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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6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호통만 치는 국정감사식 청문회는 경계해야

상시 청문회를 둘러싼 여야 대치가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다. 정부가 이를 허용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위헌 여부를 법리적으로 검토하면서다. 박근혜 대통령이 법안 거부권을 행사하면 정국을 뒤흔들 뇌관이 될 조짐이다. 야권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더민주도 거부권을 행사하겠다”(우상호 원내대표)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우리는 위헌 여부를 떠나 상시 청문회가 행정부의 정책 실패를 바로잡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면 문제가 없다고 본다. 다만 꼭 필요한 공직자나 관련 정책 전문가들만 불러 극히 실무적으로 진행하는 미 의회 청문회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국정의 발목을 잡는 부작용을 없앨 다각적 보완책을 강구하는 데 여야가 합심하기를 당부한다.

어제 정의화 국회의장은 퇴임 회견에서 “과거 청문회에서 나타났던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해 청문회 활성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다’는 식의 주장”이라고 규정했다. 거부권 행사를 검토 중이라는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를 향한 비판이었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주장일 게다. 내각제가 아닌 다수 대통령중심제 국가가 청문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지적은 옳다. 다만 연중 상임위 청문회가 국정을 마비시킬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그의 말처럼 기우라고만 보기도 어렵다. 우리 국회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에서 이미 청문회 제도를 운용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불거진 온갖 구태를 국민들은 신물 나게 목도했지 않나.

정 의장도 이를 의식한 듯 “상임위 차원에서 현안 중심의 청문회가 활성화되면 20대 국회에서 국감을 폐지하는 법안을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19대 국회 수장으로서 무책임한 얘기다. 헌법에 정해진 국감을 없애는 건 또 다른 위헌 논란을 부를 소지가 있는 데다 법리상 선후 관계가 틀렸기 때문이다. 9월 정기국회 회기 중 30일간으로 정해진 국감을 연중 상임위 청문회 방식으로 전환하려면 하위법인 ‘국정감사 및 조사법’부터 고쳐야 했다.

상시 청문회가 위헌 시비에서 벗어나더라도 의원들의 ‘갑질’이 계속되면 다시 무용론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장·차관과 국·과장들까지 한 두름으로 종일 붙잡아 놓고 정책 현안과 관계없는 호통으로 길들이는 구태부터 없애야 한다. 익숙한 국감장 풍경처럼 기업인들을 불러 망신을 주거나, 출판기념회를 열어 수금하는 식의 부적절한 거래의 장으로 타락해서도 곤란하다. 청문회 제도의 남용 우려를 불식할 보완책 마련이 급선무임을 거듭 강조한다.

2. '화평법' 고쳐야 위해제품 전수조사 효과 볼 것

환경부가 시중 유통되는 살균제, 세정제 등에 어떤 살생물질(유해 생물을 제거하기 위해 첨가한 화학물질)이 들었는지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15종의 위해 우려 제품을 생산하는 3800여 업체들에서 생산품에 사용한 살생물질의 종류가 무엇인지 목록을 받는 작업을 다음달까지 진행한다. 이들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은 8000여개나 된다. ‘페브리즈’ 등 국민 불안이 큰 인기 제품들은 평가를 서둘러 올 하반기에 결과를 우선 공개하기로 했다. 내친김에 제품의 용기나 포장 등에 이용된 살생물제도 실태를 조사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환경부의 전수조사는 전례 없는 대규모 단속 작업이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말까지 국내 유통되는 생활화학제품들을 모조리 조사하게 된다. 그런 작업을 거치고 나면 아무 살생물 제품이나 마음 놓고 쓸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다. 현행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을 손보지 않는다면 전수조사는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될 공산이 크다. 이 법을 고치지 않고서는 제2, 제3의 옥시 사태가 또 터질 수 있으니 걱정인 것이다.

2013년 제정된 화평법은 지나치게 기업 편의를 봐준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1t 미만의 화학물질을 수입·제조·판매할 때는 독성시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도록 배려한 것이 법의 골자다. 연간 사용량이 300㎏ 정도였던 옥시 제품의 독성물질 PHMG는 관리망 밖에 있었던 셈이다.

시판되는 제품의 화학물질은 4만여개나 되는데도 정부의 관리망 안에 있는 것은 530종뿐이다. 이마저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화평법에 따라 제조사는 법이 정한 일부 유해물질 성분만 표시하면 된다. 이를 어긴들 1000만원쯤의 과태료만 물면 그만이다. 따지고 보면 유해물질 전수조사도 근본적으로 개운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법대로 하겠다고 우기는 업체라면 성분 자료를 끝까지 내놓지 않아도 받아 낼 방법이 없다.

이달 초 총리실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수습하는 컨트롤타워를 자임했다. 그러고도 범정부 차원에서 모색하는 후속 안전대책이 뭔지, 도무지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화평법은 온갖 우려와 반대를 무릅쓰고 대통령과 현 정부가 나서 밀어붙인 법이다. 기업 위축을 걱정하느라 국민 생명 안전에 뚫린 구멍을 알고도 방치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3. 새누리 의원들 계파 이름표부터 완전히 떼라

총선 참패 이후에도 계파 갈등으로 혼돈에 휩싸여 있던 새누리당이 비로소 정상화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집권 여당의 막중한 책무에 비춰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제 정진석 원내대표와 비박계 수장인 김무성 전 대표, 친박계 좌장인 최경환 의원은 3자 회동을 통해 단일성 집단지도체제 도입, 혁신비대위원장 외부 영입, 계파 청산 등 당 정상화 방안에 합의했다. 이로써 총선 후 확산일로로 치닫던 새누리당 내홍 사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시급히 당을 수습해 책임 있는 집권당의 역할과 기능을 회복하길 기대한다.

이번 합의가 그야말로 ‘완전체’는 아닌 만큼 넘어야 할 산이 산재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 전 대표와 최 의원 간의 이른바 당권·대권 밀약설이 나오는가 하면 밀실합의 등의 비판도 계파를 불문하고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김 전 대표는 “직전 당 대표로서 자문에 응했을 뿐”이라며 ‘합의’라는 표현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조속히 혁신비대위를 구성해 현재의 집단지도체제를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 바꾸는 당헌 개정안을 마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지만 혁신비대위원장 영입부터 계파 간 합의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세 사람은 그제 회동에서 “계파 청산 방안을 마련해 조속히 시행한다”는 데에도 뜻을 같이했다고 한다. 양대 계파의 실력자들이 ‘계파 청산’을 시급한 과제로 인식할 만큼 계파 갈등은 새누리당을 지금의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은 주범이다.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도 새누리당은 계파 갈등을 거듭했고, 이로 인해 당무까지 마비됐다. 당의 공식 결정보다 계파의 이익이 앞서는 등 새누리당은 계파 프레임에 갇혀 허우적댔다. 친박계와 비박계로 나뉘어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이다 못해 서로 “네가 떠나라”며 상대방을 극단적으로 배척했다.

이번 합의가 이행되기 위해서는 당선인 총회와 전국위원회 등을 거쳐야만 한다. 고비마다 양대 계파가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지난번 비박계 위주의 비대위·혁신위 구성에 친박계가 전국위 무산 등 실력 과시로 강하게 반발한 것과 마찬가지로 권한이 집중되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에는 비박계 쪽에서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계파를 청산하지 않는다면 어느 때고 내분이 재연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쇄신의 걸음을 떼기 위해서라도 계파 청산은 필수적이다. 새누리당은 사즉생 각오로 계파 청산에 매진해야만 한다.

새누리당은 특정 계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집권 여당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안보와 경제의 국가적 중첩 위기에 직면한 지금 계파 이익에 함몰돼 여당으로서의 책무를 망각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할 수 있다. 주류인 친박계가 주도적으로 나서고, 소속 의원 전원이 탈계파를 선언함으로써 새로운 각오를 보여 주길 바란다. 이번 합의가 또다시 계파 갈등으로 무산돼 쇄신과 담을 쌓는다면 국민들은 더이상 새누리당에 아무런 기대도 갖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소속 의원 전원이 계파 이름표를 떼어 내야만 한다.

[동아일보]

4. 구조조정 실패 STX조선, 4조 낭비한 책임자 누군가

STX조선해양 채권단이 STX조선의 정상화에 실패해 법정관리를 신청한다.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은 어제 수출입은행NH농협은행 등이 참석한 채권단 회의 후 “재실사 결과 추가자금을 지원하면서 자율협약을 지속할 경제적 명분과 실익이 없다”며 이달 말까지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를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STX가 법정관리 신청을 하더라도 법원이 수용하지 않아 청산될 가능성이 높다.

한때 세계 4위의 조선소였던 STX조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주 급감에도 무리한 확장에 고비용 구조를 감당하지 못해 2013년 4월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국책 및 시중은행 채권단은 이 회사에 4조5000억 원을 추가 지원했고, 그 이전의 채무까지 포함한 금융권 빚 총액은 5조9600억 원에 이른다. 구조조정 실패로 국책은행이 짊어진 손실은 사실상 국민 부담이다. 

조선업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론만 믿고는 과감히 부실을 떨어내는 대신 부실 기업을 연명시켜 온 채권은행, 이를 묵인하고 방조한 정부, STX조선을 살리라는 압력을 행사한 정치권 책임이 크다. 2012년 12월 26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 당선자는 STX조선 강덕수 회장 등 재계 총수들을 만난 자리에서 정리해고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특히 STX조선의 자율협약 신청 나흘 뒤 산은 회장에 취임한 ‘낙하산 인사’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는 STX조선 진해조선소를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을 만큼 무관심했다. 법적 책임은 더 따져봐야겠지만 대규모 부실에 책임 있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분명한 문책이 이뤄져야 한다. 불과 한 달 전 “STX조선 등 부실 중소형 조선사들의 법정관리 전환 여부를 하반기에 결정하겠다”던 금융 당국의 부실한 판단 능력도 걱정스럽다. 

금융 당국과 채권은행들은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와 성동조선 SPP조선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의 구조조정에서 STX조선의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산업개편의 큰 그림과 경제논리에 입각해 살릴 기업과 퇴출시킬 기업을 가려내지 않으면 혈세만 낭비하는 일이 된다. 옥석(玉石)을 가리지 않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퍼주기를 계속하는 일은STX조선 하나로 끝내야 할 것이다.

5. 大法은 ‘몰래 변론’ 근절책 찾는데 검찰은 손놓고 있나

대법원이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가 정운호 전방위 로비 의혹과 관련해 구속된 것을 계기로 퇴직 예정자 윤리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정식 선임계를 낸 변호사가 판사실로 전화를 걸어 논의를 하는 것이 허용됐지만 앞으로는 변호사와 판사의 통화를 모두 녹음하거나, 법정 밖 판사와 변호사 간 전화 접촉을 아예 금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검찰 출신으로는 검사장이었던 홍만표 변호사가 이 사건에 깊숙이 연루돼 있다. 수임비리도 다양하지만 1조3000억 원대 투자 사기와 횡령 혐의로 기소된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 부부를 이른바 ‘몰래 변론’한 혐의 등도 속속 포착됐다. 그러나 검찰은 법조비리 대책은 고사하고 홍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지 2주일이 지나도록 소환도 하지 않고 있다.

전화로 선처를 부탁하는 식의 몰래 변론은 기록이 남지 않아 전관(前官)예우를 감출 수 있고 수임료가 오간 정황을 숨겨 세금도 빼돌릴 수 있다. 변호사법은 몰래 변론을 금지하고 있으나 형사처벌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법조윤리위원회가 최근 전관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수임 내역 전수조사에 나섰지만 몰래 변론은 선임계를 내지 않아 적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고위직 검사 출신 변호사들에게 몰래 변론은 비법적(非法的) 특권이라고 불린다. 수사는 비공개가 원칙인 데다 무혐의 처분이나 영장 기각 등 법원에 넘어가기 전 재량권이 많아 수사 단계에서 어떤 거래가 오가는지 외부에서 알기도 힘들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장 출신 최교일 변호사와 서울북부지검장 출신 임권수 변호사도 몰래 변론을 했다가 2000만 원씩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홍 변호사는 2011년 검경 수사권 조정에 항의해 옷을 벗었다. 검찰이 검경 수사권 조정에 왜 그토록 반대했는지 알 것 같다. 

그동안 검찰은 법원의 전관예우 방지 조치에 상응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검찰은 기소만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 수사에 대한 지휘권을 갖고 직접 수사를 할 수도 있다. 이런 구조가 법원보다 검찰의 비리 근절을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면 검찰 권한을 축소하는 법 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홍 변호사의 몰래 변론을 받아줌으로써 전관을 예우하고 탈세에 공모한 현직 판검사부터 샅샅이 찾아내 문책해야 한다.

6. 與, 혁신 없는 야합으론 ‘반기문 대망론’도 헛꿈이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그제 김무성 전 대표와 최경환 의원을 함께 만나 계파 해체 선언 등 당 정상화 방안에 합의한 것을 두고 비판이 거세다. “3김 시대 같은 밀실 야합” “계파 수장들과 계파 청산을 도모한다는 것은 모순” “총선 참패 책임자들에게 셀프 면죄부를 줬다” 같은 비난이 쏟아졌다. 김 전 대표는 “합의가 아니고 직전 당 대표로서 자문에 응했을 뿐”이라고 서둘러 한발 빼는 ‘36시간의 법칙’까지 보였다. 

일리 있는 비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이 대립하고 정 원내대표는 ‘낀박’ 신세인 판에 계파 수장급의 결단 없는 수습은 불가능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만남의 형식이 아니라 혁신의 내용이다. 혁신 비대위를 이끌 외부 인사를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처럼 강단과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데려올 수 있는지가 첫째 과제다. 혁신 비대위는 전당대회 준비 역할을 넘어 국민의 공감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획기적 쇄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실질적 계파 해체를 이뤄내는 것도 큰 과제다.

친박이 대선후보감으로 띄우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어제 제주에 도착해 5박 6일간 일본과 한국을 오가는 일정에 들어갔다. 4·13총선 참패로 여권 대선주자군이 지리멸렬한 데다 정계 개편론까지 나오면서 반 총장의 대선 출마를 의미하는 ‘반기문 대망론’이 여권에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여론조사 1, 2위를 지키고 있는 반 총장이라도 업지 않고서는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는 위기감 때문인지 충청권 정 원내대표 등 여권 인사들이 대거 제주까지 출동했다. 

그동안 대선 출마에 대해 확언도, 부인도 않던 반 총장은 어제 관훈포럼 초청 토론회에서 “내년 1월 1일이 되면 이제 한국 사람이 되니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그때 결심하고, 필요하면 여러분에게 조언을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10년간 유엔 사무총장을 했으니 (국민의) 기대가 있다는 것은 염두에 두겠다”는 말은 대선 출마 시사로 들린다.

여권에선 환호성이 나오겠지만 반기문 대망론도 새누리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높을 때나 실현 가능하다. 계파 갈등을 청산하지 못하고 쇄신에 실패해 국민에게 희망을 못 준다고 낙인찍힌다면 반 총장이 손잡을 까닭도 없고, 손잡은들 국민이 찍어줄 리 없다. 과거 박찬종 정몽준 고건 씨도 한때 여론의 지지가 높다고 계속 유지되지는 않았다. 새누리당이 스스로 국민에게 정권 재창출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반기문 대망론은 한갓 헛꿈에 불과할 것이다.

[중앙일보]

7. 경유값 인상은 미봉책…미세먼지 종합대책 새로 짜라

국민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미세먼지는 인내할 수도 방치할 수도 없는 수준에 달했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적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세우라”고 최근 국무회의에서 주문하고 나선 배경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어제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미세먼지 종합대책 회의를 열 예정이었다. 하지만 머리를 맞대기도 전에 돌연 취소됐다. 부처 간 이견을 사전 조정하지 못하면서다.

파행은 예고돼 있었다. 환경부가 현재 휘발유값 대비 85%로 맞춰져 있는 경유값을 올리자는 방안부터 덜컥 내놓았는데,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여기에 제동을 건 것이다. 환경부는 경유값을 올리면 자동차 미세먼지의 70%를 차지하는 디젤차량의 운행을 억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단세포적으로 생각하면 맞는 얘기다.

하지만 미세먼지 종합대책의 카드로 경유값 인상부터 내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세먼지 해소 대책이 곁길로 샐 수 있어서다. 수시로 한반도를 회색빛으로 뒤덮는 미세먼지는 대기순환을 통해 중국에서 유입되는 부분이 상당하다. 그렇다면 미세먼지 대책은 이 부분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환경부가 2013년 미세먼지 종합대책을 마련해 한·중·일 환경장관회의를 열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국내 차원에서는 미세먼지뿐 아니라 산업시설과 발전소, 디젤차량이 뿜어내는 이산화탄소·질소산화물을 줄이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무턱대고 경유값을 올리는 것은 ‘양날의 칼’이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최대 원인인 중국발 미세먼지 대책에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경유값부터 올리면 물류비용 상승과 소비자물가 인상을 촉발할 수 있다. 정부가 보조금까지 줘가면서 디젤차 사용을 부추기더니 돌연 경유값을 올린다면 디젤차 운전자는 물론이고 봉고차 한 대 달랑 몰고 다니는 영세 자영업자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경유값은 산업 경쟁력과 관계가 밀접하다. 그래서 나라마다 산업구조에 따라 정책이 달라진다. 제조업 비중이 낮은 영국은 휘발유값 대비 경유값이 101%에 달한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디젤엔진이 질소산화물을 배출함에도 불구하고 휘발유값 대비 경유값이 한국과 같은 수준인 85%를 유지하고 있다. 그 대신 일본은 근본적인 대책을 통해 문제를 극복해 왔다. 대기오염 물질 배출을 차단하는 기술을 획기적으로 개발하고 환경감시 시스템을 철저하게 구축해 ‘클린 재팬’을 만들어 냈다. 일본이 산업시설 주변에 인공연못을 만들어 물고기를 키우는 것도 이런 자신감의 표출이다.

우리도 지속가능한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순위도 세심하게 조정해야 한다. 경유값 인상에 앞서 10년 이상 된 노후 디젤차부터 하루빨리 도태시키는 게 중요하다. 또 국내 디젤 상용차에 설치됐지만 유명무실해진 질소산화물 저감장치 감독을 강화하고 산업시설의 오염물질 배출 차단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 경유값 인상을 성역으로 둘 이유는 없지만 대통령 보고를 위해 졸속 대책을 만들어선 부작용만 커질 뿐이다.

[매일경제]

8. 새누리당 친박-비박 '국정동반' 마지막 기회 살려라

새누리당이 혁신비상대책위원장 선임과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의 개편 방안 등을 놓고 다음주 초 의원총회를 열어 결론을 내리겠다고 한다. 4·13 총선 참패 이후 표류해온 새누리당이 24일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무성 전 대표, 최경환 의원 등 3자 회동을 계기로 다시 기로에 서 있는 모양새다. 오는 30일 20대 국회가 임기를 시작하는 마당에 여당의 지도부 공백 사태는 하루빨리 해소돼야 할 일이다. 

새누리당 3자 회동을 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다. 총선 패배를 책임져야 할 당사자들이 밀실 합의를 했다거나 계파를 오히려 부각시킨 행태라는 비판도 나온다. 또 김 전 대표는 단순히 자문에 응한 것일 뿐 당 정상화 방안에 합의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문하는 형식이든 주류·비주류 대표주자가 밑그림을 그리는 형식이든 중진들이 모여 당 정상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새누리당은 혁신위원장·비대위원 인선이 최근 불발하면서 구심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김무성·최경환 의원이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자숙한다지만 그것은 최소한 당 혁신을 위한 구심점이 마련된 이후의 일이다.

국정에 추진력을 얹지는 못할망정 국민에게 불안을 주지 않기 위해서도 여당이 조속히 쇄신을 위한 기본 틀을 갖춰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김무성·최경환 의원이 한목소리로 당 정상화 방안을 제시하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도 시원찮을 판에 회동 결과를 놓고 서로 엇갈린 주장을 내놓는 듯한 모습은 유감이다. 

정 원내대표는 김 전 대표와 최 의원으로부터 혁신비대위원장 후보를 추천받아 이른 시일 내에 선임할 방침이라는데 더 이상의 파열음이 나오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정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장 겸직, 혁신위원장·비대위원 인선에 실패하면서 궁지에 몰렸는데 그 실패를 경험 삼아 이번에야말로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한번 더 당 쇄신안이 처리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새누리당은 더 이상 여당으로서 국정 책임을 자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 국정 뒷받침을 위해서도 새누리당은 혁신비대위 구성과 당헌·당규 개정 과정에서 양보와 포용으로 하루빨리 지도부 공백을 메워야 한다.

[부산일보]

9. 새누리, '혁신비대위' 졔대로 꾸려야 그나마 희망 있다

새누리당이 정진석-김무성-최경환 '3자 회동'을 통해 수습의 계기를 마련했다.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위원회를 단일화한 '혁신비대위'를 구성하고 혁신비대위원장은 외부 인사를 영입하며, 대표 권한을 강화한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하는 것 등이 골자다. 회동의 한 당사자인 김 전 대표 측이 '3자 합의'가 아닌 '조언'이라며 한발 빼는 모양새지만, 정 원내대표가 다음 주 초에 의원총회 등 당의 공식 기구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논의키로 한 만큼 큰 틀에서는 정상화의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총선 패배 이후 40일 넘게 표류해 온 새누리당이 그간의 갈등과 파행을 수습하고 이제라도 정상화의 계기를 마련한 점은 다행스럽다. 이번 3자 회동을 두고 '밀실 합의'라거나, 계파 청산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계파정치에 매몰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실세'가 나서야 문제가 해결되는 새누리당 계파정치의 실체와 구조적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20대 국회 개원이 코앞이지만 지금의 새누리당은 야당과의 원 구성 협상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정당으로서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한 상태다. 지금처럼 갈등을 계속하다가는 공멸이다. 이렇게라도 수습의 길을 모색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결국 관건은 앞으로 구성될 혁신비대위다. 혁신비대위원장 추천 등 혁신비대위 구성을 두고 또다시 계파 간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혁신비대위의 권한이나 활동 기간이 제한돼 전당대회 준비나 하는 '관리형'에 그치고 제대로 된 혁신안을 마련하고 실천하지 못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새로 구성될 혁신비대위마저 혁신을 외면하고 구태를 재현한다면 새누리당의 미래도 희망도 없다. 국민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인사를 혁신비대위원장으로 선임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혁신안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총선 패배에 책임이 있는 세력이 반성 대신 당권 장악에만 몰두하는지를 국민은 주시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뼈를 깎는 혁신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10. 찬성 여론 높은 지방분권 개헌은 균형발전 장기 과제

지방분권에 관한 한 유럽 선진국들이 앞서가고 있다. 독일의 경우 재정 권한이 지방정부에 대폭 넘어가 있다. 독일의 도시들이 과거와 현재를 간직한 채 조화 속에 공존하는 건 재정을 지역 특성에 맞게 사용한 덕택이다. 지방자치 27년째인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분권이 아닌 중앙집중, 균형 발전이 아닌 특정지역 편중이 심해졌다. 이래서야 지방자치, 지방분권, 균형발전은 공염불이다. '지방분권 개헌' 요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분권 개헌을 바라는 시민들이 압도적인 다수임이 다시 입증됐다. 균형발전지방분권 부산시민사회연대, 부경대 부산발전연구소 등이 시민정책공방 사회여론센터에 의뢰한 설문조사에서다. 이 여론조사 대상은 부산지역 16개 구·군 700명이다. '20대 국회에서 지방분권 개헌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매우 찬성' 30.1%, '약간 찬성' 40.3%로 집계됐다. 부산 시민 10명 중 7명이 지방분권 개헌을 바란다는 것이다. '지방분권 개헌'에 대한 홍보가 부족한 현실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편이다. 개헌을 한다면 언제가 바람직한가를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32.1%가 2017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꼽았다. 이어 2018년 6월 지방선거(24.1%), 2020년 4월 국회의원 선거(11.7%) 순이었다. 응답자들은 빠를수록 더 좋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누차에 걸쳐 분권개헌 실시를 주장해 왔다. 부산지역 학자와 시민단체도 줄기차게 분권개헌 운동을 벌였다. 이 같은 상황은 전국 지자체가 마찬가지다. 각 정당에서도 공약으로 채택한 지 오래다. 분권 운동가들은 개헌에 대한 부담감, 지방정부 재정이양에 대한 거부감 등을 가진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서 원인을 찾는다. 

이제 도시 간 경쟁 시대를 살고 있다. 도시는 나날이 변화하고 몸집도 늘었다. 선진국들은 분권을 통해 지방정부에 날개를 달아 주고 있다. 한국에선 20년 전의 옷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런 일이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하나. 설문조사 결과가 가진 의미를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한국일보]미스터리의 힘, 카스파 하우저

1828년 5월 26일, 바이에른 왕국 뉘른베르크에서 기이한 이야기 하나가 시작됐다. 카스파 하우저(Kaspar Hauser)라는 10대 소년 이야기다. 

허름한 농부 차림의 낯선 그가 저 날 거리에 나타났다. 언어를 익히지 못해 소통이 거의 불가능했고 정신연령도 낮고 몸놀림도 둔했다고 한다.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아이 아버지처럼 기병대가 되게 하든지 아니면 목을 매달라”는 편지를 지니고 있었지만, 쓴 사람의 신원은 물론 적혀 있지 않았다. 흔했을 떠돌이에게 주민들이, 나중엔 이웃 나라의 귀족들까지 왜 관심을 쏟았는지가 먼저 의문이다. 인근 마을 어디서도 그를 아는 이가 없었고, 봤다는 이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을 학교장이던 게오르그 다우머라는 이가 아이를 돌보며 꾸준히 말과 글을 가르쳐 확인한 바, 하우저는 늘 작은 독방에 감금된 채 누군가가 넣어주는 빵과 물을 먹고 살았다고 한다. 

소년은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였지만, 죽음은 더 큰 미스터리를 낳았다. 1년여 뒤 그는 다우머의 집에서 괴한에게 습격 당해 큰 상처를 입었고, 총격을 모면한 적도 있었다. 1833년 12월 14일 그는 부모가 누군지 알려주겠다는 누군가의 편지를 받고 외출했다가 안스바흐 법원 정원에서 가슴에 칼을 맞고 사흘 뒤 숨졌다. 

그를 거짓말쟁이라 여긴 이들은 피습도 자작극이라 했지만, 다수는 1812년 태어나 3주 만에 숨진 것으로 알려진 바덴(Baden)의 대공 찰스의 사생아라 짐작했다고 한다. 나폴레옹 1세의 양녀인 대공비가 은밀히 가둬 키우다 버렸는데, 대공과 닮았다는 소문이 나자 부득이 자객을 보냈다는 설. 하지만 1996년 ‘슈피겔’은 전문 기관의 유전자 대조 분석 결과 대공가의 혈통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독일 뉘른베르크 인근 안스바흐(Ansbach) 공동묘지에는 하우저의 묘비가 서 있다. 라틴어 묘비에는 “여기 나이를 알 수 없는 카스파 하우저 묻히다. 생일처럼 죽음도 미스터리였다”고 적혔다. 미스터리의 예술적 힘일까. 그의 이야기는 톨스토이, 폴 오스터 등의 소설을 비롯한 수많은 문학과 음악, 드라마, 연극의 직간접적인 소재가 됐다. 

2. [서울신문][문화마당] 호루라기/최진영 소설가

스물한 살 때 일이다. 저녁 6시부터 11시까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느 날 퇴근길 주택가에서 한 남자와 마주쳤다. 남자는 내 옆을 빠르게 스쳐 갔다. 좋지 않은 느낌에 뒤를 돌아봤다. 방금 스친 그 남자가 내 뒤에 서 있었다. 놀라서 얼어붙은 나를 등 뒤에서 꽉 안았다. 나는 주저앉으며 소리 질렀다. 길바닥을 구르며 발버둥쳤다. 남자는 내 몸을 더듬다가 달아났다. 반쯤 정신이 나간 채 집까지 달려가 문을 잠그고 더러워진 팔뚝에 얼굴을 묻으며 생각했다. ‘내가 여기로 들어오는 걸 그 남자가 봤으면 어떡하지?’

그다음 해에 있었던 일. 공중전화 부스에서 통화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시커먼 옷을 입은 남자가 나를 덥석 안았다. 사거리 대로변이었다. 해가 일찍 지는 겨울밤이었지만 9시도 안 된 시간이었다.

스물여섯 살 때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밤 10시쯤이었다. 퇴근길에 자주 뒤를 돌아봤다. 지난 경험으로 생긴 버릇이었다. 인적이 드문 길에서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지 않는 것. 주변을 둘러보는 것. 낯선 남자와 나 둘뿐이면 재빨리 그 길을 벗어나는 것. 그날 역시 그랬다. 뒤를 돌아보자마자 남자가 달려들었다. 나는 발버둥치고 소리 질렀는데, 이번에는 비명만 지른 게 아니라 쌍욕을 하고 발길질을 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도망치는 남자를 쫓아가며 돌을 집어 던졌다.

이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하지만 나는 집 안에 틀어박히지 않았다. 외출하고 귀가했다. 일하고 사람을 만나고 마트에 들렀다. 밤길을 홀로 걸어야 한다면 그렇게 했다. 이십대 성인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자기보다 작고 어린 여자를 뒤에서 덮치기나 하는 남자들 때문에 나의 생활을 놓을 수는 없었다. 내 잘못이 아닌데 왜 숨어야 한단 말인가.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 소식을 듣고 나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내게 달려들었던 그들 중 단 한 명이라도 흉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여자 몸을 더듬자고 나를 덮친 게 아니라 여자를 죽이겠다는 결심으로 나를 쫓았다면?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짧은 문장은 바로 나의 마음이었다. 그렇다.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

내 경험을 듣고 ‘그러니까 조심했어야지’, ‘밤에는 나다니질 말아야지’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말은 ‘여자인 네가 조심하지 않아서’라고 들렸다. 어떻게 얼마나 더 조심하란 말인가? 생활을 포기하란 말인가? 가스총이나 칼을 품고 다니란 뜻일까? 여자라는 이유로 그런 걸 품고 다녀야 하는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가? ‘모든 남자가 그렇진 않다’는 말도 마찬가지. 피해자에 대한 걱정보다 남자 일반에 대한 옹호가 앞서다니, 뭔가 이상하다. 범인은 여자를 골라 죽였다. 그런 남성이 존재하는 한 모든 여성은 잠재적 피해자다. 강력범죄 피해자 중 88.7%가 여성이라는 통계도 있다. 그러니 침묵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공감하고 연대해 그릇된 인식과 치안을 함께 고민하자는 것이다. 그런데도 ‘모든 남자가 그렇진 않다’며 불쾌감과 자기방어를 먼저 드러낸다면 그것은 ‘나만 아니면 돼’의 다른 표현 아닌가.

아버지는 알아서 조심하라는 충고 대신 내게 호루라기를 줬다. 자식에게 칼이나 망치를 건넬 수는 없으니, 호루라기는 당신이 줄 수 있는 최선의 무기였을 것이다. 호루라기 소리가 내 비명보다 작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호루라기를 쥐고 밤길을 걷는다. 아무것도 쥐지 않은 주먹보다는 호루라기라도 쥔 주먹이 더 강할 것이라고 믿고 있기에.

3. [동아일보][횡설수설/고미석]김여정의 신랑감 찾기

“내 딸과 결혼하는 사람에게 5억 홍콩달러(약 700억 원)를 주겠다.” 2012년 홍콩의 재벌 세실 차오가 당시 31세인 딸의 신랑감 구하기에 나서며 내건 조건이다. 전 세계 남자들이 귀를 쫑긋했지만 걸림돌이 있었다. 그의 딸은 레즈비언으로 앞서 프랑스에서 동성 결혼식을 올렸다는 점이다.

그래도 바람둥이로 소문난 아버지는 포기를 몰랐다. 2년 뒤 좋은 짝을 찾아주겠다는 일념 아래 ‘지참금’을 10억 홍콩달러로 올렸다. 참다못한 딸이 공개편지를 보냈다. 내용인즉, 서로의 애정 문제는 건드리지 말자는 제안이었다. 최근 북한에서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여동생 여정(28)의 배필을 찾으려 팔을 걷어붙였다는 소식이다. 그가 각별히 아끼는 것으로 알려진 여정은 서열과 직책 관계없이 사실상 2인자, 그런 여정의 남편감 조건은 무엇일까.

영국 대중지 ‘더 선’은 탈북자 말을 인용해 ‘김일성대 졸업, 키 178cm 이상, 준수한 외모, 인민군 복무 경력’ 등을 갖춘 3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누구도 ‘낙점’을 거부하지 못할 테니 평양판 막장 드라마가 진짜 현실이 될지 모르겠다. 재벌가나 권력층의 안하무인 딸과 결혼했다 본인은 물론이고 온 가족이 수난을 겪는 남자 주인공처럼 말이다. 백두혈통의 사생활이 베일에 가려진 만큼 확인된 건 없다. 최룡해 아들과 결혼했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여정이 최룡해에게 반말을 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쑥 들어갔다. 얼마 전 방북한 일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미혼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도 아닌데 여정의 남편 존재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다만 결혼 여부에 계속 관심이 쏠렸음에도 정보당국이 줄곧 헛다리를 짚었다는 점이 꺼림칙하다. 작년 4월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에서 “(2015년) 5월 출산”이라며 출산예정일까지 못 박았는데 ‘여정=미혼’이 맞다면 망신살이 뻗쳤다. 톱스타 열애 폭로 기사로 알려진 연예매체보다 정보수집 능력이 떨어진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지경이다. 그나저나 북 최고존엄 지도자 여동생과 결혼하는 것은 과연 독일까 약일까.

4.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기다림

서울에서 장항선 완행열차를 타고 광천역에 내리면 역전 광장 한구석에 자전거를 세우고 기다리고 계셨다.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한 아들이 고향집으로 내려올 때마다 아버지는 늘 마중을 나오셨다. 벌써 50년 전 일이지만 그는 지금도 광천역에 내리면 자기도 모르게 사방을 둘러보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아버지가 저만치 자전거를 세워놓고 기다리고 계실 것만 같아서다. 

한 시간 전부터 역에 나와 아들을 기다린 아버지는 그러나 집으로 가는 동안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막상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면 수줍어 말 못하는 총각처럼 오히려 무뚝뚝하게 아들의 짐만 자전거 짐칸에 싣고 앞장섰다. 그리고 아들이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날에는 바리바리 짐 보따리를 자전거 뒤에 가득 싣고 한 시간 전부터 또 휭 하니 광천역으로 나가셨다.

‘낯선 서울에서 몸조심하고 공부 열심히 하고 못된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고 세끼 밥 꼬박꼬박 잘 챙겨 먹어라. 넌 장남이니 우리 집의 기둥이다. 네가 잘되어야 네 동생들도 본받아 잘할 거 아니냐. 이 아버지는 너만 믿는다.’ 아마 아버지는 이런 말들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기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끝내 심중의 말을 꺼내지 않으셨다. 아버지와 아들은 침묵으로도 얼추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으니 말이란 어차피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는지 모른다.

간곡하고 정성스러운 아버지의 기대와 다르게 아들은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자리를 잡지 못하여 열댓 군데의 직장을 떠돌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역전에 나와 이제는 장성한 아들을 기다리셨고, 안타깝고 답답했으련만 이렇다 할 속내를 내보이지 않으셨다. 그냥 기다림이 전부였다.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다는 반가운 소식을 기다릴 뿐 가타부타 참견을 하지 않았다.

아들 장사익은 40대 중반에 이르러 뒤늦게 소리꾼으로 데뷔했다. 열다섯에 상경하여 30년 만이었다. 그 이후 빠르게 정점을 향해 나아갈 때 아쉽게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의 기나긴 기다림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오랜 기다림이 끝났으니 마음 놓고 훌훌 떠나신 걸까.

갈팡질팡하거나 느린 걸음일지라도 기다려주는 사람만 있다면 끝까지 갈 수 있다. 걸음마를 배울 때 엄마가 팔을 벌려 기다리면 넘어져도 불끈 일어났듯이.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큰 격려는 변치 않는 기다림인지 모른다.

5. [동아일보][2030 세상/손수지]화나는 세상, 화내지 않고 살아갈 용기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주무시다 일어나서 갑자기 창문을 열어젖히는 일이 잦았다. 한겨울 바람이 쌩쌩 부는 창가에 앉아 한참이나 가슴을 두드린 후에야 다시 잠을 청하시곤 했다. 날씨도 추운데 왜 창문을 열어두느냐고 내가 투정하면 속에서 열불이 나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대답하셨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 마음속에 열불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는 여러 가지였다. 

돌아가신 지 몇십 년이 지난 시어머니의 고된 시집살이, 청상과부를 만들어버린 할아버지를 향한 원망, 말썽을 부리는 자식을 향한 걱정….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우울과 분노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누르고 또 눌러 화병이 생겼던 것 같다. 참고 견디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세대이니 할머니는 마음속 응어리를 제대로 꺼내 보지도 못한 채 한평생을 보내셨다. 

할머니와 반대로 화를 숨기지 않고, 마음껏 표출하는 사람도 있었다. 유년기를 보낸 동네에는 술만 먹으면 자신의 가족에게 해코지하는 이웃이 살았다. 말리는 사람에게도 행패를 부려 그 어른이 술을 많이 먹고 오는 날이면 온 동네가 공포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 그 집 가족은 그분이 술이 깰 때까지 골목에 나와 기다리곤 했다. 무슨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웃 어른은 주기적으로 분노를 표현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사람처럼 술을 마시고, 소리를 질러댔다. 

화는 여러 형태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외할머니처럼 쌓이고 쌓여 바위처럼 단단해진 화 덩어리를 가진 안타까운 이들이 있다. 이웃 사람처럼 자신의 분노를 불티처럼 날려 사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폭탄 같은 분노를 남들 모르게 품고 있다 갑자기 큰 사건을 터뜨려 온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도 있다. 

내가 가진 분노나 미움의 모습은 제대로 볼 기회가 적었다. 어렸을 때는 크게 화를 낼 일이 없었다.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던 학창 시절에는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웠다. 학업과 입시는 힘든 일이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즐거운 시간으로 이겨낼 만했던 것 같다. 화가 나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에 쌓아두거나 주변 사람에게 화풀이할 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다. 

남을 향한 분노나 미움이 내 속에서 자라고 있다고 느낀 것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일을 하다 마찰이라도 생기면 마음속에 화산이 폭발하는 듯 분노가 치밀었다. 선배든 후배든 갑을 관계로 만난 사람이든 내 의견을 다 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생각이 다르다 보니 가끔 다툼도 생겼다. 제대로 말도 못하고 며칠을 끙끙 앓은 적도 있다. 

그렇다고 언제나 화를 쌓아두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참는다고 참았는데도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혼자서 술을 마시고 억지로 잠을 청하기도 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화를 여과 없이 드러내거나 분노의 파편을 튀기며, 상처를 주는 못된 행동도 보였다. 

종일 인터넷을 끼고 살 수 있는 환경이다 보니 나와 먼 이야기에 분노를 터뜨리는 일도 많아졌다. 여러 이슈에 대해 나와 다른 타인의 의견을 여과 없이 접할 수 있다 보니 실체도 없는 대상에 화가 나는 일도 종종 생긴다. 나와 상관없는 일인데도 온라인에서 격한 다툼이 일어날 때면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기도 했다. 

내 속에 치미는 화가 언제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화를 제때 풀어내기 위해 만든 여러 취미가 이제는 생활의 활력소가 되었다. 불가능한 일을 해 보이겠다는 오기로 가능하게 만들어 능력의 한계치를 좀 더 확장하기도 했다. 집단의 분노 역시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잊혀지거나 억지로 묻어버린 사회 문제가 집단의 요구로 해결되는 일을 여러 번 보았다. 분노가 때로는 세상을 바꾸기도 했다. 화를 무조건 참고 가만히 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무엇 하나 경쟁이 아닌 것이 없다. 남이 쓰러지지 않으면 내가 쓰러지는 형국이니 모두의 마음속 분노가 들끓고 있음이 느껴진다. 어렵겠지만,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불의에는 용기를 내 함께 힘을 합치면 더 좋겠다. 좁아진 이해심의 방의 크기를 키워 배려와 약자를 존중하는 일, 나부터 시작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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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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