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0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與 새 지도부, 계파 늪 벗어나 미래 비전 보여 주길
4·13 총선에서 참패한 새누리당이 어제 전당대회에서 이정현 대표와 조원진·이장우·강석호·최연혜 최고위원 등 새 지도부를 선출했다. 구원투수 격인 이 대표는 차기 대선까지 당을 진두지휘한다. 여당의 운명이 그의 어깨에 걸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와 이주영·주호영·한선교 등의 후보가 벌인 대표 경선은 그런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엔 퍽 실망스러웠다. 친박(친박근혜)·비박 간 고질적 계파 싸움을 하느라 나라의 미래 비전은 보여 주지 못하면서다. 새 지도부는 전당대회가 끝난 마당에 고만고만한 후보들이 ‘도토리 키재기’를 했다는 혹평에 연연할 이유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집권당이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지 못했음을 뼈아프게 여기고 이제부터 심기일전하기 바란다.
이 대표가 호남 출신으로 첫 보수 여당 대표가 된 의미는 적잖다. 그러나 강 최고위원을 제외한 지도부가 친박 일색으로 구성됨으로써 국민 화합 이전에 당내 통합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낳게 한다. 이는 총선을 전후해 여당의 계파 간 막장극에 넌더리를 냈던 국민을 다시 실망시킨 꼴이다. 이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계파 해체와 ‘섬기는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러나 당 대회 과정에서 보스급 인물들이 뒷전에서 계파 정치를 부추기는 선거전을 목도한 국민의 눈엔 만시지탄으로 비친다. 선거전 막판 특정 친박 후보를 찍으라는 ‘오더 투표’ 의혹까지 제기됐다면 말이다.
국민이 어제 끝난 여당 전당대회나 진행 중인 더불어민주당의 당권 경쟁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근본 이유가 뭐겠나. 목전의 승리에 눈이 어두워 국가 백년대계를 도외시하는 데 국민인들 감동할 리가 없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를 둘러싼 양당 당권 주자들의 접근 행태를 보라.
더민주의 경우 당을 장악한 문재인 전 대표가 일찌감치 사드 반대를 천명한 탓인지 동조하는 ‘친문 후보’들끼리 선명성 경쟁에 급급한 인상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신중론은 씨도 먹히지 않았다. 여당 후보들의 모습은 더 한심해 보였다. 여당답게 사드 배치와 같은 안보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성주 지역민의 눈치를 보며 아예 ‘침묵의 카르텔’에 빠진 듯했다. 당원 자격으로 전당대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단합해 새로운 미래를 만들라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자고 주문했다.
작금의 범여권 지리멸렬상에 청와대의 책임도 없진 않겠지만, 일단 당정이 공유해야 할 메시지는 던졌다고 본다. 우리 앞에는 사드 문제뿐만 아니라 보호무역 바람이나 고용 없는 성장 기조 극복 등 현안이 쌓이고 있다. 새 지도부의 최우선 과제는 국민이 희망을 걸 수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 청사진을 내보이는 일이다. 그 전제조건이 계파의 소리(小利)에서 헤어나 안정적 성장과 단계적 복지 확대라는 여당다운 정체성의 재구성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새 지도부는 누구를 대선 후보로 내세우든 재집권이 쉽지 않으리라는 엄중한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2. 신용등급 상승, 한국 경제 재도약 발판 삼아야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사상 최고등급으로 상향 조정했다. S&P가 그제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AA’로 한 단계 올리고 등급 전망도 ‘안정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AA 등급은 전체 21개 신용등급 중 세 번째로 높은 것으로 일본보다는 두 단계 높고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수준이다. S&P로부터 한국보다 높은 등급을 받은 나라는 미국, 독일, 캐나다, 호주 등 6개국에 불과할 정도다.
S&P가 우리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한 이유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6% 수준으로 0.3∼1.5% 수준인 선진국보다 높다는 점과 지난해 대외 순채권국 상태로 전환된 데다 통화정책이 견조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지원해 왔다는 점을 들었다. 이번 신용등급 상승으로 해외 자금의 국내 유인에 도움이 되는 등 국제 금융시장에서 돈 빌리기가 쉬워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가 채무의 상환 능력을 가리키는 신용등급이 높아졌다고 해서 우리 경제가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올 성장 목표를 2.8%로 낮출 정도로 우리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다. 우리의 경제 기반인 수출은 19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하고 있고 가계부채 증가로 소비와 투자도 회복이 어려운 상황이다. 조선 등 취약 산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실업률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고 청년 실업 문제 역시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보호무역의 파도가 거세지고 있고 중국의 사드 보복 가능성도 언제 현실화될지 모르는 등 글로벌 경제 환경은 갈수록 악화일로다.
S&P가 신용등급 상향의 근거로 제시한 경상수지 흑자조차 사실상 수입 감소에 따른 불황형 흑자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산업 전반의 경쟁력은 추락하고 조선 등 주요 업종은 구조조정 없이 회생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신용등급 상향이 사면초가에 빠진 한국 경제에 모처럼 호재인 것은 사실이지만 냉혹한 경제 현실이나 체감경기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노동개혁 등 경제 체질 개선의 고삐를 더욱 죄는 동시에 신성장산업 발굴 등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번 신용등급 상향을 국가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3. 불합리한 전기요금 누진율 조정해야
불볕더위가 계속되면서 그제 순간 전기 사용량이 역대 최고치인 8421만㎾를 기록했다고 한다. 에어컨 등 냉방기기 사용이 급증한 탓이다. 전기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전기 요금 폭탄을 맞은 시민들이 한국전력을 상대로 소송전에 참여하는 등 전기요금 누진제 조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야당은 현재 6단계인 누진 구간을 3단계 또는 4단계로 조정하자는 안을 제시했고, 정부는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며 일단 난색을 보이고 있다.
2007년 전기요금 누진 구간을 6단계로 나누면서 저소득층을 우선적으로 배려했다고 한다. 정부 여당이 국민적 공감대를 내세우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 달에 100 이하를 사용하는 저소득 가구에는 전기생산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당 60.7원을 적용하고, 100에서 200 이하 구간에서는 125.9원을 적용하는 등 구간별 요금 누진제를 6단계로 나눴다. 그러다 보니 500 이상 6단계 구간에서의 요금은 709.6원으로 1단계보다 11.7배나 높아졌다.
전기요금 관련 민원이 급증하는 가장 큰 원인은 가구당 평균 전기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잘게 쪼개진 높은 단계의 누진요금을 적용받는 가구 수가 많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2007년에는 가구당 월평균 전기사용량이 163였으나 지난해에는 223로 증가했다. 여기에 국제 유가 인하와 석탄화력발전소 설립, LNG 발전소 건립 등으로 전기 생산 단가가 크게 떨어진 것도 요금 조정 요구에 힘을 보태고 있다.
실제 한전이 민간 전기사업자에게서 사들이는 전기 도매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은 2013년 당 158원대이던 것이 성수기인 최근에는 당 65원과 66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2009년 이후 여름철 SMP 가격으로는 최저치다. 이는 한전이 66원에 전기를 사들여 2단계보다는 두 배, 6단계 요금보다는 10배 이상 비싸게 판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한전의 영업이익이 11조 3000여억원을 기록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저소득층을 배려하면서도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조정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다. 우리나라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 사용량이 전체의 13.6%에 불과해 전력수급에는 큰 차질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가구당 전기 사용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이하로 국민이 충분히 아껴 쓰고 있다. 전기를 낭비하는 사태를 우려할 필요는 없다. 한전의 수익성 악화가 문제라면 산업용 전기요금을 소폭 올리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
4. 400조 육박하는 2017년 예산안 ‘재정 중독’ 아닌가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사상 처음 4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어제 정부와 새누리당은 첫 예산안 당정협의에서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39.3%인 국가채무비율을 40% 선으로 유지하는 데 맞춰 내년 예산안을 올해 예산(386조4000억 원)에서 3∼4% 늘린 400조 원 안팎(398조∼402조 원)으로 편성하기로 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자리 창출, 신성장 산업 육성, 민생 안정에 역점을 두겠다”며 ‘확장적 재정 운영’ 방침을 분명히 했다.
당정은 과거 증가율 수준에 맞춘 예산 규모라고 했지만 내년 경제가 3∼4%나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경기 부진으로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으면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정부는 중장기 재정건전성을 훼손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재정을 퍼붓고도 정책 효과를 장담할 수 없는 구태의연한 사업이 수두룩하다. 어제 여당은 청년일자리 예산 확대를 주문하면서도 지금까지 백약이 무효였던 청년고용대책을 어떻게 개선할지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저출산 해결을 위해 출산 장려금 확대를 주장하며 전남 해남군 사례를 들었지만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장려금만 준다고 출산율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정부가 재정으로 국가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정부 돈으로 경제성장률을 사는 ‘재정 중독’에 빠진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경제 수장이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나라살림을 운영할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유 부총리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중심으로 창조적 콘텐츠를 만들고 문화산업을 지원해 신성장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최경환 당시 부총리도 “(새누리)당이 제시하는 민생사업을 예산안에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했으나 결과는 부양책 남발로 인한 ‘재정 절벽’과 총선 참패였다.
박근혜 정부의 남은 한 해, 민간부문에서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획기적 기업 투자 유인책과 경제 체질 개선이 없으면 재정 중독은 다음 정부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국회에 넘어가 있는 추가경정예산안을 포함해 슈퍼 예산 속에 재정이 새는 구멍이 없는지 여야가 ‘정치적 고려’ 없이 깐깐하게 살펴야 한다.
5. 이정현 새 대표, ‘대통령 내시’ 벗어나 보수혁신 이끌라
새누리당의 새 당 대표에 호남 출신 3선인 친박(친박근혜) 이정현 의원이 선출됐다. 민주화 이후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당사에서 호남 대표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최고위원에는 강석호 이장우 조원진 최연혜(여성) 유창수(청년) 후보가 뽑혔다. 이 대표는 11년 만에 부활된 단일지도체제의 수장을 맡아 내년 대선을 치르는 등 2년간 당을 이끌게 됐다.
이 대표는 수락 연설에서 “이 순간부터 새누리당에는 친박, 비박 그 어떤 계파도 존재할 수 없음을 선언한다”며 ‘유능하고 따뜻한 혁신 보수당을 만드는 정치 혁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역대 당 대표들도 당선될 때마다 화합과 계파 청산을 외쳤으나 보혁(保革)이 뒤섞인 ‘짬뽕 정당’의 태생적 한계에 막혔다. 친박 패권주의 때문에 4·13총선에서 참패하고도 이번 지도부 선거에서 강석호 최고위원 1명을 제외하곤 친박이 싹쓸이한 것을 보면 새누리당이 정신을 차렸는지도 의문이다.
이 대표가 진정 계파를 청산하려면 서청원 최경환 의원 같은 친박 좌장은 물론이고 주군(主君)인 박근혜 대통령까지 ‘극복’해야 할 것이다. 먼저 우병우 민정수석을 감싸며 국민의 소리에 귀를 닫는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함으로써 정국 수습을 위한 개각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 대표는 경선 과정에서 “나를 대통령의 내시라고 해도 부인하지 않겠다”며 친박에 구애했다. 지금도 ‘하청 정당’ 소리를 듣는 당을 ‘내시 정당’으로 전락시켰다간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
친박에서는 이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대선 후보가 되는 시나리오대로 됐다는 소리가 나온다. 이 대표가 대선 후보 경선 관리를 ‘편파적’으로 하기로 작당이라도 한 듯하다. 그러나 이 대표가 “정권 재창출 가능성은 지금 제로”라고 말했듯이, 새누리당을 뼛속까지 개혁하지 않고는 ‘보수 집권 8년’에 실망한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없다. 이 대표는 “비주류 비엘리트 소외지역 출신이 집권여당의 대표가 될 수 있는 대한민국은 기회의 땅”이라고 감격했지만 적잖은 국민에게는 ‘금수저’와 ‘헬조선’으로 대표되는 ‘양극화의 나라’일 뿐이다. 기득권 계층의 대변자 같은 새누리당, 특히 친박부터 기득권을 포기해야 국민의 마음도 돌릴 수 있다.
작금의 새누리당은 어떤 혁신의 칼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단단한 웰빙과 무사안일 체질로 동맥경화에 걸려 있다. 영국 노동당은 1994년 수구좌파 노선을 버리고 ‘제3의 길’로 집권의 발판을 다졌고, 보수당은 2005년 ‘온정적 보수주의’ 노선을 세워 정권을 되찾았다. 이 대표가 ‘새누리당은 죽어야 사는 당’이라고 진단한 만큼 당 노선도 시대정신에 맞춰 새롭게 정비해 보수 혁신을 이끌어야 할 것이다.
이 대표는 유세 과정에서 “내년 대선 때 호남에서 20%의 지지를 받아오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정권 재창출을 하려면 지역 표심 공략 같은 정치공학 아닌 집권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북핵·미사일 위협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따른 안보 및 국론 분열 위기, 장기 불황과 기업 구조조정 같은 경제 과제를 해결해 나갈 큰 그림을 제시하고 당이 국정 운영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 이 대표가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에서 이를 어떻게 관철하느냐에 박근혜 정부의 성패, 보수 정당의 미래가 달려 있다.
[중앙일보]
6. 무서운 결핵, 허술한 결핵 관리
지난달 이화여대 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와 삼성서울병원 소아병동 간호사가 결핵 확진 판정을 받은 데 이어 7일에는 고려대 안산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가 의심환자로 신고됐다. 의료진 결핵 감염은 자칫 면역력이 약한 영유아·고령자·환자의 병원 내 집단발병으로 이어질 수 있어 적극적인 관리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전국 병·의원에서 신고된 의료진 결핵 감염 건수는 2013년 214명에서 2014년 294명, 지난해 367명으로 증가일로다.
한국은 ‘후진국 병’이라는 결핵의 후진국이다. 1996년부터 결핵 3대 지표인 인구 10만 명당 발생률·유병률·사망률 모두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다. 매년 3만 명이 넘는 환자가 새로 발생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결핵관리 수준이 허술할뿐더러 지난 20년간 개선을 위한 노력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핵을 퇴치하려면 우리 사회의 무관심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는 결핵예방법을 개정해 이달부터 의료기관·학교 등 결핵 확산에 취약한 집단시설 종사자들의 결핵·잠복결핵 검진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올해 예산뿐 아니라 추가경정예산에도 필수적인 검진비용을 빠뜨려 법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정부는 2025년까지 결핵발생률을 10만 명당 12명(2014년 86명) 이하로 떨어뜨린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걸었다. 하지만 이런 무책임한 자세로는 목표달성은커녕 외려 더 확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집단시설 종사자에 대한 결핵·잠복결핵 의무 검진은 환자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공익적인 보건사업이다. 건강보험재정 투입 등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 올해 안에 검진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산후조리원·노인요양시설 등 면역력이 떨어지는 아이·노인과 관련 있는 시설 종사자들을 두루 검진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아이를 병원이나 학교에 보내기가 두렵다는 부모들을 안심시키고 결핵 감염으로부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결핵은 무서운 병이다.
[매일경제]
7. 현대상선 `공매도 폭탄` 개인투자자 보호방안 찾아라
현대상선 구조조정을 위해 유상증자와 전환사채(CB)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공매도 폭탄'이 쏟아져 주가를 교란시키고 있다. 현대상선 주가가 한 달 사이 반 토막 났는데 외국인·기관투자가는 공매도로 차익을 챙긴 반면 유상증자에 참여한 개인투자자는 속수무책으로 손실을 봐야 했다. 개인투자자들은 관리종목 공매도를 할 수 없기 때문인데 현행 공매도 제도에서 드러난 허점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현대상선은 6월 초 채권금융회사·선주회사가 참여하는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할 때만 해도 주가가 1만8450원이었다. 7월 중순 유상증자 신주 가격을 주당 9530원으로 산정한 뒤 채권금융회사 외에 개인투자자로부터도 400억원 청약을 받았다. 그런데 현대상선 주가는 9일 7150원으로 떨어져 유상증자에 참여한 개인투자자들은 한 달 사이 25%에 이르는 손실을 보게 됐다.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자 사이에 정보 차이와 공매도를 할 수 있는지 여부가 희비를 불렀다. 현대상선 유상증자에서 채권단·선주회사가 출자한 1조4000억원 중 선주회사 유상증자 물량은 보호예수 없이 이달 3일부터 매도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3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증권신고서 한쪽에 적혀 있어 개인투자자들은 알기 힘들었다. 2000억원 규모 CB발행 내용도 구조조정 계획에는 포함돼 있었지만 2일에야 공시됐다. 외국인·기관투자가들은 이런 물량이 쏟아질 것을 알고 지난달 중순부터 공매도에 나섰고, 이달 2일에는 현대상선 전체 거래량에서 공매도 비중이 37%까지 급등하고 공매도 잔액도 294만주까지 불어났다.
결국 유상증자 신주 물량이 쏟아지기 시작한 3일 현대상선 주가는 27.9% 폭락했고 이날 공매도 잔액을 45만주 청산한 외국인·기관투자가만 큰 수익을 챙겼다.
유상증자·CB 발행 조건 중 주가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내용은 확정과 동시에 별도로 요약 공시하고 관리종목에 대해선 유상증자 발표 후 신주 상장까지 공매도를 제한하는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매일신문]
8. 새로 도입한 소방 관리 시스템 오류, 그냥 두면 화 키운다
경북도소방본부가 얼어붙은 소화전으로 화재를 제때 진압하지 못해 피해를 키운 실수를 막으려 새로 도입한 ‘전자식 소화전 관리 시스템’의 효율성이 논란이다. 새로 도입한 시스템의 잦은 오류 때문이다. 정작 화재 때 새 시스템이 오류로 무용지물이 되면 치명적인 인적 물적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자칫 아까운 예산만 날릴 시스템 오류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과 보완 작업을 서둘러야 하는 까닭이다.
경북본부가 이런 새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지난해 10월부터다. 3개월 동안 2억7천600만원을 들였다. 새 시스템은 경북도 내 소화전 8천324개소와 급수탑 74군데에 전자태그(FRID)를 붙여 이들 시설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화재 현장에 제공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화재 시 이들 시설 가운데 화재 현장에서 진압에 쓸 주변의 적합한 소화전과 급수탑을 파악해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사실 이번 시스템 도입은 지난해의 뼈아픈 경험 결과다. 지난해 1월 영주의 한 철물점 화재 진압 과정에서 소방 당국은 화재 현장의 소화전이 얼어 물 공급을 못 해 다른 곳의 소화전을 찾아 쓰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그 사이 불길은 인근 상가로 번져 점포 10여 곳을 태웠다. 화재 현장 주변 소화전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조기 진압에도 실패하고 화재 피해만 키운 꼴이었다.
그런데 도입 취지와 달리 새 시스템을 3개월 운영해 본 결과, 전자태그 인식률이 60% 수준에 그쳤다. 부착 태그를 아예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 과정에서 오류 발생 등의 사례가 40%나 됐다. 이대로면 정작 화재 발생 시 전자태그 부착 시설들의 이용 여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첨단 시설은 무용지물이다. 새 시스템 도입으로 화재 진압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취지가 무색해진 셈이다.
원인은 여럿이다. 우선 오류를 일으키는 부착 장비와 프로그램 자체의 문제다. 새 시스템의 사용과 활용을 위한 소방관 교육 홍보의 불충분도 있다. 부착 전자태그를 읽는 장비(리더기) 부족도 과제다. 본부도 인정하듯 새 시스템 도입에 따른 전문가 자문과 검수를 않은 점 등 더 늦기 전에 드러난 문제와 오류를 막을 대책을 세울 때다.
9. 혁신창업 비중 크게 뒤떨어진 대구, 문제점 점검할 때
대구의 창업 환경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나 청년창업 비중은 여전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혁신창업이 활발한 서울`경기는 물론 대전`부산과 비교해도 창업 열기가 뒤처졌다. 창업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인재 유입을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인 창업 생태계 조성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 대구본부가 최근 발표한 ‘창업 활성화 요인 및 시사점’ 보고에 따르면 대구는 혁신창업 생태계가 미약해 창업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전국 도시 중 최초 창업 지역 비중을 보면 대구는 고작 2.9%로 서울(58.3%), 경기(19.0%), 대전(4.9%), 부산(3.1%)에 비해 낮았다. 경북은 더 낮은 1.1%에 불과했다. 이는 창업 기반이 약한 대구경북에서 창업이 쉽지 않음을 말해준다. 이 보고서는 인재 육성이나 협업 공간 등 인프라, 스타트업 투자자`전문가의 네트워크 등에서 대구가 매우 열세라고 분석했다.
최근 몇 년 새 창업 지원 기관이 속속 등장해 지역 창업 생태계가 조금씩 틀을 갖춰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스마트벤처창업학교, 창조경제혁신센터 C랩, 크리에이티브팩토리, 청년ICT창업성장센터 등 창업 인큐베이터가 그 나름의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창업도시 대구’ 이미지가 낮은 데다 창업 시스템도 제대로 탄력을 받지 못해 20~34세 청년층 인구의 순유출(1.75%)이 타 광역시보다 훨씬 많았다.
이런 현실을 이겨내고 대구가 ‘창업이 용이한 도시’로 자리매김하려면 무엇보다 도시 브랜드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뉴욕의 경우 ‘테크 시티’ 등 캠페인을 통해 도시 이미지를 브랜드화하고 스타트업`투자자를 유인하는 정책을 꾸준히 펴왔다. 2003~2013년 뉴욕시에 몰린 벤처 투자 금액만도 3조달러를 넘는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구도 청년 창업 열기를 확산시키고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창업 프로그램과 정책 지원 등 창업 시스템 점검이 필수다. 인재, 인프라, 네트워크 등 혁신창업 생태계의 핵심 요소 중 하나라도 뒤떨어지면 창업 활성화는 어렵다. 대구시와 창업 지원 기관은 현재 대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면밀히 살펴보고 빠른 시간 내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
[조선일보]
10. 訪中 의원들, 중국 뜻 증폭시켜 전달하는 역할 맡을 건가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6명이 9일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 싱크탱크인 판구(盤古)연구소와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회에는 중국 전문가들이 참석해 "한국이 지나치게 미국 입장을 따라가는 것 아니냐"며 '사드 반대' 논리를 강하게 주장했다고 의원들이 전했다.
중국 측은 "한국에 가장 안 좋은 것은 중국이 북한과 다시 혈맹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며 사드로 인해 동북아가 신냉전 체제로 갈 수도 있다"는 발언도 했다고 한다. 김영호 의원은 "중국은 사드가 한국의 안보 수요를 넘어서고 그 뒤에 미국이 있다고 생각하더라"고 했다.
더민주 의원들이 베이징까지 가서 확인했다는 중국 전문가들의 견해는 중국 관영 매체를 통해 수없이 나온 내용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토론해보니 중국의 반대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베이징대 교수와 판구연구소 연구진은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학자들이 아니라 당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중국을 오래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그들이 중국 정부·군과 미리 의견을 조율하고 나왔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실이 이런데 뭘 바라고 베이징까지 달려가 중국 정부에 멍석을 깔아주었는지 모를 일이다. 의원 6명 중 2명은 중국 유학파라고 한다. 그러고도 대외 문제에 관한 한 중국 학자들에겐 표현의 자유가 없다는 기본 사실조차 몰랐단 말인가.
사드 이슈의 핵심은 사드 배치가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방어적 조치라는 것이다. 방중 의원들이 이 점을 중국 측에 납득할 만하게 설명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곧 제재 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등 중국 측의 협박성 발언을 증폭해 국내에 전달하는 역할에 충실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외교 안보 문제는 무엇보다 국익 차원의 판단이 필요한 분야다. 그래서 어느나라나 의원 외교는 정부와 충분한 조율을 거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외교 경험도 없는 초선들이 정부의 공개적 반대를 묵살하고 방중을 강행했다. 문재인 전 대표와 더민주 지도부도 도리어 정부를 비판하면서 방중 의원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앞으로 의원 6명이 중국에서 들은 중국의 뜻을 어떻게 국내에 확대 전달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최재석의 동행> 사람은 본 만큼 느낀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 중인 어머니 곁에서 여름 휴가의 마지막 3일을 보냈다. 6인실 병실 한쪽 끝 침대에 작은 몸을 뉜 어머니는 인공 고관절 수술 후 각종 후유증으로 거동을 못 한다. 24시간 옆에서 누군가 돌봐야 한다. 코에는 음식과 약을 주입하는 관이 끼여져 있다. 원래 가뜩이나 마른 데다 석 달째 병상에 있다 보니 이제는 뼈만 남은 듯했다. 90평생을 살아온 어머니의 앙상한 몸뚱어리를 보다 순간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병실 풍경은 정겨웠다. 80대 할머니 환자를 돌보는 60대 딸은 '방장'을 자처하며 다른 환자 보호자에게 이래저래 싱거운 농담을 건넨다. 그 덕에 잔뜩 침울할 수 있는 병실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지곤 했다. 치매 증상으로 요양원에 있다 갑자기 몸이 아파 입원한 할머니 환자는 50대로 보이는 딸이 병구완했다.
딸은 안타까운 마음에 어머니에게 계속 말을 시켜보지만, 그 어머니는 눈만 멀뚱멀뚱할 뿐 딸의 바람에 호응을 못 한다. 수술 후 혼자 거동이 가능해서인지 보호자 없이 지내는 60대 환자는 한마디로 점잖은 분이다. 내가 서울에 산다는 얘기를 듣고KTX를 타고 서울 근교의 딸 집에 갔던 이야기를 수줍게 했다. 빈 침대 2개는 새 '주인'을 기다렸다.
지난 6일 밤에는 리우 올림픽 여자 배구 한일전을 함께 봤다. 내가 해설자로 나서 병실 가족들에게 간간이 경기 내용을 설명했다. 다들 경기 규정은 잘 몰랐지만, 일본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면서 '한국의 딸들'을 열심히 응원했다. 경기가 끝나고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보호자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어머니 침대 옆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누웠지만 통증에 끙끙 앓는 어머니의 신음에 신경이 곤두서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3시가 넘어서인가 살짝 잠에서 깨보니 그제야 어머니도 가볍게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그간 어머니를 돌보느라 응급실이나 6인실 병실에서 지낼 때 병원이 돌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간호사들의 친절하고 헌신적인 근무 태도에 감사했고 때론 놀라기도 했다. 그러다 사무적으로 보이는 의사들의 모습에 화가 나기도 했다. 그래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들이 어머니를 치료하고 있지 않은가. 환자 보호자에겐 병원과 의사는 이른바 갑을관계로 보면 '갑' 위치에 있다. 병실 침대에 붙은 이름표에는 환자명과 주치의 이름이 병기돼 있다. 그런데 주치의는 자주 볼 수가 없다. 대신 주치의 밑에서 전문의 과정을 밟는 젊은 의사만 가끔 볼 수 있을 뿐이다.
환자 보호자들은 답답하고 궁금하다.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앞으로 어떻게 치료하는 건지. 어디 가서 속 시원히 들을 수 없다. 그래서 주로 마음씨 좋아 보이는 간호사에게 묻지만, 그들도 단편적인 내용밖에 알지 못한다. 이번에는 간호사에게 어머니 주치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 주치의는 아니고 전문의 과정 의사와 전화로 연결해줬다.
여느 보호자답지 않게 꼬치꼬치 물으니 전화상으로 들리는 젊은 여자 의사의 목소리에 건조함과 짜증이 느껴졌다. 그래도 참아야지 싶었다. 격무에 시달리는 데다 수많은 환자를 대해야 하는 의사들이 환자 보호자의 심정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어머니가 수많은 환자 중의 한 명이겠지만 나에겐 하나뿐인 어머니다.
어찌 보면 세상의 이치가 다 그렇다. 한 사람에겐 일상적이고 하찮은 일도 다른 사람에겐 특별하고도 중요한 것일 수 있다. 언론사 사회부에는 때론 업무가 힘들 정도로 많은 민원 전화가 온다. 그때마다 기자들은 사연을 귀담아듣기 보다는 잘 설득해 전화를 빨리 끊게 하려는 경우가 많다. 물론 민원 전화가 특종 기사를 낳은 경우도 있다. 나도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언론사 입장에선 수많은 민원 전화 중의 하나일 수 있지만, 어느 한 사람에겐 절박하고 억울한 일로 큰맘 먹고 전화를 걸었을 수 있다는 걸 그땐 잘 몰랐다. 그러니 나도 의사를 탓할 자격이 없다. 사람은 보고 경험한 만큼 느낀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파 누워서까지 자식에게 깨달음을 준다. 병원에서 보낸 '3일'은 세상의 갑을관계, 의료진과 환자 관계, 노인 간병과 의료비 문제 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값진' 휴가였다. 정말이지 이번에 엄청난 병원비 보고 놀랐다.
2. [매일신문][매일춘추] 현실동화-신데렐라
초인종이 울리자 모두 그녀에게 소리쳤다. “왜 꾸물대고 있는 거야? 어서 내려와서 준비해야지!” 그녀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요정은 번민에 가득 찬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실한 사랑일지라도 때로는 무섭고 두려운 순간이 찾아오지.”
꿈 같은 시간이었다. 몸에 잘 맞는 화려한 드레스는 그녀를 돋보이게 했다. 그가 다행스럽게도 그녀에 대해 크게 궁금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시종일관 그의 스텝에 발을 맞춰 춤을 출 수 있었다. 유리구두가 커 조금 아프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반짝이는 눈동자는 마치 열정에 타오르는 불꽃 같았고 그녀는 금세 빠져들었다.
그러나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그녀는 돌아가야 했다. 그가 원하는 건 꿈속의 공주님이었지만 자신은 그저 먼지투성이일 뿐이었다. 도망치던 그녀의 구두 한쪽이 벗겨졌다. 발뒤꿈치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그는 남겨진 구두를 손에 든 채 그녀를 부르려 했으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며칠 후 그녀는 그가 자신이 도망친 그 무도회에서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여자는 바로 자신의 배다른 동생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그가 동생을 데리러 오는 날이었다. 손과 발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지만 그녀는 천천히 문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그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온 가족은 두 사람의 사랑을 진심으로 축복했다.
그는 그녀의 동생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달콤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한 당신에게 내 사랑을 바칩니다.” 그러고는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무릎을 꿇었다. “나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그가 꺼낸 건 그녀가 잃어버린 유리 구두였다. 동생은 그 신발에 발을 넣었다. 신발은 아주 꼭 맞았다.
그녀는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온 세상이 아름다운 두 연인을 축복하는 떠들썩한 축제 한가운데에 혼자 섬처럼 서 있었다. 그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나마 달콤한 이야기를 속삭이던 두 사람이었지만 남보다 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녀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요정이 위로하기 위해 다가오자 그녀는 뿌리치며 소리쳤다. “왜! 어째서?” 요정이 말했다. “이 세상 모든 여자는 자신이 공주라 믿지. 하지만 현실엔 너만을 위한 동화는 없어. 그는 네가 아니라 저 아가씨를 선택했을 뿐이야.”
그녀가 눈물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게 날 위한 동화가 아니라면 날 여기서 빼내주세요!” 요정은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지팡이를 흔들었다.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거센 바람이 들이닥쳤다. 모두가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그녀의 몸이 붕 뜨며 안개 속에 휩싸였다. 누군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신데렐라!”
순간, 그녀는 그대로 사라졌다. 먼지가 되어.
3. [서울신문][고전으로 여는 아침] 도전하라, 도전하라, 또 도전하라
고난의 시대일수록 대중은 영웅을 기다린다. 기원전 13세기 그리스에는 숱한 영웅들이 탄생했다.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이아손, 테세우스,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등이 그들이다. 그리스인들은 문명의 이 여명기에 갖가지 자연의 야수들을 물리쳐야 했고, 식량과 주석 획득을 위해 척박한 그리스 땅을 떠나 흑해와 지중해 연안 각지로 교역로를 개척해야 했다.
영웅이 되는 길은 쉽지 않았다. 불확실한 미래에 목숨을 걸어야 했고,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험난한 모험과 시련을 이겨내야 했다. 당시 그리스 청년들은 당돌하리만큼 도전적이고 진취적이었다. 미지의 땅으로 떠나는 모험의 여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난 극복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탁월함을 입증하는 것을 영웅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로 여겼다.
야수 같은 헤라클레스도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용렬했던 에우리스테우스의 종이 되어 10년이 넘도록 12고역을 과업으로 받아 수행했다. 인간이 성취하기 어려운 고역을 이겨내야만 신이 될 수 있다는 신탁이 그에게 영웅적 도전을 부추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아손 역시 숙부에게 찬탈당한 왕위를 되찾기 위해 살아 돌아올 수 없으리라는 흑해 연안 콜키스 왕국으로 황금양털을 구하러 항해를 떠났다. 이 모험담을 아폴로니오스 로디우스(BC 295?~215?)는 서사시 ‘아르고나우티카’로 전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연상시키는 대모험이야기다.
흥미로운 것은 이아손이 이 ‘죽음의 항해’에 동행할 벗들을 공모하자 그리스 전역에서 날고 긴다는 영웅들이 54명이나 몰려들었다는 점이다. 살아서 돌아오면 그나마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야만족의 손에 죽게 될 상황이 불 보듯 예견됨에도. 황금양털을 탈취해오면 이아손은 테살리아 왕이 될 자격을 얻겠지만, 동료에게 주어질 보상은 아무것도 약속된 것이 없었다.
그리스의 영웅들을 가슴 뛰게 한 유인책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땅을 향해 거센 파도와 풍랑을 이겨내고 거칠고 용맹한 야만족을 물리쳐 영웅이 되는 것. 그들은 그것이야말로 단 하나뿐인 목숨을 걸 만한 명예로운 일이라 생각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 이아손은 콜키스 왕국의 공주 메데이아의 사랑을 얻고 그녀의 마술의 도움을 받아 황금양털을 획득한다. 이아손은 과업을 달성하고 귀환했다. 하지만, 그는 메데이아의 계략으로 숙부 펠리아스를 죽이고도 왕위를 이어받지 못했다. 2% 부족한 영웅 이아손. 이아손은 주체적으로 고난을 극복해내지 못해 대중의 폭넓은 인심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요즘 청년들이 지나치게 안전한 직업에 몰리고, 가족과 주변, 사회와 국가의 도움에 의지하려는 풍조가 커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인생을 열어가려는 진취적 도전 정신이 아쉬운 때다.
4. [동아일보][직장인을 위한 김호의 ‘생존의 방식’]어쩌다 한 번 보는 사람이 중요하다
다음에 옮길 직장에 대한 중요한 정보는 누가 내게 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실험을 한 학자가 있다. 현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이면서 가장 인용이 많이 된 사회학 논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약한 연대의 강점(The Strength of Weak Ties)’의 저자 마크 그래노베터이다.
1973년 ‘미국 사회학 저널’에 실린 이 논문은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를 기준으로 ‘자주’(적어도 1주일에 두 번은 보는 관계), ‘어쩌다’(1년에 한 번 초과 1주일에 두 번 미만 보는 관계), ‘거의’(1년에 한 번 이하로 보는 관계)로 나눈 뒤, 새로운 직장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경로가 어느 쪽인지를 보았다. 결과는 ‘자주’로부터 얻는 경우가 16.7%였으며, ‘어쩌다’가 55.6%, ‘거의’가 27.8%였다. 논문 제목이 알려주듯,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하는 약한 연대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 논문의 중요한 발견 중 하나이다.
생각해 보자. 직장에서 매일 만나는 동료의 경우 그들이 알고 있거나 생각해 본 아이디어는 나도 알고 있거나 생각해 봤을 가능성이 높다. 유사한 환경에서 비슷한 정보를 받아 보고 회의 등을 통해 공유하기 때문이다. 회사 동료들끼리 브레인스토밍을 해도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설사 내 동료가 나는 모르는, 하지만 내게 중요할 수 있는 정보를 가졌을 때 그는 나와 공유하지 않을 가능성이 약한 연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내가 잠재적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사람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은 정보가 내게는 신선하고 좋은 정보일 가능성이 있다. 출판된 지 40년이 지난 이 논문은 약한 연대와의 소통이 활발해진 소셜미디어 시대에 여전히 많이 읽히고 있다.
이 연구는 직장인들에게 중요한 네트워킹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네트워킹이란 무엇일까. 직장 선후배들과 1주일에도 몇 번씩 술잔을 기울이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번 기회에 다시 생각해 보자. 네트워킹이란 약한 연대에 있는 사람들과 1년에 단 한 번이라도 차 한 잔을 두고 서로 덕담만 나누는 표피적인 대화 말고, 정보와 생각을 나누며 의미 있는 대화를 하는 것이다.
좋은 정보나 아이디어가 네트워킹을 통해 내게 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보면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가 ‘설득의 심리학’에서 말한 상호성의 법칙을 떠올리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좋은 정보나 아이디어를 주기를 바란다면 내게 그런 정보나 아이디어가 있을 때 먼저 상대방에게 주라는 것이다. 투자가 있어야 수익을 거둘 수 있듯, 관계에서도 먼저 신뢰를 보여주고 도움을 주면 시간이 지나서라도 직간접적으로 본인에게 도움이 되어 돌아온다.
올 3월 미국 출장 중 워크숍에서 우연히 프로 재즈 뮤지션인 마이클 골드 박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통의 관심사를 발견했다. 재즈의 즉흥연주가 비즈니스에 주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후 나는 한국의 한 세미나에서 발표를 의뢰받고는 그를 떠올렸고, 주최 측에 추천을 하여 한국에서 올 6월 공동으로 발표를 했다. 이번 주에는 그가 미국에서 발표를 하는 자리에 나에게 공동 진행의 기회를 주었다. 이제 우리는 한국에서 또 다른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이뿐 아니다. 일자리나 사업의 기회가 있을 때 사람들은 종종 약한 연대의 지인 중 최근에 만났거나 그와 나눈 인상적인 대화가 기억이 나서, 혹은 그 사람이 도와주었던 것에 보답하고자 전화기를 든다. 나이가 들고 사업 경험이 쌓일수록 소개와 추천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몸으로 느끼게 된다.
네트워킹을 하라는 것이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나고 더 자주 술이나 밥을 먹으라는 것은 아니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사람들과 가능하면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만약 내가 갖고 있는 정보나 기술로 큰 부담 없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당장 내게 돌아오는 것이 없더라도 먼저 베풀라는 것이다. 약한 연대의 인연에게 베푼 작은 도움이 때로는 내 다음 직장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5. [동아일보][조경란의 사물 이야기]부채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 오후에 인사동에 갔다. 아는 이의 전시도 보고 오랜만에 인사동 길을 좀 걸어 다녀 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쏟아지는 햇볕 때문에 미술관에서 나오자마자 에어컨이 켜져 있을 카페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관광객들, 상점 앞의 사람들 틈에서 무언가 팔락거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둥글고 납작한 모양의 둥글부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쥘부채들. 외국인 관광객들은 대개 태극선이 프린트된 둥글부채를 들고 있는 것 같다.
올여름 휴가도 동생이 살고 있는 도쿄에서 보냈다. 한여름의 도쿄라면 더위뿐만 아니라 말도 못하게 높은 습도에도 익숙해지지 않으면 곤란하다. 지하철을 타고 있을 때나 우에노 공원 같은 데를 어슬렁거리다가 나도 모르게 행인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각자의 방식대로 더위를 참고 이기고 있는 사람들을. 일단 손수건은 기본, 그 다음은 부채. 보통은 쥘부채들이다. 땀이 나면 손수건으로 꾹꾹 눌러 닦고 손목을 약간씩만 움직여 열기로 달아오른 얼굴에 대고 부채를 부친다.
‘단오 선물은 부채, 동지 선물은 달력’이라는 속담도 있고 임금이 단옷날 신하들에게 부채를 선물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지만 부채는 이제 너무 흔해져버렸거나 대접받지 못하는 사물이 돼버린 감이 없지 않다. 교실에 선풍기 한 대만 간신히 털털거리며 돌아가던 때가 있었다. 체육 시간을 마치고 나면 책받침으로 부채질을 하거나 다 쓴 연습장을 한 장씩 찢어 같은 간격으로 앞뒤로 착착 접어 종이부채를 만들어 부치곤 했다. 그래서인가 나는 지금도 어디선가 홍보용으로 공짜 부채가 놓여 있으면 일단 하나는 챙기고 본다. 햇빛도 막고 얼굴도 가리고 모기도 쫓고.
관측사상 서울 최고 기온을 기록했던 1994년 여름의 38.4도의 더위도 잊을 수 없다. 간절히 원해서 스물여섯 살에 대학에 입학한 해였다. 여름방학이었고 방에서 쭈그리고 앉아 습작 소설을 쓰고 있는데 떨어진 땀이 노트에 번져서 더 이상 유성 펜을 쓰지 못하고 연필로 바꿔 들어야 했다. 연신 땀을 훔쳐가면서 한 손엔 부채를, 한 손으론 연필을 쥐고 글을 써나갔다. 그 습작 소설이 내 등단작을 만들어내게 될 거라고는 그때 알 리 없었지만.
최근에는 이런 부채를 봤다. 초등학생 조카들이 여름방학 전날 학교 앞에서 받아 온 것인데 활짝 웃는, 꼭 ‘철수와 영희’ 같은 소년 소녀의 얼굴이 앞뒤로 그려져 있고 이렇게 크게 쓰여 있다. ‘아이고 신나라.’
나에겐 아직도 여름의 필수품인 부채를 든 채 정현종의 시 제목 일부처럼 ‘태양이 떵떵거리’고 있던 인사동 길을 잠시 걸어 다니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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