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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한국경제, 디플레이션 걱정

■ ‘김영란법’ 국회 통과 그 후, 말말말

■ 어린이집 CCTV 법안 부결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한국경제, 디플레이션 걱정

 

[한겨레신문 사설-20150305목] 최 부총리의 ‘임금 인상론’, 말보다 실천을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저물가 상황이 이어져 디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큰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또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이 일어나지 않고는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고 했다. 최 부총리의 이런 발언이 새삼스런 것은 아니지만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낮은 물가’와 ‘낮은 임금 인상’이 우리 경제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 부총리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 실망스럽다.

 

우리 경제는 물가수준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일컫는 디플레이션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디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을 지울 수 없게 돼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국제유가 하락세 등의 여파로 지난달 0.5%라는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담뱃값 인상률을 빼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1%인데다 상승률 자체가 둔화하고 있어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디플레이션은 대체로 한번 빠져들면 벗어나기가 어렵고 불황이나 침체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디플레이션이 아니어도 저물가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비슷한 위험이 따를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런데 최 부총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그는 취임 이후 재정 확대 정책을 펴고 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 증대 필요성을 몇 차례 언급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효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임금 인상은 말잔치에 그치고 있다고 해도 그르지 않다. 그가 얘기했듯이 임금 인상은 내수 부양은 물론이고 저물가 탈피에도 긴요하다. 하지만 지난해 5인 이상 사업체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1.3% 수준으로 국내총생산 증가율을 크게 밑돌았다. 얼마 전에는 삼성전자가 올해 임금 동결을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위상을 생각할 때 파장이 만만찮을 텐데도 정부는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어 보인다.

 

최 부총리는 자신의 임금 인상론이 진심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뭔가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번에도 얼렁뚱땅 넘어가서는 안 된다. 최 부총리는 4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고, 일본의 아베 총리는 아예 노골적으로 기업들에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귀담아들어야 할 얘기다. 최 부총리가 박 대통령에게 이런 현실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 박 대통령은 노동시장의 구조개혁 등을 강조하면서도 임금 인상은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 사설-2015030목] ‘고성장 종언’ 말만 말고 정책 패러다임 바꿔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어제 한국 경제상황에 대해 ‘디플레이션 걱정이 크다’ ‘근로자 임금이 올라야 내수가 산다’ ‘증세에 대한 사회적 컨센서스’ 등 여러 얘기를 했다. 다만 이들 얘기는 원론적이고, 통상적이어서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작 주목되는 발언은 “고도 성장기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부총리가 부의 쏠림이나 소득 양극화 등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성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전형적인 친기업 성장주의자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예사롭지 않은 발언이다.

 

기실 한국경제는 지속적인 성장정책에도 불구하고 뒤죽박죽인 상태다. 3%대 성장률에 사상 최대의 경상흑자, 3만달러를 눈앞에 둔 1인당 소득 등 수치는 나쁘지 않다고 말하지만 정작 속을 뜯어보면 지뢰밭 그 자체다. 경상수지는 수입이 수출보다 더 크게 주는 불황형 흑자에 불과하다. 국민소득이 늘었다 해도 생활 수준은 후퇴하고 있다. 경제의 또 다른 축인 내수는 백약이 무효일 정도로 심각한 부진에 빠져 있다. 당장 최 부총리가 매진해온 부동산 활성화정책은 아파트 거래량을 늘렸지만 기대했던 소비 진작효과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전·월세 인상에 지쳐 마지못해 집을 사고는 있지만 원리금 상환부담이 커지면서 허리띠를 졸라맨 데 따른 것이다. 실제 2008년 826만원이던 원리금 상환액은 2013년 1000만원을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에는 1175만원에 달했다. 그나마 임금이라도 오르면 버틸 만하지만 그렇지도 못하다. 국회 예산정책처까지 나서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과 유가하락에도 불구하고 가계소비가 부진한 것은 가계부채 부담과 실질임금 정체 등 구조적 요인 때문이라고 분석할 정도다. 소비가 줄다 보니 물가도 내린다.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벌써 3개월째 0%대다. 그나마 담뱃값 인상 효과를 빼면 마이너스다. 외견상 저물가는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화하면 경기가 둔화되는 디플레이션으로 빠지게 된다는 점에서 좋지 않다.

 

고도 성장기가 끝났다고 여긴다면 경제정책의 패러다임도 성장 일변도에서 벗어나 저성장 시대에 걸맞게 다시 짜는 게 마땅하다. 우리는 그 시작이 개인의 삶의 질 개선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당연히 증세 얘기는 변죽만 울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임금인상도 당위론이 아닌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 등 적극적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기업들도 임금은 단순히 비용이 아니라 성장의 원천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주거정책 역시 빚내 집 사라가 아니라 중하위 계층의 주거 안정쪽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305목] 디플레이션? 그렇게 反시장 정책들이 쏟아졌으니

 

유통법 동반성장 경제민주화 등 '물귀신 규제'가 소비도 투자도 틀어막았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5%에 그쳐 3개월째 0%대에 머물렀다. 담뱃값 인상분을 빼면 사상 첫 마이너스(-0.06%)라고 한다. 서민들로선 반길 일이지만 물가하락이 지속되면 실업 증가, 소득감소, 물가 추가하락의 악순환을 초래한다. 또 현금선호가 강해져 소비·투자 부진, 자산시장 위축 등이 복합적으로 더해진다. 그 결과 경제주체들이 미래 기대가 사라져 무기력증에서 좀체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서 목격한 그대로다.

 

급기야 부총리도 시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최경환 부총리는 어제 강연에서 “디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큰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문제는 디플레에서 벗어나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한국은행에 금리를 내려 돈을 풀라고 종용하고 있다. 하지만 금리인하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금융자산 소득자들의 실질소득이 감소해 소비여력은 더 취약해지는 역설이 나타날 수 있다. 금리인하 효과가 없기 때문에 차라리 일본처럼 국민에게 상품권을 나눠주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소비여력이 약화된 것이 문제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잘못된 처방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 부총리가 기업들이 임금을 올려줘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비슷한 논리다. 얼핏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 기업의 경영성과는 지금도 최악으로 내몰리는 중이다.

 

대체 무엇이 우리 경제를 디플레이션의 늪지대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인가. 지금의 디플레는 단언컨대 정부와 정치가 만들어 낸 정부 실패 때문이다. 고질적인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생산성 임금체제를 가로막는 것은 물론이고 지난 수년 동안 혁신을 금지하는 수많은 엉터리 경제 법률들이 쏟아진 것이 그 원인이다. 노동경직성은 임금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비정규직 등 경제 내부의 식민지적 노동시장을 만들어 내면서 평균적인 소비여력을 약화시켜 왔다.

 

최근 사례로는 단말기 유통시장의 정상적인 소비활동을 교란시킨 단통법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각종 규제정책과 무지의 법률들이 물귀신처럼 경제의 발목을 잡아 끌어내리고 있는 것이다. 대형마트 규제가 소비의 퇴장을 초래하고,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시장을 더 쪼그라들게 만들며, 수백개의 도장을 요구하는 인허가 규제는 창의적 투자를 억제하고 있다. 대형마트 강제휴무만 해도 연간 적어도 3조원의 소비 감소를 초래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유통규제에 대해서는 국내외 수많은 논문이 나와 있다.

 

전통시장 보호론도 유통혁신을 가로막고 있고 골목상권 보호론은 골목경제의 창조적 파괴를 아예 금지한다. 유통구조개선법이 유통구조의 혁신을 가로막는 현상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기업구조조정을 틀어막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내고 있다. 금융감독권을 큰 칼처럼 휘두르면서도 기업구조조정은 오히려 틀어막아 좀비기업을 양산하고 산업경쟁력을 급속도로 약화시키는 중이다.

 

정치권은 부작용을 뻔히 보면서도 더 큰 규제를 쏟아내고, 정부는 자기책임을 부인한 채 효과도 적은 정책수단인 금리만 탓하고 한국은행 핑계만 대고 있다. 그 어떤 경제적 혁신도 불가능하도록 기업활동을 모조리 틀어막아 놓고 디플레를 걱정한다는 정부 논리가 우습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니 보호니 하는 온갖 종류의 정치적 구호들이 난무하는 것은 한마디로 현상의 고수요, 이대로 살다 죽자는 것인데 그 결과를 지금 목도하고 있을 뿐이다. 무슨 디플레를 걱정한다는 것인가. 정부의 실패가 디플레이션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며 이런 현상은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디플레의 늪지대에서 빠져나오는 첫걸음은 먼저 디플레의 원인인 정부 실패, 규제의 함정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시인하는 것이다. 그래야 살 길이 열린다. 이대로는 절벽으로 달려갈 뿐이다. 벌써 2017년 위기설, 2018년 위기설 등이 돌고 있지 않나. 디플레의 보이지 않는 힘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둔하거나 비겁하거나, 아니라면 둘 모두일 것이다.

 

 

■ ‘김영란법’ 국회 통과 그 후, 말말말

 

[한겨레신문 사설-20150305목] ‘김영란법’, 성급한 흠집내기를 경계한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개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4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겠다고 밝히는 등 위헌 논란도 본격화할 조짐이다.

 

법률이 시행도 되기 전에, 더구나 시행령이나 예규 등을 통해 실제로 어떻게 집행될지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기도 전에 이런 말들이 나오는 것은 성급할뿐더러 어색한 일이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김영란법의 취지와 그 대강에 찬성하는 마당에 괜한 흠집내기로 비치기 십상이다.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한 만큼 지금은 법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게 지혜와 노력을 다하는 것이 마땅하다. 수정과 보완을 한다면서 법 취지를 훼손하거나 예외조항 추가 등의 편법으로 법을 형해화시키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애초 김영란법의 또 다른 축인 ‘이해충돌 방지’ 부분에 대한 입법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원래 김영란법은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 부분과 ‘이해충돌 방지’ 부분이 함께 시행되도록 설계됐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해충돌 방지 부분은 위헌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미뤄졌지만, 처음 구상대로 이들 부분이 함께 종합적으로 시행되어야 부패 차단과 투명사회 실현이라는 목표가 온전히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추가 입법이나 개정 등 어떤 형태로든 같은 시점부터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영란법이 실효성 있게 집행되려면 이것 말고도 가다듬어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졸속으로 언론 등 민간영역을 추가하는 바람에 이 법의 좋은 취지가 언론 탄압이나 길들이기에 악용될 위험에 대한 대비책 등은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검찰과 경찰의 권한이 크게 확대된 데 반해 이들의 자의적인 법 집행을 막을 장치는 허술하기만 하다. 국회 일각에서 적용 대상을 노조·시민단체·변호사 등 민간의 다른 영역으로 더 확대하자는 말도 나오는 모양이지만, 이는 지금보다 더한 ‘물타기’로 법을 무력화하려는 꼼수일 뿐이다.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원천 차단하자는 애초 입법 취지에 맞추려면 오히려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는 게 더 시급하다.

 

시행령을 통해 법 집행의 기준을 명확히 하는 일도 중요하다. 구체적인 문제들을 꼼꼼하게 담아 규율해야 법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실물경제에 끼칠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법 시행을 연착륙시키는 지혜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런 수정과 보완은 법의 실행력을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305목] 김영란법, 시행 전에 반드시 보완해야 실효 거둔다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금품수수금지법)에 대해 보완 움직임이 일고 있다. 여야의 압도적인 찬성표로 통과된 지 불과 하루 만이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4일 “입법의 미비점이나 부작용에 대해 겸허한 자세로 목소리를 듣고 앞으로 1년6개월의 준비 기간에 입법에 보완이 필요하면 하겠다”고 밝혔다.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쳐 (문제가 있는 조항은)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청렴도를 개선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대상과 처벌범위가 명확해야 한다. 또 이 법의 조항이 헌법과 형법 등 다른 법률과 충돌해선 안 된다. 이 법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라도 법 시행 이전에 문제점을 반드시 보완해야 한다.

 

  우선 적용대상 중 공직자가 아닌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을 포함시킨 것은 위헌소지가 크다. 헌법 전문가 중 상당수가 위헌이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 반대로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와 정당인은 광범위한 예외조항을 둬 빠져나갔다. 국민 세금으로 보수를 받는 선출직 공직자야말로 이 법의 대상에 꼭 포함시켜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처벌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이 법은 100만원 넘는 금품·접대를 받으면 직무관련성·대가성을 불문하고 처벌하게 돼 있다. 사회상규에 비춰볼 때 공직자가 100만원 넘는 돈을 받을 경우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100만원 이하라도 직무관련성이 있으면 과태료 처벌을 하게 돼 있다. 현 공무원 윤리강령은 1회 접대비 한도를 3만원으로 정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소갈비에 소주 한잔 걸쳐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현재도 검찰은 대가성이 있는 경우 설렁탕·삼겹살집에서 접대받은 금액까지 뇌물액수에 포함해 기소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수사권을 남용할 소지가 다분하고, 가뜩이나 침체된 내수 경제는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따라서 법 취지를 살리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처벌 대상과 범위를 보다 명확히 규정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205목] 양심 걸고 ‘누더기 김영란법’ 유예 중에 고쳐라

 

국회는 오랜 산고 끝에 그제 ‘김영란법’으로 불려 온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여야 내부는 잔칫집 분위기이긴커녕 자괴감만 넘쳐나고 있다. 여야 합의 처리를 주도했던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필요하면 보완 입법을 하겠다”고 공언할 정도다. 공직 사회의 부패 사슬을 끊어 낸다는 취지는 퇴색되고 위헌 소지만 가득한 ‘누더기 법안’으로 전락한 데 따른 당연할 귀결이다. 여야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법안이 중절되기를 기다릴 요량이 아니라면 ‘제대로 된 김영란법’이란 옥동자를 재탄생시키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김영란법이 엉뚱하게 변질되는 전 과정은 후진적 ‘여의도 정치’의 진수였다. 2011년 6월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 이름으로 성안된 정부안은 공직자의 금품 수수를 알고도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해 처벌할 수 없었던 허점을 메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그제 본회의를 통과한 김영란법은 이름만 같았을 뿐 유전인자가 전혀 다른 짝퉁이었다. 무엇보다 심의 과정에서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을 법 적용 대상에 끼워 넣으면서 위헌 시비를 자초하면서다. 언론 자유의 보장이라는 또 다른 헌법적 가치를 희생하면서까지 언론인 등을 욱여넣은 건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언론 못잖게 공공성이 강한 금융기관이나 정부 예산을 쓰는 시민단체들은 제외한 이유는 뭔가. 형평성 논란이나 위헌 시비가 일어 법 자체가 유산되기를 바라는 심보가 아니라면 하기 어려운 어깃장을 부린 꼴이다.

 

여야 지도부가 이런 속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통과시킨 게 더 큰 문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위헌 소지가 있는 것을 여론에 밀려 통과시키게 됐다”고 고백했지 않은가.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도 본회의 처리 전 “나도 확신이 없다”며 찜찜해했다. 오죽하면 “위헌적이고 법치주의에 반하는 요소를 다분히 안고 있는 걸 알면서도 인기영합주의에 꽂혀 합의한 졸렬입법”(이상민 법사위원장)이란 고해성사까지 나왔겠나. 결국 문제가 많지만 선거에 부담 될까 봐 통과시켰다는 얘기다.

 

더 가관인 것은 그 와중에도 여야가 꼼수까지 합작해 냈다는 점이다. 1년 6개월의 법안 시행 유예기간을 둠으로써 ‘19대 의원’들은 법망에서 빠진 것이다. 게다가 의원 등 선출직의 ‘청탁’은 양성화하는 길도 터놓았다.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한다면서 정치인을 봐주고 푼돈을 받을 개연성이 있는 일선 민원창구 공무원들은 단속한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여야는 정녕 이런 블랙 코미디를 연출하고도 시치미를 떼고 말 것인가.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법안의 유예기간 중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 김무성 대표는 어제 시행령 등을 조정해 이번에 통과된 법안 중 접대·선물제공 범위 등 비현실적 부분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회 스스로 진정한 ‘공직 부패방지법’을 만든다는 소명 의식을 갖고 근본적 재개정에 나설 때다.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거론하기 전에 과잉 입법이나 위헌 우려가 큰 적용 대상은 줄이고, 죄형법정주의에 맞게 정치인 예외 조항도 삭제하기 바란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사설

 

[중앙일보 사설-20150305목] 급기야 대법원장의 항의를 받은 국회

 

김영란법 사태는 국회가 입법권을 남용한 것이다. 국회는 권리는 이토록 마구 휘두르면서 정작 의무는 내팽개치고 있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40일이 넘도록 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임명동의 요청이 들어온 공직 후보자에 대해 국회가 청문회와 표결을 진행하는 건 관련법이 정한 의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박 후보자가 1988년 박종철 고문치사 수사팀의 일원으로서 ‘은폐된 고문 관련자’에 대한 추가 수사에 소극적이었던 책임이 있다며 청문회를 거부하고 있다. 박 후보자는 당시 수사검사 4명 중 막내였으며 상관들은 이미 헌법재판관·국회의원 등을 거침으로써 사회의 ‘책임성 검증’을 통과했다. 이런 사실관계와 상관 없이 설사 박 후보자가 논란의 인물이라 하더라도 청문회는 열려야 한다. 후보자의 설명을 듣고 표결을 통해 판단하라는 게 국민이 국회에 위임한 절차다. 이런 규정을 새정치연합이라는 특정 정치세력이 무시할 수는 없다.

 

  새정치연합이 전혀 설득력이 없는 이유로 절차를 가로막자 급기야 대법원장이 국회의장에게 신속한 진행을 요청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각 헌법기관은 각자 맡은 절차를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문제의 정곡을 찌른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청문회 거부는 삼권분립과 헌법기관의 의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위협하는 것이다.

 

  양 대법원장은 “대법관 공석이 장기화한다면 신속하고 적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게 되는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우려도 거론했다. 지금 정원이 채워지지 않고 있는 대법원 2부에는 구 민주당의 대표를 역임한 한명숙 의원의 9억원대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이 계류 중이다. 한 의원은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현역 의원이라는 이유로 법정 구속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 의원이 대법 판결에 따라 법정 구속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새정치연합이 의도적으로 박 후보자 청문회를 막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등장한다. 새정치연합은 이런 시선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라도 원칙과 정도(正道)로 돌아가야 한다.

 

 

 

 

■ 어린이집 CCTV 법안 부결

 

[한국일보 사설-20150304목] 어린이집 CCTV 법안부결 부른 무책임 무능

 

어린이집 폐쇄회로TV(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부결 파장이 거세다. 학부모들과 학부모 단체들은 어이없어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합의처리를 약속했던 여야 지도부는 전전긍긍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여당 내에서는 원내 지도부의 안이한 대응과 전략부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새누리당 아동학대근절특위 간사인 신의진 의원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간사직을 사퇴했다.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지난 1월 인천 송도 어린이집의 충격적 폭행사건을 계기로 국민들 사이에서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 가운데 추진됐다. 그래서 보건복지위가 만장일치로 법안을 통과시켰고, 여야는 본회의 합의처리에 의견을 함께 했다. 그런 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찬성표는 가결에 필요한 과반에 불과 3표 모자랐다. 표결에 앞서 상당수 여야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이탈했고, 소극적인 반대라고 할 수 있는 기권이 46표에 달했다. 여야 원내지도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임했더라면 통과될 수도 있었다는 의미다. 준비했던 찬성토론도 하지 않았다니 여당 내에서 지도부의 전략부재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의원들이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해 어린이집 원장들의 압력에 굴복한 게 아니냐는 비난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표만 놓고 보면 어린이집 원장보다는 학부모 표가 훨씬 많다. CCTV설치로 인한 교사들의 인권침해 우려가 부결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하는 이유다. 법사위에서는 개정안 내용 중 CCTV를 유ㆍ무선 인터넷에 연결해 학부모들이 실시간 어린이집 상황을 볼 수 있는‘네트워크 카메라’(웹카메라) 설치 조항을 삭제했지만 그런 우려를 완전히 털어내지는 못했다. 비등한 여론만 믿고 졸속으로 법안을 추진했다가 낭패를 봤다고 보는 게 보다 진상에 가깝다.

 

개정안에는 CCTV 설치 의무화 내용만이 아니라 아동학대 범죄가 일어났을 경우 어린이집 운영제한 강화, 보육교사의 처우개선,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보육교사 인성교육 강화 등의 방안도 함께 담고 있다. 결국 개정안이 부결되는 바람에 인천 송도 어린이집 폭행 사건 이후 재발방지를 위해 강구한 여러 대책들이 하나도 법에 반영되지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여당 지도부는 야당과 협의해 4월 임시국회에 재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선뜻 믿음이 안 간다. 이번에는 보다 철저히 준비해 똑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20150305목] 국회는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는가

 

3일 국회가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를 없던 일로 하고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 법안을 뒷전으로 미룬 것은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장면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득표에 골몰하면서 아이들의 안전과 국민 건강을 내팽개쳤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국회의 존재 자체가 의심이 들 정도다.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나자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4월 국회 처리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이번의 황당한 처리 과정을 보면 약속이 지켜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CCTV 의무화를 비롯한 어린이집 안전 강화를 담은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지난달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한 것이다. 3일 법사위에서 웹카메라 설치 조항을 삭제해 흠집을 내더니 본회의에서 의원들이 자리를 뜨거나 기권하는 수법으로 부결처리 했다. 보건복지위 소속 일부 의원은 기권에 합류했다. 상임위에서 찬성할 때가 일주일 전인데 그리 했다. 또 천신만고 끝에 복지위를 통과한 건강증진법은 법사위에서 반대 토론도 없이 법안심사소위원회로 넘겨 처리를 무산시켰다. 누가 봐도 둘 다 정상적인 과정을 밟았다고 보기 어렵다.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지난 1월 인천 K어린이집 교사의 ‘핵 펀치’ 사건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CCTV 의무화는 2005년 이후 10번째 도전이다. 이뿐 아니라 보육교사 처우 개선 및 인성교육 강화, 내부고발자 보호조치 등의 대책을 담고 있다. 이것들이 모두 물거품이 됐다. 이번 법안이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적어도 필요조건은 된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4일 “반대 또는 기권한 의원들이 어린이집의 압박 때문에 그리 한 게 아니라 나름 소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거들었다. 일부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집 원장들이 지역구 의원들에게 압력을 가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의원들은 국회 전광판의 본인 이름에 붉은색(반대), 노란색(기권) 등이 켜진 것을 원장들이 봐주길 기대할 것이다.

 

  담뱃갑 경고 그림은 2002년 이후 11번째 도전이다. 13년 만에 복지위를 넘었으니 일사천리로 통과할 걸로 기대했다. 법사위에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흡연권이니, 행복추구권이니 하는 해괴한 논리로 가로막았다. 경고 그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한 효과적 금연정책이다. 호주·캐나다 등 77개국이 도입했다. 금연 분야 비전문가들이 모인 법사위에서 “금연효과 검증이 안 됐다”며 막은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담배회사의 로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국회는 더 이상 국민을 우롱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 안전과 국민 건강은 뒷전이고 표만 좇는다면 이익단체의 대표 그 이상도 아니다. 표는 좇는다고 오는 게 아니다. 의정 활동을 제대로 하면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다. 이미 인터넷에는 반대·기권 의원 명단이 나돌고 있다. 국민들은 4월 국회에서 두 가지 법안에 대해 누가, 어떻게 표결을 하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305목] 국회가 어린이집 아동 학대 방지대책 내놓아라

 

그제 국회 본회의에서 어린이집 폐쇄회로(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부결 처리됐다. 재석 171명 가운데 찬성 83명, 반대 42명, 기권 46명으로 의결정족수인 과반(86표)에 세 표가 모자랐다. 개정안은 지난 1월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벌어진 경악할 만한 수준의 아동폭행 동영상이 공개된 뒤 만들어졌다. 보육교사의 인권 침해 논란이 있었지만 여야 의원들은 만장일치 합의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보육교사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학대받는 아동의 인권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무난하게 통과될 것으로 예상됐던 본회의에서는 결과가 뒤집혔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들이 지역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이익단체인 어린이집의 원장과 보육교사의 보복을 두려워해 눈치를 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개정안은 CCTV 설치를 학부모 전원이 반대하면 의무화 대상에서 제외하고 영상 열람은 학대행위를 의심하는 학부모와 수사기관으로 제한했다. 보육교사의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도 뒤늦게 보육교사의 인권침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의원들이 다시 제동을 걸었다. 인천 어린이집 사건이 터지자 안심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는 대책을 내놓겠다고 앞다퉈 약속했던 여야가 전국의 학부모를 우롱한 셈이다. 이런 식이라면 불특정 다수인을 감시하는 전국의 교통·방범 CCTV는 물론 은행, 편의점, 병원 등에 설치된 CCTV도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모두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만하다. 학부모들은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제대로 된 건 CCTV 의무화 하나였는데 어이가 없다. 이민 가고 싶다”는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불안에 떨고 있는 부모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개정안에 반대표를 던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야는 모두 개정안 부결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 4월 임시국회에서 재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어제 “반대하거나 기권한 의원들의 이유를 들어 보니 단순히 어린이집의 압박 때문이 아니라 나름 소신이 있기 때문에 그런 상태라면 그대로 (개정안을) 재추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반대나 기권을 한 의원들이 아동 학대를 방지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305목] 정개특위, 한가하게 시간 끌 여유 없다

 

그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구성 결의에 따른 정개특위의 활동 기한은 8월31일이다. 결의에는 기한을 연장할 수 있는 내용이 일절 들어있지 않아, 당장 구성한다 해도 휴일을 포함해 앞으로 200일 남짓한 시간 여유뿐이다. 결의가 명시했듯, 정개특위는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정당법 등 여야의 이해가 날카롭게 부딪칠 수 있는 의제를 다룬다. 그만큼 그때그때의 정치상황에 따라 파행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여야 각각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내부 이견의 조정 필요성까지 감안하면 여야 모두 느긋할 처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당장 정개특위 위원장 자리를 둘러싸고 여당 중진의원들의 신경전부터 벌어지고 있다. 특위 위원장은 여야가 번갈아 맡아 온 관례에 따라 이번 정개특위 위원장은 여당이 맡게 된다. 그런데 4선의 이병석(경북 포항북) 이주영(경남 창원ㆍ마산ㆍ합포) 정병국(경기 여주ㆍ양평ㆍ가평) 의원을 비롯한 10명 내외가 자천타천으로 위원장을 희망하고 있어 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다.

 

위원장 인선뿐만이 아니다. 여야 각각 10명인 위원 인선을 둘러싼 내부 줄다리기도 이미 치열하다. 정개특위 구성 결의는 지역구 개편 가능성이 있는 의원은 배제하도록 했다.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선거구 개편이 사실상 예고된 지역구만 60곳이 넘고, 여기에는 과소인구 지역인 농어촌이 우선 포함되게 마련이다. 이를 고려한 농어촌 지역 출신 의원들의 ‘정개특위 배제’ 방침에 여야 틀을 넘어 모두가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스스로의 이해가 걸린 문제를 맡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회적 상식이다.

 

특위 구성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현재 정치권의 이 같은 이견은 앞으로 특위가 구성된 뒤 본격적으로 선거구나 선거제도 개편 논의 단계에서 빚어질 갈등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헌재 결정으로 선거구 개편이 예고된 60곳 지역구 문제뿐 아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달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 등도 여론의 커다란 반향을 부른 바 있다. 상대적 유ㆍ불리 계산에 따른 여야 이해가 현실적으로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타당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은 선관위 제안을 통째로 깔아뭉갤 수는 없다. 결국 하나하나가 예민한 문제들인 여야 각각의 선거제도 혁신안 등과 선관위 제안 등을 함께 논의하다 보면 논의과정이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에 비추어볼 때 정개특위가 구성 단계서부터 한가하게 시간을 끌 여유는 없다. 이해가 복잡하게 뒤엉킨 실타래를 일일이 풀기 어렵다면, 단칼에 내리쳐 끊어내는 것도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과연 정치적 타산이 아니라 상식의 칼을 꺼내 들 수 있느냐는 여야 지도부의 역량에 달렸다. 조속한 정개특위 구성과 순항을 위해서 여야 지도부가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한국일보 사설-20150305목] 법령 몰라 외국인학교 감사 안 했다는 교육부

 

교육부가 법령해석을 잘못해 국내 외국교육기관에 대해 감사를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교육부는 그 동안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에 외국교육기관에 대해 감사할 권한이 명시돼 있지 않아 학생정원, 교원 등의 운영상황만 보고받을 수 있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최근 교육부의 법률의뢰를 받은 정부법무공단은 “특별법에는 외국교육기관에 대한 지도감독을 교육부 장관이 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이 조항을 포괄적으로 해석해 감사가 가능하다”고 회신했다. 현행 법으로도 교육부가 감사를 실시할 수 있고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설립승인 취소 등의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만든 법의 내용도 몰라 의당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에 따라 2010년부터 경제자유구역에 초ㆍ중등학교 2곳과 대학교 5곳 등 7곳이 설립됐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위해 설치돼 교육과정 운영 등에서 특례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 학교에 재학 중인 내국인 비율이 80%를 넘는 등 내국인을 위한 교육기관처럼 운영돼 논란을 빚어왔다. 교육감 판단에 따라 내국인을 30~50%까지 허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실제로 이를 지키는 학교는 한 곳도 없다. 외국어 중점 교육이 가능하고 외국인과 어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내국인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연간 학비는 수천 만원에 이를 정도로 비싸 일부 계층을 위한 학교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처럼 당초 설립 취지와는 다르게 내국인 귀족학교처럼 운영되는데도 교육당국은 감시의 사각지대에 방치해왔다. 교육부가 직무를 태만히 하는 사이 일부 학교의 방만한 운영이 말썽을 빚기도 했다. 대구국제학교의 경우 2013년 과도한 등록금 인상과 수의계약 남발, 외국인 학생 특혜 등의 문제가 드러났다.

 

상황이 이런데도 교육부는 규제를 완화한다며 지난해 11월 국내 학교법인도 외국법인과 합작해 외국교육기관 설립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멀쩡한 감시 권한은 행사하지 않고 외국교육기관 유치만 늘리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격이다. 교육부의 역할은 외국인 투자 유치가 아니라 교육기관이 올바른 교육과 학습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는 데 있다. 외국교육기관 설립 5년이 지난 올해는 전면적인 특별감사를 실시해야 한다. 설립 취지에 맞춰 내국인 입학 자격 강화와 입학 비율 하향 조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305목] ‘문화 융성’ 정책과 어긋나는 번역사업 홀대

 

외국의 고전과 중요한 학술서를 번역해 보급하는 국가 번역사업이 심각하게 홀대받고 있다. 정부 지원 국외 고전 번역사업을 담당하는 유일한 공공기관인 한국연구재단 자료를 보면, 명저 번역 지원사업 예산과 과제 수가 지난 몇년 새 크게 줄고 있다. 올해 사업 예산은 고작 10억6300만원으로 2011년 24억원의 절반도 안 된다고 한다. 같은 기간 과제 건수도 89개에서 24개로 줄었다. 한해 사업 예산 10억여원은 이공계 연구과제 1건 지원과 맞먹는 수준이니 ‘국가사업’을 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번역은 무엇보다 지식을 대중화하고 민주화한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 학문이나 지식 향유 활동이 특정한 소수에게 독점되지 않고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다. 가령 서양의 고전 철학서를 번역해 놓으면, 우리말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 철학을 논의하는 데 참여할 수 있다. 어떤 저작이 번역되어 있지 않다면, 그 저작을 외국어로 읽을 수 있는 사람만이 지식을 독점하고 자신이 해석한 지식을 일방적으로 대중에게 부과할 수 있게 된다.

기 획재정부 관계자들은 예산 협의 단계에서 “학자들이 영어로 읽을 수 있는데 굳이 예산을 들여 번역할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했다고 한다. 번역이 시민들한테 갖는 지식 대중화, 민주화 차원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다. 최만리와 같은 학자들이 한글 창제를 반대하면서 드러낸 얕은 생각과 별로 다를 게 없다.

 

번역사업은 학술 발전의 기초가 된다. 학문은 모국어로 연구하는 게 외국어로 연구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경쟁력을 발휘하기 좋다. 외국과 우리나라 양쪽의 문화적 맥락을 고려해 잘 번역한 저작물이 제공된다면, 외국어를 익히느라 그리고 외국어로 된 원서를 읽느라 들이는 수고를 많이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외국 명저 번역에 앞장서온 일본이 꽤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우리나라는 평화상 1건 말고 학술상은 내지 못한 점을 생각해볼 일이다.

정 부는 이제부터라도 국가 번역사업 예산을 크게 늘리기 바란다. 번역 지원사업을 지금처럼 한국연구재단에 맡기면 충분한지, 아니면 별도의 전담기관을 두는 게 적당할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출판인이나 학자들도 번역 지원사업 과제를 선정할 때 학술적 가치와 대중성을 함께 고려하여 사업의 저변을 넓힐 필요가 있다. 정부와 출판계, 학계 모두 명저 번역은 국민이 지식을 향유할 보편적 권리를 충족시키는 의미깊은 사업임을 인식해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305목] 제1야당까지 인권위원 ‘밀실 지명’인가

새정치민주연합이 국가인권위원회 야당 추천 몫 상임위원을 ‘밀실 선정’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7일 퇴임하는 장명숙 인권위원 후임으로 이경숙 전 열린우리당 의원을 추천하는 과정에서 공개적인 추천 기준이나 절차를 마련하지 않았고 시민사회의 면담 요청마저 거부했다고 해서다.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과 민변 소수자인권위원회 등 인권단체는 “인권 경력이 없는 무자격 인권위원을 선정해온 여당, 청와대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며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인권단체의 새정치연합에 대한 실망과 분노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지난 1월 새정치연합은 인권위원 공개 추천 절차를 도입했지만 당 홈페이지에 공모 게시한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공개적인 추천 기준을 마련하거나 추천위원회에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등 인권단체의 요구는 결과적으로 묵살됐다. 정치인 출신의 명망가를 추천한 데 대한 적절성 시비도 일고 있다. 비록 현재 당원이 아니라고 하지만 자신이 대표하는 집단이나 사회계층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시될 수밖에 없는 인선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새누리당이 홈페이지 공모 방식을 통해 당 기획위원 출신의 이은경 변호사를 인권위원에 추천한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 셈이다.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가 2004년 가입 당시 A등급이던 인권위에 대해 지난해 두 차례나 등급 심사 결정을 보류한 것은 바로 이런 인권위원 인선 방식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인권위원 인선과 관련해 대통령 4명, 국회 4명, 대법원장 3명 식으로 임명권자만 밝히고 있을 뿐 인선 절차는 규정하지 않는다. 인선 절차를 포함한 인권위법 개정안은 2년째 심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그런 마당에 제1야당마저 인권위원을 정치적으로 선정했다는 의심을 받는다면 인권위의 앞날은 암담할 수밖에 없다. 오는 16일 ICC 등급 심사를 앞두고 걱정스럽다.

 

현병철 위원장 체제에서 인권위가 온갖 비난과 수모를 당하는 상황은 그리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런 마당에 청와대와 여당의 ‘보은인사’를 비판해온 제1야당이 똑같은 방식으로 인권위의 위상 추락에 일조하는 모습이 더 보기 딱하다. 인권위를 탄생시킨 주역이기도 한 새정치연합은 지금이라도 인권위 위상 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도리일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305목] 국회, 흡연 경고그림 법안 처리 왜 미적대나

담뱃갑에 의무적으로 흡연 경고그림을 넣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의 2월 국회 처리가 무산됐다. 해당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는 통과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가 제동을 걸었다. 담뱃갑 흡연 경고그림 의무화 법안이 추진 도중 좌초한 것은 이번이 12번째다. 국민 뜻을 받아들여 정부가 입안한 정책이 국회에만 들어가면 사장되니 이러고도 국회가 국민의 대의기관을 자임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법사위의 법안 처리 무산 과정과 사유도 이해하기 어렵다. 법사위는 “흡연권과 행복추구권 침해로, 좀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이의 제기를 수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법안은 복지위에서 장기간 심의와 보완을 거듭한 끝에 여야가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또한 김 의원이 문제 제기한 흡연권과 행복추구권 훼손, 흡연 그림의 금연 효과는 지난 13년간 전문가와 시민, 국회의원이 수많은 논의와 검토를 통해 충분히 검증한 사안이다. 뭘 더 논의한단 말인가. 새 법안이 여타 법률과 충돌하지 않는지 등을 검토하는 법사위가 법안 내용을 문제 삼아 입법 추진을 지연시킨 것도 문제다.

 

흡연이 폐암의 가장 큰 원인이자 폐 건강을 해치는 주범임은 움직일 수 없는 과학적 사실이다. 담뱃갑 그림경고가 두려움을 주는 뇌부위를 활성화시켜 흡연 욕구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크다는 연구 결과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이에 따라 세계 77개국이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세계보건기구(WHO)도 효과적인 금연정책으로 권장하고 있다. 한국은 2005년 비준한 ‘담배규제기본협약’에서 2008년까지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를 이행키로 한 약속을 아직까지 지키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의 신뢰를 위해서라도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흡연으로 인한 경제적 폐해도 심각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흡연에 의한 건강보험 재정 손실은 연간 1조7000억원, 연간 사회·경제적 비용은 3조2000억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흡연 인구는 갈수록 줄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회원국 가운데 1위다. 획기적인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국회는 4월 정기 국회에서 이 개정안을 재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회는 국민건강증진을 외면한 채 담배업계 로비에 휘둘리고 있다는 항간의 의혹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305목] 사우디에 원전 수출 마무리 잘해야

 

중동을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스마트 원자로’ 수출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상업용 원전 수출은 이명박(MB) 정부의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두 번째이지만 중소형 원전 수출은 처음이다. 본계약은 남아 있지만 스마트 원전 수출이 이뤄진다면 그 의미는 크다.

 

‘스마트 원자로’는 한국원자력연구소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으로 탈(脫)대형 원전 시대에 걸맞은 최적 기술 에너지 상품이다. 대형 원전의 10분의1 수준인 10만㎾급 중소형이어서 사고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고 안전 면에서 유리하다. 적은 비용으로 전기 생산과 함께 해수 담수화 등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을 비롯해 러시아·프랑스 등 원전 선진국들이 보다 안전한 소형 원자력 발전 시대를 선언하고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이다.

 

중동에 첫 수출 길이 트였다고 하지만 본계약까지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 MB 정부 당시인 2009년 12월 UAE에 원자로 첫 수출에 성공하면서 대대적 홍보를 했지만 미국과 일본·프랑스 등 경쟁국 가격과 현격한 차이가 나는 덤핑 수출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수출 대가로 핵폐기물 처분 보증과 특전사 파병 약속, 100억 달러 규모의 대출 등 이면계약이 폭로되면서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더욱이 2010년 3월 터키에 ‘한국형 원자로 2기를 건설한다’는 양국 간 공동선언서를 발표하고 그해 6월 한·터키 정상회담에서 ‘원전사업 협력 양해각서’까지 맺었지만 결국 본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채 무산된 사례도 있다. 당시 터키 정부는 수주전에 뛰어든 일본·캐나다·중국 등과 가격조건 등을 저울질하면서 한국을 들러리 카드로 적절하게 활용했던 것이다. MB 정부는 원전 수출이 미래의 성장동력이라고 요란하게 선전했지만 결국 UAE를 제외하면 원자로 수출 계약을 성사시킨 것은 없다.

 

1997년 개발에 착수한 이후 18년간의 각고의 노력 끝에 한국형 중소형 원자로가 수출 기회를 잡았지만 워낙 변화무쌍한 시장인 만큼 지금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2050년까지 3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세계 중소형 원전 시장을 우리가 선도할 절호의 기회로 삼자는 의미다. 소형 원자로 시장에 강한 집념을 가진 미국 등 선진국들이 중동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반격할 수 있는 여지도 살펴봐야 한다. MB 정부의 원전 정책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내실 있는 성과를 거둘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305목] 한국 증시만 박스권에 갇힌 저간의 사연

 

상장기업 우대하는 획기적 증권정책 필요하다

 

게걸음을 하던 코스피지수가 5개월 만에 다시 2000 언저리까지 올랐다. 중국의 추가 금리인하 소식과 이달 말로 예정된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 완화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리스 부채연장 합의, 미국의 조기 금리인상 우려 완화 등도 주가를 끌어올린 요인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국내 증시가 추세 상승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견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박스피’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주가가 2012년 이후 1800~2100 사이 박스권을 장기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상승은 설 연휴 이후 어제까지 1조원 넘는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외국인이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언제 다시 팔고 나갈지 모른다. 언제부턴가 한국 증시는 단기 시세차익만을 노리는 투기장처럼 돼버렸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각종 제도가 상장기업을 옥죄는 방향으로 바뀐 탓이 크다. 상장에 따른 자금조달과 상장유지 및 자금회수가 수월해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다. 상장사가 되면 엄격한 공시의무를 지고 대주주 의결권 제한, 사외이사 선임요건 강화, 감사위원회 의무설치 등 수많은 규제를 받게 된다. 이제는 배당까지 강압적으로 높게 주어야 한다. 잘못하다간 투기세력의 먹잇감이 되고 경영권 위협까지 받는다. 주가라도 급락하면 투자자 항의가 빗발친다.

 

이런 식이니 우량기업들이 상장을 꺼리지 않을 수 없다. 오너 지분이 큰 기업은 더욱 그렇다. 기업공개(IPO) 규모가 2010년 4조3000억원에서 2012년 4600억원으로 쪼그라든 것이 잘 말해준다. 지난해에는 1조7000억원으로 늘었지만 전통적인 자금조달용 IPO보다는 기업인수목적 회사인 스팩(SPAC)과 구주매출을 통한 IPO가 급증했다.

 

결국 신규 우량기업 공급이 거의 끊기고 전통 상장사들의 성장성은 한계에 도달하고 말았다. 정부는 금융개혁을 4대개혁 중 하나로 꼽고 있지만 상장사를 옥죄는 각종 규제부터 푸는 게 급선무다. 그래야 수십년 앞을 내다보고 상장하는 기업도 생기고 주가도 박스권 상단을 뚫고 훨훨 날아갈 수 있다. 정부는 증시가 중산층 자산증식의 장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을 우대하라. 지금은 창업자 이익을 회수하거나 성장이 끝난 기업의 ‘땡처리’를 원하는 대주주가 있는 기업만 상장하고 있다. 상장하려는 기업가들에게 미쳤냐고 되묻는 증권시장이 어떻게 국민의 사랑을 받겠는가. 자본시장 정책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305목] 자수성가형 억만장자 보기 힘든 한국경제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가 재산이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를 넘는 전 세계 억만장자 1,826명을 조사했더니 3명 중 2명꼴인 1,191명이 창업 등으로 재산을 일군 자수성가로 나타났다. 반면 부모에게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형 부자는 230명(12.6%)에 그쳤으며 나머지 405명은 물려받은 재산을 기초로 부호 대열에 올랐다고 한다. 그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한중일 3국 간 비교다. 중국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 회장을 포함한 자수성가형 부자가 무려 98%에 달하며 일본도 86%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자수성가형 부자는 올해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29억달러)과 권혁빈 스마일게이트그룹 회장(20억달러)을 포함해 약 30%에 머물 뿐이다.

 

자수성가형 부호들은 정보기술(IT)은 물론 바이오·의류·서비스 등 다양한 신성장 분야에서 시대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차량제공 서비스 업체인 우버와 숙박공유 업체인 에어비앤비 등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대표적이다. 다들 혁신적 아이디어로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막대한 부를 쌓으며 국가 경제에 활력을 북돋워주고 있는 셈이다. 중국도 최근 마 회장 같은 신흥거부가 속속 탄생하면서 젊은이들의 뜨거운 창업 열기를 이끌어내고 있다니 부러울 따름이다.

 

모건스탠리는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한국을 상속형 경제로, 미국은 테크형 억만장자가 많은 혁신형 경제로 분류하고 있다. 한국에서 기업을 새로 일으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의 활력과 역동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는 기업가정신이 사라지고 과감한 도전을 꺼리게 만드는 사회풍토의 영향이 크다. 누구든지 과감하게 창업활동에 뛰어들어 실패와 도전에 나설 수 있는 산업생태계 복원이 시급하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야말로 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자수성가형 사업가들을 많이 배출하는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305목] 이민정책 질적 전환 고민해야 할 때다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는 인류 역사에 찬란히 빛나는 그리스 문명의 발상지다. 고도의 정신문화를 담은 서양철학의 요람이기도 하다. 아테네가 이렇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개방사회'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아테네는 지중해 전역의 인재들이 몰려드는 곳이었다. 아테네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재능과 학문을 뽐낼 수 있었으며 사회는 이들의 재능을 환영하고 기꺼이 받아들였다.

 

흔히들 고대 철학자는 모두 아테네 출신인 줄로 여기지만 이는 커다란 착각이다. 본토박이는 사실상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정도다.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플라톤을 낳은 사상의 원류는 아테네가 아니라 저 멀리 소아시아 밀레토스 출신인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아낙시메네스라 할 수 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출신이며 소크라테스 이전의 파르메니데스(엘레아 출신), 제논(키프로스), 아낙사고라스(소아시아), 프로타고라스(트라키아) 등이 외국에서 태어난 뒤 아테네로 건너가 학문적 포부를 펼친 자들이다.

 

현대 문명에서 이런 개방사회의 이점을 최대한 향유하는 국가로 미국을 꼽을 수 있다. 미국 역시 꾸준히 해외 고급인력을 받아들이면서 과학과 산업발전을 꾀해온 '현대판 아테네'라 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를 떠받치고 있는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들이 2012년 발표한 보고서 '혁신과 기업가정신을 통한 스탠퍼드대의 경제적 영향력'에 따르면 이 대학교 졸업생들이 세운 기업들의 매출 총액이 매년 2조7,000억달러(약 3,000조원)로 조사됐다. 이들이 창출한 일자리는 무려 540만개에 이른다. 놀라운 것은 유학생들이다. 2000년대 이후 스탠퍼드대 출신이 세운 벤처기업의 42%가 미국 국적이 아닌 외국 국적이었다. 스탠퍼드대학원생의 28%, 그리고 박사후과정의 38%가 외국 출신이다.

 

미국이나 고대 아테네는 모두 개방사회를 특징으로 한다. 개방사회는 이처럼 국가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이 미국을 넘지 못할 이유는 바로 개방사회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이민자나 그 자녀가 창업한 회사는 2010년 경제잡지 포춘 선정 500대 기업의 40%를 차지했다."

 

우리 사회도 외국 고급두뇌들이 저마다 이 땅을 밟고 싶어하고 또한 이 땅에서 자신의 재능을 한껏 발휘하고 싶어하게 한다면 개방사회는 자연히 실현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인구절벽 현상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을 막을 해법으로 곧잘 거론되는 것이 외국인재 유입책 아닌가.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2009년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며 "해외 우수인재를 받아들이는 이민정책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외국인재 영입을 강조한 바 있다.

 

한국의 출산율은 최근 들어 1.18명에 그쳐 초(超)저출산 국가로 분류된다.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비중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인구절벽' 현상은 이미 현실이 됐다. 외국인 인적 자본을 적극 활용한 생산성 향상이 절박한 이유다.

 

물론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의 외국인 출입국 정책이 국제적 기준에 비춰봐도 충분히 개방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수한 전문인력 유치 방안도 마련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이민정책에는 장기적 인력구조 변화나 고용상황,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종합적 고려가 없는 것이 치명적 결함이다. 인재유치보다 저임금 단순 노동자 유입에 그치고 있는 현실도 이런 배경에서다.

 

서울경제신문 기획 시리즈 '이민정책 새 틀 짜라'에 따르면 현 외국인 체류자 180만명 가운데 연구자·기술자나 의사 등 전문인력은 지난해 상반기 4만9,542명이며 나머지는 비숙련 저임 노동자가 차지하고 있다. 체류 중인 전문인력은 1년 전보다 오히려 1,000여명 줄어들었다. 국가 경제의 파이를 키우고 세수증대에 기여할 수 있는 창조적 전문인력이 복지비용을 유발할 여지가 큰 저임금 체류자보다 턱없이 적은 셈이다. 이대로 가면 이민자들로 인한 경제 활성화 효과보다 사회적 비용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칫 현 서유럽 국가들이 앓고 있는 사회통합 문제가 재연될 수도 있다. 이민정책의 성패는 곧 국가의 미래를 가른다. 이민정책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시급하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시론/심보선(시인)-20150304목] 약속과 의지의 말들

 

세월호 참사로 아이들을 잃은 단원고 학부모 유가족의 증언을 담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었다. 책을 읽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처럼 거대한 사건에 휘말려 가족을 잃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유가족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을까?

 

마땅히 살아 돌아와야 했을 수백명의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 사건의 원인이 안전과 구조에 대한 책무를 방기한 이들에게 있을 때, 유가족이 느끼는 고통을, 진실을 요구하는 자신들의 목소리가 편견에 가득 찬 집단적 증오로 공격당할 때의 원통함을 당사자가 아니라면 어찌 실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질문도 하게 됐다. 책을 읽는 나는 왜 눈물을 흘리는가? 왜 고통에 사로잡히는가? 그럼에도 나는 왜 책을 덮지 못하는가? 왜 덮었다 다시 펼치는가? 공감이란 무엇일까? 공감이란 약자를 연민하는 본능일 수 있고 타인에게 일어난 사건을 나의 사건으로 해석하는 상상력일 수 있다. 혹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윤리적 태도일 수 있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 느꼈던 것은 그런 종류의 감정 이상이었다. 유가족의 말들에 귀를 기울일수록, 그 말들은 나를 포위하고 침투했다. 유가족의 말들은 세련되거나 이성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혼란스러워했고 두려워했다. 그들은 트라우마 이후의 삶, 아이들과 나눴던 순간들을 헛헛한 웃음과 뒤늦은 후회로 되새겨보는 반복 강박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유가족들의 말 속에서 하나의 절대 의지가, 이제 죽은 아이들을 위한 진실을 찾는 데 자신들의 삶을 바치겠다는 의지가 작동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들에게 진실이란 아이들과 맺은 약속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창현 학생의 엄마 최순화씨는 말했다. “창현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엄마, 엄마가 하는 일이 맞아요. 엄마가 진상규명을 위해서 그렇게 애쓰는 게 맞아요. 그러니까 엄마 더 열심히 해줘.”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맥베스>에서 말했다. “삶은 어리석은 자에 의해 씌어진,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찬 의미 없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유가족들이야말로 지금 이 세상에서 셰익스피어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들 때문에 분노의 절규 소리를 내지르면서 삶을 의미 없게 만들 수 없다. 그것은 아이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발만 내디디면 무의미로 추락할 벼랑을 바로 옆에 두고 그들은 아이들과의 약속을 상기하며, 최대한의 의지를 발휘하며, 진실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 문종택씨는 말했다. “우리가 지금 만들려고 하는 안전법과 그걸 위해 하는 우리들의 모든 행동은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유가족들의 말은 혼란 속에서 어떻게든 사람들과 함께 길을 찾으려는 노력을, 우리에게 익숙한 정치적, 경제적 셈법으로 환원될 수 없는 사유의 결과 겹을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마치 안산에서 팽목항에서 광화문에서 청운동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있는 듯했다. 마치 유가족들이 겪는 트라우마 후의 미망에 빠져드는 동시에 거기서 빠져나오려는 진실을 위한 싸움에 연루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끌려가듯 유가족을 쫓아갔다. 그렇게 수동적인 상태 속에서 나는 가슴이 뛰고 아프고 무너졌다.

 

책을 읽고 나는 생각했다. 그동안 나는 어떻게 “잊지 않겠다”는 말을 했던 것인가? 유가족들은 과거를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데 왜 나는 자유롭고도 능동적인 선택인 양 그렇게 말해 왔는가? 그렇다면 이제 “잊지 않겠다”고 감히 말할 때 나는 누구와 함께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나는 팽목항으로 향하는 유가족과 시민들의 기나긴 행렬을 보면서 이 질문에 대한 어렴풋한 답을 구할 수 있었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이기환(논설위원)-2015030목] 히잡, 아바야, 장옷

“여성들은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여서는 안된다. 머리수건을 쓰고…. 외출 때는 질밥(품 넓은 원피스)을 입으라.”

 

이슬람 경전인 코란의 구절(제24장 31절·33장 59절)이다. 여성의 머리카락이 남성을 유혹하는 요망한 부분이기 때문에 머릿수건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질밥을 입으라는 것은 여체의 윤곽을 드러내지 말라는 뜻이다. 이슬람 여성들은 바로 이런 코란의 가르침 때문에 몸과 얼굴을 가려야 했다. 지역과 종교적 성향에 따라 종류도, 명칭도 다양하다. 머리 가리개인 히잡, 얼굴과 손발을 제외하고 온몸을 가리는 아바야, 머리부터 발끝은 물론 눈까지 망사로 가리는 부르카, 얼굴만 내놓고 몸 전체를 가리는 차도르 등…. 또 눈은 보이되 얼굴 전체를 가리는 니캅, 머리와 상반신을 가리는 망토 형태의 키마르, 투피스 형태의 베일인 알 아미라, 직사각형 형태의 스카프인 샤일라 등도 있다.

 

2007년 이란에서 사극 <대장금>이 시청률 80~90%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요인 중 하나가 의상이었다고 한다. 의녀 대장금의 의관과 외출 때 걸친 장옷(쓰개치마)이 이란 여성들의 히잡 및 차도르와 비슷한 게 친밀감을 주었다는 것이다. 씩씩하게 역경을 헤쳐나가는 장금이가 비슷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이란 여성들의 심금을 울린 듯하다.

 

이번에 사우디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의 여성 통역이 걸친 의상은 사우디 전통의 외출복인 아바야(Abayah)다. 사우디에서는 만약 공공장소에서 아바야를 입지 않으면 종교경찰(무타와)의 제재를 받는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정부 대표단으로 방문한 고위직은 이슬람 의상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우디 정부의 방침 때문에 평상복을 입고 일정을 소화했다.

 

이슬람권 여성들의 전통 의상은 억압된 이슬람 여성 인권의 상징으로 읽히기도 한다. 예컨대 지난달 타계한 사우디 국왕을 조문한 미셸 오바마 미 대통령 부인은 히잡을 입지 않았다.

 

당장 ‘사우디 여성 인권을 비판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전통을 강요할 수 없듯이 ‘전통의 파괴’ 역시 강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히잡이나 아바야를 입거나 벗을 권리는 전적으로 이슬람 여성 스스로에게 있기 때문이다.

 

 

[서울신문 칼럼-곽태헌 칼럼/곽태헌(논설실장)-20150305목] 1% 위한 ‘9월 신학년제’ 왜 하려고 하나

 

박근혜 정부도 ‘9월 신학년제’ 도입을 들고나왔다. 김영삼 정부, 노무현 정부 때에도 그런 적이 있으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2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9월 신학년제’ 도입을 검토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 교육부 등 정부 측이나 신학년제 변경을 찬성하는 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 그럴듯해 보이는 이유를 대고 있다. 첫째, 겨울방학을 끝낸 뒤 3월 신학년 사이에 낀 2월의 학교 수업이 비효율적이다. ‘9월 신학년제’로 되면 여름방학도 길어져 학생들의 인턴, 현장학습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 둘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다수가 채택하고 있는 ‘9월 신학년제’를 하면 국제 교류에 도움이 된다.

 

이런 이유가 합당한 걸까. 첫째, 2월의 비효율을 개선하고 여름방학을 길게 하고 싶다면 현재의 체제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3월 신학년제’에서는 불가능하고, ‘9월 신학년제’로 바뀌어야 가능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궁색하다.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 2월의 비정상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지금처럼 11월 말에서 12월 초에 기말고사를 치를 게 아니라, 겨울방학이 끝난 뒤 2월에 시험을 치르면 상당 부분 해결된다. 기자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그랬다. 또 지금도 대학생들의 여름방학은 두 달도 넘는데 더 길게 할 이유가 있을까. 백보 양보해서 설령 그럴 필요가 있다고 해도 여름방학이 늘어난다고 인턴 자리가 쉽게 생기는 것도 아니다. 지금도 괜찮다는 인턴 자리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둘째, 나라마다 상황은 다르다. 일부 선진국처럼 하겠다는 것은 교육 사대주의와 다를 게 없다. ‘9월 신학년제’를 한다고 외국 유학생이 늘어날 이유도 없다. 외국인 유학생은 2011년 8만 9537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해에는 8만 4891명으로 떨어졌다. 이 중 중국 유학생이 59.3%로 절대 다수다.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권 유학생이 많은 것은 주요 평가지표인 국제화지수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면 정부의 보조를 받는 데 도움이 되는 데다 홍보 효과도 있어 적지 않은 대학들이 한국어를 몰라도 장학금까지 주면서 유치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학업에 뜻이 없는 적지 않은 유학생들은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고 있다.

 

보통 유학은 모국(母國)보다는 앞선 나라로 간다. 미국과 일본 같은 선진국도 아닌 데다 세계의 100대 종합대학 중 서울대 한 곳만 있는, 학문의 수준도 높지 않은 한국은 매력적인 곳이 아니다.

 

외국으로 떠나는 유학도 예전만 못하다. 초·중·고등학교 때 유학을 떠난 학생은 2006년 2만 9511명으로 정점에 올랐으나 2013년에는 1만 2374명으로 떨어졌다. 초·중·고등학생의 0.2%에 불과하다. 대학생 이상의 유학은 2011년(26만 2465명) 최고치에 오른 뒤 지난해에는 21만 9543명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된 것은 경제도 좋지 않은 데다 유학파에 대한 대접이 갈수록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외고 유학시대’를 화려하게 열었던 대원외고는 3년 전부터 유학반(국제반)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 민족사관고는 2010년 86명이 외국 대학에 합격했으나, 지난해에는 59명으로 줄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보통 1~2년은 휴학을 한다. 유학을 위해 다른 나라의 신학년과 맞추려고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어졌다는 얘기다. 유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신학년제를 바꾸겠다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다.

 

신학년 시기를 바꾸면 교육뿐 아니라 모든 부분이 영향을 받는다. 신학년을 바꾸는 데 필요한 10조원이 넘는 돈도 문제지만, 실익은 없고 엄청난 혼란과 대가만 치르게 될 것이라는 점이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소수의 유학생들을 위해 틀을 바꾸겠다면 분명 ‘정상’은 아니다. ‘아니면 말고식’의 관료들의 무책임과 대통령 앞에서 큰 것을 터뜨려야겠다는 ‘한탕주의’ 탓에 재탕, 삼탕의 신학년제 개편을 발표한 것은 아닐까. 최경환 기재부 장관, 황우여 교육부 장관을 비롯해 기재부와 교육부의 담당 국장·과장 중 도입 여부에 대한 검토를 끝내기로 한 2016년까지 현직에 있을 공직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상언(사회부문 차장)-20150305목] 도대체 골프 접대가 뭐길래

 

“골프 트리트(treat·접대)가 도대체 뭔가.” 유럽 언론사 한국 특파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김영란법’ 국회 통과 때문에 궁금한 게 많았다. 기자들은 왜 이 법의 대상에 포함됐는지부터 시작한 질문은 기자들에게 누가 왜 골프 접대를 하는지에까지 이르렀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말해줘야 하나, TV광고 속의 건강식품업체 사장님처럼 설명 수위 조절이 난감했다.

 

 같은 의문을 가진 한국 주재 외신기자, 그리고 일반 독자를 위해 그에게 한 설명을 차분하게 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기자에 대한 골프 접대가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다. 주로 기업체 홍보담당 부서에서 담당 기자나 언론사 간부들을 골프장으로 초청했다. 고위 공직자·정치인·변호사 등도 기자와의 친분 쌓기 용도로 활용했다.

 

  비약적으로 확산된 것은 90년대 중후반이다. 원인은 크게 둘이다. 우선 골프 인구가 늘었다. 기자와 취재원이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화제가 골프로 옮겨가고, 결국 “한번 같이 나갑시다”로 의기투합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박세리·박지은·김미현 선수가 미국 프로리그에서 잇따라 우승컵을 들던 시절이다. 둘째는 음주문화의 변화다. 기자와 취재원이 만나면 폭음으로 이어지는 게 다반사였다. 취재원은 기자 대접한다는 뜻으로, 기자는 취재원이 감추고 싶은 얘기까지 듣고 싶은 욕심에 흠뻑 취할 때까지 마셨다. 그러다 양쪽 모두 ‘이건 좀 아니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고, ‘몸 버리지 말고 차라리 (건전하게) 운동을 함께 하자’는 데 뜻이 모아졌다.

 

  2015년 현재, 기자에 대한 골프 접대는 현격하게 줄었다. ‘공무원과 기자들의 거리’를 강조한 노무현 정부 때부터 정부기관이나 공직자의 초청은 거의 사라졌다. 공무원에게 골프가 금기가 된 현 정부에서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남은 것은 기업체 간부나 친분 있는 정치인·변호사의 초청 정도다. 골프장 예약이 어렵지 않게 됐고 비용도 싸져 요즘엔 자기 부담으로 골프장 가는 기자가 많다. ‘개인 시간’을 중시하는 젊은 기자들은 대체로 골프에 별 관심이 없다.

 

  내년 9월부터 공직자와 기자는 골프 접대 한 번만 받아도 수사나 처벌의 대상이 된다. 공짜 골프 때문에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골프를 끊든지, 아니면 자기 돈 내고 쳐야 한다(영수증을 꼭 챙겨 보관할 필요가 있다). 민간 영역의 기자까지 끌어들인 이상한 법이기는 해도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정한 것이니 별수 없지 않은가.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305목] 시진핑의 칼과 마카오 추락

 

“젖은 물건들을 육지에서 말리고 싶다.” 16세기 초 포르투갈 뱃사람들이 마카오에 상륙하며 내세운 이유다. 이들은 현지 관리에게 뇌물을 건네고 체류 허가를 받았다. 이후 매년 뇌물을 주며 눌러앉았다. 1572년부터는 조정에 연 500냥의 땅값을 바치는 조건으로 공식 거주권을 따냈다. 뇌물 주는 자리에 우연히 조정에서 온 관리가 있었는데, 뒤가 켕긴 지방관이 부득이 돈을 국고에 넣었다고 한다.

 

이 때부터 마카오는 광둥성 샹산현에서 마카오로 이름이 바뀌었고, 1999년 말 중국에 반환될 때까지 약 450년간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다. 이곳을 거쳐 중국으로 전해진 문물은 한둘이 아니다. 기독교와 천문학, 유클리드 기하학은 물론이고 동·서양 지식교류의 가교 역할을 한 마테오 리치도 이곳으로 들어왔다. 한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인 김대건(안드레아), 최양업(토마스) 신부 역시 이곳에서 공부했다.

 

서울 중구 면적에 55만명 이상이 북적대는 마카오는 ‘동양의 라스베이거스’다. 카지노 경제가 국내총생산(GDP)의 94%나 된다. 주요 고객은 중국 본토인이다. 외래 관광객의 60%인 중국인 덕분에 2013년 카지노 매출이 452억달러(약 50조원)에 달했다. ‘원조’ 라스베이거스보다 6배나 많다.

 

그런 마카오의 카지노 수입이 지난달 역대 최대폭으로 감소했다.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49%나 줄어든 것이다. 9개월 전부터 쪼그라들었지만 반토막까지 났으니 난리다. 원인은 중국 정부의 부패 척결 정책이다. 시진핑 주석의 사정 칼날 앞에 도박꾼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춘제(중국 설) 때도 손가락만 빨았다. 인근의 홍콩 경기도 10년 만에 최악이라지만 마카오는 더하다.

 

시 주석의 ‘국가 대개조’ 칼날이 시퍼렇다. 6차례나 암살 위기를 겪으면서도 강력한 소탕작전을 펴고 있다. 회의실 시한폭탄과 독극물 주사 위협에 이어 최근엔 쿠데타 모의설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시 주석의 부패척결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관료부패 규모가 조 단위에 이른다. 관시(關係)보다 법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는 원칙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카지노 몰락 정도는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원래 뇌물로 시작된 게 마카오의 역사다. 시 주석의 목숨 건 ‘호랑이(악덕관료) 사냥’을 보면서 국가 지도자의 역할을 새삼 생각한다. 강한 리더는 존경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우린 어떤가. 뭘 해도 결기가 있어야 성공한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온종훈(논설위원)-20150305목] 말고기

 

인류사에서 말고기의 식용은 오랫동안 금기시됐다. 비교적 늦게 가축화한데다 소나 양 등에 비해 30% 이상 풀을 많이 먹는 등 채산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여기다 말은 자동차가 발명되기 전까지만 해도 가장 중요한 이동수단이어서 고기로 취하기보다 동력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무엇보다 군마(軍馬) 등 전쟁에서의 쓰임새가 커 말의 사육과 관리를 안보적 측면에서 다뤘던 탓이 컸다.

 

지금 유럽 국가들은 말고기를 즐기고 있지만 이 또한 역사가 길지 않다. 중세 초기 교황들은 아예 기독교인들이 말고기를 먹지 말라는 금기를 내리기도 했다. 일부 가난한 사람들이 말고기를 먹기는 했으나 일반화된 것은 프랑스 혁명 즈음부터였다. 전쟁과 밭갈이 쟁기용을 제외한 잉여 말들이 생겨나면서 식용이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전쟁 상황에서 금기는 상당히 남아 있어 유명한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에는 소련군에 포위된 독일군도 장병들의 아사(餓死) 직전에야 군용 말의 도축을 허용할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말고기는 워낙 값비싸서 왕실 정도나 먹는 등 사실상 식용이 불가능했다. 조선왕조실록의 태조와 태종편에 따르면 군마 확보를 위해 제주도에서 올라오는 말린 말고기(육포)의 공납을 그만두게 한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동의보감에는 말고기가 신경통과 관절염, 빈혈과 척추질환에 좋다고 나와 있다. 칼로리와 지방질은 적고 단백질과 철분이 많은 '고단백 저칼로리'로 현대인에게 웰빙식품으로 적합하다는 평가다.

 

농협중앙회는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식용 목적으로 도축된 말이 처음으로 1,000마리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캐나다산 비육마 도입 등을 통해 말고기의 고급화까지 나서고 있는 일본에 비해 미미한 수준(5%)인 국민 1인당 3.5g 수준에 불과하지만 최근 증가세는 눈에 띈다. 말고기 전문점들이 제주뿐 아니라 경북 영천 등 전국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양고기 소비가 늘고 있다고 하더니 육류 소비 다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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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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