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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경제 불평등, 결국 성장에서 해답 찾아야
국내 상·하위 계층 사이의 소득 집중도가 자꾸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소득 상위 1%가 국민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2%(2015년 기준)로 역대 최고다. 상위 10%의 소득 비중도 48.5%를 차지하고 있다. 모두 세계 주요국 가운데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수준이다. 소득 불평등이 한계 상황에까지 이른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물론 양극화 현상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달 ‘다보스 포럼’에서도 앞으로 10년간 지구촌을 위협할 3가지 리스크의 하나로 경제적 불평등이 꼽혔을 만큼 산업화 사회에서는 일반화된 현상이다. 하지만 정도가 너무 심하다. 상위 10%의 소득 집중도가 일본(42.0%)이나 영국(39.1%), 스웨덴(30.7%)보다도 훨씬 높다는 점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심화 속도도 가파르다. 상위 10%의 소득 집중도는 1995년 34.7%에서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13.8%포인트나 높아졌다. 그동안 성장의 과실이 국민 전체에 골고루 돌아가지 않고 상위 계층에 집중됐다는 뜻이다. 갈수록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비정규직 확산에 부동산·금융자산에 따른 비급여 소득의 불평등까지 맞물린 결과다. 잎으로도 이런 추세가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게 문제다.
이런 사정이니 만큼 조기 대선이 다가오면서 유력 주자들이 경제·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부자 증세, 법인세 인상 등에서 보듯이 대체로 포퓰리즘 성격의 ‘분배’에 방점이 찍혀 있다.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걷어 저소득층의 소득을 보전하는 식의 정책도 필요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근본 해결책은 못된다.
우선은 성장 정책이 필요하다. 성장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 근로자 소득을 증대시키고 비정규직 차별을 줄여나가는 구조적 개혁이 중요하다. 성장과 고용 창출은 기업의 몫이다. 시류에 편승한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기업을 옥죄려는 시도는 좋은 방도가 아니다.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고용을 창출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정책 지원 등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우선 과제다.
[매일신문]
2. 가시적 성과 없는 박영수 특검, 우병우 수사에서 승부 내라
박영수 특검팀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특검은 우 전 수석 아들의 ‘운전병 보직 특혜’ 의혹에 대한 이석수 당시 특별감찰관의 조사가 조직적인 방해를 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들어갔다. 방해의 지휘부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라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특검은 이를 포함해 우 전 수석의 각종 혐의에 대한 사전 조사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금주 중 우 전 수석을 소환한다는 방침이다.
특검법상 우 전 수석과 직접 관련된 혐의는 세 가지다. 최순실 씨 비리에 관여한 의혹, 이 특별감찰관 해임에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 그리고 증거인멸 시도 또는 교사 의혹 등이다. 특검은 이와 함께 우 전 수석 가족회사인 ‘정강’이 이우환 화백의 그림을 포함, 4억4천만원어치의 그림을 구입하면서 횡령과 탈세 혐의가 있는지도 조사 중이다.
특검이 규명해야 할 우 전 수석의 비리 혐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얀마 대사 교체 과정에서 우 전 수석이 개입한 정황이 새로 드러났다. 민정수석실이 이중국적 자녀를 둔 외교관을 재외공관장에 임명할 수 없도록 한 인사 지침을 작성해 최순실 씨가 추천한 외교 비전문가를 대사로 앉혔다는 의혹이다. 그뿐만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급 간부 4, 5명의 좌천성 인사를 지시한 혐의도 밝혀내야 할 사안이다.
특검이 이렇게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높이는 것은 수사가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검은 활동 기간의 절반 가까이를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의혹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대통령을 뇌물 수수로 묶으려는 전략이었으나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특검은 아까운 수사 기간만 허비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 특검이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 규명이란 특검법의 본류(本流)에 충실해 우 전 수석을 수사의 앞순위에 올렸다면 어땠을지 궁금하다. 특검의 공식 수사 기간은 오는 28일까지로, 21일밖에 남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이 수사 기간을 연장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과연 남은 기간에 이런 의혹 모두를 수사해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지 못하면 박영수 특검은 특검의 ‘실패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된다. 특검이 다급하게 됐다.
[서울신문]
3. 첫 구제역 확진, AI 방역 실패 되풀이 안 된다
올겨울 첫 번째 구제역이 충북 보은의 젖소 농장에서 확인됐다고 한다. 사상 최악이라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꼬리를 완전히 내리지 않은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는 구제역이 발생한 것이다.
방역 당국은 보은 농장에서 사육하고 있던 젖소 195마리를 모두 살처분했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전국 10개 시·도, 41개 시·군에서 발생한 AI로 매몰 처분된 닭·오리·메추리는 모두 279만 마리에 이른다. 가금류 사육 농가에 이어 우제류 농가의 걱정은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 축산의 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또한 높아지고 있다.
구제역은 겨울철이면 찾아온다. 낮은 온도에서 활동성이 높아지는 구제역 바이러스의 특성 때문이다. 그럼에도 연례행사가 되다시피 하고 있다면 방역 체계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농림축산식품부는 소와 돼지 사육 농가에 구제역 백신 2회 접종을 지키라고 당부하기는 했다. 농식품부 조사 결과 보은 농장의 경우 접종이 충실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접종 기록은 있지만 적은 개체만 항체가 형성돼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정부가 책임을 농가에 떠미는 것에 불과하다.
공기 전파에 따른 전염력이 높은 구제역은 방역 당국의 권고가 아니더라도 백신 접종은 필수다. 하지만 접종했다고 100% 항체 형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백신 유통 및 접종 과정에서도 문제는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농가가 실제로 백신을 접종하고 당국에 신고했다고 해서 안전해진 것은 아니다. 결국 접종 이후 항체 형성 여부도 중요하다. 농식품부는 구제역 발병 확인 이후 보은 지역 소와 돼지 5만 5000마리에 긴급 예방 접종을 하기로 했다. 뒷북 행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전염병은 아예 일어나지 않도록 처음부터 철통 봉쇄하는 것이 최선이다. 따라서 올해 구제역 방역은 일단 실패한 것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방역 당국은 전국으로 확산된 AI의 재판(再版)이 되지 않도록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난해 10월부터 특별방역 대책 기간을 운영해 구제역 백신 항체율이 소 97%, 돼지 75%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농식품부는 AI방역에서 잃어버린 신뢰를 구제역 방역에서 되찾아야 할 것이다. AI 초동 방역에 소극 대응해 실망을 주었던 일부 지방자치단체도 이번에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 달라.
4. 저소득층 학생 성적 끌어올린 고려대 장학금
고려대가 지난해 1학기부터 도입한 보상이 아닌 지원 차원의 장학금 제도 혁신이 시행 1년을 맞았다. 고려대는 국내 대학 처음으로 성적장학금을 폐지했다. 당시 염재호 총장은 “성적보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대학 장학금 가운데 비중이 큰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을 없애고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생활장학금을 늘리기로 한 것이다.
해외 대학들이 성적을 기준으로 한 장학금 제도를 운영하지 않는 것과 같다. 포상 성격에서 벗어나 연구와 체험 등을 지원하는 장학금 제도로의 개편은 아름다운 실험이었던 까닭에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학생들의 등록금에 목매는 국내 사립대의 현실에 비춰 볼 때 참신한 시도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학업에만 전념해 뛰어난 성적으로 장학금을 타 온 학생들에게는 마뜩잖은 개선인 탓에 불만의 목소리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관행을 깨고 새로운 변화를 꾀하는 데 따르는, 즉 창조적 파괴를 위한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대는 지난해 폐지한 성적장학금 34억원을 저소득층 장학금, 학생자치 장학금, 해외탐방 프로젝트 등에 배분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저소득층 장학금은 91억 1500만원으로 2015년에 비해 14억원 늘었다. 등록금 전액 장학생도 가장 소득 수준이 낮은 1~2분위에서 1~5분위로 확대했다. 나아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방학을 포함해 매월 3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했다. 기숙사를 사용하면 생활비에다 20만원을 더 줬다. 이로써 2015년 1학기 저소득층 장학금 수혜 학생이 2401명에서 지난해 1학기 3383명으로 크게 늘었다.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돈과 시간적 여유를 제공한 것이다.
[조선일보]
5. 朴 대통령 774억 왜 최순실에 맡겼는지 설명할 때 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가 제시한 대통령 탄핵 사유에 대한 의견서를 지난 3일 헌법재판소에 냈다. 대통령이 대리인단의 답변서 형식이 아니라 본인 명의 입장을 헌재에 낸 것은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의견서에서 일부 기초적 사실관계는 인정했지만 예상대로 공무상 기밀 누설 의혹,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 의혹 등에 대해선 부인했다.
박 대통령 탄핵 사유 중 핵심은 대통령이 대기업들로부터 걷은 재단 출연금 774억원을 왜 공공기관이 아니라 깜냥이 될 수 없는 사인(私人) 최순실씨에게 맡겼느냐는 것이다. 대통령은 답변서에서 기업들이 문화·체육 진흥을 위해 자발적으로 돈을 냈을 뿐 자신은 재단 설립에 관여하지 않았고 최순실씨에게 재단 운영을 부탁한 사실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지금까지 나온 증거나 증언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재단 모금에 관여한 안종범 전 수석은 헌재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임원 명단을 박 대통령이 불러줬다"고 했다. 그 명단은 최씨가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보낸 것이었다. 이 명단에 있었던 K스포츠재단 이사장은 최씨의 단골 스포츠마사지센터 운영자였다. 미르재단 이사장은 최씨 측근인 차은택씨의 은사였다. 최씨는 두 재단 명칭과 사무실 위치까지 지정했다. 774억원 두 재단과 관련해 '최순실→박 대통령→안종범 전 수석'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사실(事實)로 다 드러났다. 박 대통령이 부인할 단계가 지났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문화와 스포츠 융성을 위해 재단을 설립한 것은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왜 최씨 일당에게 맡겼느냐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박 대통령 탄핵 여부도 이 핵심 문제에 대한 설명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고려대의 도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다. 한때 반발했던 학생들도 공감하고 있다. 바람직하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학생들이 공부할 시간을 가짐으로써 성적이 올라가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경험도 풍부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 탓에 학업에 열중하지 못해 성적이 나쁘고, 좋지 않은 성적 때문에 취업이 잘 안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순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 꿈도 못 꿨던 해외 대학의 교환 학생으로 다녀온 저소득층 학생도 있다.
다른 대학들도 장학금 지원 형태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꼭 필요한 학생들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기 위해서다. 소득계층 간의 격차를 해소할 뿐만 아니라 정부와 대학 간의 등록금 문제를 완화할 수도 있다. 빚을 안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학생들을 줄이는 방안이기도 하다. 한국장학재단의 소득연계형 국가장학금 제도 역시 같은 취지다. 경제적 사정 때문에 학업에 충실할 수 없는 학생들에게 “힘내라”라는 말 대신 실질적인 힘을 주는 것도 대학의 사회적 책무이자 역할이 아닐 수 없다.
6. '도덕적 해이' 그대론데 구제역 백신 무슨 소용인가
사상 최악의 AI(조류인플루엔자) 사태에 이어 충북 보은군에서 올 들어 첫 구제역까지 발생했다. 작년 3월 구제역이 발생한 지 11개월 만이다. 6일 전북 정읍에서도 구제역 의심 신고가 들어왔다. 정부는 이날 오후 6시부터 30시간 동안 전국 축산 농가 등 22만곳에 긴급 이동 중지 명령을 내렸다. 소나 돼지, 염소처럼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에서 발생하는 구제역은 공기로 퍼져 전염성이 무척 강하다. 정부는 AI 때 초동 대응 미흡으로 사상 최악의 살처분 파동을 초래했다. 그 실패가 구제역 방역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
AI에 이어 구제역까지 연중행사처럼 발생하고 피해는 갈수록 심해지는 걸 보면 우리 방역 체계에 뭔가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전국 축산 농가에 구제역 백신 접종은 의무화돼 있다. 농식품부는 작년 10월부터 올 5월까지가 '구제역 특별방역대책기간'이고 작년 말 기준으로 소는 97.5%, 돼지는 75.7%의 백신 항체 형성률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정부 발표를 그대로 믿기 힘들다. 당장 이번에 구제역이 발생한 충북 보은 젖소 농가만 해도 작년 10월에 백신을 접종한 기록이 있다는데 항체 형성률은 19%에 불과했다. 일부 축산 농가는 백신을 사놓고도 접종을 미룬다고 한다. 젖소나 비육우는 백신을 접종하면 일정 기간 사료를 덜 먹는다. 그만큼 우유나 고기 생산이 줄어들기 때문에 축산 농가들이 백신 접종을 미룬다는 것이다. AI때도 일부 농가와 관계자들의 무책임한 행태가 사태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
최근 50명 넘는 사상자를 낸 경기도 동탄신도시의 66층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 화재는 철거 공사의 안전수칙을 어긴 데다 스프링클러와 화재경보기까지 꺼져있는 바람에 인명 피해가 커졌다. 그렇게 큰 사고가 연발해도 도무지 나아지는 것이 없다. 작은 이익을 탐하다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도덕적 해이, '설마'하는 안전 불감증이 대한민국의 불치병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 병을 고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서 좋은 시설을 하고 좋은 약을 사놓아도 소용이 없다.
[동아일보]
7. 18명 구속됐는데 20년 보좌 정호성에 책임 떠넘긴 대통령
어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정농단의 주역 최순실 씨의 9차 공판에는 최 씨의 대통령 연설 수정을 처음 폭로한 고영태 씨가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고 씨는 “더블루케이의 실질 운영자는 최순실 씨로 내 회사라면 내가 왜 (최 씨에게) 잘렸겠냐”고 반문하며 자신이 ‘실질 운영자’라는 최 씨 주장을 반박했다. 더블루케이는 재벌들로부터 288억 원을 거둔 비영리법인 K스포츠재단의 돈을 자연스럽게 빼먹기 위해 최 씨가 설립한 컨설팅업체다. “최 씨는 40년 지기로 평범한 주부로 생각했다”고 밝힌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과 천양지차다.
고 씨는 최 씨가 운영하는 의상실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서도 “최순실이 차은택에게 장관이나 콘텐츠진흥원장 자리가 비었으니 추천해달라고 해서 그게 이뤄지는 것을 보고 또 예산 같은 걸 짜기 시작했는데 그 예산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을 봤을 때 겁이 났다”고 증언했다. 박 대통령은 최 씨의 국정 개입에 대해 ‘문화 쪽 인사만 추천했고, 그 추천도 다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인사와 예산에 대한 최 씨의 입김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 씨는 또 문화체육관광부 간부뿐 아니라 외교부 대사나 심지어 민간기업 인사까지 전방위로 간여한 사실이 특검 조사를 통해 이미 확인됐다.
박 대통령은 3일 자신의 탄핵 심판과 관련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13쪽짜리 의견서에서 국회에서 지목한 13가지 탄핵 소추 사유는 물론 4개월에 걸친 검찰 및 특검의 수사 내용까지 모두 부인했다. 그럼 최근까지 18명의 구속자를 포함해 검찰 및 특검에 의해 형사 처벌된 22명이 모두 억울한 누명을 썼단 말인가. 그렇게 떳떳하다면 청와대의 압수수색도 거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청와대 자료를 자진해서 제출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의 각종 기밀자료가 유출된 데 대해 “정호성 비서관에게 연설문, 말씀자료 이외의 다른 자료를 최서원(최순실 씨의 개명 후 이름)에게 보내도록 포괄적으로 위임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국가기밀 유출은 정 비서관의 ‘과잉 충성’이 빚어낸 일이지, 대통령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20년 가까이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정 비서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은 참으로 볼썽사납다. 국민은 정직과 책임을 잃은 최고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거둘 수밖에 없다.
[매일경제]
8. 성장 지체가 한국병 첫째 원인이라는 진단
청년 실업, 빈부 격차 확대, 계층 간 무한 갈등 등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 '성장 지체'에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매일경제신문이 한국의 위기 진단 및 활로 모색을 위해 진행 중인 '제2 한국보고서' 프로젝트에 참여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내놓은 진단이 그렇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국가 경제가 경제를 넘어 정치·사회적 갈등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인데 공감이 가는 지적이다.
한국 역사상 대학 졸업장이 곧 취업을 보장하던 시절, 매년 임금은 오르고 중산층 비중이 70%대 중반을 넘나들던 시절, 민간소비 증가가 내수 팽창으로, 이것이 대기업의 양질 확대로 이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먼 얘기가 아니다.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10여 년, 그러니까 불과 20년 전 일이다.
그때는 그때대로 경제가 고민이었고 정치·사회적 모순과 갈등의 골도 존재했지만 고민의 질이 지금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올해보다 내년이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 지금보다는 다음 세대에 더 근사한 나라가 돼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폭넓게 공유되던 시대였다. 그래서 그 시절을 한국 자본주의의 짧았던 황금기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런 믿음은 꿈처럼 아득해졌다. 대학은 백수 전락이 두려워 졸업을 유예하는 학생들로 넘쳐나고 본인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응답 비율은 20%대로 줄어들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한 후 10년째 3만달러 달성에 실패하면서 어쩌면 영원히 선진국에 이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좌절감이 우리 공동체 전반에 감돌고 있다. 그런 좌절감은 집단 간, 계층 간 갈등으로 전이되고 있다. 재벌에 대한 분노, 기득권에 대한 불신, 정규직에 대한 질시가 하늘을 찌른다.
이 모든 문제들은 20년 전 연평균 7~8%에 이르던 경제성장률이 2%대로 고꾸라지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일각에선 저성장 시대를 인정하고 여기에 적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아직 선진국 문턱도 넘지 못한 한국에는 해당이 안 되는 얘기다. 중진국 함정에 빠져 선진국 진입에 실패한 국가 중 중진국 지위나마 지킨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이 한국이 저성장 늪에서 빠져나와 재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세계일보]
9. 44년 만에 최저 어획고가 가르쳐준 '불편한 진실'
우리나라 어업 생산량이 4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연근해 어업 생산량은 지난해 92만3000t에 그쳐 전년보다 12.7% 줄었다. 197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최고 생산량을 기록한 1986년 173만t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이러다간 물고기 씨가 마를 것”이라는 우려가 결코 엄살이 아님을 보여준다. 어선 한 척당 연간 어획량도 연안어업의 경우 1972년 10.1t에서 6.2t으로 감소했다. 지난 수십년간 어선의 성능이 좋아졌는데도 어민들의 생계는 오히려 내리막길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연근해 어업 생산량이 반토막 난 가장 큰 이유는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과 남획 때문이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은 서해5도뿐만 아니라 남해와 동해 등 우리나라 전 해역에서 기승을 부린다. 최근에는 점차 조직화·흉포화되고 있는 양상이다.KMI는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에 따른 수산자원 손실이 연간 10만~65만t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통계는 주로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의 불법조업에 따른 손실을 따진 것일 뿐이다. 동중국해와 동해 북한수역에서 우리 수역으로 이동하는 어미·새끼 물고기를 싹쓸이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그 피해액은 얼마에 이르는지 추정하기조차 힘들다. 우리 어민의 남획과 온난화에 따른 어장 변화도 어족자원 고갈을 가속화하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첫손가락에 꼽아야 할 것은 역시 중국발 요인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방치하면 바다 황폐화를 막을 길이 없다. 수산정책은 그동안 미온적이었다. 해양수산부는 1986년 설립 후 부처가 폐지된 이명박정부 5년을 빼더라도 25년간 수산 진흥을 외쳤다. 결과적으로 말만 요란했을 뿐이다. 해수부가 설립된 해부터 어업 생산량은 되레 감소했다. 황폐화하는 바다를 먼 산 보듯 하지 않았어도 그렇게 됐는지 되묻게 된다.
해수부는 다음주 종합대책을 발표하기로 했다. 어린 물고기 남획을 막고 ‘알 밴 생선’ 소비 자제 캠페인도 벌인다고 한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빤한 대책으로 어족자원 고갈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해수부는 전방위 대응에 나서야 한다. 중국, 일본과 어족자원 고갈을 막을 협상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 바다가 사막화하는 재앙을 맞을 수 있다.
10. 나라를 어떻게 이끌지 ‘대선 논쟁’ 뜨거울수록 좋다
나라를 어떻게 이끌 방법론을 두고 대선주자들의 논쟁은 더 뜨거워져야 한다.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탄핵심판을 인용해 전례없는 조기 대선이 실시되면 정책토론을 벌일 새도 없다. 차기 정부는 역대 정부와 달리 인수위원회도 없이 출범하므로 시간이 여러 모로 부족하다. 깜깜이 선거가 되지 않으려면 정견과 정책에 대한 토론이 활발해져야 한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의회와 행정부가 협치해야 한다”며 연일 불을 지피면서 야권주자들 간 신경전이 첨예해지고 있다. 대연정은 이념이 다른 원내 1, 2당이 연합해 국정을 이끄는 방식이다. 집권을 위한 구상이긴 하지만 의회 협치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정책 제안으로 봐도 무방하다. 15년 전 노무현 후보가 내건 수도이전론 같은 대형이슈가 될 조짐도 있다. 유사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규모와 성격에서 좀 차이가 나지만 20여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념에서 반대인 자민련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DJP연대’를 통해 나라를 운영한 경우도 있다.
갈등과 대립을 배제하고 타협과 협치를 하는 정치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탄핵정국으로 나라가 두 동강난 현실을 타개하려면 통합과 협치의 정신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미래의 비전으로 이만한 것도 없지만 현실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야권 내 반발이 논의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선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친박근혜 세력에 대한 대청소론을 주장하고 있어서인지 “대연정은 어렵다”고 일축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촛불에 대한 배신”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자신의 주장과 차이가 난다고 경쟁자의 정견과 정책을 백안시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대선주자들이 내놓은 일자리와 4차 산업혁명, 규제개혁론 등 미래 먹거리와 관련된 대책은 토론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문 전 대표의 일자리 130만개 창출과 군복무 단축 약속,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3년 육아휴직제와 칼 퇴근법 등은 진영을 떠나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을 두고 문 전 대표의 정부주도론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민간주도론으로 반박했다. 대선주자가 박수를 받으려면 이런 정책 공방을 많이 벌여야 한다.
나라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대선주자라면 어떻게 국정을 끌고 갈 것인지를 놓고 밤을 새우며 토론하는 의지와 실력을 갖춰야 한다. 다만 무조건 비판하거나 일회성 정책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내놓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포퓰리즘 공약 역시 경계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한국경제][천자칼럼] 간장게장
달큰하고 진한 간장에 은은하게 삭힌 게살의 쫀득하고 탱탱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칠맛. 쪽쪽 소리를 내며 연신 빨아먹고 집게다리 속살까지 발라먹은 뒤 게딱지 내장에 윤기 나는 밥 한 술 비벼 먹으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앉은 자리에서 밥 두 그릇 정도는 게 눈 감추듯 해치우는 ‘밥도둑’의 대명사 간장게장.
조선시대 ‘게장 마니아’ 서거정은 ‘눈 내린 강 언덕에 얼음 아직 남았는데/ 이 무렵 게장 가격은 더욱 비싸구나/ 손으로 게 발라 들고 술잔을 드니/ 풍미가 필탁의 집게를 이기는구나’라고 노래했다. 필탁(畢卓)은 유난히 게를 좋아하던 중국 진나라 시인. 중국에선 기원전 7세기부터 게장을 천제에 썼다니 오래 전부터 귀하게 대접받은 진미였던 모양이다.
옛날에는 게를 소금에 절여 먹었으나, 점차 간장을 써서 염분은 줄이고 맛은 더 살렸다. 조선시대에는 민물게로 담근 참게장을 주로 먹었다. 임진강변 파주 참게 맛이 좋아 수라상에 올렸다고 한다. 참게는 추수기 논에서도 난다. 알이 많고 내장이 기름져 으뜸으로 쳤다. 가을에 담가 이듬해 여름에 먹느라 조금 짠 게 아쉽긴 하다. 호남에선 벌떡게(민꽃게)로 만든 벌떡게장을 즐겼다. 간장에 재워 1~2일 만에 먹는데 신선하고도 달콤한 맛이 백미였다. 금방 ‘벌떡’ 먹어치워야 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요즘은 민물게가 드물어 서해안과 남해안 일대에서 나는 바닷게를 주로 이용한다. 대표적인 게 암꽃게로 담근 꽃게장이다. 봄에 잡은 꽃게는 살이 부드럽고 비린내가 적으며 알도 풍부하다. 조리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그러나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든다. 우선 꽃게 위에 파, 마늘, 생강 넣고 끓인 간장을 식혀서 듬뿍 붓는다. 2~3일 뒤 간장을 따라내 다시 끓이고 식혀 붓는데 이걸 3회 반복하는 걸 ‘삼벌장’이라고 한다. 남은 간장물은 장조림이나 물김치에 활용한다.
꽃게에는 무기질과 아연, 칼슘과 철분 등이 많아 성장발육에 좋다. 타우린 성분은 간 해독을 돕는다. 콜레스테롤을 낮춰 동맥경화 같은 성인병도 예방한다. 신선한 재료와 영양 성분만큼 중요한 게 또 있다. 바로 장맛이다. 오랜 발효 과정을 거친 조선간장 특유의 깊은 미감이 어우러져야 최고의 간장게장이 완성된다.
최근 외국 관광객이 우리 간장게장집을 앞다퉈 찾고 있다. 지난해 미식평가서 ‘미슐랭 가이드-서울편’에 경복궁 옆 간장게장 전문점이 별 1개를 받은 뒤 더욱 그렇다. 이들을 사로잡은 맛의 비결 역시 청정 꽃게와 300년 대물림한 조선간장이라고 한다.
2. [NEWSIS][흙과 생명 이야기] 조선시대 꽃 기르기
'자연은 힐링이다.'
언제부턴가 해가 바뀌고 계절이 변할 때마다 경이로움과 함께 다가오는 느낌이다.
저 흙 속에서 한 움큼의 햇살, 한 줄기 바람과 더불에 피어나는 생명 때문일 것이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대지 위로 솟아오르는 그들의 이야기가 지친 우리의 일상을 위로하고 내면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우주 만큼의 사연과 신비로움이 그득한 탓이리라.
혼돈의 시대, 힐링과 지혜에 대한 갈급함이 크다. 뭇 생명들을 가까이에서 접하는 농촌진흥청 연구사들의 이야기를 매주 시리즈로 연재한다.
얼마 전 국민여가활동조사가 발표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취미부문을 보니 반려동물 기르기는 포함되어 있지만 식물 기르기는 빠져있다. 일본의 여가활동백서를 보면 전 국민의 4명 중 한명이 꽃·식물 기르기를 한다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꽃 기르기를 싫어하나?
조선시대 꽃은 격물치지(格物致知)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즉, 꽃을 기르거나 감상하는 것이 세상을 이치를 알아가는 계기라는 것이다. 꽃 기르기에 조예가 깊었던 가드너로서 조선 전기 화훼원예서인 ‘양화소록(養花小錄)’을 저술한 강희안(1417∼1464)은 꽃기르기가 격물치지할 수 있는 계기, 즉 꽃을 기르면서 세상의 이치를 알아간다고 했다.
조선 전기 성리학의 정립에 기여한 이언적(1491∼1553)도 꽃을 심으면서 ‘대자연의 이치를 더듬고’자 했으며 17세기 문신 황혁은 ‘천성을 기르는 것과 꽃을 기르는 것은 다르지 않다’고 하면서 꽃기르기가 격물치지의 수단임을 강조하였다.
전란으로 혼란스러웠던 조선 중기 일본에 간 강항(1567 ~ 1618)이나 청나라에 간 김상헌(1570~1652)에게 담장 밑에 부모님과 심었던 꽃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의 상징이었다. 왜란 중 의병장으로 활동하다가 귀향한 조호익(1545∼1609)이나 정경세(1563∼1633)가 심은 장미나 석창포는 평화의 상징이었다. 그 피폐했던 생활 속에서도 꽃은 언제나 그들 곁에 있었던 것이다!
18세기 이후 사회가 안정되면서 조선에도 가드닝 붐이 일어나게 된다. 조선 후기 16주제의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의 저자 서유구(1764∼1845)는 ‘오관을 이용하여 살아가는 사람에게 입(口)만 기르는 일에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허(虛)를 기르는 것이야말로 실(實)을 기르는 근원이다’라고 하면서 농학(본리지)과 채소원예학(관휴지) 다음으로 화훼원예학(예원지)을 저술했다. 즉, 쌀과 채소로 실용적인 생활이 가능한 후에는 꽃기르기를 통하여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인간의 이상적인 삶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가드닝 마니아였던 정약용(1762∼1836)은 ‘생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이기는 하지만, 꽃을 보고 기르는 것은 마음을 기르는 일로서 아무리 과하더라도 지나치지 않다’고 했고 ‘열매가 있는 것은 입과 몸을 길러주고, 열매가 없는 것은 마음과 뜻을 즐겁게 해주어 이 모두가 사람을 길러준다. 굳이 형체만 기른다면 정신이 굶주리게 된다’ 하면서 취미로 꽃식물기르기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최근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화훼의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얼마 전 모은행 앞에는 선물로 화분을 받지 않겠다는 글귀도 등장했다고 한다. 화훼 이용의 활성화를 위해 시급히 도입해야 할 방안이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
한편, 이런 때 일수록 화훼의 이용확대를 위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차근차근 해나가야 할 것이 있다. 무엇보다 국민의 취미나 문화생활 속에 꽃기르기가 정착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만 주는 이의 소중한 마음을 담은 선물로 분화나 절화를 자연스레 구입할 것이고 집안이나 사무실의 생활 속에서 꽃을 기르거나 즐기기 위해서 화훼를 사게 될 것이다.
또한, 꽃으로 장식된 상업공간의 가치를 인정하는 소비자의 심리가 생겨야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화훼장식을 하게 될 것이며, 꽃이 가진 심신의 치유 가치를 사회 전반이 공유하고 있어야만 원예활동이나 산물을 활용하는 의료복지기관이 늘어날 것이다.
조선 말기의 궁핍과 식민지 경험, 한국전쟁의 참화 후 목표만을 좇는 경제개발 과정에서 ‘생존 문제를 해결하는 것(養口體)’에 치우치다가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마음을 기르는(養神心) 꽃기르기’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다시금 우리네 생활 속에 자리 잡아서 국민의 아름다운 마음과 심신 건강을 가져다 주게 될때 화훼산업은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 속에서 ‘꽃들에게 희망’의 싹을 찾아보자.
3. [매일신문][세계의 창] 고골의 '외투'와 나의 목도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넵스키 거리
작가 고골의 작품 생각하며 걸어가
어느 틈에 바짝 따라붙은 소매치기
10년 전에 산 낡은 목도리만 빼내가
지난 4일 오전 9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눈발이 날렸지만 두툼한 외투를 챙겨 입은 덕분인지 생각보다 춥지 않다. 우버 택시를 부를까 하다가 호텔 체크인하기에도 이른 시간이라 버스와 지하철로 천천히 숙소를 찾아가기로 한다. 일정이 바쁘거나 짐이 많을 땐 꿈도 못 꿀 일이지만, 문학연구소만 방문하면 되는 짧은 일정이라 등에 멘 배낭과 작은 캐리어가 전부다.
지하철을 타고 넵스키 대로에서 내렸다. 푸시킨과 고골,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가이다. 수백 년 동안 도시의 상징이었던 이 거리에는 멋진 건축물과 조각들, 욕망을 자극하는 유럽의 명품 상점들이 죽 늘어서 있다. 이제 천천히 걸어도 10분이면 호텔에 도착한다. 운하를 지나 걸어가니 오른쪽으로 고골의 동상이 보인다. 넵스키 거리의 인간 군상들을 흥미롭게 그려냈던 작가이니 이 거리의 파수꾼으로 제격이다.
동상을 보면서 작가의 유명한 단편 ‘외투’를 떠올렸다. 주인공 아카키는 가족도 친구도 희망도 없이 공문 정서만 하면서 살아가는 중년의 초라한 말단 관리였다. 그런데 그에게도 마침내 삶의 의미가 생겼다. 계속 수선해 입던 헌 외투가 더 이상 손도 못 댈 정도로 낡아 버리자 재봉사가 새 외투를 맞추라고 제안한 것이다.
박봉에 새 외투 구입을 꿈도 못 꿨던 주인공은 마침내 결심을 하고, 몇 달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돈을 모은다. 옷감도 사고, 무슨 털을 붙여서 어떻게 외투를 만들지 재봉사와 의논하니 흡사 새 인생이 시작된 것 같다. 그렇게 완성된 외투를 입은 아카키, 살을 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추위도 남의 일이다. 세상을 다 가진 듯 어깨가 펴지고, 미녀도 상냥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것 같다. 난생처음으로 동료의 저녁 초대도 받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 아카키. 그러나 집으로 가던 중 넵스키 거리에서 외투를 강도당하고 만다. 경찰서를 찾고 유력 인사에게 탄원도 하지만 관료주의의 높은 벽을 실감할 뿐, 외투를 찾지 못한 주인공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린다.
약간은 허무한 이 결말에 작가는 아카키의 유령이 넵스키 거리에 출몰해서 사람들의 외투를 벗겨간다는 에필로그를 덧붙였다. 시대의 부조리를 잘 파악했던 천재였지만 황제로부터도 인정받고 싶어 했던 고골다운 비현실적인 결말이다. 추운 겨울, 가난한 관리에게 외투 하나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넵스키 거리는 여전히 아름답고도 비정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광기에 차서 원고를 불태우고 굶어 죽었던 작가 고골의 최후를 떠올리면서 동상을 지나갔다. 이제 저 모퉁이 약국에서 우회전해서 50m만 더 가면 호텔이다. 캐리어를 끌면서 걸어가는데 어쩐지 뒤가 서늘하다. 건장한 남자 두세 명이 아까부터 내 뒤에 붙어서 오고 있다. 배낭을 등에 멘 것이 마음에 걸린다. 슬쩍 돌아보니 약국 문 여는 시간표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멀쩡한 신사들이다.
그런데 모퉁이를 돌아 호텔에 거의 다 도착할 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내 뒤에 오고 있다. 바로 옆 이탈리아 명품 가게 유리창에 흘깃 비춰보니 배낭이 열려 있다. 황급히 돌아보니 남자들은 저만치 돌아서서 가고 있다. 한발 늦었다. 안에 들어 있던 지갑과 여권, 휴대전화는 이미 저들의 손에 있을 것이다. 고골을 생각하느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악명 높은 소매치기들에 대해 잊고 있었다니.
자책하면서 호텔 로비로 들어와 배낭에 손을 넣어 보니 지갑도 휴대전화도 노트북도 그대로이다. 내 배낭을 열었던 자들이 꺼내 간 것은 10년 전에 산 목도리 하나였다. 생각보다 안 추워서 둘둘 말아 배낭 맨 위에 넣어 둔 긴 목도리를 눈치 못 채게 꺼내느라 시간을 다 써 버린 소매치기들은 정작 그 아래 있던 지갑과 휴대전화를 빼낼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이다. 고골 이후 200년이 지난 지금도 넵스키 거리는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면서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그들이 가져간 것이 새 외투가 아니라 낡은 목도리일 따름에 안도하면서 말이다.
4. [머니투데이][광화문] 뉴욕 첼시마켓과 한국 전통시장
2013년부터 2년간 뉴욕 특파원 생활을 할 때 가끔 들린 시장이 있다. 한국 관광객들의 뉴욕관광 필수코스가 된 '첼시 마켓(Chelsea Market)'이다. 당시 이 곳과 '하이라인 파크'를 방문한 후 '옛 것' 멋 살린 뉴욕 명소라는 주제로 기사를 쓴 적도 있다.
3년여가 지난 지금 뉴욕 '첼시 마켓'이 다시 떠올랐다. 대형 마트 규제와 전통시장 보호 문제가 최근 수면 위로 또 부상했기 때문이다.
'전통시장 활성화'. 역대 정부마다 많은 예산을 들여 추진했던 정책이다.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도 곳곳에서 추진됐다. 하지만 이 사업이 성공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대부분의 국내 소비자들이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 등을 선호하기 때문에 전통시장 활성화는 늘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
그런데도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보호'는 올해 대선에서 주요 화두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표'와 직결되는 문제여서 대선 주자들이 외면할 수 없어서다. 이 때문에 유통업계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새로운 규제가 도입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
그토록 오랫동안 정치권과 정부가 '상생'을 외치면서 '대형 마트 규제와 전통시장 보호대책'을 추진했는데, 나아진 건 없고 되돌이표만 반복되는 걸까.
'첼시 마켓'은 우리에게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만이, 전통시장 보호만이 답이 아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첼시마켓은 '오레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자를 만들던 100여년된 과자공장의 시설물들을 그대로 활용했다. 에이미스 브랜드, 엘레니스 쿠키, 사라베스 베이커리, 팻 위치 베이커리 등 유명 식료품점과 '랍스타 플레이스'(The lobsterplace), 델리 등이 들어서 있다.
100여년 된 폐공장의 모습을 그대로 살렸기 때문에 첼시 마켓에 들어서면 솔직히 대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마켓 곳곳을 걸으면서 부서진 듯한 벽돌벽, 슬레이트 지붕, 감각 있는 소품, 색다른 인테리어들을 보면 독특한 멋을 느낄 수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물려받은 유산을 재활용하면서 현지인의 경제 생활에 도움을 주고, 관광특수까지 이끌어내는 '일석 삼조'의 효과를 거둔 것이다.
첼시 마켓에서 또 하나 눈에 띈 점은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해 화장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이다. 이를 보면서 국내 전문가들이 소비자가 재래시장을 찾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화장실 문제를 꼽았던 게 생각났다. 첼시마켓에서 관광객들과 뉴요커들은 화장실 이용의 불편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했다.
물론 첼시 마켓을 우리 전통시장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오래된 공장을 마켓으로 성공적으로 변모시켜 관광지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장의 경쟁력은 '맛'과 '멋'이며, 옛 것을 부수고 화려한 새 건물을 짓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외면한 채 '보호'와 '활성화'라는 단어만 앞세워서는 우리 전통시장을 살릴 수 없다. 정책의 중심에 '소비자'를 둬야만 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유력 대선주자를 비롯한 정치권은 아직도 "종합 쇼핑몰과 대형 마트의 입점을 규제하면 전통시장 상권을 살릴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유통과 IT가 결합되고 있는 시대에 규제는 다 같이 죽는 길로 갈 가능성이 높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유통업계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이갑수 이마트 대표가 "인구구조 변화, 온라인 채널 성장으로 오프라인 유통업 성장이 자동적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규제가 필요하냐"고 지적한 것을 흘려 들어서는 안된다. 지금은 규제가 아닌 시장의 '맛'과 '멋'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5. [동아일보][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 방치된 공백, 채워가는 여백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천재였습니다. 박학다식했던 화가는 단순 기술에 머물던 미술을 정신과 학문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공헌을 했지요.
화가는 스무 점도 되지 않는 그림을 남겼습니다. 게다가 몇 점은 미완성이기도 했습니다. ‘모나리자’도 완성이 덜 된 그림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림의 모델은 리자 게라르디니로 추정됩니다. 이탈리아 피렌체 실크 상인의 아내였지요. 당시 초상화 주인공은 주문자였던 소수 권력자들이었어요. 미술가가 모델을 자율적으로 선택하기는 제한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화가는 주문자의 신분이 높다고 해서 초상화 주문을 모두 받지는 않았습니다. 인품까지 참고해서 이례적으로 신흥 상인의 아내 초상화를 수락했다지요.
인간 가치에 새롭게 주목했던 시대 인식을 서둘러 그림에 충실히 반영하려 했겠지요. 그림은 명료한 윤곽선이 강조된 당대 초상화의 전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얇은 붓으로 덧칠을 반복해 입체감과 공간감을 사실적이며 신비롭게 표현해 냈지요. 그림 속 미소가 인간을 철저히 감정적 존재로 선언하고 있군요. 또한 화가는 인물을 강조하고자 당대 초상화가 깨끗이 비워두었던 배경에도 풍경을 정성껏 그려 넣었습니다. 인간을 작은 우주로 여기고 인체와 자연을 유기적으로 이해했던 화가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지요.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그림은 투철한 정신과 열정적 탐구의 산물이었습니다. 화가는 관찰에서 얻은 정보를 정확히 형상화하려 노력했습니다. 과학적 지식을 활용했고, 해부학적 지식도 동원했습니다. 예술가를 절대 정신에 다가가는 창조자라 믿었지요. 미술을 이성적 사고와 초월적 사유를 캔버스 위에서 결합시키는 행위이자 실천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니 작업 속도가 더딜 수밖에요.
1503년 피렌체에서 그리기 시작한 그림은 주문자에게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1516년 노화가가 채 완성되지 않은 그림을 들고 새로운 후원자가 있는 프랑스로 떠났거든요. 타국에서도 그림은 마무리되지 못했습니다. 혹자는 그림이 완성되지 못한 원인을 화가 말년의 오른손 마비에서 찾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미완의 걸작은 돌이킬 수 없는 실패가 아니라 기억해야 할 결실로 평가됩니다. 우리가 함께 채워 나갈 빈칸이 무책임과 변명으로 방치된 공백이 아닌, 가능성과 성취로 채워 나갈 여백이면 좋겠습니다. 치열하게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는 화가의 캔버스처럼 말이지요.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경제 불평등, 결국 성장에서 해답 찾아야
국내 상·하위 계층 사이의 소득 집중도가 자꾸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소득 상위 1%가 국민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2%(2015년 기준)로 역대 최고다. 상위 10%의 소득 비중도 48.5%를 차지하고 있다. 모두 세계 주요국 가운데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수준이다. 소득 불평등이 한계 상황에까지 이른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물론 양극화 현상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달 ‘다보스 포럼’에서도 앞으로 10년간 지구촌을 위협할 3가지 리스크의 하나로 경제적 불평등이 꼽혔을 만큼 산업화 사회에서는 일반화된 현상이다. 하지만 정도가 너무 심하다. 상위 10%의 소득 집중도가 일본(42.0%)이나 영국(39.1%), 스웨덴(30.7%)보다도 훨씬 높다는 점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심화 속도도 가파르다. 상위 10%의 소득 집중도는 1995년 34.7%에서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13.8%포인트나 높아졌다. 그동안 성장의 과실이 국민 전체에 골고루 돌아가지 않고 상위 계층에 집중됐다는 뜻이다. 갈수록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비정규직 확산에 부동산·금융자산에 따른 비급여 소득의 불평등까지 맞물린 결과다. 잎으로도 이런 추세가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게 문제다.
이런 사정이니 만큼 조기 대선이 다가오면서 유력 주자들이 경제·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부자 증세, 법인세 인상 등에서 보듯이 대체로 포퓰리즘 성격의 ‘분배’에 방점이 찍혀 있다.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걷어 저소득층의 소득을 보전하는 식의 정책도 필요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근본 해결책은 못된다.
우선은 성장 정책이 필요하다. 성장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 근로자 소득을 증대시키고 비정규직 차별을 줄여나가는 구조적 개혁이 중요하다. 성장과 고용 창출은 기업의 몫이다. 시류에 편승한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기업을 옥죄려는 시도는 좋은 방도가 아니다.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고용을 창출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정책 지원 등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우선 과제다.
[매일신문]
2. 가시적 성과 없는 박영수 특검, 우병우 수사에서 승부 내라
박영수 특검팀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특검은 우 전 수석 아들의 ‘운전병 보직 특혜’ 의혹에 대한 이석수 당시 특별감찰관의 조사가 조직적인 방해를 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들어갔다. 방해의 지휘부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라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특검은 이를 포함해 우 전 수석의 각종 혐의에 대한 사전 조사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금주 중 우 전 수석을 소환한다는 방침이다.
특검법상 우 전 수석과 직접 관련된 혐의는 세 가지다. 최순실 씨 비리에 관여한 의혹, 이 특별감찰관 해임에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 그리고 증거인멸 시도 또는 교사 의혹 등이다. 특검은 이와 함께 우 전 수석 가족회사인 ‘정강’이 이우환 화백의 그림을 포함, 4억4천만원어치의 그림을 구입하면서 횡령과 탈세 혐의가 있는지도 조사 중이다.
특검이 규명해야 할 우 전 수석의 비리 혐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얀마 대사 교체 과정에서 우 전 수석이 개입한 정황이 새로 드러났다. 민정수석실이 이중국적 자녀를 둔 외교관을 재외공관장에 임명할 수 없도록 한 인사 지침을 작성해 최순실 씨가 추천한 외교 비전문가를 대사로 앉혔다는 의혹이다. 그뿐만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급 간부 4, 5명의 좌천성 인사를 지시한 혐의도 밝혀내야 할 사안이다.
특검이 이렇게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높이는 것은 수사가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검은 활동 기간의 절반 가까이를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의혹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대통령을 뇌물 수수로 묶으려는 전략이었으나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특검은 아까운 수사 기간만 허비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 특검이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 규명이란 특검법의 본류(本流)에 충실해 우 전 수석을 수사의 앞순위에 올렸다면 어땠을지 궁금하다. 특검의 공식 수사 기간은 오는 28일까지로, 21일밖에 남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이 수사 기간을 연장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과연 남은 기간에 이런 의혹 모두를 수사해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지 못하면 박영수 특검은 특검의 ‘실패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된다. 특검이 다급하게 됐다.
[서울신문]
3. 첫 구제역 확진, AI 방역 실패 되풀이 안 된다
올겨울 첫 번째 구제역이 충북 보은의 젖소 농장에서 확인됐다고 한다. 사상 최악이라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꼬리를 완전히 내리지 않은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는 구제역이 발생한 것이다.
방역 당국은 보은 농장에서 사육하고 있던 젖소 195마리를 모두 살처분했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전국 10개 시·도, 41개 시·군에서 발생한 AI로 매몰 처분된 닭·오리·메추리는 모두 279만 마리에 이른다. 가금류 사육 농가에 이어 우제류 농가의 걱정은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 축산의 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또한 높아지고 있다.
구제역은 겨울철이면 찾아온다. 낮은 온도에서 활동성이 높아지는 구제역 바이러스의 특성 때문이다. 그럼에도 연례행사가 되다시피 하고 있다면 방역 체계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농림축산식품부는 소와 돼지 사육 농가에 구제역 백신 2회 접종을 지키라고 당부하기는 했다. 농식품부 조사 결과 보은 농장의 경우 접종이 충실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접종 기록은 있지만 적은 개체만 항체가 형성돼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정부가 책임을 농가에 떠미는 것에 불과하다.
공기 전파에 따른 전염력이 높은 구제역은 방역 당국의 권고가 아니더라도 백신 접종은 필수다. 하지만 접종했다고 100% 항체 형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백신 유통 및 접종 과정에서도 문제는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농가가 실제로 백신을 접종하고 당국에 신고했다고 해서 안전해진 것은 아니다. 결국 접종 이후 항체 형성 여부도 중요하다. 농식품부는 구제역 발병 확인 이후 보은 지역 소와 돼지 5만 5000마리에 긴급 예방 접종을 하기로 했다. 뒷북 행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전염병은 아예 일어나지 않도록 처음부터 철통 봉쇄하는 것이 최선이다. 따라서 올해 구제역 방역은 일단 실패한 것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방역 당국은 전국으로 확산된 AI의 재판(再版)이 되지 않도록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난해 10월부터 특별방역 대책 기간을 운영해 구제역 백신 항체율이 소 97%, 돼지 75%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농식품부는 AI방역에서 잃어버린 신뢰를 구제역 방역에서 되찾아야 할 것이다. AI 초동 방역에 소극 대응해 실망을 주었던 일부 지방자치단체도 이번에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 달라.
4. 저소득층 학생 성적 끌어올린 고려대 장학금
고려대가 지난해 1학기부터 도입한 보상이 아닌 지원 차원의 장학금 제도 혁신이 시행 1년을 맞았다. 고려대는 국내 대학 처음으로 성적장학금을 폐지했다. 당시 염재호 총장은 “성적보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대학 장학금 가운데 비중이 큰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을 없애고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생활장학금을 늘리기로 한 것이다.
해외 대학들이 성적을 기준으로 한 장학금 제도를 운영하지 않는 것과 같다. 포상 성격에서 벗어나 연구와 체험 등을 지원하는 장학금 제도로의 개편은 아름다운 실험이었던 까닭에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학생들의 등록금에 목매는 국내 사립대의 현실에 비춰 볼 때 참신한 시도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학업에만 전념해 뛰어난 성적으로 장학금을 타 온 학생들에게는 마뜩잖은 개선인 탓에 불만의 목소리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관행을 깨고 새로운 변화를 꾀하는 데 따르는, 즉 창조적 파괴를 위한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대는 지난해 폐지한 성적장학금 34억원을 저소득층 장학금, 학생자치 장학금, 해외탐방 프로젝트 등에 배분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저소득층 장학금은 91억 1500만원으로 2015년에 비해 14억원 늘었다. 등록금 전액 장학생도 가장 소득 수준이 낮은 1~2분위에서 1~5분위로 확대했다. 나아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방학을 포함해 매월 3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했다. 기숙사를 사용하면 생활비에다 20만원을 더 줬다. 이로써 2015년 1학기 저소득층 장학금 수혜 학생이 2401명에서 지난해 1학기 3383명으로 크게 늘었다.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돈과 시간적 여유를 제공한 것이다.
[조선일보]
5. 朴 대통령 774억 왜 최순실에 맡겼는지 설명할 때 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가 제시한 대통령 탄핵 사유에 대한 의견서를 지난 3일 헌법재판소에 냈다. 대통령이 대리인단의 답변서 형식이 아니라 본인 명의 입장을 헌재에 낸 것은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의견서에서 일부 기초적 사실관계는 인정했지만 예상대로 공무상 기밀 누설 의혹,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 의혹 등에 대해선 부인했다.
박 대통령 탄핵 사유 중 핵심은 대통령이 대기업들로부터 걷은 재단 출연금 774억원을 왜 공공기관이 아니라 깜냥이 될 수 없는 사인(私人) 최순실씨에게 맡겼느냐는 것이다. 대통령은 답변서에서 기업들이 문화·체육 진흥을 위해 자발적으로 돈을 냈을 뿐 자신은 재단 설립에 관여하지 않았고 최순실씨에게 재단 운영을 부탁한 사실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지금까지 나온 증거나 증언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재단 모금에 관여한 안종범 전 수석은 헌재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임원 명단을 박 대통령이 불러줬다"고 했다. 그 명단은 최씨가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보낸 것이었다. 이 명단에 있었던 K스포츠재단 이사장은 최씨의 단골 스포츠마사지센터 운영자였다. 미르재단 이사장은 최씨 측근인 차은택씨의 은사였다. 최씨는 두 재단 명칭과 사무실 위치까지 지정했다. 774억원 두 재단과 관련해 '최순실→박 대통령→안종범 전 수석'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사실(事實)로 다 드러났다. 박 대통령이 부인할 단계가 지났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문화와 스포츠 융성을 위해 재단을 설립한 것은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왜 최씨 일당에게 맡겼느냐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박 대통령 탄핵 여부도 이 핵심 문제에 대한 설명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고려대의 도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다. 한때 반발했던 학생들도 공감하고 있다. 바람직하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학생들이 공부할 시간을 가짐으로써 성적이 올라가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경험도 풍부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 탓에 학업에 열중하지 못해 성적이 나쁘고, 좋지 않은 성적 때문에 취업이 잘 안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순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 꿈도 못 꿨던 해외 대학의 교환 학생으로 다녀온 저소득층 학생도 있다.
다른 대학들도 장학금 지원 형태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꼭 필요한 학생들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기 위해서다. 소득계층 간의 격차를 해소할 뿐만 아니라 정부와 대학 간의 등록금 문제를 완화할 수도 있다. 빚을 안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학생들을 줄이는 방안이기도 하다. 한국장학재단의 소득연계형 국가장학금 제도 역시 같은 취지다. 경제적 사정 때문에 학업에 충실할 수 없는 학생들에게 “힘내라”라는 말 대신 실질적인 힘을 주는 것도 대학의 사회적 책무이자 역할이 아닐 수 없다.
6. '도덕적 해이' 그대론데 구제역 백신 무슨 소용인가
사상 최악의 AI(조류인플루엔자) 사태에 이어 충북 보은군에서 올 들어 첫 구제역까지 발생했다. 작년 3월 구제역이 발생한 지 11개월 만이다. 6일 전북 정읍에서도 구제역 의심 신고가 들어왔다. 정부는 이날 오후 6시부터 30시간 동안 전국 축산 농가 등 22만곳에 긴급 이동 중지 명령을 내렸다. 소나 돼지, 염소처럼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에서 발생하는 구제역은 공기로 퍼져 전염성이 무척 강하다. 정부는 AI 때 초동 대응 미흡으로 사상 최악의 살처분 파동을 초래했다. 그 실패가 구제역 방역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
AI에 이어 구제역까지 연중행사처럼 발생하고 피해는 갈수록 심해지는 걸 보면 우리 방역 체계에 뭔가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전국 축산 농가에 구제역 백신 접종은 의무화돼 있다. 농식품부는 작년 10월부터 올 5월까지가 '구제역 특별방역대책기간'이고 작년 말 기준으로 소는 97.5%, 돼지는 75.7%의 백신 항체 형성률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정부 발표를 그대로 믿기 힘들다. 당장 이번에 구제역이 발생한 충북 보은 젖소 농가만 해도 작년 10월에 백신을 접종한 기록이 있다는데 항체 형성률은 19%에 불과했다. 일부 축산 농가는 백신을 사놓고도 접종을 미룬다고 한다. 젖소나 비육우는 백신을 접종하면 일정 기간 사료를 덜 먹는다. 그만큼 우유나 고기 생산이 줄어들기 때문에 축산 농가들이 백신 접종을 미룬다는 것이다. AI때도 일부 농가와 관계자들의 무책임한 행태가 사태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
최근 50명 넘는 사상자를 낸 경기도 동탄신도시의 66층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 화재는 철거 공사의 안전수칙을 어긴 데다 스프링클러와 화재경보기까지 꺼져있는 바람에 인명 피해가 커졌다. 그렇게 큰 사고가 연발해도 도무지 나아지는 것이 없다. 작은 이익을 탐하다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도덕적 해이, '설마'하는 안전 불감증이 대한민국의 불치병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 병을 고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서 좋은 시설을 하고 좋은 약을 사놓아도 소용이 없다.
[동아일보]
7. 18명 구속됐는데 20년 보좌 정호성에 책임 떠넘긴 대통령
어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정농단의 주역 최순실 씨의 9차 공판에는 최 씨의 대통령 연설 수정을 처음 폭로한 고영태 씨가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고 씨는 “더블루케이의 실질 운영자는 최순실 씨로 내 회사라면 내가 왜 (최 씨에게) 잘렸겠냐”고 반문하며 자신이 ‘실질 운영자’라는 최 씨 주장을 반박했다. 더블루케이는 재벌들로부터 288억 원을 거둔 비영리법인 K스포츠재단의 돈을 자연스럽게 빼먹기 위해 최 씨가 설립한 컨설팅업체다. “최 씨는 40년 지기로 평범한 주부로 생각했다”고 밝힌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과 천양지차다.
고 씨는 최 씨가 운영하는 의상실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서도 “최순실이 차은택에게 장관이나 콘텐츠진흥원장 자리가 비었으니 추천해달라고 해서 그게 이뤄지는 것을 보고 또 예산 같은 걸 짜기 시작했는데 그 예산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을 봤을 때 겁이 났다”고 증언했다. 박 대통령은 최 씨의 국정 개입에 대해 ‘문화 쪽 인사만 추천했고, 그 추천도 다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인사와 예산에 대한 최 씨의 입김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 씨는 또 문화체육관광부 간부뿐 아니라 외교부 대사나 심지어 민간기업 인사까지 전방위로 간여한 사실이 특검 조사를 통해 이미 확인됐다.
박 대통령은 3일 자신의 탄핵 심판과 관련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13쪽짜리 의견서에서 국회에서 지목한 13가지 탄핵 소추 사유는 물론 4개월에 걸친 검찰 및 특검의 수사 내용까지 모두 부인했다. 그럼 최근까지 18명의 구속자를 포함해 검찰 및 특검에 의해 형사 처벌된 22명이 모두 억울한 누명을 썼단 말인가. 그렇게 떳떳하다면 청와대의 압수수색도 거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청와대 자료를 자진해서 제출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의 각종 기밀자료가 유출된 데 대해 “정호성 비서관에게 연설문, 말씀자료 이외의 다른 자료를 최서원(최순실 씨의 개명 후 이름)에게 보내도록 포괄적으로 위임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국가기밀 유출은 정 비서관의 ‘과잉 충성’이 빚어낸 일이지, 대통령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20년 가까이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정 비서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은 참으로 볼썽사납다. 국민은 정직과 책임을 잃은 최고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거둘 수밖에 없다.
[매일경제]
8. 성장 지체가 한국병 첫째 원인이라는 진단
청년 실업, 빈부 격차 확대, 계층 간 무한 갈등 등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 '성장 지체'에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매일경제신문이 한국의 위기 진단 및 활로 모색을 위해 진행 중인 '제2 한국보고서' 프로젝트에 참여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내놓은 진단이 그렇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국가 경제가 경제를 넘어 정치·사회적 갈등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인데 공감이 가는 지적이다.
한국 역사상 대학 졸업장이 곧 취업을 보장하던 시절, 매년 임금은 오르고 중산층 비중이 70%대 중반을 넘나들던 시절, 민간소비 증가가 내수 팽창으로, 이것이 대기업의 양질 확대로 이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먼 얘기가 아니다.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10여 년, 그러니까 불과 20년 전 일이다.
그때는 그때대로 경제가 고민이었고 정치·사회적 모순과 갈등의 골도 존재했지만 고민의 질이 지금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올해보다 내년이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 지금보다는 다음 세대에 더 근사한 나라가 돼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폭넓게 공유되던 시대였다. 그래서 그 시절을 한국 자본주의의 짧았던 황금기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런 믿음은 꿈처럼 아득해졌다. 대학은 백수 전락이 두려워 졸업을 유예하는 학생들로 넘쳐나고 본인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응답 비율은 20%대로 줄어들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한 후 10년째 3만달러 달성에 실패하면서 어쩌면 영원히 선진국에 이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좌절감이 우리 공동체 전반에 감돌고 있다. 그런 좌절감은 집단 간, 계층 간 갈등으로 전이되고 있다. 재벌에 대한 분노, 기득권에 대한 불신, 정규직에 대한 질시가 하늘을 찌른다.
이 모든 문제들은 20년 전 연평균 7~8%에 이르던 경제성장률이 2%대로 고꾸라지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일각에선 저성장 시대를 인정하고 여기에 적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아직 선진국 문턱도 넘지 못한 한국에는 해당이 안 되는 얘기다. 중진국 함정에 빠져 선진국 진입에 실패한 국가 중 중진국 지위나마 지킨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이 한국이 저성장 늪에서 빠져나와 재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세계일보]
9. 44년 만에 최저 어획고가 가르쳐준 '불편한 진실'
우리나라 어업 생산량이 4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연근해 어업 생산량은 지난해 92만3000t에 그쳐 전년보다 12.7% 줄었다. 197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최고 생산량을 기록한 1986년 173만t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이러다간 물고기 씨가 마를 것”이라는 우려가 결코 엄살이 아님을 보여준다. 어선 한 척당 연간 어획량도 연안어업의 경우 1972년 10.1t에서 6.2t으로 감소했다. 지난 수십년간 어선의 성능이 좋아졌는데도 어민들의 생계는 오히려 내리막길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연근해 어업 생산량이 반토막 난 가장 큰 이유는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과 남획 때문이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은 서해5도뿐만 아니라 남해와 동해 등 우리나라 전 해역에서 기승을 부린다. 최근에는 점차 조직화·흉포화되고 있는 양상이다.KMI는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에 따른 수산자원 손실이 연간 10만~65만t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통계는 주로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의 불법조업에 따른 손실을 따진 것일 뿐이다. 동중국해와 동해 북한수역에서 우리 수역으로 이동하는 어미·새끼 물고기를 싹쓸이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그 피해액은 얼마에 이르는지 추정하기조차 힘들다. 우리 어민의 남획과 온난화에 따른 어장 변화도 어족자원 고갈을 가속화하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첫손가락에 꼽아야 할 것은 역시 중국발 요인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방치하면 바다 황폐화를 막을 길이 없다. 수산정책은 그동안 미온적이었다. 해양수산부는 1986년 설립 후 부처가 폐지된 이명박정부 5년을 빼더라도 25년간 수산 진흥을 외쳤다. 결과적으로 말만 요란했을 뿐이다. 해수부가 설립된 해부터 어업 생산량은 되레 감소했다. 황폐화하는 바다를 먼 산 보듯 하지 않았어도 그렇게 됐는지 되묻게 된다.
해수부는 다음주 종합대책을 발표하기로 했다. 어린 물고기 남획을 막고 ‘알 밴 생선’ 소비 자제 캠페인도 벌인다고 한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빤한 대책으로 어족자원 고갈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해수부는 전방위 대응에 나서야 한다. 중국, 일본과 어족자원 고갈을 막을 협상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 바다가 사막화하는 재앙을 맞을 수 있다.
10. 나라를 어떻게 이끌지 ‘대선 논쟁’ 뜨거울수록 좋다
나라를 어떻게 이끌 방법론을 두고 대선주자들의 논쟁은 더 뜨거워져야 한다.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탄핵심판을 인용해 전례없는 조기 대선이 실시되면 정책토론을 벌일 새도 없다. 차기 정부는 역대 정부와 달리 인수위원회도 없이 출범하므로 시간이 여러 모로 부족하다. 깜깜이 선거가 되지 않으려면 정견과 정책에 대한 토론이 활발해져야 한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의회와 행정부가 협치해야 한다”며 연일 불을 지피면서 야권주자들 간 신경전이 첨예해지고 있다. 대연정은 이념이 다른 원내 1, 2당이 연합해 국정을 이끄는 방식이다. 집권을 위한 구상이긴 하지만 의회 협치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정책 제안으로 봐도 무방하다. 15년 전 노무현 후보가 내건 수도이전론 같은 대형이슈가 될 조짐도 있다. 유사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규모와 성격에서 좀 차이가 나지만 20여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념에서 반대인 자민련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DJP연대’를 통해 나라를 운영한 경우도 있다.
갈등과 대립을 배제하고 타협과 협치를 하는 정치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탄핵정국으로 나라가 두 동강난 현실을 타개하려면 통합과 협치의 정신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미래의 비전으로 이만한 것도 없지만 현실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야권 내 반발이 논의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선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친박근혜 세력에 대한 대청소론을 주장하고 있어서인지 “대연정은 어렵다”고 일축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촛불에 대한 배신”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자신의 주장과 차이가 난다고 경쟁자의 정견과 정책을 백안시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대선주자들이 내놓은 일자리와 4차 산업혁명, 규제개혁론 등 미래 먹거리와 관련된 대책은 토론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문 전 대표의 일자리 130만개 창출과 군복무 단축 약속,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3년 육아휴직제와 칼 퇴근법 등은 진영을 떠나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을 두고 문 전 대표의 정부주도론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민간주도론으로 반박했다. 대선주자가 박수를 받으려면 이런 정책 공방을 많이 벌여야 한다.
나라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대선주자라면 어떻게 국정을 끌고 갈 것인지를 놓고 밤을 새우며 토론하는 의지와 실력을 갖춰야 한다. 다만 무조건 비판하거나 일회성 정책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내놓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포퓰리즘 공약 역시 경계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한국경제][천자칼럼] 간장게장
달큰하고 진한 간장에 은은하게 삭힌 게살의 쫀득하고 탱탱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칠맛. 쪽쪽 소리를 내며 연신 빨아먹고 집게다리 속살까지 발라먹은 뒤 게딱지 내장에 윤기 나는 밥 한 술 비벼 먹으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앉은 자리에서 밥 두 그릇 정도는 게 눈 감추듯 해치우는 ‘밥도둑’의 대명사 간장게장.
조선시대 ‘게장 마니아’ 서거정은 ‘눈 내린 강 언덕에 얼음 아직 남았는데/ 이 무렵 게장 가격은 더욱 비싸구나/ 손으로 게 발라 들고 술잔을 드니/ 풍미가 필탁의 집게를 이기는구나’라고 노래했다. 필탁(畢卓)은 유난히 게를 좋아하던 중국 진나라 시인. 중국에선 기원전 7세기부터 게장을 천제에 썼다니 오래 전부터 귀하게 대접받은 진미였던 모양이다.
옛날에는 게를 소금에 절여 먹었으나, 점차 간장을 써서 염분은 줄이고 맛은 더 살렸다. 조선시대에는 민물게로 담근 참게장을 주로 먹었다. 임진강변 파주 참게 맛이 좋아 수라상에 올렸다고 한다. 참게는 추수기 논에서도 난다. 알이 많고 내장이 기름져 으뜸으로 쳤다. 가을에 담가 이듬해 여름에 먹느라 조금 짠 게 아쉽긴 하다. 호남에선 벌떡게(민꽃게)로 만든 벌떡게장을 즐겼다. 간장에 재워 1~2일 만에 먹는데 신선하고도 달콤한 맛이 백미였다. 금방 ‘벌떡’ 먹어치워야 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요즘은 민물게가 드물어 서해안과 남해안 일대에서 나는 바닷게를 주로 이용한다. 대표적인 게 암꽃게로 담근 꽃게장이다. 봄에 잡은 꽃게는 살이 부드럽고 비린내가 적으며 알도 풍부하다. 조리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그러나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든다. 우선 꽃게 위에 파, 마늘, 생강 넣고 끓인 간장을 식혀서 듬뿍 붓는다. 2~3일 뒤 간장을 따라내 다시 끓이고 식혀 붓는데 이걸 3회 반복하는 걸 ‘삼벌장’이라고 한다. 남은 간장물은 장조림이나 물김치에 활용한다.
꽃게에는 무기질과 아연, 칼슘과 철분 등이 많아 성장발육에 좋다. 타우린 성분은 간 해독을 돕는다. 콜레스테롤을 낮춰 동맥경화 같은 성인병도 예방한다. 신선한 재료와 영양 성분만큼 중요한 게 또 있다. 바로 장맛이다. 오랜 발효 과정을 거친 조선간장 특유의 깊은 미감이 어우러져야 최고의 간장게장이 완성된다.
최근 외국 관광객이 우리 간장게장집을 앞다퉈 찾고 있다. 지난해 미식평가서 ‘미슐랭 가이드-서울편’에 경복궁 옆 간장게장 전문점이 별 1개를 받은 뒤 더욱 그렇다. 이들을 사로잡은 맛의 비결 역시 청정 꽃게와 300년 대물림한 조선간장이라고 한다.
2. [NEWSIS][흙과 생명 이야기] 조선시대 꽃 기르기
'자연은 힐링이다.'
언제부턴가 해가 바뀌고 계절이 변할 때마다 경이로움과 함께 다가오는 느낌이다.
저 흙 속에서 한 움큼의 햇살, 한 줄기 바람과 더불에 피어나는 생명 때문일 것이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대지 위로 솟아오르는 그들의 이야기가 지친 우리의 일상을 위로하고 내면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우주 만큼의 사연과 신비로움이 그득한 탓이리라.
혼돈의 시대, 힐링과 지혜에 대한 갈급함이 크다. 뭇 생명들을 가까이에서 접하는 농촌진흥청 연구사들의 이야기를 매주 시리즈로 연재한다.
얼마 전 국민여가활동조사가 발표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취미부문을 보니 반려동물 기르기는 포함되어 있지만 식물 기르기는 빠져있다. 일본의 여가활동백서를 보면 전 국민의 4명 중 한명이 꽃·식물 기르기를 한다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꽃 기르기를 싫어하나?
조선시대 꽃은 격물치지(格物致知)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즉, 꽃을 기르거나 감상하는 것이 세상을 이치를 알아가는 계기라는 것이다. 꽃 기르기에 조예가 깊었던 가드너로서 조선 전기 화훼원예서인 ‘양화소록(養花小錄)’을 저술한 강희안(1417∼1464)은 꽃기르기가 격물치지할 수 있는 계기, 즉 꽃을 기르면서 세상의 이치를 알아간다고 했다.
조선 전기 성리학의 정립에 기여한 이언적(1491∼1553)도 꽃을 심으면서 ‘대자연의 이치를 더듬고’자 했으며 17세기 문신 황혁은 ‘천성을 기르는 것과 꽃을 기르는 것은 다르지 않다’고 하면서 꽃기르기가 격물치지의 수단임을 강조하였다.
전란으로 혼란스러웠던 조선 중기 일본에 간 강항(1567 ~ 1618)이나 청나라에 간 김상헌(1570~1652)에게 담장 밑에 부모님과 심었던 꽃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의 상징이었다. 왜란 중 의병장으로 활동하다가 귀향한 조호익(1545∼1609)이나 정경세(1563∼1633)가 심은 장미나 석창포는 평화의 상징이었다. 그 피폐했던 생활 속에서도 꽃은 언제나 그들 곁에 있었던 것이다!
18세기 이후 사회가 안정되면서 조선에도 가드닝 붐이 일어나게 된다. 조선 후기 16주제의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의 저자 서유구(1764∼1845)는 ‘오관을 이용하여 살아가는 사람에게 입(口)만 기르는 일에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허(虛)를 기르는 것이야말로 실(實)을 기르는 근원이다’라고 하면서 농학(본리지)과 채소원예학(관휴지) 다음으로 화훼원예학(예원지)을 저술했다. 즉, 쌀과 채소로 실용적인 생활이 가능한 후에는 꽃기르기를 통하여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인간의 이상적인 삶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가드닝 마니아였던 정약용(1762∼1836)은 ‘생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이기는 하지만, 꽃을 보고 기르는 것은 마음을 기르는 일로서 아무리 과하더라도 지나치지 않다’고 했고 ‘열매가 있는 것은 입과 몸을 길러주고, 열매가 없는 것은 마음과 뜻을 즐겁게 해주어 이 모두가 사람을 길러준다. 굳이 형체만 기른다면 정신이 굶주리게 된다’ 하면서 취미로 꽃식물기르기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최근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화훼의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얼마 전 모은행 앞에는 선물로 화분을 받지 않겠다는 글귀도 등장했다고 한다. 화훼 이용의 활성화를 위해 시급히 도입해야 할 방안이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
한편, 이런 때 일수록 화훼의 이용확대를 위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차근차근 해나가야 할 것이 있다. 무엇보다 국민의 취미나 문화생활 속에 꽃기르기가 정착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만 주는 이의 소중한 마음을 담은 선물로 분화나 절화를 자연스레 구입할 것이고 집안이나 사무실의 생활 속에서 꽃을 기르거나 즐기기 위해서 화훼를 사게 될 것이다.
또한, 꽃으로 장식된 상업공간의 가치를 인정하는 소비자의 심리가 생겨야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화훼장식을 하게 될 것이며, 꽃이 가진 심신의 치유 가치를 사회 전반이 공유하고 있어야만 원예활동이나 산물을 활용하는 의료복지기관이 늘어날 것이다.
조선 말기의 궁핍과 식민지 경험, 한국전쟁의 참화 후 목표만을 좇는 경제개발 과정에서 ‘생존 문제를 해결하는 것(養口體)’에 치우치다가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마음을 기르는(養神心) 꽃기르기’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다시금 우리네 생활 속에 자리 잡아서 국민의 아름다운 마음과 심신 건강을 가져다 주게 될때 화훼산업은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 속에서 ‘꽃들에게 희망’의 싹을 찾아보자.
3. [매일신문][세계의 창] 고골의 '외투'와 나의 목도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넵스키 거리
작가 고골의 작품 생각하며 걸어가
어느 틈에 바짝 따라붙은 소매치기
10년 전에 산 낡은 목도리만 빼내가
지난 4일 오전 9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눈발이 날렸지만 두툼한 외투를 챙겨 입은 덕분인지 생각보다 춥지 않다. 우버 택시를 부를까 하다가 호텔 체크인하기에도 이른 시간이라 버스와 지하철로 천천히 숙소를 찾아가기로 한다. 일정이 바쁘거나 짐이 많을 땐 꿈도 못 꿀 일이지만, 문학연구소만 방문하면 되는 짧은 일정이라 등에 멘 배낭과 작은 캐리어가 전부다.
지하철을 타고 넵스키 대로에서 내렸다. 푸시킨과 고골,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가이다. 수백 년 동안 도시의 상징이었던 이 거리에는 멋진 건축물과 조각들, 욕망을 자극하는 유럽의 명품 상점들이 죽 늘어서 있다. 이제 천천히 걸어도 10분이면 호텔에 도착한다. 운하를 지나 걸어가니 오른쪽으로 고골의 동상이 보인다. 넵스키 거리의 인간 군상들을 흥미롭게 그려냈던 작가이니 이 거리의 파수꾼으로 제격이다.
동상을 보면서 작가의 유명한 단편 ‘외투’를 떠올렸다. 주인공 아카키는 가족도 친구도 희망도 없이 공문 정서만 하면서 살아가는 중년의 초라한 말단 관리였다. 그런데 그에게도 마침내 삶의 의미가 생겼다. 계속 수선해 입던 헌 외투가 더 이상 손도 못 댈 정도로 낡아 버리자 재봉사가 새 외투를 맞추라고 제안한 것이다.
박봉에 새 외투 구입을 꿈도 못 꿨던 주인공은 마침내 결심을 하고, 몇 달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돈을 모은다. 옷감도 사고, 무슨 털을 붙여서 어떻게 외투를 만들지 재봉사와 의논하니 흡사 새 인생이 시작된 것 같다. 그렇게 완성된 외투를 입은 아카키, 살을 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추위도 남의 일이다. 세상을 다 가진 듯 어깨가 펴지고, 미녀도 상냥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것 같다. 난생처음으로 동료의 저녁 초대도 받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 아카키. 그러나 집으로 가던 중 넵스키 거리에서 외투를 강도당하고 만다. 경찰서를 찾고 유력 인사에게 탄원도 하지만 관료주의의 높은 벽을 실감할 뿐, 외투를 찾지 못한 주인공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린다.
약간은 허무한 이 결말에 작가는 아카키의 유령이 넵스키 거리에 출몰해서 사람들의 외투를 벗겨간다는 에필로그를 덧붙였다. 시대의 부조리를 잘 파악했던 천재였지만 황제로부터도 인정받고 싶어 했던 고골다운 비현실적인 결말이다. 추운 겨울, 가난한 관리에게 외투 하나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넵스키 거리는 여전히 아름답고도 비정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광기에 차서 원고를 불태우고 굶어 죽었던 작가 고골의 최후를 떠올리면서 동상을 지나갔다. 이제 저 모퉁이 약국에서 우회전해서 50m만 더 가면 호텔이다. 캐리어를 끌면서 걸어가는데 어쩐지 뒤가 서늘하다. 건장한 남자 두세 명이 아까부터 내 뒤에 붙어서 오고 있다. 배낭을 등에 멘 것이 마음에 걸린다. 슬쩍 돌아보니 약국 문 여는 시간표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멀쩡한 신사들이다.
그런데 모퉁이를 돌아 호텔에 거의 다 도착할 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내 뒤에 오고 있다. 바로 옆 이탈리아 명품 가게 유리창에 흘깃 비춰보니 배낭이 열려 있다. 황급히 돌아보니 남자들은 저만치 돌아서서 가고 있다. 한발 늦었다. 안에 들어 있던 지갑과 여권, 휴대전화는 이미 저들의 손에 있을 것이다. 고골을 생각하느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악명 높은 소매치기들에 대해 잊고 있었다니.
자책하면서 호텔 로비로 들어와 배낭에 손을 넣어 보니 지갑도 휴대전화도 노트북도 그대로이다. 내 배낭을 열었던 자들이 꺼내 간 것은 10년 전에 산 목도리 하나였다. 생각보다 안 추워서 둘둘 말아 배낭 맨 위에 넣어 둔 긴 목도리를 눈치 못 채게 꺼내느라 시간을 다 써 버린 소매치기들은 정작 그 아래 있던 지갑과 휴대전화를 빼낼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이다. 고골 이후 200년이 지난 지금도 넵스키 거리는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면서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그들이 가져간 것이 새 외투가 아니라 낡은 목도리일 따름에 안도하면서 말이다.
4. [머니투데이][광화문] 뉴욕 첼시마켓과 한국 전통시장
2013년부터 2년간 뉴욕 특파원 생활을 할 때 가끔 들린 시장이 있다. 한국 관광객들의 뉴욕관광 필수코스가 된 '첼시 마켓(Chelsea Market)'이다. 당시 이 곳과 '하이라인 파크'를 방문한 후 '옛 것' 멋 살린 뉴욕 명소라는 주제로 기사를 쓴 적도 있다.
3년여가 지난 지금 뉴욕 '첼시 마켓'이 다시 떠올랐다. 대형 마트 규제와 전통시장 보호 문제가 최근 수면 위로 또 부상했기 때문이다.
'전통시장 활성화'. 역대 정부마다 많은 예산을 들여 추진했던 정책이다.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도 곳곳에서 추진됐다. 하지만 이 사업이 성공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대부분의 국내 소비자들이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 등을 선호하기 때문에 전통시장 활성화는 늘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
그런데도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보호'는 올해 대선에서 주요 화두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표'와 직결되는 문제여서 대선 주자들이 외면할 수 없어서다. 이 때문에 유통업계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새로운 규제가 도입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
그토록 오랫동안 정치권과 정부가 '상생'을 외치면서 '대형 마트 규제와 전통시장 보호대책'을 추진했는데, 나아진 건 없고 되돌이표만 반복되는 걸까.
'첼시 마켓'은 우리에게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만이, 전통시장 보호만이 답이 아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첼시마켓은 '오레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자를 만들던 100여년된 과자공장의 시설물들을 그대로 활용했다. 에이미스 브랜드, 엘레니스 쿠키, 사라베스 베이커리, 팻 위치 베이커리 등 유명 식료품점과 '랍스타 플레이스'(The lobsterplace), 델리 등이 들어서 있다.
100여년 된 폐공장의 모습을 그대로 살렸기 때문에 첼시 마켓에 들어서면 솔직히 대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마켓 곳곳을 걸으면서 부서진 듯한 벽돌벽, 슬레이트 지붕, 감각 있는 소품, 색다른 인테리어들을 보면 독특한 멋을 느낄 수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물려받은 유산을 재활용하면서 현지인의 경제 생활에 도움을 주고, 관광특수까지 이끌어내는 '일석 삼조'의 효과를 거둔 것이다.
첼시 마켓에서 또 하나 눈에 띈 점은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해 화장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이다. 이를 보면서 국내 전문가들이 소비자가 재래시장을 찾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화장실 문제를 꼽았던 게 생각났다. 첼시마켓에서 관광객들과 뉴요커들은 화장실 이용의 불편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했다.
물론 첼시 마켓을 우리 전통시장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오래된 공장을 마켓으로 성공적으로 변모시켜 관광지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장의 경쟁력은 '맛'과 '멋'이며, 옛 것을 부수고 화려한 새 건물을 짓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외면한 채 '보호'와 '활성화'라는 단어만 앞세워서는 우리 전통시장을 살릴 수 없다. 정책의 중심에 '소비자'를 둬야만 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유력 대선주자를 비롯한 정치권은 아직도 "종합 쇼핑몰과 대형 마트의 입점을 규제하면 전통시장 상권을 살릴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유통과 IT가 결합되고 있는 시대에 규제는 다 같이 죽는 길로 갈 가능성이 높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유통업계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이갑수 이마트 대표가 "인구구조 변화, 온라인 채널 성장으로 오프라인 유통업 성장이 자동적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규제가 필요하냐"고 지적한 것을 흘려 들어서는 안된다. 지금은 규제가 아닌 시장의 '맛'과 '멋'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5. [동아일보][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 방치된 공백, 채워가는 여백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천재였습니다. 박학다식했던 화가는 단순 기술에 머물던 미술을 정신과 학문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공헌을 했지요.
화가는 스무 점도 되지 않는 그림을 남겼습니다. 게다가 몇 점은 미완성이기도 했습니다. ‘모나리자’도 완성이 덜 된 그림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림의 모델은 리자 게라르디니로 추정됩니다. 이탈리아 피렌체 실크 상인의 아내였지요. 당시 초상화 주인공은 주문자였던 소수 권력자들이었어요. 미술가가 모델을 자율적으로 선택하기는 제한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화가는 주문자의 신분이 높다고 해서 초상화 주문을 모두 받지는 않았습니다. 인품까지 참고해서 이례적으로 신흥 상인의 아내 초상화를 수락했다지요.
인간 가치에 새롭게 주목했던 시대 인식을 서둘러 그림에 충실히 반영하려 했겠지요. 그림은 명료한 윤곽선이 강조된 당대 초상화의 전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얇은 붓으로 덧칠을 반복해 입체감과 공간감을 사실적이며 신비롭게 표현해 냈지요. 그림 속 미소가 인간을 철저히 감정적 존재로 선언하고 있군요. 또한 화가는 인물을 강조하고자 당대 초상화가 깨끗이 비워두었던 배경에도 풍경을 정성껏 그려 넣었습니다. 인간을 작은 우주로 여기고 인체와 자연을 유기적으로 이해했던 화가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지요.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그림은 투철한 정신과 열정적 탐구의 산물이었습니다. 화가는 관찰에서 얻은 정보를 정확히 형상화하려 노력했습니다. 과학적 지식을 활용했고, 해부학적 지식도 동원했습니다. 예술가를 절대 정신에 다가가는 창조자라 믿었지요. 미술을 이성적 사고와 초월적 사유를 캔버스 위에서 결합시키는 행위이자 실천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니 작업 속도가 더딜 수밖에요.
1503년 피렌체에서 그리기 시작한 그림은 주문자에게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1516년 노화가가 채 완성되지 않은 그림을 들고 새로운 후원자가 있는 프랑스로 떠났거든요. 타국에서도 그림은 마무리되지 못했습니다. 혹자는 그림이 완성되지 못한 원인을 화가 말년의 오른손 마비에서 찾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미완의 걸작은 돌이킬 수 없는 실패가 아니라 기억해야 할 결실로 평가됩니다. 우리가 함께 채워 나갈 빈칸이 무책임과 변명으로 방치된 공백이 아닌, 가능성과 성취로 채워 나갈 여백이면 좋겠습니다. 치열하게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는 화가의 캔버스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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