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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서울신문]
1. ‘준단교’까지 거론한 이성 잃은 중국 언론
롯데가 국방부와 주한 미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부지를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중국 관영 매체들이 한국 상품 불매 운동 등 경제 보복을 촉구하고 있다. 일부 언론들은 한국과의 ‘준(準)단교’까지 거론하며 강경 대응을 촉구했고 롯데는 물론 삼성과 현대 등 한국의 글로벌 기업까지 불매 운동 대상으로 삼겠다는 위협성 보도도 서슴지 않는 분위기다.
중국 언론들의 공세에는 주로 당·정부 기관지들이 앞장서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사드 배치로 한국 자신을 한반도의 화약통으로 만들었다. 중국의 전략 안보 이익을 함부로 침해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인민일보의 소셜 미디어 매체인 ‘협객도’는 “한·중 관계는 단교에 준하는 가능성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는 협박성 사설을 실었다.
민족주의 성향을 노골화하고 있는 환구시보 역시 “롯데를 공격해 한국을 벌하는 것밖에는 중국이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이 없다”고 전제한 뒤 한국산 상품 불매 운동을 촉구했다. 환구시보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한술 더 떠 “중국은 삼성과 현대의 가장 큰 시장이며 한·중 갈등이 지속되면 이들 기업도 조만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한국 내 기업들을 조준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최근 사드 관련 질문을 받고 “중국에서 외국 기업의 경영 성공 여부는 최종적으로 중국 시장과 중국 소비자에 달려 있다”고 밝힌 것은 롯데에 대한 불매 운동을 용인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중국 정부의 통제하에 있는 주요 언론들을 동원해 경제 보복을 선동하는 것은 대국을 자처하는 중국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중국의 경제 보복은 언론 공세에 그치지 않고 현실화되고 있다. 이른바 ‘준법 규제 보복’을 통해 한국 기업에 불이익을 주고 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난 것이다. 한류 확산을 막는 한한령(限韓令)이나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차별, 한국 관광 통제, 대중 수출 통관 지연 등이 대표적이다. 한반도 내 사드 배치는 주지하다시피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의 국익과 국민을 지키기 위한 자위권을 발동한 것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기에 앞서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 김정은 정권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중국의 잘못된 경제 보복들은 결국 한국 국민의 반중 정서를 초래해 장기적으로 양국 관계를 훼손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2. 새로운 길 선택한 삼성, 글로벌 도전 이겨 내야
삼성이 그룹의 두뇌이자 핏줄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했다. 최순실 사태로 인한 그룹 이미지 실추와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에 대한 책임을 지고 최지성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차장(사장) 등 핵심 수뇌부 퇴진 선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점쳐졌던 인적 쇄신도 미전실 팀장 전원 퇴사라는 예상치 못한 카드를 꺼냈다. 이렇게 극약 처방을 하지 않고서는 고치는 시늉만 했을 뿐 속은 그대로라는 호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뉴삼성’의 출발선에 설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 전 계열사의 전략·기획·홍보·인사지원·법무·경영진단 등의 기능을 담당했던 컨트롤타워를 해체했다는 것은 삼성이 선장 없이 항해에 나섰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새로운 길로 들어선 삼성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중심으로 자율 경영에 나선다고 한다. 삼성의 변화는 이미 예고됐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에 참석해 이병철 창업주 이래 58년간 그룹을 움직였던 미래전략실 해체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특히 한두 사람 잘라서는 근본적인 변화를 꾀할 수 없다고 보고 ‘이병철-이건희 체제’를 유지해 준 그룹 작동 시스템 자체를 바꾼 것이다. 이러한 삼성의 도전에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총수 1인 지배로 인한 문제점도 없진 않았지만 그룹 차원의 대규모 신사업 진출, 장기 미래 투자, 효율 경영 등 장점도 적지 않았다. 사실 재벌은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를 현재의 위치까지 끌어올린 공신이며, 다른 나라의 글로벌 기업도 우리의 이런 장점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인 동시에 연매출 400조원에 이르는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다. 이런 삼성이 정치적 사건에 연루돼 휘청대거나 좌초하는 것을 바랄 국민은 없다고 본다.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이 급변하고 있고, 삼성을 끌어내리려는 글로벌 경쟁자들의 거센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그룹 컨트롤타워 해체가 삼성의 의지만은 아니겠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이를 계기로 삼성은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삼성은 미전실 해체와 함께 정부와 정치권의 소통 통로였던 대관 업무까지 폐지했다. 이 부회장의 구속 등 삼성의 불행이 정경유착에서 비롯된 만큼 앞으로는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이 각자의 길을 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 시련과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초일류 삼성의 밝은 모습을 기대해 본다.
[동아일보]
3. 보수 품격 떨어뜨린 홍준표, 제 허물부터 보라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지난달 28일 “지금 민주당 1등 하는 후보는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말한 데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홍 지사는 “바로 옆에 있던 비서실장이 그 내용을 몰랐다면 (대통령)감이 안 된다”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에 대해선 “2등 후보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고 나왔다”고 비난했다. 거친 표현도 듣기 거북하지만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홍 지사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1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홍 지사는 지난달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마자 대선 출마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1심에선 징역 1년 6개월의 유죄로 나왔고, 검찰이 곧바로 대법원에 상고해 홍 지사는 지금 피고인 신분이다. 홍 지사로선 자신의 출마 자격 시비를 의식해 문 전 대표와 안 지사의 ‘자격’을 거론했을지 몰라도 대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나올지 단언하기 어렵다. 홍 지사가 문 전 대표나 안 지사보다 도덕적, 법률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기 힘든 이유다.
홍 지사가 왜 자유한국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난 직후 ‘막말’을 쏟아냈는지 경위도 궁금하다. 인 위원장이 홍 지사에게 당원권을 회복시켜 대선 출마의 길을 터주기 위해서 만났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원은 기소와 동시에 당원권이 정지된다’고 당헌에 규정해 놓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당원권이 정지된 홍 지사는 현재 당의 공천을 받아야 하는 대선 후보도 될 수 없다.
홍 지사가 보수 세력의 대안으로 나서려면 먼저 자신의 허물부터 말끔해진 다음이어야 할 것이다. 보수가 중시하는 가치는 예의와 품격, 도덕성이다. 홍 지사가 거친 말로 관심과 인기를 끌 수 있을지는 몰라도 보수의 가치까지 훼손해선 안 될 일이다.
4. 탄핵심판 이후의 나라 위한 행동에 나설 때다
대한민국은 어제 ‘태극기’와 ‘촛불’로 두 동강이 난 채 98주년 3·1절을 보냈다. 약 한 세기 전 일제에 맞서 온 겨레가 분연히 하나가 돼 독립을 외친 뜻깊은 날에 후손들이 대통령 탄핵을 놓고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어느 쪽이라도 나라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이었다고 믿고 싶다. 충돌이나 불상사 없이 행사가 끝난 것도 다행스럽다.
“오등(吾等)은 자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하는 기미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은 기독교, 천도교, 불교에서 각 16, 15, 2명이 참가했다. 이들이 종교 지역 이념을 따지며 적전분열(敵前分裂) 했다면 그날의 독립선언은 없었을 것이다. 대의(大義)를 위해 함께 뭉쳤기에 거사가 가능했다. 대의를 위해 소아(小我)를 희생하는 정신이 지금처럼 절실한 때도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서면으로 제출한 헌법재판소 최후진술을 통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대한민국과 국민들을 위해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모아 지금의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선의까지 왜곡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에 편지를 보내 지난달 2일 자신의 생일에 받아든 ‘백만 통의 러브레터’에 대해 “고맙고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 박사모 측에 “큰 격려가 되었다”고 밝힌 것은 탄핵 반대에 더욱 열심히 나서달라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 시위 참가를 자제하고 차분하게 헌재 심판을 지켜보면서 결과에 승복하자고 했다면 국민을 감동시킬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탄핵 찬성 측과 반대 측은 이달 4일과 11일에도 주말집회를 이어간다고 한다. 탄핵이 기각될 경우 민주노총은 총파업, 농민단체는 농기계 시위, 학생들은 동맹휴업 등 강력한 항의행동을 예고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자유청년연합 대표라는 사람은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의 집주소를 공개하고 단골 미용실과 슈퍼까지 언급해 테러를 선동하는 듯한 행위를 했다.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반민주적 폭력 기도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대선 주자들과 정치권, 사회 원로들은 탄핵심판 이후의 대한민국을 위해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미국이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헌법주의와 법치주의가 있었다. 2000년 대통령선거에서 사실상 이기고도 패배를 선언한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결단은 헌법주의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어 가능했고, 이를 통해 국민적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
어제 태극기와 촛불시위가 입증하듯 국민의식은 정치인들의 의식보다 한 수 위다. 탄핵심판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가 흔들릴 이유는 되지 못한다. 정치권과 각계 지도자들이 만나 탄핵심판 이후에도 우리가 살아가야 할 나라를 위해 큰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
[이데일리]
5. 팽배한 ‘특검수사 피로감’ 모르는가
야권이 특검법 개정을 공동 추진키로 했다고 한다. 2월말로 끝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가 미진했다는 인식 하에 기존 70일로 돼있는 수사 기간을 30일 더 연장토록 하는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야 4당은 그제 이러한 내용의 특검법 개정안을 제출하고 정세균 국회의장에 대해 오늘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이 개정안을 직권상정해 달라고 정식 요청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특검팀의 수사 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한 데 대한 정치 공세다. 특검 수사의 필요성을 계속 제기함으로써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 책임을 환기시키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헌재가 탄핵인용 결정을 내릴 경우 앞당겨 실시될 조기 대선에 있어서도 야권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특검의 추가 수사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다.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수사가 끝내 불발됐다는 자체에서도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에서부터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특혜입학 의혹, 문화계 인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에 이르기까지 특검팀은 광범위한 수사 성과를 얻었다. 영장을 재청구하면서까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하기도 했다.
오히려 특검 수사가 전방위로 전개되면서 이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이 팽배해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비리 의혹은 당연히 밝혀야 했지만 피해자인 기업인들에 대해서까지 혐의를 두고 무리하게 수사가 확대됨으로써 기업 활동을 위축시켰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심지어 “특검팀이 공명심을 너무 앞세웠다”는 지적까지 제기된다. 항간에 나도는 ‘특검 무용론’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특검 수사가 종료됐다고 해서 관련 수사가 함께 끝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미진한 부분에 있어서는 검찰이 수사를 이어받으면 될 일이다. 특검팀이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박 대통령을 기소중지하지 않고 입건으로 처리한 것도 그런 취지다. 검찰에 맡겨도 되는데도 굳이 특검 수사에 의존하려는 분위기가 공연히 특검팀의 공명심을 부추기고 과잉수사를 초래하는 요인이다. ‘최순실 게이트’ 특검팀의 역할은 그제 발표된 수사 결과만으로도 충분하다.
6. 해마다 반복되는 대학가 얼차려 추태
올해도 어김없이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과 단합대회(MT)에서 불상사가 잇따르고 있다. 대학 새내기들의 합류를 축하하는 자리가 만취사고와 군기잡기 등으로 얼룩지고 있는 것이다. 성추행도 빠지지 않는 항목이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 술에 취해 불행한 사고를 당하는가 하면 강압적인 체벌이 예사로 행해지는 악습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지방의 어느 명문대학 신입생 MT에서 선배 남학생이 신입 여학생 두 명에게 성추행과 성폭행을 잇따라 저질러 물의를 빚은 것이 며칠 전의 일이다. 그제는 OT에 참가한 신입생들이 선배의 강요로 단체 얼차려를 받는 모습이 유튜브에 올라와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환영행사에 참가한 신입생이 만취상태로 승강기 기계실에 잘못 들어갔다가 연결 와이어에 손가락 3개가 끊어지는 위험천만한 사고도 벌어졌다.
신입생 환영행사는 새내기들에게 대학생활의 적응을 돕고 선후배간 유대를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교류의 모임이다. 하등 나무랄 게 없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교육 목적은 사라져 버린 채 새내기들에게 강제로 술을 먹이고 성희롱을 자행하거나 체벌을 가하는 변태적 작태의 난장판으로 변질돼 버렸다. 사회 일각에서는 물론 대학 내부에서조차 OT 무용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개선안이 논의된 것도 사실이다. 폭설로 행사장 지붕이 무너지면서 환영행사에 참석했던 신입생 10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다친 2014년의 부산외대 마우나리조트 참사가 하나의 계기였다. 그러나 안전사고와 음주·폭행·성추행 등의 예방을 위한 안전지침이 만들어지고도 불상사는 여전하다. 이런 식이라면 더 큰 희생과 슬픔이 예고없이 불쑥 찾아올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신입생 군기잡기와 폭탄주 강요 등을 마치 자랑스런 전통인양 고집하는 일부 대학사회의 그릇된 인식이 문제다. 다른 어느 사회보다 자율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할 대학에서 강제와 일탈의 반지성적 행태는 추방돼야 마땅하다. 문제점을 뻔히 알면서도 남의 일처럼 뒷짐 지고 있는 교수들을 포함해 대학 당국의 책임도 크다. 이참에 OT와 같은 집단 행사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근본적으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매일신문]
7. 해고 칼날에 떠는 아파트 경비원, 고용 안정책 필요하다
사회의 대표적 약자로 꼽히는 아파트 경비원들의 처지가 갈수록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올 들어 최저임금이 7.3% 인상되면서 인건비 절감과 무인자동화 시스템 도입 명목 등으로 경비원들이 대량 실직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최근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경비 용역업체가 전체 경비원의 절반인 8명을 한꺼번에 해고했다. 해고 경비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채용된 지 1년이 채 안 된다는 이유로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경비원 몫으로 아파트 측이 월별 선지급한 퇴직적립금은 업체 차지가 됐다. 일각에서는 퇴직금이 집단 해고의 배경이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지만, 해당 업체 측은 정당한 업무 능력 평가 결과 기준점에 미달한 경비원들을 내보냈을 뿐이며 퇴직금이 해고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진위가 어쨌든 간에 위 사례에서 보듯 아파트 경비원들은 고용시장에서의 법적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19만 명으로 추산되는 전국의 아파트 경비원들은 대부분 노령층 퇴직자들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파트 경비원들의 평균 연령은 63세이고 하루 15시간씩 장시간 노동에 노출돼 있다. 이들은 본연의 업무인 경비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지 내 궂은 잡일까지 도맡아 하는데다 감정노동에도 시달리고 있다.
아파트 경비원 대량 해고는 이들에게 최저임금제가 100% 적용된 2015년 이후 본격화됐다. 아파트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관리비를 더 부담해 경비원 해고를 막는 사례도 있지만, 대량 해고를 선택하는 아파트들이 대부분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최저임금 시행 이후 아파트 경비원 고용 안정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경비원 처우 개선에 나선 일부 지자체의 사례는 귀감이 될 만하다. 충남 아산시는 경비원 고용 안정을 위해 임금의 일부를 직접 지원하고 있으며, 부산시 기장군도 ‘경비원 고용 유지 및 창출을 위한 특별지원 조례’를 지난달 24일 제정했다.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정부는 경비직 근로자들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8. 애국지사 묘역 방치한 정부, 국립묘지 승격해야
국내 유일의 애국지사 묘역인 신암선열공원이 정부와 대구시의 무관심 속에 철저하게 외면받았다니 한숨만 나온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국독립을 위해 몸바친 애국지사 묘역이 체계적인 관리는커녕, 허술하게 방치됐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대구시 동구 신암동에 자리 잡은 신암선열공원은 애국지사 52분의 봉분을 모시고 있어 국내 최대 독립운동가 묘역이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1987년 대구경북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가 묘지를 모아 선열(先烈)공원으로 개장했지만, 그 취지에 맞지 않게 관리`운영이 엉망이었다. 대구시가 관리하는 현충시설에 머물다 보니 갖가지 문제가 빚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신암선열공원은 관리 부실로 봉분이 훼손되거나 무너지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잔디가 없는 민둥묘가 허다했고, 묘역 주변에 잡초와 잡풀이 무성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이 사비를 들여 봉분을 보수하는 일도 있었다. 후손들이 얼마나 분개했으면 “묘지를 옮기고 싶다”고 했을까. 본지가 2015년 신암선열공원의 봉분 훼손 실태를 보도하고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하는 바람에 뒤늦게 대구시가 전체 개보수 공사에 나설 정도였다.
습관적으로 예산`인력 핑계만 대는 대구시에 더는 선열공원 관리를 맡겨서는 안 된다. 선열공원에 책정된 올해 대구시 예산이 1억1천700여만원이고, 인건비를 빼면 시설 및 일반 운영비는 2천500만원에 불과하다. 부잣집의 저택 관리비 정도밖에 안 되는 돈으로 3만6천800㎡에 이르는 호국시설을 관리했다고 하니 기가 찬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순국선열의 나라 사랑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후손들의 무성의와 태만을 보여주는 ‘산 교육장’이라고 할 만하다.
정부가 신암선열공원을 국립묘지로 지정해 체계적인 관리를 하는 것이 맞다. 신암선열공원의 존재 의의와 상징성, 교육적인 가치는 다른 국립묘지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다. 정태옥`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립묘지 승격을 위한 법안 마련에 나섰다고 하니 아주 다행스럽다. 이제라도 신암선열공원을 올바르게 관리해 순국선열의 뜻과 정신을 알리는 교육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중앙일보]
9. 집회 전날 지지층 결집 부추긴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팬클럽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드린다”는 서신을 보냈다고 한다. 박사모가 박 대통령의 생일(2월 2일)을 축하하는 편지를 보냈기에 답장을 한 것이란 게 청와대 설명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3·1절을 맞아 대규모 촛불·태극기집회가 열리기 하루 전날 대통령이 지지층을 향해 “결집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청와대 비서관이 28일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운동 본부(탄기국)’ 대변인을 맡고 있는 박사모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고생 많으셨다”는 대통령의 뜻을 전한 것도 그런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답답하고 안타깝다. 98주년을 맞는 이번 3·1절엔 올 들어 가장 많은 인파가 쏟아져 나와 탄핵 찬반 맞불 집회를 열 것임이 예고돼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임박하면서 양측이 막판 총력전에 나선 것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박 대통령이 집회 전날 박사모에 편지를 보내고, 그 사실을 공개한 건 탄핵반대 세력을 통해 헌재를 압박하려는 은근한 ‘선동’이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 농단 혐의를 규명하기 위한 검찰과 특검, 헌재의 출두 요청을 모두 거부했다. 대신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와 보수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일방적으로 무죄를 주장하더니 급기야 지지층에게 “집회에 많이 나가 잘 막아 달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메시지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법질서를 강조하고 법조인을 중용해온 박 대통령이 아니던가.
박 대통령은 나라가 두 동강 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지층의 행동을 부추긴다 해도 헌재의 탄핵 결정을 늦추거나 향배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오히려 헌재의 반발 심리를 자극해 대통령이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만 커진다. 본인의 무책임한 언동으로 나라가 파국으로 치닫는 건 박 대통령 자신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제라도 흥분한 지지층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동성 발언 대신 자제를 호소하며 헌재의 결정을 차분하게 기다려야 할 것이다.
10. 현실로 떠오른 중국 리스크, 수출 다변화 계기 돼야
한국이 주권적 선택으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배치하기로 한 걸 놓고 중국이 본격화하고 있는 한국 기업 때리기가 점입가경이다. 평소 과도한 애국심 선동으로 유명한 중국 공산당 기관지들이 연일 파상공세를 펴고 있다.
먼저 인민일보의 해외판 공식 SNS 뉴스 계정인 샤커다오(俠客島)가 ‘단교’라는 말로 포문을 열더니 그제 환구시보(環球時報)는 “롯데를 중국 시장에서 축출하자”고 수위를 높였다. 그 영문판인 글로벌 타임스는 ‘한국, 쓴맛 봐야’라는 어제 기사에서 “한국이 무릎 꿇을 때까지 우리 주장을 계속할 것”이라며 “삼성과 현대도 곧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막말을 쏟아냈다. 또 전문가 입을 빌려 ‘성주 타격’을 거론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의 거친 표현은 한·중 수교 이후 지난 25년간 누적된 ‘중국 리스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수출 비중 25%를 차지할 만큼 한국에 큰 시장이다. 한국은 진작에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적 관점에서 중국 의존도를 줄여 왔어야 했다. 저렴한 인건비와 높은 성장성을 내다보고 진출했던 중국 상황이 이제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중국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2005~2016년 사이 세 배 뛰면서 멕시코·브라질보다 50% 높아졌고 성장률은 6%대로 둔화됐다.
더구나 중국은 수입대체산업을 본격화하면서 비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다. 통관을 불허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고, 전기자동차 배터리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삼성SDI·LG화학을 제외하는 등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한 차별적 행위도 노골화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이 본격화하고 미·중 간 무역 갈등이 불붙으면 한국의 수출 환경은 더욱 악화할 수 있다.
어제 삼정KPMG 경제연구소는 2012~2016년 한국을 겨냥한 외국의 비관세 수입 규제 증가율이 45.7%에 달해 세계 평균의 배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중국 관영 언론의 거친 주장은 수출 다변화를 통한 특정 국가 의존도 완화와 제품 경쟁력 강화를 통한 무역장벽 돌파가 한국 기업의 미래 살길이란 점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주요신문칼럼
1. [경향신문][미래의 눈] 인간, 창조품에 적응할 수 있는 존재
찬우는 갓 여섯 살이 된 딸 서영이 가볍게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찬우의 아내인 연희는 남편의 마음이 불안해지면 곧장 알아채는지라 딸이 듣지 못하도록 작은 소리로 물었다.
“또 그 생각이야?”
찬우는 대답하는 대신 가볍게 웃어보였다. 연희는 짜증을 내거나 잔소리를 하는 대신 찬우의 팔에 살짝 손을 얹었다.
세 식구를 서울에서 부산까지 태우고 가기 위해 옅은 잿빛 차량이 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찬우 부부가 함께 기록하고 있는 일정표 출발 시각과 단 1초도 다르지 않은 때부터 그렇게 서 있었을 것이다.
연희는 뒷좌석을 아동용 안전좌석 모드로 바꿨다. 딸 서영의 성장에 따른 사이즈 변화는 홈 데이터에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그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되어 있는 가족용 차량은 안전좌석의 크기와 안전벨트 길이를 늘 자동으로 조정해주었다. 연희는 딸이 몸에 두른 안전벨트가 거북하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조수석 문을 열었다.
찬우는 운전석 문을 열어둔 채로 머뭇거리고 있었다. 연희가 물었다. “내가 운전석에 앉을까?” 찬우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아내와 자리를 바꿨다.
가끔 오늘 같은 날이 있었다. 분명 식구는 셋이지만 누군가, 무언가 네 번째 식구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느낌이 드는 날이 있었다. 그 네 번째 식구는 가족의 일정을 모두 알고 있고, 누구든 건강 상태가 이상 수준에 도달하면 가장 먼저 알아채고, 늘 먹는 음식 재료가 떨어지면 제일 먼저 알려주었다. 주문까지 알아서 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차에 타고 이동해야 할 때, 찬우는 네 번째 식구의 존재를 가장 강하게 느꼈고 그만큼 심기가 편치 않았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자율적으로 조종하는 인공지능을 흔히 카텔이라고 줄여 불렀다. ‘카’와 ‘인텔리전스’라는 단어를 합친 조어였다. 카텔이 스마트 하이웨이와 완전히 연계될 경우 교통사고 발생률이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건 이미 상식이었다. 차를 몰고 이동하는 것을 표현하던 ‘운전’이라는 단어도 ‘승차’에 흡수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차를 새로 구입하면서 이른바 ‘카텔 각서’를 쓰고 있었다. 각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본인은 운전을 완전히 카텔에 맡기고 수동 운전을 포기합니다. 포기함으로써 발생하는 책임은 모두 본인 및 본인과 계약한 보험사가 맡습니다. 단 카텔 시스템의 오류나 문제점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는 예외로 합니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할 경우 관할 민사 법원의 판단에 따릅니다.’
서명은 강제가 아니었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여겼다. 그 나머지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찬우였다. 지인들은 그런 찬우를 옛사람이나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으로 여겼다.
‘아이를 태우고 가다가 사고가 났을 때 저도 모르게 발에 힘을 줘서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어떡하려고?’
‘자율 주행 차량은 모든 사람이 수동 운전을 포기할 때 효율이 높다고. 너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위험에 처한단 말이야.’
‘너 당뇨 있잖아. 만에 하나 저혈당 쇼크로 정신이라도 잃으면 어떡할 건데?’
지인들의 말이 하나같이 옳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수동 운전을 포기하고 카텔에 몸을 맡기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찬우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들이 아니라, 가족이 살아가며 해나가는 크고 작은 일과 판단을 가져가버린 네 번째 식구였다. 그 식구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만질 수 없는 건 물론이고 대화조차 할 수 없었다.
찬우와 같은 소수를 가리키는 용어가 있었다. ‘인공지능 공포증 환자.’ 인공지능 공포증이 정말로 병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찬우 아내인 연희는 남편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녀는 인간이 인공지능과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인공지능은 소프트웨어가 변경되면 즉시 바뀐 점을 반영하겠지만 사람은 그럴 수가 없었다. 연희는 인공지능 프로그래머이기 때문에, 그리고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연희는 남편이 안심할 수 있도록 차량 운전석에 앉아 반자동 모드를 켰다. 그러자 내장되어 있던 리본 모양의 운전대가 천천히 튀어나왔다. 남편은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긴장을 풀었다. 물론 연희는 카텔을 완전히 믿었다. 부산까지 가는 도로 위에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운전대를 꽉 움켜쥐고 긴급 수동 모드를 작동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남편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면 작은 연극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생각이었다.
뒷좌석에서 유아 교육용 인공지능 인터페이스와 놀고 있는 딸 서연에겐 해당되지 않는 말이지만, 남편에겐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인류는 도구를 만들고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 주장을 조금 확장하면 또 다른 쓰임새가 생긴다. 인간은 끊임없이 도구를 만든다. 그러면서 다시 도구에 적응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 우리를 영장의 자리에 올려놓는 건 바로 그런 수용능력이 아닐까?
우리는 도구가 발전한 끝에 지능을 획득하고 스스로 판단을 내려 행동하는 예를 최근 들어 여러 차례 보았다. 그런 도구는 단순한 필요를 넘어서 인간의 호기심과 창조 욕구 때문에 등장했고, 앞으로는 도구에서 새로운 존재로 바뀌어 우리 곁에 서 있을 것이다.
문을 열고 올라타기만 하면 나머지를 전부 알아서 해주는 자동차는 그런 존재들 가운데 아주 원시적인 형태다. 마냥 마음대로 부릴 수 없는 존재가 등장하면 머뭇거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존재들과 나란히 서서 걷지 못한다면 더 넓은 세상도, 변화도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받아들이고 인정할 시간을 주는 것 역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2. [경향신문][기자칼럼] 4대강의 오류
빵집 아들이 자기집 유리창을 깼다. 빵집 주인이 아들을 심하게 탓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그렇게 볼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빵집 주인이 새 유리를 사면 유리창 수리 업자는 돈을 벌게 된다. 수리업자는 그 돈을 다른 곳에 쓸 것이고, 그러면 또 다른 곳에서 소득이 생긴다. 결과적으로 빵집 아들은 마을의 소득과 고용창출에 기여했다. 그러니 창을 깬 것은 마을경제로 보면 잘한 일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빵집 주인은 신을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리창을 사느라 신을 사지 못했다. 아들이 유리창을 깬 것은 빵집 주인의 지출 방향만 바꾸었을 뿐 새로운 소득을 창출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신발장수는 신발을 팔지 못했으니 오히려 손해를 봤다. ‘깨진 유리창의 오류’라고 명명된 유명한 경제학의 우화다. 프랑스 경제학자인 프레데릭 바스티아가 1850년에 쓴 에세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나오는 얘기다.
아직도 4대강 사업이 좋은 사업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4대강 사업으로 금융위기 당시 고용이 창출됐다거나, 백제보를 통해 가뭄이 심각한 충남 보령댐에 물을 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만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전형적인 주장이다. 바스티아는 이런 사람들을 ‘사이비 경제학자’라고 말했다.
강 정비의 필요성을 전면 부인하자는 게 아니다. 정비가 필요한 강에는 그 수요에 맞게 돈을 썼으면 됐다. 10분의 1인 2조원 정도였다면 차고도 남았을지 모른다.
말이 쉬워서 1조원이지, 1조원은 작은돈이 아니다. 한 사람이 하루 3000만원씩 쓴다고 해도 무려 100년간 쓸 수 있는 돈이다. 그런 돈 22조원을 강바닥에 썼다. 그것도 국채를 발행해 빚까지 내서 말이다. 그 돈은 시급히 써야 할 데가 많았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기획재정부의 한 고위 간부는 “김대중 정부 때 인터넷 인프라를 까는 데 47조원을 썼고, 그 덕에 IT강국이 됐다”며 “4대강 대신 신성장동력에 과감하게 투자했더라면 지금쯤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래, 그까짓 것 한번 질펀한 돈잔치를 벌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다. 4대강 사업이 완공된 2012년 이후 유지비로 매년 5000억원씩, 이미 2조5000억원을 더 썼다. 수자원공사가 빌린 8조원의 이자, 생태하천 등 4대강 사업 구간 관리, 준설토 관리 등을 합친 액수다.
예정에 없던 새 계산서도 제출됐다. 녹조 관리다. 거기다 향후 지출이 확정된 비용 등을 모두 따지면 전체 사업비는 30조원에 이를 수 있다. 차라리 보를 부수고 물길을 터주자고 애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는 안된다고 한다. 이미 쓴 돈이 얼마냐는 것이다. 이면에는 4대강 사업 실패를 인정할 수 없는 자존심도 있다.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인 ‘콩코드’는 경제성이 없었다. 연료소모량은 많고 탑승인원은 적었다. 하지만 콩코드를 만든 영국과 프랑스는 운항을 중단하지 못했다. 콩코드는 양국의 자존심이었다. 개발에 많은 자금도 투자됐다. 2003년 콩코드는 운항 27년 만에 중단을 선언했다. 누적된 적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콩코드의 오류’라 부른다. 매몰비용(이미 쓴 비용)에 집착하다 상황을 더 악화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깨진 유리창의 오류’로 시작한 4대강 사업은 ‘콩코드의 오류’로 넘어가고 있다. 정부가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4대강 사업은 새 경제용어를 남길지도 모르겠다. 깨진 유리창과 콩코드, 두 오류를 합친 ‘4대강의 오류’라고 말이다. 4대강 사업은 시작도 잘못됐고, 끝도 잘못되고 있다.
3. [경향신문][역사와 현실] 돈키호테
멀리 스페인을 다녀왔다. 여행 중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는데, 건망증 탓에 금세 다 잊었다. 뇌리에 아직 남아 있는 것은 겨우 두어 가지뿐이다. 우선 인구에 관한 소감을 적어보자. 스페인 면적은 한국의 5배 이상이지만 인구는 4800만명에 불과해, 우리보다 300만명이 적다. 비행기가 스페인 북부 지방을 지날 때부터 실감이 났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듬성듬성한 마을풍경이 더없이 한가로웠다. 스페인의 인구밀도는 한국의 5분의 1에 못 미친다.
1㎢에 평균 470명이 살아야 하므로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사람 값은 헐하고 물건 값은 턱없이 비싼 것이 당연하다. 우리도 스페인만큼 성긴 인구밀도를 갖게 될 날이 있을까? 그렇게 되면 많은 문제들이 저절로 풀릴 것이다. 주거, 환경, 취업 문제가 쉽게 개선되고, 식량자급률이 100퍼센트를 회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당장 인구가 급감하면 연금과 건강보험 등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하나 큰 틀에서 보면 인구감소가 해로운 일만은 아니다.
뇌리를 스쳐간 또 한 가지 생각은 국운의 성쇠에 관한 것이다. 알다시피 스페인은 16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그들이 ‘레콘키스타’ 곧 영토회복을 내걸고 이슬람세력으로부터 국토를 되찾은 것은 1492년, 그때부터 스페인은 ‘대항해’의 시대를 열었다. 콜럼버스와 그 후계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차례로 정복해 국고를 금은보화로 가득 채웠다. 지중해의 한 변방국가가 유럽의 최강자로 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의 영광은 짧았다. 1588년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한 뒤 그들의 역사는 내리막길을 치달았다. 네덜란드, 프랑스와의 대결에서 연신 고배를 마시더니, 1898년에는 미국에도 졌다. 스페인제국의 자랑스러운 이름은 역사에서 지워지고, ‘유럽의 후진국’이란 오명만 남았다.
17세기 이후 스페인이 장기침체의 늪에 빠졌을 때 그들의 왕은 무기력했고 귀족들은 부패했다. 지역갈등도 도를 넘었다. 죽어나는 것은 인구의 대다수를 점하는 빈농이었다. 이러고도 어찌 망하지 않을 도리가 있었을까?
한국의 역사도 스페인과 닮은 점이 있었다. 15세기 전반 우리에게도 짤막한 황금기가 있었다. 한글이 창제되었고, 천문, 과학, 농업, 의료, 군사 등 여러 방면에서 굵직한 성과가 많았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한국사의 흐름은 답답하였다. 외침이 연이었으나 왕과 귀족들은 무능하고 무책임하였다. 권세가는 부패했고, 지방에서는 서원이 위세를 부렸다. 서북인에 대한 차별은 폐습으로 굳었고, 영호남에 대한 견제도 지나쳤다. 우리 조상들은 대부분 소작농으로서 연명하기조차 어려웠다. 날이 갈수록 희망의 빛줄기는 약해졌다.
망조가 들면 누군가는 반드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옳은 소리를 낸다. 17세기 초, 스페인에서는 세르반테스가 포문을 열었다. 그는 <돈키호테>를 통해 세상의 환부를 드러냈다. 훗날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날카롭게 분석하였듯, 돈키호테와 그 하인 산초는 스페인 사람들의 자화상이기도 하였다. 스페인을 여행하는 동안 나는 카잔차키스가 말한 돈키호테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내게 돈키호테는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는 ‘스페인의 혼’이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통해 스페인 사람들에게 희망과 의지를 일깨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뜻은 옳게 전달되지 않았다. 당시 스페인의 위정자와 대중들은 돈키호테에 환호했으나, 그들이 받아들인 돈키호테는 해학과 유머가 넘치는 구시대의 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작가는 소설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피하고자 수사의 장막을 쳤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 장막에 갇혀버렸다.
20세기 초, 돈키호테는 400년의 기다림 끝에 찬란하게 부활했다. 스페인 사회도 잠에서 깨어났다고 할까. 파블로 피카소는 돈키호테와 산초를 한 장의 그림에 담아, 시대의 사명을 두 어깨에 걸머진 세르반테스의 노고를 기렸다.
현대 스페인의 사상가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더욱 진지한 어조로 돈키호테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돈키호테에게서 도전과 신념의 인간, 영원한 스페인의 이상을 재발견했다. 돈키호테라는 인간상을 창조해 스페인을 위기에서 구하려 했던 선각자 세르반테스, 이 위인을 향한 가세트의 존경심은 끝도 없었다. 가세트와 피카소 두 사람은 20세기 스페인의 불의하고 폭력적인 현실권력과도 대결했다. 그들은 19세기 스페인 내전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군국주의자 프랑코 총통을 강하게 비판했다.
몰락을 거듭하던 조선후기 사회에도 양심적인 지식인이 적지 않았다.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담헌 홍대용 등의 이름이 떠오른다. 그들 역시 집권층의 독단과 오류를 낱낱이 비판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노력만으로는 기울어진 역사의 저울대가 바로 서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세상의 이치를 헤아리는 식견이 조금이나마 있다면, 무엇을 어디서부터 바꾸어야 할까. 가슴을 치며 다짐하는 소리가 터져 나와 이제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바꾸어 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4.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한국인 지혜·생활 담긴 비빔밥
비빔밥은 대접에 밥과 갖은 나물무침을 담고 계절과 지역에 따라 다양한 식재료를 더해 비벼서 먹는 음식이다. 그 유래는 명확하지 않지만, 옛날 제사 후 음식을 골고루 섞어 나누어 먹었고, 가정에서 남은 반찬을 밥에 비벼서 밤참으로 먹기도 했으며, 또 일터에서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식사를 해결하는 음식으로 활용되기도 했던 것이 비빔밥이어서, 그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만들기가 쉽고 영양을 고루 섭취할 수 있는 건강식일 뿐 아니라 여러 재료의 맛이 어우러져서 오묘한 맛을 내는 맛깔스러운 음식이어서 한국인의 솔푸드로 일찌감치 자리잡은 것이다. 1990년대 초 항공사에서 기내식으로 제공하면서부터는 외국인들의 입맛도 사로잡아 세계음식으로 등극했다.
비빔밥은 재료나 요리 방법에 따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그 종류가 다양하다. 육회, 산채, 콩나물, 부추, 멍게, 튀각 등 밥에 얹는 특이한 재료에다 ‘비빔밥’을 붙이면 그게 곧 이름이 된다. 지역명도 마찬가지다. 콩나물, 황포묵, 육회 등으로 무장한 전주비빔밥, 숙주 등 나물을 색감 있게 올리는 진주비빔밥, 기름에 볶은 해주비빔밥, 미역, 파래 등 해조류가 들어가는 통영비빔밥, 멍게젓갈을 넣는 거제비빔밥 등등 다양하다.
그중 재미있는 것이 경상도 지방의 ‘헛제삿밥’이다. 그 옛날 제사 때나 돼야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해 상을 차리던 시절에 제사 때가 아니지만 제사 핑계를 대고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제사 때처럼 흰 쌀밥에 삼색 나물을 더해 간장에 비벼 소고기, 돔배기(상어고기), 고등어, 전이나 산적, 그리고 탕국과 함께 먹는다.
비빔밥은 밥솥과 냉장고만 열면 쉽게 만들 수 있는 대표적인 간편한 메뉴다. 그렇다 보니 누구나 나름대로 독특한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비빔밥으로 이름을 내고 있는 식당을 찾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서울 명동에 전주 전통비빔밥집 ‘고궁’이 있다. 전주에서 50년 이상 해 온 집의 서울 점포다. 커다란 놋그릇에 육회, 콩나물, 호박, 무채 등 각종 나물과 계란, 황포묵 등이 놓이고, 그 위에 양념고추장이 화려하게 얹어져 나온다. 밥을 약간 되게 하여 잘 비벼지게 한 것이 입맛을 더하게 한다. 외국 손님도 많으며, 인사동에도 점포가 있다.
신사동에는 깔끔하게 단장한 진주비빔밥 음식점 ‘하모’가 있다. 각종 나물과 육회를 얹어 정갈하게 나온다. 소고기 무탕국과 함께 먹는다. 헛제삿밥도 하는데, 밥에 다진 소고기를 얹고 6가지 나물이 따로 나온다. 간장으로 비비므로 정갈한 재료의 본맛을 즐길 수 있다. 을지로입구에는 멍게비빔밥을 하는 ‘충무집’이 있다. 큰 대접에 밥을 담고 멍게젓갈, 무순, 김만 얹어주는 간단한 비빔밥이다. 바다 냄새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음식으로 중독성이 있다. 따로 파는 멍게젓갈을 사서 집에서도 쉽게 해먹을 수 있다.
청담동에 있는 ‘새벽집’은 고깃집으로 유명하지만, 막상 비빔밥 손님이 더 많다. 포이동, 군자동에도 점포가 있다. 푸짐하게 얹혀 나오는 육회와 각종 나물, 김 등에 고추장 양념을 입맛에 따라 더해 먹으면 된다. 함께 나오는 뚝배기 선지국도 일품이며, 구운 김으로 비빔밥을 싸서 먹어도 별미다. 효자동 주민센터 인근에는 ‘가진화랑’이 있다. 가정집을 개조해 화랑 겸 음식점으로 예쁘게 단장했다. 비빔밥정식을 시키면 접시에 각종 나물을 담고 찌개, 전 등 반찬도 정갈하게 내어온다. 깔끔한 맛이다.
비빔밥은 재료를 모두 섞지만, 각각의 재료 맛은 살아 있고 또 비벼진 새로운 맛도 같이 느낄 수 있는 오묘한 음식이다. 무엇보다 여럿이 나누어 먹기에 좋다. 한국인의 지혜와 생활이 담긴 음식이다.
5. [한국일보][삶과 문화] 우울과 분노의 시간들
내가 공부해온 상담학은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인의 심리ㆍ마음ㆍ정신이 주요 관심사다. 삶의 많은 문제들은 결국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을 지지해 왔다.
그런데 지난 몇 년 전 미국의 한 대학에서 사회심리학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개인의 삶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사회로부터 영향 받는지를 생각해보게 됐다. 사회적 접근이란 어떤 문제에 대해 사회적 요인을 중시하고 이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해법을 강구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자살은 개인적 현상이자 사회적 현상이다. 개인의 심리적 위기가 자살을 낳지만 이 위기를 낳은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그 개인이 놓인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다.
‘개인이냐 사회냐’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결국 개인적 접근과 사회적 접근을 모두 중시하는 복합적 관점일 것이다. 이 복합적 관점은 개인과 사회 간의 상호작용을 주목한다. 예를 들면, 경제적 빈곤이라는 사회적 요인은 자살이라는 개인적 행위의 사회적 원인이 될 수 있지만, 경제적 빈곤에 처한 사람들 모두가 자살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사회적 조건에 놓인 개인들이라 해도 그 선택이 다른 것은 심리ㆍ마음ㆍ정신의 차이와 같은 개인적 요인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얼마 전 접한 한 통계 때문이다. 지난달에 발표된 세계보건기구(WHO)의 ‘세계 정신건강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전 세계 인구 4%인 3억 2,200만 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이 통계에서 내 시선을 특히 끈 것은 그 규모가 10년 전인 2005년보다 18.4% 증가했다는 점이다. 대체 10년 동안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왜 이렇게 늘어난 것일까.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원인은 2008년부터 시작된 지구적 경제 위기다. 경제적 어려움은 많은 이들의 삶을 고단하게 하고, 이 고단함은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증가시킨다. 무기력, 불면, 식욕감퇴, 피로감, 의미상실, 그리고 자살 등이 우울증의 증상 및 결과들인데, 이러한 경향이 지난 10여 년간 지구적으로 강화돼온 셈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러한 흐름이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왔다는 점이다. 1997년 외환 위기를 거쳐 2008년 금융 위기까지 겪은 후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진 두 가지 심리적 흐름은 우울과 분노다. 먹고 살기가 갈수록 팍팍해진 사회 현실에 대해 개인들이 갖게 된 일차적 감정 상태가 다름 아닌 우울과 분노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우울에 빠지게 하고, 이런 현실에 대해 참기 어려운 분노를 느끼는 것은 일견 자연스러운 인과의 과정이다. 최근 ‘자살공화국’이나 ‘헬조선’이라는 말은 이러한 우울과 분노의 감정이 만들어낸 거친 표현들이다.
우울증이든 분노유발이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일차적으로 상처받은 개인들이 돌봄을 받아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억압됐던 상처나 절망감에 대해서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있는 환경에서 공감과 위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다소 안정이 된 다음엔 냉정하게 자기 자신을 직면해야 한다. 이 자기 대면의 시간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점을 인정해야만 자신과 타자, 그리고 사회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회의 변화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사회적으로 공정한 제도를 일궈가지 않으면, 우울과 분노의 시간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많은 이들에게 무기력과 상처를 안겨주는 사회라면 이 역시 체계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개인의 변화 없이 새로운 사회를 열어 가기는 어렵다. 동시에 사회의 변화 없이 새로운 개인이 탄생하기도 어렵다. 우울과 분노의 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개인적 처방과 사회적 해법을 결합한 복합적 대응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서울신문]
1. ‘준단교’까지 거론한 이성 잃은 중국 언론
롯데가 국방부와 주한 미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부지를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중국 관영 매체들이 한국 상품 불매 운동 등 경제 보복을 촉구하고 있다. 일부 언론들은 한국과의 ‘준(準)단교’까지 거론하며 강경 대응을 촉구했고 롯데는 물론 삼성과 현대 등 한국의 글로벌 기업까지 불매 운동 대상으로 삼겠다는 위협성 보도도 서슴지 않는 분위기다.
중국 언론들의 공세에는 주로 당·정부 기관지들이 앞장서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사드 배치로 한국 자신을 한반도의 화약통으로 만들었다. 중국의 전략 안보 이익을 함부로 침해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인민일보의 소셜 미디어 매체인 ‘협객도’는 “한·중 관계는 단교에 준하는 가능성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는 협박성 사설을 실었다.
민족주의 성향을 노골화하고 있는 환구시보 역시 “롯데를 공격해 한국을 벌하는 것밖에는 중국이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이 없다”고 전제한 뒤 한국산 상품 불매 운동을 촉구했다. 환구시보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한술 더 떠 “중국은 삼성과 현대의 가장 큰 시장이며 한·중 갈등이 지속되면 이들 기업도 조만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한국 내 기업들을 조준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최근 사드 관련 질문을 받고 “중국에서 외국 기업의 경영 성공 여부는 최종적으로 중국 시장과 중국 소비자에 달려 있다”고 밝힌 것은 롯데에 대한 불매 운동을 용인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중국 정부의 통제하에 있는 주요 언론들을 동원해 경제 보복을 선동하는 것은 대국을 자처하는 중국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중국의 경제 보복은 언론 공세에 그치지 않고 현실화되고 있다. 이른바 ‘준법 규제 보복’을 통해 한국 기업에 불이익을 주고 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난 것이다. 한류 확산을 막는 한한령(限韓令)이나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차별, 한국 관광 통제, 대중 수출 통관 지연 등이 대표적이다. 한반도 내 사드 배치는 주지하다시피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의 국익과 국민을 지키기 위한 자위권을 발동한 것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기에 앞서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 김정은 정권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중국의 잘못된 경제 보복들은 결국 한국 국민의 반중 정서를 초래해 장기적으로 양국 관계를 훼손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2. 새로운 길 선택한 삼성, 글로벌 도전 이겨 내야
삼성이 그룹의 두뇌이자 핏줄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했다. 최순실 사태로 인한 그룹 이미지 실추와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에 대한 책임을 지고 최지성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차장(사장) 등 핵심 수뇌부 퇴진 선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점쳐졌던 인적 쇄신도 미전실 팀장 전원 퇴사라는 예상치 못한 카드를 꺼냈다. 이렇게 극약 처방을 하지 않고서는 고치는 시늉만 했을 뿐 속은 그대로라는 호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뉴삼성’의 출발선에 설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 전 계열사의 전략·기획·홍보·인사지원·법무·경영진단 등의 기능을 담당했던 컨트롤타워를 해체했다는 것은 삼성이 선장 없이 항해에 나섰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새로운 길로 들어선 삼성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중심으로 자율 경영에 나선다고 한다. 삼성의 변화는 이미 예고됐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에 참석해 이병철 창업주 이래 58년간 그룹을 움직였던 미래전략실 해체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특히 한두 사람 잘라서는 근본적인 변화를 꾀할 수 없다고 보고 ‘이병철-이건희 체제’를 유지해 준 그룹 작동 시스템 자체를 바꾼 것이다. 이러한 삼성의 도전에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총수 1인 지배로 인한 문제점도 없진 않았지만 그룹 차원의 대규모 신사업 진출, 장기 미래 투자, 효율 경영 등 장점도 적지 않았다. 사실 재벌은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를 현재의 위치까지 끌어올린 공신이며, 다른 나라의 글로벌 기업도 우리의 이런 장점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인 동시에 연매출 400조원에 이르는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다. 이런 삼성이 정치적 사건에 연루돼 휘청대거나 좌초하는 것을 바랄 국민은 없다고 본다.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이 급변하고 있고, 삼성을 끌어내리려는 글로벌 경쟁자들의 거센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그룹 컨트롤타워 해체가 삼성의 의지만은 아니겠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이를 계기로 삼성은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삼성은 미전실 해체와 함께 정부와 정치권의 소통 통로였던 대관 업무까지 폐지했다. 이 부회장의 구속 등 삼성의 불행이 정경유착에서 비롯된 만큼 앞으로는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이 각자의 길을 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 시련과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초일류 삼성의 밝은 모습을 기대해 본다.
[동아일보]
3. 보수 품격 떨어뜨린 홍준표, 제 허물부터 보라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지난달 28일 “지금 민주당 1등 하는 후보는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말한 데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홍 지사는 “바로 옆에 있던 비서실장이 그 내용을 몰랐다면 (대통령)감이 안 된다”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에 대해선 “2등 후보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고 나왔다”고 비난했다. 거친 표현도 듣기 거북하지만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홍 지사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1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홍 지사는 지난달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마자 대선 출마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1심에선 징역 1년 6개월의 유죄로 나왔고, 검찰이 곧바로 대법원에 상고해 홍 지사는 지금 피고인 신분이다. 홍 지사로선 자신의 출마 자격 시비를 의식해 문 전 대표와 안 지사의 ‘자격’을 거론했을지 몰라도 대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나올지 단언하기 어렵다. 홍 지사가 문 전 대표나 안 지사보다 도덕적, 법률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기 힘든 이유다.
홍 지사가 왜 자유한국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난 직후 ‘막말’을 쏟아냈는지 경위도 궁금하다. 인 위원장이 홍 지사에게 당원권을 회복시켜 대선 출마의 길을 터주기 위해서 만났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원은 기소와 동시에 당원권이 정지된다’고 당헌에 규정해 놓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당원권이 정지된 홍 지사는 현재 당의 공천을 받아야 하는 대선 후보도 될 수 없다.
홍 지사가 보수 세력의 대안으로 나서려면 먼저 자신의 허물부터 말끔해진 다음이어야 할 것이다. 보수가 중시하는 가치는 예의와 품격, 도덕성이다. 홍 지사가 거친 말로 관심과 인기를 끌 수 있을지는 몰라도 보수의 가치까지 훼손해선 안 될 일이다.
4. 탄핵심판 이후의 나라 위한 행동에 나설 때다
대한민국은 어제 ‘태극기’와 ‘촛불’로 두 동강이 난 채 98주년 3·1절을 보냈다. 약 한 세기 전 일제에 맞서 온 겨레가 분연히 하나가 돼 독립을 외친 뜻깊은 날에 후손들이 대통령 탄핵을 놓고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어느 쪽이라도 나라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이었다고 믿고 싶다. 충돌이나 불상사 없이 행사가 끝난 것도 다행스럽다.
“오등(吾等)은 자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하는 기미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은 기독교, 천도교, 불교에서 각 16, 15, 2명이 참가했다. 이들이 종교 지역 이념을 따지며 적전분열(敵前分裂) 했다면 그날의 독립선언은 없었을 것이다. 대의(大義)를 위해 함께 뭉쳤기에 거사가 가능했다. 대의를 위해 소아(小我)를 희생하는 정신이 지금처럼 절실한 때도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서면으로 제출한 헌법재판소 최후진술을 통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대한민국과 국민들을 위해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모아 지금의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선의까지 왜곡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에 편지를 보내 지난달 2일 자신의 생일에 받아든 ‘백만 통의 러브레터’에 대해 “고맙고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 박사모 측에 “큰 격려가 되었다”고 밝힌 것은 탄핵 반대에 더욱 열심히 나서달라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 시위 참가를 자제하고 차분하게 헌재 심판을 지켜보면서 결과에 승복하자고 했다면 국민을 감동시킬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탄핵 찬성 측과 반대 측은 이달 4일과 11일에도 주말집회를 이어간다고 한다. 탄핵이 기각될 경우 민주노총은 총파업, 농민단체는 농기계 시위, 학생들은 동맹휴업 등 강력한 항의행동을 예고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자유청년연합 대표라는 사람은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의 집주소를 공개하고 단골 미용실과 슈퍼까지 언급해 테러를 선동하는 듯한 행위를 했다.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반민주적 폭력 기도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대선 주자들과 정치권, 사회 원로들은 탄핵심판 이후의 대한민국을 위해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미국이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헌법주의와 법치주의가 있었다. 2000년 대통령선거에서 사실상 이기고도 패배를 선언한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결단은 헌법주의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어 가능했고, 이를 통해 국민적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
어제 태극기와 촛불시위가 입증하듯 국민의식은 정치인들의 의식보다 한 수 위다. 탄핵심판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가 흔들릴 이유는 되지 못한다. 정치권과 각계 지도자들이 만나 탄핵심판 이후에도 우리가 살아가야 할 나라를 위해 큰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
[이데일리]
5. 팽배한 ‘특검수사 피로감’ 모르는가
야권이 특검법 개정을 공동 추진키로 했다고 한다. 2월말로 끝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가 미진했다는 인식 하에 기존 70일로 돼있는 수사 기간을 30일 더 연장토록 하는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야 4당은 그제 이러한 내용의 특검법 개정안을 제출하고 정세균 국회의장에 대해 오늘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이 개정안을 직권상정해 달라고 정식 요청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특검팀의 수사 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한 데 대한 정치 공세다. 특검 수사의 필요성을 계속 제기함으로써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 책임을 환기시키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헌재가 탄핵인용 결정을 내릴 경우 앞당겨 실시될 조기 대선에 있어서도 야권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특검의 추가 수사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다.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수사가 끝내 불발됐다는 자체에서도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에서부터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특혜입학 의혹, 문화계 인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에 이르기까지 특검팀은 광범위한 수사 성과를 얻었다. 영장을 재청구하면서까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하기도 했다.
오히려 특검 수사가 전방위로 전개되면서 이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이 팽배해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비리 의혹은 당연히 밝혀야 했지만 피해자인 기업인들에 대해서까지 혐의를 두고 무리하게 수사가 확대됨으로써 기업 활동을 위축시켰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심지어 “특검팀이 공명심을 너무 앞세웠다”는 지적까지 제기된다. 항간에 나도는 ‘특검 무용론’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특검 수사가 종료됐다고 해서 관련 수사가 함께 끝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미진한 부분에 있어서는 검찰이 수사를 이어받으면 될 일이다. 특검팀이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박 대통령을 기소중지하지 않고 입건으로 처리한 것도 그런 취지다. 검찰에 맡겨도 되는데도 굳이 특검 수사에 의존하려는 분위기가 공연히 특검팀의 공명심을 부추기고 과잉수사를 초래하는 요인이다. ‘최순실 게이트’ 특검팀의 역할은 그제 발표된 수사 결과만으로도 충분하다.
6. 해마다 반복되는 대학가 얼차려 추태
올해도 어김없이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과 단합대회(MT)에서 불상사가 잇따르고 있다. 대학 새내기들의 합류를 축하하는 자리가 만취사고와 군기잡기 등으로 얼룩지고 있는 것이다. 성추행도 빠지지 않는 항목이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 술에 취해 불행한 사고를 당하는가 하면 강압적인 체벌이 예사로 행해지는 악습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지방의 어느 명문대학 신입생 MT에서 선배 남학생이 신입 여학생 두 명에게 성추행과 성폭행을 잇따라 저질러 물의를 빚은 것이 며칠 전의 일이다. 그제는 OT에 참가한 신입생들이 선배의 강요로 단체 얼차려를 받는 모습이 유튜브에 올라와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환영행사에 참가한 신입생이 만취상태로 승강기 기계실에 잘못 들어갔다가 연결 와이어에 손가락 3개가 끊어지는 위험천만한 사고도 벌어졌다.
신입생 환영행사는 새내기들에게 대학생활의 적응을 돕고 선후배간 유대를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교류의 모임이다. 하등 나무랄 게 없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교육 목적은 사라져 버린 채 새내기들에게 강제로 술을 먹이고 성희롱을 자행하거나 체벌을 가하는 변태적 작태의 난장판으로 변질돼 버렸다. 사회 일각에서는 물론 대학 내부에서조차 OT 무용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개선안이 논의된 것도 사실이다. 폭설로 행사장 지붕이 무너지면서 환영행사에 참석했던 신입생 10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다친 2014년의 부산외대 마우나리조트 참사가 하나의 계기였다. 그러나 안전사고와 음주·폭행·성추행 등의 예방을 위한 안전지침이 만들어지고도 불상사는 여전하다. 이런 식이라면 더 큰 희생과 슬픔이 예고없이 불쑥 찾아올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신입생 군기잡기와 폭탄주 강요 등을 마치 자랑스런 전통인양 고집하는 일부 대학사회의 그릇된 인식이 문제다. 다른 어느 사회보다 자율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할 대학에서 강제와 일탈의 반지성적 행태는 추방돼야 마땅하다. 문제점을 뻔히 알면서도 남의 일처럼 뒷짐 지고 있는 교수들을 포함해 대학 당국의 책임도 크다. 이참에 OT와 같은 집단 행사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근본적으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매일신문]
7. 해고 칼날에 떠는 아파트 경비원, 고용 안정책 필요하다
사회의 대표적 약자로 꼽히는 아파트 경비원들의 처지가 갈수록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올 들어 최저임금이 7.3% 인상되면서 인건비 절감과 무인자동화 시스템 도입 명목 등으로 경비원들이 대량 실직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최근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경비 용역업체가 전체 경비원의 절반인 8명을 한꺼번에 해고했다. 해고 경비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채용된 지 1년이 채 안 된다는 이유로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경비원 몫으로 아파트 측이 월별 선지급한 퇴직적립금은 업체 차지가 됐다. 일각에서는 퇴직금이 집단 해고의 배경이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지만, 해당 업체 측은 정당한 업무 능력 평가 결과 기준점에 미달한 경비원들을 내보냈을 뿐이며 퇴직금이 해고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진위가 어쨌든 간에 위 사례에서 보듯 아파트 경비원들은 고용시장에서의 법적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19만 명으로 추산되는 전국의 아파트 경비원들은 대부분 노령층 퇴직자들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파트 경비원들의 평균 연령은 63세이고 하루 15시간씩 장시간 노동에 노출돼 있다. 이들은 본연의 업무인 경비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지 내 궂은 잡일까지 도맡아 하는데다 감정노동에도 시달리고 있다.
아파트 경비원 대량 해고는 이들에게 최저임금제가 100% 적용된 2015년 이후 본격화됐다. 아파트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관리비를 더 부담해 경비원 해고를 막는 사례도 있지만, 대량 해고를 선택하는 아파트들이 대부분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최저임금 시행 이후 아파트 경비원 고용 안정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경비원 처우 개선에 나선 일부 지자체의 사례는 귀감이 될 만하다. 충남 아산시는 경비원 고용 안정을 위해 임금의 일부를 직접 지원하고 있으며, 부산시 기장군도 ‘경비원 고용 유지 및 창출을 위한 특별지원 조례’를 지난달 24일 제정했다.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정부는 경비직 근로자들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8. 애국지사 묘역 방치한 정부, 국립묘지 승격해야
국내 유일의 애국지사 묘역인 신암선열공원이 정부와 대구시의 무관심 속에 철저하게 외면받았다니 한숨만 나온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국독립을 위해 몸바친 애국지사 묘역이 체계적인 관리는커녕, 허술하게 방치됐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대구시 동구 신암동에 자리 잡은 신암선열공원은 애국지사 52분의 봉분을 모시고 있어 국내 최대 독립운동가 묘역이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1987년 대구경북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가 묘지를 모아 선열(先烈)공원으로 개장했지만, 그 취지에 맞지 않게 관리`운영이 엉망이었다. 대구시가 관리하는 현충시설에 머물다 보니 갖가지 문제가 빚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신암선열공원은 관리 부실로 봉분이 훼손되거나 무너지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잔디가 없는 민둥묘가 허다했고, 묘역 주변에 잡초와 잡풀이 무성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이 사비를 들여 봉분을 보수하는 일도 있었다. 후손들이 얼마나 분개했으면 “묘지를 옮기고 싶다”고 했을까. 본지가 2015년 신암선열공원의 봉분 훼손 실태를 보도하고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하는 바람에 뒤늦게 대구시가 전체 개보수 공사에 나설 정도였다.
습관적으로 예산`인력 핑계만 대는 대구시에 더는 선열공원 관리를 맡겨서는 안 된다. 선열공원에 책정된 올해 대구시 예산이 1억1천700여만원이고, 인건비를 빼면 시설 및 일반 운영비는 2천500만원에 불과하다. 부잣집의 저택 관리비 정도밖에 안 되는 돈으로 3만6천800㎡에 이르는 호국시설을 관리했다고 하니 기가 찬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순국선열의 나라 사랑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후손들의 무성의와 태만을 보여주는 ‘산 교육장’이라고 할 만하다.
정부가 신암선열공원을 국립묘지로 지정해 체계적인 관리를 하는 것이 맞다. 신암선열공원의 존재 의의와 상징성, 교육적인 가치는 다른 국립묘지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다. 정태옥`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립묘지 승격을 위한 법안 마련에 나섰다고 하니 아주 다행스럽다. 이제라도 신암선열공원을 올바르게 관리해 순국선열의 뜻과 정신을 알리는 교육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중앙일보]
9. 집회 전날 지지층 결집 부추긴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팬클럽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드린다”는 서신을 보냈다고 한다. 박사모가 박 대통령의 생일(2월 2일)을 축하하는 편지를 보냈기에 답장을 한 것이란 게 청와대 설명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3·1절을 맞아 대규모 촛불·태극기집회가 열리기 하루 전날 대통령이 지지층을 향해 “결집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청와대 비서관이 28일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운동 본부(탄기국)’ 대변인을 맡고 있는 박사모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고생 많으셨다”는 대통령의 뜻을 전한 것도 그런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답답하고 안타깝다. 98주년을 맞는 이번 3·1절엔 올 들어 가장 많은 인파가 쏟아져 나와 탄핵 찬반 맞불 집회를 열 것임이 예고돼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임박하면서 양측이 막판 총력전에 나선 것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박 대통령이 집회 전날 박사모에 편지를 보내고, 그 사실을 공개한 건 탄핵반대 세력을 통해 헌재를 압박하려는 은근한 ‘선동’이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 농단 혐의를 규명하기 위한 검찰과 특검, 헌재의 출두 요청을 모두 거부했다. 대신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와 보수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일방적으로 무죄를 주장하더니 급기야 지지층에게 “집회에 많이 나가 잘 막아 달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메시지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법질서를 강조하고 법조인을 중용해온 박 대통령이 아니던가.
박 대통령은 나라가 두 동강 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지층의 행동을 부추긴다 해도 헌재의 탄핵 결정을 늦추거나 향배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오히려 헌재의 반발 심리를 자극해 대통령이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만 커진다. 본인의 무책임한 언동으로 나라가 파국으로 치닫는 건 박 대통령 자신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제라도 흥분한 지지층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동성 발언 대신 자제를 호소하며 헌재의 결정을 차분하게 기다려야 할 것이다.
10. 현실로 떠오른 중국 리스크, 수출 다변화 계기 돼야
한국이 주권적 선택으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배치하기로 한 걸 놓고 중국이 본격화하고 있는 한국 기업 때리기가 점입가경이다. 평소 과도한 애국심 선동으로 유명한 중국 공산당 기관지들이 연일 파상공세를 펴고 있다.
먼저 인민일보의 해외판 공식 SNS 뉴스 계정인 샤커다오(俠客島)가 ‘단교’라는 말로 포문을 열더니 그제 환구시보(環球時報)는 “롯데를 중국 시장에서 축출하자”고 수위를 높였다. 그 영문판인 글로벌 타임스는 ‘한국, 쓴맛 봐야’라는 어제 기사에서 “한국이 무릎 꿇을 때까지 우리 주장을 계속할 것”이라며 “삼성과 현대도 곧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막말을 쏟아냈다. 또 전문가 입을 빌려 ‘성주 타격’을 거론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의 거친 표현은 한·중 수교 이후 지난 25년간 누적된 ‘중국 리스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수출 비중 25%를 차지할 만큼 한국에 큰 시장이다. 한국은 진작에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적 관점에서 중국 의존도를 줄여 왔어야 했다. 저렴한 인건비와 높은 성장성을 내다보고 진출했던 중국 상황이 이제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중국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2005~2016년 사이 세 배 뛰면서 멕시코·브라질보다 50% 높아졌고 성장률은 6%대로 둔화됐다.
더구나 중국은 수입대체산업을 본격화하면서 비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다. 통관을 불허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고, 전기자동차 배터리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삼성SDI·LG화학을 제외하는 등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한 차별적 행위도 노골화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이 본격화하고 미·중 간 무역 갈등이 불붙으면 한국의 수출 환경은 더욱 악화할 수 있다.
어제 삼정KPMG 경제연구소는 2012~2016년 한국을 겨냥한 외국의 비관세 수입 규제 증가율이 45.7%에 달해 세계 평균의 배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중국 관영 언론의 거친 주장은 수출 다변화를 통한 특정 국가 의존도 완화와 제품 경쟁력 강화를 통한 무역장벽 돌파가 한국 기업의 미래 살길이란 점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주요신문칼럼
1. [경향신문][미래의 눈] 인간, 창조품에 적응할 수 있는 존재
찬우는 갓 여섯 살이 된 딸 서영이 가볍게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찬우의 아내인 연희는 남편의 마음이 불안해지면 곧장 알아채는지라 딸이 듣지 못하도록 작은 소리로 물었다.
“또 그 생각이야?”
찬우는 대답하는 대신 가볍게 웃어보였다. 연희는 짜증을 내거나 잔소리를 하는 대신 찬우의 팔에 살짝 손을 얹었다.
세 식구를 서울에서 부산까지 태우고 가기 위해 옅은 잿빛 차량이 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찬우 부부가 함께 기록하고 있는 일정표 출발 시각과 단 1초도 다르지 않은 때부터 그렇게 서 있었을 것이다.
연희는 뒷좌석을 아동용 안전좌석 모드로 바꿨다. 딸 서영의 성장에 따른 사이즈 변화는 홈 데이터에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그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되어 있는 가족용 차량은 안전좌석의 크기와 안전벨트 길이를 늘 자동으로 조정해주었다. 연희는 딸이 몸에 두른 안전벨트가 거북하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조수석 문을 열었다.
찬우는 운전석 문을 열어둔 채로 머뭇거리고 있었다. 연희가 물었다. “내가 운전석에 앉을까?” 찬우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아내와 자리를 바꿨다.
가끔 오늘 같은 날이 있었다. 분명 식구는 셋이지만 누군가, 무언가 네 번째 식구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느낌이 드는 날이 있었다. 그 네 번째 식구는 가족의 일정을 모두 알고 있고, 누구든 건강 상태가 이상 수준에 도달하면 가장 먼저 알아채고, 늘 먹는 음식 재료가 떨어지면 제일 먼저 알려주었다. 주문까지 알아서 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차에 타고 이동해야 할 때, 찬우는 네 번째 식구의 존재를 가장 강하게 느꼈고 그만큼 심기가 편치 않았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자율적으로 조종하는 인공지능을 흔히 카텔이라고 줄여 불렀다. ‘카’와 ‘인텔리전스’라는 단어를 합친 조어였다. 카텔이 스마트 하이웨이와 완전히 연계될 경우 교통사고 발생률이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건 이미 상식이었다. 차를 몰고 이동하는 것을 표현하던 ‘운전’이라는 단어도 ‘승차’에 흡수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차를 새로 구입하면서 이른바 ‘카텔 각서’를 쓰고 있었다. 각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본인은 운전을 완전히 카텔에 맡기고 수동 운전을 포기합니다. 포기함으로써 발생하는 책임은 모두 본인 및 본인과 계약한 보험사가 맡습니다. 단 카텔 시스템의 오류나 문제점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는 예외로 합니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할 경우 관할 민사 법원의 판단에 따릅니다.’
서명은 강제가 아니었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여겼다. 그 나머지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찬우였다. 지인들은 그런 찬우를 옛사람이나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으로 여겼다.
‘아이를 태우고 가다가 사고가 났을 때 저도 모르게 발에 힘을 줘서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어떡하려고?’
‘자율 주행 차량은 모든 사람이 수동 운전을 포기할 때 효율이 높다고. 너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위험에 처한단 말이야.’
‘너 당뇨 있잖아. 만에 하나 저혈당 쇼크로 정신이라도 잃으면 어떡할 건데?’
지인들의 말이 하나같이 옳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수동 운전을 포기하고 카텔에 몸을 맡기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찬우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들이 아니라, 가족이 살아가며 해나가는 크고 작은 일과 판단을 가져가버린 네 번째 식구였다. 그 식구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만질 수 없는 건 물론이고 대화조차 할 수 없었다.
찬우와 같은 소수를 가리키는 용어가 있었다. ‘인공지능 공포증 환자.’ 인공지능 공포증이 정말로 병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찬우 아내인 연희는 남편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녀는 인간이 인공지능과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인공지능은 소프트웨어가 변경되면 즉시 바뀐 점을 반영하겠지만 사람은 그럴 수가 없었다. 연희는 인공지능 프로그래머이기 때문에, 그리고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연희는 남편이 안심할 수 있도록 차량 운전석에 앉아 반자동 모드를 켰다. 그러자 내장되어 있던 리본 모양의 운전대가 천천히 튀어나왔다. 남편은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긴장을 풀었다. 물론 연희는 카텔을 완전히 믿었다. 부산까지 가는 도로 위에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운전대를 꽉 움켜쥐고 긴급 수동 모드를 작동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남편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면 작은 연극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생각이었다.
뒷좌석에서 유아 교육용 인공지능 인터페이스와 놀고 있는 딸 서연에겐 해당되지 않는 말이지만, 남편에겐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인류는 도구를 만들고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 주장을 조금 확장하면 또 다른 쓰임새가 생긴다. 인간은 끊임없이 도구를 만든다. 그러면서 다시 도구에 적응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 우리를 영장의 자리에 올려놓는 건 바로 그런 수용능력이 아닐까?
우리는 도구가 발전한 끝에 지능을 획득하고 스스로 판단을 내려 행동하는 예를 최근 들어 여러 차례 보았다. 그런 도구는 단순한 필요를 넘어서 인간의 호기심과 창조 욕구 때문에 등장했고, 앞으로는 도구에서 새로운 존재로 바뀌어 우리 곁에 서 있을 것이다.
문을 열고 올라타기만 하면 나머지를 전부 알아서 해주는 자동차는 그런 존재들 가운데 아주 원시적인 형태다. 마냥 마음대로 부릴 수 없는 존재가 등장하면 머뭇거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존재들과 나란히 서서 걷지 못한다면 더 넓은 세상도, 변화도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받아들이고 인정할 시간을 주는 것 역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2. [경향신문][기자칼럼] 4대강의 오류
빵집 아들이 자기집 유리창을 깼다. 빵집 주인이 아들을 심하게 탓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그렇게 볼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빵집 주인이 새 유리를 사면 유리창 수리 업자는 돈을 벌게 된다. 수리업자는 그 돈을 다른 곳에 쓸 것이고, 그러면 또 다른 곳에서 소득이 생긴다. 결과적으로 빵집 아들은 마을의 소득과 고용창출에 기여했다. 그러니 창을 깬 것은 마을경제로 보면 잘한 일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빵집 주인은 신을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리창을 사느라 신을 사지 못했다. 아들이 유리창을 깬 것은 빵집 주인의 지출 방향만 바꾸었을 뿐 새로운 소득을 창출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신발장수는 신발을 팔지 못했으니 오히려 손해를 봤다. ‘깨진 유리창의 오류’라고 명명된 유명한 경제학의 우화다. 프랑스 경제학자인 프레데릭 바스티아가 1850년에 쓴 에세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나오는 얘기다.
아직도 4대강 사업이 좋은 사업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4대강 사업으로 금융위기 당시 고용이 창출됐다거나, 백제보를 통해 가뭄이 심각한 충남 보령댐에 물을 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만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전형적인 주장이다. 바스티아는 이런 사람들을 ‘사이비 경제학자’라고 말했다.
강 정비의 필요성을 전면 부인하자는 게 아니다. 정비가 필요한 강에는 그 수요에 맞게 돈을 썼으면 됐다. 10분의 1인 2조원 정도였다면 차고도 남았을지 모른다.
말이 쉬워서 1조원이지, 1조원은 작은돈이 아니다. 한 사람이 하루 3000만원씩 쓴다고 해도 무려 100년간 쓸 수 있는 돈이다. 그런 돈 22조원을 강바닥에 썼다. 그것도 국채를 발행해 빚까지 내서 말이다. 그 돈은 시급히 써야 할 데가 많았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기획재정부의 한 고위 간부는 “김대중 정부 때 인터넷 인프라를 까는 데 47조원을 썼고, 그 덕에 IT강국이 됐다”며 “4대강 대신 신성장동력에 과감하게 투자했더라면 지금쯤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래, 그까짓 것 한번 질펀한 돈잔치를 벌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다. 4대강 사업이 완공된 2012년 이후 유지비로 매년 5000억원씩, 이미 2조5000억원을 더 썼다. 수자원공사가 빌린 8조원의 이자, 생태하천 등 4대강 사업 구간 관리, 준설토 관리 등을 합친 액수다.
예정에 없던 새 계산서도 제출됐다. 녹조 관리다. 거기다 향후 지출이 확정된 비용 등을 모두 따지면 전체 사업비는 30조원에 이를 수 있다. 차라리 보를 부수고 물길을 터주자고 애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는 안된다고 한다. 이미 쓴 돈이 얼마냐는 것이다. 이면에는 4대강 사업 실패를 인정할 수 없는 자존심도 있다.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인 ‘콩코드’는 경제성이 없었다. 연료소모량은 많고 탑승인원은 적었다. 하지만 콩코드를 만든 영국과 프랑스는 운항을 중단하지 못했다. 콩코드는 양국의 자존심이었다. 개발에 많은 자금도 투자됐다. 2003년 콩코드는 운항 27년 만에 중단을 선언했다. 누적된 적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콩코드의 오류’라 부른다. 매몰비용(이미 쓴 비용)에 집착하다 상황을 더 악화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깨진 유리창의 오류’로 시작한 4대강 사업은 ‘콩코드의 오류’로 넘어가고 있다. 정부가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4대강 사업은 새 경제용어를 남길지도 모르겠다. 깨진 유리창과 콩코드, 두 오류를 합친 ‘4대강의 오류’라고 말이다. 4대강 사업은 시작도 잘못됐고, 끝도 잘못되고 있다.
3. [경향신문][역사와 현실] 돈키호테
멀리 스페인을 다녀왔다. 여행 중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는데, 건망증 탓에 금세 다 잊었다. 뇌리에 아직 남아 있는 것은 겨우 두어 가지뿐이다. 우선 인구에 관한 소감을 적어보자. 스페인 면적은 한국의 5배 이상이지만 인구는 4800만명에 불과해, 우리보다 300만명이 적다. 비행기가 스페인 북부 지방을 지날 때부터 실감이 났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듬성듬성한 마을풍경이 더없이 한가로웠다. 스페인의 인구밀도는 한국의 5분의 1에 못 미친다.
1㎢에 평균 470명이 살아야 하므로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사람 값은 헐하고 물건 값은 턱없이 비싼 것이 당연하다. 우리도 스페인만큼 성긴 인구밀도를 갖게 될 날이 있을까? 그렇게 되면 많은 문제들이 저절로 풀릴 것이다. 주거, 환경, 취업 문제가 쉽게 개선되고, 식량자급률이 100퍼센트를 회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당장 인구가 급감하면 연금과 건강보험 등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하나 큰 틀에서 보면 인구감소가 해로운 일만은 아니다.
뇌리를 스쳐간 또 한 가지 생각은 국운의 성쇠에 관한 것이다. 알다시피 스페인은 16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그들이 ‘레콘키스타’ 곧 영토회복을 내걸고 이슬람세력으로부터 국토를 되찾은 것은 1492년, 그때부터 스페인은 ‘대항해’의 시대를 열었다. 콜럼버스와 그 후계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차례로 정복해 국고를 금은보화로 가득 채웠다. 지중해의 한 변방국가가 유럽의 최강자로 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의 영광은 짧았다. 1588년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한 뒤 그들의 역사는 내리막길을 치달았다. 네덜란드, 프랑스와의 대결에서 연신 고배를 마시더니, 1898년에는 미국에도 졌다. 스페인제국의 자랑스러운 이름은 역사에서 지워지고, ‘유럽의 후진국’이란 오명만 남았다.
17세기 이후 스페인이 장기침체의 늪에 빠졌을 때 그들의 왕은 무기력했고 귀족들은 부패했다. 지역갈등도 도를 넘었다. 죽어나는 것은 인구의 대다수를 점하는 빈농이었다. 이러고도 어찌 망하지 않을 도리가 있었을까?
한국의 역사도 스페인과 닮은 점이 있었다. 15세기 전반 우리에게도 짤막한 황금기가 있었다. 한글이 창제되었고, 천문, 과학, 농업, 의료, 군사 등 여러 방면에서 굵직한 성과가 많았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한국사의 흐름은 답답하였다. 외침이 연이었으나 왕과 귀족들은 무능하고 무책임하였다. 권세가는 부패했고, 지방에서는 서원이 위세를 부렸다. 서북인에 대한 차별은 폐습으로 굳었고, 영호남에 대한 견제도 지나쳤다. 우리 조상들은 대부분 소작농으로서 연명하기조차 어려웠다. 날이 갈수록 희망의 빛줄기는 약해졌다.
망조가 들면 누군가는 반드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옳은 소리를 낸다. 17세기 초, 스페인에서는 세르반테스가 포문을 열었다. 그는 <돈키호테>를 통해 세상의 환부를 드러냈다. 훗날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날카롭게 분석하였듯, 돈키호테와 그 하인 산초는 스페인 사람들의 자화상이기도 하였다. 스페인을 여행하는 동안 나는 카잔차키스가 말한 돈키호테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내게 돈키호테는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는 ‘스페인의 혼’이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통해 스페인 사람들에게 희망과 의지를 일깨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뜻은 옳게 전달되지 않았다. 당시 스페인의 위정자와 대중들은 돈키호테에 환호했으나, 그들이 받아들인 돈키호테는 해학과 유머가 넘치는 구시대의 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작가는 소설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피하고자 수사의 장막을 쳤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 장막에 갇혀버렸다.
20세기 초, 돈키호테는 400년의 기다림 끝에 찬란하게 부활했다. 스페인 사회도 잠에서 깨어났다고 할까. 파블로 피카소는 돈키호테와 산초를 한 장의 그림에 담아, 시대의 사명을 두 어깨에 걸머진 세르반테스의 노고를 기렸다.
현대 스페인의 사상가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더욱 진지한 어조로 돈키호테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돈키호테에게서 도전과 신념의 인간, 영원한 스페인의 이상을 재발견했다. 돈키호테라는 인간상을 창조해 스페인을 위기에서 구하려 했던 선각자 세르반테스, 이 위인을 향한 가세트의 존경심은 끝도 없었다. 가세트와 피카소 두 사람은 20세기 스페인의 불의하고 폭력적인 현실권력과도 대결했다. 그들은 19세기 스페인 내전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군국주의자 프랑코 총통을 강하게 비판했다.
몰락을 거듭하던 조선후기 사회에도 양심적인 지식인이 적지 않았다.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담헌 홍대용 등의 이름이 떠오른다. 그들 역시 집권층의 독단과 오류를 낱낱이 비판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노력만으로는 기울어진 역사의 저울대가 바로 서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세상의 이치를 헤아리는 식견이 조금이나마 있다면, 무엇을 어디서부터 바꾸어야 할까. 가슴을 치며 다짐하는 소리가 터져 나와 이제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바꾸어 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4.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한국인 지혜·생활 담긴 비빔밥
비빔밥은 대접에 밥과 갖은 나물무침을 담고 계절과 지역에 따라 다양한 식재료를 더해 비벼서 먹는 음식이다. 그 유래는 명확하지 않지만, 옛날 제사 후 음식을 골고루 섞어 나누어 먹었고, 가정에서 남은 반찬을 밥에 비벼서 밤참으로 먹기도 했으며, 또 일터에서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식사를 해결하는 음식으로 활용되기도 했던 것이 비빔밥이어서, 그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만들기가 쉽고 영양을 고루 섭취할 수 있는 건강식일 뿐 아니라 여러 재료의 맛이 어우러져서 오묘한 맛을 내는 맛깔스러운 음식이어서 한국인의 솔푸드로 일찌감치 자리잡은 것이다. 1990년대 초 항공사에서 기내식으로 제공하면서부터는 외국인들의 입맛도 사로잡아 세계음식으로 등극했다.
비빔밥은 재료나 요리 방법에 따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그 종류가 다양하다. 육회, 산채, 콩나물, 부추, 멍게, 튀각 등 밥에 얹는 특이한 재료에다 ‘비빔밥’을 붙이면 그게 곧 이름이 된다. 지역명도 마찬가지다. 콩나물, 황포묵, 육회 등으로 무장한 전주비빔밥, 숙주 등 나물을 색감 있게 올리는 진주비빔밥, 기름에 볶은 해주비빔밥, 미역, 파래 등 해조류가 들어가는 통영비빔밥, 멍게젓갈을 넣는 거제비빔밥 등등 다양하다.
그중 재미있는 것이 경상도 지방의 ‘헛제삿밥’이다. 그 옛날 제사 때나 돼야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해 상을 차리던 시절에 제사 때가 아니지만 제사 핑계를 대고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제사 때처럼 흰 쌀밥에 삼색 나물을 더해 간장에 비벼 소고기, 돔배기(상어고기), 고등어, 전이나 산적, 그리고 탕국과 함께 먹는다.
비빔밥은 밥솥과 냉장고만 열면 쉽게 만들 수 있는 대표적인 간편한 메뉴다. 그렇다 보니 누구나 나름대로 독특한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비빔밥으로 이름을 내고 있는 식당을 찾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서울 명동에 전주 전통비빔밥집 ‘고궁’이 있다. 전주에서 50년 이상 해 온 집의 서울 점포다. 커다란 놋그릇에 육회, 콩나물, 호박, 무채 등 각종 나물과 계란, 황포묵 등이 놓이고, 그 위에 양념고추장이 화려하게 얹어져 나온다. 밥을 약간 되게 하여 잘 비벼지게 한 것이 입맛을 더하게 한다. 외국 손님도 많으며, 인사동에도 점포가 있다.
신사동에는 깔끔하게 단장한 진주비빔밥 음식점 ‘하모’가 있다. 각종 나물과 육회를 얹어 정갈하게 나온다. 소고기 무탕국과 함께 먹는다. 헛제삿밥도 하는데, 밥에 다진 소고기를 얹고 6가지 나물이 따로 나온다. 간장으로 비비므로 정갈한 재료의 본맛을 즐길 수 있다. 을지로입구에는 멍게비빔밥을 하는 ‘충무집’이 있다. 큰 대접에 밥을 담고 멍게젓갈, 무순, 김만 얹어주는 간단한 비빔밥이다. 바다 냄새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음식으로 중독성이 있다. 따로 파는 멍게젓갈을 사서 집에서도 쉽게 해먹을 수 있다.
청담동에 있는 ‘새벽집’은 고깃집으로 유명하지만, 막상 비빔밥 손님이 더 많다. 포이동, 군자동에도 점포가 있다. 푸짐하게 얹혀 나오는 육회와 각종 나물, 김 등에 고추장 양념을 입맛에 따라 더해 먹으면 된다. 함께 나오는 뚝배기 선지국도 일품이며, 구운 김으로 비빔밥을 싸서 먹어도 별미다. 효자동 주민센터 인근에는 ‘가진화랑’이 있다. 가정집을 개조해 화랑 겸 음식점으로 예쁘게 단장했다. 비빔밥정식을 시키면 접시에 각종 나물을 담고 찌개, 전 등 반찬도 정갈하게 내어온다. 깔끔한 맛이다.
비빔밥은 재료를 모두 섞지만, 각각의 재료 맛은 살아 있고 또 비벼진 새로운 맛도 같이 느낄 수 있는 오묘한 음식이다. 무엇보다 여럿이 나누어 먹기에 좋다. 한국인의 지혜와 생활이 담긴 음식이다.
5. [한국일보][삶과 문화] 우울과 분노의 시간들
내가 공부해온 상담학은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인의 심리ㆍ마음ㆍ정신이 주요 관심사다. 삶의 많은 문제들은 결국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을 지지해 왔다.
그런데 지난 몇 년 전 미국의 한 대학에서 사회심리학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개인의 삶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사회로부터 영향 받는지를 생각해보게 됐다. 사회적 접근이란 어떤 문제에 대해 사회적 요인을 중시하고 이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해법을 강구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자살은 개인적 현상이자 사회적 현상이다. 개인의 심리적 위기가 자살을 낳지만 이 위기를 낳은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그 개인이 놓인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다.
‘개인이냐 사회냐’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결국 개인적 접근과 사회적 접근을 모두 중시하는 복합적 관점일 것이다. 이 복합적 관점은 개인과 사회 간의 상호작용을 주목한다. 예를 들면, 경제적 빈곤이라는 사회적 요인은 자살이라는 개인적 행위의 사회적 원인이 될 수 있지만, 경제적 빈곤에 처한 사람들 모두가 자살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사회적 조건에 놓인 개인들이라 해도 그 선택이 다른 것은 심리ㆍ마음ㆍ정신의 차이와 같은 개인적 요인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얼마 전 접한 한 통계 때문이다. 지난달에 발표된 세계보건기구(WHO)의 ‘세계 정신건강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전 세계 인구 4%인 3억 2,200만 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이 통계에서 내 시선을 특히 끈 것은 그 규모가 10년 전인 2005년보다 18.4% 증가했다는 점이다. 대체 10년 동안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왜 이렇게 늘어난 것일까.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원인은 2008년부터 시작된 지구적 경제 위기다. 경제적 어려움은 많은 이들의 삶을 고단하게 하고, 이 고단함은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증가시킨다. 무기력, 불면, 식욕감퇴, 피로감, 의미상실, 그리고 자살 등이 우울증의 증상 및 결과들인데, 이러한 경향이 지난 10여 년간 지구적으로 강화돼온 셈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러한 흐름이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왔다는 점이다. 1997년 외환 위기를 거쳐 2008년 금융 위기까지 겪은 후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진 두 가지 심리적 흐름은 우울과 분노다. 먹고 살기가 갈수록 팍팍해진 사회 현실에 대해 개인들이 갖게 된 일차적 감정 상태가 다름 아닌 우울과 분노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우울에 빠지게 하고, 이런 현실에 대해 참기 어려운 분노를 느끼는 것은 일견 자연스러운 인과의 과정이다. 최근 ‘자살공화국’이나 ‘헬조선’이라는 말은 이러한 우울과 분노의 감정이 만들어낸 거친 표현들이다.
우울증이든 분노유발이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일차적으로 상처받은 개인들이 돌봄을 받아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억압됐던 상처나 절망감에 대해서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있는 환경에서 공감과 위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다소 안정이 된 다음엔 냉정하게 자기 자신을 직면해야 한다. 이 자기 대면의 시간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점을 인정해야만 자신과 타자, 그리고 사회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회의 변화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사회적으로 공정한 제도를 일궈가지 않으면, 우울과 분노의 시간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많은 이들에게 무기력과 상처를 안겨주는 사회라면 이 역시 체계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개인의 변화 없이 새로운 사회를 열어 가기는 어렵다. 동시에 사회의 변화 없이 새로운 개인이 탄생하기도 어렵다. 우울과 분노의 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개인적 처방과 사회적 해법을 결합한 복합적 대응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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