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30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20대 국회 시작부터 싸움판 걱정된다
드디어 20대 국회가 오늘 4년 임기를 시작한다. 국민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지난 19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식물국회’로 지탄을 받았다. 때문에 20대 국회에 거는 국민의 기대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협치로 민생을 살리라”는 총선 민심을 받들어 국민의 삶을 챙기는 생산적인 국회, 상생으로 희망을 주는 정치를 보여주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정쟁과 당리당략의 구태에 젖은 정치판이 어디 쉽게 변하겠느냐는 불신이 여전한 것 또한 사실이다.
조짐은 불길한 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이 굳게 약속했던 ‘협치’ 분위기가 자칫 물 건너 갈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된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에 이은 박 대통령의 ‘상시 청문회’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로 정국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20대 국회 벽두부터 국회법 재의결이라는 쟁점을 놓고 청와대와 야당, 또는 여야 간에 치열한 대립과 공방을 벌일 공산이 크다. 게다가 아직 원 구성 협상도 지지부진해 개원 일정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19대에 이어 20대 국회도 식물국회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행히 긍정적 신호가 없지는 않다. 야당이 정부의 거부권 행사에 강력 반발하면서도 민생·경제 문제에는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분리대응 기조를 명확히 한 것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상시 청문회법 문제에 매몰돼 산적한 민생 현안을 뒤로 미룰 수는 없다”며 “원 구성 협상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국회법 재의를 추진하겠지만 대화를 거부하고 국회를 멈추는 등의 무리수는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옳은 선택으로, 반가운 일이다.
지금 나라 안팎의 상황은 엄중하다. 경제는 어렵고 민초들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당장 기업 구조조정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청년실업, 노동 및 공공부문 개혁, 가계부채, 저성장 장기화 등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어 민생을 챙기는 일이 시급하다. 정치 공방으로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20대 국회가 모쪼록 조속히 원 구성을 마무리하고 민생에 힘 쏟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20대 들어서도 협치는커녕 다투는 모습부터 보인다면 국민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2. 무분별 연예인 홍보사 손볼 때가 됐다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의 연예인 홍보대사 기용에 대해 제동을 걸기로 했다. 홍보대사 위촉이 남발되는 바람에 예산 낭비가 심한 데다 기관장들이 외부 행사를 개최하면서 해당 연예인들을 자신의 들러리로 내세우는 등 꼴불견 추태가 적지 않다는 여론에 따른 조치다. 홍보대사를 내세웠다고 해서 정책 추진에 도움이 된다고도 보기 어렵다. 비록 늦어지긴 했지만 백번 잘한 결정이다.
모델료부터가 문제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중앙정부와 공공기관이 연예인 홍보대사에 지급한 모델료가 70억원을 넘는다고 한다. 금액의 많고 적고를 떠나 모두 예산에서 집행된다는 점에서 국민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모델료만이 아니다. 해당 연예인들이 영화에 출연하거나 공연을 할 때면 애꿎은 산하기관들을 움직여 입장권을 팔아주기도 한다. 민폐가 따로 없다.
부처별로 홍보대사를 기용하는 자체가 하나의 무분별한 경쟁이 돼버렸다. 국민통합 홍보대사에서부터 해외감염병예방 홍보대사에 심지어 복권위원회 홍보대사까지 위촉돼 있다. 지자체별로도 갖은 명목의 홍보대사가 즐비하다. 물론 어떤 분야에서는 홍보대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텔레비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홍보대사로 기용해 세금을 축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해당 연예인들의 자질도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 멀쩡한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에 음주운전과 성폭행 혐의로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것이 연예인의 세계다. 최소한의 지적 수준조차 모자란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놓고 ‘긴또깡’이라고 답변했대서가 아니라 어차피 틀린 답변이라 해도 ‘김두한’이라고 답변하는 게 상식적이다. 연예인들을 대통령이 참석하는 정부 행사에 내세울 때도 최소한의 검증이 필요한 이유다.
정부 부처는 민간기업과는 다르다. 민간기업 모델료도 원가에 포함돼 소비자에게 전가되기 마련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업들이 판단할 문제다. 꼭 홍보대사를 기용해야 한다면 모델료와 선발 기준을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 홍보대사 기용 효과에 대해서도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각 부처의 안일한 업무수행을 개혁해가는 첫걸음이다.
[서울신문]
3. 반기문, 정치보다는 유엔 사무총장 역할 다해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한 중 행보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반 총장은 지난 26일 전날 밤 제주에서의 대선 출마 시사 발언에 대해 “확대 해석됐다”며 수위 조절에 나서는 듯했다. 그러나 곧바로 김종필 전 총리를 비공개로 만나면서 정치 행보의 보폭을 더 넓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 연말 종료되는 사무총장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 국내 정치의 한복판에 서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반 총장은 그제 김 전 총리의 자택을 찾아 배석자 없이 30여분간 대화했다. 김 전 총리가 얼마 전 한 행사에서 “계기가 되면 반 총장을 만나 보고 싶다”고 한 데 대한 화답의 성격이라고 한다. 그러나 김 전 총리는 우리 정치사에서 충청권의 최대주주였던 인물이다. 누구든 ‘대망론’을 펼치기 위해선 그의 ‘승인’을 얻어야 할 만큼 큰 힘을 발휘했다. 반 총장이 대권 의지를 밝힌 데 이어 김 전 총리를 찾은 것은 ‘충청 대망론’에 불을 지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 전 총리도 20대 총선 이후 ‘충청 역할론’을 강조해 온 터라 이런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반 총장은 어제도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정치색 짙은 행보를 이어 갔다. 서애 류성룡 선생의 고택에서 김관용 경북지사,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 의장, 권영세 안동시장 등과 오찬을 함께 했다. 서애 선생은 임진왜란 전 이순신·권율 장군을 발탁하고 명나라 원군을 끌어들여 전쟁 극복에 헌신한 명재상이다. 반 총장이 잠재적 대권 후보로서 안보와 외교에 탁월했던 서애의 리더십을 자신의 이미지와 연결해 보려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반 총장이 대권에 뜻을 두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글로벌 시대에 외교적 전문성과 폭넓은 네트워크를 갖춘 지도자는 국가에 큰 강점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반 총장이 지금 국내 정치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것은 누가 봐도 이른 감이 있다. 그는 아직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7개월의 임기를 남겨 두고 있다. 그동안 추진했던 사업들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등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할 시기다. 그는 얼마 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로부터 ‘역대 최악의 사무총장’이란 평가를 받았다. 평가의 공정성에 의심이 가긴 하지만, 정치에 성급히 발을 들여 총장의 역할에 소홀히 할 경우 이런 기사가 이어질 수도 있다. 한국인 사무총장이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을 우리 국민은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반 총장 자신과 국가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당분간 정치에 거리를 두었으면 한다.
4. 바빠서 조사 못 받겠다는 뻔뻔한 옥시 전 대표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핵심 책임자로 지목된 거라브 제인 전 옥시 대표가 검찰의 소환에 불응했다고 한다. 그는 2010년 5월부터 2년 동안 옥시 대표를 지내면서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 증거를 은폐하는 작업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구속된 서울대 교수에게 옥시에 유리한 실험 결과를 청탁하면서 거액을 건넨 최종 책임도 그에게 있는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제인 전 대표는 현재 옥시의 영국 본사인 레킷벤키저의 아시아태평양 본부장으로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의 출석 요구에 변호인으로 하여금 거부 의사를 전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기업 윤리의 가장 황폐한 밑바닥을 다시 한번 드러내고 있음에 분노 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통탄을 금할 수 없는 것은 소환에 응하기 어렵다면서 제인 전 대표가 내세운 이유들이다. 그는 “업무상 바빠 한국 검찰의 조사에 응할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제기되고 있는 의혹에는 “모두 소명할 수 있고 잘못한 게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대표가 되기 전인 2006년부터 2008년까지는 옥시의 마케팅 책임자를 지내면서 문제 제품의 허위 광고와 판매에도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다. 지난 4월 기준으로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한 사람은 1848명으로 사망자만 266명에 이른다. 피해가 엄청나지만 이런 수치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실제로 서울대 보건대학원은 모두 1100만명이 유해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것으로 분석했다. 옥시는 전체 제품의 70%를 생산했다. 그런데 어떻게 “바빠서…”라는 말이 나오는가.
제인 전 대표는 변호사에게 “아타 샤프달 대표의 사과 기자회견이나 존 리 전 대표의 검찰 소환 과정에서 피해자들과 물리적 충돌이 생기는 모습을 보니 겁나고 두렵다”는 말도 전했다고 한다.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소환에 불응하는 것은 잠시 고통을 모면하고자 평생토록 고통받는 길을 선택하는 것과 다름없다. 희생자와 그 가족에게 조금이라고 속죄할 마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지금 그의 행동은 뻔뻔한 행동을 저질러 놓고 “법대로 하자”고 외치는 파렴치범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렇게 나온다면 검찰도 어느 때보다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특별수사팀은 검찰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그를 소환해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5. 아찔한 사고에도 勞使 탓하는 대한항공 불안해 타겠나
27일 일본 하네다공항을 이륙하려던 대한항공 항공기의 왼쪽 엔진에서 불이 나 승객과 승무원 319명이 비상 탈출한 사고는 떠올릴수록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항공기는 활주로를 600m 정도 달리면서 속도를 올리던 중 엔진에서 불꽃과 연기가 나는 것을 발견해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700m를 더 달린 뒤 가까스로 멈췄다. 만약 항공기가 이륙결정 속도를 넘어섰다면 정지하려다 활주로를 이탈하는 대형 사고로 번질 뻔했다. 이륙한 뒤 불이 났다면 끔찍한 참사로 이어졌을지 모른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초기 조사 결과 문제의 엔진 뒤에서 회전 날개 수십 개가 파손된 것을 확인했다. 엔진에서 조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새가 엔진에 빨려 들어가는 ‘버드 스트라이크’ 가능성은 낮다고 한다. 사고 원인은 정비 부실, 엔진 결함 등 여러 가지로 추측된다. 정확한 원인은 비행기록장치(블랙박스) 해독과 사고 엔진을 분석한 뒤에나 나올 것이다.
최근 2년간 대한항공 항공기는 엔진 결함으로 5차례나 이륙 중단 또는 불시착했다. 작년 국정감사에서는 대한항공 정비예산이 2012년 9427억 원에서 2014년 8334억 원으로 1100억 원 가까이 줄었고 운항 횟수당 정비 시간도 같은 기간 8.3% 감소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항공은 이번 사고가 사내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인식해야 한다. 조종사 노조는 2월부터 쟁의에 돌입해 준법투쟁을 벌이고 있다. 노조 홈페이지에는 ‘하늘이 내리는 마지막 경고’라고 회사를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사고를 빌미로 회사에 손가락질하는 모습이 걱정스럽다. 회사는 원인 규명이 먼저라는 말뿐이다.
마침 사고가 난 27일은 일본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폐막한 날이다. 주요국 정상들 앞에서 대형 참사라도 났다면 얼굴을 못들 뻔했다. 항공사 경영은 이윤만 생각해도 되는 단순한 기업 경영의 차원을 넘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6. 노인 학대 급증하는 요양시설에도 CCTV 달아야
보건복지부가 27일 ‘국민안전 민관합동회의’에서 다음 달까지 노인요양시설의 인권실태를 사상 처음으로 전수 조사한다고 밝혔다. ‘노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요양시설 내 학대는 2005년 46건에서 지난해 251건으로 급증했다. 요양비용의 80%를 지원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2008년 도입된 뒤 노인요양시설은 2008년 1717곳에서 지난해 5083곳, 입소자는 5만6370명에서 13만1997명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그러나 함량 미달 시설도 난립하면서 인권의 사각지대가 돼가고 있다.
충북의 요양시설에서는 다른 환자와 다퉜다고 노인을 1주일이나 쇠사슬에 묶어 감금했다. 서울의 한 노인요양원에서는 폐암 말기의 75세 할머니가 밤에 안 자고 돌아다닌다는 이유로 남성 요양보호사에게 맞아 등뼈가 부러졌다. 축축한 기저귀를 제때 갈아주지 않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폐식자재로 음식을 만든 사례도 적발됐다.
겉으로 드러난 학대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요양시설 종사자의 학대나 방임 행위가 발생해도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가 없으니 증거 확보가 어렵다. 정부는 입소자가 성인이란 이유로 사생활 침해를 우려한다. 그러나 치매 노인과 중증환자는 제대로 의사표현조차 할 수 없는 약자다. 인천 어린이집 폭행사건 같은 아동학대가 빈발했을 때도 CCTV 설치를 둘러싸고 찬반이 엇갈렸으나 ‘아이들 보호가 우선’이란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작년 영·유아보육법 개정으로 어린이집에 그랬던 것처럼 노인요양시설에도 CCTV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부당한 처우와 학대 받는 노인이 늘고 있는데 사회적 관심은 낮다. 고령화와 가족구조의 변화로 노인요양시설의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정부는 공공 투자를 늘리고 양적 확대에 걸맞은 학대방지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CCTV 의무화와 함께 노인학대 처벌 수위를 높일 필요도 있다. 6월 15일은 유엔이 제정한 세계노인학대 인식의 날이다. 노인학대 방치는 결국 우리 모두를 미래의 피해자로 만드는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중앙일보]
7. 부실 조선사에 돈 퍼준 산은·수은 잘했다는 감독당국
뒤늦은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참괴스럽다. 전문성이 부족한 데다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했던 정부·채권단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조선업 불황이 가져온 수주절벽이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그런 위험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지원을 거듭해 손실을 눈덩이처럼 키운 국책은행과, 그런 국책은행을 잘했다며 성과급 잔치를 벌이도록 한 정부의 깜깜이 평가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한때 세계 4위였던 STX조선해양의 사례를 보자. STX조선의 붕괴가 본격화한 것은 2013년이다. 이때라도 채권단은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회생 가능성이 없으면 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손실을 최소화해야 했다. 그런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거꾸로 갔다. 2013년 8월부터 STX에 4조5000억원을 추가 지원했다. 급기야 지난해 시중은행들은 일제히 발을 뺐지만 산은·수은은 끝까지 남아 지원을 계속했다. 핑계는 있다. 정치권이 지역경제 침체와 실업 대란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정부도 은근슬쩍 동조했다. 결과는 불문가지. 산은의 부채비율은 800%를 넘어섰고, 수은은 640%까지 치솟았다.
그런데도 금융위원회는 경영평가에서 산업은행에 2013·2014년 연속 A등급을 줬다. 산은 회장과 직원은 각각 100·90%의 성과상여금을 챙겼다. 금융위는 수은에도 2013년 A등급을 줬고 2014년엔 모뉴엘 사기 사태와 경남기업·성동조선해양 부실까지 겹쳤지만 B등급을 부여해 70%의 보너스를 챙기도록 했다. 덕분에 평균연봉이 산은은 9450만원, 수은은 9242만원으로 연구기관을 제외하면 전체 공공기관 중 3·4위다.
정부는 뒤늦게 산은·수은에 강력한 자구안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간 정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서별관회의를 통해 부실 조선사에 대규모 자금지원을 결정한 것도 청와대 참모진과 장관들 아닌가. 한심한 국책은행도 문제지만 부실 감독을 방조하고 부추긴 정부·감독당국이야말로 진짜 문제다.
[매일경제]
8. EU까지 대북 제재 북한이 살길은 비핵화뿐이다
유럽연합(EU)이 지난 27일 북한과의 교역을 대폭 차단하는 내용의 독자적인 대북제재 조치를 내놓으면서 국제사회의 압박이 한층 강화됐다. EU는 대표적으로 북한 항공기와 선박의 EU 28개 회원국 영공 통과나 기착 및 기항을 금지했다. 항공기의 정기 취항노선은 아직 없으니 실제 효과보다 상징적 차원이라지만 선박 입항 금지는 북한의 운송 활동에 직접 타격을 줄 강력한 해운 제재다. 또 수입 금지 품목과 사치품 금수 품목을 대폭 확대했는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주변 권력층의 선호품 수입을 옥죄는 것이니 심리적 위축 효과도 클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도발 후 우리와 미국, 일본 등은 일찌감치 대북 제재에 나섰다. EU는 28개 회원국의 합의를 끌어내야 해 늦춰졌는데 이번 제재 발표는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이뤄졌다고 한다. 앞서 북한 권력층의 비자금 은닉처로 활용돼 왔다고 추정되는 스위스가 북측 자산 동결과 함께 25가지 사치품목 수출 금지 조치에 나섰고, 러시아까지 대북 금융거래를 제한하는 제재에 나섰을 정도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지난 3월 초 채택된 대북제재 결의 2270호의 이행 보고서 제출을 다음달 초 앞두고 국제사회 각국이 한층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으니 북한은 불장난 같은 도발에 톡톡한 대가를 치르면서 고립무원의 처지임을 실감할 것이다.
북한에 가해지는 국제사회 제재의 실질적인 결실은 논란 없이 완벽한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하지만 북한은 유엔 안보리 결의 채택 후에도 계속 다양한 미사일 발사를 시도하는 등 도발을 멈추지 않으며 계속 엇나가고 있을 뿐이다. 이달 초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는 핵 강국의 위상을 대내외에 선포하는가 하면 김정은에게 위원장이라는 공식 호칭을 부여하는 등 내부 결속에만 치중하며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번엔 중국조차 북한의 최대 외화수입원인 석탄과 철광 등 7대 광물 교역을 금지하는 제재에 나설 정도로 달라진 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북한은 빨리 감지해야 한다. 버티다 고사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기 전에 북한 스스로 비핵화라는 현실적인 생존 방안을 향해 변화하는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9. 30일 개원 20대 국회 일자리법안부터 처리하라
20대 국회가 여소야대 3당 체제 아래 오늘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노동개혁법·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놓고 대립만 거듭하다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쓴 19대 국회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구도다. 20대 국회는 국회의장·부의장을 법정시한 내에 선출하는 등 19대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경제 성장 둔화로 취업난과 양극화가 심해지고 산업구조조정 필요성은 급박해지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요구와 복지시스템을 확충하라는 사회적 요구 사이에서 진영논리에 빠져들지 말고 균형과 중심을 잡아야 할 책무가 있다. '일자리가 곧 복지'라는 점에 착안한다면 해답을 찾지 못할 일도 아니다.
정부가 일자리 69만개를 만들 수 있다며 국회에 제출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18대에 이어 19대 국회에서도 처리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됐다. 일자리를 37만개 이상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된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파견법 등 노동개혁 4개 법률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20대 국회 1호 법안을 놓고 여야가 서로 자신들의 정책 상징성을 부각하려는 가운데 새누리당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개혁 4법, 규제개혁특별법, 규제프리존특별법, 사이버테러방지법 등을 다시 제출할 것이라고 한다.
20대 국회는 어느 정당도 혼자 힘으로는 법률안을 통과시킬 수 없는 여소야대 3당 체제다. 법률안 제출이 생색내기에 그치지 않도록 하려면 일자리 창출 법안을 놓고 여야가 진지하게 대화·협력해야 하지만 정치 환경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상시 청문회법으로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벌써부터 여야 사이에 날 선 공방이 오가고 있다.
19대 국회를 식물국회로 만든 원흉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국회선진화법도 20대 국회에 여전히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헌법 개정 필요성이 오래전부터 제기돼온 만큼 언제 개헌 논의가 다른 민생법안 논의를 삼켜버릴지 알 수 없다.
4·13 총선에서 매서운 민심을 확인했는데도 협치에 대한 기대보다 지루한 대립이 또 되풀이될까 걱정이 커지고 있다. 민생법안 처리에 소극적인 정당은 2017년 대선에서 더 혹독한 심판을 받을 것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부산일보]
10. 성장률 세계 10위권 추락 한국경제 '기초 세력' 키워야
29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2.6%로 OECD 회원국 중 12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은 2006년(11위) 이후 10년 만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선진국 문턱도 넘어 보기 전에 우리 경제가 저성장 늪에 빠져 버린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순위만 하락한 것이 아니라 성장률의 절대 수준 자체가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10년 전인 2006년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5.2%로 OECD 회원국 평균(3.1%)에 비해 2.1%포인트(P) 높았다. 2000년대 후반까지는 꾸준히 2~4%P 차를 유지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줄곧 1%P대에 그치더니 지난해에는 사상 최저인 0.5%P까지 축소됐다. 최근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을 지난해와 같은 2.6%, 내년에는 2.7%로 전망하면서 OECD 회원국과의 갭은 더 줄어들 여지가 있다.
국가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성장률이 하락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잠재성장률이 빠르게 둔화하면서 성장 동력 자체를 잃어버린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지난 1월 한국은행은 2015~2018년 연평균 잠재성장률을 3.0~3.2%로 추산했다. 하지만 LG경제연구원은 최악의 경우 잠재성장률이 2016~2020년 연평균 2.5% 수준에 머물고, 2020년대에는 1%대까지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잠재성장률의 하락은 인구 고령화와 기업 투자 부진, 서비스산업의 생산성 정체 등 구조적 요인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경제 기초체력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고 노동투입 감소에 대응해 여성·고령층 노동자를 활용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와 함께 규제개혁을 가속화하고 R&D 투자 효율성 제고, 인적자본 증대, 중소기업 금융지원 개선 등의 대책도 필요해 보인다.
주요 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고통과 위험이 낳은 로맨스 스토리…금비 내리는 감옥서 다나에는 사랑했네
위험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기가 더 쉽다. 전쟁 중에 얼마나 전설적인 로맨스가 많았던가? 오죽했으면 전후 베이비붐 세대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사랑은 이국적인 배경에서 더욱 잘 자란다. 색다른 분위기, 여행지, 낯선 곳, 또는 두려움 때문에 감각들이 고조될 때 사람은 신비주의자가 되고 엑스터시를 느끼며 사랑이라는 야릇한 감정에 휘말린다. 고통과 위험이 닥쳤을 때 로맨스를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왜일까. 위험이 일종의 ‘최음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 속 다나에(Danae)는 감방에 갇히는 위기 상황에서 본의 아니게 에로틱한 사건을 연출하게 된 기막힌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Akrisios)는 아가니페와 결혼해 딸 다나에를 낳았다. 다나에를 낳은 뒤 아가니페는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했다. 신탁을 구해 보니 ‘아크리시오스에게는 아들이 없을 것이고 딸 다나에가 아들을 낳을 터인데 아크리시오스는 그 아이에게 죽을 운명’이라는 게 아닌가. 겁에 질린 아크리시오스는 너무도 사랑하는 딸인 다나에를 아무도 접근할 수 없도록 높은 탑에 위치한 청동 감옥에 가뒀다.
젊은 나이에 빛도 들지 않는 감방에 갇히는 참으로 불운한 신세가 된 다나에! 그렇지만 인생은 그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는다.
그녀에게 한 가지 행운이 남아 있었으니, 바로 빼어난 미모였다. 청동 감옥 밖에서도 다나에의 미모에 대한 소문이 돌았고 제우스는 이 귀중한 정보를 흘려듣지 않았다. 제우스는 이 난공불락의 요새에 침투하기 위해 색다른 계획을 세웠다. 제우스가 누구던가. 완전 창조적인 발상과 변신의 귀재가 아니던가. 그는 마음먹으면 못하는 게 없었다. 특히 그 일이 아름다운 여자와 관련됐을 때의 변신 능력은 가히 따라올 자가 없었다. 제우스는 황금비로 변신해 청동 감옥의 틈을 파고들었고, 무사히 감옥에 침투한 뒤 그녀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품었다. 황금빛 빗줄기처럼 판타스틱한 분위기를 누가 마다할 수 있었겠나.
이들 사랑의 결실로 페르세우스(Perseus)가 탄생한다. 메두사의 목을 자른 그 유명한 영웅이다. 딸이 아들을 낳자 아크리시오스는 딸과 손자를 나무 궤짝에 넣어 바다에 던져버리도록 명령한다.
그렇게 해 세리포스 섬에 다다른 모자는 어부 딕티스에게 구출되는데 그는 섬의 왕 폴리덱테스의 친형제였다. 왕은 아름다운 다나에에게 욕정을 품었으나 페르세우스 때문에 감히 다나에를 범할 수 없었다. 왕은 페르세우스를 제거하기 위해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강요했다. 메두사의 머리를 보는 사람은 돌처럼 뻣뻣하게 굳어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우스의 아들인 페르세우스에겐 왕의 아들답게 특혜가 주어졌다.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도움으로 메두사를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메두사를 처치한 페르세우스는 고국에 돌아와 본의 아니게 외할아버지 아크리시오스를 죽이게 된다. 결국 예언이 정확히 실현되고,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서양미술사에는 황금비로 다나에를 유혹하는 제우스를 그린 그림이 무수히 등장한다.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티치아노, 바로크 시대의 렘브란트,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와 그의 딸 아르테미지아 등 수많은 화가들은 앞다퉈 이 신화를 재해석해냈다. 그리스 신화의 이 소재가 특별히 예술가들의 관심을 끈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즉 비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은유기 때문일까?
수많은 다나에 그림 중 특별히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이 있으니, 바로 클림트의 것이다. 클림트는 이전 선배 화가들의 다나에와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렸다. 대부분 화가는 높디높은 탑에 갇혀 비너스의 자세로 발가벗고 누워 있는 다나에를 그렸다. 통상 옆에는 날개 달린 천사, 즉 큐피트(에로스)를 함께 그린다. 그리스 신화를 모르면 딱 비너스와 큐피트로 착각하기 쉽다. 정작 다나에가 황금비를 직접 받아들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은 별로 없다. 시녀가 받거나, 큐피트와 함께 받거나, 아니면 창가 쪽에서 빛이 들어오면서 황금비가 내리는 정도다.
클림트의 다나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구도와 형태, 분위기를 지녔다. 일단 여성의 몸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마치 태아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아 젖히고 잠을 자는 듯한 포즈다. 당시로서도 이런 구도의 조형법은 매우 낯선 것이었다. 머리를 풀어헤친 다나에는 잔뜩 웅크린 자세로 눈을 지그시 감고 황홀경에 빠져 있다. 오른손은 길고 뭉툭한 무언가를 쥐려 하는 듯하고, 왼손은 허벅지 사이 은밀한 곳으로 사라졌다. 클림트는 어찌하여 마치 귀접몽(꿈속에서 귀신과 성교하는 것)처럼 나른하고 몽환적인 상태의 다나에를 그렸을까.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클림트가 55세의 나이에 독감의 후유증인 뇌졸중으로 죽자 14건의 유자녀 양육비 청구소송이 벌어졌다. 대부분은 클림트와 관계가 있던 모델의 아이였는데, 그만큼 클림트는 모델과 각별히 정을 통하면서 지냈다. 모델 가족의 장례 비용을 대주는가 하면 집세를 대신 내주기도 했을 만큼. 모델들은 클림트를 아주 좋아했고, 언제나 그의 요구에 따라 관능적이다 못해 외설적인 포즈까지 취해줬다. 클림트 작업실에는 항상 벌거벗은 여러 모델이 상주해 있었고, 마치 누드 서커스장을 방불케 했다고 전해진다.
다나에는 클림트가 사랑했던 여러 여성이 혼재해 있는 모습이다. 빨간 머리를 특별히 좋아했던 클림트답게 빨간 머리를 지닌 모델 미치 짐머만(클림트의 아들을 둘이나 낳았던)의 모습도 있다. 상류층 고객이자 한때 깊은 사랑을 나눴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는 사고로 장애를 입은 오른손까지 그렸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형상은 다나에의 허벅지와 그 안으로 쏟아져 내리는 황금비다. 비유컨대 황금비는 씨앗, 즉 왕의 정액이고, 튼실하고 굵은 허벅지는 그 씨앗이 뿌려지는 자양분이 풍부한 대지다. 그녀의 허벅지는 관능의 메타포요 다산의 상징이다. 잉태를 위한 생명력의 이미지를 허벅지와 황금비가 암시한다고나 할까. 마치 마리아의 수태처럼 황금빛 빗줄기는 신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은 단순한 도발이나 관능을 넘어선 생명력의 잉태에 관한 이미지로 거듭난다. 더군다나 ‘황금비’라는 모티프가 금은세공사 출신 가문에서 태어나 아르누보, 아르데코 문양과 색채를 사용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비엔나 분리파의 주창자였던 클림트에게는 거부할 수 없이 매혹적인 소재였을 것이다.
의학에서는 이 신화에 근간해 ‘다나에 신드롬’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강간 사건을 다루다 보면, 단 한 번의 성교로 임신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상적인 배란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급작스럽게 배란이 일어나 임신이 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동물은 배란 형태가 각기 다르다. 야생토끼나 낙타 같은 동물은 수컷이 있어야만, 즉 수컷이 교미 동작을 취해야만 배란이 되고 평소에는 배란이 되지 않는다. 원숭이는 위협과 공포를 느껴야 비로소 배란이 된다. 그래서 수컷 원숭이는 교미 전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암컷이 안고 있는 새끼를 빼앗아 던지고 때려 새끼 원숭이가 소리를 지르게 하는 식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때 암컷 원숭이가 배란이 되면서 발정해 교미가 가능해진다. 이런 ‘공포배란 현상’이 인간에게도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바로 ‘다나에 신드롬’이다.
이처럼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까지 덧붙여져, 다나에 스토리는 한층 더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로 올라섰다. 당연히 화가들이 열광하며 달려들 수밖에.
2. [매경이코노미][신동민 셰프의 푸드오디세이] 1인 가구 급증에 인기 끄는 ‘샌드위치’…도박광 샌드위치 백작이 즐기던 간편식
1인가구 급증과 함께 간소하게 식사를 하려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샌드위치가 잘 팔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바쁜 현대인의 끼니를 간편하게 해결해주는 속성 음식이지만, 세계 최고 부자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도 즐겨 찾는다.
어릴 적 유난히 샌드위치를 좋아했다. 어머니께서 식빵에 달걀 프라이와 치즈 한 장 얹고 양배추 썬 것과 케첩을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시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꼬마가 되곤 했다. 그냥 딸기잼 듬뿍 바른 샌드위치 하나에 우유 한 잔 곁들이면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이른 아침 학원 앞 트럭에서 만들어주는 따끈한 샌드위치도 잊히지 않는다. 어쩌다 아침밥을 못 먹고 나왔을 때 이 샌드위치 하나면 속이 든든해지고 맘까지 푸근해졌다.
두 장의 빵 사이에 속 재료만 끼워 넣으면 간단히 즐길 수 있는 샌드위치. 그 시작은 18세기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샌드위치라는 이름은 영국의 샌드위치 백작에서 따왔다. 사실 샌드위치는 사람 이름이 아니다. 샌드위치 백작은 영국의 샌드위치 지방을 다스렸던 백작 작위의 영주를 가리킨다. 영국 남동부 항구 도시 중 샌드위치가 있는데 그곳에 샌드위치 백작이 살았다. 그가 만일 다른 도시의 백작이었다면 우리가 먹는 샌드위치도 아마 다른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샌드위치는 작은 도시지만 640년경에 샌드위치라는 도시에 관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유서가 깊다.
영국 켄트주 영주였던 샌드위치가(家)의 4대 백작인 존 몬터규. 그는 식사를 마다하고 밤을 지새우며 놀음할 정도로 도박광이었다. 항상 트럼프 놀이에 열중하다 보니 식사할 시간이 아까웠다. 생각 끝에 하인을 시켜 로스트비프와 채소류를 빵 사이에 끼운 것을 만들게 해 옆에 놓고 먹으며 승부를 겨뤘다. 당시 이런 식사법은 상류 귀족층에서는 상상조차 힘든 광경이었다. 일반적으로 귀족은 격식을 차려 식사했다. 고기는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한입씩 썰어 먹는 것이 예의였다. 그에 비하면 샌드위치 방식의 음식은 너무나도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함께 게임을 하던 사람들이 보기에 샌드위치는 매우 간편해 보였다. 도박장에 있던 귀족들이 너도나도 이를 보고 따라했다. 샌드위치 백작이 만들어 먹는 것을 보고 따라했다고 해서 샌드위치로 불렸다.
존 몬터규 샌드위치 백작은 방탕했던 조상이지만 아이러니하게 후대에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존 몬터규와 같은 이름을 쓰는 11대 샌드위치 백작은 런던에서 패스트푸드 체인인 ‘얼오브샌드위치(샌드위치 백작)’를 설립하고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샌드위치 백작이 정말 샌드위치를 만든 최초의 발명자일까? 샌드위치의 정의를 사각형으로 얇게 자른 식빵에 재료를 끼운 것으로 한정한다면 샌드위치 백작이 처음 고안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샌드위치와 비슷한 음식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반찬을 싸거나 끼워 먹을 수 있게 넓적하게 구운 빵은 여러 종류가 있었다. 얇게 썬 두 쪽의 빵 사이에 고기, 치즈 등 다른 재료들을 끼워서 먹는 방법은 고기와 빵을 먹기 시작한 것만큼이나 역사가 오래됐다.
시초는 고대 로마인으로 추정된다. 로마 시대에 검은 빵에 고기를 끼운 음식이 가벼운 식사 대용으로 애용됐다. 로마인들이 2000년 전에 먹기 시작했으며 유럽의 다른 지역에도 이와 비슷한 요리가 있었다. 로마뿐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이 같은 식습관이 널리 퍼져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전채요리로 ‘오픈 샌드위치(Open sandwich·빵 위에 여러 가지 음식을 올리고 그 위에 빵을 덮지 않는 것)’를 먹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서민이 아주 오래전부터 빵의 한쪽을 잘라 그 속에 재료를 넣어 먹었고 프랑스 농부들은 들판에서 일하다가 검고 두툼한 빵 조각 사이에 고기를 끼워 넣은 것을 먹었다.
영국에서 발달한 샌드위치는 1880년대 구한말,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100년이 훨씬 더 지난 요즘,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맛있는 샌드위치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또 옛날과는 다르게 해외에서 공부한 요리사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자기 개성에 맞는 샌드위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필자는 샌드위치의 본고장인 영국으로 유학 갈 당시까지 샌드위치가 영국 음식인지도 몰랐다. 현지인에게 영국 전통음식 중 맛있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더니 두 가지 요리를 알려줬다. ‘피시 앤 칩스’와 샌드위치였다. 샌드위치가 영국 음식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영국에서는 해피타임이라고 해서 점심시간이 끝난 후부터 2시간에서 4시간 정도 투플러스원이나 원플러스원을 하는 샌드위치 전문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당시 유학생인 필자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서 할인하는 시간대에 여러 종류의 샌드위치를 먹기 위해 하루에 4개씩 사먹었다.
11대 샌드위치 백작은 ‘얼오브샌드위치’ 프랜차이즈로 성공
영국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샌드위치는 호밀빵에 토마토 닭가슴살 샐러드, 홀그레인 머스터드 그리고 마요네즈소스를 올려서 만든 것이었다. 빵의 감칠맛과 부드러운 닭가슴살, 신선한 샐러드에 마지막으로 느껴지는 머스터드의 풍미가 입안을 행복하게 했다.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샌드위치 형태 음식은 브라질의 ‘미스또 깽떼’다. 브라질 음식을 알고 싶어 브라질에 갔을 때, 여러 종류의 음식을 맛봤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미스또 깽떼였다.
‘미스또’란 브라질 말로 ‘뜨거운 것을 섞은’이라는 뜻이다. 따끈한 빵에 데운 치즈와 볶은 베이컨을 섞어주는 음식이다. 철판에 치즈를 녹여 눈앞에서 잘라 빵에 담아주는데 보자마자 침이 고였다.
프랑스에서 먹었던 눈물 젖은 샌드위치도 떠오른다. 여행의 부푼 꿈을 안고 프랑스에 도착해 즐거웠던 것도 잠시, 지갑을 소매치기 당해 빈털터리가 됐다. 비상금 약간을 제외하고는 돈이 없어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구경을 했다. 식사 시간이 돼 어디 싸고 맛있는 게 없나 하고 둘러보는데, 프랑스 노숙자들이 무엇인가 맛있게 만들어 먹는 모습을 봤다. 가까이 가보니 저렴한 바게트의 옆면을 갈라 참치 통조림같이 보이는 재료를 넣어 먹고 있었다. 시장기가 돌면서 얼마나 맛있어 보이던지, 바로 그 앞에 있는 빵가게에 들어가 바게트와 참치 통조림을 사서 요즘 말로 ‘폭풍 흡입’했다. 뭐 그 샌드위치가 특별히 맛있었겠는가! 처량한 그 상황에 맛없는 음식이란 없었을 테지.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의 아침은 된장국에 흰밥, 김치, 밑반찬이 기본이었다. 점점 간편하면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호하는 추세다. 그중 하나가 샌드위치다. 필자는 아침을 잘 챙겨 먹지 않지만, 한 번씩 와이프가 만들어주는 샌드위치는 정말 맛있게 먹곤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정성을 담아 만들어주는 음식이 역시 최고다.
3. [연합뉴스]<김종현의 풍진세상> 육식주의자의 변명
육식주의자들이 불편해졌다. 평소에 술술 넘어가던 육류가 요즘 좀 거북하게 느껴진다.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효과다. 이 소설에서 고기를 먹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할 폭력과 불통의 주체다.
세계의 역사와 현실이 약육강식의 무대가 된 것은 인류의 사냥 문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생고기 섭취가 사자나 호랑이, 하이에나 같은 잔인한 동물의 속성이라면 인간도 같은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전쟁과 약탈, 착취는 육식의 속성이다. 풀을 주식으로 하는 동물들은 대부분 양순하지 않은가.
오늘날 육식은 '환경 파괴'나 '동물 학대'와 동의어다. 인간에게 스테이크나 우유를 제공하기 위해 지구상엔 13억 마리의 소가 사육되고 있다. 소를 키우기 위해 해마다 아마존의 밀림이 경기도 면적만큼 줄어든다고 한다. 한국, 미국, 일본 등지에서 사육되는 소는 마리당 하루 10㎏, 연간 4t 정도의 옥수수 사료를 먹는다. 소가 지구상에서 1년에 먹어치우는 옥수수는 굶주리는 인구 20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이다.
소와 돼지, 양, 닭 등의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놀랍게도 지구 전체 방출량의 18%에 달한다. 자동차의 13%를 훌쩍 넘는다. 가축의 성장 환경은 지옥 그 자체다. 소, 돼지, 닭은 사육되는 것이 아니라 공장에서 빵을 찍어내듯 규격화한 제품으로 생산된다. 치킨점에 공급되는 닭은 대부분 공장식 양계다. 몸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비좁은 사육장에서 오직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항생제 등 각종 약품으로 범벅된 사료를 먹고 적당한 무게가 되면 도축장에서 생을 마감한다. 양식 어류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고기를 먹는 사람은 아무리 선행을 쌓아도 천당에 갈 생각을 접어야 한다. 참혹하게 사육되고 도살되는 가련한 생명들의 원성과 비명을 어찌할 것인가. 생산자와 유통업자, 소비자는 가축 학대의 공범이다. 기업형 동물 사육장에 한 번 가 보시라.
그렇다고 한날한시에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육식을 끊기도 어려운 일이다. 20만 년의 호모 사피엔스 역사를 통해 고기에 대한 탐욕은 DNA에 내장됐다고 봐야 한다. 고단백 육류의 섭취는 생존 투쟁 그 자체였다. 지옥은 멀고 혀는 가깝다. 군침 도는 등심이나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치맥, 노릇노릇한 생선구이, 신선한 회와 어떻게 결별할 수 있단 말인가. 채식주의자들은 육식하지 않고도 근육질 몸매를 가꾸며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일반인이 막상 실천에 옮기긴 쉽지 않을 것 같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우유나 계란, 육류를 먹지 말도록 한다면 살인적 생존 경쟁에서 자식이 강건하길 바라는 부모들이 수긍할지 의문이다.
일부 학자들에 의하면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육식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뇌의 용적과 육식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유인원과 인류의 연결고리인 3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뇌 용적은 약 500cc, 200만 년 전의 호모 에렉투스는 1천cc 안팎, 오늘날의 호모 사피엔스는 1천500cc 안팎으로 증가했다. 인류가 사냥을 시작한 이후 뇌의 용적이 비약적으로 커졌다.
24시간 쉬지 않는 뇌는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인간이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의 25% 정도를 소비한다. 따라서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하는 인지혁명은 단백질이 풍부한 고칼로리의 육류를 섭취함으로써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인류는 많은 종이 지구상에 출현했지만,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외엔 모두 멸종했다. 풀과 과일로 연명했던 인류는 당연히 가장 먼저 사라졌다. 고도의 인지능력으로 탁월한 사냥과 채집, 싸움이 가능했던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다. 인류 문명과 육식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도한 육류 섭취는 각종 질병과 비만의 원인이 되고 있다. 축산업이 환경 파괴의 주범이 됐다. 인간처럼 동물도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환경보호론자들의 채근이 아니어도 지구를 지속가능한 인류의 생활 공간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육류에 대한 욕망의 억제가 필수적이다. 육류 섭취를 줄이기 위한 범국민적 캠페인이 필요해 보인다. 그것이 우리의 산과 들, 바다와 호수 그리고 최종적으로 인간의 영혼을 정화할 길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채식주의자와 육식주의자가 불구대천의 원수가 아닌 이상 소통의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 갈등하고 배제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육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닭 가슴살을 먹지 않고 채소나 과일, 곡물만으로도 식스팩 복부 관리가 가능하도록 관련 식품이나 조리법 개발과 유통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요구된다.
소설에서처럼 채식주의자를 편견으로 대하고 고립무원으로 몰아넣는다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현실에서는 있을법하지 않지만, 소설의 주인공인 영혜의 부친처럼 결혼한 딸의 채식을 교정하기 위해 뺨을 갈기고 강제로 입에 고깃점을 쑤셔 넣는 폭력은 야만이다. 소설가 한강도 20대 후반 몇 년간 채식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저에게 고기를 먹이려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채식주의자가 음식 취향 때문에 기피 대상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4. [동아일보][최영해 국제부장의 글로벌 이슈&]딸바보는 가끔 주변 예상을 빗나가게 한다
“하버드에게.
축하합니다. 나, 말리아 오바마는 2016년 가을부터 다닐 학교로 하버드대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리게 돼 기쁘게 생각합니다. 좋은 시설을 갖춘 수많은 대학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는데 최종적으로 하버드대가 선정된 것에 대한 하버드의 성취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 나는 어떤 장학금도, 그리고 어떤 형태의 재정적인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나는 백만장자이고 미국 대통령의 딸이기 때문입니다. …
―대통령의 딸 말리아 오바마”
미국의 한 유머사이트에서 조애나 브래들리라는 기자가 지난해 10월 5일 올린 말리아의 하버드대 입학통지서 내용이다. 하버드대가 합격생들에게 보내는 합격통지서 양식을 그대로 본떠 말리아 입장에서 대학에 보낸 가상의 편지다. 주객이 전도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고급 유머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이비리그(미국 동부의 명문대학)들이 서로 말리아에게 입학해 달라고 구애하는 상황에서 브래들리는 우스꽝스러운 개그 편지 기사를 선보여 배꼽을 잡게 했다. 그런데 그의 예측은 7개월 후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엄마 미셸 오바마가 “딸이 간판 보고 대학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이틴 잡지에서 공공연하게 인터뷰까지 했건만 말리아는 막판에 하버드대 간판을 선택했다. 오바마는 내색하지 않아도 엄마 말을 듣지 않은 말리아를 예뻐할 것 같다. 누가 뭐래도 최고 명문(prestigious) 대학이 하버드라는 데 토를 달 사람은 많지 않다. 말리아의 SAT 점수와 GPA(학점)는 공개되지 않지만 엄마 아빠가 모두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온 덕을 꽤 본 것 같다. 여기에 현직 대통령 딸이라는 천문학적 프리미엄도 붙어 있으니 합격은 일찌감치 따 놓은 당상이었다.
말리아가 6월 졸업하는 학교는 워싱턴의 유명 사립학교 시드웰 프렌즈 고등학교(Sidwell Friends Upper School)다. 백악관에서 네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이 학교에 동생 사샤도 9학년(미국 고교 4년 중 1학년)에 다닌다. ‘워싱턴 사립학교의 하버드’로 불리는 이곳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쟁쟁한 정치인 자녀들이 많이 다니기로 유명하다. 조 바이든 부통령의 손자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아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딸, 앨 고어 부통령의 아들이 이 학교 출신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딸 첼시도 이 학교 졸업생이다. 1928년엔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秩父宮雍仁) 친왕의 비(妃) 세쓰코(勢津子) 여사가 졸업했다. 로널드 레이건의 부인 낸시 레이건은 부설 초등학교에 다녔다. 졸업생 중엔 유엔 주재 소련대사도 있다. 지구 온난화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2006년)을 감독한 데이비스 구겐하임도 이 학교 졸업생이다.
입학 사정은 성적 위주인데 퀘이커 교도들에겐 가산점을 준다. 이들은 ‘안으로부터의 빛’을 믿고 인디언과의 우호, 노예제도 반대, 전쟁 반대, 십일조 반대를 내세운다. 1960년 이후 ‘씨M의 소리’ 함석헌 선생은 퀘이커교 한국대표로 활동했다. 1883년 개교해 1956년까지는 백인들만 다녔지만 이후엔 흑백 차별이 철폐돼 지금은 47%가 비백인 소수 인종이다. 한 해 등록금이 3만9360달러, 책값 500∼700달러, 통학버스 1325달러를 합치면 연간 5000만 원이 든다. 오바마 대통령이 내년 1월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자신의 집이 있는 시카고로 가지 않고 월세를 구해 2년 반 동안 워싱턴에 머무르기로 한 것도 시드웰 프렌즈에 막내딸 사샤를 계속 다니게 하기 위해서다. 워싱턴포스트는 “힐러리 클린턴이 백악관에 들어가면 클린턴의 511m²(약 155평) 저택을 빌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추측 보도일 뿐이었다. 오바마는 “사샤가 고교 재학 중에 전학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 우리 가족이 어디에 살지는 사샤에게 결정권이 있다”고 주변에 얘기할 정도로 막내딸을 끔찍이 여긴다. 하와이에서 태어난 오바마는 여섯 살 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이주해 4년을 보냈다. 딸에게는 그런 불편을 주지 않겠다는 아버지 심정을 이해할 만도 하다.
퇴임한 대통령이 수도 워싱턴에 거주하는 것은 제28대 우드로 윌슨 대통령 이후 약 100년 만이다. 미 언론은 오바마 퇴임 후 거처로 뉴욕이나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하와이 등을 꼽았지만 모두 빗나갔다. 시카고대에 마련된 오바마재단에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연구 활동을 할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내년부터 오바마가 앤드루 공군기지 골프장과 메릴랜드의 명문 골프장인 콩그레셔널 컨트리클럽(전직 대통령에겐 공짜 회원권을 준다)을 거니는 모습이 낯설지 않을 것 같다. 워싱턴 인근 햄버거 가게에서 오바마 부부와 마주칠 수도 있다. 전학 걱정 없이 고교 생활을 하게 된 사샤는 하버드대 입학이 언니 말리아보다 더 쉬울지도 모른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중국 옛말이 딸바보 오바마에게 딱 어울린다.
5. [머니투데이][박종면칼럼] 예술은 사기, 조영남도 사기
요즘 여론의 뭇매를 맞는 화가 겸 가수 조영남이 쓴 ‘현대인도 못알아 먹는 현대미술’이란 책에는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 얘기가 나온다. 이 책에서 조영남은 백남준이 생전에 “현대예술은 고등사기꾼 놀음”이라고 자주 말했다고 소개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예술은 사기”라는 백남준의 선언은 마치 오래전 조영남의 화투그림 대작 사건을 예상한 선지자의 예언 같다.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 이상이 말한 것처럼 조영남의 대작 사건은 명백히 사기다.
평소 가깝게 지낸 무명의 전업화가가 그린 그림을 배달받아 그 위에 덧칠을 하고 사인을 한 다음 마치 자기작품인 것처럼 포장해 수백, 수천만 원을 받고 팔았다면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다.
조영남은 논란이 불거지자 대작은 미술계의 관행이며 앤디 워홀이나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같은 대가들도 모두 조수를 데리고 작업을 한다는 식으로 해명했지만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 어떻게 스스로를 앤디 워홀이나 데미안 허스트의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생각을 했을까. 조영남은 근본이 없는 작가다. 백남준의 예언대로 조영남은 고등 사기꾼 놀음을 해오다 탄로 나고 말았다.
그런데 사기꾼 놀음을 한 것이 조영남뿐인가. 백남준은 조영남이 사기꾼이라고 말한 게 아니라 현대예술이 사기놀음으로 흐를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조영남이 자신의 사기놀음을 현대미술의 대작 관행으로 변명한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현대미술에서 대작은 보편적 현상이다. 작품에 혼을 불어넣으려고 붓질 하나에도 엄청나게 고민하고 정성을 들이면서 고독하게 작업에 몰입하는 창작자로서 미술가는 대중의 머릿속에나 있는 것이지 미술계의 현실은 아니다.
데미안 허스트나 제프 쿤스 같은 세계적 거장이 아니더라도 국내에서도 이미 유명 작가들은 다수의 조수를 두고 고객들에게 ‘주문’받은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그야말로 스튜디오가 ‘공장’이 되고 유명화가는 ‘CEO 또는 관리자’가 된 것이다. 다만 이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조영남이 대작은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한 것은 팩트에 가깝다. 물론 유명 작가에 한해서 말이다.
현대미술이 사기놀음으로 흐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건 바로 상업주의다. 거대자본이 동원되고 재력을 갖춘 화랑과 화상이 등장하면서 사기놀음은 한층 고도화한다. 예술성이라든가 작품성 같은 것은 무시되고 돈이 된다고 하면 주문이 쏟아지며 작가는 공장의 기계처럼 작품을 찍어낸다. 평론가들과 언론매체는 거기에 온갖 찬사를 갖다 붙인다.
조영남의 화투그림 대작 사건도 그 연장선에 있다. 예술성이나 작품성보다 가수로 얻은 브랜드 하나로 그는 어느새 유명 화가가 됐고 큰돈까지 벌었다. 이게 조영남만의 잘못인가. 누가 조영남을 욕할 것인가.
“예술은 우리에게 고통을 보다 잘 견디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 예술은 인간의 조건인 고난을 웅대하고 진지하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해야 한다. 예술은 우리의 기울어진 자아가 적당한 균형을 잡도록 회복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미래 갤러리들은 고통과 소멸에 대한 우리의 불안이 머물 수 있는 위안의 집이 돼야 한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궁극적 목표는 예술작품이 조금 덜 필요해지는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스위스 태생의 천재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영혼의 미술관’에서 ‘인간을 치유하는 예술’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인간에게 예술은 무엇이어야 하나. 조영남 대작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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