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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경향신문]
1. 새 정부 3주 만에 협치 거부한 한국당, 아직 정신 못 차렸나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정 상설협의체 불참을 선언했다. 여권이 한국당의 반대에도 이낙연 국무총리 인준안을 처리한 것으로 볼 때 여·야·정 협의체를 가동해봐야 문 대통령의 일방적인 국정설명회의 장이 될 게 뻔하다는 이유였다.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로 매주 여는 4당 원내대표 회동에도 불참할 뜻을 비쳤다. 취임 인사차 오겠다는 이 총리의 방문도 거절했다. 여야 협치가 새 정부 출범 3주 만에 제1야당의 거부로 시작도 못하고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야당이 정부와 여당을 견제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사청문회에서 공직 후보자들의 자질과 도덕성을 검증해 적격성을 따지는 것은 시민의 대표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무다. 그러나 어제 정 원내대표가 내세운 협치 거부 논리는 동의하기 어렵다. 정 원내대표는 기초 자료 제출 거부로 의혹이 해명되지 않았음에도 이 총리에 대한 인준을 강행처리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야당이 다 동의안 처리에 참여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여론조사 결과 시민의 3분의 2는 이 총리 후보자를 낙마시킬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나왔다. 시민을 설득하지 못한 채 총리 지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한 것은 누가 봐도 과도하다.
여야 협치는 시대적 요청이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협치가 아니고서는 당면한 국가적 위기와 산적한 현안을 풀어나갈 수 없다는 현실에는 한국당도 동의하고 있는 바다. 박근혜 국정농단을 지켜본 시민들은 당리당략과 진영 논리를 뛰어넘는 새 정치를 갈구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당은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대여 공세, 반대를 위한 반대에만 몰두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가 90% 가까이 되는데도 잘한 게 하나도 없다는 투다. 이렇게 묻지마 비판으로 일관하는 한국당에 지지를 보낼 이성적 시민은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인수위를 구성할 틈도 없이 국정운영을 맡았다. 이런 비정상적 상황을 초래한 것은 다름 아닌 한국당이다.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그에 대해 자성·자숙하는 게 옳다. 그리고 정부·여당을 향해 견제할 것은 견제하고 협력할 때는 협력하며 민생을 챙기는 새 정치에 나서야 한다.
이런 시민적 기대는 외면한 채 총리 인준 처리 방식을 꼬투리 잡아 협치를 거부하는 것은 한 세대 전의 낡은 수법을 쓰는 못난 야당의 길로 가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시민은 한국당이 집권할 때도 그와 다르지 않았음을 잊지 않고 있다. 정부 발목만 잡아도 야당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발상이 아니라면 즉각 태도를 바꿔야 한다.
2. 일자리 100일 계획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어제 ‘일자리 100일 계획’을 내놨다. 경제·사회·행정 시스템을 일자리 만들기에 적합한 체질로 전환, 일자리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소득주도 성장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 계획을 재확인하고, 공공 및 민간 부문 일자리 지원방안, 근로시간 단축 특별조치,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 등 13대 과제도 내놨다.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이 설치되고 11조원 안팎의 추경 준비에 이어 100일 계획안의 개요가 나온 것은 ‘일자리로 시작해 일자리로 완성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실험이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암울한 고용상황에 절망하는 청년층, 언제 내쳐질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중년층, 은퇴 후에도 일해야 하는 노년층을 보면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우선 정책은 불가피하고도 당연한 것이다. 일자리 부족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최대의 난제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정부 당시 부처별로 중구난방식으로 진행됐던 일자리 정책을 한 묶음으로 정리한 것은 진일보한 대응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이 고착화되는 상황에서 공공부문부터 일자리를 늘려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면서 민간부문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발상도 선택할 만한 가치이다.
다만 일자리 창출은 기업 몫이라는 지적도 유념할 필요는 있다. 위원회도 이를 의식해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지원책을 내놨지만 백화점식 나열에 그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일자리 창출을 놓고 벌이는 정부와 재계 간의 불협화음도 볼썽사납다.
무엇보다 “사회 각계의 정규직 요구로 기업들이 힘든 지경”이니 “비정규직 과다 고용 기업에 대한 부담금 부과는 경영에 부담을 줄 뿐”이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재계의 접근법은 실망스럽다. 이는 기업들이 정부의 지원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뒀음에도 분배에 소극적이었다는 시민들의 냉엄한 시각을 도외시한 대응이다. 기업이 사회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재무적 가치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도 창출해야 하는 시대이다.
정부도 기업과의 대립 구도를 고착화해서는 안된다. 일자리를 늘리고, 질을 높이는 작업은 재계와 노동계, 정부가 소통을 통해 조율을 거듭해야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사안이다. 공존의 방법을 모색하지 않고서는 진전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서울경제]
3. 4년 전 폐기된 선박금융공사 신설 신중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22회 바다의 날 행사에서 해양선박금융공사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공사 설립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과거 수차례 검토됐던 선박금융공사의 확장판이다. 선박금융에 그치지 않고 해양산업 전반에 걸친 금융 인프라를 제공하는 국책금융기관인 셈이다. 선박 전문 국책은행 설립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줄곧 필요성이 제기돼온 사안이다. 대형선박 한 척 건조에 수천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므로 선박금융에 특화한 국책은행이 있어야 해운과 조선산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그럼에도 공사 설립이 번번이 무산된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상 금지보조금 시비에 휩쓸릴 수 있다는 현실적 제약 때문이다. 4년 전 박근혜 정부는 대선 공약임에도 결국 무역분쟁 소지 때문에 없던 일로 해버렸다.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정부가 100% 지원하는 공사를 세우면 WTO보조금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해양수산부는 조선 등 특정산업에 국한하지 않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지만 보호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마당에 안심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해양산업 전체로 대상을 확대하더라도 선박에 자금 지원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 신설은 신중에 신중을 기할 사안이다. 금융공기업처럼 수조원의 혈세 투입이 뒤따른다면 더욱 그렇다. 한번 만들면 기능이 다해도 좀처럼 없애기 어렵고 기존 국책금융기관과 업무중복 가능성도 있다. 설령 신설 공사에 독점적 지위를 부여한다 해도 국책은행의 비효율성을 본다면 믿음이 가지 않는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와 부실로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무능이 다시 한번 드러났지 않았는가. 설립 명분만 대자면 못 만들 공공기관이 없다. 해양산업의 논리만 보지 말고 통상분쟁과 금융경쟁력·산업형평성 측면에서 종합적이고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한국일보]
4. 지구온난화 대처에 찬물 끼얹는 美 파리 협정 탈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 지구온난화에 대처하는 국제사회의 약속인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트럼프가 지난해 대선 기간 이미 파리협정 탈퇴를 공언해 예상된 일이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수위를 다투는 미국이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는 각국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어서 충격이 크다.
파리협정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빙하 감소와 가뭄, 홍수 등의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국제사회가 교토의정서에 이어 일궈낸 결실이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 온도 상승을 적어도 2도 아래로 억제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핵심이다. 오랜 논의 끝에 195개국이 2015년 서명해 지난해 발효된 이 협정에서 각국은 21세기 후반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0)로 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자율적으로 배출량 감축 계획을 세워 공표하고 이 목표를 5년마다 재검토해 수정ㆍ이행해야 한다.
파리협정이 교토의정서에서 진일보한 것은 온실가스 배출이 급격히 늘어나는 중국 등 개발도상국을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시킨 점이다. 이런 결실의 상당 부분은 지금 트럼프 정부처럼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했던 부시 정부와 선을 긋고 온난화 대처에 적극 나섰던 오바마 정부의 리더십 덕분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5년까지 2005년 대비 26~28% 감축하겠다고 한 오바마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사실상 중국의 탄소배출권거래제 도입, 온실가스 감축 계획 등을 끌어냈다.
다행히도 트럼프 정부의 정책 변경을 우려한 유럽연합(EU)과 중국이 파리협정을 이행하고 화석연료 사용 감축 내용을 담은 새로운 선언문에 합의할 것이라고 한다. 파리협정이 “되돌릴 수 없는 약속”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대체에너지 사용 확대를 위한 여러 정책을 빠르게 추진하자는 내용이다.
세계 최대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이 있는 EU는 중국에 자금을 지원해 올해 안에 자체 탄소배출권거래체제를 구축하도록 돕는다. 전기차 상용화와 에너지소비효율 표시제 도입, 녹색기술 혁신을 위한 연구 분야 협력과 재생에너지 성장 촉진, 전력망 상호 연결 등을 위해 협력하고, 파리협정이 유지되도록 빈곤국도 지원키로 했다.
이런 노력에도 향후 개도국들이 미국의 정책 변화를 핑계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낮추는 등 기후변화 대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당장 미국의 탈퇴를 어찌할 수는 없지만 향후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미국을 향해 반온난화 정책을 재고해주도록 압박을 가해야 한다. 협정 기조에서 이탈하는 개도국이 나오지 않도록 관심을 놓치지 않는 일도 중요하다.
[한겨레]
5. 공무원 증원, '공공서비스 확충'이 핵심이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1일 ‘일자리 100일 계획’을 발표했다. 대통령 취임 뒤 100일 안에 국정 시스템과 재정·세제 등 각종 정책수단을 일자리 중심으로 재설계하고, 정부 조처만으로 추진 가능한 과제들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정부는 다음주에 일자리 창출 사업에 예산을 집중 배정한 1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는 정부의 정책 의지를 읽을 수 있어 반갑다. 하지만 그 가운데 공무원 증원은 ‘일자리 창출’을 앞세우기보다 ‘공공서비스 확충’을 목표로 삼고 신중하게 추진 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무원 증원 17만4천명 등 모두 81만개의 공공부문 일자리를 임기 중에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81만개란 숫자는 공공부문 일자리 비중을 3%포인트 높인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그러나 3%포인트가 81만개라는 근거도 부실하거니와, 왜 3%포인트를 올리자는 것인지도 모호하다. 일자리 창출이란 화두는 놓치지 않되, 숫자에 지나치게 얽매이지는 말아야 한다.
정부는 우선 올해 하반기에 공무원을 1만2천명 증원한다. 소방직, 경찰, 사회복지, 부사관을 1500명씩 추가 선발하고, 생활안전 분야와 교사를 3천명씩 늘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 증원 목표 17만4천명의 10%에도 미치지 않으니 실행에 옮겨도 잘못될 일은 없을 것이다. 사회복지사나 소방관 등은 정원도 못 채우고 있어 증원이 시급한 형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년, 내후년에도 공약한 목표 숫자를 맞추려고만 한다면, 급하지 않은 공공서비스 확충에 많은 재정을 투입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공무원을 증원하려면 어떤 공공서비스를 얼마나 더 확충할 필요가 있는지부터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따른 재정 소요는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 설득력 있는 중기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옳다.
공공부문의 고용 조건은 민간부문에 견줘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다. 이에 따라 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 공기업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인재가 효율적으로 쓰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려가는 동안 공공부문에 대한 보상 확대를 억제하여, 민간부문과 보상 차이를 좁혀가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연합뉴스]
6. '평화로운 한반도' 비전 제시한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 한반도 평화의 획기적인 전기를 만들겠다"고 1일 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제12회 제주포럼 개막식 영상축사에서 "평화로운 한반도는 꿈이 아니다"라면서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위해 완전히 새로운 구상, 담대한 실천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외국 역할론에 기대지 않고 한반도 문제를 대한민국이 주도해 나가겠다"면서 "아시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앞장서서 열어 가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담대한' 구상은,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급반전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국제사회와 공조하는 대북 제재에 주력했다면 새 정부의 정책 기조는 대화와 협력으로 봐야 한다. 문 대통령의 이날 축사 발언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대북정책 비전인 것 같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 선회로 남북 관계의 해빙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새 정부는 이미 민간단체들의 인도적 대북 지원을 허용했다. 6.15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남측위)의 방북 가능성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통일부는 이날 남측위의 대북 접촉 신청을 승인했다. 이 단체는 팩스로 6.15 공동행사 일정과 장소 등을 북측과 협의한 뒤 정부에 방북 신청을 할 예정이다.
통일부는 "행사의 목적, 내용, 장소, 형식, 참여 인물 등 여러 변수가 있다"면서 남측위의 신청서를 보기 전에 승인 여부를 말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민간단체의 대북 접촉과 방북 신청에 대해 대북 제재의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유연하게 검토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 브리핑에서다. 남측위의 방북 신청 가능성을 염두에 둔 설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북 제재의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라는 원칙론보다 '유연하게 검토한다'는 부분의 확장성에 눈길이 간다. 남측위가 정부 승인을 받아 북한을 방문하게 된다면 얼어붙었던 남북 대화의 봇물이 터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제주포럼 축사에서 어찌 보면 꿈 같은 한반도의 미래상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전쟁위협이 사라진 한반도에 경제가 꽃피우게 할 것"이라면서 "남북 경제공동체가 '한강의 기적'을 '대동강의 기적'으로 확장해 '한반도의 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남북 관계 개선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면 남북 관계에 대해 이렇게 가슴 벅찬 청사진을 국민 앞에 제시할 수도 있어야 한다. 꿈은 실현 가능성을 떠나 그 자체만으로 큰 가치가 있다. 하지만 현실을 도외시한 꿈은 공허하다. 당장 우리가 극복해야 할 현실에는 새 정부 출범 후 매주 한 번씩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북한이 버티고 있다. 유엔의 대북 제재도 결정적인 순간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정부가 지금의 분위기로 가면 머지않은 장래에 직면할 수도 있는 현실의 높은 장벽이다.
북한과 접촉을 하더라도 구체적인 성과를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국민과 국제사회의 관계 개선 기대감을 먼저 높여야 한다. 급한 마음을 누르며 속도를 조절하고 주변 여건도 숙성시켜야 한다. '쇠뿔도 단김에'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단호함은 조급함의 다른 얼굴일 수 있다. 북한 문제를 푸는 데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조급한 마음이다.
[조선일보]
7. 석연치 않은 청와대 수석 내정 취소
청와대가 안현호 전 차관의 일자리 수석비서관 내정을 취소했다. 일자리 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했던 일자리 문제를 전담하기 위해 청와대에 신설된 자리다. 안 전 차관은 내정 상태에서 청와대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만두게 됐다. 수석급에서 이런 일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안 전 차관에 대해서는 그간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해 왔다. 이명박 정부에서 지식경제부 1차관, 무역협회 상근 부회장을 지낸 그가 친(親)기업 인사라는 게 이유였다. 한국노총은 지난 26일 문 대통령에게 인사 재고(再考)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한국노총은 소속 인사들이 현재 인수위 기능을 하고 있는 국정기획자문위에 참여하는 등 새 정부와 밀착돼 있다. 이번 내정 취소가 노동계 요구를 들어준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런 지적이 부담이 된 때문인지 이용섭 일자리위 부위원장은 1일 "(노동계 반발 때문이) 전혀 아니고 검증에서 문제가 나왔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문제가 있으면 인사를 철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공개적으로 검증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밝혀버리면 당사자 명예는 무엇이 되는가. 이런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청와대가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취소 사유는 밝히지 않는 것이 자신들이 발탁했던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청와대는 이날까지 침묵하고 있다.
안 전 차관의 의혹에 대해 아직 어떤 보도도 나온 것이 없다. 청와대의 내정 취소가 불가피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검증에 걸렸다'는 것이 내정 취소 사유의 전부이겠느냐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론 노동계 반발 때문에 취소하면서 검증 때문이라고 둘러대는 것이라면 심각한 인권 침해다.
[서울신문]
8. '사드 보고 누락' 아직도 밝혀야 할 것 많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4기 보고 누락과 관련, 청와대가 어제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불러 조사했다. 청와대는 이번 사태는 실무자의 단순 실수가 아닌 ‘고의 보고 누락’으로 결론지었다.
국방부가 지난 25일 국정기획위 업무보고를 앞두고 최초 보고서에 들어 있던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반입 사실을 최종 보고서에서 삭제했고, 26일 4기 추가 반입을 묻는 정의용 신임 국가안보실장의 질문에 한 장관이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동문서답을 하는 등 명확한 사실 보고를 외면한 채 은폐하려 한 정황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사실상 은폐로 결론을 내린 만큼 이번 일이 단순 조사로 끝나지 않고, 사드 배치 결정 과정에 대한 전반전인 조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은폐 축소’ 청문회를 추진하기로 했다. 김 전 실장과 한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 사드 관련 외교안보 라인을 청문회 증인으로 세우겠다고 한다.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뒤 한 장관의 뉘앙스의 차이라느니, 1개 포대가 6기 발사대로 이뤄진 만큼 4기가 추가 반입된 것은 다 아는 것 아니냐는 식의 발언은 무례하기 짝이 없고 오만하기까지 하다. 사드의 ‘사’ 자만 나와도 우리 내부적으로는 국론이 갈리고,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자국 이익을 지키려고 눈이 벌건 상태다. 하극상이자 국기문란 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고의 보고 누락 경위는 철저히 밝혀져야 하며,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 책임을 엄히 물어야 한다. 의도적으로 은폐했다면 핵심은 ‘누가’ ‘왜’ 그랬느냐 하는 것이다. 등장하는 인물도 여럿이고, 각종 의혹이 산처럼 쌓여 가고 있는 만큼 신속한 수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질질 끌 경우 국정 운영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걸림돌이 될 게 뻔하다. 그렇다고 만천하에 드러내놓고 광고하듯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이번 일은 국가안보와 직결된 사안인 만큼 외과수술하듯 환부만 확실하게 도려내야 하며, 관련국들의 우려 또한 고려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엊그제 더 빈 미 상원 민주당 원내총무를 만난 자리에서 “진상조사는 국내 문제이지 기존의 결정을 바꾸려거나 미국에 다른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한·미 동맹을 깨지 않을 거라면 정권이 바뀌었다고 양국이 합의한 기존 결정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 갈등을 해소하고 국론을 하나로 모으려면 절차적 정당성 확보 또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이달 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사드 문제는 핵심 의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제 정 안보실장이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의제 조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이 균형 및 실리외교의 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매일경제]
9. 쿠팡·SK브로드밴드에서 드러난 정규직 전환의 숨겨진 딜레마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어제 '일자리 100일 계획'을 내놓았다. 요지는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모아진다. 정규직화와 관련해 비정규직 과다고용 대기업에 대한 고용부담금 도입과 정규직 전환 시 세제지원 등 당근과 채찍 정책이 모두 담겨 있다. 지난해 근로자의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규직화는 일자리 정책에서 소홀할 수 없는 사안인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걸림돌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최근 협력업체 직원 5200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한다고 밝힌 SK브로드밴드와 '쿠팡맨'으로 알려진 배달기사를 정규직으로 채용했던 쿠팡이 직면한 딜레마가 이런 사례에 속한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달 21일 초고속인터넷과 인터넷TV 설치 관련 위탁업무를 맡고 있는 103개 협력업체 직원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새 정부 일자리 정책에 부응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비정규직인 협력업체 직원의 고용을 안정시키고 처우를 개선함으로써 고객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선의(善意)에서 출발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일부 협력업체 대표는 중소기업 기술 인력을 빼가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어제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 거래행위 신고까지 했다.
쿠팡도 비슷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쿠팡은 배달기사를 정규직화하는 시스템을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비정규직으로 채용한 뒤 6개월마다 심사를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식이었다. 쿠팡의 실험은 모범적 고용 사례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일부 전·현직 쿠팡맨들은 지난 3월 말 평가제도가 바뀔 때 부당하게 임금이 삭감됐고 사측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말 청와대에 탄원서까지 제출했다.
두 사례는 산업 현장에서 정규직화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업종과 기업의 특성을 무시하고 무조건 정규직화를 추진하다가는 갈등과 혼란만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잡음과 부작용을 줄이려면 충분한 노사 협의와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게 필수적이다. 정부가 조급하게 일자리 정책을 밀어붙이지 말고 개별 기업 입장을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앙일보]
10. 정부와 경제단체, 갈등에 앞서 머리부터 맞대야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는 경제정책(J노믹스)에 대해 정부와 경제단체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양측의 대립이 표면화된 것은 경영자총연합회 김영배 부회장이 최근 경총 포럼에서 “사회 각계의 정규직 전환 요구로 기업들이 매우 힘든 지경”이라고 지적하면서 본격화했다. 이를 비판으로 받아들인 문 대통령은 “경총은 비정규직으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당사자로서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즉각 반박했고,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은 “압박으로 느낄 때는 느껴야 한다”며 대립각의 수위를 높였다.
문제는 정부의 강경한 반응으로 인해 정부와 재계 사이에 건설적 대화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일자리를 비롯한 경제활성화 문제는 ‘노사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현실적 대안을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재계가 분위기에 눌려 침묵해서는 노사정 대화가 진전되기 어렵다. 어제는 문재인 정부의 30개 경제 정책에 대해 재계의 고충을 밝히고 의견을 제시한 보고서가 공개됐지만 경제단체는 “공식 문서가 아니다”면서 꼬리를 내렸다. 앞서 경총은 『비정규직 논란의 오해와 진실』이라는 책자를 배포할 계획을 철회했다.
그 사이 일자리 현장에선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비정규직을 대거 정규직화했던 쿠팡은 전·현직 직원 75명이 부당해고를 이유로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제출했다. 쿠팡은 거액의 적자에 따른 회사 내부의 노사 문제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과 맞물려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SK브로드밴드는 인터넷 설치기사의 정규직화에 나섰으나 100여 협력업체가 “사업체를 잃게 됐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이같이 일자리는 드라이브만 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마침 일자리위원회는 어제 청년구직수당 신설, 시급 1만원 인상, 근로시간 52시간 단축을 추진하고 신산업 규제를 확 걷어내는 것을 골자로 한 일자리 100일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일자리 창출의 주체인 기업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 재계도 의견이 있으면 떳떳이 건의해야 한다. 그래야 합리적인 일자리 창출 방안이 도출되고 기업과 근로자의 상생도 가능할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국민일보][색과 삶] 홍채
‘눈은 마음의 창’이다. 외부로 돌출된 뇌의 일부가 눈이다. 그래서 눈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다. 여러 노랫말에서 보듯이 연인의 눈동자에 대한 기억은 오래 남는다. 마음이 눈동자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은 포유동물에 비해 클 뿐만 아니라 움직임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눈동자를 보고 심리를 알아차리기도 한다. 눈을 마주 보는 행동은 마음을 주고받는 소통방식이다. 젊은이들 사이에 서클렌즈 착용이 유행하는 것도 크고 아름다운 색깔의 눈동자를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의 결과물이다.
사람의 피부와 머리카락, 눈동자의 색은 멜라닌 색소에 의해 결정된다. 햇빛이 강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민족은 자외선 보호막인 멜라닌 색소로 인해 어두운 피부색을 띈다. 이러한 색소의 양과 분포에 따라 눈동자의 색깔 역시 다양하게 나타난다.
세계인의 절반은 갈색 눈동자이고 유전적으로 열성인 파랑 눈동자가 그 다음으로 흔한 편이다. 북유럽 민족에 보이는 초록과 회색 눈동자는 색소가 부족한 경우에 해당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노랑 눈동자와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서양인도 있다. 극단적으로 색소 결핍이 생기면 토끼 눈처럼 혈관이 노출되어 빨간 눈동자가 된다. 이러한 눈동자 색깔은 여러 가지 유전인자가 결정한다.
1980년대에 미국의 안과의사가 홍채로 개인을 식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이후로 지문, 얼굴, 혈관, 홍채를 이용한 생체인식 기술이 빠른 발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아기 때 형성된 홍채 패턴은 평생 변하지 않고 복제가 거의 불가능하여 보안성이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상용화한 스마트폰이 삼성 갤럭시S8이다.
스마트폰에는 사생활 정보가 가득 담겨 있어 보안기능의 장착은 필수 요건이 되었다.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홍채 인식으로 금융 결제가 가능한 갤럭시S8이 독일 해커들에 의해 보안이 뚫렸다고 하니 허점을 파고드는 기술 또한 흥미롭다.
2. [서울신문][열린 세상] 네안데르탈인에서 인공지능의 시대로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문명의 등장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이 문명의 종말이다. 인더스, 마야, 잉카 등 수천년 전에 고도의 문명이 발달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예가 비일비재하다. 인더스 문명의 경우 과거에는 초원에서 밀려온 아리안족의 침략으로 몰살당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갑작스런 물길의 변화로 교역로가 끊기면서 인더스 문명의 사람들이 거대한 문명을 버리고 숲으로 살길을 찾아 사라졌기 때문이다. 20만년 전 번성했던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원인은 지나치게 추운 환경에 적응했던 그들의 특성에 있다고 한다. 추운 환경에 최적화된 네안데르탈인의 진화가 정작 온난해진 기후에서는 오히려 단점이 돼 현생 인류와의 생존 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아마 후대의 역사가들은 지금을 커다란 문명의 전환기로 기록할 것이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브렉시트와 알파고의 쇼크로부터 시작해 한국 대통령의 탄핵과 미국 트럼프의 당선으로 마무리됐다. 그 와중에 러시아와 중국은 다시 부상하고,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미국 중심의 세계 판도를 공식적으로 거부하는 등 엄청난 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생활에는 제4차 혁명이라는 새로운 문화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사람만큼 능청맞게 번역하는 구글 번역기를 쓰다 보면 문득 수십년간 힘들게 익혀 온 외국어 지식이 곧 쓸모없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을 느낄 정도다.
전환기의 생존 전략은 결국 정보의 다양성과 인간 본성에 대한 확신에서 시작한다. 인류는 새로운 기술과 문화에 따른 변혁을 겪어 왔다. 그리고 그 시기에 지나치게 이전의 사회나 문화에 머물러 획일화된 시스템을 유지하면 네안데르탈인처럼 낙오될 수 있다. 지난 60여년간 한국 사회는 미국이라는 하나의 정점을 중심에 두고 형성됐고,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해 왔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판도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한국보다 일본에 더 가까운 게 사실이다. 그 와중에 유라시아를 대표하는 중국과 러시아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세력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정치, 외교, 경제 등 모든 시스템은 이러한 변화에 지나칠 정도로 둔감하다.
변혁기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결국 변화에 대한 대처 능력이고, 그것은 바로 다양한 정보력에서 나온다. 100여년 전 시베리아의 수도였던 톰스크는 철도가 등장할 때 말과 마부의 기득권을 생각해 철도를 반대했고, 이후 쇠락의 길을 걸어서 변방 도시로 전락하게 됐다. 한국의 경우 기성 세대들은 고도성장의 기억을 어제처럼 하고 있다. 그 기억은 소중하지만, 그사이에 바뀌어 버린 세상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화기가 발명되면서 사람들은 굳이 이동을 하지 않아도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영상매체의 발달로 세계 각국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고, 관광 수요는 매년 기하급수로 증가하고 있다. 기술의 발달로 편리함은 증가해도 인간의 본성을 바꾸고 대체하는 기술은 없기 때문이다.
구글 시대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전방위적으로 우리 생활에 편리함을 줄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과 감성이다. 변혁기에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미신이나 허황한 사실을 통해 위안을 얻으려 한다. 요즘 유독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르고, 허황하고 부풀려진 고대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많아진 이유다. 네안데르탈인에서 인공지능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역사의 변혁이 있었다.
그사이를 돌아보면 허황한 미신이나 과거의 영화에 집착하며 주변 사회와 환경의 변화를 외면한 집단이 살아남은 적이 없다. 이만큼 분명한 미래에 대한 예언이 있을까. 지난 몇 달간 우리는 세계의 어느 나라도 경험하기 어려운 변혁을 거치고, 또 그 과정에 서 있다. 변화의 시대일수록 우리의 삶을 지켜 내는 것은 결국 다양한 변화에 대한 유연성, 그리고 인간성의 확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 미래에 대한 필요한 답변은 바로 고대 문명의 멸망 과정에 있는지 모른다.
3. [세계일보][김용희의 음식문화여행] 한 그릇의 허기를 위하여
밥은 한국인이 만나는 최초의 욕망이다. 태어나서 숟가락을 쥐고 있을라치면 어김없이 앞에 밥그릇이 놓여 있다. 인생이란 결국 제 스스로 밥을 떠먹는 일이다. 아이는 자라면서 스스로 허기를 달래고, 또 달래기 위해 달려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란 것을 알게 된다. 인생의 욕망이란 곧 밥의 욕망인 것이다. 요즘이야 밥이 그야말로 ‘찬밥’ 신세지만 과거 얼마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천지간에 백년가약을 맺고 헤어진 야속한 이도령 때문에 춘향 모는 오늘도 정화수 한 동이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린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무남독녀 외딸 춘향이 죽게 생겼다. 그런데 웬걸, 걸인 중에 상걸인이 다 되어 백년지객 사위 이몽룡이 나타난 것이다. 춘향 모는 기가 막힌다. “쏘아논 화살이요 엎지른 물이 되어 수원수구하겠나마는, 내 딸 춘향을 대체 어찌 할라는가.” 춘향 모는 홧김에 이도령의 코를 물어 떼려 하는데, 어사 짐짓 춘향 모 거동을 보려고 한마디한다.
“시장하여 나 죽겠네, 나 밥 한술만 주소.” 향단이는 춘향 모에게 아가씨를 봐서도 괄시하면 안 된다며 부엌으로 냉큼 달려간다. 먹던 밥에 풋고추, 절인 김치, 양념을 넣고 단간장에 냉수를 가득 떠서 소반에 받쳐 들고 온다. 어사또 반겨하며 “밥아, 너 본 지 오래다” 한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춘향 모는 빈정대고 향단은 흐느끼지만 능청을 떨며 먹는 이도령이 독자는 유쾌하기만 하다.
다문화가정에 한국음식을 소개할 때 가장 기본적인 세 가지를 먼저 맛보게 한단다. 밥, 김치, 장이다. 그중에서 밥이 최고다. 뭐니 뭐니 해도 밥맛이 제일이고, 뭘 먹어도 밥만 한 보약이 없다. 지금이야 혼족들이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고 살지만, 사실 밥짓기에는 얼마나 정성이 들어가는지 모른다.
쌀을 양푼에 담아 씻을라치면 보얗게 쌀물이 흘러나온다. 씻은 첫 물을 재빨리 버리고, 두 번 세 번 씻은 후 쌀을 불린다. 20∼30분 불린 후 체에 받쳐둔다. 손등으로 물의 양을 잰 후 솥에 쌀을 안친다. 요즘에는 계량컵으로 물 양을 재기도 하지만 손등으로 하는 게 언제나 딱이다. 그렇게 하여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고슬고슬한 고봉밥 한 그릇이 지어진다. 밥을 먹기 위해 첫술을 뜨는 그 순간은 우주인이 달에 첫발을 내려놓는 순간처럼 위대한 역사의 시작이다. 수고한 인생에 주는 따뜻한 위안이다.
하지만 요즘은 밥 먹는 일이 다 심드렁하기만 하다. 편의점 도시락 밥에다 혼자서 먹어치우는 햇반에다…. 시간 도둑은 어느새 밥 한 그릇 먹을 시간마저도 훔쳐가 버렸다. 제 몸에 고봉밥 한 그릇 바칠 봉양의 마음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밥을 짓는 정성은 사라졌다. 밥은 빵으로 대체되고, 시리얼로 대체됐다. 혹은 한 컵의 우유나 주스로. 해서 정성껏 지어진 밥 한 그릇을 받고 보면 모진 삶을 산 사람은 한결같이 엄마를 생각하며 울먹일 수밖에 없다.
한 그릇의 밥을 위해 비겁해지고 한 그릇의 밥을 위해 한 줄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한 그릇의 밥 위해 친구의 뒤통수를 치기도 하고, 한 그릇의 밥을 위해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기도 해야 한다. 한 그릇의 위로를 위해 한 그릇의 고결함을 위해 오늘도 우리는 외친다.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밥 먹고 합시다.”
4. [서울신문][금요 포커스] 4차 산업혁명과 법제개혁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거세다. 세계 각국은 관련 핵심기술을 선점하는 등 발 빠르게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고 있다. 새로운 먹거리 발굴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4차 산업혁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천연자원은 부족하지만 정보기술(IT)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회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4차 산업혁명을 대선 공약의 하나로 제시하면서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대폭의 규제개혁을 약속하였고, 대통령 직속으로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4차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맞이하려면 정부 역할의 변화가 필요하다. 개입이 아닌 촉진과 지원을, 지시가 아닌 자율과 협조를 근간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기술 발전을 가로막는 법제도를 개혁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주도하는 변화를 수용하고 이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래 지향적이고 합리적인 규제개혁과 법제개혁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규제개혁과 법제개혁의 성공 필수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네거티브 규제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은 규제개혁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네거티브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을 약속했다. 단순히 규제방식만 네거티브로 전환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고 이에 앞서 규제에 대한 재평가와 재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가령 일정한 요건을 갖추어야 허가할 수 있다고 포지티브 규제 방식으로 규정하던 것을 법령에 열거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허가해 주는 네거티브 규제방식으로 전환했다고 하자. 이런 경우 네거티브 규제방식으로 열거된 허가항목에 ‘법령의 목적에 적합할 것’이라는 추상적인 요건이 들어가게 되면 실제 현장에서 집행할 땐 종전의 포지티브 방식과 차이가 없게 된다.
둘째 ‘규제를 정교화’해야 한다. 선진국에도 규제는 존재하고 분야에 따라서는 우리보다 더 강하게 규제하는 나라도 많다. 기업을 힘들게 하는 것은 강한 규제 자체가 아니라 규제의 불확실성과 비합리성인 경우가 많다. 규제의 정교화를 통해 규제를 합리화하고 예측 가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예를 들면 IT 기술이 융합된 친환경 전기자동차나 세그웨이, 전동킥보드 등을 자전거도로나 공원 또는 인도에서 이용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는데 무조건 안 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호주 퀸즐랜드의 경우와 같이 속도제한을 통해 안전장치를 확보하면서 일정한 지역에서 탈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방안도 규제의 정교화 차원에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법을 통한 규제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진전될수록 새로운 사업모델이 등장하고 기술발전 속도도 빨라진다. 드론, 자율주행 자동차 등 신기술에 대해 입법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보다 업체의 자율규제에 우선 맡겨두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새로운 기술에 기반한 사업이 기존 규제와 충돌하면 규제를 일시 정지하고 모래밭처럼 뛰어놀 수 있게 한 영국의 ‘규제 샌드박스’ 제도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만 하다.
마지막으로 ‘착한 규제’는 유지되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규제를 철폐할 것이 아니라 근로환경 보장, 안전 확보, 불공정 행위 금지 등을 위해 착한 규제를 유지하거나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규제개혁은 과거 정부도 늘 주장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규제기관의 양보가 전제돼야 하는데 권한과 조직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어 양보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양보는 생존을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다. 지난 몇 달간 우리 사회를 달구었던 탄핵과 대선 과정에서 나타난 국민의 에너지를 바탕으로 작은 이해관계를 극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새 정부에서는 구호가 아닌 진정한 규제개혁과 법제개혁을 통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5. [한겨레][최재봉의 문학으로] 하루키이즘 또는 하루키 문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가 다음달 초 한국에서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20억원으로까지 추정된다는 선인세를 두고 뒷말도 나왔지만, 출판사도 이윤을 좇는 기업인 만큼 그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비평이 제 역할을 하는지 여부는 따로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지난주 열린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나온 두 원로 문인의 발언은 하루키 문학을 둘러싼 해묵은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하루키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골 빈 대학생들이 하루키를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으며, 소설가 현기영도 “하루키의 소설은 문학이라기보다는 소비향락 문화의 아이콘”이라고 주장했다.
이 발언들이 전해진 뒤 에스엔에스에서는 두 원로를 비난하고 나아가 한국 문학을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요지는 이들이 낡은 문학관을 고수하면서 하루키로 대표되는 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일본 문학에 대한 한국 문학의 열등감과 원한의 표출이라는 비아냥에다 ‘한국 문학이 망한 이유를 알겠다’는 식의 극언까지 나왔다.
에스엔에스 사용자가 하루키 독자층과 겹친다고는 해도 거의 일방적인 에스엔에스 여론을 보면서는 마음이 불편했다. 마치 하루키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것은 쿨하고 세련된 태도인 반면 그를 싫어하고 비판하는 것은 촌스러운 노릇이라는 분위기였던 것. 하루키를 좋아하는 것이 자유인 만큼 그를(정확히는 그의 소설을) 싫어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 비판이 합리적이기만 하다면 말이다.
“골 빈 대학생”이라는 식의 ‘막말’이 아쉽기는 하지만, 하루키 문학에 대한 유종호의 비판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2011년에 낸 책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에서도 그는 “(하루키 문학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학의 이상에서 너무나 동떨어진 하급 문학”이라고 주장했다. 조정래와 김원우 같은 작가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하루키 비판 목소리를 낸 바 있다.
하루키를 싫어하는 게 한국의 원로 문인들만도 아니다. 역시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한 일본의 40대 작가 히라노 게이이치로는 한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하루키의 글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의 책을 읽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히라노와 하루키의 중간 세대인 소설가 시마다 마사히코도 과거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하루키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파울루 코엘류나 스티븐 킹도 그 상을 받지 말란 법도 없지 않겠나”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하루키 소설에서 보이는 생활 부재와 역사의식 빈곤, 왜곡된 여성상 등에 대한 비판은 단골 레퍼토리다.
올해 초 나란히 번역 출간된 일본 비평가들의 책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와 <문단 아이돌론>은 각각 하루키에 대한 지지와 비판을 담았다. 이 중 <문단 아이돌론>의 지은이 사이토 미나코는 하루키 소설이 컴퓨터 게임을 닮았으며 “독자의 참여를 부추기는 인터랙티브 텍스트”로서 “퍼즐이나 게임을 풀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고 지적했다.
2013년작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주인공의 여자 동창 시로와 구로가 각각 흰색과 검정을 뜻한다는 점을 근거로 이 작품을 일본군 위안부(=검정 치마 흰 저고리) 문제에 대한 알레고리적 비판으로 평가하는 식의 ‘과잉 해석’은 <문단 아이돌론>의 지적이 타당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출세작 <노르웨이의 숲>의 아류일 뿐 뚜렷한 색채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색채가 없는…> 이후 장편으로는 4년 만인 <기사단장 죽이기>를 둘러싸고는 또 어떤 소동과 ‘해석’이 이어질까.
주요신문사설
[경향신문]
1. 새 정부 3주 만에 협치 거부한 한국당, 아직 정신 못 차렸나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정 상설협의체 불참을 선언했다. 여권이 한국당의 반대에도 이낙연 국무총리 인준안을 처리한 것으로 볼 때 여·야·정 협의체를 가동해봐야 문 대통령의 일방적인 국정설명회의 장이 될 게 뻔하다는 이유였다.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로 매주 여는 4당 원내대표 회동에도 불참할 뜻을 비쳤다. 취임 인사차 오겠다는 이 총리의 방문도 거절했다. 여야 협치가 새 정부 출범 3주 만에 제1야당의 거부로 시작도 못하고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야당이 정부와 여당을 견제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사청문회에서 공직 후보자들의 자질과 도덕성을 검증해 적격성을 따지는 것은 시민의 대표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무다. 그러나 어제 정 원내대표가 내세운 협치 거부 논리는 동의하기 어렵다. 정 원내대표는 기초 자료 제출 거부로 의혹이 해명되지 않았음에도 이 총리에 대한 인준을 강행처리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야당이 다 동의안 처리에 참여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여론조사 결과 시민의 3분의 2는 이 총리 후보자를 낙마시킬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나왔다. 시민을 설득하지 못한 채 총리 지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한 것은 누가 봐도 과도하다.
여야 협치는 시대적 요청이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협치가 아니고서는 당면한 국가적 위기와 산적한 현안을 풀어나갈 수 없다는 현실에는 한국당도 동의하고 있는 바다. 박근혜 국정농단을 지켜본 시민들은 당리당략과 진영 논리를 뛰어넘는 새 정치를 갈구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당은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대여 공세, 반대를 위한 반대에만 몰두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가 90% 가까이 되는데도 잘한 게 하나도 없다는 투다. 이렇게 묻지마 비판으로 일관하는 한국당에 지지를 보낼 이성적 시민은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인수위를 구성할 틈도 없이 국정운영을 맡았다. 이런 비정상적 상황을 초래한 것은 다름 아닌 한국당이다.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그에 대해 자성·자숙하는 게 옳다. 그리고 정부·여당을 향해 견제할 것은 견제하고 협력할 때는 협력하며 민생을 챙기는 새 정치에 나서야 한다.
이런 시민적 기대는 외면한 채 총리 인준 처리 방식을 꼬투리 잡아 협치를 거부하는 것은 한 세대 전의 낡은 수법을 쓰는 못난 야당의 길로 가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시민은 한국당이 집권할 때도 그와 다르지 않았음을 잊지 않고 있다. 정부 발목만 잡아도 야당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발상이 아니라면 즉각 태도를 바꿔야 한다.
2. 일자리 100일 계획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어제 ‘일자리 100일 계획’을 내놨다. 경제·사회·행정 시스템을 일자리 만들기에 적합한 체질로 전환, 일자리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소득주도 성장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 계획을 재확인하고, 공공 및 민간 부문 일자리 지원방안, 근로시간 단축 특별조치,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 등 13대 과제도 내놨다.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이 설치되고 11조원 안팎의 추경 준비에 이어 100일 계획안의 개요가 나온 것은 ‘일자리로 시작해 일자리로 완성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실험이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암울한 고용상황에 절망하는 청년층, 언제 내쳐질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중년층, 은퇴 후에도 일해야 하는 노년층을 보면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우선 정책은 불가피하고도 당연한 것이다. 일자리 부족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최대의 난제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정부 당시 부처별로 중구난방식으로 진행됐던 일자리 정책을 한 묶음으로 정리한 것은 진일보한 대응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이 고착화되는 상황에서 공공부문부터 일자리를 늘려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면서 민간부문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발상도 선택할 만한 가치이다.
다만 일자리 창출은 기업 몫이라는 지적도 유념할 필요는 있다. 위원회도 이를 의식해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지원책을 내놨지만 백화점식 나열에 그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일자리 창출을 놓고 벌이는 정부와 재계 간의 불협화음도 볼썽사납다.
무엇보다 “사회 각계의 정규직 요구로 기업들이 힘든 지경”이니 “비정규직 과다 고용 기업에 대한 부담금 부과는 경영에 부담을 줄 뿐”이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재계의 접근법은 실망스럽다. 이는 기업들이 정부의 지원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뒀음에도 분배에 소극적이었다는 시민들의 냉엄한 시각을 도외시한 대응이다. 기업이 사회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재무적 가치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도 창출해야 하는 시대이다.
정부도 기업과의 대립 구도를 고착화해서는 안된다. 일자리를 늘리고, 질을 높이는 작업은 재계와 노동계, 정부가 소통을 통해 조율을 거듭해야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사안이다. 공존의 방법을 모색하지 않고서는 진전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서울경제]
3. 4년 전 폐기된 선박금융공사 신설 신중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22회 바다의 날 행사에서 해양선박금융공사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공사 설립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과거 수차례 검토됐던 선박금융공사의 확장판이다. 선박금융에 그치지 않고 해양산업 전반에 걸친 금융 인프라를 제공하는 국책금융기관인 셈이다. 선박 전문 국책은행 설립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줄곧 필요성이 제기돼온 사안이다. 대형선박 한 척 건조에 수천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므로 선박금융에 특화한 국책은행이 있어야 해운과 조선산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그럼에도 공사 설립이 번번이 무산된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상 금지보조금 시비에 휩쓸릴 수 있다는 현실적 제약 때문이다. 4년 전 박근혜 정부는 대선 공약임에도 결국 무역분쟁 소지 때문에 없던 일로 해버렸다.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정부가 100% 지원하는 공사를 세우면 WTO보조금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해양수산부는 조선 등 특정산업에 국한하지 않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지만 보호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마당에 안심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해양산업 전체로 대상을 확대하더라도 선박에 자금 지원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 신설은 신중에 신중을 기할 사안이다. 금융공기업처럼 수조원의 혈세 투입이 뒤따른다면 더욱 그렇다. 한번 만들면 기능이 다해도 좀처럼 없애기 어렵고 기존 국책금융기관과 업무중복 가능성도 있다. 설령 신설 공사에 독점적 지위를 부여한다 해도 국책은행의 비효율성을 본다면 믿음이 가지 않는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와 부실로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무능이 다시 한번 드러났지 않았는가. 설립 명분만 대자면 못 만들 공공기관이 없다. 해양산업의 논리만 보지 말고 통상분쟁과 금융경쟁력·산업형평성 측면에서 종합적이고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한국일보]
4. 지구온난화 대처에 찬물 끼얹는 美 파리 협정 탈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 지구온난화에 대처하는 국제사회의 약속인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트럼프가 지난해 대선 기간 이미 파리협정 탈퇴를 공언해 예상된 일이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수위를 다투는 미국이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는 각국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어서 충격이 크다.
파리협정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빙하 감소와 가뭄, 홍수 등의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국제사회가 교토의정서에 이어 일궈낸 결실이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 온도 상승을 적어도 2도 아래로 억제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핵심이다. 오랜 논의 끝에 195개국이 2015년 서명해 지난해 발효된 이 협정에서 각국은 21세기 후반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0)로 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자율적으로 배출량 감축 계획을 세워 공표하고 이 목표를 5년마다 재검토해 수정ㆍ이행해야 한다.
파리협정이 교토의정서에서 진일보한 것은 온실가스 배출이 급격히 늘어나는 중국 등 개발도상국을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시킨 점이다. 이런 결실의 상당 부분은 지금 트럼프 정부처럼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했던 부시 정부와 선을 긋고 온난화 대처에 적극 나섰던 오바마 정부의 리더십 덕분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5년까지 2005년 대비 26~28% 감축하겠다고 한 오바마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사실상 중국의 탄소배출권거래제 도입, 온실가스 감축 계획 등을 끌어냈다.
다행히도 트럼프 정부의 정책 변경을 우려한 유럽연합(EU)과 중국이 파리협정을 이행하고 화석연료 사용 감축 내용을 담은 새로운 선언문에 합의할 것이라고 한다. 파리협정이 “되돌릴 수 없는 약속”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대체에너지 사용 확대를 위한 여러 정책을 빠르게 추진하자는 내용이다.
세계 최대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이 있는 EU는 중국에 자금을 지원해 올해 안에 자체 탄소배출권거래체제를 구축하도록 돕는다. 전기차 상용화와 에너지소비효율 표시제 도입, 녹색기술 혁신을 위한 연구 분야 협력과 재생에너지 성장 촉진, 전력망 상호 연결 등을 위해 협력하고, 파리협정이 유지되도록 빈곤국도 지원키로 했다.
이런 노력에도 향후 개도국들이 미국의 정책 변화를 핑계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낮추는 등 기후변화 대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당장 미국의 탈퇴를 어찌할 수는 없지만 향후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미국을 향해 반온난화 정책을 재고해주도록 압박을 가해야 한다. 협정 기조에서 이탈하는 개도국이 나오지 않도록 관심을 놓치지 않는 일도 중요하다.
[한겨레]
5. 공무원 증원, '공공서비스 확충'이 핵심이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1일 ‘일자리 100일 계획’을 발표했다. 대통령 취임 뒤 100일 안에 국정 시스템과 재정·세제 등 각종 정책수단을 일자리 중심으로 재설계하고, 정부 조처만으로 추진 가능한 과제들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정부는 다음주에 일자리 창출 사업에 예산을 집중 배정한 1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는 정부의 정책 의지를 읽을 수 있어 반갑다. 하지만 그 가운데 공무원 증원은 ‘일자리 창출’을 앞세우기보다 ‘공공서비스 확충’을 목표로 삼고 신중하게 추진 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무원 증원 17만4천명 등 모두 81만개의 공공부문 일자리를 임기 중에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81만개란 숫자는 공공부문 일자리 비중을 3%포인트 높인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그러나 3%포인트가 81만개라는 근거도 부실하거니와, 왜 3%포인트를 올리자는 것인지도 모호하다. 일자리 창출이란 화두는 놓치지 않되, 숫자에 지나치게 얽매이지는 말아야 한다.
정부는 우선 올해 하반기에 공무원을 1만2천명 증원한다. 소방직, 경찰, 사회복지, 부사관을 1500명씩 추가 선발하고, 생활안전 분야와 교사를 3천명씩 늘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 증원 목표 17만4천명의 10%에도 미치지 않으니 실행에 옮겨도 잘못될 일은 없을 것이다. 사회복지사나 소방관 등은 정원도 못 채우고 있어 증원이 시급한 형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년, 내후년에도 공약한 목표 숫자를 맞추려고만 한다면, 급하지 않은 공공서비스 확충에 많은 재정을 투입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공무원을 증원하려면 어떤 공공서비스를 얼마나 더 확충할 필요가 있는지부터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따른 재정 소요는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 설득력 있는 중기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옳다.
공공부문의 고용 조건은 민간부문에 견줘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다. 이에 따라 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 공기업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인재가 효율적으로 쓰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려가는 동안 공공부문에 대한 보상 확대를 억제하여, 민간부문과 보상 차이를 좁혀가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연합뉴스]
6. '평화로운 한반도' 비전 제시한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 한반도 평화의 획기적인 전기를 만들겠다"고 1일 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제12회 제주포럼 개막식 영상축사에서 "평화로운 한반도는 꿈이 아니다"라면서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위해 완전히 새로운 구상, 담대한 실천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외국 역할론에 기대지 않고 한반도 문제를 대한민국이 주도해 나가겠다"면서 "아시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앞장서서 열어 가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담대한' 구상은,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급반전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국제사회와 공조하는 대북 제재에 주력했다면 새 정부의 정책 기조는 대화와 협력으로 봐야 한다. 문 대통령의 이날 축사 발언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대북정책 비전인 것 같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 선회로 남북 관계의 해빙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새 정부는 이미 민간단체들의 인도적 대북 지원을 허용했다. 6.15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남측위)의 방북 가능성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통일부는 이날 남측위의 대북 접촉 신청을 승인했다. 이 단체는 팩스로 6.15 공동행사 일정과 장소 등을 북측과 협의한 뒤 정부에 방북 신청을 할 예정이다.
통일부는 "행사의 목적, 내용, 장소, 형식, 참여 인물 등 여러 변수가 있다"면서 남측위의 신청서를 보기 전에 승인 여부를 말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민간단체의 대북 접촉과 방북 신청에 대해 대북 제재의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유연하게 검토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 브리핑에서다. 남측위의 방북 신청 가능성을 염두에 둔 설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북 제재의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라는 원칙론보다 '유연하게 검토한다'는 부분의 확장성에 눈길이 간다. 남측위가 정부 승인을 받아 북한을 방문하게 된다면 얼어붙었던 남북 대화의 봇물이 터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제주포럼 축사에서 어찌 보면 꿈 같은 한반도의 미래상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전쟁위협이 사라진 한반도에 경제가 꽃피우게 할 것"이라면서 "남북 경제공동체가 '한강의 기적'을 '대동강의 기적'으로 확장해 '한반도의 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남북 관계 개선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면 남북 관계에 대해 이렇게 가슴 벅찬 청사진을 국민 앞에 제시할 수도 있어야 한다. 꿈은 실현 가능성을 떠나 그 자체만으로 큰 가치가 있다. 하지만 현실을 도외시한 꿈은 공허하다. 당장 우리가 극복해야 할 현실에는 새 정부 출범 후 매주 한 번씩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북한이 버티고 있다. 유엔의 대북 제재도 결정적인 순간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정부가 지금의 분위기로 가면 머지않은 장래에 직면할 수도 있는 현실의 높은 장벽이다.
북한과 접촉을 하더라도 구체적인 성과를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국민과 국제사회의 관계 개선 기대감을 먼저 높여야 한다. 급한 마음을 누르며 속도를 조절하고 주변 여건도 숙성시켜야 한다. '쇠뿔도 단김에'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단호함은 조급함의 다른 얼굴일 수 있다. 북한 문제를 푸는 데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조급한 마음이다.
[조선일보]
7. 석연치 않은 청와대 수석 내정 취소
청와대가 안현호 전 차관의 일자리 수석비서관 내정을 취소했다. 일자리 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했던 일자리 문제를 전담하기 위해 청와대에 신설된 자리다. 안 전 차관은 내정 상태에서 청와대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만두게 됐다. 수석급에서 이런 일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안 전 차관에 대해서는 그간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해 왔다. 이명박 정부에서 지식경제부 1차관, 무역협회 상근 부회장을 지낸 그가 친(親)기업 인사라는 게 이유였다. 한국노총은 지난 26일 문 대통령에게 인사 재고(再考)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한국노총은 소속 인사들이 현재 인수위 기능을 하고 있는 국정기획자문위에 참여하는 등 새 정부와 밀착돼 있다. 이번 내정 취소가 노동계 요구를 들어준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런 지적이 부담이 된 때문인지 이용섭 일자리위 부위원장은 1일 "(노동계 반발 때문이) 전혀 아니고 검증에서 문제가 나왔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문제가 있으면 인사를 철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공개적으로 검증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밝혀버리면 당사자 명예는 무엇이 되는가. 이런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청와대가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취소 사유는 밝히지 않는 것이 자신들이 발탁했던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청와대는 이날까지 침묵하고 있다.
안 전 차관의 의혹에 대해 아직 어떤 보도도 나온 것이 없다. 청와대의 내정 취소가 불가피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검증에 걸렸다'는 것이 내정 취소 사유의 전부이겠느냐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론 노동계 반발 때문에 취소하면서 검증 때문이라고 둘러대는 것이라면 심각한 인권 침해다.
[서울신문]
8. '사드 보고 누락' 아직도 밝혀야 할 것 많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4기 보고 누락과 관련, 청와대가 어제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불러 조사했다. 청와대는 이번 사태는 실무자의 단순 실수가 아닌 ‘고의 보고 누락’으로 결론지었다.
국방부가 지난 25일 국정기획위 업무보고를 앞두고 최초 보고서에 들어 있던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반입 사실을 최종 보고서에서 삭제했고, 26일 4기 추가 반입을 묻는 정의용 신임 국가안보실장의 질문에 한 장관이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동문서답을 하는 등 명확한 사실 보고를 외면한 채 은폐하려 한 정황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사실상 은폐로 결론을 내린 만큼 이번 일이 단순 조사로 끝나지 않고, 사드 배치 결정 과정에 대한 전반전인 조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은폐 축소’ 청문회를 추진하기로 했다. 김 전 실장과 한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 사드 관련 외교안보 라인을 청문회 증인으로 세우겠다고 한다.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뒤 한 장관의 뉘앙스의 차이라느니, 1개 포대가 6기 발사대로 이뤄진 만큼 4기가 추가 반입된 것은 다 아는 것 아니냐는 식의 발언은 무례하기 짝이 없고 오만하기까지 하다. 사드의 ‘사’ 자만 나와도 우리 내부적으로는 국론이 갈리고,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자국 이익을 지키려고 눈이 벌건 상태다. 하극상이자 국기문란 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고의 보고 누락 경위는 철저히 밝혀져야 하며,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 책임을 엄히 물어야 한다. 의도적으로 은폐했다면 핵심은 ‘누가’ ‘왜’ 그랬느냐 하는 것이다. 등장하는 인물도 여럿이고, 각종 의혹이 산처럼 쌓여 가고 있는 만큼 신속한 수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질질 끌 경우 국정 운영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걸림돌이 될 게 뻔하다. 그렇다고 만천하에 드러내놓고 광고하듯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이번 일은 국가안보와 직결된 사안인 만큼 외과수술하듯 환부만 확실하게 도려내야 하며, 관련국들의 우려 또한 고려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엊그제 더 빈 미 상원 민주당 원내총무를 만난 자리에서 “진상조사는 국내 문제이지 기존의 결정을 바꾸려거나 미국에 다른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한·미 동맹을 깨지 않을 거라면 정권이 바뀌었다고 양국이 합의한 기존 결정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 갈등을 해소하고 국론을 하나로 모으려면 절차적 정당성 확보 또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이달 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사드 문제는 핵심 의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제 정 안보실장이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의제 조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이 균형 및 실리외교의 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매일경제]
9. 쿠팡·SK브로드밴드에서 드러난 정규직 전환의 숨겨진 딜레마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어제 '일자리 100일 계획'을 내놓았다. 요지는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모아진다. 정규직화와 관련해 비정규직 과다고용 대기업에 대한 고용부담금 도입과 정규직 전환 시 세제지원 등 당근과 채찍 정책이 모두 담겨 있다. 지난해 근로자의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규직화는 일자리 정책에서 소홀할 수 없는 사안인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걸림돌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최근 협력업체 직원 5200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한다고 밝힌 SK브로드밴드와 '쿠팡맨'으로 알려진 배달기사를 정규직으로 채용했던 쿠팡이 직면한 딜레마가 이런 사례에 속한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달 21일 초고속인터넷과 인터넷TV 설치 관련 위탁업무를 맡고 있는 103개 협력업체 직원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새 정부 일자리 정책에 부응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비정규직인 협력업체 직원의 고용을 안정시키고 처우를 개선함으로써 고객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선의(善意)에서 출발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일부 협력업체 대표는 중소기업 기술 인력을 빼가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어제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 거래행위 신고까지 했다.
쿠팡도 비슷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쿠팡은 배달기사를 정규직화하는 시스템을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비정규직으로 채용한 뒤 6개월마다 심사를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식이었다. 쿠팡의 실험은 모범적 고용 사례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일부 전·현직 쿠팡맨들은 지난 3월 말 평가제도가 바뀔 때 부당하게 임금이 삭감됐고 사측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말 청와대에 탄원서까지 제출했다.
두 사례는 산업 현장에서 정규직화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업종과 기업의 특성을 무시하고 무조건 정규직화를 추진하다가는 갈등과 혼란만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잡음과 부작용을 줄이려면 충분한 노사 협의와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게 필수적이다. 정부가 조급하게 일자리 정책을 밀어붙이지 말고 개별 기업 입장을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앙일보]
10. 정부와 경제단체, 갈등에 앞서 머리부터 맞대야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는 경제정책(J노믹스)에 대해 정부와 경제단체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양측의 대립이 표면화된 것은 경영자총연합회 김영배 부회장이 최근 경총 포럼에서 “사회 각계의 정규직 전환 요구로 기업들이 매우 힘든 지경”이라고 지적하면서 본격화했다. 이를 비판으로 받아들인 문 대통령은 “경총은 비정규직으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당사자로서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즉각 반박했고,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은 “압박으로 느낄 때는 느껴야 한다”며 대립각의 수위를 높였다.
문제는 정부의 강경한 반응으로 인해 정부와 재계 사이에 건설적 대화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일자리를 비롯한 경제활성화 문제는 ‘노사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현실적 대안을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재계가 분위기에 눌려 침묵해서는 노사정 대화가 진전되기 어렵다. 어제는 문재인 정부의 30개 경제 정책에 대해 재계의 고충을 밝히고 의견을 제시한 보고서가 공개됐지만 경제단체는 “공식 문서가 아니다”면서 꼬리를 내렸다. 앞서 경총은 『비정규직 논란의 오해와 진실』이라는 책자를 배포할 계획을 철회했다.
그 사이 일자리 현장에선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비정규직을 대거 정규직화했던 쿠팡은 전·현직 직원 75명이 부당해고를 이유로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제출했다. 쿠팡은 거액의 적자에 따른 회사 내부의 노사 문제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과 맞물려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SK브로드밴드는 인터넷 설치기사의 정규직화에 나섰으나 100여 협력업체가 “사업체를 잃게 됐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이같이 일자리는 드라이브만 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마침 일자리위원회는 어제 청년구직수당 신설, 시급 1만원 인상, 근로시간 52시간 단축을 추진하고 신산업 규제를 확 걷어내는 것을 골자로 한 일자리 100일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일자리 창출의 주체인 기업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 재계도 의견이 있으면 떳떳이 건의해야 한다. 그래야 합리적인 일자리 창출 방안이 도출되고 기업과 근로자의 상생도 가능할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국민일보][색과 삶] 홍채
‘눈은 마음의 창’이다. 외부로 돌출된 뇌의 일부가 눈이다. 그래서 눈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다. 여러 노랫말에서 보듯이 연인의 눈동자에 대한 기억은 오래 남는다. 마음이 눈동자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은 포유동물에 비해 클 뿐만 아니라 움직임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눈동자를 보고 심리를 알아차리기도 한다. 눈을 마주 보는 행동은 마음을 주고받는 소통방식이다. 젊은이들 사이에 서클렌즈 착용이 유행하는 것도 크고 아름다운 색깔의 눈동자를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의 결과물이다.
사람의 피부와 머리카락, 눈동자의 색은 멜라닌 색소에 의해 결정된다. 햇빛이 강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민족은 자외선 보호막인 멜라닌 색소로 인해 어두운 피부색을 띈다. 이러한 색소의 양과 분포에 따라 눈동자의 색깔 역시 다양하게 나타난다.
세계인의 절반은 갈색 눈동자이고 유전적으로 열성인 파랑 눈동자가 그 다음으로 흔한 편이다. 북유럽 민족에 보이는 초록과 회색 눈동자는 색소가 부족한 경우에 해당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노랑 눈동자와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서양인도 있다. 극단적으로 색소 결핍이 생기면 토끼 눈처럼 혈관이 노출되어 빨간 눈동자가 된다. 이러한 눈동자 색깔은 여러 가지 유전인자가 결정한다.
1980년대에 미국의 안과의사가 홍채로 개인을 식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이후로 지문, 얼굴, 혈관, 홍채를 이용한 생체인식 기술이 빠른 발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아기 때 형성된 홍채 패턴은 평생 변하지 않고 복제가 거의 불가능하여 보안성이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상용화한 스마트폰이 삼성 갤럭시S8이다.
스마트폰에는 사생활 정보가 가득 담겨 있어 보안기능의 장착은 필수 요건이 되었다.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홍채 인식으로 금융 결제가 가능한 갤럭시S8이 독일 해커들에 의해 보안이 뚫렸다고 하니 허점을 파고드는 기술 또한 흥미롭다.
2. [서울신문][열린 세상] 네안데르탈인에서 인공지능의 시대로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문명의 등장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이 문명의 종말이다. 인더스, 마야, 잉카 등 수천년 전에 고도의 문명이 발달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예가 비일비재하다. 인더스 문명의 경우 과거에는 초원에서 밀려온 아리안족의 침략으로 몰살당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갑작스런 물길의 변화로 교역로가 끊기면서 인더스 문명의 사람들이 거대한 문명을 버리고 숲으로 살길을 찾아 사라졌기 때문이다. 20만년 전 번성했던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원인은 지나치게 추운 환경에 적응했던 그들의 특성에 있다고 한다. 추운 환경에 최적화된 네안데르탈인의 진화가 정작 온난해진 기후에서는 오히려 단점이 돼 현생 인류와의 생존 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아마 후대의 역사가들은 지금을 커다란 문명의 전환기로 기록할 것이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브렉시트와 알파고의 쇼크로부터 시작해 한국 대통령의 탄핵과 미국 트럼프의 당선으로 마무리됐다. 그 와중에 러시아와 중국은 다시 부상하고,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미국 중심의 세계 판도를 공식적으로 거부하는 등 엄청난 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생활에는 제4차 혁명이라는 새로운 문화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사람만큼 능청맞게 번역하는 구글 번역기를 쓰다 보면 문득 수십년간 힘들게 익혀 온 외국어 지식이 곧 쓸모없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을 느낄 정도다.
전환기의 생존 전략은 결국 정보의 다양성과 인간 본성에 대한 확신에서 시작한다. 인류는 새로운 기술과 문화에 따른 변혁을 겪어 왔다. 그리고 그 시기에 지나치게 이전의 사회나 문화에 머물러 획일화된 시스템을 유지하면 네안데르탈인처럼 낙오될 수 있다. 지난 60여년간 한국 사회는 미국이라는 하나의 정점을 중심에 두고 형성됐고,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해 왔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판도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한국보다 일본에 더 가까운 게 사실이다. 그 와중에 유라시아를 대표하는 중국과 러시아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세력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정치, 외교, 경제 등 모든 시스템은 이러한 변화에 지나칠 정도로 둔감하다.
변혁기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결국 변화에 대한 대처 능력이고, 그것은 바로 다양한 정보력에서 나온다. 100여년 전 시베리아의 수도였던 톰스크는 철도가 등장할 때 말과 마부의 기득권을 생각해 철도를 반대했고, 이후 쇠락의 길을 걸어서 변방 도시로 전락하게 됐다. 한국의 경우 기성 세대들은 고도성장의 기억을 어제처럼 하고 있다. 그 기억은 소중하지만, 그사이에 바뀌어 버린 세상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화기가 발명되면서 사람들은 굳이 이동을 하지 않아도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영상매체의 발달로 세계 각국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고, 관광 수요는 매년 기하급수로 증가하고 있다. 기술의 발달로 편리함은 증가해도 인간의 본성을 바꾸고 대체하는 기술은 없기 때문이다.
구글 시대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전방위적으로 우리 생활에 편리함을 줄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과 감성이다. 변혁기에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미신이나 허황한 사실을 통해 위안을 얻으려 한다. 요즘 유독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르고, 허황하고 부풀려진 고대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많아진 이유다. 네안데르탈인에서 인공지능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역사의 변혁이 있었다.
그사이를 돌아보면 허황한 미신이나 과거의 영화에 집착하며 주변 사회와 환경의 변화를 외면한 집단이 살아남은 적이 없다. 이만큼 분명한 미래에 대한 예언이 있을까. 지난 몇 달간 우리는 세계의 어느 나라도 경험하기 어려운 변혁을 거치고, 또 그 과정에 서 있다. 변화의 시대일수록 우리의 삶을 지켜 내는 것은 결국 다양한 변화에 대한 유연성, 그리고 인간성의 확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 미래에 대한 필요한 답변은 바로 고대 문명의 멸망 과정에 있는지 모른다.
3. [세계일보][김용희의 음식문화여행] 한 그릇의 허기를 위하여
밥은 한국인이 만나는 최초의 욕망이다. 태어나서 숟가락을 쥐고 있을라치면 어김없이 앞에 밥그릇이 놓여 있다. 인생이란 결국 제 스스로 밥을 떠먹는 일이다. 아이는 자라면서 스스로 허기를 달래고, 또 달래기 위해 달려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란 것을 알게 된다. 인생의 욕망이란 곧 밥의 욕망인 것이다. 요즘이야 밥이 그야말로 ‘찬밥’ 신세지만 과거 얼마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천지간에 백년가약을 맺고 헤어진 야속한 이도령 때문에 춘향 모는 오늘도 정화수 한 동이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린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무남독녀 외딸 춘향이 죽게 생겼다. 그런데 웬걸, 걸인 중에 상걸인이 다 되어 백년지객 사위 이몽룡이 나타난 것이다. 춘향 모는 기가 막힌다. “쏘아논 화살이요 엎지른 물이 되어 수원수구하겠나마는, 내 딸 춘향을 대체 어찌 할라는가.” 춘향 모는 홧김에 이도령의 코를 물어 떼려 하는데, 어사 짐짓 춘향 모 거동을 보려고 한마디한다.
“시장하여 나 죽겠네, 나 밥 한술만 주소.” 향단이는 춘향 모에게 아가씨를 봐서도 괄시하면 안 된다며 부엌으로 냉큼 달려간다. 먹던 밥에 풋고추, 절인 김치, 양념을 넣고 단간장에 냉수를 가득 떠서 소반에 받쳐 들고 온다. 어사또 반겨하며 “밥아, 너 본 지 오래다” 한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춘향 모는 빈정대고 향단은 흐느끼지만 능청을 떨며 먹는 이도령이 독자는 유쾌하기만 하다.
다문화가정에 한국음식을 소개할 때 가장 기본적인 세 가지를 먼저 맛보게 한단다. 밥, 김치, 장이다. 그중에서 밥이 최고다. 뭐니 뭐니 해도 밥맛이 제일이고, 뭘 먹어도 밥만 한 보약이 없다. 지금이야 혼족들이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고 살지만, 사실 밥짓기에는 얼마나 정성이 들어가는지 모른다.
쌀을 양푼에 담아 씻을라치면 보얗게 쌀물이 흘러나온다. 씻은 첫 물을 재빨리 버리고, 두 번 세 번 씻은 후 쌀을 불린다. 20∼30분 불린 후 체에 받쳐둔다. 손등으로 물의 양을 잰 후 솥에 쌀을 안친다. 요즘에는 계량컵으로 물 양을 재기도 하지만 손등으로 하는 게 언제나 딱이다. 그렇게 하여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고슬고슬한 고봉밥 한 그릇이 지어진다. 밥을 먹기 위해 첫술을 뜨는 그 순간은 우주인이 달에 첫발을 내려놓는 순간처럼 위대한 역사의 시작이다. 수고한 인생에 주는 따뜻한 위안이다.
하지만 요즘은 밥 먹는 일이 다 심드렁하기만 하다. 편의점 도시락 밥에다 혼자서 먹어치우는 햇반에다…. 시간 도둑은 어느새 밥 한 그릇 먹을 시간마저도 훔쳐가 버렸다. 제 몸에 고봉밥 한 그릇 바칠 봉양의 마음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밥을 짓는 정성은 사라졌다. 밥은 빵으로 대체되고, 시리얼로 대체됐다. 혹은 한 컵의 우유나 주스로. 해서 정성껏 지어진 밥 한 그릇을 받고 보면 모진 삶을 산 사람은 한결같이 엄마를 생각하며 울먹일 수밖에 없다.
한 그릇의 밥을 위해 비겁해지고 한 그릇의 밥을 위해 한 줄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한 그릇의 밥 위해 친구의 뒤통수를 치기도 하고, 한 그릇의 밥을 위해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기도 해야 한다. 한 그릇의 위로를 위해 한 그릇의 고결함을 위해 오늘도 우리는 외친다.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밥 먹고 합시다.”
4. [서울신문][금요 포커스] 4차 산업혁명과 법제개혁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거세다. 세계 각국은 관련 핵심기술을 선점하는 등 발 빠르게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고 있다. 새로운 먹거리 발굴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4차 산업혁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천연자원은 부족하지만 정보기술(IT)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회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4차 산업혁명을 대선 공약의 하나로 제시하면서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대폭의 규제개혁을 약속하였고, 대통령 직속으로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4차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맞이하려면 정부 역할의 변화가 필요하다. 개입이 아닌 촉진과 지원을, 지시가 아닌 자율과 협조를 근간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기술 발전을 가로막는 법제도를 개혁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주도하는 변화를 수용하고 이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래 지향적이고 합리적인 규제개혁과 법제개혁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규제개혁과 법제개혁의 성공 필수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네거티브 규제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은 규제개혁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네거티브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을 약속했다. 단순히 규제방식만 네거티브로 전환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고 이에 앞서 규제에 대한 재평가와 재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가령 일정한 요건을 갖추어야 허가할 수 있다고 포지티브 규제 방식으로 규정하던 것을 법령에 열거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허가해 주는 네거티브 규제방식으로 전환했다고 하자. 이런 경우 네거티브 규제방식으로 열거된 허가항목에 ‘법령의 목적에 적합할 것’이라는 추상적인 요건이 들어가게 되면 실제 현장에서 집행할 땐 종전의 포지티브 방식과 차이가 없게 된다.
둘째 ‘규제를 정교화’해야 한다. 선진국에도 규제는 존재하고 분야에 따라서는 우리보다 더 강하게 규제하는 나라도 많다. 기업을 힘들게 하는 것은 강한 규제 자체가 아니라 규제의 불확실성과 비합리성인 경우가 많다. 규제의 정교화를 통해 규제를 합리화하고 예측 가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예를 들면 IT 기술이 융합된 친환경 전기자동차나 세그웨이, 전동킥보드 등을 자전거도로나 공원 또는 인도에서 이용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는데 무조건 안 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호주 퀸즐랜드의 경우와 같이 속도제한을 통해 안전장치를 확보하면서 일정한 지역에서 탈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방안도 규제의 정교화 차원에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법을 통한 규제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진전될수록 새로운 사업모델이 등장하고 기술발전 속도도 빨라진다. 드론, 자율주행 자동차 등 신기술에 대해 입법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보다 업체의 자율규제에 우선 맡겨두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새로운 기술에 기반한 사업이 기존 규제와 충돌하면 규제를 일시 정지하고 모래밭처럼 뛰어놀 수 있게 한 영국의 ‘규제 샌드박스’ 제도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만 하다.
마지막으로 ‘착한 규제’는 유지되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규제를 철폐할 것이 아니라 근로환경 보장, 안전 확보, 불공정 행위 금지 등을 위해 착한 규제를 유지하거나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규제개혁은 과거 정부도 늘 주장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규제기관의 양보가 전제돼야 하는데 권한과 조직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어 양보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양보는 생존을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다. 지난 몇 달간 우리 사회를 달구었던 탄핵과 대선 과정에서 나타난 국민의 에너지를 바탕으로 작은 이해관계를 극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새 정부에서는 구호가 아닌 진정한 규제개혁과 법제개혁을 통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5. [한겨레][최재봉의 문학으로] 하루키이즘 또는 하루키 문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가 다음달 초 한국에서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20억원으로까지 추정된다는 선인세를 두고 뒷말도 나왔지만, 출판사도 이윤을 좇는 기업인 만큼 그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비평이 제 역할을 하는지 여부는 따로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지난주 열린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나온 두 원로 문인의 발언은 하루키 문학을 둘러싼 해묵은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하루키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골 빈 대학생들이 하루키를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으며, 소설가 현기영도 “하루키의 소설은 문학이라기보다는 소비향락 문화의 아이콘”이라고 주장했다.
이 발언들이 전해진 뒤 에스엔에스에서는 두 원로를 비난하고 나아가 한국 문학을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요지는 이들이 낡은 문학관을 고수하면서 하루키로 대표되는 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일본 문학에 대한 한국 문학의 열등감과 원한의 표출이라는 비아냥에다 ‘한국 문학이 망한 이유를 알겠다’는 식의 극언까지 나왔다.
에스엔에스 사용자가 하루키 독자층과 겹친다고는 해도 거의 일방적인 에스엔에스 여론을 보면서는 마음이 불편했다. 마치 하루키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것은 쿨하고 세련된 태도인 반면 그를 싫어하고 비판하는 것은 촌스러운 노릇이라는 분위기였던 것. 하루키를 좋아하는 것이 자유인 만큼 그를(정확히는 그의 소설을) 싫어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 비판이 합리적이기만 하다면 말이다.
“골 빈 대학생”이라는 식의 ‘막말’이 아쉽기는 하지만, 하루키 문학에 대한 유종호의 비판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2011년에 낸 책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에서도 그는 “(하루키 문학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학의 이상에서 너무나 동떨어진 하급 문학”이라고 주장했다. 조정래와 김원우 같은 작가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하루키 비판 목소리를 낸 바 있다.
하루키를 싫어하는 게 한국의 원로 문인들만도 아니다. 역시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한 일본의 40대 작가 히라노 게이이치로는 한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하루키의 글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의 책을 읽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히라노와 하루키의 중간 세대인 소설가 시마다 마사히코도 과거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하루키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파울루 코엘류나 스티븐 킹도 그 상을 받지 말란 법도 없지 않겠나”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하루키 소설에서 보이는 생활 부재와 역사의식 빈곤, 왜곡된 여성상 등에 대한 비판은 단골 레퍼토리다.
올해 초 나란히 번역 출간된 일본 비평가들의 책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와 <문단 아이돌론>은 각각 하루키에 대한 지지와 비판을 담았다. 이 중 <문단 아이돌론>의 지은이 사이토 미나코는 하루키 소설이 컴퓨터 게임을 닮았으며 “독자의 참여를 부추기는 인터랙티브 텍스트”로서 “퍼즐이나 게임을 풀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고 지적했다.
2013년작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주인공의 여자 동창 시로와 구로가 각각 흰색과 검정을 뜻한다는 점을 근거로 이 작품을 일본군 위안부(=검정 치마 흰 저고리) 문제에 대한 알레고리적 비판으로 평가하는 식의 ‘과잉 해석’은 <문단 아이돌론>의 지적이 타당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출세작 <노르웨이의 숲>의 아류일 뿐 뚜렷한 색채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색채가 없는…> 이후 장편으로는 4년 만인 <기사단장 죽이기>를 둘러싸고는 또 어떤 소동과 ‘해석’이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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