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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쌀 직불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가
정부가 쌀 생산농가의 소득 보전을 위해 지급하는 쌀 변동직불금이 올해 1조 4900억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작년(7257억원)의 두 배가 넘는 금액으로 2005년 이 보조금 제도를 도입한 이후 최대 규모다. 변동직불금은 쌀값이 목표가격 이하로 떨어지면 그 차액의 85%를 보전해주는 제도다. 쌀 공급량은 늘어나고 있는 데 반해 소비는 위축되면서 쌀값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이다. 언제까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예산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인지 우려가 크다.
쌀 공급과잉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계화와 재배기술 향상에 힘입어 지난해 우리나라 쌀 생산량은 420만t에 육박하는 등 4년째 대풍을 이어갔다. 연간 적정 수요량보다 25만t가량 초과하는 수준이다. 반면 쌀 소비량은 꾸준히 줄어드는 데다 그 추세도 빨라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당 쌀 소비량은 2010년 72.8㎏에서 지난해 61.9㎏으로 줄었다. 1980년(132.4㎏)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쌀이 남아돌면서 쌀값이 떨어지고 직불금은 증가하는 악순환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쌀 직불금 제도는 쌀값 안정을 위한 근본 해결책이 못 된다. 일본은 이미 2014년 변동직불금 제도를 폐지했다. 정부 지원이 농민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겨 공급 과잉인 벼농사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요인이라는 비판도 간과할 수 없다. 과격한 농민들은 풍년으로 쌀값이 떨어지면 논을 갈아엎거나 트랙터를 몰고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곤 한다. 그러면 정부는 수매량을 늘리고 국회는 예산을 증액한다. 이 같은 비정상적인 일이 무작정 반복돼서는 안 될 것이다.
쌀 수매정책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쌀 소비량이 줄어드는 추세를 막기가 힘든 현실에서 공급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합리적 대안이다. 절대농지를 해제해 농지 면적 자체를 줄이거나 농지에 벼가 아닌 다른 작물을 심어도 보상금을 주는 ‘생산 조정제’를 도입해 벼 재배면적을 줄이는 방안을 고려해봄 직하다. 직불제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등 손볼 필요가 있다. 정치권도 표를 의식해 농민 편만 들 게 아니라 농정 구조조정을 위한 제도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2. ‘분노의 정치’는 보복의 악순환 초래할 뿐
조기 대선 분위기가 가열되는 상황에서 ‘분노의 정치’가 새로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야권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과연 어떠한 기조로 우리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면서 정국을 이끌어가야 하는가 하는 논란이다. 탄핵정국이 이어지는 와중에서 야권이 차기 정권을 넘겨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우리 정치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담론이기도 하다.
논쟁이 야권에서 벌어지는 것이 그런 때문이다. 그것도 현재 지지율 1~2위를 달리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주자들 간의 논쟁이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해 “사람의 마음은 선의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언급한 데 대해 문재인 전 대표가 “말 속에 분노가 담겨 있지 않다”고 공격했으며, 안 지사가 다시 “지도자의 분노는 단어 하나만 써도 피바람을 불러온다”고 응수한 것이 지난 며칠 사이의 일이다.
야권이 정권을 차지할 경우 과거 정권의 적폐를 어떤 식으로 처리해야 할 것인지가 논쟁의 배경을 이루고 있음은 물론이다. 문 전 대표가 “분노는 정의의 출발”이라고 지적한 것이 그런 때문일 것이다.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있어야만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안 지사는 “광화문 광장에 앉아있을 땐 열을 받지만 대한민국을 이끌어야 될 지도자로서 분노라는 감정은 너무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안 지사가 처음 논쟁을 유발한 ‘선의’라는 표현에 대해 결국 사과의 뜻을 표명한 상황에서도 ‘분노의 정치’ 논쟁은 수그러들 기미가 아니다. 현재 검찰·특검 수사로 드러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례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다. 보수성향 지지표가 상당 부분 야권으로 기울고 있는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정권 비리에 대한 민심의 동향을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정의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법치주의가 그 근간이 돼야 한다. 그동안 정의가 허물어진 데는 법치주의가 제대로 가동하지 않은 탓이 크다. ‘분노’의 감정을 완전히 억눌러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감정이 앞세워질 경우 필연적으로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따라서 보복의 악순환을 초래할 뿐이다. 분노를 최대한 조절하면서 법과 제도 안에서 정의를 세우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보수·진보 정권이 마찬가지다.
[매일신문]
3. 일본의 계산된 독도 도발, 흥분 앞서 제대로 알기부터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22일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억지 주장을 했다. 앞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21일 독도가 국제법상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발언했다. 일본 정부는 또 22일 시마네현의 ‘다케시마(독도에 대한 일본의 명칭)의 날’ 행사에 차관급인 내각부 정무관을 파견했다. 이처럼 독도에 대한 일본 각료의 억지 영유권 주장과 망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본의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이자 국제사회에서 분쟁화의 희생물로 삼아 독도를 차지하겠다는 검은 흉계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들어 일본의 독도 영유권 획책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독도 부근 해상에 일본 순시선이 사나흘에 한 번꼴로 나타나는 것도 그렇다. 게다가 한발 더 나아가 미래 세대에게 강제로 독도가 그들 영토라는 주장을 머리에 새겨넣으려는 학생 세뇌교육으로 이어지고 있다.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을 마련한 까닭이다. 아울러 독도의 날 행사에 차관급 참석을 2013년부터 5년째 이어가는 행동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 정부 차원의 독도 침탈의 거대한 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분위기이다.
사실 일본의 나라 밖 영토 야욕은 이미 역사가 증명한 터다. 한반도에 대한 오랜 약탈과 침략은 물론, 무력에 의한 중국 대륙 진출과 양민 학살과 같은 지난 죄악들은 이를 밝히고도 남는다. 지금 일본은 마치 강자의 힘만이 선(善)이 되는 약육강식의 옛 제국주의적 작태를 답습하려는 듯하다. 평화헌법 무력화와 군사대국화의 우익화는 좋은 증거이다. 그래서 일본이 러시아 등 강대국과의 영토 분쟁 회오리에 독도를 끼워 넣어 끝내 제국주의적 힘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와의 흥정과 거래에 나설 것이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이제 할 일은 분명하다. 일본의 계산된 도발에 흥분할 필요가 없다.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과 함께 국민들의 독도 사랑을 굳혀야 한다. 지속적인 관심과 교육을 통해 논리적인 무장도 갖춰야 한다. 모르고 맞설 수는 없다. 서경덕 교수와 배우 조재현이 유튜브에 올린 ‘다케시마의 날, 무엇이 문제인가’와 같은 영상물도 적극 개발, 활용할 때다. 독도 제대로 알기는 말보다 실천이 더욱 절실하다.
4. 안희정, 골수 지지층만 보지 말고 잠재적 지지자를 보라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기각을 결정할 경우 승복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안 지사는 22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헌재가 탄핵 기각 결정을 내리면 조건 없이 승복하겠느냐”는 패널의 질문에 “기각을 상정했을 때 국민이 가질 상실감을 생각한다면 법적인 결정이니 헌재의 판결을 존중하겠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답변했다.
이어 한 패널이 “조건 없이 승복할 건가, ‘예’ ‘아니오’로 답해달라”고 하자 “현재로선 그 질문 자체가 예, 아니오로 답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며 “헌법적 질서는 질서대로 잡더라도 민주사회에서 국민의 분노와 상실감은 표현돼야 한다. 헌재가 국민의 압도적 다수와 압도적 의원들이 가결한 결정을 존중하길 바란다”고 했다.
전형적인 모순어법이다. 헌법적 질서를 잡아야 한다면서 기각 결정은 존중하기 어렵다니 무슨 말인가? 헌재가 어떤 판결을 내리든 존중하는 것이 바로 헌법적 질서를 잡는 일 아닌가? 국회의 탄핵 의결은 정치적 결정이고 헌재의 탄핵심판은 헌법적 결정이다. 정치적 결정은 법률적 결정에 종속돼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이를 준수하는 것은 대통령 자격의 첫 번째 판정기준이다. 이에 비춰 봤을 때 지금까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모두 대통령 자격이 없다. 그들 중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겠다고 약속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안 지사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기대됐다. 안보, 재벌개혁, 복지문제 등 국가적 현안에서 다른 대선주자들과 달리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견해를 밝혀왔기 때문이다. 안 지사가 진보진영이면서도 보수진영의 지지를 받는 이유다.
물론 안 지사가 그렇게 발언한 것은 민주당 지지층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보수`중도층의 실망을 불러와 그의 정치적 외연 확대 노력을 무위로 돌릴 수 있다. 헌재의 어떤 결정이든 승복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국민에게 안 지사를 믿고 나라를 맡길 수 있는 사람으로 각인시킬 것이다. 승복 약속을 할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안 지사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5. 지방분권 개헌,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지방분권 개헌은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마침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해소해야 한다며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펼쳐지는 등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지난 21일 국회에서 대한민국 시도지사 협의회를 비롯한 지방 4대 협의체 대표들이 모임을 갖고 개헌 논의에서 지방분권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방분권 개헌은 시대적 요구이자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중앙정부와 수도권 언론 등 기득권자들에 의해 철저히 외면받아왔다. 1995년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중앙집권적 권위 의식과 제도적 한계에 번번이 부딪혀 ‘2할 자치, 무늬만 자치’라는 한계성을 노출해왔다. 이렇게 된 결정적 이유는 현행 헌법에 있다. 헌법에서 지방자치에 관한 최소한의 원칙과 기준도 제시하지 않은 채 지방자치제도의 주요 내용을 법률에 위임함으로써 중앙정부에 재정과 권한이 편중되고 지방자치권도 제한받아 왔다.
수도권 집중화와 양극화에 따른 국가 전체의 비효율성은 임계 상황을 넘은 지 오래다. 우리나라가 선진 문화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정 운영 기조를 중앙집권체제에서 지방분권체제로 대폭 바꿔야 하는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이자 풀어야 할 첫 단추는 지방분권 개헌이다.
따라서 개헌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과 동시에 지방분권국가임을 선언하는 형태로 진행돼야 한다. 대한민국이 지방분권공화국임을 헌법 전문과 총강에 천명하고 기본권으로서의 주민자치권을 반드시 헌법 조항에 명시해야 한다. 이런 방향으로 헌법 개정이 이뤄지면 지방분권 원리가 국가 주요 정책 결정 및 입법의 근본 권리로 작동할 수 있게 된다.
거의 모든 대선 주자들이 지방분권형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하지만 막상 지방분권 개헌이 구체적으로 추진될 경우 수도권론자들의 저항과 기득권 세력의 조직적 반발이 거셀 것임에 분명하다. 쇠뿔도 단김에 빼고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했다. 지방분권 개헌은 지금이 바로 골든타임이다.
[동아일보]
6. 박 대통령, 헌법재판소까지 농단해선 안 된다
헌법재판소가 어제 박근혜 대통령의 최후변론 기일을 24일에서 27일로 3일 늦췄다. 재판부는 탄핵심판 16차 변론기일에서 “박 대통령이 26일까지 출석을 통보한다면 27일 오후 2시에 최후진술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며 마지노선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대통령의 출석 여부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의 퇴임일인 3월 13일 이후로 선고를 늦춰보자는 대리인단의 지연전술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재판에 임하는 박 대통령 측 대리인의 수준은 상식 이하다. 대리인단은 어제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에 대해 기피신청까지 냈다. 김평우 변호사는 강 재판관이 재판을 불공정하게 진행했다며 “국회 측 수석대리인”이라고 독설까지 퍼부었다. 법리를 따져야 할 심판정에서 수세에 몰린다고 극언까지 퍼붓는 것은 변호인의 격(格)을 드러낸다. 이정미 권한대행이 ‘감히 그런 말을 하느냐’며 기피신청을 각하한 것은 당연하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이날 20여 명의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했다가 모두 기각당했다. 김 변호사는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뒤늦게 각하(却下)를 주장하며 정세균 국회의장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를 관련 증인으로 신청했다. 2개월 전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결된 탄핵소추안에 하자가 있었다면 당시 반대한 새누리당부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겠는가. 심지어 박한철 전 헌재 소장까지 증인으로 불렀다. 단순한 지연 전략을 넘어 ‘탄핵심판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를 하겠다는 것이다.
헌재는 그동안 무차별 증인신청을 하는 박 대통령 대리인 측의 ‘오버’에도 인내심을 갖고 신중하게 탄핵심판을 진행해왔다. 지금까지 신문을 완료한 28명의 증인 가운데 박 대통령 대리인 측 신청자가 16명으로 청구인 측 12명보다 많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헌재에 나올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탄핵심판에서 피청구인인 대통령의 최후변론은 유세의 자리가 아니다. 피청구인은 자신의 하고 싶은 변론을 하고 재판관으로부터 신문을 받으러 나오는 자리다. 국가 사법체제의 수호자인 대통령이 아무리 직무가 정지됐다고 해도 이렇게 사법절차를 희롱해선 안 된다. 대통령을 강제로 출석시킬 법적인 수단이 없다고 검찰은 물론 특검에 이어 우리 사법체계의 최종 판단기관인 헌재의 출석마저 거부한다면 끝까지 법치를 외면하고 인치(人治)에 사로잡힌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7. “대통령 명령대로 했으니 무죄”라는 박근혜 정부 관료들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21일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청와대에서 근무해 보면 안다. 거기선 대통령이 곧 법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했는데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등의 혐의가 무슨 말이냐는 방어 논리다. 덕분에 구속을 면했을지는 몰라도 청와대가 법치 아닌 어명(御命)을 받드는 전근대적 왕조시대처럼 작동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우 전 수석뿐이 아니다. ‘최순실 국정 농단’에 연루된 박근혜 정부의 상당수 공직자가 “대통령 지시대로 따랐는데 죄가 되느냐”는 취지로 진술했다. 정호성 전 제1부속비서관은 대통령 지시로 비밀문건 47건을 포함한 180건을 최 씨에게 넘겼다고 했다. 안종범 전 정책수석도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낼 대기업과 구체적인 액수까지 지정했다고 법정에서 밝혔다. 두
사람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라서 대통령 지시를 무작정 따랐다고 치자. 오랜 관료생활을 한 조원동 전 경제수석과 최상목 전 경제금융비서관(현 기획재정부 1차관)까지 민간인이 보기에도 옳지 못한 일을 대통령 지시라고 무조건 따랐다. 아무리 ‘관료는 영혼이 없다’지만 최고의 엘리트 공무원까지 이러는 건 공직사회가 심각하게 고장 나 있다는 증거다.
국가공무원법 1조는 국가공무원을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 규정하고 있다. 설령 권력자가 시켰다고 해도 불법, 부당한 일이라면 대통령으로부터 ‘나쁜 사람’으로 찍혀 쫓겨난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처럼 옳고 그름을 따졌어야 했다.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형법은 공무원이 ‘상관의 적법한 명령’을 수행하면 ‘위법성 조각사유(불성립)’를 인정한다. 즉, 상관의 명령이라도 적법하지 않은 명령을 수행했다면 처벌을 면할 길이 없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 국무회의가 받아쓰기나 하는 ‘어전(御前)회의’처럼 됐다는 지적은 박근혜 정부 출범 초부터 나왔다. 근대국가가 ‘왕의 말이 법’이었던 왕정시대와 달라진 것은 제왕의 권력을 법으로 제한한 법치주의 때문이다. 공무원은 임용 때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선서를 한다. 헌법과 법령이 아니라 권력이나 상관의 충복이 되는 순간 공무원 자신은 물론 나라와 국민의 불행이 시작된다.
[중앙일보]
8. 북한, 외교관까지 연루됐는데도 암살 발뺌하나
말레이시아의 칼리드 아부 바카르 경찰청장이 어제 김정남 암살사건 연루자로 북한대사관 소속 2등 서기관과 고려항공 직원을 지목하며 이들을 사실상 ‘공개수배’했다. 북한의 현직 외교관은 물론 국영항공사로 실질적으로 정부 통제를 받는 고려항공 소속 직원까지 연루됐다는 사실은 북한대사관의 모르쇠와 발뺌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의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2014년 6월 8일 쿠알라룸푸르에서 고려항공의 마지막 비행편이 떠나고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북한 항공기의 이착륙 및 영공 통과조차 금지하는 말레이시아에 항공사 직원이 계속 상주하고 있었다는 사실부터 여간 미심쩍은 게 아니다.
이번 조치는 사건의 성격에 대한 결정적인 전환점이다. 말레이시아 당국이 이번 사건을 북한인이 연루된 살인사건에서 더 나아가 북한 정권에 의한 ‘국가범죄’로 의심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현직 외교관과 국영항공사 직원이 암살에 개입하고 그 배후가 북한 정권임이 확인되면 외교적 입지는 결정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북한은 면책특권을 지닌 외교관들의 지위를 악용해 불법 무기 거래나 영리활동 등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부터 재외공관 직원 수를 축소하라는 제재를 받고 있다. 여기에 현직 외교관을 동원해 암살까지 벌인 것으로 확인된다면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기피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외교적·경제적 고립이 가중되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다. 특히 북한은 물론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돈줄인 석탄을 수입하지 않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북한에 석유 수출도 하지 말라는 국제사회의 요구가 빗발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을 신의로 대했던 말레이시아의 실망과 배신감도 극에 이를 것이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이날 새로 공개한 혐의자 2명과 이미 평양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진 4명을 포함한 북한 국적 용의자들에 대한 수사 협조를 요청했다. 이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당연한 조치다. 북한이 강철 주말레이시아 대사를 통해 밝혀 온 것처럼 그렇게 떳떳하다면 협조 요청에 응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 않다면 더욱 진창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세계일보]
9. 김정남 독살 테러에 북한대사관이 개입했다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사건에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 소속 외교관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사관이 ‘테러의 온상’이었다니 말문이 막힐 뿐이다. 북한 정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저지른 범죄라는 게 기정사실로 굳어진 셈이다.
칼리드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5명의 북한 국적자를 쫓고 있는데 이 중 4명은 이미 평양에 도착한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나머지 1명과 또 다른 북한 국적자인 북한대사관 2등서기관 현광성,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은 말레이시아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북한 국적 용의자는 붙잡힌 리정철을 포함해 모두 8명에 이른다. 베트남·인도네시아 국적 여성의 경우 맨손에 독극물을 묻혀 김정남 얼굴에 문질렀고 “얼굴을 덮는 공격을 하도록 이미 훈련을 받았다”고 했다. 김정남 아들 김한솔 입국설을 부인하고 “유족이 오면 보호해 주겠다”며 시신 신원 확인을 위한 DNA 샘플 제출을 요구했다.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은 그동안 사건 진상에 발뺌으로 일관해 왔다. 강철 대사는 말레이시아가 한국과 결탁해 북한을 궁지로 몬다는 억지 주장까지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아니파 아만 말레이시아 외무장관은 그제 필리핀에서 열린 아세안 외무장관 회의에서 “김정남 살해는 독살이라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사건) 배후는 북한이라는 것이 틀림없이, 확실시되는 그런 상황”이라고 했다. 북한은 이런 명백한 증거를 보고도 생트집을 잡을 셈인가. 북한대사관은 말레이시아 경찰의 현광성·김욱일 면담 요구에 응하고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북한 당국은 평양으로 도주한 용의자 4명을 말레이시아로 돌려보내 현지 경찰의 조사를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독살 사건의 배후가 드러난 만큼 테러 세력에 대한 강력한 응징에 나서야 한다. 평양 주재 자국 대사를 귀국시키는 수준의 제재로는 안 된다. 북한과 체결한 무비자 협정을 파기하고 단교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 북한은 1983년 아웅산 테러로 미얀마에 의해 단교당한 전례가 있다.
국제사회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중심으로 대북 인권제재에 나서는 한편 김 위원장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유엔은 북한인권결의를 통해 안보리가 북한 인권상황을 ICC에 회부하고 인권유린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권고해 왔다. 북한 인권유린의 정점에는 김 위원장이 있다. 국제사회가 테러 세력 축출에 행동으로 나서야 할 때다.
10. 진실 규명 위한 대통령의 ‘헌재 출석’ 촉구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변론기일이 24일에서 27일로 사흘 늦춰졌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어제 “대통령 측 대리인들께서 준비시간이 부족하다고 말씀을 해 재판부에서도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했다”며 “27일 최종 변론기일을 열겠다”고 밝혔다. 변론기일이 연기됐으나 이 권한대행 퇴임일인 3월13일 이전에 선고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종 변론 뒤 시작하는 재판관회의(평의)가 2주일 정도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13일 전 선고는 가능하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3월13일을 넘기면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어제 16차 변론에서 지연작전을 폈다. 헌법학자 등 20여명을 증인으로 신청하고 탄핵심판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에 대한 기피 신청을 냈다.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낸 김평우 변호사 등 4명이 두 시간 넘은 발언을 이어가며 시간을 끌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강 재판관을 겨냥해 “오해에 따라서는 청구인(국회)의 수석대리인이 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가 이 권한대행으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헌재 심리가 공정하고 충실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박 대통령 측이 그간 변론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를 보면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리인단의 언행과 돌출 행동이 헌재 심판의 공정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다.
최종 변론기일의 연기는 대통령의 헌재 출석을 끌어내기 위한 포석으로 판단된다. 이 권한대행은 대통령 측에 “최종 변론기일 하루 전까지 (대통령의 출석 여부를)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박 대통령의 헌재 출석 최종 시한이 이제 사흘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법으로만 따지자면 대통령이 반드시 헌재에 출석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그동안 자신의 약속을 뒤엎고 특검과 검찰의 조사에 응하지 않은 만큼 헌재에 나와 사건의 진상을 국민 앞에 밝힐 필요가 있다. 누구보다 사실관계를 잘 알고 있는 대통령이 자세히 털어놔야 진실이 규명될 수 있다. 작금의 탄핵 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진상 규명이다. 진위가 가려져야 헌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결정 후의 승복도 가능하다. 국가 지도자로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
주요신문칼럼
1. [동아일보][2030 세상] 인형뽑기 중독자의 고백
내가 어렸을 땐 ‘정글짐’이 유행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키즈카페 같은 곳인데 당시엔 부잣집 친구들이 생일파티를 할 때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승합차가 데리러 와, 다같이 우르르 타고 갔던 기억이 난다. 그곳의 메인은 플라스틱 공으로 꽉 찬 공 풀장인데 친구가 별로 없던 나는 거기서 혼자 놀다가 지쳐 잠들곤 했다. 졸다 깨는 순간엔 늘 기분이 안 좋았는데 혹시 친구들이 날 두고 집에 갔을까 하는 걱정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가끔 그런 기분으로 잠에서 깰 때가 있다. 내 좁은 침대가 인형으로 가득 찬 공 풀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거다. 요즘 들어 많이 보이는 인형뽑기방. 처음엔 나도 누가 이런 걸 하나 싶었다. 오락을 좋아하지 않아 그 흔한 애니팡 한 번 해본 적 없고 요행을 바라는 걸 즐기지 않아 로또 한 번 사본 적 없는 나였다. 그랬던 내가 인형뽑기에 중독된 걸까. 올 1월 31일, 세뱃돈으로 받은 현금이 주머니에 있었던 게 발단이었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혼자 집으로 가는데 저 멀리 하얀 불빛 아래서 환호성이 들렸다. 새로 생긴 인형뽑기방이었다. ‘어라? 저게 진짜 뽑히기도 하나 보네’ 하며 호기심이 생겼다. 평소 ‘난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이 많았는데 저들을 보니 왠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옆집 사는 희철이도 요즘 들어 프로필 사진이 인형으로 바뀌는 걸 보니 여기서 했나 보다. 나도 해 봐야지.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10분 만에 1만5000원을 날렸다.
화가 나서 괜히 희철이에게 연락해 성을 냈다. “너같이 손재주 없는 애도 뽑길래 나도 한번 해봤는데 돈 다 날렸다. 책임져라.” 그러자 희철이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비법이 궁금하냐고 했다. “비법? 뭔데?”
그가 가르쳐준 비법은 우선 입구 부근에 인형이 쌓여 있는 기계만 시도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 하는 사람들은 입구 바로 옆에 있는 인형부터 시도하곤 하는데 걔들은 잘 안 된다고. 이건 뽑기방 사장님에게서 들은 말인데 입구 근처에 있는 인형을 할 때와 입구 멀리에 있는 인형을 할 때와는 집게 힘이 다르다고 한다.
따라서 입구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고 들기 쉽게 누워 있는 애들을 공략해야 한다. 걔들은 어지간하면 입구 탑(인형들이 탑처럼 쌓여 있다고 해서 탑이라 부른다)까지는 가져다 놓는데 그럼 게임은 끝난 거다. 그렇게 탑 위에 놓인 인형들을 입구 쪽으로 살살 끌고 가서 톡 떨어뜨리거나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입구에서 먼 쪽을 잡고 뒤집어 올려 입구로 골인시키는 거다.
솔직히 이걸 카톡으로 설명해줄 때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다음 날 정말 우연히 길에 있는 인형뽑기 기계 앞을 지나는데 어라? 왠지 어제 친구가 설명한 그 상황이 눈앞에 있었다. 누군가가 탑 위에까지 올렸다가 돈이 없어서 더 안 하고 그냥 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봤는데 이럴 수가! 인형이 너무나 부드럽게 입구로 쏙 떨어져서 나에게로 온 것이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심장박동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나에게도 생기는구나! 그날 눈이 뒤집힌 거지…. 대체 왜 한 걸까 싶으면서도 이 정도의 중독력이라면 뭐라도 해볼 수 있겠다 하는 희망이 생겼다.
그렇게 해서 한 달 동안 뽑은 인형은 자그마치 22개. 이 정도면 강원랜드 한 번 갔다 온 걸로 쳐야 할까. 다행인지, 아쉬운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그 열렬한 마음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질릴 때까지 해야 그만둘 수 있다는 지인의 조언을 듣고 7만 원으로 인형 8개를 뽑고 나니 정말 마법처럼 그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몇 번 하기는 했지만….
올 듯 말 듯하지만 결국 나에게 와 줄 때의 그 행복감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선사해준 인형뽑기에게 진실로 고마움을 느끼며 이제 안녕이야! 난 이제 더 강한 자극을 찾아 떠날 테야! 그동안 내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PS. 그런데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에게 중독이 시작되면 어쩌죠? 난 책임 못 져….
2. [경향신문][문화와 삶] 이상이라는 이름
20세기 음악사를 다룬 알렉스 로스의 저서 <나머지는 소음이다>에 소개된 뜻밖의 사실 한 가지. 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을 점령한 미군정(OMGUS)이 다름슈타트 국제 신음악 하계음악제가 출범할 때부터 예산의 20%가량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다름슈타트의 하계음악제는 이후 아방가르드 현대음악의 국제적 산실이 된다. 슈토크하우젠, 불레즈, 존 케이지와 같은 굴지의 현대음악가들이 이 음악제를 거쳐갔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윤이상도 예외가 아니다.
미군정이 현대음악을 지원한 것은 독일의 ‘탈나치화’를 위한 이른바 ‘심리전’의 일환이었다. 이해가 쉽고 집단적 정서에 호소하는 조성음악 대신에 개인화된 자유로운 아방가르드 음악의 미학적 가치를 우위에 둠으로써 전체주의의 발흥을 저지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것은 물론 소련과 현실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견제의 의미도 있었다. 로스에 따르면, “OMGUS의 뒤를 따라 중앙정보국(CIA)이 가끔씩 심히 복잡한 아방가르드 작품들이 포함된 축제의 자금을 지원했다.”
위와 같은 사실은 한국의 냉전 정치세력들이 작곡가 윤이상을 대해왔던 방식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1960년대 후반 박정희 정권과 중앙정보부는 이른바 ‘동백림 사건’의 간첩 혐의로 윤이상을 독일에서 국내로 납치해와 고문을 자행하고 2년 가까이 교도소에 감금했으며, 세계적 비난 여론이 들끓자 마지못해 석방한 뒤 추방했다. 미국 정부와 CIA라면 음렬기법과 무조성을 고수했던 윤이상의 아방가르드적 현대음악을 오히려 지원했을 것(최소한 공산주의자로 몰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1980년대 이후로 특히 자주 있었던 윤이상의 방북 활동은 한국 내 냉전세력들이 최근까지 그의 이념을 문제 삼도록 만든 빌미가 되었다. 남한 입국이 거부되어 있던 당시에 윤이상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조국 방문’이었음을 고려해야 하지만 의문이 남는다. 북한 정권은 왜 윤이상과 그의 음악을 받아들였을까? 윤이상의 난해한 현대음악은 ‘인민이 이해하기 쉬운 음악’을 전체주의적 기조로 삼는 북한의 관료화된 문예정책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동백림 사건’이 없었다면, 북한 정권이 윤이상의 급진적 현대음악을 지원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사실상 ‘남한 정부의 정치적 핍박을 받고 있는 세계적 명성의 작곡가’라는 윤이상 카드를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는 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북한 정권의 환영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윤이상의 음악 그 자체는 대중적 조성음악 언어로 바뀌지 않았다는 점, 즉 그의 음악은 단 한번도 ‘친북적’이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윤이상의 한국 방문이 시도됐다. 하지만 “지난날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는 것과 앞으로는 예술에만 전념하시겠다는 뜻을 밝혀” 달라는 당시 이홍구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의 서신을 전달받고 윤이상은 정중히 한국 방문을 거절했다.
이듬해에도 방한 기회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주사파 성향의 활동가들이 그를 찾아가 한국 방문을 강행할 경우 공항에서 분신자살이 행해질 것이라고 협박했다. ‘통일운동가’라는 이들의 위선적 행태에 실망한 나머지 윤이상은 이날 심장 발작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고 한다. 그해에 윤이상은 고향땅을 다시 밟지 못한 채 독일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사후 고향 통영에서는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최근 ‘윤이상 콩쿠르’의 지원금 중단 해프닝에서 볼 수 있었듯이 그는 여전히 누군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조차 종종 “예술에만 전념”이라는, 작곡가 자신이 모욕을 느꼈던 누군가의 바람을 넘어서지 못하는 듯하다.
윤이상의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찬 한국의 현대사이자 냉전의 세계사 그 자체다. 탄생 100주년, 윤이상을 기억하는 일이 작곡가로서 그의 세계적 명성이나 순수음악적 가치를 재확인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되는 이유다. ‘윤이상’이라는 이름은 한반도 평화의 미래를 향한 미학적·정치적 공감의 교두보다.
3. [중앙일보][분수대] 아버지의 짐
소설가 김훈의 신작 『공터에서』에는 거지대장 박영철 얘기가 나온다. 6·25 당시 ‘구걸의 자유’를 찾아 대구로 피란 간 인물이다. 남하한 이유가 희비극이다. 텅 빈 서울에서 공산당이 거지들은 기생충이라며 한강에 쓸어 넣겠다고 협박하자 박씨는 40여 무리를 이끌고 주 활동무대인 청계천을 떠났다. 그는 자유대한의소리 방송 인터뷰에서 “그리운 청계천으로 돌아가 자유롭게 구걸할 날을 고대한다”고 말했다.
아나운서의 대답이 기억에 남는다. “자유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루속히 청계천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씁쓸했다. 몸뚱이밖에 없는 거지가 구걸할 자유를 호소하는 게 우스꽝스러웠고, 또 고귀한 자유가 눈앞에 있다는 아나운서의 말이 꺼림칙했다. 서울이 다시 위태로워지자 피란을 가려면 질서를 지켜 문명한 국민의 성숙도를 보여 달라는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나온 무렵이었다.
전쟁이 끝난 지 64년이 지났다. 하지만 소설 속 이 장면은 마치 오늘을 비추는 듯하다. 대통령 탄핵 무효를 외치며 서울시청 광장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이들을 떠올렸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모든 생명이 위협받는 전화(戰火) 속에서 생뚱맞게 걸인의 자유를 부르짖거나, 국정 농단 증거가 속속 나왔는데도 ‘멸공의 횃불’을 틀어대는 심정은 어쩐지 닮은꼴이다. 태극기·성조기 현장을 둘러봤던 작가는 ‘기아의 정서’ 한마디로 표현했다. “엔진이 공회전하듯 해방 후 70년간 같은 자리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공터에서』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가장자리다.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현대사의 변두리 인물을 돌아본다. 시대를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린’ 사람들이다. 그들의 고달픈 일상은 ‘아버지의 짐’으로 요약된다. 그토록 부정했던 아버지로부터 달아나려 했지만 질긴 인연의 사슬에 묶여 있는 지금 우리들의 자화상 같다. 촛불과 태극기의 어불성설 충돌은 그 짐의 결정판이다.
올해 일흔인 작가는 소설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낸 아들의 입을 빌려 고백한다. “아버지가 죽음으로써 아버지가 한평생 끌고 온 시간과 지고 온 짐이 소멸할 수 있을까.” 우연인지, 의도인지 주인공의 아버지가 세상을 등진 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측근의 총에 쓰러졌던 79년 겨울이다. 구체제의 틀을 깨려고 용틀임하는 오늘 우리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또다시 아버지의 짐을 대물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4. [서울신문][정준모의 영화 이야기] 세상의 황금시대는 어디에
정녕 좋은 시절이란 유한한 것일까. 연이은 테러와 폭동으로 파리의 관광객을 찾아보기 힘들고 루브르의 관람객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는 우울한 소식을 들은 날 모두가 동경하는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를 떠올리며 문득 든 생각이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낭만과 사랑 그리고 예술의 도시로 파리가 자리잡은 것은 산업혁명 이후 프로이센과의 전쟁을 끝낸 1871년부터이다. 이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와중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이 몰려와 예술지상주의에 빠져들었고, 이런 분위기는 대공황이 일어나기 전인 1930년대까지 이어진다. 역사가들은 특히 1871년부터 1914년까지를 ‘황금시대’라 명명했다.
이 시절 파리는 경제적 풍요로 낙천적 분위기와 힘찬 시대적 에너지가 넘쳐났다. 문화예술계에서도 데카당스한 댄디보이들이 세기말의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이들은 병적인 상태를 탐하고, 기괴한 주제와 소재를 반기며, 관능적이고 과민한 자의식으로 현실에 대한 반감을 감추지 않았다. 현실을 부정하고 도피를 위해 예술을 위한 예술을 강조하며 자연미를 거부했다.
우디 앨런은 이 시기의 파리를 찬미하고 그리는 영화를 만든다. 바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다. 이 영화도 산만하게 시공간을 넘나드는 다큐 ‘우디 앨런:우리가 몰랐던 이야기’에서처럼 복잡하고 산만한 구성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독특한 구조를 지닌다. 하지만 영화는 보다 더 몽환적이며 환상적이다. 그는 시간을 거스르는 시간여행을 통해 행복하고 낭만적인 그때의 파리로 데려간다. 그리고 관객들의 ‘파리앓이’가 시작된다.
누구에게나 황금시절은 있는 법이고 오늘보다는 지난 과거를 대부분 황금기로 여긴다. 그래서 추억은 아름답다고 했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오늘이 지나면 어제가 된다는 사실을 잊고 언제나 사람들은 오늘은 힘들고 어렵고, 지금보단 어제가 좋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까칠하고 섬세한 우디 앨런은 ‘옛날도 좋았지만’ 가장 ‘좋은 시절’은 ‘지금’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오언 윌슨이 연기한 ‘길’이다. 소설가를 원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영화대본을 쓰는 그는 자신의 재능을 몰라 주는 세상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래서 우상인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1920년대를 동경한다. 하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약혼녀 ‘이네즈’는 매우 현실적이다. 이렇게 생각이 다른 한 쌍이 파리를 여행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영화의 줄거리다. 아니 영화의 전부다.
파리의 낭만을 즐기려는 길은 쇼핑을 하고 싶어 하는 이네즈를 두고 혼자 나왔다 길을 잃고 만다. 낯선 파리의 밤거리를 헤매는데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더니 그 앞에 1928년 나온 멋진 구형 푸조 ‘랑듀레 184’가 나타난다. 멋진 자동차에 몸을 맡기고 얼떨결에 도착한 곳은 전설적인 작곡가 콜 포터가 피아노를 치고 노래 부르며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 부부가 헤밍웨이와 잡담하는 그곳, 1920년대 파리의 한 파티장이다. 즉 황금시대의 중심인 것이다.
그 후 길은 자정만 되면 버릇처럼 1920년대로 길을 나선다. 이곳에서 마크 트웨인을 만나 작품 얘기를 나누고 당대 최고의 비평가이자 소설가며 시인인 거트루드 스타인은 그의 작품을 읽고 칭찬해 준다. 피카소의 연인인 아드리아나와 만나 현실의 연인 이네즈를 잊고 환상 속 사랑에 빠진다.
이렇게 우디 앨런이 영화라는 장치를 통해 1920년대 파리를 동경하고 사랑했던 모든 예술가들을 불러모아 연 파티가 바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이다. 이 시절 파리는 인간상실의 시대에 절망한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욕망과 탐욕의 시대를 벗어나 이룬 ‘해방구’였다.
“선한 미국인은 죽어서 파리에 간다”고 했던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특히 많은 미국의 문인, 예술가들은 파리로 떠났고 일부는 그곳에서 살고 뼈를 묻을 만큼 파리는 동경의 땅이자 예술적 열정으로 가득한 땅이었다. 그리고 파리는 시대적 아픔을 치유, 아니 잊을 수 있는 낭만적 도피처이기도 했다. 그래서 수많은 카페와 바 그리고 아틀리에를 전전하는 파티는 초라했지만 매일매일 토론과 열정으로 잘 차려진 성찬이었다.
이렇듯 미국의 지식인·예술가들에게는 뜨거운 파리였지만 토박이들에게는 권태롭기 그지없는 공간이기도 했다. 우울하고 염세적인, 그러나 피는 뜨거웠던 ‘파리의 황금시대’를 매우 적나라하게 그려 낸 로트렉이 스케치를 하고 있는 물랭루주의 한 바에 나타난 드가에게 고갱이 한마디 날린다. “이 시대는 공허하고 상상력이 없어. 르네상스 때야말로 최고의 시대였지!”라고.
우디 앨런은 현실에서 작품을 인정받지 못해 불만인 길에게 1920년대 문화예술의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파리도 당시 고갱에게 불만이었던 것처럼 “지금, 여기”와의 대비를 통해 ‘현실도 꽤 괜찮은 살 만한 곳’이라는 쪽지를 슬그머니 손에 쥐여 준다.
영화 속 황금시대의 파리는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이 운집해 있다. 장 콕토, 투우사 벨 몬테, 모딜리아니, 계속해서 코뿔소를 외치는 달리와 그의 친구인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 사진가 만 레이, 시인 T S 엘리엇, 조세핀 베이커, 주나 반스, 코코 샤넬 등등이 마치 20세기 초를 구가한 문화예술인 인명사전의 색인처럼 등장한다. 이 시절 파리로 모였던 많은 화가들을 ‘에콜 드 파리’라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파리의 몽파르나스는 이민 또는 난민 화가들의 천국이었다. 파리는 모두에게 열려 있었고 누구든 ‘톨레랑스’라는 이름으로 받아 주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모딜리아니, 러시아의 샤갈, 리투아니아의 수틴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전쟁을 피해 파리로 스며들어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시대를 거스르는 연어처럼 펄떡이며 자신의 예술혼을 불살랐다. 내일은 없다는 듯 보헤미안처럼 그날그날에 충실했다. 멜랑콜리한 정서와 반항적인 기질, 감상적인 성격과 취향이 같았던 이들은 로맨틱하고 서정적이거나 우아한 애수가 함께하는 섬세한 관능미를, 때로는 분노와 열정을 자제함이 없이 화폭에 폭발적으로 펼쳐내기도 했다.
이들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카데미즘을 일거에 무너뜨린 야수파, 입체파, 미래파이다. 각기 다른 다양한 작품의 바닥에는 불안과 고뇌라는 공통점이 도사리고 있었고, 여기에 샹송을 보태며 그들은 더욱더 충실하게 오늘을 살았다. 영화에서 포크너는 말한다. “과거는 절대 죽지 않는다”고. 하지만 우디 앨런은 “그래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바로 황금시대”라고 말한다. 아마 그가 한국인이라면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했을 터이다. 그렇다. 어지러운 세상이다. 하지만 굴러 보자. 황금시대는 다시 올지니.
5. [조선일보][일사일언] 사연 은 동백꽃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꽃이 있다. 장미, 백합, 혹은 안개꽃. 누군가는 샐비어를 좋아한다. 유년 시절엔 꽃을 따서 단물을 빨아 먹곤 했다. 그때는 사루비아라고 불렀다. 추억의 꽃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꽃이 뭐냐고 묻는다면 동백이라고 답한다. 동백에 '필이 꽂힌' 데엔 전남 영광 출신 친구가 한몫했다.
대학 신입생 때다. 하숙 룸메이트가 영광 출신이었다. 낯선 전라도 사투리가 갑자기 일상이 됐다. 가끔은 다른 문화에 불편해하기도 했지만 돈독한 우정을 쌓았다. 막 스물을 넘긴 시절이다. 이듬해 2월 전라도 영광 땅을 난생처음 밟았다. 요즈음 세대에게는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가난했던 그 시절, 먼 남녘으로 여행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지금은 금호고속으로 이름이 바뀐 광주고속 버스를 타고 갔다. 차창 너머 보이는 넓은 호남벌은 산간벽지에서 자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친구는 집 근처 안흥사 동백이 장관이라며 나를 끌었다. 그날 본 풍경이 어제 같다. 핏빛 꽃들이 늙은 동백나무를 뒤덮고 있었다. 장엄하다 못해 비감스러웠다.
동백꽃은 사연이 많다. 뇌쇄적인 아름다움에 비해 긴 세월 천대를 받아 왔다. 꽃봉오리 전체가 어느 순간 '툭' 떨어지는 모습이 불길하다고 해서 지배층의 외면을 받았다. 불길한 일들이 갑자기 생기는 것을 동백꽃 춘(椿) 자와 일 사(事)를 조합해 '춘사(椿事)'라고까지 표현한다. 일본도 비슷하다. 사무라이들은 질색한다.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칼날에 사람 목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고 해서 아예 마당에 들여놓지 않았다. 서양에서도 장미 못지않게 사연이 많다. 그래서 베르디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운의 여주인공 비올레타 가슴에 동백꽃을 달았다.
동백꽃 소식이 들리면 문밖은 봄이다.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디다'(서정주 '선운사 동구' 중에서). 하지만 조숙한 동백은 이미 바람결에 떨어진다. 그날 그곳의 동백꽃은 지금쯤 다시 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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