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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5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제2의 진경준' '제2의 김정주'는 없는가

진 경준 검사장의 뇌물수수 의혹 사건은 ‘금수저’들 사이의 타락상을 속속들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사회 정의를 지켜야 하는 검사의 신분으로서 대학동창인 기업인으로부터 주식구입 자금과 내부자 정보를 제공받아 거액을 챙겼는가 하면 재벌의 탈세를 봐주는 대가로 친척 기업에 일감을 몰아준 것으로 드러났다. 자기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 수법이다.

김정주 NXC(넥 슨지주회사) 회장의 잘못도 작지 않다. 2005년 진 검사장에게 4억 2500만원을 주어 비상장 넥슨주식 1만주를 사게 한 후 1년 만에 10억원에 되산 것으로 드러났다. 진 검사장은 이 돈으로 넥슨재팬 지분을 매입했다가 2011년 일본 증시 상장 이후 126억원에 처분했다. 진 검사장은 또 넥슨이 리스한 제네시스를 처남 명의로 제공받았고,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탈세 내사 무마 조건으로 처남의 청소용역업체가 대한항공에서 130억원대의 일감을 따내게 한 의혹도 받고 있다.

주식매입 자금 출처를 놓고 여러 번 말을 바꾼 진 검사장은 어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하면서 “저의 과오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진실을 밝히지 않은 점을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정성은 별로 엿보이지 않는다. 전날 이례적으로 특임검사실에 제출한 자수서에서 공소시효가 끝난 잘못들만 시인한 것만 봐도 그렇다. 김 회장이 역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면서 대가성이나 업무 관련성을 부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제2, 제3의 진경준은 없는가 하는 점이다. 홍만표 전 검사장이 연루된 최근의 법조 비리에 비춰볼 때 “더 이상은 없다”고 자신 있게 장담하긴 어렵다. “제2의 김정주는 없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진 검사장과 김 회장처럼 개인적으로 막역한 사이에서 이뤄지는 결탁은 적발해 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게 문제다. 금수저들 내부에서 자기들끼리만 연결되는 먹이사슬이다.

권력과 돈의 검은 유착이 횡행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이 사건을 맡은 이금로 특임검사는 진 검사장과 김 회장 사이의 뇌물관계를 엄격히 가려내고 한진그룹의 탈세 의혹도 다시 뒤질 필요가 있다. 한 점의 의혹도 남겨선 곤란하다. 그것이 검찰이 늘 외치는 ‘사회정의’의 마지막 보루다.

2. 기상청의 잦은 날씨 오보 짜증난다

기 상청의 일기예보가 자주 빗나가고 있다. 지난 며칠 사이에도 전국적으로 내려진 장맛비 예보가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지역에 따라 100㎜ 안팎의 폭우가 쏟아질 것으로 예보됐으나 실제로는 흐린 정도에 그치거나 심지어 쨍쨍한 날씨를 보이기도 했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피서 또는 야외활동에 나서려는 시민들이 일기예보를 믿었다가 낭패를 겪으면서 불만이 이어지는 까닭이다.

일기예보 가 심심하면 틀리다 보니 시민들이 아예 예보와 반대로 움직이는 진풍경마저 빚어진다. 맑은 날씨를 보일 것이라는 예보가 내려지는 경우에도 하늘에 구름이라도 끼어 있으면 출근하면서 알아서 우산을 챙기는 식이다.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틀린 예보 때문에 자칫 비를 맞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청개구리 예보’에 ‘청개구리 대응’인 셈이다.

변하 기 쉬운 비바람의 조화를 미리 정확하게 예측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바 아니다. 특히 장마철에는 기상 상태가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제대로 알아맞히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다음날 날씨조차 내다볼 수 없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당일 오후의 예보가 틀리기도 한다. 도대체 기상청이 왜 존재해야 하느냐 하는 질문까지 쏟아지는 게 당연하다.

첨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등 관측장비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더욱이 지난 2월부터는 고성능을 자랑하는 슈퍼컴퓨터 4호기까지 가동되는 중이라고 한다. 48억명이 1년간 매달려야 하는 분량의 계산을 단 1초 만에 뚝딱 처리할 수 있다는 기본 성능에 비해 예보 실적은 너무 엉뚱하다. 컴퓨터 구입에 들어갔다는 532억원의 비용이 아까울 뿐이다.

물론 기상청 나름대로 고충과 이유가 있을 법하다. 슈퍼컴퓨터가 날씨 도면을 만들어낸다 해도 예보관이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면 예보가 틀리기 쉽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예보관 인사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비가 올 조짐이면 오보를 면하려고 면피성 예보에 치중하다가 문제를 키운 측면도 없지 않다. 이러다간 팔다리만 욱신거려도 비가 내릴 것으로 알아맞히는 시골 어르신네들에게 일기예보를 맡겨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서울신문]

3. ‘내 지역 사드’ 놓고 다른 길 간 친박과 유승민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가 대다수인 대구·경북(TK) 의원들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경북 성주 배치 결정을 놓고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 국회의원 25명 중 21명은 최근 집단 항의 성명서를 내고 선정 기준과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드 설치에 따른 레이더 전자파의 진실을 알리며, 국책 사업 지원 등 인센티브를 마련하라는 등 3개항을 요구했다. 이들 중에는 친박 핵심인 최경환·조원진 의원과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정종섭 의원, 청와대 민정수석 출신의 곽상도 의원 등 이른바 ‘진박’(진짜 친박) 논란을 일으켰던 인사들까지 포함돼 있다.

국가와 국민 전체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역 주민의 정서에 영합해 자신들의 표만 지키겠다는 얄팍한 계산이 역력하다. 박근혜 정부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집권당의 권력 기반인 친박계는 지난 20대 총선 당시 TK 지역에서 “대통령의 후반기 국정 운영을 뒷받침할 사람은 우리”라고 지지를 호소했고 상당수 의원들이 국회에 입성했다. 정권의 핵심 지지 세력이어야 할 주류 TK 인사들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되고 님비(지역이기주의)를 부추기는 상황인 된 것이다.

유 승민 의원 등 비박계 의원들의 선거 운동 당시 대통령 사진을 반납하라고 윽박지르면서 ‘박근혜 마케팅’으로 당선된 사람들이 이런 후안무치한 행동에 나서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사드 배치는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정책 중에서도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들 TK 친박계가 지난 총선 공천 기간 ‘국정 발목 잡기’로 비판하며 탈당을 강요받았던 유 의원이 항의 성명에 동참하지 않고 묵묵히 정부 결정을 지지한 것과 대조적이다. 사드를 도입하지 않으면 국가 안보가 무너질 듯 지지의 목소리를 높이다가 입장을 번복하는 것은 진정한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다.

지 역구 의원들이 근본적으로 국가 대사를 좌우하는 이슈보다 지역 현안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처지는 이해하지만 적어도 국가 안보나 경제 위기 등과 관련해 여당 의원들이 정치공학적 접근으로 국정 운영 자체의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사드 배치에 따른 효용성 문제와 인체 유해성 등과 관련해 반대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최근 친박계의 무책임한 행동은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이제라도 진정성을 갖고 지역 주민 설득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4. 과학적 검증 믿고 ‘사드 괴담’ 퍼뜨리지 말아야

고 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 유해성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그제 정부가 북한 핵·미사일을 방어할 사드 포대를 경북 성주군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심지어 현지에서는 ‘사드 참외’니 ‘불임(不姙) 위험’이니 하는 괴담까지 나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기류를 의식한 듯 어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에서 “인체나 농작물에 전혀 피해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레이더 전자파 발사에 따른 시뮬레이션 작업 등 한·미 공동실무단의 분석 결과에 근거한 설명일 게다. 하지만 일부 지역민들이 여전히 과도한 우려를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다수 국민이 사드 배치에 대한 공감대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의구심을 해소할 실증적 근거를 제시하기 바란다.

사드 배치 부지로 성주군 성산리 일대로 결정되기까지 주거지로부터 1.5㎞ 떨어진 400m 고지라는 지역 특성이 십분 고려됐다고 한다. 별다른 산업시설이 없는 농촌에다 상주 인구가 적은 점이 감안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지역 농민들로선 날벼락 맞은 심경일지도 모른다. 개발에서 소외된 곳에 기피시설만 하나 더 들어선 형국이라 주민들의 피해 의식이 번지기 딱 좋은 토양이란 얘기다. 정부가 지역민들의 애국심에만 호소할 게 아니라 전문가들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사드의 안전성을 설명해야 할 이유다. 그런 맥락에서 군 당국이 어제 언론에 운용 중인 요격미사일인 패트리엇(PAC)2 및 탄도탄 조기경보 레이더인 ‘그린파인’ 기지 등을 공개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두 곳에서 측정된 레이더파 세기가 앞으로 배치될 사드 X밴드 레이더의 그것보다 높게 나왔다면 말이다.

사 드 배치에 따른 지역민들의 반발이야 이해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성주 군민들에게 부지 선정에 대한 이해를 구하면서 경제적으로 낙후됐음에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적잖은 짐을 떠맡은 지역에 대한 최소한도의 인센티브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게다. 하지만 정치권이 불순한 의도를 갖고 ‘사드 무용론’을 펴면서 민심을 흔드는 건 옳지 않다. 사드가 아무런 효과가 없다면 핵·미사일 도발을 해온 북한이나 이를 눈감아 주다시피 한 중국이 왜 기를 쓰고 반대하겠나. 더욱이 외부 세력이 전자파 등에 대한 지역민의 불안감에 편승해 광우병 사태나 제주 해군기지 건설 때처럼 괴담을 증폭시켜선 안 될 말이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그제 성주 군민들을 만나 사드가 배치되면 맨 먼저 레이더 앞에서 전자파를 시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그런 감성적 접근보다 과학적 설명이 국민들이 과도한 우려를 해소할 지름길이다. 마침 미군이 다음주 중 괌 사드 기지를 국내 언론에 최초로 공개한다고 한다. 성주 군민 대표들도 여기에 동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드 전자파가 유해하다면 고지대인 성주와 달리 평지에다 인구 밀집 지역에 자리 잡은 괌이 더 위험할 게다. 말로 백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번 눈으로 보여 주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겠나. 정부는 각종 사드 괴담이나 유언비어를 차단하는 가장 확실한 방책은 민심에 투명하고 진솔하게 다가서는 일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5. 김영란法, 부패근절은 좋지만 불필요한 혼란 최소화해야

국 제투명성기구는 부패를 ‘사적(私的) 이익을 위한 공적(公的) 직위의 남용’으로 정의한다.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170여 개국 중 10년째 40위 안팎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3월 국회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통과됐을 때 많은 국민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부패를 이제야 뿌리 뽑을 수 있게 됐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9월 28일 시행되는 김영란법에 대해 각계에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2012년 입법예고 뒤 이듬해 국회에 제출됐을 때부터 적용 대상이 공직자, 교직원, 언론 종사자와 가족까지 400만 명으로 너무 넓고 위헌 소지도 있다고 지적됐지만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거치면서 신중한 논의 없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최근 동아일보가 8회에 걸쳐 보도한 ‘김영란법 필요하지만 이대론 안 된다’ 시리즈에도 “법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걸면 걸리는’ 모호한 규정이 너무 많다”는 공감의 소리가 이어졌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수사기관의 악용 가능성과 배우자 신고 의무의 문제점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을 정도다.

김영란법 의 가장 큰 문제는 금지 항목 15개와 허용 행위 7개의 기준이 모호해 주무 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조차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분명하게 가르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법기관이 이 법을 무기로 ‘사찰’에 나설 수도 있다. 직무와 관련된 식사비까지 3만 원이라고 법령으로 정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합리적 소통과 교류까지 가로막을 위험이 다분하다. 부패 추방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개인의 본질적인 자유와 권리에 관한 헌법적 가치마저 훼손해서는 안 된다. 농어민과 화훼상인, 유통업체뿐만 아니라 호텔 골프장 요식업계에 미치는 파장도 만만찮을 것이다.

김용철 반부패정책학회장은 “김영란법의 취지는 공직자들의 뇌물 수수와 인사 청탁을 막는 것”이라고 했다. 국회는 의원들을 부정 청탁 대상에서 쏙 빼고 교사와 언론사 종사자들을 포함시켰다. 법이 통과된 지 5일 만에 대한변호사협회는 언론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소송을 냈다.

국회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당초 취지대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 적용 대상을 선진국처럼 명확하게 고치고 이해충돌 방지 규정도 되살려야 한다. 혼란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겪고 나서 개정하겠다는 국회는 무책임하다.

[중앙일보]

6. 개방과 융합의 힘 보여주는 ‘포켓몬 고’ 열풍

대표적 피서지인 강원도 속초가 때이른 대목을 맞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게임회사 닌텐도가 미국 증강현실(AR) 기업인 나이언틱과 함께 개발한 ‘포켓몬 고’라는 게임 덕분이다. 이 게임은 ‘피카’와 같은 ‘포켓 몬스터’ 캐릭터들을 휴대전화 위치정보시스템(GPS)을 이용해 찾아 모으는 내용이다. 지난 7일 미국과 호주 등에서 처음 출시됐는데, 가입자 수와 이용 시간이 전무후무한 속도로 늘고 있다. 최근 5~6년간 맥을 못 추던 닌텐도 주가도 지난 일주일 새 75.9% 급등했다.

‘포 켓몬 고’ 열풍은 개방과 융합이라는 4차 산업혁명의 추세를 잘 보여 준다. 오랫동안 세계 최고의 게임회사로 군림해 온 닌텐도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모두 ‘내 것’만을 고집해 왔다. ‘수퍼 마리오’ 같은 게임을 ‘게임보이’나 ‘위’ 같은 전용 게임기로만 즐길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포켓몬 고’는 이런 폐쇄성을 벗어나 안드로이드나 애플 휴대전화로 즐길 수 있게 했다. 예전처럼 자사의 게임기를 고집했다면 이런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포켓몬 고’는 사실 복잡한 게임이 아니다. 휴대전화를 들고 가상의 캐릭터를 찾아다니는 일종의 보물찾기 놀이다. 그럼에도 화제를 모으는 건 캐릭터 파워와 GPS라는 정보통신(IT) 기술이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TV에서 ‘포켓 몬스터’를 보고 휴대전화를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20~30대 젊은 세대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꼭 새롭고 거창한 신기술이어야만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답 답한 건 한국의 현실이다. 우리에겐 ‘미키 마우스’나 ‘포켓 몬스터’ 같은 세계적 캐릭터가 없다. ‘뽀로로’가 성공했다지만 유아용 캐릭터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정부와 기업 모두 중후장대 산업 위주의 하드웨어 마인드를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규제도 마찬가지다. 지도를 해외에 반출할 수 없다는 법규 탓에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포켓몬 고’ 게임을 할 수 없다. 셧다운제처럼 게임을 유해물질 취급하는 규제도 수두룩하다. 개방과 융합이 구호에만 머무르고 있다. 이래서는 ‘크리에이티브 코리아’가 불가능하다.

7. 연봉 9600만원 현대차 노조의 어이없는 파업 이유

대 자동차 노조가 또 파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올해로 5년 연속이다. 매년 자동으로 오르는 호봉승급분 이외에 기본급을 15만2050원(7.2%) 올려달라는 것이 명분이다. 지난해 회사가 벌어들인 순이익의 30%도 내놓으라고 했다. 현대차에 따르면 이들의 1인당 연평균 급여는 9600만원이다. 이것도 모자라 임금을 더 달라며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겠다니 어이가 없다. 실업자가 넘쳐나고, 경제가 장기 침체국면에 들어선 마당에 이게 우리나라 대표 기업의 노조가 할 행동인가 싶다.

더 어이없는 건 일반직과 연구직 조합원(8000여 명)에게 승진거부권을 보장하라는 대목이다. 자칫 회사가 어려워져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 그 소용돌이를 피하려 승진도 거부하고 노조의 우산 아래 있겠다는 뜻이다. 이는 경영진의 고유권한인 인사권을 내놓으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모든 회사원의 꿈인 승진을 거부할 정도면 그들에게 창의성이나 생산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자리나 지키고 안주하려는 그들에게 회사의 일원으로서 사명감을 바랄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올 1분기 현대차 국내공장 가동률은 98.4%로 5년 만에 최저치다. 주문이 줄어 생산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국내 공장에서 자동차 한 대 만드는 데 26.8시간이 걸리는데 미국 앨라배마 공장은 14.7시간에 불과하다. 해외공장의 생산·판매실적은 2010년에 비해 70%나 급증했다. 국내 공장은 쪼그라드는데 해외공장은 날개를 달았다.

지금이라도 노조는 현대차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막무가내식 파업을 당연한 문화쯤으로 여긴다면 현대차 조합원은 물론 수십만 협력업체 근로자의 일자리도 위태로워진다. 노조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면 경영진이 각오를 다져야 한다. 국내 공장을 한동안 닫을 각오로 대처해야 한다. 창의력도, 회사의 일원으로서의 사명감도 포기한다면 경쟁력을 바랄 수 없다. 공장 문을 완전히 닫아야 하는 상황이 오기 전에 일자리의 소중함을 알도록 해야 한다. 한국 대표 기업이 취해야 할 최소한의 자세다.

[매일경제]

8. 얼음 위 불꽃 같은 자산거품 리스크 관리 만전을

홍 수처럼 불어난 글로벌 유동성이 자산시장을 밀어 올리고 있다. 일부 자산시장에서는 거품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뉴욕 주식시장의 다우존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지난 5개월 새 17%씩 뛰어 나란히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S&P 500 종목 주가수익비율(PER)의 역사적 평균은 16배 정도인데 지금은 27배 가까운 수준이다. 그만큼 기업 수익성에 비해 주가가 높다는 뜻이다.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지만 글로벌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지난 2월 이후 15%나 부풀었다.

초 저금리가 키운 채권시장 거품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저께는 독일이 사상 처음으로 10년 만기 국채를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했다. 투자자들은 독일 정부에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보관료를 무는 것이다. 유통시장에서는 이미 20년짜리 일본 국채와 50년짜리 스위스 국채까지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채권 투자의 큰손 빌 그로스는 13조달러나 되는 마이너스 금리 채권을 '언젠가 폭발할 초신성'에 비유했다.

실물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자산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는 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코스피는 5개월 새 10% 올라 2000선을 회복했다.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갈 곳을 잃은 돈은 특히 부동산시장으로 쏠리고 있다. 일부 재건축과 신규 분양 아파트는 과열로 치달았다. 전국 땅값은 지난해 5% 뛰어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국내외 자산시장의 열기는 얼음 위의 불꽃 같은 것이다. 자산시장 활황이 지속되려면 실물 경제가 탄탄하게 받쳐줘야 하는데 지금은 되레 저성장 고착화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물 경제와 괴리된 자산 거품은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고 이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미국 연준이 금리 정상화를 서두르지 않고 한국은행도 통화 완화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과잉 유동성에 의존하는 자산 가격 상승은 매우 위험하다. 금융감독 당국과 투자자들은 자산시장 거품을 경계하며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때다. 넘치는 유동성을 생산적인 부문으로 돌리는 대책도 시급하다.

 

[조선일보]

9. 노골적 친박·비박 대결 새누리黨, 총선 大참패 벌써 잊었나

새 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14일 서울의 한 대형 컨벤션센터를 빌려 '전당대회 2주년 기념행사'를 치렀다. 2년 전 자신이 당대표가 됐던 전당대회 때의 조직원 1300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행사였다.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반드시 김무성" 같은 구호를 외치는 등 무슨 출정식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였다. 총선 참패로 붕괴한 지도부를 새로 뽑는 8월 9일 전당대회를 염두에 둔 자리였다고 볼 수 있다.

 

김 전 대표는 이번에 출마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가 이러는 것은 내년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전당대회에서 유리한 구도를 만들어놓겠다는 뜻일 것이다. 그는 이미 비박(非朴) 대표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이를 위해 인위적 단일화도 필요하다고 했다. 김 전 대표는 불과 3개월 전 총선 대(大)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참패의 가장 큰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이 져야 하지만 김 전 대표라고 해서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사람이 또다시 계파 조직 대결, 세 대결을 노골적으로 부추기고 있는 것을 국민이 고운 눈으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친 박(親朴)의 행태도 더 이상 봐주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엔 무슨 일이 있어도 당권을 놓을 수 없다며 최경환 의원에게 몰려가 "당신은 홀몸이 아니다"며 나서라고 했다. 최 의원이 결국 거부하자 이번엔 서청원 의원에게 몰려가 출마를 강권(强勸)하고 있다. 당선 가능성을 재고 있는 서 의원도 새누리당 최고 현역 원로의 처신으로는 도저히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친박은 이미 비대위원장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끌어내렸고 사무총장마저 밀어냈다. 패거리 지어 몰려다니며 친박이 아니면 모두 적(敵)을 대하듯 하는 패권주의 행태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국 민이 총선 때 새누리당을 심판한 것은 이런 친박의 독선과 서로를 잡아먹을 듯한 당내 계파 정치에 질릴 대로 질렸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걷어내라고 치르는 전당대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진흙탕 싸움을 벌인다면 전당대회 이후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벌써 후보들이 경쟁자의 과거 비리를 들추어내고 '금수저' 같은 자극적인 말로 상대를 공격하고 있지 않은가.

 

지 금 이 나라는 북의 핵·미사일 실험, 사드 배치, 미·중의 남중국해 충돌 등 국가의 명운(命運)이 걸린 문제들 속에서 살얼음판 걷는 듯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런데도 명색이 집권 여당에 몸담고 있다는 사람들이 당 주도권이나 쥐려고 집안싸움에 골몰하고 있으니 여당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새누리당 사람들은 총선 직후만 해도 혁신을 외치며 당 이름만 빼고 다 바꾸겠다고 했다. 그러나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10. 김정주 넥슨 창업주의 비상장주식 로비, 진경준뿐인가

김 정주 넥슨 창업주가 엊그제 검찰 조사에서 "진경준 검사장에게 2005년 넥슨 주식 매입 자금 4억2500만원을 무상으로 줬다"고 진술했다. 진 검사장도 이를 인정했다. 넥슨 측은 지난달 "진 검사장에게 돈을 빌려줬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부정한 돈거래를 감추려고 진 검사장이 4억2500만원을 넥슨 계좌에 입금하고 석 달 뒤 다시 돌려받기까지 했다고 한다. 검찰은 사실을 감추려고 수사를 방해한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한다.

 

지 금까지 드러난 사실은 친한 친구라는 이유로 벤처기업 창업자가 검사에게 4억원이 넘는 회사 주식을 공짜로 줬다는 것이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당시 넥슨은 매년 수백억원씩 흑자를 내면서도 상장은 하지 않아 보통 사람은 주식 자체를 구경하기도 어려웠다. 김정주 당시 넥슨 대표가 검사 친구에게 귀한 회사 주식을 그저 '우정의 증표'로 주었을 리 없다. 시중에선 김 전 대표가 병역비리와 횡령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를 피하려고 이런 일을 벌였다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검찰은 부정한 주식 거래를 둘러싼 배경이 무엇인지 밝혀내야 한다.

 

이번 사건은 벤처사업가가 주식을 미끼로 검찰에 손을 뻗쳤다는 점에서 과거 재벌이 권력자들 뒷돈을 챙겨주며 로비를 일삼던 구태(舊態)를 빼닮았다. 2000년대 초반 IT 버블 당시 일부 기업 대표들이 회사 지분을 로비 수단으로 활용했던 벤처 비리의 재판(再版)으로 비치기도 한다. 1세대 벤처기업인이 재벌들 못된 버릇부터 흉내냈다니 한심할 따름이다.

 

비 상장 주식을 뇌물로 이용한 로비가 진 검사장 한 명뿐이겠냐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2011년 일본 증시에 상장될 당시 넥슨의 주주 가운데 지분이 많은 50인 중 38명이 한국에 주소지를 뒀다. 지분이 적은 기타 주주도 354명에 달했다. 넥슨은 이번 사태가 불거진 뒤에도 과거 비상장주식 거래와 주주 변화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누군가 진 검사장처럼 비상장 상태에서 주식을 받은 뒤 되팔아 차익을 챙겼는지 알 수 없다. 검찰은 넥슨이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비상장주식 로비'에 나섰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해야 한다. 넥슨의 '비상장주식 로비'가 규명돼야 재벌 구태를 흉내내는 벤처기업들의 몹쓸 행태가 사라질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동아일보][밤샘 톡톡]야행 끝에 요지경을 본다‘올빼미족’에 교통량도 늘어
“낮 에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야간에는 119를 찾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밤에 대기실에서 잠시 눈을 붙여 보지만 깊이 잠들지는 않습니다. 화재나 구조출동 벨이 울리면 빨리 가려고 서두르다 발목을 삐는 일도 있습니다. 식당에서도 벨소리가 울리면 괜히 놀라기도 하죠.”―은소민 씨(32·신당119안전센터 구급대원)

“밤에 근무가 많다 보니 일반 직장인들과 생활패턴이 잘 안 맞아요. 그래서 연애하기도 힘들죠. 그렇다 보니 오히려 병원 내부에서 인간관계가 돈독해지기도 합니다. 결혼도 교대근무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병원 사람과 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저 역시 같은 간호사와 결혼했답니다.”―이병걸 씨(33·세브란스병원 응급실 간호사)

“새벽 3, 4시까지 일을 할 때가 많아요. 통근 시간이 1시간 30분이 넘는데 왔다 갔다 길에서 3시간을 허비해야 하죠. 그래서 그냥 회사에서 밤을 새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작업하곤 합니다. 정말 바빠서 야근을 하는 경우가 많아 야식도 안 시켜 먹고 일만 하는 게 대부분입니다.”―박현주 씨(25·디자이너)

“대 한극장 옆에 애견센터가 많아요. 거기도 일이 늦게 끝나는데 낮에 바쁘니까 생일파티를 못 했다가 새벽에 저희 가게에 와서 케이크 놓고 축하 파티를 할 때가 종종 있더라고요. 늦게 오시는 손님들은 영화감독이나 애견센터 직원, 새벽에 인쇄 작업하는 분이 대부분입니다.”―전성순 씨(45·서울 충무로 진양상가 곰장어집 사장)

“전국 도로의 야간 교통량이 늘었습니다. 통계를 낼 때 야간 시간은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를 말하는데, 지난해 야간 교통량은 5년 전인 2010년에 비해
4.2% 증가했습니다. 전체 차량 등록대수가 늘어 야간 교통량이 증가한 것으로 보입니다.”―박현석 씨(42·건설기술연구원 연구원)

기다리는 사람들


“나 이키 조던 시리즈를 사기 위해 매장 앞에서 이틀까지도 버텨 봤어요. 단순히 신발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게 아니라 조던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친목을 다지는 시간이기도 하죠.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을 갈 때에는 같이 기다리는 분들이 대신 기다려 주기도 합니다. 물티슈를 이용해 간단히 몸을 씻기도 하고요.”―서원 씨(28·회사원)

“신화 팬이었던 중학교 3학년 때 대구 동성로에서 에릭 사인회가 열렸어요. 전날 밤부터 동네 애들이 종이상자를 주워 와서 길 한가운데 깔고 앉았죠. 거기 앉아서 컵라면 먹고 팬들끼리 다 같이 신화 노래 틀어 놓고 따라 부르며 밤을 새웠습니다.”―이수지 씨(25·취업준비생)

“새로 출시되는 아이폰6S의 첫 번째 구매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전날 오전 8시 30분부터 명동 프리스비 앞에 캠핑의자를 갖고 가서 대기했어요. 너무 심심해서 두 번째 대기자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오후 1시가 다 돼서야 오더라고요. 출시 시간까지 기다리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죠.”―오원택 씨(30·잡지사 에디터)

공부하는 사람들

“수능이 얼마 안 남아서 마음이 급해요. 독서실에서 새벽까지 공부하다 나와요. 엄마가 불안한지 데리러 나오세요. 고등학교 3학년이 5시간 이상 자면 안 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저 외에 다른 친구들도 다들 잠을 확 줄입니다. 저희 반에도 독서실을 안 다니는 애들이 없더라고요.”―김소미 양(17·고교생)

“대학교 미생물 실험실에서는 실험 결과를 기다리느라 밤을 새우는 일이 예사죠. 밤사이 세포가 자라거나 바이러스 박테리아가 자라야 원하는 실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워낙 공부할 양이 많아서 밤새우는 경우가 흔한데 새벽에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중간에 실험실에 가서 확인하고 오곤 해요.”―전수진 씨(23·대학생)

“전 공이 의상학인데 과제를 하다 보면 친구들과 함께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아요. 그때마다 카페에서 케이크를 한 조각씩 사왔어요. 기운 내자고 다 같이 한 조각씩 먹으려고요. 작업하다 출출해지면 또 야식을 시켜 먹곤 해요. 다들 피곤해서 작업하다가 옷핀에 찔리고 다치는 일도 많지만 모두 소소한 재미죠.”―김현재 씨(25·대학생)

새벽장을 보는 사람들

“청 량리 도매시장에 오전 3시 정도에 도착했어요. 지금이 5시 15분이니 5시 30분 정도에 가게를 열겠네요. 가게는 오후 7시까지 여니까 잠을 별로 못 자죠. 이렇게 일한 지 한 40년 됐어요. 힘들다고 생각하면 일 못 해요. 재미로 한다고 생각해야죠.”―조대권 씨(66·서울 수유재래시장 야채가게 사장)

“중국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제가 살던 고향은 다들 집에 일찍 들어가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한국은 새벽에도 안전하고 나와서 노는 사람도 많아 늦게 들어가도 괜찮죠. 곱창이나 삼겹살, 닭발구이 등을 먹고 마음에 드는 코트를 구입하기도 했어요. 청춘을 즐기고 있다는 기분도 들고 스트레스도 풀리죠.”―유학비 씨(29·핸드백 브랜드 직원)

“미국에서 30년을 살았는데 정말 동대문 야간시장은 세계에서 으뜸가는 수준이에요. 밤에 와서 야식도 사 먹고 혼자 윈도 쇼핑을 하며 뭐가 지금 유행하는지 살펴보기도 해요. 야간 시장 둘러보고 내일 첫차를 타고 집에 가거나 걸어서 남대문시장에 가보려고요. 남대문시장에 가면 손녀 줄 예쁜 옷을 살 거예요.”―이승연 씨(58·주부)

노는 사람들

“술 먹고 통금 시간이 지나 기숙사에 들어가면 벌점을 받거든요. 기숙사가 열리는 오전 5시까지 밖에서 놀며 밤을 새우곤 합니다. 한창 놀다가 기숙사 창문이 열려 있는 걸 발견하면 같이 놀던 친구들끼리 창문에 몸을 끼워 넣어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다 몸집 큰 친구가 창문에 낀 모습을 보고 실컷 웃기도 했죠.”―엄지이 씨(22·대학생)

“남자 친구랑 헤어진 뒤 저를 위로해 주겠다며 친구가 불러냈어요. 둘이 맥주를 준비해 동대문 영화관에서 새벽 내내 영화 세 편을 연달아 보여주는 ‘무비올나이트’로 영화를 봤어요. 중간에 잠깐 졸았지만 전체적으로 보는 내내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어서 좋았어요.”―이하연 씨(27·변호사)

“야 간에 아파트단지 구석에서 술 먹고 밤늦게까지 고성방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거의 다 고등학생이에요. 술 먹을 때 담배 피우는 애들도 있는데, 보니까 요즘은 여학생이 많더라고요. 남학생들과 함께 피우는데 할 말이 없죠. 장난치는 고등학생들도 있는데 밤에 1층 문 두드리고 도망가는 아이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그런 애들 잡아서 학교에 연락하고 다시는 안 하겠다는 각서도 받고 그러죠.”―김모 씨(73·아파트 경비원)

“아프리카TV라는 곳에서 리듬게임 방송을 했어요. 팬도 많고 시청 순위도 꽤 높았어요. 방송을 하는 게 너무 재미가 있어서 학교 갔다 오면 PC방에서 밤새우며 꾸준히 했죠. 나중에는 저를 따라서 아프리카TV 방송을 PC방에서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생겨나기도 했죠.”―최예랑 씨(30·중국어 번역 프리랜서)

“작 년 1월에 친구와 새벽기차를 탔어요. 밤바다를 가기 위해서였죠. 골목길에서 야경을 내려다 보니 마치 별바다에 떠 있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해가 뜨기까지 한 시간은 걸리더군요. 정말 추워서 어그부츠 신고 재킷 입고 담요까지 몸에 둘둘 말고 있었어요.”―문소영 씨(23·대학생)


2. [동아일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터미널터미널 ― 이홍섭(1965∼ )

젊은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버스 앞에 세워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지시곤 했다
강원도 하고도 벽지로 가는 버스는 하루 한 번뿐인데
아버지는 늘 버스가 시동을 걸 때쯤 나타나시곤 했다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대 병원으로 검진 받으러 가는 길
버스 앞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어디 가시지 말라고, 꼭 이 자리에 서 계시라고 당부한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벌써 버스에 오르셨겠지 하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그 자리에 꼭 서 계신다


어느새 이 짐승 같은 터미널에서
아버지가 가장 어리셨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터미널이 ‘여행’의 출발선이라면 좋겠다. 나를 더 멋진 곳으로 데려다줄 좋은 곳. 이런 터미널만 알고 있다면 당신은 환한 인생을 살아온 셈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살면서 알게 된다. 피곤하고 어두운 터미널과 쓸쓸하고 외로운 터미널 등을 배우게 된다. 이홍섭 시인의 시에도 또 다른 인생의 터미널이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어린 아버지의 터미널’이다.

시 인의 고향은 강원도에 있다. 어린 시인은 가끔 아버지를 따라 타지에 나왔는데, 돌아갈 때는 버스를 놓칠까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기댈 곳은 아버지뿐인데, 아버지는 한참 자리를 비우곤 했다. 아버지가 안 오면 어쩌지, 버스가 떠나면 어쩌지, 나는 어쩌지, 이런 생각으로 어린 시인은 발을 동동 굴렀을 것이다.

다 자란 시인은 또다시 터미널에 오게 되었다. 예전에는 아버지를 따라 왔는데, 이제는 아들이 아픈 아버지를 모시고 왔다. 버스를 타기 전에 아들은 커피도 마셔야 했고 담배도 피워야 했다. 돌아와 보니, 아버지는 버스 앞에 꼼짝없이 서 있었다. 마치 버스와 아버지를 놓칠까봐 자리를 지키던 어린 자신처럼, 늙은 아버지는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아들이 안 오면 어쩌지, 버스를 놓치면 어쩌지, 나는 어쩌지, 이런 생각으로 힘없는 아버지는 맘을 졸였을 것이다.

자라 보니, 아버지는 완벽한 사람도 멋진 사람도 아니었다. 잘생기지도, 강하지도, 유명하지도 않았다. 대단한 아버지를 잃어가면서 우리는 소중한 아버지를 알게 된다. 아마도, 아버지는 자식에게 나이와 힘을 나누어 주느라 다시 어려졌는가 보다.


3. [연합뉴스]<최재석의 동행> 검은 세단에서 보이는 세상은 작다

모 르는 게 약인데 알고 나니 괜스레 신경이 쓰인다. 건강검진 얘기다. 올해는 처음 자율신경균형검사(스트레스 검사)라는 걸 했는데 3가지 항목 모두가 '매우 나쁨'으로 나왔다. 검진기관에서는 카페인 음료나 음주, 흡연을 줄이고 충분한 휴식 및 균형 잡힌 식사, 적절한 운동을 하란다. 틀에 박힌 건강법 말고 어디에서 스트레스를 받는지도 좀 알려줬으면 좋으련만 덩그러니 걱정거리 하나 던져주고 알아서 잘하라는 식이다.

원래 매사에 걱정이 많고 예민한 성격 탓에 스트레스를 쉽게 받는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런 데이터를 받고 보니 일할 의욕도 떨어지고 기분이 영 개운찮다. 스트레스 원인을 곰곰이 따져보다가 내가 지금 행복한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포르투갈이 이달 11일 끝난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에서 우승한 후 팀의 주역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세계적인 스타가 축구 인생을 걸고 조국의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뛰어왔다니 우승 순간이 얼마나 벅찼을까. 그의 행복이 부러울 따름이다.


나 는 언제 행복했던가. 행복을 위한 목표는 무엇인가. 훗날의 막연한 행복만 믿고 지금의 작은 행복을 포기하고 살고 있지 않은가.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문다. 한국인은 먹고살기 위해,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노후 걱정 때문에 등등 갖가지 이유로 너무 열심히 일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2천124시간으로 OECD 회원국 평균(1천770시간)보다 무려 354시간이 길다. 멕시코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이 일한다. 그런데도 국민이 느끼는 행복감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것이 각종 지표에 나타난다. 올해 3월 발표된 유엔의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한국이 세계 157개국 중 58위로 작년보다 11계단이나 떨어졌다.

행복감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희망이 있을 때는 현실이 힘들어도 그나마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는 희망을 주는 소식이 언제 있었던가 싶다. 남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정신도 점점 찾기 힘들다. 계층 간 차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엄연히 존재하는 세상이다. '민중은 개·돼지', '신분제 공고화'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교육부 고위공무원으로 있었다는 게 단적인 사례다.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서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그만큼 커지게 마련이다. KB금 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이달 6일 발표한 '2016년 한국 부자 보고서'만 봐도 부의 쏠림현상이 뚜렷하다. 지난해 금융자산 10억 원이 넘는 사람(부자)이 21만1천 명으로 전년 대비 15.9% 증가했다. 전체 인구 중 부자의 비율은 2011년 0.28%에서 지난해 0.41%로 늘었다. 이 0.41%가 전체 금융자산의 15.3%를 차지했다. 미국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를 '한 사회의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의 논리만 작동하고 정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사회적 가치의 편중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정치는 우리 사회의 가치를 배분하는 법과 제도를 만든다. 그 정치가 잘못되면 법과 제도의 당사자인 국민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에게 주어진 권력은 특정 세력이나 계층이 아닌 다수의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써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은 국민의 삶을 모르고서는 제대로 할 수 없는 법이다. 그 일의 시작은 정치인의 특권 내려놓기가 될 것이다. 지하철을 타 보지 않고서는 지하철 문제를 알 수 없다는 논리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하다. 국민의 눈높이까지 내려가지 않으면 그들의 애환과 고통을 알 길이 없다.

며칠 전 한 조간신문에 20대 국회의 한 초선의원이 백팩을 메고 대중교통을 기다리는 모습이 사진으로 실렸다. 어느 북유럽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모습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참 신선한 풍경이다. 초선 비례 대표를 중심으로 특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다니 변화의 희망이 보인다. 국회의원에겐 한 달에 차량유지비 35만8천 원과 기름값으로 110만 원이 지급된다. 이 돈으로 대부분 의원이 검은색 세단 승용차를 빌려서 이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검은 세단에서 보이는 바깥세상은 너무 작다. 버스를 타고 보는 세상은 더 크다. 게다가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 더욱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다.


4. [기고] 한류의 매력에 빠진 불가리아/신부남 주불가리아 대사

‘불 가리아’ 하면 떠오르는 것은 요구르트, 장미오일, 장수마을 그리고 아름다운 흑해 연안 휴양지 정도가 아닌가 싶지만, 기후 좋고 공기 신선하고 미세먼지 적고 인프라가 적당히 개발돼 계곡에는 자연산 송어가 넘치고 대부분 농산물이 친환경 제품으로 물가는 한국의 반 정도로 문명사회에 있는, 지구의 비경이 있다면 여기가 아닌가 싶다.


남 부에 있는 로도피 산간은 장수촌으로 유명한데 맑고 깨끗한 공기, 친환경적인 식생활, 제올라이트가 함유된 이온수가 비결이라고 한다. 국토 곳곳에서 분출하는 광천수는 위장, 관절 등에 특효가 있으며, 1000여개의 온천 중 약 80%는 의료적 효과가 있어 의료관광이 이어지고 있다. 스트레스에 찌든 현대인에게 오아시스인 바 우리나라 의사도 이곳에 요양병원을 세우려고 한다.

아울러 5000년의 역사를 지닌 와인 생산국으로 특히 세계 와인 마니아에게는 가격 대비 맛과 질이 뛰어나 ‘아는 사람만 아는 와인’으로 통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만 나는 ‘마부르드’라는 품종이 유명하다.

또 한 불가리아는 우리에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풍부한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나라다. 전국에는 발굴되지 않은 스파르타쿠스의 트라키아 및 로마 시대 유적, 특히 유럽 내에서는 가장 많은 고대 거주지와 1만여개의 무덤이 땅속에 묻혀 있어 고고학자들에게 불가리아는 꿈의 땅으로 불린다.

우리와는 지리적으로 멀리 있으나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릴라 수도원 등 수도원과 교회를 중심으로 독실한 신앙심과 정신문화를 바탕으로 500년간의 오스만터키 지배 등 수많은 외세 침략을 극복하고 정체성을 지켜 왔다. 지금도 700만 인구의 나라에 2400여개의 정교회와 200여개의 수도원이 있다.

고유의 문자도 가지고 있는데, 855년 키릴과 메토디 형제가 글라골이라는 문자를 만들었으며 이후 제자들이 러시아 등 슬라브권 국가들이 사용하는 ‘키릴문자’로 발전시킨 것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

그 런데 우리에게 놀라운 것은 이 나라에서 케이팝이나 한국 드라마와 영화뿐 아니라 한국어와 한식, 전통문화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대한 관심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에 약 3000명의 한류 팬이 수십여 개의 크고 작은 동호회를 운영 중이며, 온라인 한류 라디오 방송도 있다.

여기서 부는 한류 바람은 학교교육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소피아대학은 한국학과를 2010년부터 독립 학과로 운영해 유럽에서 제일 많은 8명의 교수를 보유하고 있다. 소피아 소재 명문 외국어전문학교에는 2011년 고교 과정에 한국어 반을 처음 개설한 후 2013년에는 초등과정에 한국어 반을 열었고 내년에는 중등과정도 개설할 예정이다. 올 6월 처음으로 한국어반 졸업생을 배출해 필자가 졸업식에서 축사를 했는데 이는 유럽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다.

한국에 대한 불가리아인들의 관심이 큰 것은 문화적·역사적 유사점 특히 전쟁 후 폐허 속에서 놀라운 국가 발전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한국을 닮고 싶어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러한 나라에 현대인들이 찾는 여러 친환경적인 요소들이 산재하고 있어 앞으로 이 나라의 가치는 계속 높아질 것이다.


5. [중앙일보][마음산책] 우리에겐 ‘적당한’ 책임이 있습니다

지 인을 통해 특이한 독일 친구 한 명을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 온 지 5년이 넘었다는데 우리나라 말을 거의 하지 못했고 한국 문화나 역사에도 그리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알고 보니 원래 계획은 일본에 있는 대학원에서 석사 공부를 하는 것이었는데 일본에선 장학금을 받을 수 없어 차선책으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에 온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일본 음식은 잘 먹는데 조금이라도 매워 보이는 우리 음식은 먹어 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석사 프로그램은 영어로 진행됐기에 한국말을 배울 필요가 없었으며 지금 다니고 있는 한국 회사에서도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대화가 진행될수록 이 친구는 한국 생활에 대한 불만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일단 서울의 공해가 너무 심하고, 일본에 비해 거리가 더러우며, 사내 문화가 극도로 경직돼 있어 숨이 막힌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서열문화가 심해 회의 시간에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도 번번이 상관으로부터 무시만 당할 뿐 바뀌는 건 하나도 없다고 말이다. 문제점만 조목조목 끄집어내 지적하는 독일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이야기도 아니어서 서양 사람이 우리나라 회사에서 고생이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도 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 그러면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일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애초에 한국에 올 계획이 아니었고 일본 문화나 일본 음식을 더 선호하니 말이다. 그랬더니 이 친구 말이 그렇지 않아도 일본에서 일해 볼 생각으로 도쿄의 한 회사에서 두 달간 인턴십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일본에서 생활해 보니 오히려 한국보다 더 갑갑하더란다. 한국 사람들은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를 하거나 표정 등에서 드러나는데 일본 사람들은 속내를 통 알 수 없어 힘들었다고 말이다.

한국도 문제고 일본도 문제라면 고향인 독일로 돌아가는 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독일도 역시 문제란다. 독일인은 아시아인처럼 상냥하지 않고 무뚝뚝하며 자기 고향에는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도 없단다. 서울처럼 교통이 편리하지도 않고 빨리빨리 일 처리를 해내지 못해 답답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화가 여기까지 이르자 지금 이 친구는 전형적인 성격장애의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나 책임이 없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으려고 하는 점이 그랬다. 한국에서 살기로 스스로 선택했으면서도 그 선택에 따르는 결과의 책임은 지려 하지 않고 무조건 남 탓, 외부 조건 탓만 하는 것이다. 본인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자기는 바꿀 것이 없고 다른 사람, 외부 조건이 변해 줘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세상이 내 마음처럼 되진 않는다. 그러니 불만과 원망만 늘어나고 불행한 심리 상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의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바로 자기 책임이 아닌 경우인데도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기에게로 돌려서 자학하는 경우다. 이런 증상을 보통 신경증이라 하는데 항상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불안해하고 초조해한다. 예를 들어 외국 바이어와 같이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시켰는데 음식이 좀 늦게 나오면 안절부절못하고 음식이 늦게 나오는 것에 대해 바이어에게 반복해 사과를 한다. 사실 음식이 늦게 나오는 것은 식당의 잘못이지 본인의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자기 때문에 남들이 불행해진다고 여기면서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 책임을 지려고 한다.

사실 나도 교수로 임용돼 처음 미국 대학 강단에 섰을 때 학생들의 강의 반응에 상당히 민감했다. 학생들의 반응이 좋지 않거나 수업 태도가 불량하면 그것이 다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강의를 좀 더 잘하려는 노력은 하게 됐지만, 어느 순간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와 주지 않는 학생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리 읽어 와야 할 교재를 읽어 오지 않고, 몇 번의 기회를 주었는데도 과제를 하지 않으면서 무단결석을 일삼는 학생도 있었다. 이런 경우까지 모두 내 탓으로 돌리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은 옳지 않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부터 깨달았다.

우리에겐 ‘적당한’ 책임이 있다. 앞서 말한 독일 친구처럼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남들에게로만 돌리는 것도 문제이고, 반대로 본인 책임이 아닌 것까지 다 뒤집어쓰면서 자학하는 것도 문제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결과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가 자신의 책임을 내게 다 떠넘기려 할 때 경계선을 분명하게 긋고 그건 당신의 책임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않는 균형점을 잘 찾아 지혜로운 삶을 사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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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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