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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 타결

■ 세월호 인양 결정

■ 아베의 역사 인식

■ 후안무치 국회의원들, 외교관 특권까지 요구하나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 타결

 

[한국일보 사설-20150423목] 원자력협정 타결, 핵투명성 제고 등 책임도 커져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타결됐다. 박노벽 외교부 원자력 협력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어제 오후 가서명, 2010년 10월의 1차 협상 이래 4년 반을 끌어온 양국 간 협상을 매듭지었다. ‘에너지 주권’을 최대한 확장하려는 한국과 눈곱만큼의 핵확산 우려도 막겠다는 미국의 팽팽한 줄다리기로 난항을 거듭한 협상이 마침내 타결됐다는 소식이 우선 반갑다. 또한 ‘에너지 주권의 확보’라는 명분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지만,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ㆍ건식처리) 1단계 기술의 독자적 연구가 가능해지고, 원전 수출의 활성화와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국산화 전망을 여는 등 나름대로 실리는 챙겼다고 평가할 만하다.

 

새 협정(안)은 ‘조사 후 시험(Post-Irradiation Examination)’과 ‘전해환원’ 등을 한국에 허용했다. 조사 후 시험은 사용 후 핵연료를 실제 원전에서 핵연료를 태우는 듯한 실험을 통해 사용 후 핵연료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용 후 핵연료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기초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전해환원은 현재 미국과 함께 연구하고 있는 파이로프로세싱의 첫 단계다. 피복관을 제거하고 세라믹화한 뒤 화학반응으로 분말화(粉末化)한 사용 후 핵연료를 고온의 용융염(鎔融鹽)에 넣고 전기분해, 세라믹 분말을 금속 분말로 바꾸는 과정이다.

 

여기서 원전에 재활용할 수 있는 연료를 얻어내려면 전해정련(電解精鍊), 전해제련(電解製鍊) 등 두 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파이로프로세싱 전과정에 걸친 독자 연구를 따내지 못했다는 불만과 비판이 따랐다. 그러나 국내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기술 수준이 크게 낮고, 전해정련, 전해제련 단계의 연구시설도 없는 상태다. 새 협정(안)이 양국 공동연구를 바탕으로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의 추가 연구를 추진할 수 있도록 ‘경로’를 마련해 두었다는 점에서 연구범위 확대 여부는 결국 우리의 기술수준과 앞으로의 대미 협상 결과에 달린 문제다. 더욱이 파이로프로세싱을 거쳐 확보한 ‘재활용 연료’는 원자로의 열 회수 및 냉각에 물 대신 소듐(나트륨)을 쓰는 소듐냉각고속로에서나 쓸 수 있어, 가까운 장래에 완성된 건식처리 기술을 확보해야 할 실용적 의미도 없다.

 

반면에 새 협정이 발효하면, 중저준위 방사능폐기물처분장(방폐장)에 이어 새로운 난제로 떠오른 사용 후 핵연료의 감량 기술은 단기간에 확보할 수 있어 내년부터 차례로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들어가는 사태에 대응할 수 있다. 아울러 처리기술의 연구 과정에서 사용 후 핵연료의 최종적 관리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활발화도 기대된다.

 

앞으로 더욱 확고한 핵 물질의 안전 관리, 즉 핵 투명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독자적 재처리기술 확보의 관건이다. 과거 미량의 핵 물질을 분실해 국제적 의심을 산 바 있는 우리가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할 대목이다. 권한이 커지면 책임감도 그만큼 커지게 마련이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3목]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이후 과제

 

한-미 두 나라가 42년 만에 원자력협정을 개정했다. 현행 협정은 우리나라 원전 산업이 매우 유치한 수준이었던 1973년에 발효된 것으로, 시대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을 담지 못하고 있다. 이번 개정은 원자력 관리의 문제점과 산업적 이용에 따른 불편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는 점에서 대체로 긍정적이다.

 

협상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독자적 핵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은 여전히 허용되지 않았다. 일본이 진작에 핵 재처리를 허용받은 것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핵 주권이 확보되지 않았다고 보수 일각에서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일본이 핵 재처리 권한을 확보한 것은 지금과 같은 핵 비확산 규범이 확립되기 훨씬 이전의 일이다. 더욱이 북한 핵을 비롯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해야 할 마당에, 우리가 핵무장을 꾀한다는 오해를 받으면서 핵 재처리에 집착할 이유는 없다.

 

대신에 우리나라는 중간저장, 파이로프로세싱(건식공법), 영구처분, 해외 위탁 재처리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후 핵연료를 관리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원전 국가로 원전을 23기나 운영하고 있다. 일부 원전은 2016년부터 사용후 핵연료가 포화 상태를 맞는다. 이번 개정을 통해 사용후 핵연료 문제와 관련해 급한 불은 일단 끄게 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사용후 핵연료 처분에 대한 국내의 갈등은 여전히 남은 과제다.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암 진단용 방사성 동위원소를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수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점도 의미가 있다. 우리 원자력 업계가 미국산 핵물질과 원자력 장비, 부품 등을 제3국에 자유로이 수출할 수 있는 길도 열었다. 원자력 기술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해 협정의 유효기간을 20년으로 단축한 점도 눈길을 끈다. 두 나라는 원자력 협력을 위한 고위급 협의체도 제도화했다.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안전하게 이용할 권리를 확보하는 것은 여러모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에너지 정책을 탈핵·감핵 쪽으로 전환해 가야 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중앙일보 사설-20150423목] 아쉬움 남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1973년 체결된 한·미 원자력협정이 42년 만에 개정됐다. 새 협정으로 한국은 원자력 연구와 수출에서 적지 않은 실리를 챙겼다. 미국의 동의하에 저농축 우라늄을 개발할 길이 열렸고, 까다로웠던 수출입 인허가도 간소화돼 원전 수출의 걸림돌이 해소됐다. 연구개발 차원이긴 하지만 파이로프로세싱(건식재처리)의 전 단계인 전해환원 권한을 확보한 것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핵심 쟁점인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에선 체면치레 이상의 진전을 얻어 내지 못했다. 새 협정에서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 조항은 빠졌지만 한국의 농축·재처리는 미국과 고위급 협정을 통해 합의해야만 가능하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원자력 이용 규모가 세계 5위인 한국이 여전히 독자적인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지 못한 점에서 새 협정은 한계가 분명하다. ‘새 협정은 선진적이고 호혜적’이란 정부의 자랑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사용후 핵연료는 버리면 폐기물이고, 재처리하면 연료다. 재처리 길만 터주면 핵연료를 얻을 수 있는데도 우라늄을 사서 쓰는 건 불합리하다. 현재 세계 농축 우라늄 시장은 공급 초과이지만 시장 상황이 급변해 우리가 우라늄 부족에 시달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현재 국내 원전에는 폐연료봉 1500만 개가 쌓였고, 매년 700t이 추가 발생하고 있다. 고리원전의 폐연료봉은 연말에 포화상태가 된다. 미국이 핵폐기물 관리기술을 이전해 주기로 했다지만 코앞에 닥친 핵폐기물 대란 우려를 해소하기엔 턱도 없는 수준이다.

 

  미국의 핵 비확산 정책기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정부가 처음부터 이를 의식해 너무 소극적으로 협상에 임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미국은 88년 전범국가 일본에 농축과 재처리를 모두 허용했고,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을 거부하고 핵무장을 강행한 인도에도 포괄적으로 허용했다. 그런 만큼 정부는 미국의 이런 이중잣대를 집요하게 지적하고 ‘한국이 핵무장을 할지 모른다’는 근거 없는 우려를 불식시켰어야 했다.

 

  한국은 73년 원자력협정 체결 당시 원전은커녕 초보적 기술도 없었다. 지금은 23기의 원전으로 전력의 3분의 1을 충당한다. 원전 7기를 건설 중이며 중동에 수출까지 하는 원자력 강국이다. 또한 91년 남북 비핵화선언 이후 북한의 세 차례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비핵화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원칙을 지켜왔다. 따라서 미국이 핵 이용 모범국이자 동맹국인 한국에 농축·재처리 포괄 금지방침을 고수한 건 이해하기 힘든 처사다.

 

  다행히 새 협정은 한·미 간에 고위급 협의체를 신설해 원자력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다루기로 했다. 그동안 농축과 재처리에 대해 발언 기회조차 봉쇄돼 온 우리가 미국에 할 말을 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된 것이다. 그런 만큼 새 협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정부는 미국을 지속적으로 설득해 농축·재처리를 포함한 우리의 ‘핵 국익’ 확보를 게을리해선 안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3목]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아쉽지만 얻은 것도 적지않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협상이 4년6개월여 만에 타결됐다. 그동안 협상이 기한 내에 타결되지 못해 기존 협정이 2년 연장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양국 간 가서명이 이뤄진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원전연료의 공급, 원전 수출이라는 3대 중점분야에서 호혜적 협력을 확대했다는 게 정부 평가다. 그러나 이번 협정에 농축, 재처리 문제 등과 관련한 획기적 진전이 담길 것으로 기대했던 측면에서 보면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핵연료 주기의 핵심분야인 농축과 재처리에서의 권한 확보는 물론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미국의 핵비확산 원칙, 의회의 반대 등 현실적인 벽을 무시하기도 어렵다. 이에 한국 측은 갈등이 많은 분야는 일부 포기하는 대신 협력을 확대하는 다른 분야로 방향을 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선 양국이 공동연구 중인 사용후핵연료재활용(파이로프로세싱)의 전반부 공정인 ‘전해환원’을 미국 쪽에서 양보한 것이 그런 경우다. 우라늄과 플루토늄 등 민감한 핵물질이 분리되지 않는 공정에 대한 자율적인 연구개발이 가능해진 것이다. 사용후핵연료의 저장·수송·처분 분야의 양국 간 협력도 강화된다. 농축문제는 장래 20% 미만 저농축과 관련해 양국 간 합의 창구를 마련하고 원전연료 공급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확대하는 선에서 매듭됐다. 민감한 재처리와 농축문제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정도에서 타협했다고 볼 수 있다.

 

대신 우리 쪽에서 원전수출 규제완화를 얻어낸 점은 성과로 평가할 만하다. 핵물질, 원자력 장비 및 부품의 제3국 재이전 시 건별로 미국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게 되고, 수출입 인허가를 신속화하도록 규정한 점도 환영할 일이다. 전체적으로 이번 한·미원자력협정은 당장의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 것이다. 농축과 재처리 문제도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로 알려진 농축·재처리 포기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양국 간 상설 고위급위원회가 신설되는 만큼 정부가 보다 치밀한 논리로 미국을 설득해 나간다면 새로운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3목] 한미원자력협정 타결… 현재로선 얻을만큼 얻었다

 

한미 원자력협정이 4년6개월여의 장기협상 끝에 22일 타결됐다. 이로써 1973년 발효된 현행 협정은 42년 만에 새 옷을 갈아입게 됐다. 한미 양국이 개정에 합의한 주요 내용은 사용후핵연료의 효율적 관리, 원전 연료의 안정적 공급, 원전수출 증진 등으로 3대 분야 모두에서 일정 정도 진전된 결과물을 도출해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우선 국제적으로도 민감한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대해 양국 간 구체적인 협력방식을 규정한 것이 주목된다. 사용후핵연료의 중간저장과 재처리·재활용(파이로 프로세싱), 영구처분, 해외 위탁처리 등 어떤 방안을 추진하더라도 양국 간 협의를 통해 할 수 있는 이른바 '추진경로(pathway)'를 마련한 것은 의미가 크다. 특히 한미 양국이 공동연구를 진행 중인 파이로 프로세싱 등 미래기술을 계속 추진할 수 있게 된 점도 우리 입장에서는 전향적이다.

신협정은 세계 5위 원전 강국인 우리 원자력 산업의 세계시장 진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원전 연료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서는 미국의 원전 연료 공급지원 노력을 규정했으며 미국산 우라늄을 이용한 20% 미만의 저농축을 양국 간 협의로 추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와 함께 우리 원전 수출업계가 요구해온 미국산 핵물질, 원자력 장비 및 부품 등을 자유롭게 재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포괄적 동의도 확보했다. 또 장래 우리 원전이 미국 업체와 경쟁하게 될 경우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있는 수출입 인허가에 대한 신속 처리에도 합의했다.

 

물론 이번 신협정을 '핵 주권' 입장에서 미흡하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과 핵 문제에 관해서는 힘의 논리가 우선하는 것 또한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이다. 정부는 물론 국민도 국익적 관점에서 이번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바라봐야 하겠다. 무엇보다 핵 재활용을 위한 단초를 열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 세월호 인양 결정

 

[한국일보 사설-20150423목] 마침내 세월호 인양 결정, 시행령도 빨리 손보라

 

정부가 22일 세월호 선체를 인양키로 공식 결정했다. 국민안전처는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2개월 내에 인양업체를 선정하고, 3개월간 준비작업을 거쳐 9월부터 본격 인양에 나서겠다는 해양수산부의 제시안을 확정했다. 또 선내에 남아있을 실종자 훼손이나 유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체를 누인 채 통째로 인양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가 세월호 인양을 결정함에 따라 인양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일단 봉합 수순에 접어드는 분위기다. 세월호 사고 관련 가족들은 이제라도 정부가 인양을 공식 선언한 데 대해 환영한다고 밝혔고, 정치권에서도 여야가 모처럼 한 목소리로 반겼다.

 

그 동안 세월호 인양을 두고 막대한 작업비용과 기술적 어려움 등을 들어 반대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단원고 학생 4명, 교사 2명, 일반인 3명 등 모두 9명의 실종자를 찾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인양작업이 순조로울 경우 1,000억 원 가량의 비용이 예상되나, 여차하면 2,000억 원을 훌쩍 넘길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실종자 인양은 비용을 따지기 이전에 인권의 문제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비리와 부실 덩어리의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 세월호에 승선했다는 이유로 덧없는 죽음을 강요당한 그들의 목숨을 값으로 따지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최근 한국일보 여론조사에서 국민 77%가 선체 인양에 찬성한 것도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는 속죄의 감정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유가족과 국민이 입은 심리적 외상을 치유한다는 의미도 있다.

 

문제는 앞으로의 과제다. 인양을 마무리 하는데 최소한 12개월이 걸리며 태풍이나 기술적 불확실성 등을 감안하면 18개월 이상 걸릴 수 있다고 한다. 조류가 거센 해역에서 1만 톤에 달하는 선박을 인양한 예가 없어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정부는 조속한 인양을 위해 기술적 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하지만, 일정에 쫓겨 무리수를 두는 일은 더욱 없어야 한다. 인양 과정에서 희생자가 발생하는 비극은 두 번 다시 생겨서는 안 된다. 지난 해 9월 일본 온타케산의 분화로 5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지금도 시신 7구가 사고 현장에 남아있지만, 일본 당국은 폭설을 이유로 한 달여만에 수색을 중단했다. 수색은 지금까지도 재개되지 않았다. 2차 피해 가능성을 감안한 조치임은 말할 나위 없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또 다른 갈등의 축인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정부는 당초 해수부 출신 공무원이 세월호 특별조사위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업무를 총괄하는 안을 내놓았다가, 유족들의 반발에 부딪히자 해수부를 제외한 다른 부서에서 파견하는 절충안을 내놓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세월호 특위에 독립성과 객관성을 부여하지 않으려는 정부의 행태로는 유족들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특별법 시행령과 관련해서도 유족과 국민이 납득할 만한 대답을 서둘러 내놓기 바란다. 이 또한 뭉기적거릴 이유가 전혀 없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3목] 세월호 인양 결정, ‘진실 건지겠다’는 다짐 돼야

 

세월호 참사 실종자와 희생자 유가족의 오랜 소망 하나가 풀렸다. 정부가 22일 세월호 선체 인양 방침을 확정한 것은 때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세월호 수색 중단 이후 5개월 동안 유가족의 인양 요구에도 정부는 가타부타 말이 없고 새누리당에서는 반대 목소리도 공공연히 나오곤 했다. 6일 박근혜 대통령이 “적극 검토” 발언을 한 뒤에도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위험성·비용을 언급하며 신중론을 펴는 등 최근까지도 정부 태도는 오락가락했다. “선체 인양 결정은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방기하다가 국민 여론에 밀려서 비로소 내린 것”이라는 유가족의 반응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이제 문제는 올바른 방식으로 인양에 성공하는 일이다. 해양수산부는 실종자가 유실·훼손되지 않도록 선체를 누운 채 통째로 인양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진상조사를 위해서도 이 방식이 최선이다. 앞으로 정부는 세세한 내용까지 유가족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투명하게 인양 작업을 진행하기 바란다. 인양 과정의 안전 확보와 해양오염 방지 등에도 유념해 한 단계 진전된 사고수습 역량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선체 인양 시기와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기간이 어긋날 가능성이다. 정부는 인양까지 12~18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최대 1년6개월인 특조위 활동 기간을 고려하면 위원회가 정작 인양된 선체에 대한 조사도 못한 채 활동을 마쳐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인양 일정을 최대한 앞당기되 기술이나 안전의 문제로 한계가 있다면 활동 시한에 탄력성을 부여하는 방법을 찾는 게 합당하다. 선체를 조사하는 데 몇 달은 필요하다는 게 특조위의 설명이다.

 

유가족은 정부 결정을 반기면서도 가슴 한쪽은 여전히 답답할 것이다. 선체 인양과 함께 요구해온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 개정이 답보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유가족과 특조위의 의견을 반영해 전향적인 방안을 마련 중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을 뿐, 시행령안 입법예고 기간이 끝난 6일 이후로도 정부가 위원회에 공식적인 개정안을 제시한 적은 없다고 한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이어진 각종 추모행사를 경찰이 강경진압한 후폭풍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경찰은 18일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에 참여한 시민 100명을 연행하고 이 가운데 10여명의 구속영장을 신청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실제로는 5명만 영장을 신청했고 그나마 3명은 22일 영장이 기각됐다. 차벽을 이용한 강경대응으로 충돌의 원인을 제공했던 경찰이 집회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려 영장 신청을 남발한 결과다.

 

정부의 이런 태도로는 완전한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를 계속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해양수산부는 새로운 시행령안을 하루빨리 내놓고 여론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경찰은 과잉진압에 대해 유족·시민들에게 사죄해야 한다. 세월호 1주기에 표출된 진실을 염원하는 민심을 정부는 뼈아프게 직시해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20150423목] 세월호 인양, 국민의 마음도 함께 건져야

 

정부가 22일 세월호 선체를 인양하기로 결정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가장 중요한 의미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실종자를 찾아 가족 품에 돌려줄 인도적인 기회가 열렸다는 점이다. 온전한 선체를 건져 사고 원인을 선명하게 재규명함으로써 그간 제기됐던 모든 의혹을 말끔하게 씻는 계기도 될 수 있다. 노력하기에 따라 사고 수습 과정에서 발생한 우리 사회의 감정적 앙금을 해소하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정부는 실종자와 선체뿐 아니라 유족과 실종자 가족, 그리고 국민의 마음도 건지겠다는 각오로 인양에 임해야 한다.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은 “인양 추진 과정에서 실종자 가족 및 유가족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등 긴밀히 소통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술제안서를 받는 단계부터 인양업체를 선정하고 세월호 선체가 완전히 인양되는 과정까지 한 점 의혹 없이 투명하게 국민과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인양 방법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보다 전문가들과 유가족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 다른 좋은 방법이 나오면 새롭게 적용해 보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앞으로 적어도 1년은 걸릴 인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기술 측면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일은 인양 과정에서 행여 실종자가 유실되거나 선체가 손상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한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다. 인양 중 발생할 수 있는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사전에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 행여나 다시 바다가 오염돼 인근 지역 주민이 피해를 보거나 불편을 겪는 일이 발생해선 안 된다.

 

  바닷속에서 거대한 선체를 인양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 힘들고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산업안전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따라서 인양 과정에서 추가적인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마지막까지 안전한 작업이 될 수 있도록 확실한 작업관리를 맡아야 할 책임은 정부에 있다. 세월호 인양이 유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우리 사회의 논란과 갈등을 잠재우는 깔끔한 종착역이 되기를 기대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3목] 세월호 인양, 온전하고 빠르고 안전하게

정부가 세월호 선체를 인양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안전처 등 17개 부처가 참여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총 15차례 회의 끝에 해양수산부가 제출한 선체 인양 결정안을 어제 원안대로 확정했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불확실성은 있지만 가족과 국민의 여망에 따라 인양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여, 인양 문제가 본격 논의된 지 6개월여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세월호 가족과 국민의 뜻을 끝내 저버리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고 평가할 만하다.

 

세월호 선체 인양은 실종자 수습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은 비용 문제를 넘어 국가의 존재 이유에 해당한다. 중대본이 선체를 절단하거나 바로 세우지 않고 누운 상태에서 통째로 인양하는 방안을 수용한 것도 무엇보다 실종자 유실·훼손 우려를 최소화하려는 의도에서다. 해수부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는 4개월여 연구 끝에 선체 측면에 93개의 구멍을 뚫어 와이어를 연결해 두 대의 해상크레인으로 그대로 들어올린 뒤 수심 30m 지점으로 이동해 플로팅 독에 선체를 올려 부상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외부 전문가들도 “기술적으로는 성공 가능하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실종자 수습과 함께 선체 인양의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사고 원인 규명이다. 여기에는 인양 일정이 주요 변수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수부는 인양 업체 선정 후 세부 인양설계와 준비작업을 병행하면 9월부터 현장작업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상작업에는 12~18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너무 늦어지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기간을 넘길 수 있다. 특조위 이석태 위원장의 말처럼 인양 자체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특조위에서 조사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는 것이 필요하다. 선체 인양 시기를 앞당기든가 최장 1년6개월로 못박은 특조위 활동 기간을 연장하는 문제를 논의해야 할지도 모른다.

 

맹골수도처럼 조류가 거센 해역에서 화물을 포함해 1만t에 이르는 선박을 통째로 인양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도전이다. 빠른 유속과 혼탁한 시야에서 잠수사의 수중작업이 쉽지 않고 인양점이 파괴되거나 와이어가 끊어지는 등 2차 사고의 위험도 상존한다. 그런 가운데 실종자 9명 수습에 최대한 역점을 두고, 특조위 활동 기간 안에 가능한 한 빨리,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 안전하게 세월호를 인양해야 하는 과제를 정부가 지게 됐다. 세월호 선체 인양에서는 관련 부처와 컨트롤타워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제 역할을 다해 세월호 참사 때의 실패를 조금이나마 만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랄 뿐이다.

 

 

■ 관련 칼럼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상언(사회부문 차장)-20150423목] 세월호를 인양해야 하는 이유

 

공교롭게도 16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서 정부의 최종 결정까지 걸린 시간이다. 대통령은 지난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결론이 나면… 선체 인양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양수산부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발표했고 대통령은 16일 진도 팽목항에서 “필요한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라고 못을 박았다. 2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심의는 통과의례일 뿐이었다. 이제 세월호는 기술적 실패라는 불상사가 없는 한 물 위로 올려진다.

 

  나는 세월호 인양에 찬성하지 않았다. 정부가 실종자 가족의 동의만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그대로 두는 게 옳다고 믿었다. ‘인양의 필요성’에 동감하지 않았다. 인양 문제에 대한 기사(중앙SUNDAY 2014년 6월 8일자)를 쓰는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대부분 인양에 회의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그 비용으로 해상 추모공원을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았다. 1994년 발트해에서 침몰한 MS에스토니아호나 제2차 세계대전 때 폭침당한 미국 전함 USS 애리조나호처럼 침몰 해역에 존치하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MS에스토니아호에는 700여 명의 실종자가 있었다.

 

  그런데 지난 2일 생각이 달라졌다. 세월호를 인양해야 한다 또는 인양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 기자회견장에서였다. 52명의 유가족이 삭발한 그날이다. 가족들은 세상에 대한 원망을 표출했다. 정부·국회·언론을 향한 거친 언사도 있었다. 그들의 울분이 이해가 됐다. 본지 여론조사에서 62.3%의 응답자가 인양에 찬성했다. 그중에는 “인양을 꼭 해야 하느냐”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나 같은 이도 많을 것으로 짐작됐다.

 

  세월호 인양에 대한 기술적 검토에 열 달이 걸렸다. 치밀한 작업 때문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보기 어렵다.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는 아직 정상적인 활동을 시작하지 못했다. 시간은 그렇게 허무하게 흘러갔고, 세월호 인양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실종됐다. 해수부의 당초 계획에는 ‘공론화’라는 것이 들어 있었으나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어명(御命)’에 따라 결정되는 일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세월호는 인양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 앞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를 인양해야 한다.

 

 

■ 아베의 역사 인식

 

[한국일보 사설-20150423목] 반둥회의에서도 거듭 확인된 아베式 역사인식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ㆍ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에서 과거 전쟁에 “깊은 반성”이란 표현을 썼다. 그는 ‘침략ㆍ무력행사로 타국 영토 보전과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지 않는다’와 ‘국제분쟁은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반둥회의 원칙을 언급하면서 “일본은 이 원칙을 과거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어떤 때라도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시아, 아프리카 두 대륙의 주민 35만명에 대해 5년 동안 교육훈련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연설은 과거사 반성의 핵심이자 최소한의 수준인 ‘식민지배와 침략’ ‘사죄’의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인식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오히려 개도국에 대한 일본의 지원을 강조한 것은 경제력으로 과거의 잘못을 희석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의 반둥회의 연설에 주목한 것은 이 연설이 29일 미국 의회 합동연설과 8월15일 발표할 전후 70주년 담화의 토대가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재임 중인 2005년 4월 반둥회의에서 무라야마 담화를 이어받아 “식민지배와 침략”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등을 표명했고, 그 해 8월 전후 60주년 담화에서도 이를 재차 밝혔다. 아베 총리가 과거사를 ‘반성’이란 말 한마디로 뭉뚱그려 넘어간 것은 고노, 무라야마 담화로 대표되는 역대 정권의 과거사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의 행태로 보아 익히 예상됐던 것이지만 역사적 진실을 궤변과 아집으로 또다시 부정하려는 태도에 개탄을 넘어 측은함마저 느낀다.

 

아베 총리가 과거사 언급은 최소화하고 ‘미래’에 방점을 둔 의도는 분명하다.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데 진력하겠다는 것이다. 미국과 안보ㆍ경제에 밀착해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면 과거사 굴레에서 탈피하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우리 정부는 “깊은 유감”이라고 논평했지만 이제는 아베 정권의 인식을 바꿀 실질적인 해법을 찾는데 외교력을 모아야 한다. 그것이 무한 폭주하는 미일의 안보일체화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찾는 길이기도 하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3목] ‘침략과 식민지배 반성’ 회피하는 아베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2일 과거 일제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을 교묘하게 피해 나가는 연설을 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반둥회의 60돌 기념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다. 2012년 말 취임 이후 계속해온 ‘역사 뒤집기’를 국제무대에서도 시도하는 모습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이런 잔꾀는 용납될 수 없다.

 

아베 총리는 ‘지난 대전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반둥에서 확인된 원칙을 지키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차대전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 아시아 침략과 식민지배를 ‘지난 대전에 대한 반성’이라는 표현으로 얼버무린 것이다. 다른 2차대전 참전국들까지 끌어들여 자신의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것이기도 하다. 반둥회의 원칙을 거론한 것은 ‘일제 침략’이라는 직접적 표현을 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 원칙은 ‘침략 또는 침략 위협, 무력에 의해 타국의 영토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등 10가지를 내용으로 한다.

 

아베 총리는 20일 일본 국내 방송에 나와, 8월15일 종전 70돌을 전후해 발표할 ‘아베 담화’에 ‘침략, 사죄’ 등의 표현을 담을지에 대해 “(이전의 담화와) 같은 것이면 담화를 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과거 잘못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더는 거론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그의 집권 기간 동안 군대위안부 강제성 부인, 교과서의 역사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이 지속적으로 강화돼왔다.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을 확대하고 평화헌법을 부인하는 개헌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흐름에 있다. 그는 이런 역사 뒤집기를 ‘적극적 평화주의’ 등으로 포장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이런 시도는 아시아 나라들과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국제 협력에 걸림돌이 될 것이 확실하다. 미국 하원의원 4명이 21일 본회의장 특별연설에서 아베 총리에게 ‘과거사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라’고 촉구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들은 특히 아베 총리가 29일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잘못을 명백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이날 연설을 지켜본 것은 상징적이다. 위안부 강제성 부인은 한-일 관계 정상화를 막는 최대 걸림돌이다.

 

아베 총리는 미래를 내다보자고 말하지만 과거를 직시하지 않으면 올바른 미래도 있을 수 없다. 뒤집힌 역사 위에 구축되는 미래는 더 큰 역사적 불행을 낳을 수 있다. 아베 총리는 종전 70돌이라는 좋은 기회를 흘려보내지 말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20150423목] 아베는 역사의 시곗바늘을 뒤로 돌릴 셈인가

 

우리는 어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 60주년 기념 정상회의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어떤 말을 할지 주시했다. 연설에서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깊은 반성’이란 표현은 쓰면서도 ‘식민지 지배와 침략’ ‘사죄’란 단어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1955년 반둥회의에서 채택된 10원칙 중 ‘무력행사에 의해 타국의 영토 보전과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지 않는다’ ‘국제분쟁은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한다’는 두 원칙을 강조하고 “일본은 과거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언제라도 이 원칙을 지켜나갈 것을 맹세했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대실망이다.

 

  10년 전 그 자리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란 표현을 쓴 뒤 그해 8월 종전 60주년 담화(일명 고이즈미 담화)에 그대로 담았다. 20년 전 무라야마 담화에서 일찍이 언급됐던 표현들이다. 아베의 역사 시계는 거꾸로 돈다는 말이 안 나오면 그게 되레 이상하다.

 

  반둥회의 연설은 이달 말로 예정된 아베 총리의 미 의회 연설이나 8월에 나올 종전 70주년 담화(일명 아베 담화)의 시금석이란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미 의회 연설이나 70주년 담화 역시 식민 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죄 없이 역대 내각의 인식을 계승한다는 모호한 표현으로 핵심을 비켜간다면 한·일 관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전체에 심각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다. 한·일 관계 정상화를 통해 한·미·일 삼각 협력체제를 구축하려는 미국의 구상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과거 없는 미래는 없다. 아베 총리가 진심으로 전후 70년을 정리하고 미래로 나아갈 생각이라면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인정하고 잘못을 사과해야 한다. 아베의 방미를 앞두고 과거의 잘못을 명확하게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 정치권과 언론에서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아베 총리는 역사의 시곗바늘을 뒤로 돌리려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시도를 당장 그만두기 바란다.

 

 

■ 관련 칼럼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최광숙(논설위원)-20150423목] 메르켈과 아베의 국가이성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991년 독일 통일 후 첫 조각에서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발탁된 뒤 첫 외국 방문지로 선택한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총리가 된 후 더욱 이스라엘을 챙겼다. 총리 재임 첫 7년 동안 이스라엘을 방문한 횟수만 네 번이다. 이렇듯 메르켈의 외교정치에서 이스라엘은 유럽연합과 미국에 비견할 정도로 중요하다. 이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독일의 역사적 부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도 화답했다. 히브리대학에서 메르켈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2008년 3월 이스라엘 건국 60주년을 맞아 이스라엘 의회는 총리로는 처음으로 메르켈에게 연설하도록 기회를 줬다. 국가원수들만 불러 연설을 듣는 관행을 메르켈을 위해 과감히 깬 것이다. 독일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도 ‘레오 백’이라는 상을 수여했다. 이 상은 독일유대교중앙위원회가 독일 유대인을 위해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2007년 9월 메르켈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나 이전의 모든 독일 총리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독일의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의무로 여겼다. 나 역시 이런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명확하게 인정한다. 그것은 독일의 ‘국가이성’에 속한다”고 말했다. 슈테판 코르넬리우스가 쓴 메르켈의 전기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에서 저자는 메르켈의 국가이성은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빼고는 독일을 논할 수 없다’는 역사관에서 출발해 나치에 대한 반성은 물론 나아가 독일에 이스라엘의 안전과 보호를 위한 중요한 정치적 임무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이성은 국가의 임무에 담긴 정치적 합리성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이성’(國家理性)은 프랑스어인 ‘레종 데타’(raison dEtat)를 번역한 말로 이미 로마시대에 사용됐다. 고대에서 국가이성이라는 관념은 위정자 개인의 경험에 입각하는 정치기술로서 인정되었지만 중세는 교회가 사회의 질서와 규범을 지배하던 때라 국가는 독자적인 존재 이유를 갖지 못했다. 그러다가 국가이성이 현실의 정치나 정치학에 도입되어 확립된 것은 마키아벨리 때이다.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 국가는 정치가의 도덕적 규범과 같은 개인 윤리가 아닌 국가이성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훗날 히틀러의 무차별 정복이나 유대인의 학살 등을 정당화하는 데 잘못 활용되기도 했다. 일부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8월 종전 70주년을 맞아 발표할 담화에서 과거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의 표현을 담지 않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점차 히틀러를 닮아가는 듯한 아베는 메르켈의 국가이성이 뭔지나 알고 있는지….

 

 

■ 후안무치 국회의원들, 외교관 특권까지 요구하나

 

[서울신문 사설-20150423목] 후안무치 국회의원들, 외교관 특권까지 요구하나

 

새누리당 일부 국회의원들이 해외에서도 면책특권을 누릴 수 있도록, 외교관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는 내용의 여권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외교부도 강하게 반대하고 있고, 여론도 좋지 않아 현재로서는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이러한 발상 자체가 뻔뻔스럽다. 여야 모두 입만 열면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약속하고는 생업에 바쁜 국민의 질타가 줄어들면 여지없이 특권을 찾아 챙기는 모습에 넌더리가 날 지경이다. 이번 여권법 개정안이야말로 현재 차관에 준하는 국회의원의 의전을 ‘국빈’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스스로 나선 꼴이니,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

 

서울신문이 어제 단독 보도한 것에 따르면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3일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에 국회의원을 포함하는 내용의 여권법 개정안을 같은 당 소속 의원 10명과 함께 대표발의했다. 서청원, 한선교 의원 등도 포함돼 있다. 발의안에는 ‘현재 대통령령에 규정된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을 법률로 상향조정하고, 신규 발급 대상으로 국회의원을 추가한다’고 명시했다. 현재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은 전·현직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 4부 요인과 그들의 배우자, 27세 미만 미혼 자녀이다. 국가적 외교 수행과 소지자의 신변 보호가 목적이므로 발급 대상이 극히 제한적이다.

 

여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회의원 전원과 그 배우자, 자녀들도 외국 정부로부터 4부 요인과 마찬가지로 ‘극진한’ 대우를 받게 된다. 비자 면제 혜택과 사법상 면책특권을 누린다. 안 의원은 “국회의원들이 의원외교를 활발히 하기 때문에 외교관 여권 발급이 확대될 필요성이 있다”면서 “특권이 아니라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는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동안 제대로 된 의원외교의 성과도 거의 없다.

 

국회의원들은 ‘1인 헌법기관’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헌법 정신에 맞게 입법권을 행사하겠다는 표현이어야지, 헌법 기관으로서의 많은 특권을 챙기겠다는 입법권의 남용이어서는 안 된다. 헌법에서 국회의원의 형·민사상 면책특권을 허용한 이유도 직무와 관련한 발언이나 표결을 두고 징계해선 안 된다는 것이지 개별 의원의 부정부패를 옹호하자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의원이 국회의원 수를 100명 줄이자고 했을 때 많은 국민이 환호한 것은 그동안 국회의원에게 많은 실망을 했기 때문이다. 특혜와 탐욕을 추구하는 국회의원이라면 내년 총선에서 물갈이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 관련 칼럼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423목] 외교관 여권

 

동원호를 나포했던 소말리아 해적 두목이 2013년 첩보영화 같은 작전으로 체포됐다. 초대형 유조선 납치로 한 번에 200만~300만달러씩 챙긴 그가 해적질을 그만두는 조건으로 소말리아 정부로부터 면책특권과 외교관 여권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 과정에서 알려졌다. 왜 하필 외교관 여권이었을까. 거기에 따라붙는 특권이 그만큼 세기 때문이다.

 

외교관 여권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면책특권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가별로 사정은 다르지만 이들은 외국에서 비자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교통법규 위반 등 경범죄 처벌 면제와 불체포 특권, 재판을 받지 않을 권리도 갖는다. 공항 등에서 불시 소지품 검사를 따로 받지 않고 VIP 의전을 받으며 일반인의 시선을 피해 별도로 출입국할 수도 있다.

 

이런 특권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모양이다, 구약성서에도 기원전 450년께 페르시아 아르타세르세스 1세의 신하 느헤미야가 유대로 여행하겠다고 했을 때 왕이 ‘강을 넘어서도 효력을 발휘하는’ 문서를 써줬다는 내용이 있다. 외국의 관리들에게 특별대우를 부탁한 것이다. 중세 아랍이 세금 납부 영수증을 여권으로 쓴 것도 자국민 보호의 한 방법이었다. 근대적 의미의 여권제도를 처음 시행한 잉글랜드도 마찬가지였다. 1차 대전 때 보안상의 이유로 출입국심사 절차가 생긴 뒤로 외교관 여권의 가치가 더 커졌다.

 

그래서 발급 절차가 까다롭다. 일반여권이나 공무원·정부투자기관 임직원을 위한 관용여권보다 대상도 적다. 5년짜리는 전·현직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와 외무장관, 대사,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등에게 한정된다. 2년짜리는 특별사절이나 정부대표 등에게 발급된다. 이들의 배우자와 27세 미만 미혼 자녀도 포함된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이런 특권을 자신들에게도 달라는 내용의 여권법 개정안을 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국익을 위한 외교 활동에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실로 몰염치하고 옹색한 주장이다. 지금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는 외교관 여권이 발급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의원 300명과 그 가족이 무더기로 외교관 특권을 받게 된다.

 

가뜩이나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은 판국이다. 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잠꼬대에 이어 이젠 외교관 여권까지 요구하다니. 그렇잖아도 국회의원 특권이 200개나 된다. 얼마 전 ‘특권 내려놓기’ 시늉을 할 때도 웃었지만 외교관 특권까지 갖겠다고 나서는 꼴을 보니 더 우습다. 특권이 많으면 비리도 늘어나기 쉽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경향신문 사설-20150423목] 역사교육의 기본 뼈대부터 ‘편향’시킬 참인가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지난 1월 ‘사실에 입각한 균형 잡힌 역사교과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1월8일)에서 “역사는 한가지로 가르쳐야 한다”는 황 장관의 언급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시사한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이같이 해명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해명자료를 살펴보면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 있다. ‘국가의 책무성과 오류 없는 사실에 입각한 균형 잡힌 역사교과서’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다양한 해석과 시각이 존재하고 새로운 역사·고고학 자료가 등장하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 바로 역사 분야이다. 따라서 ‘오류 없는 사실’이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된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 무오류의 역사를 만들겠다는 것은 오만하고도 위험한 발상이다. 황 장관이 언급한 역사교과서는 곧 ‘정권의 입맛대로 균형을 잡는 역사교과서’를 의미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같은 교육부의 시각은 엊그제 경향신문이 역사과 교육과정 각론개발팀의 연구진 17명 명단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즉 연구진 가운데 역사교사 및 한국사 전공자 10명 중 8명이 친정부·우편향 인사들인 것으로 분석됐다. 2013년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비호 논란을 일으킨 교과서 수정심의위원 3명이 포함됐다고 한다. 국정교과서 도입에 적극 찬동한 교수, EBS 교재에 박정희 유신 관련 문항을 줄이라는 등의 메일을 집필진에게 보낸 이도 있었다. 또 2009년 교육과정 개정 당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변경, 우편향 논란을 일으킨 인사의 제자도 있었다.

 

역사과 교육과정 각론개발팀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중학교 역사·고교 한국사 등의 집필원칙을 정하는 곳이다. 역사교과서의 뼈대를 세우는 곳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 ‘학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사실에 입각한 균형감각’을 갖춘 학자들이 참여해야 한다. 역사교육의 가치를 다루는 역사교과 전문가들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하지만 교육부가 국정교과서 도입을 고려, 정부 입맛에 맞는 인사들 위주로 기용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학회나 교사단체의 추천을 의뢰하던 관례도 깼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다양성과 전문성을 결여한 구성이 되고, 고질적인 편향성 논란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잊어서는 안될 것은 역사란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과목이라는 점이다.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는 분야가 결코 아니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3목] 우려되는 영·유아 사교육비 폭증

1~5세 영·유아 사교육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어제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의 연구보고서를 인용해 지난해 영·유아의 총 사교육비 규모가 3조2289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전년보다 무려 22.2%나 늘어난 것이다. 1인당 사교육비도 월평균 10만8400원으로 전년보다 3만원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초·중·고생 월평균 사교육비가 3000원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무려 10배에 육박하는 증가세다. ‘사교육 광풍’이 초·중·고를 넘어 영·유아 단계로 급속히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영·유아 사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는 비판과 분별력이 부족한 영·유아가 ‘상업적 교육 프로그램’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교육 내용이나 과목의 적절성에 대한 공식 검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 발달의 토대가 형성되는 영·유아기 교육의 중요성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사교육은 가계 부담 심화뿐 아니라 바람직한 신체 및 정서 발달도 해칠 수 있다. 영·유아 사교육비가 국내총생산(GDP)의 0.3%에 육박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여기에는 의무교육이 아니라는 이유로 영·유아 교육을 민간 시장에 내맡긴 채 나몰라라 해온 정부도 책임이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공개한 자료에는 영·유아 사교육의 심각성이 잘 드러난다. 사교육이 영어에 편중돼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특별활동의 영어 과목 참여율이 유치원은 63%, 어린이집은 84%였다. 조기 영어 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에게 영어몰입교육부터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 따져 볼 일이다. 사교육 참여가 교육적 필요보다는 참여하지 않았을 경우 겪게 될 불이익 걱정 등 교육 외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나타난 것도 주목된다. 참여하지 않을 경우 아이가 외톨이로 지낼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학습지를 이용한 선행학습까지 성행하고 있다고 하니 한숨이 나온다. 학습지가 창의력과 상상력 발달에 도움을 준다는 해당 업계의 주장은 믿기 어렵다. 이번 연구보고서는 정부가 영·유아 사교육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는 경고다. 영·유아 사교육 실태를 국민에게 정확히 알리고, 기왕의 초·중·고 외에 영·유아 분야까지 포괄하는 종합적 사교육 대책을 세우기 바란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3목] 시정잡배보다 못한 박용성씨의 막말

 

중앙대 재단 이사장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중앙대 보직교수들에게 보낸 막말 이메일 파문으로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등 맡고 있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공개된 이메일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학과 통폐합 등 학내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교수들에 대한 적대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들(비대위 교수들)이 제 목을 쳐 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 주면 예의가 아니다.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쳐 줄 것이다.” 재단 이사장인 자신이 교수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슈퍼갑(甲)’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과시하는 듯하다. 정제되지 않은 언어폭력은 계속 이어졌다. 다른 이메일에서는 김누리 독문과 교수 등이 주도하는 비대위를 용변 후 사용하는 비데에 빗대 ‘Bidet委’(비데위)로 표현했고, 교수들을 ‘조두’(鳥頭·새대가리)라고 조롱했다. 이쯤 되면 인격모독만 있을 뿐 인간존중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시정잡배보다 못한 막말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우리는 지난해 말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일부 재벌가 사람들의 그릇된 사고방식을 똑똑히 확인했다. 직원들을 종이나 노예 부리듯 하는 그들의 안하무인 격인 언행에 온 국민이 분노했다. 겉과 속이 다른 그들의 가증스러운 진면목에 절망했다. 박 회장의 막말 이메일 또한 그 연장선이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여전히 개발독재시대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박 회장의 뒤떨어진 현실인식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노골적으로 대학사회 구성원들을 모욕하고 인사보복을 다짐하는 ‘독재 이사장’의 말로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중앙대 교수 비대위는 어제 이번 사건을 ‘대학판 조현아 사건’으로 규정하고, 박 회장 등을 상대로 엄정하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대한상의 회장 시절 정부와 정치권, 노동계 등을 상대로 비판을 서슴지 않아 ‘미스터 쓴소리’로 불려 왔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한 비판을 수용할 자세는 갖추지 못했던 것 같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을 운영하면서 일방적으로 대기업식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다 학내 구성원들의 비판에 직면했지만 성숙하게 이를 수용하지 못했다. 결국 섬뜩한 화법으로 막말을 일삼다 ‘부메랑’을 맞은 셈이다. 대학정신이 인간존중이라면 시정잡배 같은 언사를 일삼는 박 회장과 같은 인사들이 대학을 맡아 운영하는 ‘불상사’는 다시 벌어져서는 안 된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3목] 반성 없는 권력의 정치개혁 힘 받을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의를 받아들이며 내놓은 몇 마디 말이 불편함을 안겨 주고 있다. 국민의 고뇌가 아니라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는 대통령의 말이 국민감정과 동떨어진 것임은 논외로 치자. 하지만 “검찰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확실히 수사해 모든 것을 밝혀 주기 바란다”는 언급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정치개혁을 고리로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셈인데 과연 그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일 국민이 얼마나 될까. 또다시 검찰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성완종 게이트’는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등 핵심 측근 인사들이 줄줄이 엮여 들어간 초대형 권력형 비리 사건이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초유의 국정리더십 공백 사태로 국민 신뢰는 밑창을 드러냈고 국격의 실추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국정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은 일언반구 사과도 없다. 마치 남의 일인 듯 고상한 원칙론적 명분만 내세우고 있으니 국민은 그야말로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공감능력을 의심받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 있을까.

 

박 대통령이 수차례 사용한 정치개혁이라는 말은 물론 야권만이 아닌 정치권 전반을 두고 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살아 있는 권력 주변 부패의 고름을 외과수술적으로 도려내는 데 힘을 쏟아야 할 때지 뜨악하게 정치개혁을 외칠 때가 아니다. 부패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와 정치개혁을 말릴 국민은 없다. 하지만 일에는 선후완급이 있는 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혁의 주체와 대상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성완종 리스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 2012년 대선 불법 정치자금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전면적인 정치개혁을 촉구하려면 이 점부터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 자신도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단단한 결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는 한 정치개혁 차원 수사 운운은 자포자기적인 냉소와 정치허무주의만 양산할 뿐이다. 이치가 뻔한데도 이를 애써 무시하는 듯한 모양새니 기획사정이니 하청수사니 물타기 꼼수니 하는 온갖 후진적인 정치용어가 난무하는 것 아닌가.

 

무리를 감행하면 반드시 사달이 나게 되어 있다. 제 발 앞의 썩은 정치 오물도 제대로 치우지 못하면서 거창하게 정치개혁을 이루겠다고 나서는 것은 또 다른 부메랑이 되기 십상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정치개혁 드라이브는 공허하다. 정치적 의도가 담긴 사정몰이라면 결단코 성공할 수 없다.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공무원연금 개혁 등 시급한 국정과제마저 떠내려 보내고 말지도 모른다. 정치적 이성을 되찾기 바란다. 이 총리가 물러난다고 해서 정권 핵심이 연루된 ‘악성’ 비리 사건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검찰은 이제부터 성완종 게이트를 새로 수사한다는 각오로 비리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야 할 것이다. 위기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다음주 귀국하는 대로 이번 권력 비리 사건에 대해 국민에게 분명한 어조로 사과부터 하고 선후책(善後策)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3목] 대주주 차별하지 말아야 기업공개 활성화된다

올해 기업공개(IPO)가 급증할 것이라고 한다. 엊그제 한경이 주최한 ‘IPO엑스포 2015’에서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연내 신규상장을 준비하는 기업이 많아 IPO 건수가 200개까지 충분히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거래소 측은 올 신규상장이 2000년(255개) 후 최대치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금까지 심사를 신청한 기업이 작년 같은 기간의 세 배라고 한다. 마침 주가도 오랜 박스권에서 벗어나 코스피지수는 거의 4년 만의 최고치이고, 특히 코스닥지수는 7년 만에 고점을 경신했다.

 

우량기업이 증시에 많을수록 자본시장이 튼튼해지고 실물경제도 잘 돌아가게 된다. 그런 점에서 기업공개가 몇 년째 침체상태였다가 지난해부터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을 합친 기업공개 건수는 2010년 98건이던 것이 2011년 76건, 2012년 29건까지 급감했다가, 2013년 40건에 이어 지난해 78건으로 늘었다. 벤처기업 육성, 창조경제 활성화 같은 정부 정책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그렇지만 온기라는 게 코스닥시장에 국한돼 있을 뿐이다. 대형 기업들이 중심인 유가증권시장은 나아진 게 별로 없다. 지난해에도 유가증권시장에서 신규 상장기업은 7곳에 불과해 상장기업 수가 전년의 775개에서 772개로 오히려 줄었다. 상당수 유망 기업들은 아직도 상장을 꺼리는 것이다. 단순히 상장심사·상장절차 간소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공시 의무 등의 부담만도 아니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외부인사로 이사회의 과반수를 채우고, 감사· 준법감시인까지 맡겨야 한다. 대주주 의결권 제한, 연봉공개 등 감당해야 할 규제가 한둘이 아니다.

 

툭하면 경영에 간섭하려드는 기관투자가와 당장의 고배당 외엔 안중에 없는 소위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요구에 시달려야 하고, 적대적 M&A 위협에 대한 방어수단도 없다. 산더미 규제에다 경영권까지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 메리트보다 비용이 훨씬 크다. 자본시장을 정상화하려면 무엇보다 기업을 세우고 키워온 대주주 지원제도를 갖춰야 한다. 지금은 지원이 아니라 차별과 징벌만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3목] 성과급 나눠먹기 제동 건 임우진 구청장을 지지한다

 

광주광역시 서구청 공무원들이 성과평가 결과에 따라 개인에게 차등 지급된 상여금을 다시 거둬 똑같이 나눠가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경 보도에 따르면 광주 서구는 지난달 말 5급 이하 직원 759명에게 총 21억7000만원의 상여금을 평가 결과대로 차등지급했다. 그런데 전국공무원노조 광주 서구지부가 이를 다시 거둬 직원들에게 균등 재분배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관행이 10년이 넘었고, 광주 서구뿐만 아니라 상당수 지자체에 만연해있다는 점이다.

 

1998년 중앙부처에 도입됐고 2003년에 지방자치단체로 확대된 공무원 성과상여금제도는 일 잘하는 공무원이 더 많은 보상을 받도록 한 성과평가 시스템이다. 1년간 업무실적을 평가해 4등급으로 점수를 매기는데 S등급은 지급액 기준 172.5%, A등급은 125%, B등급은 85% 이하를 받고, C등급은 성과급을 받지 못한다. 행정서비스의 질을 높이려는 목표로 만들어진 이 제도를 노조가 ‘일 잘 할 필요없이’ ‘똑같이 나누는’ 식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행정자치부 지방공무원 보수규정을 어긴 것으로, 명백한 불법행위다.

 

공무원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음이 분명한데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노조와의 관계를 의식한 단체장들의 묵인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노조의 변칙적인 성과상여금의 재분배는 불법이자 탈법”이라며 행자부에 부당성 여부를 질의하는 공문을 보낸 임우진 광주 서구청장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는 이 문제를 놓고 노조와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성과급 나눠먹기라는 부도덕한 관행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라도 임 구청장의 사례는 조명받아야 한다. 노조가 성과급 재배분을 조합원의 동의 아래 이뤄진 합법적인 행위라고 강변하면서 임 구청장을 압박하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행자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해마다 한 번 나오는 성과급도 이렇게 나눠먹는 공무원들에게 공무원연금개혁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실망스럽다. 공직자들의 타락 정도가 너무 심하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3목] 민노총, 정치투쟁 싫다는 현장 목소리 안 들리나

 

민주노총이 24일부터 총파업을 강행한다고 예고한 가운데 집행부에서 '억지파업'을 강요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노동계 내부에서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21일 소식지에서 "민주노총이 정국의 흐름을 무시한 채 날짜를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파업을 진행하려 든다"고 비판했으며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도 "현장 조합원의 생각은 총파업과 많이 떨어져 있다"며 반기를 들고 나섰다.

 

민주노총 핵심세력인 현대차 노조 집행부조차 상급단체의 투쟁방침을 거부하고 나선 것은 무엇보다 현장 조합원들의 거센 반발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4월 파업의 명분으로 내건 노동시장 구조개선 폐기, 공무원연금 개혁 중단, 세월호 시행령 폐기 등은 사실 근로조건 개선에 목말라하는 현장의 정서와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다. 집행부가 파업 명분으로 내세웠던 노동시장 개악안 상정이 무산됐기 때문에 파업의 명분과 목표가 사라졌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백번 옳다. 현대차가 포함된 울산 노동계는 이미 총파업 투표에서 43.9%의 찬성표를 던져 분명한 반대의사를 제시했다. 이런 조합원의 의견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정치파업을 밀어붙이고 세월호 1주기 추모행사에 뛰어들어 서울 도심을 불법폭력으로 얼룩지게 만들었으니 파업의 순수성이 의심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애초부터 조합원의 복리를 내팽개친 채 정치세력과 손잡고 정권퇴진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민주노총은 조합원의 입장과 괴리된 정치구호가 여론을 등 돌리게 할 뿐 아니라 조직기반을 와해시킨다는 점을 명심하고 지금이라도 총파업 선언을 거둬들여야 한다. 현대차 등 단위노조도 무책임한 상급단체의 불법파업 지침에 휘둘리다가는 소중한 일터가 희생될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노조의 존립근거는 무분별한 정치파업이 아니라 회사의 경쟁력을 키우고 조합원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3목] 금융 검사개혁 앞서 정치금융부터 뿌리 뽑아야

 

금융당국이 22일 2차 금융개혁회의을 열어 금융회사 검사를 '건전성 검사'와 '준법성 검사'로 구분해 꼭 필요한 경우에만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금융회사 검사·제재 개혁방안'을 주제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는 검사받는 금융회사의 권익 보호를 위한 금융회사 임직원 '권익보호기준'도 제정하기로 의결했다.

 

이번 개혁안은 한국 금융시장이 자본시장 활성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시점에서 꼭 필요한 조치였다. 특히 검사시 징구하던 확인서와 문답서를 폐지하고 검사반장 명의의 '검사의견서' 교부로 대신한 것은 업계의 오랜 바람이었다. 현행 150일로 돼 있는 검사기간을 건전성 검사는 60일 이내, 준법성 검사는 90일 이내로 대폭 축소한 것 또한 평가할 만하다. 금융회사 임직원이 강압적인 검사를 받지 않도록 권리를 보장하는 것도 진작 명문화 했어야 했다.

다만 지금처럼 정치금융이 활개치는 한국에서 이런 개혁들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겠냐는 의문은 남는다. 아무리 검사 시스템을 개선하고 금융인의 권익을 보장한들 정치와 금융의 '갑을(甲乙)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무슨 소용이 있겠나.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이날 "금융개혁 과제들을 지속적으로 점검해 시스템으로 안착시키는 게 금융당국의 목표"라고 강조했지만 아직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금융과 정치의 결별 없이는 어떤 개혁도 헛바퀴를 돌 뿐이라는 점이다. 정치권의 비호 아래 연명해온 경남기업의 부실화로 금융권 등이 떠안을 손실이 무려 1조1,000억원에 달한다는 사실만 봐도 너무 명확하지 않은가. 더욱 무서운 것은 어쩌면 지금도 더 큰 부실이 권력의 입김으로 금융권 요직을 꿰찬 인사들에 의해 양산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금융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정치권력의 금융권 인사·경영 개입을 차단할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국경제신문 칼럼-김종구 칼럼/김종구(논설위원)-20150423목] ‘싱크홀 대통령’에 미래는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과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결과를 전하는 언론 보도는 3년 전 이명박 대통령 때의 기사에다 글자 몇 개만 고친 수준이었다. “한-콜롬비아 에프티에이(FTA) 타결에 따른 후속조처 추진”이 “에프티에이의 조속한 비준 촉구”로, “양국 간 인프라, 에너지, 석유화학, 광물자원, 환경 분야 등에서의 협력 증대”가 “인프라 프로젝트, 전자 상거래, 온라인 유통망 진출 협력”으로 바뀐 것 정도가 고작이다. 이런 정도의 정상회담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세월호 참사 1년을 맞는 날 그렇게 허겁지겁 나라를 떠났다는 말인가.

 

평이한 정상회담 결과도 그렇지만, 방문의 격식도 초라하다. 산토스 대통령이 2011년에 한국을 방문(국빈방문)하고 2012년에 한국 대통령이 답방(국빈방문)했으니 굳이 따지자면 콜롬비아 대통령이 먼저 방한할 차례이고, 한국 대통령이 가려면 국빈방문의 대접이라도 받아야 옳다. 그런데도 애걸하듯이 공식방문으로 격을 낮추면서까지 콜롬비아행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인가. 콜롬비아의 6·25 참전 용사들을 만나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 세월호 유족들의 아픈 가슴을 달래주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참 나쁜 대통령’이다.

 

외국에 나가 화사한 패션을 뽐내고 있는 박 대통령의 모습이 요즘처럼 초라하게 느껴진 적도 없다. 과대포장된 해외순방 성과로 내치의 실패를 덮을 수는 없다. 사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곤경에 처한 박 대통령의 처지를 설명하는 데 자업자득, 인과응보처럼 적절한 용어도 없다. 한평생 출세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온 사람을 총리로 지명하지 않았다면, 아니 백 보를 양보해 ‘사정 대상 1호’를 부정부패 척결의 기수로 내세우는 코미디만 연출하지 않았어도 ‘피의자 국무총리’라는 최악의 사태는 면했을 것이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마찬가지다. 그의 잇따른 말바꾸기와 ‘기억상실’을 앞세운 발뺌을 보면서도 박 대통령은 여전히 “정말 사심이 없는 분”이라고 믿고 있을까. 아니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장탄식을 또다시 되뇌고 있을까.

 

박 대통령은 아마도 길을 걷다가 갑자기 발밑이 꺼지며 싱크홀에 빠져버린 것과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아스팔트가 단단하다고 여긴 것은 박 대통령의 착각일 뿐이었다. 지표면 아래에서는 검은돈의 지하수가 흐르고 곳곳에 균열과 침식, 공동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도덕성의 지층이 어긋나고 정직함이 빠져나간 빈 공간은 결국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게 돼 있다.

 

박 대통령을 지탱하고 있던 권력의 기반은 무너졌다. 여권 내 친박계는 초토화되고, 친이계는 희희낙락 고소해하고 있다. 새누리당 대표 취임 뒤 한 차례도 따로 만난 적이 없던 김무성 대표를 급히 단독으로 만난 것은 박 대통령의 옹색한 처지를 웅변한다. 권력 관리를 위해 친위세력을 전면에 포진시켰던 박 대통령의 용인술이 권력 기반 붕괴의 지름길이 된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그러면 싱크홀에 빠져버린 대통령이 살아날 길은 있을까. 물론 없지는 않다. 우선 고쳐야 할 것은 ‘청와대 사투리’다. 범법 행위의 꼬리를 숨기지 못해 괴로워하고 총리직을 내놓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한 모습에 ‘고뇌’라는 엉뚱한 단어를 갖다 붙이는 식의 말투 말이다. 대통령 자신이 누리는 권력이 실은 국정원 대선 개입과 불법 정치자금이라는 ‘양대 불법 행위’의 토대 위에 쌓은 모래성임을 인정할 용기가 없으면, 정치개혁이니 하는 말도 일찌감치 접는 게 낫다. ‘성완종 리스트 인사 8명 중 일부만 사법처리하고 야당으로 수사를 확대’하는 꼼수로 난국을 돌파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함은 물론이다.

 

대통령을 떠받치고 있던 권력의 축은 어차피 무너졌다. 그렇다면 차라리 발상의 전환을 할 때다. 사라진 친박의 권력 기반 대신 ‘대연정’에 버금가는 광폭 행보로 새로운 권력 기반을 창출하는 일 말이다. 당장 차기 총리 후보자 지명부터 야당과 상의하는 것은 어떤가. 하지만 박 대통령에게 그런 기대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싱크홀 대통령’이 생환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경향신문 칼럼-여적/박용채(논설위원)-20150423목] 금리인상보다 무서운 것

지금이야 사토리(달관) 세대가 대세지만 몇년 전만 해도 일본 젊은이들을 관통하는 용어는 초식남이거나 캥거루족이었다. 부모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하고 초식동물처럼 온순해지다가 결국은 강요당한 달관의 단계로까지 진화한 셈이다. 따지고 보면 이는 장기불황 속에서 무한경쟁의 정글에 내동댕이쳐진 보통 젊은이들의 생존법이기도 하다. 이들이 집을 산다는 것은 사치다. 이는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제로금리 시대인 요즘도 비싼 월세를 부담하더라도 좀처럼 빚내 집을 사지는 않는다.

 

집값은 때로 반짝하지만 장기 저성장으로 결국 내리막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꺼리는 이유는 고용 불안 탓이다. 종신고용이 사라진 뒤 고용유연화가 자리 잡은 일본에서는 직장인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다. 정규직 역시 언제 잘려도 이상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빚내 집을 샀다 해고를 당하면 기다리는 것은 빚 지옥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30~40대가 요즘 주택매입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치솟는 전셋값에 넌더리가 난 데다 정부가 저금리를 강조하며 집을 사라고 권한 데 따른 것일 게다. 최경환 부총리는 “미국의 금리인상이 한국의 인상으로 이어져야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금리를 올리지 않을 테니 걱정 말고 집을 사라’고 말한다.

 

하지만 꼭 그럴까. 요즘 30~40대의 일자리는 20대 못지않게 심각하다. 40대 취업자수는 3월에만 6만7000명이 줄었다. 3개월 연속 감소로,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주변에서 대기업이나 은행, 보험, 증권사 등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다 그만둔 30~40대를 보는 것은 흔하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악소리도 못한 채 밀려난다. 재취업이 간절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빵집이나 통닭가게도 성공 가능성은 낮다. 만약 이들이 빚내 집 산 뒤 매월 적지 않은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하는 처지라면 어떨까. 한순간에 암흑이 될 게 뻔하다. 그럼에도 정부와 기업은 정규직마저 해고를 쉽게 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하려 한다. 노조라는 울타리마저 없는 기업 노동자들이 망망대해에 내던져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일자리 안정이 삶의 안정이라는 명제가 새삼 확인되는 시점이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상언(사회부문 차장)-20150423목] 세월호를 인양해야 하는 이유

 

공교롭게도 16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서 정부의 최종 결정까지 걸린 시간이다. 대통령은 지난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결론이 나면… 선체 인양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양수산부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발표했고 대통령은 16일 진도 팽목항에서 “필요한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라고 못을 박았다. 2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심의는 통과의례일 뿐이었다. 이제 세월호는 기술적 실패라는 불상사가 없는 한 물 위로 올려진다.

 

  나는 세월호 인양에 찬성하지 않았다. 정부가 실종자 가족의 동의만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그대로 두는 게 옳다고 믿었다. ‘인양의 필요성’에 동감하지 않았다. 인양 문제에 대한 기사(중앙SUNDAY 2014년 6월 8일자)를 쓰는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대부분 인양에 회의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그 비용으로 해상 추모공원을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았다. 1994년 발트해에서 침몰한 MS에스토니아호나 제2차 세계대전 때 폭침당한 미국 전함 USS 애리조나호처럼 침몰 해역에 존치하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MS에스토니아호에는 700여 명의 실종자가 있었다.

 

  그런데 지난 2일 생각이 달라졌다. 세월호를 인양해야 한다 또는 인양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 기자회견장에서였다. 52명의 유가족이 삭발한 그날이다. 가족들은 세상에 대한 원망을 표출했다. 정부·국회·언론을 향한 거친 언사도 있었다. 그들의 울분이 이해가 됐다. 본지 여론조사에서 62.3%의 응답자가 인양에 찬성했다. 그중에는 “인양을 꼭 해야 하느냐”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나 같은 이도 많을 것으로 짐작됐다.

 

  세월호 인양에 대한 기술적 검토에 열 달이 걸렸다. 치밀한 작업 때문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보기 어렵다.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는 아직 정상적인 활동을 시작하지 못했다. 시간은 그렇게 허무하게 흘러갔고, 세월호 인양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실종됐다. 해수부의 당초 계획에는 ‘공론화’라는 것이 들어 있었으나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어명(御命)’에 따라 결정되는 일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세월호는 인양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 앞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를 인양해야 한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최광숙(논설위원)-20150423목] 메르켈과 아베의 국가이성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991년 독일 통일 후 첫 조각에서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발탁된 뒤 첫 외국 방문지로 선택한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총리가 된 후 더욱 이스라엘을 챙겼다. 총리 재임 첫 7년 동안 이스라엘을 방문한 횟수만 네 번이다. 이렇듯 메르켈의 외교정치에서 이스라엘은 유럽연합과 미국에 비견할 정도로 중요하다. 이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독일의 역사적 부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도 화답했다. 히브리대학에서 메르켈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2008년 3월 이스라엘 건국 60주년을 맞아 이스라엘 의회는 총리로는 처음으로 메르켈에게 연설하도록 기회를 줬다. 국가원수들만 불러 연설을 듣는 관행을 메르켈을 위해 과감히 깬 것이다. 독일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도 ‘레오 백’이라는 상을 수여했다. 이 상은 독일유대교중앙위원회가 독일 유대인을 위해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2007년 9월 메르켈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나 이전의 모든 독일 총리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독일의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의무로 여겼다. 나 역시 이런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명확하게 인정한다. 그것은 독일의 ‘국가이성’에 속한다”고 말했다. 슈테판 코르넬리우스가 쓴 메르켈의 전기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에서 저자는 메르켈의 국가이성은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빼고는 독일을 논할 수 없다’는 역사관에서 출발해 나치에 대한 반성은 물론 나아가 독일에 이스라엘의 안전과 보호를 위한 중요한 정치적 임무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이성은 국가의 임무에 담긴 정치적 합리성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이성’(國家理性)은 프랑스어인 ‘레종 데타’(raison dEtat)를 번역한 말로 이미 로마시대에 사용됐다. 고대에서 국가이성이라는 관념은 위정자 개인의 경험에 입각하는 정치기술로서 인정되었지만 중세는 교회가 사회의 질서와 규범을 지배하던 때라 국가는 독자적인 존재 이유를 갖지 못했다. 그러다가 국가이성이 현실의 정치나 정치학에 도입되어 확립된 것은 마키아벨리 때이다.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 국가는 정치가의 도덕적 규범과 같은 개인 윤리가 아닌 국가이성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훗날 히틀러의 무차별 정복이나 유대인의 학살 등을 정당화하는 데 잘못 활용되기도 했다. 일부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8월 종전 70주년을 맞아 발표할 담화에서 과거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의 표현을 담지 않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점차 히틀러를 닮아가는 듯한 아베는 메르켈의 국가이성이 뭔지나 알고 있는지….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423목] 외교관 여권

 

동원호를 나포했던 소말리아 해적 두목이 2013년 첩보영화 같은 작전으로 체포됐다. 초대형 유조선 납치로 한 번에 200만~300만달러씩 챙긴 그가 해적질을 그만두는 조건으로 소말리아 정부로부터 면책특권과 외교관 여권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 과정에서 알려졌다. 왜 하필 외교관 여권이었을까. 거기에 따라붙는 특권이 그만큼 세기 때문이다.

 

외교관 여권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면책특권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가별로 사정은 다르지만 이들은 외국에서 비자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교통법규 위반 등 경범죄 처벌 면제와 불체포 특권, 재판을 받지 않을 권리도 갖는다. 공항 등에서 불시 소지품 검사를 따로 받지 않고 VIP 의전을 받으며 일반인의 시선을 피해 별도로 출입국할 수도 있다.

 

이런 특권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모양이다, 구약성서에도 기원전 450년께 페르시아 아르타세르세스 1세의 신하 느헤미야가 유대로 여행하겠다고 했을 때 왕이 ‘강을 넘어서도 효력을 발휘하는’ 문서를 써줬다는 내용이 있다. 외국의 관리들에게 특별대우를 부탁한 것이다. 중세 아랍이 세금 납부 영수증을 여권으로 쓴 것도 자국민 보호의 한 방법이었다. 근대적 의미의 여권제도를 처음 시행한 잉글랜드도 마찬가지였다. 1차 대전 때 보안상의 이유로 출입국심사 절차가 생긴 뒤로 외교관 여권의 가치가 더 커졌다.

 

그래서 발급 절차가 까다롭다. 일반여권이나 공무원·정부투자기관 임직원을 위한 관용여권보다 대상도 적다. 5년짜리는 전·현직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와 외무장관, 대사,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등에게 한정된다. 2년짜리는 특별사절이나 정부대표 등에게 발급된다. 이들의 배우자와 27세 미만 미혼 자녀도 포함된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이런 특권을 자신들에게도 달라는 내용의 여권법 개정안을 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국익을 위한 외교 활동에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실로 몰염치하고 옹색한 주장이다. 지금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는 외교관 여권이 발급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의원 300명과 그 가족이 무더기로 외교관 특권을 받게 된다.

 

가뜩이나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은 판국이다. 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잠꼬대에 이어 이젠 외교관 여권까지 요구하다니. 그렇잖아도 국회의원 특권이 200개나 된다. 얼마 전 ‘특권 내려놓기’ 시늉을 할 때도 웃었지만 외교관 특권까지 갖겠다고 나서는 꼴을 보니 더 우습다. 특권이 많으면 비리도 늘어나기 쉽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한기석(논설위원)-20150423목] 부(富)의 효과

 

최근 주가가 오르면서 '돈 벌었으면 밥 한 끼 사라'는 얘기를 듣는 주식 투자자들이 많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곰곰 생각하면 논리에 모순이 있다. 주가가 오르면 주식평가액이 오를 뿐 실제로 돈을 손에 쥔 것은 아니다. 나중에 주가가 내려갔다고 위로주를 살 것도 아니면서 마치 이익이 실현된 것처럼 전제해 논리를 전개한다. 따져보면 모순인 이런 일이 현실에서는 일어난다. 개인이 보유한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상승이 소비 증가를 이끈다는 '부(富)의 효과'다.

 

부의 효과는 양면이 있다. 1970년대 자고 나면 오르는 부동산값에 현혹돼 돈을 펑펑 쓰던 땅 부자, 외환위기 이후 벤처 거품 시절 주식 몇 주만 팔면 아파트를 한 채 산다며 룸살롱에서 호기롭게 놀던 벤처기업인 등 개인 차원에서 보면 결과가 대개 좋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 차원에서 보면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때 소비 진작→생산 증가→투자 확대→일자리 증가→소비 진작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물꼬를 틔울 수 있다.

 

이른바 역(逆) 부의 효과도 있다.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소비심리가 얼어붙어 실물경제가 침체하는 현상이다. 1980년대 일본은 돈이 많이 풀리면서 부동산가격이 급등해 도쿄 땅 일부만 팔아도 미국 땅 전체를 사고도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1990년대 들면서 자산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고 이는 개인의 소비심리 위축과 기업의 투자의욕 저하를 부르면서 잃어버린 20년의 서막을 열었다.

 

요즘 주택 거래는 증가하는데도 집값은 오르지 않아 부동산시장에서 부의 효과가 사라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과거에는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이 '집값이 올랐으니 이득'이라며 빚은 생각 않고 지갑을 열었지만 이제는 집값이 오르지 않으니 대출 받은 원리금을 수십년간 상환해야 할 부담을 걱정하고 있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주가는 조금 올랐다지만 그나마 주식 팔아 생기는 돈마저 치솟는 전세금에 보태야 할 판이다. 이래저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살림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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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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