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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대통령 탄핵심판, 신속·공정이 관건이다
헌법재판소가 어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심판의 첫 변론기일을 열고 국회가 제기한 탄핵소추 사유에 대한 심리에 돌입했다. 박 대통령의 운명이 이제 박한철 헌재 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 9명의 손에 달린 셈이다. 그러나 첫 변론기일은 박 대통령이 재판정에 출석하지 않는 바람에 박 소장이 “신속하고도 공정한 심리를 진행하겠다”는 대원칙을 밝히는 선에서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끝나 버렸다.
따라서 본격 심리는 내일과 오는 10일에 각각 열리는 2차 및 3차 변론기일로 미뤄졌다. 2차 변론기일에는 청와대 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과 윤전추·이영선 행정관이 증인으로 나오고, 3차에는 최순실씨를 포함해 안종범 전 정책수석과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이 소환된다. 앞서 헌재는 이번 탄핵심판의 쟁점을 국민주권·법치주의 위반과 대통령 권한 남용, 뇌물수수 등 크게 다섯 항목으로 정리했다.
국회 소추위원단과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앞으로 이들 쟁점을 둘러싸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법리 다툼을 벌이게 됐다. 이미 박 대통령은 지난달 9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침묵을 유지하던 데서 벗어나 전면적인 ‘장외 변론’에 나선 모습이다. 정초부터 휴일인데도 예정에 없던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를 갑자기 열어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 혐의들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억울하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주장이다. 뇌물죄에 대해서는 “완전히 나를 엮은 것”이라며 결백을 주장했고, 세월호 사고 당시 7시간의 행적에 대해서도 “대통령으로서 할 일은 다했다”며 그동안 제기된 의혹들을 모두 부인했다. 헌재는 이러한 장외 변론에 별 의미를 두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박 대통령이 추후에도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밝힐 것은 밝힌다는 입장으로 전해짐으로써 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지금 돌아가는 여론은 탄핵 지지가 압도적이지만 그렇다고 촛불에 휘둘린 여론재판은 금물이다. 두고두고 뒤탈을 낳기 마련이다. 박 대통령이 아무리 잘못했더라도 법적인 방어권만큼은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는 얘기다. 박한철 소장의 표현대로 지금은 ‘헌법적 비상상황’이다. 국가의 명운이 달린 만큼 국민의 눈길이 헌재를 향하는 것은 당연하다. 헌재가 ‘신속’과 ‘공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내는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 서울대 출신들의 ‘부끄러운 동문상’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진행되는 ‘부끄러운 동문상’ 후보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된 인물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그들이다. 나름대로 국가와 사회의 동량임을 자부하는 서울대생들이 부끄러운 동문에 대해 투표를 하고 있다는 자체가 이 시대의 상징적인 풍경화다.
분명한 것은 능력 있고 똑똑하다고 인정받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회적 역할에 소홀하다는 점이다. 제 역할은커녕 오히려 권력에 빌붙어 해악을 끼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서울대 출신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앞서의 인물들 말고도 이번 ‘부끄러운 동문상’ 후보에 국회의원과 병원장, 기업인, 법조인, 학자에 이르기까지 유명 인사들이 두루 이름이 오른 데서도 확인되는 일이다.
특히 법조인 출신인 김 전 비서실장과 우 전 수석의 경우 지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법률의 허점을 자기 방어에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국민적인 공분을 샀다. 오죽하면 ‘법률 미꾸라지’라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을까. 박근혜 대통령을 가까이 보필하던 입장에서 탄핵사태에 대해 진정성 있는 책임 표명도 없었다. 오직 입신영달을 위해 달려온 사람들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이러한 출세지향적 처세술이 이들 몇 사람의 경우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 이번에 드러났듯이 규정을 무시하고 박 대통령의 비선 진료에 관여한 의혹이 있거나 공짜로 거액의 주식을 챙긴 경우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도층 인사들이 이처럼 자기들끼리만 주고받는 식이어서는 나라가 제대로 서기도 어렵고, 사회가 방향을 찾아 굴러가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지도층 인사들에게 바라는 게 거창한 것은 아니다. 보편적인 상식과 규정에 따라 일을 처리해 달라는 수준이다. 그 정도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폐습과 부조리는 거의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능력껏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됨으로써 ‘최순실 게이트’는 발도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서울대 출신만이 아니라 이 시대 우리 사회의 모든 지도층 인사들이 함께 유념해야 할 교훈이다.
[서울신문]
3. 헌재, 신속하고 공정하게 탄핵심리 진행하라
박근혜 대통령의 운명을 가를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의 첫 공개 변론이 어제 오후 열려 9분 만에 끝났다. 공개 변론은 피청구인인 박 대통령의 불출석으로 조기 종료됐지만 역사적인 탄핵 심판의 첫발을 뗀 것이다. 지난해 12월 9일 탄핵소추안 가결로 박 대통령의 대통령 권한이 정지된 지 25일 만이다.
헌재는 이미 세 차례에 걸쳐 탄핵 심판을 위한 준비절차기일까지 가졌다. 박한철 헌재 소장은 모두 발언에서 “엄격하고 공정하게 최선을 다해 심리할 것”이라고 탄핵 심판의 대원칙을 밝혔다. 또 “헌법 질서에서 가지는 엄중한 깊이”라며 사건의 의미를 규정했다. 박 소장은 그제 시무식에서도 “공정하고 신속한 결론”을 강조했다. 헌재는 헌법 정신에 따라 최대한 빨리 탄핵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권한 정지에 따른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중차대한 사안임을 직시해야 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미 대리인을 통해 밝혔듯 공개 변론에 출석하지 않았다. 대리인단의 변론만으로도 충분한 만큼 굳이 당사자 출석이 불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범죄 피의자로 비칠 수 있는 박 대통령의 입장을 고려한 판단일 것이다. 2004년 3월 30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탄핵 심판 첫 변론에 불출석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 쟁점 5가지는 선거중립 의무 위반으로 집약될 수 있는 노 전 대통령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등 비선 조직에 의한 국정 농단,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미르·K스포츠재단 불법 모금 등 어느 것 하나 인정하는 게 없다. 특검의 수사 과정에서 속속들이 드러나는 혐의마저도 철저히 부인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의혹을 해명하고, 혐의를 부인하고 변호할 권리가 있다. 권리에는 당연히 책임이 따른다. 박 대통령은 특검에 앞선 검찰의 수사 요청을 거부하더니 헌재의 소환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느닷없이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일방적으로 해명한데 이어 앞으로도 더 그런 기회를 가질 뜻도 내비쳤다.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다. 누구보다 헌법을 수호하고 법을 존중해야 할 대통령으로서 공권력과의 맞대결, 장외투쟁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새해가 밝았는데도 혼란스런 시국을 걱정하는 국민을 저버리는 행태와 같다.
박 대통령은 헌재의 심리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모든 의혹이나 혐의를 부정하려면 헌재에 당당하게 나와 “철학과 소신을 갖고 국정을 운영했다”고 밝히는 게 옳다. 특검의 수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헌재는 다음달까지 1주일에 한두 차례씩 집중 심리를 진행할 계획이다. 박 대통령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되 수용하지 않는다면 원칙에 따라 신속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다. 국민이 바라는 바다. 박 소장이 모두 발언에서 언급한 아주 공평하고 지극히 바르다는 대공지정(大公至正)의 길이기도 하다.
4. 27개월 만에 2순위 총장 임명된 경북대
경북대 총장 임명을 둘러싼 후폭풍이 거세다. 총장 공백 27개월 만에 1순위 총장 후보가 아닌 2순위 후보인 김상동 교수가 그제 총장에 취임하자 1순위이던 김사열 교수가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임명권의 잘못된 행사를 문제 삼아 소송을 준비한다고 한다.
이 문제는 특히 문화계에 이어 교육계에서도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돼 학내 문제를 넘어 정치 문제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청와대가 정부에 비판적인 교수들을 국립대 총장 임명에서 배제하기 위해 총장 자리를 공석으로 두거나 2순위자를 ‘거꾸로 임명’하는 교육 농단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장·차관급 공무원 신분인 국립대 총장은 대학이 직·간선으로 후보 1·2순위 2명을 뽑아 교육부 장관이 한 명을 제청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인사권은 대통령이 가진 고유 권한이기에 후보 1·2순위가 최종 뒤바뀐 것 자체를 놓고 비판할 수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중앙 부처의 고위직 공무원들도 검증 과정에서 결격 사유가 드러나 후순위 후보가 1순위로 올라서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교육 분야의 경우는 다르다. 헌법에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아탑마저 정치권의 영향력 아래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 헌법 정신이다.
김사열 교수에게 부적격 사유가 없는데도 정부가 1순위 후보를 퇴짜 놓고 2년여 동안 손 놓고 있다가 2순위 김상동 교수를 총장에 임명한 것은 누가 봐도 석연치 않다. 그러니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개입설’이나 교육부 고위 간부의 ‘청와대 오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 서울대 총장 임용도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 업무일지의 ‘서울대 총장 선임 역임(거꾸로 임명)’이라는 기록만으로도 청와대 개입 의혹을 살 만하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순실 청문회에서 충남대 총장에 한양대 출신의 2위 후보가 낙점된 것은 당시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 이재만 전 비서관 등 한양대 인맥이 개입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주대 등 4곳은 현재 총장이 없다. 경북대 등 5곳은 총장 공석이다가 정부가 대학이 추천한 1순위 후보가 아닌 2순위 후보를 총장으로 임명했다. 이 정부 들어 유난히 국립대 총장 임명을 놓고 뒷말이 많다. 총장 후보들의 사상 검증을 위한 블랙리스트에 근거했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전국국공립대교수연합회는 “파행적인 총장 임용에 국정 농단 세력이 개입한 의혹이 짙다”며 특검에 수사를 요청했다. 특검에서 그 진상을 철저히 가려야 한다.
[서울경제]
5. 탄핵심판, 헌재는 오로지 사실만으로 판단해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헌재는 3일 오후2시 박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1차 변론기일을 열고 국회 측이 주장한 탄핵소추 사유에 대한 구체적 심리에 돌입했다. 박한철 헌재 소장은 심리에 앞서 “엄격하고 공정하게 최선을 다해 심리하겠다”고 헌재의 각오를 밝혔으나 첫 변론기일은 탄핵 대상인 박 대통령의 불출석으로 9분 만에 종료됐다.
탄핵사유를 둘러싼 국회와 박 대통령 간의 본격적인 대결은 2차(5일), 3차(10일) 변론기일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2차 때는 안봉근·이재만 등 전 청와대 비서관과 대통령 수행 행정관 등을 출석시켜 박 대통령의 권한남용 쟁점을 심문한다. 3차에는 최순실과 안종범 전 수석, 정호성 비서관 등 비선실세 의혹 당사자들에게 국민주권주의 훼손 여부 등을 따지게 된다. 헌재는 앞서 이번 탄핵심판의 쟁점을 국민주권·법치주의 위반, 권한남용, 언론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뇌물수수 등 형사법 위반으로 정리했다.
헌재의 이번 탄핵심판은 한국 사회에 여러 의미를 던질 것이다. 헌재는 국가 최고권력인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것 못지않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실체적 진실을 국민 앞에 명명백백히 밝혀야 하는 역사적 책무가 있다. 이번 탄핵심판을 촉발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10월 말 처음 제기된 뒤 2개월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언론 보도를 통해 검증되지 않은 추가 의혹들이 계속 보도되면서 국민은 혼돈과 혼란을 겪고 있다.
헌재는 앞으로 심리과정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사실과 본질에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탄핵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헌재의 판단은 국민적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다. 헌재는 앞으로 재판 진행과정에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관련 의혹을 정리하고 사실관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탄핵에 대한 최종 판단을 해야 한다. 이번 대형사건에서 우리 사회가 어떤 교훈을 얻을지는 헌재의 심리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6. 속 보이는 새누리당의 포퓰리즘 정책 경쟁
정치권의 ‘개혁 선명성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2일 야당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최저임금 인상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3일에는 재벌개혁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이현재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재벌의 경영 투명성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커지면서 재벌개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며 “9일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공청회를 개최해 조속히 당론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에서 분리된 개혁보수신당에 맞서 새누리당도 개혁입법 경쟁에 가세한 모양새다.
그동안의 새누리당 같지 않은 이런 정책변화는 보수신당에 밀리거나 촛불민심을 외면하고서는 존립기반 자체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 인적청산의 고삐를 죄면서 좌클릭으로 정책변화를 추진하는 이유다. 정우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촛불 민심이 요구하고 있는 각종 개혁입법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조기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모두 개혁 선명성 경쟁에 나서면서 포퓰리즘 정책이 만연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여전히 노동계편향적인 상황에서 보수신당도 ‘안보는 보수, 경제는 개혁’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정강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새누리당도 개혁경쟁에 가세했으니 갈수록 민심을 사기 위한 포퓰리즘 경쟁이 가열될 게 뻔하다.
우리는 이미 정치인들이 포퓰리즘 정책에 매달리다 값비싼 대가를 치른 사례를 수없이 경험했다. 최저임금이 높게 조정되면 영세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고 재벌개혁은 성장잠재력을 훼손시키고 기업가정신을 약화시킨다. 자칫 가뜩이나 취약한 경제를 망치는 지름길일 수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 없이 정당만을 유지하기 위해 개혁을 외친다면 너무 염치없는 짓이다.
[매일신문]
7. 열악한 지역 서점 생존권 빼앗는 ‘유령 서점’ 뿌리 뽑아야
대구의 공공도서관과 학교 등의 도서 납품 입찰 과정에 유령 서점이 마구 참여해 거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 가뜩이나 경영난에 시달리는 동네 서점의 목줄을 죄고 있다. 이는 현 제도로는 실제 서점 사업자 외에 유령 업체 참여를 막을 방안이 없는 탓이다. 또 유령 업체는 납품 자격을 돈을 받고 실제 서점에 판권을 팔아 이익까지 챙기고 있다.
이런 문제는 지난해 11월의 학교 도서관용 도서 납품 입찰 참여 서점 수만 봐도 알 수 있다. 2015년 기준, 대구의 서점은 184곳이지만 입찰 참여 업체는 무려 300곳이었다. 실제 서점보다 116곳이 많다. 이들은 본 사업 외에 사업자등록증에만 서점업을 넣은 유령 서점일 가능성이다.
서류상 업체들이 학교 급식 업체 입찰 과정에 무더기로 참여해 거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과 다름없는 현상이다. 이는 가짜 급식 업체를 들러리로 세워 진짜 급식 업체의 낙찰 가능성을 높이지만 유령 업체의 도서 입찰은 실제 서점의 낙찰 기회를 빼앗고 판권을 팔아넘긴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하지만 공정한 입찰의 방해는 같다.
특히 유령 업체의 입찰 참여가 끼치는 해악은 골목 서점의 열악한 영업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 ‘2016년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대구지역 서점은 2005년 324곳에서 2015년 184곳으로 140개(43%)가 없어졌다. 전체의 절반 정도가 문을 닫거나 영업을 포기했다.
이 같은 대구의 영세한 중소 서점 경영난과 폐업은 대형 서점의 잇따른 진출과 매장 확장 등 공격적 영업 전략의 영향도 크다. 그렇지만 유령 업체의 입찰 비리에 따른 골목 서점의 영업 환경 악화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도 수사 당국은 이를 막을 적극적인 활동도 않고 대구시와 대구시교육청 같은 입찰 관련 행정 당국조차 손을 놓고 있다.
만연한 유령 업체의 마구잡이 입찰 참여와 실제 서점 간의 판권을 둘러싼 짬짜미 같은 거래 관행을 그냥 두고 동네 서점을 구할 마땅한 대책은 쉽지 않다. 따라서 우선 행정 당국은 입찰에서 유령 업체를 가려낼 서점인증제 등 장치를 마련하고 사법 당국도 수사에 나서야 한다. 동네 서점도 살리고 불공정 거래 근절을 위해서 빠를수록 좋다.
8. 천정부지 계란값, 정부가 근본 대책에 손 놓은 결과다
지난해 11월 중순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계란 가격이 급등해 소비자 부담과 시장 혼란이 커지고 있다. 12월 들어 닭`오리 도살처분이 본격화하면서 계란 가격이 뛰기 시작해 한때 특란 30개 한 판에 1만원을 웃돌았다. 지금도 평소와 비교해 소비자 가격이 50%가량 높은 등 사실상 가격 통제가 불가능한 ‘계란 대란’ 상황이 여전하다. 게다가 수급 불안정이 올 한 해 내내 지속될 전망이어서 보다 적극적인 수급 방안과 AI 방지를 위한 근본 대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4일 신선란과 계란 가공품 등 8개 품목의 무관세 수입 등을 내용으로 한 계란 수급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오는 6월까지 수입 절차 간소화와 수입 대상국 확대 등을 통해 계란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다. 또 앞으로 2주간 계란 사재기 관련 합동현장점검도 진행한다고 밝혔다.
당장은 수입을 통해 공급량을 늘려 사태를 진정시키는데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지만 계란 가격과 시장 상황을 되돌려 놓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무엇보다 AI 피해가 거의 매년이다시피 반복할 경우 소비자와 농가, 유통 업체 모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계란 수입 등 임시방편은 방편대로 추진하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다. 무엇보다 이번 AI 사태가 최단 기간에 최대 피해로 예상되고 있다는 점에서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근본 대책이 시급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일 기준 도살처분된 닭`오리 가금류는 3천33만 마리로 국내 전체 사육량의 20%에 가깝다. 특히 알 낳는 닭인 산란계는 사육량의 30% 넘게 피해를 입었다. 이 때문에 피해 보상금 등으로 최소 3천억원이 넘는 정부`지자체 재정을 지출해야 하는 등 손실이 이만저만 아니다.
정부는 보다 실효성 있는 방역체계 구축과 계란 유통 구조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3, 4단계를 거치는 유통 구조를 단순화해 유통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전국 약 50곳에서 운영 중인 공판장 개념의 계란유통센터를 더 확대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더는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항구적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9. 말 따로 행동 따로인 민주당의 안보 행보
더불어민주당의 ‘안보 강조’ 행보가 부쩍 잦아졌다. 추미애 대표는 3일 전방 부대를 방문해 “안보 없는 평화도 있을 수 없고, 평화 없이는 민생도 경제도 작동되지 않는다”며 안보를 강조했다. 문재인 전 대표도 북한 김정은의 신년사에 대한 2일 성명에서 “(북한이) 올해 우리 정국의 변화기를 틈타 과거처럼 불순한 의도로 허튼짓을 하려 한다면 우리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말 대로라면 민주당은 ‘확실한 안보 정당’이다.
하지만 실제 행보는 정반대다. 송영길 의원 등 민주당 의원 8명이 중국 정부와 공산당 고위 관계자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4일부터 6일까지 중국을 방문하는 것이 그 증거다. 이들이 내세우는 방문 목적은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민간 차원 보복 문제의 해결이다. 그러나 중국 고위 관계자들과의 논의가 그런 것에 국한하지는 않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문 전 대표가 제기한 ‘사드 배치 연기’와 관련해 중국과 민주당 간의 ‘의미 있는 소통’이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민주당의 행적은 이런 추측을 잘 뒷받침한다. 지난해 사드 배치 결정 후 민주당은 일관되게 반대해왔다. 당시 민주당 초선 의원 8명은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뜻을 물어보겠다며 굴욕적인 중국 방문을 강행했다. 그러나 사드가 안 된다면 무엇으로 1천여기에 달하는 북한의 미사일을 막을 것인지는 제시하지 않았다. 무책임하고 무능한 ‘반대를 위한 반대’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사드 배치를 다음 정부로 넘기라고 했다. 그 뜻이 단순한 ‘배치 연기’가 아니라는 것은 국민 누구나 안다.
누구나 추 대표나 문 전 대표처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안보는 말만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기댈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 중 하나가 사드다. 이젠 다시 얘기하기도 지겹다. 사드도 안 된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결국 민주당의 ‘안보 행보’는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하다. 이런 식으로 국민을 계속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오산이다.
[동아일보]
10. 탄핵심판 불출석한 朴 대통령, 헌재 권위 무시하나
박근혜 대통령은 예상대로 탄핵심판정에 나오지 않았다. 어제 오후 2시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첫 변론은 박 대통령의 불출석으로 9분 만에 끝났다. 박한철 헌재 소장은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의결돼 헌법이 상정하는 통치구조에 변동을 초래하는 위기 상황임을 인식하고 있다”며 “대공지정(大公至正·매우 공평하고 지극히 올바름)의 자세로 엄격하고 공정하게 최선의 심리를 하겠다”고 밝혔다.
헌재는 박 대통령에게 5일 출석할 기회를 더 줬지만 변호인들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불출석 전례를 들먹였다. 앞으로도 나오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시엔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이 없었다. 노 대통령의 선거 중립 위반은 당사자의 소명이 없어도 재판관들의 판단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에게 걸린 헌법과 법률 위반 행위는 9가지나 된다. 박 대통령 대리인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세월호 7시간 자료’를 철저하게 준비 중”이라고 밝혔지만 박 대통령 외에는 진실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 박 대통령이 심판정에 직접 출석해 소명해야 하는 이유다.
탄핵심판 청구인인 국회 측은 1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의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있었던 박 대통령의 발언에 비선 실세 최순실 씨를 지원한 정황이 들어있다고 보고 기자간담회 전문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심판정 밖에서 자기변호를 하고 있다. 신년 간담회에서 “(뇌물죄 의혹은) 나를 완전히 엮은 것”이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피청구인인 대통령이 심판정 밖에서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헌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의 특검 진술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근무하는 대한항공 지점장의 인사 문제까지 부탁했다고 한다. 측근들은 사법기관에서 박 대통령의 죄를 지목하는데, 대통령 혼자 나는 아니라고 여론전을 펼쳐서야 되겠는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법사위원장으로 국회 측 소추위원이었던 김기춘 의원은 “대통령의 불출석은 헌재의 권위와 국민을 무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그의 말은 부메랑이 되어 박 대통령에게 돌아왔다. ‘최순실 없는 국정조사’에 이어 ‘박근혜 없는 탄핵심판’이 돼서는 안 된다. 박 대통령은 장외 여론전을 펼칠 게 아니라 심판정에 나와 법리 공방을 벌여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마지막 기대에 답하는 길이다.
주요신문칼럼
1. [동아일보][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장애가 있는 친구와 내 아이
학교에서 돌아온 민수(9)는 거실에 가방을 탁 던지며 “엄마, 은호 때문에 너무 짜증 나. 정말 같이 못 놀겠어”라고 말한다. 은호는 자폐 증상을 가진 같은 반 남자아이다. “그렇게 말하면 못써. 나쁜 사람이야. 은호는 아픈 아이잖아. 엄마가 그런 친구는 잘해 줘야 한다고 했잖아.” 엄마의 말에 민수는 억울한 듯 소리를 질렀다. “잘해 줬다고! 알림장 적는 것도 도와주고! 놀아도 주고! 근데 미니카 접어주고 있는데 갑자기 내 색종이를 죄다 가져다가 찢었단 말이야!”
통합교육을 하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이럴 때 부모들은 대부분 “네가 참아야지. 그런 걸로 힘들어하면 안 돼”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정말 힘들다. 본인도 어리고 미숙한데 무조건 이해하고 참고 도와주는 것은 솔직히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이럴 때는 우선 아이의 힘든 감정부터 수긍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맞아. 힘들지. 이해해”라고 말해준다. 아이가 “난 걔가 우리 반인 것이 싫어!”라고 말해도 “너 그러면 나쁜 사람이야”라고 혼내지 말고 “그런 마음도 들지. 이해는 해”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 다음 아이의 눈높이와 입장을 배려하여 어떻게 대처할지를 알려주는 것이 맞다. 그 친구가 소리 지르고 달려들거나 꼬집거나 때린다고 하면, 그때도 ‘그냥 참아라’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싫지. 피해. 네가 어떻게 그걸 다 참고 천사처럼 버티니? 엄마는 그러라고는 말 못 해. 억지로 같이 놀아주라고도 안 해. 그 친구를 위해서는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많이 애쓸 거야. 그 친구 엄마도 그 친구가 좀 더 잘 클 수 있도록 노력할 거야. 네가 무조건 참고 노력할 필요는 없어. 다만 엄마가 너에게 바라는 것은, 그 친구를 적어도 싫어하거나 미워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이야”라고 진지하게 말해준다. 그러면 아이가 그 친구를 조금 덜 힘들어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장애를 가진 친구’를 말할 때, ‘나와 다른 어려움이 있는 친구’라고 한다. 우리는 그런 친구를 말해줄 때, 애써 도움이 필요한 친구, 아픈 친구, 좀 모자란 아이, 돌봐주어야 할 대상, 장애우라는 말들을 쓴다. 그런데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이미 그 친구를 내 아이와 평등한 관계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주면 아이는 그 친구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키가 유난히 작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 큰 사람도 있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못하는 사람도 있다. 화를 잘 참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사람은 다 다르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어려움 또한 다 다르다. 그 어려움이 조금 더 강하고 많아서 더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을 가지고 있든, 그 강도가 어떠하든 그들도 우리와 똑같다. 아이에게도 장애가 있는 친구를 이렇게 설명해줘야 한다. 장애를 가진 친구는 나와 가지고 있는 어려움의 종류가 다른 것뿐이라고.
다 양보하고 받아주라는 것은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줘도 좋고 싫으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줘도 된다. 그래야 아이가 그 친구를 편안하게 ‘우리 반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아이가 그 친구와 놀 수 없어서 불편하다고 하면, “너, 너희 반 아이들이랑 다 친하고 다 잘 놀아?”라고 물어준다. 대부분 아니다. “그 친구도 그런 거야. 다른 친구랑 똑같아. 그 친구랑 놀고 싶으면 노는 것이고 놀기 싫은 날은 안 놀아도 좋아. 그렇다고 그 친구를 따돌리면 안 되는 거지. 같이 살아가는 거야.”
좀 큰 아이들에게는 이런 얘기도 해준다. “모기가 옮기는 지카 바이러스 알지?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머리가 작게 태어난 아이는 생각하는 것이나 공부하는 것이 좀 어려울 수 있어. 그런데 그건 그 아이 잘못이 아니잖아. 얼마나 억울하겠니? 이건 누가 잘났고 못났고 노력하고 노력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야.”
더 큰 아이에게는 “예기치 않게 사고가 많이 나잖아. 사람은 어려움이 없다가 생기기도 해. 어제까지는 멀쩡했지만 다칠 수도 있는 거야. 어려움이 있건 없건 모든 인간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라고 말해준다.
장애를 가진 친구를 이해하고 돕도록 하는 교육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사람은 모두 각기 다른 어려움을 갖고 있으며, 어떤 종류의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건 하늘 아래 모두 평등하며, 서로 존중하며 어울려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가치를 먼저 가르쳐주었으면 좋겠다.
2. [동아일보][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 토마토와 소스
한여름 날 오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는 하얀 설탕이 곱게 뿌려진 토마토 슬라이스를 준비해 주셨다. 촉촉하고 달콤했던 토마토는 그 시절 최고의 간식이었다. 내가 살던 오키나와는 2차 세계대전 말 전쟁의 후유증으로 모든 것이 넉넉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간 레스토랑에서 처음 먹어 보았던 오므라이스. 불룩한 모양에 빨간 토마토케첩으로 줄이 그려져 있고, 어느 나라인지도 모를 국기로 중앙을 장식한 요리는 황홀했다. 오므라이스가 오믈렛과 라이스의 합성어인지조차 모르는 나이였다.
식물학적으로 나눠 볼 때 토마토는 과일류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는 채소로 알고 있다. 1893년 미국 대법원에서 토마토가 과일이냐 채소냐를 놓고 싸움이 벌어졌는데 당시 토마토가 디저트가 아니라 요리의 재료로 주로 사용된다는 이유로 채소로 구분됐고 억울하지만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어린 시절 토마토를 마치 과일처럼 설탕 뿌려 내주었던 어머니는 토마토가 과일이라는 걸 아셨던 걸까. 하지만 그 시절 내가 먹었던 토마토는 싱싱한 야채 맛에 가까워 설탕의 달콤함만 기억나게 한다.
우리가 먹는 토마토는 파란 상태로 따 진열대에서 숙성된 게 대부분이다. 제대로 익은 상태에서 딴 토마토는 풍기는 향부터 다르다. 생으로 먹든, 조리를 하든 최고의 식재료가 주는 맛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미각의 시작이다.
1975년 내가 처음 남미로 배낭여행 갔을 때였다. 콘 토르티야와 함께 먹은 토마토살사(다진 고수와 향신료, 양파와 라임주스를 짜 넣은 잘게 썬 토마토 요리)는 남미의 태양열을 흠뻑 맞은 것 같은 자연의 맛과 상큼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27세가 돼서야 제대로 된 토마토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그후 미국 뉴욕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시절, 주방은 전 세계에서 몰려온 요리사들로 북적였다. 보통 식당은 점심 서빙 시간이 끝나고 오후 3시쯤 직원 식사가 시작된다. 각국 요리사들이 한 번씩 돌아가며 준비하는 요리는 요리학교가 아닌 그들의 엄마나 할머니가 해주던 토속적인 요리가 대부분이었다. 때로는 손님들에게 나가는 요리를 제쳐두고 직원 식사에 더 열을 올리며 동지애를 키우고 주방에서 일하는 기쁨을 찾았다.
특이한 소스나 맛있는 요리를 먹을 때에는 침을 튀기며 칭찬을 했다. 비위를 잘 맞춰 기분이 좋아지면 으쓱대며 자기 집안의 숨겨온 레시피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알게 된 레시피를 사용할 때면 요리했던 친구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비슷한 요리라도 만드는 개개인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완성되는 게 손맛이다. 나라와 지역에 따라 미트소스조차 다 다르다. 어떤 요리사는 고기 덩어리를 통으로 토마토소스에 넣고 3∼4시간 끓여 익힌 후 고기는 애피타이저로 먼저 꺼내 먹고 고기즙이 진하게 우러난 소스에 파스타를 넣는다. 이게 나폴리탄 토마토소스다. 다진 고기를 뭉치고 소스와 함께 맛을 낸 미트볼 파스타, 부스러기 고기조각을 손으로 다지고 익혀서 라사냐나 볼로녜세 파스타를 만들기도 한다.
멕시코의 살사는 소스라는 뜻으로 여러 요리에 사용된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 생선, 여러 가지 주재료와 곁들어지는데 메인 요리뿐 아니라 아침식사로 달걀과 함께 곁들여지기도 한다. 토마토는 그 색이 강렬해 영화의 음식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특히 나는 ‘대부’라는 마피아 영화를 좋아하는데 영화 속에서 가족 식사를 준비하고 먹는 장면을 보면 우리 요리사들이 직원 식사를 준비할 때 “우리 엄마가 최고의 요리사”라고 자랑하며 흥분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손에서 손으로 대를 이어 만들어진 토마토소스는 모든 세계 요리의 기본이고 중요한 소스의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인스턴트의 나라 미국에서는 케첩을 능가하는 토마토소스는 없다. 그들은 말한다. “맛이 없으면 케첩을 뿌려라”라고.
3. [동아일보][조경란의 사물 이야기] 탁상시계
사발시계라고 아시는지. 둥근 사발 모양의 탁상시계. 새해 첫날을 작업실 청소를 하면서 보냈다. 책장 먼지를 털고 마른 걸레로 책등도 문지르고, 그러다가 눈에 띄는 책들을 꺼내 몇 장씩 읽느라 시간을 다 보내버리고 말았지만. ‘방망이 깎던 노인’으로 잘 알려진 윤오영 선생 수필 ‘사발시계’도 오랜만에 읽었다.
‘철화로, 사발시계, 이것이 내가 갓 세간 나서 내 손으로 처음 장만한 세간이었다. 장롱 위의 똑딱똑딱 시계 소리를 들어가며 우리 젊은 내외는 철화로 가에서 밥을 먹었다. 새벽녘이면 따르릉 시계 소리에 아내는 부엌으로 나갔고 나는 비를 들고 마당으로 내려갔다’라고 시작하는.
나는 아직 세간을 나 본 적은 없지만 이 작은 작업실을 얻게 되었을 때 꼭 그런 기분이 들었다. 처음 장만한 세간들은 책상과 의자. 그러곤 벽에 못을 치고 가느다란 괘종이 달린 시계 하나를 걸었다. 그래도 무엇인가 부족한 것 같아 테이블 위에 장만해 놓은 게 알람 기능이 있는 은색 탁상시계.
깨끗해진 책상 앞에 앉았다. 새 탁상달력을 놓고 나니 비로소 2017년이라는 게 실감 났다.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 것일까 하는 진부한 말은 하지 않고 싶은데 그러기가 참 어렵다. 그 대신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옛날 옛날에 시간을 피하는 데 자신이 가진 시간들을 다 쏟아부은 사람들이 있었다. ‘지구의 중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시간이 더디 흘러간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젊음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사람들은 산 위로, 더 높은 곳으로 집을 옮겼다. 그 높이가 지위의 상징이 되기도 했단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 ‘몇 초 빨리 늙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다행히 자신들이 왜 높은 데만 고집하고 있는지, 거기서 더 좋은 게 뭐가 있는지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 다시 평지에서 산책을 하고 미소 짓게 되었다. 그리고 차갑고 공기도 희박한 산꼭대기에 계속 남아 있던 사람들은 제대로 나이가 들기도 전에 앙상하게 늙어갔다는 이야기.
과학자이자 작가인 앨런 라이트맨이 과학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시간의 유형에 관해 쓴 짧은 소설들 중 한 편이다. 그 책 ‘아인슈타인의 꿈’은 독자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시간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시계 이야기를 하다가 시간 이야기로 새버렸다. 가차 없이 또 한 해가 시작되었기 때문인가 보다. 그동안 어떤 시간을 살았나. 게으른 천성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매우 느리게라도 ‘오늘’에 성실하고 싶다. 작업실을 얻고 알맞은 자리에 시계들을 가져다 놓을 때의 첫 마음으로. 지금도 똑딱똑딱, 저 시간의 둥근 본질은 내일로 흐르는 데 있을 것이다. 아무려나 내가 알기로 분과 초가 생긴 것은 시계가 발명되고 난 후라고 한다.
4. [중앙일보][시선 2035]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지난해 한 달간 점심시간에 클래식 수업을 들었다. 토스카니니, 카라얀, 클라이버 등 대표 마에스트로들을 알아보는 수업이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일주일 중 하루 샌드위치를 먹으며 들은 강의였다.
당시 담당 출입처 관계자도 수업을 듣길래 반가움에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그의 수강 사실은 우리만 아는 암묵적 비밀에 부쳐졌다. 다른 관계자와 함께한 자리에서 ‘점심시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고 말을 꺼냈다가 그가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서다. 휴게시간인 점심시간에, 일주일 중 단 한 시간 듣는 수업을 그는 왜 숨기려 했을까.
궁금증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의 수강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대부분 “요새 일이 편한가 보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고 싶은 걸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대견해하는 선배도 있었지만 많지 않았다. 심지어 동기와 친구까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나도 안다. 이들도 우스갯소리로 건넨 말이다. 하지만 가치관은 원래 공론의 장에서 한 발언보다 말랑한 일상 속 농담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공사(公私)의 명확한 구분과 여유에 대한 반감을 스스로 확대재생산하고 있는지 모른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분한 키팅 선생은 시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 학생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것이다. 의학·법률·경제·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과 사랑은 삶의 목적이다.”
우리는 어떤가.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채 하루를 견뎌 내고 있지 않을까. 이력서 ‘취미란’에 쓸 게 없다는 어른들의 숱한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일·가정 양립이 안 되면 출산율이 낮아진다는데, 일·자아 양립이 안 되는 우리는 무엇을 낮추고 있을까.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2017년에 주목해야 할 키워드 중 하나로 ‘욜로(YOLO)’를 꼽았다. ‘너는 인생을 단 한 번만 산다(You Only LiveOnce)’의 앞 글자를 딴 이 말은 ‘현재를 즐기라’는 의미쯤 된다. 지난해 유난히 유행했던 사축(社畜·회사의 가축)·직장살이·쉼포족 등 자조 섞인 신조어에 대한 답인 것 같아 반갑다.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다만 ‘나’부터 바뀌지 않으면 결국 바뀌지 않는다. 새해를 맞아 일상에 변화를 줘 보면 어떨까. 노래방 아닌 현실에서 ‘브라보 마이라이프’를 불러 보는 거다. 나는 1월부터 아내의 허락하에 주말 기타 강습을 받기로 했다. 숨은 여유를 찾아 뭔가 시작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1월이다.
5. [매일신문][매일춘추] 새날을 시작하며
새벽, 인적이 드문 언덕배기에 오른다. 어둠 속에서 바람이 분다. 소금기와 비린내가 서린, 섬(울릉도)에서 맞는 지극히 평범한 바람이다. 오래도록 동으로 트인 허공을 바라본다. 묵직하게 불어오는 저온의 바람을 맞으며 나는 해를 기다린다. 금방이라도 무엇인가가 툭 튀어오를 것만 같은 수평선을 따라, 날것의 붉은 기운이 얼비친다. 사위는 아직 어둑한데 아주 먼 곳에서부터 차분하게 밀려오는 아침놀은 숨이 막히도록 붉다.
해가 솟는다. 촘촘히 도열하는 빛이 눈부시다. 민낯을 물들이며 별 볼일 없는 무명의 한 사람을 도드라지게 비춘다. 까마득한 정적 속에 나는 혼자 서 있다. 온 세상이 질서 있게 눈을 뜬다. 주변 풍경이 선명해지고 새날을 맞는 섬 기슭 민가들이 두루두루 환하다. 빈부와 학식, 귀천의 차별 없이 상서로운 기운이 고르게 흩어진다. 무결하고 복된 새해 맞으라는 덕담들이 금빛 윤슬이 되어 바다에서 섬으로, 섬에서 바다로 뻗어간다.
지난한 시간, 아쉬움은 뒤로하고 이제 우리 넉넉히 행복하였으면 좋겠다. 냉기에 온몸이 얼었다 한들, 매일 새날을 부여받으며 우리 이 땅 위에서 대대로 평온하지 않았던가. 사람과 풍경이 어우러져 대대로 이토록 고왔으리라. 이 밝은 빛을 위안 삼아 서로 등줄기 기대고 힘차게 힘차게 일어서던 우리. 새날의 아침을 맞는 이 땅의 민중들에게 빛은 참으로 공평하게 내린다. 질서 있게 세상을 비추는 이 평범한 빛들의 잔치, 남은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장엄한 희망이 되리라.
처음이다, 이런 느낌. 평생 잊지 못할 굉장한 오늘이다. 녹록지 않았던 날들이 저만치 멀어진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뜨겁게 달아오른다. 처음처럼 설레고, 마지막인 것처럼 못내 아쉬운 아침이다. 숨이 멎을 만큼 열정적으로 달려들어 뒤 돌아보지 않는 나의 오늘이 웅장하게 시작되고 있다. 큰 밝음을 향해 새로운 미지를 향해 육중한 열정으로 내달리는 나의 오늘들이 더 이상 무의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올해는 내 삶에 꽤 괜찮은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새해를 빌려 가장 ‘나’다운 삶의 전환을 꿈꿔본다. 설레고 새롭고, 아침 해처럼 가장 말간 영혼의 소유자이고 싶었다. 몇 해를 돌고 돌아 다시 꿈을 꾼다. 어렸을 적 출발선에서 신호음을 기다리며 긴장하던 천진한 꼬마는 벌써 마흔이 되었다. 정유년 아침, 마흔의 나는 다시 꼬마가 되어 ‘처음’을 위한 엄숙한 의식을 마치고 언 땅을 밟고 조심스레 언덕을 내려간다.
치부까지도 다 묻어줄 것 같은 눈부심, 밝게 떠오른 빛을 보며 처음으로 따뜻해지고 싶은 욕망을 품는다. 내려오는 길은 꽁꽁 얼었으나 바람 하나 없이 지극히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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