 자신감을 얻은 아베는 과거사 독주와 집단적
자위권 확대를 거침없이 밀어붙일 공산이 크다.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전방위 외교를 펼쳐야 한다. 아베의 연설에 과거사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가 포함돼야 하지만, 우선은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궤변부터 차단하는 게 시급하다. 위안부 문제는 1993년 일본 정부 스스로 고노(河野)담화를 통해 강제 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사안이며, 한국을 배제한 미·일 동맹만으론 ‘아시아 회귀’가 성공할 수 없다는 걸 미국에 이해시켜야 한다.
미 의회도 궤변이나 듣자고 아베에게 첫 합동연설 기회를 준 것은 아닐 것이다. 8년 전인 2007년 미 의회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잔학성과 규모에서 전례 없는 세기의 범죄’로 규탄하는 결의안 121호를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일본 총리의 주장은 강변에 지나지 않는다”며 “공식 성명을 통해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 총리는 아베
신조, 바로 그다. [서울신문 사설-20150330월] 미·일 新밀월시대, 日 우경화 지원 안 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다음달 29일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이 최종 확정됐다. 미국이 제공하는 최고의 예우인 상·하원 합동연설을
한 일본 총리는 지금까지 한 명도 없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2006년 시도했지만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로 무산된
전례가 있다. 아베 총리는 이번 미국 방문길에 오바마 행정부가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무역 협상을 타결하고, 새
방위협력지침에도 합의해 경제와 안보 협력을 한 단계 강화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와 안보 협력을 고리로 미·일 간
신(新)밀월시대가 가속화되는 현실은 미국 정계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미국의 정계 지도자들은 벌써 ‘아베 찬양’에 돌입했다. 존
베이너 미국 하원의장이나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 등은 “가장 가까운 동맹국으로부터 경제 안보협력 확대 방안을 청취하는
기회”라고 기대감을 표시하면서 “아베의 열렬한 지지자”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 정계가 일본과의 경제·안보 협력에 치우쳐 아베 총리의 군사대국화와 우경화 행보에 애써 눈을 감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을 두둔하는 듯한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의 발언이나 지난해 10월 미·일 안전보장협의회에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포괄적으로 인정한 것들이 대표적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예산 증액이나 병력의 추가 배치 없이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은 미국과 군사력 강화를 꾀하는 일본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침략의 과거사를 미화한 일본의
입장을 두둔한 것이나 자위대 해외 파병의 길을 열었던 집단자위권 행사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행위는 군사대국화를 추진해 온 아베
정권에 날개를 달아 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이런 와중에 아베 총리는 최근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인신매매의 희생자”라고 표현하며 “측량할 수
없는 고통과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을 겪은 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인신매매’라는 표현을 쓴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미 일본군 위안부 사건을 20세기 최고의 인권유린이자 일제의 조직적
후원 아래 자행된 매우 구체적인 ‘성노예’ 사건으로 규정한 상태다. 아베 총리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용어인 인신매매를 꺼내 들면서
매매의 주체와 객체, 목적이 무엇인지는 언급하지도 않았다. 이는 군 위안부 사안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미국 내 여론
주도층을 상대로 본질을 호도하기 위해 벌이는 일종의 물타기 수법으로밖에 볼 수 없다.
우리는 미·일 간 신밀월시대가 현실적으로 동북아의 평화를 보장하기보다 오히려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은 지역안보 강화를 위해 한·일 관계 개선을 지지하고 있지만 일본의 진정성 있는 최소한의 반성과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
한국민들의 정서다. 미국이 진정으로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협력의 길을 모색한다면 일본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고 미래로
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순서다. ■ 안심전환대출 [한겨레신문 사설-20150330월] ‘안심전환대출 확대’만으로 해결될 문제인가
금융위원회가 안심전환대출을 20조원 추가 공급한다고 29일 밝혔다. 출시된 지 나흘 만에 올해 공급한도 20조원이 거의 소진되자
부랴부랴 공급을 두 배로 늘린 것이다. 이 정도까지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지만, 자칫 부실을 키워
국가재정의 부담을 키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이런 대책이 가계부채의 근본 해법이 될 수 있느냐는 의문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안심전환대출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은 그 자체로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안심전환대출은 변동금리이거나 이자만
갚는 기존 대출을 고정금리·원리금상환 방식으로 바꿔, 금리 상승 때의 위험을 줄여보자는 가계부채 구조 개선 대책이다.
1100조원에 육박하는 전체 가계부채 가운데 366조원 정도인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로 한정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을 대상으로
삼았는데도, 금리가 1%포인트 낮아진다는 소식에 신청이 폭주했다. 애초의 월 한도, 상반기 한도, 연간 한도를 한꺼번에 다 채운
것을 보면, 우리 가계가 느끼고 있는 가계부채의 부담이 금융당국의 예상보다 얼마나 큰지 잘 알 수 있다.
20조원에 20조원을 더해도 결국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연간 40조원은 가계부채 총액의 3.6% 정도일
뿐이다. 목표대로 대출구조가 바뀐다 해도 여전히 60~70%는 변동금리이거나 이자만 내는 위험한 대출에 머물러 있게 된다.
가계부채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가계부채 문제의 핵심은 저소득층 대출이다.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권 대신
제2금융권에 주로 채무를 지고 있는 이들은 금리가 올라가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게 되고, 그 부실은 금융권 전체를 흔드는 폭탄이 될
수 있다. 금융위는 서민·취약계층과 제2금융권 대출에 대해선 다른 지원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지만, 실효성이 의심되는
재탕·삼탕의 기존 대책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가계부채 건전화를 추진한다면서 정작 부실 우려가 큰 제2금융권 대출이나 한계가구를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쳐두는 것부터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제는 경기부양 쪽에 기운 정책의 무게중심부터 바꿔야 한다. 빚으로라도 부동산 경기를 유지하겠다는 정책 기조야말로 가계부채
급증의 주범이다. 이를 둔 채 일시적, 부분적 개선책으로 시늉만 낸다고 해서 가계부채라는 폭탄이 제거되지는 않는다. 이 추세라면
자칫 통제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정책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서울신문 사설-20150330월] 저소득층엔 ‘그림의 떡’인 안심전환대출
금융 당국이 어제 안심전환대출을 20조원 한도로 추가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1차 때 20조원까지 합해 모두 40조원 규모다.
선착순이었던 1차 때와 달리 이번에는 주택 가격이 낮은 순서로 공급한다. 안심전환대출은 변동금리 또는 이자만 갚는 은행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로 바꾸고 이자와 원리금을 함께 갚아 나가도록 한 것이다. 금리가 연 2.6%대로 시중금리보다 1%
포인트가량 낮다. 갈아탈 때 물어야 하는 중도상환 수수료도 없앴다. 파격적인 조건이라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난
24일 처음 출시된 뒤 불과 나흘 만에 연간 한도 20조원을 모두 소진했다. 정부가 추가 판매에 나선 것도 수요가 여전히
넘쳐나서다.
안심전환대출제도를 내놓은 것은 우리 경제의 가장 위험한 뇌관인 가계부채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1089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는
연간 이자만 최소 40조원이다. 미국이 올해 안에 금리를 올리면 우리나라도 따라서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 변동금리로 빚을
내서 집을 얻은 사람들은 이자가 높아지면 못 갚을 위험이 커진다. 정부는 이 같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사적 금융거래에 개입했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제도를 도입했다. 2억원을 대출한 사람들이 안심전환대출로 갈아타면 연간 200만원 안팎의 이자 부담이
줄어든다.
그러나 안심전환대출은 이자와 원금을 함께 갚을 능력이 있는 중산층 이상에게만 혜택이 집중되는 게 문제다. 원금은 커녕 이자
갚기에도 허덕이는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2금융권 대출자들도 대상에서 빠져 있다. 정부는 2금융권도 대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가 말을 바꿔 최종적으로 대상에서 제외했다. 2금융권 대출의 부실위험이 은행 대출보다 훨씬 큰 만큼 가계부채의 건전화라는
정책 목표와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부의 시책에 호응했던 기존 고정금리 대출자들 역시 대상에서 뺐다.
정부가 안심전환대출을 확대했지만 주로 중산층 이상으로만 대상자가 한정돼 있어 가계부채 개선 대책으로는 크게 미흡하다. 2금융권
대출자를 비롯한 서민층을 위한 별도의 추가 대책을 시급히 내놓아야 한다. 한국은행의 발권력까지 동원하고도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식이라면 형평성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한편에서는 빚내서 집을 사라고 계속 부추기면서 동시에 가계부채를 줄이겠다는
것부터가 모순이다.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신뢰도를 높여야 가계부채 건전화를 이룰 수 있다. ■ 공무원연금 개혁 [중앙일보 사설-20150330월] 공무원연금 개혁에 일주일간 사생결단하라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가 끝내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대신 실무협의기구를 만들어 일주일간 연장전에 돌입할
전망이다. 정황으로 봐서는 실무기구가 대타협기구와 다를 바 없어 보여 또 한 차례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사실
국민대타협기구의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소극적 태도, 개혁 당사자인 노조의 참여 때문이다. 차라리 실무기구 논의
없이 국회 연금개혁특위로 넘겨 거기서 결단을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타협기구가 이름만 바꿔 연장전을 벌이겠다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실무기구는 이런 우리 사회의 우려를 인식하고 남은 일주일간 사력을 다해야 한다. 이미 선수들의 패는 거의 다 드러나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안, 거기에다 개인저축계정을 추가한 고려대 김태일 교수안을 내놨다. 엊그제는 순천향대 김용하 교수
안까지 검토 대상에 올렸다. 정부도 지난달 초 기초 제시안을 냈다. 새정치연합도 ‘α(알파)·β(베타)·γ(감마)’ 안을
내놨다. 핵심 숫자가 빠져 가장 부실한 내용이지만 그래도 뭔가 내긴 했다. 공무원단체는 ‘보험료 추가 부담, 지급률 유지’라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제는 선택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원칙적으로 실무기구에 공무원단체가 참여하지 않는 게 맞다고 본다. 2009년 개혁 때도 공무원단체가 논의기구에 들어와
목소리를 높이는 바람에 개혁안이 크게 후퇴했다. 이번에도 공무원단체가 실무기구에 들어와 보험료만 일부 더 부담하고 지급률은
유지하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 결국 시간만 허비하는 꼴이 될 것이다. 설마 그게 공무원단체의 전략일 거라고 믿고 싶지 않다.
이제는 나라 장래를 위해 공무원단체가 양보해야 할 때다. 그런 의사가 없다면 실무기구에 아예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야당도 소극적 자세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도 “알파·베타·감마가 없었다면 우리 당이 내놓은 안은 가치를 잃었을
것”이라는 강기정 의원의 자화자찬에 할 말을 잃을 지경이다. 지난주 자신들의 검토안이 여당보다 재정절감 효과가 55조원이 많다고
추정했는데, 이제 더 이상 자기 진영에서 공만 돌리지 말고 하프라인을 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4·29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공무원과 그 가족의 표 계산에 골몰하고 있다는 거센 비판을 받을 것이다.
새누리당도 입장을 분명히 하라. 일본이나 미국처럼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과 통합 운영할지, 재정절감 효과만 내는 부분 개혁만 할지
방향을 확정할 때가 됐다. 그런 분명한 입장을 정해놓고 공무원단체를 설득해야 한다. 5월 2일 데드라인이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실무기구에서 어떡하든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공무원단체가 동의하지 않으면 정치권이 결단할
수밖에 없다. 여야는 공무원을 설득하되 한편으로는 마지막 결단을 준비해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330월]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 근본 취지 잊지 말아야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가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정부와 여야, 공무원 등이 각각 제시한 개혁안의 윤곽이
드러났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엊그제 활동 종료 시한을 넘겼다. 그러나 여야는 실무기구를 만들어 논의를 이어가기로 해 결렬
위기는 넘겼다. 사실상의 기한 연장이다. 국가적 현안인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해 정치권과 공무원, 전문가 등이 모처럼 머리를
맞댔으나 소득 없이 활동이 끝나 아쉽다. 한편으로는 이해당사자가 100만명이 넘는 공무원연금 개혁에 90일은 사실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실무기구로 대타협의 가능성을 이어갈 수 있게 됐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합의안을 반드시
도출하기 바란다.
대타협기구가 전혀 소득을 거두지 못한 것은 아니다. 매달 내는 연금 보험료(부담률)를 올리는 방안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성과다. 공무원들도 이해를 표시했으니 ‘더 내는’ 연금 개혁의 첫 번째 단추는 잘 끼운 셈이다. 공무원 재직자와 신규 입직자 간
연금지급 방식 분리 개혁안도 절충안을 수용하는 쪽으로 정리가 됐다. 그럼에도 실무기구의 앞날은 험난하다. 이해가 첨예하게 걸린
과제가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핵심 쟁점은 ‘덜 받기’다. 정부·여당은 연금 개혁을 위해서는 현재 1.9%인 연금지급률을 크게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내는’ 것만으로는 개혁을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공무원들은 노후생존권 보장을 위해서는
현행 수준이 유지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엊그제는 대규모 반대 집회를 열기도 했다.
대타협기구에서는 연금 개혁의 기본 틀과 방향, 그에 따른 구체적 방안들이 제시되고 시각차도 충분히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논의를 진지하고 심도 있게 전개해야 한다. 이 논의는 최소한 두 가지 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먼저 공무원연금 개혁의 근본
취지에 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공무원연금 개혁은 불안한 재정안정성 때문에 불거졌다. 보험료에 비해 연금을
많이 받게 설계돼 국민 세금에서 하루 90억원 이상 보전받고 있다. 자립성을 갖추고 지속가능한 연금재정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그렇다고 사회안전망 역할을 망각해서도 안된다. 연금재정의 안정을 위한 개혁이라 하더라도 공적 연금의 기능을 잃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공무원들의 노후소득을 최대한 보장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공무원연금 지급률을 무조건
국민연금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하향 조정하는 것도 곤란하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330월] 미적대는 공무원연금 개혁, 국민들이 보고 있다
끝내 공무원연금 개혁작업이 국회 특위로 넘어갔다. 여당과 야당, 정부, 공무원노조 등이 참여했던 대타협기구가 지난 28일
시한까지 협상안을 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 특위 산하에 공무원노조와 전문가 등도 참여하는
실무기구를 만들어 다시 협의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간을 벌었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
이미 공무원연금 개혁 시안들은 충분히 나와 있다. 정부안에 이어 새누리당안, 새정치민주연합안, 전문가안 2개 등 모두 5개나
된다. 그렇지만 일반 국민으로선 이들 시안이 각각 무슨 효과가 있고, 어떤 점에서 다르다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공무원연금공단을 통해 시안에 대해 이미 시뮬레이션을 했지만,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당초 약속과는 달리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합의안이 나온다 해도 국민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당초 취지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터다. 현행대로 가면 정부의 재정부담이 너무 커져 연금
자체가 존속하기 어려워 개혁하자는 것인데, 관건인 재정부담 절감효과와의 상관성은 가린 채 기여율 지급률 소득대체율 등 이른바
모수에 대해서만 이런저런 수치들이 난무할 뿐이다. 배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의
방향성에 대한 합의조차 돼 있는 것 같지 않다. 낸 돈 대비 받는 연금의 비율인 수익비만 해도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보다 훨씬 높아
이 틀을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돼 있다.
개혁다운 개혁안이 나와야 한다. 이미 정부 부담금과 공무원이 내는 기여금 수입으로 연금 지출을 충당하지 못해 정부가 막대한
보전금을 투입하고 있다. 2014년에 2조5000억원으로 불어났고, 2020년 6조6000억원, 2024년 9조7200억원으로
급증할 것이란 게 정부 추산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새정치민주연합도 적극 나서야 한다. 장차 집권하면 똑같은 상황을
맞게 된다. 공무원연금 다음엔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이 기다린다. 더는 미룰 수 없다. ■ 무상급식 논쟁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330월] 잿밥에만 관심쏟는 새누리당의 무상급식 침묵
'유능한 자는 행동하고 무능한 자는 해설한다'는 서양 격언이 있다. 4월부터 예산 지원이 중단될 예정인 경상남도 지방자치단체의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마땅히 사회적 담론의 주역이 돼야 할 집권 새누리당의 처신을 보면 혹여 무능한 자의 범주에도 끼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다. 그들은 해설은커녕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중이다.
경남 지자체는 지난해까지 무상급식 지원금으로 경남도 교육청에 주던 도비와 시군비 등 643억원을 4월부터 중단하는 대신
저소득계층 10만명에게 복지혜택을 집중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취약계층 학생들에게는 연간 50만원씩의 교육비가 새로 지급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나 경남 지역 일부 시민단체들의 반발이다. 새정치연합은 문재인 당 대표와 홍준표
경남지사의 18일 회동 이후 연일 비판을 쏟아내고 있으며 일부 시민단체는 경상남도가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중단하고 그 예산으로
시행하려는 서민 자녀 교육지원사업과 조례안을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소위 진보를 표방한다는 새정치연합이나 시민단체들이 내세우는 반대 논리다. 우리 사회는 지금 소득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어 이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를 놓고 모두가 고민하는 중이다. 그런 면에서 서민·취약계층에 대한 복지 확대는
진보세력이 추구하는 소득 양극화 해소의 유력한 방안이기도 하다. 재분배 효과가 클 뿐 아니라 교육평등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처신은 야당이나 시민단체들보다 더 한심하다. 그저 다가오는 4·29 재보궐선거에 엉뚱한 불똥이라도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할 뿐이다. 심지어 당내 일각에서는 홍 지사가 괜스레 평지풍파를 일으킨다는 불만까지 제기한다고 한다. 무상급식 자체가
애초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라면 지금이라도 이를 바로잡겠다고 나선 홍 지사에게 고마워해야 마땅한 것 아닌가. 옳은 것도 옳은
것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집권 여당의 모습이 모두를 절망케 한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325수] 제각각 지자체 복지정책, 정부가 중심 못 잡으니
지난 주 경기 성남시의 무상 산후조리지원 조례와 예산안이 시의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시의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만으로
강행처리됐을 만큼 논란이 큰 사안이어서 추후 복지부와의 협의가 순탄치는 않을 전망이다. 사업은 시내 3곳의 산후조리원에서 연간
2,000명 정도의 산모에게 2주씩 무상 산후조리서비스를 제공하되, 이용 못하는 산모에게는 50만원씩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시는
지원금을 150만원 수준까지 늘려는 등, 4년간 376억 원 정도 들것으로 보고 있다. 성남시는 여기 더해 무상 교복지원도 계획
중이다.
앞서 경남도가 무상급식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고 선별지원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연일 거센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 등교까지 거부하는 등 우려했던 극단적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복지정책 방향상 완전히 정반대되는 지향이 두
단체장에 의해 돌발적으로 ‘실험’되는 양상이다.
물론 복지철학이 다른 두 단체장이 정치적 책임을 감수하고 각기 옳다고 생각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행위 자체를 무조건 뭐라 할 건
아니다. 지방자치의 취지도 원래 그런 것이고, 각 정책들도 나름의 명분과 논리를 갖추고 있다. 다만 무상 산후조리지원이 실제로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지, 또 선별 급식지원을 통해 절감되는 예산만으로 교육환경 개선이 가능한지, 해당 정책들이 당장 시ㆍ도정의
최우선순위에 놓을 만큼 상대적으로 화급한 것인지 등에 대해 충분한 숙고와 공론화 없이 일방 추진된 모양새는 잘못됐다. 두 건 다
정치적으로도 의심 받는 이유다.
문제는 복지가 늘 정쟁으로 치닫는 현상이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먼저 큰 가닥을 잡고, 그 틀 안에서 지자체별 사정에 따라
미조정하는 게 가장 좋은 형태임은 말할 것도 없다. 경남도의 선별급식 전환은 이미 전국적 정치쟁점이 돼있고, 성남시 건도
중앙정부와 협의 결론을 내지 못할 경우 사회보장위원회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 과정 전체가 정쟁의 난타전 소재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역시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 최근 복지ㆍ증세 논쟁이 본격적으로 불붙었을 때도 결국 구체적 계수조차 논의에 올려보지 못한
상태로, “증세 없이 복지하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흐지부지 됐다. 복지방향 설정은 우리사회가 현단계에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정치적 유불리 따위로 가벼이 다루거나 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래선 지자체장들이 저마다 정치적 효과를
염두에 둔 돌출정책을 내놓아 복지문제 전체를 어지럽힐까 걱정된다. 정부 차원에서 어떻게든 나서 중심을 잡고 논의를 정리해줘야 할
이유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겨레신문 사설-20150330월] 교육부가 ‘성 소수자 차별’을 조장하려는가
교육부가 체계적인 성교육을 위해 ‘성교육 표준안’을 새로 도입하면서 성 소수자 관련 내용을 일선 수업에서 제외하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진일보한 표준안을 내놓지는 못할망정 기존 성교육 매뉴얼에 포함돼 있던 내용조차 배제시킨 것이다. 이는 성 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용과 연대의 정신을 가르쳐야 하는 교육 당국의 책임을 저버리는 처사다.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는 이미 법적인 요청이자 국제사회의 기준이 된 지 오래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평등권 침해의 유형으로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인종 등과 함께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가입한 유엔
어린이·청소년권리협약도 성적 지향을 근거로 한 차별을 금지한다. 이런 내용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건 당연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성
소수자들이 청소년 시절 학교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배우지도 존중받지도 못하고 오히려 따돌림 등 실질적 차별에 노출돼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관련 교육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지난해 한 조사에 참여한 18살 이하 성 소수자 가운데 45.7%가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고 답했을 정도다.
대중문화를 비롯해 사회·문화적으로는 성 소수자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지는 반면 일부 종교계는 더욱 극렬한 반대 목소리를 냄으로써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현상도 감안돼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 소수자와 관련된 내용을 학교 교육에서 배제하는 것은
정부가 차별의 논리를 공인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앞장서서 차별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교육부의
이번 결정은 종교계의 반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는데, 특정 종교의 시각이 국가 교육정책을 좌우하는 것 또한 헌법이 정한 정교분리
원칙에 비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 소수자 관련 교육은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관계에서 차별을 배격하고 배려를 북돋는 시민교육의 일부분이다. 이런 내용조차 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하게 한다면 21세기 문명국가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일이다. [중앙일보 사설-20150330월] AIIB 가입을 국익 신장의 기회로 삼아야
우리나라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창립회원국으로 가입하기로 함에 따라 국내 기업들이 아시아 지역의
인프라 개발 사업에 참여할 기회가 활짝 열렸다. 우리가 미·중 사이의 미묘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AIIB 가입을 적극 지지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경제적 실익을 놓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AIIB 가입 결정만으로 그러한 기회가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AIIB의 공식 출범 때까지 우리의 실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세심한 전략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AIIB의 출범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아시아 인프라 개발 시장은 더욱 판이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신설되는 AIIB 간에 경쟁 구도가 형성되면서 아시아 각국이 구상해온 각종 인프라 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력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ADB는 아시아 지역의 인프라 투자 수요가 2020년까지 매년 7300억 달러(약
8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중국이 추진하는 ‘신(新)실크로드 건설사업’이 대표적인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다. 도로와
항만, 댐과 발전·송전·배전설비 등 아시아 각국이 필요로 하는 인프라 건설사업은 무궁무진하다. 이런 대규모 인프라 투자 사업에는
건설·토목은 물론 철강과 소재, 화학제품, 물류 및 운송까지 우리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분야가 모두 포함된다. AIIB 가입을
계기로 국내 기업의 아시아 인프라 시장 참여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국가적 전략과 대비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자면 우선 정부는 AIIB 창립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지분율을 가급적 많이 확보해 우리나라의 발언권과 영향력을 높이는 한편,
AIIB의 지배구조 면에서도 우리의 위상을 높일 수 있도록 협상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국내 기업들도 AIIB가 발주하는
사업에 참여 기회를 넓힐 수 있도록 국제 수준과 관행에 맞춰 입찰과 수주·시공 능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는 AIIB
가입을 국익 신장의 기회로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330월] 이 전 대통령, 사저에서 대통령기록 ‘불법 열람’ 했나
전직 대통령의 재임 중 기록물에 대한 온라인 열람권은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 기록물 유출 사건의 핵심 논란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이 전직 대통령에게 열람을 위한 편의와 시설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음에도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 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였다. 국가기록원은 온라인 열람이 가능하도록 해달라는 노 전 대통령의 요구를 “보안상 문제가
있고 시설을 만드는 데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며 거절했다.
그런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달랐다. 이 전 대통령은 퇴임하기 전날인 2013년 2월24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저에 온라인 열람
장비를 설치한 것으로 최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국가기록원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결과 드러났다. 사저에 온라인 열람에
필요한 장비를 설치한 것은 2010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시행령에 전직 대통령의 온라인 열람권을 보장하는 조항이 신설돼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전임자의 열람권 행사를 ‘불법 유출’이라며 각종 정치적 공세와 법적 고발조치 등으로 맹공했던
전비(前非)가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사과 한마디 정도는 있어야 한다.
최근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대통령지정기록이나 비밀기록으로 관리됐을 것으로 유추되는 내용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고 해서 많은 의혹과 비판을 산 바 있다. 이번에 사저에 온라인 열람 장비를 설치한 것이 확인됨으로써 의혹이 또
하나 추가된 셈이다. 전직 대통령의 온라인 열람권은 지정기록물과 비밀기록물을 제외한 기록물에만 한정된다. 회고록 내용과 이 전
대통령 측이 밝히는 작성 과정 등을 보면 사저에서 지정기록물을 열람한 정황이 농후하다.
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국가기록원은 이 전 대통령 측이 회고록을 집필하면서 기록을 열람한 과정과 내용을 확인하는 정보공개청구에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 측과 국가기록원 간에 주고받은 공문서도 없다는 답변이 왔다고 한다. 의혹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노 전 대통령의 열람권 행사에 한없이 엄격했던 이 전 대통령 측과 국가기록원이 이 전 대통령 기록물과 관련해 이처럼 각종
의혹과 구설에 시달리는 모습이 딱하다. 떳떳하다면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든가 관련 정보를 공개해 의혹을 해소하는 게 바람직하다.
[경향신문 사설-20150330월] 외교안보 사령탑 김관진 실장이 안 보인다
청와대는 2013년 12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상임위원회 실무조정회의, NSC 상설 사무처 신설을 발표하면서
“동북아 전략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청와대 진단대로 주변국 갈등은 점차
심화되었고 동북아 전략 환경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특히 미·중 경쟁이 심화되면서 한국이 중심을 잡고 평화를 지키는 외교역량의
극대화가 절실해졌다.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국 배치 문제, 러시아 전승절 70주년 기념식 참석 문제 등
새 도전 과제들이 한국 외교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는 능동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았다. 미·중 사이 눈치 보는 것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이
미국의 견제 눈초리가 사라질 때를 기다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하기로 한 것은 수동적 외교의 극치였다. 요즘처럼
동북아 갈등이 복잡하게 전개될 때는 외교안보 사령탑이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지금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국가안보실장은 외교부 장관, 국방부 장관,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등 외교안보 책임자로 구성된 NSC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게다가 안보실장은 산하에 NSC 사무처장을 겸직하는 1차장과 외교안보수석 비서관이 겸직하고 있는 2차장까지 두고
있다. 김 실장은 외교안보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막중한 자리에 있는 그가 전혀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드러난 그의 활동은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 피습 때 긴급 NSC 상임위원회를 연 것뿐이다. 개인의 돌출 행동에 상임위까지
연 그가 최근 국가안보의 중대 과제를 놓고 상임위를 열었다는 소식은 없다.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남북관계, 한·중관계 차원에서
균형 있게 통제하고 지도하는지도 불분명하다. 시민을 불안케 하는 건 동북아 갈등뿐이 아니다. 전혀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외교사령탑도 불안 요소다. 사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안보실장, 국방장관, 국정원장, 주중대사 등 외교안보의 핵심 직위에 군
출신을 중용한 결과이기 때문에 김 실장 탓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박 대통령은 외교안보팀이 지금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점검해보고, 외교안보 사령탑을 적임자로 교체해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330월] 저유가 속의 공공요금 인상 러시
서울 등 수도권의 대중교통 요금을 비롯해 전국 지자체의 상하수도 요금 등 공공요금이 분야에 따라 최대 36%까지 인상된다고
한다. 공공서비스의 만성적 적자 타개가 요금 인상의 목표인 만큼 재정 압박을 받는 형편이 비슷한 다른 지자체도 따라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가계의 소득 증가가 제로에 가깝다는 사정을 고려하면 공공요금 인상은 자제돼야 마땅하다. 또 이번
인상안이 최근 정부가 사교육비· 통신비의 동결과 자동차 부품비의 인하 등으로 지출을 줄여 가계의 실질소득을 사실상 증대하겠다는
대책과도 엇박자를 내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전국 지자체에 따르면 경북 안동, 전북 전주, 충북 청주, 경기 의정부 등이 조만간 상하수도 요금을 대폭 인상한다. 안동시는
상하수도 요금의 현실화를 위해 4월부터 하수도와 상수도 요금을 각각 34.6%와 10%를 인상하기로 했다. 전주시는 4월부터
하수도 요금을 36%, 김포시는 올해 30%를 인상한다. 제주도는 5월부터 상하수도 요금을 각각 9.5%, 27% 인상할
예정이다. 20% 이상의 대중교통 요금 인상도 문제다. 서울시는 조만간 지하철과 시내버스는 물론 광역버스 요금을
200~500원가량 인상하는 안을 검토한다고 알려졌다. 경기도도 다음달 최대 500원의 버스요금 인상 여부를 결정한다고 하니
수도권의 대중교통 인상은 기정사실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에서 50달러 안팎으로 3분의1 토막이 난
점을 살피면 대중요금은 오히려 인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나온다. 특히 최근 3~4년 사이 서울에 직장을 갖고도 주거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수도권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적지 않은 점을 생각할 때 광역버스 요금을 25% 가까이 올리는 것은 너무 심하다.
최근 물가상승률이 2%대인 만큼 상승폭은 최소화해야 한다.
지자체들이 유가 하락 등으로 불황 속의 물가하락(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D의 공포’가 거론되는 틈을 타 공공요금 등을
일방적으로 인상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물가안정을 목표로 하는 중앙정부의 간섭이 매우 줄어든 탓이다.
그러나 공공요금의 대폭 인상은 서민 가계의 주름살을 깊게 할 수밖에 없다. 특히 경기 침체기에는 부자나 서민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똑같이 적용되는 공공요금 인상은 자제돼야 한다. 불가피하다면 마땅히 최소한의 선에서 결정돼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330월] 홍콩 증시로 옮겨가 크게 성공한 코웰의 경우
세계 3위 카메라모듈 제조업체인 코웰이홀딩스(코웰)가 31일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한다고 한다(▶본지 3월28일자 A1, 6면
참조). 한국계 기업으로 홍콩에 상장하는 첫 사례인 데다 3년 전 코스닥을 떠난 기업이라는 점이 우리의 특별한 관심을 끈다.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가치를 평가받겠다”는 것이 코스닥 상장 폐지 사유였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코웰의 홍콩증시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은 5억달러(약5500억원)로 코스닥을 떠날 당시 시가총액(900억원)의 6배 규모다. 올
매출이 1조원을 웃돌 것이라는 이런 유망기업이 왜 코스닥에선 주목받지 못했는가. 곽정환 코웰 회장은 1992년 봉제인형 제조업체를
차려 1990년대 말 매출 2000억원짜리 중견기업으로 키워낸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인형 제조업에 미래를 걸 수 없다며
2003년 당시 매출 10억원대에 불과하던 코웰전자를 인수했다. 그 뒤 코웰은 2008년 매출이 500억원으로 불어나며 그 해
코스닥에도 입성했다.
코웰은 코스닥 상장 후 3년간 순이익이 4배 이상 크게 증가했지만 주가는 제자리걸음이었다. 그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코웰이 애플
협력사라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게 한국의 주식시장 수준이다. 때마침 한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코스닥 상장 폐지 후 홍콩
재상장’ 카드를 내밀며 글로벌 자본시장으로 갈 것을 제안하자 코웰은 미련없이 한국을 떠났던 것이다.
코스닥이 이런 기업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건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투기적 시장흐름이 구조화돼 있는 데다
엉터리 실적 전망이 판치는 등 제대로 된 분석 보고서조차 찾기 어렵다. ‘코스닥 디스카운트’라는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상장에
따른 자금조달, 상장유지 등에 규제가 많기는 한국 시장이 유별나다. 우량기업들이 상장을 꺼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다른
기업도 국내시장을 떠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코스피, 코스닥 등 거래소 제도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빈말이 아니길 바란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330월] 단통법 6개월, 불법 여전하고 소비자 혜택은 줄고
4월1일이면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시행된 지 6개월이 된다. 지난주 미래창조과학부는 평균 이동전화 요금이 8,500원가량
내려갔다는 통계자료까지 내며 단통법의 성과를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불법 보조금은 사라지지 않고
이용자 차별도 여전하다고 느끼고 있다.
실제로 이통사 대리점 등 현장에서는 법 시행 후에도 불법 보조금 지급이 비일비재하다. 각종 편법을 동원해 법에 규정된 것보다
많은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SK텔레콤은 영업점의 과다 보조금 지급으로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영업정지에다 과징금까지
부과 받았다. 신제품 출시를 전후해 이통사의 불법 보조금이 판치고 정부는 뒷북 제재를 하는 악순환이 법 시행 뒤에도 반복된
것이다.
공평한 보조금 지급을 유도해 이용자 차별을 없애겠다는 법 도입 취지가 무색하다. 사정이 이러니 약삭빠른 사람은 여전히 단말기를
싸게 사고 대부분은 이전보다 더 비싸게 사게 됐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겠는가. 지난 6개월의 성과는 단말기 구입가격의 상향
평준화라는 비아냥마저 나온다.
무엇보다 문제는 부작용이 자영업자에게까지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동통신유통협회에 따르면 대리점·판매점이 줄폐업 위기에 처해
있다. 휴대폰 가격이 비싸졌다고 느끼는 소비자들이 주머니를 닫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졸업·입학 시즌인 지난달과 이달은
전통적으로 이통 시장 성수기로 꼽히지만 되레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호갱님'이 사라지고 요금인하에다 서비스의 질이 좋아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만 되풀이할 것인가. 실효성
없는 보조금 상한선 등 과잉규제만 고집하지 말고 소비자와 시장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330월] 삼성의 새로운 '금융 프로젝트'를 주목하는 이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베이징에서 중국 최대 국영기업인 시틱(CITIC)그룹 창전밍 대표를 만나 금융사업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이 부회장은 창 대표에게 "증권에 이어 자산운용의 지수연동형 펀드(ETF) 사업제휴 등 다양한 금융 분야로
협력을 넓히자"고 제안했다는 소식이다. 이 부회장은 최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금융도 국내에 안주하지 말고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세계 시장 개척을 통해 급성장했듯이 금융회사들도 좁은 국내 시장을 벗어나 글로벌 무대에서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중국 금융사업 확대는 의미가 크다. 중국을 발판으로 삼아 금융에서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일류회사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금융의 삼성전자를 키우는 일은 삼성전자의 '도전 DNA'를 이식하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미 삼성증권·카드 등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강도 높은 체질개선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핀테크를 중심으로 금융과 정보기술(IT)의 접목이 진행되면서 삼성
내부에서 금융에서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해외 인수합병(M&A)에 대한 강한 의지도
엿보인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세계 금융산업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는데 우리 금융환경은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금융산업에 '뭔가 고장이 났다'고 할 정도다. 국내 선두권인 삼성 금융계열사조차 세계 시장에서는
힘이 달린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산업은 해외 시장 진입장벽이 높아 민간의 노력만으로는 성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다. 그럴수록
민관의 유기적인 협조가 절실하다. '정부-기업-금융사'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로 해외 진출에 성공한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세계의 창/이영채(논설위원)-20150330월] 1F 피폭노동자들의 절규
3·11 원전사태 4년을 맞은 지난 11일, 후쿠시마시에서 열린 ‘원전 필요없다! 생명의 모임’ 집회에 참여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피난민들의 가설주택생활과 건강 문제, 방사능 오염 쓰레기의 소각 문제, 전국적인 원전 재가동 반대 주민운동의 현황 등
다양한 보고가 이루어졌다. 그중에서도 ‘원전 필요없다! 후쿠시마의 여성들’ 소속의 사토 쇼코가 발표한 후쿠시마 제1원전(1F·이하
제1원전) 피폭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 대한 설문조사 분석은 현재진행형인 후쿠시마 원전사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도쿄전력은 제1원전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2012년 5월부터 2014년 9월 사이에 모두 5번에 걸쳐 설문조사를 했다. 몇 가지
주요 항목의 개괄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피폭노동과 고용보장 측면이다. 5회째(2014년 9월) 설문 결과를 보면,
제1원전 노동자들은 지금도 현장의 노동에 불안(69.1%)을 느끼고 있고, 그 이유로 가족에 대한 피폭의 영향(87.7%)과
피폭량의 증가에 따른 해고(10%)를 거론했다. 2014년 9월 말까지 제1원전에서 일한 3만8454명 중 3.5년간 피폭량
20mSv 초과 7726명(5mSv×연수는 백혈병 산재인정 기준), 50mSv 초과 2071명(다발성 골수종 산재인정 기준),
100mSv 초과 174명(위암, 식도암, 폐암 등 산재인정 기준)이었다. 또한 2014년 8~9월 한달간 20mSv를 초과한
노동자는 140명이며 도쿄전력 직원 1인을 제외한 전원이 하청업체의 파견노동자였다.
이는 파견노동자들이 단기간에 고선량의 피폭에 노출당하고 있으며, 이후 기준을 초과하면 해고하는 형태의 ‘일회용 고용’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제1원전 노동자들은 작업장의 방사능 현황과 자신의 피폭량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제공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기적인 고용안정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 각자에게 건강수첩을 교부해 정기적인 건강진단을
실시하고, 체계적인 인원배치 계획이 요구되고 있다.
둘째, 임금지급 현황이다. 2회(2012년 10월) 설문 결과를 보면, 제1원전 노동자 3186명 중 1533명(48.1%)이
원전사태 이전과 비교해서 임금이 늘어나지 않았다고 답했으며, 25.5%만이 늘었다고 답했다. ‘현재 임금에 제1원전에서의 작업이
특별수당으로 가산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 가산되어 있지 않다(32.1%), 잘 모르겠다(47%)로 답변해, 도쿄전력과 원청
파견회사 사이의 거래 관계가 공개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9월 설문조사도, 특별수당 구조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53.2%), 실제 증가했다(32%)고 답한 이는 많지 않았다. 체르노빌은 국가가 원전노동자들의 주택과 임금을 직접
담당한 것에 비해 후쿠시마의 경우 인력 파견회사가 고용주가 됨으로써 제1원전 현장노동자들에게 공정한 임금이 지급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셋째, 노동환경 측면이다. 작업환경에 대해 제1원전 노동자들은 ‘파편의 산란, 추락 및 낙하물에 대한 불안’(1회 설문),
‘노동시간이 길다(휴식시간이 없음)’(4회), ‘현장에서의 사고와 부상의 불안’(5회)을 계속 거론했다. 2014년 제1원전에서
발생한 산재는 약 40건으로 전년에 견줘 3배 이상 늘었다. 올해 1월19일에도 오염수 저장탱크에 파견노동자가 떨어져 사망했으나,
희생자가 낙하방지용 허리띠를 착용한 흔적이 없었다. 도쿄전력은 제1원전에서 산재사고가 증가한 것은 ‘작업원의 절대수가 증가하여
개개인에게 안전수칙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을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다. 2013년까지 제1원전의 1일 평균 작업종사자가 약
3천명이었던 것에 비해, 2014년도에는 오염수 대책을 위한 토목공사가 본격화하면서 평균 6천명이 현장작업에 종사하고 있다.
제1원전의 경우 후쿠시마 현지 고용이 약 50%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주민들은 지역에 대한 애착감 또는 일자리를 찾아서 다시
후쿠시마 원전으로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다른 파견노동자들처럼 불공정한 임금과 부족한 정보 제공에 의해 또다시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제1원전 피폭노동자들의 절규가 어디 후쿠시마뿐이겠는가. 한국도 23곳의 후쿠시마를 가지고 있으며 그 속에는
비정규직 피폭노동자들의 절규가 지금도 흐르고 있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주철환(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20150330월] 상식 수준의 연민
나이 들어 그런가. 강아지가 점점 좋아진다. 예전엔 ‘개 닭 보듯’ 했다. 지금은 누가 강아지랑 걸어가면 몇 발자국 따라간다.
‘TV동물농장’에 강아지가 나오면 시선고정이다. 이건 약과다. 충무로 근처에 가면 일부러 애견거리를 거닐 지경이 되었다.
개를 키우면 되지 않느냐고? 그럴 계획은 없다. 엄두가 안 난다. 아파트에 사는 데다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 솔직히
고백할까? 키우는 건 좀 귀찮다. 여러 가지로 번거롭다. 그런데도 강아지를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애틋하다. 가끔씩 눈에 밟히고
마음을 긁힌다.
이쯤 해서 나의 이기적인 취향을 알아차렸을 거다. 난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일 뿐 사랑하는 게 아니다. 좋아하는 건 내가 좋은
것이고 사랑하는 건 상대가 좋은 것이다. 꽃이 좋아서 꺾고 그걸 화병에 담고 며칠 지나 싫증나면 분리수거하는 사람이 꽃을
사랑한다고 우길 수 있나? 성장을 돕고 입장을 존중해야 사랑이다. 동물원에서 과자 던져주는 정도론 어림없다.
날이 더워지면 누구는 또 물을 것이다. “멍멍이 좋아해?” 그 친구는 개를 음식으로 간주한다. 개가 가엾지 않느냐고 물으면 소가 더
불쌍하다고 받아칠 것이다. 그러니 그냥 가볍게 거절하면 시간이 절약된다. 소신을 나무라면 얘기가 길어진다.
키운다고 다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짖는다고 성대 제거, 번식 막는다고 수술 동의한 사람이 애견인일까? 그러고 보니 애견거리도
진짜 개를 사랑하는 거리는 아닌 것 같다. 어미와 이별하고 좁은 곳에 갇혀 연명(?)하는 개들의 처지를 상팔자라 여길 순 없다.
친구들이 팔려가는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잠을 자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유난히 자는 개들이 많다.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가 『아주 상식적인 연민으로』라는 책을 냈다. 연민이라는 단어가 심장을 두드린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둘러보면 사람 사이에도 연민은 사라지고 의심(“진짜 아프냐?”)은 요동친다. “아프건 말건 내 알 바 아니고.” 이렇듯
무정한 건 ‘쿨’한 게 아니다. 그냥 차가운(cold) 거다.
체형, 체격, 체질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보다 훨씬 중요한 게 체온이다. 정상 범주에 못 미치거나 넘어서면 그땐 죽음이다.
쉼터, 배움터, 일터를 살아 있는 봄날의 온기로 채우려면 상식 수준의 연민이면 충분할 듯싶다. 흐뭇하지 않은가. 꽃(웃음꽃)도
피고 열매(보람)도 따고. [경향신문 칼럼-여적/김석종(논설위원)-20150330월] 검색의 시대
1997년 체스 세계챔피언 카스파로프와 IBM 컴퓨터 ‘딥 블루’가 체스 대결을 벌였다. 결과는 딥 블루의 승리였다. 2011년
미국 ABC TV 퀴즈쇼 <제퍼디>에서 IBM 컴퓨터 ‘왓슨’이 인간 퀴즈챔피언을 이겼다. 체스나 퀴즈처럼 사고와
판단력이 중요한 영역에서도 컴퓨터가 사람을 압도하게 된 것이다.
검색 만능 시대다. 생각하고 사유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무엇이든 인터넷 검색 포털에 물어보면 즉시 답이 나온다. 컴퓨터와
스마트폰만 있으면 이 세상 모든 지식과 정보를 다 가르쳐준다. 풍부한 상식을 뽐내며 ‘걸어다니는 사전’이라고 불리던 이들도 인터넷
검색을 따라갈 수는 없다. 머리 싸매고 외울 필요가 없다 보니 인간의 지적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검색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옳고 그름의 판단조차 엷어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2500년 전 붓다는 왕자로 태어나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도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가’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는 고착된
생각, 굳어진 관습, 잘못된 삶의 행태와 완전히 결별하면서 위대해졌다. 붓다는 ‘나의 말도 의심하라’고 가르치며 ‘사유’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붓다의 가르침은 검색의 시대에 더욱 유효한 게 아닐까.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검색으로 남의 지식을 빌려올 수는
있어도 생각의 힘, 지혜를 키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남 해남 일지암의 법인 스님이 펴낸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은 검색이 지혜로운 삶의 걸림돌이라는 걸 일깨운다. 검색으로 상징되는 고착화된 생각에서 벗어나 내적인 성찰로 마음을
돌릴 때 진정한 행복과 성숙한 삶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검색보다 사색이 오늘을 살아가는 가장 든든한 생존무기이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소통 부재와
넘쳐나는 독기(毒氣) 또한 사유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지 못한 데 따른 병폐라고 진단한다. “아프다고, 괴롭다고 말하는 이들은
위로받기 전에 냉엄하게 스스로를 진단해 보라. 내 삶은 방향을 제대로 잡았는가. 나는 지금 남의 삶을 눈치 보며 흉내 내고 있지는
않은가.” 검색의 시대, 개인과 세상을 바꾸는 사유의 회복이 절실하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구본영(논설고문)-20150330월] 고용 없는 성장의 그늘
대학생 아들로부터 귀동냥하는 요즘 대학가의 풍속도는 삭막하다. 경영·리더십 분야 등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동아리에 가입하기
위해 치르는 면접장의 분위기는 살벌할 정도란다. 학점 경쟁을 하다 보니 밥조차 혼자 먹는다는 뜻의 ‘혼밥족’까지 생겨나고
있다니….
청년 구직난 시대에 이런 살풍경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이른바 ‘5포(연애·결혼·출산·취업·주택 포기)세대’란 말이 괜히
나왔겠나. 낭만이 사라진 대학가의 풍경도 취업 빙하시대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는 청년들의 눈물겨운 적응 과정일 게다. 바늘구멍 같은
청년 고용시장이 마침내 ‘호모 솔리타리우스’(외로운 인간)란 한국형 신인류를 탄생시켰다는 보도까지 나오는 판이다.
정부도 청년 취업난의 심각성은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각료들이 “일자리 주도 성장이 옳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지 않은가. 다만 고용 확대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2012년 2.3%였던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2013년
3.0%, 지난해엔 3.3%로 2년 연속 상승했다. 하지만 청년 실업률은 2012년 8.3%에서 해마다 상승해 올 2월에는 무려
11.1%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고용 없는 성장’이 가시화된 느낌이다. 사무 자동화와 정보기술(IT)의 발달로 고용은 외려
줄어들 것이란 경제학자들의 불길한 예언이 들어맞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 박 대통령이 청년실업 해소 방안의 일환으로 적극적 중동 진출을 주문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중동,
네가 가라’라는 청년층 일각의 냉소에 편승한 듯 “청년들을 중동으로 내모는 것은 상처 난 곳에 소금 뿌리는 격”(서영교
원내대변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현 정부가 하는 일이면 뭐든 대안 없이 반대하는 차원이라면 한심한 일이다.
1970∼80년대처럼 건설 노무자 위주가 아닌, 원전이나 IT산업 중심의 중동시장을 진취적으로 선점하자는 게 청년 중동 진출론의
본뜻이라면….
그렇다 하더라도 고용 없는 성장은 전 지구적 현상이라니 ‘제2 중동 붐’에 올라타는 게 만병통치약일 순 없다. 고용 없는
성장-일자리 축소-결혼 기피-저출산-성장 둔화’라는 악순환이 지구촌의 큰 흐름이라지 않은가. 중동 산유국들이 종전의 단순 시공
사업에서 벗어나 이제 금융과 IT 등을 망라한 종합시행 방식을 요구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 단순 노무자 시장과 달리
첨단 시장에선 박 대통령의 희망대로 “대한민국이 텅텅 빌” 정도의 일자리는 없다고 봐야 한다.
이미 고용 없는 성장이란 세계 문명사의 대전환기에 선 우리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는 듯한 정치권의 행태가 딱해
보이는 이유다. 정략과 표 계산에 눈이 어두워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서비스산업법 하나 절충해 내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 칼럼/오형규(논설위원)-20150330월] 커닝
조선 후기 야담집 청구야담에는 ‘시골 유생을 속여 박생이 과거에 합격하다(騙鄕儒朴生登科)’라는 이야기가 있다. 박생이 과거시험 전
거벽(巨擘·대리시험자)과 사수(寫手·대필자)를 찾아내 협박해 급제한다는 내용이다. 박생은 암행어사로 유명했던 박문수를 지칭한다.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과거제도의 실상을 엿볼 수는 있다.
숙종실록에는 성균관에서 과장(科場)까지 대나무통이 묻혀 있는 게 적발됐다는 기록도 있다. 시험문제를 끈에 매달아 내보내면 밖에서
답안을 써 돌려보내는 대리시험 수법이었다. 조선시대판 문자메시지 커닝이다. 이런저런 부정행위로 급제한 자들은 ‘뻐꾸기 현감’
‘뻐꾸기 당상’이란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시험 있는 곳에 빠지지 않는 게 커닝(cunning)이다. 커닝은 일본식 영어(간닝구)에서 유래했는데 본래 ‘교활한’이란
뜻이다. 영어로 시험 부정행위는 ‘cheating’인데, 이는 커닝뿐 아니라 도박 게임 등의 속임수까지 포괄하는 의미다.
시험결과에 따른 반대급부가 크면 클수록 커닝은 성행하게 마련이다. 과거급제는 곧 인생역전이었으니 커닝수법은 상상을 초월한다.
송나라 때 만들어진 인쇄본 좁쌀책은 알고보니 커닝용이었다. 청나라 때는 가로 4.5㎝, 세로 3.8㎝, 두께 0.5㎝에 불과한
커닝페이퍼 9권에 10만자를 담은 사례도 있다. 심지어 점심 도시락이나 콧속에까지 커닝페이퍼를 끼워넣기도 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커닝은 더 기승이다. 최근 중국 일부 학교에선 커닝 통제가 안 되자 학생들을 운동장에 4m 간격으로 앉혀 시험을
치르게 하고, 교사는 망원경으로 감시한 일도 있었다. 또한 IT기기를 이용한 커닝 예방을 위해 시험장에 전파방해장치,
금속탐지기까지 설치할 정도다. 며칠 전 인도에선 고교 입학시험 도중 학교 벽을 타고 올라가 커닝쪽지를 건네려던 학부모와 부정행위를
거든 교사 1000여명이 체포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출세욕과 엇나간 교육열의 합작품이다.
서양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은 모양이다. 미국 고교생 4500명 설문에서 74%가 시험 커닝 경험이 있고, 이 중 3분의 1은
반복적으로 커닝을 했다고 조사됐다. 3년 전 하버드대에서 125명이 기말고사 집단 부정행위로 적발되더니 이번엔 스탠퍼드대에서
대규모 시험 부정이 드러나 조사 중이라고 한다. 세계 최고 명문대생들도 시험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하긴 국내 대학에서의 커닝은
웬만해선 기사거리도 안 된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정상범(논설위원)-20150330월] 자전거 도둑
2차대전 후 폐허의 이탈리아. 안토니오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침대 시트를 전당포에 맡기고 어렵게 자전거를 구한다. 일자리를
찾았다는 안도감과 설렘도 잠시. 그는 벽보를 붙이다 자전거를 잃어버려 로마 시내를 헤맨 끝에 간신히 도둑을 잡았지만 자전거를
되찾지는 못한다. 주인공이 홧김에 다른 자전거를 훔치다 잡혀 군중들의 멸시를 받으며 아들과 함께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오는 모습은
영화 속 명장면 중 하나다.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이 만든 네오리얼리즘의 고전 '자전거 도둑'의 이야기다.
이 영화의 장면들과 달리 우리는 자전거 절도 행위에 별다른 죄의식이 없는 편인 것 같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옛말처럼 자전거란 함께 나누는 물건이라는 인식까지 청소년 사이에 퍼져 있다. 호기심이나 재미로 남의 자전거를 타다가 아무 곳에
버리거나 팔아먹는 이들도 많다. 공유경제(?)의 원조라고 불릴 만한 일이다. 하지만 자전거 인구가 늘어나고 가격도 비싸지면서
자전거 도난은 점점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인터넷 카페에는 수천만원짜리 자전거를 잃어버렸다며 하소연하는 글이나 이를 원천 봉쇄하는 갖가지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자전거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자전거에서 잠깐 눈을 떼는 순간 소유주가 바뀔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화장실에 갈 때도 자전거를 메고
가거나 침대 옆에 곱게 모셔두고 잔다는 이들도 많다. 자전거를 되찾겠다며 며칠 밤을 꼬박 새워 중고 사이트를 뒤지는 네티즌
수사대의 활약상까지 심심찮게 들려온다.
남의 자전거를 무려 18㎞나 끌고 간 50대 남성이 최근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은 자전거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데도 안장과
뒷바퀴를 든 채 집까지 가져갔다고 한다. 경찰이 8일에 걸쳐 66대의 폐쇄회로TV(CCTV)를 분석한 끝에 잡았다니 담당 경찰의
끈기에 혀를 내두를 따름이다. 경찰은 여세를 몰아 자전거 도둑 전문 수사팀까지 운영하겠다고 나섰다. 우리의 자전거 인식도 이제
바뀔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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