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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조선일보]

1. 김상조 임명 강행, 親文 일색 '시민단체정부'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결국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임명했다. 야당의 거부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사람을 장관에 임명한 첫 사례다. 청와대 측은 "허비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야당들은 "협치 실종"(자유한국당), "불통과 독재로 가겠다는 것"(바른정당)이라고 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김 위원장은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작성, 논문 이중 게재 등 여러 문제가 발견돼 시장 질서의 심판인 공정거래위원장이 될 수 있느냐는 논란이 많았다. 문 대통령은 이런 사람을 임명하면서 한마디 사과도 없었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국민 눈높이에선 검증을 이미 통과했다"는 말까지 했다.

새 정부 들어 통합과 협치를 강조한 말과 연설이 끊임없이 이어져 감동을 줬다. 그런데 행동은 완전히 다르게 한다. 이날 미래창조과학부 등 4개 부처 장관 후보가 지명돼 17개 부처 중 15개 부처 장관 후보 인선이 끝났다. 시간이 갈수록 공신(功臣)·코드 인사가 노골화되고 있다.

15명 중 선거에 직접 관여했던 사람만 11명이나 된다. 13일 발표된 유영민 미래부 장관 후보는 작년 총선 때 문 대통령이 직접 영입해 부산에 출마시켰던 사람이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도 총선 때 호남에서 민주당에 남은 몇 되지 않는 현역 의원 중 한 명이었고 대선 때는 공동조직본부장을 맡았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관 출신 통일부 장관 후보, 참여연대 공동대표 출신인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까지 감안하면 공신이나 코드 인사와 무관한 사람이 단 2명뿐이다.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을 포함해 시민단체 출신들이 너무 많아 'NGO 정부'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 공신·코드 인사들에서 여러 하자까지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는 이미 한 달 전부터 이런 문제들을 알고 있었다. 한 달 동안 고민하다 결국 야당 비판을 무시하기로 작정한 듯하다. 친문(親文) 자파(自派) 일색인 내각을 밀어붙이기로 결심했다면 협치와 통합이라는 말이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정국이 교착되고 무엇 하나 대화로 해결되는 일이 없는 과거로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가 싶다.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한겨레]

2. 김상조 공정위원장 임명 불가피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국회에서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을 강행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김 위원장이 국민 눈높이에서 검증을 통과했다고 감히 말씀드린다”며 “공정한 경제민주주의 질서를 만들어야 하는데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야당과의 마찰을 감수하고서라도 정부 구성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2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큰 흠결이 나오지 않아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무난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며 김상조 후보자 문제를 연계한 탓에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됐다. 정치권의 평가나 국민 여론을 볼 때 김 위원장이 재벌개혁 조타수로서 적임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여론조사기관인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9~10일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5.6%가 김 위원장 임명에 찬성했고 반대 의견은 21.3%에 그쳤다.

문 대통령의 김 위원장 임명 강행은 야당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보궐선거로 출범한 정권이 야당 반대에 발이 묶여 새 정부 구성을 마냥 늦출 수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야당 의견을 존중해야 하지만, 정권 초기의 중요한 시점을 이대로 허비할 수 없다는 현실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김 위원장 임명에 반대한 것은 무리수다. 청문회를 큰 흠결 없이 통과했고, 다른 야당인 국민의당과 바른정당도 대체로 적합하다는 의견이었다. 자유한국당은 김 위원장 임명을 빌미로 반발의 강도를 높이는 악순환을 되풀이하지 말길 바란다. 야당에선 ‘국회 일정의 전면 거부’ 주장까지 나오는 모양인데, 그런 행동이 과연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 임명을 강행했지만, 야당과의 ‘협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다른 국무위원들의 인사청문회가 예정돼 있고 추가경정예산안과 정부조직법도 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 최대한 진정성을 담아서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려 노력하길 바란다.

우여곡절 끝에 취임하는 김상조 위원장에겐 재벌개혁이라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져 있다. 초심을 잃지 않고 공정한 시장경제 확립을 위해 매진하라는 게 그를 지지해준 국민의 뜻일 것이다.



[서울신문]

3. 흠결 없는 후보자 찾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미래창조과학부·통일부 등 4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또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 반대로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한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에 임명했다. 청와대는 “김 교수는 흠결보다 정책적 역량을 높이 평가하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검증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에 야당은 “소통과 협치를 하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불통과 독재로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향후 야당이 반대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도 임명을 감행할 경우 정국 경색이 불가피해 보인다.

지금까지 인사청문회 대상인 고위공직자 후보자 17명이 내정됐다. 이들 가운데 청문회를 통과한 이는 이낙연 총리와 김동연 경제부총리 등 2명뿐이다. 이들도 여러 의혹이 제기됐지만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엄중한 시기에 출범한 새 정부가 하루빨리 내각을 구성해 국정을 다잡으라는 취지에서 야당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협조한 덕분이다.



그렇다면 지난 11일 발표된 5명의 후임 인선에서는 적어도 도덕성에서 문제가 없는 이들을 뽑았어야 했다. 강 후보자 등의 위장전입 문제가 불거진 이후 사실상 내정 상태였던 일부 인사들에 대한 발표가 늦어지자 “국민의 눈높이에 부응하는 인사 검증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청와대의 발표를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정반대다. 사회부총리·고용노동부·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논문표절, 음주운전, 위장전입 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문체부 장관 후보자는 5년 사이 62차례 교통법규를 위반했다. 이들의 도덕적 결함도 문제지만 더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청와대의 태도다. 청와대는 음주운전에 대해 “문제가 있지만 인명 사고와는 무관하다”고 했다.



인명 사고만 나지 않으면 음주운전도 괜찮다는 아전인수식 검증론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조국 민정수석은 불과 10개월 전에 이철성 경찰청장 후보자의 음주운전 전력을 놓고 “미국 같으면 애초에 청문회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고 맹비난했지만 지금은 말이 없다.

여권은 과거 야당 때는 송곳 검증으로 후보자를 몰아세우더니 지금은 “무결점 인재는 없다”고 항변한다. 찾아보면 흠결이 없는 인재도 있다. ‘코드’가 맞는 내 편에서 찾다 보니 없을 뿐이다. 인재의 스펙트럼을 더 넓히면 도덕성과 능력을 두루 갖춘 이들이 왜 없겠는가.

과거 야당은 문제의 후보자 한두 명을 찍어 낙마시키며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래도 여당은 야당과 ‘빅딜’을 통해 다른 후보자의 통과를 전제로 야당이 반대하는 후보자를 낙마시켜 야당의 체면을 살려 주기도 했다. 그런 행태가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은 여권에서 말로는 ‘협치’를 외치지만 그런 정치의 묘도 발휘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만 믿고 ‘문제의 후보자까지 모두 끌어안고 가겠다’는 것은 오만하게 비칠 수 있다.



4. 서울지하상가 권리금 불허, 상인 보호책 있어야

서울시가 시내 25개 지하상가 상점들의 임차권 거래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서울시가 소유한 지하상가의 상인들은 앞으로 다른 사람에게 권리금을 받고 점포를 넘길 수 없게 된 것이다. 서울시는 불법 권리금 관행을 없앤다는 취지에서 이런 결정을 했지만, 상인들의 반발은 극심하다. 기존의 입주 상인들로서는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하상가 임차권 거래를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지하도 상가 관리 조례 일부 개정안’을 지난주 입법예고했다. 지금까지 서울시 지하상가는 사전 허가를 받으면 권리와 의무를 양도할 수 있도록 조례에 규정돼 있었다. 그러던 것이 개정안은 더이상 타인에게 상가를 양도할 수 없게 못박음으로써 권리금을 받고 상가 운영권을 거래하는 행위 자체에 전면 제동을 걸었다.

대부분 1970~80년대 지하철 개통기에 조성된 서울시 지하상가의 상당수는 현재 서울시 소유다. 민간 기업들이 장기간 상가로 운영한 뒤 서울시에 기부채납한 결과다. 수십년간 상권이 형성된 강남권의 입지가 좋은 점포는 권리금만 2억~3억원에 이른다.

서울시도 이래저래 딱한 사정은 있어 보인다.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임차권 양도를 허용하는 것은 법령 위반이라는 정부의 유권해석이 있는 데다 감사원에서도 기존의 관련 조례를 개정하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 허리에 실을 묶어 쓸 수는 없다. 개정안이 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임대계약이 만료되는 지하상가 점포는 모두 경쟁입찰로 새 임차인이 선정된다. 개정안대로라면 서울시내 지하상가의 2700여개 점포들은 꼼짝없이 권리금을 잃어야 한다. 당장 장사가 안돼 점포를 접고 싶은 영세 자영업자들은 눈앞이 더 캄캄한 모양이다. 계약 기간 중 임차권 양도가 불가능해지면 위약금을 물고 계약을 해지해야 할 판이다.

30~40년간 유지된 관행이 하루아침에 뒤집히는 행정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민간에서는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돼 권리금이 폭넓게 인정되고 있는 현실이다. 어떤 명분에서였든 자영업자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졸속행정이어서는 곤란하다. 서울시로서는 더 미루기 난감한 해결과제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현장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준비 기간을 주는 것이 순리다.



[중앙일보]

5. 문 대통령 한미 연합사 방문, 동맹 다지는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한·미 동맹의 상징인 용산 한미연합사령부를 순시한 것은 양국 동맹을 굳건히 다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적의 공격을 억제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병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말해 한·미 동맹이 한반도 안보의 핵심임을 확인했다. 북한 미사일 도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지난달 17일 국방부·합동참모본부 순시 이후 약 한 달 만에 안보 행보를 한 것도 긍정적이다.

이번 방문은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와 관련해 한·미 간 미묘한 갈등이 빚어지는 가운데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8일 국무장관 및 국방장관과 긴급 회의를 연 것은 이와 관련한 불만의 표시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연합사 방문이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잡음을 불식하며 동맹의 굳건함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문 대통령이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회 상임위원장단 오찬 간담회에서 미2사단 창설 100주년 기념콘서트가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로 파행했다는 우려가 나오자 "정말 잘 극복해야 할 문제”라며 유감을 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이 지대함 순항미사일을 발사한 지난 8일 문 대통령이 국가안보회의(NSC) 전체회의에서 “조만간 최대 우방국인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확고한 한·미 동맹 관계를 재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한 것도 마찬가지다.

사드는 한반도 안보의 뜨거운 이슈로 자리 잡았다. 중국의 보복, 미국의 불만에 이어 북한의 무인기 도발까지 벌어지고 있다. 9일 발견된 북한 무인기에서 군사분계선(DMZ)으로부터 270㎞나 떨어진 경북 성주의 사드 기지를 찍은 사진 10여 장이 발견된 것은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결국 난마처럼 엮인 사드 문제를 풀려면 미국의 협력과 중국의 이해를 구하는 전방위 외교에 더해 북한 도발을 억제할 강력한 안보 의지와 대비 태세가 필수적이다. 한·미 연합 방위태세를 굳건히 유지하면서 우리 군의 핵심 전력과 방위 역량 확보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



[매일경제]

6. 부동산 투기 근절대책 교각살우의 愚 범해선 안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어제 부동산 투기를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김 부총리는 "최근 서울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이상 과열을 보이는 것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며 가용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부동산 안정화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도 "가수요가 아닌 실수요자 중심으로 부동산정책을 전환시킬 것"이라고 밝혀 투기 근절 의지를 분명히 했다. 국토교통부와 국세청 등 부동산 합동단속팀이 과열 지역의 분양권 불법 전매, 청약통장 불법 거래 등 시장 교란행위 집중단속에 착수하는 등 투기와의 전쟁에 나서는 분위기다. 들썩거리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정부가 조기에 과열을 잡겠다는 신호를 준 것은 바람직하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재건축, 부산 분양시장 등 일부 지역 부동산이 과열 양상을 띠고, 5월 은행권 가계대출이 6조원 이상 늘어나는 등 증가세가 가팔라진 것은 분명 위험신호다. 부동산 투기는 사회 분열을 초래하는 만큼 거래 현장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히 처벌하는 것이 맞는다. 하지만 과도한 규제로 부동산 시장을 냉각시키는 것은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는 가계부채 급증을 막기 위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강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조기 도입 등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러나 획일적인 규제는 자칫 부동산 경기 침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지역별·계층별로 정밀 타격하는 '핀셋 규제'가 바람직하다. 김 부총리도 과열 지역에 대해 맞춤형으로 선별적 대응을 하겠다고 언급했는데 옳은 접근법이다.

역대 정부의 냉온탕을 오가는 극단적인 규제나 인위적 부양책은 시장을 장기 침체에 빠지게 하거나 과열로 몰아넣었다. 강력 규제로 집값 폭등을 잡으려 했다가 집권 첫해 집값이 13.4%나 상승한 노무현정부의 정책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부동산 시장은 과열도 냉각도 모두 문제다. 시장 추이를 지켜보면서 미시적인 대책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상 과열을 해소하겠다고 극약 처방을 했다가 시장 활력을 떨어뜨리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7. 프랑스 선거혁명 이룬 마크롱의 노동개혁

지난 11일(현지 시간) 실시된 프랑스 총선 1차 투표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당 연합은 전체 577석 중 최대 455석 획득이 가능한 성적을 냈다. '선거혁명'이라 불리는 이번 승리로 마크롱의 노동개혁에 크게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마크롱과 한국의 문재인정부는 거의 비슷한 시점에 출범해 압도적인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점, 국가 대개조 수준의 개혁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유사성이 있다. 특히 일자리 문제를 국정 제1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접근법은 사뭇 다르다. 마크롱은 노동시장 유연화에서 답을 찾고 있다.



그는 취임 9일 만인 지난달 23일 엘리제궁으로 주요 노동단체와 재계 관계자를 불러 8시간 마라톤 면담을 하며 노동시장 개혁 의지를 피력했다. 지난 6일엔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가 노동개혁 일정표까지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오는 28일까지 노동개혁을 정부 법률명령 형태로 추진할 근거를 마련한 뒤 8월 말까지 주요 노조 설득에 나서게 된다. 이후 의회 논의와 비준을 거쳐 9월 21일 개정 노동법을 공포할 방침이다.



노동개혁안에는 개별기업이 산별노조를 거치지 않고 노동자들과 직접 근로조건을 협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퇴직금 상한선 도입, 초과 근로수당 감축, 공공부문 일자리 12만개 감축 등이 포함돼 있다. 대체로 기업의 채용과 해고 권한을 확대해 고용 유연성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노조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지만 이번 총선 결과가 마크롱 개혁안에 대한 신임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궁지에 몰렸다. 

한국에선 공공부문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기본 방향이다. 국회에 제출된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안은 공공부문 일자리 7만1000개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정부는 또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줄이고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올릴 계획이다. 지난 정부가 공기업 고용 유연화를 위해 시도했던 성과급제 도입은 사실상 무산됐다.



한국과 프랑스는 사상 최고 수준으로 올라간 청년실업률에 똑같이 신음하고 있지만 이처럼 해법이 다르다. 공공부문 고용 확대야 한국의 특수성이 반영된 정책이라 치더라도 지금처럼 경직된 노동시장을 그대로 둔 채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프랑스의 노동개혁이 주목되는 이유다.



[이데일리]

8. 결국 제동 걸린 통신비 인하 움직임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통신비 인하 유도 움직임에 대해 집권 여당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그제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 이개호 위원장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는 소식이다. 국회의 의견이나 동의 절차도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다가 초래되는 부작용을 걱정한 때문일 것이다.

통신요금을 조정하려는 국정기획위의 의욕은 성급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심지어 관련 내용이 부실하다며 미래창조과학부의 업무보고를 보이콧하려는 험악한 분위기까지 이르렀던 게 사실이다. 국정기획위 일부 위원들이 ‘2G·3G 기본료 우선폐지’, ‘LTE 요금 추가인하’ 등 걸러지지 않은 방안들을 내놓으면서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국정기획위가 독단적 행보를 보인다”는 비판이 이어졌던 이유다.

문제는 국정기획위가 정책적 한계를 넘어서려 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이동통신사들에 대해 요금 인하를 강제할 만한 법적 근거나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과도한 의욕을 앞세웠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 과정에서 업계 관계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치만 살피고 있었을 뿐이다.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을 잡아나가는 국정기획위의 위세에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용자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에서 통신요금을 낮춰야 한다는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밀어붙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통신망을 확대하고 통화 품질을 높이려면 그만큼 시설비가 들어가야 한다는 업계의 주장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는 현재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3개 회사가 분할하고 있는 통신시장의 독과점 체제를 경쟁체제로 개선하는 등 장기적으로 추진할 과제다

일단 국정기획위의 통신비 인하 움직임에 신중론이 제기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이미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도 “결론에 얽매여 잘못된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며 속도조절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시장 현실에 대해 검토가 부족한 상황에서 선심성 공약에 매달렸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빚어졌음을 인정해야 한다. 앞으로 새 정부의 모든 정책추진 과정에서 똑같이 적용돼야 하는 교훈이다. 



[서울경제]

9. 김동연·이주열 재정·통화 정책공조를 기대한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만났다. 김 부총리가 이날 낮 신임 인사차 서울시 중구에 있는 한은 본관을 찾아 금융통화위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이 총재와 오찬회동을 했다. 김 부총리는 이날 만남에서 “한은은 우리 경제를 이끌고 가는 데 정말 주요한 기관”이라며 “소통하면서 의견을 많이 듣겠다는 겸허한 자세로 왔다”고 말했다. 이 총재도 “정부와 경제인식을 공유하며 적절한 정책대안을 제시하겠다”고 화답했다. 

이날 만남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등 양대 거시정책을 이끌어가는 수장이 만났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정부와 한은의 정책 처방이 충돌할 가능성이 커진 현시점에 정책총괄 책임자들이 만나 각자의 역할분담과 공조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인 현상이다. 두 사람은 이날 회동 후 주요 경제현안에 대해 충분한 의견을 교환했으며 “기본적으로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앞으로 구체적인 정책집행 과정에서 양대 기관이 ‘엇박자’를 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당장 11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6월 국회에서 통과시켜 본격적인 경기 부양과 일자리 확대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은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에다 가계부채와 부동산 경기 과열 진정을 위한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기재부는 경기 부양에, 한은은 통화 긴축의 불가피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

한국 경제의 안정적 운용과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한 두 기관의 정책목표는 모두 포기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책 처방을 놓고 양대 기관이 마찰을 일으킬 소지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 만난 두 사람의 어깨가 더욱 무겁다. 그렇지만 모든 정책이 한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것이라는 총론에 동의한다면 충분히 ‘답(答)’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제대로 된 정책 공조를 기대해본다.



[한국일보]

10. 새 정부 출범 후 첫 대법관 인사에 주목한다

지난 2월과 이달 초 각각 퇴임한 이상훈ㆍ박병대 전 대법관의 후임을 추천하기 위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14일 열린다. 추천위가 지난달 확정된 36명의 후보자를 검토한 뒤 5,6명을 추려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추천하면 이중 2명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한다.

이번 대법관 인선은 새 정부 들어 처음 이뤄지는 것이어서 법조계 안팎의 관심이 높다. 오는 9월 양 대법원장도 퇴임하게 돼 있어 이른바 ‘사법권력’ 교체의 흐름을 점치는 가늠자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사법부에 거대한 개혁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상황이다. 사법부의 독립 보장과 개혁을 요구하는 전국법관대표자 회의가 19일 열린다. 

사법개혁의 핵심은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과 법원 구성의 다양화에 있다. 양 대법원장 체제에서 사법부의 보수화와 관료주의가 심화됐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진보 성향의 김이수 재판관을 헌법재판소 소장으로 지명하고, 사법개혁을 주장하는 판사를 청와대 법무비서관에 발탁한 것도 그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됐다.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반영하고 사회적 약자ㆍ소수자 등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런 점에서는 이번 추천위가 심사할 후보자들도 기대를 충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36명의 후보자 가운데 30명이 현직 판사다. 여성은 4명에 그쳤고, 학계 인사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남성ㆍ서울대 법대ㆍ판사 출신’이라는 순혈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양 대법원장 체제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으로서 제청과정에서 오랫동안 대법관 다양화를 고민해 온 대통령 측과 미묘한 신경전이 예상될 만하다.

사법부 독립과 대법관 다양성을 담보할 수단으로 대법관 추천 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재의 대법관후보추천위는 대법원장이 따로 천거한 후보자들을 대부분 그대로 추천해 왔다. 이번 추천위 역시 실질적 심의 없이 형식 절차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대법원장 대신 국회와 법관 대표, 법률가단체, 법학계 등이 일정 수의 추천위원을 지명하자는 의견이 힘을 받는 이유다. 대법원장이 좌지우지하는 대법관추천위를 독립된 추천위로 혁신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당장의 과제는 대법관후보추천위가 대법원장 뜻대로 통과시키는 거수기 노릇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양 대법원장도 시대적 흐름을 외면하지 말고 사법개혁 요구에 맞는 인선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 신뢰를 받는 사법부로 거듭날 수 있다.





주요신문칼럼



1. [경향신문][구정은의 세계] 우리는 남이다

아일랜드의 인도계 게이 총리가 14일 취임할 예정이다. 엔다 케니 현 총리 뒤를 이을 리오 바러드카는 38세, 이 나라 역사상 최연소 총리가 된다. 가톨릭 국가에서 들려온 놀라운 소식이다. 하지만 아일랜드의 변화는 이미 수십년간 진행돼왔다. 그 오랜 변화의 시간들이 쌓여 새 상징을 들어올렸다. 아일랜드는 1993년 동성애 처벌법을 없앴다. 유럽 나라들 중에서는 늦은 편이었다. 그 뒤론 변화의 속도가 빨랐다. 2010년 동성 간의 결혼과 비슷한 ‘시민결합’을 인정했고, 2015년에는 국민투표를 거쳐 동성결혼을 허용했다.



세계엔 유명한 성소수자들이 많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전방위 감시망을 세상에 알린 탐사보도 전문기자 글렌 그린왈드, CNN의 유명 앵커 앤더슨 쿠퍼도 게이다. 애플 최고경영자 팀 쿡은 동성애자라 밝히면서 “신이 내게 준 선물 중 하나”라고 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국내에도 독자들이 많은 미국 동화작가 모리스 센닥도 생전에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동성 파트너와 함께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이들의 사정을 문제 삼아 아이폰을 안 쓰고 센닥의 책을 아이들에게 읽히길 거부하는 이들은 보지 못했다.

영국 작가 JK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가 이달로 첫 출간 20년을 맞는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은 마법학교 교장선생님 덤블도어 ‘게이설’이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최근 “덤블도어를 게이라고 볼 이유”라는 기사를 실었다. 덤블도어를 콕 집어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롤링 스스로 “등장인물 중 동성애자가 있다”고 했고, 덤블도어 게이설을 부정하지 않았다. 롤링은 성소수자 권리를 앞장서서 옹호해온 사람이기도 하다.

2001년부터 2014년까지 독일 베를린 시장을 지낸 클라우스 보버라이트는 “나는 게이다. 그리고 그건 좋은 일이다”라고 했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를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 게이인 그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니까. 공교롭게도 그와 임기 대부분이 겹쳤던 전 파리 시장 베르트랑 들라노에 역시 게이였다. 지금 런던에서는 무슬림 이주민 가정 출신인 사디크 칸이 시장을 맡고 있다.

유독 어떤 이들은 개인적인 것들을 공격한다. 사회를 지킨다고 자처하는 자들의 인권침해는 우습고 또 잔인하다. 태어난 곳과 종교와 성적 지향처럼 가장 개인적인 것들을 파고들어가 공격한다. 프랑스에서는 다음주면 르완다 전쟁고아 출신 하원의원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 달 전 대선에선 유권자 3분의 1이 반이민 극우파 후보를 찍었다.



소말리아계 난민 출신 여성 의원이 활동하던 네덜란드에서 이제는 총리가 이민자들을 공격한다. 이념은 무너졌고 전선은 혼란스럽다. 타인의 정체성을 대하는 태도가 정치적 색깔을 보여주는 가장 큰 지표가 된 듯싶다. 난민과 이주자 문제, 젠더와 성소수자 문제, 종교 문제 모두에서.

세계에서 불거지고 있는 ‘성소수자와의 싸움’ 그리고 ‘이주민과의 싸움’은 그리 오래지 않은, 경제침체를 맨 밑바닥 원인으로 깔고 있는 정치적 현상이다. 21세기 들어 이슬람권에서도 종교적 보수화와 성소수자 공격이 두드러졌다. 이슬람국가(IS)는 동성애자를 살해한다. 미국 텍사스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을 묵살하는 주의회의 보수적인 조치들이 시위대의 의회 점령까지 불렀다.



인도네시아에선 동성애자가 몽둥이질을 당했다. 러시아에선 정부와 국영 언론들이 게이를 악마로 몰아간다. 한국 대선에서 홍준표는 동성애와 군대 내 동성 성폭행도 구분 못하는 수준의 인식을 가지고서 인권을 모욕했다. 어디 그 사람만 그럴까. 모든 혐오는 ‘소수’를 향하고 차별과 범죄로 귀결된다. 

작은 변화가 쌓여 세상이 바뀐다. 여성 대통령이 나왔음에도 한국이 성평등 국가로 변모하지 않은 것은, 그 대통령의 개인적 특성과 지지기반 탓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수십년간 평등의식을 힘 있게 쌓아올리지 못한 탓이다. 여성 외교장관 한 명 보기도 이렇게 힘든 나라이니. 하지만 눈감고 귀막고 흐름을 뒤집을 순 없다. 지난 10일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이 열린 시청 앞 무대에서는 ‘다문화’ 어린이 합창단이 노래를 불렀다.

바러드카가 총리가 될 것이라는 기사에 어떤 이는 “한국에서도 37세 베트남계 게이 대통령 취임, 그런 날이 올까”라는 댓글을 달았다. 바러드카는 정치적으로 ‘진보’ 쪽에 속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가 대표로 있는 피너게일(아일랜드가족당)은 전통과 민족을 중시하는 중도우파 정당이다. 바러드카는 2015년 커밍아웃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반쪽 인도계 정치인도, 의사 출신 정치인도, 게이 정치인도 아니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구성하지만, 나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그 말이 맞다. 사람은 어느 한 요인으로만 규정될 수 없는 존재다. 남의 사적인 것들을, 그것도 어느 한 요인만을 뽑아내서 손가락질하고 공격할 근거는 없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 된다. 시민의 연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오지랖은 필요 없다. ‘우리가 남이가’가 아니고, ‘우리는 남이다’.



2. [세계일보][신병주의 역사의 창] 광해군의 분조(分朝) 활동

최근 임진왜란 때 광해군(1575~1641, 재위 1608~1623)의 분조(分朝) 활동을 다룬 영화 ‘대립군’(代立軍)이 상영되고 있다. 대립군은 생활이 어려워 남을 대신해서 군역을 대신하는 사람들로, 광해군이 대립군과 직접 만난 기록은 없지만, 광해군의 분조에 이름 없는 의병이 활약한 역사적 사실에 착안해 영화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1592년 임진왜란이라는 최대의 국난을 당한 시기, 선조는 4월 29일 광해군을 왕세자로 삼고 ‘분조’를 이끌게 했다. 분조는 ‘조정을 둘로 나눈다’는 뜻으로, 사실상 임시정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왕인 선조가 있는 대조(大朝)에 변고가 생기면, 분조가 정부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1592년 6월 평양성에 있던 선조는 서북쪽으로 피란을 떠났고, 6월 14일 분조가 구성됐다.



​선조는 광해군에게 강계로 향할 것을 명하였고, 영의정 최흥원, 병조판서 이헌국, 우찬성 정탁 등 15명의 대신이 분조를 돕게 했다. 1593년 1월 왕명으로 분조가 해체될 때까지 광해군은 7개월간 전시 임시정부의 구심점으로 활약하며 의병들의 항전을 독려했다.



당시 분조에 참여했던 정탁은 이때의 기록을 ‘피란행록(避亂行錄)’으로 남겼는데, 이를 통해 분조의 정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가 있다. 분조는 6월 14일 영변을 떠나 맹산, 양덕, 곡산 등을 거쳐 7월 9일 강원도 이천(伊川)에 도착해 이곳에서 20일간 머물렀다. 여름철이어서 자주 비가 내렸고 광해군 일행은 민가에서 자거나 노숙을 하면서 어려움을 견뎠다. “산길이 매우 험하여 열 걸음을 걸으면 아홉 번을 넘어져 일행 대소 관원 모두가 고생했다”는 기록은 어려웠던 정황을 생생히 증언해 주고 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중국 요동의 근접 지역으로 피란을 가는 선조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광해군은 일본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전장에서 전시 정부를 지휘하며 리더로 성장해 갔다. 광해군의 분조가 자리를 잡자 피란을 갔던 관리들이 모여들었고, 백성들에게는 희망의 공간으로 떠올랐다.



“대저 평양을 지키지 못한 이후부터 온 나라 백성들이 대가(大駕)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여 크게 우러러 전하를 사모하고 슬퍼하고 있다가, 동궁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인심이 기뻐하며 마치 다시 살아난 것 같았습니다. (…) 사람들이 세자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감격하지 않은 이가 없어서 심지어 눈물을 떨구는 자도 있으며, 경기도의 의병들이 곳곳에서 봉기해 서로 앞을 다투어 적을 잡아서 적세가 조금 꺾이고 있습니다”는 ‘피란행록’의 기록은 분조가 의병 봉기의 컨트롤타워가 됐음을 증언하고 있다. 

광해군의 분조 활동은 7개월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임진왜란 초반 치열한 격전기에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광해군은 분조 활동을 통해 위기관리 능력을 훌륭히 수행했고, 왕위에 오른 후 외교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정권 후반기 측근 세력의 등용과 반대파에 대한 정치 보복, 무리한 토목 사업 등으로 말미암아 결국 1623년 인조반정으로 폐출되기에 이르렀다. 광해군의 사례에서 초심을 유지하며 성공적인 왕으로 기억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3. [매일신문][야고부] 사이비 경제 이론

상품의 가치는 생산에 투입된 노동만이 창출한다는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은 퇴출됐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때문만은 아니다. 이론 자체의 허점 때문이다. 노동가치설은 상품의 가치는 생산이 이뤄지는 장소, 즉 공장 내부에서 창출된다고 주장한다. 즉 상품이 생산돼 시장에 이르기도 전에, 이미 상품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동가치설의 허점이다. 상품은 판매를 위해 생산된 재화다. 그리고 판매가 이뤄지는 곳은 시장이다. 결국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시장이다. 노동이 적게 투입됐지만 시장의 환영을 받으면 그 상품의 가치는 올라간다. 반대로 제아무리 많은 시간과 노동이 투입돼도 시장에서 팔리지 않으면 그 상품의 가치는 ‘0’이다.



이는 상품 생산에 들어간 노동의 가격(임금)도 상품에 대한 시장의 평가로 결정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이런 점을 분명히 했다. “임금의 크기는 노동조합의 교섭력이나 생산 과정에서 결정되는 것도, 자본과의 관계에서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노동자의 노동이 상품에 부과한 가치를 소비자가 평가함으로써 결정된다.”



마르크스는 왜 노동가치가 결정되는 장소를 공장 내로 제한했을까. 이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다. 그래서 아마도 어떤 상품이든 생산하면 무조건 팔릴 것으로 전제했기 때문이라고 추론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전제해야만 노동가치설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품과 노동의 가치는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된다. 수요와 공급은 가격 결정의 기본 메커니즘이다. 이를 배제했다는 점에서 노동가치설은 ‘사이비 경제 이론’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경제 성장을 해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어 성장을 하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도 마찬가지다. 일자리는 경제가 성장해야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고용이 적은 성장은 있어도 성장 없는 고용은 없다는 뜻이다.



경제 성장 없이 일자리를 늘리는 방법은 딱 하나다. 세금으로 유지되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일자리는 경제를 성장시키지 못한다. 국민경제의 파이를 키우는 부가가치는 창출하지 못하면서 세금만 축내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재앙이다. 국민의 4분의 1을 공무원으로 만든 그리스가 이미 입증한 바다.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은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가슴이 답답해 온다.



4. [중앙일보][시론] 파리기후협정은 산업 혁신의 기회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협정 탈퇴를 공식 발표하면서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세계 최강국이자 온실가스 2위 배출국인 미국의 탈퇴 선언으로 파리협정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관론을 압도하는 것은 냉정하면서도 낙관적인 시각이다. 대다수 분석가들은 국제사회의 기후 체제에서 미국의 부재가 가져올 부정적 영향은 매우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한다. 타격을 입게 될 것은 파리협정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 자신과 미국의 미래라는 것이다.

미국 국민의 여론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하지 않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0명 중 6명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지지자들도 파리협정 탈퇴를 반대하는 기류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올해 2월 예일대와 조지메이슨대의 공동 조사 결과로 확인된다.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 가운데 47%가 파리협정 잔류를 지지한 반면 탈퇴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28%에 그쳤다.

지방 정부와 기업들의 반발도 예사롭지 않다. 지금까지 1200명이 넘는 주지사·시장·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우린 아직 탈퇴하지 않았다(We Are Still In)’ 캠페인의 지지 서명에 참여했다. 그 수는 날이 갈수록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월가와 대규모 투자가들의 이해에 반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애플·아마존·구글·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 등에 이어 거대 석유기업 엑손모빌까지 비판 대열에 합류한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의 기후변화 정책이 새 대통령에 의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면 새 정부가 출범한 우리나라에서도 기후변화 정책은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 목록에 굵직한 기후변화 정책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약을 문자 그대로만 해석하면 앞으로 전개될 변화의 폭과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변화의 진원지는 과연 어디가 될까. 그건 미세먼지 배출량을 임기 내 30% 감축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일 가능성이 크다.



미세먼지와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물질의 배출원은 거의 같다. 미세먼지를 틀어막으면 온실가스 배출량도 덤으로 줄게 된다. 문재인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은 미세먼지라는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노후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 신규 건설 전면 중단과 공정률 10% 미만 건설 원점 재검토 공약이 현실화된다면 발전 분야에서는 감축 공약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발전 분야의 감축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우리 현실에서 더 중요한 것은 산업 분야다. 기후변화 정책은 환경보호가 본질이지만 산업 부문의 혁신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산업정책의 성격도 갖는다. 박근혜 정부로부터 ‘4대 기후 악당 국가’라는 유산을 물려받은 새 정부가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산업정책의 패러다임부터 바꿔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기업들은 ‘파리협정은 미국에 나쁜 거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왜 ‘시대착오적’이라고 평가할까.

첫째, 자동차 시장과 에너지 시장의 변화된 현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선언이 나온 후 불과 4시간 만에 일론 머스크가 대통령 경제자문역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가 환경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전기차를 생산하는 테슬라의 최고경영자인 머스크의 이해관계는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을 예정하고 있는 파리협정의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 파리협정 잔류를 지지하는 엑손모빌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이 석유 대기업이 수년 전부터 탄소 배출량이 적은 연료 개발에 약 70억 달러를 투자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둘째,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 선언은 화석연료 산업과 재생에너지 산업의 대리 전쟁이 격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전쟁의 승자는 이미 결정돼 있다. 승패를 결정짓는 잣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다. 트럼프 대통령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사실은 미 에너지부의 통계가 증명한다. 미국에서 화석연료 산업 고용 인원은 18만7000명인 데 비해 재생에너지 산업 종사자 수는 47만5000명으로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셋째, 파리협정 탈퇴는 다른 국가들이 국경에서 미국산 제품에 탄소 관세를 부과하는 등 무역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이 논의는 이미 많은 유럽 국가에서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도 경쟁력을 왜곡시키는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물릴 수 있다고 위협해 왔다는 점에서 거부 명분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대다수 국가가 파리협정을 비준한 이유는 그것이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탈퇴는 재생에너지 등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경쟁 국가들에 양도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독일과 일본은 벌써부터 미국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새 정부 앞에는 엄혹한 기후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기후변화 대응을 경제에 부담을 주는 것으로만 여기는 낡은 사고방식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5. [중앙일보][취재일기] 같은 실수 반복하는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제주도 모슬포항에서 정기 여객선을 타고 가파도 선착장에 내리자 하늘색 공용 전기차부터 눈에 들어왔다. 선착장 맨 끝자리에 얌전히 주차돼 있었다.

가파도 홍보 동영상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면 이런 차가 아름다운 해변을 끼고 달리는 장면이 꼭 나온다. 작은 섬(0.83㎢ ) 가파도에 4대의 전기차와 곳곳에 전기 충전소가 있다는 설명도 곁들여진다.

하지만 이틀 동안 마을 어디에서도 전기차가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물론 가파도는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작은 섬이라 차량 사용 빈도가 낮다. 하지만 가파도 주민들은 짐을 나르거나 작업을 할 때 오래된 디젤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이용하고 있었다. 자전거 대여소엔 관광객만 북적였다. 바람과 태양으로 주민들이 쓸 전력의 대부분을 생산하고, 전기차와 자전거의 천국이라는 이미지와는 괴리가 컸다.



‘에너지 자립섬’ 가파도의 디젤 발전 의존도가 높다는 보도(본지 6월 12일자 B2면)가 나가자 여러 지역 독자들의 e메일 제보가 들어왔다. 전국 곳곳에 ‘무늬만’ 신재생에너지인 사업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 중 상당 부분은 에너지 관련 공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제대로 된 조사 없이 밀어붙인 결과다. ‘수장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신재생 관련 국가 예산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기 전에’ 서둘러 진행하면서 생기는 특유의 ‘한 건 주의’ 부작용이다.

앞서 신재생에너지를 도입한 다른 마을 프로젝트의 문제점을 파고들어 개선 방법이 있을 때 다른 지역으로 확대했더라면 같은 실수는 안 했을 것이다. 그럴 시간 없이 고만고만한 프로젝트들을 복사하고 문제가 생기면 예쁘게 포장하기 급급하다.



지난해 12월 제주에너지공사가 제주도에 제출한 ‘마이크로 그리드 구축을 위한 타당성 조사 연구 용역’을 보면 가파도와 가사도의 성공을 소개할 뿐 문제점을 다루진 않는다. 현장에 한 번만 가보면 보이는 문제점을 에너지 전문가들이 모를 리 없는데도 모호하게 표시하거나 회피한다. 전문가들로서는 무척 무책임한 태도다. 만약 이들이 문제점을 몰랐다고 한다면 그건 더 참담하다.

신재생에너지 확대는 시대적 사명이다. 더 이상 환경이 망가지는 것을 방치할 수도 없거니와 화석연료는 언젠가는 고갈될 것이기 때문이다. 석유가 나오지 않는 한국은 더욱 절실한 분야라 열심히 뛰어야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이런 보여주기식 신재생에너지 확산만 계속된다면 투입한 돈은 돈대로 잃고 환경도 망가지는 최악의 결과와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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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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