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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신문]

1. 4대강 수질 개선 노력은 이어져야 한다

4대강 사업 이후 매년 되풀이되는 수질 악화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결국 보(洑) 방류량을 늘리기로 했다. 수자원공사(이하 수공)도 4대강 사업으로 나빠진 하천 수질을 개선하겠다며 전국에 인공 저류지 10곳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민들의 젖줄인 4대강의 수질 악화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상황 인식에 따른 고육책이라 하겠다.



정부는 지금까지 홍수 방지를 위해 여름철에만 제한적으로 방류량을 늘렸지만 앞으로는 연중 필요할 때마다 물을 흘려보내기로 최근 결정했다. 방류량이 늘어나 유속이 빨라지면 녹조의 원인인 남조류가 증식할 시간도 줄어들고 수질 및 시각적 개선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수공도 달성보 등 전국 10개 보 주변에 다목적 인공 저류지를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모래 여과와 생태 처리 기능을 갖춘 인공 저류지를 하천변에 조성한 뒤 물을 정수해 하류로 흘려보내거나 상수원수로 활용한다는 복안이다. 수공은 녹조 현상이 심각한 강정고령보(낙동강)와 승천보(영산강) 등 2곳에서의 시범사업 추진을 검토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이 홍수 및 가뭄 피해를 줄이는 긍적적 효과를 거뒀지만 녹조 현상 및 수질 악화를 빚었다는 점에서 보의 방류량을 늘려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이 있었고 보를 전면 해체하라는 환경단체들의 주장까지 나온 점을 감안하면 정부와 수공의 이 같은 조치는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취지는 맞지만 정부와 수공의 계획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도 있다. 보의 방류량을 늘리면 강 주변 지하수 수위가 낮아져 농업용수 확보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고 보에 설치된 어도(물고기 길)의 기능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인공 저류지를 만드는 방안 역시 발상은 좋지만 사업비가 무려 2조2천억원에 이른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



그렇다고 수공의 계획을 헐뜯고 아무 일도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 녹조 현상은 지류로부터 오염원을 차단하지 못한 영향이 크다. 저류지 사업은 친환경 여과시설을 만들어 오염을 줄여보려는 노력이다. 덮어놓고 못하게 할 것이 아니라 녹조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서울신문]

2. 안희정, 중도 확장 노선 구체적 청사진 밝혀야

안희정 충남지사는 어제 논란이 된 자신의 ‘선한 의지’ 발언에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는 지난 19일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선한 의지로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는데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아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해 야권 내부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특히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인 같은 당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로부터 “불의에 대한 분노심 없이 어떻게 정의를 바로 세우겠나”라는 공격을 연이어 받았다. 보수·중도층 공략을 위해 오른쪽 행보를 하던 안 지사의 중도 노선은 이번 일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검증대에 오르게 됐다.

안 지사는 어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상대방을) 선한 의지로 받아들여야 대화도 되고 문제도 해결된다는 취지로 말씀드린 것”이라며 “국정 농단에 이르는 박 대통령 예까지 간 것은 많은 국민께 이해를 구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사과했다. 안 지사가 진보 진영이면서도 보수·중도층의 지지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사드 배치와 재벌개혁 등 안보·경제 부문에서 다른 후보들과 달리 안정감 있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사실 상당수 국민은 어느 대통령이든 처음부터 ‘악의’를 갖고 ‘나쁜 정치’를 지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안 지사의 ‘선한 지도자’ 인식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지지율이 치고 올라오는 안 지사에 대한 정치 공세로도 볼 수 있다.

더구나 안 지사는 보수·진보의 이분법적인 정치 구도를 깨겠다며 ‘대연정 카드’를 내놓은 이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야소야대의 현 정치 지형에서 대연정은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선한 의지’ 발언은 대연정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이 발언이 문제라면 그가 앞서 밝힌 “박·이의 정책도 계승하겠다”고 한 발언부터 두들겨 맞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확고한 소신을 밀고 나가다 3일 지나 뒤늦게 사과함으로써 그의 발언에 대한 진정성마저 의심받는 처지가 됐다. 그의 사과는 ‘선한 의지’ 발언이 대화와 통합의 정치를 위한 정치철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지지층 확장을 위한 득표용이었음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상승세인 지지율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산토끼 사냥에 나섰다가 당 안팎의 비난이 거세지자 집토끼라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계산으로 읽힌다. 이제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통합의 정치라는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내놓아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그의 일련의 행보는 중도 확장을 위한 선거 전략으로 폄하될 수밖에 없다.



3. 상법 개정, 균형 있는 논의 필요하다

여야가 이번 임시국회에서 원칙적 처리 방침을 정한 상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상법 개정은 기업 경영의 안정성 확보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성격이 판이한 두 개의 명제가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사안을 다룬다. 따라서 각론에 들어가면 여야, 그리고 재계와 시민단체의 대립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야가 팽팽히 맞서는 집중투표제는 주총 때 주주들이 선호하는 이사 후보자에게 의결권을 몰아주는 것으로 지배 주주와 기타 소수 주주들 간에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자는 취지다. 그렇지만 지분율이 높지 않은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자신의 이익에 충실한 특정 인물’에 표를 몰아 줄 우려가 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이 시빗거리다. 감사위원은 선임 때부터 대주주로부터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취지이지만 최대 주주만 의결권을 제한받고 2대 주주는 제한이 없다는 게 문제다. 재계는 투기 자본에 의해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반발한다.

재계는 외국계 헤지펀드인 소버린과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으로부터 경영권을 공격당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2005년 소버린은 SK 주식을 사들여 2대 주주가 된 후 경영권 퇴진을 요구하다 1조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뒤 발을 뺐다. 2006년 칼 아이칸은 기습적으로 KT&G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다 1500억원의 매도 차익을 내고 철수한 적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상법 개정안이 기업 경영의 자율성이나 경영정보 보호 등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재계의 주장에 충분히 일리가 있다. 동시에 그간 투명 경영에 힘쓰지 않은 재계가 상법 개정에 마냥 반대하는 것 또한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더구나 최순실씨가 실소유주인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자한 대기업들에서 이사회의 후진적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지 않았는가.

우리는 상법 개정은 예정대로 추진하면서 경영권 보호 장치를 함께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여야는 충분한 논의를 거쳐 개정법의 보완점을 마련하되 차등의결권과 같은 경영권 보호 장치 마련을 공론화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길 당부한다. 상법 개정이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해 경제민주화의 첫발을 내딛는 한편 한국이 투기 자본의 놀이터가 되지 않도록 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식은 옳지 않다.



[이데일리]

4. ‘교학사판 사태’ 재연된 국정교과서 선택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된 학교가 경북 경산시 문명고교 단 한 곳에 그쳤다고 한다. 그동안 교육부가 신청을 받는 과정에서 몇 개 학교가 더 신청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으나 끝내 1개교에 그친 것이다. 전국 5564개 중·고교 가운데 단 1곳만 국정교과서를 채택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 교육계가 이념 대립에 의해 짓눌리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드러냈다.

더욱이 문명고교가 연구학교로서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재학생과 학부모들이 반발 집회를 여는 등 내부 갈등의 확산으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취소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연구학교로 존속한다면 아예 전학을 가겠다는 학생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연구학교 지정 철회를 위한 학생회의 서명운동에도 동참자가 몰리고 있다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학교 당국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연구학교로 신청하는 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학내에서 반대 의견이 많았는데도 그 의견을 무시한 채 연구학교로 신청했으며, 반대한 교사들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학생들이 바깥 여론에 휘둘려 반대운동을 펴는 것이 잘못이듯이 학교 재단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태도에도 찬성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태가 이렇게까지 이른 배경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진보성향 교육감들의 노골적인 협조 거부에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연구학교로 신청하려는 학교에 집단 압력을 넣은 결과다. 좌편향적인 기존 검인정 교과서들의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국정교과서가 대안으로 마련된 것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하는 사람이 없다. 우리 일선 교육계가 직면한 서글픈 현실이다.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획일적인 내용의 역사교육이 학생들의 가치관을 그르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국정·검인정의 혼용까지 반대하면서 내세우는 논리로는 자가당착이다. 국정교과서 집필 작업을 밀실에서 진행한데다 내용상 적잖은 오류를 낸 교육부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보수성향 필진들이 집필한 한국사 교과서가 친일·독재를 미화했다는 이유로 배척됐던 3년 전의 ‘교학사판 사태’에서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에 무기력함을 느낀다.



5. “김정남이 죽은 게 아니다”는 북한의 궤변

북한과 말레이시아가 김정남 암살사건을 놓고 정면충돌 양상을 빚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그제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를 외교부로 불러들여 수사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를 따지는 한편 평양주재 자국 대사에게 귀국 명령을 내렸다. 말레이시아 내부에서 양국 간 무비자 협정을 재고하라는 주장이 나오는 등 북한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면서 단교라는 최악의 상태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북한은 1983년 아웅산 테러로 미얀마에 의해 단교당한 전례가 있다.

북한의 독선적인 태도가 갈등의 발단이다. 강 대사는 기자회견에서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사망자 신원은 여권에 명시된 대로 김철”이라고 생떼를 썼다. 김정남 독살설 자체를 아예 부인하려는 속셈이다. 그는 적반하장으로 “한국과 말레이시아 정부의 결탁이 이번 사건의 배후”라며 한술 더 뜨기도 했다. 남한 당국이 최순실 사태에서 벗어나려고 사건을 꾸몄다는 얼토당토않은 논리로, 국내 일각에서 나도는 음모론을 잽싸게 끌어댄 모양새다.

말레이시아가 발끈한 것은 당연하다. 나집 라작 총리까지 나서서 “경찰의 수사결과를 절대 확신한다”고 맞받아쳤고 외교부는 “외국 정부와의 결탁설은 말레이시아를 심각하게 모욕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비단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북한의 ‘반인륜적 테러’ 규탄에 동참하고 나섰다. 중국은 북한의 최대 돈줄인 석탄 수입을 연말까지 동결했고, 국제사회는 테러지원국 재지정과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등의 대북 제재 논의를 구체화하는 분위기다.

북한 강 대사는 쿠알라룸푸르공항 CCTV 녹화 장면과 이번 사건에 행동책으로 동원된 동남아 출신 여성들의 증언 등 명백한 증거들도 깡그리 외면했다. 그러나 금명간 시신 부검과 최종 수사결과가 나오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라도 사건의 실체를 솔직히 시인하고 말레이시아와 국제사회에 진심으로 사죄하는 동시에 재발 방지를 굳게 다짐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국내 정치권 인사들도 사건을 얼버무리는 듯한 모호한 화법으로 북한의 소행을 외면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이번 사건을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명백히 깨닫기 바란다.



[조선일보]

6. '정치'와 '지역'에 휘둘린 555조 국민 노후자금

국민 노후자금 555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25일부터 나흘에 걸쳐 서울에서 전북 전주·완주 혁신도시로 이전한다. 기금 운용 인력 200여명 가운데 작년부터 올해까지 50명 넘게 사표를 냈거나 사표 제출 의사를 밝혔다. 8명의 실장급 가운데 지난 8개월 새 6명이 그만뒀다. 요즘은 하루 한 명꼴로 사표를 내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6개월 이내에 계약 만료되는 운용역만 50여명에 달하는데 공백을 쉽게 메우기 힘들다고 한다. 기금 운용 인력은 비교적 우수하다. 대우는 민간 펀드매니저의 60~65% 수준이지만 금융 네트워크와 큰돈을 굴리는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우수 인력을 유치할 수 있었다. 이들이 금융 중심지인 서울을 떠나기보다는 직장을 바꾸는 결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막을 수 없는 일이다.



당초 국민연금공단 본부 인력 550여명만 옮기고 기금운용본부는 서울에 남겨두었다. 그러자 전북 지역 의원들이 "정부가 국민연금에서 500조원 알맹이는 쏙 빼놨다" "500조원이 옮겨오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한테 몰릴 것"이라는 식의 논리로 지역 민심을 부채질해 이전을 끌어냈다. 마치 실제 돈이 500조원 오는 것처럼 부풀려 놓았다. 민주당 대선 후보 한 사람은 "서울에 남는 걸 내가 막았다"고 자랑했다.



지역에서는 기금운용본부가 이전되면 거래 기관에서 매달 수천명이 찾아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한다. 설사 그렇게 된다 해도 낭비가 너무 크다. 국민연금은 2043년이면 적자로 돌아선다. 555조원 자금을 우수 인력에게 맡겨 수익률을 1%포인트만 높여도 연간 5조5000억원을 벌고, 고갈 시기를 7~8년 늦춘다. 지역에 사람 더 찾아와 밥 먹어 생기는 경제 효과와는 비교할 수 없는 국가 이익이다. 나라가 이렇게 돌아가는데도 모두 속수무책이다.



[동아일보]

7. 우병우 前민정, 검찰 치욕의 역사로 남을 것

서울중앙지법이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해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오늘 기각했다. 우 전 수석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해 직무유기, 직권남용, 특별감찰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어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최 씨는 모르고, 모든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민정수석만 제대로 역할을 했어도 최 씨의 국정 농단 사건이 번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판에 영장 기각은 납득하기 어렵다. ‘법꾸라지’ 우 전 수석에 대해 특검이 수사 막바지에 형사처벌 절차를 밟은 것도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특검에 따르면 우 전 수석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과 김성우 전 홍보수석이 지난해 10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및 모금에 관여했으며 최순실 씨가 깊숙하게 개입했다”며 자문하자 ‘미르·K스포츠재단 문제는 최 씨가 돈을 빼돌렸으면 횡령죄가 되지만, 돈을 건드리진 않았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보고서를 써줬다.



국정 농단이 본질인 두 재단 문제를 최 씨의 횡령 유무로 프레임을 바꾼 것이다. 2014년 우 전 수석이 민정비서관이었던 당시 ‘정윤회 문건’ 사건이 터지자 ‘문건 유출은 국기 문란’이라고 ‘물타기’를 해 국민의 의혹을 비켜 갔던 것과 같은 수법이다. 

우 전 수석은 미르·K스포츠재단 임원 검증에도 민정수석실 직원을 동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가기관의 민간인 사찰은 중대 범죄다. 민정수석실이 남의 뒷조사나 해주는 흥신소와 다를 바 없었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 최 씨가 검찰 경찰 국세청 수장의 인사 자료를 수집했고, 이 중 5명은 실제로 임명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최 씨가 사정기관 수장 임명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어떤 불법행위를 저지른들 두려웠을 리 없다. 

민정수석실은 공직인사 검증은 물론이고 대통령 측근 비리를 감시하는 자리다. 우 전 수석은 최 씨의 비리를 묵인하고 방조한 것도 모자라 보좌를 했고, 이런 민정수석을 감찰하는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거꾸로 몰아내기까지 했다. 검찰 인사권을 틀어쥐고 검찰의 독립성과 자존심을 무너뜨리며 나라를 파국으로 몰아간 ‘우병우 사건’은 검찰 역사에 치욕으로 남을 것이다.



8. 박근혜 정부가 키운 사상 최대 가계부채

지난해 연간 가계부채 증가액이 141조 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어제 한국은행이 밝혔다. 2015년 말 1203조1000억 원에서 1년 만에 11.7% 급증해 가계부채 잔액도 사상 처음 1300조 원을 넘어선 1344조 원이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 출범 4년간 가계부채가 380조 원이 늘어나 이명박 정부 5년간의 증가액(298조 원)을 넘어서는 불명예를 기록하게 됐다. 

특히 최근의 가계부채 증가세는 대출금리가 높고 저신용자들이 많은 제2금융권에서 주도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정부는 작년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로 카드 결제가 늘고 2금융권 중 금리가 낮은 편인 생명보험회사 대출이 증가했다고 발표했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다.



부동산 경기에 민감한 중도금 집단대출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관련 금리가 최고 연 5%까지 오른 것은 그만큼 부실 우려가 커졌다는 뜻이다. 어제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가계대출이 급격히 확대되는 2금융권에 대해 엄중 조치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나간 대출을 엄포만으로 관리할 수는 없다. 

1300조 원의 가계부채는 ‘집값은 오르기 마련’이라는 한국적 상황에서 경기를 띄우기 위해 부동산 부양정책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온 정부 탓이 크다. 특히 2014년 7월 취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며 부동산 대출 규제를 대거 해제하는 등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을 폈다. 현 정부의 초대 경제수장이었던 현오석 전 부총리나 지금의 유일호 부총리는 가계대출을 관리하는 시늉만 했을 뿐이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주요 과제였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목표치(160%)를 넘어선 지 오래지만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정부가 가계부채 증가세를 방조한 것은 자신의 임기 내에만 폭탄이 터지지 않으면 된다는 님토(NIMTO·Not In My Term of Office) 현상 때문이다. 어제 금융위는 ‘정부 대책에 따라 부채 증가 속도 및 부동산시장이 안정되는 모습’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평가를 내놓았다. 공무원들의 폭탄 돌리기는 이미 시작됐다. 한국의 부채에 대해 낙관적이던 국제통화기금(IMF)조차 작년 8월부터 대출의 구조적인 위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미국발 금리인상과 과도한 분양물량 때문에 집값이 급락한다면 가계부채가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중앙일보]

9. 교육부·미래부, 왜 해체 공약 나오는지 되새겨 보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 유력 대선주자들이 내놓은 정부조직 개편 공약이 관가를 강타하고 있다. 현 정권 4년 동안 국민 혼란만 초래했거나 국정 농단 사태 등에 연루된 정부 부처들은 비상이다. 해체나 축소 대상으로 거론된 교육부·미래창조과학부·여성가족부·방송통신위원회 등은 특히 동요하는 모습이다. 어수선한 정국에 공직기강이 풀렸다는 비판이 거센데 공무원들이 눈치만 보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각 대선 캠프에 총력 로비를 펼친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물론 대선주자들이 집권 시 정부조직 구성 방안을 밝히는 건 바람직하다. 조직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정책의 성패와 국가 경쟁력이 달려 있어서다. 더욱이 이번 대선은 정상 상황도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인용할 경우 60일 이내에 선거를 치르면 곧바로 차기 정권이 출범한다.



종전처럼 두 달여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간 중 청사진을 만들 시간이 없다. 대선주자들이 정부조직 구성 방향을 미리 내놓는 게 당연한 이유다. 하지만 국정 운영에 대한 비전과 철학 없이 국민 정서에만 기댄 포퓰리즘식 접근은 경계해야 한다. 정권 과시용으로 5년마다 조직을 ‘뗐다’ ‘붙였다’ 하는 악습을 되풀이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해체’ 도마에 오른 부처들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상당하다. 교육부와 미래창조과학부가 그렇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교육부 해체·폐지’를, 안희정 충남지사는 합의제 기관으로의 기능 전환을 약속했다. 초·중등 교육은 지방교육청, 교육정책은 국가교육위원회(가칭)로 넘긴 다음 교육부가 대학에서 손을 떼도록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교육부가 이런 운명에 놓인 것은 자업자득이다. 국정 역사 교과서 강행으로 인한 혼란, 잦은 입시 변경에 따른 학생·학부모들의 고통, 이화여대 사태 등 연간 2조원의 재정사업을 미끼로 한 대학 옥죄기 등 숱한 난맥상으로 이미 국민적 신뢰를 잃었다. 교육 대계(大計)의 막중한 소명을 저버리고 조직의 안위에만 급급했던 탓 아닌가.

미래부 또한 다르지 않다. 4년간 대기업과 자치단체를 윽박질러 실체가 모호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전국에 난립시키고, 연구개발(R&D)의 국제경쟁력만 떨어뜨렸다. 전국 19곳의 창조센터 중 상당수는 문패만 걸었을 뿐 개점휴업 상태다. 게다가 국내 총생산(GDP) 대비 R&D 정부 예산 비중이 4.23%(연 19조원)로 세계 1위인데도 국제경쟁력은 세계 11위에서 19위로 후퇴했다. 미래 먹거리와 기초과학의 핵심인 창의·융합·개방·자율형 생태계 조성은 뒷전으로 미룬 채 규제와 간섭만 즐겼던 것 아닌가. 비전 없이 시키는 일만 해온 미래부의 오늘이다.

교육부와 미래부는 통렬히 반성하고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교육과 과학 분야의 혁신 없이는 결코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서 나갈 수 없다. 대선주자들도 더 구체적인 비전과 실행 가능한 개혁안을 마련해 국민의 평가를 받기 바란다.



[세계일보]

10. 출산 외치기 앞서 척박한 육아환경 돌아봐야

우리나라에선 아이를 낳아도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다. 세계일보가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의뢰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현실적인 제약이 없을 경우 아이 양육을 누구에게 맡기겠느냐’고 물었더니 응답자 10명 중 7명이 ‘본인’을 들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아예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 울며 겨자 먹기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보육시설에 맡길 수밖에 없다.

육아휴직 제도는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손색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 회원국 중 유급 남성 육아휴직 기간이 52주로 가장 길다. 부모가 모두 직장인이라면 아빠와 엄마가 1년씩, 총 2년의 육아휴직을 쓸 수가 있다.



제도는 선진국 수준이지만 현실은 후진국에 머문다. 직장에서 동료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인사상 불이익 등을 감수해야 한다. 그나마 여성 직장인의 육아휴직에 대한 인식은 크게 개선됐다지만 남성 직장인들은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처지다. 2015년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7%에 그친 현실이 생생한 증거다.

부모들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에 아이를 맡기려 해도 마땅치 않다. 툭하면 보육시설 내 아동학대나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고 안전사고도 비일비재하다. 그나마 안심할 만하다는 국공립 보육시설은 태부족이다. 아이를 임신하자마자 대기순번을 받아놓더라도 보낼 수 있을까 말까다. 정부가 저출산 해소를 위해 2006년부터 쏟아부은 돈은 80조원을 웃돈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을 맴돈다. 아이를 키울 여건조차 제대로 만들어 놓지 않고 아이 낳으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제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게 부담이 아니라 축복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해 말 대기업 최초로 남성 직원들에 대해 1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의무화한 롯데그룹처럼 기업들이 솔선수범할 필요가 있다. 정부 차원에서 세제 혜택 등 지원 방안을 강구하고 육아휴직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젊은 부부들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외치기 전에 척박한 육아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동아일보][황광해의 우리가 몰랐던 한식] '한 상 차림'와 '한정식'

우리 밥상은 ‘한 상 차림’이다. 한 상에 모두 차려 놓고 골고루 섞어 먹는다. 우리는 한 상 차림 밥상을 받고 당황하지 않는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당황한다. 갑자기 여러 가지 반찬, 밥, 국이 한꺼번에 놓인 밥상을 받으면 당황한다. 어느 것부터,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묻는다. 한 상 차림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은 ‘일괄 타개’ 협상 방식을 좋아한다. 한 상에 모두 차려 놓고 한꺼번에 해치우는 것이다. 섞어 보니 손해와 이익이 균형을 이룬다. 

한식은 평(平)의 음식이다. 밥과 국, 반찬을 골고루 섞어 평으로 먹는다. 먹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짜면 싱거운 것을 섞고, 매우면 심심한 것을 더한다. 평이다. 음과 양을 섞어 평을 향한다. 1795년 봄, 수원 화성에서 혜경궁 홍 씨의 환갑날 밥상이 마련되었다. 조선시대 가장 화려한 밥상. 음이 8기(器), 양이 8기, 평이었다. 한식에 보양식은 없다. 한식은 음양이 조화를 이룬 평의 음식이다. 

한정식(韓定式)은 ‘한식+코스 요리’다. 한식이라는 몸에 서양식 코스를 입혔다. 한정식은 한식의 변종이다. 불과 40년. 한정식이 우리 음식이 될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외식업체의 고급 밥상은 한정식인데 가정의 밥상은 여전히 한 상 차림이다. 바탕이 한 상 차림인 나라에서 뿌리 없는 코스 요리가 얼마나 버틸까. 음식의 생명력은 핏속에DNA로 새겨진다. 정권 차원에서 진행하는 한식 세계화는 한정식이다. 수백 년 이어 온 한 상 차림 밥상이 해외 행사 몇 번으로 한정식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한정식은 슬프다. 억지 춘향이다. 죽과 의미 없는 샐러드, 여러 요리를 쭉 나열하고 마지막에 한 상 차림 백반을 내놓는다. 그 이전의 화려한 음식은 무엇일까. 술안주다. 음식 값을 높이기 위한 쇼다. ‘한식 디저트’는 코미디다. 억지 춘향으로 단맛을 내놓는다. 지나친 단맛으로 평준화하는 사회는 후진적이다. 코스 음식, 서양식 코스 요리는 마지막의 단맛 디저트로 앞의 모든 음식을 부정한다. 숭늉의 구수함이 차라리 고급스럽다. 

한 상 차림 한식을 ‘기생집 술상’이라고 폄훼하는 이도 있다. 시작은 ‘궁중 요리’다. 존재하지도 않는 궁중의 요리를 ‘명월관’(1903년 설립)의 안순환이 팔았다. 밥집이 아니라 술집이었다. 궁중에서만 먹었던, 궁중에서만 사용한 조리 기법으로 만든 궁중 요리는 하나도 없다. 고종이 커피를 마셨다고 커피가 궁중 음식은 아니다.



당뇨 환자로 추정되는 고종이 배가 많이 들어간, 다디단 냉면을 먹었다고 고종의 냉면이 궁중 냉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안순환이 내놓았던 명월관의 궁중 요리는 한 상 차림이었다. 화려한 한 상 차림이 기생집 술상이라면 그 음식들을 하나씩 흩어 코스대로 내놓아도 마찬가지, 술상의 안주일 뿐이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을 만났다. 노학자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음식에 대해서도 명쾌했다.

“한식은 한 상 차림이다.”

밥과 국, 나물 반찬과 각종 젓갈, 생선, 고기가 한 밥상에 자리한다. 조촐한 밥상일지라도 먹는 순서에 따라 숱한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한 상 차림 한식은 먹는 이가 고르고, 섞는다. 한 상 차림의 수저는 한 벌이다. 숟가락 하나로 밥도 뜨고 국도 뜬다. 한 벌의 젓가락은 수많은 반찬을 오간다. 밥과 국, 반찬이 뒤섞인다. 

섞지 않는 서양 코스 요리는 8벌의 포크와 나이프를 내놓기도 한다. 서양 음식은 단절이다. 앞 음식의 찌꺼기가 묻은 나이프, 포크는 사라진다. 새로운 음식에는 새로운 나이프, 포크가 필요하다. 마지막 디저트는 단맛으로 모든 것을 뒤덮는다. 식사 후 디저트의 단맛만 기억한다. 서양 음식은 섞임, 충돌, 융합을 싫어한다. 앞의 음식은 뒤를 짐작하지 못하고 뒤의 음식은 앞을 알지 못한다. 

한식의 바탕은 한 상 차림이다. 한 상 차림의 여러 요소가 입안에서 충돌, 화합, 융합한다. 한 상 차림이 한식의 기본인 까닭이다.



2. [매일신문][매일춘추] 졸업, 이 아름다운 축제

졸업생 사이에 큰아이가 있다. 3년 전 앳된 얼굴로 중학교에 입학했고, 거침없이 2학년이 되었고, 무게감 있게 3학년을 보냈다. 그간 말수가 줄고, 목소리가 낮아졌으며, 교복 바지가 서너 번 바뀌었고, 무엇보다 제 소유의 면도기가 생겼다. 보이지 않게 성장을 거듭하며, 스스로 제 할 일을 찾고, 미래를 준비할 나이가 된 듯하다.



오늘이 지나면, 지금 이 순간 함께 있는 아이들은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식순에 따라 송사와 답사, 교장선생님의 회고사와 시상이 엄격하게 거행되던 무대가 환해진다. 이내 금빛 옷을 화려하게 입고, 호피무늬 목도리를 부티 나게 두른 한 학생이 무대 위로 나와 춤을 춘다. 관중의 박수, 갈채가 터져 나온다. 흥이 오르자 “친구들아, 도와줄 거지!”라는 금빛스타의 말과 함께, 교복을 입은 서너 명의 학생들이 합류한다.



금빛스타를 중간에 두고 무대는 한껏 물이 오른다. “구OO! 잘한다!! 파이팅!!”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한다. 얌전하고, 숫기가 없어 방 안에서 늘 혼자 시간을 보내던 아이였다. 무대 위의 저 능수능란한 금빛스타가 바로 큰아이라니. 자신들을 이만큼 보듬어주신 선생님께 감사를, 그리고 후배들에게 두려워 말고 끝까지 밀고 나가라고 외치는 졸업생들의 메시지가 건강하다.



친구들과 화합하여 수많은 사람 앞에서도 당당하게 제 끼를 발산하는 저 자신감을 나는 여태까지 왜 눈치 채지 못했을까. 마냥 어린 줄만 알았고, 부모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내 걱정이 모두 쓸데없었다는 것을 느낀다.



교복을 발기발기 찢고 '졸업빵'이 당연한 관행처럼 번지던 졸업식들과는 확연히 다른, 지금 이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꾸민 졸업식이 얼마나 건강하고 아름다운지를 보라. 마냥 어른들의 걱정 속에서 터지고 깨지기만 하는 사고뭉치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미숙하지만 최선을 다해 삶의 한 단계를 건강하게 넘어온 아이들이 대견하다. 낯선 조직생활 속에 나를 찾고,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극복하며 ‘우리’를 형성하려 애썼던 시간 동안, 아이의 생각과 마음은 더 깊고 견고해졌으리라.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제 끼를 펼치는 모습을 보며, 걱정하고 초조해하던 어른스럽지 못한 나를 반성한다. 지혜를 찾고, 혜안을 찾아, 스스로 젊음을 즐기는 저 어린 청춘들에서 사제, 친구, 선후배의 인간관계에 깃든 푸른 향기가 난다. 전통으로 남아도 좋겠다. 참으로 아름다운 축제다. 졸업식이 끝나고 친구들과 자장면 한 그릇씩 나누었다 한다. 앞으로 다양한 삶들을 살아가겠지만, 오늘의 이 건강한 축제, 이 유쾌한 졸업식의 회상 속에 모두는 늘 ‘하나’로 뭉쳐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또렷이 기억하리라.



3. [중앙일보][마음산책] 자기만의 색깔을 갖는 사람들

나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을 좋아한다. 2000년대 후반 ‘별일 없이 산다’ ‘싸구려 커피’와 같이 특이한 제목을 한 노래들을 선보일 때부터 관심이 갔다. 고시원에서 살면서 그냥 막 나온 듯한 평범한 복장과 부스스한 수염을 한 리드보컬 장기하의 모습은 대형 소속사를 통해 데뷔하는 가수들의 잘 가꾸어진 외모와는 크게 차이가 났다.



게다가 노래하는 스타일도 독특해서 노래를 ‘부른다’는 표현보다 가사에 감정을 담아 읊조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았다. 이렇게 기존의 가수, 음악과는 차별되는 그들만의 스타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가만히 보면 장기하와 얼굴들과 같이 대중으로부터 사랑받는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이 있다. 그래서 그들의 음악이나 글, 미술, 건축, 음식은 잠시 동안 보거나 듣거나 읽거나 맛보아도 금방 그 사람의 작품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도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 그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갖게 된 것일까? 우리도 그들처럼 각자의 분야에서 나만의 색깔로 인정받고 싶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일단 많은 예술가들은 데뷔 전부터 자신이 열광하는 우상을 갖고 있다. 장기하만 보더라도 신중현과 산울림 음악의 팬이었으며, 만화를 확대한 그림으로 유명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경우엔 어린 시절부터 피카소가 우상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카프카와 케루악 등 서양 작가들의 글을 탐독했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건축가 자하 하디드는 아방가르드 미술가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우상이었다. 자신이 존경하는 우상은 훗날 작품 활동을 하는 데 큰 영감을 주고 결국엔 본인이 넘어야 하는 산이 되기도 한다.



맨처음엔 대부분이 취미 정도로 자기 분야의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장기하의 경우 2002년 대학교 밴드에 들면서 드럼 치는 것으로 음악을 시작했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서양문학 책을 보는 취미를 갖다가 본인 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이 29세부터였다. 하지만 이들은 곧 이 일이 취미가 아닌 자신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분야의 전문 교육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리히텐슈타인은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미술을 석사 학위까지 공부했고 뉴욕에서 성공한 셰프 데이비드 장은 뉴욕의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에서 요리 교육을 받았다.

물론 공부를 했다고 해서 자기만의 색깔이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색깔을 찾기 위해선 학교가 아닌 실제 현장에 뛰어들어 온몸으로 배워야 한다. 데이비드 장과 같은 셰프들은 자신의 식당을 열기 전에 유명 셰프가 있는 곳에 들어가서 일을 직접 배운다. 장기하는 대학 밴드의 앨범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좋아했던 작가 류시화 시인도 자신의 시집을 내기 전에 인도 성자들의 수많은 명상 서적들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친다.

개인마다 과정에 얽힌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이렇게 자기 분야에서 충분한 수련 과정을 거치고 나면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감이 붙는 것 같다. 이때부터는 기존에 배운 방식이 아닌 자기 방식으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함께 올라온다. 즉 자기 분야의 규칙을 다 배운 이들이 어느 선에서는 그 규칙을 깨고 넘어서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자기 일이 어떻게 하면 같은 분야 선배들의 마음에 들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컸다면 이때부터는 관심의 초점이 남이 아닌 자기로 돌아와 본인이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작품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규칙을 깨고 자신만의 색깔로 새롭게 만드는 동력은 바로 각 개인의 아주 사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듯하다. 리히텐슈타인은 아버지는 만화를 못 그릴 것이라는 어린 아들의 말에 영감을 얻어 팝아티스트가 됐다.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김창열 화백은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천자문을 물방울과 함께 넣는 ‘회귀’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데이비드 장도 뉴욕에서 처음 모모후쿠 레스토랑을 열 때 프랑스 요리가 아닌 자기가 좋아하는 일본식 라멘이나 떡볶이와 같은 음식을 자기 스타일대로 만들어 뉴요커에게 선보였다.

이들의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사적이기 때문에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왜냐면 인간의 삶은 누구나 다 사적이고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적인 이야기를 대중과 솔직히 나누기에 친숙하게 다가온다. 장기하의 지난해 앨범이 떠오른다.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라는 곡에서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고백하듯 이렇게 노래한다. “남의 연애에는 이런저런 간섭을 잘해. 감 놔라 배 놔라 만나라 헤어져라 잘해. … 근데 니가 토라져버리면 나는 그냥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하겠어.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부디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자신의 분야에서 자기만의 색깔로 언젠가는 인정받으시길 기원한다.



4. [중앙일보][분수대] 고양이 와인이 대박난 이유

​“왜 혼술을 해?(Why Drink Alone?)”

한국에선 요즘 혼술(혼자 술 마시기)이 유행이라는데 미국에선 이런 도발적인 광고카피로 뜻밖의 성공을 거둔 스타트업이 있다. 아폴로 피크라는 고양이 와인(cat wine) 회사다. 말 그대로 고양이가 먹는 와인을 만들어 2016년 50만 달러어치나 팔아 치웠다. 포도 품종 피노 누아에서 이름을 따온 ‘피노 미아우(Meow·야옹)’나 카베르네 소비뇽을 연상시키는 ‘캣베르네(Catbernet)’ 등이 인기 상품이다. 사업 전망이 좋아보였는지 캣 와이너리라는 똑같은 콘셉트의 경쟁사까지 나왔고, 최근엔 ‘샤독네이(CharDOGnay)’ 등 개 와인으로 상품을 확장했다.



이 회사가 성공을 거둔 건 절대로 와인 품질이 좋아서가 아니다. 일단 알코올이 든 진짜 와인도 아니다. 캘리포니아산 유기농 비트와 콜로라도산 캣닙(고양이가 좋아하는 허브)을 넣어 만들었다는 일종의 고양이 음료인데, 뉴욕타임스가 고양이 카페 등에서 실험을 해봤더니 정작 고양이들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선 이 와인을 마시는 고양이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양이가 좋아하든 말든 주인 입장에서 고양이와 함께 와인 마시는 맛, 다시 말해 혼술 말고 누군가와 대작하는 맛에 235ml짜리 미니어처 한 병에 1만~2만원 하는 고양이 와인을 산다는 얘기다.

사람끼리 하듯 술을 주고받으며 진짜 대작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술을 가운데 놓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사람들은 굳이 반려동물을 술 친구로 삼는 걸까. SNS상에 고양이와 함께 와인 마시는 사진을 올려놓은 수많은 반려동물 주인들은 “친구나 가족 같은 존재”라는 이유를 댄다.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진정한 반려이니 술을 함께 마시는 게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는 주장이다. 밸런타인 데이에 고양이와 함께 와인 마시는 장면을 찍어 SNS에 올린 사진을 보면 정말 애완동물이 아니라 사람처럼 대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반려동물을 사람처럼 대하는 건 반려동물을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 위로받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정치나 종교 얘기뿐 아니라 날씨 얘기조차 쉽게 논쟁으로 번져 분위기를 망쳐 버리는 요즘 같은 시절엔 말 많은 사람보다 입 다물고 술 한잔 같이 해주는 고양이가 차라리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고양이 와인의 대박, 사람에 지치고 동물에 위로받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어쩐지 좀 짠하다.



5. [경향신문][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세운상가 백발의 라디오 수리공

허물어뜨린다, 존치한다 말이 많던 세운상가는 여전히 건재했다. 겉으로는 그랬다. 세월에 깎이고, 파이고, 무너지는 것들을 쇠기둥으로 떠받치며 보수 중이었지만, 그래도 멀쩡해 보였다. 1층 가전제품을 꽉꽉 채워놓은 가게들도 문을 열었으며, 2, 3층에는 이런저런 전자기기를 파는 작은 가게가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 가게들 틈바구니에서 몇십 년을 버틴 담뱃가게도 그대로다.



이곳은 그대로인데, 변한 건 세상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변하는 세상에 순응했다. 사람들은 전자제품 하나 살 요량으로 발품 팔면서 세운상가를 찾지 않는다. 카세트 레코더 하나 사겠다고 기차 타고 전철 타고 이곳에 와서 온종일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다가 멀건 설렁탕으로 허기를 채우고는 해 질 녘에 기껏 비디오테이프 몇 개 사서 집으로 돌아가며, 다음에 또 오리라 다짐하던 이들은 이제 없다.



세계의 기운이 다 모일 거라는 세운상가의 명운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사람도 있다. 그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세운상가에 들어왔다. 50여 년 전 일이다. 세운상가 한구석 손바닥만 한 가게에서 라디오를 조립해 팔던 소년은 흰머리의 노인이 되었다. 그는 서너 사람 들어서면 옴짝달싹하기 어려울 것 같은 작은 방에서 오래된 전축이나 라디오를 고친다.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세상과 뚝 떨어져 과거의 소리에 붙잡혀 있는 이들은 행여나 그가 세운상가를 떠날까 봐 두려워한다.

“이런 걸 고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백 년도 넘은 전축을 들고 오는 사람도 있어요.” 돈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다. 노래방 기계를 차에 싣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정말 돈을 벌 만큼 벌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는 한 번도 돈 때문에 일을 하지 않았다. 복잡한 기계를 들여다보고, 만지는 게 좋아서 그는 세운상가를 떠나지 못한다.

퇴근만 하면 종로에 있는 음악 감상실로 달려가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그는 요즘은 일 끝내고 친구들과 막걸리 마시는 재미로 산다. 주문한 진공관 라디오를 찾으러 갈 때는 설렁탕집에서 막걸리 한 잔 따라드릴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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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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