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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성완종 리스트 수사

■ 신임 총리 후보자, 황교안 법무장관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성완종 리스트 수사

 

[한국일보 사설-20150522금] 검찰, ‘성완종 리스트’ 남은 수사 제대로 하겠나

 

검찰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 대해 불구속기소를 결정했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 8명 중 처음으로 사법처리가 정해진 셈이다. 두 사람에 대한 기소 방침을 확정하면서 나름의 성과를 냈다는 평가도 있지만 봐주기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나머지 6명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두 사람의 불구속기소가 정치자금법 위반의 경우 수수한 금액이 2억 원 이내면 불구속으로 처리하는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홍 지사와 이 전 총리 모두 핵심 증인을 회유한 정황이 포착됐다. 증거인멸 정황의 유무는 구속영장 청구의 일반적 기준이다. 만일 일반 형사사건이었다면 이들은 당연히 구속되고도 남았을 터이다. 수사과정에서 구속된 경남기업 임직원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성 전 회장 측근들은 수사 초기 증거인멸 혐의로 잇따라 구속됐다. 불법자금을 조성하거나 전달한 주체도 아닌데 성 전 회장의 지시에 따라 서류를 폐기한 혐의가 적용됐다. 결과적으로 돈을 줬다고 폭로한 경남기업측 인사들은 구속되고 돈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인사들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거나 수사도 받지 않는 상황이 연출되게 됐다.

 

검찰 앞에는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나머지 정권 핵심 실세들에 대한 2단계 수사가 놓여있다. 하지만 검찰은 향후 수사 계획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남은 인물 가운데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은 2012년 대선자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다. 사안의 폭발력은 물론 연루자가 여러 명이어서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지 않을 수 없게끔 돼있다. 나머지 6명은 홍 지사나 이 전 총리와는 달리 증인이나 목격자가 없어 훨씬 어려운 수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검찰의 분명한 수사 의지가 요구된다. 권력 실세들의 부패를 밝혀내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이 필요하다. 살아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고 대선자금 수사를 머뭇거린다면 검찰에 대한 불신만 키우게 된다. 검찰 수사가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면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22금] ‘성완종 리스트’ 수사, 흐지부지 덮겠단 뜻인가

 

검찰이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고 한다. ‘성완종 리스트’의 8명 가운데 처음으로 수사결과가 나온 것이지만, 그런 결정의 이유는 석연치 않다. 나머지 6명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검찰의 이번 사건 수사는 유독 소극적이다. 검찰은 불구속 기소 방침을 밝히면서, 두 사람이 받은 돈이 정치자금법 위반죄의 구속영장 청구기준인 2억원에 못 미치고 증거인멸에 직접 개입한 증거도 드러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2억원이라는 검찰 내부 기준에 합당한 근거가 있어 보이지도 않거니와, 폭넓고 강력한 권한을 휘두르는 정치인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를 뇌물죄보다 가볍게 처벌해야 할 이유도 없다. 더구나 홍 지사 등에게는 대표적인 구속 사유인 ‘증거인멸 우려’가 분명하다. 홍 지사 측근들이 핵심 참고인을 회유하는 대화가 담긴 녹취록이 확보됐고, 녹취록에는 홍 지사가 회유에 관여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내용까지 있다. 그런데도 검찰은 자신들이 알아서 한 일이라는 측근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영장 청구를 포기했다. 관여 의혹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강제수사가 필요했는데도 수사를 멈췄다. 일반 형사사건에서 이 정도 정황이면 구속을 피할 수 없다. 이번 사건에서도 검찰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측근들을 증거인멸 혐의로 잇따라 구속한 바 있다. 돈을 준 쪽의 심부름을 한 이들은 서둘러 구속하면서도 정작 검은돈을 받은 쪽의 증거인멸엔 애써 눈을 감은 꼴이다. 이쯤 되면 범죄를 숨기라고 등을 떠미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의 나머지 6명도 계속 수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수사의 단서와 정황도 있다. 무엇보다 홍준표·이완구의 금품수수가 사실이라면 나머지 6명의 금품수수도 사실일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게 된다. 미적댈 이유가 없는데도 검찰의 수사 강도와 속도는 답답하기만 하다. 대선자금 수사에선 더 머뭇거리는 눈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흐지부지 덮으려 하면 검찰에 대한 국민 불신만 커지게 된다. 특검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 신임 총리 후보자, 황교안 법무장관

 

[한국일보 사설-20150522금] 장고 끝 선택에도 또 우려되는 黃 총리 후보자

 

박근혜 대통령이 새 총리 후보자로 황교안 법무장관을 지명했다. 지난달 27일 이완구 전 총리가 사퇴한 지 24일 만이다. 장고(長考)를 거듭한 끝의 선택이어서 무난한 평이 나와야 할 터인데, 현실은 다르다. 찬반을 유보하거나 싸늘한 눈길을 보내는 여론이 우세해 보인다. 황 후보자가 역대 총리에 비해 ‘대통령을 보좌해 행정각부를 통할할’ 역량이 떨어진다고 여겨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청와대가 발탁 이유로 든 그의 강점이, 국민이 기대했던 새 총리의 자질과 품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달리 말해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 변화를 꾸준히 요구해 온 국민의 바람에 비추어 이번 인선은 ‘앞으로도 지금처럼’을 고집하는 색채가 너무 짙어서다.

 

그의 지명을 발표하면서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황 후보자가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가 깊고, 사회전반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 정치개혁을 이룰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김 수석의 말대로 검찰 요직과 법무장관을 거친 그는 부정부패 척결을 통한 정치개혁, 즉 사정 정국 지휘의 적임자일 수 있다. 그러나 황 후보자는 ‘강직한 검사’출신 이기에 앞서 공안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박 대통령이 공안통치를 노골적으로 선언한 것”이라는 야당의 비난은 ‘공안통치’라는 과장된 표현 때문에라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공안통 경력은 법무장관과 달리 총리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균형감각’을 의심스럽게 할 만하다. 정권과 국가의 이익, 국민권익과 정부의 이해를 가리고, 제대로 형량(衡量)할 수 있는 감각이다. 법무장관으로서 그는 충성심과 강직성이 외려 독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따른 불법 정치자금 수사와 관련, 그는 특별사면이나 대선자금이 수사 대상일 수 있다고 공언했다. 원칙론적 언급이지만, 결과적으로 물타기로 비쳤다.

 

야당이 극력 반대 태세를 굳혀 국회 임명동의 과정의 진통을 예고한 것도 바로 이런 경력과 성향 때문이다. 청와대는 법무장관 임명 과정에서 한 차례 인사청문회를 거친 만큼 쉽사리 청문회를 통과하리라 여겼음직하다. 그러나 장관과 총리의 법적 지위는 현격히 다르다. 임명동의안 표결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낙관은 금물이다. 이미 걸러진 의혹도 다시 논란이 될 수 있다. 법무법인 재직 시절의 고액급여, 특검이 무혐의로 정리한 ‘삼성 X파일’ 관련 의혹 등이다. 무엇보다 두드러기와 비슷한 ‘만성담마진’이란 피부병으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는 병역문제는 끝내 깔끔하게 매듭되지 못한 이 전 총리의 병역 의혹과 맞물려 증폭될 수 있다. 이에 따른 여야 논란이 공무원연금 개혁 등에 불똥을 튀길 수도 있다.

 

황 총리 후보자의 지명에 대한 이런 우려는 결국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통치 스타일에 대한 의문과 다름없다. 총리 후보자 지명은 화합과 소통의 정치 자세를 과시할 모처럼의 기회였다. 그런 호기를 놓치고 정치권과 국민에 논란의 불씨를 던졌다. 안타깝고도 유감스럽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22금] 정권 보위용 ‘돌격 총리’라니

 

황교안 신임 총리 후보자에게는 ‘골수 공안통’이니 ‘미스터 국보법’이니 하는 여러 별명이 따라다닌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그가 보인 행적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정권의 충견’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통합진보당 해산,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의 선거법 적용 배제 등 정권의 고비마다 언제나 그 중심에는 황 후보자가 있었다. 그는 주인이 싫어하는 상대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고 물어뜯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 결과는 언제나 주인을 흐뭇하게 하는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차기 총리 후보자로 황교안 법무장관을 지명한 뜻은 분명하다. 이 시기 총리의 가장 중요한 자격을 ‘충성심’과 ‘돌격정신’으로 본 것이다. 통합이니 소통이니 하는 말은 애당초 박 대통령의 관심 밖이었던 게 분명하다. 어떻게 하면 권력기반의 동요를 진정시키고 자신의 위상을 공고히 할 것인가가 박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였던 듯하다. 사실 황 후보자는 법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도 ‘대한민국의 법무장관’이 아니라 ‘정권의 법무장관’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제 총리가 되면 나라의 안위보다는 정권의 안위, 국민의 마음보다는 대통령의 심기를 보살피는 데 더욱 매진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법무장관 자리에서도 진작 물러났어야 옳을 그를 총리 후보자로 영전시킨 박 대통령의 본뜻이기도 할 것이다.

 

신임 총리 후보자 지명 소식이 발표되자마자 곧바로 우리 사회에는 ‘공안’과 ‘사정’ 등의 단어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부정부패를 뿌리뽑아 새 한국을 만들고 정치개혁을 이룰 적임자”라는 청와대의 발표에서도 앞으로의 정국 기류를 엿볼 수 있다. 문제는 ‘정치개혁’이니 ‘부정부패 척결’이니 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법의 이름을 가장한 교묘한 정치행위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법을 앞세운 공안통치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 정권의 입맛에 맞춘 사정작업이 얼마나 숱한 갈등과 분란을 야기하는지는 그동안 숱하게 목도해왔다. 당장 ‘성완종 리스트’ 사건만 해도 정권에 유리한 쪽으로 수사 방향이 변질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동안에도 법과 원칙보다는 정권의 이득에 맞춰 법을 해석하고 운용해온 황 후보자가 총리 자리에까지 오른다면 그 흐름은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이다.

 

신임 총리 후보자 지명을 지켜보면서 솔직히 이제는 박 대통령보다는 오히려 야당을 탓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이 민심에 귀를 막은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직접 몸으로 느끼게라도 해줘야 하는데, 선거 때마다 회초리를 맞은 것은 오히려 야당이었다. 그러니 박 대통령이 더욱 기고만장하고 몰염치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브레이크 없는 대통령에 무기력한 야당,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슬픈 현실이다. 야당이 그나마 지금이라도 해야 할 일은 황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다. 황 후보자는 법무장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전관예우, 병역면제, 증여세 탈루 의혹 등이 숱하게 드러난 바 있으나, 장관에 비해 총리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은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야당이 어떤 실력을 발휘할지 한번 지켜볼 일이다

 

 

[중앙일보 사설-20150522금] 황교안 총리 후보자에 대한 기대와 우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새 총리 후보자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지명했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 새 한국을 만들고 정치 개혁을 이룰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과 폭로로 불거진 부정부패 파동 국면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이완구 총리가 사퇴했으며 이 전 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가 1차로 기소될 것으로 보인다.

 

  황 후보자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통해 나라의 기본을 바로잡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총리 후보자가 고강도 개혁을 ‘합창’함에 따라 성완종 사건 수사는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여야 대선자금이나 성 전 회장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특별사면도 범법 혐의가 드러나면 수사 대상이 될 것이다. 포스코 등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기업 비리 수사와 대통령이 천명한 사면제도 개선 같은 정치 개혁도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부정부패 단속을 통한 국가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대통령과 총리 후보자의 국정노선은 문제 삼을 것이 없다. 성완종 사건에서 보듯 아직도 정치권과 재계에는 비정상적인 부패 스캔들이 적잖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2014년 국가청렴도 순위에서 한국은 175개국 중 43위에 머물렀다. 경제규모·정치민주화에 비해 턱없이 후진적인 것이다.

 

  그러나 국무총리의 조건과 임무라는 점에서 보면 황 후보자의 발탁은 여러 한계를 보인다. 부정부패 단속이라는 것은 정권과 시대 구별 없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할 국가의 기본 업무다. 이런 일에 특정 시기에 특정한 무게를 거칠게 실으면 부작용이 크다. 전임 이 총리는 법무·안행부 장관을 배석시키고 카메라 앞에 서서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느닷없는 행동은 정권의 정치적 의도 또는 총리 개인의 포석이 담긴 과잉 행보라는 지적을 받았다. 한마디로 명분이 부족한 돌출 기획사정이라는 거였다. 우려대로 검찰은 과속했고 성 전 회장에 대한 별건 수사와 자살 폭로라는 교통사고가 터졌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국정을 총괄하는 자리다. 장관보다는 높은 위치에서 국정 전반을 조망해야 한다. 대정부질문 답변이 주요 업무인 만큼 야당과의 소통도 중요한 임무다. 그렇기 때문에 신임 총리에게는 도덕성·개혁성과 함께 국민 다수로부터 인정과 기대를 받을 수 있는 통합적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많았다. 노동·공공·금융·교육 등 4대 개혁과제를 실현하는 데는 사정(司正)을 뛰어넘는 통합적 조정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정권의 ‘법률적 수요 ’라는 측면에서 황 후보자는 장관의 임무를 무난히 수행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얻어 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가 업무를 지속하게 하고 총리는 다른 인물군(群)에서 선택할 수는 없었는지 묻고 싶다. 만약 국회 인준을 통과한다면 황 후보자는 대야(對野) 소통과 국민 통합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황 후보자는 법무부 장관 후보 청문회 때 몇 가지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1년5개월간 로펌에 근무하면서 약 16억원을 받았다. 한 달 평균 9300여만원이다. 전관예우라는 비정상 관행에 따른 것이라는 혐의가 짙다. 황 후보자는 두드러기 일종인 ‘만성 담마진’이라는 피부질환으로 제2국민역(5급)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이 문제가 국무총리에게 가지는 의미는 장관과는 다르다. 총리는 대통령 유고 시 대통령이 되는 자리다. 그가 총리가 되면 이 나라는 대통령과 총리 모두 군대 경험이 없는 상황이 된다.

 

 총리 청문회는 장관에 대한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 국회는 엄중히 묻고 후보자는 성실하고 치열하게 답변해 국민의 의구심을 최대한 해소시켜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522금] 통합·소통 걷어찬 ‘공안 총리’ 지명

 

통합이나 소통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상식과 도덕이 통하는 사회를 바라는 국민적 여망을 외면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 국무총리 후보자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지명하면서 내건 이유는 ‘정치개혁’과 ‘비리 척결’이다. 국민통합형 총리가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사정을 이끌 총리를 선택한 것이다. 청와대는 대놓고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 정치개혁을 이룰 적임자”라고 발탁 배경을 밝혔다. 현직 법무부 장관을 총리로 발탁하는 무리수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 이후 박 대통령이 강조해온 ‘정치개혁’을 위한 전방위 사정을 진두지휘할 ‘공안 총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동의와 지지가 아닌 정권의 보위에만 매몰된 총리 지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황 지명자는 법무부 장관 시절 법과 원칙보다는 대통령의 코드에 맞춘 법집행에 충실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과정에서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제지하는 등 검찰수사를 방해했다. 이에 반발하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 ‘정권 눈 밖에 난 검찰총장을 찍어낸 법무부 장관’이란 오명을 남겼다.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을 주도하고, 비선 실세 국정농단 의혹이나 ‘성완종 리스트’ 수사 등에서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철저히 따르게 했다. 이러한 인물에게 통합과 소통의 국정을 펼치기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이다. 책임총리도 언감생심이다.

 

황 지명자는 야당과의 관계도 파탄낼 공산이 크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려는 연금개혁 등 4대 개혁은 야당의 협조와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만큼 새 총리에게는 국회, 야당과의 소통 능력이 주요 요건이었다. 황 지명자는 거기서 가장 동떨어진 인물이다. 그는 법무부 장관 시절 정치적 사건 처리 과정에서 매번 정권의 보위대로 나서 야당과 충돌해 왔다. 야당으로부터 두 차례나 ‘해임건의안’을 제출받았을 정도다. 야당이 ‘황교안 카드’를 박 대통령의 ‘선전포고’로 간주하며 반발하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

 

부패 혐의로 이완구 총리가 물러난 터여서 높은 도덕성이 새 총리 인선의 우선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국민적 기대가 컸다. 황 지명자는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전관예우, 증여세 탈루, 병역 면제 등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2011년 공직에서 퇴임한 직후 대형 로펌에 재직하면서 17개월 동안 15억9000만원을 받은 고액수임료 문제로 새누리당에서조차 자진 사퇴 목소리가 나왔다. 황 지명자가 ‘비리 척결’의 적임자로 매김되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도덕성을 필두로 국민이 기대하는 총리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철저하게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522금] 황교안 총리 후보자 국민통합 지도력 발휘하겠나

 

박근혜 대통령이 장기간 공석이었던 국무총리 후보자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어제 지명했다. 황 후보자가 국회의 인사청문 절차를 무사히 통과한다면 정홍원·이완구 전 총리에 이어 현 정부 세 번째 총리로 박 대통령 임기 후반부 국정을 통할하게 된다. 이 전 총리가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거명돼 낙마한 이후 국정은 표류했다. 지난 한 달여간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등 파행이 계속돼 왔다.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했던 현직 총리가 ‘사정 대상 1호’로 지목돼 비리 혐의로 물러나는 웃지 못할 상황극을 지켜본 국민들은 후임 총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황 후보자 지명은 국민들의 일반 정서와는 다소 동떨어진 선택이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후임 총리의 덕목과 관련해 높은 국민통합 능력과 도덕성을 이미 꼽은 바 있다. 꼭 ‘수첩’에 올라 있는 인사가 아니더라도 안목을 넓혀 다양한 스펙트럼을 적용해 신중하면서도 신속하게 후임 총리를 선임하길 제언하기도 했다. 이 전 총리가 비리 혐의로 낙마한 점을 감안해 도덕성을 1순위에 두고 진영 논리를 극복할 수 있는 국민통합 적임자를 찾아내길 바랐다.

 

하지만 청와대는 “경제 재도약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부정과 비리, 부패를 척결하고 정치 개혁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며 예상 후보 가운데 한 명이었던 황 후보자를 적임자로 내세웠다. 법조인 출신인 황 후보자를 통해 임기 후반부 국정 운영의 방점을 개혁과 법치(法治)에 찍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황 후보자도 “나라의 기본을 바로잡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법치 확립을 다짐했다. 통합진보당 해산을 이끌어 낼 때 밝혔던 소신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으로 법치에 대한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황 후보자는 검찰 재직 시절 공안 요직을 두루 거친 대표적인 ‘공안통’이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정 전 총리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구공안’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미스터 국가보안법’이라는 별칭도 따라붙는다. 일각에서 국민통합은 고사하고, 공안몰이가 더 거세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즉각 “공안통치의 노골적 선언”이라고 비판하며 혹독한 인사청문회를 예고하고 나섰다. 그 자신 과거 교회 발언을 통해 “김대중·노무현 같은 분들이 대통령이 되니 나라 꼴이…”라며 노골적인 보수 성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청와대는 장관 후보자 시절 한 차례 인사청문회를 경험한 황 후보자의 낙관적인 청문절차 통과를 기대했겠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병역면제, 전관예우 수임료, “5·16은 혁명” 발언 등 이전 이슈에 더해 이번엔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 편법 개입,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 내기, 정당 해산 심판, 성완종 리스트 수사 가이드라인 등 몇 가지 대형 사안이 더 기다리고 있다. 청문회 과정에서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과연 황 후보자가 총리가 된다면 국민화합과 사회통합의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국민들의 의구심이 큰 만큼 국민통합을 위한 획기적 복안도 밝혀야만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22금] 박 대통령의 부패개혁 의지 확인시킨 황교안 총리 지명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새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부정부패 척결로 정국을 정면돌파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한 인사라는 평가다.

 

황 총리 후보자는 검찰 재직 시절 공안통 검사로 이름을 날린 인물로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공직에 복귀했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잘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작은 개미굴이 둑 전체를 무너뜨린다”는 발언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올 들어서는 박 대통령이 주창한 부정부패, 비리 척결의 선봉에 섰고 특히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특별사면 의혹과 관련해선 단호한 수사의지를 밝혀 주목을 받았다. 부정부패 척결과 정치개혁에 대해 최적임자라고 볼 수 있다.

 

이완구 전 총리가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낙마한 이후 박 대통령은 비리척결에 대해 분명한 의지를 보여왔던 터다. 이번 인사를 통해 “부정과 비리, 부패를 척결하고 정치 개혁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의 발표대로 박 대통령의 의지는 거듭 확인된 셈이다.

 

황 후보자에 대한 박 대통령의 기대는 이전 총리와는 전혀 달라 보인다. 국정을 분담하는 ‘책임총리’는 물론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을 대신해 행사를 다니는 ‘대독총리’도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정치개혁의 시발점이 되는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미션에 집중하는 총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황 후보자는 이제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정치권과 사이가 좋기 어려운 검사 출신에다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터라 야당이 벌써부터 벼르고 있다. 야당은 2년 전 법무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안기부 X파일 편파수사 논란 등을 이유로 ‘부적격’ 의견을 냈었다.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청와대의 국정 의지와 ‘공안통치의 노골적 선언’이라는 야당의 공격이 정면으로 부딪칠 경우 또 다시 폭로와 정쟁이 난무하는 인사청문회가 재연될 것이다. 임기 반환점을 3개월밖에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다. 총리를 선임하는 게 이다지도 어려운 것인지.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22금] 인사청문회 임하는 황교안 총리 후보자에 바란다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새 국무총리 후보자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지명했다. 한달 가까이 후임 인선을 고민해온 청와대는 황 후보자를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 새 한국을 만들고 정치개혁을 이룰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황 후보자가 공안검사 출신이라는 데 방점을 찍은 새정치민주연합은 "공안통치의 노골적 선언" "국민통합에 반하는 불통 인사"라며 벌써부터 철저한 인사검증을 벼르고 있다.

 

이미 지난해 안대희·문창극 두 후보자가 인사검증 과정에서 낙마한데다 전임 총리도 청문회에서 자격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황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도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럴수록 황 후보자도 철저한 준비를 하고 인사청문회에 임해야 할 것이다. 평소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다는 평판을 받아온 황 후보자지만 인사청문과정에서 '빌미'를 잡힐 언행을 조심해야 할 것이며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소명해야 할 것이다.

황 후보자도 짐작하고 있겠지만 이번에도 인사청문회를 넘지 못하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비록 여권은 4·29재보선에서 승리했다지만 더 이상의 총리 후보자 낙마사태를 목격할 경우 국민도 박근혜 정부에 대한 지지를 급속히 철회할 것이고 당연히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정과제가 산적한 지금, 성완종 사건 등으로 임기 반환점을 채 돌지 못한 정부를 두고 벌써부터 '레임덕'이라는 소리까지 나오는 판이다.

 

황 후보자는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런 흐름에서 황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과 관련한 핵심 부분에 대해서는 인사청문회에서 분명한 자기 입장을 보여야 할 것이다. 총리는 내각을 통할하고 대통령을 보좌해 국정을 이끄는 핵심적인 공직이다. 제대로 된 후보가 지명됐다는 후일의 평가를 받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522금] 한일 국방장관 회담, 불가피하지만 신중해야

 

한일 국방장관 회담이 29~31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14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열린다고 국방부가 발표했다. 날짜는 30일이 유력하다고 한다. 한미일 3국 국방장관 회담도 최종 조율 중이어서 조만간 한미일 안보공조 체제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한일 양자 간 국방장관 회담은 2011년 1월 이후 과거사와 독도 문제 등의 갈등으로 중단된 지 4년 여만이다. 국방부는 지금의 한일관계에서 양국 국방장관 회담 재개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었다. 그랬던 국방부가 아무런 설명 없이 입장을 바꾼 배경은 개운치 않다.

 

이번 회담은 미국과 일본의 압박에 우리 정부가 끌려간 측면이 커 보인다. 지난달 초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성 장관이 공개적으로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제안했고, 이어 미일 정상회담 차 워싱턴에서 만난 양국 국방장관은 한일 및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을 조속히 개최하자고 합의했다. 이번 회담도 일본이 요청하고 미국이 한국에 회담 수용을 사실상 압박해 성사됐다는 게 중론이다. 미일이 주도하는 한미일 3각 안보공조에 한국이 무기력하게 끌려들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회담 내용도 껄끄럽다. 국방부는 북한 핵ㆍ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조방안, 국방분야 교류 협력 방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신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에 따른 일본의 집단적자위권 행사도 의제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핵심은 한일 간 군수지원 및 군사정보공유가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미국과 일본은 3각 공조를 위해서는 우리 군과 자위대 간 물자를 융통하는 물품역무상호제공협정(ACSA)과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체결이 필수적이라며 수 차례 비공개적으로 이를 우리 정부에 요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한미일 간 구속력 없는 낮은 수준의 정보공유약정을 체결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2년 우리 정부가 비밀리에 GSOMIA를 체결하려다 여론의 역풍을 맞고 좌초된 것처럼 한일 간 전면적인 군사정보 교류는 여전히 수용하기 힘든 사안이다.

 

우리 정부가 이번 회담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과 고민은 충분히 이해한다. 점증하는 북한의 도발 위협 등 안보 공조의 현실적 수요가 엄존하고 이를 미국 일본이 강력히 요구하는 상황에서 과거사만 내세워 마냥 거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번 회담이 한일 정상회담 개최 등 양국 관계를 복원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안보공조가 미일의 의제를 추종하는 것이 돼서는 곤란하다. 지난해 정보공유 체결 때처럼 여론을 호도하려는 꼼수가 있어서도 안 된다. 신중하고 당당한 접근을 당부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22금] 최경환 부총리, 경기부진 책임 크다

 

우리 경제가 좀체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일 내놓은 경제전망치는 이런 현실을 다시 확인해준다. 연구원은 올해 성장률이 애초 전망치(3.5%)보다 낮은 3.0%를 나타낼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내놓은 3.1%와 비슷한 수준이다. 연구원은 한은 기준금리가 한두차례 더 내리고, 세수가 목표대로 걷히며, 구조개혁이 성과를 낸다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성장률은 더 하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상태로는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말해준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3%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점을 고려할 때 걱정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경기가 부진한 것은 연구원이 밝힌 대로 수출과 내수가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출은 주요 시장인 중국 등의 성장세가 둔화하는데다 일본 엔화와 유로화의 약세로 가격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다. 올해 들어 4월까지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내수는 개선 기미가 있지만 여전히 강도가 약한 편이다.

 

경제가 활기를 띠지 못하면 사회 전체로 활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특히 중산층과 서민층이 큰 타격을 받기 쉽다. 괜찮은 일자리를 찾고 임금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워져서다. 성장률이 2012년 이래 잠재성장률을 밑돌고 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도 정부 대응은 미흡하기만 하다. 물론, 손 놓고 있지는 않다. 지난해 7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한 뒤로는 여러 대응책을 쏟아냈다. 최 부총리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며 41조원 규모의 부양책을 발표하고 부동산 대출 규제 등을 대폭 완화했다. 대기업들을 향해 임금인상을 촉구하는 ‘파격적’인 모습도 보였다. 정책수단에는 무리한 것이 없지 않았으나 기대를 품게 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1년이 가까워져 오는데도 경기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신호가 계속되고 있다. 부양책은 세수 부족으로 원래 발표한 규모에 많이 못 미쳤다. 임금인상 촉구 발언에서 보듯 최 부총리가 말만 꺼내고 제대로 추진하지 않은 정책도 있다. 최 부총리가 경기 부진에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함을 일러주는 얘기 아니겠는가. 최 부총리가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지켜봐야겠다.

 

 

[중앙일보 현장사설-20150522금] “정파보다 국가 우선해야 개혁 성공한다”

 

“정치지도자라면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는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 제주포럼 참석차 방한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유독 강조한 대목이다. 그는 총리 시절 노동시장·연금 개혁인 ‘어젠다2010’을 추진하다 총선에서 패배했는데 후회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정치가 중요하지만 국가만큼 중요하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어제부터 중앙일보와 제주특별자치도·국제평화재단·동아시아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제주포럼에서 슈뢰더 전 총리는 특별히 주목을 받은 인사다.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구조개혁을 밀어붙여 통일 후 침체에 빠진 독일 경제를 부활시킨 주역이기 때문이다.

 

  그는 제주포럼의 기조연설, 중앙일보 인터뷰, 권영세 전 주중대사 대담 등 숨 가쁘게 이어진 일정 내내 일관되게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사정 대타협이 무산되고 공무원연금 개혁도 지지부진한 우리에게 슈뢰더의 충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개혁 추진 과정에서 배울 첫째 교훈은, 정치적 득실을 따져 개혁을 추진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슈뢰더가 개혁을 추진할 당시인 2003년 독일은 통일 후유증으로 ‘유럽의 병자’로 불렸다. 마이너스 성장과 재정적자에 허덕였고 실업자가 450만 명에 달했다. 이 상황에서 그는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고 복지 지출을 줄이고 연금 지급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높이는 개혁을 밀어붙였다. 대신 청년 일자리 지원을 확대하고, 소득세를 낮추는 등 경제 활성화 정책을 썼다. 이는 슈뢰더에겐 정치적 패배를 각오해야 하는 모험이었다. 그는 “선거에서 낙선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밀어붙였다”며 “구조개혁은 초기에 고통을 수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성공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슈뢰더 총리의 지지 기반인 노조가 반발했다. 그 뒤 총선에서 져 총리직에서 물러나지만 개혁의 효과는 후임 메르켈 총리 때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일은 유럽 재정위기를 굳건히 견뎌냈다. 정치적 이익이 아니라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 슈뢰더의 결단이 독일 경제를 살린 셈이다. 슈뢰더의 ‘살신성인 개혁’은 공무원들 눈치를 보느라 반쪽짜리 개혁안도 쉽게 합의하지 못하는 우리 정치권이 자성해야 할 부분이다.

 

  그 다음으로, 노동계·재계 등 이해집단의 의견을 수렴하되 합의가 안 되면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는 노동계의 반대를, 최저임금 도입은 재계의 반발을 샀다. 슈뢰더 정부도 개혁 초기엔 우리의 노사정위원회 같은 합의기구를 가동했지만 노사가 정부에 요구만 할 뿐 서로 양보를 하지 않았다. 결국 슈뢰더는 정부 주도로 개혁을 마무리했다. 이는 노사정 대타협이 무산된 한국이 유심히 봐야 할 대목이다. 합의 과정에서 양측의 주장을 충분히 들은 만큼 정부 주도의 ‘B플랜’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구조개혁을 빨리 할수록 효과가 크다는 점이다. 공산권의 붕괴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지만 독일은 혹독한 통일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슈뢰더는 “통일 후 10년이 지나서야 어젠다2010이 관철됐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너무 늦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이 북한과의 통일에 대비하려면 지금부터 구조를 개혁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기민당의 메르켈 총리는 사민당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다. 슈뢰더가 추진했던 최저임금제는 경쟁 당인 메르켈 총리 때 성사됐다. 허구한 날 여야가 싸우다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우리 정치권의 모습과 대비된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이날 슈뢰더 전 총리와 만나며 “독일 경제의 성공 이유를 통합의 정치에서 찾고 싶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 사회가 개혁에 성공하려면 정파를 초월한 정치권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실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 공무원연금 개혁은 문 대표의 정치적 동지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것과 비슷한 방향이다. 여당에서 야당이 됐다고 반대만 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정파의 이익보다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 슈뢰더 전 총리가 제주포럼을 통해 본인의 생생한 육성으로 전해준 독일의 구조개혁에서 한국이 가장 배워야 할 점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522금] 미국의 사드 배치 압력에 가만히 있는 정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8일 북한의 위협을 거론하며 사드 배치를 언급한 지 하루 만에 사드 한반도 배치 주장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미국이 사드 배치 논의를 본격화하는 느낌이다. 지난 19일 프랭크 로즈 미국 국무부 군축·검증·이행담당 차관보는 “우리가 한반도에 사드 포대의 영구 주둔을 고려하고는 있지만, 우리는 최종 결정을 하지 않았고 한국 정부와 공식 협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제임스 위너펠드 미국 합동참모본부 차장도 “한국 정부와 이 문제에 대해 아직 공식으로 어떤 종류의 대화도 시작하지 않았다”면서 “여건이 성숙되면 대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그동안 사드 배치를 거론하며 한·미간 사실상 협의하는 듯 주장하다가 부인하기를 반복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조심스러운 태도를 바꾼 것 같다. 미국의 외교·군사 분야 고위 책임자들이 최근 잇달아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할 의사가 있음을 당당히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현시점에서 공론화를 해도 좋겠다고 판단한 결과가 아닐지 주목된다. 물론 미국이 일방적으로 한국을 압박하기 위해 사드 배치 필요성을 제기하는 건지, 한국과 미리 조율한 뒤 미국이 앞장서고 있는 건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한·미 간 공식 협의를 하면 언제라도 배치할 듯한 기세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어제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에 사드를 배치하는 문제에 대해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면서 “미국의 검토가 끝나 한국 정부에 협의를 요청하면 정부는 당연히 협의한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중립적 표현이지만 내용상으로는 그렇지 않다. 미국은 사드 배치 의사를 이미 밝혔다. 이에 한국은 협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결과가 어떨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나아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사드를 배치하면 우리의 안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난해 6월 김관진 국방부 장관도 “주한미군이 (사드를) 전력화하는 것은 상관없다”고 환영했다. 그는 지금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인 국가안보실장이다. 이 때문에 양국 간 사드 배치의 절차만 남겨 놓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국가가 시민을 속이는 일이고, 나아가 한반도 평화, 동북아 안정을 해치는 일이 될 것이다. 정부는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 사드 논란을 잠재워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522금] 백두산 화산폭발 더 이상 기우로 치부할 수 없다

서기 930~940년 백두산에서 화산폭발지수(VEI·Volcanic explosivity index) 7급의 대폭발이 일어났다. 지난 2000년 동안 지구상에서 일어난 것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화산 폭발이었다. 일본의 화산학자 마치다 히로시 교수(도립대)는 백두산 화산분출물의 용적이 적어도 100㎦에 이르렀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서기 79년 폼페이를 매몰시킨 베수비오 화산폭발의 50배에 달했다는 것이다. 해동성국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발해가 백두산 폭발 때문에 저항할 새도 없이 멸망했다는 이설(異說)도 제기된다. ‘(거란군이) 싸우지도 않고 이겼으며, 920~930년대 사이에 총 60만명의 유민이 발해땅을 탈출했다’는 <요사> <고려사> 기록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그 후 110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백두산 대폭발설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20년 이내에 화산폭발이 일어날 확률이 99%”라고 예측한 화산학자(다니구치 히로마쓰 도호쿠대 명예교수)도 있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 지각판을 움직인 탓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백두산 지표면의 팽창이 10㎝ 이상 감지되고 화산가스의 헬륨 농도가 대기의 7배에 이르렀다고 한다. 북한의 핵실험이 백두산 용암층을 자극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주장도 있다.

 

어제 국민안전처의 의뢰를 받은 윤성효 부산대 교수팀이 백두산 화산폭발의 피해를 예측한 결과를 봐도 강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닌 것 같다. 백두산에서 대폭발이 일어날 경우 남한에서만 최대 11조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과 중국의 지질연구진은 백두산에 시추공을 뚫어 용암의 분출 가능성을 모니터하고 3차원 지도를 만든다는 등의 공동연구 계획에 합의했다. 그러나 두 나라만 의기투합해서 될 일이 아니다. 직접 타격을 입을 북한과, 폭발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일본 등의 공동연구가 필요하다. 윤 교수팀의 연구를 보면 백두산폭발이 일어날 경우 최대 침수면적은 828㎢에 달한다. 천지의 물(20억㎥)이 범람한다면 최악의 경우 압록강·두만강·쑹화강 유역의 침수심이 20~109m에 이른단다. 당장 백두산 폭발이 임박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불안감을 조성해서도 안되겠지만 대폭발 가능성을 기우(杞憂)로 치부해서도 안되겠다. 차분하게 대비책을 마련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522금] 日, 과거사 미화 유산등재 불가여론 수용해야

조선인 강제노동 시설이 포함된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23곳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과 관련해 한·일 간 양자 협의가 오늘 일본 도쿄에서 열린다. 이번 협의는 일본 측의 일방적 등재 추진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의미가 있다. 우리 정부는 주변국 고통의 역사를 외면한 채 단순히 산업혁명 시설로 미화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역사 왜곡이며 인류 보편적 가치를 보호한다는 세계유산협약의 기본 정신에도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현재로선 일본 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본 언론들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일본 산업혁명 유산 23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도록 유네스코에 권고했으며 문화유산 중 ICOMOS가 권고했다가 최종 단계에서 뒤집힌 사례는 없다고 덧붙였다. 6월 말 독일에서 열리는 제39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최종 결정이 이뤄지지만 사실상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식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인 하시마 탄광이나 미케 탄광 등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 정도로 일본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본으로서는 산업혁명 유산 23곳이 근대 일본의 초석을 닦은 혼이 담겨 있는지 몰라도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착취와 수탈을 당한 우리로서는 고통스런 역사의 기억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픈 과거사를 공유하고 있는 중국 역시 “식민 역사를 왜곡하지 말라”며 강한 불만을 쏟아 놓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산업혁명 유산 23곳 중 7개 시설에서 강제 징용된 조선인 가운데 94명이 숨지고 5명은 행방불명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동의 한을 외면하고 근대화 산업시설만 강조하는 것은 전형적인 과거사 왜곡이다.

 

일본의 일부 언론들도 과거사 미화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다. 최근 아사히신문은 “일본의 근현대사를 다양한 시각에서 생각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고 일본 발전의 이면에 있었던 희생과 비극도 연구해 전달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진실 그대로 보여 주고 올바른 사실을 후세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일본 정부의 책임이다. 메이지 산업 유산의 밑바닥에 강제 징용과 수탈의 고통스런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가해자 일본이 먼저 주변국들의 고통을 경청하고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동북아 전체의 갈등을 해소하고 공존 공영의 길로 나서는 첫걸음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522금] 14개월간 해외출장비 2억원 쓴 안홍철 KIC 사장

 

안홍철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이 또 입길에 올랐다. 해외 출장이 너무 잦고 출장비로만 하루 평균 200만원에 달하는 돈을 썼다는 ‘호화출장’ 논란이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에 따르면 안 사장은 지난해 1월부터 올 3월까지 14개월 동안 24차례에 걸쳐 115일간 해외 출장을 갔다. 나흘에 하루꼴로 해외에 머문 셈이다. 이 기간에 안 사장의 출장비로 KIC가 지출한 돈은 2억 1681만원으로 1일 평균 출장비만 188만원에 달한다.

 

올 1월엔 스위스 다보스포럼 참석을 위해 5박6일간 다보스에 머물면서 아우디 차량을 렌트하는 데만 332만원을 썼다. 지난해 11월엔 싱가포르 포시즌 호텔 딜럭스룸에서 사흘간 머물면서 호텔비로만 225만원을 냈다. 지난해 5월 런던 출장에서는 이틀간 숙박비 124만원을 포함해 890만원을 썼다. 안 사장은 숙박비로만 1일 평균 58만원씩을 썼는데, 이는 공무원 여비 규정에 나와 있는 장관급 국무위원이 해외 출장에서 쓸 수 있는 하루 숙박비 상한액인 471달러(약 51만원)보다도 많다.

 

KIC는 외환보유액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국부 펀드다. 업무의 특성상 해외 출장을 갈 수 있지만 해외에 나갔을 때 기관장이 값비싼 딜럭스룸에 묵는다거나 고급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은 누가 봐도 ‘호화출장’이다. 업무와 관련된 출장이었는지, 출장이 업무성과로 이어졌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더구나 KIC는 임원의 출장비용을 사전심사하도록 돼 있던 규정을 사후심사로 고쳤다. 이는 공기업의 출장비용 사전심사를 강화하도록 규정한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공무 국외여행 개선 방안’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는 게 박 의원의 지적이다. KIC 측은 이에 대해 “임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사전 및 사후 심사를 강화하는 쪽으로 지난해 11월 여비 세칙을 개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안 사장은 2012년 대선 때 트위터에 문재인 대통령 후보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종북·좌파’ 등 원색적으로 비난한 게 드러나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으로부터도 사퇴 압력을 받았지만 버티고 있다. KIC 사장이 되기 전에는 대학 후배인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서병수 부산시장과 유정복 인천시장 등 친박계 핵심 인사들에게 80여 차례에 걸쳐 4000여만원의 정치후원금을 낸 것으로 확인돼 논란을 빚기도 했다. 안 그래도 코너에 몰려 있는 공기업 기관장이라면 더 제대로 처신해야 하지 않는가. 답답한 노릇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22금] 손 놓은 무역보험공사나 사기 당하는 은행이나…

 

모뉴엘 수출채권 위조사건의 피해 보험금 문제로 한국무역보험공사와 은행들이 결국 소송전을 벌이게 됐다고 한다(한경 5월21일자 A1, 9면 참조). 지난해 10월 모뉴엘의 법정관리 신청과 함께 시작된 양측의 ‘네탓 공방’이 자율로 해결되지 못한 것이다. 로봇청소기 홈시어터PC 등 가전제품을 생산하던 모뉴엘의 수출 뻥튀기로 기업·외환 등 은행들이 입은 피해는 3500억원에 달한다.

 

무역보험공사가 보험금을 지급 못 하겠다는 까닭은 은행들이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수출채권 매입과정에서 핵심 서류가 누락됐거나 비정상적으로 처리돼 약정상 보험금의 지급의무가 없다는 논리다. 은행들은 “공사가 7차례나 모뉴엘의 해외 수입업자를 방문했으면서도 사기대출임을 밝히지 못했다”고 반박한다. 대출에 앞서 서류를 다 확인해야 한다면 무역보험공사는 왜 보험증권을 내줬느냐는 항변도 들린다.

 

양측 모두 그럴듯한 주장이지만 둘 다 틀렸다. 정작 사고 때 보험금을 못 주겠다는 공사의 논리는 궁색하기 짝이 없다. 서류의 내용을 확인 못한 은행 역시 조금도 잘한 게 없다. 공사와 은행 모두 관료주의에 젖어 현장확인부터 소홀했다.

 

보험이라는 게 속성상 사기를 발생케 하고 도덕적 해이도 유발한다. 보험회사와 보험공사는 이점까지 십분 인식해 사고를 막도록 평소에 온갖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사고까지도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는 것인데, 막상 사고가 나자 은행 책임으로 돌려버리면 보험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은행들도 도대체 거래기업을 어떻게 관리한 것인지 의문이다. 은행별로 1000억원에 육박하는 수출채권을 받아주면서 거래기업의 공장이나 서류의 내용을 과연 확인이라도 해본 건가. 이러고도 관치 때문에 은행 자율성이 없다는 푸념이나 할 텐가. 극도의 무능, 아니면 뭔가 부정한 승인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사고를 유발해놓고 치졸한 ‘면피 공방’을 하고 있다. 사고 발생 뒤에도 제대로 된 손실분담 협의가 안 돼 수년씩 걸릴 법정다툼으로 가며 끝까지 책임회피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양쪽 모두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런 수준의 금융과 보험으로는 ‘무역한국’의 장래가 어둡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22금] 노동개혁은 정부가 이끌라는 슈뢰더·하르츠의 고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어제 한국경제연구원 주최 강연에서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정당성 있는 정부가 주축이 돼 노동시장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도 노동시장 개혁에서 한국 노사정위원회 같은 단체를 통해 합의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2000년대 초반 하르츠개혁을 이끌었던 주역인 페터 하르츠 박사도 “노동 개혁의 핵심은 노동자가 (권익만을 고집할게 아니라) 존엄성을 유지하는 한계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하는 것” 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의 대대적인 노동개혁을 주도했던 이들이기에 울림이 크다. 특히 노동개혁은 노사정위원회가 아니라 정부가 밀고가야 하는 것이란 슈뢰더의 고언은 무게 있게 다가온다.

 

독일의 경제력은 지금 세계 최상위권이다. 이런 성과는 슈뢰더 전 총리와 하르츠 박사가 2003년부터 대대적으로 추진했던 고용개혁과 연금개혁의 과실이다. 이들은 성장은 멈추고 실업률은 올라가는데도 복지비용은 갈수록 늘어나는 독일병을 고치는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다. 무엇보다 단기직, 시간제 근무를 도입하고 실업수당 수혜자격을 강화하는 등 노동개혁을 거세게 밀어붙였다. 실업자는 권리만이 아니라 의무도 있다며 실업자에게 주는 혜택을 과감하게 줄였다. 그들은 개혁기간 동안 선거에서 패배하는 것을 감수하고도 거침없이 연금개혁과 노동개혁을 추진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일 발표한 ‘2015 상반기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3.5%에서 3.0%로 0.5%포인트나 낮췄다. 수출부진 탓도 있지만 구조개혁의 지연이 성장률 하락의 주요 원인이다. 특히 KDI는 한국이 구조개혁에 실패할 경우 올해 성장률은 2%대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그토록 외쳐왔던 노동개혁과 연금개혁은 정치권의 어정쩡한 태도와 강성 노조의 반대 등으로 유야무야된 상황이다. 슈뢰더는 인기없는 정책으로 정권을 잃었지만 대신 독일병을 치유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과 의지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22금] '하르츠 개혁' 메시지는 정부의 빠른 결단과 추진력

 

독일은 성공적인 노동시장 개혁으로 오늘의 경제부흥을 일궈냈다는 점에서 우리가 보고 배울 점이 많다. 2000년대 초반 '유럽의 병자'로 불렸던 독일은 노동시장 유연화와 복지혜택 축소로 위기상황을 극복해냈다. 당시 구조개혁을 주도했던 페터 하르츠 전 독일 노동개혁위원장은 21일 서울에서 행한 강연에서 "독일 노동개혁의 성공비결은 정부의 빠른 결단과 추진력"이라며 "정부는 개혁과정에서 유권자를 잃는 것도 감내하겠다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하르츠 전 위원장은 정부 역할과 관련해 "개혁 속도에도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개혁을 너무 느리게 추진하면 개혁작업이 성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위원회의 모든 결정사항을 꼼꼼하게 챙겼고 이 과정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노사 양측의 양보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독일 정부가 자발적 합의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지율이 떨어지는데도 정치권과 노조를 설득했다는 대목에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또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는데 이를 거절하면 처벌까지 가능하도록 했다"며 실업복지에도 개인 책임의 원칙을 도입해야 한다는 처방을 제시했다. 구성원이 적절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강제근로를 부과하는 극약 처방을 동원해서라도 모럴해저드를 차단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우리 정부는 하르츠 전 위원장의 소중한 메시지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우리는 줄곧 이해당사자 간 합의에만 매달려 개혁작업의 동력마저 상실하고 있지 않은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과 치밀한 전략이 부족했던 탓이다. 대통령이든 경제수장이든 한결같이 남 탓으로 돌리면서 전면에 나서기를 꺼린다면 구조개혁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다. 하르츠 전 위원장은 "대통령이 노사정 관계자들을 불러모아 '아름다운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민은 굳이 대통령이 아니라 어느 장관이라도 과감히 직을 걸고 구조개혁을 완수하겠다는 당찬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22금] 한국 관광 종합경쟁력 중국에도 추월당하다니

 

우리나라 관광 경쟁력이 추락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년마다 내놓는 '여행·관광 경쟁력' 보고서를 보면 올해 한국은 종합경쟁력에서 4계단 밀려난 29위로 떨어졌다. 세부항목인 가격경쟁력 면에서는 조사 대상 140개국 중 109위로 거의 꼴찌 수준이다. 우리가 후진하는 사이 중국·일본은 앞서나가고 있다.

 

특히 중국은 종합경쟁력이 30계단이나 뛰어올라 17위를 차지했다. 불과 2년 사이 우리의 관광경쟁력이 중국에 추월당한 꼴이다. 일본도 9위로 7계단 상승했다. '기는 한국, 뛰는 중국과 일본' 현상이 관광업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중국 관광객(유커)이 지갑을 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롯데백화점이 올 들어 이달 20일까지 방한 유커의 씀씀이를 조사한 결과 1인당 구매액이 58만원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해(65만원)보다 11%, 2013년(90만 원)과 비교해서는 36%나 줄었다. 사는 물건이 과거처럼 고가 명품이 아닌 저렴한 화장품이나 옷 등에 집중된 결과다. 대신 비싼 핸드백·시계 등은 일본에서 사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한류에 의존한 관광객 유치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한류나 쇼핑 말고는 보여줄 게 없으니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국내 여행업계에는 출혈경쟁 때문에 옵션 관광으로 비용을 뽑는 악순환이 만연돼 있다. 이러니 관광객들이 다시 한국을 찾지 않는 것이다.

 

한 국문화관광연구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유커의 한국 만족도는 주요 방문국 16곳 가운데 14위, 재방문율은 25%에 그칠 정도로 초라하다. 똑같은 상품·서비스로는 2년 뒤 외국인 관광객 2,000만명을 유치한다는 목표 자체가 '장밋빛'일 뿐이다. 관광 인프라 확충과 함께 관광객 연령층, 소비행태 변화 등부터 재점검해야 할 때다. 그래야 제대로 된 대응방안이 나온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국일보 칼럼-아침 햇발/박용현(논설위원)-20150522금] 정부가 하는 욕, 정부에 대한 욕

 

정부는 국민을 향해 대놓고 욕하는 반면, 국민은 울컥 정부를 욕했다가는 곤욕을 치른다. 국민연금 논란 속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은 “세대간 도적질”이라고 했다. 국민의 일부를 도둑으로 몬 것이다. “미래세대의 재앙”이라는 청와대의 표현도 같은 맥락의 독설이다. 한편에선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림과 정부를 비판하는 행위예술이 처벌받고 있다. 180도 전도된 현실이다.

 

먼 저 ‘정부에 대한 욕’을 생각해본다. 2008년 8월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한 지방도시를 방문했을 때다. 영접 인파 속에서 에르베 에옹이라는 사람이 작은 팻말을 흔들었다. “꺼져, 이 병신아!” 현장에서 체포돼 대통령 모독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에옹은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했다. 2013년 3월 재판소는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에옹의 손을 들어줬다. 이유는 이렇다. “정치인은 자처해서 대중의 선택을 받고자 나선 사람이다. 그러니 칭송뿐 아니라 비난에 대해서도 보통사람보다 더 감내할 의무가 있다. 더구나 에옹은 풍자의 형식을 취했다. 팻말에 적힌 말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얼마 전 자신의 악수를 거절한 시민에게 뱉었던 실언에서 따온 것이다. 풍자는 화를 돋운다. 그렇다고 이를 처벌한다면 공공의 의제에 대한 자유로운 여론 형성을 위축시키게 된다. 그것은 민주국가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다.” 사문화된 대통령 모독죄를 살려냈던 사르코지는 국제적 망신을 샀다. 해당 법은 곧 폐지됐다.

그 런데 에옹은 얼마나 심한 처벌을 받았기에 유럽인권재판소에까지 찾아간 걸까. 고작 30유로(3만6499원)의 벌금에, 그나마 집행유예였다. 대통령과 정부를 모독한 괘씸죄로 구속되고 수백만원씩 벌금을 물어야 하는 우리나라 시민들은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다음으로 ‘정부가 하는 욕’을 생각해본다. 풀기 어려운 국가적 과제가 있을 때 정부는 그 해결을 요구하는 국민에게 욕하고 신경질을 내면 그만인가. 공적연금 문제에 대처하는 청와대와 정부의 태도가 꼭 그 꼴이다. 정작 국민이 불안해하고 궁금해하는 대목에는 침묵한다. 왜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 1위인지, 지금의 공적연금 제도로 우리의 노년이 안녕할 수 있는지, 해결책은 정녕 없는지…. 정부의 무언의 메시지는 ‘앞으로도 노인세대는 빈곤을 견디며 살라’는 것밖에 안 된다. 근본 원인인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세대간 갈등만 부추긴다.

 

우리처럼 저출산·고령화에 직면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를 최우선 의제로 삼았다. 인구구조 변화에 맞서 성장과 혁신, 번영을 지속하려면 모든 국민의 잠재력을 계발해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창했다. 이를 위해 가정친화적 노동정책, 보육 서비스와 양성평등 강화, 노인세대의 경제활동 확대와 수준 높은 복지 제공, 기업가 정신 고양과 중소기업 활성화, 창의성을 높이는 교육개혁 등 수많은 세부 과제를 두고 2012년부터 정부·재계·노동계 등과 사회적 토론을 지속하고 있다. 이를 통해 추구하는 건 세대·계층간 연대와 통합이다. 핵심 모토에 그 정신이 집약돼 있다. ‘모든 세대가 소중하다’(Every age counts).

 

독일이 어떤 성과를 거둘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국민에게 꿈을 심어주고 서로 연대하며 공동의 번영을 이룰 수 있도록 저력을 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정치 지도자가 할 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곳간 타령이나 하며 비전 제시도 없이 그저 견디라고만 말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저차원 정치다. 이 정부는 그 무위의 정치를 참 시끄럽게도 하고 있다. 더 바라지도 않는다. 국민을 향해 욕이나 하지 말기를, 국민이 하는 욕이라도 달게 받기를.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김정하(정치국제부문 차장)-20150522금] 국민연금에 대한 2030세대의 불신

 

시민단체 ‘한국납세자연맹’은 2013년부터 홈페이지에서 국민연금 폐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21일 현재 서명자가 10만7000명을 넘었다. 이 단체는 “국민연금은 다단계 피라미드 사기”라고 주장한다. 하버드대 그레고리 맨큐 교수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초기 가입자는 고수익을 챙기지만 가입자가 줄어드는 순간 파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란 것이다. 극단적이긴 해도 국민연금 운용 시스템을 들여다보면 딱히 반박하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국민은 국민연금을 내가 낸 보험료를 은퇴 후에 내가 돌려받는 구조로 오해하고 있다. 그건 연금 초기 가입자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다. 후대로 갈수록 내가 낸 보험료는 나한테 돌아오는 게 아니라 위 세대의 연금을 지급하는 데 들어간다. 내가 은퇴 후에 받는 연금은 아래 세대가 내는 보험료에서 나온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국민연금이 낸 보험료보다 훨씬 큰 연금 혜택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낸 것보다 더 주는 마술을 부리는 건 국가가 연·기금 운용을 탁월하게 잘해서가 아니다. 아래 세대의 보험료 납부가 계속 증가하는 걸 전제로 깔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강제 가입이니 인구만 꾸준히 늘면 낸 것보다 더 주는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피라미드 판매망을 유지하려면 가입자를 계속 불려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불행히도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구는 2030년부터 줄어든다.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노인 부양비율은 지난해 17.3명에서 2040년 57.2명으로 폭증한다.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급격한 저출산-고령화 추세다.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낸 것보다 더 주는 국민연금이 어떻게 지속가능할까. 나중에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세금으로 연금을 주면 되니까 걱정 말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그 세금은 누가 내나. 그런 속 편한 말씀을 하는 분들은 대개 그때쯤에 세금을 안 내는 분일 거다.

 

  그래서 요즘 2030세대는 국민연금에 대해 굉장히 냉소적이다. 자신들은 덤터기만 쓰고 나중에 연금을 받을 수나 있는 건지 믿을 수 없다는 거다. 이들의 걱정은 과연 기우에 불과한 걸까. 2030세대의 불신을 해소할 책임이 있는 정치권의 요즘 행태는 어떤가. 수십 년 뒤를 내다본 구조 개혁 논의는커녕 정치협상용 숫자 놀음에만 열심이다. 그것도 공무원연금 개혁을 논의하다가 갑자기 국민연금을 끼워넣기로 말이다. 사정이 이러니 국민연금 폐지 서명자가 계속 늘어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경향신문 칼럼-여적/박용채(논설위원)-20150522금] 종이금융의 퇴장

 

지금이야 기억에도 새롭지만 1988년은 올림픽 외에도 한국 역사상 국민주 공모가 처음 이뤄졌던 해이다. 정통성에 목매던 노태우 정권이 증권을 대중화하고 서민들의 재산형성을 돕겠다며 공약으로 내건 사안이었다. 국민주 1호가 된 포항제철의 공모에는 321만명이 참여했다. 공모가 1만5000원에 시초가는 4만3000원. 상당수 청약자들에게 포항제철의 종이증권이 재산목록 1호가 됐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종이증권이 정부의 전자증권제도 도입 방침으로 곧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할 처지라고 한다. 새 제도가 도입되면 실물 종이증권은 없어지고 증권이 전산시스템에 등록되면서 유통이 이뤄진다. 전자증권제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4개국 중 31개국이 이미 도입한 터라 한국은 늦은 편에 속한다.

 

기실 요즘 국제 금융계의 디지털화는 눈이 핑핑 돌 정도다. 덴마크는 최근 주유소와 옷가게, 식당에서 현금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쪽으로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스웨덴도 버스요금의 현금결제를 중단하는 등 현금 없는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일부 은행에서는 현금 취급을 중단하고 전자결제만 허용한다고 한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지만 국내에서도 모바일 통장지갑이 점차 보편화되면서 종이통장이 사라지는 추세다. 어제는 하나카드가 처음으로 실물 없는 모바일 신용카드를 내놓기도 했다. 현금 없는 경제로의 진화인 셈이다.

 

이는 실물이 오고가던 금융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스템이 가능한 것은 모바일뱅킹과 전자지갑으로 상징되는 금융계의 디지털혁명 때문이다. 최대 장점은 편리성이지만 비용절감과 지하경제 차단이란 부수효과도 크다. 현금이 동반되지 않는 거래 덕분에 보안이나 관리 비용은 줄 것이고, 고액 신권만 내놓으면 지하로 숨기 바쁜 현실경제와 달리 거래 투명성도 담보할 수 있다. 금융의 디지털화는 과거 종이가 그랬던 것처럼 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반면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오랫동안 써오던 실물의 퇴장은 그렇지 않아도 빠른 변화에 어지럼증을 느끼는 세대들에게는 두통거리라는 점이다. 변화가 빠르다고 느껴진다면 이미 나이 든 군에 속한다는 것은 굳이 말할 나위도 없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문소영(논설위원)-20150522금] 패자부활전

지구에 소풍을 나왔다고도 하고, 새털 같은 인생이라고도 하지만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한 번의 실패가 영원한 족쇄가 되지 않아야 한다. 1980년부터 범죄자라고 해도 전과 기록 및 수사경력 자료의 관리와 형의 실효에 관한 기준을 정함으로써 전과자의 정상적 사회 복귀를 보장하고 있다. 범죄자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깨끗한 상태’로 만들어 준다. 전과기록 말소로 패자부활전이 가능하도록 했다.

 

2007년 학력위조 논란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2009년 보석으로 풀려났던 신정아씨가 가수 조영남씨의 미술전시회를 기획하면서 큐레이터로 복귀했다. 이른바 ‘신정아 사건’ 이후 첫 번째 기획 전시다. 신씨는 또 민음사의 어린이 책 전문 출판사 비룡소에서 일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비룡소 측에서는 “지금 단계에서 정해진 부분은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2005년 성곡미술관 큐레이터로 세계적 명성의 그림책 작가인 앤서니 브라운과 존 버닝햄의 원화 전시회를 개최해 대성공을 거뒀던 신씨는 그 다음해에는 비룡소와 공동기획으로 ‘존 버닝햄 40주년 기념전’을 역시 성곡미술관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의 인연이 있다. 신씨는 2011년에 불륜이 공개된 에세이 ‘4001’을 출간해 또다시 화제가 됐고 이후 방송으로 재기한다는 보도가 몇 차례 있었으나 불발에 그쳤고 현재에 이르렀다.

 

신씨의 복귀는 그저 화제성이다. 그런데 올해 38살 된 ‘스티브 유’로 활동하는 가수 유승준씨의 복귀 문제는 찬반이 벼락처럼 뜨겁다. 유씨는 최근 인터넷 방송에서 한국 국적을 회복하고 고국 땅을 밟고 싶다고 무릎 꿇고 반성했다. 병역을 기피한 유승준을 받아 줘서는 안 된다는 측이 대세다. 분노의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이들은 유씨가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해외에 도피한 범죄자이자 거짓말쟁이로 더는 입대가 허용되지 않는 38살에서야 “군대에 가고 싶었다”고 발언하는 등 진정성이 없다고 더 분노한다. 또한 신체검사를 받고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도피한 탓에 유씨의 귀국 보증에 관여했던 병무청 직원이 두 명이나 목이 날아갔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최근 미국 조세법 개정으로 한국으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반면 유씨를 이제 용서하자는 측은 고위 공직자의 병역기피 혐의나 아들의 병역기피 등에 대한 분풀이의 제물로 ‘공직자’도 아닌 유씨를 삼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감정을 뛰어넘어 이성적으로 대처하자는 ‘동정론’도 나온다.

 

패자부활전은 중요하다. 유씨에 대한 국민의 과도한 분노는 고위 공직자나 아들의 병역기피를 단죄할 수도 없고 단죄하지도 않으며 ‘신의 아들’이란 특수계층이 생겨나고 있으니 발생하는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제갈공명이 왜 ‘읍참마속’을 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일벌백계하지 않는 사회에서 무차별적인 온정주의가 독버섯처럼 자란다면 장래가 밝지 않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김선태(논설위원)-20150522금] 금고

 

범죄집단이 마약밀매로 엄청난 돈을 챙긴다. 이들은 비밀금고에 돈을 숨기지만 또 다른 조직이 첩보를 입수,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해 이 금고를 결국 털고 만다. 누구나 한번쯤 영화에서 봤을 법한 소재다. 이런 범죄 오락물에 빠지지 않는 게 바로 금고다. 뭔가 비밀스럽거나 범죄와 연관된 돈, 탈세 등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떳떳하게 번 돈이나 개인적 소장품을 집에 보관하고 싶어 금고를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요즘엔 초저금리가 지속되면서 고액 자산가들 중에는 은행에 돈을 맡기느니 그냥 집에 현금을 보관하겠다며 금고를 사는 이들도 꽤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금고가 잘 팔린다는 소식이다. 롯데백화점의 고급 금고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30% 정도 늘었다. G마켓의 개인금고 판매 증가율은 2012년 2% 정도였으나 지난해에는 15%로 껑충 뛰었다.

 

영어로 ‘safe’ 또는 ‘strongbox’로 불리는 현대식 금고가 등장한 것은 19세기 영국에서다. 자물쇠를 만들던 찰스 첩, 저마이어 첩 형제가 1835년 도난 방지용 금고에 대한 특허를 받고 생산을 시작한 것이 효시로 돼 있다.

 

현재 금고에 대한 UL 인증은 가장 낮은 ‘클래스125’부터 가장 높은 ‘클래스TXTL-60’까지 모두 9단계가 있다. 클래스125는 금고 내부 온도 52도, 습도 80%까지 내용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수준이다. 금고로서 최소한의 기능만 갖춘 셈이다. 최고 등급인 TXTL-60은 기계적· 전기적 절단 도구, 드릴, 전기톱, 산소용접기, 절단용 토치 등으로부터 60분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진다. 또 110g 이하의 니트로글리세린(폭발물로 쓰이는 화약) 공격에도 끄떡없어야 한다.

 

가격만 최고 2억원에 달하는 독일산 명품 금고 되틀링이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는 소식이다. 96년 역사의 되틀링은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소량 제작하는 고급 금고로 ‘금고업계의 에르메스’라고도 불린다. 그런가 하면 화장실 천장 구멍에 500만원을 넣어뒀다 돈을 잃어버린 한 시민이 경찰에 도난 신고를 했다는 소식도 있다. 범인은 천장 속에서 살던 쥐로 밝혀졌고 돈은 무사히 찾았다고 한다.

 

2억원짜리 금고든, 천장 속이든 모두 소중한 돈을 보관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일 안전한 금고는 뭐니뭐니 해도 다른 사람의 호주머니라는 말도 있다. 내가 남에게 베푼 것은 도난당할 우려도 없고 언젠가 이자까지 보태져 나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문성진(논설위원)-20150522금] 위민크로스DMZ

 

'위민크로스디엠지(WomenCrossDMZ)'를 둘러싸고 국내외에서 찬반논란이 뜨겁다. 197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북아일랜드의 메어리드 코리건매과이어를 포함해 전 세계 15개국 30여명의 여성 평화운동가들이 오는 24일 비무장지대(DMZ)를 걸어서 넘어오는 이 행사에 대해 국민행동본부는 성명에서 "이 대회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 한반도에서 미군을 몰아내고 월남식 적화통일을 이루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세계적인 좌파 학자 노엄 촘스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교수는 "국제평화운동가들의 용기 있고 신념에 찬 결정"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위민크로스디엠지는 종북세력과 연결된 불순한 기도인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축제인가. 19일 평양에 도착한 후 북측의 대대적인 환영행사와 김일성 주석의 만경대 고향집 방문 등 그동안 행적만 보면 아직은 회의적인 부분이 있다. 위민크로스디엠지가 '한반도의 평화와 군사적 대결 완화'라는 행사의 본래 취지를 살리고 남북화해를 위한 메신저를 자임할 수 있으려면 남쪽에서의 남은 활동이 더욱 중요하다.

 

한국 정부는 "행사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21일 위민크로스디엠지의 판문점 도보횡단에 대한 취재불허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그러면서 판문점 대신 경의선 육로를, 도보 대신 차량 이동을 권했다. 남북 간 통행절차와 과거 사례, 안전상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우리 정부의 권고를 행사 주최 측이 준수하기 바란다.

 

그러지 않아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 무산과 북측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등으로 남북관계가 꼬인 상황이다.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행위로는 평화증진을 기대할 수 없다. 이달 초 경기도 파주에 '파티마 평화의 성당'을 봉헌한 독일인 신부 하 안토니오 몬시뇰(93)의 삶에서 우리는 진정성 어린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비원(悲願)을 읽을 수 있다. 그는 1958년 분단국 독일에서 한국으로 와 57년간 '빈자의 성자'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면서 1974년부터는 해마다 5월 임진각에서 '세계 평화와 남북한 평화통일'을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 "남북한 평화통일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한국에서 생을 마치고 싶다"고 말하는 독일인 노(老)신부의 눈에 '위민크로스디엠지'는 어떻게 비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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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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