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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美대사 피습, 그 후

■ 미 대사 피습과 종북몰이

■ 어린이집 보육료 대란

■ 군사법원, 방산비리 간부 봐주기

■ 금배지 연연하는 장관 = 시한부 장관

■ 재벌 사외이사는 권력기관 출신 몫인가

■ 월성 원전 1호기 수명 연장 허가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美대사 피습, 그 후

 

[한국일보 사설-20150310화] 美대사 피습, 정치계산보다 국익으로 다뤄야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중동순방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입원 중인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방문했다. 박 대통령은 “대사님이 의연하고 담대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양국 국민이 큰 감동을 받았다”며 “오히려 한미관계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리퍼트 대사 피습사건 이후 한미 양국이 신속한 대응을 통해 사태 수습에 나선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한미관계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계속 공고하게 유지될 것”이라는 미국 정부의 언급은 양국 관계의 강도와 깊이를 보여준다.

 

리퍼트 대사 피습사건은 그 자체로 우리 정부에 부담을 주는 일임은 부인할 수 없다. 사건을 신속히 봉합한다고 해도 외교적 파장은 피하기 어렵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정부여당의 긴밀하고 냉철한 접근이 요구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지금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 국익을 고려한 전략적 사고보다는 다분히 국내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점점 짙어가는 듯 보인다.

 

사건을 성급하게 “종북세력의 ‘조직적’인 범죄”로 몰고 가는 것부터가 무리다. 현재까지 드러난 바에 따르면 이 사건은 극단주의적 사고를 가진 개인의 일탈행동에 가깝다. 그런데도 정부가 앞장 서서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인 것처럼 규정하는 것은 자칫 자충수가 될 우려가 크다. 스스로 외교적 입지를 좁힐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당장 새누리당에선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ㆍTHAAD)’의 한반도배치를 공론화하자고 나섰다. 사드는 우리 외교안보적 이해와 직결된 민감한 사안이다. 이번 사건과 직접 연결시킬 성격이 전혀 아니다. 그런데도 국익을 우선해야 할 집권 여당이 치밀한 논의과정을 생략한 채 사드 도입문제를 마치 미국에 선심 쓰듯 먼저 꺼낸 건 생각이 얕은 것이다. 인권과 사생활침해 우려로 십 수년 공전돼온 저간의 사정은 무시하고 당장 테러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태도도 지나치다. 일부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한다며 부채춤과 발레, 난타공연 등 수선을 떠는 것도 민망스러운 일이다.

 

폭력과 극단주의를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그런 차원에서 이번 사건의 진상은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그러나 사건을 과도하게 키우려다간 거꾸로 한미관계뿐 아니라 국익에 도움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사건은 이미 복잡한 외교안보적 의미가 얽힌 사안이 됐다. 정부여당이 정국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겠다는 얄팍한 국내정치적 계산으로 다룰 사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일일수록 국익을 면밀하게 따져 최대한 냉정하게 판단하고 대처하길 당부한다.

 

 

[한국일보 사설-20150310화] 리퍼트 대사 ‘위문 과공’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병실을 우리 정치인과 정부 고위인사들이 줄지어 찾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여당 의원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일행, 그리고 이완구 국무총리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일찌감치 병실을 찾았다. 어제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문병을 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중동 순방을 마치자마자 귀국 첫 일정으로 세브란스병원을 방문했다. 그밖에도 너무 많은 사람이 주말에 방문하여 리퍼트 대사가 피로를 느낀다며, 더는 면회를 받지 않겠다고 미 대사관 쪽이 공식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흉기로 공격당해 상처 입은 피해자를 찾아 위로하는 것은 미덕이고 예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상대가 외국을 대표하는 외교사절인 만큼 위로의 형식을 정중하게 갖추는 것은 필요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각각의 문병 행차는 한 건씩 놓고 볼 때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여야 대표와 소속 의원들, 각 부처 장관과 총리, 대통령까지 한 외국 대사의 병실에 줄을 잇는 모습을 보면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질서가 없고, 외국에서 볼 때 강대국 대사에 대한 과잉 대우로 비칠 수 있다. 가령 정부 대표로 주무 장관이든 누구든 한 사람을 지정해 위문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위로 전문이나 화분을 보내는 것으로 조율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문병 때 위로의 말도 잘 골라서 할 필요가 있다. 김무성 대표는 “종북좌파들이 한-미 동맹을 깨려는 시도였지만 오히려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확인하고 더 결속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친 사람을 위로하는 데 집중하는 게 옳지, 거기까지 가서 정치적 이득을 셈하며 사건을 부풀리려는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리퍼트 대사는 병상에서 “김치를 먹었더니 더욱 힘이 나는 것 같다”며 ‘한국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그의 주가도 날로 솟고 있다. 외교관이 위기 상황에서 소통 전략을 잘 구사하여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는 좋은 사례를 보는 듯하다. 반면에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태도에선 원숙함을 찾기 어렵고, 과공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관련 칼럼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문소영(논설위원)-20150310화] 과공비례(過恭非禮)

 

유학은 예(禮)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도(道)가 예를 통해 드러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예의 바르지 않으면 선비가 아니라고 했다. 조선시대에 양반 가문이라면 당연히 의관을 바르게 하고 교만하거나 건방진 언행은 삼가는 것이 기본이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공자는 “지나친 공손은 예와 어긋난다”는 뜻의 과공비례(過恭非禮)를 경고했다. ‘맹자’도 이루장에서 “비례지례(非禮之禮)와 비의지의(非義之義)를 대인(大人)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인은 비례와 비의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과공비례이고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예는 학문뿐 아니라 통치에도 관여했다. 17세기 조선 후기 벌어진 1차·2차 예송 논쟁이다. 1차 예송 논쟁은 1659년 둘째 아들로 왕위를 이은 효종이 죽자 효종의 어머니 자의대비(인조의 계비)가 3년상을 받을지 1년상을 받을지 논란을 벌인 것이다. 아무리 국왕이지만 둘째 왕자였으니 1년상만 치르면 된다던 송시열 등 서인이 이겼다. 2차 예송 논쟁은 1674년 효종비 인선왕후가 죽자 다시 자의대비가 상복을 얼마나 입을까로 시작됐다. 남인은 1년, 서인은 9개월을 주장했는데 현종은 1년을 주장한 남인의 손을 들어 줬다. 예송 논쟁은 왕권을 일반사대부 수준으로 취급하려던 서인의 몰락과 남인의 득세로 이어져 왕권 강화가 됐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피습을 두고 19세기 말 일본에서 벌어진 ‘오쓰 사건’과 비교하기도 한다. 1891년 5월 1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릴 시베리아철도(TSR) 기공식 참석을 앞두고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가 일본 오쓰 지역을 방문했는데 일본인 순사 쓰다 산조가 갑자기 일본도로 황태자를 습격한 것이다. 찰과상에 그쳤지만, 일본은 발칵 뒤집혔다. 메이지 천왕이 황태자를 위문했고, 전국의 학생은 위문편지와 위문품을 보냈다. 일본인들은 이어 쓰다 성(姓)을 가진 사람들은 성을 바꾸고, ‘산조’라는 이름은 폐기했다. 일본 정부는 사형을 선고하도록 사법부에 압력을 가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거부하고 일반인 모살 미수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쓰다는 복역 중 사망했고, 그 일가는 일본인들의 집단 따돌림 등으로 멸절됐다.

 

리퍼트 대사는 피습 직후 한국어로 “같이 갑시다”라는 글을 남겨 외교관의 냉철한 이성을 보여 줬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하는 행사를 내외신으로 보았다. 한복을 입은 중년 여성들이 부채춤과 장구춤을 추고, 발레를 선보이는가 하면 기도회도 열렸다. 70대 남성은 개고기와 미역국을 싸들고 병문안을 갔단다. 과공비례가 아닌가 싶다. 지나친 공손은 예의도 아니고 비굴하게 보이거나 미덥지 못한 대상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혈맹’이라는 한·미 동맹이 개인의 피습으로 훼손될 만큼 허약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 미 대사 피습과 종북몰이

 

[한겨레신문 사설-20150310화] 미국대사 피습과 테러방지법·사드는 별개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을 계기로 새누리당에서 테러방지법 입법 및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 한국 배치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9일 국회에 계류중인 테러방지법을 하루빨리 입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원유철 정책위의장과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이제 사드의 한국 배치를 공론화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종북세력이 백주 대낮에 주한 미국대사를 테러하는 마당에 테러방지법 입법을 서두르지 않으면 제2, 제3의 테러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상황을 좀더 차분하게 바라본다면 리퍼트 대사 피습과 테러방지법은 별개의 사안이며 테러방지법으로 리퍼트 대사 피습과 같은 사건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란 사실은 분명해진다.

 

우선 미국 정부는 리퍼트 대사 사건을 ‘폭력행위’(acts of violence)라고 규정하고 있지 ‘테러’(terror)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일단 이번 사건을 김기종씨 개인의 우발적인 범행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정부가 아니라고 하는데 굳이 우리가 먼저 나서 이번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테러방지법 제정을 추진하는 것은 앞서가도 너무 앞서가는 것이다. 김기종씨에 대한 정확한 수사를 통해서 만에 하나 배후가 드러난다면, 그때 테러라고 부를 수 있을지 판단하면 된다. 냉정하고 차분한 판단과 대처만이 한-미 동맹에 상처를 주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2001년부터 여러 차례 테러방지법 입법을 논의했지만 그때마다 보류한 건 인권침해의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청년의 이슬람국가(IS) 가입을 계기로 우리나라도 테러 무풍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입법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신중하게 논의할 일이다. 주한 미국대사 피습을 계기로 때를 만난 듯 단번에 밀어붙이듯 추진해선 안 된다.

 

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인 사드의 한국 배치 문제는 사실 리퍼트 대사 피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이 문제가 제기되는 배경엔, 이번 기회에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하니 그 징표로 미국이 원하는 걸 들어주자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동북아시아 정세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드 배치를 단지 ‘미국에 미안하니까 미국이 원하는 걸 하나 해주자’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과연 바른 판단인가. 리퍼트 대사 피습사건에선 충분히 미국의 입장을 고려할지라도, 그와 전혀 별개의 사안인 사드 문제에선 기본적으로 국익을 중심에 두고 판단하는 게 옳고 당당한 태도다. 미국은 자국 대사의 피습을 다른 사안과 연계하지 않고 냉정한 자세를 취하는데, 우리 정치인들이 먼저 나서 미국의 이해와 한-미 동맹의 이해를 동일시하며 발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한-미 동맹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여당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 관련 칼럼

 

[한겨레신문 칼럼-정석구 칼럼/정석구(편집인)-20150310화] 테러와 피습, 그리고 종북몰이

진영 논리라는 말이 있다. 같은 편이면 잘못해도 감싸주고, 다른 편이면 가차 없이 비판하는 행위 등을 말한다. 진실을 보도해야 할 언론이 이런 진영 논리에 빠져 제 논에 물 대기 식으로 사실을 왜곡해 전달한다는 비판을 종종 받는다.

 

지난해 12월, 한 고등학생이 ‘신은미 토크콘서트’ 현장에서 폭발물을 던졌을 때 <한겨레>는 이를 ‘테러’로 규정했다. 하지만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해서는 테러라는 단어 대신 ‘피습’이라고 썼다. 두 사건 모두 폭력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력히 규탄했지만 용어는 달리했다.

 

정치적 의도가 있는 폭력 사태에 대해 한쪽은 테러라고 하고, 다른 쪽은 피습이라고 하는 건 논리적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비칠 것이다. 특히 ‘극우 성향’ 고등학생의 폭발물 투척에 대해서는 테러라고 비난하면서, ‘진보 성향’ 인사의 미국대사 공격은 피습이라고 하는 건 자기편 감싸기 아니냐는 비판을 들을 만도 하다. 미국대사 사건은 피해 당사자와 미국 쪽이 테러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데 우리가 굳이 테러라고 할 필요가 있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남 탓만으로 돌릴 일은 아니다. 진영 논리에 따라 자의적이고 편파적인 단어를 쓰게 되면 언론이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된다. 기사를 쓸 때 객관적인 실체를 보여줄 수 있도록 더욱 엄정한 단어를 골라 쓰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렇다고 서로 다른 의견을 모두 진영 논리에 따른 것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그리되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종북 논란이 그렇다.

 

<한겨레>가 지속적으로 보수정권과 보수언론의 종북몰이를 비판하고 있는 것은 진영 논리에 빠져 진보세력의 편을 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종북 논란이 거세질수록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남북관계는 물론 국제관계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우선 종북몰이는 개인의 양심과 사상을 검열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와 정면으로 어긋난다. 권력을 장악한 보수세력이 국민을 상대로 종북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우리 편인지 아닌지를 드러내 보이라고 협박하는 것과 같다. 이런 억압적 분위기가 확산돼 국민의 일상생활을 옥죄면 사회 전반이 경직될 수밖에 없다. 신은미 사건 이후 북한의 실상 중 나쁜 면을 드러내는 것은 상관없지만 좋은 면을 부각시키면 종북이 되는 나라가 됐다. 이런 사회를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

 

종북 논란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끼치게 됨은 물론이다. 우리에게 북한이란 존재는 이중적이다.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가장 호전적인 존재이자 언젠가는 보듬고 함께 살아가야 할 같은 민족이다. 이런 엄혹한 ‘현실’과 희망찬 ‘당위’를 어떻게 조화시키면서 미래로 나아가느냐가 우리 앞에 놓인 어려운 과제다. 그런데 종북몰이가 계속될 경우 북한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상정하는 등 대결 국면이 강화되면서 자칫 과거의 전쟁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남북 모두에 불행이다.

 

국제관계에 끼치는 영향도 작지 않다. 종북 논란은 필연적으로 대미 종속적인 국면으로 이어진다. 주한 미국대사 사건 이후 정치권과 우리 사회 일각에서 지나친 미국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머지않아 잦아들 것으로 기대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의 군사·외교정책이 미국 쪽에 과도하게 기울 경우 우리의 국제정치적 입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얼마나 균형있게 유지해 나가느냐에 우리의 생존과 미래가 달려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물론 북한 체제를 추종하며 폭력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진짜 종북세력’은 우리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미국대사 사건에도 그런 배후가 있는지 엄정하게 수사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진행되고 있는 종북몰이는 다분히 의도적이고 정략적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보수세력이 그걸 알고도 종북몰이를 한다면 그것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나라를 망치는 일이다. 겸허히 되돌아보기 바란다.

 

 

■ 어린이집 보육료 대란

 

[한국일보 사설-20150310화] 또 걱정되는 보육료 대란, 결국 미봉으론 안 된다

 

어린이집 보육료 대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부족한 보육료 부담 주체를 둘러싸고 중앙 정부와 시ㆍ도교육청, 여야 정치권이 힘겨루기를 한 끝에 시ㆍ도교육청이 우선 임시변통으로 3개월치 예산만 편성키로 했었는데, 이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내부사정으로 두 달치만 편성했던 광주시교육청은 이달부터 집행할 돈이 없다며 발을 구르고 있고, 서울을 비롯한 나머지 시ㆍ도교육청들도 다음달부터 차례로 예산절벽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전국적 보육료 대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번 사태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다. 지난해 11월 보육대란 당시 여야는 부족한 누리과정(3~5세)예산액 1조7,000억 원 가운데 1조2,000억 원은 지방채 발행으로, 나머지 5,000여억 원은 정부의 목적 예비비 형식으로 우회 지원키로 봉합했다. 하지만 지방채 발행을 담은 관련법이 4월 국회로 처리가 미뤄졌다. 누리과정 예산의 국고지원 명시를 야당 의원들이 주장하면서 의견이 대립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방채 발행 없는 예비비 지원은 한계가 있다며 이미 국회를 통과한 예비비 5,000억 원마저 집행을 보류하고 있다. 특히 교육부는 중앙정부가 부담토록 한 보육비를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관련 법개정을 추진 중이다. 일선 교육감들이 “국가책임인 어린이집 보육료 부담 주체를 시ㆍ도교육청으로 떠넘기려는 속셈”이라고 반발하는 이유다.

 

보육료 대란의 피해는 학부모와 어린이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현재 전국 교육청에는 보육료 지원여부를 묻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어린이집 예산이 나오지 않을 것을 우려해 유치원으로 몰리고 있지만, 이미 모집이 끝난 경우가 대부분이라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정부는 당장 예비비를 시ㆍ도교육청으로 내려 보내 급한 불부터 꺼야 마땅하다. 국회가 집행을 의결한 예비비를 움켜주고 있을 명분도 없을뿐더러 보육료를 빌미로 야당 성향이 대부분인 시ㆍ도교육감을 길들이려 한다는 오해만 살 뿐이다. 그런 다음 정치권과 협의해 관련 법안의 국회통과에 노력하는 것이 순서다.

 

세수부족에 시달리는 정부 형편에서 보육재원 마련은 간단치 않은 숙제다. 그렇다고 저출산 문제를 고민하면서 보육료 부담은 지방으로 떠넘기는 건 온당치 않다. “보육이 국가책임”임은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기도 하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 시도 교육청은 지금이라도 예산확충을 하든, 재설계를 하든 머리를 맞대고 지속 가능한 보육재원 해법을 찾아야 한다. 어린이들을 놓고 비생산적 샅바싸움을 계속해선 안 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310화] 예고된 ‘보육 대란’에 무대책 정부

잊을 만하면 ‘보육 대란’ 걱정이 터져 나온다. 지난해 11월 만 3~5살 어린이의 무상보육 예산을 정부가 시·도교육청에 떠넘기려 하고 교육청은 재원을 마련할 방도가 없어 올해 초 보육 대란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가까스로 정부와 국회가 예산 마련 방안에 합의하고, 올해 2~3월치까지는 각 교육청이 어떻게든 예산을 짜놓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겨우 시간을 벌었다. 그런데 합의된 후속 조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4월부터 또 보육 대란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아이 키우는 일로 이렇게 부모들을 애태우고 심란하게 만들어서야 과연 국가가 국가 노릇을 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다. 3~5살 보육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누리과정 사업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그런데도 정부가 재정 부담을 시·도교육청에 떠넘기려 한 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논란 끝에 부족한 재원 1조7657억원 가운데 5064억원을 정부가 목적예비비로 지원하고 나머지는 시·도교육청이 지방채를 발행해 마련하기로 교육부 장관과 여야 간에 합의가 이뤄졌는데, 새누리당 지도부가 이를 일방적으로 뒤집으려 시도하기도 했다. 다행히 애초 합의가 유지됐지만, 문제는 이후 넉달 동안 실천이 없었다는 것이다. 국회는 지방채 발행을 위한 지방재정법 개정 논의를 4월로 미뤘고, 정부는 이를 빌미로 목적예비비 지원마저 이행하지 않고 있다.

 

시·도교육청이 급한 대로 편성한 예산이 3월이면 동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아무런 대책 없이 지방재정법 개정을 미룬 국회도 문제거니와, 국회가 이미 의결한 목적예비비 집행마저 보류하는 정부의 태도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 당장 새달부터 보육료 지원이 끊길지 걱정하는 부모들의 심정을 정부가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있다면 이런 식으로 대처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육료 지원만 문제는 아니다. 올해 초 어린이집 아동 폭행 사건으로 국민적 분노가 일고 정부와 정치권은 대책을 마련하겠노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결국 2월 국회에서 관련 법은 처리되지 않았다. 충분한 논의를 거쳐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며, 그만큼 이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결국 부모들은 정부가 약속한 보육료 지원이 오락가락하는 데 짜증이 나고, 어린이집에서 언제 또 사고가 터질지 몰라 불안하다. 보육의 국가 책임을 강조하며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서 아이 키우기는 오히려 더 걱정거리가 되고 있으니 이런 비정상이 따로 없다.

 

 

■ 군사법원, 방산비리 간부 봐주기

 

[한국일보 사설-20150310화] 현역군인이면 석방? 방산비리 근절 의지 있나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이 지난해 11월 출범한 이후 구속한 현역 군인 5명중 4명이 군사법원에서 보석이나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려난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80%가 석방된 것이다. 동일 사건으로 민간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한 예비역 군인과 일반인 17명은 한 명도 풀려나지 않은 것과 비교된다. 수사 중 핵심 피의자를 풀어주는 것은 증거인멸이나 조작 등의 위험성이 있다. 군사법원이 현역 군인들을 석방한 것도 마찬가지로 수사 방해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군사법원이 ‘지나치게 관대한 기준을 적용했다’거나 ‘제 식구 감싸기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군사법원은 석방 사유를 합수단 측에 적시하지 않은 채 적용한 법 조항에 대해서만 알려준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식이라면 방산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과 검찰의 합동수사체제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다. 핵심 피의자들을 조기 석방하면 합수단이 더 이상 수사를 확대할 수 없어 사건을 미봉할 수밖에 없고, 재판에서도 제대로 공소유지를 하기 어렵다. 실제로 풀려난 일부 영관급 장교들이 진술을 180도 바꾸는 바람에 수사가 도처에서 애를 먹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런 현상은 근본적으로 군 사법체계의 기형적 구조 때문이다. 군사법원 판사는 각군 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이 임명하는 구조다. 따라서 애당초 군 수뇌부의 이해관계에 저항하는 독립적인 재판이 어렵다. 사단장 이상 부대 지휘관이 군 검찰과 군사법원 행정을 총괄하는 ‘관할관’이 되는 것도 문제다. 관할관은 수사착수부터 기소단계까지 검찰관을 지휘ㆍ감독한다. 재판장과 주심 판사를 결정하고, 감형도 할 수 있다. 관할관이 군사법원과 군 검찰을 동시에 통제하는 초법적인 존재인 셈이다. 때문에 수사의 공정성을 훼손하거나 군 내부의 비리를 덮으려는 시도가 많았던 것이 그 간의 경험이었다.

 

따라서 군 사법체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동안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공정하고 투명한 수사와 재판을 위해서는 군 검찰과 군사법원의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군 수뇌부와 지휘관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시와 평시를 구분할 때가 됐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평시에는 군 검찰과 군사법원이 항명이나 탈영, 기밀누설 등의 군 범죄만 담당하고, 일반 범죄는 민간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미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다. 국방부도 더 이상 군의 특수성만 고집할 일이 아니다. 방산비리가 너무 크고도 깊다.

 

 

[중앙일보 사설-20150310화] 군사법원, 방산비리 군 간부 봐주는 이유가 뭔가

 

북한군의 AK소총에 뚫리는 불량 방탄복 납품비리에 연루된 박모 중령이 지난달 17일 구속적부심으로 석방됐다. 구속된 지 겨우 11일 만으로 언론에 보도되기 전에 이미 풀려난 상태였다. 통영함·소해함 납품비리로 구속된 방위사업청 소속 황모 해군 대령과 최모 중령도 구속된 지 얼마 안 돼 보석으로 석방됐다.

 

  방위산업 비리로 구속됐던 현역 군인 5명 중 4명이 군사법원의 허가를 받아 풀려났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피고인들이 범죄사실에 대해 모두 자백했고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기 때문에 군사법원에서 허가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군사법원이 비리 군인들을 풀어준 것은 ‘제 식구 감싸기’ 행위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첫째, 이들을 풀어줄 경우 증거를 인멸할 수 있다.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의 수사는 현재 종결된 상태가 아니다. 수사는 군 최고위층과 정·관계 인사를 겨냥해 정점을 치닫고 있다. 관련자에 대한 자금 추적도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리에 연루된 현역 군인들을 풀어주면 ‘입 맞추기’를 하거나 관련 자료를 없앨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구속됐다 풀려난 한 영관급 장교는 구속수사 때와 진술을 바꿔 합수단 수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둘째, 민간인 피의자와 비교할 때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방산비리 합수단 출범 이후 예비역 군인과 업체 관계자 등 구속된 민간인은 모두 17명이다. 이들 중 민간 법원에서 구속적부심이나 보석으로 풀려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민간 법원도 이들의 범행이 매우 중대하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뇌물을 받은 군인이 돈을 준 업체 관계자보다 훨씬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게 정상이다.

 

  셋째, 형식 요건만 갖고 풀어주기엔 사안이 너무 중대하다. 이들의 혐의는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업체에서 돈 받은 정도를 뛰어넘는 악질적인 부패행위다. 후배·동료들의 생명과 국가 안보를 지킬 무기 구입을 주도하면서 저질·불량제품을 사들였다. 일부는 품질기준에 미달하자 시험평가서까지 조작했다. 이들의 부패로 우리 군은 총알이 뚫리는 방탄복을 입어야 했고 구조함인 통영함은 건조됐으나 세월호 구조작업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합수단 출범 100일이 지난 현재 비리가 적발된 방위사업 규모는 거의 2000억원에 달한다. 방산비리를 뿌리 뽑으려면 수사도 중요하지만 법원에서 엄정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율곡사업 비리사건 때처럼 비리 군인들을 집행유예로 풀어줘선 안 된다. 군율(軍律)이 무섭다는 것을 보여줘야 ‘군피아’의 적폐를 끊을 수 있다.

 

  군사법원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것은 군 수뇌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각군 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이 군사법원 판사를 임명하는 현 구조에선 독립적인 재판이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군 비리를 척결하려면 먼저 결함이 많은 군사법원제도부터 개혁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310화] 방산비리 軍장교 감싸는 군사법원 필요 없다

 

방위사업 비리와 관련돼 구속된 현역 장교 가운데 80%가 군사법원에서 보석이나 구속적부심으로 석방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 비리 척결을 위해 지난해 11월 출범한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이 최근까지 방산 비리 혐의로 구속시켰던 현역 군인 5명 중 4명이 재판 중에 풀려난 것이다. 그들은 통영함·소해함 납품 비리는 물론 적탄에 뚫리는 불량 방탄복 납품 비리에 연류됐던 현역 장교들이다. 같은 혐의로 구속된 민간인 17명 가운데 풀려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관련 수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사건을 은폐하고 왜곡할 위험성이 농후한 피의자를 풀어 준 군사법원의 판단은 법적 상식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방산 비리 근절이란 국민적 염원에 찬물을 끼얹는 한편 폐쇄적인 군 사법체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군사법원 자체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만큼 우리의 군 사법체계가 폐쇄적으로 운용되면서 시대의 흐름과 역행하는 부분이 많다는 의미다. 우리 군사법원법은 1962년 일본이 운용하던 육군군법회의법과 해군군법회의법을 근간으로 미국의 군사법통일법전(UCMJ)을 일부 반영했다.

 

대표적인 것이 관할관과 심판관 제도다. 현행 사단급 부대에 설치된 보통 군사법원의 관할관은 사단장급이 맡는데 검찰총장 이상의 권한을 갖고 있다. 국방부는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군의 특수성과 효율적 인사 관리를 위해 관할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과도한 사법통제를 유지하는 근거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군 수뇌부의 지휘권이 법 위에 올라앉은 모양새라 병영 내 문제가 생기면 인사고과에 불리한 지휘관이 자기 책임을 회피하거나 문제 간부를 보호하기 위해 얼마든지 은폐·조작하거나 재판에 간여할 수 있는 구조가 됐다.

 

사단급 보통 군사법원은 2명의 군판사(군법무관)와 부대 사령관이 일반 장교들 중 임명하는 심판관으로 구성된다. 1심의 경우 통상 군판사(위관급)보다 계급이 높은 심판관(영관급)이 재판장을 맡아 재판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 2010~2013년 가혹 행위에 연루된 간부가 실형 선고를 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동안 수많은 ‘윤 일병 사건’을 의문사로 묻고, 병영 내 빈번했던 구타·사망 사건이 증거 불충분으로 흐지부지된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이런 구조적 모순을 개선하기 위해 2006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는 검찰관과 군판사를 국방부 소속으로 하고 평시 수사와 재판 업무를 부대 단위가 아닌 지역 단위로 조정하는 군사법제도 개혁안을 마련했지만 흐지부지됐다. 민관군 병영혁신위원회가 지난해 말 사단급 부대에 설치된 군사법원을 폐지하고 일반 장교를 군사법원 재판관으로 임명하는 심판관 제도를 없애는 방안도 권고했지만 아직까지 군 내부의 반발 때문에 한 걸음도 진전하기 못한 상황이다. 군 수뇌부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개혁이 실현되기 어렵다. 군 사법제도 개혁은 전적으로 군 수뇌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

 

 

■ 금배지 연연하는 장관 = 시한부 장관

 

[경향신문 사설-20150310화] 대통령이 ‘시한부 장관’ 논란 정리해야

새누리당 현역 의원인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어제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내년 총선 불출마 여부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회피했다. 장관이 된 다음 총선에 출마할 경우엔 ‘10개월짜리 장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여야 청문위원들의 우려 섞인 질의에 애매한 답변으로 시종했다. 유기준 후보자는 “이 자리에서 답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즉답을 피했고, 유일호 후보자는 “(시한부 장관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 고민했다. 참 어려운 문제”라고만 했다. 청문위원들의 거듭된 추궁에도 총선 출마 가능성을 끝내 부인하지 않음에 따라 결국은 ‘시한부 장관’으로 끝나게 될 것이란 불확실성만 키워 놓은 꼴이다.

 

장관들이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90일 전인 1월 중순까지는 사퇴해야 한다. 국회의원을 겸하고 있는 신임 장관들이 총선에 나서게 될 경우 임기가 고작 10개월도 안되는 셈이다. 물러나는 시점이 미리 정해진 장관이 부처 조직을 제대로 장악하고, 산적한 현안을 풀어나가는 추진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난망하다. 불과 10개월짜리 시한부 장관으로 낙인찍히게 되면, 아무리 좋은 정책과 의지를 갖고 있더라도 장관의 영이 세워지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청문회에서 여당 의원들조차 “한시적 장관으로 조직을 잘 이끌 수 있을지 염려된다”고 지적했을까 싶다. 장관 후보자들은 “짧은 시간에도 기초는 만들어 놓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가뜩이나 해당 부처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이들이 겨우 업무 파악 하나 끝내고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 십상이다. 입각한 지 10개월도 안돼 총선 출마를 하기 위해 사퇴하게 되면 부처 업무의 연속성은 훼손되고, 행정 공백 등 불필요한 낭비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시한부 장관’ 논란이 계속될 경우 폐해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인데도 당사자인 장관 후보자들은 총선 불출마 여부에 대해 모호한 입장으로 일관해 안팎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했다. 이들은 “장관 임명과 지명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넘겼다. 이제 인사청문회가 마무리되고 박근혜 대통령이 장관 임명 절차를 밟게 된다면, ‘시한부 내각’ ‘시한부 장관’ 논란에 대한 정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집권 3년차에 나라 안팎의 도전을 헤쳐나가고 산적한 국정 개혁 과제를 풀기 위해서도 내각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걷어내는 게 긴요하기 때문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310화] 국민은 금배지 연연하는 장관 원하지 않는다

 

어제 국회에서 열린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대한민국 장관직의 무게를 정치인들이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를 한눈에 보여 줬다. 해양수산부 장관과 국토교통부 장관을 맡겠다며 장관 후보자 자격으로 각각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의 청문대에 선 새누리당 소속 유기준 의원과 유일호 의원은 내년 총선 출마 여부를 묻는 여야 의원들의 거듭된 질의에 한사코 즉답을 피했다.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현시점에서 총선 출마 여부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직자의 사퇴 시한을 정한 공직선거법에 따라 장관은 총선일 90일 전까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유기준·유일호 후보자가 장관이 된 뒤 내년 4월에 실시되는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고자 한다면 늦어도 내년 1월에는 사퇴해야 한다. 인사청문회를 거쳐 장관에 임명되더라도 내년 총선에 출마한다면 길어야 고작 10개월짜리 장관을 하는 셈이다. 유기준 의원은 “(장관의 진퇴는)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권한에 속하는 것”이라는 말로, 유일호 의원은 “(아직 장관에 임명되지 않은) 후보자 신분에서 총선 출마나 진퇴를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말로 총선 출마 여부에 대한 답을 피해 갔다. 자세를 낮춘 겸양의 태도로 볼 수도 있겠으나, 내심 장관은 10개월만 하고 내년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감추는 언사로 비쳐진다. 최소한 총선 출마의 여지, 다시 말해 단명(短命) 장관의 가능성은 열어 놓은 셈이다.

 

이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체 두 의원은 장관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국정 쇄신 차원에서 단행된 이번 정부 개편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답해야 한다. 10개월짜리 장관이 세월호 참사로 흐트러진 해양수산부를 바로세울 수 있는지, 뒤엉킨 부동산 시장의 난맥상을 바로잡을 수 있는지 말해야 한다. 1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으며 한 해 수십조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장관 자리를 자신들의 총선 스펙 쌓기용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공직자로서 국민에게 봉사해야 할 책무보다 자신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건 아닌지 밝혀야 한다.

 

검증 과정에서 드러난 이런저런 의혹들보다 공직에 대한 이들의 인식에 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금배지를 놓을 수 없다면 장관직을 사양하는 게 도리다. 이는 비단 이들뿐 아니라 이완구 국무총리와 3명의 현역의원 장관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국민은 인사청문회용 장관 후보자가 아니라 국민에게 헌신할 장관을 원한다.

 

 

■ 재벌 사외이사는 권력기관 출신 몫인가

 

[경향신문 사설-20150310화] 재벌 사외이사는 권력기관 출신 몫인가

국내 10대 그룹이 이달 주주총회에서 뽑는 사외이사 119명 가운데 39.5%(47명)가 장차관, 판검사, 국세청 등 권력기관 출신으로 드러났다고 재벌닷컴이 어제 밝혔다. 대신경제연구소가 어제 지난 4일까지 주총 소집을 공고한 126개 상장사의 사외이사 신규 선임 안건 86건을 분석한 결과도 장차관 출신만 11.6%에 이르는 등 3분의 1 이상이 권력기관 출신으로 나타났다. 재벌의 ‘권력기관 사랑’이 도를 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들이다.

 

기업이 권력기관 출신을 사외이사에 선임하는 의도가 로비나 바람막이로 활용하기 위한 것임은 삼척동자라도 알 것이다. 이른바 ‘관피아’니 무슨 ‘피아’니 하는 신조어에서 보듯이 전·현직 간에 이뤄지는 전관예우 관행이 통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지적과 비판이 끊이지 않는데도 재벌에는 마이동풍이라는 것이다. 재벌닷컴이 조사한 올해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 비중이 지난해(39.7%)와 거의 같은 수준인 점을 보면 그렇다. 심지어 사외이사 9명 가운데 8명(88.9%)을 권력기관 출신으로 선임한 곳이 있을 정도니 가히 재벌 사외이사는 권력기관 몫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사외이사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도입한 제도다. 전문적 식견을 갖춘 기업 외부 인사를 경영에 참여시켜 조언을 받고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감시토록 한다는 게 원래 취지였다. 하지만 1998년 도입 이후 17년이 지났는데도 제도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기업의 방패막이나 대주주의 거수기로 전락하는 등 역기능이 더 많이 지적되는 모습을 보여왔다. 기업은 자기 입맛대로 거수기 역할을 하면서 바람막이가 될 수 있는 권력기관 출신 인사를 선호하고, 그렇게 선임된 이사들은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내기 어려운 구조가 된 것이다.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는 사외이사제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선임 방식부터 바꾸어야 할 것이다. 사외이사 추천을 독립된 외부 기관이나 소액주주·우리사주조합이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 KB금융지주가 사외이사 7명 중 3명을 소액주주권인 주주제안 절차를 통해 추천한 것은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만하다. 주주행동을 통해 문제가 있는 의사결정에 참여한 사외이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고 실제로 그런 사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제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는 중장기적으로는 기업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세월호 사태를 계기로 눈총을 받는 ‘~피아’의 또 다른 얼굴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310화] 바람막이·로비창구로 변질된 사외이사제 손봐야

 

대기업이 바람막이나 로비창구로 활용하기 위해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를 선호하는 현상이 여전하다. 10대그룹이 올해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는 사외이사 119명 가운데 47명은 청와대 인사나 장·차관 등 정부 고위직과 판·검사,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권력기관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4명(39.5%)꼴로 기업의 권력 출신 편애가 심각함을 알 수 있다.

 

기업들은 권력기관 출신의 전문성을 중시해 선임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변명에 불과하다. 기업이 권력기관 출신을 선호하는 진짜 이유는 정부로부터의 외압을 막거나 관을 상대로 한 로비창구로 활용하려는 의도 외에는 없다. 사외이사가 될 자격으로 전문성보다 독립성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은 제도가 도입된 1997년에 이미 명확히 자리 잡았다. 외환위기 당시 기업이 어려움을 겪은 큰 원인은 오너 일가로 구성된 경영진의 방만경영이었고 이 같은 판단하에 경영진의 독단적 결정을 감시·견제하는 기구로 사외이사제가 도입됐다.

 

사외이사제를 도입 취지대로 운영하려면 기업의 주인인 주주, 특히 기관투자가가 의지를 가지고 개선을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바람막이·로비창구로 전락한 사외이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등 힘 있는 기관투자가가 의결권을 바탕으로 기업에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기관투자가가 '주총 거수기'라는 말을 듣는 점은 아쉽다. 당장 지난해 상반기에 개최된 유가증권시장 상장법인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내역을 공시한 82개 민간 기관투자가의 반대율은 1.4%에 그쳤다. 국민연금도 마찬가지였다.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와 더불어 제안할 것은 주주관여(engagement) 활동이다. 주주관여란 기관투자가가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정 사안에 대해 기업과 논의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일련의 소통과정이다. 주주권 강화가 기업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있는 한국적 상황에서 고려해볼 만하다. 누군가는 사외이사의 역할을 떠맡을 필요가 있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중앙일보 사설-20150310화] 출산장려금 2000만원, 애 낳는 효과 거둘까

 

충남 청양군이 최고 출산장려금 2000만원을 내걸었다. 셋째 출산에 300만원, 넷째 1000만원, 다섯째 2000만원을 각각 지급한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주는 출산장려금 중 최고 수준이다. 최근 들어 지자체들은 경쟁적으로 출산장려금을 신설하거나 확대하고 있다. 충북 괴산군은 셋째 출산에 1000만원을, 전남 완도군은 일곱째 출산에 1400만원을 내걸었다.

 

  하지만 출산장려금이 출산율 제고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는 극히 의문이다. 정부는 2003년 이후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따라 저출산 영역에만 54조원을 투입해 왔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합계출산율은 2003년 1.180명에서 2013년 1.187명으로 제자리걸음만 했다. 정부 예산이 각 지방정부로 들어가 출산장려금 등으로 뿌려졌으나 그 효과가 미미했던 셈이다.

 

  저출산 대응에는 크게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 출산율 자체를 높이기 위해 직접적인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한번 저출산 기조로 돌아선 사회에서 어떤 출산장려 정책을 써도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에 인적개발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출산장려금 지급은 대표적인 출산율 제고 대책 중 하나다. 하지만 출산율 제고를 지지하는 편에서도 무차별적인 출산장려금 지급을 없애고 조기 결혼을 장려하거나 난임가정을 지원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공감대를 얻고 있다.

 

  각 지방정부는 출산장려금을 사실상 주민유입 수단으로 쓴다. 타 지역 주민을 자신의 지역으로 끌어들이는 유인책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출산장려금 2000만원’ 역시 주민 수 늘리기 차원에서 내놓은 성격이 짙다.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 수밖에 없을 만큼 우리 농촌은 하루가 다르게 비어 간다. 하지만 주민 감소는 농촌개발 등 구조와 체질을 개선해 나가야 할 사안이다. 지방정부가 앞다투어 출산장려금을 올리는 것은 예산만 허비하고 출산율 제고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자제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사설-20150310화] 정주영 같은 창업가 10만 명만 키우자

경제가 많이 어렵다며 정부는 최근 경기 부양, 임금 인상, 규제 완화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경기를 띄우겠다고 한다. 그걸로 충분한가. 한국 경제가 생기를 잃어가고 있는 근본 원인은 다른 데 있다. 기업가 정신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속성장의 호시절이 지나갔다고 한탄만 할 때가 아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같은 창업가 10만 명만 키우자. 한국 경제호의 재도약이 가능해질 것이다.

 

  한국의 기업가 정신은 예전 같지 않다. 청년 실업의 강도는 미국·프랑스·일본보다 심각해 ‘세대 갈등’의 뇌관이 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글로벌 기업가 정신 지수(GEDI)’는 세계 120개국 중 32위에 그쳤다. 콜롬비아·오만 같은 나라보다도 낮다. 기업가 정신이 강한 나라일수록 경제가 강한 활력과 역동성을 가진다.

 

  미국 경제주간지 포브스가 재산이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를 넘는 전 세계 억만장자 1826명을 조사했더니 3명 중 2명꼴인 1191명이 창업 등으로 재산을 일군 자수성가형이었다.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형 부자는 230명(12.6%)에 그쳤다. 미국의 자수성가형 부자들은 정보기술(IT)·바이오·의류·서비스 등 다양한 신성장 분야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택해 새로운 부를 일구고 있다. 차량 제공 업체 우버,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 등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대표적이다. 미국 경제가 강한 이유다.

 

  한·중·일 세 나라만 비교해도 분명해진다. 포브스 조사 결과 중국은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 회장을 포함, 자수성가형 부자가 98%였으며 일본도 86%였다. 이에 반해 한국은 올해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29억 달러) 등을 포함해 자수성가형 부자가 약 30%에 그쳤다. 그만큼 우리 경제의 활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돌파구는 ‘창업의 숲’을 키우고 겁 없는 도전자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가 정신’에 기반한 새로운 방정식만이 제2의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해줄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310화] 종전 70주년 독·일 두 전범국가의 과거와 현재

 

근현대사를 돌아볼 때 독일과 일본은 많은 점에서 닮아 있다. 두 국가는 모두 세계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의 미래를 위협했던 위험한 존재였다. 유럽과 아시아를 유린했던 독·일은 전쟁이 끝나자 전범국가로서 분단과 미군 점령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된 오늘 독일과 일본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다르다. 독일은 유럽의 중심으로 부상했고, 유럽 통합의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갈등과 분열의 중심축이 되었고, 과거사에 발목 잡혀 지도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이 유럽을 이끌어가는 데 유럽국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는 것과 달리,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자기 역할을 강화하려 할수록 주변국들로부터 의심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고 나아가 미화하는 일본 내 우경화 흐름이 낳은 결과이다.

 

한때 같은 출발선에 있었던 독일과 일본이 전후 70년을 맞는 올해 왜 전혀 다른 나라로 대접받고 있는지는 어제 아베 신조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메르켈 총리의 발언이 잘 말해주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도쿄 강연에서 “(유럽 화해는) 독일이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방한했을 때도 “유럽 통합이 가능했던 것은 독일이 과거사를 청산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회담 하루 전인 지난 8일 자민당 창당 60주년 기념 전당대회에서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했다. “이웃국가와의 관계 개선에 힘써 나가는 것과 함께 야스쿠니 참배를 계승하겠다”고 한 것이다. 야스쿠니 참배 행위는 이웃국가에 대한 도발이다. 그런데도 그런 입장을 표명하는 건 그가 사실은 관계 개선을 우선시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아베 총리는 독일에 편승해 두 나라가 함께 전후 ‘세계 평화’에 공헌했음을 부각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아시아인의 시각에서 그런 시도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은 독·일의 동질성보다 이질성을 부각시키는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다. 나아가 세계인도 ‘독일이 유럽, 나아가 세계를 이끌고 있는데 왜 일본은 주변국과의 과거사 갈등에 발목 잡혀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가’를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역사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국가의 위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아베 총리가 부디 배우기를 바란다.

 

 

[서울신문 사설-20150310화] 친일파를 ‘이달의 스승’으로 뽑은 정신 나간 교육부

 

교육부가 일제강점기에 친일 행적을 한 인물을 ‘이달의 스승’이라고 선정하는 정신 나간 짓을 했다. 역사정의실천연대에 따르면 교육부가 ‘이달(3월)의 스승’으로 뽑은 최규동(1882~1950)씨는 경성중동학교 교장이던 1942년 6월 일제 관변지인 ‘문교의 조선’에 ‘죽음으로써 군은(君恩·임금의 은혜)에 보답하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최씨는 “반도 2400만 민중도 마침내 병역에 복무하는 영예를 짊어지게 되었다. 이 광영에 감읍하여 한 번 죽음으로써 임금의 은혜에 보답해 드리는 결의를 새로이 해야 한다”면서 “군무에 복무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황국신민 교육의 최후의 마무리로 완성된다”고 썼다.

 

일왕의 은혜를 갚기 위해 죽음으로 보답하자고 선동하는 것은 누가 봐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대표적인 친일 행각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최씨를 ‘민족의 사표, 조선의 페스탈로치’라고 선전했다. 전국 초·중·고교 1만 2000여곳에 최씨에 대한 교육 자료와 포스터를 나눠 주는 한심한 작태를 벌였다. 정부세종청사에도 최씨의 홍보 입간판을 내걸었다. 매일신보에 따르면 최씨는 조선신궁(신사)의 중일전쟁 기원제 발기인, 임전보국단 평의원, 징병제 실시 축하연에도 참가한 것으로 나와 있다. 교육부는 검증을 했지만 최씨의 친일행적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검증을 처음부터 엉터리로 했거나 아니면 교육부가 무능하다는 얘기 말고는 달리 설명이 안 된다.

 

‘이달의 스승’ 사업은 지난해 8월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스승을 존경하는 풍토를 조성한다며 귀감이 될 만한 교육계 인사를 매달 1명씩 선정하기로 한 것이다. 최규동씨는 지난달 교육부가 발표한 첫 번째 인물이다. 교육부는 그를 민족운동가로 소개하면서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자제를 교육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우리말 수업을 고수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으니 제 정신이라고 볼 수 없다. 친일 행각이 드러나자 교육부는 뒤늦게 이달부터 초·중·고교에서 시작한 최씨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중단하고, ‘이달의 스승’ 12명을 전부 재검증해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사후약방문 격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큰 혼란을 주고 역사를 오독하게 한 교육부의 잘못이 크다. 사달이 일어난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잘못이 드러난 사람들은 추천위원회에서 영구 제명하는 등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310화] 넘치는 비관론 속 꿈틀대는 바닥경기도 주목해야

 

국내 경제전문가 10명 중 8명이 정부의 올 목표 성장률(3.8%)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는 보도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설문조사 결과 경제전문가 34명 중 28명(82.4%)은 3.4% 이하로 전망했다는 것이다. 국책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3.5%), 한국은행(3.4%) 등보다도 낮다. 체감경기를 반영하는 한국은행의 기업경기실사지수도 줄곧 하락세다. 이제 3월밖에 안 됐는데도 비관론이 무성하다.

 

그렇지만 실제 경기 상황을 단정하기가 혼란스럽다. 부동산시장만 봐도 그렇다. 지난 주말을 포함해 최근 사흘 동안 전국 11곳 모델하우스를 찾은 방문객이 2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집을 사려고 나선 실수요자들이다. 기존 주택 매입도 증가세다. 올 2월까지 누적 거래건수는 서울이 19.4%, 수도권은 16.5% 증가했다. 이에 따라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과 가구, 벽지 판매액은 작년 동기보다 몇십%씩 늘었다. 가구업체들은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고, 포장이사업체들은 소위 ‘손없는 날’에 벌써 이사 예약이 꽉 찼다. 일선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도 최악은 지났다는 말이 나온다. 코스피지수도 2000선까지 오르는 등 회복세다. 바닥경기가 꿈틀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물론 거시경제지표는 싸늘하기만 하다. 제조업 생산은 지난해 0.1% 증가에 그친 데 이어 올 1월에는 급기야 3.7% 감소했다. 2월 소비자물가는 담뱃값 인상분을 빼면 마이너스였다. 수출조차 올 들어 1월에 이어 2월도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기업 상황도 얼어붙어 있다. 영업실적 악화로 10대 그룹 핵심계열사 10곳 중 5곳의 신용등급이 떨어졌다. 오랜 침체에 주식 부동산 등 자산을 매각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정부가 디플레이션을 인정하게 된 것도 이해가 간다.

 

지표로 보는 경기와 바닥 경기 간의 간극이 너무 크다. 부진하다는 소비도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자동차 구입비(29.8%), 호텔 콘도 등 숙박비(18.5%), 해외여행 등 단체여행비(15.2%), 공연 등 문화서비스비(13.9%), 주방용품 등 가사용품비(12.4%), 항공기 비용(9.8%) 등은 소득증가율(3.4%)을 훨씬 웃돌았다. 올 1월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35만8100명으로 설 연휴가 끼었던 작년 1월(25만5500명)보다도 10만명이나 많았다. 해외 직접구매 수입액은 지난해 1조7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였다. 주말에는 나들이 차량들로 북적인다.

 

경기지표들이 과연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거시경제지표들은 대부분 경기후행적이다. 바닥경기는 꿈틀거리고 있는데 지표가 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시차, 착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소비자들의 높아진 눈높이, 시장과 산업의 트렌드 변화를 따라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경제현실과 간극이 큰 거시지표들만 갖고 섣불리 경제 정책을 짜다간 잘못된 길로 갈 게 뻔하다. 금리 추가인하, 내수 활성화 대책 등이 이런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불황 프레임에 갇혀 있어선 안 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310화] 최저임금 인상이 경기를 살릴 것이라는 놀라운 주장

 

정부와 정치권이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하는 모양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말하자 여야 할 것 없이 최저임금 인상에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저임금은 매년 영세·소형 사업장의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이 되고 그 인상률이 중소·중견·대기업 등의 노사협상에도 영향을 주는 민감한 사안이다. 노·사·정과 공익위원이 참여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수개월의 시간을 끌며 격론 끝에 결정해 온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서 올리라고 주장하고 노동계까지 가세하면서 올 임금협상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 뻔해 보인다.

 

문제는 최저임금을 인상한다고 해서 그 돈이 실물경제로 들어와 경기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점이다. 그동안의 연구와 현실은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최저임금 부근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일자리만 위협해 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올해부터 최저임금 수준 급여를 지급받게 되는 아파트 경비원만 하더라도 대거 실직위기에 직면해 있다. 아파트 주민들이 인건비 부담 증가를 이유로 자동화 경비시스템을 쓰거나 경비원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처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포퓰리즘 정책이다. 이익률이 바닥을 기는 영세업자들의 경영을 벼랑 끝으로 몰고갈 가능성이 크다. 경제학 교과서를 나무라면서까지 최저임금을 올리려는 것이 한국의 정치권이다. 개탄할 일이다. 임금을 올려주라는 아베노믹스를 베끼는 것은 좋지만 아베노믹스는 철저한 구조개혁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310화] 미국의 노조가입 의무화 금지법 확산이 말하는 것

 

미국 위스콘신주가 미국에서 25번째로 근로자들의 노조 가입 및 노조회비 납부를 강제할 수 없도록 하는 ‘근로권법’을 지난 6일 통과시켰다. 이전 모든 근로자의 노조 가입을 의무화했던 미국에서 이를 금지하는 주의 숫자가 전체의 절반으로 늘어난 것이다. 각 주가 앞다퉈 근로권법을 통과시키고 있는 것은 노조 가입을 근로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한 지역(주)의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2003~2013년 근로권법을 도입한 주의 일자리 증가율은 9.5%로 도입하지 않은 주의 두 배를 기록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미국 노동운동의 시발점이자 미국 자동차산업의 본고장인 디트로이트가 있는 미시간주에서 2013년 근로권법을 도입한 것이 전환점이 됐다. 위스콘신에 이어 오하이오 미주리주 등도 근로권법 도입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근로자의 실질적인 복지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적 결론이 미국 전역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 경제가 ‘나홀로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데는 이런 노동 개혁의 확산이 적잖이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특히 미국 제조업 부활의 이면에는 이 같은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4대 구조개혁의 하나로 노동개혁을 추진 중이다. 노·사·정은 이달 말까지 주요 현안에 대한 해법을 마련키로 했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노동시장 경직성을 완화하는 것이다. 한국은 2008년 금융위기 뒤 노동경직성이 높아진 거의 유일한 나라다. 왜 미국에서 근로권법을 채택하는 주가 늘어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310화] 선택과 집중 보이지 않는 최경환 경제정책

 

정부가 경기를 살리기 위해 사용 가능한 정책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나섰다. 최경환 경제팀이 출범한 후 운용해온 정책 패키지 잔여분 10조원을 상반기에 전부 집행하는 식으로 재정을 쏟아붓고 임금인상과 규제완화 등 전방위에 걸쳐 경제 회복세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민자사업을 확대하겠다며 정부에서 위험부담을 떠안는 방식의 한국판 뉴딜 정책까지 들고 나왔다. 한마디로 경기의 불씨만 살릴 수 있다면 정부든 기업이든 모든 경제주체의 가용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경환 경제팀이 지난 8개월 동안 쏟아낸 정책들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최 경제부총리는 취임 초기 재정확대에 초점을 맞추겠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굵직한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다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주력하는가 싶더니 연초에는 공공 등 4대 부문의 구조개혁을 주창하고 나섰다. 최근에는 느닷없이 임금인상이 절실하다며 기업들을 압박하다가 이번에는 아예 백화점식 정책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러니 어느 것 하나 정책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한 채 이것저것 건드려보는 중구난방식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우리 경제의 처방이 어렵다는 경제팀의 고충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단기간의 성과에만 매달려 설익은 정책들을 한꺼번에 추진하다 보면 경기 활성화의 길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모름지기 어떤 경제정책도 제대로 효과를 보자면 진중하게 때를 기다려야 하는 법이다. 구조개혁 같은 중장기 과제가 하루아침에 이뤄질 리는 천부당만부당하다. 산탄총 쏘듯 마구잡이로 정책을 남발하기보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국민을 착실히 설득해나가야 한다. 최 경제부총리는 취임 초기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현 경제팀은 이제라도 자신감을 되찾아 경제정책의 리더십을 바로 세워야 한다. 현 정부의 경제철학에 맞춰 소신 있게 밀어붙이는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절실한 때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310화] 미국, 한국산 세탁기 '표적 덤핑' 지나치지 않나

 

미국 상무부가 최근 반덤핑 연례재심 예비판정에서 삼성전자 등 한국산 세탁기의 덤핑마진을 82.41%로 산정했다. 이에 따라 2년 전 첫 판정 때 9.29%로 잡혔던 삼성전자 제품의 반덤핑관세가 9배 가까이 높아지게 됐다.

 

자국의 취약한 제조업을 보호하기 위한 미국의 무역장벽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갈수록 제재 강도가 세지고 교묘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덤핑마진을 계산할 때 수출가격이 내수가격보다 낮은 경우는 차이를 그대로 인정하나 수출가격이 내수가격보다 높을 경우는 마이너스로 하지 않고 '0'으로 계산해 마진을 높이는 '제로잉(zeroing)' 방식을 사용해왔다. 이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가 규정위반 판정을 내리자 새로운 방식을 개발했다고 한다.

 

미국이 수입한 전체 물량이 아니라 특정 시기·지역에 판매된 물량에만 마진을 산정하는 '표적덤핑(targeted dumping)'과 제로잉을 혼합한 방식이다. WTO 판정을 수용하기는커녕 자국 산업에 유리하게 규칙을 고친 꼴이다. 무엇보다 새 방식은 자의적 적용이 가능하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그런데도 한국산 세탁기를 첫 적용 대상으로 삼았다니 지나친 처사이지 않은가.

 

미국은 산정방식을 바꾸는 꼼수를 원유와 천연가스 시추에 쓰이는 유정용 강관에도 써먹었다. 지난해 7월 예비판정에서 무혐의를 받은 한국산 유정용 강관에 대해 최종판정에서 다국적기업 이윤율을 적용하는 계산방법을 써 반덤핑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이번 세탁기 산정방식은 이보다 더 지능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 방치하면 미국에 수출하는 우리 제품 모두 고율의 반덤핑관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정부가 나서 새 산정방식의 부당성을 WTO에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다른 나라와의 공조를 통해 무력화할 필요가 있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 월성 원전 1호기 수명 연장 허가

 

[중앙일보-사설 속으로/김보일(배문고 국어교사)-20150310화] 오늘의 논점 - 월성 원전 1호기 수명 연장 허가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 <2015년 2월 28일 30면>

원전 재가동의 잣대는 오직 안전이다

 

3년 전 설계 수명 30년이 다해 멈춰 있던 원자력발전소 월성 1호기의 재가동이 결정됐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찬성 다수로 월성 1호기 가동을 2022년까지 연장하는 허가안을 통과시켰다. 노후 원전 재가동 결정은 2007년 설계 수명이 끝난 고리 1호기의 10년 운전 연장에 이어 두 번째다. 원안위의 결정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안전성 평가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대규모 자연재해 등에 대비한 전문가 검증단의 스트레스 테스트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 점검도 거쳤다고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와 해당기관은 재가동에 앞서 월성 1호기의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의 후쿠시마 원전사태는 원자력의 두 얼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고,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래 안전은 우리 사회의 최대 관심사가 됐다. 월성 1호기의 재가동이 원안위의 세 번째 심사에서 결정된 것은 이와 맞물려 있을 것이다. 정부는 이번 심사 과정에서 제기된 일부 안전기준 보완 조치를 취하고, 반발하는 주민과 소통도 강화하기 바란다. 원전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확대된 데는 원전 납품 비리도 한몫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원자력은 우리나라 에너지의 근간이다. 전체 발전량의 27%를 차지한다. 월성 1호기 발전량 50억kWh(2008년 기준)는 대구·경북 가정에서 1년간 사용하는 발전량의 80%다. 원전에서 나오는 값싸고 질 좋은 전력은 우리 경제의 한 버팀목이기도 하다. 자원 빈국에서 원자력 외의 효율적 대안을 찾기도 힘들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은 아직 미약하고, 화력 발전 증대는 지구 온난화 완화 흐름에 역행한다. 하지만 원자력의 안정적 확보는 원전 안전에 대한 국민의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원안위 결정을 두고 야당이 정쟁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유감이다. 국가의 대계(大計)가 걸린 에너지 문제를 여론에 편승해 주민 불안을 부추겨서는 곤란하다. 원전 재가동의 잣대는 과학과 안전이지, 눈앞의 표가 돼서는 안 된다.

 

한겨레 <2015년 2월 28일 27면>

문제투성이 월성원전 수명연장 결정

 

원 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27일 새벽 일부 위원이 퇴장한 가운데 월성원전 1호기의 수명 연장을 허가하는 결정을 내렸다. 설계수명 30년이 다해 3년째 가동이 중단된 월성 1호기가 2022년까지 다시 발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다. 원안위 논의 과정에서 안전성을 둘러싼 쟁점 등이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일방적으로 표결을 밀어붙였다. 안전성은 원전 가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가 아닌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교훈을 제대로 새겼다면 이런 졸속 결정은 하지 못할 것이다. 월성 1호기가 자리한 경북 경주시 양남면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원안위 구성이 편파적이라는 점은 제쳐놓더라도 이번 결정 과정에는 문제가 많다. 1991년에 새로 만든 원전 안전기술기준(R-7)이 월성 2~4호기를 비롯해 다른 원전에는 모두 적용됐으나 월성 1호기에는 그러지 않았다는 등의 지적이 잇따랐다. 원전 사고의 위험을 생각할 때 하나라도 허투루 다뤄서는 안 될 사안이다. 하지만 안전 관련 문제점은 대부분 제대로 해소되지 않았다. 수명 연장에 찬성한 위원들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심사보고서를 토대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반대 위원들을 설득하지 못한 것이다. 원전에 대한 찬성과 반대라는 가치 차원의 판단과는 별개로 기술 차원에서 수명 연장 주장이 튼실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개정된 원자력법 취지에 걸맞게 주민의견 수렴 조항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논란과, 일부 위원의 자격에 결함이 있다는 논란 등도 정리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원안위는 무엇에 쫓기듯이 반대 의견을 묵살하고 표결을 강행했다. 소련의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통해 이런 사고가 얼마나 끔찍한 재앙을 낳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원전에서 사고가 날 확률은 낮을지 모르지만 일단 사고가 나면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다. 당장 안전해 보인다고 해서 결코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만큼 원안위는 이번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 이완구 총리가 27일 국회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 문제를 표결로 하는 것의 문제 제기에 대해 부분적으로 동의한다”고 했는데, 이 총리가 앞장섰으면 좋겠다. 월성 1호기 주변 30㎞ 안에서 생활하는 130만여명의 불안을 생각하면 적극 나서야 한다. 정부와 여당 위주로 꾸려진 원안위 구성도 좀더 다양한 의견이 반영될 수 있게 바꿔야 한다. 9명 가운데 야당 추천이 2명이라니 균형과는 거리가 멀다.

 

 

논리 vs 논리

 

“재가동 잣대는 과학과 안전” vs “재가동 결정은 졸속 결정”

 

<단계1> 공통주제의 의미

 

  지난 2월 27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30년 설계수명이 끝나 지난 2012년부터 3년째 가동이 중단된 원자력발전소 월성 1호기에 대해 2022년까지 운전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원안위는 지난 26일 오전 10시부터 14시간에 걸친 회의 끝에 27일 오전 1시쯤 재허가에 반대하는 위원 2명이 퇴장한 가운데 표결을 실시해 표결 참가 위원 7명 전원 찬성으로 월성 1호기 계속 운전 허가를 결정했다. 한수원 측은 앞으로 45일간의 계획예방정비 등을 거쳐 4월부터 원전 재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월성 1호기 계속 운전 결정에 대해 가톨릭환경연대, 경주핵안전연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환경운동연합 등으로 이뤄진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은 이날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열고 전문가가 제기한 안전성 쟁점을 해결하지 않고 월성원전 1호기 수명 연장 심의안을 표결로 강행처리 했다면서 원안위의 결정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국민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라며 관련 상임위를 소집해 원전 수명 연장 문제를 철저하게 따지겠다고 밝혔다. 정의당도 원안위 위원장의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구가 부산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당정협의에서 “(부산에 위치한) 고리원전 1호기 폐쇄에 대한 정부 입장을 파악해보니 부산 시민이 원하는 방향(폐로)으로 갈 것 같다”고 말했다.

 

 <단계2> 문제 접근의 시각차

 

  중앙의 사설 제목을 보자. ‘원전 재가동의 잣대는 오직 안전이다’. 안전만 전제된다면 원전 재가동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이 중앙의 입장이다. 중앙은 이번 심사과정에서 제기된 일부 안전기준 보완조치를 취할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 아울러 반발하는 주민들과의 소통도 당부한다. 중앙은 원전 납품 비리를 들어 원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이 괜한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도 한다.

 

  중앙이 안전을 대전제로 원전 재가동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데는 원자력이 매우 효율적인 에너지라는 실용주의가 전제되어 있다. ‘원전에서 나오는 값싸고 질 좋은 전력은 우리 경제의 한 버팀목이기도 하다’는 대목이 중앙의 실용주의를 잘 보여준다. 온난화를 부추길 수 있는 화력발전과 달리 원자력은 지구 온난화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는 점도 실용주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원전 재가동 허가 결정을 보는 한겨레의 눈은 곱지 않다. 사설 제목부터 ‘문제투성이 월성원전 수명연장 결정’이다. 한겨레가 문제 삼는 것은 원전 재가동 문제가 합리적인 절차를 위배했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에 치우친 위원 구성의 편파성, 주민의견 수렴 조항의 미적용, 일부 위원의 자격결함을 한겨레는 조목조목 지목한다.

 

  한겨레의 이런 지적은 월성 1호기 인근 주민들과 환경운동연합이 조성경 원안위원에게 심사에서 빠질 것을 요구한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조 위원은 지난해 6월 위원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앞서 2010년 12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한수원 신규부지선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최근 3년 이내 원자력 이용자(한수원) 등 사업에 관여했던 사람은 위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겨레는 원전의 안전성을 중앙보다 강조하고 있다. 한겨레는 원안위 논의 과정에서 안전성을 둘러싼 쟁점이 해결되지 않았음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1991년에 새로 만든 원전 안전기술기준(R-7)이 월성 2~4호기를 비롯해 다른 원전에는 모두 적용됐으나 월성 1호기에는 그러지 않았다는 등의 지적이 잇따랐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단계3> 시각차가 나온 배경

 

  원전 재가동 문제를 보는 중앙의 입장은 실용주의다. 자원빈국에서 원자력만 한 효율적 에너지가 없다는 것이 실용주의의 실체다. 중앙의 이런 실용주의는 우리 경제의 한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원자력을 야당이 정쟁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으로 이어진다. ‘국가의 대계(大計)가 걸린 에너지 문제를 여론에 편승해 주민 불안을 부추겨서는 곤란하다. 원전 재가동의 잣대는 과학과 안전이지, 눈앞의 표가 돼서는 안 된다’라고 중앙은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을 경계한다. 중앙이 빠뜨린 것이 있다면 지역구가 부산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역시 ‘눈앞의 표’를 의식해 여론에 편승한 듯한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 어쨌든 중앙은 원전 재가동에 대해 정치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국가의 이익이라는 관점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한겨레가 강조하는 것은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의 합리성과 민주성이다. 주민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를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결정한 것이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원자력이 커다란 재앙의 진원지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고려할 때, 경청할 만한 대목이다. 반대의견을 묵살하고 원안위가 표결을 강행했다는 점도 한겨레가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부분이다. 이는 “원전 안전, 국민 안전은 다수결로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 합의할 사항”이라고 밝힌 환경운동의 주장과도 궤를 같이하는 주장이다. 또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국민들의 관심사로 부각된 안전에 대한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앙이 우리나라 에너지 근간으로서의 원전의 경제적 효율성을 강조한다면 한겨레는 절차적 합리성과 비민주성을 들어 원전 재가동 결정을 재고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어떤 입장과 태도를 취하느냐는 과학의 몫에 달린 것이기도 하고 정치의 몫이기도 하다. 국민들의 안전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라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 그 밖의 칼럼

 

[한겨레신문 칼럼-정석구 칼럼/정석구(편집인)-20150310화] 테러와 피습, 그리고 종북몰이

진영 논리라는 말이 있다. 같은 편이면 잘못해도 감싸주고, 다른 편이면 가차 없이 비판하는 행위 등을 말한다. 진실을 보도해야 할 언론이 이런 진영 논리에 빠져 제 논에 물 대기 식으로 사실을 왜곡해 전달한다는 비판을 종종 받는다.

 

지난해 12월, 한 고등학생이 ‘신은미 토크콘서트’ 현장에서 폭발물을 던졌을 때 <한겨레>는 이를 ‘테러’로 규정했다. 하지만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해서는 테러라는 단어 대신 ‘피습’이라고 썼다. 두 사건 모두 폭력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력히 규탄했지만 용어는 달리했다.

 

정치적 의도가 있는 폭력 사태에 대해 한쪽은 테러라고 하고, 다른 쪽은 피습이라고 하는 건 논리적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비칠 것이다. 특히 ‘극우 성향’ 고등학생의 폭발물 투척에 대해서는 테러라고 비난하면서, ‘진보 성향’ 인사의 미국대사 공격은 피습이라고 하는 건 자기편 감싸기 아니냐는 비판을 들을 만도 하다. 미국대사 사건은 피해 당사자와 미국 쪽이 테러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데 우리가 굳이 테러라고 할 필요가 있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남 탓만으로 돌릴 일은 아니다. 진영 논리에 따라 자의적이고 편파적인 단어를 쓰게 되면 언론이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된다. 기사를 쓸 때 객관적인 실체를 보여줄 수 있도록 더욱 엄정한 단어를 골라 쓰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렇다고 서로 다른 의견을 모두 진영 논리에 따른 것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그리되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종북 논란이 그렇다.

 

<한겨레>가 지속적으로 보수정권과 보수언론의 종북몰이를 비판하고 있는 것은 진영 논리에 빠져 진보세력의 편을 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종북 논란이 거세질수록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남북관계는 물론 국제관계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우선 종북몰이는 개인의 양심과 사상을 검열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와 정면으로 어긋난다. 권력을 장악한 보수세력이 국민을 상대로 종북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우리 편인지 아닌지를 드러내 보이라고 협박하는 것과 같다. 이런 억압적 분위기가 확산돼 국민의 일상생활을 옥죄면 사회 전반이 경직될 수밖에 없다. 신은미 사건 이후 북한의 실상 중 나쁜 면을 드러내는 것은 상관없지만 좋은 면을 부각시키면 종북이 되는 나라가 됐다. 이런 사회를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

 

종북 논란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끼치게 됨은 물론이다. 우리에게 북한이란 존재는 이중적이다.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가장 호전적인 존재이자 언젠가는 보듬고 함께 살아가야 할 같은 민족이다. 이런 엄혹한 ‘현실’과 희망찬 ‘당위’를 어떻게 조화시키면서 미래로 나아가느냐가 우리 앞에 놓인 어려운 과제다. 그런데 종북몰이가 계속될 경우 북한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상정하는 등 대결 국면이 강화되면서 자칫 과거의 전쟁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남북 모두에 불행이다.

 

국제관계에 끼치는 영향도 작지 않다. 종북 논란은 필연적으로 대미 종속적인 국면으로 이어진다. 주한 미국대사 사건 이후 정치권과 우리 사회 일각에서 지나친 미국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머지않아 잦아들 것으로 기대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의 군사·외교정책이 미국 쪽에 과도하게 기울 경우 우리의 국제정치적 입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얼마나 균형있게 유지해 나가느냐에 우리의 생존과 미래가 달려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물론 북한 체제를 추종하며 폭력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진짜 종북세력’은 우리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미국대사 사건에도 그런 배후가 있는지 엄정하게 수사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진행되고 있는 종북몰이는 다분히 의도적이고 정략적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보수세력이 그걸 알고도 종북몰이를 한다면 그것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나라를 망치는 일이다. 겸허히 되돌아보기 바란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문소영(논설위원)-20150310화] 과공비례(過恭非禮)

 

유학은 예(禮)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도(道)가 예를 통해 드러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예의 바르지 않으면 선비가 아니라고 했다. 조선시대에 양반 가문이라면 당연히 의관을 바르게 하고 교만하거나 건방진 언행은 삼가는 것이 기본이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공자는 “지나친 공손은 예와 어긋난다”는 뜻의 과공비례(過恭非禮)를 경고했다. ‘맹자’도 이루장에서 “비례지례(非禮之禮)와 비의지의(非義之義)를 대인(大人)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인은 비례와 비의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과공비례이고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예는 학문뿐 아니라 통치에도 관여했다. 17세기 조선 후기 벌어진 1차·2차 예송 논쟁이다. 1차 예송 논쟁은 1659년 둘째 아들로 왕위를 이은 효종이 죽자 효종의 어머니 자의대비(인조의 계비)가 3년상을 받을지 1년상을 받을지 논란을 벌인 것이다. 아무리 국왕이지만 둘째 왕자였으니 1년상만 치르면 된다던 송시열 등 서인이 이겼다. 2차 예송 논쟁은 1674년 효종비 인선왕후가 죽자 다시 자의대비가 상복을 얼마나 입을까로 시작됐다. 남인은 1년, 서인은 9개월을 주장했는데 현종은 1년을 주장한 남인의 손을 들어 줬다. 예송 논쟁은 왕권을 일반사대부 수준으로 취급하려던 서인의 몰락과 남인의 득세로 이어져 왕권 강화가 됐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피습을 두고 19세기 말 일본에서 벌어진 ‘오쓰 사건’과 비교하기도 한다. 1891년 5월 1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릴 시베리아철도(TSR) 기공식 참석을 앞두고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가 일본 오쓰 지역을 방문했는데 일본인 순사 쓰다 산조가 갑자기 일본도로 황태자를 습격한 것이다. 찰과상에 그쳤지만, 일본은 발칵 뒤집혔다. 메이지 천왕이 황태자를 위문했고, 전국의 학생은 위문편지와 위문품을 보냈다. 일본인들은 이어 쓰다 성(姓)을 가진 사람들은 성을 바꾸고, ‘산조’라는 이름은 폐기했다. 일본 정부는 사형을 선고하도록 사법부에 압력을 가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거부하고 일반인 모살 미수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쓰다는 복역 중 사망했고, 그 일가는 일본인들의 집단 따돌림 등으로 멸절됐다.

 

리퍼트 대사는 피습 직후 한국어로 “같이 갑시다”라는 글을 남겨 외교관의 냉철한 이성을 보여 줬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하는 행사를 내외신으로 보았다. 한복을 입은 중년 여성들이 부채춤과 장구춤을 추고, 발레를 선보이는가 하면 기도회도 열렸다. 70대 남성은 개고기와 미역국을 싸들고 병문안을 갔단다. 과공비례가 아닌가 싶다. 지나친 공손은 예의도 아니고 비굴하게 보이거나 미덥지 못한 대상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혈맹’이라는 한·미 동맹이 개인의 피습으로 훼손될 만큼 허약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엄을순(문화미래이프 대표)-20150310화] 뽁뽁이 너머엔 파란 봄이 있다

 

지겹다. 겨울 내내 지지고 볶고 끓인 김장김치. 시뻘건 국물만 봐도 이젠 신물이 올라온다. 창에는 유리창이 제 노릇도 못하게 뽁뽁이를 잔뜩 붙여놓았다. 난방비 아낀다고 꼭 이렇게 해야 하나. 겨울 내내 그 나물에 그 채소. 그마저 눈 오면 시장도 못 간다. 대충 때운다고 애꿎은 김장김치만 들볶아 놓고선 이제 와서 김장김치를 타박하다니. 밖으로 나갔다. 봄은 ‘아직’이다.

 

그런데 어라, 새 소리가 어제와 다르다. 힘이 실려 있다. 깨작대던 숟가락을 내던지고 양평으로 갔다. 오늘 오일장 서는 날이다. 입구부터 북적북적, 이제야 내가 살아 있는 것 같다. 기름에 둥둥 떠다니는 도넛을 보고 있는데 주인아저씨가 갓 튀긴 도넛을 먹어보라 건넨다. 통도 크셔라. 백화점 시식코너에 가면 손톱만 하게 잘라놓고 먹어보라던데 이 아저씨는 한 개를 통째로 주신다.

 

오길 참 잘했다. 한 봉지 샀다. 커다란 솥에 담긴 구수한 멸치국물을 그릇에 연신 퍼담는 아주머니. 앉자마자 주문과 동시에 잔치국수 등장. ‘수저랑 김치 좀’ 했더니 옆에 앉은 손님이 챙겨 준다. 식탁마다 김치며 수저가 쌓여 있다. 여긴 다 셀프다. 김치도 함께? 일단 께름칙해서 김치를 덜어, 내 국수 그릇에 놓고 먹다가 나중엔 아예 같이 먹었다. 옛날에도 잔칫집 가면 한 상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먹지 않았던가. 그릇을 말끔히 비우고 일어났다.

 

 손톱이 까맣게 더덕껍질을 까고 계시는 할머니에게 더덕·달래·원추리도 사고, 직접 키운 콩으로 띄웠다는 청국장도 샀다. 그때 코앞에 불쑥 무언가를 내미는 밑반찬 파는 아줌마. 내미는 반찬마다 조금씩 사다 보니 봉지봉지 가득하다.

 

  특별할 것도 없는데 맛있는 멸치국수. 빈대떡, 수수부침, 순댓국까지. 오일장에는 먹거리가 많다. 오일마다 잔치한다. 그곳에 가면 덤 많이 주는 달래 할머니도 있고, ‘통 큰 시식’ 도넛 아저씨도 있고, 예쁜 반찬가게 아줌마도 있고, 손톱 까만 할머니의 더덕도 있고, 아기같이 작은 체구를 가진 할머니의 청국장도 있다. 모든 게 살아 꿈틀댄다. 불경기에 더 팔겠다고 초조해하거나 안달하지 않고 다들 무심하다. 이런 ‘불경기도 때가 되면 다 지나가더라’는 비밀을 아는 게다.

 

 겨울을 겪어봐야 봄 귀한 걸 안다고 했다. 혹독한 겨울일수록 오는 봄이 더 귀할 게다.

 

 뽁뽁이 너머 보이는 바깥풍경이 단열을 위한 에어캡 때문인가 요지경 세상이다. 저 너머엔 희망찬 새 봄이 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저 뽁뽁이를 벗길 수 있으려나.

 

 

[경향신문 칼럼-여적/김석종(논설위원)-20150310화] ‘터미널’ 난민(難民)

 

할리우드 영화 <터미널>에서 주인공(톰 행크스)은 미국 방문 길에 동유럽의 고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귀국할 수도, 미국에 입국할 수도 없는 무국적자 신세가 된다. 그는 뉴욕 JFK공항의 환승구역에서 9개월 동안 갇혀 지낸다. 영어를 못해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면서도 공항 직원들과 친해지고, 우연히 만난 스튜어디스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최근 이 영화와 너무나 비슷한 상황이 인천공항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내전이 반복되는 아프리카 극빈국 출신의 한 청년이 공항 환승구역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6개월을 살았다는 것이다. 청년은 고국에서 징집명령을 받자 ‘동족을 죽이는 내전에 참여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입영을 거부하고 한국행을 택했다. 하지만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입국 목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입국을 불허하고 송환대기실로 보냈다.

 

귀국하면 박해받을 게 뻔한 상황이어서 그야말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된 청년은 사실상의 구금시설인 송환대기실에서 하루 세끼 제공되는 햄버거와 콜라만 먹으며 지냈다. 화장실에서 세탁과 목욕을 하고 침구도 없이 새우잠을 잤다. 다행히 국내 난민보호단체, 변호사 등의 도움으로 소송을 낸 끝에 지난해 4월 공항을 벗어났다. 그리고 입국 1년4개월 만인 최근에야 겨우 법원에서 정식으로 난민심사를 받을 자격을 얻었다고 한다.

 

난민은 인종·종교·정치·경제·사회적인 이유로 본국에서 박해 혹은 생명의 위협을 느껴 조국을 떠난 사람들이다. 국제사회는 국제법으로 난민을 보호한다. 그러나 박해, 전쟁, 테러, 빈곤, 재해로 지구촌 곳곳에 난민이 넘쳐난다. 우리나라는 1994년 난민신청을 받기 시작했으며 2001년 최초로 에티오피아인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했다. 이후 해마다 1000명 넘는 외국인이 난민신청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외국인이 난민으로 인정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난민의 기구한 사연이 남의 나라 일만도 아니다. 굶주림, 식민지배, 전쟁, 분단, 독재로 인해 이 땅을 떠난 동포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국 땅에 망명정부를 세우기도 했다. 이제는 우리가 눈물 속에 조국을 떠나온 난민들을 따뜻하게 보살필 차례인 듯싶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310화] 12사도

 

고흐 그림 ‘밤의 카페 테라스’ 속 인물들이 예수와 12사도를 상징한다는 주장은 여러 모로 흥미롭다. 해외 언론은 미술 연구가 제어드 박스터의 분석을 인용해 긴 머리에 흰옷 입은 사람이 예수, 테이블에 앉거나 주변에 서 있는 열두 명이 12사도, 카페에서 걸어나가는 한 사람이 배반자 가롯 유다를 의미한다고 전했다. 고흐가 작품 속에 은밀한 형태로 ‘최후의 만찬’을 그려 넣었다는 얘기다.

 

왜 하필 12사도였을까. 학자들은 예수가 수많은 추종자 중에서 12명을 선택해 사도로 삼은 것은 이스라엘 12지파의 통합 및 복음 전파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예수 생전에 제자였던 이들은 예수 승천 후 복음을 선포하고 귀신을 쫓는 권능을 갖춘 사도로 임명돼 각지로 파견됐다. 자살한 유다를 대신해 부활의 증인이 될 사람을 제비뽑아 채운 것도 ‘12’라는 숫자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새 예루살렘 도성이 12기초석과 12진주문을 가진 것 또한 그렇다.

 

기독교뿐만이 아니다. 동서양 문명권 모두에서 숫자 12는 ‘우주의 질서’와 ‘완전한 주기’를 상징하는 완성수다. 수리학이 완성되기 전부터도 1년은 12개월, 하루 밤낮은 12시간씩이었다. 태양 궤도를 상징하는 원을 12등분하고 12개의 별자리를 붙인 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신화와 인도 경전 베다 속의 12신, 동양의 간지를 이루는 12지(支), 북유럽 신화 속 우주수(宇宙樹)의 12과실, 아서 왕의 원탁 기사 12명도 같은 범주다.

 

현대적인 발명품이나 문화 콘텐츠에도 무수히 많다. 축구공은 12개의 검은색 정오각형과 20개의 흰색 정육각형으로 구성돼 있고, 피아노 건반은 한 옥타브가 12개의 반음으로 이뤄져 있다. 키보드의 기능 키(F1~F12) 12개, 연필 1다스 12개,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이 꼽은 최고 와인 12가지, 호주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12사도 바위상까지 거론한다면 좀 지나칠까.

 

고흐가 그림 속에 종교적인 암시를 숨겨놓았다면 그 이유는 성장 배경과 관련 있을지 모른다. 그는 화가가 되기 전 목회자를 꿈꿨다. 아버지가 네덜란드개혁교회 목사였고 삼촌이 저명한 신학자였던 걸 보면 그럴 법하다.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릴 무렵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종교가 대단히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고 썼으니 더욱 그럴 수 있겠다. 평생 고달프게 산 그가 어두운 밤의 밑바닥을 천국의 빛인 노란색으로 칠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문성진(논설위원)-20150310화] 위안화 직거래 100일

 

중국 경제가 7%대 감속(減速)성장의 '바오치(保七)' 시대에 진입했지만 위안화만은 가속(加速)성장 추세다. 지난해 12월 현재 위안화의 국제결제 비중은 2.2%로 2013년 1월의 0.6%에서 급팽창했다. 위안화의 랭킹도 13위에서 5위로 수직 상승했다. 결제비중 2.7%를 달리는 일본을 제칠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2005년 위안화의 변동환율제도 도입을 시작으로 2009년 위안화 무역결제 시행, 2011년 위안화 대외직접투자 허용, 2014년 '후강퉁' 도입까지 숨 가쁘게 추진한 '위안화 국제화 전략'이 차츰 결실을 맺는 모습이다.

 

한국은 10일 위안화 직거래 시장 개설 100일을 맞는다. 원·달러 거래량 대비 원·위안 거래량은 지난해 12월 12%에서 올해 3월 18%로 늘었다. 하루 위안화 직거래량도 한국이 9억4,000만달러 안팎으로 러시아의 7억달러와 일본의 2억달러를 압도하는 수준이다. 이 정도면 러시아와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시작된 한국의 직거래시장은 성공작으로 평가할 만하다.

 

'위안화 허브' 전략은 업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중국 무역대금의 위안화 직접결제를 올해 안에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연간 300억달러에 달하는 대중국 무역액의 일부를 위안화 결제로 전환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한중 위안화 표시 무역 결제 확대를 추진하는 정부의 방향에 대한 업계 차원의 호응이기도 하다. 지난해 4·4분기 국내 기업의 대중국 무역대금 가운데 위안화 결제 비중이 1.7%에 그쳐 홍콩과 싱가포르처럼 금융·무역거래에서 위안화 결제가 좀 더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

 

다만 중국 경제가 흔들린다면 '위안화 허브'의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사실은 유념해야 한다. 더구나 요즘은 중국에 대한 불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시진핑 체제'의 독재 스트레스 때문에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경제의 급변동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갖고 준비해야겠다. 여전히 정치가 경제 위에 군림하고 있는 곳이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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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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