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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경향신문]
1. 한국당·바른 정당 국회 정상화하고 협치 나서라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자유한국당 정우택 등 여야 4당 원내대표들이 국회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어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한 데 이어 장관 인사청문회도 연다는 데 일단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다만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 심사 등 몇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여야가 막바지 합의를 시도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 강행 후폭풍으로 사흘 동안 파행했던 국회가 반쪽이나마 재개돼 다행이다.
이번 국회 파행은 정권이 교체된 직후부터 여야가 충돌하는 관행을 되풀이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인수위원회도 꾸리지 못한 채 출범한 문재인 정부를 향해 한국당은 반대로 일관했다. 한국당은 인사청문회에서 공직 후보자를 엄정하게 검증한다고 했지만, 시민들 눈에는 발목 잡기로 비쳤다.
강한 야당만 추구하니 무리수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한국당 이철우 의원은 최근 제주에서 당원들에게 “문재인 정권이 오래 못 갈 것 같다”고 말했다. 당 최고위원이 되겠다고 나선 중진의 말이라고 믿을 수 없는 충격적 언사였다. 이것이 한국당 내부의 정서를 대변하는 말이라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협치할 마음이 아예 없다는 속내가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끝없이 강화되는 한국당의 극우적 안보관도 문제이다. 한·미동맹에 대한 맹신과 미국 지상주의 외에는 어떤 대안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에 기대려는 태도가 일본의 자민당보다도 심하다. 이러고도 보수당으로 자부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우려되는 것은 합리적 보수를 자임한 바른정당 또한 한국당과 같은 대열에 서 있다는 점이다. 사드 등 안보 현안에 대한 바른정당의 정부 비판은 색깔 공세였다.
한국당은 정부와 여당을 계속 공격하면 옛 지지자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성찰도 하지 않는 정당을 시민들이 지지할 리 만무하다. 한국당이 국회 청문회 재개에 합의한 것은 궁여지책이다. 정부에 대한 강공이 시민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접은 것을 세상이 다 안다.
과거 민주당이 오랫동안 선거에서 시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것은 대안 없이 정부·여당의 발목만 잡은 탓이 컸다. 보수정당들이 진정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기고자 한다면 그 전철을 밟아선 안된다. 추경을 비롯해 허다한 개혁과제들이 눈앞에 쌓여있다. 야당들은 이번 파행을 교훈삼아 협치에 나서야 한다.
[연합뉴스]
2. '밀실 논의'에 종언 고한 경제사령탑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경제 현안 논의를 위한 간담회를 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김 부총리가 정부의 경제 사령탑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이 간담회에서 재확인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된 청와대 정책실장이 새 정부에서 부활하자, 경제 정책의 주도권을 누가 갖게 되는지를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나왔다. 의구심이 쌓이면 시장에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데 이날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이다.
참석자들은 또 문재인 정부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최우선 경제 과제라는 점에 인식을 같이했다. 시장질서를 훼손하는 기업은 엄정히 처벌하되 혁신과 투자, 상생협력에 적극적인 기업에는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김 부총리와 장 정책실장, 김 위원장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다. 새 정부의 '경제수뇌부'라 할 수 있는 이들 3인이 언론 공개 하에 비공식 간담회를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래서인지 이날 회동을 보고 과거 정권의 '서별관 회의'를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경제 고위관계자 회의가 처음 생긴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때다. 청와대 본관 서쪽 별관에서 열린다고 해서 관가에서는 '서별관 회의'로 불렸다. 대우차·하이닉스 등 대기업 빅딜, 은행 구조조정, 신용카드 사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굵직한 경제 현안들이 서별관 회의를 거쳐 갔다.
박근혜 정부 때는 주로 거시경제와 금융시장 현안을 다뤘는데 2015년 10월 대우조선해양 지원 결정을 둘러싸고 '밀실회의' 논란이 불거져 작년 6월 중단됐다. 서별관 회의는 법적 근거가 없다. 참석자와 개최 시기는 비공개이고 회의록이나 의사록도 작성되지 않았다.
정부는 이번 회동을 계기로 경제 현안이 생길 때마다 관련 부처와 기관의 고위관계자들이 공개 간담회를 열기로 했다. 물론 참석자들의 발언을 정리한 회의록이나 속기록도 남길 계획이라고 한다. 간담회에서 결정된 내용은 전 경제팀이 일치단결해 추진하고, 시장에도 일관되고 예측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했다.
김 부총리는 "이번이 첫 회의인데 내각 인사가 완료되면 현안에 따라 장관들을 모시고 격의 없이 회의를 열겠다"고 밝혔다. 장 실장도 "김 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 현안을 잘 챙겨가고 있다는 신뢰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별관 회의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회생이 거의 불가능한 대우조선에 천문학적 규모의 혈세를 추가로 투입하는 결정도 이 회의에서 내려졌다.
고도의 투명성을 필요로 하는 경제 현안들을 권부의 실력자 몇몇이 밀실에서 칼질하는 정부를 온전하다고 할 수 없다. 이번 회동이 정부 정책의 '밀실 짬짜미'에 종언을 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중앙일보]
3. 대선 때 빚' 갚으라고 광화문 출근길 막은 노조
어제 아침 출근길 서울 광화문을 지나는 시민들은 애간장을 태워야 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건설노동조합 소속 조합원 7000명(주최 추산)이 벌인 도로 행진 때문이다. 이들은 광화문 소공원 앞에서 결의대회를 가진 뒤 3개 차로를 막고 종각 방향으로 행진했다. 경찰은 신고된 집회라는 이유로 따로 제지하지 않았다. 이 바람에 버스 운행에 차질이 빚어지고 어쩔 수 없이 하차한 시민들로 광화문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다.
문제는 노동계의 줄파업이 예고돼 있어 이날 혼란은 맛보기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은 오는 28일부터 7월 8일까지를 ‘사회적 총파업 주간’으로 정하고 30일 대규모 집회와 파업에 나선다. 총파업에 대한 선전포고는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 주도했다. 그는 2015년 도심 폭력시위를 주도해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다.
한 위원장은 민노총 홈페이지에 19일 게시된 옥중서신을 통해 “정경유착의 공범 재벌, 개혁의 대상 권력기관과 기득권 집단이 코너에 몰려 있는 지금이야말로 칭기즈칸의 속도전으로 개혁을 밀어붙일 적기”라며 “문재인 정부는 기득권 세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책임 있는 조치를 하라는 것이 6·30 총파업의 요구”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일자리위원회와의 그제 정책간담회에서 김주영 위원장은 “우리가 문재인 대통령 승리의 발판을 만든 주역인데 일자리위원회가 우리를 진정한 동반자로 여기는지 의문”이라며 노동계를 구색 맞추기 위한 장식물로 보지 말라고 압박했다.
양대 노총의 이런 행위는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대선 때 지지해 준 대가를 요구하는 모양인데 이래서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비정규직과 최저임금을 비롯해 노동개혁을 하려면 네덜란드 바세나르협약이나 독일 하르츠개혁처럼 노사정이 서로 양보해야지 노조 주장만 내세워선 조금도 진전될 수 없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정부는 노사정 전체를 바라봐야 하고 혼란을 일으키는 극단적 행위에는 엄정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4. 한미회담 앞둔 美기류 "워싱턴 사람들은 바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9, 30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CBS 방송과 워싱턴포스트(WP)지와의 인터뷰에서 2단계 북핵 해결 로드맵을 제시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고 핵·미사일의 고도화를 멈추는 핵 동결을 하면 대화에 나서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폐기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한미 양국이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 있는 북한의 변화를 대화의 전제로 삼았던 기존 전략과는 명백히 다른 구상이다.
‘비둘기파 한국 대통령과 매파 미국 대통령의 첫 만남’이 성과를 낼 수 있을지를 탐색하는 미국의 미디어에 문 대통령은 양국의 공통점을 강조했다. 북한을 최대한 압박하고 여건이 조성되면 관여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제가 말하는 관여와 같다”며 ‘최대의 압박’ 역시 미국과 공조하겠다고 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환경영향평가가 사드 배치 합의 취소나 철회를 의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20일 김정은과의 연내 회담 의지를 밝힌 데 이어 21일 WP 인터뷰에선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했다. 제재와 압박이라는 메뉴판에 대화를 더해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이 점에 대해 허심탄회한 논의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럼에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 이후 미국 내 대북 강경기류가 급격히 커지면서 과연 한미 정상회담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대북 제재 ‘키 플레이어’로 꼽아온 중국을 배제하고 독자 해법을 모색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문 대통령이 ‘조건이 맞으면’ ‘적절한 조건하에서’를 강조하면서도 압박보다 대화에 방점을 둔다면 정상회담 분위기가 좋지 않을 수 있다. 개성공단에 대해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온다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유엔 결의 위반임을 알면서도 재개할 수 있다는 문 대통령의 답변은 국제사회 분위기와 거리가 멀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가 방미 기간 중 접촉했던 패트릭 크로닌 미국 신안보센터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은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워싱턴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라고 했다. 미국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 대가로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는 문 특보 말을 청와대 의중으로 보는 기류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강조했듯이 북핵 폐기와 한반도 비핵화라는 한미의 공통 목표를 달성하려면 양국 대통령의 신뢰와 우정이 대단히 중요하다. 외교안보 라인을 ‘자주파’로 채운 문 대통령이 남북대화의 조건을 미묘하게 바꾸는 등 조급증을 보이다가는 더 큰 안보 위협을 자초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
5. 일자리委 첫 회의에서 “親기업” 밝힌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취임 1호 업무지시로 설치한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회의를 주재했다. 사용자 측 위원으로 참석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하며 문 대통령은 “저는 친노동이기도 하지만 친경영, 친기업이기도 하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준다면 업어드리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일자리 문제는 산업정책, 노동정책, 재정금융정책이 어우러져야 하고 모든 경제 주체의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도 옳은 인식이다.
이날 회의에서 이용섭 일자리위 부위원장은 저성장 기조 고착화, 고용 없는 성장 등 일자리 창출 역량이 부족할 뿐 아니라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 확대, 양질의 일자리 감소로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며 이를 타개하는 ‘J노믹스’ 비전으로 일자리 중심의 포용적 경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일자리위가 경제·사회 시스템을 일자리 중심 구조로 재설계하는 등의 3대 과제를 내놨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취업알선, 직업교육, 실업급여 등의 일자리정책을 끊임없이 발표해왔다. 그러나 기업의 수요나 구직자의 선호와 거리가 먼 정책에 재정을 쏟아붓는 바람에 현재 청년실업은 사상 최악이다. 일자리는 결국 기업이 만든다는 시장원리에 따라 민간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고용을 창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일자리위의 소명이 돼야 한다. 문 대통령이 친기업 성향을 내비친 것도 아무리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린들 민간 기업이 고용을 늘리지 않으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소송 중인 통상임금을 일자리기금에 출연하겠다는 금속노조의 전날 제안에 대해 문 대통령이 감사한다며 “비정규직 문제에 선도적으로 나서 준 것”이라고 평가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노조가 봉이 김선달 식 제안을 했다”는 재계의 비판이 하루 만에 무색해진 꼴이다. 경영계와 노동계가 모두 한배를 탄 상황에서 정책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 배는 침몰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8월 말까지 일자리정책 로드맵을 내달라고 했지만 고용정책의 양면성을 간과한 채 무리수를 둔다면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지 모른다.
6. '사회적 총파업' 예고한 민노총, 어떤 사회를 말하는가
어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문재인 정부 출범 50일째인 30일을 기해 ‘사회적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2015년 폭력시위를 주도해 복역 중인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은 옥중 서신에서 “정경유착의 공범 재벌, 개혁 대상 권력기관과 기득권 집단이 코너에 몰려 있는 지금이야말로 칭기즈칸이 속도전으로 개혁을 밀어붙일 적기인데 (문재인 정부가) 주춤하고 있다”며 대규모 상경 투쟁을 독려했다.
사회적 총파업이란 비정규직 장애인 여성 노인 등 소외계층의 지위 향상을 목표로 한다고 민노총은 설명한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처우 개선, 재벌 개혁 등 구체적인 사회개혁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정치파업과 다르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들의 요구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상당 부분 반영돼 있고 문 대통령은 어제 ‘1년의 유예기간’을 당부했다.
민노총이 굳이 28일부터 열흘간을 ‘사회적 총파업 주간’으로 정해 사회적 불안을 키울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촛불시위를 주도한 민노총이 정권 초반 세(勢)를 과시함으로써 문재인 정부 탄생에 기여한 ‘빚’을 받아내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실제로 민노총은 1997∼1998년과 2002∼2003년 등 정권 1년 차와 5년 차에 파업을 극대화해 자신들의 요구를 최대한 관철하는 성향을 보여 왔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노사 문제에서 노동자 얘기에 귀 기울일 것을 주문했다가 화물연대 파업, 철도노조 파업 등이 이어지자 취임 넉 달 만에 “노조에 대한 특혜를 없애야 한다”고 돌아선 바 있다.
민노총에 속한 공공부문과 대기업 근로자들은 임금 상위 10%에 속하는 ‘노동 귀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노총 산하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20일과 21일 서울 도심에서 술판을 벌이는 노숙투쟁과 다음 날 오전 차로를 점령한 거리행진까지 벌였다. 그들만의 특권과 반칙을 누리는 사회를 새 정부가 보장할 것인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서울교육]
7. 교육감들이 교육정책 중구반방 주물러서야
특목·자사고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연일 덩치를 키우고 있다. 지난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경기도 내 외고·자사고를 폐지하겠다고 전격 발표하면서 불씨는 지펴졌다. 뒤질세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같은 방침을 표명했다. 당장 서울시교육청은 오는 28일 서울 소재 일부 자사고와 외고의 재지정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특목·자사고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대 교육공약이다. 교육현장 안팎에서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던 사안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이 숨 고를 새도 없이 급물살로 밀어닥칠 줄은 예상치 못했다는 당혹감이 크다. 직격탄이 눈앞에 닥친 서울 자사고연합회는 어제 “정치적 진영논리에 입각한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정면 반박에 나섰다.
극심한 고교 서열화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사회 병폐다. 일반고에 진학하는 대다수 학생들이 시작도 해보기 전에 패배의식에 젖는 현실은 지켜보기 안타까울 정도다. 하지만 수십년을 이어온 정책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정책의 행태는 제동이 걸려야 한다. 절대평가를 강화하려는 기조 아래 서울, 경기 지역에서 특목·자사고 폐지 방침을 발표하자 당장 서울 강남 8학군이 들썩거린다.
교육 개혁을 위해서는 사회적 불화와 혼돈은 감수해야 할 몫이다. 그렇더라도 지금 같은 분위기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일부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주도권을 쥐고 흔드는 듯한 인상은 개혁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정부가 굳건한 교육정책 비전을 가진 게 아니라 진보 성향 교육감들의 입김대로 풍타낭타한다는 의심이 들어서야 되겠는가. 중·고교의 일제고사도 지역별 학업능력을 줄 세우지 말라는 교육감들의 요구로 지난주 느닷없이 폐지됐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자사고 취소 권한을 교육감에게 완전히 넘겨달라고 교육부에 요구하고 있다.
수십년 이어진 교육제도를 허무는 작업은 고통이다. 그 고통의 대상자는 다름 아닌 학생들이다. 이런 마당에 몇몇 진보 교육감들의 목소리에 정책 논의조차 실종되는 현실은 불신만 키운다. 교육감들의 임기는 내년 6월까지다. 뒷일을 책임질 보장도 없으면서 포퓰리즘 정치를 한다는 쓴소리마저 들린다. 정책의 생명은 신뢰다. 어떤 순간에도 교육이 ‘정치’로 의심받아서는 안 된다. 뒷짐 진 정부도, 목청 높이는 교육감들도 새겨듣길 바란다.
8. 몰아붙이기식 노동계 총파업 正道 아니다
노동계가 총파업을 예고했다. 노동친화적이란 평가를 받는 문재인 정부에 노동 관련 공약을 조기에 이행하라는 요구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는 한 달 보름여밖에 되지 않았다. 대통령 인수위원회도 없이 들어선 정부다. 공약을 제대로 가다듬을 최소한의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 게다가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에 양대 노총을 모두 참여시키고, 내일 민주노총과 공식 간담회를 여는 등 노정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선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는 노동계의 총파업 예고를 다소 뜬금없고 섣부른 행위라고 본다.
민주노총은 오는 30일 ‘사회적 총파업’을 예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50일째 되는 날이다. 서울에서 수만명이 참여하는 집회를 열고 최저임금 1만원 달성,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새 정부 초기에 압박 수위를 높여 기선을 잡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한상균 위원장은 옥중서신을 통해 “지금이야말로 칭기즈칸의 속도전으로 밀어붙일 적기”라고 파업을 독려하고 나섰다.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도 총파업 투표에 들어갔다. 노조원 6000여명은 그제부터 이틀째 서울 세종로공원 등에서 상경집회를 열었다. 어제 집회에서 노조원들은 인도와 3개 차로를 완전히 가로막아 출근길 시민들이 극심한 차량정체로 큰 불편을 겪었다. 공공비정규직노조도 ‘임단협 승리 총파업 출정식’을 열었다. 화물연대는 다음 달 1일 총파업 결의대회를 가질 계획이다. 초·중·고교 급식과 교무 보조 등을 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30일 총파업에 동참할 것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이 노동친화적 공약을 내놓고 취임 후 친노동 행보를 보이면서 노동계의 기대감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정부를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 아무리 공세를 강화해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라고 해도 느닷없이 총파업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명분 없는 정치적 행위일 뿐이다.
노동 현안과 정책에 대해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시간을 정부에 줘야 한다. 비정규직과 최저임금제 문제는 일자리위원회, 최저임금위원회 등 제도권에서 풀어가는 게 순리다. 대화할 수 있는 절차와 장치가 마련돼 있는데도 곧바로 파업에 나서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한 위원장은 “총파업이 정부의 개혁 추진을 위한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보다는 오히려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자승자박하는 꼴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이 과연 총파업에 나설 시기인지 다시 숙고하기 바란다.
[이데일리]
9. '재벌 손자' 학교폭력의 진실 무엇인가
서울시 교육청이 어제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대기업 총수 손자와 연예인 아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숭의초등학교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지난 이틀 간의 특별장학 결과 조사 지연, 사건 축소 정황 등 의혹이 일부 확인됐다는 판단에서다. 교육청은 감사에서 학교 측이 재벌 손자를 가해자 명단에서 고의로 누락시켰는지 여부를 집중 조사할 방침이라고 한다.
아직 사실 여부를 단정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학교 측의 대응을 보면 은폐·축소 의혹을 살 만하다. 피해 학생 부모가 폭행 사실을 신고한 지 20여일이나 지나 전담기구를 구성한 자체가 그러하다. 게다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이 사건이 학교폭력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 짓고 화해·사과 권고로 마무리했다. 피해학생은 근육세포가 손상되는 등 심각한 장애 진단을 받았는데도 가해학생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것이다.
가해자 누락 문제도 마찬가지다. 피해자 측이 주장한 가해자는 재벌 손자와 연예인 아들 등 4명이다. 그러나 학교 측은 당사자들이 현장에 없었다는 다른 학생의 진술을 토대로 가해자 명단에서 재벌 손자는 제외시켰다. 하지만 회의록을 보면 당시 재벌 손자가 있었다는 장소가 계속 번복된 데다 “이들이 폭력에 가담했다”는 또 다른 학생의 진술도 없지 않다. 정황상 학교 측에서 가해자 명단에서 이들을 제외했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위원회가 학교폭력이 아닌 것으로 결론지은 과정도 석연치 않다. 1차 회의 때는 ‘학폭’이라는 의견이 다수였는데 막판에 ‘심한 장난 수준’이라는 학교 측 입장에 동조하는 쪽으로 흘렀다고 한다. 이 학교뿐 아니라 대부분 학교에서 학교폭력위원회가 진상규명보다는 학교 편을 든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역할 재점검이 필요하다. 학교폭력 전담 경찰관이 위원회 위원이 아니었기에 문제 해결에 적극 개입이 어려웠다는 점에서 담당 경찰을 당연직 학폭위원으로 위촉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재벌 손자라고 해서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손가락질 받아서는 안 된다. 반대로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처벌을 피해 나간다면 그 또한 사회정의에 어긋난 일이다. 사건의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10. 봉급생활자 면세 축조의 전제조건
근로소득자의 절반 가까이 세금을 한 푼도 안 내는 지금의 현실은 굳이 ‘국민 개세주의’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2015년 기준으로 전체 근로소득자 1726만명의 46.5%에 해당하는 803만명이 세금을 전혀 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면세자 비중은 전년보다 1.4% 포인트 내려갔지만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이다. 영국은 5.9%에 불과하고 미국(35.8%), 캐나다(33.5%), 호주(25.1%) 등도 우리보다 10~20% 포인트나 낮다.
세금을 안 내는 근로소득자가 많은 것은 면세점이 10년째 1200만원으로 묶여 있는 데다 그나마도 빠져나갈 구멍이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연봉이 2000만원을 훨씬 넘어도 각종 소득공제를 적용하면 과세표준이 면세점에 근접하고, 얼마 안 되는 세금마저 세액공제로 털고 나면 내야 할 세금이 삭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그제 공청회에서 면세자 비중을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표준세액공제 축소와 세액공제 종합한도 설정 및 근로소득공제 축소를 제시한 것이 그래서다. 이들 대안을 활용하면 면세자 비중이 10% 포인트까지 낮아지고 최대 1조 2000억원의 추가 세수 확보가 가능한 것으로 추산됐다.
성실한 납세는 국민의 의무라는 점에서 정부의 면세자 축소 방침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가뜩이나 ‘유리알 지갑’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터에 저소득층까지 증세 대상에 포함시키려면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지난 정부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했다가 봉급생활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던 ‘연말정산 파동’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공평 과세를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부동산 다운계약서 작성이나 업무용 차량의 개인용도 전용 등 사회 저변에 만연한 탈세 관행과 지하경제에 철퇴를 내리고, 재산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세금망을 교묘히 벗어나는 상습 체납자들에 대한 단속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계속 미뤄지고 있는 종교인 및 미술품에 대한 과세도 조속히 시행돼야 마땅하다. 저소득 봉급생활자에 대한 납세의무 이행을 요구하는 것은 그다음 얘기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영화 '파퍼씨네 펭귄들'과 미술로서의 건축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던” 것처럼 미술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장품이지만 그 소장미술품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그릇인 건물도 매우 중요하다. 소장품과 함께 특별한 건물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등장한 미술관은 다름 아닌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공식 명칭은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미술관 부지는 뉴욕에서 가장 조용하며 자연과 가까운 센트럴파크에 접해 있다. 여기에 미국의 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자연친화적인 동시에 유기적인 건축물로 미술관을 완성했다. 기하학적인 형태 즉 삼각형, 타원, 호, 원, 정사각형 등이 조화를 이뤄 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존중받고 있다.
특히 하나하나의 연결된 화이트 큐브 공간을 통과해야 하는 일반적인 미술관 건축에서 벗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가 계속 이어지는, 완만하게 경사진 공간을 따라 내려오면서 작품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동시에 한눈에 다른 공간에 전시된 작품들까지 볼 수 있도록 한 것이 당시나 지금이나 파격이었다. 하지만 준공 당시 타임지는 “커다랗고 하얀 아이스크림 냉장고”라 불렀고 어떤 이는 ‘양변기’, ‘달팽이’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건축이야말로 구겐하임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소장품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이렇게 독특한 미술관 건축은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되어 주었다. 2009년 제작된 스릴러 영화 ‘인터내셔널’이나 ‘로마에서 생긴 일’(2010), ‘맨 인 블랙’(1997) 등등 많은 영화에 출연해 볼거리가 되어 주었다. 특히 코미디의 황제 짐 캐리가 톰 파퍼로 나와 6마리의 펭귄과 좌충우돌하는 영화 ‘파퍼씨네 펭귄들’(2011)에서 펭귄들이 얼음 통에서 쏟아진 물을 따라 물썰매를 타듯 쏜살같이 1층으로 향해 내려오는 장면은 구겐하임의 비스듬한 건축적 특성을 잘 드러낸다.
톰은 부동산 개발회사에서 일하며 성공한 사내지만 가정과 아내(칼라 구기노) 그리고 아이들을 멀리한 대신 성공을 얻은 반쪽짜리 남편이자 아빠다. 그런 그가 남극탐험을 떠났다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펭귄을 유산으로 상속받은 뒤 그 펭귄과 함께 좌충우돌하면서 가정의 평화를 얻고 아버지로서 아이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다소 뻔한 이야기다.
아무튼 구겐하임의 파격은 처음 이름인 ‘비구상회화미술관’에서 시작됐다. 1890년대부터 고대회화를 수집했던 솔로몬은 1926년부터 유럽과 미국의 추상회화들을 수집하기 시작해서 1937년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을 설립하고 뉴욕 이스트 54가에 미술관을 처음 개관했다. 그 후 1952년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개명하고 1959년에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의 설계로 뉴욕에 ‘정신적 성전’을 표현하는 둥근 로툰다형 미술관을 열었다.
이 건축물은 1943년 설계를 시작해 16년이 지난 후에 건축가도 건축주도 모두 세상을 떠난 다음 완공됐다. 그 후 1992년 그웨스메이 시겔 & 어소시에이츠 사의 설계로 커다란 장방형 건물을 덧붙여 전형적인 전시 공간을 추가했고 2005~2008년 동안 대규모 확장과 수리를 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구겐하임의 전통(?)은 1997년 빌바오에 개관한 프랭크 게리(1929~ )의 빌바오 구겐하임에 이어 올 연말 개관 예정인 아부다비 구겐하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빌바오 구겐하임의 성공 이후 세계의 미술관, 박물관은 이미 갖추어진 절대적인 소장품을 더욱 빛내 줄 공간 즉 건축에 열정을 쏟아 건축 자체가 미술품이 되어 미술품 속에 미술품을 전시하고 보관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사실 미술관 건물에 공을 들인 시초가 구겐하임이라면 1997년 파리에 개관한 퐁피두센터가 그 뒤를 이었고, 빌바오가 성공한 후에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1997년의 바이엘러미술관, 2000년 개관한 테이트 모던을 비롯해서 2010년 퐁피두 메츠나 2012년 문을 연 루브르 랭스분관, 2016년 뉴 테이트 모던이나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외에 많은 미술관들이 확장과 증축을 통해 세계적인 미술관으로서 자존심 세우기를 경쟁하고 있다.
영화 속 톰처럼 가정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던 라이트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위한 디자인을 위해 헌신했으며 언제나 새로운 창조적 정신으로 매사에 임했으며, 총 1141점의 건축설계 계획 중 반 이상인 532점이 실제 건축됐다.
이 중 현존 작품 수만도 409점에 이르며 이 중 3분의1 이상이 사적으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으로 예술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그는 어느 건축가보다도 사람 사는 집에 관심을 가져 주택만 해도 350여 채를 설계했는데 부자들을 위한 고급주택뿐 아니라 중산층을 위한 저렴한 유소니언 하우스를 시도해 만인을 위해 저렴하며 아름답고 튼튼한 실용적인 건축을 시도했다.
이렇게 건축은 사람을, 삶을 담는 그릇인 동시에 환경이며 자연이다. 또한 건축은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추어야 하는 실용예술인 동시에 공간예술이다. 하지만 고도성장 과정에서 경제성, 효율성을 강조해 왔던 우리나라에서 예술적이며 실용적인 건축물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건물은 있지만 건축은 없다”는 자조적인 말까지 생겨났다.
이제라도 나라 형편에 맞는 건축미술관이 건립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이웃나라 일본에는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데이코쿠 호텔과 자유학원이 문화재로 지정돼 있고, 그와 쌍벽을 이루는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1887~1965)의 국립서양미술관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광객을 불러 모으며 문화적 자부심의 바탕이 되어 주고 있다.
지금이라도 건축은 그냥 집이 아니라 문화며 예술이라는 생각으로 후손들에게 물려줄 내일의 문화재를 만든다는 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길을 걷다 보면 남보다 빠르게 짓고 만들었다는 사실이 가끔은 부끄러워지는 것은 필자뿐일까.
2. [중앙일보][카를로스 고리토의 비정상의 눈] 우리만남의 시작은 '데이팅 앱'이었어요
최근 친한 브라질 후배가 결혼한다고 해서 축하 자리를 마련했다. 예비 신랑을 어떻게 만났느냐고 묻자 후배는 당당하게 “‘데이팅 앱(애플리케이션)’으로 만났다”고 답했다. 겉으론 ‘그렇구나’라며 넘어갔지만 속으론 깜짝 놀랐다. 내 대학 시절만 해도 인터넷에서 사람을 만나는 건 흔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 설사 좋은 사람을 만났다 해도 이를 부끄럽게 여기며 숨기곤 했다.
최근 스마트폰이 보편화하며 ‘데이팅 앱’이 생긴 건 알았지만 나는 물론 동년배 상당수가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나이 차가 많지도 않은데도 후배들은 이를 즐겨 이용할 뿐만 아니라 당당하게 드러내기까지 했다. 짧은 시간에 이런 문화가 자리 잡고 사람들의 인식을 180도 변화시켰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젊은 친구들과의 ‘차이’를 느낄 때면 내가 정말 ‘아재’가 된 게 아니냐는 느낌이 든다. 젊었을 때는 나이가 열 살 이상 많은 선배를 볼 때나 이런 세대 차를 느꼈지만 이젠 서너 살 차이 나는 후배를 봐도 이를 느낀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을 ‘삼 년이면 온 나라가 바뀐다’로 고쳐야 할 판이다. 물질은 물론 인식 체계와 문화 같은 정신적 부분까지 짧은 기간에 변하니 말이다. 특히 ‘빨리빨리’를 추구하는 한국에선 이런 변화가 더욱 빠른 것 같다.나
와 같은 아재들은 이런 변화 속도를 따라가는 게 사뭇 힘들다. 최근 과장으로 승진한 한국인 친구는 지금도 아재 취급을 당하는데 혹시 말실수라도 해서 ‘꼰대’ 소리를 들을까 봐 후배들과 대화하기가 조심스럽다고 했다. 한편으론 윗사람에게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라는 말을 들으면 답답하다고 털어놓았다. 이래저래 샌드위치처럼 중간에 끼어 한쪽에선 촌스러운 기성세대 대접, 다른 쪽에서는 철없는 젊은 세대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서로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을 지닌 각각의 세대끼리 조화롭게 지내기란 쉽지 않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그래도 많은 아재들은 변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데이팅 앱 사용자를 색안경 끼고 바라보지 않도록,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라는 말을 꺼내지 않도록 조금씩 자신을 바꿔 나간다. 젊은 친구들도 아재들의 이러한 노력을 알아주고 이해해 줬으면 고맙겠다. 기성세대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만큼 젊은 세대들도 기존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서로 이해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3. [머니투데이][이슈칼럼] 기본료 폐지, 마케팅비만 줄여도 가능
이동통신서비스가 상용화 된지 30여년이 지난 현재 전체 가입자수는 대한민국 전체인구보다 많은 6200여만명에 이를 정도로 이동통신은 국민들의 가장 기본적이고 편리한 통신수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동통신서비스는 국민들의 통신비 부담도 가중시켜왔는데 작년 가구당 월 평균 통신비는 약14만원을 훌쩍 넘었고 이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동통신비 부담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중 최고 수준이어서 국민들 불만이 매우 크다.
이 때문에 지난 대선에 출마한 대통령 후보들은 제각각 통신비 인하를 위한 공약을 내세웠지만 그 중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1만1000원 기본료 폐지 공약이다. 기본료란 사용량과 무관하게 고정비용을 회수하기 위하여 부과되는 요금인데 일반적으로 공기업이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에 부과되는 요금이다. 그러나 사기업인 이동통신사들은 고정비용이 상당부분 회수된 현재에도 사용량과 무관한 기본료를 받고 있으나 이는 사실상 특혜를 누리는 것으로 사기업이 공급하는 다른 서비스 시장에서는 이런 사례를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동통신3사는 기본료 폐지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데 그 주된 논거는 기본료가 폐지되면 매년 약7조원의 수입이 감소되어 적자로 전환되고 향후 5G(5세대)를 비롯한 기술개발에 투자 할 여력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동통신 3사의 지난해 매출액 합계는 약 51조원인데 이중 영업이익은 약 3조7천억원 마케팅 비용은 약7조6천억원에 달하고 이와 별도로 통신사들은 기술개발 및 설비 투자비용으로 약5조5000억원을 사용했다.
이중 영업이익과 마케팅 비용만 합치더라도 11조 3000억 원으로 그 외 5조원이 넘는 투자비용까지 감안하면 기본료 폐지로 7조원의 수입이 감소되더라도 적자 전환 없이 매년 5조원 이상을 기술개발과 설비투자에 사용하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오히려 7조원의 기본료가 폐지되면 그 만틈 국민들의 가처분 소득이 증대되어 소비진작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기본료가 유지되면 통신사들이 이미 28조원이나 쌓아 놓은 사내유보금의 증가에 이바지할 뿐 국민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다.
통신사들이 기본료 폐지를 반대하는 다른 논거는 통신요금 인하는 규제보다는 자율적인 경쟁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동통신시장은 독과점 시장이어서 자발적인 경쟁을 통한 요금인하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일례로 이동통신사들은 지난 3년간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 시행으로 마케팅 비용이 대폭 감소해 요금인하여력이 크게 증가하였음에도 요금경쟁을 통한 통신비인하는 외면한 채 그 대부분을 자신들의 이익으로 흡수했고 배당 등으로 소진했다.
따라서 이동통신시장에서 합리적인 요금이 책정되기 위하여는 규제가 병행되어야 하는데 그 중 기본료 폐지는 실현 가능할 뿐만 아니라 현재의 통신비 거품을 제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현재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는 기본료 폐지를 비롯한 통신비 인하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논의되는 내용을 들어보면 국민들의 통신비 불만을 해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간 통신비인하 정책들이 성공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미래창조과학부 등의 규제당국이 대한민국 인구보다 많은 가입자 보호에 중점을 두고 정책을 펼치기보다는 통신의 산업적인 측면만 중시하여 정책의 우선순위를 소수의 통신대기업들의 보호에 두었기 때문인데 통신비 인하 정책을 논의하는 국정기획위에서도 동일한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는 우려는 나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정기획위는 초심을 잃지 말고 국민들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서 국민들 기대에 부응하는 통신비 인하 정책을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
4. [중앙일보][서소문 포럼] 소년과 소녀의 '픽미'는 달랐다
‘국민 프로듀서’란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인기를 끈Mnet ‘프로듀스101’(이하 프듀)이 막을 내렸다. 101명의 연습생들이 매번 경연을 벌이고 시청자 문자투표로 살아남은 최종 11명이 아이돌로 데뷔하는 과정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걸그룹 프로젝트인 시즌1에 이어 이번 시즌2에서는 ‘워너원’이라는 보이밴드가 탄생했다. 최종 11인은 물론이고 탈락자들까지 스타덤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프듀’는 지난해 시즌1의 출발 때부터 비판이 많았다. 101명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고 아래 등수부터 탈락시켜 가는 방식이 너무 불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필이면 교복을 입은 10대 소년·소녀들을 링 위에 올려놓고 ‘품평’하며 점수를 매겼다. 능력을 판정받는 것이 경연 프로라지만 ‘능력=계급’을 너무도 노골화했다. 첫회 테스트에서 A~F조로 판정받으면 입는 옷 색깔부터 달라지고, 합격자들이 앉는 의자도 피라미드형으로 배치됐다. 그 자체가 서바이벌 수직사회의 축소판인 셈이다.
거기에 스토리텔링을 위한 일명 ‘악마의 편집’, 방송 분량의 편중 등 공정성 논란도 이어졌다. 이번 시즌에는 최종 투표일에도 공정성 논란이 나왔다. 일부 탈락 예상 후보에 대한 중간발표가 몰표로 이어져 경연 내내 합격권에 있었던 유력 후보들이 낙마한 것이다. 또 합숙 과정 등에서 거대 방송사로부터 연습생이라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 줄 장치가 전무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누군가는 ‘MSG급 길티 플레저’라고 표현했다), 팬들은 마치 자기 자식을 키우듯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습생들을 지지하면서 그들의 성장과 생존을 바랐다. 사실 이번 시즌2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일명 ‘양육자 팬덤’이라 불리는 새로운 팬덤이 극치에 달했다는 점이다.
팬들은 주변의 투표를 독려할 뿐만 아니라 지하철이나 버스에 응원광고를 내기도 했다. 또 투표 단계마다 11픽, 2픽, 1픽으로 찍는 후보 수가 달라졌는데 단계별로 각종 스킬이 동원되기도 했다. 경쟁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엉뚱한 후보에게 표를 던져 표를 분산시키는 ‘견제픽’ 같은 전략투표도 등장했다. 최종회에서 유력 연습생이 탈락한 것에 대해서도, 중간발표라는 돌발 변수를 감안하지 못한 팬덤의 대응 부재라는 패인 분석까지 나왔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를 기점으로 팬덤이 마치 선거캠프처럼 움직였단 얘기다.
‘양육자 팬덤’의 출현은 아이돌의 역사에서 god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H.O.T나 젝스키스와 달리 ‘god의 육아일기’라는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god는 거리감 없이 편안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선보였고, 이는 신비롭게 추앙하기보다는 이웃집 형·동생 같은 이들을 지지하는 ‘후원자 팬덤’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프듀’의 양육자 팬덤은 초기 god의 후원자 팬덤과는 큰 차이가 있다. ‘프듀’의 양육자 팬덤은 마치 자녀의 성적이 오르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그를 통해 대리만족하는, 때로는 극성스러울 정도로 자녀 양육에 헌신하는 열혈 부모의 심경을 닮았다.
출연자인 연습생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 매회 경연은 시험, 경연 결과는 성적 등수, 최종 11인 아이돌 데뷔는 대입 합격을 은유하는 모양새다. 연습생들은 눈물을 흘리며 “응원해 준 국민 프로듀서님께 보답하고 싶다. 꼭 데뷔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현실 속에서도 서바이벌 경쟁에 지친 대중들이 가상의 경쟁에 몰두하면서 다시 승패를 맛보는 이중의 ‘서바이벌 게임’이 ‘프듀’ 인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시즌1, 2 공히 ‘프듀’의 주제곡인 ‘픽미’의 남녀 변주에 눈길이 갔다. 똑같이 나를 뽑아 달라고 생존을 갈구하는 ‘픽미’ 송인데, 시즌1 걸그룹 ‘픽미’의 가사는 ‘픽미 픽미/ 캔 유 필미/ 나를 느껴 봐~나를 꼭 안아줘~아이 원츄 픽미 업’인데 반해 시즌2 보이그룹 ‘나야 나(픽미)’는 ‘오늘밤 주인공은 나야 나/ 니 맘을 훔칠 사람 나야 나~ 픽미 픽미 픽미 업’이다. 똑같이 나를 뽑아달라면서도 소녀들은 스스로를 대상화하고 소년들은 스스로 주체가 된다. 한국 사회 걸그룹과 보이그룹은 이만큼 다르다는 얘기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한일 기본조약
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의 첫 국가 간 공식 회담이 1952년 2월 일본 도쿄에서 열렸다. 앞서 51년 10월 연합군 사령부 중재 하에 실무자 간 예비회담이 있었다. 한국전쟁 직후였고, 냉전 긴장이 팽팽해지던 때였다. 소련 팽창정책에 이미 동구가 공산화했다. 중국 공산정권에 맞서 당시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구상하던 동북아 지역안보 체제의 관건이 한일 협력이었다.
양국은 13년 뒤인 1965년 6월 22일에야 한일기본조약에 조인했다. 그만하면, 국민 감정과 협상 자체 득실을 제쳐둔다면, 약소국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압박에 버티며 꽤 끈질기게 협상에 임했다고 할 만했다.
조약은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4개의 부속 협정- 청구권 및 경제협력, 재일교포 지위, 어업, 문화재ㆍ문화 협력-으로 이뤄졌다.
협상은 처음부터 난항이었다. 첫 회담에서 한국은 식민 지배 배상을 요구했고, 일본은 한반도에 남긴 일본인 사유재산 보상을 주장했다. 2차 회담은 독도 문제와 평화선(이승만의 60마일 해양주권선) 요구로 어그러졌고, 3차 회담 땐 일본 수석대표 구보타 간이치로가 “일본의 36년 한국 통치는 한국인에게 유익했다”고 발언하는 바람에 결렬됐고, 4차 회담은 재일 교포 북송문제로 교착했다. 그리고 60년 4ㆍ19 혁명이 발발했고, 이승만 정권이 붕괴했다.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에게는 이승만의 고집과 독선적 자존감조차 없었다. 오히려 권력 정통성과 공산주의 활동 전력 탓에 미국의 눈치를 봐야 했던 그는 도쿄 6차 회담 중이던 62년 11월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을 보내 일본 외무장관 오히라 마사요시와 비밀협상을 벌이게 했다. ‘김-오히라 비밀 메모’라 불리는 둘의 합의로 회담은 급물살을 탔고, 64년의 한일협상 반대 ‘6ㆍ3항쟁’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2월 조약에 가조인했다. 협정은 65년 12월 비준됐고, 양국 국교가 정상화됐다.
무상공여와 차관 등 협상의 득실에 대해서는 지금도 말이 많다. 식민지배 반성과 사죄의 언급이 일절 없어 굴욕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본은 3억 달러 무상 공여금을 대외적으로는 과거사 청산 배상금이라고 주장했고, 자국민에게는 경제협력 자금이라고 홍보했다. 부속협정(재산 청구권 협정)에는 “(개인 법인을 포함한 일체의 재산 권리 청구권 등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한다”(2조)는 조항을 넣었다.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의 한ㆍ일 외무장관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도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이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
주요신문사설
[경향신문]
1. 한국당·바른 정당 국회 정상화하고 협치 나서라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자유한국당 정우택 등 여야 4당 원내대표들이 국회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어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한 데 이어 장관 인사청문회도 연다는 데 일단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다만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 심사 등 몇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여야가 막바지 합의를 시도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 강행 후폭풍으로 사흘 동안 파행했던 국회가 반쪽이나마 재개돼 다행이다.
이번 국회 파행은 정권이 교체된 직후부터 여야가 충돌하는 관행을 되풀이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인수위원회도 꾸리지 못한 채 출범한 문재인 정부를 향해 한국당은 반대로 일관했다. 한국당은 인사청문회에서 공직 후보자를 엄정하게 검증한다고 했지만, 시민들 눈에는 발목 잡기로 비쳤다.
강한 야당만 추구하니 무리수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한국당 이철우 의원은 최근 제주에서 당원들에게 “문재인 정권이 오래 못 갈 것 같다”고 말했다. 당 최고위원이 되겠다고 나선 중진의 말이라고 믿을 수 없는 충격적 언사였다. 이것이 한국당 내부의 정서를 대변하는 말이라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협치할 마음이 아예 없다는 속내가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끝없이 강화되는 한국당의 극우적 안보관도 문제이다. 한·미동맹에 대한 맹신과 미국 지상주의 외에는 어떤 대안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에 기대려는 태도가 일본의 자민당보다도 심하다. 이러고도 보수당으로 자부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우려되는 것은 합리적 보수를 자임한 바른정당 또한 한국당과 같은 대열에 서 있다는 점이다. 사드 등 안보 현안에 대한 바른정당의 정부 비판은 색깔 공세였다.
한국당은 정부와 여당을 계속 공격하면 옛 지지자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성찰도 하지 않는 정당을 시민들이 지지할 리 만무하다. 한국당이 국회 청문회 재개에 합의한 것은 궁여지책이다. 정부에 대한 강공이 시민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접은 것을 세상이 다 안다.
과거 민주당이 오랫동안 선거에서 시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것은 대안 없이 정부·여당의 발목만 잡은 탓이 컸다. 보수정당들이 진정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기고자 한다면 그 전철을 밟아선 안된다. 추경을 비롯해 허다한 개혁과제들이 눈앞에 쌓여있다. 야당들은 이번 파행을 교훈삼아 협치에 나서야 한다.
[연합뉴스]
2. '밀실 논의'에 종언 고한 경제사령탑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경제 현안 논의를 위한 간담회를 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김 부총리가 정부의 경제 사령탑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이 간담회에서 재확인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된 청와대 정책실장이 새 정부에서 부활하자, 경제 정책의 주도권을 누가 갖게 되는지를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나왔다. 의구심이 쌓이면 시장에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데 이날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이다.
참석자들은 또 문재인 정부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최우선 경제 과제라는 점에 인식을 같이했다. 시장질서를 훼손하는 기업은 엄정히 처벌하되 혁신과 투자, 상생협력에 적극적인 기업에는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김 부총리와 장 정책실장, 김 위원장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다. 새 정부의 '경제수뇌부'라 할 수 있는 이들 3인이 언론 공개 하에 비공식 간담회를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래서인지 이날 회동을 보고 과거 정권의 '서별관 회의'를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경제 고위관계자 회의가 처음 생긴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때다. 청와대 본관 서쪽 별관에서 열린다고 해서 관가에서는 '서별관 회의'로 불렸다. 대우차·하이닉스 등 대기업 빅딜, 은행 구조조정, 신용카드 사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굵직한 경제 현안들이 서별관 회의를 거쳐 갔다.
박근혜 정부 때는 주로 거시경제와 금융시장 현안을 다뤘는데 2015년 10월 대우조선해양 지원 결정을 둘러싸고 '밀실회의' 논란이 불거져 작년 6월 중단됐다. 서별관 회의는 법적 근거가 없다. 참석자와 개최 시기는 비공개이고 회의록이나 의사록도 작성되지 않았다.
정부는 이번 회동을 계기로 경제 현안이 생길 때마다 관련 부처와 기관의 고위관계자들이 공개 간담회를 열기로 했다. 물론 참석자들의 발언을 정리한 회의록이나 속기록도 남길 계획이라고 한다. 간담회에서 결정된 내용은 전 경제팀이 일치단결해 추진하고, 시장에도 일관되고 예측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했다.
김 부총리는 "이번이 첫 회의인데 내각 인사가 완료되면 현안에 따라 장관들을 모시고 격의 없이 회의를 열겠다"고 밝혔다. 장 실장도 "김 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 현안을 잘 챙겨가고 있다는 신뢰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별관 회의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회생이 거의 불가능한 대우조선에 천문학적 규모의 혈세를 추가로 투입하는 결정도 이 회의에서 내려졌다.
고도의 투명성을 필요로 하는 경제 현안들을 권부의 실력자 몇몇이 밀실에서 칼질하는 정부를 온전하다고 할 수 없다. 이번 회동이 정부 정책의 '밀실 짬짜미'에 종언을 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중앙일보]
3. 대선 때 빚' 갚으라고 광화문 출근길 막은 노조
어제 아침 출근길 서울 광화문을 지나는 시민들은 애간장을 태워야 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건설노동조합 소속 조합원 7000명(주최 추산)이 벌인 도로 행진 때문이다. 이들은 광화문 소공원 앞에서 결의대회를 가진 뒤 3개 차로를 막고 종각 방향으로 행진했다. 경찰은 신고된 집회라는 이유로 따로 제지하지 않았다. 이 바람에 버스 운행에 차질이 빚어지고 어쩔 수 없이 하차한 시민들로 광화문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다.
문제는 노동계의 줄파업이 예고돼 있어 이날 혼란은 맛보기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은 오는 28일부터 7월 8일까지를 ‘사회적 총파업 주간’으로 정하고 30일 대규모 집회와 파업에 나선다. 총파업에 대한 선전포고는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 주도했다. 그는 2015년 도심 폭력시위를 주도해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다.
한 위원장은 민노총 홈페이지에 19일 게시된 옥중서신을 통해 “정경유착의 공범 재벌, 개혁의 대상 권력기관과 기득권 집단이 코너에 몰려 있는 지금이야말로 칭기즈칸의 속도전으로 개혁을 밀어붙일 적기”라며 “문재인 정부는 기득권 세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책임 있는 조치를 하라는 것이 6·30 총파업의 요구”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일자리위원회와의 그제 정책간담회에서 김주영 위원장은 “우리가 문재인 대통령 승리의 발판을 만든 주역인데 일자리위원회가 우리를 진정한 동반자로 여기는지 의문”이라며 노동계를 구색 맞추기 위한 장식물로 보지 말라고 압박했다.
양대 노총의 이런 행위는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대선 때 지지해 준 대가를 요구하는 모양인데 이래서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비정규직과 최저임금을 비롯해 노동개혁을 하려면 네덜란드 바세나르협약이나 독일 하르츠개혁처럼 노사정이 서로 양보해야지 노조 주장만 내세워선 조금도 진전될 수 없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정부는 노사정 전체를 바라봐야 하고 혼란을 일으키는 극단적 행위에는 엄정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4. 한미회담 앞둔 美기류 "워싱턴 사람들은 바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9, 30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CBS 방송과 워싱턴포스트(WP)지와의 인터뷰에서 2단계 북핵 해결 로드맵을 제시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고 핵·미사일의 고도화를 멈추는 핵 동결을 하면 대화에 나서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폐기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한미 양국이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 있는 북한의 변화를 대화의 전제로 삼았던 기존 전략과는 명백히 다른 구상이다.
‘비둘기파 한국 대통령과 매파 미국 대통령의 첫 만남’이 성과를 낼 수 있을지를 탐색하는 미국의 미디어에 문 대통령은 양국의 공통점을 강조했다. 북한을 최대한 압박하고 여건이 조성되면 관여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제가 말하는 관여와 같다”며 ‘최대의 압박’ 역시 미국과 공조하겠다고 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환경영향평가가 사드 배치 합의 취소나 철회를 의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20일 김정은과의 연내 회담 의지를 밝힌 데 이어 21일 WP 인터뷰에선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했다. 제재와 압박이라는 메뉴판에 대화를 더해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이 점에 대해 허심탄회한 논의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럼에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 이후 미국 내 대북 강경기류가 급격히 커지면서 과연 한미 정상회담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대북 제재 ‘키 플레이어’로 꼽아온 중국을 배제하고 독자 해법을 모색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문 대통령이 ‘조건이 맞으면’ ‘적절한 조건하에서’를 강조하면서도 압박보다 대화에 방점을 둔다면 정상회담 분위기가 좋지 않을 수 있다. 개성공단에 대해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온다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유엔 결의 위반임을 알면서도 재개할 수 있다는 문 대통령의 답변은 국제사회 분위기와 거리가 멀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가 방미 기간 중 접촉했던 패트릭 크로닌 미국 신안보센터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은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워싱턴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라고 했다. 미국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 대가로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는 문 특보 말을 청와대 의중으로 보는 기류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강조했듯이 북핵 폐기와 한반도 비핵화라는 한미의 공통 목표를 달성하려면 양국 대통령의 신뢰와 우정이 대단히 중요하다. 외교안보 라인을 ‘자주파’로 채운 문 대통령이 남북대화의 조건을 미묘하게 바꾸는 등 조급증을 보이다가는 더 큰 안보 위협을 자초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
5. 일자리委 첫 회의에서 “親기업” 밝힌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취임 1호 업무지시로 설치한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회의를 주재했다. 사용자 측 위원으로 참석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하며 문 대통령은 “저는 친노동이기도 하지만 친경영, 친기업이기도 하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준다면 업어드리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일자리 문제는 산업정책, 노동정책, 재정금융정책이 어우러져야 하고 모든 경제 주체의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도 옳은 인식이다.
이날 회의에서 이용섭 일자리위 부위원장은 저성장 기조 고착화, 고용 없는 성장 등 일자리 창출 역량이 부족할 뿐 아니라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 확대, 양질의 일자리 감소로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며 이를 타개하는 ‘J노믹스’ 비전으로 일자리 중심의 포용적 경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일자리위가 경제·사회 시스템을 일자리 중심 구조로 재설계하는 등의 3대 과제를 내놨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취업알선, 직업교육, 실업급여 등의 일자리정책을 끊임없이 발표해왔다. 그러나 기업의 수요나 구직자의 선호와 거리가 먼 정책에 재정을 쏟아붓는 바람에 현재 청년실업은 사상 최악이다. 일자리는 결국 기업이 만든다는 시장원리에 따라 민간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고용을 창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일자리위의 소명이 돼야 한다. 문 대통령이 친기업 성향을 내비친 것도 아무리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린들 민간 기업이 고용을 늘리지 않으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소송 중인 통상임금을 일자리기금에 출연하겠다는 금속노조의 전날 제안에 대해 문 대통령이 감사한다며 “비정규직 문제에 선도적으로 나서 준 것”이라고 평가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노조가 봉이 김선달 식 제안을 했다”는 재계의 비판이 하루 만에 무색해진 꼴이다. 경영계와 노동계가 모두 한배를 탄 상황에서 정책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 배는 침몰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8월 말까지 일자리정책 로드맵을 내달라고 했지만 고용정책의 양면성을 간과한 채 무리수를 둔다면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지 모른다.
6. '사회적 총파업' 예고한 민노총, 어떤 사회를 말하는가
어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문재인 정부 출범 50일째인 30일을 기해 ‘사회적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2015년 폭력시위를 주도해 복역 중인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은 옥중 서신에서 “정경유착의 공범 재벌, 개혁 대상 권력기관과 기득권 집단이 코너에 몰려 있는 지금이야말로 칭기즈칸이 속도전으로 개혁을 밀어붙일 적기인데 (문재인 정부가) 주춤하고 있다”며 대규모 상경 투쟁을 독려했다.
사회적 총파업이란 비정규직 장애인 여성 노인 등 소외계층의 지위 향상을 목표로 한다고 민노총은 설명한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처우 개선, 재벌 개혁 등 구체적인 사회개혁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정치파업과 다르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들의 요구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상당 부분 반영돼 있고 문 대통령은 어제 ‘1년의 유예기간’을 당부했다.
민노총이 굳이 28일부터 열흘간을 ‘사회적 총파업 주간’으로 정해 사회적 불안을 키울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촛불시위를 주도한 민노총이 정권 초반 세(勢)를 과시함으로써 문재인 정부 탄생에 기여한 ‘빚’을 받아내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실제로 민노총은 1997∼1998년과 2002∼2003년 등 정권 1년 차와 5년 차에 파업을 극대화해 자신들의 요구를 최대한 관철하는 성향을 보여 왔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노사 문제에서 노동자 얘기에 귀 기울일 것을 주문했다가 화물연대 파업, 철도노조 파업 등이 이어지자 취임 넉 달 만에 “노조에 대한 특혜를 없애야 한다”고 돌아선 바 있다.
민노총에 속한 공공부문과 대기업 근로자들은 임금 상위 10%에 속하는 ‘노동 귀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노총 산하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20일과 21일 서울 도심에서 술판을 벌이는 노숙투쟁과 다음 날 오전 차로를 점령한 거리행진까지 벌였다. 그들만의 특권과 반칙을 누리는 사회를 새 정부가 보장할 것인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서울교육]
7. 교육감들이 교육정책 중구반방 주물러서야
특목·자사고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연일 덩치를 키우고 있다. 지난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경기도 내 외고·자사고를 폐지하겠다고 전격 발표하면서 불씨는 지펴졌다. 뒤질세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같은 방침을 표명했다. 당장 서울시교육청은 오는 28일 서울 소재 일부 자사고와 외고의 재지정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특목·자사고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대 교육공약이다. 교육현장 안팎에서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던 사안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이 숨 고를 새도 없이 급물살로 밀어닥칠 줄은 예상치 못했다는 당혹감이 크다. 직격탄이 눈앞에 닥친 서울 자사고연합회는 어제 “정치적 진영논리에 입각한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정면 반박에 나섰다.
극심한 고교 서열화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사회 병폐다. 일반고에 진학하는 대다수 학생들이 시작도 해보기 전에 패배의식에 젖는 현실은 지켜보기 안타까울 정도다. 하지만 수십년을 이어온 정책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정책의 행태는 제동이 걸려야 한다. 절대평가를 강화하려는 기조 아래 서울, 경기 지역에서 특목·자사고 폐지 방침을 발표하자 당장 서울 강남 8학군이 들썩거린다.
교육 개혁을 위해서는 사회적 불화와 혼돈은 감수해야 할 몫이다. 그렇더라도 지금 같은 분위기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일부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주도권을 쥐고 흔드는 듯한 인상은 개혁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정부가 굳건한 교육정책 비전을 가진 게 아니라 진보 성향 교육감들의 입김대로 풍타낭타한다는 의심이 들어서야 되겠는가. 중·고교의 일제고사도 지역별 학업능력을 줄 세우지 말라는 교육감들의 요구로 지난주 느닷없이 폐지됐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자사고 취소 권한을 교육감에게 완전히 넘겨달라고 교육부에 요구하고 있다.
수십년 이어진 교육제도를 허무는 작업은 고통이다. 그 고통의 대상자는 다름 아닌 학생들이다. 이런 마당에 몇몇 진보 교육감들의 목소리에 정책 논의조차 실종되는 현실은 불신만 키운다. 교육감들의 임기는 내년 6월까지다. 뒷일을 책임질 보장도 없으면서 포퓰리즘 정치를 한다는 쓴소리마저 들린다. 정책의 생명은 신뢰다. 어떤 순간에도 교육이 ‘정치’로 의심받아서는 안 된다. 뒷짐 진 정부도, 목청 높이는 교육감들도 새겨듣길 바란다.
8. 몰아붙이기식 노동계 총파업 正道 아니다
노동계가 총파업을 예고했다. 노동친화적이란 평가를 받는 문재인 정부에 노동 관련 공약을 조기에 이행하라는 요구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는 한 달 보름여밖에 되지 않았다. 대통령 인수위원회도 없이 들어선 정부다. 공약을 제대로 가다듬을 최소한의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 게다가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에 양대 노총을 모두 참여시키고, 내일 민주노총과 공식 간담회를 여는 등 노정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선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는 노동계의 총파업 예고를 다소 뜬금없고 섣부른 행위라고 본다.
민주노총은 오는 30일 ‘사회적 총파업’을 예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50일째 되는 날이다. 서울에서 수만명이 참여하는 집회를 열고 최저임금 1만원 달성,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새 정부 초기에 압박 수위를 높여 기선을 잡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한상균 위원장은 옥중서신을 통해 “지금이야말로 칭기즈칸의 속도전으로 밀어붙일 적기”라고 파업을 독려하고 나섰다.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도 총파업 투표에 들어갔다. 노조원 6000여명은 그제부터 이틀째 서울 세종로공원 등에서 상경집회를 열었다. 어제 집회에서 노조원들은 인도와 3개 차로를 완전히 가로막아 출근길 시민들이 극심한 차량정체로 큰 불편을 겪었다. 공공비정규직노조도 ‘임단협 승리 총파업 출정식’을 열었다. 화물연대는 다음 달 1일 총파업 결의대회를 가질 계획이다. 초·중·고교 급식과 교무 보조 등을 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30일 총파업에 동참할 것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이 노동친화적 공약을 내놓고 취임 후 친노동 행보를 보이면서 노동계의 기대감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정부를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 아무리 공세를 강화해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라고 해도 느닷없이 총파업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명분 없는 정치적 행위일 뿐이다.
노동 현안과 정책에 대해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시간을 정부에 줘야 한다. 비정규직과 최저임금제 문제는 일자리위원회, 최저임금위원회 등 제도권에서 풀어가는 게 순리다. 대화할 수 있는 절차와 장치가 마련돼 있는데도 곧바로 파업에 나서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한 위원장은 “총파업이 정부의 개혁 추진을 위한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보다는 오히려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자승자박하는 꼴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이 과연 총파업에 나설 시기인지 다시 숙고하기 바란다.
[이데일리]
9. '재벌 손자' 학교폭력의 진실 무엇인가
서울시 교육청이 어제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대기업 총수 손자와 연예인 아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숭의초등학교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지난 이틀 간의 특별장학 결과 조사 지연, 사건 축소 정황 등 의혹이 일부 확인됐다는 판단에서다. 교육청은 감사에서 학교 측이 재벌 손자를 가해자 명단에서 고의로 누락시켰는지 여부를 집중 조사할 방침이라고 한다.
아직 사실 여부를 단정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학교 측의 대응을 보면 은폐·축소 의혹을 살 만하다. 피해 학생 부모가 폭행 사실을 신고한 지 20여일이나 지나 전담기구를 구성한 자체가 그러하다. 게다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이 사건이 학교폭력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 짓고 화해·사과 권고로 마무리했다. 피해학생은 근육세포가 손상되는 등 심각한 장애 진단을 받았는데도 가해학생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것이다.
가해자 누락 문제도 마찬가지다. 피해자 측이 주장한 가해자는 재벌 손자와 연예인 아들 등 4명이다. 그러나 학교 측은 당사자들이 현장에 없었다는 다른 학생의 진술을 토대로 가해자 명단에서 재벌 손자는 제외시켰다. 하지만 회의록을 보면 당시 재벌 손자가 있었다는 장소가 계속 번복된 데다 “이들이 폭력에 가담했다”는 또 다른 학생의 진술도 없지 않다. 정황상 학교 측에서 가해자 명단에서 이들을 제외했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위원회가 학교폭력이 아닌 것으로 결론지은 과정도 석연치 않다. 1차 회의 때는 ‘학폭’이라는 의견이 다수였는데 막판에 ‘심한 장난 수준’이라는 학교 측 입장에 동조하는 쪽으로 흘렀다고 한다. 이 학교뿐 아니라 대부분 학교에서 학교폭력위원회가 진상규명보다는 학교 편을 든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역할 재점검이 필요하다. 학교폭력 전담 경찰관이 위원회 위원이 아니었기에 문제 해결에 적극 개입이 어려웠다는 점에서 담당 경찰을 당연직 학폭위원으로 위촉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재벌 손자라고 해서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손가락질 받아서는 안 된다. 반대로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처벌을 피해 나간다면 그 또한 사회정의에 어긋난 일이다. 사건의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10. 봉급생활자 면세 축조의 전제조건
근로소득자의 절반 가까이 세금을 한 푼도 안 내는 지금의 현실은 굳이 ‘국민 개세주의’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2015년 기준으로 전체 근로소득자 1726만명의 46.5%에 해당하는 803만명이 세금을 전혀 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면세자 비중은 전년보다 1.4% 포인트 내려갔지만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이다. 영국은 5.9%에 불과하고 미국(35.8%), 캐나다(33.5%), 호주(25.1%) 등도 우리보다 10~20% 포인트나 낮다.
세금을 안 내는 근로소득자가 많은 것은 면세점이 10년째 1200만원으로 묶여 있는 데다 그나마도 빠져나갈 구멍이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연봉이 2000만원을 훨씬 넘어도 각종 소득공제를 적용하면 과세표준이 면세점에 근접하고, 얼마 안 되는 세금마저 세액공제로 털고 나면 내야 할 세금이 삭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그제 공청회에서 면세자 비중을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표준세액공제 축소와 세액공제 종합한도 설정 및 근로소득공제 축소를 제시한 것이 그래서다. 이들 대안을 활용하면 면세자 비중이 10% 포인트까지 낮아지고 최대 1조 2000억원의 추가 세수 확보가 가능한 것으로 추산됐다.
성실한 납세는 국민의 의무라는 점에서 정부의 면세자 축소 방침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가뜩이나 ‘유리알 지갑’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터에 저소득층까지 증세 대상에 포함시키려면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지난 정부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했다가 봉급생활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던 ‘연말정산 파동’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공평 과세를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부동산 다운계약서 작성이나 업무용 차량의 개인용도 전용 등 사회 저변에 만연한 탈세 관행과 지하경제에 철퇴를 내리고, 재산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세금망을 교묘히 벗어나는 상습 체납자들에 대한 단속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계속 미뤄지고 있는 종교인 및 미술품에 대한 과세도 조속히 시행돼야 마땅하다. 저소득 봉급생활자에 대한 납세의무 이행을 요구하는 것은 그다음 얘기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영화 '파퍼씨네 펭귄들'과 미술로서의 건축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던” 것처럼 미술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장품이지만 그 소장미술품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그릇인 건물도 매우 중요하다. 소장품과 함께 특별한 건물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등장한 미술관은 다름 아닌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공식 명칭은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미술관 부지는 뉴욕에서 가장 조용하며 자연과 가까운 센트럴파크에 접해 있다. 여기에 미국의 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자연친화적인 동시에 유기적인 건축물로 미술관을 완성했다. 기하학적인 형태 즉 삼각형, 타원, 호, 원, 정사각형 등이 조화를 이뤄 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존중받고 있다.
특히 하나하나의 연결된 화이트 큐브 공간을 통과해야 하는 일반적인 미술관 건축에서 벗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가 계속 이어지는, 완만하게 경사진 공간을 따라 내려오면서 작품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동시에 한눈에 다른 공간에 전시된 작품들까지 볼 수 있도록 한 것이 당시나 지금이나 파격이었다. 하지만 준공 당시 타임지는 “커다랗고 하얀 아이스크림 냉장고”라 불렀고 어떤 이는 ‘양변기’, ‘달팽이’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건축이야말로 구겐하임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소장품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이렇게 독특한 미술관 건축은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되어 주었다. 2009년 제작된 스릴러 영화 ‘인터내셔널’이나 ‘로마에서 생긴 일’(2010), ‘맨 인 블랙’(1997) 등등 많은 영화에 출연해 볼거리가 되어 주었다. 특히 코미디의 황제 짐 캐리가 톰 파퍼로 나와 6마리의 펭귄과 좌충우돌하는 영화 ‘파퍼씨네 펭귄들’(2011)에서 펭귄들이 얼음 통에서 쏟아진 물을 따라 물썰매를 타듯 쏜살같이 1층으로 향해 내려오는 장면은 구겐하임의 비스듬한 건축적 특성을 잘 드러낸다.
톰은 부동산 개발회사에서 일하며 성공한 사내지만 가정과 아내(칼라 구기노) 그리고 아이들을 멀리한 대신 성공을 얻은 반쪽짜리 남편이자 아빠다. 그런 그가 남극탐험을 떠났다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펭귄을 유산으로 상속받은 뒤 그 펭귄과 함께 좌충우돌하면서 가정의 평화를 얻고 아버지로서 아이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다소 뻔한 이야기다.
아무튼 구겐하임의 파격은 처음 이름인 ‘비구상회화미술관’에서 시작됐다. 1890년대부터 고대회화를 수집했던 솔로몬은 1926년부터 유럽과 미국의 추상회화들을 수집하기 시작해서 1937년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을 설립하고 뉴욕 이스트 54가에 미술관을 처음 개관했다. 그 후 1952년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개명하고 1959년에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의 설계로 뉴욕에 ‘정신적 성전’을 표현하는 둥근 로툰다형 미술관을 열었다.
이 건축물은 1943년 설계를 시작해 16년이 지난 후에 건축가도 건축주도 모두 세상을 떠난 다음 완공됐다. 그 후 1992년 그웨스메이 시겔 & 어소시에이츠 사의 설계로 커다란 장방형 건물을 덧붙여 전형적인 전시 공간을 추가했고 2005~2008년 동안 대규모 확장과 수리를 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구겐하임의 전통(?)은 1997년 빌바오에 개관한 프랭크 게리(1929~ )의 빌바오 구겐하임에 이어 올 연말 개관 예정인 아부다비 구겐하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빌바오 구겐하임의 성공 이후 세계의 미술관, 박물관은 이미 갖추어진 절대적인 소장품을 더욱 빛내 줄 공간 즉 건축에 열정을 쏟아 건축 자체가 미술품이 되어 미술품 속에 미술품을 전시하고 보관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사실 미술관 건물에 공을 들인 시초가 구겐하임이라면 1997년 파리에 개관한 퐁피두센터가 그 뒤를 이었고, 빌바오가 성공한 후에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1997년의 바이엘러미술관, 2000년 개관한 테이트 모던을 비롯해서 2010년 퐁피두 메츠나 2012년 문을 연 루브르 랭스분관, 2016년 뉴 테이트 모던이나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외에 많은 미술관들이 확장과 증축을 통해 세계적인 미술관으로서 자존심 세우기를 경쟁하고 있다.
영화 속 톰처럼 가정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던 라이트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위한 디자인을 위해 헌신했으며 언제나 새로운 창조적 정신으로 매사에 임했으며, 총 1141점의 건축설계 계획 중 반 이상인 532점이 실제 건축됐다.
이 중 현존 작품 수만도 409점에 이르며 이 중 3분의1 이상이 사적으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으로 예술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그는 어느 건축가보다도 사람 사는 집에 관심을 가져 주택만 해도 350여 채를 설계했는데 부자들을 위한 고급주택뿐 아니라 중산층을 위한 저렴한 유소니언 하우스를 시도해 만인을 위해 저렴하며 아름답고 튼튼한 실용적인 건축을 시도했다.
이렇게 건축은 사람을, 삶을 담는 그릇인 동시에 환경이며 자연이다. 또한 건축은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추어야 하는 실용예술인 동시에 공간예술이다. 하지만 고도성장 과정에서 경제성, 효율성을 강조해 왔던 우리나라에서 예술적이며 실용적인 건축물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건물은 있지만 건축은 없다”는 자조적인 말까지 생겨났다.
이제라도 나라 형편에 맞는 건축미술관이 건립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이웃나라 일본에는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데이코쿠 호텔과 자유학원이 문화재로 지정돼 있고, 그와 쌍벽을 이루는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1887~1965)의 국립서양미술관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광객을 불러 모으며 문화적 자부심의 바탕이 되어 주고 있다.
지금이라도 건축은 그냥 집이 아니라 문화며 예술이라는 생각으로 후손들에게 물려줄 내일의 문화재를 만든다는 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길을 걷다 보면 남보다 빠르게 짓고 만들었다는 사실이 가끔은 부끄러워지는 것은 필자뿐일까.
2. [중앙일보][카를로스 고리토의 비정상의 눈] 우리만남의 시작은 '데이팅 앱'이었어요
최근 친한 브라질 후배가 결혼한다고 해서 축하 자리를 마련했다. 예비 신랑을 어떻게 만났느냐고 묻자 후배는 당당하게 “‘데이팅 앱(애플리케이션)’으로 만났다”고 답했다. 겉으론 ‘그렇구나’라며 넘어갔지만 속으론 깜짝 놀랐다. 내 대학 시절만 해도 인터넷에서 사람을 만나는 건 흔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 설사 좋은 사람을 만났다 해도 이를 부끄럽게 여기며 숨기곤 했다.
최근 스마트폰이 보편화하며 ‘데이팅 앱’이 생긴 건 알았지만 나는 물론 동년배 상당수가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나이 차가 많지도 않은데도 후배들은 이를 즐겨 이용할 뿐만 아니라 당당하게 드러내기까지 했다. 짧은 시간에 이런 문화가 자리 잡고 사람들의 인식을 180도 변화시켰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젊은 친구들과의 ‘차이’를 느낄 때면 내가 정말 ‘아재’가 된 게 아니냐는 느낌이 든다. 젊었을 때는 나이가 열 살 이상 많은 선배를 볼 때나 이런 세대 차를 느꼈지만 이젠 서너 살 차이 나는 후배를 봐도 이를 느낀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을 ‘삼 년이면 온 나라가 바뀐다’로 고쳐야 할 판이다. 물질은 물론 인식 체계와 문화 같은 정신적 부분까지 짧은 기간에 변하니 말이다. 특히 ‘빨리빨리’를 추구하는 한국에선 이런 변화가 더욱 빠른 것 같다.나
와 같은 아재들은 이런 변화 속도를 따라가는 게 사뭇 힘들다. 최근 과장으로 승진한 한국인 친구는 지금도 아재 취급을 당하는데 혹시 말실수라도 해서 ‘꼰대’ 소리를 들을까 봐 후배들과 대화하기가 조심스럽다고 했다. 한편으론 윗사람에게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라는 말을 들으면 답답하다고 털어놓았다. 이래저래 샌드위치처럼 중간에 끼어 한쪽에선 촌스러운 기성세대 대접, 다른 쪽에서는 철없는 젊은 세대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서로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을 지닌 각각의 세대끼리 조화롭게 지내기란 쉽지 않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그래도 많은 아재들은 변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데이팅 앱 사용자를 색안경 끼고 바라보지 않도록,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라는 말을 꺼내지 않도록 조금씩 자신을 바꿔 나간다. 젊은 친구들도 아재들의 이러한 노력을 알아주고 이해해 줬으면 고맙겠다. 기성세대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만큼 젊은 세대들도 기존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서로 이해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3. [머니투데이][이슈칼럼] 기본료 폐지, 마케팅비만 줄여도 가능
이동통신서비스가 상용화 된지 30여년이 지난 현재 전체 가입자수는 대한민국 전체인구보다 많은 6200여만명에 이를 정도로 이동통신은 국민들의 가장 기본적이고 편리한 통신수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동통신서비스는 국민들의 통신비 부담도 가중시켜왔는데 작년 가구당 월 평균 통신비는 약14만원을 훌쩍 넘었고 이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동통신비 부담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중 최고 수준이어서 국민들 불만이 매우 크다.
이 때문에 지난 대선에 출마한 대통령 후보들은 제각각 통신비 인하를 위한 공약을 내세웠지만 그 중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1만1000원 기본료 폐지 공약이다. 기본료란 사용량과 무관하게 고정비용을 회수하기 위하여 부과되는 요금인데 일반적으로 공기업이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에 부과되는 요금이다. 그러나 사기업인 이동통신사들은 고정비용이 상당부분 회수된 현재에도 사용량과 무관한 기본료를 받고 있으나 이는 사실상 특혜를 누리는 것으로 사기업이 공급하는 다른 서비스 시장에서는 이런 사례를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동통신3사는 기본료 폐지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데 그 주된 논거는 기본료가 폐지되면 매년 약7조원의 수입이 감소되어 적자로 전환되고 향후 5G(5세대)를 비롯한 기술개발에 투자 할 여력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동통신 3사의 지난해 매출액 합계는 약 51조원인데 이중 영업이익은 약 3조7천억원 마케팅 비용은 약7조6천억원에 달하고 이와 별도로 통신사들은 기술개발 및 설비 투자비용으로 약5조5000억원을 사용했다.
이중 영업이익과 마케팅 비용만 합치더라도 11조 3000억 원으로 그 외 5조원이 넘는 투자비용까지 감안하면 기본료 폐지로 7조원의 수입이 감소되더라도 적자 전환 없이 매년 5조원 이상을 기술개발과 설비투자에 사용하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오히려 7조원의 기본료가 폐지되면 그 만틈 국민들의 가처분 소득이 증대되어 소비진작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기본료가 유지되면 통신사들이 이미 28조원이나 쌓아 놓은 사내유보금의 증가에 이바지할 뿐 국민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다.
통신사들이 기본료 폐지를 반대하는 다른 논거는 통신요금 인하는 규제보다는 자율적인 경쟁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동통신시장은 독과점 시장이어서 자발적인 경쟁을 통한 요금인하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일례로 이동통신사들은 지난 3년간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 시행으로 마케팅 비용이 대폭 감소해 요금인하여력이 크게 증가하였음에도 요금경쟁을 통한 통신비인하는 외면한 채 그 대부분을 자신들의 이익으로 흡수했고 배당 등으로 소진했다.
따라서 이동통신시장에서 합리적인 요금이 책정되기 위하여는 규제가 병행되어야 하는데 그 중 기본료 폐지는 실현 가능할 뿐만 아니라 현재의 통신비 거품을 제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현재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는 기본료 폐지를 비롯한 통신비 인하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논의되는 내용을 들어보면 국민들의 통신비 불만을 해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간 통신비인하 정책들이 성공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미래창조과학부 등의 규제당국이 대한민국 인구보다 많은 가입자 보호에 중점을 두고 정책을 펼치기보다는 통신의 산업적인 측면만 중시하여 정책의 우선순위를 소수의 통신대기업들의 보호에 두었기 때문인데 통신비 인하 정책을 논의하는 국정기획위에서도 동일한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는 우려는 나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정기획위는 초심을 잃지 말고 국민들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서 국민들 기대에 부응하는 통신비 인하 정책을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
4. [중앙일보][서소문 포럼] 소년과 소녀의 '픽미'는 달랐다
‘국민 프로듀서’란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인기를 끈Mnet ‘프로듀스101’(이하 프듀)이 막을 내렸다. 101명의 연습생들이 매번 경연을 벌이고 시청자 문자투표로 살아남은 최종 11명이 아이돌로 데뷔하는 과정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걸그룹 프로젝트인 시즌1에 이어 이번 시즌2에서는 ‘워너원’이라는 보이밴드가 탄생했다. 최종 11인은 물론이고 탈락자들까지 스타덤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프듀’는 지난해 시즌1의 출발 때부터 비판이 많았다. 101명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고 아래 등수부터 탈락시켜 가는 방식이 너무 불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필이면 교복을 입은 10대 소년·소녀들을 링 위에 올려놓고 ‘품평’하며 점수를 매겼다. 능력을 판정받는 것이 경연 프로라지만 ‘능력=계급’을 너무도 노골화했다. 첫회 테스트에서 A~F조로 판정받으면 입는 옷 색깔부터 달라지고, 합격자들이 앉는 의자도 피라미드형으로 배치됐다. 그 자체가 서바이벌 수직사회의 축소판인 셈이다.
거기에 스토리텔링을 위한 일명 ‘악마의 편집’, 방송 분량의 편중 등 공정성 논란도 이어졌다. 이번 시즌에는 최종 투표일에도 공정성 논란이 나왔다. 일부 탈락 예상 후보에 대한 중간발표가 몰표로 이어져 경연 내내 합격권에 있었던 유력 후보들이 낙마한 것이다. 또 합숙 과정 등에서 거대 방송사로부터 연습생이라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 줄 장치가 전무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누군가는 ‘MSG급 길티 플레저’라고 표현했다), 팬들은 마치 자기 자식을 키우듯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습생들을 지지하면서 그들의 성장과 생존을 바랐다. 사실 이번 시즌2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일명 ‘양육자 팬덤’이라 불리는 새로운 팬덤이 극치에 달했다는 점이다.
팬들은 주변의 투표를 독려할 뿐만 아니라 지하철이나 버스에 응원광고를 내기도 했다. 또 투표 단계마다 11픽, 2픽, 1픽으로 찍는 후보 수가 달라졌는데 단계별로 각종 스킬이 동원되기도 했다. 경쟁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엉뚱한 후보에게 표를 던져 표를 분산시키는 ‘견제픽’ 같은 전략투표도 등장했다. 최종회에서 유력 연습생이 탈락한 것에 대해서도, 중간발표라는 돌발 변수를 감안하지 못한 팬덤의 대응 부재라는 패인 분석까지 나왔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를 기점으로 팬덤이 마치 선거캠프처럼 움직였단 얘기다.
‘양육자 팬덤’의 출현은 아이돌의 역사에서 god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H.O.T나 젝스키스와 달리 ‘god의 육아일기’라는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god는 거리감 없이 편안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선보였고, 이는 신비롭게 추앙하기보다는 이웃집 형·동생 같은 이들을 지지하는 ‘후원자 팬덤’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프듀’의 양육자 팬덤은 초기 god의 후원자 팬덤과는 큰 차이가 있다. ‘프듀’의 양육자 팬덤은 마치 자녀의 성적이 오르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그를 통해 대리만족하는, 때로는 극성스러울 정도로 자녀 양육에 헌신하는 열혈 부모의 심경을 닮았다.
출연자인 연습생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 매회 경연은 시험, 경연 결과는 성적 등수, 최종 11인 아이돌 데뷔는 대입 합격을 은유하는 모양새다. 연습생들은 눈물을 흘리며 “응원해 준 국민 프로듀서님께 보답하고 싶다. 꼭 데뷔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현실 속에서도 서바이벌 경쟁에 지친 대중들이 가상의 경쟁에 몰두하면서 다시 승패를 맛보는 이중의 ‘서바이벌 게임’이 ‘프듀’ 인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시즌1, 2 공히 ‘프듀’의 주제곡인 ‘픽미’의 남녀 변주에 눈길이 갔다. 똑같이 나를 뽑아 달라고 생존을 갈구하는 ‘픽미’ 송인데, 시즌1 걸그룹 ‘픽미’의 가사는 ‘픽미 픽미/ 캔 유 필미/ 나를 느껴 봐~나를 꼭 안아줘~아이 원츄 픽미 업’인데 반해 시즌2 보이그룹 ‘나야 나(픽미)’는 ‘오늘밤 주인공은 나야 나/ 니 맘을 훔칠 사람 나야 나~ 픽미 픽미 픽미 업’이다. 똑같이 나를 뽑아달라면서도 소녀들은 스스로를 대상화하고 소년들은 스스로 주체가 된다. 한국 사회 걸그룹과 보이그룹은 이만큼 다르다는 얘기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한일 기본조약
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의 첫 국가 간 공식 회담이 1952년 2월 일본 도쿄에서 열렸다. 앞서 51년 10월 연합군 사령부 중재 하에 실무자 간 예비회담이 있었다. 한국전쟁 직후였고, 냉전 긴장이 팽팽해지던 때였다. 소련 팽창정책에 이미 동구가 공산화했다. 중국 공산정권에 맞서 당시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구상하던 동북아 지역안보 체제의 관건이 한일 협력이었다.
양국은 13년 뒤인 1965년 6월 22일에야 한일기본조약에 조인했다. 그만하면, 국민 감정과 협상 자체 득실을 제쳐둔다면, 약소국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압박에 버티며 꽤 끈질기게 협상에 임했다고 할 만했다.
조약은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4개의 부속 협정- 청구권 및 경제협력, 재일교포 지위, 어업, 문화재ㆍ문화 협력-으로 이뤄졌다.
협상은 처음부터 난항이었다. 첫 회담에서 한국은 식민 지배 배상을 요구했고, 일본은 한반도에 남긴 일본인 사유재산 보상을 주장했다. 2차 회담은 독도 문제와 평화선(이승만의 60마일 해양주권선) 요구로 어그러졌고, 3차 회담 땐 일본 수석대표 구보타 간이치로가 “일본의 36년 한국 통치는 한국인에게 유익했다”고 발언하는 바람에 결렬됐고, 4차 회담은 재일 교포 북송문제로 교착했다. 그리고 60년 4ㆍ19 혁명이 발발했고, 이승만 정권이 붕괴했다.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에게는 이승만의 고집과 독선적 자존감조차 없었다. 오히려 권력 정통성과 공산주의 활동 전력 탓에 미국의 눈치를 봐야 했던 그는 도쿄 6차 회담 중이던 62년 11월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을 보내 일본 외무장관 오히라 마사요시와 비밀협상을 벌이게 했다. ‘김-오히라 비밀 메모’라 불리는 둘의 합의로 회담은 급물살을 탔고, 64년의 한일협상 반대 ‘6ㆍ3항쟁’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2월 조약에 가조인했다. 협정은 65년 12월 비준됐고, 양국 국교가 정상화됐다.
무상공여와 차관 등 협상의 득실에 대해서는 지금도 말이 많다. 식민지배 반성과 사죄의 언급이 일절 없어 굴욕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본은 3억 달러 무상 공여금을 대외적으로는 과거사 청산 배상금이라고 주장했고, 자국민에게는 경제협력 자금이라고 홍보했다. 부속협정(재산 청구권 협정)에는 “(개인 법인을 포함한 일체의 재산 권리 청구권 등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한다”(2조)는 조항을 넣었다.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의 한ㆍ일 외무장관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도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이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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