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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7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공기 질 173위' 대한민국, 숨쉬기가 두렵다

우리나라의 공기 질이 전 세계 180개국 중 최하위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어제 미국 예일대와 컬럼비아대 연구진이 발표한 ‘환경성과지수 2016’에 나오는 수치다. 미세먼지와 황사, 이산화탄소 등으로 인해 뿌연 하늘이 지속되면서 공기 오염이 심상치 않은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공기 질 부문에서 100점 만점에 45.51점을 받았다. 전체 조사 대상 180개국 중 173위다. 특히 공기 질의 세부 조사 항목 중 초미세먼지 노출 정도는 33.6점으로 174위였다. 이산화탄소 배출도 48.47점으로 170위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2012년과 2014년 발표에서 43위로 중상위권이었으나 2년 만에 순위가 뚝 떨어졌다. 그동안 우리의 환경정책과 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전문가들은 공기 질 악화에 대해 탄소 저감과 환경개선 노력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우리 전력 생산의 40%는 온실가스 주범으로 지목되는 석탄을 연료로 하는 화력발전이 담당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감사원은 얼마 전 충남 지역 화력발전소의 대기오염 기여율이 수도권 미세먼지 중 최고 21%, 초미세먼지 28%에 이른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발전 연료를 석탄에서 오염물질을 적게 배출하는 천연가스 등으로 시급히 바꿔 나가야 할 이유다. 또한 비록 경제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을 점차 늘려 나가야 한다.

미세먼지의 주범 질소산화물을 내뿜는 경유차 관리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환경부가 현재 국내에서 시판 중인 경유차 20차종을 조사한 결과 19개 차종이 실내인증기준을 초과했다. 한국닛산의 캐시카이는 기준치의 20배, 르노삼성의 QM3는 17배에 이르렀다. 게다가 이번 조사는 유로6 기준에 맞춰 최근 출시된 경유차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심각성을 더한다. 현재 경유 차량의 질소산화물 인증은 제조회사가 차량 판매에 앞서 받는다. 실제 주행할 때 질소산화물을 얼마나 내뿜는지는 따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형태로든 경유차가 주행 때 배출가스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

현재 정부는 석탄발전소 증설을 계획하고, 경유 택시를 매년 1만대씩 보급하겠다고 밝히는 등 오히려 공기 질을 악화시킬 정책을 세워 놓고 있다. 아직도 오염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호미로 막을 구멍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를 맞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2. 19대 국회 민생법안 결자해지해 오명 씻어야

19대 국회가 오는 19일 본회의를 끝으로 사실상 막을 내린다. 그제 새누리당 김도읍,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국민의당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번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처리할 법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그런 다짐이 공허하게만 들린다. 3당이 이날 “무쟁점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는 하나 기껏 100여건에 불과해 19대 국회에 계류돼 있던 1만여건의 법안이 자동 폐기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노동개혁 4법 등 해묵은 쟁점 법안들과 함께 전국 시도지사들이 입법을 촉구했던 ‘규제프리존특별법’ 등 민생 안건들이 덩달아 사장될 판이다. 여야는 추가 협상으로 각종 민생 법안들만이라도 이번 회기에 처리해 역대 최악이란 19대 국회의 오명을 씻기 바란다.

19대 국회는 의원 1명당 연간 6억여원의 예산도 모자라 국회 운영비를 물 쓰듯이 사용해 왔다. 예컨대 평창동계특위는 딱 한번 ‘21분 회의’를 했지만, 4400여만원의 지원을 챙겨서 나눠 쓰는가 하면 각종 상임위마다 외유성 출장을 가는 명목으로 혈세를 펑펑 썼다. 심지어 여야의 일부 상임위원장들이 특수활동비를 부인에게 생활비로 주거나, 아들 유학 자금으로 유용한 사실이 들통나 망신을 자초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야 간 무한 정쟁에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의 덫에 걸려 법안 처리율은 역대 어느 국회에 비해서도 터무니없이 낮았다. 도덕적 해이에다 가성비마저 바닥 수준인 19대 국회는 국민의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런 19대 국회의 행태가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는 순간까지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통탄할 일이다. 지난번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지도부 간 청와대 회동에서 이른바 ‘협치’의 물꼬가 트이는가 했다. 하지만 주요 쟁점 법안을 놓고 여전히 평행선 대치다. 3당은 총론에서 청년 일자리 창출 법안을 최우선 처리하기로 합의해 놓고도 서비스산업발전법과 청년고용촉진법 등 각론에서는 딴소리다. 의원들 스스로 쌈짓돈처럼 쓰던 특수활동비의 내역을 공개하는 법안을 발의해 놓고는 슬그머니 자동 폐기를 기다리는 것을 보면 쓴웃음이 날 지경이다.

이처럼 후진적인 국회의 모습이 20대 국회로 이어진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여야 3당이 4·13 총선 민의를 받들어 대화와 협력으로 새로운 의정상을 정립하기로 했다면 굳이 이를 20대 국회까지 미룰 까닭이 뭔가. 20대 국회에서 19대 때는 없던 감춰 둔 요술 방망이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여야 3당이 당장 이번 임시국회에서 협치를 실천해야 할 이유다.

19대 국회가 각종 민생 현안을 포함해 1만건의 법안을 이대로 팽개친 채 끝내 야반도주하듯 해산할 것인가. 이 경우 헌정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게 될 것은 불문가지다. 19대 국회는 해묵은 숙제를 가급적 임기 내에 결자해지하도록 해야 한다. 여야는 최소한 규제프리존특별법이나 서비스산업발전법 등 각종 민생 및 경제활성화 법안들에 관한 한 이견을 절충하는 마지막 성의를 보여 주기를 당부한다.

3. 생활 화학제품 유해성 심사 강화하라

전 세계적으로 화학물질의 종류는 모두 10만여종이나 되며 우리나라에서만 4만 4000여종의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있다. 매년 400여종이 새롭게 출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화학물질 관리에 관한 한 걸음마 단계다. 언제든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은 유해 화학물질 사건이 재발할 여지가 있다. 화학물질 사고는 터졌다 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2012년 구미에서 발생한 불소 누출 사건이 화학물질 자체의 위험성을 경고한 사건이었다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화학물질에 대한 관리 부실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 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화학물질 관련법은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이 있다. 지난해부터 시행되고 있다. 화관법은 불소 누출 사고 이후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 유출 사고를 내면 해당 사업장 매출의 최대 5%에 이르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화평법은 유럽에서 시행하고 있는 리치(REACH) 규칙을 본떠 유해 물질의 등록·평가·허가·제한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시행에 들어갔지만 법제화 과정에서 업체의 반발에 밀려 누더기법이 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화학물질의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 확인된 만큼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유럽처럼 화학물질에 대한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 수십 년 동안 방치됐던 기존 화학물질에 대한 관리부터 시작하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첩경이라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는 정부보다 업체에서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정보 제출 범위를 더 구체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주방용품이나 소독제, 세제 등 각종 생활 화학제품에 대한 안전성 확보가 급하다. 벌써 주부들 사이에선 생활 화학제품에 대한 공포증이 번지고 있다고 한다. 이 제품들에 대한 정보도 제한적이고, 정보가 있더라도 유해 여부는 알 수도 없어 소비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화평법으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유해 여부를 검증하는 법규부터 가다듬기 바란다. 먼저 국회에 계류 중인 생활 화학제품의 모든 성분을 공개하도록 한 법안부터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예방할 수 있다.

[동아일보]

4. 5·18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을 왜 보훈처장이 결정하나

국가보훈처가 어제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기념곡 지정을 불허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합창단이 합창하고, 원하는 사람은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참석자들의 ‘자율 의사’를 존중한다는 설명이다.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의 회동에서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요청했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당장 협치의 정신을 깼다며 박승춘 보훈처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도 보훈처에 재고를 요청했다. 대체 왜 보훈처장이 이 문제의 결정권을 쥐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박 대통령은 작년 3월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기념곡 지정을 요구했을 때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반대하는 분도 계시고 찬성하는 분도 계시기 때문에 국가적 행사에서 또 다른 갈등이 생길 우려가 있다. 기념곡을 제정한 예도 없다”는 대통령의 설명은 어제 보훈처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올해 회동에서 박 대통령은 “국론 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보훈처에 지시하겠다”며 태도 변화를 보였다. 야당의 기대를 잔뜩 키워놓고 사흘 뒤 보훈처가 국민 통합을 명분으로 ‘제창 불허’한다니 사달이 난 것이다. 

보훈처는 반대 이유로 이 노래가 북한이 5·18을 소재로 만든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는 점 등을 들었다. 우파 일각에선 이 노래의 ‘임’이 김일성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국민은 먹고사는 일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노래를 놓고 왜 해마다 5월만 되면 소모적인 논쟁으로 국가적 에너지를 낭비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350년 전 효종의 어머니 조대비의 복상(服喪)을 1년으로 할지, 3년으로 할지를 놓고 벌어진 기나긴 당파싸움이 연상될 정도다. 어제 우상호 더민주당 원내대표는 “이 정권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여야 협치를 위한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고 압박까지 했다. 5·18 노래 문제로 모처럼 조성된 협치의 분위기가 깨져선 안 될 일이다. 

올 2월 북의 장거리미사일 도발 직후 박 대통령은 진보와 보수의 해법이 달랐던 개성공단에 대해 폐쇄 결정을 내렸다. 조대비 복상을 놓고 벌어진 1차 예송논쟁도 당시 임금인 현종이 나서 끝장을 냈다. 미국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백악관 책상에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팻말을 올려놓은 바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놓고 갈등을 더 키우지 않으려면 보훈처에 결정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결정하고 국민에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5. 사드든, 美 MD체계든 北위협 맞설 모든 수단 확보해야

한국과 미국 일본이 미 하와이 해상에서 다음 달 말 사상 첫 탄도미사일 경보훈련을 실시한다. 미국이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로 가정한 항공기를 띄우면 한미일 이지스함이 이 궤적을 탐지하고 미국의 육상 중개소를 경유해 공유하는 훈련이다. 국방부는 어제 “한국이 미국과 일본의 아시아 미사일방어(MD) 체계에 사실상 참가하게 됐다”는 일본 아사히신문 보도에 대해 “MD참여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정부로서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주한미군 배치를 놓고 중국 러시아가 강력히 반발하는 상황에서 이번 훈련이 한미일 3각 MD 구축의 일환으로 비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MD 체계는 남북 화해 분위기를 저해한다고 판단한 이래 한국은 미국의 MD 체계에 참가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무방비로 있을 수만은 없다. 미국과 일본은 탄도미사일에 대한 직격파괴 능력을 갖춘 패트리엇 PAC-3 미사일과 이지스함의 SM-3 미사일을 구비하고 있다. 한국은 2023년까지 ‘킬 체인’과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 중심의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지만 그때도 다층 방어체계는 갖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만에 하나, 북이 1t의 핵무기를 탑재한 사거리 1000km의 노동미사일을 함경북도에서 발사할 경우 서울까지 비행시간은 11분 15초다. 시뮬레이션 결과 패트리엇 PAC-3 미사일로는 12∼15km 고도에서 1초, 사드로는 40∼150km 고도에서 45초, 이지스함의 SM-3 미사일로는 70∼500km 고도에서 288초간 요격 기회가 있을 뿐이다. SM-3 미사일이 없는 우리로선 미일과 공동 대응을 강화할 현실적 필요가 있다.

어제 북은 “우리의 핵 보유와 북-남 관계는 사실상 아무런 연관도 없다”는 정부·정당·단체 성명을 내놨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어가며 미일의 MD 체계 편입 훈련 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벌일 만큼 우리의 안보 상황은 한가하지 않다. 사드 도입이나 MD 편입보다 더 한 강력한 자위적 수단도 필요하다면 당연히 확보해야 한다.

6. 靑 안종범·강석훈 경제 투톱, 전권 쥐고 구조조정하라

15일 발표된 청와대 비서실 인사에서 안종범 경제수석이 정책조정수석으로 옮기고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은 경제수석에 임명됐다. 2007년 대선 때부터 ‘박근혜표’ 경제정책을 제안했고 박근혜 정부 출범 때는 청와대에서 창조경제와 공공 노동 등 4대 개혁의 뼈대를 세운 ‘대통령의 가정교사’들이 경제 컨트롤타워로 컴백한 셈이다. 

지난 총선이 민생경제 실패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고 지적한 김현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은 두 수석의 인사에 “국민 심판에 부응한 것이냐”고 정면 비판했다. 마침 어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한국 경제 보고서’는 3년 전에 비해 나아지지 않은 경제 현실을 드러낸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종전의 전망치보다 낮은 2.7%로 전망된다. 친박(친박근혜) 경제팀이 구조조정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나라 경제가 수렁 속으로 깊이 빠져들 수도 있다.

OECD는 “한국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이행하면 10년 내 GDP가 추가로 3%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2014년 청와대가 내놓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4대 개혁에 내수 진작, 수출 회복, 서민 지원을 망라한 외화내빈(外華內貧)의 정책 백화점에 불과하다. 정부는 근본 과제는 외면하고 추경과 경기부양 등 단기대책에 치중했고 그 결과가 역대 최고치로 치솟은 가계부채, 국가부채, 청년실업률이다. OECD가 3개년 계획의 잠재력 운운하면서도 실적 평가를 유보한 것은 성과가 시원찮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 경제가 당면한 핵심 과제는 기업 구조조정이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구조조정을 주관하지만 책임지기 싫어하는 관료들이 스스로 손에 피를 묻힐 것으로 기대하긴 힘들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부실기업 사이에 ‘내년 대선까지 버티면 어차피 다 살아날 것’이라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다니 환부 수술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청와대는 거시경제, 금융 전문가인 강 수석의 합류를 계기로 구조조정의 전시(戰時) 사령부가 돼야 한다. 국책은행에 구조조정용 실탄 충전, 살릴 기업과 포기할 기업의 선별, 좀비기업 퇴출 후 실업 대책 등 구조조정을 책임지고 속도전에 나서야 한다. 강 수석은 범정부회의를 주관하고 안 수석은 국회와 소통하며, 골든타임을 놓치면 나라 경제가 끝장난다는 각오로 전권(全權)을 쥐고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이데일리]

7. 기업 구조조정 앞서 나가는 일본·중국

본 철강기업 중에서 최대규모인 신일철주금과 4위인 닛신제강이 지난주말 전격 합병안을 발표했다. 신일철주금이 닛신제강 보유 지분을 기존 8.3%에서 51%로 늘리며 경영권을 인수한 것이다. 전 세계 철강 생산량 2위인 신일철주금이 이번 인수로 룩셈부르크에 본부를 둔 세계 1위 아르셀로 미탈을 바싹 뒤쫓는 발판을 마련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공급과잉 업종에 있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러한 구조조정 움직임은 중국 철강업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 최대 철강업체인 허베이철강이 제강설비를 내년까지 연간 502만t, 제철설비는 앞으로 2년간 연간 260만t씩 각각 줄이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더 나아가 중국 최대 철강 생산지인 허베이성(省)은 이번 생산량 감축을 계기로 향후 5년간 성내 철강기업 가운데 60%를 폐업 또는 구조조정하겠다는 혁신안을 내놔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처럼 일본과 중국 철강업체들이 과감한 구조조정안을 앞다퉈 내놓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철강수요가 크게 줄어들게 되자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한 자구책이기 때문이다. 생산이 넘쳐 나는데도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자칫 철강업계가 공멸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로서는 일본·중국의 산업재편 움직임에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구조조정은 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우거나 인력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 경쟁력을 강화한 점이 두드러진다. 일본은 조선업이 1990년대 초까지 세계 1위였지만 이후 한국과 중국의 추격을 받아 3위로 떨어지는 수모를 당한 바 있다. 일본으로서는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다시 세계 정상에 우뚝 서기 위한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빈사상태에 이른 국내 조선·해운 분야는 이러한 사례를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부실업체는 더 늦기 전에 구조조정의 수술대에 올려 곪은 부위를 도려내야 한다. 다른 업종에 있어서도 한계기업의 처리는 마찬가지다. 때를 놓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일본과 중국이 뛰고 있는데 우리만 미적거리다가는 국제무대에서 낙오자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매일경제]

8. 공기질 최하위권 불명예 미세먼지 대책 시급하다

우리나라 공기질이 전 세계 180개국 중에 최하위권인 173위라는 미국 예일대와 컬럼비아대의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두 대학 공동연구진이 어제 발표한 '환경성과지수 2016'에 따르면 한국은 공기질 부문에서 100점 만점에 겨우 45.51점을 받았다. 더 심각한 사실은 세부 조사 항목 중에 건강에 치명적인 초미세먼지와 이산화질소가 각각 174위와 꼴찌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공기질을 악화시킨 요인은 화력발전과 공장 등 많지만 미세먼지의 주범인 질소산화물을 대량으로 배출하는 경유차가 가장 큰 문제다.

환경부가 국내외 20개 경유차를 조사한 결과 19개 차종이 실제 주행 때 질소산화물을 과다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로주행시험에서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실내인증기준의 10.8~20.8배에 달했던 것이다. 인증기준의 20.8배에 달한 한국닛산의 캐시카이는 배출가스 양을 불법으로 조작하는 임의설정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한 것과 유사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환경부는 한국닛산에 과징금과 리콜 명령, 검찰 고발을 한다고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경유차는 휘발유차에 비해 유지비가 적게 들고 출력과 연비가 좋아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폭스바겐이 '클린디젤'이라는 개념으로 마케팅하면서 2005년 565만대에서 현재 878만대로 증가해 전체 자동차시장에서 비중이 42%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폭스바겐과 한국닛산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경유차가 '클린디젤'을 장착한 친환경차라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오히려 미세먼지 등 대기 오염 물질을 대량으로 배출하는 공장과 다름없었다. 

경유차로 인한 공기질 악화를 막으려면 종합적인 관리와 대책이 시급하다. 대형 트럭과 버스, 승합차, 레저용차량(RV) 등 경유차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비중을 낮추면서 친환경 차량 보급에 속도를 내야 한다. 노후 경유차 운행을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환경부 등 관련 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전담팀을 구성해 근본 해결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9. 구조개혁 속도 내라는 OECD 충고 새겨들어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어제 내놓은 '한국 경제 보고서'는 성장 활력이 크게 떨어진 우리 경제를 위한 종합처방전이다. 우리가 구조적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개혁을 추진해야 할지 조목조목 일러주고 있다. OECD는 한국 경제가 짧은 시간에 세계 11위로 뛰어올랐지만 지금은 인구 고령화, 생산성 정체, 수출 부진으로 활력을 잃고 있다고 진단했다. 1990년까지만 해도 9%를 웃돌던 잠재성장률은 이제 3%대로 떨어졌다. 이대로 가면 2030년대 이후에는 1%대로 떨어질 것이다. 과감한 혁신과 구조개혁으로 생산성을 올리는 것만이 성장 궤도에 재진입할 수 있는 길이다.

OECD는 무엇보다 규제개혁을 가속화하라고 주문했다. 한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상품·서비스 시장 규제가 많고 무역·투자 장벽이 높아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규제 품질을 높이려면 의원 발의 법안에 대한 규제영향평가를 의무화하고, 이를 기초로 규제비용총량제를 실시해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보증, 투자 방식을 뜯어고쳐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OECD는 또한 노동시장 이중 구조 해소를 위해 정규직 고용 보호를 완화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보험과 교육훈련을 확대하라고 권고했다. 비정규직 시간당 임금이 정규직보다 38% 낮은 극심한 이중 구조가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고령층 노동력 활용을 늘리려면 임금피크제 도입을 가속화하고 평생학습 투자를 늘려야 한다. OECD 평균의 4배(49%)에 이르는 노인빈곤율을 낮추려면 기초연금을 최저소득계층 노인들에게 집중 지원하고 장기적으로 국민연금 포괄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이 같은 OECD의 충고는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와 저성장 충격을 경험한 나라들의 지혜를 모은 것이다. 내년 말까지 박근혜정부 개혁과제를 마무리해야 할 경제팀은 물론 대선을 앞두고 한국 경제의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제시해야 할 여야 정치권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들이다.

[부산일보]

10. 은행 수수료 줄인상, 소비자 보호책 필요하다

국내 은행권의 예금과 대출금리(예대금리) 차이가 2008년 이후 처음으로 1%포인트대로 내려갔다고 한다.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권의 원화 예대금리 차는 1.97%포인트로 집계됐다. 줄곧 3%포인트대를 유지했던 예대금리 차는 세계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2.99%포인트로 떨어진 이후 드디어 1%포인트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은행권의 원화 대출금리는 평균 연 3.62%로, 1999년 이후 처음으로 3%대에 진입했다. 원화 예수금 평균 이자율도 지난해 1.65%를 기록, 사상 처음으로 1%대로 추락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지난해 3월 사상 처음 1%대(1.75%)에 진입한 게 대출금리를 끌어내린 요인이 됐다. 저금리 기조 속에서 예대금리 차(예대마진)가 줄어든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은행권이 예대마진에서 생긴 수익의 공백을 각종 수수료로 벌충하고 있다는 점이다. KEB하나은행은 자동화기기(ATM) 타 은행 이체 수수료를 내달 13일부터 800원에서 900원으로 인상할 예정이다. 신한은행은 올 2월 같은 수수료를 1천 원으로 올린 바 있다. 한국씨티은행도 기존 수수료 면제 혜택을 없애고 다른 은행과 마찬가지로 수수료를 받고 있다. 

은행들은 수수료 인상 외에 예·적금 상품의 수신금리도 앞다퉈 낮추고 있다. 금융 소비자들은 수수료 부담이 커졌을 뿐만 아니라 예금금리가 낮아져 이중의 손해를 감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소비자만 봉이냐'는 지적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은행들이 예대마진이 떨어질 때마다 수수료 인상에 혈안이 되는 것은 기형적 수익구조 탓이 크다. 대부분 선진국 은행들의 경우 총수익에서 이자 수익이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지 않는 반면 국내 은행들은 이자 수익이 90%를 상회한다. 수익구조가 단순하다 보니 손쉽게 수익을 올리는 방법이 수수료 인상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는 금융 안정이란 명목하에 은행권에 대한 과잉보호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 보호는 물론 글로벌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과감한 정책 변화를 시도해야 할 때이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현경숙 칼럼> 돈을 주든가 몸으로 때우든가

2003년 8월 프랑스에서 반세기 만에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내습해 1만5천여 명이 숨졌다. 사망자의 70%가량이 75세 이상 고령자였고, 파리에서만 노인 900여 명이 숨졌다. 박애의 나라에서 힘없는 노인이 몰사한 것은 프랑스인 자신과 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거동이 힘든 노인들은 돌보는 이 없이 침대에 누워있다가 폭염에 속절없이 스러졌다. 기후가 온화한 프랑스 주택에는 당시 에어컨이 거의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요즘 홀로 사는 노인이 어려운 생계와 고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발적 감옥행'을 선택한다고 한다. 지난해 일본에서 발생한 좀도둑 범죄의 35%가 60세 이상 노인에 의한 것이었는데 노인들이 물건이 탐나서가 아니라 감옥에 가려고 일부러 범죄를 저질렀다고 한다. 감옥에서는 최소한 숙식과 건강 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가 고령화로 비상이 걸렸다. 기대수명은 청동기 시대부터 1900년까지 4천500년 동안 27년 증가했는데 1900년 47세였던 기대수명이 2013년 70대 후반으로 늘어났다. 2040년 고령화율은 2010년에 비해 선진국이 1.4~1.6배, 개도국은 1.4~3.0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40년의 고령화율이 2010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하는 나라는 한국(2.9배), 브라질(2.6배), 중국(2.6배), 인도(2.0배) 등이다. 노인빈곤으로 의학 발달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으로 변질할 조짐이다.

한국은 고령화 그늘이 특히 심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은 몇 년째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약 50%로, 압도적 1위다. 2명 중 1명이 빈곤층이란 말이다. 노인 자살률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다. 한국은 2014년 70세 이상 노인 10만 명당 116.2명이 자살로 사망했고 이는 최소 5.8명에서 최대 42.3명인 다른 나라의 노인 자살률에 비해 최대 20배에 이른다. 가족, 이웃과 단절된 채 외롭게 죽음을 맞는 노인 고독사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속초에서 노부부가 '우리는 가족이 없습니다.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주세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사망했는데, 숨진 뒤 6개월 뒤에 발견됐다.

인류사에 가장 위대한 발명이 가정, 민주주의, 시장이라고 한다. 기술 발달과 경제 성장으로 민주주의와 시장은 번창하는데 가정은 해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혼, 미혼, 비혼이 늘어 1~2인 가정이 증가하고 있다. 올해 1인 가구는 500만 이상이다. 1인 가구는 자가 주택률이 낮고 빈곤 수준은 높으며, 주거환경이 열악한 경우가 많다. 1인 가구 증가는 노인 부양을 더 어렵게 만든다. 가족 해체는 부모 부양을 둘러싼 소송으로 이어져 부모를 모시는 문제까지 법원에 가져가는 것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에 따르면 OECD 국가를 대상으로 부모와 자녀의 만남 횟수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경우 이 만남을 일어나게 하는 거의 유일한 변수가 부모의 소득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가 손주의 양육을 맡아주어야 했다. 노인이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는 돈을 주든가 몸으로 때워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모에 대한 부양의식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노부모 부양을 자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견해는 2006년 60.7%에서 2012년 28.7%로 감소했다.

막대한 노인 부양 비용이 가족 관계를 위협하는 것도 사실이다. 영국은 장기 병구완 및 지원 서비스 비용이 2010년 국내총생산(GDP)의 2.2%에서 2050년에는 4.3%로 높아질 것으로 예측됐다. OECD는 증가하는 노인 돌봄 비용을 충당하느라 3배나 높은 세금 인상, 노동 기간 연장, 상속재산 감소 등이 예상된다며 가속되는 가족 해체로 노인이 '사회적 짐'으로 치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올해 어버이날에는 경기침체로 카네이션꽃조차 잘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젊은이조차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서 '노후 절벽'은 '고려장'(高麗葬)을 떠올리게 할지 모르겠다. 고려장은 나머지 식구들이 먹고살기 위해 늙은 부모를 산에 버렸다고 하는 장례 풍습이다. 그러나 고려장은 옛날이야기에 등장할 뿐 실재하지는 않았다. '고려'라는 명칭 때문에 고려 시대에 있었던 것처럼 잘못 알려진 것이지 그 풍습이 실제 존재했다는 역사적 자료나 고고학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제개발 시대에 산업화의 역군이었고, 우골탑을 쌓아올렸던 한국 노인들은 이제 후회한다. 땅 팔고 소 팔아 대학 공부시킨 월급쟁이 아들은 부모를 부양하기 역부족이고 땅 팔지 않은 이웃은 땅값 상승으로 떼돈 번 것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식에게 손 내밀 때가 제일 부끄럽다"는 노인들은 말이 없다. 남에게 의존하는 것도 싫거니와 노후 빈곤이나 질병을 자신 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에서 노인은 오랫동안 가정과 사회에서 존경받았고 훌륭한 역할을 했다. 사람의 평가가 경제적 능력에 의해 좌우되고, 빈곤이 개인의 무능력에서 비롯된다는 사고가 지배적인 현대산업사회 들어 노인은 약자로 전락했다. 그러나 오늘날 빈곤은 전적으로 개인 탓으로 돌릴 수 없다. 경제, 복지 정책의 영향을 받는다. 가령 정년을 법으로 규제하지 않는다면, 일자리 정책이 청년에 집중되지 않는다면 노인이 지금처럼 가난하겠는가. 선진국에는 노인 권리 운동이 활발하다. 우리 사회의 자원 배분을 결정하는 정부와 정치권은 노인에게도 온당한 몫의 사회적 부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 세 명 중 1명, 나아가 두 명 중 1명이 노인이 되는 세상이 오는데 이들을 '없는 존재'처럼 외면하면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까. 노인은 어제의 젊은이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청년의 내일이다. 늙어서 가난하고 외롭고, 자살하고 고독사해야 한다면 젊어서 열심히 사는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고려 시대에도 없었던 고려장을 인류 사상 가장 풍요한 시대인 현대에서 한다면 문명은 탐욕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루게릭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는 미국 노교수 모리 슈워츠의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을 담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Tuesdays with Morrie)에는 이 책의 저자이자 모리의 제자인 미치 앨봄이 모리의 '볼일'을 돕는 장면이 나온다.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미치에게 의지하는 모리에게는 노화에 대한 비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미치는 그의 뒤를 닦아주면서 지저분하다고 생각하거나 불편해하지 않는다. 이 책은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연극으로 공연되고, 영화로도 제작됐는데 모리는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2. [머니투데이] 저 놈의 잡초 땜에 죽겠다고요?

읽고 쓰고 걷고, 읽고 쓰고 걷고…. 요즘엔 이러고 산다. 주로 아침에 쓰고, 저녁에 걷고, 그밖에는 읽는다. 내 삶은 복잡하지 않다. 산골에 와서 꼭 하고 싶은 일만 남겼더니 결국은 읽고 쓰고 걷기다. 이 세 가지만 남고 나머지 일들은 떨어져 나간다. 나의 일상은 읽고 쓰고 걷는 삼박자로 돌아간다. 무시로 다른 일들이 끼어들지만 내 리듬이 있으니 변박도 즐겁다.

나에게서 가장 먼저 떨어져 나간 일은 텃밭이다. 마당 한 켠에 열 평 남짓한 텃밭이 있다. 여기에 상추도 심고, 오이·고추·가지·토마토도 심고, 감자와 땅콩도 심고 기른다. 하지만 이 일은 일찍이 동생 손에 넘어갔다. "시골에서 텃밭도 가꾸고 참 좋으시겠어요?" 누군가 이렇게 물으면 나는 엉거주춤하다. 그게 참, 내가 씨 뿌리고, 물주고, 잡초 뽑으면서 가꾼 밭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텃밭 일이 싫은 건 아니다. 읽고 쓰고 걷는 게 더 좋을 뿐이다.

다음으로 떨어져 나간 일은 서울 마실이다. 한 달에 한 번쯤 가곤 했는데 갈수록 뜸해진다. 한때는 이런저런 이유와 약속을 만드는 쪽이었지만 지금은 없애는 쪽이다. 그만큼 복잡하게 엮이는 인간관계가 줄고 이해관계가 걷힌다. 대신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아진다. 시나브로 조용해진다.

마당 일도 많이 줄었다. 잔디를 깔고 여기저기 나무를 심었더니 마땅히 더 심을 자리가 없다. 나무는 스스로 자란다. 꽃들은 알아서 핀다. 잡초는 대충 뽑는다. 웃자라 나에게 들킨 애들만 뽑힌다. 아래 마당 쪽 비탈은 벌써 풀과 넝쿨이 무성하게 엉겼다. 어쩌랴. 재들은 재들대로 한 철 즐기다 가겠지! 내 눈엔 이 정도면 됐다.

하지만 다른 분들 눈에는 영 아닌가 보다. 이웃집들은 확실히 다르다. 갓 이발한 듯 잔디가 가지런하고 울긋불긋 꽃들이 모여 있다. 잡초는 어디 갔나. 집주인은 오늘도 '풀과의 전쟁'에 여념이 없다. 전면적인 총력전이다. 그래서 즐거우면 좋으련만 표정은 영 아닌 듯싶다. 주인은 오늘도 잡초를 노려보며 하소연한다.

-이웃 : 저놈의 잡초 땜에 내가 죽어.
= 나 : 죽으면 안 되죠.
- 이웃 : 그러면 어떡해?
= 나 : 뽑으면 잡초도 죽고 나도 죽고, 안 뽑으면 잡초도 살고 나도 살죠.
-이웃 : …….

그러니까 나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게으르다. 손꼽히는 한량이다. 위험한 백수다. 나만 노는 게 아니라 이웃까지 물들이려 한다. 길지 않은 인생인데 잡초 따위에 몸을 놀리지 맙시다. 마음 없는 일에 마음 들볶지 맙시다. 꼭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신나게 삽시다. 더 늙기 전에 많이 놉시다. 대충 이런 얘기로 유혹을 하는데 애석하게도 효과가 없다. 아직 물든 분이 없다. 다들 너무 부지런하고, 너무 일이 많다.

3. [동아일보][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 헤어짐, 그 이후에 남겨진 것들

에곤 실레(1890∼1918)는 오스트리아의 화가입니다. 분출하는 생의 에너지와 배회하는 죽음의 공포를 관능적으로 표현했지요.

스물여덟, 짧은 생을 살다 간 화가는 100여 점의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자화상 속 화가는 자기 과시적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자기 변호적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벌거벗은 몸으로 쾌락을 좇기도 하고, 경계의 시선으로 욕망을 응시하기도 합니다. 화가는 성적 욕망과 운명의 비극 사이에서 서성였습니다. 아버지와 형제들을 잃은 청소년기 이후의 일이었지요.

1910년 화가는 예술의 도시 빈을 떠났습니다. 조용히 머물 곳을 찾아 이주했지만 정착은 쉽지 않았습니다. 자유분방한 사생활과 외설적인 그림이 문제였지요. 이웃들은 낯선 이방인을 추방하려 했고, 어린 소녀 유괴 혐의로 고소까지 했어요. 의혹과 혐의가 끊이지 않는 삶과 미술이었습니다. 그런 화가 곁을 예술의 뮤즈이자 삶의 동반자가 지켰지요. 화가의 스승이었던 클림트의 모델이었던 발리 노이칠이었어요. 열일곱 살 모델과 스물두 살 화가가 만나 4년간 열정을 나누었습니다. 사랑은 1915년 끝이 났습니다. 화가가 다른 여성과 결혼을 했거든요. 

떠난 사람은 화가입니다. 하지만 사랑에 버림받은 쪽도 화가였지요. 결혼 후에도 관계를 지속하려는 이기적 계획을 옛 애인이 거절한 것이었어요. ‘죽음과 소녀’는 두 사람이 결별한 해 제작된 그림입니다. 이별의 당사자들을 이렇게 형상화했군요. 음산한 공간에서 남녀가 절망의 포옹을 나눕니다. 서로의 등과 어깨를 감싸 안으려 앙상한 두 팔과 뼈마디 굵은 손을 뻗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 기묘하게 불편해 보입니다. 사랑의 격정은 지나고, 관계의 마지막 절차만 남은 까닭일까요.

사랑이 끝난 뒤 남겨진 물건들을 소개하는 이색 전시가 제주에서 펼쳐지고 있답니다. 전시 기획은 2006년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 문을 연 실연박물관에서 맡았다지요. 사별한 남편이 몰았던 자동차부터 사랑과 맞바꾼 트로피까지 전시품들이 결별의 이유만큼 다양하기도 합니다. 만남과 헤어짐의 어려움이 어느 때보다 구체적으로 토로되는 지금, 산산이 조각난 관계의 물증들만큼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말을 건넬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요. 연인과 헤어진 화가가 남긴 상실과 연민의 그림이 그 어떤 연애의 기술보다 노골적으로 관계의 속살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4. [동아일보][림펜스의 한국 블로그]한국 영화제의 색다른 여운과 뒤풀이

얼마 전 어린이날 오랜만에 전주국제영화제(JIFF)에 갔다. 영화 상영을 하지 않을 땐 햇볕 아래서 산책을 하며 자유 시간을 보냈다. 재미있는 영화와 더불어 전주 시내의 매력을 한껏 만끽할 수 있었기에 행복했다. 

‘한국식 영화제’는 내게 특별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한국식이라고 이름 붙이는 이유는 한국 영화제 특유의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인들도 영화 애호가이고 영화 관련 행사를 많이 연다. 벨기에 브뤼셀도 서울처럼 매년 수십 개의 다양한 영화제가 열린다. 그런데 한국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영화제 특유의 분위기, 그러니까 ‘영화제 문화’까지는 없는 것 같다.

한국의 ‘영화제 문화’를 부산에서 처음 경험했다. 2005년 10월, 한국에서 보낸 첫 가을 어느 주말에 아무런 계획 없이 내 친구 문수와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가게 됐다. 그날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아름다운 주말이 된 날이다. 갑작스러운 방문이었기 때문에 우린 영화표를 미처 예매하지 못했고, 매진되지 않은 영화가 별로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중 하나를 무작위로 골라 봤다. 그 영화는 이만희 감독의 ‘원점’이었다. 1967년 작품 속 설악산 풍경을 보니 제법 신기했다. 

영화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상영이 끝나고 난 뒤 맛본 영화제 분위기였다. 새벽까지 신나는 해운대 골목을 영화제 방문객들과 뒤섞여 마음껏 누볐다. 영화제 분위기에 잔뜩 도취된 것만 같았다. 오후엔 해수욕도 했고 일몰 시간엔 해변에 앉아 맥주 몇 캔을 마시며 가벼운 마음으로 순간을 강렬하게 즐겼다. 물론 날씨가 맑아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건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었다. 

벨기에에서 체험했던 영화제와 달리 그날 부산영화제에서는 영화관의 경계를 뛰어넘는 어떤 ‘정신’을 느꼈다. 영어로 vibe(분위기, 느낌)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부산에서는 영화제의 여운이 길거리에서도 느껴진다. 내가 베니스나 칸 영화제 같은 대규모 유럽 영화 축제에 가본 적이 없어 비교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지만, 부산영화제는 영화 관계자나 영화 마니아뿐만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실제 관람객 수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참가할 수 있는 종합적인 대중 축제같이 느껴졌다. 반면에 브뤼셀 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관객들이 영화를 관람하면서 평소보다 좀 더 시끄럽고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건 영화관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색다름이다.

2006년 봄에 방문한 전주영화제에서도 이런 영화제 고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전주영화제는 부산영화제보다 ‘인디 영화’ 위주로 상영했다. 웬만한 영화관에서는 보기가 거의 불가능한 영화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그때 본 영화 중 나는 무당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가장 인상 깊었다. 그 외에도 수십 편의 국내외 단편 영화를 봤다. 전주영화제는 세계관을 넓혀주는 다양한 영화들을 분별 있게 선정해 영화제 기간 한 번에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줬고, 그 점이 참 고마웠다. 

그해 가을 한국에 놀러왔던 벨기에 친구 3명을 데리고 부산영화제에 또 갔다. 그때는 여러 영화를 예매해 놓고 오전부터 열심히 관람했다. 밤에는 부산 이곳저곳에서 놀다가 해운대 모래 위에 옷을 전부 벗어 놓고는 영화제 뒤풀이라도 하는 듯 ‘자정의 해수욕’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7년 봄, 일시적인 실업 상태에 있었던 나는 JIFF 사무국에 지원해 초청팀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JIFF 지기’로 활동한 그 열흘은 아주 좋은 경험이었고, 그때부터 온갖 영화제에 관심이 생겼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지금까지 7번을 갔고, JIFF는 올해로 5번째다. 

얼핏 기억을 되살려보면 ‘영화제 바이러스’에 걸린 이후 가본 영화축제는 서울독립영화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국제여성영화제, 이반영화제, 환경영화제, 부산국제단편영화제 등이다. 그런데 그 많은 영화제 중 부끄럽게도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아직 한 번도 못 가봤다. 아직 한국을 떠날 때는 아닌 것 같다.

5. [동아일보][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염치 불고하고

요즘 아이들이 한자를 모르다 보니 우리말을 외국어처럼 외운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하긴 자신의 이름조차 한자로 쓸 줄 모르는 아이들이 많으니 그럴 성싶다. 여러 가지 속뜻을 담고 있는 뜻글자인 한자어는 어른들에게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한자어의 뜻을 지레짐작으로 쓰는 경우가 적잖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부탁할 때 쓰는 상투어 ‘염치 불구하고’도 그중 하나다.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염치(廉恥)’다. 염우(廉隅)라고도 한다. 언중은 발음하기 쉬워선지 염치 뒤에 따르는 동사로 ‘불구(不拘)하다’를 즐겨 쓴다. 불구하다는 ‘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염치 불구하고’는 ‘염치 따위는 생각지 않고 제멋대로’란 뜻이 되어 버린다. 의도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뜻이 되어버리니 이상하지 않은가. 

바른 표현은 ‘염치 불고하다’다. ‘불고(不顧)하다’는 ‘돌아보지 아니하다’란 의미이니 ‘염치 불고하고’는 ‘염치를 차리지 못하고’라는 뜻. ‘체면 불구하고’란 말 역시 ‘체면 불고하고’가 옳다.

‘산증인’과 ‘향년(享年)’도 가려 써야 할 말이다. 산증인은 ‘어떤 분야의 역사 따위를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 낱말, 반드시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써야 한다. 부고(訃告) 기사 등에서 가끔 ‘언론계의 산증인’ 식으로 살아생전 업적을 기리는데 얼토당토않다. 이와 반대로 죽은 사람에게만 쓸 수 있는 표현이 향년이다. 향년은 ‘한평생 살아 누린 나이’란 뜻이니 산 사람에게 쓰면 그런 실례가 없다. 

‘터울’과 ‘역임(歷任)’도 잘못 쓰기 쉽다. 터울은 ‘한 어머니의 먼저 낳은 아이와 다음에 낳은 아이의 나이 차이’다. 그러니 어머니가 같은 형제와 자매, 남매 사이에만 쓸 수 있는 말이다. 이복(異腹) 형제자매에게조차 써선 안 된다.

누군가 새로운 직위에 오르면 으레 등장하는 낱말이 ‘역임(歷任)’이다. ‘여러 직위를 두루 거쳐 지냈다’는 뜻이다. ‘여러’라는 조건에서 알 수 있듯이 달랑 한 직위를 언급하고는 ‘역임했다’고 하면 안 된다. ‘사회부장 정치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했다’로 써야 옳다. 이런 잘못을 애당초 피하는 방법? ‘거쳤다’나 ‘지냈다’ 등으로 쓰면 된다. 부드럽고 무엇보다 뜻이 명확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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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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