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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0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경제 실패 자인하고도 개혁·개방 거부하는 北

북한은 어제 나흘째 진행된 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핵보유국 명시’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최고 수위로 모시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결정서를 채택했다. 김일성의 선당(先黨), 김정일의 선군(先軍)에 이어 ‘선핵’(先核) 노선에 기대 3대 세습체제를 이어 가려는 김정은의 의지가 확인된 셈이다. 그는 전날 사업보고에서 핵·경제 병진 노선을 “항구적 전략노선”으로 선언했다. 하지만 이 경우 더욱 강도 높은 국제 제재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면 가뜩이나 피폐한 북한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김정은 정권이 언제까지 핵·경제 병진이란 형용 모순의 구호로 북한 주민들은 물론 자신을 속일 것인지 궁금하다.

김정은도 이번 당대회에서 북한 경제의 실패를 이례적으로 자인했다. 그는 ‘핵 강국’의 지위에 무한한 자부심을 드러낸 것과 달리 경제에 대해선 “한심하다”는 표현까지 썼다. 특히 “선행 부문이 앞서 나가지 못해 나라 경제 발전에 지장을 주고 있다”고 경제난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하지만 문제는 당면한 경제난을 인정하면서도 “선군 총대로 날려 버렸다”며 개혁·개방을 한사코 거부하는 자세다. 그가 말한 ‘선행 부문 문제’는 경제발전의 초석인 에너지의 만성적 부족을 뜻하는 것으로, 이는 북한이 문을 걸어 잠그고 핵 개발에만 골몰한 업보가 아닌가.

이러니 빈사 상태의 북한 경제를 살릴 방도가 나올 리 만무하다. 북한 당국은 36년 전 6차 당대회에서 인민 경제의 ‘주체화’와 ‘현대화’를 천명했다. 그때는 결국 실패했을지언정 그럴싸한 구호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북측이 내놓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2016∼2020) 계획은 ‘속 빈 강정’을 방불케 했다. ‘핵 강국’을 자처하는 북한에 투자할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는 현실이 반영된 까닭이다. 최근 러시아마저 북한산 광물 수입 금지 등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이행 방안을 밝히지 않았나.

북측이 핵에 집착할수록 북한 주민들의 삶은 도탄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도 김정은이 ‘긴장완화를 위한 군사회담’을 제안하는 한편 북의 리명수 총참모장은 “명령만 내리면 원수들의 정수리에 핵 뇌성을 터뜨릴 것”이라고 위협했다. 핵을 내려놓고 동족의 도움을 청할 생각은 않고 이처럼 위장 대화 공세나 펴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이는 체제 붕괴 우려 탓에 자력으론 개혁·개방을 할 수 없는 세습 정권의 한계가 드러난 결과일 수 있다. 그렇다면 당분간 더 촘촘한 제재로 북한 정권이 경제를 살리려면 핵을 내려놓고 문을 열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2. 갑론을박하는 새 구조조정 골든타임은 흐른다

조선·해운업계 구조조정의 재원을 놓고 정책 당국이 연일 갑론을박하는 사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추경예산 편성과 관련해 입장을 번복했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역시 적극적 역할론에 이어 자본확충 펀드 조성 문제에서도 오락가락하는 분위기다. 한국 경제 회생의 분수령이 될 기업 구조조정이 시작도 하기 전에 좌초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당국이 재원 마련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도 실망스러운 가운데 시급한 것은 구조조정의 당사자들이 더 적극적인 자구책을 마련하는 문제다. 구조조정을 위한 재원 충당에 앞서 업계와 채권단 등 당사자들의 고통 분담이 있어야 혈세가 투입되는 구조조정에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 재원 조달을 둘러싼 논란으로 본말이 전도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삼성중공업과 대우해양조선 등 구조조정 해당 기업들이 자체 구조조정에 착수했다는 점이다. 현대중공업은 부서를 통폐합하면서 과장급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에 들어갔고 비핵심 자산 매각도 진행하기로 했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 역시 현대중공업과 비슷한 수순으로 인력 구조조정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업계의 자구 노력이 여론을 의식해 시늉으로 그치면 안 될 일이며 무엇보다 경영진의 책임은 피해 갈 수 없는 노릇이다.

더욱 큰 문제는 채권단인 국책은행들의 도덕적 해이다. 정부가 그동안 감독의 책임을 있는 국책은행에 강도 높은 자구 노력을 요구하고 있지만 국책은행들은 해당 업체에는 고통 분담을 요구하면서도 자신들의 ‘밥그릇’은 악착같이 지키고 있다. 다른 공공기관들이 앞다퉈 도입하는 성과연봉제를 한사코 거부하면서 평균 1억원의 고액 연봉을 꼬박꼬박 받아 가고 있다.

국민 부담이 큰 구조조정에 국민이 동의하는 것은 하루빨리 어려운 경제를 되살려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대기업) 구조조정의 시간은 이미 늦은 상황이다. (정부는) 더이상 실기하지 말고 정공법으로 구조조정에 착수하라”고 촉구한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해당 업체와 국책은행의 뼈를 깎는 자구 노력과 철저한 책임 규명은 성공적 구조조정을 위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3. '옥시 국회 청문회' 늦은만큼 제대로 파헤쳐야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그제 당정협의회에서 새누리당은 국회 청문회를 열겠다고 나섰다. 국회 차원의 진상 조사와 관련법 개정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국정조사도 하겠다고 했다. 피해 대책의 컨트롤타워도 국무총리실로 정했다. 환경부에 계속 맡겨서는 일사불란한 사태 수습이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폐 이외 다른 장기 손상에도 살균제가 영향을 미쳤는지 정부 차원의 역학조사를 진행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당정협의회에서 윤성규 환경부 장관을 작정하고 질책했다. “살균제의 유해성을 진작 확인했으면서 그동안 왜 정부는 피해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조사하지 않았느냐”고 몰아붙였다. 한마디로 ‘옥시 청문회’까지 열어야 하는 상황이 되도록 정부는 뭐 했느냐는 추궁이다. 일을 이 지경으로 키운 환경부야 백번 매를 맞아 억울할 게 없다. 하지만 국민 눈에는 뒤늦게 호들갑 떨어 대는 여당도 가관이다. 늑장 검찰 수사에 온갖 의혹들이 터져도 뒷짐 지던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철저한 조사를 주문하고서야 가까스로 움직였다. 겨 묻었다며 정부 탓만 하는 정치권은 국민 원성이 안 들리는 모양이다. 버스가 한참 지나간 뒤에 뒷북을 치니 국민들은 “그 정부에 그 국회, 도긴개긴”이라고 혀를 찬다. 여야 없이 청문회를 하겠다고 목청을 높이는 이유가 빤히 읽힌다. 연일 악화되는 여론을 모른 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엉터리 생활용품에 사망자가 속출한 사건은 누가 봐도 후진국형 참사다. 입 아픈 얘기지만 피해 발생 초기에 관계 당국이 기민하게 대처했다면 이런 난리는 겪지도 않았다. 2006년 일선 의료기관들이 살균제 피해의 심각성을 질병관리본부에 처음 알렸을 때 곧바로 역학조사라도 했다면 140명이 넘는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살균제의 위해성을 뒤늦게 인정하고서도 소극적인 대처로 일관했다. 수백 명의 피해자와 유가족, 시민단체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그런데도 여당은 모르쇠였고, 관련 법안 몇 개를 내놓은 야당도 그런 여당을 핑계 삼아 시간만 보냈다.

이번 파동을 국민들은 ‘안방의 세월호 참사’라 부른다. 그 참담한 심정을 여야 따지지 말고 새기고 또 새겨볼 일이다. 청문회로 뒤늦게 책임자를 가려내 호통이나 치는 일이 국회의 본령일 수 없다. 병 주고 약 준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거든 이제라도 실질적인 재발 방지 대책에 발벗고 나서라. 참사 10년이 지나도록 피해자 구제 관련 법안 하나가 제대로 없는 실정이다. 체면이라는 게 있다면 국회는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야 할 판이다.

소비자의 생명과 권익을 지켜 줄 법안들을 방치하는 것은 국회의 중대한 직무 유기다. 이런저런 이유로 밀쳐 둔 소비자 보호 장치들을 법으로 정비할 당위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20년 넘게 논의만 반복했던 소비자 집단소송제 도입부터 당장 검토하길 바란다. 기업 위축이 걱정된다지만 국민 생명 안전보다 더 급한 일은 없다. 새 국회가 진심으로 민생정치를 할 요량인지 아닌지 국민 눈에는 훤히 다 보인다.

[동아일보]

4. 내수 위축시킬 김영란법 시행령, 母法부터 보완하라
국민권익위원회는 어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법이 시행되면 공직자, 국공립 및 사립학교 교수, 언론인이 직무 관련이 있는 사람에게서 3만 원 넘는 식사 대접을 받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5만 원 넘는 선물 혹은 10만 원 넘는 경조사비를 받아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이 법 시행으로 내수 위축을 우려하면서 선물 가격 상한선을 합리적 수준에서 정하겠다고 밝혔으나 결과는 대통령의 말대로 되지 않았다. 한우 선물세트의 90% 이상이 10만 원을 넘는다. 농축수산업계와 화훼업계는 침통한 분위기다. 이 법이 시행되는 9월 28일 이후 내수가 급속히 침체될 우려가 높다. 

법은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1회에 100만 원, 연 300만 원을 받으면 처벌한다. 100만 원 이하라도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받은 금품의 2∼5배 과태료를 문다. 다만 원활한 직무수행이나 사교·부조를 위한 소액의 식사나 선물은 허용했다. 권익위의 이번 시행령안은 그 기준을 정한 것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공직부패를 근절한다는 모법의 취지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과잉·위헌 소지가 있는 부분은 앞으로 공청회를 거치며 다듬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정부안이 비중을 뒀던 공직자의 이해충돌 부분은 빠졌다. 의원들은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부분에서도 교묘히 직무 관련성에서 빠져나갈 통로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사립학교 교사와 언론인까지 포함시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제기돼 있다. 배우자를 포함시킨 것도 과잉이다. 공직자의 배우자인 줄 모르고 무심코 밥을 사면 과태료를 물 수 있다.

김영란법은 옳은 법이지만 완벽하진 않다. 특히 입법과정에서 국회의원이 지위를 이용해 자녀 특채를 청탁하는 것 같은 ‘이익 충돌 방지’ 조항이 누락된 것은 큰 문제다. 본래 취지를 되살려 이 법의 무리한 부분을 걷어내고 빠진 부분을 20대 국회에서 시급하게 보완할 필요가 있다. 

모법이 고쳐지지 않으면 시행령은 무리하게 설정된 범주 내에서 제정될 수밖에 없다. 법 시행까지 5개월도 남지 않았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시행령은 물론 법까지 고쳐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헌재의 신속한 결정이 필요하다.

5. 산은·수은 ‘임금 반납’은 성과연봉제 막으려는 꼼수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구조조정용 자금을 확충하기 전에 이들 국책은행의 임직원들이 임금을 반납하는 방안을 금융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한진해운 등 부실기업의 주채권은행인 국책은행이 부실한 감독 때문에 국민 세금을 공적자금으로 퍼주게 됐다는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고통 분담’에 나선다는 모양새다. 

작년 말에도 국책은행의 고임금과 수익성 악화가 논란이 되자 산은 간부 700여 명은 임금 인상분 2.8∼3.8%를 토해 냈다. 수은 직원들은 11, 12월 시간외수당을 반납했다. 국책은행 정규직 평균 연봉이 9500만 원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는 일회성 쇼다. 당시 수은 경영진은 2016년 기본급의 5%를 반납하고 일반 직원들도 2016년 임금 인상분을 모두 반납해 건전성이 악화된 수출입은행의 위기 극복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위기 때마다 임금을 쥐꼬리만큼 반납하고 수조 원대 혈세를 낭비한 무거운 책임을 면제받을 심산인가.

정부는 부실을 방조한 국책은행 담당자를 끝까지 추적해 법에 따라 징계해야 한다. 필요하면 기존 임금을 삭감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국책은행장은 자회사를 부실하게 관리한 임직원의 연봉을 깎는 성과연봉제를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 그런데도 산은과 수은 노조는 노동개혁의 핵심 과제인 성과연봉제 도입에 저항하고 있다. 일회성 임금 반납과 도입하면 돌이키기 어려운 성과연봉제를 주고받는 일종의 꼼수로 보인다. 노조는 박근혜 정부 임기가 2년도 채 남지 않은 데다 여소야대인 정치지형을 감안했을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성과연봉제를 이행하지 않은 기관에 임금 동결 등 페널티를 주겠다고 엄포를 놓지만 국책은행 노조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국책은행부터 방만한 경영을 일삼으면서 조선·해운의 부실기업에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주문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정부는 ‘공공기관이 모범을 보일 테니 민간이 따라오라’며 공공, 노동, 금융, 산업 부문에 개혁을 요구해 왔다. 신의 직장인 금융공기업이 성과급 도입을 완강히 거부하는데 정부가 민간에 성과주의 보상체계를 도입하라고 권유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6. 조기 전당대회 결정한 與, 쇄신보다 안정이 그리 급한가

새누리당이 어제 두 번째 당선자 총회를 열고 7월에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4·13총선 참패 이후 당을 수습하고 전당대회를 준비할 비상대책위원장은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당초 정진석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겸임해 비대위가 관리하는 전당대회를 조기에 열자고 한 친박(친박근혜)계, 외부 비대위원장을 영입해 ‘혁신형 비대위’를 구성하고 당 체질을 전면 쇄신하자는 비박(비박근혜)계의 주장을 어정쩡하게 봉합한 것이다.

정 원내대표는 “당의 안정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전당대회 시점은 7월을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준을 정했고 나머지 의원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달 남짓한 기간에 당의 체질을 바꾸는 쇄신 작업을 마친 뒤 전당대회까지 준비하기엔 일정이 너무 촉박하므로 비대위는 결국 전당대회 준비위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총선에서 그렇게 깨지고도 새누리당이 새롭게 환골탈태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당선자들의 인식과 판단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하기야 당선자의 과반이 친박계니 놀랄 일도 아니다.

앞서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특강에서 “선거 때는 안 하던 예쁜 짓도 하는데 그야말로 미운 짓만 했다”며 “(새누리당은) 이기기 위한 선거가 아니라 당내 세력 재편을 위한 선거였다”고 쓴소리를 날렸다. 또 “사회 변화에는 아랑곳없이 오로지 권력을 잡겠다는 것이 조선 말 세도정치였다. 우리가 세도정치가 망국의 길로 이끌었다고 얘기하듯, 후손들이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때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교수가 마이크를 놓자마자 정 원내대표를 비롯한 범친박계가 유권자의 변화에는 아랑곳없이 오로지 당권을 잡겠다는 욕심으로 조기 전당대회를 결정한 행태에 말문이 막힌다.

여당이 지리멸렬하는 사이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3당 국민의당은 차츰 수권정당으로 변모하고 있다. 더민주당은 ‘구조조정’을, 국민의당은 ‘교육개혁’을 어젠다로 선점했다. 2004년 천막당사 이전에서 보듯 집권 전 박근혜 대통령은 당이 흔들릴 때마다 혁신으로 위기를 타개했다. 이후 박 대통령과 친박은 ‘혁신 DNA’를 보여준 적이 없다. 그렇다면 당시 보여준 쇄신의 몸짓은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정치 쇼였단 말인가. 새누리당이 총선 패배 뒤에도 쇄신을 거부한다면 ‘보수정권 10년’도 자신들이 이전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비판한 것처럼 ‘잃어버린 10년’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이데일리]

7. 이래서는 관광수지 흑자국 요원하다

우리 국민이 지난 한 해 동안 해외여행을 하면서 쓴 돈이 26조원을 넘어섰다. 이에 비해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등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쓴 금액은 13조원에 불과했다는 게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소비지출 통계 결과다. 외국인 관광객 지출이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사용한 규모의 절반 수준에 그친 셈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국내에서 지갑을 여는 데 인색했던 반면 우리 여행객들이 해외에 나가 돈을 펑펑 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 국민들에게 해외여행을 자제하거나 돈을 쓰지 말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지난해 우리 국민의 평균소비성향이 관련통계가 시작된 2006년 이래 가장 낮았으면서도 해외에서는 아낌없이 돈을 쓴 현상만큼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해외소비는 대부분 여행을 하면서 먹고 마시고 물건을 사는데 뿌린 돈이다. 명품 가방 하나쯤 사갖고 들어오는 것도 보통이다.

무엇보다 외국에서 골프를 치면서 지출한 돈이 한 해 2조원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에서 즐기는 골프 비용이 국내보다 훨씬 싸기 때문에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공무원들도 마음대로 골프를 칠 수 있도록 여건이 마련돼야 함은 물론 골프 비용을 낮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관광수지 적자는 계속 누적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커를 포함해 외국인 관광객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린이날부터 주말까지 이어진 이번 황금연휴 기간에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유커 8만명을 포함해 무려 18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류 영향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인 관광객은 침체된 내수시장을 되살리는 데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한국을 다시 찾는 유커는 5명 가운데 1명꼴에 불과하다는 게 우리의 한심한 현주소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즐길 거리와 관광 인프라를 제공해야 하며 이들을 상대로 저질러지는 바가지 상혼을 뿌리 뽑아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한국이 친절하고 매력적이며 다시 방문하고 싶은 나라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켜야 할 것이다. 그들이 우리 국민이 해외여행에서 쓰는 돈만큼이나 기꺼이 쓸 수 있도록 주변 여건을 갖춰나갈 필요가 있다.

8. ‘밥값도 못하는 국회’ 원성 들어서야

우리 국회의원의 연봉은 1억 4000만원이 넘는 규모다. 기본급 개념의 일반수당에 입법활동비, 급식비, 명절휴가비 등을 더한 금액이다. 사무실 운영비와 비품대, 차량 유지비, 출장비, 정책개발비 등의 명목으로 나가는 9000여만원은 별도이므로 국회의원의 실제 세비는 연간 2억 3000만원을 훌쩍 웃돈다. 여기에 가족수당과 자녀학비보조수당을 비롯한 각종 수당을 포함하면 실수령액은 훨씬 더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이게 전부가 아니다. 공무원 4~9급 상당의 보좌진 7명과 인턴 2명의 인건비까지 합하면 국회의원 1명에게 지급되는 국민의 혈세는 연간 7억여원에 이른다. 이밖에 국회 구내 의료시설, 예식장, 체력장, 테니스장 등과 항공·철도 등을 무료 또는 저가로 이용하는 등 일반 국민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경제적 혜택을 누리는 게 국회의원이다.

한국은 국회의원 보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에 속한다. 주요 20개국의 국회의원 보수를 비교·분석한 보고서(류민형, 2013)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근소한 차이로 일본과 미국에 뒤진 3위지만, 국민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세계 1위나 다름없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국회의원 연봉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5.27배나 되지만 세계적으로도 고소득 국가인 덴마크는 1.84배에 지나지 않는다. 액수로도 한국의 40% 수준에 불과하다.

할 일만 제대로 한다면야 국회의원이 돈을 조금 더 받는다 한들 누가 뭐래겠는가. 결국 우리 국회가 놀고먹기로 이골 났다는 게 문제다. 주지하다시피 19대 국회는 사상 최악의 ‘식물국회’로 낙인찍혔고, 여소야대의 3당 체제로 출범하는 20대 국회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지레 걱정되는 상황이다.

여당이 한 달 세비 250만원 삭감 등 국회의원 수당법 개정안을 추진한다지만 정말 그렇게 이뤄질 것인지는 벌써부터 의문이다. 여태껏 비슷한 시도가 거듭 되풀이됐으나 실행된 경우가 거의 없는 탓이다. 차제에 본회의 및 상임위 출석률과 법안발의 건수 등의 의정활동에 따라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유권자들에게 읍소해가며 금배지를 달았으면서도 본연의 의무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의원들을 솎아내자는 얘기다.

[매일경제]

9. 여야 섞어 앉자는 정 원내대표의 제안 꼭 실행되길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0대 국회에서는 본회의장 좌석을 소속 정당별로 나누지 말고 여야 섞어 앉자고 어제 제안했다. 소관 상임위별로 앉거나, 추첨으로 배정해 협치와 소통의 정신에 맞는 구도로 바꾸자는 것이다. 정 원내대표는 아울러 초·재선 의원은 앞쪽에, 다선이나 지도부는 뒤쪽에 앉는 선수(選數)에 따른 의석 배치도 권위주의 시대의 관행이니 바꾸자고 했다. 매일경제가 실시한 20대 국회 당선자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132명 중 70%인 92명이 여야나 선수에 상관없이 본회의장 좌석을 섞어 앉자는 데 동의했다.

본회의장 좌석을 여야 간에 섞어 앉자는 의견은 매일경제가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MK현인그룹에 새로 출범할 20대 국회의 과제를 자문하면서 내놓은 제안이었다. 1948년 제헌국회 이후 관행적으로 여야로 갈라 마치 전투대형 모양을 띤 본회의장 좌석이 대결과 갈등을 부추기는 만큼 상징적인 차원에서라도 바꿔보자는 것이었다. 

우리보다 의회정치를 먼저 정착시킨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에서는 본회의장 좌석을 여야 구분 없이 지역구별로 모여 앉도록 하고 있다. 2003년 열린우리당이 당시 김근태 원내대표 주도로 본회의장에서 지도부를 앞에 앉도록 하고 상임위별로 모여 앉도록 하는 실험을 했지만 정작 다음해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하자 원상복귀한 바 있다.

MK현인그룹 전문가들이 20대 국회 당선자들에게 준 조언의 기본 방향은 작더라도 의미 있는 변화부터 모색해보라는 것이었다. 지역구 현안을 해결하는 데 힘쓰기 좋은 상임위만 쫓아다니지 말고 한곳에서 오래 일하며 전문성을 키워보라거나, 상임위 소위도 공개해 투명성을 높이고, 예결위를 상설화해 정부의 예산과 지출 낭비를 제대로 감시하라는 등의 주문은 구체적인 실행 방안들이다. 

양당 체제하의 극한 대치로 소모전만 거듭했던 19대 국회의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 20대 국회에서는 대화와 타협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4·13 총선에서 국민은 주문했다. 집권여당의 오만을 꾸짖었고, 3당 체제를 만들어 상생과 협치를 해달라는 메시지도 정치권에 보냈다. 20대 국회가 출발부터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려면 협치를 실천하는 작은 변화를 먼저 보여주기 바란다.

10. 좀비기업 솎아내기 더 엄격한 잣대 들이대라

이미 빈사 상태에 이른 조선과 해운 업종 외에도 더 늦기 전에 구조조정의 수술대에 올려야 할 기업이 수두룩하다. 특히 건설·철강·석유화학 같은 취약 업종은 업종 전체나 부분적으로 부실을 도려내는 수술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금융감독당국과 채권단은 여러 트랙으로 좀비기업들을 추려내고 있다. 은행들은 현재 신용공여액이 1조3000억원을 넘는 39개 그룹(주채무계열)을 대상으로 재무구조 평가를 하고 있다. 또한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 대기업의 신용위험을 평가해 한계·부실기업들은 채권단 공동관리나 워크아웃, 법정관리를 받게 할 예정이다.

개별 대기업 중 어느 곳이 올해 수술대에 오를지는 7월 말에 판가름난다. 매일경제가 지난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자료가 갖춰진 38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이자보상배율 2년 연속 1 미만, 영업활동 현금흐름 3년 연속 마이너스, 또는 자본 완전잠식으로 구조조정 수술대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 43개사였다. 

당국과 채권단이 이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구조조정 대상 기업은 늘어날 수 있다. 반대로 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 구조조정 대상도 줄고 강도도 약해질 수 있다.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좀비기업들을 제대로 정리하려면 부실 판정기준을 가능한 한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여실히 보여줬듯이 채권은행들이 돈을 빌려준 기업의 부실이 뻔히 드러나고 있는데도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미적대면 나중에 더 큰 화를 입을 수 있다.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국내 주요 조선사 대부분이 2~3년째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고 있는데도 채권은행들이 지금까지 이를 '정상여신'으로 분류하고 있다 뒤늦게 충당금 폭탄을 맞게 된 것이다.

채권은행들은 지난해 두 차례 신용위험평가를 통해 모두 54개사를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했다. 평가를 한 차례만 실시했던 예년의 30~40개보다 상당히 늘어난 것이다. 올해에는 더욱 엄격한 잣대로 부실 징후에 대한 평가를 실시해 좀비기업들이 더 이상 이런저런 핑계로 구조조정을 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한국일보][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 커피 향

요 며칠 친구가 직접 로스팅해서 준 안티구아 커피를 마시며 아침을 시작하고 있다. 숙면을 위해 이른 아침에만 커피를 마시는 내겐 하루 중 가장 향긋한 시간이다. 커피 관련 책을 두 권이나 낸 적 있는 친구는 커피광이라 할 만한데, 아마추어인 그의 로스팅 솜씨가 더없이 훌륭해 좀 놀랐다. 한때 나도 엄청난 양의 커피를 마셨다. 처음 커피를 처음 맛봤던 여중생 때부터 우리 집에서 커피를 가장 잘 끓이는 사람으로 통했던 나는 어디를 가든 커피를 지니고 다녔다. 그러다 지금처럼 오전에만 마시게 된 것은 불면증 때문인데, 나의 노화는 정확히 커피를 줄이던 때부터 시작된 듯하다. 친구가 극찬했던 커피숍 중에는 내가 자주 지나다니는 곳에 있는 집도 있다. 구멍가게 수준이었던 그 커피숍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져 늘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얼마 전 그 집의 커피가 그리워 찾아갔던 친구도 기함을 했다고 한다. 자신이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했던 그 집의 운영자가 너무도 불행해 보이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세 들어 있던 건물을 샀을 정도로 부자가 된 그가 그처럼 불행해 보이는 모습을 본 적 있는 나도, 나의 친구도, 커피를 통해 삶의 향기를 느끼고 있으니 죽네 사네 해도 아직 우리의 삶은 꽤 싱싱한 것 같다. 그 사실이 새삼 감격스럽다.

2. [서울신문][길섶에서] 카네이션/서동철 논설위원

어버이날이라는데 카네이션 구경을 하지 못했다. 직장에 다니는 딸아이는 전날 밤 현관에 들어서면서 “올해는 카네이션 없어. 내 경제력으로 카네이션 사는 것은 사치야. 대신 식사를 모실게” 하는 것이었다. 카네이션을 사러 갔더니 예전처럼 한 송이씩 파는 것은 보이지 않고 화려하게 꾸민 몇만원짜리 바구니만 있더라고 했다. “잘 생각했어, 먹는 게 남는 거지…” 하고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침 신문에 카네이션 거래량이 크게 줄었다는 뉴스가 보인다. 2011년에는 어버이날을 앞두고 56만 송이가 팔렸지만 올해는 37만 송이에 그쳤다는 것이다. 불황으로 소비가 줄어든 데다 다른 선물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그런데 우리 집의 경우 ‘불황’은 설득력이 없다. 한 송이씩 팔았다면 딸은 카네이션에 조각 케이크 한두 개쯤 곁들여 사들고 왔을 것이다. 사회 초년병에게 걸맞은 예쁜 소비다. 하지만 ‘대목’을 챙기려는 누군가의 욕심 때문에 소박한 사랑의 표현은 불발에 그쳤다. 미안한 얘기지만, 판매가 감소했다고 울상 짓는 분들 가운데 소비를 줄어들게 한 장본인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가슴에 손을 얹어 봐야 할 것이다.

3. [동아일보][동아광장/권영민]부산국제영화제를 어찌할 것인가

부산국제영화제가 위태롭다. 지난 20년 동안 쌓아온 동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서 그 전통을 제대로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 사회가 산업화 과정과 민주화 운동의 격변을 거치면서 키워온 문화적 역량을 그대로 상징한다. 한국에서 이뤄지는 크고 작은 국제적 문화예술 행사 가운데 동아시아라는 권역의 문화적 특성에 맞는 적당한 규모와 성격을 갖춘 영화제로서 그 정체성도 확립하였다. 그러나 성년의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부산국제영화제가 존립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영화제의 자율성과 정치적 간섭이라는 문제를 두고 그동안 영화제를 잘 운영해 온 부산시와 영화인들이 서로 반목하면서 갈등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20년 동안 착실하게 성장했지만 그 운영의 자율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영화제 운영의 예산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제 운영에 필요한 예산의 절반 이상을 매년 부산시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부산시에서는 이 영화제를 발의하고 조직하고 운영하기 위해 사단법인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를 결성했고, 부산시장이 당연직으로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영화제 운영에 관한 모든 문제를 주도해 왔다. 부산시의 이 같은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없었다면 이 영화제의 운영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영화제를 계속 이끌어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부터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인들이 책임을 지고 운영할 수 있는 영화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 부산시가 언제까지 영화제의 조직과 운영을 주도할 수 있겠는가? 

부산국제영화제의 경과보고에 따르면 지난해의 경우 영화제 기간에 75개국 302편의 영화가 상영되었고, 관객만 해도 23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영화 가운데 월드 프리미어가 94편이나 되었다는 것도 그 국제적 참여의 열도를 말해 준다. 영화제 기간 중 부산을 찾은 관광객까지 따진다면 영화제를 통해 부산이라는 도시가 얻는 유형무형의 이득도 큰 규모가 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부산에 덧붙여진 영화 예술의 도시로서의 새로운 이미지가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데다 이른바 그 ‘브랜드 가치’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부산국제영화제의 발전과 성공을 보면, 이제 부산시가 영화제 조직위원회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서 든든한 후원자로서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제의 예산을 지원한다는 지위를 이용하여 영화제 운영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앞으로 부산시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자율적인 운영 기반 위에서 세계적인 영화제로 발전할 수 있도록 뒤에서 더 많은 지원을 해 줘야만 한다. 부산시 스스로 동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라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 영화의 축제여야 하고 동아시아 영화인들의 축제여야 하며 세계를 향한 영화제가 되어야 한다. 부산시와 함께 부산국제영화제의 운영을 주도해 온 영화인들도 이제는 영화계 전체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젊은 영화인들에게 참여의 기회를 열어 주고 영화제의 자율적 운영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영화와 인접해 있는 여러 예술 분야의 전문가들도 함께 참여시켜 영화의 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보다 가까이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영화제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부산시에만 의존하지 말고 지원금을 폭넓게 모금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도 찾아야 한다. 특히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불필요한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이제 부산국제영화제는 이 영화제를 운영해 온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즐기는 국제적인 영화 축제를 만들어 놓고 왜 다시 망가뜨리려 하는가?

4. [동아일보][야마구치의 한국 블로그]한국의 택시, 때론 당황스럽고 때론 서럽고

외국인이 한국에서 겪는 난감한 일 중 하나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다. 요즘엔 그렇지 않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버스 두 대가 정류장에 나란히 도착하면 세 번째 온 버스는 서지 않고 가버리기 일쑤였다.

지난해 한 대학의 일본어과 학생들이 외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불편한 일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사람이 타자마자 버스가 출발해 넘어질 뻔했다”는 답이 가장 많았다. 승객들이 앉거나 손잡이를 잡는 것을 확인하고 출발하는 기사들이 요즘엔 많아졌지만, 여전히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서울 지하철은 이용하기에 큰 불편함이 없었다. 일본 지하철보다 나은 점도 있다. 일본은 전철 안에 주간, 월간잡지 광고가 많고 내용이 스캔들 중심이어서 어지러운 느낌이 든다. 한국 차내 광고는 공익성을 담은 내용이 많고, 문화 혜택을 주는 광고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지나가다가도 광고를 휴대전화로 사진 찍고 갈 때가 많다. 플랫폼에 시가 적혀 있는 것도 차를 기다리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하고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즐거움이다. 

다만 시설적인 면에선 아쉬운 점도 있다. 1호선이나 3호선처럼 오래전에 만들어진 역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플랫폼도 있다. 교통 약자를 위한 편의 시설이 완비됐으면 좋겠다. 

교통수단 중 제일 당황스러웠던 건 택시였다. 택시를 잡을 때 손을 올리고 크게 흔드는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손을 앞으로 쑥 내밀고 잡는다. 그걸 모르고 택시가 올 때마다 손을 올려 크게 흔드니 다 가버렸다. 겨우 정차하는 택시가 있다 해도 일본처럼 자동문인 줄 알고 가만히 서 있었더니 금방 떠나는 통에 택시 잡기가 참 어려웠다. 

택시를 무사히 잡아탔다 해도 황당한 일은 생겼다. 한 택시기사는 20분 동안 휴대전화를 들고 부인인지 애인인지 모를 상대에게 같은 욕을 무한 반복했다.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있는 손님이 왜 20분 동안이나 일방적으로 욕을 듣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하나 다행이었던 건 내가 외국인이었다는 것이다. 기사가 하는 욕이 한국말로 얼마나 강도가 센 것인지 와 닿진 않았다. 외국인으로서 서러웠던 적이 또 있다. 수업에 늦을 것 같아 택시를 타고 급히 가는 중이었다. 나는 목적지가 다가오자 “왼쪽! 왼쪽!” 하고 외쳤는데 기사 아저씨가 갑자기 “왜 갑자기 반말을 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난 일본사람인데 명사만 말하는 것이 반말이 될 줄은 몰랐다”고 답했다. 일본에서는 반말이라는 개념이 없고 급할 때 단어만으로도 말하곤 한다. 기사 아저씨는 “왼쪽은 명사가 아니라 지시대명사잖아요. 아는 척하기는…” 하고 흥분된 목소리로 항의했다. 외국인으로서 이해받지 못한 것이 불쾌하고 황당했다.

물론 친절한 기사 아저씨도 많다. 그래서 즐겁게 대화할 때도 있다. 그래도 항상 조심해야겠다는 걸 느낀다. 먼 시골에 가 택시를 탔던 날이었다. 기사 아저씨와의 대화가 너무 재밌어서 잠시 정신줄을 놓아버리곤 내릴 때 여행 가방을 트렁크에서 꺼내는 걸 깜빡했던 것이다. 내가 명함도 건네줬던 기사였기에 금방 연락이 될 줄 알았는데, 결국 가방을 찾을 수 없었다. 아저씨 탓만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영 기분이 찜찜했다. 그 이후론 택시 탈 때 항상 기사님의 관상을 본다. 내가 외국인이라는 걸 알면 멀리 돌아갈까 봐 나는 되도록 일본인 티가 나지 않게 낮은 목소리로 한국인처럼 말한다. 

그래도 요즘 버스에서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승하차 때마다 인사해주는 기사를 종종 보게 돼 기분이 좋다. 택시를 탈 때 나도 먼저 기사 아저씨에게 인사하고 내릴 때도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하고 말한다. 택시기사를 평가하는 제도가 시행된다는 소식이 들려 반가웠다. 대중교통 종사자들은 국가 이미지를 좌우하는 중요한 직업이다. 그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친절한 얼굴이 되길 바란다.

5. [중앙일보][분수대]페이스북에 갇힌 50분

50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이하 페북) 창업자가 지난달 말 실적발표에서 밝힌 전 세계 페북 이용자의 하루 평균 사용시간이다. 그깟 50분이 뭐 그리 대수냐고? 그렇지 않다. 전 세계 70억 인구 가운데 16억5000만 명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페북을 이용하는데, 그들이 일평균 50분을 쓴다는 것이니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책 볼 시간 없다며 하루에 겨우 20분 내외(미국 노동부 조사 19분, 한국 국민독서실태조사 22.8분)만 독서에 할애할 때, 그 질리게 많다는 중국 인구(13억7000만 명)보다도 훨씬 많은 수가 페북에 매일 50분씩 쏟아붓는다. 책은 읽을수록 내 머릿속을 채우지만 페북은 하면 할수록 나의 관심사나 습관 같은 사적인 정보를 공짜로 제공해 사실상 페북 돈벌이만 시켜 주는 구조인데도 말이다.

그렇다 보니 ‘중국 사람이 동시에 발을 구르면 대륙이 움직인다’는 우스갯소리나 ‘중국이 움직이면 세계가 바뀐다’는 비유는 이제 중국 대신 페북으로 바꿔 넣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정도가 됐다. 지난 10여 년 동안 네이버가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페북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만 간다. 이용자가 늘면 활동적이지 않은 신참들 탓에 통상 그 사이트 안에서 머무는 평균시간은 줄어들기 마련인데 페북은 이 법칙도 거스르고 있다. 이용자가 매년 크게 늘고 있지만 평균 이용시간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40분(2014년)에서 50분으로 껑충 뛰었다.

그런데 페북은 이 50분으로도 만족하지 않고 이용자를 더 오래 페북 안에 잡아두겠다며 최근 알고리즘(일종의 작동방식)을 또 바꿨다. 사실 ‘시간’은 페북뿐 아니라 모든 디지털 미디어의 화두다. 오래 잡아둘수록 이용자의 반응을 끌어내는 데는 물론 광고 유치에도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뉴욕에서 열렸던 국제뉴스미디어협회(INMA)의 빅데이터 콘퍼런스에서 파이낸셜타임스(FT)의 광고 책임자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얼마나 얻기가 어려운지를 “(제 아무리 대단한) 저커버그라도 어쩔 수 없는 게 바로 모두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의 시간”이라는 표현을 써 가며 이야기했다. 과연 그럴까. 페북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알고리즘 변경을 앞세워 시간싸움에서도 이미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2위인 유튜브의 평균 이용시간은 페북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모든 걸 빨아들이고 있는 페북. 그 갇힌 세계가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페북 입맛에 맞게 조련당하는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솔직히 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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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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