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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국민일보]
1. 김정남 피살, 정부는 상황 관리에 한 치 오차 없어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13일 오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됐다.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여성 2명이 독침으로 살해했다. 15일 새벽까지 우리 정보 당국의 공식 확인은 없지만 곧 발표할 예정이다. 북한 공작원의 김정남 살해는 김정은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의 공포정치가 장성택 등 친인척에 이어 이제는 형제도 살해할 만큼 잔인해졌다는 뜻이다.
뒤집어보면 김정은 정권이 매우 취약하다는 정황이기도 하다. 김정남은 그동안 동남아와 유럽 등 해외로 떠돌면서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기도 했다. 김정은이 혈육까지 살해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몰두하는 것을 보면 북한 정권이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비이성적 상태인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이번 살해 사건으로 한반도 안보 불안이 한층 높아졌다. 김정은이 또 어떤 무모한 짓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가는 국내외 정황상 한반도는 안보 취약기에 해당한다. 국내는 대통령 탄핵 절차 진행으로 혼란스럽고, 미국은 막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강공 정책이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
북한이 엊그제 신형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분명히 북한은 크고 큰 문제”라며 “북한을 아주 강력히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취임 이후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대북 경고 메시지다. 국무부와 국방부도 “북한 위협을 격퇴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강경책이 김정남까지 살해한 북한 정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밀히 분석하고 우리 국익에 맞게 조정할 것은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도 신경 써야 한다. 미국과 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은 사드 배치 문제로 몽니를 부리고 있다. 현실적으로 북한이 도발적 행위를 시도한다면 제어할 곳은 사실상 중국밖에 없다. 사드 문제와는 별도로 우리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만 하는 이유다. 이렇듯 미국과 중국 등 한반도 주변이 어느 하나 우리에게 편안하게 돌아가는 구석이 없다.
우선 안보 문제 만큼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중심으로 정부와 정치권, 국민이 굳게 뭉쳐야 하겠다. 군은 흔들림 없는 안보태세를 갖춰야 한다. 국내 정치가 다소 여의치 않더라도 본연의 임무 수행에 한치의 오차도 없게끔 해야 하며, 이런 자세를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특히 외교안보부처는 가장 높은 긴장감을 갖고 한반도 안보상황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한·미는 모든 정보를 공유하며 대비할 필요가 있다. 외교 당국은 중국에도 북한에 대한 상황관리를 요구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 절차가 진행되더라도 안보는 굳건히 해야 한다. 정부가 그럴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연합뉴스]
2. 해외 떠돌다 살해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46)이 오랜 세월 해외를 떠돌다 결국 살해됐다. 정부 소식통은 14일 "김정남이 현지시간으로 13일 오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공항에서 살해됐다"고 말했다. 김정남은 공항 쇼핑구역에서 신원 미상의 여성 2명에게 독침을 맞고 쓰려져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사망한 북한 남성의 신원이 김정남으로 확인됐다고 말레이시아 경찰을 인용해 보도했다. 다만 김정남의 구체적 사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외교부는 김정남 피살설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김정남은 김정일과 첫째 부인 성혜림 사이에서 출생했고, 김정은은 김정일의 셋째 부인 고영희에게서 태어났다. 김정남은 '백두혈통'의 장남으로서 한때 김정일의 후계자로 거론됐다. 그러나 2001년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하려다 적발된 사건 이후 북한 권력의 중심에서 서서히 밀려났다고 한다. 그 후 마카오와 베이징 등지를 오가면서 해외생활을 해왔다. 특히 그의 후견인 역할을 해온 고모부 장성택이 2013년 12월 처형된 뒤로는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주로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은 장성택과 함께 북한의 대표적인친중파 인사로 꼽혔다. 김정남이 이번에 말레이시아에 간 이유는 즉각 확인되지 않았다. 그는 2014년 1월 쿠알라룸푸르의 한식당에 모습을 드러냈고, 같은 해 5월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레스토랑에서 30대 여성과 함께 있는 모습이 목격됐다.
김정남 피살이 북한의 소행으로 최종 확인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해외생활을 해온 그가 결국 김정은 공포정치의 희생양이 됐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독침 암살은 북한 공작원이 자주 쓰는 수법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은 2010년 아사히TV와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3대 세습에 반대한다"고 발언하는 등 한때 북한의 권력 세습에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김정은이 자신의 체제를 한층 공고히 하기 위해 잠재적 위협요소인 이복형을 제거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남이 김정은의 소환 명령에 불응해 살해됐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동안 김정남에 대한 북한의 암살기도설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김정은의 친족이 해외에서 살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정일의 처조카이자 김정남의 이종사촌인 이한영은 한국으로 망명했다가 1997년 2월 북한 공작원에게 암살됐다.
이 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최종 확인되면 여러 가지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 다른 나라 수도의 국제공항에서 백주에 암살 테러를 자행했다는 점에서 북한 정권의 무모한 호전성과 폭력성을 다시 한번 만천하에 보여준 만행이다. 북한이 신형 중장거리 미사일(IRBM)을 발사하고 이틀 만에 이런 일이 다시 터져 뭔가 북한 내부에 이상기류가 있는 것 아닌지 우려되기도 한다. 일시적으로 북중 관계가 불편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이번 사건이 한반도 안보 상황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북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기민하고 차분하게 대처하기 바란다. 외교 안보 당국은 말레이시아 당국과 긴밀히 협조해 사건의 전모를 신속히 파악해야 한다. 경찰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요 탈북인사의 신변보호를 한층 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데일리]
3. 미국 ‘선제 공격론’에 대한 대책 있는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북한을 “아주 강력히 다룰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이처럼 직설적인 표현으로 흥분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틀 전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만찬을 즐기던 도중 북한의 ‘북극성 2형’ 발사에 관한 급보가 전해지자 예정에 없던 심야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을 강력 규탄했다. 북한의 신형 중장거리 탄도미사일(IRBM) 발사에 대해 우리보다 미국이 더 긴장한 분위기다.
트럼프가 지난달 취임 이후 ‘반(反)이민 행정명령’과 멕시코와의 장벽 건설 등을 밀어붙였던 만큼 북한에도 초강수를 둘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주목되는 것은 기존 ‘세컨더리 보이콧’과 더불어 북한 핵시설을 먼저 공격하는 ‘선제 타격론’이 점점 힘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미 의회 역시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충돌을 뜻하는 ‘코리아 시나리오’를 공공연히 거론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거드는 분위기다.
미국이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용도 폐기했다면 우리의 대응도 달라져야 하지만 실상은 영 딴판이다. 미국은 일찌감치 작년 가을 주한 미국 민간인 소개훈련까지 마쳤으나 우리는 천하태평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판결이 빨라야 한 달이고 더 늦춰질 경우도 배제할 수 없으나 온 나라가 조기대선 구도에 함몰돼 북한 미사일에는 안중에 없는 듯하다. 대선주자랍시고 어중이떠중이 다 나서서 표심몰이에 열을 올리지만 평양의 도발에는 거의 오불관언이다.
지금 상황이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와 전혀 다르다는 게 문제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북한 영변을 폭격하려던 미국을 가까스로 막아냈으나 지금은 핵전쟁 예방 차원에서 북한 지도부나 핵기지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을 말리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유력하게 제기되는 국면이다.
그렇다고 순식간에 대재앙을 초래할지 모르는 한반도 전쟁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만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고질병인 안보불감증 해소가 급선무다. 아울러 탄핵정국의 대통령권한대행 체제로 한계가 있겠지만 때를 놓치기 전에 미 행정부 및 의회와 다각적인 대화 창구를 확보해야 한다. 미국이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최대한 지킬 수 있는 방안을 관철시켜야 할 것이다.
4. 낙제점에 그친 ‘박근혜 표’ 경제정책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이 낙제점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로 마무리되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대해 이데일리와 기획재정부가 공동으로 평가한 결과다. 그것도 100점 만점에서 38점에 그쳤다면 이만저만한 실패가 아니다. 의욕적으로 제시됐던 목표들이 대부분 겉핥기로 끝났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떠나 경제 분야에서도 적잖은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더구나 이번 평가는 정부 공식 통계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당초 정부가 내걸었던 16개 성과지표 가운데 현재 목표가 달성된 것은 공공기관 부채비율 등 6개에 불과하다. 잠재성장률이 2%대로 떨어진데다 고용률은 60.4%, 국민소득은 2만 7000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른바 ‘4·7·4’라는 목표가 하나의 신기루였던 셈이다. 담당 부처들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목표를 높여 잡았다고는 하지만 격차가 너무 크다.
처음부터 백화점식 정책 나열로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던 상황을 감안하면 이러한 결과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정책끼리 서로 충돌하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청년·여성 고용률이 목표에 미달했으며,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갈수록 치솟고 있다. 지난해 파업에 따른 근로손실일수가 역대 최장을 기록했다는 점에서도 사회 갈등이 더욱 심해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의 역대 경제팀이 직접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문제다. 현오석·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물론 현 유일호 부총리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최 전 부총리의 경우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며 어설픈 접근 방식을 내세워 경제 체질을 더욱 엉망으로 만들었다.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감이 허물어진 지도 오래다. 경제정책의 실패가 잘못된 인선에서 비롯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문제는 다음 정권을 맡을 주체에 있어서도 정책 비전이 분명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조기 대선에 나선 주자들마다 경제활성화 방안은 제쳐놓고 퍼주기식의 포퓰리즘 공약으로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려는 움직임이다. 이래서는 나라 살림이 거덜나는 것도 시간문제다. 정책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앞서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동아일보]
5. 대통령 탄핵심판 변호인단 법리도 품격도 없다
선진국에 비해 길지 않은 헌정사에 2004년에 이어 10년여 만에 다시 대통령 탄핵심판을 맞은 것은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그럼에도 대통령 탄핵심판은 그 희소성과 중대성으로 우리 헌정사는 물론 사법사(司法史)에 길이 기록될 재판이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재판에 응하는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이 치열한 법리 다툼은커녕 가볍고 수준 미달의 행태를 보여 국민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어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공개변론에서 대통령 측 서석구 변호사는 변론 시작 전에 태극기를 펼쳐 보였다가 헌재 경위의 제지를 받았다. 서 변호사는 처음 대통령 변호를 시작할 때부터 ‘촛불 민심은 민심이 아니다’라며 박 대통령을 박해 당한 소크라테스와 예수에 비유하는 황당한 인식을 드러냈다. 매번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그는 최근 집회에선 “이 집회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보고 있다”고 한 뒤 갑자기 영어로 연설하기도 했다. 변호사가 대통령을 법리로 방어하는 게 아니라 장외 여론전에 기대 지지층 결집에 골몰하고 있다.
대리인단 이중환 변호사는 지난번 변론에서 최순실-고영태 불륜설을 제기하며 대통령이 고영태에게 억울하게 당했다는 인식을 드러내 재판부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불륜설은 사실 여부도 확실하지 않을뿐더러 사건의 본질과는 무관하다. 어제 국회 측 요청으로 헌재에서 공개된 고영태 녹음파일에는 “VIP(대통령)는 이 사람(최순실)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발언이 들어 있었다.
대통령에게 불리한 녹음을 증거로 신청하겠다고 먼저 밝힌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대통령 측이었다. 녹음파일의 유·불리도 따지지 않고 파일이 증거로 채택되면 검증기일이 늘어나 재판이 연장될 것이라는 점만 고려하다가 오히려 대통령을 불리하게 만들었다. 일반 사건이라면 의뢰인이 변호인을 해임할 사유다.
후대에 남을 탄핵심판은 국회 측과 대통령 측 대리인단 모두 최고의 법리와 풍부한 판례로 재판관들을 설득해야 한다. 어제 첫 변론에 나선 대리인단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은 “권력 주변에 기생하며 호가호위하는 무리가 있었고 그들을 사전에 제거하지 못한 대통령의 잘못은 따끔히 나무라야 한다”면서도 “그런 과오가 헌법상 임기가 보장되는 대통령직에서 파면할 정도의 잘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연한 변론이 오히려 합리적으로 들릴 정도였다. 돌발행동이나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저급한 폭로로 되지도 않을 지연작전이나 펴는 것은 옳지 않다. 대통령 대리인의 변호는 격(格)이 있어야 한다.
[매일경제]
6. 고영태 사단의 기획폭로 의혹 간단히 넘길 일 아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고발자 격인 고영태 씨와 주변인 간 통화녹음 파일이 탄핵심판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헌법재판소는 14일 13차 변론에서 전체 2300여 개 파일 중 녹취록 29개를 증거로 채택했으며 앞으로 더 많은 파일이 추가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
공개된 녹음 파일 내용을 보면 괴이쩍은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최순실 사건 이전 고씨 측근 중 한 명이 녹음한 이 파일에는 고씨가 문제의 K스포츠 재단을 장악하고 정부 예산을 빼돌리려고 한 정황이 담겨 있다. "나하고 소장(최순실)과 관계가 끝나더라도…. 끝날 때가 됐어" 등 고씨가 최순실과의 관계 정리에 대비하는 얘기도 나온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들이 언론을 통해 사건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는 한편 자신들이 관련된 증거 인멸을 모의한 정황이다.
고씨 측근 이 모씨는 "월요일부터 기사가 계속 나올 거야"라며 이메일 삭제, 휴대폰 해지와 유심칩 폐기를 지시하고 있다. 실제 이 통화가 있은 지 10여 일 후 모 종편방송에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박태환 선수에게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 포기를 종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최초 보도였다.
탄핵 반대 진영에선 이 녹음 파일을 "고영태가 사실을 과장·왜곡하는 기획 폭로로 사건을 국정농단으로 몰고 갔음을 보여주는 핵심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국회 소추위원단은 "고씨가 최순실의 약점을 이용해 뭔가 시도하다 실패한 사건일 뿐 탄핵소추 사유와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드러난 증거만으로는 어느 쪽이 맞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에 제기된 여러 혐의 중 상당 부분이 고씨 측 폭로가 발단이 된 것은 사실이다. 최씨 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법원에서 사실관계 다툼이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고씨 측 폭로의 의도와 진실성을 검증하는 것은 최종적 진실 규명에 있어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그런데 검찰이 "사건과 별 상관없다"며 넘긴 녹취록 외 나머지 녹음 파일에서 고씨 등이 증거 인멸을 의논한 흔적이 발견되는 등 수사 신뢰성까지 의심받고 있다. 이 의혹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는 탄핵심판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7. 만시지탄 자율주행차, 핵심은 생태계 조성이다
국토교통부가 그제 2020년까지 부분적인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위해 법·제도를 정비해 나가겠다며 정책 로드맵을 제시했다. 현대자동차도 기존 자율차 조직을 통합 확대하고 GM에서 세계 최고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자율주행차 개발에 가속 페달을 밟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뒤늦게라도 자율주행차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본격 시동을 건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올해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의 주인공도 단연 자율주행차였다. 겉은 자동차지만 인공지능(AI), 센서, 초정밀지도, 빅데이터 처리, 클라우드컴퓨팅,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기술이 집약된 4차 산업혁명의 총아라 할 만하다. 자율주행차 비율은 2035년에는 75%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망된다. 세계 각국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미래 성장성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2020년 목표로 하는 자율주행차 수준은 기술단계 중 '레벨3'로 돌발 상황에 대비해 운전자가 타고 있어야 하는 '조건부 자동화'다. 그런 점에서 완전한 자율주행차인 '무인주행차'를 꿈꾸고 있는 구글, 도요타 등과 격차가 상당히 크다. 2009년부터 '자율주행차 프로젝트'를 시작한 구글의 누적 주행거리는 지난해 10월 기준 200만마일(약 322만㎞)을 돌파했다.
도요타는 구글의 하도급 업체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지난해부터 자율주행 AI에 1조원 이상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 7년여간 구글이 축적한 기술이나 2020년 도쿄올림픽을 정조준해 투자에 나선 일본을 한번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겠지만 최대한 속도를 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주도해 시장을 끌고 가려고 해선 안 된다. 핵심은 생태계 구축이다. 도로 인프라 구축과 더불어 대학과 공공기술연구소의 협업, 기존 자동차 업체와 전기전자, 통신 보안, 디지털맵, 노변 장치, 빅데이터 등 중소 업체들의 기술 융합이 가능한 개방형 산업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조율과 지원이다. 구글, 도요타 등의 무인화 추세에 적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산업 생태계 주체간 협력을 유도하고 신기술과 충돌하는 규제부터 선제적으로 걷어내야 한다.
[서울신문]
8. 김정남 피살, 극에 이른 김정은 공포 정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그제 오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집권 후 김정남이 북한의 권력 세습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는 점에서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 안정을 위해 이복형을 암살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김정남이 현지에서 여성 간첩 2명의 독침으로 살해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북한 전문가들은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의 직접 지시나 승인 없이 이복형의 제거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의 소환 명령에 불응에 살해됐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해외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북한군 내 정찰총국이나 보위부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야 하지만 김정남의 죽음은 김정은 정권의 공포정치와 숙청 통치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김정남은 처형된 장성택 등과 함께 북한의 개혁·개방을 지지했던 인물로서 김정은 체제에 비판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아 해외에서 여러 차례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김정남 제거가 중국을 향한 메시지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은 그동안 ‘백두혈통’으로 개혁·개방 정책에 우호적인 김정남을 음으로 양으로 돌보면서 북한 권력 내부의 변고에 대비해 왔다. 대표적인 친중파였던 장성택을 전격 처형할 당시에도 김정남과의 연계설이 끊이지 않았다.
김정남은 김정일과 본처 성혜림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오랫동안 권력 승계 수업을 받았던 인물이다. 1990년 조선컴퓨터센터(KCC) 설립을 주도하면서 정보기술(IT) 분야와 군사 분야의 주요 직책을 맡았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성격과 돌출 행동 때문에 김정일 눈 밖에 났고 2001년 5월 도미니카 가짜 여권을 소지한 채 일본에 입국하려다 체포·추방된 이후 권력에서 밀려났다.
김정은의 공포정치는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자신의 3대 세습정권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은 가차없이 제거해 왔다. 군부 실세로 꼽히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을 시작으로 김정일 장례식 때 영구차를 호위했던 김정각 등 ‘군부 4인방’도 숙청됐다. 권력 2인자이자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2013년 12월에 전격 처형해 국제적인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후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재판 절차도 없이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했고 김용진 내각 부총리 역시 불량한 자세로 앉았다는 이유로 처형해 공포정치를 이어 가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이 최근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 도발이나 김정남 암살처럼 앞으로도 가공할 모험주의적 도발을 집요하게 펼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당장 지난해 망명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등 고위급 탈북자들에 대한 신변보호를 강화하는 것도 급선무다. 북한의 호전적인 도발에 대해 정부 당국은 국제사회와 긴밀한 공조가 시급하다.
[세계일보]
9. 헌재 출석 우습게 여기는 안봉근·고영태
국정농단 사태 핵심 증인들의 헌법재판소 우롱이 도를 넘고 있다. ‘문고리 3인방’ 중 1명인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은 어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에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5일과 19일에도 뚜렷한 사유를 밝히지 않고 증인 출석을 거부했다. 어제 탄핵심판 13차 변론에선 증인 4명 중 3명이 불참했다. 헌재는 불출석자들에 대한 증인 채택을 취소했다.
박 대통령 역시 두 차례나 헌재 출석 요구를 거부했다. 비선실세 최순실씨는 물론이고 정호성 전 비서관도 어김없이 불출석한 전력이 있다. 이재만 전 비서관의 경우 헌재가 경찰에 소재 탐지까지 요청했으나 결국 출석요구서를 전달하지 못한 상태다. 무더기 증인 신청과 특검 소환조사 거부 등처럼 지연작전의 일환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최씨의 비리를 폭로한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의 행태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고씨는 거주지 불명상태를 유지하면서 헌재의 증인출석 요구서 수령 자체를 거부해 왔다. 헌재가 고씨의 증인 출석이 점쳐진 형사법정에 직원들을 보내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지난해 말 법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해 국회 청문회 출석 요구를 피했던 방식 그대로다.
고씨는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과 함께 최씨를 도운 핵심인물로 국정농단 전모 파악에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다. 그런데도 잠적 상태에서 특검과 연락 채널만 열어놓고선 헌재 출석을 피하고 있으니 떳떳하지 못하다. 태극기 집회 현장에서는 고씨도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구호가 나오고 있다.
헌재의 탄핵심판은 현직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짓는 국가 중대사다. 공정한 결정을 위해선 사실관계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런 판국에 핵심 증인들이 줄줄이 증언을 거부한다면 진실 규명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증인의 헌재 출석을 담보할 수 있는 법제 정비가 시급하다. 물론 헌법재판소법 심판 규칙상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는 증인은 강제구인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불출석 사유서 제출에 대한 시한이 없다 보니 변론 개시를 바로 앞두고 사유서를 내더라도 실질적으로 구인영장을 발부하기가 쉽지 않다. ‘국회에서의 증언 및 감정에 관한 법률’에 비해 형량이 낮은 불출석 증인에 대한 처벌 조항도 손질할 필요가 있다.
[매일신문]
10. 구제역 난리통에 도박판, 나사 빠진 공무원
온 나라가 구제역으로 난리통인 와중에 축산 농가가 많은 안동지역 간부 공무원이 도박판을 벌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라 구제역 방역 업무를 지휘해야 할 면장과 축산 관련 부서 간부가 포함돼 있어 어처구니가 없다.
지난 12일 안동시 간부 공무원이 건설업자 등과 180만원대 도박을 벌이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단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이날 오후 6시부터 4시간 동안 속칭 ‘훌라’ 카드 도박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에 적발된 공무원 중에는 면장과 축산 관련 부서 계장이 포함돼 있었다. 구제역으로 안동시 전 공무원 비상근무 명령이 떨어진 상황에서 구제역 방역 관련 부서 간부들이 한가롭게 도박을 했다는 점은 놀라울 정도다.
잘 알려졌다시피 안동시는 구제역 상흔이 깊게 팬 곳이다. 2010년 11월 발생한 구제역으로 지역 축산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방역 및 살처분 비상근무에 나섰던 공무원 3명이 과로로 숨지고 여성 공무원이 낙태를 겪는 등 물적`정신적 피해는 재앙 수준이었다. 충북 보은 등지에서의 구제역 발생 소식이 전해진 직후 안동시는 ‘구제역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전 공무원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다. 모든 농가를 대상으로 긴급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공무원들에게 방역소초 주`야간 3교대 근무 명령을 내렸다.
안동시는 결기를 보였지만 일부 간부 공무원은 일탈 행위를 벌였다. 구제역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안동시의 다짐은 결과적으로 구두선(口頭禪)이 돼버렸다. 일부 공무원의 부적절한 행동은 구제역 방제 업무로 고단한 대다수 공무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공무원에 대한 국민 불신을 낳는다.
문제는 더 있다. 청탁금지법 발효 이후 공무원들은 직무 관련자와 3만원 이상 식사를 하는 것 자체가 금지돼 있는데 어떻게 간부 공무원이 업자와 은밀한 장소에서 만나 도박판을 벌일 생각을 한 것인지 개탄스럽고도 석연찮다. 경찰은 도박이 일회성이었는지, 상습적이었는지 낱낱이 수사해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안동시도 경찰 수사를 토대로 엄중한 징계를 내려서 기강을 잡아야 할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머니투데이][우보세] 초콜릿을 특별하게 먹어야 하는 이유
5살 난 딸아이는 초콜릿을 보면 몸을 비튼다. 한 입만 먹여도 눈을 가늘게 뜨며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 부부는 그런 아이를 보며 ‘취한 사람 같다’고 놀린다. 2600년 처음 초콜릿을 먹었다는 마야 사람들도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밸런타인데이 전날,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에서 초콜릿 두 개가 나왔다. 친구들이 줬단다. 1개는 곧바로 냉장고에 넣고 1개는 아이의 선물이라며 남편한테 줬다. 아이가 말없이 눈빛으로 아쉬움을 호소했지만, 무시했다. 초콜릿은 ‘착한 일을 했을 때의 보상’이자, ‘아주 특별한 날의 상징’으로 남겨둬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한테 습관 들이기에 초콜릿은 여러모로 부적합한 음식이다. 2000년대초 가나, 코트니부아르의 카카오 농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알려지면서 초콜릿 산업은 아동노동 착취산업이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그 후 초콜릿 제조업체들은 일명 ‘코코아 협약’을 맺었다. 이것이 서아프리카 아동노동 근절을 위한 ‘하킨-엥겔 협약’(Harkin-EngelProtocol)이다. 카카오를 공급받는 농장을 대상으로 아동노동 근절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고 감독, 개선을 지속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래도 가나, 코트니부아르에선 많은 아이들이 카카오 농장에서 일한다. 이 지역에선 온 가족이 일하지 않으면 생계 유지가 안 된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하루 평균 임금이 코트디부아르는 0.34달러, 가나는 0.45달러란다. 코트디부아르의 6인 가족 하루 평균 임금은 1달러에도 못 미친다. 먹고 살려면 부모들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대신 코코아 농장에 보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안전장비나 보호구 없이 코코아의 단단한 껍질을 벗기기 위한 큰 칼, 강력한 살충제 따위에 노출된다.
전 세계 대부분의 초콜릿 제조업체들이 가나와 코트디부아르에서 코코아를 제공 받는다. 몇%일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가 편하게 살 수 있는 초콜릿엔 아동노동이 들어가 있다. 아이가 초콜릿 맛에 빠져 슈퍼마켓에 들어갈 때마다 ‘초콜릿 사줘’를 외친다면 난 매번 죄책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초콜릿은 특별한 날에 먹는 특별한 음식’이라는 편견을 주입해버렸다.
실은 아동노동 없는 초콜릿을 먹이는 길이 있긴 하다. 아름다운커피나 아름다운가게,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그루 같은 공정무역업체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주문하는 것이다. 하지만 배송에 걸리는 2~3일은 지금 당장 초콜릿을 먹기를 바라는 아이한테는 이해할 수 없이 긴 시간일 것이다. 초콜릿은 이래저래 내 아이의 일상엔 적합하지 않은 음식이다.
공정무역 제품으로 한정해 말하자면, 초콜릿은 어른들한테는 특별하게 챙겨 먹을 만한 음식이다. 정기적으로 초콜릿을 먹는 사람들은 뇌졸중, 심장병 같은 성인병 발병 위험이 줄더라는 연구가 있다. 공정무역 카카오농장에서 일하는 어른들한테는 아이들을 학교를 보낼 만한 소득을 준다.
이따위 소비자들의 사소한 고민, 강제성 없는 협약이 세상을 얼마나 바꿨으랴 싶어 국제노동기구(ILO) 홈페이지에서 아동노동 통계를 검색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노동하는 아동의 숫자는 2000년 2억4600여만 명에서 2012년 1억680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소녀들의 노동은 40%가 줄었다.
2. [서울신문][이호준의 시간여행] 난로가 있는 교실 풍경
한파가 한풀 꺾이면서 ‘봄’이라는 단어가 부쩍 자주 들린다. 하지만 봄은 결코 쉽사리 오지 않는다. 도시를 배회하는 찬바람은 여전히 옷섶을 헤치고, 따사로운 햇살은 남쪽 섬을 맴돈다. 돌아보면 한겨울보다는 봄이 오기 직전이 더 추웠다. 교실이나 군 내무반에서 난로를 땔 무렵이기 때문이다.
추억은 ‘과장’(誇張)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몇십 년 전의 겨울은 요즘보다 훨씬 더 추웠던 것 같다. 실제로 기온이 낮은 탓도 있겠지만 부실한 옷차림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지금도 칼날 같은 바람이 쌩쌩 부는 신작로를 달음박질치던 어린 날을 생각하면 몸이 옹송그려지고는 한다. 집에서 초등학교까지 십리가 넘는 먼 길이었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면 밤새 몸을 얼린 바람이 달려들어 뺨을 할퀴고는 했다.
방학이 끝난 이 무렵의 등굣길은 고통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 아이들이야 눈구덩이 속에서도 끄떡없을 만큼 따뜻하게 입히지만 그때는 어림도 없었다. 조금 여유 있는 집 아이들이나 솜 누비옷에 내복이라도 입었지, 홑겹 옷으로 겨울을 견디는 아이들도 없지 않던 시절이었다.
학교에 도착해도, 유리창이 깨지거나 구멍이 숭숭 뚫린 교실은 한데보다 별로 나을 게 없었다.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얼른 난로를 피우는 것이었다. 조개탄을 타오는 것이 당번이 맨 먼저 할 일이었다. 저학년 아이들은 선생님이 대신해 주기도 했지만 일꾼 하나 몫을 하는 고학년들은 스스로 피워야 했다. 곱은 손을 호호 불며 양동이를 들고 창고로 가면 하루 분량의 장작과 조개탄을 나눠 줬다.
난로를 피울 땐 불쏘시개로 장작에 불을 붙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장작이 타오르면 조심스럽게 조개탄을 올린다. 조개탄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 교실에 조금씩 온기가 돈다. 아이들이 하나 둘 문을 열고 들어설 무렵이면 교실은 제법 훈훈해져 있었다. 난로가 달아오르면 주전자에서도 물이 펄펄 끓어올랐다.
난로와 떼어놓을 수 없는 ‘찰떡궁합’이 있었다. 바로 ‘벤또’라 부르던 도시락. 4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면, 선생님이 문을 나서기도 전에 아이들은 도시락을 꺼내 들고 부리나케 난로가로 달려갔다. 칠이 벗겨지고 찌그러진 도시락들이 난로의 열기를 흠뻑 품을 무렵에는 온갖 냄새의 향연이 펼쳐졌다. 반찬째 올려놓은 도시락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 밥이 눌어붙는 구수한 냄새….
그 냄새들은 아이들의 뼈에 새겨져 어른이 될 때까지 추억이 되고 그리움이 됐다. 그렇게 겨울을 난 아이들은 꽃이 필 무렵이면 초겨울에 새로 입은 바지가 발목까지 올라올 만큼 훌쩍 자라 있고는 했다.
지금도 어쩌다 만나는 드럼통 난로나 시골 이발소를 지키고 있는 무쇠난로 앞에 서면 마음부터 훈훈해진다. 이어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리던 어릴 적 친구들이 떠오른다. 빨간 손 호호 불며 난로를 피우던 아이, 난로에 가래떡이나 고구마를 올려놓고 침을 삼키던 아이. 하나뿐인 나일론 양말을 말리다가 호르르 태워 먹고 울먹이던 아이….
얼마나 아름다운 날이었던지. 보석은 보석함이 아니라 가슴에서 빛나는 법이다. 그때마다 생각하고는 한다. 추위에 노출될 새도 없이 온실 속에서 자라는 요즘 아이들의 겨울은 무슨 추억으로 채색될까. 찬바람에 뺨 한 번 붉힐 새 없이 보내는 겨울이 무조건 행복한 것일까. 끝내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3. [경향신문][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당신의 글은 참 좋았습니다
그곳에 그는 없었다. 그는 그곳에 당당히 있어야 했다. 그의 작품이 상을 받아서 북 콘서트가 열린 자리였으니까.
7년 전 그를 처음 봤던 곳도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상식 자리였다. 오래되어 언저리만 남은 희미한 기억 속에서 스물다섯 살의 그는 쑥스러워하며 배시시 웃는 모습이다. 취업을 하지 못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첫 작품으로 상을 탄 그는 담담했다. 첫 발걸음을 뗀 그의 모습은 금방 잊혔다. 그가 그 뒤로 세상에 내놓은 작품은 얼굴 붉히는 볼 빨간 이십대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폭력 앞에 무참히 짓밟히고 깊은 절망에 빠진 소년의 이야기를 밑바닥까지 끌고 내려간 작품에서 그는 분노한 소년이었고, 평생 농사를 짓다가 상경해서 대학교 청소노동자가 된 노인의 이야기를 넉살 좋게 풀어 놓은 작품 속에서 그는 모진 풍파를 이겨낸 위풍당당한 할머니였다. 세상을 관조하며 인간 군상의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날카롭게 읽어내는 그의 노련함이 놀라웠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쓴 걸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는 사람을 통 만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그를 만나는 편집자만이 간간이 소식을 전해줬다. 그의 안부는 한결같았다. 쓰고, 또 쓰고 그리고 쓰고 있었다. 그래서 다행이다 싶었다. 젊은 작가는 그렇게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겠구나. 그가 묵묵히 걷고 있는 곳이 거대한 도시인지, 광활한 우주인지, 무엇인지 작품을 통해 알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는 작년에 원고지로 3000장이나 되는 긴 작품을 썼다. 묵직한 책을 받고는 도무지 작가의 얼굴이 짐작되지 않았다. 경구처럼 잇닿는 문장과 무섭게 파고드는 집요한 인물들 속에서 그는 어디쯤 있는 걸까. 궁금해도 그를 만나 물어볼 수는 없으려니 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를 만날 줄 알았다.
그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북 콘서트가 치러지는 날, 그의 빈자리가 가슴 아팠다. 그의 작품을 얘기하고 작품 속 문장을 읽으면서 그의 부재가 와 닿았다. 나는 그에게 당신 글이 참 좋다는 말을 끝내 못하고 말았다.
폭력 앞에 무참히 짓밟히고 깊은 절망에 빠진 소년의 이야기를 밑바닥까지 끌고 내려간 작품에서 그는 분노한 소년이었고, 평생 농사를 짓다가 상경해서 대학교 청소노동자가 된 노인의 이야기를 넉살 좋게 풀어 놓은 작품 속에서 그는 모진 풍파를 이겨낸 위풍당당한 할머니였다. 세상을 관조하며 인간 군상의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날카롭게 읽어내는 그의 노련함이 놀라웠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쓴 걸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는 사람을 통 만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그를 만나는 편집자만이 간간이 소식을 전해줬다. 그의 안부는 한결같았다. 쓰고, 또 쓰고 그리고 쓰고 있었다. 그래서 다행이다 싶었다. 젊은 작가는 그렇게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겠구나. 그가 묵묵히 걷고 있는 곳이 거대한 도시인지, 광활한 우주인지, 무엇인지 작품을 통해 알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는 작년에 원고지로 3000장이나 되는 긴 작품을 썼다. 묵직한 책을 받고는 도무지 작가의 얼굴이 짐작되지 않았다. 경구처럼 잇닿는 문장과 무섭게 파고드는 집요한 인물들 속에서 그는 어디쯤 있는 걸까. 궁금해도 그를 만나 물어볼 수는 없으려니 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를 만날 줄 알았다.
그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북 콘서트가 치러지는 날, 그의 빈자리가 가슴 아팠다. 그의 작품을 얘기하고 작품 속 문장을 읽으면서 그의 부재가 와 닿았다. 나는 그에게 당신 글이 참 좋다는 말을 끝내 못하고 말았다.
4. [매일신문][매일춘추] 정월대보름
한 무리의 걸립패가 들이닥쳤다. 새끼줄을 매단, 깃대를 든 남정네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나는 얼른 방방이 문을 열어젖힌다. 큰아이와 작은아이도 들뜬 표정으로 방문을 연다.
우리 집에 언제 이렇게 많은 이웃이 왔었던가. 사람 사는 집에, 사람 소리가 나야 제대로 된 집이라던 이웃 어르신들의 말씀처럼, 우리 집은 지금 흥에 겨워 있다. 열댓 명 남짓한 걸립패가 들어서니 온 집안이 야단법석이다.
우리 집은 지금, 정초에는 온 집안을 한바탕 떠들썩하게 해야 바깥의 액운이 집 안으로 미치지 못한다는 세시풍속을 치르는 중이다.
징과 북, 꽹과리 소리가 땅과 하늘까지 닿도록 거하게 놀고서야 멈췄다. 상쇠가 거실에 차려진 제상 앞으로 나온다. 대주인 남편이 쌀 그릇에 꽂힌 초에 불을 붙이고, 두어 번 절을 올리자 상쇠의 고사축원이 이어진다. 한 해 동안 이 집안에 액운이 들지 않도록 좋은 기운을 북돋아 달라며 터줏대감과 여러 신에게 고하는 말인 듯싶다.
고사축원이 끝나자 다시 요란하게 풍물이 시작되고, 남편은 쌀과 봉투 하나를 새끼줄에 엮는다. 물이 오른 걸립패들은 거실을 몇 바퀴 돌고서 큰방, 작은방, 부엌, 화장실, 창고까지 온 집안을 벌집 쑤시듯 휘저은 후에야 대문을 나선다. 오랜만에 집안에 화색이 돈다. 간소한 상차림과 간소한 의식 속에 우리의 일 년 치 액막이가 모두 해결되었으리라.
양말 공장에서는 양말 두어 묶음을, 과일상회에서는 과일 몇 소쿠리를, 노령연금을 받아 근근이 생활하는 노인은 천원짜리 지폐 두어 장을 내어 놓고 걸립패들을 불러 액막이굿을 했다.
걸립패들은 액막이굿을 원하는 집이면 일정한 금도 없이 어디든 찾아들었다. 온 종일 이집저집 신명나는 소리로 동네가 들썩였다. 까마득히 먼 옛날의 ‘쓰잘데기 없는 미신’ 즈음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액막이를 했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은, 일 년 내내 한결 가볍고 평안하리라.
문명의 밝은 불빛 아래 사는 우리. 우리는 살면서 과연 얼마나 달을 올려다볼까. 바쁘고 지친 삶 속에, 우리의 어머니들이 그토록 간절히 소원을 빌던 보름달의 의미를 우리는 얼마나 알까. 선조는 또 하나의 명절로 여겼다던 정월 대보름. 비록 그 의미는 바래지고 희석되었다지만, 문명의 뒷골목에선 아직도 세시풍속을 행하며 마음을 다잡는 소박한 이웃들이 있다.
삭막해진 세상 속에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고, 불안한 마음을 대신 풀어주는 액막이굿을 보며, 맑고 부드럽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조상의 메시지를 읽는다. 오늘은 이웃들과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고 가가호호 인사를 나누었던 것 같다.
나는 질문이 많아진 작은아이를 업고 도란도란 정월 대보름을 이야기한다. “망월(望月)이야~ 망월이야~ 망월이야~” 빈 하늘을 향해, 21세기 아이가 목청껏 외치고 있다.
5. [아시아경제][초동여담] 막걸리와 좋은 소식
"주종(酒種)은 가리지 않습니다." 어쩌다 저녁 자리에서 어떤 술을 좋아하냐고 상대방이 묻는 경우 곧잘 하는 답이었다. 제법 주당인 양 호방하게 보이고 싶어서다. 그러면 대개는 소주나 맥주를 시키기 마련이지만 사실 가장 선호하는 술은 막걸리다.
막걸리를 마시자면 왠지 비라도 내려야 할 거 같고, 파전이라도 부쳐야 어울리겠는 생각이 언뜻 든다. 하지만 종종 찾다 보니 막걸리만큼 아무 것에나 잘 어울리는 술이 있을까 싶었다. 본디 곡기를 대신하는 술이다 보니 그저 반찬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술상을 차릴 수 있었고 과해도 다음날 속이 부대끼는 일이 적었기 때문이다.
막걸리의 다양한 종류에도 관심이 생겨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막걸리를 늘 경험하곤 했다. 그렇다고 각 지역 양조장을 꿰고 그 특징과 맛을 구분할 수준에는 미치지는 못한다. 막걸리 전문점에서 짐짓 다 안다는 듯이 "송막 주세요" 하는 정도다.
송막은 전라북도 정읍의 한 양조장에서 만드는 막걸리 이름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감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아 깨끗한 맛이 특징이다. 막걸리계의 평양냉면이랄까. 하지만 서울서 취급하는 곳은 드물고 있더라도 가게에서 주문하면 가격이 제법 나간다. 막걸리는 자고로 벌컥벌컥 마셔야 한다고 배웠는데 더 시키고 싶어도 계산하는 사람 눈치가 여간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제대로 맛을 보기 위해선 양조장에서 직접 주문해 먹어야겠다는 장한 생각에 이르게 됐다.
문제는 택배로 받아 볼 수 있는 최소 단위가 한 상자, 스무 병이라는 점이다. 한 병에 900㎖, 생막걸리니까 10일 안에 먹어야 한다. 잔치라도 벌일 생각이 아니라면 엄두가 나지 않는 양이다. 하지만 삶은 늘 잔치 같아야 하니까. 머뭇거리다 어느 날 기어코 주문을 하고야 말았다.
냉장고 한 칸을 다 비우고 갓 만들어 배송된 생막걸리 스무 병을 차곡히 채우는 기분은 해 본 사람만 안다. 옛날 곳간에 쌀가마깨나 쌓아 본 부농의 마음이 이럴까. 바라만 봐도 든든해 자꾸 냉장고 문을 열게 된다. 그렇게 10여 일 동안 냉장고 문을 여닫으며 돼지고기를 삶고, 묵은 김치를 썰었다. 두릅을 데치고 감자전도 부쳐 가족들과, 친구, 선배, 후배들과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선물도 했고, 주말여행을 갈 때 들고 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막걸리는 더없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껏 시킬 수밖에 없어 여럿이 나눠야 해 더욱 돈독해지는 관계, 이런 것을 말 하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좋은 소식, 화장실 가고 싶을 때 "소식이 온다"고 말하는 바로 그 소식 얘기다. 잘 발효됐기 때문인지, 유산균이 워낙 많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막걸리를 마신 다음날 화장실에 가 일을 보면 관장이라도 한 것처럼 속이 개운했다. 경험한 사람은 안다. 축복의 양은 체중이 감소한 것이 아닐까 우려될 정도였다.
올해 정월대보름을 맞아 '귀밝이술'로 막걸리를 주문한 것도 좋은 소식 때문이었다. 이번엔 울산에 있는 한 양조장에서 손으로 빚는다는 막걸리를 선택했다. 한 병에 요구르트 100병 분량의 유산균이 들어 있다는 말에 혹했다. 정월대보름의 귀밝이술은 귀가 밝아지라는, 그래서 한 해 동안 좋은 소식만을 들으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한다. 마시면서 기원했다. 정말 올해는 좋은 소식만 듣기를, 숙변 같은 이 정국 깨끗이 내려 보내는 좋은 소식만 들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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