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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대선이 포퓰리즘 잔치여선 안 된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실현 가능성이나 효율성보다 ‘포퓰리즘’에 치우치는 경향이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어 걱정이다. 특히 후보들이 한결같이 ‘좋은 일자리 창출’을 집권 후 최대 과제로 꼽으면서도 막상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기업을 옥죄는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자기모순이 자심하다는 게 문제다.
초기 대선 판도에서 양강을 형성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포퓰리즘에서도 단연 강세다. 지난달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을 공약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문 후보는 그제 발표한 ‘J노믹스’를 통해 경제를 사람 중심의 성장구조로 바꾸겠다며 ‘사람경제 2017’을 선언했다. 4차 산업혁명 등 10대 분야에 집중 투자해 일자리를 연평균 50만개 이상 창출하되 재원은 5년간 세수 자연증가분 50조원과 법인세 실효세율 조정으로 충당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나랏돈 퍼부어 일자리 만들고 성장을 이끌겠다는 확장정책의 그럴듯한 포장일 뿐이다. 지하경제 양성화로 세입을 늘려 135조원의 재원을 조달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가 흐지부지된 4년 전 박근혜 정부의 공약가계부를 쏙 빼닮은 기시감마저 든다. 굳이 차이를 찾자면 ‘증세 없음’을 못 박은 공약가계부와 ‘국민의 동의 아래 증세한다’는 단서를 내건 J노믹스의 수사법 정도다.
경제는 정부가 아닌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며 문 후보를 맹공하는 안 후보도 재정을 화수분으로 여기긴 매한가지다. 각종 청년취업대책, 건강보험 본인부담금 상한제 등 조자룡 헌 칼 쓰듯 선심공세가 치열하다. 대기업과 차이가 심한 중소기업 임금을 신규 취업 청년들에겐 80%까지 끌어올리도록 5년간 한시적으로 보조하고 대학 입학금을 폐지한다는 등의 발상은 재원조달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정부가 나설 일인지조차 헷갈린다.
총론에선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한다면서도 각론에선 반(反)기업 정서를 자극하는 공약이 난무하는 것도 문제다. 선거 때마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적폐가 활개쳐선 곤란하다. 이럴수록 유권자들이 현명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깨어 있는 시민의식을 입증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2. 한은의 경기회복 전망 낙관은 이르다
한국은행이 어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5%에서 2.6%로 0.1%포인트 올렸다. 한은이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것은 2014년 4월 이후 3년 만으로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치와 같아졌다. 최근 국내 민간연구기관과 해외 투자은행(IB)들이 잇따라 성장률 전망치를 올린 데 이어 중앙은행인 한은도 가세함으로써 우리 경제에 대한 낙관론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대내외 악재로 경제 활력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한은이 전망치를 올린 것은 우리 경제가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이주열 총재는 “수출이 세계경제 회복에 힘입어 개선세를 지속하고 내수도 회복세”라며 “앞으로 국내경제는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전망은 앞서 기획재정부가 최근 그린북에서 “수출 증가세에 힘입어 생산·투자·소비 등 경제 전반에 회복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번 한은의 동조로 경기 호전론은 더욱 힘을 받게 됐다.
실제로도 지표상 흐름은 좋은 편이다. 3월 수출이 489억 달러로 1년 전보다 13.7% 늘어나는 등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째 증가세다. 소매 판매도 2월 들어 3.2% 증가로 반전한 데다 3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6.7로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79로 23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지난달 취업자수가 2626만 7000명으로 1년 전 같은 달보다 46만 6000명 증가하는 등 고용시장에도 봄바람이 불고 있다. 정부와 한은이 낙관적인 기대치를 제시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 낙관만 하기에는 이르다. 중국의 사드 경제보복과 북한 리스크 등 악재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도 변수다. 안으로는 대우조선해양 채무 재조정, 폭발적으로 늘어가는 가계부채와 청년실업 문제 등 언제든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들이 산적해 있다. 대선 주자들의 ‘묻지마 퍼주기’ 공약도 경제에는 걸림돌이 될 우려가 크다. 정부는 오랜만에 찾아온 경기 회복세가 꺾이지 않도록 대내외 리스크 관리에 철저를 기해야 할 것이다.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서울신문]
3. 中, 여차하면 송유관 막아 북핵 도발 저지해야
미국과 중국의 정상이 회담 나흘 만에 긴급 전화 통화를 갖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먼저 전화를 걸어 대화를 시도할 정도로 북한의 6차 핵실험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를 한반도로 급파하는 등 북한에 대한 무력 응징 의지를 보여온 미국은 경제 제재 카드마저 꺼내들며 전방위 압박에 나서고 있다.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독자 대응 카드를 꺼내들고 대중 압박도 병행 중이다.
미국이 군사 행동까지 포함한 대북 압박을 강화하면서 중국도 과거와 다른 행보를 보이는 등 전향적 자세로 돌아서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최근의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 행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체감하고 있다. 북의 추가 핵실험을 막지 못할 경우 한반도와 동북아에 어떤 파도가 몰아칠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미·중 공조를 통한 강력한 대북 제재 방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6차 핵실험이 북한에서 가장 큰 명절로 꼽히는 태양절(15일) 전후가 될 것이란 예상도 있다. 버튼만 누르면 될 정도로 핵실험 준비가 끝났다는 보도도 나온다. 미국은 핵실험을 탐지하는 특수기를 일본에 보냈다. 우리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때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 신규 제재, 독자 제재, 전 세계적 차원의 대북 압박 등 모든 외교자산을 동원해 징벌 조치에 나설 방침이다.
중국은 북한의 6차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막을 수 있는 실질적 수단을 갖고 있다. 2003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거부했던 북한에 대해 짧은 기간이지만 압력 차원에서 대북 송유관을 잠갔고 효과도 봤다. 1961년 체결한 북·중 우호협력 상호원조조약에 따라 미국의 대북 선제 타격 등이 현실화되면 중국 역시 군사적 개입이 불가피하다. 6차 핵실험 등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는 일은 중국으로서는 절박할 수밖에 없다. 결코 ‘강 건너 불구경’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북한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원유 공급 중단으로 북한의 격심한 반발를 초래할 수도 있지만 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미온적인 중국의 대북 제재 의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동시에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국제사회로 나오도록 설득해야 한다. 중국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 이번에는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4. 사드·미세먼지·대우조선에 정부가 안 보인다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권력 이양기에는 공직사회도 이런저런 이유로 평상심을 잃고 뒤숭숭해지기 십상이다. 더군다나 대통령 탄핵으로 몇 달째 권력 공백이 이어졌다. 이런 사정을 백번 접어 주더라도 최근 정부의 복지부동 행태는 도를 넘고 있다. “이러고도 나라가 굴러가는 게 신기하다”는 소리가 들릴 판이다.
정부의 무기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중국의 사드 보복 문제다. 중국의 야비한 행태는 갈수록 태산인데, 정부의 존재감은 느낄 수가 없다. 중국이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를 거의 초토화하고 있는 데도 정부가 피해 현황을 들여다본 것은 한참 만이다. 그러고도 지금까지 이렇다 할 조치를 내놓지 못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무슨 대책이라도 강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대응할 근거가 없다며 시간만 보내고 있는 현실이다.
국민 아우성은 높아가는데 정부의 강 건너 불구경은 미세먼지 문제도 다를 게 없다. 우리나라는 공기 질이 나쁜 나라로 최근 세계적 학술지가 주목할 정도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가까운 미래에 미세먼지 사망자가 급증할 거라는 경고가 이어진다. 이 지경인데도 정부는 개선책을 고민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주무 부처인 환경부가 내놓는 기본 자료마저 엉터리라고 개탄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국무총리실도 컨트롤 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적자를 내고 표류하는 대우조선해양 사태도 정부의 무기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제 해결 방법을 머리 맞대고 찾아도 모자랄 판에 대우조선의 손실액 추정치조차 부처마다 제각각이다.
이번 대선은 비상상황에서 치르는 선거다. 새 정부는 따로 준비 기간 없이 선거 다음날부터 당장 정상업무를 이어 가야 한다. 제대로 굴러가는 정부 조직이라면 이런 비상상황을 고려해 지금쯤 한창 새로운 정책을 고민하고 있어야 정상이다. 민생과 나라 경제의 운명과 직결된 현안에 손 놓고 있는 것은 더는 묵과할 수 없는 공직 기강 해이다.
할 일은 제쳐놓고 유력 대선 후보에 노골적으로 줄을 대는 고위 공직자들도 기승을 부린다니 꼴불견을 넘어 망동(妄動)이다. 지금에라도 공직기강을 다잡아 국민 불안을 덜어줄 수 있는 정책 수행에 정신을 쏟아야 한다. 국록을 먹는 공직자로서 최소한의 양심이자 기본 도리다.
[중앙일보]
5. 이념 앞세워 21조 원전 수출 막는 국회의원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무소속 국회의원 28명이 참여한 ‘탈핵·에너지전환 국회의원 모임’이 최근 한국전력에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사업 참여 중단을 요구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도하는 이 모임은 사업비 150억 파운드(약 21조3000억원)의 이 원전 수출 프로젝트가 “문재인·안철수 등 주요 대선후보의 탈(脫)원전 정책에 반하는 것”이라며 한전을 압박했다.
이 프로젝트는 총 발전 규모 3.8GW의 원전 3기를 짓는 사업으로 사업비가 2009년 수주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의 건설수주액 186억 달러(약 21조186억원)를 넘어선다. 바라카 원전 60년 발전소 위탁운영 계약도 따내면서 494억 달러(약 55조822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는데 이는 자동차 228만 대, 휴대전화 5200만 대 수출과 맞먹는 경제효과라고 한다.
한국은 이를 공사비 증가 없이 정해진 시기에 완공해 세계 수준의 원전 건설 실력을 입증했다. 원전은 우리가 상당한 자체 기술·경험을 확보한 국가적 ‘지적자산’이다. 원전 건설 경험이 풍부한 공기업과 기술력 있는 민간업체, 그리고 금융기관이 손잡고 해외에 동반 진출하면 새로운 미래 수출산업으로 키울 수 있다.
무어사이드 원전사업은 우리의 잠재력을 활용하면서 중소·중견 협력업체 등에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젊은이들을 취업시킬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국회 차원에서 이런 사업을 적극 지원하지는못할망정 섣부른 정치 논리나 탈원전 이념을 앞세워 참여 중단을 요청하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발상인가. 대선을 치르기도 전에 마치 점령군이나 된 듯 공기업의 수출 사업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부터 유권자의 눈길이 곱지 않다.
에너지는 종류별로 장단점·효율·환경영향이 서로 달라 합리적·효율적으로 종류별 비율을 정하는 ‘에너지믹스’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현재 한국 전체 에너지원의 30%를 차지하는 원자력을 아예 배제하려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정말 탈원전을 해야 한다면 경제성과 환경을 조화시켜 효율을 더 높일 수 있는 획기적인 에너지·환경 정책부터 내놓고 국민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6. 대선후보 TV토론, 보다 치열하게 검증하길…
대선후보들의 TV토론은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자질을 검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다. 후보들끼리 맞붙는 TV토론이 아니면 유권자들은 후보들이 준비한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받을 뿐 정책에 대한 이해나 실천 능력 등을 판단할 만한 정보를 얻기 힘들다. 특히 이번 대선처럼 검증과 판단의 시간이 짧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TV토론은 준비된 원고를 읽거나, 제한된 시간 내에서 기계적 균형을 추구하다 보니 제대로 된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지난 18대 대선 TV토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무엇을 물어봐도 “그래서 제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거 아닙니까”라고 답했지만 그 이상을 파고드는 토론이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한 검증 실패로 대한민국이 치른 홍역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어제 열린 첫 TV토론은 반론권을 제한하지 않아 나름 논쟁이 이어지는 등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팩트 확인 등 치열한 토론보다는 말싸움에 그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후보가 5명이나 되는 데다 안보와 경제 등 전반적인 주제를 다루다 보니 3시간 가까이 진행된 토론에도 불구하고 후보 검증에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좀 더 치열한 검증이 필요하다. 다행히 향후 세 차례의 선관위 주최 토론회는 정치와 경제·사회로 분야를 나눠서 치러지고 그중 두 번은 원고 없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스탠딩 토론이 벌어질 예정이다. 미국의 대선토론처럼 유권자들까지 질문자로 참여하는 형태는 아닐지라도 보다 치밀한 검증이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해도 후보당 18분에 불과한 시간 제한 탓에 철저한 준비가 없다면 변죽만 울리는 토론을 피할 수 없다. 정확한 팩트에 입각한 송곳 같은 질문으로 상대 후보의 허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꼼꼼하고 혹독한 검증은 증거도 없는 네거티브로 상대에게 흠집을 내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스스로 준비된 후보임을 입증하는 것이고, 유권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대통령 탄핵·구속 사태라는 헌정사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길이다.
[매일신문]
7. 생명마저 위협받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들
지난해 12월 경산의 한 편의점에서 30대 아르바이트 직원이 5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고작 몇십원도 안 되는 봉투값 때문에 50대 남성이 흉기를 휘둘렀는데도 편의점 직원은 사방이 거의 막힌 편의점 계산대 구조 때문에 피하지 못해 참변을 당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이하 알바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의 을 중의 을이다. 최저 수준의 임금에다가 극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 게다가 심야시간대 혼자 일해야 하는 근무 특성으로 인해 편의점 알바 노동자들은 범죄에도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300~400건의 편의점 강력 범죄가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부분의 편의점들은 효과적인 공간 활용이라는 명목 아래 디귿자 모양의 계산대 안에서 근무자들이 일하도록 하고 있다. 위험이 발생해도 도망가기 마땅찮은 공간 안에서 알바 노동자들은 진상 고객은 물론이고 범죄자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현재 이들이 기댈 수 있는 안전장치라고는 경찰 신고와 CCTV가 고작이다.
이들의 인권 또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알바노조편의점모임이 지난해 알바 노동자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67%가 폭언`폭행을 당했으며 9%는 손님과 점주`동료로부터 성폭력`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편의점 본사들은 알바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거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대책에 관심을 쏟지 않고 있다.
경산 편의점 살인과 같은 범죄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 재발 방지책이 시급하다. 편의점 본사는 비상 탈출구와 아크릴 가림막, 내부 잠금형 계산대 같은 장치 설치 등 근로자 안전을 지키기 위한 대책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비상벨과 전화신고, CCTV만으로는 편의점 범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경찰도 추가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정부도 편의점 내에서의 인권 보장과 범죄 예방을 위한 대책을 입법 등을 통해 내놔야 한다.
[세계일보]
8. 정치권, 4·12 재보선 결과 아전인수하지 말아야
4·12 재보선 결과를 두고 각 당과 대선 캠프에서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았다. 더불어민주당은 경기 하남시장을 차지하고 부산·경남 11곳의 광역·기초 선거에서 5곳을 이긴 것을 두고 “촛불 민심이 반영된 결과”라고 했고, 국민의당은 호남지역 5곳 광역·기초 가운데 3곳을 건지자 “호남의 맹주자리를 지킨 것”이라고 했다. 자유한국당은 대구·경북(TK)에서 국회의원 상주·군위·의성·청송 선거에서 이기고 이 지역 광역·기초 5곳을 석권한 데 대해 “보수 결집의 신호탄”이라고 자찬했다.
작은 흐름이 확인된 것은 있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대구·경북 지지세를 대부분 나눠가지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한국당 지지가 여전히 견고하다는 점, 두 선두 후보가 주도권을 두고 다투는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선전한 점은 눈에 띈다. 민주당이 수도권 기초단체장을 차지하고 부산·경남에서 약진한 것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촛불 민심을 갖다 대고 호남의 맹주 운운하며 자화자찬하는 것은 낯 간지럽다.
이번 재보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구속 이후 치러진 첫 선거다. 민심의 향배를 읽을 수 있는 단초는 된다. 그러나 지역선거 결과를 대선 후보의 지지로 등식화하며 확대해석하는 것은 어리석다. 지역 정서에 갇힌 눈으로 보다간 민심의 큰 흐름을 놓칠 수 있다.
잇단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듯 19대 대선은 과거의 대선과 사뭇 다른 점이 있다. 첨예한 영·호남 지역 대결 구도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투표일에 이 흐름이 현실화되면 과거 고질적이던 지역별 몰표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들 수 있다. 호남 출신 후보가 출마하지 않고 국정농단에 대해 반성하는 합리적 보수층의 부동표 현상 때문일 것이다. 이유가 뭐든 고질인 지역 대결 구도를 깰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몇몇 정당에서 과거의 낡은 시선으로 지역 정서를 부추기고 고착시키기 위해 재보선 선거 결과를 이용하는 것은 사라져야 할 구태다.
지역정서를 불 질러 지지율을 올리겠다는 정당과 후보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매를 들어야 한다. 영·호남 유권자들이 지역 대결을 선동하는 후보와 결별하는 것이 과제다. 마음 둘 곳이 없어 지지 후보를 두고 오락가락하는 보수층도 지역 대결 구도만은 벗어나도록 각성해야 한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우리가 남이가” 식으로 투표한다면 한국 정치에 미래가 없다.
[매일경제]
9. 김해신공항 100년 미래를 내다보고 제대로 만들어 보라
국토교통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7월부터 9개월 동안 김해신공항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를 한 결과 타당하다는 결론을 냈다고 지난 10일 발표했다. 이로써 2026년 영남권에는 연 3800만명을 수용하는 신공항이 탄생하게 된다. 이에 맞춰 어제 부산에서는 '2017 매경 원아시아 포럼'이 열렸는데 강동석 전 건설교통장관은 '김해신공항과 부산발전'이라는 주제 강연에서 귀담아들을 만한 의견을 제시했다.
요점은 대형여객기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현재 계획된 3200m 신활주로를 3400m까지 늘릴 수 있도록 지반공사를 하고, 새로 짓는 국제터미널은 면세점뿐만 아니라 다국적기업 아시아본부 사무실과 영화관 등 다양한 시설을 유치해 첨단 복합터미널로 개발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100년 미래를 내다보고 제대로 만들어 보라는 것인데 옳은 말이다.
영남권 신공항은 기존 김해공항만으로는 급증하는 영남권 이용객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관측에 따라 1990년대부터 필요성이 제기됐다. 지난해 6월 21일 김해신공항 사업이 확정되기 전까지 입지 선정을 놓고 극심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부산은 가덕도 신공항을 밀었고 경북 밀양도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국토부는 객관적인 사전타당성 조사를 위해 외부 전문기관인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에 연구용역을 맡겼다.
그 결과 김해공항에 활주로 1개와 국제터미널을 새로 건설하는 방안이 결정된 것이다. 비용과 이용자 편익 등 종합적 판단에 따른 것이지만 탈락 지역은 크게 반발했다. 이런 진통 끝에 건설되는 김해신공항인 만큼 기본계획 수립단계부터 주도면밀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걸림돌이 많다는 게 문제다. 미주와 유럽으로 노선을 확대하려면 24시간 운영이 필요한데 공항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해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 6조원에 육박하는 건설비용과 주민 보상·이주 과정에서 나올 민원 대책도 세워야 한다. 강 전 장관은 신공항 주변을 공항특구로 지정해 다양한 인센티브와 특구 발전정책 수립을 제안했는데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한 아이디어다. 이제 막 닻을 올린 김해신공항 사업이 인천국제공항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허브공항을 만드는 대역사가 되길 바란다.
[서울경제]
10. 갈수록 늘어나는 1인가구···정책 패러다임 바꿔야
결혼기피 및 고령화의 영향으로 1인 가구가 빠르게 보편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통계청의 장래가구추계에 따르면 2015년 518만가구(27.2%)에 머물렀던 1인 가구는 2045년 809만8,000가구(36.3%)까지 불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세 집 중 한 집꼴로 본격적인 1인 가구 시대가 도래하는 셈이다.
1인 가구는 이제 특정 연령이나 세대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반에 폭넓게 퍼져나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생활상으로 정착됐다. 확산속도 역시 빨라지면서 머지않아 일본과 엇비슷한 수준에 오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주목해야 할 것은 1인 가구의 양대 축을 이루는 청년층과 노년층에 주거와 일자리 문제 같은 복지정책 지원이 집중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소득 및 자산수준이 낮아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일각에서는 1인 가구 지원이 출산율 저하를 부추긴다고 우려하지만 이는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한 단견일 뿐이다. 특히 가구주가 65세 이상인 가구가 2045년에 1,000만가구를 넘어선다는 점도 고령화 시대에 대비한 선제 대응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1인 가구 시대는 복지나 주택 등의 정책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공공임대주택의 입주조건을 놓고 혼선이 빚어진 것은 일관된 정책 부재에 따른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선주자들도 1인 가구와 관련해 여러 공약을 내놓았지만 단편적이고 개별 사안에 대한 임시처방에 머무를 뿐이다.
일본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 뒤 임대료를 할인해주고 미국은 다양한 방식의 주거 바우처 지원을 확대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참고해야 한다. 1인 가구는 주거배경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지원정책 또한 세심하게 이뤄져야 비로소 실효를 거둘 수 있다. 갈수록 가팔라지는 가구 분화에 맞춰 중장기 종합대책은 물론 지역별·가구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대책을 서둘러 마련할 때다.
주요신문칼럼
1. [머니투데이][신혜선의 유감시대] 아이폰이 바꾼 룰 vs 넷플릭스가 바꿀 룰
아이폰 등장이 게임의 법칙을 바꿨다는 건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단말기 형태가 바뀌어 글로벌 통신단말기 제조사의 흥망성쇠 역사를 다시 썼을 뿐 아니라 장터(앱스토어·플레이스토어)가 만들어져 아이디어 하나로 창업해 도전할 수 있는 긴꼬리 경제학을 형성했다. 2000년 초반 불었던 벤처 창업 붐과는 또 다른 성격인 플랫폼 비즈니스 형태의 스타트 업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소비자의 서비스 이용 형태도 바뀔 수밖에 없다. 통신사가 제공하는 콘텐츠만 이용하던 데에서 자유롭게 장터에 올라간 앱을 내려받아 사용한다.
아이폰을 만든 애플이 21세기 게임의 법칙을 바꾼 1번 타자였다면, 그다음 순번은 글로벌 ‘OTT’(Over The TV, 인터넷으로 TV를 시청하는 유형의 서비스) 넷플릭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는 넷플릭스 등장 의미를 잘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다. 다수 언론은 한국에 진출한 넷플릭스에 대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다’는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넷플릭스에 가입해 유료 콘텐츠를 시청하는 국내 이용자는 아직 10만도 안 되는 걸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넷플릭스는 아직 겸손하다. 토드 예린 넷플릭스 제품 혁신 부사장은 지난 MWC(모바일 월드 콩그레서) 2017에서 “한국에서 서비스한 지 겨우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며 “한국 사람들이 콘텐츠를 어떻게 소비하는지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답했다.
모르긴 몰라도 한국 내 저조한 실적은 유료 서비스의 장벽 그리고 하루면 불법으로 해당 콘텐츠를 볼 수 있는 환경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실제 “콘텐츠는 좋은데, 굳이 돈 내고” 라는 지인들이 주변에 꽤 된다. 주로 무료 체험 후 중단하는 이들의 변이다.
전적으로 한국 얘기다. 넷플릭스 서비스의 본고향 미국 상황은 전혀 다르다. 넷플릭스에 이어 구글이 ‘YouTube TV’를 내놨다. 당연히 유료다. 외신에 따르면 ‘구글은 지난 4월 5일(미국 현지시각) 주요 지역 방송 TV 네트워크를 포함한 50개 이상의 채널 패키지를 매월 35달러에 제공하는YouTube TV’를 시작했다. PC나 스마트폰에서 유투브가 직접 제공하는 채널을 이용해 전용 콘텐츠를 이용하는 것은 물론 클라우드 DVR 서비스를 제공해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9개월 동안 저장할 수 있다.
미국의 전통적인 방송사나 통신사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컴캐스트는 자사 X1 고객에게 넷플릭스를 무료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외신에 따르면 미국에서 넷플릭스 이용 가구는 대략 54% 정도로 추정된다. 컴캐스트는 X1 고객의 30% 이상이 넷플릭스 가입자임을 공개하고, 아예 협력 전술을 택한 것이다.
AT&T는 경쟁을 선언했다. 지난해 말 무료 인터넷스트리밍 서비스(VMVPD)인 '다이렉트TV나우' 서비스를 시작한 데 이어 OTT 서비스인 ‘다이렉트TV’ 서비스를 연내 시작한다고 밝혔다. 앞서 넷플릭스와 대적을 위해 타임워너 인수를 밝혔다.
이들이 제공하는 콘텐츠는 전용 콘텐츠 외에도 미국 대학 농구 경기 등 인기 최고의 스포츠 콘텐츠도 포함한다. 기존 유료방송을 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넷플릭스가 바꾸고 있는 변화 소식에 한국에 진출한 넷플릭스의 행보를 더 하면 그 조짐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적어도 한국의 콘텐츠 제작과 유통 시장을 먼저 바꾸려는 움직임은 놀라울 만큼 적극적이어서다.
이미 입소문이 난 영화 ‘옥자’가 대표적이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넷플릭스 전용 콘텐츠다. 영화관에서 맛보기 상영을 할 계획으로 알려졌지만, 그야말로 맛보기 수준일 거다. 한국 영화 사상 최대 규모의 제작비 5000만 달러(약 600억 원) 전액을 투자하는 넷플릭스는 '옥자'를 시점으로 넷플릭스 플랫폼의 맛을 보여줄 각오를 할만하다.
넷플릭스 전용 드라마 ‘킹덤’의 효과는 더 클 수 있다. 8부작 '킹덤'은 제작비만 약 200억 원, 역대 한국 드라마 제작비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증명받은 김은희 작가의 ‘스토리 맛’과 찔끔찔끔이 아닌 ‘TV 몰아보기’의 맛을 본 시청자라면 옥자보다 그 파급 효과가 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넷플릭스가 바꿀 게임의 법칙은 무엇일까. 그리고 바뀌는 법칙이 불러올 변화는 어떤 모습일까. 긍정적인 모습을 보자면 우리가 만든 콘텐츠가 전 세계 이용자에게 선보일 기회가 열렸다는 점이다. 영화 ‘옥자’나 드라마 ‘킹덤’ 외에도 JTBC 새 드라마 ‘맨투맨’도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동시 방영한다. 하지만 그 수익은 사실상 제작비 전액을 댄 넷플릭스 차지다.
국내 시장으로 국한하자면 우려의 평가는 커진다. 넷플릭스가 영화나 전통 TV 드라마의 제작방식은 물론 유통방식을 바꿀 가능성이 커서다.
영화 유통방식은 대형 스크린을 가진 멀티플렉스 중심으로 상영한 후 유료방송(IPTV나 케이블TV)의 DVD 형태로 공급하는 식이다. 이 방식이 깨질 수 있다. 옥자처럼 극장 상영이 아닌 OTT 전용 영화 등장이 첫 번 째다. 이어 DVD 공급 주체가 국내 대규모 배급사가 아닌 넷플릭스로 바뀌는 변화다. 넷플릭스는 OTT 서비스 후, DVD를 출시하고, 유료 방송에 공급한다. 국내 영화 제작사 및 배급사는 긴장할 수밖에 없고, 영화 DVD 덕에 이제 웃기 시작한 IPTV 사업자들은 넷플릭스를 새 협상 주체로 만나야 한다.
스마트폰 생태계에서 확인한 스타트 업 출현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우려다. 수억 원도 아니고 수백억 원하는 거대 자본과 싸울 콘텐츠 전문 기업이 우리에겐 없다. 광고 급감으로 울상인 지상파나 보도에 급급해 콘텐츠 투자를 등한시하는 종편PP, 존재감 없는 케이블방송, 우리 OTT를 대표하는 지상파 연합군 ‘푹’이나 CJ그룹의 '티빙', 통신사들의 OTT 서비스에 넷플릭스는 이미 가장 큰 경쟁자다.
넷플릭스 등장이 가져올 궁극적인 변화는 결국 미디어 소비 방식이다. TV나 극장이 아닌 인터넷으로 모바일로, 편할 때 몰아보기로. 그리고 국산은 물론 경쟁력 있는 외국 콘텐츠 위주로.
박정호 SK텔레콤 대표는 MWC 2017에서 “옥수수(SKT OTT 브랜드)를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이형희 SK브로드밴드 사장도 “옥수수를 글로벌 한류 플랫폼으로 키운다”고 말했다. 아직은 의지만 읽히고, 후속 행보는 보이지 않는다. 옥수수 해지를 요구하는 고객에게 “무료인데 왜 해지 하십니까” 라는 수준의 마케팅 답변이 그 예다.
'옥자'를 시작으로 넷플릭스 서비스를 이용할 생각이다. 그러고 나니 해외 플랫폼 종속 우려, 해외 거대 자본 종속 우려, 5G(세대) 시대 콘텐츠 부재 우려 등 모든 우려가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이른다. 소비자는 기다리지 않고, 기업이 움직일 땐 이미 늦은 경우가 태반이라는 걸 경험했다. 아이폰 등장에 우리가 어떻게 허둥댔는지 다시 생각할 때다.
2. [매일신문][매일춘추] 잉어찜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고등학생 때 부모님과 청송으로 1박 2일 짧은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조부모님과 6명의 고모, 삼촌들, 연년생의 오빠와 남동생을 가진 나에게는 이런 부모님과의 독대가 참으로 별스러운 기억인 셈이다.
물론 여행 목적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참으로 긴 부모님의 용무가 끝나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강가 ‘민물 매운탕’이라고 크게 적힌 흰색 간판 아래로 주말 저녁을 즐기러 나온 가족들의 왁자한 웃음소리와 자글자글 끓어오르던 매운탕의 열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의 메뉴는 잉어찜. 20여 년 전이라는 세월을 생각하면 꽤 비쌌던 3만원대의 특별 메뉴였다. 팔뚝만한 길이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잉어 위로 마늘, 고춧가루를 기초로 한 양념이 오르고 접시 바닥에는 잉어찜을 만들어내면서 자작하게 졸아든 국물이 깔렸었다.
젓가락으로 푹 찌르자 탄력이 느껴지는 흰 살을 양념에 찍어 입 안에 넣으니 고소하고 알싸한 맛이 입안 가득이었다. 생선을 뜯고 남은 양념을 국물 위로 떨어뜨려 비벼먹는 밥맛은 어찌나 좋았던지 보는 눈이 없었다면 접시를 핥아먹을 지경이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날의 기억을 끝으로 다시는 그 집에 가지 못했다.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고 시간이 흐르니 부모님도 그 집의 위치를 기억하지 못하셨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일부러 그 집을 찾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첫사랑은 찾지 않는 것이란 말처럼 지금의 그 집이 예전의 그 집은 아닐 테니까.
2남 1녀의 둘째로 태어나 특출난 재능이 없던 나에게 엄한 부모님은 항상 어렵고 먼 존재였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나는 난생처음 부부의 재치 있고 명랑한 고명딸 노릇을 하며 1박 2일을 보냈고 그날 그 음식은 부모님의 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의 방증이었다. 설령 그것이 그냥 동네 중국집의 자장면이었대도 나는 아마 모든 것이 좋았을 것이다.
서로 지켜야 할 선 없이 너무나 가까워져 무시하고 뒤로 미뤄두기 쉬운 것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다. 일견 찌질하고 궁상맞아 보이는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야 일상 속에 묻혀 의미 없이 사라져간 시간을, 사람들을 그리워하게 된다.
사랑은 표현하는데 의미가 있다. 항상 옆에 있는 듯 보이기에 더욱 따뜻한 눈빛으로, 다정한 행동으로 “넌 내게 특별한 사람이야”를 표현해야 하며, 추억을 쌓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 모든 에너지들을 아까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모든 사랑받았던 기억과 추억은 앞으로 닥칠 모든 힘든 시간에 마술처럼 나타나 다시 꿋꿋하게 나아갈 힘과 용기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3. [매일신문][야고부] 고드윈의 법칙
나치가 학살한 유대인이 몇 명인지는 설이 분분하다. 정설은 ‘600만 명’이다. 하지만 당시 나치의 ‘처리 능력’은 이를 감당할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600만 명은 과장됐다는 주장도 있다. 이 중에는 희생자가 75만 명이라는 설도 있다. 지금까지 가장 사실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되는 수치는 미국의 저명한 홀로코스트 학자 라울 힐버그가 계산한 510만 명이다.
학살의 정확한 규모는 불확실하지만, 나치가 유대인을 가스로 학살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반유대주의자들은 이것도 부정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치가 처음 기획한 유대인 문제 해결책은 마다가스카르 섬으로의 추방이었다. 그러나 이는 프랑스와 영국에 대한 승리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1940년 영국 침공이 무산되면서 흐지부지됐다.
그 뒤 나치는 집단 학살로 전환한다. 그 방법은 처음에는 총살이었다. 그러나 처형 속도가 너무 느렸고, 탄약 소모도 심각했다. 더 큰 문제는 계속되는 처형이 부대원들에게 주는 심리적 스트레스였다. 학살 주모자인 히틀러도 처형 장면을 보고 불쾌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밀폐된 트럭에 희생자를 몰아넣고 자동차 배기가스를 주입해 질식시키는 새로운 방법이 도입됐다. 하지만 이 또한 마땅치 않았다. 트럭이 희생자의 토사물과 배설물로 불결했을 뿐만 아니라 연료 소모도 심각한 문제였다.
그래서 나온 ‘최종 해결책’이 가스 살인이다. 그 수단은 공기에 노출되면 강력한 살상력의 독가스로 변하는 살충제 ‘치클론-B’였다. 이것으로 몇 명을 죽였는지는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미국 백악관 숀 스파이서 대변인이 이를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는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권이 민간인에게 가스 공격을 한 것을 비난하면서 “히틀러조차도 하지 않았던 화학무기를 사용했다”고 했다. 그는 서둘러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사퇴 요구까지 받고 있다.
그의 실언을 두고 ‘고드윈의 법칙’의 전형적 사례라는 소리도 나온다. ‘고드윈의 법칙’이란 1990년 미국 텍사스대 로스쿨 학생이었던 마이크 고드윈이 당시 PC통신 게시글을 분석해 도출한 결론으로 ‘논쟁이 장기화하면 상대방을 히틀러나 나치에 비유하는 발언이 나올 확률은 1(100%)에 수렴한다’ 는 것이다. 미국 정계에서는 그런 발언이나 비유를 회피하는 것이 불문율인데 스파이서가 이를 망각했다는 얘기다. 말이란 참으로 무섭다.
4. [한국일보][우리말 톺아보기] 꽃길
“포기 안 하려 포기해 버린 젊고 아름다운 당신의 계절, 여길 봐 예쁘게 피었으니까 바닥에 떨어지더라도 꽃길만 걷게 해 줄게요.” 꽃시절에 가시밭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를 생각하는 자식의 마음이 꽃처럼 예쁘다. 이렇게 노래한 가수에게 누군가 이런 글을 남겼다. “앞으로는 꽃길만 걸으시기를....” 이들에게 ‘꽃길’은 ‘꽃이 피어 있거나 꽃으로 장식된 길’이면서 ‘순탄하고 행복한 삶’이자 ‘승승장구하는 화려한 스타의 삶’이다.
‘꽃길’과 함께 떠올릴 수 있는 말로 ‘꽃보직’이 있다. “관직 생활 30년 동안 꽃보직으로 돌면서 꽃길만 걸어온 사람”은 별 어려움 없이 편안하고 화려한 관직 생활을 했을 것이다. ‘꽃보직’은 편안하되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만큼 화려하고 중요한 보직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꽃보직’은 편안하고 좋다는 뜻만을 지닌 ‘꿀보직’과는 다르다. 이처럼 우리말에서 ‘꽃’은 ‘화려함, 아름다움, 중요함’을 상기시킨다.
봄을 알리는 ‘꽃’은 신선함을 나타내는 데 쓰이기도 한다. ‘한창 젊은 여자의 나이’를 ‘꽃띠’라 하고, ‘젊고 활기 찬 시기’를 ‘꽃시절’이라 한다. 그런가 하면 ‘결혼한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을 ‘꽃잠’이라고도 한다. 젊고 신선함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이 말에 담겨 있다.
‘꽃’은 대상의 화려함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꽃단장’은 얼굴, 머리, 옷차림 등을 꾸미는 단장(丹粧)의 정도가 화려함을 뜻한다. ‘꽃분홍’과 ‘꽃자주’는 꽃 색깔과 관련 있는 ‘분홍’과 ‘자주’에 ‘꽃’을 붙여 색채의 짙고 화사함을 강조한 말이다. 그 자체로 화려하면서 가까이 있는 것마저 돋보이게 하는 꽃. 그런 꽃의 매력을 이 말들에서도 발견한다.
5. [한국일보][삶과 문화] 뒤늦은 ‘자아’ 이야기
우리 세대의 성장기에 ‘자아’라는 말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함께 도착했을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주인공 싱클레어가 스무 살 무렵 1차 세계대전의 전쟁터에서 부상당해 야전병원에 누워 있는 장면에서 끝난다. 밝고 안정된 기독교 가정의 모범생으로 자라난 소년은 영혼의 안내인이자 자기 자신 속의 ‘참된 나’를 은유하기도 하는 데미안과의 만남을 통해 세계의 어둠과 밝음을 함께 껴안는 성숙한 젊은이로 성장해 있다. 육신은 신음하고 있지만 그는 한 세계를 깨뜨리고 나온 것이다. 그는 이제 자기 안에서 우러나오는 내면의 명령을 좇아 자기 자신만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얼마 전 근 40년 만에 ‘데미안’을 다시 읽으면서 규율과 강제의 대상으로 나 자신을 좁혀야 했던 숨 막히는 중고등학교 생활이 떠올랐고, 그런 거라면 그 시절 싱클레어에 대한 턱없는 동일시도 얼마만큼 이해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다분히 낭만적인 진정성의 자기 서사는 그 후로도 꽤 오래 내게 영향을 미쳤지 싶다.
내 대학 시절의 상위 이념은 ‘존재의 의식 규정성’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당시의 정치 상황에서 이를 애써 의식화하는 가운데 오히려 ‘자아’의 공간은 다시 한 번 실제 이상으로 과장된 채 남아 있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 불가피한 간극에 도덕적 윤리적 자기 명령이 들어오고 그것이 ‘실천’이라는 강요 사항이 되면서 사회학자 김홍중이 말한 ‘진정성의 체제’는 또 다른 낭만적 이상화의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너무 거창했던 것이 아닐까. ‘데미안’도 그렇고 80년대도 그렇고. 그런 점에서는 자아의 신화를 해체하고 인간 주체성에 대한 첨단의 수술로 치달았던 서양의 현대 철학이 지난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 급속도로 유입되어 온 과정에도 일종의 ‘거대담론적’ 편향이 존재했다는 느낌도 든다. 그 끝없는 언어와 사유의 반성의 절차 다음에도 남아 있는 실체로서의 자아, 미약한 대로의 주체성을 붙들고 우리는 대낮의 거리에서 만나고 살아간다. 객관적이고 자명한 세계와 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다.
역사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윌리엄 M. 레디는 <감정의 항해>(김학이 옮김, 문학과지성사)에서 감정 표현이라는 이모티브(emotive)가 가진 ‘자아 탐색’과 ‘자아 변경’의 수행적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우리의 ‘자아’를 포스트구조주의가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간 ‘주체성’이나 데카르트적 이분법의 틀 바깥에서 재건하고 재개념화할 방법을 찾는다. 기표와 기의의 무한한 미끄러짐 사이, 그 자의성의 감옥에 우리가 갇혀 있기만 한 것은 아닐 테다.
우리는 수시로 우리의 느낌을 발화하며 산다. 이때 많은 생각 재료들 중 어떤 부분에 주의를 기울이고 선택하고 활성화하고 배열하는 작업을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미결정적일 수밖에 없는 그 ‘번역’ 작업은 바로 그 미결정성을 통해 감정의 자유와 감정의 항해를 가능하게 하며, 그런 한 이곳은 주체성이 자신의 장소를 발견하는 장이고, 자유와 역사적 변화가 다시 의미를 획득하는 장일 수 있다.
감상주의라는 감정 체제의 관점에서 프랑스 혁명기 공포정치 전후의 역사를 설득력 있게 재조명하는 가운데 전개되는 그의 ‘이모티브 이론’이 이렇게 거칠게 요약될 수는 없겠지만, 자유와 주체성의 장소를 인간 개인의 자아 안에서 되찾으려는 그의 이론적 노력은 실질적인 인간 역사와 현실의 감각 위에 있는 듯했고, 그 점이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생각해보면 ‘데미안’은 유례없는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으며 ‘자아’의 근거를 한 순간에 잃어버린 당시의 독일 젊은이들에겐 너무도 절실한 책이었을 수 있겠다. 싱클레어-데미안 놀이를 하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대선이 포퓰리즘 잔치여선 안 된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실현 가능성이나 효율성보다 ‘포퓰리즘’에 치우치는 경향이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어 걱정이다. 특히 후보들이 한결같이 ‘좋은 일자리 창출’을 집권 후 최대 과제로 꼽으면서도 막상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기업을 옥죄는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자기모순이 자심하다는 게 문제다.
초기 대선 판도에서 양강을 형성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포퓰리즘에서도 단연 강세다. 지난달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을 공약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문 후보는 그제 발표한 ‘J노믹스’를 통해 경제를 사람 중심의 성장구조로 바꾸겠다며 ‘사람경제 2017’을 선언했다. 4차 산업혁명 등 10대 분야에 집중 투자해 일자리를 연평균 50만개 이상 창출하되 재원은 5년간 세수 자연증가분 50조원과 법인세 실효세율 조정으로 충당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나랏돈 퍼부어 일자리 만들고 성장을 이끌겠다는 확장정책의 그럴듯한 포장일 뿐이다. 지하경제 양성화로 세입을 늘려 135조원의 재원을 조달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가 흐지부지된 4년 전 박근혜 정부의 공약가계부를 쏙 빼닮은 기시감마저 든다. 굳이 차이를 찾자면 ‘증세 없음’을 못 박은 공약가계부와 ‘국민의 동의 아래 증세한다’는 단서를 내건 J노믹스의 수사법 정도다.
경제는 정부가 아닌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며 문 후보를 맹공하는 안 후보도 재정을 화수분으로 여기긴 매한가지다. 각종 청년취업대책, 건강보험 본인부담금 상한제 등 조자룡 헌 칼 쓰듯 선심공세가 치열하다. 대기업과 차이가 심한 중소기업 임금을 신규 취업 청년들에겐 80%까지 끌어올리도록 5년간 한시적으로 보조하고 대학 입학금을 폐지한다는 등의 발상은 재원조달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정부가 나설 일인지조차 헷갈린다.
총론에선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한다면서도 각론에선 반(反)기업 정서를 자극하는 공약이 난무하는 것도 문제다. 선거 때마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적폐가 활개쳐선 곤란하다. 이럴수록 유권자들이 현명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깨어 있는 시민의식을 입증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2. 한은의 경기회복 전망 낙관은 이르다
한국은행이 어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5%에서 2.6%로 0.1%포인트 올렸다. 한은이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것은 2014년 4월 이후 3년 만으로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치와 같아졌다. 최근 국내 민간연구기관과 해외 투자은행(IB)들이 잇따라 성장률 전망치를 올린 데 이어 중앙은행인 한은도 가세함으로써 우리 경제에 대한 낙관론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대내외 악재로 경제 활력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한은이 전망치를 올린 것은 우리 경제가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이주열 총재는 “수출이 세계경제 회복에 힘입어 개선세를 지속하고 내수도 회복세”라며 “앞으로 국내경제는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전망은 앞서 기획재정부가 최근 그린북에서 “수출 증가세에 힘입어 생산·투자·소비 등 경제 전반에 회복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번 한은의 동조로 경기 호전론은 더욱 힘을 받게 됐다.
실제로도 지표상 흐름은 좋은 편이다. 3월 수출이 489억 달러로 1년 전보다 13.7% 늘어나는 등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째 증가세다. 소매 판매도 2월 들어 3.2% 증가로 반전한 데다 3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6.7로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79로 23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지난달 취업자수가 2626만 7000명으로 1년 전 같은 달보다 46만 6000명 증가하는 등 고용시장에도 봄바람이 불고 있다. 정부와 한은이 낙관적인 기대치를 제시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 낙관만 하기에는 이르다. 중국의 사드 경제보복과 북한 리스크 등 악재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도 변수다. 안으로는 대우조선해양 채무 재조정, 폭발적으로 늘어가는 가계부채와 청년실업 문제 등 언제든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들이 산적해 있다. 대선 주자들의 ‘묻지마 퍼주기’ 공약도 경제에는 걸림돌이 될 우려가 크다. 정부는 오랜만에 찾아온 경기 회복세가 꺾이지 않도록 대내외 리스크 관리에 철저를 기해야 할 것이다.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서울신문]
3. 中, 여차하면 송유관 막아 북핵 도발 저지해야
미국과 중국의 정상이 회담 나흘 만에 긴급 전화 통화를 갖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먼저 전화를 걸어 대화를 시도할 정도로 북한의 6차 핵실험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를 한반도로 급파하는 등 북한에 대한 무력 응징 의지를 보여온 미국은 경제 제재 카드마저 꺼내들며 전방위 압박에 나서고 있다.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독자 대응 카드를 꺼내들고 대중 압박도 병행 중이다.
미국이 군사 행동까지 포함한 대북 압박을 강화하면서 중국도 과거와 다른 행보를 보이는 등 전향적 자세로 돌아서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최근의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 행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체감하고 있다. 북의 추가 핵실험을 막지 못할 경우 한반도와 동북아에 어떤 파도가 몰아칠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미·중 공조를 통한 강력한 대북 제재 방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6차 핵실험이 북한에서 가장 큰 명절로 꼽히는 태양절(15일) 전후가 될 것이란 예상도 있다. 버튼만 누르면 될 정도로 핵실험 준비가 끝났다는 보도도 나온다. 미국은 핵실험을 탐지하는 특수기를 일본에 보냈다. 우리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때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 신규 제재, 독자 제재, 전 세계적 차원의 대북 압박 등 모든 외교자산을 동원해 징벌 조치에 나설 방침이다.
중국은 북한의 6차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막을 수 있는 실질적 수단을 갖고 있다. 2003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거부했던 북한에 대해 짧은 기간이지만 압력 차원에서 대북 송유관을 잠갔고 효과도 봤다. 1961년 체결한 북·중 우호협력 상호원조조약에 따라 미국의 대북 선제 타격 등이 현실화되면 중국 역시 군사적 개입이 불가피하다. 6차 핵실험 등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는 일은 중국으로서는 절박할 수밖에 없다. 결코 ‘강 건너 불구경’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북한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원유 공급 중단으로 북한의 격심한 반발를 초래할 수도 있지만 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미온적인 중국의 대북 제재 의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동시에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국제사회로 나오도록 설득해야 한다. 중국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 이번에는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4. 사드·미세먼지·대우조선에 정부가 안 보인다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권력 이양기에는 공직사회도 이런저런 이유로 평상심을 잃고 뒤숭숭해지기 십상이다. 더군다나 대통령 탄핵으로 몇 달째 권력 공백이 이어졌다. 이런 사정을 백번 접어 주더라도 최근 정부의 복지부동 행태는 도를 넘고 있다. “이러고도 나라가 굴러가는 게 신기하다”는 소리가 들릴 판이다.
정부의 무기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중국의 사드 보복 문제다. 중국의 야비한 행태는 갈수록 태산인데, 정부의 존재감은 느낄 수가 없다. 중국이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를 거의 초토화하고 있는 데도 정부가 피해 현황을 들여다본 것은 한참 만이다. 그러고도 지금까지 이렇다 할 조치를 내놓지 못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무슨 대책이라도 강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대응할 근거가 없다며 시간만 보내고 있는 현실이다.
국민 아우성은 높아가는데 정부의 강 건너 불구경은 미세먼지 문제도 다를 게 없다. 우리나라는 공기 질이 나쁜 나라로 최근 세계적 학술지가 주목할 정도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가까운 미래에 미세먼지 사망자가 급증할 거라는 경고가 이어진다. 이 지경인데도 정부는 개선책을 고민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주무 부처인 환경부가 내놓는 기본 자료마저 엉터리라고 개탄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국무총리실도 컨트롤 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적자를 내고 표류하는 대우조선해양 사태도 정부의 무기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제 해결 방법을 머리 맞대고 찾아도 모자랄 판에 대우조선의 손실액 추정치조차 부처마다 제각각이다.
이번 대선은 비상상황에서 치르는 선거다. 새 정부는 따로 준비 기간 없이 선거 다음날부터 당장 정상업무를 이어 가야 한다. 제대로 굴러가는 정부 조직이라면 이런 비상상황을 고려해 지금쯤 한창 새로운 정책을 고민하고 있어야 정상이다. 민생과 나라 경제의 운명과 직결된 현안에 손 놓고 있는 것은 더는 묵과할 수 없는 공직 기강 해이다.
할 일은 제쳐놓고 유력 대선 후보에 노골적으로 줄을 대는 고위 공직자들도 기승을 부린다니 꼴불견을 넘어 망동(妄動)이다. 지금에라도 공직기강을 다잡아 국민 불안을 덜어줄 수 있는 정책 수행에 정신을 쏟아야 한다. 국록을 먹는 공직자로서 최소한의 양심이자 기본 도리다.
[중앙일보]
5. 이념 앞세워 21조 원전 수출 막는 국회의원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무소속 국회의원 28명이 참여한 ‘탈핵·에너지전환 국회의원 모임’이 최근 한국전력에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사업 참여 중단을 요구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도하는 이 모임은 사업비 150억 파운드(약 21조3000억원)의 이 원전 수출 프로젝트가 “문재인·안철수 등 주요 대선후보의 탈(脫)원전 정책에 반하는 것”이라며 한전을 압박했다.
이 프로젝트는 총 발전 규모 3.8GW의 원전 3기를 짓는 사업으로 사업비가 2009년 수주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의 건설수주액 186억 달러(약 21조186억원)를 넘어선다. 바라카 원전 60년 발전소 위탁운영 계약도 따내면서 494억 달러(약 55조822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는데 이는 자동차 228만 대, 휴대전화 5200만 대 수출과 맞먹는 경제효과라고 한다.
한국은 이를 공사비 증가 없이 정해진 시기에 완공해 세계 수준의 원전 건설 실력을 입증했다. 원전은 우리가 상당한 자체 기술·경험을 확보한 국가적 ‘지적자산’이다. 원전 건설 경험이 풍부한 공기업과 기술력 있는 민간업체, 그리고 금융기관이 손잡고 해외에 동반 진출하면 새로운 미래 수출산업으로 키울 수 있다.
무어사이드 원전사업은 우리의 잠재력을 활용하면서 중소·중견 협력업체 등에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젊은이들을 취업시킬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국회 차원에서 이런 사업을 적극 지원하지는못할망정 섣부른 정치 논리나 탈원전 이념을 앞세워 참여 중단을 요청하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발상인가. 대선을 치르기도 전에 마치 점령군이나 된 듯 공기업의 수출 사업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부터 유권자의 눈길이 곱지 않다.
에너지는 종류별로 장단점·효율·환경영향이 서로 달라 합리적·효율적으로 종류별 비율을 정하는 ‘에너지믹스’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현재 한국 전체 에너지원의 30%를 차지하는 원자력을 아예 배제하려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정말 탈원전을 해야 한다면 경제성과 환경을 조화시켜 효율을 더 높일 수 있는 획기적인 에너지·환경 정책부터 내놓고 국민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6. 대선후보 TV토론, 보다 치열하게 검증하길…
대선후보들의 TV토론은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자질을 검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다. 후보들끼리 맞붙는 TV토론이 아니면 유권자들은 후보들이 준비한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받을 뿐 정책에 대한 이해나 실천 능력 등을 판단할 만한 정보를 얻기 힘들다. 특히 이번 대선처럼 검증과 판단의 시간이 짧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TV토론은 준비된 원고를 읽거나, 제한된 시간 내에서 기계적 균형을 추구하다 보니 제대로 된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지난 18대 대선 TV토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무엇을 물어봐도 “그래서 제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거 아닙니까”라고 답했지만 그 이상을 파고드는 토론이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한 검증 실패로 대한민국이 치른 홍역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어제 열린 첫 TV토론은 반론권을 제한하지 않아 나름 논쟁이 이어지는 등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팩트 확인 등 치열한 토론보다는 말싸움에 그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후보가 5명이나 되는 데다 안보와 경제 등 전반적인 주제를 다루다 보니 3시간 가까이 진행된 토론에도 불구하고 후보 검증에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좀 더 치열한 검증이 필요하다. 다행히 향후 세 차례의 선관위 주최 토론회는 정치와 경제·사회로 분야를 나눠서 치러지고 그중 두 번은 원고 없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스탠딩 토론이 벌어질 예정이다. 미국의 대선토론처럼 유권자들까지 질문자로 참여하는 형태는 아닐지라도 보다 치밀한 검증이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해도 후보당 18분에 불과한 시간 제한 탓에 철저한 준비가 없다면 변죽만 울리는 토론을 피할 수 없다. 정확한 팩트에 입각한 송곳 같은 질문으로 상대 후보의 허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꼼꼼하고 혹독한 검증은 증거도 없는 네거티브로 상대에게 흠집을 내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스스로 준비된 후보임을 입증하는 것이고, 유권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대통령 탄핵·구속 사태라는 헌정사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길이다.
[매일신문]
7. 생명마저 위협받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들
지난해 12월 경산의 한 편의점에서 30대 아르바이트 직원이 5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고작 몇십원도 안 되는 봉투값 때문에 50대 남성이 흉기를 휘둘렀는데도 편의점 직원은 사방이 거의 막힌 편의점 계산대 구조 때문에 피하지 못해 참변을 당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이하 알바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의 을 중의 을이다. 최저 수준의 임금에다가 극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 게다가 심야시간대 혼자 일해야 하는 근무 특성으로 인해 편의점 알바 노동자들은 범죄에도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300~400건의 편의점 강력 범죄가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부분의 편의점들은 효과적인 공간 활용이라는 명목 아래 디귿자 모양의 계산대 안에서 근무자들이 일하도록 하고 있다. 위험이 발생해도 도망가기 마땅찮은 공간 안에서 알바 노동자들은 진상 고객은 물론이고 범죄자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현재 이들이 기댈 수 있는 안전장치라고는 경찰 신고와 CCTV가 고작이다.
이들의 인권 또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알바노조편의점모임이 지난해 알바 노동자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67%가 폭언`폭행을 당했으며 9%는 손님과 점주`동료로부터 성폭력`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편의점 본사들은 알바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거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대책에 관심을 쏟지 않고 있다.
경산 편의점 살인과 같은 범죄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 재발 방지책이 시급하다. 편의점 본사는 비상 탈출구와 아크릴 가림막, 내부 잠금형 계산대 같은 장치 설치 등 근로자 안전을 지키기 위한 대책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비상벨과 전화신고, CCTV만으로는 편의점 범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경찰도 추가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정부도 편의점 내에서의 인권 보장과 범죄 예방을 위한 대책을 입법 등을 통해 내놔야 한다.
[세계일보]
8. 정치권, 4·12 재보선 결과 아전인수하지 말아야
4·12 재보선 결과를 두고 각 당과 대선 캠프에서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았다. 더불어민주당은 경기 하남시장을 차지하고 부산·경남 11곳의 광역·기초 선거에서 5곳을 이긴 것을 두고 “촛불 민심이 반영된 결과”라고 했고, 국민의당은 호남지역 5곳 광역·기초 가운데 3곳을 건지자 “호남의 맹주자리를 지킨 것”이라고 했다. 자유한국당은 대구·경북(TK)에서 국회의원 상주·군위·의성·청송 선거에서 이기고 이 지역 광역·기초 5곳을 석권한 데 대해 “보수 결집의 신호탄”이라고 자찬했다.
작은 흐름이 확인된 것은 있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대구·경북 지지세를 대부분 나눠가지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한국당 지지가 여전히 견고하다는 점, 두 선두 후보가 주도권을 두고 다투는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선전한 점은 눈에 띈다. 민주당이 수도권 기초단체장을 차지하고 부산·경남에서 약진한 것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촛불 민심을 갖다 대고 호남의 맹주 운운하며 자화자찬하는 것은 낯 간지럽다.
이번 재보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구속 이후 치러진 첫 선거다. 민심의 향배를 읽을 수 있는 단초는 된다. 그러나 지역선거 결과를 대선 후보의 지지로 등식화하며 확대해석하는 것은 어리석다. 지역 정서에 갇힌 눈으로 보다간 민심의 큰 흐름을 놓칠 수 있다.
잇단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듯 19대 대선은 과거의 대선과 사뭇 다른 점이 있다. 첨예한 영·호남 지역 대결 구도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투표일에 이 흐름이 현실화되면 과거 고질적이던 지역별 몰표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들 수 있다. 호남 출신 후보가 출마하지 않고 국정농단에 대해 반성하는 합리적 보수층의 부동표 현상 때문일 것이다. 이유가 뭐든 고질인 지역 대결 구도를 깰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몇몇 정당에서 과거의 낡은 시선으로 지역 정서를 부추기고 고착시키기 위해 재보선 선거 결과를 이용하는 것은 사라져야 할 구태다.
지역정서를 불 질러 지지율을 올리겠다는 정당과 후보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매를 들어야 한다. 영·호남 유권자들이 지역 대결을 선동하는 후보와 결별하는 것이 과제다. 마음 둘 곳이 없어 지지 후보를 두고 오락가락하는 보수층도 지역 대결 구도만은 벗어나도록 각성해야 한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우리가 남이가” 식으로 투표한다면 한국 정치에 미래가 없다.
[매일경제]
9. 김해신공항 100년 미래를 내다보고 제대로 만들어 보라
국토교통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7월부터 9개월 동안 김해신공항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를 한 결과 타당하다는 결론을 냈다고 지난 10일 발표했다. 이로써 2026년 영남권에는 연 3800만명을 수용하는 신공항이 탄생하게 된다. 이에 맞춰 어제 부산에서는 '2017 매경 원아시아 포럼'이 열렸는데 강동석 전 건설교통장관은 '김해신공항과 부산발전'이라는 주제 강연에서 귀담아들을 만한 의견을 제시했다.
요점은 대형여객기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현재 계획된 3200m 신활주로를 3400m까지 늘릴 수 있도록 지반공사를 하고, 새로 짓는 국제터미널은 면세점뿐만 아니라 다국적기업 아시아본부 사무실과 영화관 등 다양한 시설을 유치해 첨단 복합터미널로 개발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100년 미래를 내다보고 제대로 만들어 보라는 것인데 옳은 말이다.
영남권 신공항은 기존 김해공항만으로는 급증하는 영남권 이용객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관측에 따라 1990년대부터 필요성이 제기됐다. 지난해 6월 21일 김해신공항 사업이 확정되기 전까지 입지 선정을 놓고 극심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부산은 가덕도 신공항을 밀었고 경북 밀양도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국토부는 객관적인 사전타당성 조사를 위해 외부 전문기관인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에 연구용역을 맡겼다.
그 결과 김해공항에 활주로 1개와 국제터미널을 새로 건설하는 방안이 결정된 것이다. 비용과 이용자 편익 등 종합적 판단에 따른 것이지만 탈락 지역은 크게 반발했다. 이런 진통 끝에 건설되는 김해신공항인 만큼 기본계획 수립단계부터 주도면밀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걸림돌이 많다는 게 문제다. 미주와 유럽으로 노선을 확대하려면 24시간 운영이 필요한데 공항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해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 6조원에 육박하는 건설비용과 주민 보상·이주 과정에서 나올 민원 대책도 세워야 한다. 강 전 장관은 신공항 주변을 공항특구로 지정해 다양한 인센티브와 특구 발전정책 수립을 제안했는데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한 아이디어다. 이제 막 닻을 올린 김해신공항 사업이 인천국제공항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허브공항을 만드는 대역사가 되길 바란다.
[서울경제]
10. 갈수록 늘어나는 1인가구···정책 패러다임 바꿔야
결혼기피 및 고령화의 영향으로 1인 가구가 빠르게 보편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통계청의 장래가구추계에 따르면 2015년 518만가구(27.2%)에 머물렀던 1인 가구는 2045년 809만8,000가구(36.3%)까지 불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세 집 중 한 집꼴로 본격적인 1인 가구 시대가 도래하는 셈이다.
1인 가구는 이제 특정 연령이나 세대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반에 폭넓게 퍼져나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생활상으로 정착됐다. 확산속도 역시 빨라지면서 머지않아 일본과 엇비슷한 수준에 오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주목해야 할 것은 1인 가구의 양대 축을 이루는 청년층과 노년층에 주거와 일자리 문제 같은 복지정책 지원이 집중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소득 및 자산수준이 낮아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일각에서는 1인 가구 지원이 출산율 저하를 부추긴다고 우려하지만 이는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한 단견일 뿐이다. 특히 가구주가 65세 이상인 가구가 2045년에 1,000만가구를 넘어선다는 점도 고령화 시대에 대비한 선제 대응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1인 가구 시대는 복지나 주택 등의 정책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공공임대주택의 입주조건을 놓고 혼선이 빚어진 것은 일관된 정책 부재에 따른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선주자들도 1인 가구와 관련해 여러 공약을 내놓았지만 단편적이고 개별 사안에 대한 임시처방에 머무를 뿐이다.
일본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 뒤 임대료를 할인해주고 미국은 다양한 방식의 주거 바우처 지원을 확대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참고해야 한다. 1인 가구는 주거배경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지원정책 또한 세심하게 이뤄져야 비로소 실효를 거둘 수 있다. 갈수록 가팔라지는 가구 분화에 맞춰 중장기 종합대책은 물론 지역별·가구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대책을 서둘러 마련할 때다.
주요신문칼럼
1. [머니투데이][신혜선의 유감시대] 아이폰이 바꾼 룰 vs 넷플릭스가 바꿀 룰
아이폰 등장이 게임의 법칙을 바꿨다는 건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단말기 형태가 바뀌어 글로벌 통신단말기 제조사의 흥망성쇠 역사를 다시 썼을 뿐 아니라 장터(앱스토어·플레이스토어)가 만들어져 아이디어 하나로 창업해 도전할 수 있는 긴꼬리 경제학을 형성했다. 2000년 초반 불었던 벤처 창업 붐과는 또 다른 성격인 플랫폼 비즈니스 형태의 스타트 업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소비자의 서비스 이용 형태도 바뀔 수밖에 없다. 통신사가 제공하는 콘텐츠만 이용하던 데에서 자유롭게 장터에 올라간 앱을 내려받아 사용한다.
아이폰을 만든 애플이 21세기 게임의 법칙을 바꾼 1번 타자였다면, 그다음 순번은 글로벌 ‘OTT’(Over The TV, 인터넷으로 TV를 시청하는 유형의 서비스) 넷플릭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는 넷플릭스 등장 의미를 잘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다. 다수 언론은 한국에 진출한 넷플릭스에 대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다’는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넷플릭스에 가입해 유료 콘텐츠를 시청하는 국내 이용자는 아직 10만도 안 되는 걸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넷플릭스는 아직 겸손하다. 토드 예린 넷플릭스 제품 혁신 부사장은 지난 MWC(모바일 월드 콩그레서) 2017에서 “한국에서 서비스한 지 겨우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며 “한국 사람들이 콘텐츠를 어떻게 소비하는지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답했다.
모르긴 몰라도 한국 내 저조한 실적은 유료 서비스의 장벽 그리고 하루면 불법으로 해당 콘텐츠를 볼 수 있는 환경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실제 “콘텐츠는 좋은데, 굳이 돈 내고” 라는 지인들이 주변에 꽤 된다. 주로 무료 체험 후 중단하는 이들의 변이다.
전적으로 한국 얘기다. 넷플릭스 서비스의 본고향 미국 상황은 전혀 다르다. 넷플릭스에 이어 구글이 ‘YouTube TV’를 내놨다. 당연히 유료다. 외신에 따르면 ‘구글은 지난 4월 5일(미국 현지시각) 주요 지역 방송 TV 네트워크를 포함한 50개 이상의 채널 패키지를 매월 35달러에 제공하는YouTube TV’를 시작했다. PC나 스마트폰에서 유투브가 직접 제공하는 채널을 이용해 전용 콘텐츠를 이용하는 것은 물론 클라우드 DVR 서비스를 제공해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9개월 동안 저장할 수 있다.
미국의 전통적인 방송사나 통신사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컴캐스트는 자사 X1 고객에게 넷플릭스를 무료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외신에 따르면 미국에서 넷플릭스 이용 가구는 대략 54% 정도로 추정된다. 컴캐스트는 X1 고객의 30% 이상이 넷플릭스 가입자임을 공개하고, 아예 협력 전술을 택한 것이다.
AT&T는 경쟁을 선언했다. 지난해 말 무료 인터넷스트리밍 서비스(VMVPD)인 '다이렉트TV나우' 서비스를 시작한 데 이어 OTT 서비스인 ‘다이렉트TV’ 서비스를 연내 시작한다고 밝혔다. 앞서 넷플릭스와 대적을 위해 타임워너 인수를 밝혔다.
이들이 제공하는 콘텐츠는 전용 콘텐츠 외에도 미국 대학 농구 경기 등 인기 최고의 스포츠 콘텐츠도 포함한다. 기존 유료방송을 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넷플릭스가 바꾸고 있는 변화 소식에 한국에 진출한 넷플릭스의 행보를 더 하면 그 조짐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적어도 한국의 콘텐츠 제작과 유통 시장을 먼저 바꾸려는 움직임은 놀라울 만큼 적극적이어서다.
이미 입소문이 난 영화 ‘옥자’가 대표적이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넷플릭스 전용 콘텐츠다. 영화관에서 맛보기 상영을 할 계획으로 알려졌지만, 그야말로 맛보기 수준일 거다. 한국 영화 사상 최대 규모의 제작비 5000만 달러(약 600억 원) 전액을 투자하는 넷플릭스는 '옥자'를 시점으로 넷플릭스 플랫폼의 맛을 보여줄 각오를 할만하다.
넷플릭스 전용 드라마 ‘킹덤’의 효과는 더 클 수 있다. 8부작 '킹덤'은 제작비만 약 200억 원, 역대 한국 드라마 제작비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증명받은 김은희 작가의 ‘스토리 맛’과 찔끔찔끔이 아닌 ‘TV 몰아보기’의 맛을 본 시청자라면 옥자보다 그 파급 효과가 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넷플릭스가 바꿀 게임의 법칙은 무엇일까. 그리고 바뀌는 법칙이 불러올 변화는 어떤 모습일까. 긍정적인 모습을 보자면 우리가 만든 콘텐츠가 전 세계 이용자에게 선보일 기회가 열렸다는 점이다. 영화 ‘옥자’나 드라마 ‘킹덤’ 외에도 JTBC 새 드라마 ‘맨투맨’도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동시 방영한다. 하지만 그 수익은 사실상 제작비 전액을 댄 넷플릭스 차지다.
국내 시장으로 국한하자면 우려의 평가는 커진다. 넷플릭스가 영화나 전통 TV 드라마의 제작방식은 물론 유통방식을 바꿀 가능성이 커서다.
영화 유통방식은 대형 스크린을 가진 멀티플렉스 중심으로 상영한 후 유료방송(IPTV나 케이블TV)의 DVD 형태로 공급하는 식이다. 이 방식이 깨질 수 있다. 옥자처럼 극장 상영이 아닌 OTT 전용 영화 등장이 첫 번 째다. 이어 DVD 공급 주체가 국내 대규모 배급사가 아닌 넷플릭스로 바뀌는 변화다. 넷플릭스는 OTT 서비스 후, DVD를 출시하고, 유료 방송에 공급한다. 국내 영화 제작사 및 배급사는 긴장할 수밖에 없고, 영화 DVD 덕에 이제 웃기 시작한 IPTV 사업자들은 넷플릭스를 새 협상 주체로 만나야 한다.
스마트폰 생태계에서 확인한 스타트 업 출현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우려다. 수억 원도 아니고 수백억 원하는 거대 자본과 싸울 콘텐츠 전문 기업이 우리에겐 없다. 광고 급감으로 울상인 지상파나 보도에 급급해 콘텐츠 투자를 등한시하는 종편PP, 존재감 없는 케이블방송, 우리 OTT를 대표하는 지상파 연합군 ‘푹’이나 CJ그룹의 '티빙', 통신사들의 OTT 서비스에 넷플릭스는 이미 가장 큰 경쟁자다.
넷플릭스 등장이 가져올 궁극적인 변화는 결국 미디어 소비 방식이다. TV나 극장이 아닌 인터넷으로 모바일로, 편할 때 몰아보기로. 그리고 국산은 물론 경쟁력 있는 외국 콘텐츠 위주로.
박정호 SK텔레콤 대표는 MWC 2017에서 “옥수수(SKT OTT 브랜드)를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이형희 SK브로드밴드 사장도 “옥수수를 글로벌 한류 플랫폼으로 키운다”고 말했다. 아직은 의지만 읽히고, 후속 행보는 보이지 않는다. 옥수수 해지를 요구하는 고객에게 “무료인데 왜 해지 하십니까” 라는 수준의 마케팅 답변이 그 예다.
'옥자'를 시작으로 넷플릭스 서비스를 이용할 생각이다. 그러고 나니 해외 플랫폼 종속 우려, 해외 거대 자본 종속 우려, 5G(세대) 시대 콘텐츠 부재 우려 등 모든 우려가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이른다. 소비자는 기다리지 않고, 기업이 움직일 땐 이미 늦은 경우가 태반이라는 걸 경험했다. 아이폰 등장에 우리가 어떻게 허둥댔는지 다시 생각할 때다.
2. [매일신문][매일춘추] 잉어찜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고등학생 때 부모님과 청송으로 1박 2일 짧은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조부모님과 6명의 고모, 삼촌들, 연년생의 오빠와 남동생을 가진 나에게는 이런 부모님과의 독대가 참으로 별스러운 기억인 셈이다.
물론 여행 목적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참으로 긴 부모님의 용무가 끝나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강가 ‘민물 매운탕’이라고 크게 적힌 흰색 간판 아래로 주말 저녁을 즐기러 나온 가족들의 왁자한 웃음소리와 자글자글 끓어오르던 매운탕의 열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의 메뉴는 잉어찜. 20여 년 전이라는 세월을 생각하면 꽤 비쌌던 3만원대의 특별 메뉴였다. 팔뚝만한 길이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잉어 위로 마늘, 고춧가루를 기초로 한 양념이 오르고 접시 바닥에는 잉어찜을 만들어내면서 자작하게 졸아든 국물이 깔렸었다.
젓가락으로 푹 찌르자 탄력이 느껴지는 흰 살을 양념에 찍어 입 안에 넣으니 고소하고 알싸한 맛이 입안 가득이었다. 생선을 뜯고 남은 양념을 국물 위로 떨어뜨려 비벼먹는 밥맛은 어찌나 좋았던지 보는 눈이 없었다면 접시를 핥아먹을 지경이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날의 기억을 끝으로 다시는 그 집에 가지 못했다.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고 시간이 흐르니 부모님도 그 집의 위치를 기억하지 못하셨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일부러 그 집을 찾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첫사랑은 찾지 않는 것이란 말처럼 지금의 그 집이 예전의 그 집은 아닐 테니까.
2남 1녀의 둘째로 태어나 특출난 재능이 없던 나에게 엄한 부모님은 항상 어렵고 먼 존재였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나는 난생처음 부부의 재치 있고 명랑한 고명딸 노릇을 하며 1박 2일을 보냈고 그날 그 음식은 부모님의 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의 방증이었다. 설령 그것이 그냥 동네 중국집의 자장면이었대도 나는 아마 모든 것이 좋았을 것이다.
서로 지켜야 할 선 없이 너무나 가까워져 무시하고 뒤로 미뤄두기 쉬운 것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다. 일견 찌질하고 궁상맞아 보이는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야 일상 속에 묻혀 의미 없이 사라져간 시간을, 사람들을 그리워하게 된다.
사랑은 표현하는데 의미가 있다. 항상 옆에 있는 듯 보이기에 더욱 따뜻한 눈빛으로, 다정한 행동으로 “넌 내게 특별한 사람이야”를 표현해야 하며, 추억을 쌓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 모든 에너지들을 아까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모든 사랑받았던 기억과 추억은 앞으로 닥칠 모든 힘든 시간에 마술처럼 나타나 다시 꿋꿋하게 나아갈 힘과 용기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3. [매일신문][야고부] 고드윈의 법칙
나치가 학살한 유대인이 몇 명인지는 설이 분분하다. 정설은 ‘600만 명’이다. 하지만 당시 나치의 ‘처리 능력’은 이를 감당할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600만 명은 과장됐다는 주장도 있다. 이 중에는 희생자가 75만 명이라는 설도 있다. 지금까지 가장 사실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되는 수치는 미국의 저명한 홀로코스트 학자 라울 힐버그가 계산한 510만 명이다.
학살의 정확한 규모는 불확실하지만, 나치가 유대인을 가스로 학살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반유대주의자들은 이것도 부정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치가 처음 기획한 유대인 문제 해결책은 마다가스카르 섬으로의 추방이었다. 그러나 이는 프랑스와 영국에 대한 승리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1940년 영국 침공이 무산되면서 흐지부지됐다.
그 뒤 나치는 집단 학살로 전환한다. 그 방법은 처음에는 총살이었다. 그러나 처형 속도가 너무 느렸고, 탄약 소모도 심각했다. 더 큰 문제는 계속되는 처형이 부대원들에게 주는 심리적 스트레스였다. 학살 주모자인 히틀러도 처형 장면을 보고 불쾌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밀폐된 트럭에 희생자를 몰아넣고 자동차 배기가스를 주입해 질식시키는 새로운 방법이 도입됐다. 하지만 이 또한 마땅치 않았다. 트럭이 희생자의 토사물과 배설물로 불결했을 뿐만 아니라 연료 소모도 심각한 문제였다.
그래서 나온 ‘최종 해결책’이 가스 살인이다. 그 수단은 공기에 노출되면 강력한 살상력의 독가스로 변하는 살충제 ‘치클론-B’였다. 이것으로 몇 명을 죽였는지는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미국 백악관 숀 스파이서 대변인이 이를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는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권이 민간인에게 가스 공격을 한 것을 비난하면서 “히틀러조차도 하지 않았던 화학무기를 사용했다”고 했다. 그는 서둘러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사퇴 요구까지 받고 있다.
그의 실언을 두고 ‘고드윈의 법칙’의 전형적 사례라는 소리도 나온다. ‘고드윈의 법칙’이란 1990년 미국 텍사스대 로스쿨 학생이었던 마이크 고드윈이 당시 PC통신 게시글을 분석해 도출한 결론으로 ‘논쟁이 장기화하면 상대방을 히틀러나 나치에 비유하는 발언이 나올 확률은 1(100%)에 수렴한다’ 는 것이다. 미국 정계에서는 그런 발언이나 비유를 회피하는 것이 불문율인데 스파이서가 이를 망각했다는 얘기다. 말이란 참으로 무섭다.
4. [한국일보][우리말 톺아보기] 꽃길
“포기 안 하려 포기해 버린 젊고 아름다운 당신의 계절, 여길 봐 예쁘게 피었으니까 바닥에 떨어지더라도 꽃길만 걷게 해 줄게요.” 꽃시절에 가시밭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를 생각하는 자식의 마음이 꽃처럼 예쁘다. 이렇게 노래한 가수에게 누군가 이런 글을 남겼다. “앞으로는 꽃길만 걸으시기를....” 이들에게 ‘꽃길’은 ‘꽃이 피어 있거나 꽃으로 장식된 길’이면서 ‘순탄하고 행복한 삶’이자 ‘승승장구하는 화려한 스타의 삶’이다.
‘꽃길’과 함께 떠올릴 수 있는 말로 ‘꽃보직’이 있다. “관직 생활 30년 동안 꽃보직으로 돌면서 꽃길만 걸어온 사람”은 별 어려움 없이 편안하고 화려한 관직 생활을 했을 것이다. ‘꽃보직’은 편안하되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만큼 화려하고 중요한 보직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꽃보직’은 편안하고 좋다는 뜻만을 지닌 ‘꿀보직’과는 다르다. 이처럼 우리말에서 ‘꽃’은 ‘화려함, 아름다움, 중요함’을 상기시킨다.
봄을 알리는 ‘꽃’은 신선함을 나타내는 데 쓰이기도 한다. ‘한창 젊은 여자의 나이’를 ‘꽃띠’라 하고, ‘젊고 활기 찬 시기’를 ‘꽃시절’이라 한다. 그런가 하면 ‘결혼한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을 ‘꽃잠’이라고도 한다. 젊고 신선함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이 말에 담겨 있다.
‘꽃’은 대상의 화려함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꽃단장’은 얼굴, 머리, 옷차림 등을 꾸미는 단장(丹粧)의 정도가 화려함을 뜻한다. ‘꽃분홍’과 ‘꽃자주’는 꽃 색깔과 관련 있는 ‘분홍’과 ‘자주’에 ‘꽃’을 붙여 색채의 짙고 화사함을 강조한 말이다. 그 자체로 화려하면서 가까이 있는 것마저 돋보이게 하는 꽃. 그런 꽃의 매력을 이 말들에서도 발견한다.
5. [한국일보][삶과 문화] 뒤늦은 ‘자아’ 이야기
우리 세대의 성장기에 ‘자아’라는 말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함께 도착했을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주인공 싱클레어가 스무 살 무렵 1차 세계대전의 전쟁터에서 부상당해 야전병원에 누워 있는 장면에서 끝난다. 밝고 안정된 기독교 가정의 모범생으로 자라난 소년은 영혼의 안내인이자 자기 자신 속의 ‘참된 나’를 은유하기도 하는 데미안과의 만남을 통해 세계의 어둠과 밝음을 함께 껴안는 성숙한 젊은이로 성장해 있다. 육신은 신음하고 있지만 그는 한 세계를 깨뜨리고 나온 것이다. 그는 이제 자기 안에서 우러나오는 내면의 명령을 좇아 자기 자신만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얼마 전 근 40년 만에 ‘데미안’을 다시 읽으면서 규율과 강제의 대상으로 나 자신을 좁혀야 했던 숨 막히는 중고등학교 생활이 떠올랐고, 그런 거라면 그 시절 싱클레어에 대한 턱없는 동일시도 얼마만큼 이해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다분히 낭만적인 진정성의 자기 서사는 그 후로도 꽤 오래 내게 영향을 미쳤지 싶다.
내 대학 시절의 상위 이념은 ‘존재의 의식 규정성’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당시의 정치 상황에서 이를 애써 의식화하는 가운데 오히려 ‘자아’의 공간은 다시 한 번 실제 이상으로 과장된 채 남아 있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 불가피한 간극에 도덕적 윤리적 자기 명령이 들어오고 그것이 ‘실천’이라는 강요 사항이 되면서 사회학자 김홍중이 말한 ‘진정성의 체제’는 또 다른 낭만적 이상화의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너무 거창했던 것이 아닐까. ‘데미안’도 그렇고 80년대도 그렇고. 그런 점에서는 자아의 신화를 해체하고 인간 주체성에 대한 첨단의 수술로 치달았던 서양의 현대 철학이 지난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 급속도로 유입되어 온 과정에도 일종의 ‘거대담론적’ 편향이 존재했다는 느낌도 든다. 그 끝없는 언어와 사유의 반성의 절차 다음에도 남아 있는 실체로서의 자아, 미약한 대로의 주체성을 붙들고 우리는 대낮의 거리에서 만나고 살아간다. 객관적이고 자명한 세계와 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다.
역사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윌리엄 M. 레디는 <감정의 항해>(김학이 옮김, 문학과지성사)에서 감정 표현이라는 이모티브(emotive)가 가진 ‘자아 탐색’과 ‘자아 변경’의 수행적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우리의 ‘자아’를 포스트구조주의가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간 ‘주체성’이나 데카르트적 이분법의 틀 바깥에서 재건하고 재개념화할 방법을 찾는다. 기표와 기의의 무한한 미끄러짐 사이, 그 자의성의 감옥에 우리가 갇혀 있기만 한 것은 아닐 테다.
우리는 수시로 우리의 느낌을 발화하며 산다. 이때 많은 생각 재료들 중 어떤 부분에 주의를 기울이고 선택하고 활성화하고 배열하는 작업을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미결정적일 수밖에 없는 그 ‘번역’ 작업은 바로 그 미결정성을 통해 감정의 자유와 감정의 항해를 가능하게 하며, 그런 한 이곳은 주체성이 자신의 장소를 발견하는 장이고, 자유와 역사적 변화가 다시 의미를 획득하는 장일 수 있다.
감상주의라는 감정 체제의 관점에서 프랑스 혁명기 공포정치 전후의 역사를 설득력 있게 재조명하는 가운데 전개되는 그의 ‘이모티브 이론’이 이렇게 거칠게 요약될 수는 없겠지만, 자유와 주체성의 장소를 인간 개인의 자아 안에서 되찾으려는 그의 이론적 노력은 실질적인 인간 역사와 현실의 감각 위에 있는 듯했고, 그 점이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생각해보면 ‘데미안’은 유례없는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으며 ‘자아’의 근거를 한 순간에 잃어버린 당시의 독일 젊은이들에겐 너무도 절실한 책이었을 수 있겠다. 싱클레어-데미안 놀이를 하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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