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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직선거법 개정 방안 국회 제안

■ 한중 FTA 가서명

■ 국가정보원의 ‘노무현 죽이기’ 공작(논두렁 시계)

■ 낙하산 논란, 한예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겸 단장 자진 사퇴

■ 지하철 무임승차 대안 마련 시급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직선거법 개정 방안 국회 제안

 

[한국일보 사설-20150226목] 선관위案 기초로 선거제 개혁 논의 시작하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그제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惜敗率制) 등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 방안을 국회에 제안했다. 한국정치의 오랜 병폐로 여겨져 온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사표(死票)를 막는 효과를 가늠하게 하는 제안이다. 본보가 신년기획 ‘선거제도 혁신 올해가 골든 타임’을 통해 제시한 다양한 선거제도 혁신 방안과도 일맥상통한다. 국회가 조속히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해 적극적 검토에 나서는 계기로 삼을 만하다.

 

선관위 제안의 핵심인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적 정당투표 득표율에 따르던 비례대표 국회의원 배정을 ▲서울 ▲인천ㆍ경기ㆍ강원 ▲부산ㆍ울산ㆍ경남 ▲대구ㆍ경북 ▲광주ㆍ전북ㆍ전남ㆍ제주▲대전ㆍ세종ㆍ충북ㆍ충남 등 6개 권역별 정당투표 득표율에 따르도록 하는 방식이다. 19대 총선 권역별 득표에 단순 적용하면 새누리당이 광주ㆍ전북ㆍ전남ㆍ제주 권역에서 비례대표 1석을, 새정치연합이 부산ㆍ울산ㆍ경남 권역에서 비례대표 4석을 얻은 결과가 된다. 역대 선거에서 거듭된 특정 정당의 지역별 싹쓸이 현상을 일부 배제할 수 있다는 효과가 눈에 띈다.

 

석패율제 도입은 사표를 줄여 유권자의 뜻을 존중하게 되는 효과와 함께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마찬가지로 지역주의 완화 효과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정당마다 2명까지 지역구 국회의원 출마자를 그 지역구가 속한 권역별 비례대표 후보로도 내세워, 지역구 낙선 후보자 가운데 ‘상대 득표율(득표수/해당 지역구 후보자 평균 득표율)’이 가장 높은 1명을 비례대표에 당선시키는 제도다. 19대 총선 당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40.4%를 득표한 김부겸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로 동시 등록했다고 가정하면, 이한구 의원에게 패해 낙선하고서도 권역별 비례대표로는 당선될 수 있었다. 대신 지역구와 비례대표 동시 입후보자의 득표가 지역구 유효투표의 3% 이상이어야 하고, 정당별 지역구 당선자가 해당 권역 지역구 당선자의 20% 미만일 경우로 제한했다. 영ㆍ호남 지역처럼 지역주의 투표행태가 만연한 권역을 우선 겨냥한 셈이다.

 

선관위 제안은 구체적 비례대표 배정방식이 복잡해 일반 유권자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들이 지역주의와 사표를 막을 방안으로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ㆍ대 선거구제로 바꿀 것을 주장한 것과 달리, 유권자에게 익숙한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엇비슷한 효과를 고려한 결과라고 눈감아 줄 만하다.

 

문제는 선거법 개정의 칼자루를 쥔 정치권의 자세다. 선관위는 2011년에도 석패율제 도입 등을 제안했으나 정치권의 밥그릇 싸움에 좌초한 바 있다. 의원 정수(300명)를 그대로 두되, 지역구와 비례대표 정수를 2대1로 하자는 제안도 담겨있어 의원들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표가 선관위 제안의 핵심내용을 지난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는 야당의 반응이 보다 적극적이지만, 당내 의견이 일치된 결과라고는 보기 힘들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어차피 대대적 선거구 개편이 불가피한 만큼 정치권과 의원 각자가 더는 눈앞의 이해 타산에 얽매일 수 없다. 국회는 선관위 제안을 참고로 본격적 선거제도 개편 논의 과정에 즉각 돌입해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226목] 비례대표제 의원 확대, 찬성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4일 내놓은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보면, 선거제도 개편부터 정당의 공직후보자 선출 방식, 지구당 부활 등에 관해 폭넓은 제안이 망라되어 있다. 하지만 선관위 개정의견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그리 곱지 않은 듯하다. 선거의 공정한 관리를 임무로 하는 선관위가 국회와 정당 몫인 선거제도 개편이나 공직후보자 선출 방식에까지 개입해 훈수를 두는 게 과연 옳으냐는 지적은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또 개정의견에 담긴 사안에 따라 찬반이 첨예하게 갈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선관위가 의견을 내지 않으면 국회나 정당에서 기득권을 잃을 수 있는 관련법의 개정과 제도 개선을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국회는 선관위 의견 제출을 계기로 정치개혁 작업에 박차를 가하기 바란다.

 

선관위 의견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과 비례대표를 확대하자는 주장이다.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전국 6개 권역으로 나눠 배분하고, 권역별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을 뽑자는 안이다. 선관위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2 대 1로 하자고 제안했는데, 이렇게 하면 지금보다 지역구 의석은 46석 줄고 비례대표 의석은 그만큼 늘어난다. 당연히 지역구 의원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선관위 제안이 우리 정치의 고질인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소수정당의 의회 진출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국회가 이를 적극 수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국회의원의 지역 대표성이 중요하긴 하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지역 대표성보다 직능 대표성을 강화하는 게 다양한 층위의 유권자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이제 국회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0월 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 편차를 2 대 1로 줄이라는 결정을 내린 지 석 달이 지났지만 아직 국회에서는 선거법 개정 움직임조차 없다. 여야가 짬짜미해서 뭉개다가 총선이 가까워지면 현행 제도를 약간 다듬는 수준에서 그냥 넘어가려는 거 아니냐는 의혹을 살 만하다. 따라서 국회의원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선거제도 개혁을 국회 특위에만 맡겨두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국회는 지금이라도 국회의장 직속으로 선거제도 또는 정치제도 개혁을 위한 기구를 만들어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 이 기구엔 여야뿐 아니라 학계·시민사회 등 외부 인사들이 두루 참여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선거제도 개혁이 국민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서울신문 사설-20150226목] 여야 선거법 논의, 정치 선진화에 초점 맞춰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그제 내놓은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은 몇몇 대목에서 유의미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지역 구도를 완화하고 표심을 올바로 반영할 수 있도록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를 도입하자는 제안이 눈길을 끈다. 정치자금 관련 제도를 현실화하고 정당 공천을 완전국민경선 방식으로 전환하자는 내용도 깊이 있는 검토가 뒤따라야 할 사안일 것이다.

 

선관위가 제시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서울, 경기·강원,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광주와 전남·북, 대전과 충남·북 등 6개 권역으로 나눠 권역별로 비례대표 의원 정원을 지역구 수의 절반 정도로 책정하고 권역별 득표율에 맞춰 각 정당의 권역별 비례대표 의원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한 후보자가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로 중복 등록해 지역구 선거에서 떨어지더라도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되는 길을 열어 두는 방안도 담았다. 이대로 하면 호남에서 새누리당 의원이, 영남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보다 많이 나올 수 있게 돼 지역 구도 완화에 분명 보탬이 될 듯하다. 그러나 비례대표 확대는 자칫 중앙당 지도부 권한 강화로 이어지면서 정당 민주화를 위협할 소지를 안고 있는 데다 군소정당 난립과 여소야대 고착화에 따른 정국 불안정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향후 여야 정치권과 학계의 보다 면밀한 검토가 뒤따라야 한다.

 

선관위의 의견 가운데 정치자금 한도를 늘리고 지구당을 부활하는 방안도 현실적 필요성과 별개로 폐단을 함께 따져 봐야 할 일이다. 국회의원 정치자금 모금 한도를 연간 1억 5000만원으로 묶은 현행 정치자금법, 이른바 ‘오세훈법’은 2004년 시행 이후 정치자금 투명화에 크게 기여해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워낙 제도가 엄격하다 보니 합법적인 정치자금 수요까지 제대로 충족하기가 어려웠고, 이로 인해 대다수 국회의원들이 출판기념회를 통한 편법 모금에 매달리도록 하는 등 기형적 정치 행태를 만들어 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모금 한도를 현실화하는 등 제도 보완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본다. 다만 국회에서의 ‘무노동 무임금’ 원칙 적용 등 보다 충실한 의정 활동을 유도할 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반드시 관련 제도 보완 작업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내년 4월 20대 국회의원 총선까지 14개월도 남지 않은 촉박한 일정을 감안할 때 여야는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우리 아들딸들에게 반듯한 선거제도를 물려주겠다는 각오로 선거법 개정 논의에 임해야 한다. 무엇보다 난제 중 난제라 할 선거구 조정에 있어서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는 초당적 자세를 지니는 게 중요하다. 지역 특성이나 유권자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리당략에만 매달려 게리맨더링(편의적 선거구 조정)을 일삼았던 구태를 이번만큼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김무성·문재인 두 여야 대표가 차기 대선 주자로 적합한지, 당장의 손익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지도자의 자질을 갖췄는지는 선거법 개정에 임하는 자세로 판가름 난다고 본다. 모쪼록 한국 정치를 한 단계 도약시킬 방안을 마련하는 데 두 사람부터 힘을 모으기 바란다.

 

 

 

 

■ 한중 FTA 가서명

 

[한국일보 사설-20150226목] 한중 FTA 순탄한 진행, 만만치 않은 도전

 

한국과 중국이 어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협정문에 가(假)서명했다. 이날 이뤄진 가서명은 양국의 영문 협정문에 대한 법률검토 작업이 완료됐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양국은 올 상반기 중 정식 서명을 추진하고 국회 비준을 거쳐 조속한 시일 내에 협정을 발효하기로 했다. 양국은 지난해 11월10일 협상 타결 선언 이후 기술협의와 법률 검토를 거쳐 개성공단 관련 조항과 서비스 투자 후속협상 가이드라인에 대한 내용들을 좀 더 구체화했다. 새로운 내용은 개성공단 제품을 포함한 총 310개 품목에 대해 원산지 지위를 부여해 특혜 관세의 혜택을 주는 것을 비롯, 상하이 투자자유지역(FTZ) 내 한국 건설업체의 수주 허용, 중국 내 한국 관광회사의 모객영업 허용 등이다.

 

협정이 발효되면 중국은 품목 수 기준 91%(수입액 기준 85%), 우리는 92%(수입액 기준 91%)에 해당하는 품목의 관세를 최장 20년 내에 철폐한다. 이는 3년 안에 90% 이상 관세를 철폐하기로 한 한미 FTA나 한ㆍ유럽연합(EU) FTA와 비교할 때 개방 수준이 현저히 낮다. 관세 철폐 대상에서 제외된 품목이 많기 때문이다. 또 한중 FTA는 매년 단계적으로 관세를 낮추는 방식으로 발효일에 1년 차 관세 인하가 적용되고 다음해에 2년 차 인하가 단행되기 때문에 충격이 비교적 덜한 편이다.

 

쌀은 아예 협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고추, 마늘, 쇠고기, 돼지고기, 사과, 감귤, 배 등 국내 농축산물의 3분의 1 수준인 548개 품목과 오징어, 멸치, 갈치 등 20대 수산품목은 전혀 손을 댈 수 없게 했다. 우리의 주력 수출품목에서 상당부분 양보하는 대신 농수산업계의 피해를 줄이는 데 역점을 둔 결과다. FTA로 수출 중소기업들은 급속히 성장하는 중국의 내수시장 공략이 쉬워졌다. 반면 생활용품, 섬유 및 패션, 가공식품 등 내수형 중소기업은 아무래도 피해를 입게 되고, 비록 선방했어도 농수산업 분야 또한 어느 정도의 피해는 불가피할 것이다.

 

이처럼 FTA는 양날의 칼이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특히 중국은 세계의 경제패권을 노리는 나라다. 자본력이나 기술력, 인구, 지리적 인접성 등을 감안할 때 낮은 수준의 FTA만으로도 우리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정부가 기대하는 대로 한중 FTA를 통해 한국 경제 재도약의 동력을 얻으려면 산업 전 분야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키워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기회는 거꾸로 위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정부가 우리 수출기업들이 중국 내수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도록 정교한 지원시스템을 구축하고, 피해업계의 손실을 최소화하도록 뒷받침해야 함은 가장 기본적인 전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226목] 한-중 FTA, 철저한 검증 거쳐야

한국과 중국 정부가 25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에 가서명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협상 타결 때 발표하지 않았던 상품별 관세 철폐 내용도 이날 공개했다. 이로써 두 나라 정부 간의 협상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이제는 협정문을 놓고 본격적인 검증에 들어가야 할 단계다.

 

가서명 협정문의 내용을 보면, 두 나라 모두에게 이익이 일치할 수 있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낮은 수준의 개방’에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관세 철폐 대상은 포괄적이지만 철폐 기간을 중장기로 해둔 품목이 많다. 협상에서 한국은 농수축산업, 중국은 자동차와 전자 등 주력 제조업을 보호하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서비스와 지식재산권 분야도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뒀으며, 투자 분야는 아예 합의에서 빠져 있다.

 

개성공단에 대한 역외가공 인정 조건은 파격적이다. 개성공단 제품 대부분이 한국산 지위를 얻었으며, 협정 발효 즉시 관세 혜택을 볼 수 있게 합의됐다. 역외가공에 대한 역대 협정 가운데 가장 유리한 조건이다. 게다가 두 나라 간 역외가공위원회를 구성해 역외가공 지역을 추가할 여지까지 뒀다. 남북 관계만 풀리면 개성공단의 활성화는 물론이고, 국내외 자본의 대북 투자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한-중 에프티에이의 경제적 파급력은 어느 협정보다 크다고 봐야 한다. 국내에선 기대가 큰 만큼 우려도 만만찮다. 중국은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이상의 인구가 5억명을 넘을 정도로 엄청난 시장이며, 미국이나 유럽보다 여전히 빠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협정이 발효되면 국내 수출산업은 경쟁국보다 훨씬 나은 조건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게 된다. 반면에 중국산 중저가 제품의 수입 확대에 따른 국내 관련 산업의 피해도 우려된다.

 

정부는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를 모두 고려해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상되는 그늘이나 부작용을 살피지 않은 채 ‘경제적 효과의 조기 가시화’만을 내세워 국회 비준동의를 밀어붙여서는 곤란하다. 통상조약은 단지 대외 교역 질서뿐 아니라 국내 경제 전반과 국민 일상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해당 산업은 물론 재정, 고용, 위생, 인권, 환경 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나아가 경제 주권과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할 소지도 있다. 이처럼 중차대한 사안을 일개 정부 부처가 진행한 대외협상 결과로 매듭지을 수는 없다. 한-중 에프티에이는 이제까지 협상보다 국회의 비준동의 절차가 더욱 중요하다.

 

 

■ 국가정보원의 ‘노무현 죽이기’ 공작(논두렁 시계)

 

[한겨레신문 사설-20150226목] 국정원의 패륜적인 ‘노무현 죽이기’ 공작

 

국가정보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내용 일부를 과장해 언론에 흘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으로 수사 책임자였던 이인규 변호사가 한 말이니 분명한 근거가 있을 것이다.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이 따라야 한다.

 

국정원이 한 짓은 피의사실 공표 정도가 아니라 사실을 조작하고 왜곡한 언론공작이다. 2009년 4월30일 대검 중수부 조사 당시 노 전 대통령이 회갑 선물로 받은 명품 시계 두 개에 대해 답변한 것은 “시계 문제가 불거진 뒤 (부인 권양숙씨가) 바깥에 버렸다고 합디다”란 말이 전부였다고 한다. 보름 뒤 일부 언론은 “권 여사가 시계 두 개를 모두 봉하마을 논두렁에 버렸다고 노 전 대통령이 진술했다”고 대서특필했다. 이 전 부장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논두렁’ 얘기는 (검찰 조사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런 식으로 (국정원이) 말을 만들어서 흘린 것”이라고 국정원을 지목했다. “언론보도 등은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는 “국정원의 당시 행태는 ‘빨대’(익명 취재원) 정도가 아니라 공작 수준”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 정치적으로 매장하기 위해 국정원이 ‘논두렁’ 따위의 자극적인 소재를 지어내 언론공작을 했다는 얘기다.

 

폭로대로라면 이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국정원이 주도했다는 대대적인 언론보도 뒤 열흘 만에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국정원의 공작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만행이기도 하다. 누구의 지시로 어떻게 이런 공작을 폈는지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사실로 확인되면 당시 국정원장이던 원세훈씨부터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진상규명이 그리 어렵지도 않을 성싶다. 검찰은 당시 보도에 대한 추적조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부장이 왜곡된 내용의 언론보도까지 “몇 단계를 거쳐 이뤄졌다”고 말한 것도 그런 조사의 결과인 듯하다. 검찰이나 당시 수사 관계자들은 이를 숨김없이 공개해야 한다. 의지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진상을 밝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국정원의 언론공작이 사실로 드러났더라도 이를 이 전 부장을 비롯한 검찰의 잘못에 대한 변명으로 삼을 수는 없다. 국정원이 아니라도 당시 검찰은 사실 여부가 불분명했던 의혹을 중계방송 하듯 언론에 공개하거나 슬그머니 흘렸다. 정치적 목적의 망신주기 수사 행태도 노골적이었다. 국정원과 마찬가지로 검찰의 책임도 결코 작지 않다.

 

 

[경향신문 사설-20150226목] 국정원이 ‘논두렁 시계’ 언론보도 조작했다니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경향신문 취재진과 만나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당시 불거진 이른바 ‘논두렁 시계’ 진술은 국가정보원이 조작해 언론에 흘린 것이라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이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선물받은 명품시계를 “바깥에 버렸다더라”고 진술했지만 “논두렁에 버렸다”고 말한 것으로 바꿔 언론에 제공했다는 것이다. ‘논두렁 시계’ 보도는 노 전 대통령의 도덕성에 큰 흠집을 냈고, 그를 막다른 길로 내몬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됐다.

 

국정원은 일단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보였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사 최고책임자의 고백이란 점에서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국정원이 검찰 수사 내용을 조작, 언론에 제공해 여론을 호도했다면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중대 범죄다. 검찰은 당장 의혹의 실체적 규명을 위한 수사에 착수하기 바란다. 국회도 진상 조사를 벌일 필요가 있다.

 

이 전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한 국정원의 당시 행태가 “공작 수준에 가까웠다”고도 했다. 국정원이 전직 대통령을 망신주기 위해 정치 공작 차원에서 검찰 수사 내용을 왜곡하고 여론을 조작했다는 얘기다. 직원 몇몇의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조직적 범죄 성격이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검찰 관계자는 당시 국정원 직원이 수사팀을 찾아와 “‘시계 부분은 보도되도록 하자’고 제안해 거부했는데, 이후 ‘논두렁 시계’ 보도가 나왔다”고 전했다.

 

당시 국정원의 최고책임자는 원세훈 전 원장이다. 원 전 원장은 이미 댓글달기를 통한 대선 여론 조작을 꾀한 혐의로 공직선거법상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번에는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노골적으로 정치에 개입해 여론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도대체 국정원의 탈선이 어디까지 진행된 건지 모를 일이다. ‘원세훈 국정원’은 현직 대통령의 대선은 물론 전직 대통령 수사에도 개입함으로써 또다시 정보기관의 정치중립 의무를 저버린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갖게 됐다. 원 전 원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을 다시 법정에 세워 노 전 대통령 수사의 진상과 정권 차원의 개입 여부를 철저히 가려야 한다.

 

국정원은 내부 감찰에 착수하겠다고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검찰 수사나 국회 조사와는 별개로 조직의 명운을 건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 이 전 중수부장과 당시 검찰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당시 ‘노무현 수사’는 진행 상황이 연일 공개되면서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논란이 거세게 일었기 때문이다.

 

 

■ 낙하산 논란, 한예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겸 단장 자진 사퇴

 

[한국일보 사설-20150226목] 번번이 불신 파행 자초하는 문체부 관련 인사

 

인선 때부터 ‘낙하산’ 논란에 휘말렸던 한예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이 끝내 자진 사퇴했다. 취임 53일 만이다. 한 감독의 사퇴 기자회견은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조차도 모른 가운데 불쑥 이루어졌다. 한 감독은 “여러 논란 속에 도전적인 의욕보다 좌절감이 크게 앞서 더 이상 (자리에) 연연하기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체부의 무리한 인사가 다시 한 번 예술계에 평지풍파를, 한 감독 본인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긴 셈이 됐다.

 

한 감독 임명은 애초부터 문화예술계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다. 예술단체장의 특성상 사계의 평판과 신뢰를 확인해야 마땅한데도 그런 과정조차 없이 일방통행 식으로 강행됐다. 그렇다고 누구나 인정할 만한 성취나 경력을 갖춘 인물도 아니었다. 문체부는 당초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적임자를 복수 추천 받았고 평판조회를 한 뒤 인사검증을 거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초 추천자나 추천 경위 등은 주무 부서에서도 “모른다”거나, “우리는 힘이 없다”고 얼버무릴 정도였다. 한국오페라비상대책위원회가 한 감독 임명을 ‘청와대 발(發) 낙하산 인사’라며 이례적인 반대시위에 나선 배경도 여기에 있다.

 

어찌 보면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인사 한 건은 대단치 않은 문제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일은 현 정부 들어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는 무리한 문체부 관련 인사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직전 “부실한 인사가 전문 분야와 상관없는 낙하산으로 임명되는 것은 반드시 근절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권 초 예술의전당 사장부터 시작해 연예인 자니 윤씨를 관광공사 감사에 임명하기까지 대통령의 약속과 다른 인사가 이어졌다.

 

문체부는 연일 뒤숭숭한 분위기다. 지난해 유진룡 전 장관이 후임장관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경질되고, 뒤 이어 승마협회 감사와 관련해 대통령이 직접 관련 국장들의 교체를 지시한 정황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지난 1월 김희범 1차관이 취임 6개월 만에 돌연 사표를 낸 것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석연찮은 인사가 반복되자 최근엔 인사혁신처가 진행 중인 국립현대미술관장 공모를 두고도 미술계가 들썩이는 등 문화예술행정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진 상태다. 이런 식으로 ‘문화융성’이 가능할 지 걱정된다.

 

 

[경향신문 사설-20150226목] 국립오페라단장 사퇴 부른 문화부 밀실 인사

자격 논란에 휩싸였던 한예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겸 단장이 그제 돌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오페라계의 강경한 반대 때문이라고 한다.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임명은 10개월의 공백 끝에 지난달 초 겨우 이뤄졌다. 하지만 한 감독이 임명되자마자 전문성 부족 등을 문제 삼아 오페라계가 들고일어났다. 실제로 과거 국립오페라단 단장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무게감과 지명도에서 한 감독의 임명은 파격적이었다. 원로들이 주축을 이루는 오페라계에서 한 감독은 “경험이 부족한 청와대 낙하산” “납득할 수 없는 인선”이란 말을 들을 정도였다. 게다가 학력에 대한 의문, 상명대 산학협력단 특임교수 경력 허위 기재 의혹, 이탈리아 연주 경력 조작 논란까지 이어졌다. 한국오페라비상대책위원회는 한 감독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1인 릴레이 시위 등을 벌였다.

 

한 감독은 결국 임명 50여일 만에 사임을 발표했다. 자신을 임명한 문화체육관광부에도 알리지 않고 직접 언론에 보도자료를 발송했다고 한다. 이로써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선임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이번 사태의 1차적 책임은 인사권자인 문화부가 져야 한다. 우선 예술감독을 임명하면서 간단한 이력과 경력조차 확인하지 않을 정도로 검증의 허술함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문제가 드러난 뒤에도 한 감독을 일방적으로 감싸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국립오페라단 운영도 다시 파행을 맞게 됐다.

 

사실 현 정부의 문화부 산하 단체장 밀실·낙하산 인사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 변추석 한국관광공사 사장 및 자니윤 감사, 김세훈 영화진흥위원장 등 대선 캠프 인사들을 중용하면서 계속 자격미달 논란을 빚었다. 다음달 중순으로 예정된 국립현대미술관 새 관장 선임을 앞두고도 미술계가 시끄럽다. 친박계 정치권 인사 내정설이 나도는 가운데 일부 미술인들은 자격미달 후보의 자진 사퇴와 ‘미술관 정상화’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의 중도 사퇴는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 전문적이고 합리적인 인사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또 한번 확인시켜준다. 이번 사태가 정치적 색깔과 관계 없이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 해당 분야 전문인들과의 소통 능력이 있는 인사가 문화예술 단체장에 선임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 지하철 무임승차 대안 마련 시급

 

[서울신문 사설-20150226목] 지하철 무임승차 축소대책 필요하다

 

지난해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공짜로 이용한 사람이 1억 5000만명을 넘어섰다.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가 어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의 노인,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무임승차 인원은 지난해 1억 5019만명으로, 전체 승차 인원의 13.3%를 차지했다. 특히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인 무임승차 인원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반면 장애인과 국가유공자의 무임승차는 줄고 있다. 지하철 1~4호선의 노인 무임승차 인원을 운임으로 계산하면 1365억원이다. 서울메트로의 지난해 순손실(1587억원)의 86%에 달한다. 서울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나 다른 도시의 지하철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하철을 운영하는 기관들은 노인 무임승차로 인해 누적적자가 쌓이고 있고 결국 이로 인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요금을 올리면 시민들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노인이 공짜로 지하철을 탄다고 해서 유료 승객을 못 받는 게 아닌 만큼 무임승차가 적자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다. 하지만 선진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65세 이상 노인에게 100% 지하철 무임승차를 허용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노인에게 최소한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는 살려야겠지만 지금처럼 소득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노인이면 무조건 무임승차를 허용하는 제도는 조정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초 노인 무임승차를 도입할 당시 4%대였던 노인 인구 비율이 지난해 말에는 12.7%까지 급증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청년백수’들도 꼬박꼬박 요금을 내는데 소득과 재산을 고려하지도 않고 만 65세를 넘었다고 모두 공짜 혜택을 주는 것은 지나친 복지 혜택이다. 지하철 무임승차에서도 선별적인 복지 쪽으로 방향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 부담할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계층에는 일정한 요금 부담을 지우는 게 맞다. 노인의 소득 수준이나 출퇴근 시간 등 이용 시간대에 따라 할인율을 차등 적용하는 방법 등을 충분히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65세 이상인 노인 무임승차 나이 기준을 순차적으로 올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서울메트로 등 지하철 운영 기관도 누적적자의 원인을 노인 무임승차 탓으로 무책임하게 돌릴 게 아니라, 방만 경영을 개선하려는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선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지하철 운영 기관의 반성이 필요하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226목] 지하철 적자 86%가 경로 무임승차… 대안 시급하다

 

지하철 경로 무임승차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 중인만큼 무임승차로 인한 경영 갈등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어차피 언젠가는 근원적 해법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될 과제다.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가 24일 발표한 '2014년 서울메트로 수송·수입실적'에 따르면 무임승차 인원은 2012년 1억4,397만명, 2013년 1억4,600만명, 2014년 1억5,019만명으로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무임승차 대상자 가운데 장애인과 유공자는 각각 3.2%씩 감소한 반면 경로인원은 전년 대비 4.7%나 증가했다. 지난해 서울메트로의 순손실 1,587억원 가운데 경로 무임승차 몫이 1,365억원에 달한다. 서울메트로 순손실의 86%가 경로 무임승차에서 발생한 셈이다.

 

경로 무임승차로 인한 서울메트로의 경영난은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올해 114만명인 65세 이상 서울 거주 노인이 2020년에는 146만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인구 내 비중도 올해 11.4%에서 2020년 14.6%로 3%포인트 이상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서울시 등 지하철을 운영하는 지자체들은 정부가 재정으로 무임승차 비용을 보전해주기를 바라지만 정부는 국고 부담을 이유로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세대 간 갈등 양상으로 번지는 이 문제를 회피하는 데만 급급하다.

 

외면한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다. 중지를 모아 합리적인 개선 방향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서울 지하철 1호선 일부 구간을 운영하는 코레일에 매년 1,000억원가량의 무임승차 비용을 보전해준다. 지자체에만 비용을 보전해주지 않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 지자체도 정부만 바라볼 게 아니라 나이와 소득 수준에 따라 지하철 요금을 할인하는 등 나름의 해법을 찾아 나서야 한다.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어르신은 경제활동인구로 분류해 일부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중앙일보 사설-20150226목] 반퇴시대, 자식에만 올인하면 노후가 불행하다

 

우리나라 40대의 절반 이상이 자녀 교육비를 지출 1순위로 꼽았다. 반면 6.2%만이 노후자금 마련을 우선순위로 선택했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서울·광역시 거주 성인 2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자식 교육에 올인하다 반퇴(半退)한 후 대책 없는 노후를 맞는 중년세대의 불행한 자화상이다. 자녀가 대학에 입학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40·50대의 과반수는 성인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취업난으로 자녀의 경제적 독립이 늦어지며 취업 준비 비용과 생활비를 대야 하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은 중년세대의 노후는 빈곤할 수밖에 없다. 이미 주변에선 자녀 교육비와 결혼비용을 대는 데 여유자금을 다 쓰고 일용직에 나서는 노인세대를 흔히 볼 수 있다. 마치 부화한 새끼들의 먹잇감으로 자기 몸까지 내어주는 어미 거미의 운명과 비슷하다.

 

  예전에는 자식 교육만 잘 시키면 대부분 노후가 편안했다. 자녀들이 봉양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중년세대는 그런 기대를 아예 접는 것이 현명하다. 1980년대 우리나라 노인들은 노후 수입원 중 자녀의 도움이 70%를 넘었다. 지금은 30%로 낮아졌다. 현재 중년세대가 노인이 되는 미래엔 미국이나 일본처럼 자녀 도움이 거의 없어질 게 분명하다. 믿었던 국민연금도 이들이 살아 있을 때 바닥이 드러날 전망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53년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추계했다. 아득히 먼 장래 같지만 지금 40대가 80대에 겪게 될 일이다. 쌓아놓은 공적연금마저 없어지는 마당에 국가에 노인 생계를 지원할 재정여력이 있을 리 없다.

 

  결국 개인이 현명하게 노후를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일본은 출산연령이 늦어지면서 은퇴가 다가온 50대 때 자녀 교육비 부담이 가장 커진다고 한다.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일본보다 빠른 한국의 40대는 지금처럼 교육비를 쓸 경우 반퇴시기인 50대에 가혹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지출은 늘어나는데 수입은 확 줄어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40대의 가처분소득 중 교육비 지출 비중은 미국의 7배나 된다. 교육비 지출이 훨씬 적은 미국도 과도한 자녀 교육비 부담이 중산층 몰락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하물며 자녀 교육에 올인하는 한국 중산층의 미래는 더 어둡다. 지금 안정된 중산층이라 하더라도 은퇴 후 빈곤층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빈곤한 노후를 맞지 않으려면 중년세대는 지출, 특히 교육비를 줄여야 한다. 교육비 비중을 소득의 20% 정도로 확 낮추는 게 필요하다. 자녀 교육비를 절약해 생긴 여유자금은 개인연금이나 자신의 교육비로 투자하는 게 좋다. 고령화로 지금 중년 세대는 교육-취업-반퇴-재교육-재취업-완퇴(完退)의 라이프 사이클을 밟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인이 돼서도 괜찮은 일자리를 가지려면 중년 때 인생 후반전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 결혼비용도 마찬가지다. 자식에 대한 의무감, 혹은 체면 때문에 노후를 위한 최후의 종잣돈을 날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226목] 세종시 총기난사 … 꼬리 무는 분노범죄 어찌할 것인가

 

세종시에서 50대 남성이 전 동거녀의 가족 등에게 엽총을 발사해 3명을 숨지게 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이 남성은 사건 발생 직후 달아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직 범행 동기가 다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남성이 전 동거녀와 치정·금전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그 가족을 분풀이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이 남성은 동거녀 가족 집과 근무지를 차례로 찾아가 끔찍한 방법으로 목숨을 앗아 갔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방화까지 했다. 전형적인 분노조절장애를 보인 것이다.

 

  최근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해 극단적 행위를 하는 ‘분노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한 달 새만 해도 양주의 50대 주부가 말다툼을 벌이다 스스로 몸에 시너를 뿌린 뒤 불을 질러 목숨을 끊었다. 포항에서는 40대 남성이 이별 통보에 앙심을 품고 차를 몰고 여자친구에게 돌진했다. 울산의 어린이집 원장은 우는 아기의 입에 물티슈를 집어넣기도 했다. 자신의 서비스 기준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승무원에게 횡포를 부린 조현아 사건 역시 일순간의 짜증을 참지 못해 비이성적인 행동을 저지른 분노범죄였다.

 

  분노범죄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의 단면이다. 스트레스는 쌓이는데 이를 해소하지 못해 최악의 선택을 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부당·모멸· 좌절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분노를 조절하는 사회화 과정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취미생활을 갖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 사회적으로는 심리적 안정을 찾아주는 가정과 공동체의 기능이 회복돼야 한다. 스스로와 사회를 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세종시 비극을 계기로 총기 관리의 문제점 역시 살펴봐야 한다. 경찰은 수렵기간에 면허증 등을 제시하면 총기를 내주고 있다. 이 남성 역시 범행 이틀 전 공주 신관지구대에 면허증을 보여 주고 엽총 2정을 찾아갔다. 지금의 관리 시스템이라면 수렵용 총기를 범죄에 써도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다. 출고 이후 보고를 의무화하는 등 보완대책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226목] 제2의 김군 막을 테러방지법 서둘러야

 

터키와 시리아 접경 지역에서 지난달 실종된 김모(18)군이 이슬람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서 훈련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이 그제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밝힌 내용이다. IS에 참여하기 위해 김군이 자발적으로 시리아로 들어갔을 것이란 경찰의 추정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한국인이 해외 테러단체에 가담한 최초의 사례란 점에서 충격적이다.

 

  인질을 참수하고, 심지어 산 채로 불태워 죽이는 등 IS의 만행에 대한 국제사회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럼에도 각국 젊은이들 중에는 SNS를 활용한 IS의 노련한 선전에 넘어가 스스로 IS의 문을 두드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 중인 3만5000명의 IS 대원 중 약 2만 명이 외국인 출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엔 안보리가 테러 행위나 훈련 등의 목적으로 모국이나 거주 국가를 떠나 다른 나라로 여행하는 사람을 ‘해외 테러 전투원(FTF)’으로 규정하고, 안보리 결의 2178호를 통해 FTF의 이동과 입국, 경유를 차단하는 입법 조치를 각국에 촉구한 배경이다.

 

  정부는 기존 국내법으로도 대처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국가원수의 명령 없이 외국 정부에 대해 개인적으로 전투를 벌인 경우 1년 이상의 금고에 처하고, 이를 예비 또는 음모한 경우에도 3년 이하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형법 111조의 ‘외국에 대한 사전(私戰)죄’를 근거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형법 114조의 ‘범죄단체 조직죄’ 적용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사전죄는 테러나 FTF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법 규정이 아닌 데다 한 번도 적용된 예가 없다. 범죄단체 조직죄도 조직폭력배 등에 주로 적용되는 규정이다. 우리에게도 IS가 강 건너 불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이상 보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이 불가피하다.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예방에 무게를 둔 테러방지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제2, 제3의 김군을 막기 위한 대책이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경향신문 사설-20150226목] ‘정치꾼’ 아닌 ‘일꾼’ 뽑아야 할 첫 전국 조합장 선거

내달 11일로 예정된 농·수협 및 산림조합장 선거의 후보자 등록이 어제 마무리됐다. 후보자들은 오늘부터 3월10일까지 1326곳 조합의 장(長) 자리를 두고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하게 됐다.

 

이번 선거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 아래 사상 처음으로 치르는 전국 단위의 조합장 선거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10년 섬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은 ‘임자도 돈선거’ 사건처럼 불·탈법으로 점철된 단위 조합별 선거의 부작용을 불식시킬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질적인 불·탈법을 막고자 2011년 농협법이 개정되어 2015년부터 중앙선관위의 관리 아래 조합장 선거를 전국 동시에 진행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선관위는 물론 경찰까지 나서 대대적인 단속을 펼치고 있지만 혼탁선거의 구태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후보자가 100여명의 주민에게 6000만원대의 돈봉투를 돌리다 적발되는 등의 행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3억원을 쓰면 당선되고, 2억원을 쓰면 낙선된다’는 뜻의 ‘3당2락’의 말까지 여전히 나돈다. 현역 조합장에게 절대 유리한 선거제도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조합장 선거의 경우 다른 공직선거와 달리 예비후보의 자격으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13일)에도 합동연설회, 정책토론회 등은 열 수도 없다. 후보자 본인만이 명함이나 전화·문자메시지를 통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그러니 새로운 도전자들이 자신을 알릴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지역의 권력’이 된 조합장을 견제할 수단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이다. 조합장은 경영권을 쥐는 것은 물론 이사회 의장에, 대의원회 의장까지 맡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인사권을 행사하면서 자신의 자녀를 직원으로 채용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1년에 수억원씩 배당된 ‘교육지원사업’ 예산의 경우 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진출을 위한 쌈짓돈으로 쓰인다고 한다. 조합의 경영만큼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등의 업무분장도 고려해봄 직하다.

 

이번 선거를 두고 흔히 대선, 총선, 지방선거에 이은 ‘제4의 전국선거’라 일컫는다. 전국 280만 조합원들이 ‘풀뿌리 자치 의식’을 발휘하는 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표 한 표가 귀중한 이유다. 유권자들은 특히 정치인이나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조합과 조합원의 권익을 위해 일하는, 말 그대로 ‘일꾼’을 선택하는 선거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226목] 군기 잡기식 장관 해임건의 옳지 않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취임 후 처음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공직사회 분위기를 다잡으려는 듯 강한 발언을 했다. 장·차관과 청장 등 기관장에 대해 연 2회 종합평가를 실시해 기강이 해이하고 성과가 부진할 경우 국무위원 해임건의권과 인사 조치를 포함한 지휘감독권을 엄정하게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국무위원 해임건의권이 헌법과 법률에 의해 주어진 이상 총리의 정당한 권한 행사에 토를 달 이유는 없다. 자칫 타성에 젖기 쉬운 공직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일정한 자극이 필요하다. 적극적인 총리의 권한 행사는 당초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책임총리’ 정신에도 부합한다는 점에서 반길 만한 일이다.

 

그러나 총리의 공언은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공허하게 들린다. 무엇보다 지금의 내각이 어쩌다 이렇게 존재감을 잃고 만성적인 무기력증에 빠지게 됐느냐 하는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확실한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대통령의 만기친람식 국정 운영 스타일과 그에 따른 ‘받아쓰기 내각’ 체질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아무리 장·차관에게 채찍을 내리친들 기대한 성과는 얻기 어렵다. 내각을 통할할 총리로서 분위기 일신 차원에서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일 못하면 자른다’는 식의 ‘군기 잡기식’ 발언은 공직사회 전반의 사기만 떨어뜨릴 뿐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정부에 입각한 장관이 한둘이 아니다. 이 총리는 어제 국회에서 20대 총선 불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적당한 시점에 밝힐 것”이라고 했다. 이 총리뿐 아니라 장관직을 차지하고 있는 의원들의 입장도 거기서 거기라고 본다. 사정이 이러하니 총선 경력 관리용으로 장관을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비생산적인 ‘시한부 내각’이 될 공산이 큰 지금의 엉거주춤한 상황부터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다. 진정으로 국민에게 다가가는 소통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인으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이 총리 스스로 밝혔듯 총리직을 마지막 공직으로 여긴다면 총선 출마에 대한 미련은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총선을 염두에 둔 국회의원 겸직 ‘실세’ 장관들이 즐비한 마당에 해임 건의 운운하는 것은 국민에게는 한갓 ‘정치쇼’로 비칠 뿐이다. 국회의원이든, 총리든, 장관이든 한 가지 일에만 매진하라는 게 여론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총리부터 한 손의 ‘떡’은 내려놓는 본을 보여 주기 바란다. 그런 뒤에 장관 해임건의권을 행사해도 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226목] 대안 없는 비판 일색, 경제학자들의 가혹한 박정부 평가

 

국내 경제학자들은 복지를 줄이는 것보다는 증세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경제신문이 그제 연세대에서 열린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 참가한 교수와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설문에 응한 경제학자 중 48.5%가 ‘복지를 줄이기 어려운 만큼 증세가 불가피하다’에 방점을 찍었고 ‘증세는 미래를 위해 아껴야 하므로 복지를 줄여야 한다’를 선택한 학자는 18.5%에 불과했다.

 

다소 놀라운 결과다. 부자증세와 관련해서도 ‘경제성장 과정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으므로 세금을 더 내도 된다’는 응답이 47%를 차지했다. 또 한국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최대 약점으로 양극화 등 경제불균형(29.1%)을 가장 많이 꼽고 있는 것도 의외다. 물론 이 결과가 한국 경제학자들의 보편적이고 공통된 인식으로 생각되지는 않지만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답변임에는 분명하다.

 

경제학은 현실 참여도가 높은 학문이다. 설문에 응한 학자들은 당연히 실증적 자료나 데이터에 기반을 두고 현실을 인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가 ‘복지 축소는 불가능하므로 증세를!’을 선택했다면 이런 논리를 경제학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복지와 세금의 장기적 다이내믹을 간과한, 정태적이고 단기적이며 선형적인 인식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경제의 확대선순환이 가능한 다른 방법, 즉 생산성을 높이거나 성장 한계를 돌파하는 문제에 대한 깊은 고뇌 없이 단순히 정치적 논리들이 학자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경제학만큼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유혹이 강한 학문도 드물다. 정치 편향적이며 대중추수적인 성향에 쉽게 빠져들 수 있는 학문 분야이기도 하다. 분배나 사회후생론이 인기를 끄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경제학이 추구하는 학문으로서의 본질적 가치와 미적 완성도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혹여 경제학자가 정치권에 많이 진출한 결과가 학자들을 거꾸로 정치화하는 퇴행적 경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박근혜 경제정책에 대한 평점을 C 이하로 준 학자들이 84.9%에 달했다는 사실은 그래서인가. 정책적 대안이 그렇게 많았다는 것인가.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226목] 불용 많은 예산항목, 그게 바로 구조조정 리스트다

 

박근혜 정부 들어 2년 연속 발생한 대규모 불용예산의 원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본지 2월25일자 A1, 5면에 따르면 청와대가 정밀 점검에 들어간다고 하니 곧 답이 나오기는 할 것이다. 2008~2012년 연평균 5조5000억원 규모이던 불용예산이 2013년 18조1000억원, 2014년 17조4900억원으로 폭증한 것 자체가 부실예산의 증거라는 의심도 가져봄직하다. 기획재정부는 경기 부진으로 세금이 목표치보다 덜 걷힌 게 주된 원인이라고 항변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예산은 돈 없다고 안 쓰면 그만인 것인지, 그런 예산이라면 애초 편성은 왜 한 것인지 등의 의문은 그대로 남는다.

 

기재부는 모든 걸 세수부족 탓으로 돌리지만 대규모 불용예산이 연속으로 반복된다는 건 예산안 수립 과정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세수전망이 엉터리였다는 것도 드러났다. 처음부터 정액 편성이 됐더라면 지난 2년간 19조5000억원에 달했다는 세수부족 압박도 덜했을 테고 재정운용의 탄력성 또한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예산 불용액 중 가장 규모가 크다는 공공자금관리기금만 해도 그렇다. 기재부 5조원, 금융위원회 1조원 등 이것만 해도 6조원으로 전체 불용액의 35%를 차지한다. 특별회계 가운데서도 농어촌구조개선 2조2000억원, 에너지 및 자원사업 1조3000억원 등 부실 편성을 의심케 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우리는 일반회계 및 특별회계 불용액 내역이야말로 세출 구조조정의 우선순위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본다. 증세 논란보다 더 급한 게 정부의 지출 구조조정이다. 복지다 뭐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세출에 세입을 적당히 끼워맞추는 식의 예산편성 과정을 손보지 않는 한 지금처럼 대규모 세수부족과 예산 불용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방의 2013년 불용예산도 16조1000억원으로 전쳬 예산의 7.7%에 이르렀을 정도다. 예산이 ‘고무줄 편성’됐다는 증거들이다. 52조원을 훌쩍 넘어선 국고보조금도 중복 지원, 유용, 부정수급 등으로 줄줄 새는 판이다. 이번 기회에 세출예산 거품부터 확실히 걷어내자.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226목] 문구점도 중기적합? 정부 MRO부터 없애는 것이…

 

동반성장위원회가 그제 문구소매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신규 지정했다. 사업철수나 신규진입 금지 등 강제조항을 적용하진 않고 ‘대형마트가 자율적으로 사업을 축소’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대형마트는 지난해 문구품목 매출을 기준으로 사업을 축소하되 문구 매장을 줄이고, 신학기 문구 할인행사를 자제하며 묶음단위로 판매해야 한다. 대형마트도, 문방구 업계에서도 당연히 불만을 가질 만한 권고안이다. 전국문구점살리기연합회는 강제가 아닌 자율적 사업축소는 효과가 없다며 실력행사까지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형마트 측도 신학기 할인행사를 막 시작했는데 어떻게 줄이느냐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긁어부스럼이 된 것이다.

 

적합업종 지정은 문방구업계로선 숙원이었다. 지난 10여년 사이 50% 정도가 줄어들 정도로 문방구업종이 사양화돼가고 있다.1999년 2만6986개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줄어 현재는 1만3000여개로 감소했다. 문방구 업자들이 중기적합업종 지정을 요구해왔지만 동반위로서도 묘안이 없어 이제까지 시간을 끌어오던 터다. 그러다 내놓은 것이 이번 중재안이다. 그러니 성의를 보이는 체면치레로 내놓은 대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학부모라는 소비자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할인행사도 못 하게 하고 묶음으로만 팔게 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소비자가 보는 것이다.

 

현실 인식도 잘못됐다. 최근 문구점이 급격히 줄고 있는 데는 대형마트보다 더 큰 요인이 있다. 바로 교육부가 201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학습 준비물 지원 제도’다. 기본학용품과 색종이 고무찰흙 등을 학교가 조달청 등으로부터 일괄구매해 학생에게 무상으로 지급하는 MRO(소모성자재구매대행)의 일종이다. 학생들이 문구점에 들를 일 자체가 없다. 결국 문방구도 ‘무상 시리즈’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무상 학용품부터 없애는 게 맞지 않나.

 

문방구가 사라지는 건 어쩌면 소비자들의 선택이다. 동반위가 어설프게 끼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동반성장이라는 철 지난 구호를 붙들고 있는 한 헛발질은 계속될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226목] 민노총, 지금이 총파업 위협하며 개혁 발목 잡을 땐가

 

민주노총이 4월 총파업을 시작으로 박근혜 정부와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노동·공공 부문 구조개혁 등을 즉각 중단하라는 요구에 대해 박 대통령이 3월 말까지 화답하지 않으면 강경 정치투쟁을 하겠다고 선전포고한 셈이다. 총파업투쟁 선포식을 박근혜 정부 출범 3년차를 맞은 25일로 잡은 것부터가 그렇다.

 

민노총은 '노동자·서민 살리기'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실상은 노동·공공 부문 구조개혁을 저지하기 위한 기득권 지키기 투쟁에 다름아니다. 이는 민노총의 주력이 대기업과 금융·공기업의 정규직 노조, 그리고 공무원연금 개혁 저지투쟁의 핵심인 전국공무원노조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민노총의 정치투쟁은 명분과 정반대로 우리 경제와 노동자·서민의 삶을 궁지로 내몰 수 있다. 정부는 올해 국정운영의 중심을 경제 활성화에 두고 노동·공공 부문 등의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서둘러 수술하겠다는 각오다. 내수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늘리려면 악성 규제를 도려내고 기업들의 비용부담과 경영 리스크를 줄여줘 투자에 활력을 불어넣는 정책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노사정이 3월까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 임금·근로시간·정년 등 노동현안, 사회안전망과 관련한 대타협안을 내놓고 국회특위가 4월 말까지 공무원연금 개혁 단일안을 마련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민노총은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이들 과제를 재벌 배만 불리고 서민을 죽이고 노동시장 구조를 개악하는 정책으로 몰아세우며 박 대통령과의 단독회담까지 요구했다. 정치투쟁으로 올해 춘투(春鬪)를 달구겠다는 심사가 아니라면 이럴 순 없다. 올해 3조원, 10년 뒤 10조원의 혈세를 적자보전에 써야 하는 공무원연금 개혁은 공공기관 기능 조정을 포함한 공공·노동 부문 개혁의 시금석이 아닌가. 노동자·서민을 살리겠다는 게 진심이라면 민노총은 기득권 지키기에만 집착하지 말고 노사정위원회에 동참해 대타협에 나서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226목] 임대료 낮춘 행복주택이 행복할 수만은 없는 이유

 

박근혜 정부의 대표 주거복지 정책인 행복주택 임대료가 시세의 60~80% 수준으로 결정될 듯하다. 국토교통부는 25일 '행복주택 임대료 기준안 전문가 토론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연구용역 결과를 내놓았다. 지난해 5월부터 9개월간 전문가 설문조사와 해외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도출된 기준안이다.

 

주변 지역 전월세 시세의 60~80% 범위에서 입주계층별로 차등화해 적용하기로 한 표준임대료는 합리적인 틀을 갖춘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취약계층의 경우 시세의 60%, 소득이 없는 대학생은 시세의 68%, 사회초년생은 시세의 72%, 노인계층은 시세의 76%, 일정한 소득이 예상되는 신혼부부나 산업단지 근로자는 시세의 80%가량 임대료를 부담하는 식이라면 서민의 임대료 고통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전세가 폭등을 줄곧 방치하다시피 하다 이제서야 임대료 기준안 마련이라니 행복주택을 바라보는 서민들의 마음이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다. 더구나 정부가 2013년 5월 발표한 행복주택 시범단지 7곳 가운데 4곳은 여전히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정부가 실기(失期)하는 동안 주택임대료가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서울 일부 지역의 경우 전세가율이 80~90%까지 치솟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행복주택 정책이 때를 놓치는 바람에 서민들의 임대료 부담은 물론 서민 주거난 해소에 쓸 재정의 짐까지 커져버렸다.

 

다행히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80~90%대에 달하는 전세가율의 위험성을 언급하며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저금리·저성장 경제에서 정부라면 마땅히 전월세 문제를 미리 간파하고 대응했어야 함에도 뒤늦게 대책을 언급하는 자체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앞으로가 중요하다. 서민 주거안정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문제 해결에 더욱 힘써야 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시론/한홍구(손잡고 운영위원·성공회대 교수)-20150226목] 함께 살자고요, 손잡고!

손잡고가 첫돌을 맞았습니다. 1년이 참 빨리 흘러갔습니다. 배춘환 주부의 아름다운 마음이 가수 이효리님에게 불씨가 되었고, 이효리님의 정성스런 편지가 또 많은 사람들의 어깨를 두드려 14억7000여만원이라는 거금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해고와 손배가압류의 고통 속에 살고 있는 노동자 가정에 시민여러분의 정성으로 모은 생활지원금을 전달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손배가압류의 현실을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는 토론회로 공청회로 간담회로 정신없이 뛰어다녔습니다. 비정규직보다 훨씬 못한, 해고자보다도 나을 게 없어 보이는 연극인들과 같이 미쳐서 연극 <노란봉투>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여러 전문가들이 함께해주셔서 입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정신없이 보낸 1년이지만 노동과 시민이 하나됨이라는 큰 꿈은 고사하고, 툭하면 손배가압류가 떨어지는 현실을 얼마나 바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강연 자리에서 ‘노란봉투법’ 입법청원 서명용지를 돌리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입법청원, 그거 하면 세상이 바뀌나요?”라고요. 그래서 저도 말했지요.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가요, 입법청원 따위로 바뀌게요”라고요. 지난 1년 사이에 뭐가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손잡고가 출발할 때 철탑에 올라 있던 현대자동차 최병승과 천의봉이 내려와 손잡고 모임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대신 하늘은 스타케미칼의 굴뚝에서 차광호가, 쌍용차 굴뚝에서 김정욱과 이창근이 새로 올라가 지키고 있습니다. 씨앤앰 강성덕과 임정균은 그새 광화문 전광판에 올라갔다 내려왔고요, 엘지(LG)유플러스 강세웅과 에스케이(SK)브로드밴드 장연의는 새로 중앙우체국 전광판에 올라 고공농성만으로는 부족했던지 이 겨울에 머리마저 시원하게 밀어버렸습니다. 1년 전 손잡고를 시작할 때는 늘 철탑을 얘기했는데, 이제는 고공농성의 상징이 굴뚝과 전광판으로 바뀌었습니다. 그사이 생탁(막걸리)과 속초의료원이 손배 사업장의 목록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분신으로 음독으로 또는 목을 매어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나거나 떠날 뻔했던 분들의 이야기는 차마 쓰지 못하겠습니다. 시민사회에서 만져보기 힘든 10억대의 거금을 300여가구에 생활지원금으로 보내드렸지만, 이미 수천만원 빚더미에 올라앉은 해고자 가정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언 발에 오줌 누기’란 속담은 딱 이런 데 쓰라고 생긴 것 같습니다.

 

개화의 선구자 유길준이 <노동야학독본>을 간행한 지 100년이 넘었건만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어디에서도 노동문제를 가르치지 않아서, 젊은이들은 ‘혜리 광고’로 겨우 노동법을 배운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자라나는 아이들의 꿈에 ‘정규직’이 떡하니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요. 드라마 <미생> 열풍으로 사회적 이슈가 된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두고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며 중규직을 대안으로 내놓는 나라에서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아, 귀천은 없어진 지 오래지요. 갑과 을이 있을 뿐입니다. 호흡을 길게 갖자는 것 외에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헌법에 실려 있는 노동3권, 특히 단체행동권이 손배가압류에 철저하게 짓밟히는 나라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죽음의 행진을 멈추는 힘은 시민들만이 갖고 있습니다. 노동과 시민의 연대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사실 노동과 시민 사이에 연대란 말도 우습습니다. 둘은 원래 하나였으니까요. 저 높은 곳에 있는 차광호와 김정욱과 이창근이 우리가 잡은 손을 밟고 이 땅으로 내려와 가족과 동료와 우리 시민들과 함께 살게 해주십시오. 굳게 손잡아 주십시오. 함께 살자고요, 손잡고!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상언(사회부문 차장)-20150226목] 태극기를 꼭 걸어야 하나

 

국기를 신고 다니고, 깔고 앉고, 등으로 뭉개고, 덮고 자고, 찻잔 받침으로 쓴다. 영국인들 이야기다. 유니언기(영국 국기의 공식 명칭)를 잘라 덮은 듯 디자인한 운동화는 흔하고 바닥에 그 모양을 새긴 하이힐도 있다. 국기로 포장한 형태의 소파·이불·쿠션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유니언기 머그잔·테이블보·스마트폰 보호 케이스도 런던 시내의 기념품점 진열장에 널려 있다. 지붕 또는 차체 전체를 유니언기 무늬로 도색한 택시나 승용차도 있다. 대문을 아예 그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집도 봤다. 이 중에서 쿠션·자동차 지붕·이불은 한국에도 이미 ‘도입’됐다.

 

 양말, 바닥에 까는 러그, 애완견 집에 이르면 불경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정작 그 나라에서 그런 게 문제가 됐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야말로 다양하고 친숙하게 국기를 즐긴다.

 

  한국의 행정자치부가 3·1절을 앞두고 태극기 달기 캠페인을 열심히 진행 중이다. 민간 건물에까지 국기 게양을 의무화하려 했으나 ‘법으로 강제할 일은 아니다’는 다른 부처의 반대로 무산됐다. 오늘(26일) 오후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대대적인 가두 행사도 열린다.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 나부터 실천하자!’가 공식 구호다. 국기 게양이 1988년식 국민운동이 됐다. 영화 ‘국제시장’의 국기하강식 장면에 감명받은 공무원이 많은 것 같다.

 

  우리의 국기는 높은 곳에 걸어 두고 경건하게 우러러봐야 하는 대상이다.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는 높이 35m의 국기봉이 있는데, 국내 학교에서 가장 높은 곳에 태극기를 게양했다는 것이 학교의 자랑 중 하나다. 이 학교에 가보면 멀리서는 태극기가 보이지만 정작 운동장에서는 고개를 하늘로 젖히지 않으면 보기가 힘들다.

 

‘대 한민국 국기법 시행령’이라는 대통령령이 있다. 태극기를 차에 달 수 있는 경우와 태극기 둘레를 금색 실로 장식할 때의 규격까지 제시하고 있다. 훼손된 국기를 소각하지 않고 그냥 버리는 것도 위법이다. 이런 엄격함 때문인지 우리 국민들이 나름 창의적으로 국기에 애정을 표현하는 것은 월드컵 경기 응원 때뿐이다.

 

  아버지에게 필요한 덕목이 근엄함에서 자상함으로 바뀐 지 꽤 됐다. 태극기도 높은 곳에서 우리 주변으로 내려올 때가 됐다. 박인비 선수는 국가 대항전이 아닌 시합에도 태극기가 새겨진 골프백을 쓴다. 태극 문양의 볼 마커도 사용한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펄럭이는’ 태극기보다 일상생활에 ‘창조적’으로 스며든 태극기가 더 반갑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민아(논설위원)-20150226목] 우윤근의 눈물

2008년 11월3일, 버락 오바마는 자신을 길러준 외할머니의 부음을 들었다. 미국 대선 전날이었다. 유세장에 선 민주당 후보 오바마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그는 “할머니는 조용한 영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지금 여기에도 조용한 영웅들이 많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며, 우리가 싸우는 이유”라고 연설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울었다. 다음날 오바마는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전 브라질 대통령은 자주 눈물을 비쳐 ‘센티멘털 대통령’이란 말을 들었다. 2009년 10월 리우데자네이루가 2016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자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2010년 12월 마지막 라디오 담화에선 “(대통령으로 재직했던) 지난 8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퇴임 당시 그의 지지율은 87%였다.

 

전 세계 정치인 중 ‘울보’를 들라면 존 베이너 미 하원의장이 첫손에 꼽힐 것이다. 소속정당인 공화당이 선거에 이겨도 울고, 하원의장으로 선출돼 의사봉을 넘겨받을 때도 울었다. 가난한 노동자 집안 출신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그는 어린 시절 이야기만 나오면 눈시울을 적신다. 민주당에서 울보 베이너를 풍자하는 정치광고를 만들었을 정도다.

 

한국 정치인 가운데도 공개석상에서 운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해 5월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정몽준 의원은 수락연설에서 눈물을 흘렸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아들의 “국민 정서 미개” 발언을 언급하면서다. 이완구 국무총리도 지난달 아들의 병역 공개검증을 앞두고 “비정한 아버지가 됐다”며 울먹였다. 엊그제는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이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국회 인사청문회 때) 정말 마음이 아팠다. 도와드리지 못해서…”라며 눈물을 보였다. “누가 뭐래도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훌륭한 파트너이자 인생선배라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도 했다. 여야 협상 대표로 넉 달간 호흡을 맞춘 인연을 감안하더라도 야당 원내사령탑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다. 새정치연합이 인준 표결 직전까지도 “부적격자”라며 자진사퇴를 촉구한 건 ‘쇼’였다는 말인가. 모든 눈물이 공감을 얻는 것은 아니다.

 

 

[서울신문 칼러-손성진 칼럼/손성진(수석논설위원)-20150226목] 진실·역사·자서전

 

‘불편한 진실’이라는 말은 참 절묘하다. 개그 코너의 간판이기도 했던 이 말은 전 미국 부통령 앨 고어가 쓴 같은 이름의 책 제목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에서 유래했다. 부끄러운 진실을 들춰내는 데 심기가 편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일본이라는 국가조차도 뚜렷한 증거가 있는 위안부의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을 보면 부끄러운 진실은 불편한 존재가 맞긴 맞는 모양이다.

 

진실 공방은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선 피의자와 판·검사 사이에 술래잡기 놀이처럼 벌어진다. 범죄의 진실이 밝혀지면 불편한 정도가 아닌 피의자는 우김, 발뺌, 묵비권으로 대항한다. 숨은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려는 ‘술래’ 판·검사의 공격은 더 날카로워진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돼 있다. 과거에 뇌물을 받은 한 정치인이 “내가 뇌물을 받았다면 소가 웃을 일”이라고 큰소리쳤다가 결국 명백한 증거로 덜미를 잡힌 모습을 본 적이 있다(물론 소는 웃지 않았다).

 

‘진실’ 이야기를 끄집어낸 이유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과 이완구 국무총리의 위증 때문이다. 자서전과 마찬가지로 회고록은 진실이 생명이다. 자서전은 있었던 일을 그대로 쓰는 것이고 회고록은 감회와 주장을 담는다는 점에서 다르다고도 하지만 진실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무엇보다 솔직해야 한다. 버트런드 러셀이 남긴 두 권의 자서전이 감명을 주는 이유는 솔직한 고백 때문이다. 러셀은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고 싶다”고 했다. 러셀의 자서전에는 사춘기 때 성(性)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하녀를 요샛말로 하면 성추행했다는 고백이 들어 있을 정도다.

 

문제투성이 자원외교와 4대강 사업에 대한 해명으로 일관한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회고록으로서 가치가 작다. 예를 들어 “4대강 사업은 토목공사를 일으켜 단시간에 경제를 일으켜 보려 한 목적이었지만 환경 문제 등에서 결과적으로 볼 때 나의 불찰이었다”라든가 “자원외교는 너무 과하게 밀어붙인 측면이 있다. 나도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급히 서두르는 바람에 속았다”라고 솔직히 고백했다면 공감을 얻었을 것이다. 밝히지 않은 진실은 더 있으리라 본다. 어떤 진실에 이 전 대통령은 불편을 느꼈을까.

 

정치에 발을 들인 지 올해 만 20년이 되는 이 총리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여느 정치인처럼 충분히 ‘정치인스러웠다’. 하지만 종전에 그가 정치인 경력만큼 진실을 좇는 경찰이었다는 점에 실망은 커진다. 그도 피의자 앞에서 진실을 털어놓으라고 다그친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죄를 지었더라도 자백하고 뉘우치는 사람에게 관대하다. 반면에 진실을 부인하고 변명하는 자에겐 죗값 이상으로 가혹한 벌을 내리려 한다. 이 총리는 비록 청문회를 통과했지만 ‘거짓말 총리’라는 딱지를 떼기 어려워졌다.

 

진실은 역사가의 손을 빌려 세상 밖으로 나오곤 한다. 역사가를 세월을 캐는 판·검사라고 할까. 헤로도토스는 역사를 진실을 밝혀내는 일로 보았다. 언젠가 밝혀질 진실, 역사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왕 스스로 악정(惡政)을 경계하게 된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人君所畏者, 史而已)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말한 사람은 조선의 연산군이다. 정사는 내팽개치고 밤낮 주색(酒色)에 빠져 살았던 폭군도 후대의 평가를 겁냈다.

 

거의 모든 것이 공개되는 오늘날에는 당대에도 진실을 감추기는 어렵다. 사관(史官)의 손을 빌릴 필요도 없이 사실이 확인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 순간에도 어떤 진실이 은폐되고 있을지 알 길은 없다. 아집으로 점철된 밀실 정치, 전시 행정의 폐해가 또다시 반복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진실해야 하고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한다. 결국에는 국민의 심판,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3년째 임기를 시작했다. 전임자가 준 교훈은 잘 포장된 치적에 매달리지 말라는 것이다. 또 마음처럼 말처럼 진정 국민을 위하는 대통령임을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한다. 그랬을 때 설혹 잘못된 정치를 한두 가지 했더라도 거리낌 없이 회고록에 쓸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226목] 해운대 달맞이길

 

‘해운대는 산이 바다에 든 것이 누에머리 같으며, 동백꽃이 땅에 쌓여 말발굽에 밟히는 것이 3~4치나 된다.’(동국여지승람) ‘대 앞에 기암이 층층지고 곡곡으로 굽었는데 해천만리가 높이 열린 것 같아 흉금을 활짝 열고 만상을 접할 수 있더라.’(조엄의 ‘해사일기’)

 

부산 해운대(海雲臺)는 이들 기록처럼 원래 동백섬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지금은 해안선을 잇는 달맞이길 일대와 언덕을 포함한 해변 전체를 일컫는다. ‘부산의 몽마르트르’로 불리는 달맞이길은 옛적부터 푸른 바다와 붉은 동백, 백사장과 소나무숲이 어우러진 명소다. 달맞이(看月)고개와 청사포(靑沙浦)에서 바라보는 저녁달의 운치가 일품이다.

 

해운대해수욕장을 지나 송정해수욕장으로 가는 와우산 중턱의 오솔길은 15번 이상 굽어진다 해서 ‘15곡도(曲道)’라고도 한다. 정월 대보름날엔 달빛 젖은 바다의 정취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봄밤을 가로등처럼 밝히는 벚꽃의 화사함도 압권이다. 달과 꽃과 바다에 취한 연인들의 표정은 또 어떻고.

 

달맞이동산 해월정(海月亭)의 비석에는 춘원 이광수 시 ‘해운대에서’가 적혀 있다. ‘누우면 산월(山月)이요 앉으면 해월(海月)이라/ 가만히 눈 감으면 흉중에도 명월(明月) 있다/ 오륙도 스쳐가는 배도 명월 싣고 가더라.’ 오륙도의 고깃배들은 조용필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에서 연락선으로 바뀌었다.

 

옛사람들은 석양을 지고 오륙도 쪽에서 돌아오는 어선들을 오륙귀범(五六歸帆)이라 해서 해운팔경의 하나로 꼽았다. 만선의 돛배 위로 갈매기가 날고 황금빛 노을이 바다를 물들이는 장면은 한 폭의 그림이다. 누운 소 형상의 달맞이 언덕에서 맞는 해넘이 역시 우산낙조(牛山落照)의 절경 그대로다.

 

달맞이언덕 일대의 화랑과 카페촌, 추리작가 김성종 씨의 추리문학관도 명소다. 신선한 해산물과 제철 횟감, 오래된 금수복국의 깊은 미감을 즐길 수 있는 맛집순례까지 곁들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젊은날 객기에 젖어 달리던 그 길, 소금기 서걱이던 그 모퉁이를 오늘은 어떤 연인들이 손잡고 돌고 있을까.

 

이 아름다운 길의 산책로가 이제야 모두 연결됐다고 한다. 몇 년 전 완공한 다른 구간과 달리 보도가 없는 84m짜리 다리(해송교)가 문제였는데 그 옆에 보행자 전용 다리를 건설한 것이다. 전망대도 설치해 송정해수욕장 일대를 여유롭게 굽어볼 수 있도록 했다니 그 길 따라 다시 한 번 걸어보고 싶다. 내 청춘의 아스라한 풍경 속 옛길이여.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온종훈(논설위원)-20150226목] 메디치 가문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 '최후의 심판'은 교황 클레멘스 7세가 미켈란젤로에게 의뢰해 1541년 완성한 로마 교황청의 시스티나 성당 제단 벽화다. 이미 30여 전 이 성당의 천장에 '천지 창조'를 완성해 역량을 보여준 그였지만 우여곡절을 거듭한 끝에 완성까지 전작(前作)보다 두 배나 긴 8년이 걸렸다. 50대에 접어든 미켈란젤로의 완숙함이 총 집결돼 스케일(13.7m×12.2m)이나 391명의 인물이 펼쳐내는 이야기가 단테의 '신곡'에 비유될 정도다.

 

클레멘스 7세와 미켈란젤로는 같은 피렌체 출신이라는 것 외에 공통점이 또 하나 있다. 당시 피렌체의 유력 집안인 메디치가(家)와의 관계다. 토스카나의 평범한 농민 출신이었지만 당시 태동하던 은행업과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피렌체를 통치하게 된 이 가문이 배출한 교황 네 명 중 한 사람이 클레멘스 7세다. 미켈란젤로도 10대 초반에 메디치가 후원하는 조각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천재적 재능을 꽃피웠으며 메디치의 집중적 지원은 그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메디치가의 학문과 문화 예술에 대한 사랑은 르네상스의 발화점으로 불린다. '위대한 자(일 마그니피코)'라 불린 로렌초 데 메디치는 그 자신이 시인이었뿐 아니라 지식인들을 우대하면서 학교와 도서관을 세우는 등 학문을 후원했다. 또 예술 작품을 의뢰해 메디치 궁에 장식해 피렌체를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마키아벨리는 로렌초와 메디치 가문을 모델로 '군주론'을 저작했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등 우리가 아는 수많은 거장들이 이 가문의 지원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재계 총수와 오찬을 하면서 "한국의 메디치 가문이 돼달라"고 부탁했다. 이날 모임의 취지가 기업의 '메세나' 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 같은 언급은 적절한 듯하다. 하기야 기업의 문화·예술·스포츠 활동을 후원하는 메세나라는 말 자체도 로마제국의 정치가이자 시인이었던 마이케나스의 예술·창작활동 지원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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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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