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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촛불’도 ‘태극기’도 헌재 결정 승복해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를 놓고 국론 분열이 빚어지는 터에 헌법재판소 결정에 무조건 승복하자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잇따라 제기되는 것은 고무할 만하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어제 임시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모든 정당이 헌재 판결에 대한 승복을 약속하자”고 제안했다. 인용이 되든, 기각이 되든 헌재의 결정은 헌법정신의 최종 확인이므로 누구나 승복하는 게 옳다는 취지다.
앞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지난 2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헌법기관인 헌재의 결정이 내려지면 여야를 포함해 모두 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바른정당의 대선주자 중 한 명인 유승민 의원은 더 나아가 이에 대한 대선주자들의 확약을 요구하고 나섰다. 헌재의 결정이 어떤 식으로 내려지든지 간에 반발이 작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내다본 제안들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난 1월 말 박한철 헌재소장 퇴임에 이어 내달 13일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임기가 끝나면 헌재 정원 9명 가운데 결원이 2명이나 생긴다는 사실이다.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으로 결정이 이뤄지는 헌재로서는 비상 국면이 아닐 수 없다.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이 이 재판관 퇴임 전인 내달 초에 마무리될 것으로 점쳐지는 이유다.
하지만 ‘촛불 민심’과 ‘태극기 민심’이 격렬히 맞선 지금의 상황에 비춰 헌재 판결로 사태가 깨끗이 정리될 것 같지 않다는 게 문제다. 한동안 촛불 집회가 위세를 떨쳤으나 요즘엔 태극기 집회가 목소리를 점점 돋우며 맞서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정치인들도 저마다 선동적 발언으로 ‘진영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 탄핵 인용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든, 기각으로 박 대통령의 임기가 그대로 지속되든 극심한 국론 분열이 빚어질 게 뻔하다.
지금까지 사실로 드러났거나 가능성이 큰 혐의는 최순실씨의 광범위한 국정농단, 정부의 블랙리스트 작성, 재벌들에 대한 박 대통령의 기금출연 강요 등이다. 한편에서는 헌법질서 위반이므로 마땅히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다른 한편에서는 그 정도는 탄핵감이 못 된다고 항변한다. 헌법 해석은 오롯이 헌재 몫이다. 자기 뜻과 다르다고 해서 헌재 결정에 불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독선이요, 헌법질서 위배다. 대선주자들과 여야 정당이 헌재 결정에 승복함으로써 탄핵 정국을 마무리하는 게 최선의 방안이다.
2. SRT의 떨림 현상 안전에는 관계없는가
수서고속철도(SRT)의 객실 진동이 심하다며 이용객들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열차가 흔들리는 바람에 노트북을 사용하기 어렵다거나 선반에 올려둔 가방이 떨어질 뻔했다는 민원이 제기됐다는 것이다. 심지어 울렁증을 느낀 사람까지 있었다니 마치 시골버스가 비포장도로를 덜컹대며 달리는 듯한 장면이 연상된다. 운영사인 (주)SR도 문제점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고 한다.
민원이 제기되면서 선로의 상태, 바퀴 밀착력, 충격흡수 장치 등의 여러 요인을 놓고 조사를 벌였으나 아직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점도 찜찜하기만 하다. 진동이 심한 옥천, 구미남, 대구남, 신경주 등의 구간에서 속도를 낮추는 정도로 임시조치를 취하고 있다니, 개통 2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입장에서 부끄러운 일이다. 차량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코레일이 내달까지 차륜의 삭정작업을 하도록 돼있다는 점에서 일단 결과를 지켜보고자 한다.
단지 승차감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구간을 운행하는 기존 KTX와 비교해서도 진동이 크다는 지적이고 보면 어딘가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개통 전 시승행사 때나 개통 직후에는 없었던 진동 현상이 갑자기 나타난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열차 운행이 본격화되면서 바퀴가 마모됐다는 이유도 제기되지만 개통 2달 만에 진동을 느낄 만큼 바퀴가 마모됐다면 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기존 KTX에 있어서도 여전히 여러 종류의 사고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전력설비 고장으로 열차 운행이 차질을 빚는가 하면 통신 장애를 일으키거나 운행 구간의 구조물 붕괴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더구나 열차 바퀴가 선로를 이탈하는 아찔한 사고까지 벌어진 마당이다.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감안해서라도 SRT만큼은 최대한 사고를 줄여나가야 한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SRT가 KTX와 경쟁체제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고객 서비스를 높이고 경영 효율화를 기한다는 기본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제살을 깎는 무리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을까 노파심이 앞선다. 자칫 사고 요인을 감추면서 운영 경쟁을 벌이는 경우도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객실의 진동을 단순히 민원 차원으로만 간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매일신문]
3. AI에다 구제역까지…축산 겹재앙 대책 없나
충북 보은 젖소농장에서 구제역이 올겨울 들어 처음 발생한 데 이어 전북 정읍에서 구제역 의심 신고가 들어왔다. 보은과 접해있는 상주와 김천 등 경북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고통받은 축산농가들로서는 악재가 겹치는 상황이다.
지난해 AI 발생 당시 초기 대응이 미온적이었던 것과 달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구제역 발생 직후 신속한 대응에 나섰다. 구제역 사상 처음으로 전국에 일시이동중지 명령이 내려졌다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전국 지자체들은 기존 재난안전본부를 ‘구제역 및 AI 방역대책 재난안전본부’로 보강하고 충북과 전북의 유제류 반입을 금지했다.
경북은 2011년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 사태로 악몽을 겪은 바 있기 때문에 상주와 김천은 물론이고 안동`의성`봉화`영천 등 지역에서 소독과 항체 형성 검사, 백신 접종 등 구제역 유입 방지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당국이 적극 나서고 있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이번에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는 기존에 국내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와 다른 유전형인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바이러스가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이다.
이번 구제역 역학조사 결과 모럴 해저드로 의심받을 만한 정황이 나온 점도 그렇다. 서류상으로는 5개월 전 모든 소들의 백신 접종을 마친 것으로 돼 있는 한 피해 농가를 상대로 이번에 조사했더니 항체 형성률이 5%에 그치더라는 정부 관계자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거의 매년 되풀이되는 가축 전염병으로 사회적`재정적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살처분 보상금의 경우 2011~2015년 1조8천500억원이 투입됐지만, 가축 전염병의 발생 주기는 오히려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게다가 가축을 키우기보다 살처분하고 보상금을 받는 게 속 편하다며 평상시 방역을 소홀히 하는 농가도 없지 않다. 이는 소독, 백신 접종, 살처분 및 보상 등으로 이어지는 현행 체계가 가축 전염병 확산 방지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을 환기시켜준다. 가축 전염병 방지에 대한 근본적인 발상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4. 집권 전제해 총리 ‘후보’에게 각료 제청권 주자는 민주당
변재일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10여 명이 국무총리 후보자도 대통령에게 장관을 추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인용돼 재선거로 대통령이 선출될 경우 그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 후보자가 장관 등 국무위원 후보자를 제청하도록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취지는 재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 새 내각을 신속히 구성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현행 법률은 재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됐을 경우 국무위원을 어떻게 임명하는지에 대한 규정이 없다. 이에 따라 신임 내각 구성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현행 법률상 국무총리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후보자’ 꼬리를 떼야 국무위원을 추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실질적인 이유도 있다. 현행 헌법상 각료 제청권자는 ‘국무총리 후보자’가 아니라 ‘국무총리’이다. 이에 따라 새 총리 후보의 각료 제청은 헌법상 불가능하다. 이는 현행 헌법하에서 새 대통령의 각료 제청은 국무총리직을 겸하고 있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개정안 발의의 속뜻은 이런 ‘사태’를 막자는데 있다. 집권은 ‘굳은자’란 얘기다.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를 떠나 새 내각을 전 정부의 총리가 추천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도 맞다. 하지만, 개정안은 하위 법률을 개정해 헌법을 우회하려는 것으로 위헌 논란을 피할 수 없다. 민주당이 개정안을 통과시키려면 위헌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야당은 바로 이런 이유로 지난해 11월 당시 임종룡 경제 부총리와 박승주 국민안전처 장관의 지명을 무효라고 했다. 두 사람을 지명한 이가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있다. 총리 후보자가 국무위원을 추천할 수 있게 됐다고 치자. 그런데 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을 경우 그가 추천한 국무위원은 어떻게 되나? 새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가 없는가? 참으로 복잡한 문제다. 이에 대한 민주당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결국 개정안 발의는 내 편한 대로 아무 법이나 마구 찍어내는 의회 만능주의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바로 청산해야 할 적폐다.
[세계일보]
5. “인적 청산 다 했다”는 새누리당, 아직 멀었다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어제 바른정당을 향해 “우리 당의 인적 청산이 안 돼 분당했다고 그러는데 그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했다. “그분들이 분당해야 되는 이유가 없어졌다”며 “그냥 우리 당으로 들어오면 될 것 같다”고도 했다. 바른정당과의 연대 문제를 놓고 당대당 합당론을 일축하며 입당론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그 전제부터가 잘못됐다.
그는 지난해 12월23일 비대위원장에 내정된 뒤 인적 청산을 하겠다며 법석을 떨었으나 결과는 초라하다. 일부 핵심 친박계 의원의 당원권을 정지(서청원·최경환 3년, 윤상현 1년)하는 징계조치를 내린 것이 전부다. 비박계 대거 탈당에 따른 분당 사태가 벌어진 건 인 위원장과 당의 쇄신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 지지율을 합치면 50%가 넘는다. 2007년 대선을 한나라당이 주도한 것처럼 이번 대선이 ‘야와 야의 대결’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보수 진영은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 활로를 모색해야 할 절박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럴 각오가 안 보이는 새누리당은 되레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간 새누리당이 보인 행보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아직 변변한 대선 주자 한 명 없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중도하차하니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영입하려고 기웃거린다. 당 소속 대선 주자라는 인사들은 전혀 존재감이 없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 이인제 전 최고위원 등이 대통령 탄핵 반대를 위한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건 전통 지지층을 결집해보자는 퇴행적 셈법에 지나지 않는다. 보수의 기본 가치인 책임·희생이 없는 한 새누리당 몰락은 시간문제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보수의 이념과 가치에 뜻을 같이하는 모든 사람과 세력은 보수 적통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메아리가 없다. 최순실 사태로 무너진 보수의 가치를 어떻게 재건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건지 제시하지 못한 탓이다. 고작 한다는 게 당명 개정이다. 새 당명으로 ‘자유한국당’ ‘보수의 힘’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비전 없이 이름이나 바꾼다고 당이 회생하고 탈당한 의원들이 돌아오겠는가. 마치 식당 메뉴는 바꾸지 않고 간판만 바꿔 단 꼴이다.
집권여당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겨우 10%를 턱걸이하는 수준이다. 왜 국민으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눈가림식 ‘신장개업’을 한다면 당의 재건은 백년하청이다.
6. ‘교육 공약’ 논의는 반갑지만 추진은 신중하게
대선 정국을 맞아 정치권에 교육 공약이 홍수를 이룬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그제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현재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미래에 대비할 수 없다”며 “교육부를 폐지해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지원처 체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학제를 ‘2년(유치원)-5년(초등학교)-5년(중·고등학교)-2년(진로탐색 또는 직업학교)’으로 변경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교육부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는 안을 내놨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사교육 전면 폐지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했다.
대선 주자들이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교육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표만 의식해 비현실적인 공약을 남발해서는 곤란하다. 향후 시행 과정에서 야기되는 부작용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정권마다 반짝하는 일회용 정책이 돼서는 안 된다.
교육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령모개식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비일비재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교육공약으로 선행학습 금지, 고교 무상교육, 반값 등록금 등 굵직한 정책들을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에 공교육 강화를 통해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장담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들 공약은 결국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교육정책은 정권 출범에 맞춰 바꾸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립돼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현재 거론되고 있는 국가교육위원회가 매년 향후 10년의 계획에 합의하고 교육지원처가 이를 지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판단된다. 교육계획의 수립에도 정부의 일방적 결정 방식을 탈피해 교사, 학부모, 여야 정치인들을 참여시킨 점도 주목할 만하다.
유독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교육공약은 국민적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의 관점에서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 교육정책이 5년 단위로 출몰을 거듭하는 구태를 답습해선 안 된다. 이번 대선 주자의 공약에서도 아직 설익은 주장들이 적잖게 눈에 띈다. 학제 개편, 사교육 전면 금지 등이 대표적이다. 앞으로 대선 과정에서 논의는 더욱 활발히 하되, 추진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서울신문]
7. 특검, 기한 내 끝낸다는 각오로 수사하라
특검이 최근 수사 기한 연장으로 방향을 잡은 듯하다. 이규철 특검보가 최근 “14개 수사 진행 상황이 부족하다고 판단돼 수사 기간 연장 승인 신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힌 것이다. 특검법상 1차 수사 기간은 오는 28일까지인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승인한다면 한 달간 연장이 가능한 상황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실태를 파헤치고 있는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 의혹과 문화계 블랙리스트, 비선 의료 농단은 물론 ‘세월호 7시간’ 의혹까지 수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여기에 삼성과 롯데, SK등 뇌물공여 혐의 기업들이 대가성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검 수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검으로서는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응해 박 대통령 대면 조사로 보강한 뒤 대가성 거래 의혹을 받는 다른 기업들도 본격 수사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2월 말 또는 3월 초로 예상되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시기를 고려해 박 대통령의 신분 변화에 따른 조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로선 특검 수사 기한 연장 여부는 승인권자인 황 대통령 권한대행의 의지에 달려 있는 듯하다. 황 대행 측은 “특검의 요청이 오면 그때 검토할 것”이라고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그가 특검 수사에 부정적인 보수 강경론자와 행보를 같이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야권은 현행 70일에서 120일로 수사 기간을 연장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특검 수사 연장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탄핵 정국에서 자칫 민심이 요동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안의 중대성이 있다. 박 대통령과 변호인단이 지속적으로 특검의 수사를 방해하고 지연하는 전략을 쓴다는 인상이 강하다. 3번의 대국민 담화를 통해 검찰 수사 협조를 약속했지만 보란 듯이 거부했고 국정 농단 자체를 부인하는 상황이다.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마저 무산돼 특검 수사가 근본적인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선 박 대통령의 수사에 대한 태도가 특검 수사 기한의 연장 여부의 키를 쥐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대면 조사 등에 당당하게 임하면서 특검의 부당성을 주장해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검 역시 국정 농단 실체 규명이란 역사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1차 수사 기한 안에 끝낸다는 각오로 수사에 박차를 가하길 당부한다.
8. 한국 조폭 사살하겠다는 두테르테의 언어도단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최근 자국 내에서 활동하는 한국 조직폭력배들을 필리핀인 마약사범처럼 사살할 수 있다고 경고해 비난을 사고 있다. 두테르테는 지난 4일 자신의 고향인 필리핀 남부 다바오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조폭들이 세부에서 매춘, 마약, 납치에 관여하고 있다는 정보를 보고받았다”면서 “불법을 자행하는 한국인은 외국인이라고 특권을 누릴 수 없고 내국인 범죄자들과 똑같은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현지 한 언론이 보도했다.
필리핀은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살인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다. 매년 10여명이 필리핀에서 희생된다고 한다. 이쯤 되면 필리핀의 최고 권력자로서 한국민을 향해 백배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외려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언어도단이 따로 없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 보호해야 하는 주권국가로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조직폭력배라고 해도 그들을 마음대로 죽일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오로지 법에 따라 사법 처리할 뿐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다. 더구나 지금 인권을 중시하는 전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사형제도를 채택한 나라도 무기징역 등으로 사형제를 대신하는 추세다. 그런데 필리핀 대통령이 남의 나라 국민을 자국민 마약범처럼 재판도 없이 ‘묻지마 현장 사살’을 한다니 제 정신인가.
사실 그는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면서 수천여명의 마약범죄자들을 죽여 필리핀 내 인권단체는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비난받는 처지다. 그는 범죄자들에게 최소한의 변론권과 재판 기회조차 박탈하는 반인권적인 통치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죽이지 않고는 전쟁을 할 수 없다”며 초법적인 범죄 소탕 작전을 계속 벌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필리핀에서 지난해 10월 한인 사업가가 필리핀 경찰에 납치·살해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한인 관광객 3명은 불법 도박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경찰에 8시간 동안 구금됐다가 700만원의 몸값을 주고 풀려난 적도 있다. 한국인을 상대로 금품 갈취도 모자라 살인까지 일삼는 것이 필리핀 경찰의 민낯이다. 그러다 보니 두테르테의 한국 조폭 사살 발언도 범죄집단으로 전락한 필리핀 경찰의 한국인 살해 사건의 물타기 시도로 해석될 만하다. 외교부는 즉각 두테르테의 발언 진위를 파악해 그 발언이 사실이라면 정부 차원에서 강력 대응에 나서야 한다.
[매일경제]
9. 차기 정부 칼질 대비해 공무원 미리 늘려 놓는다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무원 수가 늘어나는 구태가 박근혜정부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경제가 행정자치부와 일선 부처를 통해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정원을 집계했더니 이달 현재 총 9만6532명으로 지난해 말보다 무려 1230명이나 증가했다. 공무원 정원은 박근혜정권 초기였던 2013년부터 꾸준히 늘었지만 올해 증가 폭이 가장 컸다.
그 배경에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단행될 조직 개편에 대비해 미리 몸집을 키워 놓으려는 부처 이기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달 탐사 사업을 추진한다며 연구 인력이 아닌 일반직 공무원을 뽑은 미래창조과학부를 비롯해 일부 부처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증원에 나서고 있다니 무책임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 임기 말 공무원 수가 큰 폭으로 늘어나는 현상은 거의 모든 정권에서 되풀이됐다. 행자부가 관리하는 정부조직관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노무현정부 첫해인 2003년 충원된 공무원은 182명에 불과했지만 정권 말인 2007년에는 5758명에 달했다. 이명박정부 때는 임기 내내 공무원 수가 줄었지만 박근혜정부로 바뀌자마자 증가세로 돌아섰다.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둔 레임덕 시기에 집중적으로 공무원 몸집 부풀리기가 이루어진 셈이다.
이런 병폐가 반복되는 이유는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각 부처가 조직 축소를 사전에 막기 위해 신규 사업과 업무 보강을 이유로 인력 확보에 나서면서 전체 공무원 수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증원 명분을 만들려는 정부발 조직 진단 용역 발주가 정권 3~4년차에 몰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니 한심할 뿐이다.
행정서비스 수준은 공무원 수가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조직이 비대해지면 옥상옥 구조를 만들어 오히려 행정 처리를 지연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국가 발전과 국민 편의를 위해 꼭 필요한 인력은 보강해야 하겠지만 부처의 덩치를 키우려는 목적의 인원 늘리기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수한 행정서비스는 공무원 수가 아닌 전체 정부 조직의 효율성에서 나온다.
차기 정권은 조직 개편을 단행할 때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을 위한 행정시스템 구축은 뒷전에 두고 집권 세력의 이념이나 색깔에 따라 정부 조직을 바꾼다면 정권 말 공무원 수가 급증하는 고질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0. 이정미 헌재 재판관 후임, 양승태 대법원장은 인선 서둘러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9인으로 구성한다'는 헌법 111조를 또다시 위반하는 일이 지속되고 있다. 박한철 전 헌재소장이 1월 말 퇴임한 데 이어 3월 13일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까지 퇴임하면 7인 체제로 바뀌게 된다. 이 같은 헌재 재판관 결원 사태는 명백한 헌법과 법률 위반이고 공정하게 재판받을 국민 권리를 침해하는 일인데도 후임자 선정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우리 헌법 113조는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 탄핵 결정을 할 때 재판관 6인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관이 7~8명으로 줄어들면 심판정족수를 채우기 힘들어져 심판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 이런 점을 우려해 '헌재 재판관은 임기 만료일 또는 정년 도래일까지 후임자를 임명해야 한다'고 헌법재판소법 6조에 명시해두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빌미로 박한철, 이정미 재판관의 후임 인선을 하염없이 미루고 있으니 걱정이다.
헌법재판관은 대통령·국회·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지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박 전 소장의 후임은 대통령 지명 몫이니 '대통령 권한정지'에 막혀 있다고 치자. 이정미 재판관 후임은 대법원장 지명 몫이니 당장 후임자 선정에 나서야 한다. 지금 지명해도 청문회를 거치면 보통 임기 시작까지는 30~40일이 걸린다.
이 재판관이 6년 전 1월 말에 지명됐던 사실을 감안해도 이미 후임자 선정 시기가 늦었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에 미치는 영향을 놓고 이런저런 억측이 나돌지만 누구에게 유리 또는 불리한지 한마디로 말하기 힘들다. 헌법재판소는 이 재판관의 후임이 누가 되든 법과 원칙에 따라 탄핵심판을 진행해 나가면 될 일이다.
헌법재판소에는 매년 2000건에 이르는 위헌, 권한쟁의 소송이 접수되는데 박 대통령 탄핵심판으로 이 모든 사건들이 보류된 상태다. 사건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재판관 7인 체제가 장기간 지속된다면 헌재 파행 운영은 심각한 국민 기본권 침해를 부를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당장 이 재판관 후임자 인선을 서둘러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조선일보][신화로 읽는 세상] 도깨비장난에 당했다고? 내가 쌓은 業일 뿐
한밤중에 나그네가 숲길을 걸어간다. 달빛 닮은 여인이 나타나 그를 유혹한다. 그녀의 오두막에서 기분 좋은 하룻밤을 보낸 나그네, 아침에 일어나니 부지깽이 한 자루를 안고 있었다. 지난밤 그를 유혹한 아름다운 여인은 백 년 묵은 여우 혹은 도깨비였다. '옛날 옛날에'로 시작되는 이 땅의 이야기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많았다. 캄캄한 밤이 만들어낸 환상은 얼마나 찬란하고 쓸쓸한가.
화제의 드라마 '도깨비'가 최근 끝났다. 도깨비가 있을까, 저승사자·귀신이 있을까 화제도 만발했지만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것을 어찌 있다 할 수 있을까.
그러면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존재, 명명할 수 있는 존재만 살고 있다 해야 할까. 나는 그 가설이 더 답답하다. 삼국유사에는 경주 황천의 언덕에서 밤마다 귀신들과 놀던 신라의 귀신 대장 비형랑 이야기가 나온다. 진평왕의 명령을 받아 귀신을 동원해 다리를 놓기도 했던 그는 귀신들의 리더였다. 그 다리는 귀신들이 놓았다고 해서 귀교(鬼橋)인데, 귀교라는 이름에 걸맞게 하룻밤 사이에 생겨났단다.
인생엔 정말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하룻밤 사이에 다리가 건설되기도 하고, 하룻밤 사이에 막강했던 권력이 무너지기도 한다. 하룻밤 사이에 이름을 얻기도 하고, 하룻밤 사이에 감옥 갈 일이 생기기도 한다. 하룻밤 사이에 누가 이런 일을 만드는가. 그러니 귀신 곡할 노릇이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그런 일은 귀신의 도움 혹은 저주, 다시 말해 귀신의 장난이 아닐까, 하여.
귀신들을 이끌고 하룻밤 사이에 다리를 놓았던 비형랑의 아버지는 신라 25대 진지왕이었다. 왕은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었다. 사량부에 사는 도화 부인의 자태가 도화꽃처럼 아름답다는 거였다. 보지 않고도 욕망은 커질 수 있는 것이었다. 젊은 왕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도화 부인을 불러들였다. 여자는 남편이 있다며 단호하게 왕을 거절했다.
권력이 매력이라고 착각한 왕은 분명 어리석었으나 그 민망한 상황에 화나 내는 졸장부는 아니었나 보다. 그는 싫다는 여자를 일단은 존중해서 돌려보냈다. 그리고 집요하게도 여자의 약속을 받아냈다. 남편이 없으면 그를 받아들이겠다는 약속이었다.
진지왕은 그해 폐위되고 죽었다. 당연히 여자는 그 약속을 지웠을 것이었다. 그리고 2년 후 여자는 남편을 잃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죽은 왕이 여자를 찾아와 까맣게 잊고 있었을 그 약속을 상기시켰다. 삼국유사는 이렇게 전한다. '왕은 7일간 머물렀다. 그동안 오색구름이 집을 덮고 향기가 방에 가득했다. 7일 후 왕은 사라지고 여자의 몸엔 태기가 생겼다.
죽어서도 죽지 않는 것이 있나 보다. 다 태우지 못한 진지왕의 염원 같은 것. 그래서 법구경은 재산도 벼슬도 모두 쓸고 가는 죽음 후에도 남는 것을 업(業)이라 했다. 죽어서도 죽지 않은, 지극할 수도, 끔찍할 수 있는 그것!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 그 아버지가 어떻게 통치했는지 보인다. 절대 권력 아버지의 권위적 태도만 닮은 딸을 보며 업 혹은 삶의 태도가 어떻게 남는지도. 자식이 부모의 운명을 반복하는 것은 부모에게서 살아가는 방식이나 태도를 배우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기치 않고 기대치 않은 사건을 도깨비장난이라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의 원인은 '나',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겠다. 하룻밤 사이에 권력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하룻밤 사이에 드러났을 뿐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듯 스스로 망치는 자를 망친다. 그러니 함부로 살 수 없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하늘이므로. 한 걸음 한 걸음이 '나'를 낳는 것이므로.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도깨비장난의 원인일 테니.
2. [동아일보][조경란의 사물 이야기] 에코백
나는 세 종류의 일간지를 읽는데 그래서 날마다 놀라고 배우고 생각하게 되는 일들이 더 생긴다. 최근에는 일회용 제품들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기사들을 여러 번 보았다. 카페에서 나오는 플라스틱 컵들이 하루 5t 트럭 한 대 분량이나 되고, 종이컵은 안쪽에 폴리에틸렌으로 코팅돼 있어서 쉽게 썩지도 않으며, 비닐봉지는 흙으로 변하는 데 무려 30∼40년이 걸린다는 믿지 못할,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 이번에는 특히 유리병에 관해 읽고 더욱 놀랐다. 맥주나 소주병을 재활용하지 않고 버리면 흙으로 분해되는 데만도 100만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니.
일회용 컵을 쓰는 게 언제부터 불편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고 텀블러는 ‘에코백’으로 불리는 천 가방에 넣어둔다. 가방(bag)과, 생태나 환경과 관련됨을 나타내는 에코(eco)의 결합으로 만들어졌을 단어, 에코백의 시작은 영국의 한 디자이너가 천으로 만든 가방에 ‘I‘m not a plastic bag’(나는 비닐 가방이 아닙니다)이란 문장을 새기고 판매한 후부터라고 한다.
2년 전 가을, 프랑스 북부 도시 릴의 문화축제에 참가하게 된 적이 있다. 며칠 동안 시간을 함께 보냈던 통역가가 헤어지는 날 나에게 “이거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라면서 차곡차곡 접은 에코백 세 개를 선물로 주었다. 그녀 역시 어깨에 그런 소박한 가방을 메고. 가볍고 실용적인 모양의 에코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광장이나 서점, 시장에서 몇 년 사이에 부쩍 많이 보게 된 것 같다. 내 눈에는, 우리는 이 ‘환경’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거주’하고 있으며 그래서 소중히 보살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면 지나칠까.
오랜만에 만난 제자에게 작은 에코백에 문학계간지 한 권을 담아 주었다. 책도 읽고 에코백도 어딘가에 다시 써 주겠지. 며칠 전에는 조카들이 수십 조각의 젱가 놀이 원목 조각을 담아놓았던 종이상자가 망가졌다면서 곤란해하기에 오래 써서 부들부들해진 천 가방 하나를 꺼내 주었다. 그사이 꽤 다양한 에코백들을 갖게 되었다. 그 여러 개 중에서 내가 가장 오랫동안 사용한 것은 독일 예나대에 갔을 때 얻은 얇고 누런 천 가방이다. 종탑과 보리수나무가 밤색으로 프린트된. 다른 사람의 에코백을 볼 때도 앞뒷면의 글자와 그림들을 훔쳐보는 재미가 있다. 그중 잘 아는 출판사 로고나 책 제목이 번듯하게 새겨진 가방을 발견하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학교 가는 날에는 광목으로 만들어진 튼튼한 에코백에 출석부와 책들을 넣어 갖고 다닌다. 언젠가 한 문학 기관에서 받은 가방이며 앞에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 ‘Korea is coming.’
3. [조선일보][태평로] 프랑스식 사랑
정치 신인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 대선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 나라 대선은 두 달 보름 남았는데, 마크롱은 후보 지지율에서 둘째다. 결선에 가면 지지율 1위인 마린 르펜을 더블 스코어로 눌러 이긴다는 분석이 나왔다. 프랑스는 여론조사 예측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나라다.
프랑스 대선은 대개 1차 때 극좌에서 극우까지 15명 안팎 후보가 출마하지만 결선투표는 으레 보수와 좌파가 맞붙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화당도 사회당도 가망이 없다. 극우인 르펜도 온건 중도를 표방한 마크롱에게는 양자 대결에서 진다.
마크롱에게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또 있다. 부인이 스물다섯 연상이다. 둘이 함께 있는 사진을 보면 모자(母子)지간 같다. 부인 브리지트 트로뉴는 마크롱이 열다섯 살이었을 때 그에게 문학을 가르치고 연극반을 지도하는 교사였다. 아이가 셋이고 남편도 있었다. 프랑스 북부 소도시 아미앵에 살던 트로뉴와 마크롱은 매주 금요일 대본을 들고 따로 만났고 연인 관계로 발전해갔다.
부모가 깜짝 놀라 마크롱을 파리로 유학 보내 둘 사이를 떼어놓았다. 그러나 마크롱은 트로뉴에게 "꼭 다시 돌아와 선생님과 결혼하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트로뉴도 이혼하고 아예 파리에 교사 자리를 구했다.
이들은 10년 전 결혼했다. 마크롱은 자신을 받아준 트로뉴의 자녀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올해 마크롱은 서른아홉, 트로뉴는 예순넷이다. 짓궂은 사람들은 뒤에서 쑥덕거렸지만 여론은 마크롱에게 열광하고, 드디어 30대 대통령이 탄생하는가에 관심을 쏟을 뿐이다.
소설 '연인'으로 유명한 여성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서른여섯 살 연하인 작가 얀 앙드레아와 16년을 연인으로 살았다. 알코올중독에 시달렸던 뒤라스는 앙드레아가 없었다면 1996년 세상 뜰 때까지 인생 마지막을 더 고통스럽고 힘들게 보냈을 것이다. 두 사람 얘기는 '이런 사랑(Cetamour-la)'이란 영화로도 나와 있다.
미테랑 대통령은 중년 이후 삶을 혼외 연인인 안 팽조 여사와 함께했다. 딸까지 두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미테랑은 마흔다섯, 팽조는 열아홉이었다. 스물여섯 살 차다. 미테랑의 부인 다니엘은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관저인 엘리제궁에서 살지 않고 따로 아파트를 얻어 지냈다. 미테랑 장례식 때 검은 상복을 입은 다니엘 미테랑과 안 팽조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무척 낯설었으나 프랑스인들은 담담하게 바라봤다.
프랑스 사람은 사랑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 사회적 평판이나 주변 눈치를 괘념치 않는다. 트로뉴가 말한 것처럼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을 놓치면 내 인생을 놓치는 것인지", 그것만 중요하다.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이 진실한 사랑인지 묻고 확인할 뿐이다. 언론도 유권자도 그걸 인정해준다. 유명 정치인에게도 똑같은 잣대를 갖다 댄다.
나라마다 독특한 문화가 있다. 무조건 닮자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저녁 삶을 누리고, 어떤 사람과 사랑하는지, 그런 부분이 본질을 흐리면 안 된다고 보는 것 같다. 당사자의 정치적 이념과 태도를 사생활과 섞지 않는다. 중심과 주변을 혼동하지 않는다. 이런 '프랑스식 사랑'이 그들의 힘일까.
4. [세계일보][신병주의역사의창] 임금님의 선물 한강 얼음
최근 연이은 추위로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 한강의 일부가 얼어붙어 있다. 올겨울 들어서 한강은 지난달 26일 공식적으로 결빙됐다. 한강의 결빙은 1906년부터 노량진 앞 한강대교 남단에서 둘째와 넷째 교각 상류 100m 부근의 결빙을 기준으로 관측하고 있다. 즉, 이 지점에 얼음이 생겨 물속을 완전히 볼 수 없는 상태를 한강의 결빙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전통 시대에 한강의 결빙을 누구보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사람들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겨울철 한강의 얼음을 떠서 동빙고와 서빙고에 보관했고, 궁궐 내에도 두 곳에 내빙고(內氷庫)를 설치해 왕실에서 사용하는 얼음을 공급했다. 정조 때에는 얼음 운반의 폐단을 줄이고자 내빙고를 양화진으로 옮겼다.
동빙고는 한강변 두뭇개, 지금의 성동구 옥수동에 있었고, 서빙고는 지금의 서빙고동 둔지산(屯智山) 기슭에 있었다. 19세기 서울의 관청, 궁궐 풍속 등을 정리한 ‘한경지략(漢京識略)’의 궐외각사(闕外各司) 조항에는 ‘빙고(氷庫)’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동빙고가 두뭇개에 있다. 제사에 쓰는 얼음을 바친다. 서빙고는 둔지산에 있다. 궁 안에서 쓰이고 백관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할 얼음을 공급한다. 이들 빙고는 개국 초부터 설치돼 얼음을 보관하고 공급하는 일을 맡았다. 동빙고에 옥호루(玉壺樓)가 있는데 경치가 뛰어나다”고 하여 동빙고의 얼음은 주로 제사용으로, 서빙고 얼음은 관리들에게 공급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서빙고의 얼음은 한여름인 음력 5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 종친과 고위 관료, 퇴직 관리, 활인서의 병자, 의금부의 죄수들에게까지 나눠 줬다.
얼음을 뜨는 것은 한양 안 5부의 백성들에게 부과된 국역(國役)으로, 이를 장빙역(藏氷役)이라 했다. 얼음은 네 치 두께로 언 후에야 뜨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난지도 등지에서 갈대를 가져다가 빙고의 사방을 덮고 둘러쳐 냉장 기능을 강화했다. 얼음을 뜰 때에는 칡으로 꼰 새끼줄을 얼음 위에 깔아 놓고 사람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했다. 얼음을 뜨고 저장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고 일이 끝나면 포상이 따랐다. ‘세종실록’에는 장빙군(藏氷裙)에게 술 830병, 어물 1650마리를 하사했다는 기록이 나타나 이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했음을 알 수가 있다.
얼음을 빙고에서 처음 꺼내는 음력 2월 춘분에는 개빙제(開氷祭)를 열었다. 얼음은 3월 초부터 출하하기 시작해 10월 상강(霜降) 때 그해의 공급을 마감했다고 한다.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으면 사한단(司寒壇)에서 추위를 기원하는 기한제(祈寒祭)를 올렸는데, 영조는 기한제 이후 얼음이 꽁꽁 얼자 제관(祭官)들에게 상을 내리기도 했다.
나라에서 설치한 빙고가 있었지만, 어물전이나 정육점 같은 곳이나 빙어선(氷漁船) 등에 활용되는 얼음이 크게 늘어나면서 공급이 부족하게 됐다. 18세기에 이르면 사적으로 얼음을 공급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돼 한강 근처에만 30여 개소의 빙고가 설치될 정도였다. 얼어붙은 한강에서 썰매와 스케이트를 타고, 얼음을 채취하는 모습은 이제 사라졌지만 1970년대까지 얼음이 채취됐음은 빛바랜 흑백 사진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5. [국민일보][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입을 여는 순간
타국의 식당이나 가게에 들어갔을 때 한눈에 한국인 인증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백발백중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한국인인 나를 한국인으로 본다. “어디에서 왔니?”라든지, “너 한국인이니?”라고 확인하는 절차가 전혀 없이도 어떤 사람들은 자신 있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건넨다. 그럴 때면 나 혼자만 식스센스급 반전에 휘말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저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그래서 한번은 물어봤다. “내가 한국인인 걸 어떻게 알았어?” 하와이의 빅토리아시크릿 매장에서 직원이 다가와 “한국 사람들은 이 제품을 좋아해. 이 제품도”라고 말했을 때였다. 외모로 국적을 가늠한다는 것이 내게는 영 어려운데, 그는 수많은 사람을 보다 보니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피부 톤이 다르고, 메이크업과 패션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건! “일행이 있을 경우에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좀 듣는 거야. 한국어인지 일본어인지는 구분할 수 있으니까.” 좀 허무해질 만큼 단순한,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정답’이었다. 왜 ‘말’을 잊고 있었지? 혼자 다닌 적을 제외하면 나도 끊임없이 동행에게 말을 하고 있었고, 그건 당연히 한국어였다. 생각해보면 말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계속 흘리고 있는, 가장 중요한 증거였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태국의 한 호텔에서 TV 채널을 돌리다가 자꾸 시선이 가는 배우를 보게 되었고, 그가 한국 배우 ‘지성’을 닮았다고 생각했으며, 결과적으로 그는 진짜 ‘지성’으로 밝혀졌다. 우습게도 태국어 더빙 덕에 나는 그가 한국 배우라는 것을, 그게 한국 드라마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사람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내 둔함을 감안하더라도, 드라마의 배경조차 너무나 ‘태국’적으로 느껴졌던 건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쯤 되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말이란 게 참 요물이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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