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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김영란법’ 국회 통과

■ 셔먼 차관 발언 이후

■ 등록금 못 내서 교실서 쫓겨난 학생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김영란법’ 국회 통과

 

[한국일보 사설-20150304수] 김영란法 시대흐름 부합하나 보완 과제 많다

 

공직사회 투명성 높일 계기로

입법 취지에 충실한 보완 필요

악용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어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12년 8월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의 제안, 이듬해 8월 정부안 국회 제출로부터는 각각 2년 반, 1년 반 만이다. 공직자에 대한 부정 청탁과 공직자의 금품 수수를 폭넓게 금지한 이 법이 앞으로 공직사회를 한결 맑고 투명하게 하는 제도적 기반이 되기를 기대하며 원칙적으로 환영한다. 다만 입법과정의 열띤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부 문제점이 그대로 남은 데다 허점도 모두 메워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법 개정이나 시행령을 통한 적극적 보완을 국회와 정부에 촉구한다.

 

김영란법의 의미를 제대로 따지기 위해서는 애초의 입법 취지와 그 배경인 사회분위기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2010년을 전후해 ‘벤츠 여검사’나 ‘그랜저 검사’, ‘스폰서 검사’ 사건 등이 커다란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그런데도 ‘뇌물죄’(형법 129~133조)가 성립하기 위한 기본요건인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입증의 어려움 때문에 무죄 선고가 잇따랐다. 입법 로비 또한 형법상 뇌물죄보다 처벌이 가벼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규율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 배경에서 제안된 김영란법은 공직자가 일정 액수 이상의 금품을 받으면 대가성이나 직무관련성을 따질 것 없이 부정 금품 수수로 보고 처벌하자는 취지였다.

 

우여곡절 끝에 어제 통과된 법은 1회 100만원 이상, 연 3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경제적 이익, 편익을 공직자에게 주지도, 공직자가 받지도 못하게 했다. 금전이나 유가증권은 물론이고 음식물ㆍ술ㆍ골프 접대, 교통ㆍ숙박 편의 제공, 채무 면제, 취업 알선 등 유ㆍ무형의 경제적 이익 일체를 포함한다. 100만원 이상의 금품(경제적 이익) 제공이라면 따가운 눈총을 피하기 어려운 사회통념에 따른 결과로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수수한 금품 가액 5배의 벌금에 처한다. 직무관련성이 있을 경우 100만원 이하의 금품 수수도 규제 대상이 됨은 물론이지만, 형사처벌 대신 과태료를 물린다. 금품 수수와 함께 금지한 부정청탁의 범위도 포괄적이다. 법이 규정한 15가지 업무유형은 인허가 면허 행정처분 인사 시험 관리 포상 계약 각종평가 행정지도 단속 수사 재판 등 거의 모든 공적 업무가 포함됐다.

 

그런데도 허점은 남았다. 우선 국회 정무위원회가 빠뜨린 ‘이해충돌 방지’ 규정, 즉 공직자가 자신의 가족 등과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를 관장하지 못하게 하는 조항은 끝내 빠졌다. 또 ‘법 통과 후 1년’이던 시행시기가 1년6개월로 연장돼 19대 국회는 적용 대상에서 완전히 빠졌다. 이는 공직자 범위를 엉뚱하게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으로까지 넓힌 것과는 대조적인, ‘국회의원 빠지기’의심을 낳기에 족하다.

 

언론계 일각에서 제기된 언론 옥죄기 악용 가능성도 그대로 남아 있다. 앞으로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적용 요건을 구체화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만 그런 우려를 지울 수 있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304수] 부패 없는 사회를 향한 이정표 ‘김영란법’

 

‘언론 탄압’ 등 자의적 법집행 우려

 

‘김영란법’으로 불려온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돼 2016년 9월부터 시행된다. 이 법 제정으로 대가성이나 직무관련성을 증명하지 않아도 부정한 금품·향응 수수를 처벌할 수 있게 됐다. ‘스폰서 검사’나 ‘벤츠 여검사’, ‘○○ 장학생’ 따위 음습한 관계들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 것이다. 공직사회의 청렴도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김영란법의 시행은 문화혁명의 시작이라 할 만하다. 과도한 접대문화와 인맥관리 따위는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깊게 퍼진 고질이다. 남의 돈으로 밥 먹고, 향응 받고, 선물 받고, 편의를 누리는 이들은 공직자 등 이런저런 권력을 쥔 사람들이다. 그런 접대를 사소하거나 당연한 일로 생각했을지 몰라도, 그런 접대에 마비되는 것이야말로 부패와 부정의 출발점이다. 그렇게 친해진 이들을 ‘잘 봐주고’ 청탁을 들어주는 따위의 작은 불공정과 편파가 결국 우리 사회를 뒤틀리게 만들었다. 접대와 인맥쌓기에 들어간 사회적 비용 또한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김영란법은 그런 비리의 사슬을 끊자는 포괄적 부패방지법이다. 법의 적용 대상이 공직자를 넘어 언론사 임직원과 사립학교 교원으로까지 넓어진 것도, 공직 외에 언론과 학교 역시 ‘맑은 물’이 아니라는 국민의 시각이 반영된 때문일 것이다. 부당함을 따지기에 앞서 왜 이런 입법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 위에 기존의 관행을 바꾸고, 과거의 잘못된 행태를 버리는 자체 혁신에 나서야 한다. 시행까지 남은 1년 반 동안 각 부문에서 그런 실천강령이 만들어지고, 법이 지켜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김영란법에는 부작용과 문제점도 적지 않다. 김영란법은 기존보다 강력한 권한을 경찰과 검찰에 부여했다. 수사기관은 언제라도 공직자·정치인·언론인 등에 대한 표적사정에 나설 수 있다. 지금도 검경은 편파 수사와 자의적인 법적용으로 정치적 중립을 의심받는 터다. 김영란법으로 항시적으로 국민 생활을 감시·통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기게 되면, 이를 악용해 우리 사회를 ‘경찰국가’ 시대로 퇴행시킬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그런 칼날이 언론을 겨냥하면 언론을 길들이고 탄압하는 일이 일상화하게 된다. 언론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나쁜 의도’를 막을 방안이 함께 담보돼야 하는데도 김영란법에는 그런 고려가 전혀 없다. 애초 언론이 공직과 나란히 이 법의 규율대상이 되는 것이 온당한지부터 의문이다.

 

‘언론 탄압’ 등 자의적 법집행 우려

 

이 법이 입법 취지를 제대로 살렸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애초 김영란법은 국회의원과 판검사 등이 주요 대상이었는데, 정작 국회를 통과한 법에는 국회의원에게 불리한 내용이 상당 부분 빠져 있다. 법 시행도 내년 총선 뒤로 미뤄졌다. 고위직일수록 형제자매 등을 통한 비리가 잦은데도 규제 대상인 ‘가족’은 배우자로 범위가 좁혀졌고, 현행법보다 김영란법에 따른 처벌이 되레 약하거나 아예 처벌을 면하는 모순도 몇몇 발견된다. 이런 문제점 하나하나가 위헌 논란을 불러오고 법의 온전한 집행을 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보완 입법과 대책 마련을 미루지 말아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중앙일보 사설-20150304수] 국회 기능 스스로 포기한 '김영란법' 통과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이 어제 본회의에서 통과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도대체 국회가 뭐하는 집단이고 의원들이 뭐하는 사람들이냐는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여야가 2일 밤 최종 합의한 법안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고백처럼 ‘위헌 소지가 크고 사회에 미칠 영향도 혁명적인’ 조항들이 많았다. 의원들 대부분은 이런 지적에 동의했다. 하지만 표결에 앞서 공개적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낸 의원은 가물에 콩 나듯 드물었다. 법안은 압도적인 찬성(91.5%)으로 통과됐다. 의원들은 “내년에 법이 발효되면 연말정산 파동처럼 온 나라에 난리가 날 것”이라면서도 “선거용 면피성 법안이라 통과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날림 법안임을 알고도 총선을 의식해 찬성표를 던진 걸 자인한 셈이다. ‘법을 만드는 사람(Lawmaker)’인 의원의 본분을 스스로 포기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의원들은 협상 막판까지 법안을 숙지하지 않았고, 핵심 쟁점이 뭔지도 모를 만큼 무관심했다. 자연히 법안은 법률이 갖춰야 할 기본 요건조차 갖추지 못했다. 금품 수수와 ‘직무 관련성’을 연관짓지 않아 검찰·경찰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수사하고 조그마한 꼬투리만 잡혀도 처벌할 수 있게 됐다. 경제 현실과 사회 관행을 도외시한 포괄적 규제도 문제다. 이 법이 시행되면 공직자에게 1인당 3만원이 넘는 식사를 대접하기 어려워지고, 명절 선물과 음주·골프 접대 등도 사라지게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에 이어 2위로 비중이 높은 자영업계와 농·수산업 등 1차산업이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넣어야 할 대목은 빼고 포함시켜선 안 될 부분은 추가한 것도 오점이다. 선출직 공무원과 정당·시민단체엔 포괄적인 예외규정을 둬 법망을 피할 여지를 줬다. 시행 시점을 1년반 뒤로 연기한 것도 현직 의원들이 법 적용을 피해 임기(내년 5월)를 마치려는 꼼수나 다름없다. 공직사회 부패 방지가 목적인 법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을 억지로 우겨 넣은 것도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그런데도 “더 길게 논의할 것 없이 모든 언론을 다 집어넣자”(새정치연합 강기정 의원)는 식으로 입법이 이뤄졌다니 기가 막히다.

 

  김영란법의 국회 통과는 공직사회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공직자가 거액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아도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할 방법이 없는 현행 형법의 한계상 꼭 필요한 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성과 법치 대신 포퓰리즘에 휘둘린 국회가 날림으로 입법하는 바람에 법적 타당성도, 실효성도 희박한 기형적 법안이 됐다는 점이다. 여야는 이제라도 과잉 입법과 위헌 우려가 큰 조항들을 수정하고, 접대 범위도 현실화해야 한다. 적용 대상을 공직자에게 한정하고, 정치인 예외조항을 삭제해 진정한 ‘공직 반부패법’으로 바로잡아야 본래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304수] 한국 사회의 부정부패 사슬 끊어낼 ‘김영란법’

 

마침내 한국 사회의 부정과 비리의 사슬을 끊어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제정되었다. 2011년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국무회의에 초안을 내놓은 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뤄낸 3년9개월 만의 결실이다. 원안에서 일부 후퇴된 부분이 있지만, 직무관련성 여부와 상관없이 금품수수를 금지한 취지가 관철됨으로써 강력한 반부패법의 정신을 살리게 됐다. 당장에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각종 청탁과 접대 문화에 혁명적 변화가 기대된다.

 

‘김영란법’은 한 번에 100만원, 연간 300만원을 넘는 금품을 받은 경우는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형사처벌하도록 했다. 금품에는 돈·물품 말고도 접대와 향응, 편의 제공 등 유·무형의 이득이 모두 해당된다. 법의 적용을 받는 ‘공직자’에는 선출직·임명직 공무원과 공직 유관기관 임직원 외에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사 직원도 포함됐다. 하나의 법이 모든 것을 이룰 순 없겠으나, 관행이라는 핑계로 만연한 부조리의 구조를 깨뜨릴 수준이다. 일각에서 과잉 입법을 운위하지만, 수십년 전부터 시행 중인 선진국들의 반부패법에 비하면 외려 널널한 편이다. 177개 국가 중 46위(2013년)에 불과한 국가청렴도를 높여 ‘투명 사회’를 이루려면 일시적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일상화한 부정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법에서 우려스러운 대목도 없지 않다. 원안과 달리 100만원 이하의 금품수수 때는 직무관련성이 있을 경우에만 과태료 대상으로 삼아 떡값·촌지 등을 없애기 힘들어졌다. 적용 대상 ‘공직자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로 축소한 것도 법의 구멍이다. 다른 가족과 친족을 통한 우회 청탁·금품수수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공직자 대상 입법 취지에서 벗어나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까지 포함한 것은 또 다른 우려를 자아낸다. 민간 영역으로 대상이 확대됨으로써 수사기관의 권한이 비대해지고 남용의 소지가 커졌다. 무엇보다 수사기관이 법을 악용, 독립성과 자율성이 생명인 언론을 감시·통제할 수도 있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공정한 법 운용과 더불어 검경의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는 이유다.

 

당초 ‘김영란법’은 금품수수와 부정청탁 금지, 이해충돌방지 등 세 부분으로 이뤄졌지만 이번에 ‘이해충돌방지’는 빠졌다. 이해충돌방지는 공직자나 가족이 이해관계에 있는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국회 정무위 심의에서 현실 적용의 어려움을 내세웠으나, 이해충돌방지는 전 세계의 보편적 공직윤리규범이다. 여야는 이해충돌방지 부분의 별도 입법도 서둘러 반부패법으로서 ‘김영란법’이 온전체로 시행되도록 해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304수] 중우정치 끝판 보여 준 여야 ‘김영란법’ 처리

 

공직자라면 누구든 직무 관련 여부를 떠나 100만원 이상은 받을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김영란법’, 즉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을 여야가 어제 통과시켰다.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서고도 국가 부패지수가 세계 43위(2014년 기준)에 머물러 있는 데서 보듯 여전히 불법과 비리가 만연해 있는 나라라는 오명 속에 사는 우리로서는 공직 부문을 중심으로 사회 청렴도를 한 단계 끌어올릴 중요한 제도적 기틀 하나를 마련하게 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같은 대의(大義)에도 불구하고 그제 여야 원내대표단이 머리를 맞대고 뜯어고친 ‘김영란법’은 적용 대상과 범위 등에서 위헌 가능성 등 숱한 문제점을 안고 있어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우선 법 적용 대상에 공직과 무관한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 대학병원 관계자가 포함된 것부터가 납득하기 어렵다. 이들 직종은 2012년 8월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처음 입법 예고한 원안에 들어 있지 않았으나 지난해 후반기 국회 논의 과정에서 불쑥 들어갔다. KBS·EBS 같은 공영방송 종사자와 국공립학교 교원의 형평성 차원에서 포함됐다지만 국민 세금에 의해 운영되는 이들 기관과 엄연히 민간 영역에 속하는 기관을 아무 기준도 없이 한데 묶은 건 명백한 무원칙 과잉 입법이 아닐 수 없다. 언론이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특수 영역임은 분명하나 이와 관련한 규제는 언론 자율에 맡길 일이다. 위헌의 소지가 명백함에도 이 같은 규정을 둔 배경에 정치권의 언론 길들이기 의도가 담겨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언론과 달리 시민단체와 변호사는 슬그머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이도 모자라 법 시행 시기를 19대 국회 이후로 미룬 것도 실소를 낳는다. 시민단체와 변호사가 그 어느 영역보다 이런저런 청탁과 직결된 직역임에도 여야가 이를 적용 대상에서 제쳐 둔 것은 다분히 내년 총선을 의식한 당리당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 여겨진다.

 

공직자와 그 배우자로 적용 범위를 대폭 축소한 점도 실효성 논란을 낳는 대목이다. 과거 대통령 친인척 비리 등 지금까지 숱한 사례에서 보듯 권력형 비리와 부정청탁은 배우자뿐 아니라 형제자매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도 여야는 애써 이를 외면했다. 국회의원 자신들부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더욱이 여야는 국회의원과 정당 관계자, 시민단체 관계자에 대해서는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 개선을 제안하는 경우’ 법안 적용을 배제한다는 예외 조항까지 둠으로써 노골적으로 법망을 빠져나갈 여지를 남겨 놓았다. 이 밖에도 공직자가 돈이나 음식을 접대받더라도 ‘사교나 의례’에 해당할 경우 처벌받지 않도록 하는 등 기준이 모호한 조항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위와 파장이 큰 법안일수록 시행 과정의 오류를 최소화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총선을 겨냥한 선명성 경쟁의 도구로 삼기엔 김영란법의 의미가 중차대하다. “선정적 인기영합주의가 만든 졸렬 법안”이라는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의 비판을 여야는 직시해야 한다. 법 시행까지 남은 1년 6개월간 면밀한 보완 작업에 나서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304수] 김영란도 얼굴 붉힐 소위 김영란법…19대 국회의원은 제외되고 내수경기는 박살나고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소위 김영란법이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위헌 여부는 고사하고 내수경기가 박살나며 정작 19대 국회의원은 대상자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고위 공직의 은밀한 동업자적 부패고리를 해체하고 그동안 명확하지 않았던 포괄적 뇌물을 구체화하자는 당초 취지는 슬그머니 약화되고 말았다. 김영란법 제정은 2011년께 직무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처벌을 피해간 ‘벤츠 여검사’ 등 사건으로 여론이 악화되면서 시작됐다. 정치권은 자신들도 대상이 되는 이 법안 통과에 소극적으로 시간을 끌어오다 세월호 사건 등으로 여론에 밀리자 부랴부랴 입법을 추진해왔다. 놀라운 것은 여야가 당초와는 전혀 다른 기이한 법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형벌 명확성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 등 헌법의 핵심가치를 위배하고 있다는 지적은 어물쩍 무시됐다. 15개 부정청탁 유형은 일일이 판단하기 어려워 위헌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조차 ‘선정주의적 포퓰리즘’이요 ‘졸렬입법’이라고 하는 판이다. 입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려는 꼼수와 기지가 번뜩이는 희한한 법안이 되고 말았다. 공법상 권력관계란 ‘국가와 기타 행정주체에 대해 공권력의 주체로서 개인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고 그에 따르는 행위에 특수한 법적 효력을 인정하는 법률관계’로 정의된다. 즉 각종 인허가, 규제, 처벌 등의 권한을 갖고 있는 고위 공무원 등을 규제하자는 것이 당초 이 법안의 취지였다. 그런데 대상자가 사립학교 교원, 언론사 기자 등으로 확대되는 물타기 작전이 벌어졌다.

 

이 법이 시행되면 피해는 엉뚱하게 자영업자들이 볼 것으로 우려된다. 대상자 300여만명에 대한 선물도 식사도 접대도 골프도 금지되면 내수경기는 더욱 얼어붙을 것이 확실하다. 벤츠 여검사를 보며 개탄하던 시민들이 오히려 이 법의 1차 피해자가 되어먹게 생겼다. 고위 공직자들의 부패연대를 차단하자는 부패방지법을 졸지에 전 국민 부패방지법으로 둔갑시키는 이런 기발한 국회를 어찌해야 하나.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304수] 제정과 동시에 사문화 걱정해야 할 김영란법

 

이 정도면 공직비리 척결이라는 명분을 등에 업은 정치인과 이익단체·시민단체의 '짬짜미' 수준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일명 김영란법)이 법안 제출 이후 1년7개월 동안의 우여곡절 끝에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 적용 대상이 당초의 공직자에서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까지 포함하는 바람에 정작 '공직자'라는 명칭은 사라져버렸고 직무 관련성과 무관하게 100만원 초과 금품 수수시 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법 조항으로만 보면 우리 사회 전반의 혁명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법안이 장기 계류되며 이 과정에서 터진 '세월호 사고' 등으로 수정을 거듭하다 보니 제재 대상이 지나치게 확대된데다 과잉금지 원칙과 양심 및 언론자유 침해 등 위헌 소지가 다분한 '독소조항'으로 가득하다. 결국 이대로라면 실효성이 없어 법안 제정과 동시에 개정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당장 야당 의원인 국회 법사위원장조차 "위헌적이고 법치주의에 반하는 요소가 다분한데도 포퓰리즘에 영합해 (여야가) '졸속입법'에 합의했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들도 '또다시 고치면 된다'는 식으로 제정 법률안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여론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법 통과에만 주력한 모양새다.

 

물론 공직 부정을 막겠다는 원래 입법취지에 반대할 생각은 없으나 법 적용의 형평성과 위헌 소지, 과잉입법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이 법안이 제대로 작동할지에 의구심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특히 정치인과 시민단체에 일종의 면죄부인 '제재 예외활동'을 폭넓게 인정한 것은 심각하다. 이들 두 집단에 대한 국민 여론이 곱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여론조차 도외시한 태도로밖에 볼 수 없다. 법안 제정에 관여해온 시민단체 출신 야당 간사가 "시민단체를 포함하자는 제안이 들어온 적도 없고 (이를 포함하면) 지나치게 범위가 넓어진다"고 말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망발이다.

 

이 때문에 국민 상당수를 잠재적 범법자로 만든 법안이 정작 고위공직자 비리척결에 얼마큼 효과가 있을지 의심하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직 반(反)부패법'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판이다. 정치권은 제 살길을 위해 '꼼수'를 부리는 입법이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의 제대로 된 공직부패 방지법을 만든다는 차원에서 법 개정에 임하라.

 

 

■ 셔먼 차관 발언 이후

 

[한국일보 사설-20150304수] 셔먼 차관 발언 이후, 우리 정부 책임 더 크다

 

과거사 갈등은 한중일 공동책임이라는 취지로 말해 파문을 일으킨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의 발언에 대해 미 국무부가 “미국의 정책은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고 해명했다. 마리 하프 부대변인은 그제 “셔먼 차관의 발언은 미국 정책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으며 어떤 개인이나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솔직히 일부에서 이번 연설을 특정 지도자를 겨냥하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 약간 놀랍다”고도 했다.

 

과거사에 대한 입장은 일절 밝히지 않은 해명에서 미국의 속내가 무엇인지 알기는 어렵다. 오히려 ‘별 것 아닌 것 갖고 호들갑 떤다’는 식으로 덮으려는 태도에서 미국의 안이하고 편향된 인식을 다시 보는 것 같아 분노와 허탈감을 느낀다.

 

미국의 이런 자세가 국익에 따라 움직이는 냉혹한 국제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치자. 우리가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정부의 대응이다. 셔먼 차관의 발언 직후 우리 외교부는 “과거를 거울로 삼아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자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논란이 확산되자 “엄중함을 갖고 다루겠다”고 뒤늦게 입장을 바꿨다. 내용이나 어투에서 누가 봐도 심각한 문제가 있는 셔먼 차관의 발언을 우리 외교 당국은 아무 문제 없다고 판단했다가, 여론이 심상치 않자 마지못해 끌려가는 듯한 논평을 냈다.

 

미국이 외교현장에서 한국을 경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은 최근에만도 여러 차례다. 집단적자위권이 한일 간 최대 현안임에도 미국은 2013년 우리 입장은 아랑곳 없이 동북아 안보에 필요하다며 일본의 집단적자위권 행사를 일방적으로 공식 지지했다. 지난해 2월 한국을 방문한 존 케리 국무장관은 “과거사는 뒤로 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하라” “오바마 방한까지 한일갈등이 두드러져 보이게 해서는 안 된다”는 발언을 쏟아내 어안이 벙벙케 했다. 다른 문제지만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을 도ㆍ감청해 전세계가 시끄러울 때도 우리 정부는 수개월이 넘도록 미국 정부로부터 사과는커녕 사실 확인조차 받지 못했다. 우리와 같은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독일 프랑스 멕시코 등이 관련자 처벌과 재발방지를 강하게 요구하고, 브라질이 예정됐던 국빈방문을 취소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5월9일 러시아에서 열리는 전승 70주년 기념행사도 미국 정부의 노골적인 불참 압박에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 어떤 입장 표명도 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해 하고 있다.

 

이래서는 한미관계가 건강해질 수 없다. 한반도에서 미국의 역할이 막중하다 해서 국가적 자존심을 깎는 저자세 외교로는 우리의 이익을 관철시킬 수 없다. 정부의 각성을 촉구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304수] 일본이 한·미·일 삼각공조 해친다고 왜 설득 못하나

 

미국 국무부가 긴급 진화에 나섰지만 웬디 셔먼 차관의 발언은 한·중·일 과거사 문제를 보는 미국 인식의 일단이 드러난 것이란 게 우리의 판단이다. 셔먼 차관은 지난달 말 “정치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라며 “이런 ‘도발’은 발전 아닌 마비를 초래한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국무부 3인자로 늘 신중하고 절제된 언어를 사용해온 그가 공개 장소의 대중연설에서 그처럼 외교적으로 부적절한 표현들을 쏟아낸 것은 어떠한 의도가 담겼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물론 이를 미 정부 공식 입장으로 단정하는 건 무리다. 그동안 미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과거사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라고 일본에 주문해왔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위안부를 ‘성노예’라 표현했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충격적이고 끔찍한 인권침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미국이 중국의 부상에 따라 한·미·일 삼각공조를 통한 아시아 재균형이 절실한 상황에서 끝 모를 한·일 갈등에 조바심을 내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지난해 말 한·일 관계 개선이 내년도 미국의 우선순위 정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파동은 일본의 부적절한 역사 인식과 왜곡이 한·미·일 공조에 가장 치명적 위해(危害)라고 미국을 설득하지 못한 우리 당국의 외교 실패가 초래한 결과이기도 하다. 셔먼의 발언 곳곳에서 “일본은 나름대로 노력하는데 한국·중국이 국내 정치적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식의 일본 측 논리가 발견되는 것이 그것을 방증한다.

 

  일본은 워싱턴에 자기 논리를 전파하는 데 보다 적극적이다. 한·미 관계에 틈을 내는 것을 전담하는 외교관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우리도 좀 더 확실하게 우리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과거사는 3국 모두의 책임”이라는 셔먼식 논리는 한·일 관계 개선에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으며 반미감정만 더하게 할 뿐이라는 걸 명확히 인식시켜야 한다. 아울러 미국의 지지를 이끌기 위해서라도 안보·경제 등 다른 사안에서는 일본과 협력을 모색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 등록금 못 내서 교실서 쫓겨난 학생

 

[한겨레신문 사설-2010304수] ‘돈 때문에 교실서 쫓겨난’ 경북예고 학생

 

새 학년 새 학기 첫날인 2일 대구에 있는 경북예술고에서 등록금이 밀린 학생 3명을 교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뒤 학교 도서관에서 따로 자습을 시킨 일이 벌어졌다. 비교육적이고 반인권적인 처사다. 당사자들이 느꼈을 굴욕감이 어떠했을지, 이를 지켜본 다른 학생들이 무얼 배웠을지 생각하면 끔찍하다. 학교 책임자들은 이러고도 교육자입네 하고 얼굴을 들고 다닐 것인가.

 

학교 쪽은 이 학생들이 1~2년 동안 등록금 등을 내지 않았고 미납자가 늘어나면 학교 운영이 어렵다고 이유를 설명한 모양이다. 예술고라는 특성상 등록금과 레슨비 등을 합치면 납부금이 한 해 1000만원가량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변명은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학생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납부금을 내지 못했다면 학교가 그 이유를 알아보고 도와줄 방법을 궁리했어야 옳다. 학교 스스로 입시 과정을 통해 재능을 인정하고 선발한 학생들 아닌가. 어떻게든 그 재능을 북돋워 인재로 키워낼 교육적 책무는 뒤로한 채 빚 독촉하듯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납부금 받아내기에 급급했으니 교육기관이라고 일컫기도 부끄럽다.

 

학생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차별 없이 대하는 것은 교육의 기본 원리다. 가정환경과 성장 배경이 다양한 학생들이 한데 어우러져 상호존중과 배려, 협력의 가치를 배울 때 건전한 시민, 공동체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 현실은 갈수록 학력과 계층에 따라 학생들을 나누고 차별을 불가피하게 여기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무상급식 논란만 보더라도, 얼마 되지 않는 예산을 핑계로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열등감과 수치심을 강요하려는 비교육적 주장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등록금을 미납했다고 학생을 수업에서 배제하는 황당한 발상이 나온 배경에는 이런 세태도 작용했으리라 본다.

 

경북예술고와 대구시교육청은 철저한 반성과 함께 학생들의 사정 파악과 장학금 등 지원 방안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교육복지의 사각지대를 다시 점검하는 것은 물론 교육정책의 근본적인 방향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서울신문 사설-20150304수] 등록금 못 낸 학생 교실서 내쫓은 예술고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교실에서 내쫓은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경북예술고는 그제 등록금을 내지 않은 3학년 학생 3명을 교실에서 따로 불러내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강제로 자율학습을 시켰다. 등록금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 이들 학생 3명 가운데 1명은 2년 동안 등록금을 내지 않았고, 2명은 1년 동안 등록금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학교 측이 학생들을 교실 밖으로 내몬 것은 어떤 경우도 용납할 수 없는 비교육적인 처사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체벌 등 교육적인 목적이 아닌 등록금 미납을 내세워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했다면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중대한 사안이다.

 

사립 특수목적고인 이 학교의 등록금은 분기별(3개월)로 110만원이라고 한다. 여기다 매달 레슨비 15만~25만원, 급식비 6만원도 있다. 연간 1000만원 정도를 학교에 내야 한다. 일반고에 비교하면 적지 않은 돈이다. 학부모 입장에서 버거운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교육열이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에서 오죽하면 자녀의 등록금을 내지 못했을까 마음이 무겁다. 그런 부모들을 옆에서 지켜봐야 할 학생들의 마음은 얼마나 더 괴로웠겠는가.

 

그런데 학교 측은 그런 학생들의 마음을 보듬기는커녕 새 학기를 맞아 새로운 각오로 공부해야 할 학생들의 가슴을 멍들게 했다. 우리 사회 한편에서는 월 몇백만원의 사교육비를 펑펑 쓰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이렇게 자녀들의 등록금도 못 낼 정도의 학부모도 있는 게 현실이다. 부의 양극화가 교육 현장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이번 일은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과거 6·25전쟁 등 난리통에도 학교는 피란을 가서 천막을 치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어떤 최악의 상황에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우리 사회의 미래가 그들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학생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 줘야 한다. 그런데 학생의 학습권을 지켜 줘야 할 책무를 지닌 학교에서 ‘돈’ 때문에 스스로 학생들을 내친다면 그것은 자신들의 본분을 망각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구시교육청은 “경북예고로부터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조치만으로는 부족하다. 비교육적 작태를 보인 학교에 대해 엄한 징계가 있어야 한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304수] 모처럼 혁신효과 기대되는 갤럭시S6 출시

 

스페인 바로셀로나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15’에서 공개된 삼성의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S6에 대한 국내외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삼성이 지금까지 만들었던 스마트폰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고 격찬했다. 시장에선 5,000만대 이상 팔리는 ‘대박’폰이 될 것이라는 성급한 기대도 나온다. 고급제품은 애플에, 중저가는 샤오미 등 중국 업체들에 밀려 최근 부진을 겪어 온 삼성이 반전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우선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좋든 싫든 삼성의 성패가 당장 전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갤럭시S6는 삼성이 명운을 걸고 만든 제품이다. 2011년 이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서 정상을 달려 온 삼성은 지난해 아이폰6를 앞세운 애플에 추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별로 새로울 게 없는 갤럭시S5에 대한 시장반응이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영업이익이 급락했고, 한때 34%에 달했던 매출 점유율은 반토막(17%) 났다. 이런 위기감 속에서 “갤럭시란 이름만 배고 다 바꾼다”는 각오로 제품 디자인과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표면은 금속과 강화유리를 자연스럽게 연결해 세련된 일체형으로 디자인했고, 첨단 무선 충전기술, 모바일 결제서비스인 ‘삼성페이’등이 적용됐다. 무엇보다 전통적 마그네틱 리더기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 ‘애플페이’보다 편의성을 더 높인 삼성페이를 발 빠르게 탑재한 점이 돋보인다. 휴대폰을 충전패드에 10분 올려 놓으면 4시간 쓸 수 있는 무선ㆍ고속 충전기능은 애플도 내놓지 못한 서비스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완전히 새로운 스마트폰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다.

 

물론 진정한 평가는 다음달 10일부터 시작되는 판매에서 소비자들이 내릴 것이다. 글로벌 시장 상황이 좋지 않지만 사운을 걸고 시장 주도권을 되찾아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삼성은 “졸면 죽는다”는 IT업계의 격언을 새기며 경쟁자들은 물론 스스로를 뛰어 넘는 혁신을 지속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시장을 열광시키는 혁신제품만이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304수] 3월 몰아치기 주총 관행, 이대로 좋은가

 

3월은 증권시장과 많은 기업들에 주주총회의 달이다. 해마 다 상장기업들의 주총이 이달에 집중적으로 열린다. 올해도 유가증권시장 등록 기업(12월 결산) 가운데 97%가 11일에서 31일 사이에 주총을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특히 금요일인 13·20·27일에 몰려 있다. 이처럼 몰아치기식으로 주총을 여는 관행을 두고 그동안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개선될 낌새가 없다.

 

주총이 몇몇 날짜에 몰아서 열리면 주주들이 권리를 행사하기가 어렵다. 여러 기업의 주식을 가진 주주들이 많은데, 이들은 같은 날 비슷한 시간에 열리는 주총 가운데 한곳 정도에만 참석할 수 있다. 다른 기업의 주총 참석이 결과적으로 봉쇄되는 것이다. 소액주주일 경우 그런 피해를 볼 가능성이 더 크다. 주총이 주식회사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이고, 주주가 그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 기업들이 내세우는 주주 중시 경영과도 맞지 않는다. 기업 경영 잘못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걸러질 기회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배주주와 경영진 뜻대로 주총을 치르기 쉬운 것이다. 주총 몰아치기가 이런 노림수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개연성이 있는 얘기다.

 

기업들도 할 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12월 결산일로부터 90일 안에 주총 승인을 받은 감사보고서 등을 공시당국에 내야 하기에 물리적으로 3월에 열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몰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시당국은 외부감사 보고서 등을 3월까지 낸 뒤 주총에서 승인받은 최종분을 다시 제출하면 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놓고 있다. 기업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주총을 4월 이후에 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만큼 기업들이 주총 일정을 스스로 조정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 상장사협의회를 중심으로 머리를 맞대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전자투표 제도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또한 회사 경영 정보들을 주주들에게 좀더 일찍, 그리고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주주들의 믿음을 더 사고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중앙일보 사설-2010304수] 연초부터 활력을 잃어가는 한국 경제

 

한국 경제가 회복의 탄력성을 잃어간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은 0.52%로 3개월째 0%대를 이어갔다. 여기서 담뱃값 인상 효과인 0.58%를 빼면 실제 물가는 1년 전보다 오히려 0.06% 떨어진 셈이다. 사실상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물가 상승률을 기록한 것이다. 우리 경제가 회복할 힘을 잃고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에 빠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소비자 물가가 사실상 하락세로 돌아선 것은 유가 하락과 농산물 값 하락의 영향이 크다고는 하지만 오랜 경기 부진으로 인한 수요 감퇴도 적잖은 몫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올 들어 한국 경제는 급속히 활력을 잃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1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생산과 소비, 투자, 수출입 등 경제활동과 관련된 모든 지표들이 일제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기업들은 생산과 투자를 줄이고, 가계도 지출을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다 수출과 수입이 동시에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교역 규모마저 쪼그라들었다. 자칫하면 원가 하락과 수요 감소가 겹쳐 물가가 더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 와중에 증시와 부동산시장은 시중의 넘치는 유동성과 정부의 규제 완화 덕에 그나마 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증시와 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호전도 실물경기의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반짝 반등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실물경기와 자산시장의 괴리가 커지면 불황 속에 거품만 부풀릴 위험도 크다.

 

  결국 한국 경제 회생의 관건은 가라앉는 실물 경기의 회복에 달려 있다. 경제가 회복의 탄력성을 잃고 나면 되살리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 경기가 더 위축되면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구조개혁의 추진동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투자와 소비를 늘릴 수 있는 재정·금융정책 수단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규제 완화 등 미시적 경기 진작 대책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지금은 디플레 여부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보다 디플레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막는 게 더 중요한 시점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304수] 위장전입은 이제 검증 대상조차 안되는 건가

홍용표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부인의 위장전입 사실을 시인했다. 2·17 개각 때 함께 내정된 유일호 국토교통부·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도 가족의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한날한시 발표된 국무위원 후보자 세 명 모두 위장전입 전력이 확인된 것이다. 위장전입이 병역기피·부동산투기·세금탈루와 함께 고위공직자의 ‘4대 필수조건’이란 말도 있다지만, 이 정도면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국회 인사청문자료와 통일부 설명을 종합하면, 홍 후보자 부인 임모씨는 1999년 4월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 아파트로 혼자 전입했다. 이 아파트는 홍 후보자의 매형인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집이었다. 위장전입을 방조한 인사가 훗날 부동산정책을 책임지는 국토부 장관에 오른 것이다. 홍 후보자와 부인은 1년반 뒤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으로 함께 전입했다. 홍 후보자 측은 “부모가 거주하던 분당 근처로 이사하려 했다. 아파트 청약 자격을 얻기 위해 주소지를 옮겼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듬해 정자동 아파트를 매입해 이사한 만큼 투기 목적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성남은 판교 신도시 개발을 앞두고 투기 열풍이 거세게 불던 지역이다. 위장전입 목적과 경위를 청문회에서 엄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앞서 유일호 후보자도 장남의 상급학교 진학을 앞둔 1993년과 1996년 부인과 장남이 서울 강남 8학군의 노른자위인 도곡동·대치동으로 위장전입한 사실을 인정했다. 유기준 후보자 역시 2001년 딸의 중학교 배정을 위해 부인과 딸이 위장전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기준 후보자는 1985년에도 위장전입한 전력이 있다. 이들의 행적만 보면 위장전입은 누구나 하는 일이고 큰 잘못도 아닌 듯싶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명백한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적발 시 3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청와대가 검증 과정에서 위장전입 사실을 몰랐다면 부실·무능이고, 알면서도 내정했다면 도덕불감증이다. 어느 쪽이든 청와대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지난해 총리 후보자들이 잇따라 낙마한 뒤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런 말을 했다. “사회생활을 오래 하고 50~60대가 되면 정도의 문제일 뿐 흠 없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청와대의 인식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인사참사를 언제까지 목도해야 하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304수] 7년 소송 끝에 빚만 떠안은 KTX 승무원들의 눈물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냈던 전 KTX 여승무원 34명이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26일 대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의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냄으로써 승무원들의 근로자 지위 획득은 물거품이 됐다. 그러나 승무원들의 삶을 벼랑으로 내모는 또 하나의 고통이 있다. 파기환송심이 확정될 경우 해당 승무원들이 4년간 받은 임금 등을 되갚아야 한다. 4년은 2008년 법원이 임금 지급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고, 사측이 2012년 12월 소송을 거쳐 지급을 중단했을 때까지의 기간이다.

 

하지만 해고(2006년)와 소송제기(2008년) 이후 회사 밖으로 내몰렸던 이들이 1억원 가까운 돈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오죽했으면 승무원들 사이에서 “차라리 처음 소송에서 지는 편이 나을 뻔했다”는 자조가 터져 나왔겠는가. 9년 가까운 해고 기간에 소송만 7년 걸렸고, 3심 판결만 4년이나 기다렸는데 거액의 빚만 돌아온 셈이니 그 같은 절망감이 배어 나오는 것이다. 코레일과 국토교통부 등 관계당국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 있는 KTX 해고 승무원 문제를 이렇게 가혹한 법 논리로 처리하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노동사건 재판의 예는 KTX 소송뿐이 아니다. 지난달 26일 대법원은 현대차 아산공장 노동자 4명에게 근로자 지위를 인정한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현대차 사측은 잽싸게 ‘이번 판결을 계기로 무책임한 투쟁선동을 금하라’는 제목의 사보를 각 공장에 배포했다. 사보는 ‘이번 판결은 소수 사안임에도 최종 판결까지 10년 소요’, ‘최병승씨 최종 판결까지 7년 소요’라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사측이 7~10년씩 걸리는 재판을 거론하면서 노동자들을 겁박한 것이다. 여기에 ‘정규직임을 인정하라’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까지 무시하는 오만한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노사 간, 혹은 노사정 간 교섭으로 풀기보다는 ‘모 아니면 도’의 사법부 판결에 목을 매는 노동계의 현실도 딱하다. 비정규직의 사용 이유를 제한하고 상시·지속적 일자리는 직접고용의 원칙을 확립하도록 노동관계법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독일처럼 노동전문 법관들이 재판을 전담하는 노동법원의 도입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시간 낭비도 줄이고, 전문성도 제고되는 이중의 효과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304수] 권력기관장 영남 출신 쏠림 심각하다

 

대통령의 출신지나 지지 기반이 관가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수십 년의 영남 정권 기간에 대구·경북(TK) 출신들이 정부 요직을 차지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호남 출신 인사들의 진출이 두드러졌다. 일종의 반작용이었던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한 뒤 국민은 반신반의하면서도 편중 인사가 해소되리라고 기대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은 “모든 공직에 대탕평 인사를 할 것이며 한 지역이 아니라 모든 지역에 해당하는 100% 대한민국 정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또 올해 신년 회견에서도 “능력과 도덕성이 인사의 최우선”이라며 “특정 지역 특혜는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기대는 기대로 끝나고 말았다. 집권 3년차인 현재 대통령의 공약과는 정반대로 영남 출신들이 권력기관장과 국가 요직을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다. 과거 5공이나 호남 정권 당시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수준이다. 검찰·경찰·국세청·감사원·공정거래위원회 등 이른바 ‘5대 권력기관’의 기관장은 모두 영남 출신이다. 야당이 조사한 결과 권력기관의 고위직 168명 가운데 42.3%가 영남 출신이다. 국가 의전 서열 1~10위 11명(9위인 국회부의장 2명) 중 영남 출신은 무려 8명으로 73%에 이른다.

 

국토가 좁은데도 지역 갈등이 격심하다. 영남 출신 대통령 아래에서 나라가 두 쪽이 났고 하나가 돼야 할 국론은 사분오열됐다. 이런 상황에서 탕평책은 절실한 과제다. 영남 대통령이라도 삼부 요인이나 권력기관장의 중책은 비영남권 인사들에게 맡김으로써 그 지역 국민의 소외감과 박탈감을 해소시켜야 한다. 그런데도 늘 탕평책은 말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공약을 식언하고 특정 지역 출신을 중용했다.

 

특정 지역이 싹쓸이하다시피 하는 인사의 폐해는 크다. 끼리끼리 뭉쳐 지역 이기주의에 함몰한다. 타 지역을 적대시함으로써 국토의 균형 발전을 저해한다. 지역에 상관없이 인재를 찾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물론 영남 출신 인사의 능력이 출중하다면 출신 지역을 탓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 정부 들어 인사 파문만 이어졌을 뿐 전 국민의 존경을 받는 영남 인사를 손꼽으려 해야 꼽을 수 없다. 기계적인 지역 안배는 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출신 지역을 따져 가면서 인사를 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 대통합을 위한 첫 번째 길이다. 비영남권에도 인재는 얼마든지 있다. 눈을 크게 뜨고 봐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304수] 조세불복이 급증하고 있다는 상황

 

지난해 조세불복 건수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치솟았다. 세수부족이 10조9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에 달한 와중에 납세자들의 불만이 유례없이 높았던 것이다. 한경 보도에 따르면 정부 과세에 승복을 못해 조세심판원으로 달려간 심판 청구는 지난해에만 8474건에 달했다. 2013년에 비해 591건, 2012년과 비교하면 2050건이나 급증했다. 국세청에 직접 제기하는 이의신청과 심사청구, 감사원의 심사청구까지 합치면 조세불복은 더 늘어날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경기부진 상황에서 납세자들이 세금을 더 무겁게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납세자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진 것도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지하경제 양성화 같은 정책흐름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중소기업 세무조사는 자제한다는 국세청의 발표도 있었지만 일선 사업장의 세무조사 체감강도가 그만큼 컸다고 봐야 한다.

 

지하경제 양성화 같은 캠페인성 정책은 겉으로만 요란할 뿐 효과는 제한적이다. 2013년 추징세액이 7조6169억원이었으나 사업자와 개인에 대한 조사에는 한계가 있다. 세수를 늘릴 묘안이 아니었다. 조세수입은 오히려 투자환경을 조성하고, 기업 생산성이 높아지고, 경기가 활성화되면 저절로 늘어난다. 이처럼 확실한 길을 두고 ‘경제민주화, 음성소득 차단…’같은 슬로건 정책으로는 세수도, 납세자도 다 놓친다. 소득탈루 등 탈세는 세무당국이 조용히 일상적으로 프로답게 대처하면 그만이다.

 

조세불복의 더 큰 문제는 국가의 정당한 권위까지 손상시킨다는 점이다. 안 그래도 공정위가 부과한 수천억원짜리 과징금이 최근 법원에서 잇달아 패소하면서 ‘난폭행정’에 대한 문제점이 심각하게 제기되는 중이다. 국세는 과징금과는 차원이 다르다. 국세불복 기류를 정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일단 부과해놓고 보자는 식이라면 행정편의주의요, 면피행정이다. 물론 국세청으로서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문적 접근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조세불복이 계속 늘어나면 행정의 질까지 떨어진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304수] 脫석유 서두르는 중동을 재인식하자

 

박근혜 대통령의 쿠웨이트 등 중동 4개국 방문으로 중동지역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사절단에 116명의 경제인이 포함된 것부터가 그렇다. 경제협력 여지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대통령 순방을 계기로 제2 중동붐이 일어날지 주목된다.

 

중동이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갖는 각별한 의미는 1970년대 오일쇼크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일쇼크는 수출주도형 성장을 추진하던 한국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에너지 조달의 어려움과 함께 큰 폭의 무역적자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한국은 중동 산유국들이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경제개발계획에 착수하자 곧바로 중동 건설붐을 일으켰다. 중동 해외건설을 ‘수입유발 없는 대규모 외화획득원’으로 보고 발상의 전환을 했던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좀체 활력을 찾지 못하는 우리 경제로서는 새로운 탈출구를 찾아야 할 절박한 상황이다. 지금 중동은 그동안 축적된오일머니를 바탕으로 포스트오일시대를 대비해 산업 다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에너지 플랜트 중심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찾고 있는 중이다. 가뜩이나 셰일혁명으로 중동 산유국의 지위가 흔들리는 판국이어서 중동 산유국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여느 때보다 더하다. 여기에서 한국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건설시장 확대 말고도 개척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원전만 해도 지난 정부에서 아랍에미리트(UAE) 원전건설을 수주한 데에 이어 이번에는 사우디에서 스마트 원전 수주에 성공했다. 병원을 운영해달라는 요구도 빗발친다고 한다. UAE만 해도 매년 2조원 이상을 의료관광에 쓰지만 한국 점유율은 1%도 안 된다. 병원을 중동시장 개척의 한 축으로 활용할 만하다. 그외 정보통신기술(ICT), 제조업 분야의 협력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주 한경밀레니엄포럼에서 올해는 중동의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2 중동붐을 선도할 새로운 경제협력의 틀을 짜자.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왔던 것이 우리의 전통 아닌가.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304수] 물가마저 사실상 마이너스… 소비진작 더 힘써야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동기 대비 0.52%다. 담뱃값 2,000원 인상에 따른 효과 0.58%포인트를 빼고 보면 -0.06%의 물가 상승률을 기록한 것이나 다름없다. 저물가에 대한 공포가 커질 수밖에 없게 생겼다. 무엇보다 지난달 생활물가지수가 -0.7%다. 서민 생활과의 밀접도가 반영된 생활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7월 1.4%에서 9월 0.6%, 12월 0.3%로 낮아진 뒤 올 들어 1월 -0.3%에 이어 두 달 연속 마이너스 상승률을 기록했다. 물가의 추세적 하락은 물론 극도의 가계 소비심리 악화를 걱정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짐짓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저물가는 주로 국제유가 하락 때문이니 내수가 살아나면 물가는 저절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지난달 석유류 물가 상승률이 -24.3%에 달하므로 정부의 설명에도 일리는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인 식료품·에너지제외지수가 1년 전보다 2.3% 올랐으니 저물가를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생산·소비·투자의 동반 마이너스 성장 속에 물가까지 마이너스로 향하고 있음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1월 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1.7% 감소했고 소비도 3.1% 줄었으며 설비투자도 7.1%나 축소됐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마저 하락하면 소비심리 냉각과 내수침체의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디플레이션을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더구나 가계부채가 1,100조원을 넘어서면서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63.6%까지 치솟았다. 소비의 주체인 가계에 쓸 돈도, 소비할 의지도 없다면 디플레이션을 피할 도리가 없다.

 

일본의 20년 불황에서 보듯 디플레이션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수요가 공급에 훨씬 못미처 물가가 하락하는 경제재앙을 막으려면 수요를 진작하고 소비심리를 되살리는 등 만반의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304수] 전셋값 폭등하는데 '반값 복비'는 하세월

 

경기도에 이어 서울시의 반값 복비도 보류됐다.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지난해 11월 국토교통부의 중개보수 인하 권고안이 나온 뒤 시간만 질질 끌며 신학기를 앞둔 이사철을 넘기더니 턱없이 높은 중개보수를 낮출 생각은 아예 접은 모양새다.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는 2일 반값 부동산 중개보수 조례안을 상정했으나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다음달 임시회에서 재논의하기로 했다. 경기도의회는 지난달 반값 중개보수 조례안을 통과시키려다 미뤘다. 강원도에서 이달부터 반값 중개보수가 시행되는 것을 제외하면 전국 지자체가 직무유기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반값 중개보수가 시도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유는 중개사협회의 눈치를 보는 일부 의원이 중개보수를 고정하려는 데 있다. 국토부 권고안은 상한 규정을 둬 그 이하에서 소비자가 중개업자와 협상해 정하도록 돼 있다. 이 부분은 이미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중개보수를 고정하면 가격경쟁과 소비자 이익을 제한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려 일단락됐다.

 

최근 들어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지난달 전국 아파트 매매가 대비 전세가율은 70.6%로 1998년 조사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전세가율이 100%를 넘어서기도 했다. 현행 보수체계는 2000년에 만들어졌다. 지금의 집값, 특히 '미친 전세'라는 신조어까지 나오는 전셋값에 15년 전의 보수체계를 적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언제까지 이익단체에 휘둘려 서민의 허리가 주저앉게 둘 것인가. 지방의회는 이익집단의 대변인이 아니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한겨레 프리즘/한귀영(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직무대행)-20150304수] 50대에 주목하는 이유

주지하다시피 지난 대선의 화두는 ‘50대의 보수화’였다. 세대 대결이 극심한 상황에서 ‘보수화된 50대의 역습’이 박근혜 당선을 이끌었다는 평가가 자자했다. 1987년 넥타이부대로 민주항쟁을 지원했고 이후에는 민주정부 탄생에 기여했던 세대가 바로 50대였기에 이들이 전 세대 중 가장 높은 투표율과 62.5%라는 압도적 지지로 보수 후보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기조차 했다. 그 후 지난 2년 동안에도 50대는 60대 이상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떠받치는 핵심 지지층으로 여겨졌다. 그랬던 50대가 최근 대거 이탈하면서 박근혜 정부도 위기를 맞고 있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들면서 50대의 박근혜 정부 지지율은 갤럽 조사에서 32%까지 하락해 전체 평균 지지율(29%)과 3%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물론 50대가 흔들리는 징후는 이전에도 나타났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에 대한 실망으로 긍정 평가가 51%까지 하락했다. 이전까지 70% 전후의 높은 지지율을 보인 것과 비교하면 급락한 셈이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보다 높았다. 곧 60% 수준까지 회복되기도 했는데, ‘민생’에 대한 절박함이 결정적 이유였다. ‘세월호 대 민생’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50대는 자신의 삶을 엄습하는 거대한 ‘불안’ 때문에 또다시 ‘현실적’ 선택을 해야 했다. 그랬던 50대가 임기 3년차에 접어들자마자 급격히 박근혜 정부에 등을 돌리고 있다. 왜일까?

 

지난 대선에서 50대가 왜 문재인이 아니라 박근혜를 선택했는지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이 40대였을 때 경험한 민주정부 10년 동안 양극화는 심화되고, 사회경제적 불안은 본격화되었다.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으로 한창때 직장을 떠나게 되었고 부동산 거품 속에 하우스푸어와 렌트푸어가 되었다. 그리고 50대에 접어든 지금은 대거 자영업 전선으로 내몰리면서 자영업의 고통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금융결제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부도를 낸 자영업자 10명 중 8명이 50대 이상 장년층이다. 하지만 민주진보세력은 이들의 불안을 다독이고 해결하는 데 무능했다. 반면 보수세력은 이들의 불안을 적극적으로 정치화했고 자신들이 민생 문제를 해결할 대안세력임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듯 지난 대선에서 50대가 보수적 선택을 한 것은 이들이 보수화되어서 아니라 이들의 사회경제적 불안에 주목하고 설득력 있게 대안을 제시한 것이 보수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돌 이켜보면, 지난 2년의 시간은 보수세력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시기였다. 현 정부는 50대의 불안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는 유능했으나 절박한 문제 해결에는 무능했다. ‘민생’은 위기 때마다 출현하는 정치적 구호에 불과했고 어떤 진정성도 없음이 명확해지면서 50대의 이탈도 급격화되고 있다.

다가올 2017년 대선도 50대의 선택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아래로는 자녀를 책임지고 위로는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50대이기에 이들의 ‘사회경제적 불안’은 이들 세대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성을 지닌다. 2012년 대선에서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실망이 보수정부 선택으로 이어졌듯이 2017년에는 보수정부에 실망한 50대가 진보정부를 선택할 수 있을까? 분명 50대는 달라지고 있지만 아직은 다분히 회의적이다. 정당 지지도만 봐도 여전히 새누리당 지지가 압도적이며 야권은 대안세력이자 수권세력으로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매 시기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냉정한 선택을 해온 50대들이다. 이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절박함을 해결할 수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어느 세력이 50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영희(문화스포츠부문 기자)-20150304수]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

 

여중·고 시절 순정만화와 할리퀸 로맨스에 빠져 산 탓에 성인이 되어 현실의 연애와 마주했을 땐 조금 당황했다. 훤칠한 키에 다부진 근육을 가진, 어떤 색인지 당최 감이 오지 않는 ‘잿빛 눈동자’의 그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단지 남자라면 로맨스 소설의 흔한 남주(남자 주인공)들처럼, 다른 여자들에겐 차가워도 좋아하는 여자에게만은 한없이 따뜻하며, 거침없는 애정을 퍼붓는 생물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남자, 별로 없었다.

 

  남자들도 나와 똑같이 약하고 찌질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로맨스 소설 속 사랑과 현실의 사랑을 구분하는 지각을 갖게 됐지만, 그렇다고 로맨스물을 완전히 끊지는 못했다.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현실의 연애에서 소설 속 연애로 종종 도망쳤다. 시대 변화에 맞춰 남주 캐릭터도 변화해 요즘 로맨스 소설에선 연상보다는 연하가, 재력보다는 체력이 강한 남자들이 인기다. ‘재벌 2세 완벽남’보단 현실성 있는 캐릭터이긴 한데 현실의 이런 남자,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난해 일본에서 인기를 끈 ‘가베동(壁ドン)’도 여성들의 연애 판타지가 반영된 현상이었다. 벽이라는 뜻의 ‘가베(壁)’에 벽을 칠 때 나는 의성어인 ‘동(ドン)’을 합친 말로, 남자가 여자를 벽으로 몰고 가 팔로 막으며 “내 여자가 되어 줘” 등의 오글거리는 멘트를 날리는 행동을 말한다. 한 순정만화에 등장해 화제를 모으면서 ‘가베동 체험’까지 인기를 끌었다. 유약한 초식남(草食男)에게 지친 일본 여자들이 원하는 박력 있는 남성상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다.

 

  전 세계 박스오피스를 휩쓸고 있는 화제의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보며, 오랜만에 전형적인 구시대적 로맨스물이 주는 재미를 맘껏 누렸다. 뛰어난 외모의 재력가인 남자와 평범한 (듯하지만 옷만 갈아입으면 절세미인으로 변하는) 여주인공의 사랑 이야기. 영화의 주요 소재인 가학적 성행위 장면 때문에 화제가 됐지만, 결국 극장을 메운 여자들이 피식 웃으며 즐거워하는 대목은 이런 거였다. “나를 멀리하는 게 좋아”라며 여자를 밀어내던 남자, 어느덧 그녀에게 빠져들어 헬리콥터 안전벨트를 매주며 말한다. “이제 어디에도 못 가.”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해야 하는 시대, 이 영화가 때론 복종하고 싶은 여성들의 심리를 자극한다는 분석,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 때문에 성 문화가 왜곡될까 우려된다거나 등등 너무 정색하는 걱정은 우스꽝스럽다.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 어른들에게도 현실을 잊고 빠져들 판타지는 필요하니까.

 

 

[경향신문 칼럼-여적/김석종(논설위원)-20150304수] 기울어진 운동장

이솝 우화 ‘토끼와 거북이’에서 낮잠을 잔 토끼는 꾸준히 기어온 거북이에게 지고 만다. 그러나 이 경주는 처음부터 발빠른 토끼에게 유리한 불공정한 게임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에서도 열차 안의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가득한 꼬리칸의 젊은 지도자가 폭동을 일으켜 선택된 권력자들이 탄 머리칸으로 돌진한다. 현대 사회에 대한 상징과 은유를 담은 영화다.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인기 코미디언 기타노 다케시가 쓴 <생각노트>에는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적 통념을 뒤집는 글들이 많다. 예컨대 아이들에게 ‘하면 된다’고 하지만 노력해도 안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란다. 그는 능력이 안되면 빨리 포기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 그런 말을 하면 아이가 위축되지 않겠느냐고? 위축되지만 않으면 운동 신경 둔한 녀석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나?”

 

중세 이전의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 나중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했고, 과학과 항해술의 발달로 그것이 증명됐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세계는 평평하다>는 교통과 인터넷의 발달로 전 지구가 장벽 없는 경기장이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제는 전 세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지구가 평평해졌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이 땅에서는 양극화와 ‘갑질’ 논란 등 불평등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마치 한쪽으로 급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심판의 편파 판정을 감수하며 축구경기를 하는 것 같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지난 대선 때 야당에서 나온 말이다. 한국사회가 너무 보수적이기 때문에 정권교체가 어렵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야당(새정치민주연합)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이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반박하는 보고서를 냈다고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없다. 진보세력위기의 핵심은 지지기반이 아니라 리더십의 부재다.” 한마디로 ‘운동장’ 핑계 대지 말란 얘기다. 하긴 정치운동장 탓하지 말고 한국사회에 널려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뜯어고칠 일이다. 아니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도 이길 만큼 체력을 키우든가.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오일만(논설위원)-20150304수] ‘귀족’ 로스쿨 출신 변호사

올해부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1기생들의 판사 임용이 본격화된다. 2012년 졸업한 로스쿨 1기생들이 올 초 3년의 법조 경력을 갖추게 된다. 대법원은 법관 임용지원자 평가 지침으로 전문성, 정의감, 균형감각, 공정성, 청렴성, 성실성, 윤리성, 봉사정신 등 10개 평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평가 등급은 우수, 보통, 미흡 3단계로 돼 있다. 제시된 기준이 너무도 추상적이어서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가능성이 있다.

 

법조인 양성소인 로스쿨과 로펌의 선발 기준을 놓고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보니 판사 임용에도 힘 있고 백 있는 사람들이 선택되는, 이른바 현대판 음서(蔭敍)제로 변질되지 않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로펌에서 일하다가 법관으로 임용될 경우 자신이 근무했던 ‘친정 로펌’이나 자문을 한 특정 기업으로 팔이 굽을 수 있는 이른바 ‘역(逆) 전관예우’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다분하다.

 

이런 걱정이 기우로 끝나기를 바라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로스쿨에 입학하려면 법학적성시험(LEET)을 거쳐야 하지만 변별력이 낮아 사실상 면접이 합격을 좌우한다. 로스쿨은 한 해 2000명 정원 중에서 110~130명 정도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선발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 자격 미달자들이 특별전형으로 둔갑해 입학한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유일한 공인시험인 변호사시험 성적은 아예 공개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소위 고관대작 자녀들에게 유리한 제도가 됐다.

 

김앤장, 태평양, 광장, 율촌, 세종 등 우리나라의 5대 대형 로펌의 변호사가 되면 보통 억대를 넘는 연봉을 받는 데다 향후 판·검사로 발탁되는 데 유리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대형 로펌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법조인으로서 성공의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수익을 내야 하는 로펌 입장에서는 대형 사건을 수임하거나 네트워크가 좋은 변호사를 선호하게 마련이다. 전현직 고위 관료나 법조인, 대기업 고위임원 자녀들이 대형 로펌에 포진하는 이유다. 한 로펌 관계자는 “집안이 좋지 않거나 인맥이 두텁지 않을 경우 대형 로펌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로스쿨에서 수석을 하는 길밖에 없다”고 귀띔한다.

 

현행 로스쿨 제도를 통한 법조인 양성 시스템은 돈 있고 백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시행 6년간 경험으로 로스쿨은 상속이 부를 넘어 사회적 지위의 원천이 되게 만드는 제도’로 변질됐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우리 사회의 틀을 만들고 사고와 행동의 방향까지 규정짓는 법조인을 일부 계층이 독점해 가는 현실은 사회 안정성과 계층 간 유동성 측면에서 아주 불길한 징조다. ‘왕후 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고 믿게 만드는 사회는 분명 잘못된 사회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304수] 카스트로의 여인들

 

쿠바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에게는 여자가 많았다. 23세 때 결혼했다가 몇 년 만에 이혼한 첫 부인 외에도 4명의 여성과 결혼하지 않은 채 관계를 맺었다. 첫 부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 외에 나머지 여성들과의 사이에서 8명의 자식을 두었다. 그 외에도 비공식 ‘여친’이 많았다. 심지어 암살 지령을 받고 접근했던 미인계 첩보요원이 그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얘기도 있었다.

 

50년에 걸쳐 세계 최장기 집권 기록을 갖고 있는 카스트로는 자신의 애정행각을 국가기밀 수준으로 다뤘다. 그래서 드러나지 않은 관계도 많다. 그의 ‘로맨스 혁명’은 결혼 이듬해 아들을 낳은 직후부터 시작됐다. 새신랑 티를 벗지 않은 그의 상대는 유부녀였다. 그녀는 훗날 ‘혁명 동지이자 연인’으로 불린 나티 레부엘타. 의사 남편을 둔 그녀는 카스트로에게 반해 자신의 집을 혁명 아지트로 제공했다.

 

카스트로가 정부군 습격에 실패해 투옥됐을 땐 열정적인 편지를 주고받았고, 출소한 그가 이혼하자 더욱 뜨거운 관계를 맺었다. 그녀는 딸 하나를 둔 유부녀 상태에서 둘째딸 페르난데스를 임신했다. 그러나 카스트로는 그 딸이 10살이 될 때까지 자기 자식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태어난 지 10년이 지나서야 아버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페르난데스는 쿠바의 정치 상황과 카스트로에게 환멸을 느껴 1993년 서방으로 망명했다. 2001년부터는 미국 마이애미에 정착해 언론인으로서 ‘독재자 카스트로’를 비판해왔다. 이보다 먼저 마이애미로 이주한 카스트로의 여동생도 오빠의 독재를 비난했다. 카스트로의 또 다른 딸과 친손녀, 외손녀도 그랬다. 둘째 며느리는 2002년 중남미로 망명하며 마이애미 방송국에 카스트로의 사생활 비디오를 폭로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카스트로는 ‘여복’보다 ‘여난’이 더 컸던 것 같다. 지난해에는 딸 페르난데스가 어머니의 건강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망명 21년 만에 쿠바를 찾았다. 그 위독하던 어머니 나티가 지난 주말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젊은 공산주의 혁명가에게 반해 가정을 버리고 ‘쿠바의 여인’이 되려 했던 그였다. 딸 페르난데스가 배다른 카스트로의 아들과 사귀려 했을 때는 숨겨온 비밀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긴 혁명가들의 낭만적 열정에 홀린 여성들이 예부터 많았으니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심지어 임꺽정에게도 부인이 셋이나 있었다지 않은가. 며칠 전 암살당한 넴초프도 그렇다니. 쩝, 쓴 입맛을 다시게 된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임웅재(논설위원)-20150304수] 박병원vs김동만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설마 그럴 리가. 어제의 은행과 은행노조 임금단체협상 파트너가 이번에는 '노사정 대타협'의 핵심 파트너로 다시 만났다. 최근 취임한 박병원 경총 회장과 한일은행(현 우리은행) 노조 간부 출신인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참으로 질긴 인연이다. 두 사람은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2007년을 전후해 우리금융 회장과 금융노조위원장 등으로, 2012~2014년에는 은행연합회장과 한국노총 부위원장·위원장으로 얼굴을 맞대왔다. 둘 사이에서는 정규직 임금인상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비정규직 처우개선에 쓰기로 합의하는 등 나름대로 성과도 괜찮았다.

 

사측 대표 역할을 하는 은행연합회장 시절 박 회장은 금융노조와의 산별중앙교섭에서 합리적인 노조의 주장에 대해서는 "타협안을 찾아보라"고 주문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언동이 노조에 양보한 것으로 비쳐 개별 은행 등의 불만을 사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 "협상이 잘 됐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적잖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기간 단축(2→1년)과 차별완화, 노사공동의 사회공헌기금 마련 등이 그 예다.

 

1년간이나 공석 중이던 경총 회장에 박병원씨가 선임된 데는 다채로운 경력이나 합리적 성향과 함께 김 위원장 등과의 이런 오랜 인연도 고려됐다고 한다. 노사정위원회 채널을 통해 이달 말까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 임금·근로시간·정년 등 노동현안, 사회안전망과 관련한 대타협을 이루려면 상호 존중과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 앞에 놓인 길은 그리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경영계와 노동계의 이해를 대변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간극이 크다. 김 위원장도 "서로 잘 아는 것과 교섭은 별개"라며 선을 그었다. '아이디어맨'인 박 회장도 이런 점을 감안, 양쪽 모두의 숙원인 일자리 창출에서 해법을 찾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모처럼 다시 만났으니 신뢰와 청년 일자리를 씨줄과 날줄로 삼아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옷감을 촘촘하게 짜 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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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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