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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8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신생아 없는 ‘100세 사회’ 재앙이다

젊은이들은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상황에서 100세 이상 인구는 늘어나는 등 고령화 추세가 가속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5월 출생아 수는 3만 4400명으로 1년 전보다 5.8% 줄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0년 이래 5월 기준으로는 최저치다. 혼인 건수도 지난해 동기 대비 8.6% 줄어든 2만 5500건으로, 역시 2000년 이래 가장 적었다. 젊은이들이 적령기에 이르러서도 결혼도 늦추고 아이도 낳지 않는다는 얘기다.

반면 지난해 11월 기준 만 100세 이상 고령자는 3159명으로, 2010년보다 72.2%(1324명) 증가했다. 2005년 961명에서 10년 사이 3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인구 10만명당 100세 이상 인구는 2005년 2.0명에서 2010년 3.8명, 지난해 6.6명으로 급증세다. 신생아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데도 기존 장년층은 점차 늙어가는 기형적인 인구구조의 고착화가 아닌가 걱정이 크다.

건강한 장수 사회는 축복이다. 하지만 서로 출산을 기피하는 상황에서의 고령화는 국가적으로 재앙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2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다. 주요 노동력인 15∼64세 인구 비중이 감소하는 등 이미 인구절벽에 도달해 있다. 노동력 감소로 인한 잠재성장률 하락, 노인인구 부양비용 증가 등의 위기가 현실로 닥칠 날이 결코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미덥지 못하다. 2005년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치하고 지난 10년간 152조원을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올 상반기 합계출산율 추산치가 1.2명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사실이 단적인 예다. 되레 뒷걸음치는 셈이다. 올해부터 5년간 200조원을 들여 2020년에는 합계출산율을 1.5명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가 공허하게 들리는 까닭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극복은 국가의 미래와 직결돼 있는 만큼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해 인구 1억명을 지키자는 의미의 ‘1억 총활약상’이라는 장관직을 신설하는 등 저출산·고령화 극복에 총력을 쏟고 있다. 우리도 1년에 한두 차례 회의에 그치는 허울뿐인 위원회 중심 체제에서 탈피해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부 부처 신설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2.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계획 차질 없도록

정부가 원전에서 배출되는 사용후 핵연료 영구처분시설 부지를 2028년까지 선정한다는 내용의 기본계획을 내놓았지만 벌써부터 원전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처분시설이 건설되기까지 사용후 핵연료를 잠정적으로 원전 구내에 저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혹시 처분시설 건립계획이 차질을 빚게 된다면 임시저장 시설이 그대로 영구시설로 고착될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을 것이다. 최근 산업부 주최의 공청회가 주민 반발로 무산된 데서도 이러한 우려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원전마다 사용후 핵연료를 수조에 넣어 저장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것부터가 문제다. 월성원전은 2019년에, 한빛·고리원전은 2024년으로 포화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그 뒤로도 한울원전(2037년)과 신월성원전(2038년) 등이 꼬리를 잇게 된다. 결코 강 건너 불처럼 한가하게 바라볼 수 없는 처지다.

역대 정부가 이런 점을 뻔히 내다보고도 미리 저장시설 건립계획을 마련하지 못한 데 가장 큰 책임이 있다. 1980년대부터 간헐적으로 변죽만 울리다가 지역여론에 부딪혀 슬그머니 넘어가곤 했다. 주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다음 정부로 계속 책임을 떠넘겨 온 측면이 다분하다. 정부의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현 정부도 최근 황교안 국무총리 책임하에 기본계획을 확정했지만 계획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는 쉽게 장담하기 어렵다.

사용후 핵연료는 고준위 폐기물이라는 점에서도 문제가 심각하다. 저장시설이 마련되지 않으면 원전 구내에 쌓아둘 수밖에 없고 그러고도 넘치면 결국 주택가 골목길로까지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계획에 따르더라도 부지선정에만 12년이 걸리고 이후 중간저장시설을 거쳐 영구처분시설을 건설하는 데까지 줄잡아 30년 정도가 걸린다는 점에서도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계획추진 과정에서 주민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 하는 점이다. 사용후 핵연료 처분장이 필수적으로 마련돼야 하지만 일방적인 강행은 금물이다. 주민 반발을 초래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물론 주민 설득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책임이 정부의 몫일 수밖에 없다. 계획이 차질을 빚어서는 곤란하다.

[서울신문]

3. 집안 잔치 하느라 미 대선 의원외교 외면하나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며칠 전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확정한 공화당 전당대회에 이어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민주당 전당대회장도 후끈 달아올랐다. 그런데도 여당인 새누리당은 관례적으로 보내던 대표단을 이번엔 파견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세연 의원이 유일하게 자비로 지난 20일 공화당 대회를 참관했을 뿐이다. 미 정가의 아웃사이더인 트럼프의 등장으로 미국의 대외 정책이 격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시점에 외유가 아닌 진짜 ‘의원외교’를 펼칠 기회를 스스로 박찼다면 집권당으로서 중대한 직무유기일 것이다.

개인 자격으로 공화당 대회를 참관한 김 의원은 “한·미 동맹 약화와 보호무역 강화에 대한 (우리의) 준비가 절실함을 느꼈다”고 소회를 밝혔다. 본지에 기고한 참관기를 통해서다. 특히 인터뷰에서 “바닥 민심을 보니 트럼프가 당선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더욱 아쉬운 노릇이다. 여야 정당들이 소위 ‘트럼피즘’의 진면목을 살펴보고 그의 참모진과 네트워크를 만들 무대를 외면했다면 말이다. 혹여 트럼프가 집권하면 한국은 그가 표방한 보호무역주의와 고립주의 외교 정책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 김대중 정부 때도 공화당으로 정권 교체가 되더라도 미국의 대북 정책이 불변일 것으로 마음을 놓았다가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사사건건 부딪쳤지 않았나.

얼마 전 공화당이 정강에서 북한을 ‘김씨 일가의 노예국가’로 규정하자 민주당도 그제 ‘가학적 독재자가 통치하는 가장 억압적 정권’으로 적시하는 정강을 발표했다. 이런 정책 동조 현상의 이면에 깃든 함의는 현장에서만 감지할 수 있는 일이다. 두 당의 정치 이벤트에 무관심해선 안 될 까닭이다. 더욱이 트럼피즘은 그의 당선 여부를 떠나 이미 미국의 대외 정책에 투영되기 시작했다. 그제 발표된 민주당의 정강·정책을 보라. 힐러리 후보 역시 보호무역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지 않았나.

그럼에도 28일(현지시간) 막을 내릴 미 민주당 전당대회장에마저 새누리당 참관인이 결국 한 명도 없다면? 다음달 전당대회를 앞둔 여당이 집안 잔치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게다. 트럼프가 내건 ‘미국 우선주의’라는 모토에 이미 미 여론이 출렁거리고 있다면 힐러리가 이기더라도 차기 미 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변화가 불가피할 게다. 정부는 물론 여야 정당들이 미국 사회 저류의 변화 기미를 읽고 유사시 국익을 극대화할 대화 채널을 확보하는 적극적 노력을 기울일 때다.

4. 北 5차 핵실험 위협만 받고 끝난 ARF

2016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그제 가시적인 외교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우리나라는 이번 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 북한에 우호적인 회원국들에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외교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패권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나라가 설 자리는 없었다. 지난해에 이어 의장성명에 회원국들이 북한의 잇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도발을 우려하고, 6자회담 재개를 촉구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 체면치레를 했다. 중국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사드 배치에 반감을 드러냈고, 미국은 사드 문제에서 한 걸음 물러선 모습이었다. 북한은 사드 배치 결정으로 벌어진 한·중 관계의 틈을 비집고 핵실험의 정당성을 선전하며 고립에서 탈피하려 안간힘을 썼다.

ARF의 최대 관심사인 의장성명은 폐막 하루가 지나서야 채택됐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영해 분쟁 등 현안들을 놓고 회원국의 입장이 첨예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남중국해 영해 문제를, 중국이 사드 배치 문제를 이슈화하면서 두 패권국에 끼인 우리나라는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 우리는 남중국해 이슈에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중립을 지켰다. 그런데도 중국과 러시아는 의장성명 초안에 사드 배치 관련 내용을 포함하려 해 이에 대응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한다. 안일한 대응으로 혹을 떼려다 되레 혹을 붙인 격이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리용수 북한 외무상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라오스에 입국한 뒤 리 외상에게 친밀감을 과시했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는 사드 배치에 따른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윤 장관의 발언 중에 손사래를 치거나 턱을 괴는 등 비신사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 24일 라오스에 도착한 직후 윤 장관을 만나 “최근 한국의 행위는 양국의 상호 신뢰의 기초에 해를 끼쳤다”며 사드 배치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 윤 장관은 “국가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자위적 방어 조치”라고 설득했으나 그는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ARF에서 보았듯이 외교 무대에서 사드에 관한 한 중국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중국의 비협조는 북한이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을 감행해도 무력적인 방법 외에는 효과적인 대북 제재 수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북한이 중국을 믿고 5차 핵실험을 감행하면 한반도의 위기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외교적으로 더욱 정교한 전략과 지혜가 요구된다. 중국이 남중국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사드 문제를 의도적으로 이용했다는 낙관론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사드 외교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방어용 사드 배치가 외교 무대에서 우리에게 걸림돌로 작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5. 신부 살해 IS 세계인의 이름으로 규탄한다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전사를 자처하는 무장 괴한이 그제 프랑스 소도시의 성당에 침입해 신부를 살해했다. 괴한들은 미사를 집전하고 있던 84세 노()사제를 무릎 꿇리고 목을 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2명의 괴한은 성당 뒷문으로 들어가 자크 아멜 주임 신부와 수녀 2명, 신도 2명을 인질로 잡았고, 경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신도 한 사람도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세계 도처에서 잇따라 벌어지고 있는 IS 테러는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것이 예사였다. 잦은 테러에 둔감해졌다고 그저 한 사람이 목숨을 잃은 사건으로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성당에 침입한 IS 세력의 신부 살해는 또 다른 종교 전쟁을 불러일으킬 도화선이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가톨릭의 역사가 깊은 유럽은 이번 사건으로 반(反)IS 연대를 더욱 공고히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사국인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당장 IS에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면서 “우리뿐 아니라 독일 등 다른 나라도 같은 처지에 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IS가 ‘십자군 동맹’으로 지칭하는 유럽 국가들이 테러에 겁을 먹기는커녕 더욱 굳게 결속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그런 점에서 IS는 테러로 잃은 것만 있을 뿐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좋다. 프랑스 이상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았을 교황청이 사실상의 종교전쟁으로 비화할 것을 우려해 절제된 성명을 낸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IS는 이번 테러가 유럽과 미주의 가톨릭과 기독교 국가의 국민뿐 아니라 종교를 불문하고 양식 있는 모든 세계인의 공분을 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아가 통제 불능 상태의 테러가 결국은 자신들의 종말을 재촉할 뿐이라는 사실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사건을 포함해 IS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상당수 테러는 철부지 추종자들의 소행이다. IS는 그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광신(狂信) 집단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이제 문명 세계로 복귀할 마지막 기회마저 사라지고 있음을 모르는가.

[동아일보]

6. ‘인격 학대’ 부장검사와 ‘갑질’ 금수저에 뿔난 사람 많다

대검찰청 감찰위원회는 두 달 전 목숨을 끊은 서울남부지검 김홍영 검사에게 폭언 및 폭행을 한 김대현 부장검사가 법무부와 남부지검에 근무한 2년 5개월 동안 검사들과 공익법무관, 직원들에게 인격을 모독하는 욕설과 행동을 17건이나 자행했다고 어제 밝혔다. 김 검사를 불러 술시중을 들게 했고 등이나 어깨를 여러 차례 때렸으며 결혼식장에서 술 마실 방을 구해오지 못하자 폭언한 것도 사실로 드러났다. 감찰위는 그에게 최고 수위 징계인 해임을 법무부에 청구하고 남부지검장에겐 검찰총장이 서면 경고하도록 했다. 

정병하 감찰본부장은 김 부장검사가 김 검사의 등이나 어깨를 여러 차례 때린 것은 ‘잘해 보라’는 경고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릇된 지도 방법이 문제이고 자기 행동이 상대방에게 큰 피해를 줄 것이라고 미처 깨닫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폭언이나 폭행이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려는 것으로 들린다. 유족은 물론이고 동료, 친구들이 이 발표를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김 검사의 유족은 김 부장검사를 형사고소할 것을 검토키로 했다.

김 부장검사의 난폭한 언행에 분노한 많은 직장인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자기 일처럼 동병상련의 공감을 표했다. 인성에 결함이 있는 직장 상사의 ‘인격 살인’에 가까운 언행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달 중순에는 경찰에서 부하 직원을 괴롭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한 경감이 파면됐다. 김 부장검사 같은 ‘결격 상사’를 걸러내지 못한다면 남부지검에서와 같은 일이 재발할 수밖에 없다. 강압적인 리더는 조직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존재라는 점을 최고경영자들이 새겨야 한다.

‘운전기사 갑질 매뉴얼’로 비난받은 현대비앤지스틸 정일선 사장은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최근 3년간 운전기사를 12명 바꾼 것으로 드러났다. 기사들은 평균 석 달간 법정근로시간보다 4시간 긴 평균 주 56시간 일했다. 숨 막히는 매뉴얼에 들볶이다 길이 막히면 욕설과 구타를 일삼는 사람 밑에서 오래 버티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정 사장은 현대가(家) 3세의 ‘금수저’로 높은 자리에 올랐다. 눈물 젖은 빵도 풍파도 겪지 않고 성장한 사람의 비뚤어진 품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마구 대하면 조직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결국 부메랑처럼 상처만 안기게 될 뿐이다.

7. 일자리 해외로 쫓아낸 수도권 규제 당장 수술해야

2009년 이후 5년 동안 수도권 규제 때문에 투자를 철회한 기업 중 공장을 지방으로 옮긴 기업은 9개인 반면 해외로 나간 기업은 28개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6일 개최한 ‘수도권 규제 세미나’에서 나온 내용이다. 이 기간 62개 기업이 공장 신·증설 투자 시기를 놓쳐 3조3329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고 일자리 1만2059개가 날아갔다. 1982년 도입한 수도권 규제가 기업과 일자리를 해외로 몰아내는 부작용만 드러낸 셈이다.

수도권정비계획법 국토기본법 등에 명시된 중복 규제로 한국은 기업 하기 힘든 나라로 낙인찍혔다.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무허가 공장이 난립하면서 환경오염이 되레 심해지는 예상치 못한 사태도 생기고 있다. 정부는 수도권을 옥죄면 지방 일자리가 늘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기업들이 공장입지를 중시하는 현실을 헤아리지 못한 탁상행정일 뿐이다.

박근혜 정부는 ‘수도권, 비수도권을 구분하지 않는 기능적 접근’을 규제 완화의 해법으로 내놓았다. 수도권만 골라 규제를 철폐하면 지방이 반대할 것이니 수혜지역의 티가 나지 않도록 하는 우회 전략인 셈이다. 규제 기요틴 과제 추진, 산업단지 인허가 규제 완화, 규제프리존 도입 추진이 모두 이런 기조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크게 실망스럽다. 최근 상황은 변죽만 울리는 규제 완화만으로는 일자리와 성장의 두 토끼를 모두 놓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 입증했다.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은 수도권 규제가 풀리면 지방경제가 손해를 볼 것이라고 우려한다. 지역 간 편차를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다. 조선 철강 자동차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은 항구 인근의 지방에 적합하므로 규제프리존 등 특화산업 선정 시 지원하는 것이 타당하다. 중앙의 인허가권을 지자체로 넘겨 지방을 달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도시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인 시대를 맞고 있다. 영국 프랑스 일본이 수도권 문호를 개방하며 기업 유치에 매진하는 흐름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은 뒷걸음만 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경기 양주)이 최근 야당 의원으로서 10년 만에 수도권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규제 완화를 추진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수도권 정책을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여야정이 머리를 맞대 공장 신증설 규제부터 완화하고 이에 따른 과실을 지방과 나누는 방안도 찾아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8. 탈북 여성 성매매 방치하면 한반도 미래가 없다

탈북(脫北) 여성의 상당수가 불법 티켓다방에서 성매매를 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본지의 어제 보도(16면)는 우리 사회의 탈북민 지원정책이 겉돌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들이 성매매라는 상황에까지 몰리는 것은 한국 입국 후 받는 취업교육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까닭이다.

지난달 현재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 수는 2만9543명으로 그중 70%가 넘는 2만896명이 여성이다. 이들 중 거의 90%에 가까운 여성이 중졸 이하의 학력에다 북한에서 무직 또는 일용직 근로자 같이 특별한 기술이 없는 비숙련 인력이다. 그러다 보니 식당이나 공장에서 일하며 월 150만원 이하의 낮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 절반에 달한다. 게다가 이들 중 많은 수는 탈북 때 생긴 빚을 갚거나 북한의 가족에게 송금을 해야 하는 처지여서 돈을 좀 더 벌 수 있는 성매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모든 탈북민에게 만족스러운 일자리를 찾아주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각종 탈북민 정착과 취업·창업 지원 프로그램도 존재한다. 하지만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미리 온 통일’이라 일컬어지는 탈북민 지원은 통일 한반도의 안정을 위한 장기적인 투자이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통일은 한순간에 일어날 수 있지만 남북한 주민의 완전한 통합은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통일된 지 30년이 다 돼가는 독일도 동·서독 주민 간의 화학적 통합이 완성됐다고 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탈북민들은 남북이 하나가 되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테스트 베드(시험공간)’다. 어떻게 해야 이들을 민주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시킬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한민족의 통합을 위한 저력이 된다. 예산에 한계가 있는 정부 차원을 넘어 관심을 갖는 민간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그들과 탈북민을 잘 연결시킬 수 있는 방법을 더욱 고민해야 한다. 탈북자 5명 중 1명이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 현실로는 한반도 미래가 암울하다.

[매일경제]

9. 신한은행 자율 출퇴근, 기업 전반으로 확산되길

신한은행이 재택 근무, 자율 출퇴근제 등을 도입해 25일부터 근무 형태를 혁신하기로 했다. 은행권에서 처음 도입하는 이런 근무 형태는 출퇴근 교통 체증에 따른 고충을 덜고 워킹맘의 일·가정 양립을 도운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시도다.

신한은행은 상품·디자인 개발 등 은행 전산망을 사용하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직원들에게 재택 근무를 허용하기로 했다. 전체 직원의 46%인 6500명이 그 대상이다. 또 자율 출퇴근제를 신청하면 하루 9시간 근무한다는 전제 아래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 강남과 용인 죽전, 서울역 부근 등 3곳에는 스마트워킹센터를 만들어 시간이나 복장에 제한받지 않고 생활패턴에 맞춰 편안하게 일하도록 했다. 자녀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출근해야 하는 맞벌이 부부, 틈틈이 공부하며 일하는 직원 등이 이런 유연한 근무제도를 이용해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자율 출퇴근제를 도입한 기업 비율이 미국은 81%, 유럽은 66%에 달하는 것도 직원들의 만족도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일본만 하더라도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이 이달 말부터 직원 66%를 대상으로 재택 근무를 확대시행하는 등 3대 대형 은행이 모두 재택 근무를 도입하기로 확정한 상태다. 이에 비해 국내 기업에서는 자율 출퇴근제 도입률이 고작 12.7%에 불과하다. 상사나 동료 눈치를 봐야 하는 보수적이고 경직된 기업문화 탓이 크다. 아무리 제도가 훌륭해도 여기저기 눈치 보느라 활용할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만큼 이런 보수적인 기업문화부터 타파해나가야 할 일이다. 

은행권 지점 통폐합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유휴인력을 해소하려는 방편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신한은행은 본인이 신청하는 경우에만 허용하는 근무제도이고 전체 근무시간에 변동이 없기 때문에 급여에도 영향이 없다고 강조한다.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이런 점을 잘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유연한 근무'가 '유연한 급여체계'와 병행하는 것이 옳은 만큼 경직적인 호봉제를 성과급제로 바꿔나가는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

10. 일본서 발생한 충격적 증오범죄, 남의 일 아니다

일본에서 20대 남성이 장애인 수용시설에 침입해 45명에게 칼부림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19명이 죽고 26명이 다쳤는데도 범인은 "장애인 따위는 사라져야 한다"며 반성하는 기미조차 없었다고 하니 끔찍하다. 전후 최악의 증오범죄라는 점에서 일본 사회가 큰 충격을 받았는데 우리도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 소득·계층 양극화 등 양국 간에 유사한 점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슬람국가(IS) 테러가 전 세계를 위협하는 가운데 주요 선진국마다 경기침체, 실업, 양극화 등에 따른 차별과 편견, 분열을 극복하는 문제가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은 증오의 뿌리를 본인이 속한 공동체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은 만큼 사회 통합이 테러의 근본 해결책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증오범죄는 사회 빈곤층이나 소외 계층이 평소 쌓아뒀던 억울함·분노·원망 등을 불특정 다수한테 무작위로 폭발시키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10월 충남 아산 30대 여성 납치·살해 사건, 지난 2월 인천국제공항 가짜 폭발물 설치 사건 등은 우리 사회에도 증오범죄가 본격 발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 사회는 왕따, 갑질, 폭언·폭행 등 분노가 일상화된 사회다. 장기 불황, 취업난, 대량 해고 등으로 인한 피해 심리와 적개심이 증오범죄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가뜩이나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사회통합 지표가 꼴찌다. 어려울 때 기댈 사람 하나 없을 만큼 사회관계망이 헐거워져 있다는 얘기다. 증오범죄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소외계층에 대한 복지 체계 재정비, 정신보건 정책 등을 보다 촘촘하게 다시 짜야 한다. 인권 교육 강화,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재무장, 기부 등 공동체 회복 노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번에 일본도 장애인 시설이 범죄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는데 국내에 우후죽순 생겨난 요양원, 장애시설, 복지시설 등도 마찬가지다. 시설 운영 실태, 방호 체계 등에 대한 일제 점검을 해볼 필요가 있다.


주요 신문칼럼


1.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국민메뉴가 된 함흥냉면

함흥냉면은 감자가 많이 나는 함경도 지방에서 유래한 음식이다. 감자녹말을 주원료로 해서 쫄깃하고 질긴 면을 만들어 매운 양념으로 비비고 가자미회 등을 양념으로 무쳐 고명으로 얹어 먹는 음식이다. 원래 이름은 냉면이 아니고 ‘농마(녹말 사투리) 국수’였다. 지금은 감자녹말 대신 고구마녹말을 쓰고 가자미 대신 홍어회 등을 고명으로 쓰는 집이 많다.


함흥냉면 마니아들은 그 질긴 면발에도 불구하고 절대 가위를 대지 않는다. 면발이 대접에서 젓가락을 거쳐 입속 너머까지 이어져야 제맛이란다. 매운 양념맛과 어우러지는 구수하고 뜨거운 육수가 함흥냉면의 동반자다.

함흥냉면 원조 동네로는 피란민들이 많이 살았던 서울 중구 오장동을 꼽을 수 있다. 1953년 이곳에 자리잡은 ‘흥남집’은 필자하고 동갑내기다. 고구마전분에 매운 홍어회 또는 간자미회를 쓴다. 비빔냉면은 매운 양념을 비벼서 내오나, 회냉면은 면에 양념을 하지 않고 매운 양념과 참기름, 설탕 등을 취향대로 더해 먹는다.

흥남 출신인 창업자의 손녀딸인 현재 주인에 얽힌 일화가 있다. 바로 모자상 화폐다. 모자상 화폐는 1962년 5월 16일 발행되었으나 화폐개혁으로 단 25일간 유통된 최단명 화폐다. 통상 화폐에는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 지폐에는 그야말로 ‘보통사람’인 한복 입은 여인과 어린 아들이 등장한다.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다. 그 여인은 당시 조폐공사에 다니다 결혼으로 퇴직한 뒤 조폐공사 도안실장이 덕수궁으로 나오라고 해서 사진을 찍었고 그것이 화폐도안으로 이어졌다. 이 모자가 바로 흥남집 여사장과 그 아들이다.

오장동에서는 흥남집과 함께 ‘오장동 함흥냉면’ 그리고 지금은 평택으로 이전한 ‘신창면옥’이 함흥냉면 트로이카로 오랫동안 이름을 날렸다. 다른 지역에서도 맛과 명성을 자랑하는 집들이 도처에 있다. 1967년 개업한 ‘영등포 함흥냉면’은 고명을 간자미로 하고 있다. 영등포 일대에서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명동 골목에 자리잡은 ‘명동 함흥면옥’도 오랜 단골들이 많은 집이다.


정통 함흥냉면은 아니나 특유의 불타는 매운맛을 자랑하는 냉면이 숭인동 ‘깃대봉 냉면’이다. 원래 창신동에 있다가 지금 자리로 옮겼는데 창신동 시절 깃대봉이 있는 집에서 장사를 해 그렇게 불린다. 매운 정도별로 매운 맛, 보통 맛, 덜 매운 맛, 안 매운 맛, 거의 안 매운 맛, 하얀 맛 등 6단계가 있다. 보통 맛도 보통 매운 게 아니니 신중히 주문해야 한다. 이북 피란민들이 많이 살았던 부산, 속초 등에도 역사가 오랜 이름난 집들이 적지 않다.

그렇게 전국 곳곳에 퍼져 있는 내공 있는 집들이 전통을 이어 가고, 새롭게 역사를 써내려 간 결과 함흥냉면은 이제 전국 음식이 되었다. 6·25 대전란 후 피란민들의 향수를 달래는 음식에서 출발했으나 특유의 매콤한 맛과 쫄깃한 식감이 미식가는 물론 일반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더 나아가 중독 현상까지 일으키면서 어느덧 한국인 대다수가 사랑하는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함흥냉면은 한민족 현대사의 작은 한 단면을 보여 주는 음식이 아닐까 한다.


2. [동아일보][2030 세상/우지희]식당 아줌마 ‘진심’ 밥상에 마음 훈훈

어떤 식당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메뉴판에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돈만 내면 남들처럼 똑같이 먹을 수 있는 요리 말고 식당 주인이 특별히 그 손님을 위해 만들어 주는 음식이 진짜라는 뜻이다. 붙임성 좋은 평소 성격 덕분인지 단골 가게 주인들의 너그러운 마음 씀씀이 덕분인지, 종종 식당에서 이런 ‘특별식’을 얻어먹곤 한다.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나온 홍게라면과 포장마차에서 나온 감자전이 그랬다. 두말할 것 없이 그 집의 어떤 대표 메뉴보다 맛있었다. 

최근 집 앞에 새로 가게를 낸 백반집이 있다. 하얀 간판에 명조체로 가게 이름 두 글자만 반듯하게 적어놓은 것이 마음에 들어 처음 들렀는데, 거기서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주인 아줌마께서 내 옆에 혼자 밥을 먹던 또 다른 남자 손님 테이블에만 자꾸 다른 반찬을 더 놓아 주시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온 뜨내기손님이라 이렇게 대하고 저 남자 손님은 단골이라 융숭한 대접을 한다고 봤지만 추가로 놓인 반찬들이 특별식이 아니어서 궁금해졌다. 

“저번에 보니 익은 김치를 더 잘 먹더라” 하시며 김치보시기를 하나 더 놓으시곤 “아차차, 멸치 조린 것도 있어” 하시며 절반이나 비운 밥공기 옆에 그걸 갖다 주시더니, 급기야 밥숟갈을 놓으려는데 “내 정신 좀 봐, 들기름 발라 새로 구운 김 준다는 게” 하시며 다 먹은 밥상에 결국 김을 내어 오셨다. 처음엔 조카나 아들쯤 되나 했는데 대화를 들어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아 도대체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가 싶어 자꾸만 눈길이 갔다. 

“이러시면 제가 죄송해서 못 와요 이제.” 남자 손님의 반응을 보니 점점 더 두 사람의 관계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그 남자분이 정확히 밥값만 지불하고 떠난 후 괜히 슬쩍 주인장에게 떼를 써 보았다. “저도 멸치조림 주시면 안 될까요?” 

주인아줌마는 빙긋이 웃으시며 반찬 그릇을 내미셨다. 곧이어 “좋아하는 반찬 있어요? 금방 되는 거면 해줄게” 하고 덧붙이셨다. 나 역시 식사를 거의 마쳐갈 즈음이라 정중히 사양했다. 그 대신 이 희한한 상황에 대해 더 여쭈어 보았다. 

주인아줌마는 평생을 집에서 살림만 하던 ‘솥뚜껑 운전사’였는데 최근에 기회가 닿아 생전 처음으로 장사라는 걸 하시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백반집을 열고 보니 장사라는 것이 만만치 않으셨단다. “음식 팔아 떼돈 번다는 이야기는 옛말”이라며 몸은 고되고 수지는 맞지 않아 후회도 많이 하셨다고 담담히 고백하셨다. 그러다가 당신 나름의 장사 철학을 세우셨는데 바로 ‘한 끼 잘 때우고 가는 식당’이었다고 한다. 

한 테이블이라도 손님을 더 받으려고 아등바등하다 보니 음식은 소홀해지고 위생도 문제가 생겨 걱정이 시작되었고, 그 와중에 ‘혼밥’하러(혼자 밥 먹으러) 오는 젊은 사람들이 마치 타국에 있는 당신의 아들처럼 짠한 마음이 드셨다고 했다. 그런 생각이 점점 깊어지자 얼마를 벌든 기쁘게 밥을 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누가 오든 ‘끼니를 잘 때웠다’고 말할 수 있는 식당을 만들겠노라 결심하신 것이다.

그러고 나선 수저는 꼭 끓는 물에 세 번 삶아서 마른 행주로 닦아 집에서 살림을 살 듯 가게를 정돈했고, 콩자반을 좋아하는 손님에겐 꼭 그것을 내어 드리는 고집을 부렸으며, 밥 같은 밥은 여기서 먹는 게 전부일 젊은이들에겐 대단한 요리는 아니지만 밑반찬 하나라도 더 해주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식당을 운영하자 자연스레 입소문이 나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생겼다. 하지만 굳이 다 손님으로 받지 않고 능력이 되는 만큼만 팔고 나머지 사람들은 돌려보내신다고 한다. 그래야 지금의 이 마음으로 오랫동안 장사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란다.

밥숟갈을 놓고 한참 동안 식당 주인아줌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타입의 특별식을 목격하며, 약간이나마 인생이 밝아진 느낌이 들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 한 끼를 잘 때울 수 있는 공간이 가까이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든든해졌다. 

주인아줌마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철학을 가지고 진심으로 대하면 스스로뿐만 아니라 상대도 행복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괜찮은 밥집이, 동네가, 사회가, 나라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꿈에 잠시나마 마음이 부풀었다.


3. [중앙일보][알베르토 몬디의 비정상의 눈] 한국영화의 숨은 매력…세계의 문을 두들겨라

지난 몇 년간 한국 문화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탈리아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 문화권에서 K팝·한국드라마 같은 한류 콘텐트를 소비·경험하는 사람은 한정적인 것 같다. 예를 들어 K팝을 좋아하는 사람은 주로 10대 청소년이거나 과거 동아시아 문화권의 콘텐트를 소비하던 사람들인 경우가 적지 않다. 한류 콘텐트는 매력적이지만 남녀노소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통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한류 콘텐트보다 한국 영화가 오히려 그런 잠재력이 더 있다고 생각한다. 이탈리아에선 1990년대부터 한국 영화가 인기였다. 그 어떤 한류스타보다 김기덕이나 박찬욱 같은 한국 감독이 더 유명하다. 나는 뭘 봐도 다 비슷한 고예산 할리우드 영화보다 신선하면서 특색 있고 수준 높은 한국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좋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한국 영화가 더 많이 제작될 수 있는 환경은 조금 부족해 보인다. 내가 본 문제점은 첫째, 영화관들이 관객수만 의식한 탓인지 인기 할리우드 영화 위주로 상영해 다양한 작품을 보기 힘들다. 특히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은 지역은 물론 서울에도 거의 없다. 둘째, 수준 높고 잘 찍은 영화라도 대중성이 약하면 성공하기 힘들다. 부천판타스틱영화제나 전주국제영화제 같은 데 가면 뛰어난 인디영화를 많이 접할 수 있지만 일반인들은 볼 기회가 거의 없다. 한국 영화가 세계적 콘텐트가 되려면 예술영화 상영관을 늘려 관객이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국제적으로도 예술영화를 좋아하는 유럽·남미를 겨냥해 적극적으로 한국 영화를 알리면 한류가 아직 강하지 않은 지역에서 한국 문화를 알릴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넷플릭스(Netflix) 같은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을 활용하면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한국의 신인 감독과 그 작품들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다. 기회가 되면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처럼 넷플릭스의 지원을 받아 작품을 제작할 수도 있겠다.

2003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선 한국 영화만 상영하는 ‘한국영화제(www.koreafilmfest.com)’가 처음 열려 올해로 13년째를 맞고 있다. 밀라노에서도 매주 한국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이 생겼다. 배우 문소리씨가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았다. 이렇듯 관심을 갖고 성원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많기 때문에 한국 영화의 미래는 밝다고 본다. 나도 팬으로서 계속 응원하고 싶다.


4. [동아일보][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영등포공원 담금솥과 맥주의 역사

일본 삿포로 도심엔 ‘삿포로 팩토리’가 있다. 1876년 세운 삿포로 맥주공장을 교외로 이전하고 1993년 공장 건물 일부와 굴뚝을 살려 생활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다. 흉물 같았던 공장 굴뚝은 삿포로를 상징하는 명물이 되었고 삿포로 시민과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1876년이면,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맥주가 들어온 해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맥주 마시는 사람이 늘어났고, 1933년 우리나라에도 맥주 회사가 생겼다. 그해 대일본맥주가 조선맥주를 세웠고, 기린맥주는 서울 영등포에 맥주공장을 짓고 소화기린맥주를 설립했다. 조선맥주는 하이트맥주로, 소화기린맥주는 동양맥주 오비맥주로 이어졌다. 

서울 영등포역 바로 옆 영등포공원은 오비맥주의 공장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 가면 커다란 담금솥이 있다. 오비맥주 공장에서 맥아와 홉을 끓이는 데 사용했던 대형 솥을 공원에 전시해 놓은 것이다. 1933년 솥을 만들어 1996년까지 사용했으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제조용기인 셈이다. 나사가 몇 개 빠지고 약간 찌그러지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오비맥주 영등포공장이 1997년 경기 이천으로 이전하자 서울시는 이곳을 공원으로 조성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 맥주공장의 터라고 하기엔 썰렁하기 짝이 없다. 맥주공장의 다른 흔적들은 온데간데없고 담금솥 하나만 공원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열차를 타고 영등포를 지날 때 늘 차창 밖으로 스쳐갔던 맥주공장의 풍경. 우리 일상의 음식문화 가운데 하나로 굳건히 자리 잡은 맥주. 그 역사를 영등포 공장 터에서 제대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공장 건물도 몇 개 남겨 놓고, 여기에 기념관과 박물관도 꾸미고 이런저런 맥주 체험공간도 마련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맥주공장의 굴뚝 한두 개도 살려 놓았다면, 지금 멋진 풍경이 되었을 텐데. 1997년 이천으로 공장을 옮길 때 공장의 굴뚝을 남겨 놓으려 했지만 안전상의 문제로 철거했다고 한다. 안전도 안전이지만 사실은 우리의 인식 부족, 의지 부족이 더 큰 문제였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흔적을 너무 쉽게 없애고 훼손해 왔다. 영등포공원에서 만나는 담금솥 하나로는 우리 맥주의 역사를 제대로 체감할 수 없다. 담금솥은 그래서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 삿포로 팩토리가 부러운 까닭이다.


5. [매일신문][목요일의 생각] 알파고, 포켓몬 고, 그리고?

올 3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로 전 세계의 관심이 우리나라로 집중됐었다. 인간과 인공지능(AI) 간의 바둑 대결은 단순한 바둑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바꿔놓을 미래를 미리 경험하게 했다는 측면에서 큰 화두를 던졌다. 두려움이 낙관을 압도했지만, 덕분에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깨닫게 하는 등 얼마를 줘도 아깝지 않을 ‘미래에 대한 비전’을 얻었던 것이다.

또 이 세기의 대국은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간의 위기인가 기회인가, 포스트 휴먼의 정의는 무엇인가 등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엄청나게 뿌렸다. 우리 정부는 1조원이 넘는 돈을 AI 연구에 투자한다는 내용이 골자인 AI 육성책까지 내놓기도 했다.

알파’고’가 떠나고 4개월 뒤, 또 다른 ‘고’가 나타났다. 이번엔 스마트폰 게임인 ‘포켓몬 고’다. 포케몬 고는 증강현실기술(AR)을 이용해 거리 곳곳에 나타난 작은 몬스터를 스마트폰 화면에서 포획해 훈련시키고 서로 싸움도 벌이는 게임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서비스 지역이 아니지만 속초, 울릉도 등의 일부 지역에선 몬스터 포획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낸 사람들이 너나없이 속초 등지로 몰려들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한 지인은 자녀들과 함께 올여름 휴가지를 속초로 정했단다. 아이들이 스마트폰 게임인 ‘포켓몬 고’를 해야 한다고 하도 졸라대서 온 가족이 함께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속초행 여행 상품이 최근 일주일 새 2배 이상 판매율을 기록하자, 속초시는 아예 ‘포케몬 고 전략`지원사령부’를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 사령부는 게임 트레이너와 관광객에게 필요한 정보 및 편의를 제공하고, 게임으로 인한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잘 만든 게임 하나가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갖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게임 강국임을 자처하는 우리는 왜 이런 게임을 만들지 못했느냐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린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충분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매번 우리는 뒷북만 친다. 한두 번이 아닌 것 같다. 왜 그럴까?

우리만의 강점을 살려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하고, 외국 흐름을 따라가는 경향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한 저명한 과학잡지가 떠오른다. 세계적 과학저널 네이처의 얘기다. 네이처 6월호에서는 “한국은 연구의 필요성을 가슴으로 깨달으려 하기보다는 돈으로 승부를 보려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 경직된 문화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포케몬 고의 열풍으로 한국 토종 캐릭터 뽀로로가 등장하는 ‘뽀로로 고’(가칭)의 출시 얘기가 들린다. 뽀로로 고 제작사 측은 “뽀로로 고는 재미 중심의 포케몬 고와 다르게 교육적인 요소에 집중할 것”이라며 차별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내용이 어찌 됐든 포케몬 고의 아류작일 뿐이다. 다음번 ‘고’ 시리즈에서는 한국만의, 한국에서 스타트하는 ‘고’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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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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