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5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여혐' '남혐' 대결장으로 변한 추모현장
서울 강남 화장실 살인사건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성한 추모 공간이 엉뚱하게 성대결의 장으로 번진 데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갈등의 극대화를 통해 자기만족을 채우려는 그릇된 욕심이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겨진다. 추모 현장에서 ‘여혐(여성 혐오)’이니 ‘남혐(남성 혐오)’이니 하며 다투다니, 23살의 꽃다운 젊음을 생면부지의 범인에게 무참히 빼앗긴 피해자에게 부끄럽기만 하다.
범인은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기다리다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죽이는 ‘묻지마 범죄’를 저질렀다. 이에 대해 일부 누리꾼들이 남성은 범행대상에서 제외시킨 ‘여혐’이라고 주장했고, 다시 “남혐을 부추기지 말라”는 반격이 제기됐다. 논란은 ‘김치녀(김치+여성)’, ‘한남충(한국 남자+벌레)’ 등의 혐오 용어가 난무하며 확산되다가 급기야 추모 현장에서 몸싸움까지 빚어지기에 이르렀다. 추모정신을 망각한 추태가 아닐 수 없다.
정신이상자의 돌출행동을 사회 전체의 일반 현상으로 확대 해석해선 곤란하다. 범인이 어제 현장검증에서 심경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그냥 담담하다”고 태연자약하게 답변한 것만 봐도 온전한 정신 상태는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 성차별이 여전하며 여성을 범죄에서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크게 미흡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놓고 여혐이 만연한 탓으로 몰아가거나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듯 남혐을 규탄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갈등만 증폭시킬 뿐 문제 해결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피해자의 오빠가 현장의 소동을 지켜보며 “죽은 사람과 관련도 없는 이들이 자기들만의 얘기를 하고 있다”며 절규한 것도 그래서일 게다.
우리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룬 유일한 나라임을 자부하기에 앞서 여성과 아동,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턱없이 부족한 점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강남 한복판에 공용화장실이 버티고 있는 것도 선진사회와는 거리가 먼 얘기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비상벨 설치 등 화장실 안전 확충을 포함해 여성들에 대한 배려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2. SK·CJ 인수합병 심사 왜 지연되나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심사가 계속 늦춰지고 있다. SK텔레콤이 지난해 12월 공정위에 기업결합 심사를 신청한 이래 벌써 6달 가까이 지나가는 중이다. 공정거래위가 과거 사례를 들어 지금의 심사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내세우는 자체가 문제다. 인수·합병 심사가 1년이 넘게 걸리기도 했던 과거의 일부 업무처리가 마치 정당했다고 내세우는 투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이 합치게 된다면 이동통신 및 케이블TV 업계에 막대한 파급력을 미치게 된다는 점에서 세심한 심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더라도 기한은 지켜지는 게 옳다. 현행법에 120일의 기한을 정해놓은 취지가 그런 뜻이다. 기한이 늦춰졌던 과거 사례가 업무처리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이 올바른 것이 아니라면 제대로 잡아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인수·합병을 빨리 허가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조건에 맞지 않다면 맞지 않는 대로 처리하면 그뿐이다. 기업이 인수·합병을 시도하면서 나름대로 투자 계획이 있기 마련이며 시기를 놓칠수록 효과는 떨어지게 된다. 자칫 예상하지 못했던 역풍에 시달릴 수도 있다. 이번 경우에도 CJ헬로비전 소액주주들이 주가 상승 등을 이유로 들어 합병비율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진통이 이어지는 중이다.
문제는 공정위 심사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공정위를 통과해도 방송통신위원회의 사전승인 절차를 거쳐 미래창조과학부의 최종 승인이 떨어지기까지는 또 어느 만큼의 시일이 걸릴지 장담하기 어렵다. 더욱이 통합방송법 개정안이 다음 20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될 예정이어서 이들 두 회사의 인수합병 문제는 정치적으로도 논란을 피할 수가 없게 됐다.
중요한 것은 업무 처리에 임하는 공직자들의 기본 자세다. 아무리 위에서 규제개혁을 내세우고 절차를 간소화하도록 강조해도 밑에서 서류를 붙잡고 있다면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기 어렵다. 직접적으로 이해관계에 있는 다른 통신사나 방송사, 시청자 단체들의 논란이 이어지는 만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지만 자꾸 날짜만 보낼 일은 아니다. 정부가 관련업계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불평만큼은 듣지 말아야 한다.
[서울신문]
3.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무고한 피해자 없게 하길
경찰이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계기로 정신질환자의 입원 등 관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그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를 발견하면 행정입원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행정입원은 경찰이 의사에게 정신질환자의 입원을 요청하면 해당 의사가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진단과 보호를 신청하는 제도다. 다만 범죄 가능성이 의심된다는 전제에서다. 긴급 상황 발생 때 72시간 이내에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는 기존의 응급입원제 역시 활용하기로 했다.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닌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라는 결론의 틀에서 정신질환자가 대책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강 청장의 발언은 정신질환자의 인권침해 소지를 포함해 적잖은 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고 있다. 또 범죄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의심되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판단 잣대도 문제다. 경찰은 정신질환자의 범죄 위험도를 측정하는 체크 리스트를 만들 계획이다. 그러나 정신질환은 한 가지 기준으로 판정할 수 없다는 게 의료계의 의견이다. 따라서 점검표에 의존해 입원을 결정하려는 경찰의 조치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자칫 오판하면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통념과는 달리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비정신질환자의 10분의1 수준이라는 통계도 있다.
강제 입원을 규정한 현행 정신보건법 제24조 제1항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청구된 상태다. 악용 사례가 잦은 탓이다. 부양 의무자나 후견인 등 보호 의무자 2명의 동의가 있고 정신과 전문의가 진단하면 정신질환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입원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법적 절차를 밟아도 인권침해를 낳는 판에 길거리에서 범죄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만을 콕 찍어 낼 수 있겠는가. 이번 사건 피의자도 조사 과정에서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범죄 우려의 구분이 쉽지 않다. 물론 실질적인 위험성을 가진 정신질환자의 격리는 마땅하다. 그렇다고 정신질환자에게 범죄자라는 편견의 굴레에 덧씌워서는 안 된다. 오히려 치료를 꺼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정신질환자도 도외시할 수 없겠지만 안전 위협 요인들을 더 철저히 파악해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야 한다. 빈틈없는 치안은 중요한 복지 정책이다.
4. 북한 비핵화 의제라면 회담 못할 이유 없다
그제 정부는 군사회담을 열자는 북한의 잇단 제안에 선을 그었다. 국방부가 북한 인민무력부가 보낸 전화통지문에 대한 답신을 통해 북측의 파상적 대화 공세에 진정성이 없음을 지적하면서다. 국방부는 한반도의 현 긴장 고조 상황은 북측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도발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면서 비핵화에 대한 북측의 입장 표명을 먼저 요구했다. 현시점에서 정부가 북측의 ‘위장평화 공세’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 자체는 당연하다고 본다. 다만 우리는 북한 비핵화 원칙을 지키면서도 남북 대화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는 전략적 대북 접근도 주문하고자 한다.
최근 북한은 남북 군사당국 간 회담에 부쩍 몸이 단 모습이다. 북한 국방위원회가 공개 서한으로 제안한 데 이어 인민무력부가 실무접촉 시점을 5월 말∼6월 초로 잡아 그들 스스로 끊었던 군 통신선으로 전통문까지 보내왔다. 22일엔 조평통 원동연 서기국장이 회담 개최를 촉구하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북측이 일련의 파상적 대화 공세를 벌이는 의도는 뻔하다. 굳이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엊그제 언론 인터뷰에서 “핵개발 책임을 덮고 가려는 면피용”이라고 지적한 사실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얼마 전 스위스 정부가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안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북한 자산을 전면 동결하지 않았나. 스위스에 수십억 달러의 비자금을 숨겨 놓았다는 김정은 정권으로선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국제 제재의 소나기를 피하려는 북측의 불순한 의도가 읽히는 배경이다.
특히 북측은 조평통 담화로 “핵 포기 같은 부당한 전제조건 그만두고 대화에 나오라”고 요구했다. 회담이 성사되더라도 김정은 정권에는 곤혹스러운 대북 전단이나 확성기 방송 중단 문제 등을 의제로 임하겠다는 심산을 드러낸 셈이다. 북측으로선 꽃놀이패를 던졌다고 착각할 만한 대목이다. 회담이 성사되면 소기의 목적을 이루고 안 되더라도 남북 긴장의 장기화를 불편해하는 일각의 정서를 겨냥해 남남 갈등을 조장하려는 속셈이라면 말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회담 제안이 먹혀들지 않으면 북·미 협상을 제안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북핵 보유를 전제로 한 평화협정 협상에 응할 리는 없겠지만, 우리가 먼저 대화를 피할 까닭도 없다. 북한의 허황된 기도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비핵화나 북한 인권 문제 등을 의제로 공세적 역제의를 검토할 만하다고 본다. “두려워서 협상해서는 안 되지만 협상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경구를 상기할 때다.
5. 꼬이는 구조조정 정부 협업 체제로 풀어야
조선·해운 업계의 구조조정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당정은 다음달 말까지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되면 고용유지 지원금은 물론 구직급여 특별 연장이나 재취업 훈련 등 행정과 재정이 다양한 형태로 구조조정을 지원할 수 있게 된다. 조선사 중소 협력업체들의 경영난을 덜기 위해 체납 세금과 4대 보험료 등의 징수를 유예하는 한편 조선산업의 메카인 경남 거제시의 불황 타개를 위해 관광산업 추진 등의 방안도 논의됐다.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재원 마련에 대해서는 아직도 구체적으로 확정된 안이 없는 상태다. 일각에서는 구조조정 자체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내년 대선과 맞물려 자연스레 표류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조선·해운 업계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가닥을 잡지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 정부에 책임이 있다. 한국은행에 재원 부담을 지우면서 구체적인 재정의 역할에 대해서는 아직 입을 다물고 있다.
정부가 구조조정에 필요한 총자금 규모를 결정하고 한국은행에 손을 벌리는 것이 상식임에도 처음부터 한은의 역할만을 강조해 왔다. 부실 기업 정리를 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대우조선 부실을 초래한 경영진의 책임을 묻지도 않고 부실 책임자인 산업은행은 물론 정부의 반성조차 없다. 대규모 구조조정에 국민의 세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치권은 산업과 기업 부실화를 가져온 책임을 묻고 혈세 낭비가 없었는지를 감시하는 역할에 그치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어제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우리의 경제성장 전망치를 3.0%에서 2.6%로 0.4% 포인트 낮춰 잡으면서 우리 경제의 대내적 위협 요인으로 부실 기업 구조조정 지연에 따른 불확실성 확대를 꼽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부실 기업 구조조정에 재정이 추가경정 예산 편성 등의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구조조정이 실패하면 내년 우리의 경제성장률이 더욱 둔화될 가능성을 적시한 것이다.
국책 연구소에서도 재정의 역할을 강조하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아직도 추가경정 예산안을 편성하는 대신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하는 방안에 골몰하고 있어 참으로 유감스럽다. 지금처럼 채권단을 앞세워 산업은행 뒤에서 조정하겠다는 것 자체가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다.
조선·해운 구조조정은 국가 경제 재편의 시금석이다. 단순 기업 개편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국가의 미래 먹거리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정교한 실행 계획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 해운·조선 분야의 구조조정은 정책금융기관이 오랫동안 개입해 왔기 때문에 정부가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물론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들이 명확한 책임 의식을 갖고 협업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동아일보]
6. 정권 입맛에 맞춘 감사원 감사로는 보육대란 해결 못한다
어제 감사원은 시도 교육청이 어린이집 보육료를 지원하도록 한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이 헌법과 상위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누리과정(3∼5세) 예산을 우선 편성하라고 교육청들에 통보했다. 교육재정 문제를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규정한 것은 위헌이고, 영유아보육법은 어린이집을 교육기관이라고 못 박지 않았는데 시행령으로 보육료를 부담하라는 것은 법 위반이라는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의 주장을 부정한 것이다.
감사원은 법무법인 3곳과 한국공법학회 추천 교수 3명, 법률구조공단 등 7곳에 자문해 이런 결론을 냈다고 설명했다. 감사원은 누리과정 예산을 전부 또는 일부 편성하지 않은 교육청 11곳 중 9곳은 돈도 충분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행령이 위헌 또는 위법한지는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이 판단할 일이다. 감사원이 이 문제에까지 개입함으로써 보육대란 책임을 놓고 다투는 교육부와 교육청 사이에서 교육부 편을 든 ‘정치 감사’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실제로 감사원 발표 내용은 지금까지의 교육부 방침과 거의 같다. 교육감들이 “감사원은 법률을 해석하는 기관이 아니다. 누리과정 문제는 정부 책임”이라고 반발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를 3월 7일부터 4월 1일까지 진행했다. 보통 5, 6개월 걸리는 감사를 채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끝낸 것이다. 감사원은 2차 보육대란이 일어나기 전에,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때에 맞췄다고 해명하지만 교육청들은 이 역시 감사의 정치적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의심한다. 감사 결과를 통보했지만 교육감들이 거부하면 전혀 실효성이 없는데도 감사원이 헛심만 쓴 꼴이다.
2013년에도 감사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4대 강 사업을 주도했다며 사법처리를 검토했다고 밝혔다. 그보다 2년 전엔 4대 강 사업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작년 김영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총선 출마를 위해 새누리당에 입당하면서 “이제는 제가 (박근혜) 대통령께 보답할 차례”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했다. 감사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손바닥 뒤집기 식 감사로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상실했다. 이런 감사원을 내세워 교육청을 압박하는 식으로는 누리과정 보육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부의 신뢰도만 떨어뜨릴 뿐이다.
[매일경제]
7. 2%대 저성장 고착화, 악순환 끊을 종합처방 내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2.6%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말 전망치(3.0%)를 0.4%포인트나 낮춰 잡은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2%대 저성장이 내년(2.7%)까지 3년 내리 이어지리라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현 정부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2.8%에 그친다. 지난 60여 년 동안 한국 경제가 이토록 오래 저성장의 늪에서 허우적거린 적은 없었다. 물론 세계 경제 전체가 가라앉고 있는 터라 한국 경제만 잘나갈 수는 없다. 특히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성장 둔화는 한국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KDI 성장률 전망은 부실기업 구조조정 충격파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대규모 실업 사태로 소비와 투자가 급랭하면 성장률은 훨씬 더 떨어질 수 있다. 미국 금리 인상이 또 한 차례 신흥국 위기를 몰고 오면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것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현 경제팀은 참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당장 소비와 투자 수요를 살릴 응급 처방을 쓰면서 중장기적으로 성장 활력을 높일 근본 수술을 함께 단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 경제팀은 전임 최경환 경제팀처럼 과감하게 재정과 통화정책 실탄을 쓸 형편이 못된다.
그럴수록 더욱 유연한 대응과 창의적 해법이 필요하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 최대한 신속하게 부실을 도려내되, 출혈이 예상보다 심각할 경우 재정 확대와 통화 완화로 충격을 흡수해야 한다.
재정은 상대적으로 효율이 떨어지는 부문에서 씀씀이를 줄여 성장잠재력을 키울 인프라스트럭처 건설에 집중 투자하는 지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통화정책은 국내 수요 상황과 글로벌 자본 흐름을 살피면서 시나리오별로 금리 인하나 통화량 확대, 한국은행 대출 중 가장 효과가 큰 정책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이때 단기적으로 무리하게 성장률을 끌어올리려 하면 그 후유증도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보다 긴 호흡으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구조개혁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는 게 중요하다. 무엇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시장 개혁과 서비스산업 규제 개혁은 현 정부 임기 내에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다.
8. 日출산율 상승 `인구 1억` 최우선과제로 삼은 결과
일본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1.46명으로 1994년(1.5명) 이후 2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2005년 1.26명으로 최저점을 찍은 일본 출산율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놀랍다. 일본 정부는 "2013~2014년 경제 상황이 호전된 것이 출산율 개선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젊은이들이 출산을 결심하게 된 측면도 있지만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 주효했다. 일본은 우리보다 10년 앞선 1995년 저출산 정책을 시작했다. 지난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인구와 아베노믹스를 책임질 '1억 총활약 담당상'이라는 장관 자리를 신설하고 핵심 측근을 기용하는 등 국정 최우선 과제로 정했다. 향후 50년 후에도 인구 1억명을 지켜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최근 발표된 '1억 총활약 사회' 로드맵을 보면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정부가 얼마나 고심했는지 느껴진다. 내년까지 50만명 규모의 보육시설을 확보하는 것을 비롯해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임금 상향(정규직의 80%) 등 종합 처방이 담겼다. 아베 총리가 "위기에 빠지기 전에 우리가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며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일본의 이 같은 움직임을 보면 15년째 초저출산(1.3명)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이 심히 걱정된다. 저출산은 미래에 재앙이 될 수 있는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항상 정책 후순위로 밀렸다. 정부는 지난해 말 '제3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 계획'을 확정했지만 삼포·오포세대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본이 지난 10년간 출산율을 0.2명 늘린 것을 보면 지난해 1.24명에서 5년 만에 1.5명으로 늘리겠다는 정부 계획 자체가 허황된 것이다.
인구절벽은 위기가 닥친 후에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부가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정하고 역량을 쏟아부어도 될까 말까다. 여러 부처에 걸쳐 있는 문제인 만큼 출산 장관을 두든, 총리실에서 담당하든 보다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 인구위기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중앙일보]
9. 수익 나빠졌다고 수수료부터 올리는 은행들
은행들이 송금과 자동화기기 이용 요금 등 각종 수수료를 잇따라 올리고 있다. 시작은 야금야금 눈치보기 식이었다. 지난달 신한은행은 외화 송금 수수료의 일부만 인상했다. 곧 KEB하나은행이 뒤를 따랐다. 지난 13일부터 자동화기기를 이용한 타행 송금 수수료를 100~200원 올렸다. 씨티와 SC제일은행도 수수료를 올렸고, 우리은행은 인상을 검토 중이다.
시장에서 별말이 없는 듯하자 본격 인상이 시작됐다. KB국민은행은 다음달 1일부터 거의 모든 수수료를 일제히 큰 폭으로 올리기로 했다. 타행 송금 수수료는 최대 1500원(60%), 통장·증서 재발급이나 각종 증명서 발급 수수료는 1000원(50%)을 올리기로 했다. 명의 변경 수수료는 5000원(100%), 자동화기기 수수료도 다음달 20일부터 100~200원 올린다. 지금까지 수수료를 받지 않던 인터넷이나 모바일 해외 송금에도 수수료를 물리기로 했다.
은행들이 일제히 수수료 인상에 나선 것은 수익성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1%대의 초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예금과 대출 차이로 생기는 수익인 예대마진이 크게 줄었다. 감독 당국의 규제로 수수료가 5년째 동결돼 원가 부담이 커졌다는 것도 이유다.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16개 시중은행은 지난해 수수료로만 5조원 가까운 순익을 거뒀다. 그래 놓고 원가 부담 운운하는 건 낯 간지럽다. 차라리 수수료 인상으로 고객 호주머니 터는 게 가장 쉽기 때문이라고 솔직히 밝히는 게 나을 것이다.
수수료 인상은 은행 수익 개선의 해법이 될 수 없다. 수익의 90%를 예대마진에만 의존하는 천수답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낮은 생산성과 평균 1억원에 육박하는 고임금 구조를 놔두고는 백약이 무효다. 은행들이 이런 자구 노력은 하지 않고 손쉬운 수수료 인상에 기대려고 하니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수수료 규제를 풀어준 감독 당국도 책임이 크다. 수수료 일제 인상이 타당한지, 담합 소지는 없는지, 원가를 투명하게 따져 과도한 인상을 막아야 할 것이다. 소비자는 봉이 아니다.
10. 살생물질 성분 공개도 의무화하라
환경부가 생활화학제품이 함유하고 있는 살생물질(미생물·곤충 등을 제거하는 화학물질)을 전수조사해 사용 실태를 점검하고 안전성 검증에 나서기로 했다. 올 상반기에 방향제·탈취제 등 15종의 위해(危害) 우려 제품을 제조·수입하는 8000여 기업으로부터 함유된 살생물질의 성분 등을 제출받아 하반기에 위해성 평가를 한다니 전에 없던 대규모 작업이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이제야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내년에는 살생물질이 들었지만 그동안 위해 우려 제품으로 관리되지 않았던 생활화학제품, 에어컨·공기청정기·항균필터 등 공산품과 전기용품, 사업장에서 이용되는 살생제품과 제품의 용기·포장 등의 살생물질까지 조사를 확대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전체 생활화학제품을 사각지대 없이 낱낱이 살피고 철저하게 검증해 안전성이 확보되지 못한 물질과 제품은 가차없이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살생물질을 포함한 생활화학제품 전체 성분의 정보공개도 의무화해야 한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위해성도 모른 채 생활화학제품을 사용해야 했다. 가습기 살균제의 비극도 이런 허술한 제도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전체 성분 공개가 의무화되면 기업들은 사전에 자체적으로 엄격한 안전검증을 거쳐 제품을 출시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시민단체도 해당 성분과 관련한 최신 연구결과나 위해 정보를 실시간으로 입수해 시중 판매제품을 적극적으로 감시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위해 화학제품은 발붙일 땅을 잃게 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생활화학제품 사전허가제도의 도입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EU)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이 제도는 안전성을 미리 입증한 제품만 시장에 낼 수 있도록 하는 엄격한 소비자 안전·건강 보호제도다. 이렇게 하면 기업들은 개발·제조·판매 단계마다 소비자의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 순위에 둘 수밖에 없다. 앞으로 더 많은 소를 잃지 않으려면 정부는 이제라도 외양간을 고치는 심정으로 소비자 보호 종합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