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세월호 1주기 추모집회 ■ 지중해 난민 참사 ■ 식물 총리 ■ 성완종 리스트 검찰 수사 ■ 4월 국회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세월호 1주기 추모집회 [한국일보 사설-20150421화] 과격시위, 세월호 여론 왜곡시킬 우려 크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아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열렸던 추모행사가 과격화한 시위와 경찰의 캡사이신 물대포 차벽 대응으로
난장판이 됐다. 겹겹이 쳐진 경찰의 봉쇄벽, 이에 흥분한 시위대의 경찰버스 공격과 태극기 소각 장면은 도하 언론에 대대적으로
부각됐다. 숙연하게 망자와 유족의 한을 달래는 취지의 추모행사는 또 좌우 진영 간에 저마다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이 모습을 본
대다수 국민들은 정작 세월호 대신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갈등과 반목을 떠올리며 절망과 슬픔을 느꼈을 것이다.
이날 시위로 유가족과 시민, 경찰관과 의경 다수가 부상당하고, 경찰차량 수십 대가 훼손됐으며, 경찰 장비 수백 점이 사라지거나
파손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서 연행된 100여명 중 80여명은 외부단체 소속이나 일반인으로 알려졌다. 추모행사가 폭력화한
이유에 대해 양 측의 주장은 크게 엇갈린다. 집회를 주최한 4ㆍ16 가족협의회와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측은 경찰이 차벽 설치를
예고하는 등 강경일변도의 자세로 시위대를 자극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경찰은 전문시위꾼 등 외부세력이 개입해 사태를 과격하게
몰아갔다고 반박한다. 현장을 지켜 본 시민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24일 민주노총의 총파업 결의대회를 필두로, 25일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대동 한마당, 5월1일 양대 노총의 노동자대회가 줄줄이
예고된 상황에서 경찰이 지레 과잉대비, 대응으로 유족과 시민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했을 개연성은 대단히 크다. 시위 참여 군중도
슬픔과 분노로 한껏 격앙된 상태여서 최초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를 가리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집회 측이 당초 집회신고
내용을 넘어 시위를 확대한 것만큼은 명백히 잘못됐다. 경찰의 책임 유무를 차치하고, 매 집회 때마다 평화집회와 시위를 끝내
폭력적으로 변질시키거나 충동질하는 일부 세력의 존재는 분명하게 목격된다.
지난해 보수를 자처하는 일부가 단식하는 유족의 면전에서 음식을 먹으며 조롱하는 짐승 같은 짓으로 국민의 공분을 산 바 있다.
과격 폭력시위는 유족의 주장과 입장의 정당성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고, 유족의 아픔을 십분 이해해온 선량한 시민들의 공감을 훼손하는
점에서 해악은 크게 다를 것 없다. 이미 주말 이후 세월호 피로감을 대놓고 말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건 크게 우려할 만한
현상이다.
거듭 말하지만 세월호는 결코 잊혀져서도, 최종적 해결이 더는 지연돼서도 안 된다. 이 원칙을 허무는 어떤 행위도 용납돼서는 안
된다. 시위의 과격화, 폭력화는 유족과 여론을 도리어 이간질하는 행위다. 이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인가. [중앙일보 사설-20150421화] 태극기 불태운 것은 반국가적 행위다
세월호 추모집회에서 한 청년이 태극기를 불태운 것을 놓고 비난이 일고 있다. 일각에선 ‘표현의 자유’라고 옹호하기도 하지만
‘국기 모독 행위’라는 비판여론이 대부분이다. 황교안 법무장관은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참석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태극기를 불태운 남성을 검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형법은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를 손상한 사람에겐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처벌한
사례는 거의 없다. 2011년 한명숙 전 총리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서 태극기를 밟은 채 헌화했다며 고발당했지만
각하(却下) 처분을 받았다. 태극기를 모독할 의도가 없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느냐를 떠나 일반인들이 용인하기엔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또 경찰과 대치 중 태극기를
불태운 것은 세월호 추모집회를 자극해 반정부 시위로 몰고 가려는 고의성이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을 때도 태극기를 자주 앞세웠다. 적어도 시위 과정에서 국기를 욕보인 적은 없었다.
시위대가 진압 경찰과 충돌하더라도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지,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전복하려는 게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혐한(嫌韓) 시위대들은 태극기를 땅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거나 바퀴벌레나 오물을 그려 넣기도 한다. 이런 저열한 행위엔
항일운동의 상징이었던 태극기를 모독함으로써 일제의 만행을 정당화하려는 극우파들의 전략이 깔려 있다. 세월호 추모시위 중 태극기를
불태운 행위는 혐한 시위대들의 태극기 모독행위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는 추모행사의 본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은 물론 정부에
반대하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행위다. 세월호 추모집회가 갈수록 불법 폭력시위로 변질되는 조짐이다. 시위 주도세력 중엔
과거 불법시위에 ‘단골’로 참여하던 단체와 인물들도 보인다. 야당은 불법시위의 책임을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태극기를 불태우는 극단 행동까지 마냥 감싸고 그냥 넘어갈 일인지 묻고 싶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1화] 태극기까지 불태운 시위대
지난주 말 열린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에서 시위 참가자가 태극기를 불태운 충격적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날 시위는 애초부터
불법·폭력으로 변질될 소지가 있어 경찰은 1만3,000명의 병력을 동원하고 트럭과 버스 등 470여대의 차량을 이용해 6겹의
저지선을 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대회 이후 청와대로 향하는 참가자들과 경찰이 정면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져 경찰 74명을
포함해 유가족·시민 등 80여명의 부상자가 나왔고 71대의 차량이 파손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세월호 사고에 대한 추모의 의미는 퇴색하고 오히려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를 욕되게 하는 수준이다. 시위대 일부는
경찰 차량을 부수고 차량 안의 분말소화기를 꺼내 뿌리거나 유리창을 잡아당기는 등 '광장의 논리'가 횡행하던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와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이 과정에서 캠코더와 무전기 등 368대의 경찰 장비가 파손됐고 경찰은 10개월 만에
물대포를 사용했다고 하니 이날 시위의 과격성과 폭력성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이날 시위 참가자 일부가 태극기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직접 연출하고 이것이 여과 없이 TV 화면에 그대로 잡힌 점이다. 이날 시위에서 나타난 폭력 수준은 별개로
하더라도 이 같은 행동은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용납될 수준을 넘어선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은 오히려
경찰이 '추모할 자유'를 막았다며 사실을 호도하기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시위는 할 수 있지만 해서는 안 될 행동이 있다"며 부당성을 고발하는 글이 잇따른 것은
당연하다. 세월호 사고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가 법을 지키지 않은 불법·탈법적 부정과 부패가 집약돼 나타난 결과다. 세월호 사건
추모 행사를 이유로 국기까지 불태우는 행위를 자행했다면 그것은 사회 모두를 욕보이는 일일 뿐이다. ■ 지중해 난민 참사 [한국일보 사설-20150421화] 지중해 잇단 난민 참사, 국제사회 방치 안 돼
18일 밤(현지시간) 난민 700여명을 태우고 리비아를 출발한 배가 지중해에서 전복돼 대부분이 몰살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현재까지 구조된 사람은 50여명에 불과하다. 인명피해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지중해 최악의 참사가 될 것이라고
유엔난민기구(UNHCR)는 경고했다. 사고는 이탈리아령인 람페두사섬 남쪽 190여㎞ 지점에서 정원을 초과해 승선한 난민들이
지나가던 포르투갈 상선에 구조를 요청하려고 한쪽으로 몰리면서 배가 뒤집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20일에는 에게해에서 난민
200여명을 태운 배가 침몰했다.
지중해에서 난민들이 목숨을 건 밀항을 시도하다 떼죽음 당하는 사례가 2011년 리비아사태 이후 급증 추세다. 앞서 12일
리비아를 떠나 이탈리아로 향하던 난민선이 전복돼 550여명 중 400여명이 희생됐고, 이틀 뒤에는 100여명이 탄 난민선에서
종교갈등에 따른 싸움이 벌어져 소수계인 기독교 난민 12명이 바다에 수장됐다. 지난해 10월에는 난민선이 뒤집혀 360여명이
몰살당했고, 9월에도 리비아에서 출발한 난민선 3척이 잇따라 침몰해 500여명이 숨졌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올해
지중해에서 숨진 난민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0배가 늘었다. 지중해가 바다가 아니라 난민들의 무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리비아가 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 무정부상태에 빠지면서 해안통제가 허술해지자 유럽행을 꿈꾸는 중동ㆍ아프리카
난민들이 대거 리비아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리비아는 이탈리아나 지중해 섬나라인 몰타와 가장 가깝다. 리비아에서 대기중인 난민만도
5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EU의 난민대책은 미온적이다. 이탈리아는 EU의 지원을 받아 2013년부터
해군을 동원한 난민 구조작전인 ‘마레 노스트롬’을 실시해 왔으나 지난해 11월 EU가 자금지원을 중단하면서 구조범위가 훨씬 제한된
‘트리톤’ 작전으로 대체됐다.
유럽이 난민 문제에 소극적인 것은 경제난과 테러, 이질적 종교 등에서 비롯된 반 이민자 정서 때문이다. 다음달 각각 총선과
지방선거를 치르는 영국과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여론에 편승해 이민자의 유입을 강력히 단속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난민들에 대한 적극적인 해상구조가 불법 밀입국을 부추긴다고 비판이 나올 정도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난민들의 참혹한 희생을 외면하고 방조하는 것은 특정국가나 지역의 문제로 넘겨서는 안될 반인륜적 행위다.
리비아가 난민 집단탈출의 집결지가 될 정도로 통제불능으로 치닫게 된 데는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공습을 단행한 서방의
책임도 있다. 국경통제를 강화하고 난민들을 위한 역외 수용소를 설치하는 등 의 대책부터 우선적으로 강구돼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1화] ‘지중해 난민 참사’와 유럽의 책임
난민들을 태우고 리비아에서 출발해 이탈리아로 가던 어선이 18일(현지시각) 침몰해 700명 넘게 숨지는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다.
리비아 근해에서 난민선이 뒤집혀 400여명이 숨진 지 불과 엿새 만이다. ‘지중해 난민’이 하루 이틀 된 문제는 아니지만 이런
참사가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
지중해 난민 참사는 난민을 배출하거나 수송하는 쪽과 목적지인 유럽 쪽에 모두 책임이 있다. 난민 배출국은 대부분 중동과 아프리카
나라들이다. 계속되는 전쟁, 폭정, 빈곤, 질병 등이 주된 요인이다. 특히 최근에는 내전이 치열해진 시리아의 난민이 부쩍
늘었다. 이탈리아와 가깝고 해안 관리가 허술해 유럽행의 관문이 된 리비아에는 수십만명의 난민이 대기 중이라고 한다. 낡고 작은
배에 난민을 가득 태우다 보니 전복 사고가 빈발한다. 얼마 전에는 난민들을 바다 한가운데 남겨놓고 선장과 선원이 사라져버리는 일도
있었다.
난민과 이민자가 늘수록 유럽 나라들의 반이민 정서도 커지고 있다. 극우세력이 이민자 문제를 부각시켜 세를 키우고 정부가 외국인
유입에 강경 대처하는 패턴이 형성된 것이다. 2013년 10월 360여명의 난민이 숨진 직후 만들어진 해양 구조 계획은 1년여
동안 13만명을 구조하는 등 큰 성과가 있었다. 유럽연합이 지원한 이 계획은 올해 초 소규모 국경경비 계획으로 대체됐다. 이후
이탈리아는 자체 구조 활동을 강화했지만 이번 참사를 막지 못했다. 결국 국가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중동·아프리카 나라들과
활개치는 불법 브로커들, 난민 문제에서 벗어나려는 유럽 나라들이 모두 참사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국제이주기구(IOM)의 지난해 9월 보고서를 보면, 2000년 이후 잘사는 나라로 불법 이주하려다 목숨을 잃은 사람은 4만명이
넘는다. 하루 8명꼴이다. 이 가운데 지중해에서 숨진 사람이 2만2천여명이나 된다. 지구촌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유럽 나라들이
난민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는 것은 반인권적이다. 당장 모든 문제를 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참사는 막아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1화] 위험에 처한 난민 구조에 유럽은 신속히 나서길
지난 2월11일 난민을 태운 어선 2척이 리비아를 떠나 이탈리아의 람페두사 섬으로 향했지만 대부분의 난민들은 섬에 오를 수
없었다. 섬에 도착하기 전 배가 바다에 침몰했기 때문이다. 이 사고로 300여명이 숨졌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4월12일
난민선 한 척이 리비아 해안에서 뒤집혀 400여명이 익사했다. 다시 한 달쯤 뒤인 지난 18일 리비아를 떠난 난민선 한 척이
람페두사 섬에서 남쪽으로 약 193㎞ 떨어진 곳에서 전복됐다. 적어도 700여명이 사망했다. 20m 길이의 작은 배에 950명이
탔다는 증언도 있다. 300명은 밀입국 업자들에 의해 갑판 아래 짐칸에 갇힌 상태였고, 승객 가운데 여성이 200명, 어린이가
50명 정도 있었다고 한 생존자는 증언했다. 지중해 최악의 해상 사고였다.
많으면 수백명씩, 적으면 수십명씩 거의 매일같이 리비아와 람페두사 섬 사이의 지중해에서 난민들이 죽어가고 있다. 18일 사고를
제외하고도 올해 벌써 900명 정도가 바다에 빠져 죽었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0배나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13만명을
구조한 이탈리아 해안경비대는 지난주에만 11만명을 구조했다. 날씨가 풀리면서 중동 및 아프리카 난민들이 국가통제력이 무너진
리비아로 몰려 최소 50만명이 대기상태에 있다고 한다. 더 많은 위험, 더 많은 죽음의 행진이 예고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그동안 이 인도주의적 재앙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다. 난민이 갈수록 늘고 있는 데도 지난해 가을부터 순찰과 구조
활동을 3분의 1로 줄였고, 그 결과 5000명 구조라는 미비한 성과에 그쳤다. 전쟁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중동 및 아프리카인들이
생존과 더 나은 삶을 찾아 목숨을 건 탈출을 하는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을 세계가 방치하는 것은 그 자체로 반인도적 행위이다.
마침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대책 마련을 위한 유럽 정상회의 개최를 제안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다음달 국경관리대책과
비용 분담 방안을 담은 종합 대책을 발표하는 일정이 있다. 유럽연합은 이 기회에 과감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선 난민 구출을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 더 이상 지중해가 위기에 처한 이들의 무덤이 되지 않도록 구조 활동에 필요한 장비와
인력, 비용을 대폭 늘려야 한다. 난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브로커들을 단속할 필요도 있다. 제도적 해결방안도 요구된다. 중동 및
아프리카에 현장 출입국 심사 기구를 두거나 합법적 이민의 폭을 넓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전쟁과 가난이 죽음에
이르는 길이 되지 않도록 세계는 신속하게 행동해야 한다. ■ 식물 총리 [한국일보 사설-20150421화] 정작 국정 발목 잡는 건 이완구 총리직 수행
이완구 국무총리가 ‘성완종 파문’에 휩싸여 ‘식물 총리’로 전락하면서 국정 공백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공무원연금 개혁이나
노동시장 구조개편 문제 등 화급한 국정의 주요 현안이 모두 실종됐거나 표류하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 새누리당은 19일 당정청
협의회를 열었으나 고위급협의가 아닌 실무협의에 그쳤다. 국회는 가동 중이지만 ‘성완종 리스트’라는 블랙홀에 빠져 사실상 마비
상태다. 정부 기능부터 정상화해야 가닥이 풀릴 것이나, 운신 폭이 전혀 없어진 이 총리의 존재 자체가 도리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 장애로 작용하는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이 총리는 그제 4ㆍ19혁명 기념식에 이어 어제는 장애인의 날 행사에 참석했다. 이 총리는 “대통령이 계실 때보다 더
열심히 국정을 챙기겠다”며 총리직 고수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국무총리가 이런저런
행사장을 쫓아다니는 게 소임의 전부일 리가 없다. 도덕적 정당성과 정치적 권위를 갖지 못한 반쪽 총리의 한계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총리는 이미 ‘성완종 리스트’ 포함의 진위 여부와 별개로 권위와 신뢰를 상실했다. 잦은 말 바꾸기와 증거 인멸 의혹 등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이 총리는 “성 전 회장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고 말했으나 지난 1년간 210여 차례 전화를 주고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성 전 회장이 남긴 기록에는 같은 기간에 23차례 만난 것으로 돼있다. 이 총리 측이 2013년 4월 재선거 때
“이 총리와 성 전 회장이 선거사무실에서 독대했다”고 진술한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회유와 협박을 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 총리는 성
전 회장이 숨지기 하루 전에 태안군의회 부의장 등 측근과 나눈 대화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15차례나 전화를 걸기도 했다. 이런
숱한 추문과 협잡에 얽혀있는 인물이 국정 현안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이 총리 거취 문제에 대한 상황이 조기에 정리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조만간 이
총리 해임건의안을 제출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 맞물려 자칫 이 총리가 강제로 떠밀려 나가는 진풍경이 연출될 지도 모른다. 지금의
국정 공백과 혼란을 끝낼 책임은 이 총리 본인에게 있다. 해임건의안 표결로 더 큰 혼란을 부르기 전에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게
본인이나 정권을 위해서도 옳은 태도다. 또한 그나마 남아있는 최소한의 명예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새누리당도 집권당으로서 책임을
지고 국정 공백사태를 줄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 총리가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고 처리는 박근혜 대통령 귀국
후에 하는 식의 ‘선 사의표명, 후 처리’방안이 현재로서는 가장 적절해 보인다. [중앙일보 사설-20150421화] 이 총리, 해임건의 표결 전 사퇴해야
이완구 국무총리의 거취를 둘러싸고 정국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중남미 순방을 위해 출국하기 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로부터 사실상 ‘총리 사퇴 불가피’ 여론을 전달받았다. 대통령은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했으나 27일
귀국까지 기다리기에는 혼란의 정도가 크다.
특히 중요 변수로 등장한 것은 야당의 해임건의 추진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오늘 의원총회를 열어 해임건의안 제출에 의견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건의안이 제출되면 여당은 표결을 피할 수 없다. 새누리당은 이완구 총리 청문회 후 임명동의안을 조속히 표결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임명동의는 촉구하면서 해임건의 표결을 미루는 건 모순이다.
해임건의 가결에는 새누리당 의원 14명 이상이 찬성에 합류해야 한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져 가결되면 박근혜 정권은 내부 분열로
급속한 레임덕(lame duck)에 빠질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아직 5년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첫해는 잇따른 인사참사와
국정원 댓글 사건, 둘째 해는 세월호 사태와 정윤회 문건파동으로 국정의 에너지를 소진시켰다. 내년 4월엔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일할 시간이 별로 없는데 총리 문제로 권력 내 지진이 터지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공무원연금과 노동시장의 개혁을 포함한 4대
개혁과제가 흔들릴 것이다.
이 총리는 4·19 기념식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성숙시켜 국가의 품격을 높이자고 말했다. 지금 다수 여론이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바로 국가의 품격 때문이다. 총리는 대통령의 위임을 받아 국정을 총괄하는 자리다. 그런 인물이 성완종 사건에서
거짓말, 말 바꾸기, 둘러대기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성 회장과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그가 최근 20개월 동안 성 회장을 23번 만났다는 기록이 발견됐다.
검찰조사 결과 지난 1년여 동안 두 사람 사이에 휴대전화 착·발신이 210여 차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절반만 연결됐어도
100여 차례 통화가 있었던 셈이 된다. 성 회장이 3000만원을 전달했다는 부여 선거사무소에 분명히 성 회장이 갔으며 두 사람이
만났다는 증언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총리는 자신과 그렇게 긴밀히 접촉했던 성 회장이 선거사무소에 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여러 차례 말을 바꾼 사실을 의원들이 지적하자 그는 ‘충청도 말투’라는 궤변으로 충청도민의 명예를
훼손했다.
3000만원의 진실과 별개로 이 총리는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는 품격과 능력을 상실했다. 조속히 자진 사퇴해 검찰 소환에 대비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 그리고 청문회에서 드러난 하자에도 불구하고 총리직 수행을 맡겼던 국회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다. 그는 “나에게도 명예가 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만약 그가 정말 3000만원을 받지 않았다면 시간이 그의 명예를
지켜줄 것이다. ■ 관련 칼럼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엄을순(문화미래이프 대표)-20150421화] 이완구, 이러고도 성완종과 안 친하다고? 공개 석상에서 옆 사람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미소를? 이런 건 친밀한 사람들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영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이완구 총리를 보면 가깝지 않아도 그럴 수 있는가 보다. 하긴, 친밀함이란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에 상대편이 아니라면 아닌 거다. 오래전에 누군가 내게 물었다. “드라마 작가 P씨랑 친하세요?” 대답을 한참이나 망설였다.
히트시킨 드라마가 서너 편. 그 당시 잘나가던 방송작가다. 만나는 사람마다, 특히 불쌍한 사람에게는 밥도 잘 사주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다. 이프 잡지 인터뷰를 계기로 만나 우리도 ‘가난한 여성단체’에 해당됐던지 전 직원(그래 봐야 10명)이 고기랑
밥이랑 술·노래방까지 풀코스로 여러 번 대접도 받았고, 가끔 회식비라며 격려금도 보내 줬다.
수입이 좋아서인지 성격이 좋은 건지 아니면 무슨 필요 때문인지. 마당발로 돈 쓸 곳을 찾아다니며 베풀던 그녀. 강이 보이는 그녀
작업실도 가 봤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와 난 결코 친한 사이는 아니다. 결국 “친하진 않고 만난 적만 있다”고 대답했다.
친한 사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나. 대상을 넓게 잡고 공들여 봤자 다 ‘헛삽질’이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명절 때마다
500명이 넘는 사람에게 선물을 돌리고 (정치) 성향이 같건 다르건, 마음이 맞건 안 맞건, 여당 야당, 동향 사람 타향 사람
닥치는 대로 죄다 찾아다니며 챙겼단다. 챙긴 상대가 명절 선물 명단대로 수백 명이라면 그들 중에서 “난 친한 사이다” 하고 선뜻
나설 사람이 있을까. ‘그 사람이 원래 주는 걸 좋아해 내가 받았을 뿐 그를 챙길 의무도, 또 안 챙겨도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여기며, 그들 모두가 ‘난 그저 n분의 1의 존재’라 생각했으리라.
그나저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돈 갖다 바치고 줄 서고 국회의원 되고. 이런 비틀어진 방법이 ‘친밀한 관계
만들기’라 여기고 신뢰와 의리를 기대했던 성 전 회장의 대책 없는 순진함도 놀랍지만 선거 때는 비타민(?)으로 살뜰하게 챙기고,
책을 내면 책값도 듬뿍 주고, 총리 낙방될까 봐 동네방네 몇천만원 들여 현수막을 걸어 주고, 호텔 행사 때마다 달려가 후원해
주고, 가족이랑 나란히 사진도 찍고, 이런 대접을 당당하게 받고서도 “친한 사이가 아니라 그저 같이 국회의원을 했을 뿐”이라
대꾸한 이 총리의 뻔뻔함도 참으로 황당하다. 고인이 된 성 전 회장이 어지간히 서운하긴 했겠다. ■ 성완종 리스트 검찰 수사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엄을순(문화미래이프 대표)-20150421화] 이완구, 이러고도 성완종과 안 친하다고? 공개 석상에서 옆 사람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미소를? 이런 건 친밀한 사람들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영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이완구 총리를 보면 가깝지 않아도 그럴 수 있는가 보다. 하긴, 친밀함이란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에 상대편이 아니라면 아닌 거다. 오래전에 누군가 내게 물었다. “드라마 작가 P씨랑 친하세요?” 대답을 한참이나 망설였다.
히트시킨 드라마가 서너 편. 그 당시 잘나가던 방송작가다. 만나는 사람마다, 특히 불쌍한 사람에게는 밥도 잘 사주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다. 이프 잡지 인터뷰를 계기로 만나 우리도 ‘가난한 여성단체’에 해당됐던지 전 직원(그래 봐야 10명)이 고기랑
밥이랑 술·노래방까지 풀코스로 여러 번 대접도 받았고, 가끔 회식비라며 격려금도 보내 줬다.
수입이 좋아서인지 성격이 좋은 건지 아니면 무슨 필요 때문인지. 마당발로 돈 쓸 곳을 찾아다니며 베풀던 그녀. 강이 보이는 그녀
작업실도 가 봤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와 난 결코 친한 사이는 아니다. 결국 “친하진 않고 만난 적만 있다”고 대답했다.
친한 사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나. 대상을 넓게 잡고 공들여 봤자 다 ‘헛삽질’이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명절 때마다
500명이 넘는 사람에게 선물을 돌리고 (정치) 성향이 같건 다르건, 마음이 맞건 안 맞건, 여당 야당, 동향 사람 타향 사람
닥치는 대로 죄다 찾아다니며 챙겼단다. 챙긴 상대가 명절 선물 명단대로 수백 명이라면 그들 중에서 “난 친한 사이다” 하고 선뜻
나설 사람이 있을까. ‘그 사람이 원래 주는 걸 좋아해 내가 받았을 뿐 그를 챙길 의무도, 또 안 챙겨도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여기며, 그들 모두가 ‘난 그저 n분의 1의 존재’라 생각했으리라.
그나저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돈 갖다 바치고 줄 서고 국회의원 되고. 이런 비틀어진 방법이 ‘친밀한 관계
만들기’라 여기고 신뢰와 의리를 기대했던 성 전 회장의 대책 없는 순진함도 놀랍지만 선거 때는 비타민(?)으로 살뜰하게 챙기고,
책을 내면 책값도 듬뿍 주고, 총리 낙방될까 봐 동네방네 몇천만원 들여 현수막을 걸어 주고, 호텔 행사 때마다 달려가 후원해
주고, 가족이랑 나란히 사진도 찍고, 이런 대접을 당당하게 받고서도 “친한 사이가 아니라 그저 같이 국회의원을 했을 뿐”이라
대꾸한 이 총리의 뻔뻔함도 참으로 황당하다. 고인이 된 성 전 회장이 어지간히 서운하긴 했겠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양권모(논설위원)-20150421화] 친분 관계
안면(顔面)은 눈, 코, 입이 있는 머리의 앞면 즉 얼굴·낯을 뜻하는 한자어다. 일면식(一面識), 반면식(半面識) 등의 표현에서
보듯 ‘얼굴을 안다’는 것은 사람 사이 관계를 가름하는 주요한 척도였다. 그렇기에 ‘안면’은 우리말에 정착하면서 얼굴·낯이라는 뜻
말고도 ‘서로 얼굴을 알 만한 친분’이라는 의미로 의미확장이 이루어졌다. ‘안면을 바꾸다’거나 ‘안면을 몰수하다’,
안면박대·안면치레·안면부지 등에서 ‘안면’이 그런 뜻이다.
관계의 그물망이 사방팔방으로 짜여지고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는 ‘얼굴을 알 만한 친분’인 안면은 특별한 친분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대면 한번도 없이 ‘친분 맺기’가 단숨에, 폭넓게 이뤄지고 끈끈하게 이어지는 판이다. 이제 ‘여섯
다리’가 아니라 ‘서너 다리’만 건너면 다 알고 통하는 사이로 엮인 ‘좁은 세상’이다. 실제 한국인의 ‘사회연결망’을 조사한 결과
3.6 단계만 건너면 아는 사람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마당발’ 교류와는 거리가 먼 필부필부도 무턱대고 특정 상대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안면박대를 했다가는 우세 사기 십상인 세상이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터진 직후 이완구 총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의 관계를 속된 말로 ‘생깐’(안면 바꾼) 것이
그에게 올가미가 되고 있다. 이 총리는 당초 “전혀 친하지 않다” “만난 적도 별로 없다” “친분도 없다”는 등 극구 ‘안면
사이’를 강조했다. 금품을 주고받을 정도의 친분이 없었다는 점을 내세우는, 비위 연루 정치인들의 단골 방어수법을 으레 동원한 것일
터이다.
하지만 속속 제시되는 증거·정황은 이 총리의 ‘망자(亡者)’에 대한 안면몰수가 새빨간 거짓임을 가리킨다. 성 전 회장의
다이어리에는 두 사람이 2013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무려 23차례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 검찰 수사에서 최근 1년 동안
217번에 걸쳐 전화를 주고받은 게 확인됐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한 달에 한두 번꼴로 만나고 십수 차례씩 전화를 거는 사이가
‘별 친분이 없다’고 한다면, 대체 무슨 관계일까? 아무리 궁리를 해도 “거의 뭐 부부관계라고 봐야 한다. 부부처럼 밀접한
관계”(노회찬 전 의원)보다 나은 현답을 찾기 어렵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1화] ‘좀비기업’ 경남기업의 금융유착 규명해야
이쯤 되면 ‘유착의 끝판왕’이라고 불릴 만하다. 경남기업이 금융당국과 금융계를 쥐락펴락한 데 이어 이번에는 대통령의 해외
행사까지 기업 연명 도구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금융권의 민낯은
한심스러울 정도다. 정치권의 검은돈 수수와 별개로 금융유착 근절을 위해서도 경남기업의 뒷거래는 규명돼야 한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성완종 전 회장이 운영하던 경남기업은 2013년 9월 베트남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한복 차림으로 무대
위를 걷는 한복쇼를 자사 현지 건물인 ‘랜드마크 72’에 유치했다. 당시 성 전 회장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 상실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고, 경남기업 역시 재정 악화로 3차 워크아웃을 앞둔 터였다. 당시 한복쇼 행사 장소는 청와대가
결정했다고 한다. 성 전 회장 입장에서는 대통령 패션쇼의 유치만으로도 힘을 과시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기실 성 전 회장은
패션쇼를 전후해 대통령 비서실장은 물론 금융당국 수장, 워크아웃 담당 국장, 채권단 최고경영자들을 잇따라 만났다. 경남기업은
한복쇼 한 달 뒤 워크아웃을 신청하지만 하루 만에 채권단의 자금지원 결정을 받아낸다. 워크아웃을 신청하면 채권단이 지원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통상적인 방식과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다. 신한은행 같은 곳은 아예 워크아웃 직전에 900억원을 추가 대출해 줄
정도였다. 대주주 감자 같은 채권단 지원 조건도 없었다. 오히려 기업 회생 시 주식을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리까지 넘겨줬다.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사안들이다.
하지만 결국 경남기업은 회생이 어려워지면서 법정관리로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금융권 손실만 수출입은행 5207억원 등 총
1조3000억원이다. 회수 가능 금액은 20%도 안돼 1조원 이상을 국민 세금과 은행 고객들이 메워야 할 판이다. 성 전 회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이었다. 국회 정무위원들이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절대 갑’이라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직무연관성이 있는
정치인이 해당 운영위에 배속돼 퇴출돼야 마땅한 좀비 기업을 힘으로 연명시키는 후진적 행태가 벌어진 셈이다. 이러고도 금융산업
경쟁력 운운할 수 있는 건지 낯간지럽다. 경남기업 부당 지원에 누가 관여했고, 청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가려내 책임을 물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1화] ‘성완종 파문’으로 자원외교 수사 중단 안 된다
자원외교 비리 수사의 피의자였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검찰 수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성
전 회장이 정치인들에 대한 금품 살포라는 더 파괴력이 큰 불법 행위를 폭로함으로써 자원비리보다 더 화급한 수사 과제가 검찰에
떨어진 것이다. 이완구 국무총리를 비롯한 거물 정치인들이 피의자 신분이 되면서 국민의 관심 또한 자원 비리보다는 정치 스캔들로
옮겨 간 모양새다. 자칫 자원외교 비리 수사가 흐지부지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리야 없겠지만 성 전 회장의 자살이라는 돌발 변수와 정치자금 수사 때문에 자원외교 비리 수사가
중단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성 전 회장 개인의 자원외교와 관련한 비리 혐의들은 자살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리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검찰도 파악하고 있듯이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비리 전체를 볼 때 경남기업의 비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민간기업은 물론이고 에너지 공기업들이 엄청난 빚을 져 가면서 무책임 경영을 한 일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완종 리스트’ 의혹은 현재 문무일 검사장이 이끄는 특별수사팀이, 자원외교 비리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서 맡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성완종 파문’으로 한동안 주춤했던 자원외교 비리 수사가 다시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검찰이 김신종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을 이르면 이번 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것이라는 소식이 어제 전해진 것이다. 피의자의 자살은 안타까운
일이고 자살에서 불거져 나온 새로운 불법 행위도 수사를 하는 게 마땅하지만 그런 일들 때문에 수사의 본질을 흐리거나 잊어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검찰이 오늘 소환하기로 한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등 자원외교와는 무관한 다른 기업인이나 정치인, 관료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수사도
속도를 내기 바란다. 수사는 시간을 끌거나 때를 놓쳐 버리면 그만큼 어려워진다. 증거를 인멸하거나 피의자나 참고인들이 입맞추기를
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성완종 파문과는 무관한 수사가 지체될 이유는 전혀 없다. 어떤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의연한 자세로 수사에 임하는 것이 검찰의 임무다.
결과적으로 성 전 회장의 자살로 파묻혀 있던 불법 정치자금의 실체가 드러나긴 했지만 검찰은 수사 방식에 대해서도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 별건 수사 등의 무리한 수사는 지양하고 전체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하다
보면 표적 수사, 짜맞추기 수사라는 비난과 함께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한다. 면밀한 내사를 한 뒤에 수사에 나서야 하겠지만
하다 보면 법 적용이 어려울 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는 끝까지 밀어붙이려 하지 말고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검찰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말하자면 본연의 자세, 수사의 정도를 지키라는 것이다. 검찰은
이번 성완종 스캔들에서도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좌고우면하지 않는 뚝심을 국민들에게 보여 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 4월 국회 [중앙일보 사설-20150421화] 수사는 검찰에, 국회는 민생 안건 처리하라
국정 공백과 표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야 정치권이 ‘성완종 리스트’와 8일 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만 골몰하기 때문이다. 4월 국회엔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 의료법,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 등 경제살리기
법안과 공무원연금 개혁, ‘김영란법’ 등 시급한 안건들이 산적해 있다. 그럼에도 여야는 ‘성완종 리스트’에 발이 묶여 국정 공백을
자초하고 있다.
우선 어제 열린 법사위가 이런 우려를 현실로 보여줬다. 법안 논의는 뒷전이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와
그가 과거 두 차례 특별사면을 받은 데 대한 공방과 추궁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뿐 아니다. 안행위·운영위는 홍준표 경남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그리고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을 출석시켜야 한다는 야당과 이에 반대하는 여당이 맞서면서 회의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여야는 오는 30일 본회의를 열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처리키로 했지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보다 못한 정의화 국회의장이 “야당이 끝까지 박 후보자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에 응하지 않으면 의장 직권상정으로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최후 통첩했을 정도다. 공무원연금 개혁법 처리도 발등의 불이다. 공무원노조총연맹·한국교총이
어제 각각의 안을 내놔 최악의 사태는 면했지만 여야가 합의한 대로 본회의에서 처리(5월 6일)하려면 갈 길이 멀다. 민생과 직결된
안건들이 ‘성완종 리스트’ 블랙홀에 속절없이 빨려드는 형국이다.
이래선 안 된다. 수사는 수사고 국정은 국정대로 굴러가야 한다. 성 전 회장 관련 수사는 특별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일단 검찰에
맡기고 국회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어찌 보면 ‘성완종 리스트’ 사태는 정치권이 원인 제공자이자 피해자다. 스스로 위기를
초래한 정치권이 이를 빌미로 국정의 발목을 잡아선 곤란하다. 정치권이 민생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더 큰 위기에 직면할 게
분명하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1화] 여야, 4월 국회를 ‘빈손’으로 끝내지 말라
‘성완종 리스트’가 모든 국정 현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여기에 이완구 국무총리의 거취가 걸려 국정이 겉돌고 있는
가운데 국회마저 마비 상태다. 대정부 질문이 ‘이완구 신문(訊問)’으로 마감한 데 이어 각 상임위원회도 이를 둘러싼 여야의 공방
무대가 되다시피 하고 있다. 이 바람에 공무원연금 개혁 법안과 서비스산업발전법 등 경제살리기 현안들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자칫
4월 국회가 ‘성완종 쓰나미’에 떠내려갈 판이다.
지금 나라 경제는 내수와 수출이 모두 침체되고 성장 동력도 떨어져 있다. 복지 재원 조달이 여의치 않은 데다 경제성장률마저 더
낮아지면 서민층과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의 한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각종 구조 개혁으로 성장 잠재력을 키워야 한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를 경청해야 할 이유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노동·금융·공공·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은 시늉만 하다가
올스톱 상태다. 이번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처리하기로 하고도 관련 특위는 헛바퀴만 돌리고 있다.
단기 부양에 급급하다 ‘잃어버린 20년’이란 덫에 걸렸던 일본 경제는 근자에 구조 개혁을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 특히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이 표만 의식해 공무원연금 개혁에 미온적인 전공노의 눈치만 봐서야 되겠는가. 공무원연금 적자
보전에 매일 100억원을 쏟아붓는 상황을 개선해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어 주지 않으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물론 부패 척결도 시급한 과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성완종 사건’에만 올인해 국회가 제 할 일을 방기할 이유 또한 없다.
검찰이 리스트 수사를 본격화한 만큼 일단 이를 지켜본 뒤 미진하면 국회 차원의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요구할 수도 있다. 우리는
‘성완종 게이트’를 정·경·관 유착 비리가 집대성된 사건으로 본다. 당장엔 성 전 회장의 자살 직전 그의 구명 로비에 불응한 여권
8인 실세의 현금 수수 의혹 수사가 급선무일 게다. 하지만 경남기업이 베트남의 랜드마크72 빌딩 건설 시 천문학적 은행 융자를
받는 과정을 되짚어 보자. 성 전 회장의 불법 로비가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에 걸쳐 이뤄졌을 개연성이 높고, 그만큼 광범위하고
오랜 시간에 걸친 수사가 불가피함을 말해 준다. 그렇다면 국회가 성완종 수사를 이유로 각종 개혁이나 경제 살리기 법안 처리를
천연시켜서는 안 될 말이다. 여야는 이들 현안에 4·29 재보선이나 성완종 리스트에 쏠린 관심의 절반이라도 기울이기 바란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1화] 김기춘, 지금 외국 들락날락할 때인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한테서 10만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9일 갑자기 일본으로 출국했다가
20일 오후 돌아왔다. 그가 귀국하면서 일단 ‘도피성 출국’ 의혹은 벗었으나 사태의 파장은 간단치 않다.
우선 김 전 실장의 오만한 모습은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수사 대상에 오른 사람의 갑작스런 출국이 어떻게
비칠지는 법조인 출신인 김 전 실장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보란듯이 외국으로 나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는 출국
자체를 자신의 떳떳함을 과시하는 기회로 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론의 시선은 싸늘했다. 김 전 실장의 일본행 항공기 탑승
광경을 본 시민들의 제보가 언론사에 잇따르고 곧바로 도피성 출국이란 말이 나온 것은 김 전 실장의 생각과 여론의 동향 사이에 큰
간극이 있음을 보여준다.
검찰이 김 전 실장 등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에 대해 출국금지 조처를 내리지 않은 것이 옳은지도 의문이다. 김 전
실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정도 혐의를 받고 있다면 벌써 출국금지 조처가 내려졌을 것이다. 검찰이 아직도 김 전 실장의 위세에
밀려 특별대우를 하고 있다고밖에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그런 저자세로 검찰이 김 전 실장의 혐의를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매우
걱정된다.
김 전 실장은 10만달러 수수설에 대해 펄쩍 뛰고 있으나 ‘말 바꾸기’로 주장의 신빙성은 이미 크게 훼손됐다. 그는 애초
“비서실장이 된 뒤에는 성 전 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가, 성 전 회장이 남긴 비망록에서 두 사람이 2013년 9월과
11월에 만났다는 기록이 발견되자 “착각했던 것 같다. 11월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고 말을 뒤집었다. 그러면서도 9월의 만남에
대해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만난 것 같기도 하고 정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거짓말을 했다가 꼼짝 못할 사실이 드러나면 그제야
시인하고, 그러면서도 아직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고 여기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우기는 것은 비리 혐의자들이 단골로 써먹는
수법이다. 김 전 실장의 무죄 주장에 선뜻 믿음이 가지 않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한복을 입고 무대에 나와 화제를 모았던 베트남 하노이의 한복 패션쇼가 경남기업 소유의 랜드마크72 빌딩에서
열린 경위도 주목된다. 당시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있던 경남기업은 패션쇼가 끝난 뒤 워크아웃을 신청해 채권단의 긴급자금지원을
받아냈다. 김 전 실장은 “베트남 행사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청와대의 의사결정 구조상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패션쇼가 열리기 전인 9월4~5일에 두 사람이 만난 것으로 비망록에 나와 있는데도 김 전 실장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도 더욱 석연치 않다. 이래저래 김 전 실장을 상대로 검찰이 수사해야 할 혐의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1화] ‘차벽’의 귀환, 민주와 법치에 대한 도전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행사에 ‘차벽’이 다시 기괴한 모습을 드러냈다. 2008년 촛불집회 때 본격 등장해 ‘명박산성’이라는
조롱을 받았던 경찰 차벽은 이후 집회·시위를 과잉 봉쇄하는 수단으로 남용됐지만, 2011년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법적 근거가 허물어진 상태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추모 인파가 몰리자 경찰은 불법·폭력 집회를 막겠다며 건너편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에워쌌다. 이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헌재는 “불법·폭력 집회나 시위가 개최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는 필요최소한의 범위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견줘 차벽 설치는 “전면적이고 광범위하며 극단적인
조치이므로,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취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수단”이라고 규정했다. 나아가
급박·명백·중대한 위험이 있더라도 “불법·폭력 집회에 참여할 의사를 가지고 있지 아니한 일반시민들의 통행까지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종합해보면 사실상 차벽 자체를 금지한 결정이라고 봐야 한다.
경찰은 16일과 18일 차량 470여대를 동원해 광화문광장에서 종로까지 거대한 차벽을 설치했다. 경찰은 시위대가 청와대로
진출한다는 정보보고가 있었다고 이유를 설명한다. 청와대 앞에서 집회·시위가 열리는 것을 꼭 금지해야 하는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청와대 들머리에서 한참 떨어진 광화문광장과 종로 일대부터 차벽을 설치하는 것은 ‘필요최소한의 범위’를 벗어난
것임이 틀림없다. 또한 차벽이 ‘사전에’ 설치됐다는 행사 주최 쪽 주장에 비춰보면 급박성의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 더구나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평화적으로 행진하는 시민들에게 도대체 어떤 ‘명백하고 중대한 위험성’이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백번
양보해 급박·명백·중대성 요건이 성립했다고 하더라도 이번 차벽 설치는 일반 차량과 인근 거주자, 일반 보행자, 지하철 이용객
등까지 통행을 막았다는 점에서 헌재 결정에 반한다.
시민의 목소리를 차단하는 수단으로서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차벽이 재등장했다는 것은 역사의 퇴행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헌재가 “표현의 자유가 가지고 있는 헌법적 중요성을 고려”해 위헌 결정을 내린 뒤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할 경찰이 되레 헌재 결정을 깔아뭉개는 사태는 민주와 법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1화] 수도권 성인 사망의 16%가 대기오염 때문이라니
서울·경기지역 성인 사망자 10명 가운데 1~2명은 대기오염 때문에 기대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조기에 사망한다고 한다.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임종한 교수팀과 아주대 환경공학과 김순태 교수팀 등이 미세먼지(PM10)와 초미세먼지(PM2.5) 등의 대기오염이
수도권 지역 거주자의 사망에 미치는 영향도를 조사해 국제학술지인 직업환경의학회지 최근호에 발표한 내용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수도권의 30세 이상 성인 가운데 대기오염에 의한 사망자수는 2010년 한 해에만 1만5346명으로, 같은 연령대 수도권 총
사망자의 15.9%를 차지한다. 대기오염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익히 아는 바이지만 그 피해를 구체적 수치로 확인하는
것은 새삼 놀라운 일이다.
대기오염 중에서도 특히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피해가 심각하다는 것도 거듭 확인됐다. 호흡기질환(1만2511명),
심혈관질환(1만2351명), 천식(5만5395명), 만성기관지염(2만490명), 급성기관지염(27만8346명) 등 각종 질환을
일으킨 것으로 나타났다. 폐암 환자도 1403명이나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오염에 의한 폐암 발생 규모는 이번 연구에서 처음
확인된 것이라고 한다. 세계보건기구가 미세먼지를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세계적으로 대기오염에 의한 사망이 연간 700만명에 이른다고
경고한 것을 뒷받침하는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의 심각성이 이처럼 실증되고 있음에도 뾰족한 대책이 없는 현실이다. 정부 대책이라고는
예·경보체제를 강화하고 외출 자제와 황사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게 고작이다. 현재 수도권 제2차 대기관리정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미세먼지 대책은 중국 등 외부 요인을 완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등의 불인 국내 요인부터 제거해나가는 게 급선무다. 건강에 가장
악영향을 미치는 초미세먼지의 주요 배출원은 자동차이고 그 가운데서도 경유차량의 비중이 큰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오는 9월부터 연간 1만대씩 경유택시를 도입하기로 하는 등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되면 차량부제를
실시하는 등의 고강도 대책이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도 모자랄 판이다. 연구팀도 현재의 대기오염 상황이 지속된다면
2024년 사망자수가 2만5781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1화] 잇단 해군 性범죄, 말로만 ‘무관용’ 원칙이라 그런가
해군 장교의 성(性)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군 수뇌부가 성 군기 확립을 아무리 외쳐도 일반 잡범들보다 못한 해군 장교들의
추한 민낯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상명하복으로 운영되는 군이 맞나 싶을 정도다. 기강해이는 회복 불능의 심각한 수준에 이미
이르렀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해군에 따르면 지난 13일 저녁 경기도 모 부대 소속 해군 중령(46)이 여군 하사(22)를 부대
인근 식당으로 불러내 소주 2병을 곁들인 식사를 함께 한 뒤 자신의 승용차와 모텔에서 잇달아 성폭행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쳤다. 이
하사는 이 과정에서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중령의 강요를 거절하지 못해 술자리와 모텔에 끌려갔다고 한다.
해군의 성범죄는 최근 일어난 것만 해도 일일이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해 3월에는 초계함에서 대위가, 7월에는 호위함
함장(중령)이, 12월에는 해사 장교 2명이 각각 여군 장교나 여성 부사관을 성추행했다. 올 들어서는 현역 해군 중장과 준장이
골프장 캐디에게 춤과 노래를 강요하는 부적절한 처신을 해서 징계를 받았다. 이번 사건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지난 7일 군내
성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한 뒤 일주일도 채 안 돼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더 충격적이다. 정호섭 해군참모총장도 지난 2일 해군
장교들의 성범죄와 관련해 “결혼한 남자인데도 남의 여자를 탐하는 함정장들, 처와 자식과 약속한 것은 뭐냐”면서 “이 또한
도둑질”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군 수뇌부가 아무리 강도 높게 의식 개혁을 요구해도 현장에서는 전혀 말발이 먹히지 않은 셈이다.
전직 참모총장 두 명이 군납 비리로 구속된 해군에서 성범죄도 끊이지 않으니 해군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국방부는 성폭력 가해자에게 ‘원아웃 원칙’을 적용하고, 상관이 지휘·감독하는 부하와 성관계를 가지면 군형법으로 엄격하게
처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해군 장교들의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말과는 달리 솜방망이 처벌 때문은 아닌가.
캐디에게 춤과 노래를 시킨 것만 봐도 성희롱이 명백한데, 정직 1개월 처분에 그친 것은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이미 발표한
성범죄에 대한 무관용의 원칙을 철저하게 적용해야 한다. 죄질에 따라서는 군인연금을 몰수하고 패가망신할 수준의 가중 처벌도
필요하다고 본다. 해군은 지금 창군 이래 가장 큰 위기다.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1화]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편서 명심할 원칙들
정부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본부를 공사로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자산 500조원을 관리하는 조직을 공사화하고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도 확 바꾼다는 것이다. 노·사 위원 3명씩 등 20명인 기금운용위를 전문가 중심의 9명으로 줄이되
장관급 위원장을 따로 둔다는 게 핵심이다. 다음주에 공청회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개편은 해묵은 과제다. 2008년에도 정부안이 발의됐으나 18대 국회 종료로 폐기됐고 2013년에도 이번
개편안과 비슷한 안이 나왔다. 논의의 배경과 명분은 이번에도 운용의 전문성과 독립성 제고다. 초저금리 시대에 수익률을 높이자는
현실론도 가세하고 있다.
갈수록 비대해지는 국민연금을 그간의 방식대로 운용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2034년에는 2561조원에 이를 정도로 기금은
거대해진다. 더구나 뚝뚝 떨어지는 수익률은 당장의 숙제다. 2010년 10.37%에서 지난해 5.25%다. 저성장·저금리가 세계적
추세라지만 캐나다연금과 네덜란드연금은 지난해 각각 16.5%, 14.5% 수익률을 올렸다. 공사 체제로 외형을 바꾼다고 수익률도
따라 올라갈 것인가. 정부 주도의 지배구조 개편 논의는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공산이 크다. 핫이슈인 의결권 행사만 해도 그렇다.
산업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음달 심의안건에 또 올라간다고 한다.
국민연금 운용의 효율성, 전문성, 독립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근본 원칙부터 재확인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연금의 주인인 국민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구조에서 대리인의 주주권 행사는 어불성설이다. 최광
국민연금 이사장 같은 전문가도 연금사회주의는 단연코 배척한다고 강조하지 않았나.
연금이 정책수단으로 강제 동원돼서도 안 된다. 공사가 되면 필시 자리는 보건복지부가, 운용은 기획재정부가 개입하게 된다.
재정취약 시대, 5년 단임정부들은 어떻게든 국민연금을 쌈짓돈처럼 끌어다 쓰려 할 것이다. 포퓰리즘 정책에 국민의 노후가 흔들린다.
투명성도 과제다. 경쟁체제나 민영화가 아니고는 해결할 수 없다.
독립 공사를 만들게 되면 자칫 정권의 전위대로 전락할 가능성도 커진다. 기업에 배당을 압박하고 이사선임 등 인사에도 간섭하게
된다. 펀드매니저들은 단기성과를 추구하다 떠나면 그만이다. 국민연금까지 정치판으로 만들 수 있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1화] 워싱턴에서 한국 배제론이 퍼지고 있다는 상황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가 한·미·일 공조보다 미·일·호주의 ‘삼각협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미·일·호주는 미·호주, 일·호주 간 강력한 양자관계를 바탕으로 역내에서 가장 발전된 안보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며
“차라리 한국을 배제하고 미·일·호주 간 삼각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을 워싱턴 정가의
주류적 시각으로 해석하기에는 물론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미 정계에서 한국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는 것은 하나의 흐름인 것
같다.
미·일·호주 삼각협력 체제는 일본에서 처음 제기된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06년 총리에 임명됐을 때 일본과 호주
뉴질랜드와 인도까지 연결하는 ‘자유와 번영의 호(弧)’를 주장한 적이 있다. 중국이 주적(主敵)인 인도 역시 이 구상에 적극
찬성했지만 당시에는 구체적인 현실성이 없는 데다 한국을 포함시키지 않아 사실상 흐지부지됐었다.
그러나 미국이 지금 이 구상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과거사 문제로 촉발된 한·일 관계 악화가 불을 질렀다. 이 보고서도 “한·일
간 정치적 긴장이 역사적으로 긴밀한 안보 협력을 만들어내는 것을 막아 왔다”면서 “지정학적 논리에 기반해 한·미·일 삼각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실질적인 정책으로 진전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중국에 기울어져 있어 안보협력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지적도 미국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한국 외교는 이런 흐름에 전혀 개의하지 않는 듯 움직이고 있다. 며칠 전 미국이 한·미·일 외교·안보 동맹을 복원하기
위해 연 3국 외교차관 회의에서도 미국은 한·일 간 협력을 그토록 강조했지만 한국이 과거사 문제를 들고나와 회의가 결국 얼어붙고
말았다. 한국의 대중(對中) 정책에 대한 미국과 일본 측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러다가 동북아에서 위험한 ‘왕따’ 처지가 되는
것은 아닌지.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1화] 현대차 노조의 통상임금 파업, 법원이 책임져라
현대자동차 노조가 통상임금 확대를 주장하며 계열 14사 노조의 연대파업을 주도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2012년 통상임금
문제는 법적으로 해결키로 사측과 합의했고 지난 1월 1심에서 고정성이 없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볼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패소했다. 그런데도 합의 정신을 존중하기는커녕 오히려 계열사 노조까지 이끌며 연대파업이란 초강수를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상여금에 대해 별의별 명분을 내세워 이를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려는 법원 판결들에 우려를 밝혀 왔다. 이런 판결이 계속되면
우리 경제에 엄청난 파장은 불가피하다. 그 걱정스런 사태가 이제 벌어지게 된 것이다. 우선 법원에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통상임금 산정지침’(2012년 9월25일 고용노동부 예규 제47호)에 따르면 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
그런데 이 예규를 뒤집은 것이 바로 대법원이다. 2013년 3월 대법원은 “분기별로 지급되는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고 말았다. 대법원은 또 2013년 12월에는 임금이 정기성·일률성·고정성 요건을 갖추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상여금의 경우도 이 조건을 만족하면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줄소송이 이어졌고 각 법원에서 서로 다른
판결이 나오면서 전국 사업장은 대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상여금은 출발부터 통상임금이 아니었다. 경영성과가 좋으면 지급하고, 경영악화 땐 바로 줄일 수 있는 탄력적인 임금항목이다.
기본급 대신 상여금 등을 올려 현실적인 합의를 해야 했던 각 사업장 노사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1988년 제정 이후
적용됐던 가이드라인을 뒤집어버린 법원의 판결이 치명적이었다. 상여든 통상임금이든 지급하는 자는 기업이요 이는 시장에서 결정된다.
노사 교섭을 법원이 깨버렸으니 노조는 그것을 믿고 파업을 벌이려는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1화] 보이지 않는 규제 강화하고, 대못 규제는 그대로
정부가 기회 있을 때마다 규제개혁을 외치지만 이를 바라보는 기업들의 시각은 차갑다. 전경련이 최근 56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규제개혁 성과에 만족한다는 곳은 7.8%에 불과했다. 29.8%는 불만족, 62.8%는 보통이라고 평가했다. 대통령이
장관들을 모아놓고 7시간에 걸쳐 끝장토론하고 규제 기요틴(단두대)을 강조했는데도 실제 현장에서는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불만족스럽다고 응답한 기업들은 이유로 핵심 규제 개선 미흡(34.5%), 보이지 않는 규제 강화(24.3%)에다 모순된
규정(21.6%)을 꼽고 있다. 핵심 규제는 그대로 놓아둔 채 손쉬운 것만 해결하고 드러나지 않는 숨은 규제는 되레 늘어났다는
것이다. 중복·갈등을 빚고 있는 규제 정비도 크게 나아진 게 없다. 규제개혁이 얼마나 겉핥기로 진행되는지를 알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의 규제개혁에 대해서도 기업들이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혀·별로 기대 안 한다'는 응답이 45%에 달했다.
규제개혁 실현 가능성도 '부정적'이 '긍정적'보다 4배나 많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9일 자료를 내 경제규제를 1년 만에 10%
줄였다고 자랑했다. 자화자찬을 늘어놓은 것은 현장 사정을 모르거나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는 얘기로 들린다.
돌아가는 사정이 이러니 '가시는 뽑아냈는지 몰라도 넝쿨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기업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다.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규제 증가가 우려스럽다. 식약처의 경우 식품 관련 고시항목마다 규제내용이 담겨 있는데도 규제등록 시스템에는 고시 전체가 1개
규제로 등록돼 있다. 이런 규제 묶음 고시가 무려 280개에 이른다고 한다.
정부조차 덩어리로 포장된 숨은 규제를 하나하나 드러내면 현재 1만5,000여건인 규제 수가 4만건 이상에 달한다고 추정할
정도다. 규제개혁은 기업이 체감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규제개혁은 돈 안 드는 경기부양책이라고 하지 않는가.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1화] 배임죄에 '경영실패 면책' 조항 넣어야
재계가 20일 한목소리로 배임죄 적용을 가능한 한 엄격하게 하도록 '경영판단의 원칙'에 의한 면책 조항을 상법에 명문화해달라고
법무부에 건의했다. 경영자가 기업에 이익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 한 경영상의 판단에 대해서는 비록 나중에 손해가 나더라도 배임죄를
물을 수 없게 하자는 게 요지다. 재계는 이미 지난해 말 정부의 규제 기요틴 과제로 경영판단의 원칙 도입을 건의한 바 있다.
재계의 건의가 아니더라도 배임죄는 그동안 많은 논란을 빚어왔다. 배임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자신의 임무에 위반하는 행위'로
범위도 넓고 뜻도 모호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경영판단에 관한 문제에 형법의
잣대를 들이대다 보니 기업가정신이 위축될 우려가 컸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종속회사의 지배회사 지원 부분과 관련해
배임죄를 처음 도입한 독일만 하더라도 그로 인해 종속회사가 손실을 봤더라도 고의성이 없으면 업무상 배임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경우 경영판단이라고 하더라도 배임으로 처벌되는 사례가 많았다. 재계의 이번 건의는 헌법재판소가 최근 배임죄 관련
조항에 대해 '대법원이 기업의 경영상 판단을 존중하며 배임죄 조항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으므로 명확성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 후에 나왔다. 헌재의 이 같은 판단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법률이 잘못돼 있다는데 법원이 해석을
잘하고 있어 법률에 문제가 없다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원이 해석을 잘하는지도 의문이다. 대법원의 경영판단 관련 배임죄 판결 37건 가운데 실제 경영판단이 있었는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판단한 것은 절반 정도인 18건에 불과했다. 현재 국회에는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관련법률 개정안이 제출,
계류돼 있다. 선의로 한 경영상의 결정은 배임죄로 처벌되지 않도록 국회부터 앞장서기 바란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정석구 칼럼/정석구(편집인)-20150421화] 대통령 없는 나라
지금, 대한민국에는 대통령이 ‘없다!’ 외국 방문으로 인한 청와대의 ‘대통령 부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대통령이라고
부를 만한, 국민의 아픔을 함께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이 없다는 말이다. 오죽했으면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순방을
떠나는 날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등에 ‘돌아오지 않으셔도 됩니다’라는 전단이 뿌려졌을까. 국민은 이제 박 대통령에게 걸었던
실낱같은 한 가닥 기대와 신뢰마저 거둬들이고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는 박 대통령과 박 정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뭐가 그리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필 제삿날에 외국으로
도피하듯 훌쩍 떠난단 말인가. 그래도 1주기 추모는 했다는 사진이라도 남기려는 듯 유가족마저 떠나버린 팽목항을 찾아 경호원 호위
속에 허공에 대고 추모사를 낭독했다. 차라리 일정이 바빠 그냥 출국한다고 했으면 희생자들이 두 번 모욕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떠난 뒤 이어진 참사 1주기 추모집회는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무참히 짓밟혔다. 경찰은 불법폭력 시위라서 엄정
대처했다고 하지만 그런 원인을 누가 먼저 제공했는가. 유가족과 시민들을 차벽으로 원천봉쇄한 것은 경찰이었다. 정부도 참사 1년이
지나도록 진상을 밝히기는커녕 유가족들을 돈이나 챙기려는 사람이라고 비아냥대면서 경원시했다. 겨우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됐지만 온갖
핑계를 대며 조사위를 무력화시키려고 하는 게 박근혜 정부다.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이런 와중에 터진 ‘성완종 리스트’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를 설명해 준다. 성 회장이 죽음으로써
증언한 내용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이 온통 썩은 내 나는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에다 현직 총리, 박
대통령 측근들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부패로 얼룩진 인사들이, 온갖 불법비리 때문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덮어두려는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자신이 명징하지 않으면 세상의 진실을 대하기가 두려운 법이다.
‘성완종 리스트’로 박근혜 정부는 집권 뒤 최대 위기를 맞았다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4·29 재보선을 앞둔 새누리당도 국민 앞에
허리를 굽히며 몸을 낮추고 있다. 동반자인 보수언론들도 위기감을 표출하며 박근혜 정부에 쇄신을 촉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불통의 대명사인 박 대통령이 이번 기회에 과연 바뀌게 될까? 새누리당도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을 떨치고 환골탈태할 수 있을까? 그래서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대통령과 집권여당으로 돌아올까?
진심으로 그러길 바란다. 그러지 않고 또다시 꼬리 자르기 식으로 이 국면을 적당히 넘기려 한다면 앞으로 남은 임기 3년은 정말
대통령 없는 불행한 3년이 될 것이다. 대통령의 지시나 명령이 먹혀들지 않고, 일상적인 국정은 마비되고, 국민은 각자도생하느라
허덕이는 그런 끔찍한 나라에서 누가 편히 살 수 있겠는가.
하지만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 정부가 개과천선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 같다. 경찰은 세월호 폭력 시위 주동자 등을 엄벌하겠다며
사법처리에 착수했다. 이러다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커녕 자식 잃은 유가족이나 희생자들을 추모하려는 시민들이 거꾸로 범죄자로
몰릴 판이다. 이건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성완종 리스트’도 실체를 제대로 드러낼 것 같지 않다. 새누리당은 국민의 인내심이 바닥난 이완구 총리와 아이들 밥그릇을 빼앗아
민심을 잃은 홍준표 지사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고 넘어갈 태세다. 일부 친여 언론과 여당 의원들은 야당 의원도 리스트에 포함됐다며
물타기 작전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대형 부패사건이 터질 때마다 봐왔던 익숙한 풍경이다. 검찰 수사에 한 가닥 기대를 걸어보지만
아직은 글쎄요다.
일주일 뒤면 대통령이 귀국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에 대통령이 ‘있게’ 될까. 그것은 박 대통령 자신에게 달려 있다. 돌아와서도
출국할 때의 그 모습 그대로라면 우리는 ‘대통령 없는 나라’에서 3년을 살아낼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엄을순(문화미래이프 대표)-20150421화] 이완구, 이러고도 성완종과 안 친하다고? 공개 석상에서 옆 사람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미소를? 이런 건 친밀한 사람들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영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이완구 총리를 보면 가깝지 않아도 그럴 수 있는가 보다. 하긴, 친밀함이란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에 상대편이 아니라면 아닌 거다. 오래전에 누군가 내게 물었다. “드라마 작가 P씨랑 친하세요?” 대답을 한참이나 망설였다.
히트시킨 드라마가 서너 편. 그 당시 잘나가던 방송작가다. 만나는 사람마다, 특히 불쌍한 사람에게는 밥도 잘 사주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다. 이프 잡지 인터뷰를 계기로 만나 우리도 ‘가난한 여성단체’에 해당됐던지 전 직원(그래 봐야 10명)이 고기랑
밥이랑 술·노래방까지 풀코스로 여러 번 대접도 받았고, 가끔 회식비라며 격려금도 보내 줬다.
수입이 좋아서인지 성격이 좋은 건지 아니면 무슨 필요 때문인지. 마당발로 돈 쓸 곳을 찾아다니며 베풀던 그녀. 강이 보이는 그녀
작업실도 가 봤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와 난 결코 친한 사이는 아니다. 결국 “친하진 않고 만난 적만 있다”고 대답했다.
친한 사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나. 대상을 넓게 잡고 공들여 봤자 다 ‘헛삽질’이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명절 때마다
500명이 넘는 사람에게 선물을 돌리고 (정치) 성향이 같건 다르건, 마음이 맞건 안 맞건, 여당 야당, 동향 사람 타향 사람
닥치는 대로 죄다 찾아다니며 챙겼단다. 챙긴 상대가 명절 선물 명단대로 수백 명이라면 그들 중에서 “난 친한 사이다” 하고 선뜻
나설 사람이 있을까. ‘그 사람이 원래 주는 걸 좋아해 내가 받았을 뿐 그를 챙길 의무도, 또 안 챙겨도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여기며, 그들 모두가 ‘난 그저 n분의 1의 존재’라 생각했으리라.
그나저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돈 갖다 바치고 줄 서고 국회의원 되고. 이런 비틀어진 방법이 ‘친밀한 관계
만들기’라 여기고 신뢰와 의리를 기대했던 성 전 회장의 대책 없는 순진함도 놀랍지만 선거 때는 비타민(?)으로 살뜰하게 챙기고,
책을 내면 책값도 듬뿍 주고, 총리 낙방될까 봐 동네방네 몇천만원 들여 현수막을 걸어 주고, 호텔 행사 때마다 달려가 후원해
주고, 가족이랑 나란히 사진도 찍고, 이런 대접을 당당하게 받고서도 “친한 사이가 아니라 그저 같이 국회의원을 했을 뿐”이라
대꾸한 이 총리의 뻔뻔함도 참으로 황당하다. 고인이 된 성 전 회장이 어지간히 서운하긴 했겠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양권모(논설위원)-20150421화] 친분 관계
안면(顔面)은 눈, 코, 입이 있는 머리의 앞면 즉 얼굴·낯을 뜻하는 한자어다. 일면식(一面識), 반면식(半面識) 등의 표현에서
보듯 ‘얼굴을 안다’는 것은 사람 사이 관계를 가름하는 주요한 척도였다. 그렇기에 ‘안면’은 우리말에 정착하면서 얼굴·낯이라는 뜻
말고도 ‘서로 얼굴을 알 만한 친분’이라는 의미로 의미확장이 이루어졌다. ‘안면을 바꾸다’거나 ‘안면을 몰수하다’,
안면박대·안면치레·안면부지 등에서 ‘안면’이 그런 뜻이다.
관계의 그물망이 사방팔방으로 짜여지고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는 ‘얼굴을 알 만한 친분’인 안면은 특별한 친분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대면 한번도 없이 ‘친분 맺기’가 단숨에, 폭넓게 이뤄지고 끈끈하게 이어지는 판이다. 이제 ‘여섯
다리’가 아니라 ‘서너 다리’만 건너면 다 알고 통하는 사이로 엮인 ‘좁은 세상’이다. 실제 한국인의 ‘사회연결망’을 조사한 결과
3.6 단계만 건너면 아는 사람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마당발’ 교류와는 거리가 먼 필부필부도 무턱대고 특정 상대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안면박대를 했다가는 우세 사기 십상인 세상이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터진 직후 이완구 총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의 관계를 속된 말로 ‘생깐’(안면 바꾼) 것이
그에게 올가미가 되고 있다. 이 총리는 당초 “전혀 친하지 않다” “만난 적도 별로 없다” “친분도 없다”는 등 극구 ‘안면
사이’를 강조했다. 금품을 주고받을 정도의 친분이 없었다는 점을 내세우는, 비위 연루 정치인들의 단골 방어수법을 으레 동원한 것일
터이다.
하지만 속속 제시되는 증거·정황은 이 총리의 ‘망자(亡者)’에 대한 안면몰수가 새빨간 거짓임을 가리킨다. 성 전 회장의
다이어리에는 두 사람이 2013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무려 23차례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 검찰 수사에서 최근 1년 동안
217번에 걸쳐 전화를 주고받은 게 확인됐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한 달에 한두 번꼴로 만나고 십수 차례씩 전화를 거는 사이가
‘별 친분이 없다’고 한다면, 대체 무슨 관계일까? 아무리 궁리를 해도 “거의 뭐 부부관계라고 봐야 한다. 부부처럼 밀접한
관계”(노회찬 전 의원)보다 나은 현답을 찾기 어렵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양권모(논설위원)-20150421화] 친분 관계
안면(顔面)은 눈, 코, 입이 있는 머리의 앞면 즉 얼굴·낯을 뜻하는 한자어다. 일면식(一面識), 반면식(半面識) 등의 표현에서
보듯 ‘얼굴을 안다’는 것은 사람 사이 관계를 가름하는 주요한 척도였다. 그렇기에 ‘안면’은 우리말에 정착하면서 얼굴·낯이라는 뜻
말고도 ‘서로 얼굴을 알 만한 친분’이라는 의미로 의미확장이 이루어졌다. ‘안면을 바꾸다’거나 ‘안면을 몰수하다’,
안면박대·안면치레·안면부지 등에서 ‘안면’이 그런 뜻이다.
관계의 그물망이 사방팔방으로 짜여지고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는 ‘얼굴을 알 만한 친분’인 안면은 특별한 친분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대면 한번도 없이 ‘친분 맺기’가 단숨에, 폭넓게 이뤄지고 끈끈하게 이어지는 판이다. 이제 ‘여섯
다리’가 아니라 ‘서너 다리’만 건너면 다 알고 통하는 사이로 엮인 ‘좁은 세상’이다. 실제 한국인의 ‘사회연결망’을 조사한 결과
3.6 단계만 건너면 아는 사람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마당발’ 교류와는 거리가 먼 필부필부도 무턱대고 특정 상대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안면박대를 했다가는 우세 사기 십상인 세상이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터진 직후 이완구 총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의 관계를 속된 말로 ‘생깐’(안면 바꾼) 것이
그에게 올가미가 되고 있다. 이 총리는 당초 “전혀 친하지 않다” “만난 적도 별로 없다” “친분도 없다”는 등 극구 ‘안면
사이’를 강조했다. 금품을 주고받을 정도의 친분이 없었다는 점을 내세우는, 비위 연루 정치인들의 단골 방어수법을 으레 동원한 것일
터이다.
하지만 속속 제시되는 증거·정황은 이 총리의 ‘망자(亡者)’에 대한 안면몰수가 새빨간 거짓임을 가리킨다. 성 전 회장의
다이어리에는 두 사람이 2013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무려 23차례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 검찰 수사에서 최근 1년 동안
217번에 걸쳐 전화를 주고받은 게 확인됐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한 달에 한두 번꼴로 만나고 십수 차례씩 전화를 거는 사이가
‘별 친분이 없다’고 한다면, 대체 무슨 관계일까? 아무리 궁리를 해도 “거의 뭐 부부관계라고 봐야 한다. 부부처럼 밀접한
관계”(노회찬 전 의원)보다 나은 현답을 찾기 어렵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서동철(논설위원)-20150421화] ‘동의보감’의 인간관
“사람은 우주에서 가장 지체가 높고 귀한 존재다.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고, 발이 네모난 것은 땅을 본받은 것이다.
…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안목(眼目)이 있다. 하늘에 밤낮이 있듯이 사람에게 잠들고 깨어나는 것이 있다. 하늘에
천둥과 번개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즐거워하고 노여워하는 마음이 있고, 하늘에 비와 이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눈물이 있다. 하늘에
음양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한열(寒熱)이 있고, 땅에 샘물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혈맥(血脈)이 있다. 땅에 초목(草木)과 금석(石)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모발과 치아가 있다.”
허준(許浚·1539~1615)의 ‘동의보감’은 ‘신형장부도’(身形臟腑圖)로 시작한다. 신체의 모양과 장기의 위치를 표시한
그림이다. 인체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요즘 감각으로는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귀중한 정보였을 것이다. 학계에서는
허준이 ‘동의보감’에서 내보이고자 했던 인간의 정수가 바로 이 그림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앞의 설명을 보면 우주와
인간은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와 몸은 각각 하늘과 땅을 상징한다. 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척추는
천지(天地)의 기운과 인체의 기운을 소통·순환시키고 있다.
우리는 ‘동의보감’을 병든 사람을 살리는 방법을 기능적으로 알려주는 의서(醫書)로만 알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은 이 땅의 오래된
경험적 향약(鄕藥) 전통에 중국의 새로운 의학 지식을 포괄한 16세기 후반 조선 의학의 결정판이다. 그러면서 ‘동의보감’은
인체와 질병의 상관관계를 당대의 세계관인 성리학에서 말하는 인륜(人倫)의 정당성으로 새롭게 정립한 의철학(醫哲學)의 명저이기도
하다.
‘동의보감’의 전편을 흐르는 가르침은 ‘인간은 자연을 닮은 소우주’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을 닮은 인간은 자연의 원리를 따라야
하고, 그 원리를 거스른다면 인체의 균형도 깨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자연스러운 삶이 인간의 도리인 만큼 인륜을 지키는 것이
건강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성리학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이렇듯 ‘동의보감’은 의술을 통치 수단의 하나로 격상시켰다. 편찬에
정작(鄭?) 같은 유의(儒醫)도 참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유의는 의학 지식에 학식을 겸비한 관료를 뜻한다.
‘동의보감’이라는 이름은 조선 의학이 독립성을 가졌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허준은 중국 의학을 북의(北醫)와 남의(南醫)로
나누고 우리 의학을 동의(東醫)라 불렀다. 조선 의학이 독자적으로 발전했으며, 중국 의학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의식을 보여
준다. ‘동의보감’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간행되어 동아시아 의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동의보감’이다. 그 판본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다는 소식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오형규(논설위원)-20150421화] 중림시장
최근 서울시의 서울역 역세권 개발계획으로 주목받는 서소문 밖 중림동 봉래동 일대는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곳이다. 조선후기 상업
발달사와 천주교 박해의 현장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 귀퉁이에 ‘칠패시장터’라는 표지석만 덩그러니 남았을 뿐이다. 너무 쉽게 잊는
한국인의 속성을 보는 듯하다.
서소문 밖 칠패(七牌)시장은 종로의 종루(鐘樓), 동대문의 이현(梨峴·배오개)과 더불어 한양의 3대 시장이었다. 칠패는 어영청의
7번째 순찰구역이자 경찰 기능의 순청(巡廳)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사람들 왕래가 많은 숭례문과 가깝고, 마포 서강 등지로
들어온 어물 곡물 등 생필품 집결지로 최적의 입지였다. 주한 프랑스대사관이 있는 합동(蛤洞·조개 집산지), 포동(布洞·베 집산지)
같은 지명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된다.
18세기 후반 칠패시장은 이현시장과 더불어 어물 판매량이 시전(市廛)의 내·외어물전보다 10배나 많았다고 한다. 칠패시장의
노점상인 난전(亂廛)을 관의 허가를 받은 특권상인인 시전(市廛)이 단속하는 등 마찰도 잦았다. 그러나 1791년(정조 15년)
시전의 금난전권(禁亂廛權)이 폐지된 이후 종루의 시전마저 능가하는 거대 시장으로 컸다. 당시 조선이 천주교 신자를 이곳에서 처형한
것도 인파가 많은 저잣거리에 효수해 공포심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이곳은 경성수산시장으로 바뀌었고 광복 뒤 중림시장으로 자리잡았다. 1970~80년대 상인들이 노량진과
가락시장으로 대거 옮겨갔고, 인근 지역 재개발로 지금은 어시장으로서 명맥만 잇고 있다. 중림동에는 한양의 5대 싸전(쌀시장)도
있었다. 중림동(中林洞)은 1914년 일제 경성부가 서울을 186개 동으로 나눌 때 당시 약전중동과 한림동에서 한 자씩 따온
이름이다.
봉래동과 중림동을 잇는 염천교(鹽川橋)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화약제조 관청인 염초청이 부근에 있어 이름을
따왔다는 설과, 무악재 부근의 본래 염천교를 헐고 이곳에 다리를 놓으면서 이름도 가져왔다는 설이다. 거지왕 김춘삼이 살았다는
염천교는 이곳이 아니고 청계천 5가 방산시장 부근이었다.
서울시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서울역고가 공원화 및 중림동 만리동 일대의 현대화 사업을 계기로 이 지역이 확 달라질 모양이다.
벌써부터 땅값이 뛴다는 소문도 있다. 경의선 철길에 가로막혀 도심 낙후지역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곳이다. 옛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이곳이 어떻게 바뀔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문성진(논설위원)-20150421화] '여풍당당' 사회
요즘 미국 정치권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위풍당당하다. 지난 12일 대권 도전을 선언했는데 사흘 만에 지지의원
89명을 확보하는 등 대세론은 벌써 굳어진 듯하다. "중산층의 평범한 미국인들이 원하는 챔피언이 되고 싶다"는 출마의 변과 함께
아이오와주의 대선 첫 유세를 시작한 그는 미국 전역으로 급속히 세를 키워나가고 있다. 힐러리 열풍과 더불어 미국에서는
'여풍(女風)당당'의 시대가 무르익고 있다.
사실 미국이 다소 늦은 편이지 지구촌 정치권에는 여성 리더의 시대가 열린 지 이미 오래다. 영국 매체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현재
세계 각국에서 정부나 국제기구 수장을 차지한 여성 지도자는 22명이나 된다. 이 중에서도 유로화 위기 극복을 위해 힘쓰는 '유럽의
여왕'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특히 돋보인다. 경제계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재닛 옐런 의장,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등이 활약 중이다.
텔레그래프는 유능한 여성 지도자의 공통된 자질로 '투지'와 '기개'를 꼽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꼼꼼함'과 '의사소통'이 여성
리더의 특장점으로 거론된다. 영업실적에서 전국 893등을 하던 은행지점을 부임 넉 달 만에 8위로 끌어올린 KB국민은행의 김을희
아시아선수촌 지점장이 바로 그런 경우다. 김 지점장 스스로 거래처를 발로 뛰면서 고객과의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직원들에게는 끈끈한
팀워크를 강조한 끝에 맺은 열매다.
한국 사회 전반으로 보면 '여풍'은 아직 말하기조차 민망하다. 여성 대통령까지 낸 나라이지만 의사결정 분야에서의 남녀 성평등
지수는 21.2이며 여성의 '유리천장지수'도 100점 만점에 25.6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 꼴찌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전체의 51.3%, 여성 임금 수준은 남성의 63.7%, 전체 여성 노동자의 57.3%가 비정규직이다. 이렇듯
부끄러운 현실을 그대로 둔 채로는 '여풍당당 대한민국'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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