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5ㆍ18민주화운동 ■ 경색된 남북관계 ■ 2012년 대선자금 수사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취임 100일 ■ 공적연금 개혁 ■ 케리 미국 국무장관 방한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5ㆍ18민주화운동
[한국일보 사설-20150518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논란할 사안인가
국가보훈처가 오늘 열리는 제35주년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결국 제창이 아니라 합창으로만 부르도록 결정했다. 윤장현 광주시장을 비롯해 시의회 의장, 시교육감, 자치구청장 및 자치구의회 의장 등은 공동성명을 통해 “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이 무산된 것은 이 노래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불의에 항거한 상징적 노래, 국민의 노래라는 점에서 5ㆍ18 정신에 반한다”면서 이 노래의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촉구하고 나섰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5ㆍ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2008년까지 10년 넘게 제창된 노래가 왜 안 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일부 보수단체 중심의 반대를 핑계 삼은 보훈처의 결정은 이해하기 어렵다. 보훈처는 “ ‘임을 위한 행진곡’이 1991년 황석영ㆍ리춘구(북한 작가)가 공동 집필해 제작한 북한의 5ㆍ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됨으로 인해 노래 제목과 가사 내용인 ‘임과 새날’의 의미에 대해 논란이 야기됐었다”면서 “특히 작사자의 행적 때문에 제창 시 또 다른 논란 발생으로 국민 통합이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백기완 선생의 시를 소설가 황석영이 개사한 것으로 1982년에 만들어졌다. 이 노래는 유족 추모제에서 불리다 2003년부터는 정부 주관 기념식에서 제창됐으나 2009년부터 식전행사로 밀리는 등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더욱이 가사의 ‘임’이 북한의 김일성이 아니냐는 황당한 주장까지 일부 보수단체에서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황석영이 북한을 방문했던 것은 1989년이고 ‘님을 위한 교향시’도 1991년에 만들어졌으니 이보다 10년 전에 작곡된 이 노래와는 무관하다. 누가 뭐래도 이 노래는 광주민주화운동이 기폭이 된 1980~90년대 우리 민주화 과정을 함께 겪고 참여해온 국민의 정서 속에 깊이 각인돼 있다.
아픈 체험과 극복의 시대적 상징성이 담긴 이 국민적 노래에 보수나 진보 따위의 요즘 이념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치졸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더욱이 생뚱맞은 ‘종북’ 딱지는 온 국민이 이뤄낸 민주화의 성취를 한꺼번에 모독해버리는 처사다. 도대체 문제 삼을 일조차 되지 않는 사안을 이런 식으로 굳이 키워 국민적 갈등을 조장하는 게 이 정권에도 뭐가 득이 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보훈처는 애국지사와 순국선열을 기리고 후손을 살피는 본연의 임무나 제대로 할 일이다. 마침 오늘 광주 기념식에 참석하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노래 제창으로 이 한심하고도 쓸데없는 논란을 끝내주길 바란다.
[경향신문 사설-20150518월] 5·18 정신을 그렇게도 지우고 싶은가
1980년 5월 부상한 뒤 공수부대원들에게 사살당한 채수길씨 등의 끔찍한 사연이 오늘자 경향신문에 보도됐다. 당시 미니버스에 총격을 가해 시민 17명을 죽인 공수부대원들은 아직 살아있던 채씨 등 2명을 끌고가 ‘안락사시키자’며 사살한 뒤 시신을 암매장했다는 것이다. 은폐됐던 이 사건은 2007년에야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보고서에 담겼다. 채씨의 동생은 최근에야 ‘학살의 비밀’을 알게 됐다. 누구도 진상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채씨의 사연은 5·18 민주화운동 35년이 지난 지금에도 미해결로 남아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채씨와 같은 억울한 사연을 간직한 피해자와 피해가족들이 남아 있는데 처벌을 받거나 혹은 최소한 용서를 구한 가해자가 얼마나 되는가.
여전히 역사의 포폄이 무서운 이들이 있다. 얼마 전에는 북한군 600명 침투설과 같은 터무니없는 허위사실을 유포함으로써 5·18 민주화운동을 논쟁의 난장으로 끌어들여 역사평가에 ‘물타기’를 꾀하는 세력까지 나왔다. 그런 가운데 5·18 행사를 주관하는 보훈처는 여전히 5·18 정신의 무력화에 앞장서고 있다. 이번 제35회 5·18 정부 기념식에서도 보훈처는 “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 형식으로 불러야 한다”는 5·18 단체의 요구를 거부했다. “북한의 영화 배경음악에 사용된 노래를 제창할 경우 국민통합을 저해한다”는 이유를 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과 민주화운동의 상징곡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보훈처는 막무가내다. 제창은 안되고, 합창은 되는 국민통합이 어디 있냐고 줄기차게 항변해도 오불관언이다. 보훈처는 심지어 여당을 포함한 국회가 의결한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기념곡 지정촉구 결의안’까지 2년 동안이나 무시하고 있다.
그 결과 오늘 5·18 기념식도 정부 행사와 5·18 단체 행사 등 두 갈래로 찢어졌다. 더욱이 정부 기념식은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공석인 총리까지 불참하는 초유의 모습을 연출하게 됐다. 과연 누가 국론의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가. ‘임을 위한 행진곡’에 종북의 색깔을 입혀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를 지우려는 것이 박 대통령이 추구하는 대통합이었나. 그러나 지우면 지울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것은 5·18 정신이다. 그것은 바로 3·15 의거, 4·19 혁명, 6월항쟁을 잇는 민주주의의 혼과 맥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민주주의의 역사를 모독하지 마라.
■ 경색된 남북관계
[한국일보 사설-20150518월] 진전은커녕, 심상찮은 상황으로 가는 남북관계
지난 달 24일 한미연합훈련 종료 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나라 안팎의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한 달이 다 돼가도록 남북관계는 진전커녕 오히려 더 나빠지는 흐름이다. 어제만 해도 북한은 “우리의 최고존엄을 훼손하는 악담질을 계속 한다면 멸적의 불소나기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또 험한 언사를 쏟아냈다. 박 대통령이 15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 등과 관련해 “극도의 북한 공포정치”를 언급한 것을 직접 겨냥한 위협이다.
남북 민간단체가 추진하고 있는 ‘6ㆍ15 공동선언 15주년’과 ‘8ㆍ15 광복 70주년 기념’ 공동행사 장소와 내용을 둘러싼 신경전도 심상치 않다. 북측은 16일 8ㆍ15 광복 70주년 공동행사를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남북 민간단체가 합의했다며 개최장소를 서울로 양보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우리측 ‘광복70돌 준비위’ 대변인은 지난 5~7일의 남북 실무접촉에서 6ㆍ15기념행사를 서울서 갖기로 한 것은 맞지만 8ㆍ15행사 장소는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고 맞서고 있다.
상징성이 큰 광복 70주년 공동행사는 남북 양측이 서로 개최하기를 원해 벌어진 갈등이다. 우리측 광복 70돌 준비위는 19~20일 개성에서 남북 접촉을 갖고 논의할 것을 북측에 제의해놓은 상태지만 응할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북측은 6ㆍ15, 8ㆍ15 두 공동행사에서 정치색을 배제하자는 우리측 주장을 거부해 조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남북이 끝내 두 행사의 장소와 내용에 접점을 찾지 못하면 관계진전의 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두 행사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분위기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여사 방북도 성사되기 어렵다.
여전히 돌파구를 못 찾고 있는 개성공단 임금인상 문제 역시 남북관계 진전의 동력을 떨어뜨리는 주된 요인이다. 북측은 개정된 노동규정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남측은 일방적인 임금인상에 따를 수 없다고 맞서 갈등이 세 달째 이어지고 있다. 이러다간 유일한 남북협력 무대로 남아있는 개성공단마저도 큰 위기에 처할지 모른다.
남북관계가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는 1차적 책임은 북측에 있다. 잠수함발사탄도탄(SLBM) 개발시험 등 긴장고조 행위가 이어지고, 현영철 처형처럼 상식적으로 납득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예민해하는 사안들에 대해 우리 측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일부 관측대로 북측이 장거리미사일 시험이나 4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그 파장은 예측하기 어렵다. 남북한 당국 모두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남북관계가 영영 파국을 맞을 수도 있는 엄중하고도 위험한 시기다.
[경향신문 사설-20150518월] 박 대통령, 남북대화 분위기 살리고 있나
최근 남북 간에 복잡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9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실험을 위해 미사일을 수중에서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또 지난 13, 14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쪽 해역에서 포사격 훈련을 했다. 이례적으로 밤늦게 함포와 해안포 수백발을 쏘는 무력시위를 한 것이다. 이 같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과 달리 한편에서는 평화를 기원하며 북한에서 남한으로 경계선을 걸어서 넘어오는 행사가 추진되고 있다. 세계 여성 평화 운동 단체는 오는 24일 북측에서 걸어서 판문점을 통과하기로 했고 북측의 승인을 받았다. 정부도 판문점 대신 경의선 육로를 이용하면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남북 민간단체도 6·15 공동선언 15돌 및 광복 70돌 기념 행사를 공동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6·15 공동선언 행사를 서울에서 개최키로 하고, 광복절 행사를 서울과 평양 가운데 어디에서 할지 이견을 조정하고 있다.
이렇게 지금 남북 간에는 대결과 화해의 흐름이 동시에 진행되는 미묘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화해의 흐름은 상대적으로 미약하고 대결의 기세는 강한 편이다. 이 시점에서는 화해 분위기를 살리고 대결을 피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북한이 도발적 태도를 버려야 하는 것은 물론 정부도 단절된 남북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유도하는 능동적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국가정보원의 움직임은 걱정스럽다. 특히 국정원은 확실하지도 않다면서 지난 13일 북한 내 군 서열 2위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반역죄로 처형됐다고 밝혔다. 예정에 없이 국회 정보위원회를 열어 보고할 만큼 그게 시급한 사안이었는지 의문이다. 외국 언론이 먼저 보도할까봐 그랬다는 식의 설명은 의혹만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민간한 정보 사항인 만큼 먼저 확인했어야 하고 설사 확인했다 해도 정보기관이 앞다퉈 그걸 공개하는 건 바람직하지도 않다. 더구나 남북관계 회복 노력이 필요한 시점에 그렇게 느닷없이 발표하면 정부의 대화 의지를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한동안 자제했던 대북 강경 발언을 최근 다시 시작한 점도 걱정스럽다. 박 대통령은 지난 14일 “국제사회가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 개선을 촉구하지만 적반하장 격으로 반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15일에는 “최근 북한의 도발적 행동과 극도의 공포정치가 알려지면서 많은 국민이 경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화를 포기하려는 게 아니라면, 박 대통령과 관련 당국은 불필요한 대북 자극을 자제해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518월] 北, 남북 공동 기념행사 무산시키면 안 된다
남북 민간단체가 함께 열기로 합의했던 6·15 공동선언 15주년 기념행사와 8·15 광복 70주년 기념행사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북한 측의 억지 주장으로 인해 경색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돌파구가 열리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북한 측은 내일과 모레 개성에서 추가협의를 하자고 제의한 우리 측의 호소도 외면하는 등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남북 공동행사를 계기로 민간 교류가 당국 간 대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 경색된 남북관계가 풀리길 학수고대했던 민족의 염원을 저버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북한 측이 입장을 바꿀 것을 엄중히 요구한다.
북한 측은 공동행사 개최 장소와 내용 등을 문제 삼고 있다. 6·15 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대변인은 그제 새벽 발표한 담화를 통해 “6·15는 서울, 8·15는 평양으로 이미 행사 개최 장소를 합의했다”며 8·15 공동행사 개최 장소를 서울로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6·15와 8·15 두 행사의 내용과 관련해서도 “순수한 예술, 체육, 문화교류의 공간으로 만들 수는 없다”며 우리 측의 ‘정치색’ 배제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뻔뻔스럽게도 무산위기의 책임을 우리 당국에 전가하기까지 했다.
‘6·15는 서울, 8·15는 평양 개최’라는 북한 측의 주장이 일견 타당한 듯하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억지와 다름없다. 당초 양측 민간단체들은 이달 초 중국 선양에서 만났을 때 6·15 서울 개최에는 쉽게 의견이 일치했지만 8·15 개최 장소는 추후 협의하자며 여지를 남겨뒀다. 북한 측이 평양 개최를 고집하지도 않았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6·15를 앞두고 억지 주장을 펴는 것은 결국 공동행사를 무산시키려는 의도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8·15보다 공화국 창건일(9월 9일)이나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을 더 중히 여기는 북한으로선 8·15 행사에 자금과 열정을 쏟아부을 여력도 없다.
올해는 6·15선언 15주년이자 8·15 광복 70주년인 뜻깊은 해이다. 남과 북이 하나의 마음으로 환영하는 두 기념일은 남과 북이 대립과 반목을 거듭해온 지난 7년간의 비정상적인 남북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이달 초 남북 공동행사 개최 합의를 두 손 들어 환영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남북 당국, 특히 북한 측은 남북 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을 가져올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인 두 행사의 성공적인 공동개최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그럴 자격도 없다.
■ 2012년 대선자금 수사
[한국일보 사설-20150518월] 증언 잇따르는 대선자금 수사 미적댈 일 아니다
지난 대선 때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정치권에 건넨다며 수억 원을 포장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성 전 회장과 사업 관계로 만난 A씨는 “2012년 10월 성 전 회장이 5만원 권이 가득 들어있는 여행용 가방을 끌고 서울 여의도 사무실로 찾아와 함께 현금 6억 원을 1억, 2억, 3억 원씩 가방 3개에 나눠 담았다”고 밝혔다. 그는 “가방 2개는 여당 의원 2명, 1개는 야당 의원 1명을 위해 준비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여당 의원 2명은 메모지에 포함된 정치인으로 알려졌다.
성 전 회장의 대선자금 의혹 관련 증언이 나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경남기업 전 재무담당 부사장인 한모씨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캠프 내 선거대책위원회 관계자 김모씨에게 성 전 회장이 2억 원을 건넨 것으로 알고 있다는 취지로 검찰에서 진술했다. ‘성완종 리스트’8명 가운데 대선 자금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인물은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이다.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지에 홍 의원은 2억 원, 유 시장은 3억 원을 받은 것으로 적혀 있다. 서 시장의 경우 실명 없이 ‘부산시장 2억’으로만 표기돼 있다. 이들은 모두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 캠프에서 핵심 보직을 맡았다. 특히 성 전 회장은 숨지기 전 인터뷰에서 “대선 때 홍 의원에게 2억 원을 줬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검찰은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 이은 조사대상자 선별에 고심 중인중인 것 알려졌다. 그 동안 확보한 자료 분석에 치중할 뿐 2단계 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 지사와 이 전 총리에 비해 단서가 상대적으로 부족한데다 성 전 회장이 숨져 진술을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자금 의혹과 관련된 증언이 속속 나오는 상황에서 더 이상 미적거릴 일은 아니다. 신속히 증언 당사자들을 불러 진술을 듣고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건 초기 경남기업에 대한 압수수색이 늦어 자료은폐와 폐기로 어려움을 겪었던 사례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수사가 어렵다고 해서 머뭇거릴 만큼 상황이 한가하지 않다. 국민들이 검찰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고 수사가 미흡할 경우 언제든지 특검 수사로의 전환이 예고돼있다. 행여 대선자금 수사가 현직 대통령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면 이 자체가 스스로 정치검찰을 자인하는 셈이다. 일찍이 김진태 검찰총장이 “정치적 고려 없이 수사하겠다”고 단호하게 천명했던 바다. 이번 수사의 성패에 검찰 전체의 명예가 달려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서울신문 사설-20150518얼] 檢, 이젠 대선자금 의혹 규명에 최선 다해야 Tweet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올라 있는 인물 8명 가운데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일단락됐다. 검찰은 두 사람을 불구속 기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이제 리스트에 오른 나머지 6명에 대한 의혹을 풀 차례다. 특히 그중에서도 홍문종 의원,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은 불법 대선자금 의혹과 관련된 인물들이다. 여기에다 “여야 유력 정치인 3명에게 건넨다며 1억~3억원씩 총 6억원을 가방에 나눠 담았다”는 성 전 경남기업 회장 측근의 진술도 새로 나와 의혹은 더 커지고 있다. 수사는 확대될 수밖에 없게 됐다.
성 전 회장이 2억원을 줬다고 지목한 홍 의원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다. 서 시장(2억원)과 유 시장(3억원)도 박 캠프에서 활동했다. 선거자금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사용했는지 잘 알고 있을 소위 친박 핵심 인사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선거자금 수수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리스트에 쓰인 이름과 금액 외에는 아직 뚜렷한 물증이나 목격자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대선자금 의혹은 이 전 총리나 홍 지사 수사보다 전모를 밝혀내기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모든 역량을 동원해 의혹을 규명해야만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 팽배해질 것이다. 성 전 회장은 사망했지만 거액의 비자금 출납을 관리하거나 옆에서 지켜본 인물이 없을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을 빠짐없이 불러 진술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동안 검찰은 대선자금 의혹을 밝히기 위해 물밑 수사를 해왔고 어느 정도 진전을 보았다고 한다. 경남기업 한모 전 부사장이 2억원을 주었다고 진술한 박 캠프 부대변인을 곧 조사할 예정이다. 이 2억원이 홍 의원에게 주었다는 2억원과 같은 돈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2012년 대선자금 수사는 어쩔 수 없이 박근혜 대통령과 연관돼 있다. 박 대통령이 알았든 몰랐든 박 대통령이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현직 대통령의 선거자금 수사라는 부담을 검찰이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사에 성역이 있을 수는 없다. 박 대통령도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하며 이번 사건을 정치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누차 언급해 왔다. 이는 박 대통령 자신도 ‘성역’이 아님을 스스로 밝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검찰은 부담을 떨쳐내고 수사에 매진해야 한다. 수사가 끝난 뒤의 책임 문제까지 검찰이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오로지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새로 불거진 ‘6억원’ 의혹에는 야당도 연루됐다. 수사 대상에 야당을 포함할 경우 물타기를 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야당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대통령도 성역이 아니듯이 야당도 성역이 아니다. 비난을 피하려면 검찰은 애써 여야의 균형을 맞추려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지만 형평을 위해 억지로 짜맞추기 수사를 하지 말기 바란다. 불법 대선자금 논란은 선거가 끝나고 나면 으레 반복돼 온 개혁의 대상이다. 기업의 목을 죄는 불법 자금 거래가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막중한 임무가 검찰에 달렸다.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취임 100일
[한겨레신문 사설-20150518월] 문 대표, 자리 건다는 각오로 혁신안 만들어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8일로 대표 취임 100일을 맞는다.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문재인 대표 자신에겐 지나간 100일이 1년, 어쩌면 그 이상의 긴 세월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만큼 지금 문 대표가 처한 상황이 힘들고 새정치연합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문 대표 개인의 정치적 미래가 달렸고, 제1야당의 앞날이 걸려 있다.
4·29 재보궐선거 참패에 정청래 최고위원 발언 파문까지 겹치다 보니까, 새정치연합 내부의 갈등과 불신은 매우 심각한 상태다. 그러나 국민과 야당 지지자의 시각에서 보면, 내부의 싸움보다 중요한 건 새정치연합이 신뢰받는 대안정당, 선거에서 이기는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스스로를 탈바꿈하는 일이다. 재보선 패배 이후 문재인 대표의 행보에 부족함이 있다 하더라도 쉽게 ‘지도부 교체’나 ‘당대표 퇴진’을 요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의 체질을 바꾸고 참신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을 충원하는 구조를 갖추지 못하면, 누가 당권을 잡더라도 새정치연합이 처한 위기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문재인 대표의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는 국민과 야당 지지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과감하고 혁신적인 당 쇄신안을 내놓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당 지도부가 지난 15일 ‘초계파 혁신기구’의 구성을 제안한 점에 주목한다. 기구의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기구에서 당내 계파와 공천 등 모든 문제를 논의하고 특정 계파가 아닌 국민의 뜻을 반영한 혁신안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이 기구에 당내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건 문 대표의 몫이다. 그러려면 문 대표가 여러 의견을 귀담아듣겠다는 자세와 유연한 정치력을 보여야 한다. 문 대표는 명분을 쥐고 당내 반대파를 ‘정면돌파’하려는 유혹을 느낄지 모르나, 4·29 재보선 결과에서 보듯이 실리를 담보하지 못하는 명분은 정치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이른바 ‘비노’ 그룹도 문 대표의 구상에 자꾸 딴죽을 거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옳지 않다. 의견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말하고, 함께 당을 바꿔 나가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특히 4·29 재보선을 빌미로 호남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야당을 추진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어떤 방식이든 제1야당의 분열은 명분 없는 행동이며 국민 지지를 얻기 힘들다. 국민은 야당의 분열이 아니라 혁신을 원한다는 점을 문 대표와 모든 당내 세력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18월] 문재인 100일, 이런 리더십으론 계파 갈등만 키울 뿐
18일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취임 100일을 맞는 날이다. 그럼에도 당내에서는 어느 한구석 이를 축하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당장 계파 갈등이 수습 불가능 국면으로 치닫고 있을 뿐이다.
비노계 수장 중 한 명인 박지원 의원은 16일 페이스북에서 문 대표를 향해 "선배들의 충언을 거두절미하고 지분·공천 나누기로 매도하시면 안 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문 대표가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든 계파가 참여하는 당 혁신기구 구성을 제의했지만 문 대표 측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내부 문서가 공개되면서 비노 측을 더욱 자극한 데 따른 반응이다. 문 대표 측은 문서에서 "당이 어려운 틈을 이용해 기득권과 공천권을 탐해 당을 분열로 몰아가면 그건 기득권 정치"라면서 비노를 강하게 비판했다.
새정연의 요즘 모습에서는 도저히 제1야당의 면모를 찾아보기 어렵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여론조사에서 야당 지지율은 새누리당의 절반 수준으로 미끄러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는 올라가는데 문 대표는 계속 뒷걸음질이다. 이러다가는 내년 총선은 물론이고 정권교체도 언감생심이다.
문 대표는 당권 확보를 통한 내년 총선과 대선 승리를 꿈꾸고 있겠지만 이는 전술적으로 선후가 뒤바뀐 것이다. 문 대표가 다시금 여론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은 국회 정상화뿐이다. 하루속히 국민 편으로 돌아가 공무원연금개혁안을 내놓는 한편 지난 본회의에서 통과시키지 못한 50여건의 민생법안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내놓은 여러 경제 활성화법 처리도 시급하다. 그래야 국민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고 흔들리는 당권을 추스를 수 있다.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은 새누리당이 잘해서가 아니다. 새정연에 대한 실망감의 반작용일 뿐이다. 문 대표는 사태수습의 전후 맥락을 진지하게 되짚어보기 바란다.
■ 공적연금 개혁
[한겨레신문 사설-20150518월] 공적연금 개혁, 여야 주도로 결실 거두길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15일 고위급 당·정·청 회동을 통해 지난 2일 여야 대표가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편안을 처리하기로 뜻을 모은 것은 일단 환영할 일이다. 보기 드물게 국회 주도로 사회적 난제의 돌파구를 연 합의에 대해 그동안 청와대와 정부가 어깃장을 놓으면서 보름 가까이 여권 내부 갈등과 비생산적인 사회적 논란만 키웠다. 이제라도 청와대가 여야 합의를 ‘주어진 여건 속에서 도출한 최선의 안’으로 평가하고 사회적 대타협의 의미를 긍정했으니 다행이다. 그러나 당·정·청은 야당이 주장해온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명문화에는 계속 반대하기로 해 이후 협상의 걸림돌을 남겼다.
여기서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50%’라는 수치의 배경에 자리잡은 의미다. 2일 여야 합의는 공적연금 강화를 통해 노후소득 보장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 1위의 노인빈곤율, 국민연금 사각지대와 낮은 소득대체율, 부실한 기초연금 등 노인세대의 삶의 질을 위협하는 요인이 산재한 상황에서 노후소득 보장체계 개선은 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퇴직을 앞둔 중년층의 공적연금에 대한 인식도 과거와 달라졌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가 주최한 긴급좌담회에서 연금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노후소득 보장체계 전반에 대한 포괄적 개혁을 논의할 절호의 기회라고 입을 모았다. 여야는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이런 시대적 요청을 우선 헤야려야 할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명문화를 밀어붙이지 않는 대신 실질적으로 노후소득 보장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주목되는 태도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17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새누리당에는 ‘50% 명기 철회’라는 명분을 주되, 우리는 기초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여 사실상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수준에 맞도록 실리를 취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협상의 또다른 축인 새누리당도 청와대에 휘둘려 스스로 발목을 묶었던 패착을 거두고 생산적인 협상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번 당·정·청 회동으로 청와대가 새누리당의 협상권한을 인정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만큼 앞으로 얼마나 자율성을 발휘해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청와대는 이참에 여당을 자신의 ‘2중대’처럼 조종해 여야 합의까지 좌지우지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이해당사자들을 직접 대면해 설득하는 정정당당한 정치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20150518월]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사회적 기구에 맡기자
새누리당과 정부, 청와대는 15일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해선 지난달 2일 여야 합의를 존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대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로 인상’은 향후 사회적 대타협기구를 구성해 논의하기로 했다. 당·정·청은 브리핑에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은 주어진 여건 가운데 최선의 안으로, 특히 최초의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서 전원 합의한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은 국민 동의가 필요하므로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서 논의해 결정돼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의 이종걸 원내대표도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정부에 ‘소득대체율 50%’의 명시를 요구하지 않겠다”면서도 “65세 이상의 기초연금을 소득 하위 90%(현재 70%)까지 확대하면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 50% 수준을 지킬 수 있다”는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이에 앞서 야당의 강기정 정책위 의장은 “여당이 연금과 법인세 당론을 모아 야당에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여야의 분위기로 볼 때 5월 임시국회에서 공무원연금개혁안 처리에는 일단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물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와 기초연금 강화, 법인세 인상 요구 등 새로운 연계조건들이 언제 발목을 잡을지 모를 살얼음판이다. 하지만 먼저 28일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처리하고 나머지 사안들은 사회적 기구에서 논의하거나 여야가 추가 협상을 벌이는 게 온당할 듯싶다. 지금 개혁안을 처리하지 않으면 현 정부 임기 동안 공무원연금 개혁이 물 건너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의 합의안조차 미루면 하루 100억원씩의 공무원연금 적자 보전액이 계속 쌓여 국가 재정을 병들게 할 것이다.
국 민연금과 기초연금 연계조건은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려면 반드시 보험료도 함께 올려야 한다. 9년 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내놓은 개혁안도 소득대체율을 50%로 유지하려면 보험료를 12.9%로 올리도록 돼 있었다. 또한 야당의 주장처럼 기초연금을 확대 지급하려면 증세 등을 통한 확실한 재원마련 대책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기초연금은 이름만 연금이지 사실상 세금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논의할 때 생산가능인구 감소, 경제성장 둔화, 청년 일자리 감소 등 갈수록 나빠지는 환경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또한 미래세대를 배려한다면 지금 기성세대가 좀 더 내고 덜 받으려는 양보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사회적 기구는 중장기적으론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 방안은 물론 사학·군인연금 등 공적연금 개혁을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기구에는 각 직역단체, 노동계, 재계 대표와 나중에 연금을 부담할 청년층 대표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 케리 미국 국무장관 방한
[중앙일보 사설-20150518월] 케리 방한, 위축된 한·미관계 회복 계기 삼아야
한·미 관계가 미묘해진 가운데 오늘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1년3개월 만에 방한했다. 다음달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 방미를 앞두고 미·일 관계보다 위축된 듯한 한·미 관계를 새롭게 다질 호기가 아닐 수 없다.
한·미 관계에 큰 틈이 생긴 건 아니나 미국은 최근 과거사 갈등을 빚고 있는 한·일 간에 은근히 일본 손을 들어주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지난달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방미 기간 중 상·하원 합동연설 등 지극히 환대한 건 그렇다 치자. 그러나 그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분명한 사죄를 하지 않았음에도 어물쩍 넘어간 건 큰 유감이다.
그럼에도 방한한 케리를 향해 과거사 문제와 관련, 미국을 압박해 일본을 견제하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전략은 아베 방미 때 이미 통하지 않는 걸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다음달 한·미 정상회담이 의미 있는 만남이 되도록 사전 조율하는 게 긴요하다. 이번 박 대통령의 방미는 아베의 합동연설 직후 이뤄져 자칫 초라해 보일 수 있다. 역대 대통령과 주변인물들의 탓도 크지만 한국 외교의 고질병 중 하나는 실속보다 외양에 치중해 왔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2년 전 이미 상·하원 합동연설을 한 데다 이번엔 실무방문인 만큼 아베 총리에 버금가는 환대를 기대하긴 무리다. 의전에만 너무 신경 써선 안 된다.
북한이 실험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에 대한 구체적인 방어책도 이번에 논의돼야 한다. 발사실험을 두고 진위 논란이 불거졌지만 틀림없는 건 북한이 SLBM 개발에 매진 중이라는 사실이다. 이대로라면 4~5년 내 실전배치도 불가능한 게 아니다. 심해에서 은밀히 움직이는 잠수함을 탐지하기란 극히 어려워 SLBM은 ‘침묵의 암살자’로 불린다. 북한이 SLBM을 갖게 되면 미 본토에 대한 핵 보복이 가능해지고, 현재 개발 중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와 킬체인까지 모두 무용지물이 될 판이다. 한·미 동맹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 사안인 만큼 케리 방한에 맞춰 공동방어책을 설계하고, 다음달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그 얼개를 완성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8월] 케리·윤병세 회담서 확인해야 할 것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어제 방한해 오늘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하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연다고 한다. 케리 장관이 방한하기는 1년3개월 만이다. 그사이 한·미 관계에 많은 일이 있었다. 전통적인 우방 관계가 눈에 띄게 약화됐는데 대부분 우리 측이 자초한 일이다.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TPP 참여에 대해서는 미적대다가, 중국과의 FTA 체결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과는 과거사 문제에 집착하다 한발짝도 진척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의 외교에서 거둔 성과도 변변찮다. 양국 정상이 서로 방문하는 등 외교적 이벤트는 많아졌지만 사드 문제 등으로 간극만 벌어졌다.
특히 미국과 일본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4월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면서 새로운 밀월시대를 열어가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미·일·호주 간 삼각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워싱턴 일각에서 ‘한국 배제론’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급기야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지난 3월 조찬장에서 테러를 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미국이 일본 엔화와는 달리 한국 원화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 외교장관이 다음달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만큼 이번 기회에 굳건한 한·미동맹 의지를 미국에 전해야 한다. 보도에 따르면 케리 장관은 우리 측에 한·일 관계 개선을 독려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일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자는 이 메시지에 우리 외교부가 무언가 답을 내놓아야 한다. 표면적인 문제가 없으니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윤병세식’ 이중어법으로는 절대로 풀 수 없다.
과거사 문제에 관한 한 중국은 이미 방향을 바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인도네시아에서 아베 총리를 만났을 때 과거사 문제는 언급을 피하는 대신 중국이 주도하는 AIIB 참여 권유 발언으로 일관했다. 한국만 비정상적 열정으로 과거사에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국제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국익 앞에서 언제든 유연하게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는 것이 외교다. 한·미 관계를 공고히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18월] 100명 중 3명만 뽑히는 대졸 취업 경쟁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올해 기업체 신입사원 되기가 더 어려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7일 내놓은 ‘2015년 신입사원 채용실태’를 보면, 대졸자들의 취업 경쟁률이 평균 32.3 대 1에 이르렀다. 100명이 지원했을 때 3.1명만이 뽑혔다는 얘기다. 이런 경쟁률은 지난해에 견줘 12.9%나 높아진 것이다. 힘들게 대학 4년 과정을 마쳐도 취직을 못해 어깨가 축 처지는 게 대다수 대졸자들의 현실이다. 비단 대졸자만이 그런 것도 아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부담도 적지 않다.
통계청은 4월 청년(15~29살) 실업률이 10.2%를 나타냈다고 며칠 전 발표했다. 1년 전보다 0.8%포인트 높아졌으며, 4월치만 따지면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99년 6월 이후 최고치라고 한다. 전체 실업률(3.9%)의 2.6배다. 우울한 자료는 더 있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최근 낸 자료를 보면, 전국의 청년층 실질실업률이 지난해 30.9%나 된다.
2010년 27.4%에서 4년새 3.5%포인트 늘어났다. 실질실업률은 공식실업률에, 나이가 많지 않지만 취업을 포기한 사람과 취업준비자, 구직단념자 등을 합해서 산출한 것이다.
청 년층의 실업률이 높은 것은 다른 나라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자리를 찾는 탐색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고, 이직이 잦은 점 등이 주된 이유로 꼽히고 있다. 이런 구조적 요인에다 세계 금융위기 뒤 경기부진이 겹치면서 청년층 실업률은 크게 뛰었다. 청년층이 미래를 이끌어갈 세대라는 점에서 걱정스런 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실업 상태가 오래 이어지면 직장에서 필요한 업무 능력 등을 키우기 어려워지고 취업 가능성이 더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는 개인의 좌절에 그치지 않는다. 한창 일해야 할 사람이 뒷전으로 밀려남에 따라 나라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손상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급진전하고 있어 문제가 간단치 않다. 노인층을 부양하는 데 구멍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정부가 좀더 실효성 있는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도 이런저런 청년실업 해소 대책을 시행중이지만 힘이 많이 달린다. 이와 관련해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이 임금피크제가 묘수라도 되는 듯이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 한계가 있음은 정부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청년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혜를 짜내야 할 때다. 기업들도 협조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518월] 얼빠진 국토부, 이러고도 민생 얘기할 자격 있나
영세 상인들의 권리금을 보호하기 위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지난 13일 시행됐지만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권리금 산정기준과 표준계약서도 아직 만들어 놓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권리금을 얼마로 정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건물주·세입자가 계약을 거부하거나 미루면서 상가 임대차 시장이 혼란에 빠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대통령은 입만 열면 “국회가 민생 법안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했지만 정작 국회가 법을 통과시켜 줘도 넋 놓고 있던 정부가 거꾸로 ‘민생 발목 잡기’에 나선 꼴이다.
이번에 통과된 법에는 권리금 산정기준이 없을 경우 주변 시세나 감정가 중 낮은 것을 택하도록 돼 있다. 세입자들은 시세대로 계약을 했다가 자칫 권리금을 손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건물주는 건물주대로 권리금 소송이 빗발칠까 걱정이다. 벌써 일부 건물주들은 손해배상 소송에 대비해 임대료 인상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이런 분쟁에 대비해 만들려던 분쟁조정위원회마저 국회 조율 과정에서 설립이 무산되면서 자칫 권리금 분쟁 소송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시장에선 “영세 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 되레 ‘분쟁 양산법’이 되게 생겼다”고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이런 혼란의 책임은 전적으로 국토부에 있다. 국토부는 “이렇게 빨리 법이 통과될지 몰랐다”며 핑계 대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자영업자의 권리금 보호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주요 내용 중 하나로 지난해 9월 정부가 앞장서서 대책 발표를 하고 국회 통과를 채근했던 사안이다. 그래 놓고 여태 실무 준비조차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직무 태만을 넘어 직무 유기에 가깝다.
국토부는 뒤늦게 권리금 산정기준과 표준계약서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지만 일러야 다음달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막상 작업을 해 보니 권리금 산정이 워낙 변수가 많고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한다. 애초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밀어붙이다가 생긴 일이란 얘기다. 이런 얼빠진 정부를 믿고 생업에 종사하는 국민만 불쌍하게 됐다.
[경향신문 사설-20150518월] ‘막말 극우 논객’에게 국정홍보를 맡기다니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 소통 강화를 위해 신설한 직제인 국정홍보 담당 차관보에 ‘극우 논객’ 이의춘씨를 임용한 것은 대단히 실망스럽다. 오늘부터 공식 업무를 시작하는 이 신임 차관보는 박근혜 정부를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시민단체와 세월호 유족 등을 비난하는 글을 써온 극우 성향 언론인이다. 그는 보수매체인 데일리안 편집국장을 거쳐 친정부 성향의 매체인 미디어펜 대표로 일하는 동안 진보 시민단체를 ‘악마의 집단 같다’고 표현하거나, 진상 규명을 요구해온 세월호 유가족들을 ‘나라를 마비시킨다’고 원색적으로 공격하는 등 극우 편향적인 기사와 칼럼을 써왔다는 점에서 ‘국민 소통’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국정홍보 차관보는 문화부 장관과 2차관을 보좌해 국정홍보·언론협력 업무를 관장하는 자리다. 청와대는 언론 보도 때문에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가 확산됐다고 믿는 것 같다. 정부 홍보를 총괄하는 문화부에 국정홍보 담당 차관보를 신설한 것은 대(對)언론 소통을 원활히 해 이런 상황을 타개해 보려는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언론단체들은 국정홍보 차관보 직제 자체가 언론통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전직 언론인 등을 활용한 정보 제공, 광고 등을 통해 부적절한 회유를 시도하거나 압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파성 짙은 언론인 출신이 그 자리를 맡게 된 것이다. 그가 미디어펜 시절 쓴 ‘이의춘의 시장경제 이야기’라는 칼럼을 보면 “(세월호) 유가족들 행태는 이제 국민들이 제지시켜야 한다. 반미 반체제 좌파인사들이 파리떼처럼 달라붙어 반정부투쟁으로 악용하고 있다” “좌파 시민단체는 악마의 집단 같다. 기업을 죽이지 못해 안달하고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여론의 기요틴에 의해 무참히 단죄됐다”는 등 극우 수구적인 성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 차관보의 거칠고 자극적인 칼럼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이미지와도 겹친다. 그가 비판 여론을 청취하고 소통하기보다 정부 논리를 일방적으로 전파하는 ‘정권 나팔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국정 난맥상이 있으면 고치는 게 먼저다. 정책 내용이 알차면 국정홍보는 자연히 따라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책 홍보 담당자가 모나지 않아야 소통도 가능하다. 우리는 이 차관보의 국정홍보에 대한 행보를 예의 주시할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518월] 세월호 인양 보고서 공개하는 게 맞다
정부가 세월호 인양과 관련한 핵심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달라는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요청을 거부했다고 한다. 해양수산부가 최근 ‘세월호 인양 기술검토보고서’를 제출하라는 특조위 요청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해수부는 보고서를 특조위에 넘기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없지 않은 만큼 인양 업체 선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보고서를 토대로 인양 용역업체 입찰을 해야 하는데 외부로 보고서가 나간다면 입찰에 부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세월호 인양에 온 국민의 눈길이 쏠려 있는 상황에서 누구도 설득하기 어려운 군색한 변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잖아도 지난 6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은 여전히 정부가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도가 담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해수부는 지난 3월 27일 입법예고한 시행령이 “특조위를 관제화하려는 것”이라는 반발에 부딪히자, 파견공무원을 줄이고 기획조정실장 명칭을 행정지원실장으로 바꾸는 수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핵심인 조사1과장을 파견공무원이 맡는다는 내용은 당초 시행령과 변한 것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보고서 제출을 거부하면 불필요한 의심만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세월호의 특수성이 아니더라도 거액의 예산이 투입되는 정부 입찰의 경우 해당 부처는 그동안 축적한 정보를 최대한 공개하는 방향으로 관행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부처는 정보를 감추려 하고,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는 어떻게든 정보를 빼내려 내부자와 결탁하는 모습을 우리는 그동안 수도 없이 보아 왔다. 그런 점에서 해수부는 세월호 기술검토보고서를 깊이 숨겨둘 것이 아니라 특조위에 전달하는 것은 물론 전면 공개하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
세월호 선체 인양은 단순히 가라앉은 배 한 척을 끌어올리는 작업이 아니다. 차가운 바닷속에 머물고 있는 실종자의 원통함을 풀어 주고 영혼에 안식을 주는 일종의 의례여야 한다. 그런 만큼 인양으로 진상을 밝히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의혹을 만들어 내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대형여객선인 세월호의 인양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게 고난도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세월호의 특수성을 잘 아는 해수부라면 인양 작업에 나서는 자세도 그동안과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8월] 가격제한폭 30%로 확대…투자는 자기 책임이다
내달 15일부터 주식시장 가격제한폭이 현행 ±15%에서 ±30%로 확대된다고 한다. 상·하한가 폭이 커지는 것은 1998년(12%→15%) 이후 17년 만이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지수채권(ETN) 등이 대상이다. 새로운 게임의 룰에 대해 우려와 기대가 엇갈린다. 하루 주가 변동폭이 최대 60%에 달하게 돼 비이성적 폭등·폭락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시장의 정보와 재료, 기업가치가 주가에 신속히 반영돼 가격기능이 효율화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선진국 증시엔 없고 한국에만 있는 제도가 가격제한폭과 주식매매차익 비과세다. 미국 유럽 증시는 개별 종목 주가가 하루에 50% 이상 뛰거나 내릴 수도 있다. 한국보다 가격제한폭이 작은 국가는 대만(±7%) 중국(±10%)뿐이다. 그렇다고 선진국 증시가 한국 중국 증시보다 변동성이 큰 것도 아니다. 주가 변동의 리스크가 크면 클수록 매수·매도세력 간에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벌어져 오히려 과도한 급등락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 점에서 가격제한폭 확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다가선다는 의미도 있다.
물론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가짜 백수오로 주가가 폭락한 내츄럴엔도텍과 같은 사례가 더 빠르고 강하게 재연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개미 투자자’들이 일시적 호재만 보고 달려드는 ‘묻지마 투자’도 줄어들 것이다. 신용융자, 주식담보대출 등 돈을 빌려 투자하는 위험도 커진다. 작전세력이 상한가 잔량을 쌓아놓고 시세조종을 할 여지가 줄어들 것이다.
일각에선 기관 비중이 25%에 불과해 부작용을 우려한다. 그럴수록 정보에 취약한 개인들의 간접투자를 유도해야 마땅하다. 과거 가격제한폭 확대가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호·악재 반영속도가 빨라지겠지만 주가는 궁극적으로 기업가치에 수렴한다. 투자자들이 작전주 테마주 대신 기업 실적과 펀더멘털에 주목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리스크가 커져야 리스크를 의식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8월] 사우디 vs 美 셰일업계, 석유전쟁 끝나지 않았다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셰일업계 간 힘겨루기가 치열하기만 하다. 얼마 전 사우디아라비아가 국제유가 급락 속에서도 시장점유율을 지키기 위한 산유량 유지 전략이 미 셰일업체들을 압박하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하자, 미 셰일업계가 “사우디의 승리가 아니다”며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 셰일오일 업체의 CEO들은 “생산량 감축은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며 반격을 예고했다. 셰일업계에선 WTI 가격이 배럴당 65달러까지 오르면 셰일오일 생산량이 두 배로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제유가 전망치는 아직도 극단을 오간다. 세계 석유업계 거물인 티 분 피컨스 BP캐피털매니지먼트 회장은 원유가격이 지금의 배럴당 60달러 수준에서 더 올라 연말에는 75달러까지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글로벌 에너지 정보업체인 플래츠의 반다나하리 수석애널리스트는 지난 14일자 한경 기고를 통해 추가 상승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심지어 OPEC조차 10년 뒤인 2025년까지 유가가 100달러를 넘지 못하고 최대 76달러까지 갈 수 있지만, 거꾸로 40달러 선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결국 더 오래 버티는 쪽이 최종 승리할 것이란 얘기다.
그렇지만 불확실한 상황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주요 산유국들의 재정은 원유판매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만 해도 재정을 지금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유가가 100달러 정도는 돼야 한다. 러시아는 120달러, 베네수엘라는 130달러는 돼야 재정을 끌고갈 수 있다. 이미 위기조짐이 보인다. 러시아는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1.9%로 추락했고, 베네수엘라는 외환보유액이 최근 12년간 최저치로 떨어져 정부가 보유한 금을 파는 지경이다.
석유전쟁은 진행형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소비량의 100%를 수입해 쓰는 한국으로선 조마조마한 상황이다.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지 않으려면 다각적인 대안을 만들어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정부 혼자 처리할 일만도 아니다. 정유업체를 포함한 민관합동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18월] 넘치는 달러… 해외투자 활성화 방안 시급하다
정부가 경상수지 흑자로 넘쳐나는 달러를 줄이기 위해 해외투자 활성화 대책을 조만간 내놓기로 했다. 개인의 해외증권 투자, 기업의 해외기업 인수합병(M&A) 등을 지원하는 종합대책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외환보유액이 쌓이는 것은 수출이 계속 감소하는데도 수입이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불황형 경상수지 흑자에서 비롯된 것으로 진작부터 환율 문제를 일으키며 우리 경제에 또 다른 부담을 주고 있다. 해외투자를 늘리는 적극적인 대책을 통해 연간 1,000억달러에 달하는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는 한편 원화 강세와 이에 따른 수출부진을 해결하겠다고 하니 정책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잖아도 개인의 해외투자는 국내투자에 비해 세제가 복잡하고 불리해 형평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국내주식에 직접 투자하면 증권거래세(0.3%)만 내면 되지만 해외주식에 직접 투자하면 매매차익에 대한 양도세(22%)와 배당소득세(15.4%)까지 내야 한다. 배당소득은 금융소득종합과세 과표에도 포함돼 투자자 입장에서 부담이 크다. 다른 소득과 한데 묶여 누진세가 적용되는데다 소득과 연계되는 건강보험료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해외펀드 투자는 매매차익은 물론 환차익도 과세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투자손실을 입어도 환차익을 보면 15.4%의 소득세를 내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해외기업 M&A는 기업이 사업구조를 개편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기업의 미래를 개척하는 유력한 수단이 되기 때문에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저마다 M&A에 열을 올리며 국가도 다양한 방법으로 M&A를 지원하고 있다. 일본만 해도 지난해 1월 기업 M&A를 지원하는 산업경쟁력강화법을 도입해 소니·미쓰비시중공업 등이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 부활하는 성공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이번 기회에 M&A 절차를 줄이고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 세심한 대책을 마련해 해외기업 M&A를 활성화해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18월] '메이드 인 인디아'를 새로운 성장 모멘텀으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18일 한국을 국빈 방문한다. 중국과 몽골 등 동북아 3개국 순방일정 중 마지막 방문지로 지난해 5월 총리 취임 이후 첫 방문이다. 모디 총리는 앞서 중국 방문에서 100억달러의 경제협력 프로젝트에 합의하는 등 중소 국경분쟁 등으로 오랫동안 소원했던 양국관계를 경제동반자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디 총리의 이번 방한도 방위산업·정보기술(IT)·항공우주 분야에서 양국의 협력방안을 모색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모디 총리는 방한 기간 중 현대중공업 조선소 방문과 '한·인도 최고경영자(CEO) 포럼' 등을 통해 우리 재계 인사와 두루 접촉할 예정이다. 이 같은 행보는 모디 총리가 취임 이후 줄곧 추진해온 '메이드 인 인디아' 정책과도 맥이 닿아 있다. 그는 이미 수차례 "플라스틱이든 자동차든 위성이든 가공식품이든 인도에 와서 만들어달라"며 적극적으로 25개 핵심 제조 분야에 대한 외국인 투자 유치를 강조하는 등 제조업의 세계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모디 총리는 이미 주지사 시설부터 친기업 행보로 구자라트를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주(州)로 만들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총리 취임 이후 인도 경제는 '모디 효과'로 불릴 정도로 세계 개도국 중 가장 눈부신 약진을 보이고 있다. 인도의 경제성장률(GDP)은 그가 총리직을 맡은 후인 지난해 3·4분기와 4·4분기 각각 8.2%, 7.5% 성장했으며 올해도 중국을 제치고 아시아 지역 최고 수준인 7.5%가 전망될 정도로 역동적인 모습을 과시하고 있다.
12억 인구의 인도 시장은 우리에게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장이다. 아직 무역규모가 200억달러에 불과한데다 우리 제품의 인도 시장 점유율이 3%(11위)에 그칠 정도라 개발 여지도 크다. 모디 총리의 이번 방한이 인도에는 한국이 중요 경제 파트너가 되고 또 우리에게는 메이드 인 인디아가 새로운 성장 모멘텀이 되는 '윈윈'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말글살이/김하수(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20150518월] 공짜 언어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처음 마주치는 언어를 가장 쉽게 배운다. 부모가 전문적인 교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기들은 순탄하게 익혀 대여섯 살이 되면 그 말을 통달하게 된다. 그래서 그 언어를 어머니의 언어(모어)라고 한다. 한때는 모국어라고도 했지만 국가의 배경이 없는 수많은 언어들을 배려한 이름이다.
이 모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흔히 애국심이 강조되며 본질적으로 민족혼을 담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모어를 중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모어와 애국심의 확실한 관계는 제대로 증명되지 않는다. 모어의 기능과 효과가 워낙 넓어서 매국노에게도, 적들에게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의 언어를 지나치게 애국주의적 관점에서 논하는 차원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모어는 공짜로 배우는 언어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큰 가치가 있다. 반면에 외국어는 무언가 값을 치르고 배우게 된다. 모어는 공짜이니만큼 사람마다 별다른 차이 없이 어슷비슷한 능력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 언어를 이용한 교육, 지식, 정보에는 보편적 신뢰가 생긴다. 나만 모르는 일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사회공동체는 모어의 능력을 구성원의 ‘자격증’처럼 생각한다. 또한 공짜는 특권층의 이익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공통성과 유대감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같은 의미에서 기초적인 사회생활을 저비용으로 혹은 공짜로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은 모어와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이 모이면 대개 같이 먹는 일부터 준비한다. 같이 먹으며 이야기하는 것이 공동체 구성원임을 서로 확인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자발적 기여와 헌신으로 강해진다. 결국 공동체는 공짜로 배운 모어의 바탕 위에, 서로 자신의 이기심을 넘어서서 공동체에 바치는 공짜의 힘으로 존재하는 셈이다. 모어는 이렇게 구체적인 이익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지 원래부터 어떤 거룩함을 지닌 것은 아니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조호연(논설위원)-20150518월] 서울 인구 1000만명
돌아보면 1988년은 중요한 정치·사회적 전환이 이뤄진 해였다. 우선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에서 벗어나 6공화국이 출범했다. 노태우 정권이 민주정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민주정권으로 가는 교량 역할을 했다. 두 해 전 아시안게임에 이은 올림픽 개최도 중요 사건이다. 부작용도 많았지만 이를 계기로 국가적 위상이 높아진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는 서울 인구 1000만명 돌파가 꼽힌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농촌 공동체 붕괴와 맞물린 도시집중의 결과다.
서울 인구 증가는 50년 전부터 국제적으로 화제가 됐다. 본격 경제개발이 시작된 1964년 서울 인구는 468만명. 6·25전쟁 후인 1955년 150만명에 비하면 10여년 만에 3배로 늘었다. 세계 도시화 사상 ‘경이로운 신기록’으로 불렸다. 공업화 초기 단계 국가의 수도 인구가 50만명에서 100만명으로 팽창하는 데 통상 20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그럴 만도 했다. ‘한강의 기적’은 서울의 인구 증가에도 어울리는 말이었던 셈이다. 대기업 본사의 95%, 4년제 대학의 85% 등 모든 것을 가진 도시가 인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서울 인구는 2000년대 들어 증가 추동력을 잃었다. 증가세 둔화를 거듭하더니 급기야 2013년 1000만명의 벽이 깨졌다. 주민등록인구는 1014만명이었지만 실제로 서울에 살고 있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거주불명등록자와 재외국민을 제외한 실제 총거주자수가 999만명으로 집계됐다. 25년 만에 1000만명 아래로 내려간 것이다. 현재도 서울 인구는 매년 5만명씩 줄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어제 인구추계를 통해 지금 추세대로라면 서울은 주민등록인구도 내년 말이나 내후년 초 1000만명 선이 붕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 경제성장의 상징이라 할 서울이 ‘쇠락의 길’로 접어든 셈이다.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다.
서울 인구 집중 현상의 발목을 잡은 주요인은 집값 등 주거비라고 한다.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인구의 대거 이탈이 이뤄진 것이다. 문제는 서울 유출 인구가 경기도 등 수도권에만 정착하고 있는 현실이다. 여타 지역으로 분산되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지방균형발전과는 거리가 있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구본영(논설위언)-20150518월] 개성공단 국제화의 조건
남북 상생의 시험장인 개성공단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북한이 공단의 최저임금을 일방적으로 인상하면서 촉발된 갈등 때문이다. 우리 측이 당국 간 협의를 채근하고 있으나 북측은 근로자들의 태업으로 압박하고 있다. 4월분 임금 지급 시한인 20일 개성공단은 사활을 건 기로에 설 전망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개성공업지구 노동 규정을 맘대로 개정했다. 남북 합의사항인 ‘최저임금 인상 상한선 5% 룰’을 폐지한 것이다. 이에 따라 3월부터 북측 근로자의 월 최저임금을 70.35달러에서 74달러로 인상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141.4달러인 개성공단의 평균임금은 베트남(193달러)보다는 낮으나 캄보디아(120달러), 방글라데시(74달러)보다 높다. 사회보험료·간식비 등을 포함한 기업의 실제 비용 부담은 230달러 수준이라고 한다. 그래서 공단의 139개 남쪽 기업 중 상당수 ‘한계기업’은 지금도 겨우 버티는 형편이다. 정부가 임금 인상 자체가 아니라 북측이 당국 간 협의를 기피하고 남남 갈등, 즉 정부와 우리 기업 간 틈새를 벌리려는 태도를 심각히 여기는 이유다.
최근 러시아가 개성공단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알렉산드로 티모닌 주한 러시아 대사는 지난달 말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는 의향을 공개했다. 러시아의 고려인 출신 기업인들이 제안한 식품 생산 프로젝트를 예시하기도 했다. 우리로선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의 입장이다. 공단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반긴다는 뜻이다. ‘개성공단의 국제화’는 북한의 일방적인 위협에 영향받지 않고 공단을 키울 최상의 대안이란 차원이다.
그러나 개성공단 국제화의 성패도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로선 외국 기업이 입주해 완충 역할을 해 주기를 절실히 바라지만 러시아를 포함한 당사국들은 개성공단이 안정화되면 투자하겠다는 자세다. 대북 투자 리스크로 인한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문제인 셈이다. 여기엔 현대아산의 금강산관광 투자 손실이나 중국 기업의 대북 투자 실패가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중국 500대 기업 중 하나인 시양그룹이 북한 옹진군에 2억 4000만 위안을 투자해 철광석 선광 공장을 세웠지만 투자금 대부분을 탈탈 털리고 철수한 게 단적인 사례다.
개성공단 말고도 북한 전역에는 해외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19개 특구가 지정돼 있다. 북측은 원산·금강산 관광특구 개발을 위해 27일 외국기업 대상 설명회도 가질 예정이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전망이 극히 불투명하다고 본다. 북한 경제에 대한 국제 신인도가 매우 낮은 탓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투자 유치에 성공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일까. 개성공단이든 다른 특구에서든 거위의 배를 갈라 알을 한꺼번에 빼먹으려 하지 말고 국제사회의 정상적 상거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518월] 생존 매뉴얼
올해 초 한 남성이 출근길 지하철에서 갑작스런 심정지로 쓰러졌다. 승객의 신고를 받은 역무원들이 다음 역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심각한 상황. 그때 옆에 있던 전직 간호사가 “자동제세동기(AED)를 빨리 갖다 달라”고 소리쳤고, 침착한 대응 덕분에 그는 목숨을 구했다.
자동제세동기는 가슴에 전기충격을 가해 심정지 환자의 심장박동을 되살리는 기기다. 지하철역을 포함한 공공시설에 설치돼 있다. 그런데 사용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생활안전연합 조사 결과 직장인의 4.6%에 불과했다. 45%는 자동제세동기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한 해 심정지로 사망하는 사람이 2만4000여명인데도 이렇다.
미 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어릴 때부터 의무적으로 ‘생존 매뉴얼’을 가르친다. 미국은 화재, 교통, 총기, 마약, 태풍, 학교폭력 대응책에 토네이도, 지진 매뉴얼까지 익히게 한다. ‘안전 천국’ 스웨덴에서는 3세 때부터 실사례 중심의 안전 교육을 시킨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미국 재난방재청의 민간인 재난대비 매뉴얼은 물을 정수하는 법까지 가르친다. 요오드나 과산화수소, 락스를 사용하라는 게 특이하다. 농도가 높은 것은 세척제로 쓰이지만 희석시키면 살균 작용 덕분에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생존 매뉴얼은 너무나 많다. 표준 매뉴얼과 실무 매뉴얼, 현장 행동 매뉴얼 등 3000개가 넘는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실제 상황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게 문제다. 지침끼리 얽혀 역효과를 부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차라리 최소한의 매뉴얼을 최대한 활용해서 더 많은 생명을 구하는 게 시급한데, 사고 때마다 책임자 처벌 등 ‘뒷북 징계’에만 열을 올린다. 책임 소재를 밝히는 것만큼이나 재발을 막는 예방책이 중요한데도 그렇다.
그나마 학생들의 안전 교육은 강화되고 있다. 오늘부터 닷새간 교육부 산하 2만여개 기관이 재난대응 훈련에 나선다. 올해는 이틀이나 기간을 늘렸다고 한다. 하지만 어른들의 안전 불감증은 여전하다. 전·현직 경찰관 두 명이 이런 상황이 안타깝다며 실속형 ‘생존 매뉴얼 365’를 펴냈다. 위기상황에서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데 필요한 실용 지침이 많다.
그 중 하나는 외딴곳에서 급히 구조를 요청해야 할 때 전봇대부터 찾으라는 것이다. 전국에 850만개 있는 전봇대는 도심에 약 30m, 농촌에 50m 간격으로 설치돼 있고 고유번호가 적혀 있어 금방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한기석(논설위원)_20150518월] 아인슈타인과 신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God does not play dice)."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솔베이회의(세계 최초의 물리학회)에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내세운 불확정성의 원리에 반대하며 이렇게 얘기했다.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르면 거시세계와 달리 미시세계에서는 입자의 위치를 확정할 수 없으며 오직 확률적으로만 알 수 있다.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그 사물에 반사된 빛을 시신경이 인식하는 것인데 원자같이 작은 입자는 도달한 빛에 튕겨 나가기 때문에 보는 순간 입자는 이미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확률론적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어 주사위 얘기를 했지만 정작 이 말은 의도와는 달리 아인슈타인이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유신론자의 주장에 가장 큰 근거로 둔갑했다.
그는 이 말 외에도 "신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게 현명하고 똑같이 어리석다.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요 과학이 없는 종교는 맹인"이라면서 신에 대한 그의 생각을 헷갈리게 했다. 사실 이런 말은 화자가 신은 진짜 있다는 전제하에 사용하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쓰는 표현일 뿐이다. 동물학자면서 대표적인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특히 과학자들이 별생각 없이 신이라는 단어를 쓰기 좋아한다며 일반인을 오도할 수 있는 만큼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 NBC방송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의 개인 편지 27통이 다음달 11일 경매에 나온다. 그는 이 가운데 한 편지에서 "신을 믿는다는 것은 순진한 것"이라며 "(신을 믿기보다는) 자연과 인간 존재에 대한 우리의 부족한 지적능력에 상응해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선호한다"고 썼다. 그는 과거 경매에 나온 편지에서도 "내게 신은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표현이다. 성경은 고귀하지만 다소 유치한 원시 전설들의 집대성"이라고 적었다. 아인슈타인은 무신론자임이 거의 100% 확실하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주철환(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20150518월] 봉숭아학당이 문 닫은 진짜 이유
‘일밤’의 ‘진짜 사나이’ 댓글 중에는 ‘저게 무슨 진짜야’라는 불만도 있다. 군대의 실상과 다르다는 얘기다. ‘우정의 무대’ PD 출신으로서 대신 답을 드린다. ‘진짜 사나이’는 진짜 군대를 보여 주려는 프로가 아니다. 그런 건 시사 고발 프로에서 한다. 그렇다면 국군의 날 특집 다큐 ‘이것이 군대다’에선 진짜 군대를 볼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진짜 군대를 보여 주는 프로라면 국방부에서 협조했을 리 없다. 그들은 ‘진짜 군대’가 아니라 ‘좋은 군대’를 보여 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진짜 군대를 보려면 TV 시청이나 면회가 아니라 입대하는 게 가장 낫다.
예능의 목표는 시청자를 웃게 만드는 거다. 개그맨들은 웃기기 위해 거의 목숨을 건다. 그러다가 억지웃음의 생산자가 되어 웃음무대에서 정학을 맞기도 하고 퇴학을 당하기도 한다. 전학도 간다. 그런데 웃음이 목적인 ‘진짜 사나이’에서 자주 들리는 대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웃지 마”다. 웃음을 참지 못하는 연예인 병사들은 조교의 심기를 안 건드리려고 이를 악문다. 난감한 상황이다. 조교도 곤욕을 치른다. “할 일도 많은 내가 왜 이런 연예인들과 카메라 앞에서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거지?” 웃음행군에 동원된 연예인과 웃음을 통제해야 하는 진짜 군인. 실제를 보여 달라는 제작진과 ‘알아서 잘해’라는 간부의 눈빛 사이에서 진짜 조교는 참 버티기 힘들 것 같다. 좋은 것을 보여 주려는 사람들과 실제의 것을 보려는 사람들의 어긋난 행보는 그 자체가 코미디 소재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정치권에 볼썽사나운 일이 터지면 반드시 등장하는 말이다. 번역할 때 유의해야 한다. 웃긴다는 얘기가 아니라 우습다는 얘기기 때문이다. 코미디의 유령이 여의도를 배회하고 있다. 이번에 부활한 건 봉숭아학당이다. (‘개그콘서트’팀은 긴장 좀 해야겠다. ‘닭치고(高)’라는 교실 코미디가 방송 중인데 폐교된 지 수년 된 봉숭아학당이 언급되다니.)
여기서 궁금증 하나. 봉숭아학당은 왜 폐지되었지? 비교육적이라서? 아니다. 좀 소란스럽긴 했어도 그 교실엔 창의가 살아 있었다. 성적의 노예는 없었고 적성의 활기는 넘쳤다. 교사는 모든 학생의 이름을 불러 줬고 골고루 발표의 기회를 줬다. 학생들이 원하는 교실은 온정도 아니고 냉정도 아니다. 공정이다. 그런데 왜 문을 닫았지? 더 이상 웃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시 코미디언의 일자리를 일부 정치인이 뺏은 건 아닐까? 그들의 코믹펀치가 맹구를 실업자로 내몬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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