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1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국민 상대로 전기요금 재미보려는 건가
현행 주택용 전기요금 체계에 대한 정부의 방어 의지가 대단하다. 전력 사용량에 따라 6단계의 누진제가 적용됨으로써 요즘 같은 찜통더위에 에어컨을 자주 켰다가는 요금폭탄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개선안을 내놓을 기미조차 안 보인다. 각자 알아서 참으라는 투다. 산업부 채희봉 에너지자원실장의 “현행 누진제를 개편하지 않을 방침”이라는 언급에서는 단호한 의지마저 엿보인다. 누진제로 모든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라는 게 그 이유다.
지금의 주택용 전기요금 자체가 원가 이하로 공급되고 있다는 것이 산업부의 설명이다. 따라서 제도를 개편하게 된다면 오히려 서민층의 전기료 부담이 늘어나고 부유층에 대해서는 감세 효과가 따르게 된다고 주장한다.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산업·일반용은 제외해 놓고 주택용에만 적용되는 누진제가 얼마나 경제적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전력요금 원가가 투명하게 공개된 것도 아니다.
한전의 지난해 8월 주택용 전력판매 수입이 8850억원으로, 다른 달의 1.5배에 이르렀다는 점을 하나의 단서로 삼을 필요가 있다. 무더위로 인해 누진제 적용을 받는 주택용 전기 사용량이 그만큼 늘어난 결과다. 올해는 이러한 차이가 더 벌어질 것이 틀림없다. 그야말로 요금폭탄인 셈이다. 한전에 피해소송을 진행 중인 소비자들은 실질 누진율이 41.6배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누진제가 40여년 전부터 시행돼 온 구시대 제도라는 사실부터 솔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더구나 국제유가가 오르면 전기요금도 따라 올랐으면서 유가가 내린 마당에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은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요금수입 재미를 보려는 의도라고밖에 간주하기 어렵다. 한전이 지난해 영업이익 11조 3400억원, 당기순이익 13조 3100억원이라는 최대 흑자를 내고도 요금을 내리지 않는다면 잘못이다.
현 새누리당 의원인 윤상직 전 산업부 장관도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필요성을 인정했고, 주형환 현 장관도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누진제를 개편할 수 있다는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이미 소비자들의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데다 여야 정당에서도 개편안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가 언제까지 개편을 미룰 것인지 지켜보고자 한다.
2. 보신탕 논란, 사회적 공론에 부쳐보자
말복을 앞두고 ‘개고기 식용’ 논란이 뜨겁다. 엉뚱하게도 리우올림픽 양궁 여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기보배 선수가 중심에 선 모양새가 됐다. 기 선수가 과거 보신탕을 먹은 사실을 두고 배우 최여진 씨의 어머니 정모 씨가 인스타그램에 ‘대가리에 똥 찬 X’ 등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부은 것이 발단이다. 파문이 커지자 정 씨는 글을 삭제하고 공개 사과했지만 이를 계기로 “개고기를 먹는 게 과연 잘못이냐”는 원초적 논쟁이 다시 불거진 것이다.
개고기 식용 문제는 오랫동안 찬반이 맞서 온 해묵은 주제다. 동물보호 단체들은 반려견 1000만 마리 시대에 동물복지 차원에서라도 식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개고기 식용을 ‘미개인’이나 ‘야만’으로 취급하는 국제사회의 부정적 기류도 가세하고 있다. 이탈리아 여성 의원의 ‘2018년 평창올림픽 보이콧’ 주장이나 영국 의회의 ‘한국 개고기 거래금지 촉구’ 청원에 10만명 이상이 서명한 사실이 그것이다. 개고기 식용금지를 법제화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반론도 만만치는 않다. 보신탕이 조상 때부터 즐겨온 ‘전통 음식’인데다 소나 돼지고기는 먹으면서 개고기만 금지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국제사회의 지탄 역시 문화 차이를 들어 남의 나라 음식문화에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맞선다. ‘식용견’과 ‘반려견’은 차이가 있는데다 보신탕 산업에 100만명 이상이 종사하는 현실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도 나온다. 위생적인 관리를 위해 소, 돼지처럼 개 도살과 유통판매도 양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상 개고기는 합법도 불법도 아니다. 개가 가축의 도살 및 식육의 유통 등을 정하고 있는 축산물위생관리법에 ‘가축’으로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개 식용을 합법화하면 동물보호단체의 반발과 국제사회의 지탄이 클 것이라는 점을 우려한다. 반대로 법으로 금지하면 밀도살 행위가 성하고 종사자들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어느 일방의 편을 들기가 부담스럽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합법도 불법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개고기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공론에 부쳐보자.
[서울신문]
3. 부산청장 손도 안 댄 ‘학교경찰 성추문’ 징계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로 끝났다. 지난 6월 부산 스쿨폴리스(학교 전담 경찰관) 성관계 사건은 큰 충격이었다. 학생들을 살피라고 학교에 투입된 경찰관들이 여고생과 성관계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던 데다 경찰의 조직적 은폐 의혹까지 겹쳐 기가 막혔다. 그런 경악할 사건이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이 어물쩍 마무리됐다. 사건을 보고받고도 덮었다는 의혹을 받는 이상식 부산지방경찰청장 등 고위 간부 6명은 서면 경고만 받았다. 인사고과에 벌점을 받긴 하지만 1년만 지나면 소멸된다. 세상에 이런 낯 뜨거운 면죄부 잔치가 또 없다.
입에 담기 민망한 사건은 전직 경찰 간부가 페이스북에 고발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묻힐 뻔했다. 부산경찰청은 사건이 폭로되기 한 달 전 이미 아동보호기관에서 관련 사실을 전달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음주운전으로만 걸려도 윗선까지 즉각 계통을 밟아 보고되는 것이 경찰 조직의 생리다. 소문날까 봐 쉬쉬한 정황이 누가 봐도 뻔했다. 악화된 여론에 떠밀려 경찰이 특별조사단을 꾸렸을 때부터 끼리끼리 면죄부는 사실상 예견됐다. 경찰의 뒷북 ‘셀프 감찰’에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겼다는 걱정이 좀 많았나.
강신명 경찰청장을 비롯해 대한민국 경찰 수뇌부들의 의식 수준이 궁금해진다. 명색이 학교 경찰관들이 여고생을 농락한 사건을 과연 어느 정도 수위로 보고 있는지 대답을 듣고 싶다. 단순 교통사고나 소매치기쯤으로 생각하지 않고서야 국민의 눈이 무서워서라도 이런 솜방망이 처벌로 뭉갤 수는 없다고 본다. 일차적 책임자인 이 부산청장도 경찰 최고 간부의 명예를 누릴 자격이 없다. 은폐 의혹도 그렇거니와 지역 치안을 총괄하는 책무를 무겁게 인식한다면 누가 말려도 스스로 합당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옳다. 불리한 일에는 면죄부를 챙기겠다면 자신이 누리고 행사하는 명예와 권한을 먼저 반납해야 한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한숨이 들린다. 수뇌부들의 어물쩍 보신주의가 뿌리 깊어서야 경찰 조직의 기강을 누가 무슨 수로 세울 수 있을지 걱정스럽고 한심스럽다. 민중의 지팡이로서 경찰 조직 성패의 관건은 첫째도 둘째도 추상같은 기강이다. 강 청장은 열흘쯤 뒤면 임기를 ‘무사히’ 채우고 떠난다. 민생 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대다수 경찰의 사기와 위상을 동반 추락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4. 당·청 관계 재정립에 이정현號 성패 달렸다
새누리당의 이정현 대표 체제가 공식 출범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히는 이 대표를 비롯해 총선 공천 과정에서 ‘진박(진정한 친박) 감별사’ 별칭을 얻었던 조원진 최고위원, 충청권 대표 친박 이장우 최고위원 등 새 지도부를 친박계 인사들이 장악함에 따라 일각에선 ‘도로 친박당’이란 비판도 나온다. 이 대표는 그제 수락 연설을 통해 “지금 이 순간부터 새누리당에는 친박, 비박, 그리고 어떤 계파도 존재할 수 없음을 선언한다”고 했지만 강력한 솔선수범이 없다면 공허한 말장난에 그치고 말 것이다.
사실 이번 당 대표 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의 고질적 계파 갈등은 극명하게 드러났다. 비박계는 단일 후보를 만들어 가며 친박계의 총선 패배 책임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총선 참패 후 외부 인사들을 영입해 구성한 혁신비상대책위원회가 계파 해체를 공식 선언했지만 오히려 계파 실력자들이 세몰이 등을 통해 계파 갈등을 조장해 온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파국·분당도 불사할 듯 감정적 대결로 치달았던 두 계파의 누적된 앙금을 하루속히 걷어 내는 것이 이정현호(號)의 최대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친박계 일색의 새 지도부가 과연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새누리당은 헌정 사상 최초의 호남 출신 보수 여당 대표 선출을 ‘외연 확대’로 평가하지만 오히려 친박계 일색으로 당이 오그라들었다는 비판도 엄존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실 ‘도로 친박당’이라는 다소 비아냥 섞인 표현에는 과거 친박 체제의 구태를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겨 있다. 당이 청와대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비정상적인 당·청 관계의 부활도 핵심적인 우려 사항 가운데 하나다.
이 대표는 청와대 홍보수석이던 2013년 박 대통령에 대한 세간의 ‘불통’ 지적에 “국민 전체에 더 큰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것을 방해하고 욕하는데 그것도 불통이라면 자랑스러운 불통”이라고 했을 만큼 박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확신하고 있다. 취임 첫날인 어제는 또 “대통령의 남은 임기가 굉장히 긴 기간”이라면서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가와 국민, 민생, 경제, 안보를 챙기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물론 박 대통령의 성공적 직무 완수는 국가적 차원에서나 국민을 위해서나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 대표는 이제 박 대통령과의 ‘특수관계’를 의도적으로라도 잊어야 한다. 이 대표가 인정할지 모르지만 많은 국민이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를 비롯해 박 대통령의 소통 부재 리더십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임기 말 집권 여당의 대표는 청와대와 정부를 이끌며 국민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수평적 당·청 관계 수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에게 민심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을 넘어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노”를 외쳐야 한다. 오늘 박 대통령과의 오찬 회동을 그 시험대로 삼기 바란다.
5. 일자리 창출 못하면 ‘400조 예산’ 의미 없을 것
내년도 정부 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 각 부처가 요구한 내년 예산은 400조원에서 1조 9000억원이 모자라는 398조 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조선·해운 등의 구조조정 및 실업대책, 양극화 해소를 위한 긴급 복지 예산 등 재정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 최종 정부안은 4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올 정부 예산이 386조 4000억원이니 각 부처가 요구한 예산은 11조 7000억원 늘어난 셈이다. 현재 국회 심의 중인 추가경정예산 11조원을 반영하지 않은 올 예산 대비 증가율은 3% 정도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복지 분야와 군인들의 복지 향상을 위한 국방 예산이 각각 5.3%씩 증가했다. 누리과정 예산 등 교육부문과 창조경제를 뒷받침하는 연구개발(R&D) 예산은 3%가량 늘리겠다고 한다.
그러나 도로나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은 15.4%, 외교통일 분야 예산은 경색된 남북 관계를 반영해 5.5%나 줄었다. 내년도 예산의 특징은 재정 건전성을 고려한 점이 눈에 띈다. 최근 몇 년 동안 정부 부처가 요구한 예산 증가율은 연평균 6%에 육박했다. 아울러 정부 각 부처가 새로운 사업보다는 현상 유지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도 반영됐다. 이는 SOC 사업예산의 축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복지 분야와 국방 분야 예산의 증가는 우리나라가 직면한 현안이라는 점에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
내년도 예산에서 가장 역점을 둬야 할 분야는 누가 뭐래도 복지 분야, 이 가운데서도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 창출은 비단 청년들에 국한된 문제라기보다는 국민 모두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생존의 문제다. 이는 또한 양극화 해소와도 맞닿아 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 정책이 주로 인력 양성에 맞춰져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일할 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교육 훈련을 받는다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고용 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을 육성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회 통과가 더욱 어려워진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통과시키는 게 중요하다. 정부, 여당과 야당은 양보할 건 양보하면서 협치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출산장려금 확대 등 재정 지출 외에 안심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하기 전에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책이 중복되고 미흡한 부분이 없는지 예산안을 세밀하게 검토하기 바란다.
[동아일보]
6. 더민주 문재인, 사드 배치 현실화 인정하는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와 관련해 8일 트위터에 “배치가 ‘현실화’하더라도 중국과의 관계 악화는 막아야 한다”고 했다. 측근 김경수 의원은 “외교적 노력을 외면하는 정부를 비판한 데 무게중심이 가 있다”고 했지만 평소 사드 반대를 표명했던 문 전 대표가 이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언급을 한 것은 이례적이다.
문 전 대표는 사드 문제가 불거진 2014년 이후 줄곧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의 대가 차원에서 미국 방침에 떠밀려 가는 것” “주권 국가라 말하기에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라며 반대했다. 입지(立地) 발표 수 시간 전인 13일엔 “정부가 본말 전도, 일방 결정, 졸속 처리 3대 잘못을 했다”며 “득보다 실이 많은 사드 배치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거듭 반대했다. 더민주당의 최대 지분을 가진 그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이후 당론을 정하지 않겠다며 전략적 모호함을 유지하던 더민주당 내에서 강한 반대 목소리가 잇달아 터져 나왔다.
천안함 폭침 때 5년 만에 북한 소행을 인정한 문 전 대표가 사드와 관련해선 한 달여 만에 사드 배치 현실화를 애매하게나마 언급한 것이 안보와 국익에 대한 성찰에서 나온 것이라면 다행이다. 2012년 대선에서 그의 패인 중 하나가 대형 안보 이슈마다 친노의 친북(親北) 이미지 각인 때문이라는 점을 본인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왜 사드 배치에 대한 견해를 바꿨는지 이렇다 저렇다 할 설명이 없어 여전히 의구심은 남는다. 국민 생존이 걸린 안보 문제에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언행을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맹목적인 반대에서 슬며시 말을 바꾸는 자세로는 지켜보는 국민만 혼란스러울 뿐이다.
문 전 대표는 별 성과 없이 귀국한 더민주당 초선 의원 6명에 대해서도 “(이들을 비판한 정부가) 한심하다”고 오히려 편들었다. 이들의 중국 체류 기간 중 중국의 관영 언론들은 한국 정부를 조롱하고 사드 반대 논리를 확산하는 데 6명을 이용했다. 관영 환추시보는 “의원들이 정부를 의식해 위축이 돼 제대로 의견 표명을 못 했다”며 한국 정부를 걸고넘어졌다.
문 전 대표가 진정으로 사드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면 애매한 수사로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라 그 이유를 국민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옳다. 아직도 사드에 반대한다면 대선 출마 시 공약으로 내세울 뜻을 확실하게 밝혀라. 그래야 국민들이 군통수권을 맡길 만한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7. 임종룡의 대우조선 감독 부실, ‘서별관 청문회’로 규명하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어제 정례 브리핑에서 검찰 수사 등에도 불구하고 대우조선 살리기를 계속할 뜻을 밝혔다. 대우조선 고재호 전 사장이 5조4000억 원 규모의 회계 부정을 지시하고 현 경영진이 1200억 원대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혐의가 최근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그럼에도 금융위는 대우조선 파산 때 경제에 미치는 충격, 조선업에 미치는 영향, 채권보전 가능성 등을 고려해 정상화 추진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임 위원장의 발언은 기업 비리를 처벌하는 것과 기업 정상화는 분리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우조선의 비리가 과거 경영진 시절에만 저질러졌고 현 경영진은 이를 수습하는 ‘선한 관리자’라는 전제가 성립돼야 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나 정성립 사장은 과거의 부실을 털어내겠다고 공언해 작년 말 4조2000억 원의 국민 혈세를 지원받고도 올 초 회계사기를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정 사장이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회사 정상화를 지휘할 수 있을지,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대우조선을 세금까지 쏟아부어 살려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대우조선의 대주주인 KDB산업은행과 산은을 감독하는 금융위가 현 경영진의 회계 부정을 알고도 묵인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는 판이다.
현 경영진 수사가 대우조선의 수주에 차질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정부에서 나온다지만 그렇다고 비리를 그대로 묻어둘 수는 없다. 정부-국책은행-자회사로 이어지는 카르텔을 보호하려는 방어 논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대우조선을 워크아웃 대상인 C등급이나 법정관리 대상인 D등급이 아닌 정상 기업으로 분류한 것에 대해 임 위원장은 “이미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어서”라고 답했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한 특혜 금융을 부실기업에 집어넣는 방식을 강한 구조조정이라고 봐줄 수는 없다.
대우조선에 대한 금융위의 감독 부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도 ‘청와대 서별관회의’ 청문회를 열 필요가 있다. 추경자금 11조 원의 17%인 1조9000억 원이 조선업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대우조선에 대한 의혹이 커지는 상황에 무조건 돈만 집어넣을 수는 없다. “민생만큼은 야당 시각에서 접근하겠다”고 한 이정현 새누리당 신임 대표가 앞장서 서별관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
[중앙일보]
8. 매년 바뀌는 미래 신성장동력 프로젝트
정부가 미래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9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10일 열린 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 선정된 이번 프로젝트에선 인공지능(AI)과 가상·증강현실(VR·AR) 등 최근 관심이 높아진 기술이 포함됐으며, 10년 안에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도 제시됐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세계적 트렌드와 국정철학을 반영해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할 과학계에선 비판적 시각이 우세하다. 미래 신성장동력 사업이 수시로 바뀐다는 게 가장 큰 불만이다. 실제로 이번 발표는 박근혜 정부 들어 세 번째다. 정부 미래 전략이 미래 사회에 대한 큰 그림이나 중장기적 관점이 아니라 매년 그때그때 유행하는 기술 등을 나열해 전시성 행정에 치우치고 있다는 게 과학계의 지적이다.
또 과거 이명박 정부가 신성장동력으로 추진했던 녹색성장 중심의 각종 프로젝트는 정권이 바뀌면서 시들해져 버렸다. 10년 앞을 내다보고 추진해야 할 신성장동력이 매년 유행에 따라 바뀌는 것도 문제지만 정권이 바뀌면 과거 정권 사업은 연구비가 끊기고 실체가 모호해져 기술 축적이 안 된다는 것도 고질병으로 지목된다. 이렇게 미래산업 전략이 유행 따라 바뀌는 바람에 국내 과학 연구 풍토 역시 단기적으로 끝낼 수 있는 ‘번트’ 수준에서만 맴돈다는 게 과학계 인사들의 자체 평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국경제보고서’에서도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비가 세계 1위이고, 절대금액에서도 6위에 달하지만 R&D 생산성은 미국의 3분의 1 수준으로 효율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 주도의 창조경제에 대해서도 정부가 특정 산업을 정해서 장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그런 일은 시장을 볼 줄 아는 기업과 산업에 맡기라고 조언했다. 정부는 AI·AR 등 개별 기술 확보가 아니라 5~10년 후 우리 사회가 도달해야 할 기술 수준 등 큰 그림을 제시하고 낮은 R&D 투자효율을 높일 혁신안을 내놔야 한다는 과학계의 제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매일경제]
9. 재정건전성 유지 법보다 정부 실천의지에 달렸다
정부가 10일부터 입법예고한 재정건전화법을 보면 재정의 중장기 안전성을 도모하겠다는 뜻을 일단 읽을 수 있다. 여태까지는 말로만 외쳐왔다면 이제부턴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니 차원을 달리하는 건 분명하다. 법에서는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45%,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3% 수준을 각각 넘지 않도록 관리목표를 설정했다. 재정투입이 필요한 법안을 제출할 때는 재원조달 방법을 의무화하는 페이고(pay-go) 원칙을 적용토록 했다. 설정한 관리목표는 5년마다 재검토하고 장기재정 전망도 수립하도록 했다.
국가 재정을 둘러싼 여건은 갈수록 악화 일로를 걸을 게 뻔하다. 구조적인 저성장 추세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재정총량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나라 곳간을 채우기 위해 하염없이 빚을 늘려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당장 정부와 새누리당이 검토에 들어간 내년도 예산만 봐도 올해보다 3~4% 늘어나 4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렇게 규모는 커져도 복지 등 의무지출 때문에 경기 대응에 긴요하게 쓸 돈이 넉넉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정부 지출의 성장기여도는 2014년 0.3%포인트, 2015년 0.8%포인트 등으로 빠르게 높아지는데 증세는 않기로 해 세원 확충 방안은 없으니 옴짝달싹 못 할 수밖에 없다.
재정건전성 악화를 얘기하며 선거 때마다 포퓰리즘성 퍼주기 공약을 쏟아내 재정을 축낸 정치권만 탓할 게 아니다. 정부가 먼저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급조한 부양책으로 경기를 끌어올리려는 단기 대책에 기댔던 점을 준열하게 반성해야 한다. 국가부채비율 수치에만 연연해 마른 수건 짜듯 재정지출만 줄여놓아 꼭 집행해야 할 복지 지원에 차질을 빚는다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역행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져보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 자체의 성장 활력을 회복시켜 세수를 늘리는 길이 더 근본적인 재정건전성 제고 방안일 것이다. 여하튼 다음달 국회에 제출될 재정건전화법이 재정건전성을 지키려는 정부의 강한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그렇게 해서 우리 세대가 만든 빚을 다음 세대에 그나마 덜 떠넘기게 되기를 기대한다.
10. 언제까지 `기업이 농업하면 안된다`고 할 건가
LG그룹이 새만금 산업단지에 대규모 스마트팜(Smart farm)을 조성할 계획을 발표했으나 농민단체들이 집단 반발하면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사업을 주도한 LG CNS 측은 주민들을 설득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대기업의 농업 진출 반대'에 가로막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LG CNS가 해외 투자자금 3800억원을 유치해 설립하려는 76ha 규모의 '스마트 바이오 단지'는 농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첨단 농장이다. 재래식 농업에서 벗어나 선진국형 창조농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농민들은 이를 외면한 채 반발만 하고 있으니 실로 답답하다.
LG 스마트팜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은 동부팜한농의 유리온실 사업 무산을 연상시킨다. 동부팜한농은 2012년 말 경기도 화성에 대형 유리온실을 짓고 수출용 토마토를 생산하려 했지만 농민들의 반대로 사업을 접어야 했다. LG 측은 해외 전문 재배사가 생산에 참여하고 생산품을 전량 수출한다는 방침을 분명히했지만 농민들은 "대기업이 시장을 잠식해 생존권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기업형 농업, 스마트 농업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네덜란드는 스마트팜으로 농업 2위 국가가 됐고 미국의 몬산토, 중국의 신젠타 등 매출이 10조원이 넘는 종자기업들이 출현했다. 이런 마당에 달콤한 농업지원금에 안주하며 영세하고 낙후된 농업을 지속하겠다는 농민들의 인식은 안일하기 그지없다.
농가의 낮은 생산성 탓에 젊은 층이 농업을 외면하면서 지난해 농업종사자의 평균 연령은 63.7세로 상향됐다. 일본도 농업인구 고령화를 극복하기 위해 로봇 기술 등을 활용하는 스마트 농업을 추진 중인데 우리도 첨단화가 시급하다.
농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키우려면 기업 투자 없이는 불가능하다. 농민들의 반발에 밀려 매번 농업을 업그레이드할 기회를 잃는다면 대한민국 농업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동부팜한농의 유리온실에 이어 LG 새만금 스마트팜마저 무산된다면 어떤 기업이 농업에 투자하겠다고 나서겠는가.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민들의 눈치만 볼 게 아니라 한국이 스마트팜이라는 대세에 편승할 수 있도록 농민단체들을 설득해야 한다. 또 농민들에게 휘둘리면 한국 농업은 후퇴밖에 없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경제]영화 ‘비거 스플래쉬’, 이 죽일 놈의 `욕망`
눈부시고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사랑을 나누는 남녀. 그 어떤 구애도 받지 않고 오로지 둘만의 사랑이 온전히 느껴지는 도입부. 영화 ‘비거 스플래쉬’는 그렇게 '밝게' 시작된다. 뙤약볕마저 이들의 사랑을 녹일 수 없을 것만 같은 기운이 감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 마리안은 목소리에 무리가 간 상태다. 목소리를 잃고 그로 인해 일도 잠시간 중단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남자친구 폴과 함께하는 시간은 마냥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도 잠시. 마리안의 옛 연인이자 음반 프로듀서 해리가 그의 딸 페넬로페를 데리고 등장하면서 평온함과 달콤한 행복의 순간은 금세 깨어지고 만다.
반가운 사람이 찾아왔다면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만, 마리안 커플에게 있어 해리와 그의 딸은 불청객과 다름 없다. 한때 친밀한 관계이기도 했지만, 마리안과 폴, 그리고 해리는 '복잡한' 관계, 즉 얽히고 설킨 관계에 놓인 인물들이다. 물론, 해리와 그의 딸 사이에도 미스터리한 부분들이 있다. 도입부와는 달리, 평온을 깨뜨리는 불청객으로 인해 영화의 분위기는 갑작스레 변한다.
물론 이 분위기에는 수다스럽고 부산한 해리의 역할이 크지만, 왠지 모르게 네 명의 인물들 내면 기저에는 불안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정도는 다르지만, 불편한 관계 위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불안함과 서로를 탐하려는 욕망이 네 명의 인물들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그 욕망이 '언제' 겉으로 드러날지에 대한 궁금증과 그로 인한 서스펜스가 ‘비거 스플래쉬’가 지닌 재미 요소다.
인간의 욕망은 타인과 함께일 때 진가를 발휘한다. 비교의 대상이 생김으로써 질투가 유발되고, 타인이 있기에 사랑이 싹튼다. 이미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 할지라도, 관계는 어떠한 상황과 시간 속에 놓이는가에 따라 충분히 변할 수 있다. 그만큼 관계는 복잡하며 쉽사리 변할 수 있다. 관계의 핵심이라 볼 수 있는 욕망은, 굉장히 충동적이며 따라서 '가벼운' 것일 수 있다. 욕망을 억누름으로써 관계의 도리를 이어나가는 것이 인간이라지만, 욕망이 앞설 때, 즉 이성보다 행동이 앞설 경우 벌어지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대개의 경우가 그러하듯, ‘비거 스플래쉬’에서도 욕망이 행동으로 빠르게 변질된 대가로 인물들은 수렁에 빠지고 만다. 황홀경으로부터 시작된 풍경은 삽시간에 진흙탕으로 변하고 만다. ‘비거 스플래쉬’에는 온갖 가벼운 것들이 등장한다. 그 가벼운 것들이란, 결국 인간의 욕망을 뜻한다. 이 욕망이 충동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때 어떠한 참혹한 결말로 이어지는지. 영화는 이 점을 낱낱이 보여준다. 솔직해서 발가벗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인물들의 노출 신들로 인해 오히려 그 기분이 담담하게 받아들여지는 묘한 감정 변화에 휩싸이기도 했다. 위트 있는 풍자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2. [매일신문][목요일의 생각] ‘삼시세끼’ 감상법
요즘 한 케이블 TV의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인간이 발 딛고 살아가는 이유는 먹기 위해서다’는 명제를 입증하듯 한 끼 밥을 위한 네 남자의 활약이 펼쳐진다.
‘대본도 어떤 설정도 없다’는 나영석 PD의 연출법도 우리를 TV에 붙잡아 두는 요소다. 약간의 노동과 부식거리를 교환하며 밥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때론 진지하게 그려낸다.
세끼의 공간이 되는 집 구조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잘 먹자’는 프로인데 요리를 위한 집안 구조는 최악이라는 점이다. 밥은 마당에서 짓고, 설거지는 부엌 앞 수돗가에서 하며, 요리는 대청마루에서 하는 식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세끼’ 집안의 구조는 범죄(?) 수준의 동선이다. 한 끼를 위해 주부들은 마당, 수돗가, 대청, 텃밭을 끊임없이 왕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레인지에 3분만 돌리면 요리가 튀어나오고 반경 2, 3m 안에 모든 조리시스템이 갖춰진 요즘 세상에선 딴 나라의 일처럼 느껴진다.
요즘엔 ‘새벽밥’이라는 단어에 감흥이나 감동이 별로 없다. 입식(立式) 부엌이 드물던 20, 30년 전 우리 어머니들이 한 끼 식사를 위해 새벽부터 온 집안을 돌아다녀야 했던 과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류는 편안함에 빠져들며 노동의 가치나 수고의 소중함 같은 건 점차 퇴색됐다.
우리를 게으름에 길들이게 한 문명의 이기(利器)는 또 있다. TV 리모컨이다. 옛날의 TV는 모두 사람의 손이 닿아야 작동했다. 켤 때 온`오프 스위치를 누르고, 로터리 채널을 돌려야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었으며 콘트라스트나 밝기 같은 미세 조정도 모두 손으로 직접 해야 했다. 바람에 안테나가 흔들려 방향이 바뀌면 지붕이나 담장으로 올라가 방향을 맞추느라 애쓰는 것도 흔한 풍경이었다.
소파에 기댄 채 리모컨 하나로 수백 개의 채널을 손끝으로 불러내는 세상에 30년 전 TV 시청을 위한 수고담은 먼 나라 얘기로 들린다.
이렇게 우리가 편리에 길들여지는 동안 많은 걱정과 재앙도 같이 따라왔다. 비만과 성인병과 영양 과잉 같은 것들이다. 한 문명학자는 서구의 몰락을 예견하며 그 근거로 비만과 영양과다를 들었다. 커피를 들고 도심을 걷는 수많은 뚱보, 마트에서 허겁지겁 식품을 챙기는 비만 여성들을 보며 장차 닥쳐올 불행을 예고했던 것이다.
갈라파고스 가마우지의 일화도 떠오른다. 부두에서 어부들이 던져주는 물고기에 길들여진 가마우지들이 날개가 퇴화해 결국 비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얘기다.
한번 편리함에 길들여진 인류가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전자레인지, 오븐이 있는 주방에서 장작을 팰 수 없듯 말이다.
듣기에 거실에 리모컨만 없애도 뱃살의 20%는 잡을 수 있고, 청소기 대신 비질과 걸레질만 해도 허리두께를 반 뼘쯤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차승원의 현란한 요리 솜씨 뒤에 숨어 있는 수고와 노동의 미덕(한 끼 밥을 위한)을 읽어냈다면 당신은 진짜 ‘세끼 팬’이다.
3. [서울신문][서동철 칼럼] 리우에서 평창 올림픽을 바라본다
리우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이 남녀 모두 금메달을 확정 지은 이튿날이다. 한 동료는 “이러다 올림픽 종목에서 양궁이 아예 없어지는 것 아니야?” 하고 조금은 진심이 어린 듯한 농담을 했다. TV는 잇따라 한국이 단체전에 이어 개인전까지 양궁에 걸린 금메달 4개를 휩쓸 가능성이 크다고 흥분하고 있었다. 세계 양궁계는 그동안 한국을 견제하고자 끊임없이 룰을 바꾼 것도 사실이다. 여자 양궁 단체전은 올림픽 8연패라고 하지 않았나.
다음날 남자 양궁의 세계 랭킹 1위인 김우진 선수가 개인전 32강전에서 탈락했다. 그는 올림픽 개막 직전 세계신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니 실망이 없을 수 없다. 그런데 상대가 한국에 적지 않은 이주근로자와 결혼이민자가 있는 인도네시아 선수라는 소식은 다소 위안이 되기도 했다. 예선 33위가 세계 최강을 꺾었으니 인도네시아 국민에게는 큰 격려가 됐을 것이다. 게다가 김 선수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승윤 선수가 16강에 진출했으니 우리에게는 금메달의 희망도 여전하다. 인도네시아는 런던올림픽에서 역도에서만 은·동메달을 한 개씩 따는 데 그쳤다.
개인적으로 리우올림픽 중계방송을 역대 어느 올림픽의 그것보다 마음 편하게 시청하고 있다. 역시 세계 랭킹 1위에 올라 있던 남자 유도 선수들이 줄줄이 금메달에서 멀어지는 장면도 웃으며 볼 수 있게 됐다. 선수와 그 가족, 그리고 지도자의 원통함은 뼈에 사무치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고국의 시청자들은 매운 고추처럼 당찬 여자 유도 정보경의 은메달과 두 아이의 엄마라는 윤진희의 역도 동메달에서 더 큰 보상을 받고도 남았다.
올림픽에 목숨을 건 듯 침을 튀기는 사람도 중계방송을 하는 아나운서와 해설자 말고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성적에 완전히 초연해 즐기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아직 과장이다. 하지만 경기를 치른 선수는 물론 국내에서도 아까운 패배에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던 과거와는 다르다. 이만큼 의젓하게 올림픽과 만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분명히 우리 사회가 진보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올림픽을 즐기게 됐다는 것은 오로지 ‘나’에서 벗어나 ‘주위’를 바라보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공기권총 10m에서 한국인 박충건 감독이 지도한 호앙쑤안빈 선수가 베트남에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겼다는 소식은 매우 뜻깊다. 물론 이 종목 3연패를 노리던 진종오 선수가 5위에 그친 안타까움은 별개다. 베트남 며느리의 기쁨은 남달랐을 것이다. 그 2세가 자부심을 갖고 자라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이미 다문화 사회에 접어든 한국이다. 다문화 인구의 출신 지역이 대부분 아시아 국가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이 아니더라도 아시아 선수라면 ‘이웃’을 넘어 ‘사돈’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한국·중국·일본을 제외하면 아직은 목숨을 걸다시피 해도 올림픽에서 성적을 내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후년 평창올림픽을 연다. 서울올림픽에 이은 동계올림픽의 개최는 변방의 한국 스포츠가 세계 중심으로 확고하게 진입함을 알리는 일종의 세리머니다. 그런 점에서 평창에서는 ‘성적’에 대한 강박을 떨치고 ‘공헌’을 목표를 삼아 보면 어떨까. 넓게는 세계인, 좁게는 아시아 이웃에 대한 공헌이다. 리우올림픽을 느긋하게 즐기는 국민의 모습에서 여건은 성숙하고도 남았음을 확인한다.
평창올림픽이 아시아 이웃들을 동계 스포츠 불모지에서 벗어나게 하는 노력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개·폐회식 행사도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도 초점을 맞추었으면 한다. 평창을 ‘아시아 동계 스포츠 지원센터’의 본부로 공표하면 그 이상 좋은 일은 없다. 평창, 정선, 강릉에 들어서는 동계 스포츠 인프라를 아시아 각국을 위해 쓰겠다는 선언이다.
한편으로 막대한 비용을 들인 시설을 올림픽 이후에도 놀리지 않는 길이다. 외교력을 발휘해 아시아 각국이 모두 참여하는 동계 스포츠 진흥기구를 조직하고 중국과 일본에는 비용을 분담케 하는 방안도 있다. 금메달 몇 개를 더 따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4.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원조를 뛰어넘은 한국형 판메밀국수
메밀은 추운 지방,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라는 곡식으로 바이칼 호수 일대와 중국 동북부가 원산지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평안도, 강원도 등지에서 많이 생산되었던 곡식이다. 척박한 곳에서 쉽게 재배되어 구황식품으로도 역할을 했던 메밀은 칼로리가 낮고 좋은 단백질이 많아 혈관을 맑게 유지해 주는 식품으로 알려지면서 갈수록 인기를 끌고 있다.
메밀을 이용한 면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각종 메밀국수, 냉면, 막국수 등 다양한 향토 음식들이 특색 있는 먹을거리로 등장했다. 이 중 판메밀국수는 메밀가루로 만든 면을 차갑게 하여 장국에 찍어 먹는 일본식 요리 ‘소바’에서 유래했다.
한국형은 일본 소바에 비해 면의 식감이나 장국 맛 등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맛의 국수다. 차가운 물에 갓 씻어낸 싱싱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면과 심심하고 약간 달짝지근한 장국이 그 특성이다. 장국에 간 무와 잘게 썬 파를 넣고 겨자를 가미한 후 면을 장국에 담그거나 듬뿍 찍어 먹는다. 이에 비해 일본식은 메밀향은 진하지만 다소 건조한 느낌의 면에 짠 ‘쓰유’(간장)를 살짝 묻혀 먹는 스타일이다. 필자에게는 한국형 메밀국수가 훨씬 입맛에 맞다. 오랜 입맛 때문인가? 어린 시절 서울에서 공부하던 형이나 누나들이 방학 때 집에 오면 기분 내며 쏘던 귀한 메뉴가 메밀국수였다.
메밀국수를 잘하는 식당들이 도처에 있으나 습관적으로 찾게 되는 집들이 있다. 예전에 서울 서초동 옛 제일생명 뒷골목에 70년 전통의 ‘제남’이라는 조그만 집이 있었다. 몇 년 전 주인아주머니가 돌아가셔서 없어졌지만 지금도 그 동네를 지날 때마다 생각난다. 일제 강점기에 개업해 1990년쯤 서초동으로 옮겨 온 집으로, 거의 하얀색의 면에 멸치만 쓰는 장국맛이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우리 부부가 ‘외식’하면 가장 많이 갔던 곳이다. 얘기를 즐기시던 주인아주머니의 메밀면과 장국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장국을 그렇게 아껴서, 남기면 우동이라도 찍어 먹으라고 권할 정도였다. 오랜 단골들 때문에 문을 못 닫고 어려운 장사를 한다고 했다.
1954년 개업한 ‘미진’이란 곳이 있다. 학창시절에 돈 생기면 가던 곳으로, 얼마 전 피맛골 재개발로 인근 오피스텔로 이전했다. 부드러운 면발과 장국맛이 자랑으로, 점심때면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지금도 볼 수 있다. 남대문시장 인근 북창동에도 ‘송옥’이라는 메밀전문집이 있다.
1961년 광화문에서 창업해 1970년 지금 이곳으로 옮겨 왔다. 면발이 굵어 식감이 좋고 장국은 약간 달큼하면서 진한 맛이다. 점심때 줄 서고 합석하는 것은 기본이다. 서소문 덕수궁 옆에도 1962년 문을 연 ‘유림면’이라는 집이 있다. 깨끗하게 단장한 집이다. 면발이 가늘고 쫄깃해 특별한 식감을 자랑한다. 여의도에도 주인장이 직접 면을 뽑고 직장인들이 줄 서서 먹는 ‘청수’라는 곳이 있다.
판메밀국수는 이제 일본의 ‘소바’를 넘어선 고유의 한국형 메뉴가 됐다. 애호가가 나날이 늘고 있고 역사와 맛을 자랑하는 식당들이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뜨거운 여름을 나면서 음미해 보기를 권한다.
5. [중앙일보][마크 테토의 비정상의 눈] 한국의 정원에서 삶의 교훈을 얻다
최근 부모님을 모시고 한국과 중국 곳곳을 여행했다. 그중 가장 큰 울림을 준 곳이 한국식 정원이었다. 그곳에서 인생에 관한 작은 교훈을 얻었다. 창덕궁 후원(비원)을 거닐면서 나무와 돌 사이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아담하면서도 절제된 느낌의 건축물들에 감동했다.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양식의 정원이었다. 유럽 정원은 대부분 뜰 안쪽이나 건물 뒤편에 별도로 자리 잡는다. 중국에서 본 안마당 정원(courtyard gardens)에는 대개 독특한 암석과 물건이 전시돼 있었다. 그러나 창덕궁은 숲처럼 드넓은 정원이 언덕과 바위를 따라 자연스럽게 펼쳐지면서 그 속에서 아담한 궁궐이 마치 자연과 하나인 듯 녹아 있었다.
안내인은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에서 정원이란 사람들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종의 통로입니다. 건물이나 건축물은 정원과 자연스럽게 동화되죠. 이런 면에서 일본이나 중국 정원과도 다릅니다. 일본은 인위적인 작업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려 하죠. 중국은 한정된 공간 안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과장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안내인은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 마당을 둘러볼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분은 박물관 가장자리의 낮은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마당이 건물 끝자락인 여기서 끝난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길 건너편의 나무들이 보이나요? 저쪽에는 산도 있죠? 사실 우리는 여기서 보이는 나무와 산을 모두 마당의 일부로 여긴답니다.”
이 경험은 내게 ‘인생에서 누구도 혼자 살 수 없다’라는 교훈을 줬다. 사람들은 세상과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나 자신을 가장 올바른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느냐다.
안내인은 이런 말도 했다. “마당은 계절마다 바뀝니다.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죠. 가을에 오면 산에 단풍도 볼 수 있고 가을 새들의 소리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겨울엔 하얀 풍경화처럼 보일 것이고요. 한국에선 이를 보고 ‘친구집을 계절마다 가보지 못했다면 그 집을 진짜로 방문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도 역시 나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 우리 삶에도 계절이 있으며 내가 지금 어느 계절에 속했는지를 파악하고 이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주변의 인간관계도 똑같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그들이 겪은 삶의 계절을 모두 지켜보지 않고서야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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