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2016년 5월 18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문화일보]

1. 親朴의 비대위 저지 행패, ‘용팔이 사건’보다 더 나쁘다

새누리당이 총선 참패를 수습하기 위해 구성키로 한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위원회가 17일 친박(親朴)의 조직적인 당무 방해로 인해 무산됐다. 전국위원회는 전당대회의 위임을 받아 당헌 개정안 등 가장 중요한 당무를 결정하는 최고 의사 결정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를 집단의 힘으로 무산시킴으로써 당 지도부 구성과 당무 진행을 훼방 놓은 것이다. 회의 시작 하루 전만 해도 참석한다던 상당수 인사들이 갑자기 불참을 통보하거나 전화를 꺼버린 것을 보면 친박 핵심의 조직적 불참 지시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친박 핵심이라는 인사들이 상당수 불참했다.

전국위원들에게 조직적으로 불참을 종용, 정진석 비대위와 김용태 혁신위원장 체제 출범을 무산시킨 것은 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도발이다. 과거 1970~80년대 계파 싸움 때 정상적 표(票) 대결로 가기도 전에 물리력을 동원해 행사장을 난장판으로 만든 ‘각목 전당대회’의 현대판이다. 각목만 들지 않았지 자신들의 뜻과 맞지 않는다고 1987년 4월 통일민주당 창당을 방해하기 위해 협잡한 구악(舊惡) 정치의 표본으로 불리는 ‘용팔이 사건’보다 더 죄질이 나쁘다. 당시엔 외부 세력이 개입한 것이지만, 이번엔 내부 세력인 친박이 대 놓고 가장 중요한 당무의 진행을 막았기 때문이다.

비대위와 혁신위 구성을 반대하거나 불만을 표현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개진하고 표결로 결론을 내는 것이 기본이다. 한 해 수백억 원을 국고에서 지원받는 공당(公黨)의 주류 세력이 ‘협박’으로 비치는 불참 종용 전화를 돌리는 것은 통상적인 계파 갈등을 넘어 구시대의 공작 정치 냄새마저 풍긴다. 친박은 지난 총선 때 ‘진박(眞朴) 인증’ 같은 온갖 해괴한 방법으로 선거 운동을 벌이는 바람에 제2당 추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뒤 ‘계파 해체’ 운운했지만 이번 사태를 보면 패권주의만 더 노골화됐다. 내부에서 자폭 테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일을 누가 지시하고 실행했는지 밝혀 당헌·당규에 따라 엄중히 처분한다면 새누리당의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공계 병역 특례 폐지, 代案과 함께 점진 추진해야

대한민국에서 병역 특례 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원론적으로 없애는 것이 당연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17일 내놓은 방안 중에 이공계 특례 문제가 특히 그렇다. 국방부는 현역 입대 대상자 감소로 특례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차제에 산업기능요원·전문연구요원 등과 같은 대체복무는 물론, 의무경찰·해양경찰·의무소방 등 전환복무도 없애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역 군인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 못지않게 시급한 다른 국가 과제가 있다는 데 문제의 복잡성이 있다.

이공계 병역 특례는 언젠가는 없어져야 한다. 이를 악용한 비리도 적지 않다. 그런데 세계 주요국들이 과학인력 유치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해외에 머무는 한국인 이공계 박사가 계속 늘고 있다. 병역 특례마저 폐지되면 두뇌 유출 사태도 우려된다. 이는 국가경쟁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이들의 애국심을 탓하거나, 반대로 애국심에만 기댈 수는 없다. 국가 차원에서 매년 입영 대상 과학인력 수천 명이 소총을 들고 있는 것이 나은지, 기술 개발에 나서는 것이 좋은지 선택해야 한다. 중소기업 연구인력 확보 문제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2023년까지 전면 폐지하겠다는 국방부 구상은 그 방향은 옳지만, 현실적으로 더 많은 것을 고려하고 속도도 늦출 필요가 있다. 특히, 폐지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이공계 인력 양성을 위한 합당한 대안(代案)과 함께 점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옳다. 범 정부 차원에서 창조적 방안을 내놔야 한다. 이스라엘 ‘탈피오트(talpiot)’를 벤치마킹해 2014년 도입한 과학기술전문사관 제도는 좋은 사례다. 현대전의 성격 변화로 군도 사이버 분야 등 전문인력이 대거 필요하다. 이들이 경력 단절 없이 복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확대해야 한다. 병역 특례 혜택을 보고 있는 중소·벤처 기업의 고급 인력 문제 역시 실효성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

3. 홍만표·진경준 수사에 檢察 명운 걸렸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드러난 홍만표·진경준 두 전·현직 검사장과 관련된 의혹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논란과 관련된 자금의 규모까지 모두 100억 원대여서 더욱 그렇다. 어느 정도 진실을 밝혀내느냐에 검찰(檢察) 신뢰가 결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법치의 신뢰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 두 사례는 그 상징성과 세간의 관심으로 인해 검찰의 명운(命運)이 걸려 있다고 할 정도다. 김현웅 법무장관과 김수남 검찰총장의 어깨가 무겁다.

대검 기획조정부장(검사장)을 지낸 홍만표 변호사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도박 사건 수사·재판 로비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2011년 개업 이후 수임 사건 전반의 변호사법 위반 및 축재 의혹이 동반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10일 홍 변호사 사무실·자택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피의자 소환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 현직 검사장인 진경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도 100억 원대 주식 대박 의혹에 싸인 채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17일 자금 출처 거짓 소명을 들어 징계를 요청했다. 또, 투기자본감시센터는 12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죄) 혐의로 고발했고,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가 수사 중이다.

검찰의 수사 의지는 한동안 미덥지 않았다. 홍 변호사 압수수색만 해도 3일 최유정 변호사 사무실 등 10여 곳 동시다발 수색 이후 1주일 걸렸다. 게다가 정 피고인의 또 다른 도박 사건이 홍 변호사 영향력으로 무혐의 처분될 당시의 서울중앙지검장이 김수남 현 총장이라는 사실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 진 본부장 사건도 법무부는 미봉하려는 자세를 보여왔다. 진 본부장이 지난달 2일 제출한 사표를 수리하려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진상 규명 지시 이후 일단 물러섰다. 진 본부장은 김현웅 장관 인사청문회 준비단장이었다. 검찰은 이런 눈총까지 직시하고 명명백백하게 파헤쳐야 할 것이다. 전관예우는 현관(現官)범죄라는 인식도 잊지 말기 바란다.

[헤럴드경제]

4. 저출산 고령화 문제? 비빌 언덕 만든 후 요구해야

원인을 모르는 병은 무섭다. 오진도 큰 문제다. 하지만 가장 안타깝고 한심스러운 것은, 원인이 명확한데 제대로 치료를 하지 못하는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수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가장 심각한 것 중 하나는 젊은이들의 결혼 및 출산기피로 인한 저출산-고령화 현상이다. 정부는 물론 국민들도 피부로 느낄 만큼 진행속도는 가파르다. 수십년래, 그보다 가까운 미래에 국가의 기반이 흔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결혼해서 아이를 낳자’는 정부의 하소연은 공염불이 되어버렸다. 원인은 명확하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살아갈 자신이 없다. 대한민국 사회라는 울타리는 그들이 결혼과 출산을 꿈꾸기에 턱없이 허술하다.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15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국민의식조사’를 살펴보면 간단히 알 수 있다.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는 답이 45.4%였다. 결혼하겠느냐는 질문에도 ‘결혼할 생각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는 답변이 14.7%, ‘생각조차 안했다’가 12%다. 2014년에 비해 3~5% 가량 늘어난 수치다. 결혼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는 배우자에 얽매이기 싫어서(27.7%), 결혼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22.6%)라고 답했다. 육아와 가사에 대한 부담때문이라는 견해도 많았다. 집을 장만하고, 결혼비용을 마련한다는 것도 엄청난 일인데, 아이를 낳아도 믿고 맡길 보육시설도 부족하고 비용도 만만찮다. 무슨 염치로 이들에게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라고 권한단 말인가. 당연히 이들이 정부지원을 바라는 것도 주거문제가 1위(43.2%), 고용문제(청년실업, 비정규직 등)가 2위(38.7%)였다. 이것이 해결되기 전에는 미혼남녀들이 결혼과 출산이라는 무모한 도전을 할리가 없다. 저출산이 이대로 이어지면 2017년 생산가능인구 감소, 2018년 고령사회 진입, 2019년 인구감소가 될 것이라고 한다.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가 저출산-고령화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지난 10년간 저출산대책에 80조원, 고령화대책에 57조원 등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었다. 상황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헛돈을 쓴 셈이다. 중구난방 190개 사업을 벌이지 말고, 대책과 지원이 시급한 취업, 주거, 육아 문제에 집중했어야 했다. 하지만 손 놓아선 안된다. 어떻게든 방도를 찾아야한다. 집값을 잡든, 취업을 늘리든 그들에게 뭐라도 비빌 언덕을 마련해주고 해결을 기대해야한다.

5. 실손보험 제도개편은만 건강의 미래다

손의료보험 제도개편을 위한 태스크포스(TF)가 18일 첫 회의를 가졌다.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가 손을 맞잡고 보험산업의 최대 현안인 실손보험의 문제점 개선에 나선 것이다. 두 기관의 책임자가 종전의 국장급에서 차관급으로 격상된 것은 환영할 만하다. 이번 TF의 과제가 얼마나 엄중한지를 잘 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실손의료보험은 공적 의료보험의 부족 부분을 채울 목적으로 지난 2009년 출발했다.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부분(본인부담금 포함)을 대비하니 인기도 높아 5년만에 가입자가 3000만명을 넘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제2의 국민건강보험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가입자와 보험사, 병원과 심지어 건강보험공단까지 이해관계자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기형아가 됐다.

실손보험의 손해율은 130%에 이른다. 상품 설계 당시의 과도한 보장때문이다. 지난해만 보험료를 27%나 올렸지만 언발에 오줌누기다. 제 눈을 제가 찌른 셈이니 남 탓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보험료를 계속 올릴 수도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뿐이다. 가입자들도 불만이긴 마찬가지다.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면서도 정작 보험금을 청구해 받는 가입자는 20%정도에 불과하다. 5명중 4명은 남 좋은 일만 시킨다. 그 넘치는 돈은 다 병원으로 간다. 실제로 보험사에서 병원에 지급한 실손의료보험금 중 비급여 의료비의 비중이 70%에 이른다. 

실손보험은 의료기술엔 양날의 칼이다. 신기술 적용과 과잉진료의 촉매로 작용한다. 신기술은 대부분 건강보험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실손보험에서 대신 받을 수 있으니 병원에선 꿩먹고 알먹기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955개 비급여 진료항목의 병원별 가격 차이가 평균 7.5배, 최대 17.5배(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에 이른다. 과도한 의료쇼핑이 나오는 이유다. 일종의 모럴해저드다. 

결국 가입자, 보험사, 의료계 간 이해관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실손보험은 과잉진료→과다청구→보험사 경영 악화→보험료 인상의 악순환을 계속하는 기형아가 된 것이다. 이대로 둬서는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바로잡는 수술이 시급하다.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의 실손보험TF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다. 

자기부담금 제도의 개편, 과도한 의료쇼핑 억제, 병ㆍ의원들의 진료비 코드 표준화, 치료비 비교공시 사이트의 개설 등 갖가지 방안들이 쏟아진다. TF에서 올해 말까지 결정하는 정책방향이 향후 건강보험제도의 미래를 결정하는 관건임을 잊지말아야 한다.

[이데일리]

6.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축한다

소설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의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작품 ‘채식주의자’가 이 상의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뽑힌 것이다. 지난 3월 후보의 한 명으로 처음 이름을 올렸을 때부터 수상 가능성이 기대되던 터였다. 맨부커상이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는 점에서도 함께 축하할 만한 일이다.

이번 수상으로 그동안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 문학이 세계무대로 발돋움하게 됐다는 사실에 가장 큰 의미를 두고자 한다. 터키의 노벨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을 비롯한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는 점에서도 한국 문학의 위상을 새롭게 평가받은 셈이다. 그동안 잠재적 후보군에만 머물렀던 노벨문학상을 향해서도 도약의 발판이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문학계 내부로 눈길을 돌려본다면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도전적 창작의식을 자극할 수 있게 된 것이 커다란 수확이다. 순수 문학에 대한 기대와 열정이 그것이다. 인터넷의 범람으로 문학이 갈수록 세속화되고 작가 의식은 추락하고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 있던 마당이다. 인간과 우리 사회의 근원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우리 문단의 치열한 작가 의식이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문학에서 번역이 차지하는 중요성이다. 이번 수상작을 번역해 해외에 처음 소개한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가 한강과 함께 공동 수상자로 호명된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음악이나 미술, 무용 등 다른 분야와는 달리 문학 작품은 다른 언어로 번역돼야만 의미 전달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역할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이번 수상에 따라 문학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는 점도 하나의 기대 사항이다. 독자들이 시나 소설에 눈길을 주지 않는 상황이라면 문학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인들이 자기네 작품도 제대로 읽지 않으면서 노벨문학상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외국 언론의 지적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그것은 출판사들의 얄팍한 장삿속과도 다르다. 인간의 존재 가치를 따지려는 자기성찰이 그 토양이다.

7. OECD의 경고 정치권에는 안 들리는가

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이 2.7%로 추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작년 11월(3.1%)에 비해 0.4% 포인트, 작년 6월(3.6%)보다는 0.9% 포인트나 깎인 수준이다. OECD의 지적은 우리 경제에 대한 경고음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해법을 내놔야 할 정치는 실종되다시피 한 상태여서 우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야 정치권이 여전히 귀를 틀어막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한국은행(2.8%)을 비롯해 국제통화기금(2.7%), 아시아개발은행(2.6%) 등 국내외 경제예측기관들이 우리의 성장 전망을 줄줄이 2%대로 낮췄다. 2.6%에 그쳤던 작년의 저성장 추세가 올해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올 1분기 성장률은 0.4%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 프랑스(0.5%)에도 뒤졌다. 내년이라고 크게 나아질 조짐도 안 보인다. OECD의 예상으론 3%에 턱걸이하는 것도 감지덕지다.

OECD는 중국과 신흥국의 경기 부진에 따른 수출회복 지연에 고령화와 생산성 정체 등이 겹치면서 저성장이 촉발됐다고 분석했다. 미국 금리인상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가능성 등의 대외 악재가 즐비한 가운데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조선과 해운을 비롯해 건설, 유화, 철강 등 주력 업종의 대대적 구조조정이 본격 궤도에 오를 참이어서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OECD는 적극적인 재정 및 통화정책과 규제 철폐, 노동 개혁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우리 정부도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과연 누가 총대를 메느냐가 문제다. 재정 확대든, 양적 완화든, 노동 개혁이든 어느 하나도 정치권의 동의가 없으면 추진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의 핵심 관계자들이 정책을 조율하는 당·정·청 회의는 100일 넘도록 깜깜 무소식이다, ‘사상 최악의 국회’로 낙인찍힌 19대 국회에 유종의 미를 기대하기도 힘든데다 국민이 4·13 총선을 통해 여소야대 3당 체제에 엄명한 협치(協治)마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느냐 합창하느냐에 발목이 잡혀 초장부터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시간이 문제다. 지금 때를 놓치면 모든 게 만사휴의다. 하지만 여당부터 내부 싸움질만 하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서울신문]

8. 새누리 계파 갈등, 당 와해도 불사할 텐가

새누리당의 고질적 계파 갈등이 도지면서 혁신의 발목이 잡혔다. 어제 열릴 예정이었던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 회의 자체가 친박(친박근혜)계의 조직적 보이콧으로 무산됐다. 상임전국위는 50명의 위원 중 절반 이상이 참석해야 하나 친박계 위원들이 비박계 중심의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위원장 선출에 반발하며 대거 불참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총선 참패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한 비대위와 혁신위 출범이 무기한 연기됐다.

상임전국위 무산 직후 혁신위원장으로 내정됐던 김용태 의원은 “새누리당에서 정당 민주주의는 죽었다”고 선언한 뒤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당내에서는 새누리당이 “망조의 길로 간다”, “계파 망령이 되살아났다”며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총선 한 달이 지났지만 참패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새누리당은 비대위와 혁신위조차도 구성하지 못할 정도로 공당의 기능은 정지됐다. 이런 상황이면 7월쯤으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식물 집권당으로 표류할 가능성도 커지는 형국이다. 그동안 비대위 구성과 당내 혁신을 주도할 혁신위원장 선임 등의 문제로 갑론을박해 오던 새누리당이 이번 회의 무산으로 계파 간 이전투구 양상을 여과 없이 노출하면서 국민들의 실망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마지막 기회조차 차 버린 꼴이다.

상임전국위 파행은 그제 당내 주류인 친박계 의원 20명이 비대위원진 구성과 혁신위원장 내정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예고됐다. 친박계든 비박계든 수적 우위를 앞세워 공당의 결정 사안을 번복시키려는 행동은 전형적인 패거리 정치에 불과하다. 당내 주류를 형성한 친박계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비박계 중심의 비대위 출범을 고의적으로 무산시키면서 7월 전당대회까지 현 체제를 끌고 가 당권을 거머쥐겠다는 계산이다. 전국위가 정족수 미달이란 초유의 사태로 당의 중대 사안을 결정하지 못할 정도로 집권 여당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총선 참패의 원인인 고질적인 계파 정치가 되살아나면서 국민들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 새누리당은 계파 간 권력투쟁으로 환부가 썩어 들어갈 정도로 중증 환자나 다름없다. 환부를 도려내고 체질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정녕 당의 미래는 없다. 총선에서 표출된 민심은 집권 여당의 구조와 체질을 혁신하라는 메시지였다. 국민의 뜻을 거부하는 정당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동아일보]

9. 환경부 명예 걸고 닛산車 ‘디젤 게이트’ 입증할 수 있나

일본 닛산자동차가 어제 한국 닛산의 경유차 ‘캐시카이’의 배출가스가 조작됐다는 환경부 발표를 전면 부인했다. 캐시카이 실내 인증시험 때는 발암물질인 질소산화물을 적게 뿜도록 한 반면 실제 도로를 달릴 때는 많이 배출토록 조작했다는 전날 환경부 발표가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어떠한 차량에도 불법적인 조작을 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차량 주행 시 엔진 주변 온도가 올라가면 부품을 보호하기 위해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멈추도록 설정한다. 환경부는 시동을 건 뒤 20분이 지나 엔진 주변 온도가 35도 이상이 될 때 저감장치를 바로 세우도록 한 닛산의 설계가 ‘조작’이라고 봤다. 반면 닛산 측은 유럽연합(EU)에서는 몇 도부터 저감장치를 멈춰야 한다는 기준이 없다고 주장했다. 닛산이건 옥시레킷벤키저건, 외국에서 제품 결함이 발견되면 납작 엎드려 사태를 수습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에선 부인하고 항의부터 하는 모양새가 곱지는 않다. 

정부가 빌미를 준 측면이 있다. 한국닛산은 지난해 10월 캐시카이에 대한 자가 인증 결과를 환경부에 보고하면서 35도가 되면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멈춘다는 사실을 이미 공개했다. 그때는 그냥 넘어간 환경부가 미세먼지와 대기오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뒤늦게 문제 삼았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더구나 현재 규정은 실내 배출가스 검사만 통과하면 되고, 내년 9월 새 시행규칙이 도입돼야 도로 주행 시 배출량을 따져 제재가 가능하다. 닛산은 환경부 도로 검사에서만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20.8배 검출됐다. 정부가 급한 마음에 아직 시행하지 않은 기준에 따라 배출량을 문제 삼는다면 국제적 망신을 살 우려가 있다. 

작년 9월 폴크스바겐 경유차가 배출가스를 조작한 ‘디젤 게이트’ 이후 이번 닛산 적발은 세계에서 두 번째다. 환경부가 가습기 살균제 파문으로 국민 건강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게 되자 일본 경유차의 배출가스 조작을 섣부르게 단정했다면 한국의 명예가 훼손될 수도 있다. 글로벌 기업이 한국을 우습게 볼 빌미만 준 채 닛산 문제를 흐지부지 끝낼 경우 환경부는 간판을 내릴 것까지 각오해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10. 유해화학물질 위협 못 벗어나면 미래도 없다

환경부가 탈취제·세정제 등 생활화학제품 7개에 대해 지난 1월 판매 중단과 회수 조치를 취했던 사실을 17일 뒤늦게 공개했다. 탈취제 중에는 사용 금지된 PHMG란 물질을 사용한 것도 있었고, 유해물질 농도가 기준치를 크게 초과한 것도 있었다.PHMG는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돼 수많은 희생자를 낸 물질인데 버젓이 사용됐다. 이번 발표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제품 속에 위험한 화학물질이 도사리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고가 없었더라면 자칫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고를 지켜보면서 시민 의식도 달라지고 있다. 화학제품의 성분을 하나하나 확인하기도 하고, ‘친환경’이라고 적힌 제품만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재앙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정부와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 기업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제품의 구체적인 성분을 감추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적극적인 공개를 통해 사고를 예방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인체와 자연 생태계에 해를 끼치지 않는 물질로 대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환경부를 비롯한 정부 각 부처도 생활화학제품 속의 유해물질에 시민이 노출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이미 위험성이 밝혀진 물질은 적극적으로 제한·금지물질로 지정해 나가는 한편, 독성이 알려지지 않은 물질은 독성을 평가하고 그에 합당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껍데기만 남았다고 지적받고 있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도 실질적인 보호막이 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 아울러 학용품·장난감 등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유해물질이 검출되는 경우 판매 중지와 제품 회수 명령으로 그칠 게 아니라 해당 업체의 영업정지 등 강화된 행정처분을 내리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국내 신생아 열 명 중 하나(10.3%)가 선천성 이상을 갖고 태어났다. 유해물질 탓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저출산·고령화를 걱정하는 우리 사회가 화학물질 위협에서 못 벗어난다면 미래도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헤럴드경제][현장에서] 아트테이너 조영남의 代作 스캔들

가수 겸 화가로 활동해 온 이른바 ‘아트테이너’ 조영남의 ‘대작(代作)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특히 “미술계 관행”이라는 조씨의 해명이 화근이 됐다. 

대중은 “정말 조수가 대신 그림을 그려주기도 하느냐”며 허탈해 하고, 미술계는 “조수를 두는 건 문제되지 않으나 작업태도가 문제”라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검찰은 사기 혐의에 가능성을 두고 조사 중이다. 회화, 영상, 설치 등으로 영역이 확장된 현대미술에서 조수를 쓰는 건 흔한 일이다. 그림이 잘 팔릴수록, 설치 작품 사이즈가 클수록 조수의 숫자는 늘어난다. 심지어 대작이 콘셉트인 작가도 있다. 

조씨가 미술계를 비롯한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그의 그림이 ‘고작’ 화투패를 그린 것이라는 점, 그런데도 불구하고 잘 팔렸다는 점, 그것이 연예인 프리미엄 때문이라는 점, 그런데 알고 보니 대작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가 대단히 호감형 연예인이 아니라는 점도 있다. 여기에 감히(?) 아트테이너가 ‘관행’을 운운한 점도 미술계의 공분을 샀다. 

그러나 미술 작품의 가치는 ‘사는 사람’이 결정한다. 사는 사람이 지갑을 열고 그림을 소장하는 순간 작품의 가치가 매겨진다.

조씨의 그림을 사는 사람이 있었다는 건 누군가에겐 어떤 의미로든 소장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화투패 따위의 그림이든, 작가가 유명한 연예인이기 때문이든.

또한 전업 미술가 그 누구도 조수의 도움을 받았다고 굳이 먼저 말하지 않는다. 물어보면 밝히는 정도다. 컬렉터들 역시 조수를 썼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컬렉션에서 중요한 기준이 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미 그 정도는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곱씹어 볼 문제다. 과연 예술가는 관행과 도의적 책임 사이에서 얼마만큼 떳떳한지. 작품과 제품 사이에서 영혼을 팔지는 않았는지. 조영남이 아닌 그 어떤 전업작가라도 말이다. 

어쨌거나 사법당국은 칼을 빼들었다.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대작으로 인한 피해는 무엇인지 법으로 가려내는 게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2. [한국일보]​[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 창 밖 풍경

나지막한 축대 위에 있는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온 다음 해인 2001년 봄. 축대를 무너뜨릴 기세로 한 그루의 나무가 창 밖에서 솟아올랐다. 가지를 쭉쭉 뻗어 25평 되는 앞집 지붕을 다 덮는 데는 한 계절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나치게 왕성한 식물의 기운은 무서울 만큼 음산했다. 그 기세로 뿌리가 축대를 파고들면 집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나는 생각 끝에 나무를 베어버렸다. 뿌리만 남은 나무는 다시 거침없이 자랐고, 더욱 음산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온 한 이웃이 뿌리에 맹독을 넣어 나무를 독살해 주었다. 몇 년 전부터 나무가 죽은 자리에서 뽕나무가 자라고 있다. 나무 한 그루를 독살하며 체르노빌과 홀로코스트까지 떠올렸던 내 머릿속에서는 ‘정화’라는 단어가 반딧불이처럼 떠다녔다. 그쯤에서 나는 나무를 독살했다는 찜찜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뽕나무는 맞은편에서 우리 집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차단해 주기 때문에 나는 커튼을 활활 걷고 창문을 열어 날마다 밖을 내다본다. 뽕나무 가지마다 열린 푸른빛의 오디는 곧 붉은빛을 띨 것처럼 보인다. 붉은빛이 짙어져 검게 반들거리면 밤에도 창문을 열어놓고 자야 할 만큼 기온이 상승할 것이다. 그때는 약간의 불안감과 긴장감을 느끼며 자느라 꿈이 많아지고, 자고 나도 피로감을 느낄 것이다. 그 전에 밀린 일을 좀 해놓아야 한다.

3. [머니투데이][우보세] "김치가 얼어요" 김치냉장고 업체에 문의하니

작년에 구입한 우리집 냉장고에는 김치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구입 당시 판매사원은 이 제품이 정식 김치냉장고는 아니지만 온도 조절 버튼만 조작하면 김치를 최적의 온도에서 보관할 수 있다고 했다. 사은품으로 김치를 담을 용기도 줬다. 덕분에 기존에 썼던 구형 김치냉장고는 집에서 나갔다. 

그런데 김치가 자꾸 언다. 해당 서비스센터에 문의을 해 보니 '일반 냉장고이니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고객님, 담부터는 김치를 좀 더 짜게 담가보세요. 간이 싱거워서 얼었을 수 있습니다"라며 '생활의 지혜'도 덤으로 알려줬다. 

해당 모델이 출시될 당시 업체의 보도자료를 찾아보면 김치까지 최적의 온도에서 보관할 수 있다고 명기돼 있다. 입맛이 썼다. 전자업계를 출입하는 기자로서, 앞으로 가전제품 출시 기사 작성 시 더욱 꼼꼼하게 내용을 챙겨야 겠다고 다짐했다. 

일반 소비자들은 기업, 특히 대기업이나 해외 유명 기업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유명한 기업은 고객을 속일 리 없다'는 막연한 믿음은 그동안 마케팅 용어로 '브랜드 로열티'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지속돼 왔다. 

높은 가격을 감수하고라도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선택하는 것은 이같은 '신뢰'에 대한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행위다. 

그런데 최근 일부 기업들은 이같은 '룰'을 깨뜨리고 있다. 

A씨는 3년 전 한 업체의 디젤 승용차를 구입했다. 당시 그 브랜드에 높은 신뢰감을 느꼈다. 그동안 수십 년간 신뢰할 만한 차량을 만들어 온 세계적인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디젤 엔진을 경험해 보지 못해 주저했다. 하지만 '디젤이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은 옛 이야기'라는 회사측 설명에 마음이 움직였다. 연비가 좋고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광고 문구에 앞서 염두에 뒀던 가솔린 모델 대신 디젤 차량을 골랐다. 비용도 물론 더 내야 했다. 

요즘 그는 마음이 불편하다. 그토록 자랑했던 '클린 디젤'이 업체가 지어낸 '허구'였다는 사실에 화가 치솟는다. 이 업체는 디젤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로 판매가 급감하자, '파격 할인'이라는 카드로 위기를 돌파하는 중이다. 중고차 가격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이 업체는 기존 고객들에게 아무런 보상 계획도 내놓지 않았다. 

B씨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다룬 언론 보도를 보면 몸서리가 쳐진다. 

그는 첫 아이 출산 후 방에 가습기를 새로 들여놨다. 바쁜 직장 생활 때문에 육아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퇴근 후 '가습기 물당번'을 맡았다. 마트에서 우연히 가습기 살균제를 접한 그는 '인체에 무해하다'는 문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시장에서 널리 알려진 브랜드인만큼 의심은 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그는 가습기 물을 채울때면 뚜껑 한 컵 분량의 가습기 살균제를 넣었다. 배우자에게도 살균제 넣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을 정도다. 이후 이사 과정에서 제품이 사라졌고, 자연스레 사용도 중단됐다. 결과적으로 천만다행이었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사회를 위해서라도 외부로부터 전달받은 '팩트'를 다시 한번 의심하고 따져봐야 하는 '불신의 시대'가 왔다. 신뢰는 사회 구성원 일부의 일탈로 깨진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나쁜 기업'들의 거짓말에 철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4. [주간경향][선대인의 눈]한국 고령세대는 왜 가난한가

일반적으로 우리는 노후 연령대로 접어들면 소득이 줄어 가난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는 최근 이 같은 통념과는 크게 다른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65세 이상 고령세대의 소득 비율이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OECD회원국 전체의 고령세대 평균 소득이 2000년대 중반에는 65세 이하 소득의 82.4%였다. 그런데 2012년에는 86.8%로 상승했다. 심지어 스페인이나 프랑스와 같은 유럽국가들은 고령층 인구의 소득이 비고령층보다 오히려 더 높아졌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이들 국가의 젊은층 소득수준이 정체됐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OECD 국가들에서 고령층 소득이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흐름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정반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어느 나라보다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노후빈곤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세대의 빈곤율은 2012년 기준 49.6%로, OECD 국가들 가운데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OECD 평균인 12.4%에 비해 4배나 높은 수준이다. 상황이 악화되는 추세라는 점에서 더 문제가 된다. 한국 고령세대의 소득비율은 2000년대 중반 67%에서 2012년에는 오히려 60.1%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 같은 추세는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2월 말에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2014년 기간 중 가구주 연령이 ‘39세 이하’와 ‘40~59세’인 가구들에서는 소득분위가 상승한 비율이 높았던 반면, ‘60세 이상’ 가구는 하락한 비율이 높았다.

한국의 고령세대가 이처럼 가난한 주된 이유는 한국과 다른 선진국 노인 인구의 소득 원천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고령세대의 소득은 연금과 같은 공공이전 소득과 근로소득, 자본소득이 각각 3분의 1가량씩 차지한다. 일본은 공공이전 소득의 비중이 48%로 미국보다 좀 더 높고, 핀란드와 같은 복지국가는 80%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핀란드가 노인 빈곤율이 낮은 것은 이처럼 공공이전 소득이 높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복지와 연금제도가 취약하다 보니 공공이전 소득 비중이 16%에 불과하며, 근로소득이 63%를 차지한다. 근로소득이라도 많으면 다행이다. 50대 초·중반에 정규직에서 쫓겨나다시피 퇴직한 뒤에는 영세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60대 이상 고령노동자의 3분의 2가 비정규직이다. 국내 고령인구는 노후에 편히 쉬기는커녕 저임금노동에 시달리며 부족한 노후생활비를 벌고 있는 것이다.

큰 틀에서 보자면 핀란드는 복지체계가 잘 갖춰져 있어서 공공이전 소득으로 노후 소득을 얻고, 미국은 주식 투자 등에서 나오는 배당과 이자, 자본 차익 등 자본소득이 노후에 큰 기여를 한다. 일본도 핀란드만큼은 아니어도 공공이전 소득에 상당 부분 기댈 수 있다. 한국은 이도 저도 빈약해서 부족한 소득을 대부분 저임금 고령 노동으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할 일이 많다. 복지를 확충하며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연금제도를 손질하고, 미국의 퇴직연금제도인 401K처럼 가계의 금융자산 증식을 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일 등이다. 그전에 가계가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중요하게는 부채덩어리인 부동산을 다이어트하고, 과도한 사교육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그렇게 마련한 현금자산으로 현명하게 저축하거나 투자한다면 안정된 노후를 훨씬 더 잘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5. [프레시안]<채식주의자>는 어떻게 세계를 홀렸나?

어제(5월 17일), 한국 문학은 작은 문턱 하나를 넘어섰습니다. 데보라 스미스가 영어로 번역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창비 펴냄)가 선정 위원 만장일치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은 것입니다. 이 상은 영국에서, 아니 영연방을 포함하는 영어권 국가 전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 번역상입니다.

오르한 파무크, 옌렌커 등 최종 후보에 함께 오른 작가들 면면에서 선명히 보이듯이, 그해 영국에서 번역해 출간된 비영어권 작가의 작품 중에서 문학적으로 가장 훌륭한 작품에 수상의 영예를 안습니다. 따라서 <채식주의자>의 수상은 단지 한 작가의 경사를 넘어서, 한국 문학의 미래(또는 국제화)에 문학적으로 중요한 시사점을 남겼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문학어로서 한국어의 가능성이 타자를 통해 확인되었다는 점입니다. 근대 이후 문학이란 대개 민족어로 하는 것인 만큼, 사실 타자의 인정 따위는 별로 관계없을지 모릅니다. 한국어를 쓰는 사람끼리 쓰고 읽고 충분히 즐기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나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면, 한국 문학이 처한 불리한 상황이 선연하게 들어옵니다.

문학의 중요한 기반을 이루는 출판 산업의 세계화에 따라 국경의 장벽이 낮아져서 해외 문학의 국내 독서 시장 진입이 쉬워지고, 그에 따라 번역의 가속화가 진행되는 중이니까요. 게다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양질의 편집자와 번역자가 출판 시장에 풍부하게 공급됨으로써 이제는 우리말로 읽어도 말맛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 질 높은 해외 문학이 한국 문학을 포위한 형국입니다. 문학 독자 자체가 굳이 한국 문학 쪽으로 눈 돌리지 않아도 되는 '바리케이드 효과'가 생겨난 것입니다.

더욱이 영화나 음반 산업이 이미 보여주었듯이, <해리 포터> 이래로 <트와일라잇>, <헝거 게임>이 차례대로 그러했듯이, 전 세계 동시 출간을 통한 블록버스터 전략이 조만간 세계 출판 산업의 세계 표준으로 자리 잡으려는 중입니다. 주로 청소년 소설 분야에 속하는 이러한 작품들은 판타지 같은 초현실적 배경을 바탕으로 작품에 다문화 가치를 담는 쪽으로 진화함으로써 문화적 장벽마저 뛰어넘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문학 출판 시장 역시 유례없는 경쟁에 노출되면서 과거의 성세를 잃고 위축을 거듭하는 중이었습니다.

한강은 이른 나이에 시인으로 데뷔했지만, 주로 2000년대 들어 소설 창작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폭력과 자유'라는 작품 세계가 선명해지고, 서사를 다루는 솜씨가 물에 오르기 시작했으므로 2000년대 작가라고 불러야 할 듯합니다. 여러 화자들이 이어지는 한 사건을 복층의 화술로 서술하는 한강의 서사 전략은 그다지 대중적이지는 않았지만, 항상 문학 애호가들을 매혹해 왔습니다.

한국 소설이 가장 공들여 진화시킨 장르인 단편이나 중편의 미학을 고스란히 살리면서도 장편의 서사를 다룰 수 있는 중요한 방법적 진전이었습니다. 수상작인 <채식주의자>에서도, 한강 소설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될 <소년이 온다>에서도 같은 종류의 화법이 시도된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합니다.

문체의 정묘함에서든, 사건의 기이함에서든 '극단의 서술 미학'을 추구하는 한국의 단편이 한 개인의 운명을 다루는 장편의 호흡을 끌어안기 위하여 기묘하게 진화한 한국 소설의 한 정수가 거기에 있으니까요. (아직은 해외에서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지만, 성석제, 김영하, 김연수 등의 작품에는 전혀 다른 미학적 자질이 있지요.)

한강의 소설이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은 것은 한국 문학이 이룩한 미학적 자산의 한 부분이 세계 문학의 유산으로 편입된 것을 뜻합니다. 비로소 해외 문학의 공세에 맞설 만한 좋은 무기 하나를 발견한 느낌입니다. '폭력과 자유의 대립' 같은 인류 전체의 주제들을 자기 고유의 화법으로 발화함으로써 인간성의 고양을 이룩한 작품들은 언제든 세계문학의 죽백에 이름을 올릴 수 있으리라는 것이지요.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잔혹한 작품입니다. 세 편의 연작 소설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인 영혜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를 벗고 한 그루 나무로 되는 격렬한 변신 과정을 보여 줍니다. 피를 내고 살을 찢는 폭력에 질식된 육체는 거기에 적응하는 대신 힘차게 자유를 갈망합니다.

처음에 영혜의 선택은 일체의 고기를 거부하는 채식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남편의 몰이해와 아버지의 학대가 중첩되고, 형부에 의한 성적 착취까지 발생하면서 기어이 거식의 실천을 통한 '식물 되기'로까지 이어집니다. 영혼을 닦달하고 육체를 침탈해 지배하려는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영혜는 "내장을 다 퇴화"시켜 "밥 같은 거 안 먹어도" 사는 식물적 신체를 이룩해 갑니다. "답답해서, 가슴이 조여서 견딜 수 없"는 억압적 세계를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추방해 버립니다.

육체가 깡말라 붕괴되면서 오히려 정신은 해방을 향해 달려가는 그 과정은 밀도 높은 미학적 긴장과 함께 마음에 신화적 울림을 만들어 냅니다. 영혜의 남편, 형부, 언니가 차례로 나와서 그녀의 변신 과정을 나누어 기술하는 특이한 서술 방식, 간결하고 정확하며 강렬한 문장으로 단단히 서사를 짜고 이미지를 응축함으로써, 산문적으로는 죽음이지만 시적으로는 불멸인 식물-인간으로 영혜를 살려내는 작가의 솜씨는 가히 천의무봉입니다. 어릴 때부터 반복되는 가부장적 폭력, 거식증과 같은 초현대적 소재, 여성이 나무로 변하는 신화적 이미지의 재현 등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채식주의자>는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끔찍한 낯섦(uncanny)'을 하나의 독특성으로 창조해 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고유한 화법을 정교하고 아름다운 영어로 옮겨 문학적 성취를 분명히 나누어 가져야 할 이 소설의 번역자 데보라를 주목하고 싶습니다. 어찌 보면 <채식주의자>의 수상은 한국어를 공부한 지 불과 일곱 해밖에 되지 않은 아직 20대 청년의 자발적 결단이 이루어 낸 성과일 수도 있습니다.

데보라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런던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익히기 전까지 한국 문학과 아무 인연이 없었습니다. 한국어를 공부한 후 좋은 작품을 고르다가 한강의 작품을 만났고, 한강의 작품을 번역하려고 더 열심히 한국어를 익혔습니다. 물론 그녀의 번역을 지원한 대산문화재단(그리고 한국문학번역원)의 공로를 잊어서는 안 되겠지만, 이 지점은 문학어로서 한국어의 미래를 더욱 밝게 합니다. 하나의 성공은 흔히 또 다른 도전을 낳으니까요. 앞으로 몰려들 한국 문학의 자발적 연구자 및 번역자들을 체계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의 마련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겠습니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