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책임지는 리더십 없었다’ 지적한 메르스 백서
정부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종식 선언을 한 지 1년여 만에 메르스 백서를 내놓았다. 모두 476쪽 분량의 백서가 나온 까닭은 간단하다. 메르스 사태의 원인을 분석하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배경을 따져 교훈을 얻고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백서는 중앙정부의 대응 조직과 협력 체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짚었다. 60대 남성이 첫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도 전염성이 낮다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은 정부의 오판은 지금 돌아봐도 안타깝고 답답하다. 8일 뒤에나 대책본부를 만들었던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에 반성의 초점이 모아졌다. 한국보건사회원구원이 설문한 관계자 291명의 절반 이상은 정부의 미흡한 대응을 문제라고 꼽았다.
위기 과정에서의 정부 소통력 부족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뻔히 방역망이 뚫렸는데도 정부는 메르스 환자가 다녀간 병원을 합당한 이유도 없이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 탓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각종 괴담과 유언비어가 퍼졌던 혼란에 정부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보의 불투명성과 비밀주의로 정부가 스스로 신뢰도를 치명적으로 떨어뜨렸다는 지적은 누가 봐도 맞는 말이다. 이질적인 집단이 대책본부를 꾸린 탓에 일사불란한 업무 조정이 애초에 쉽지 않았다는 지적도 아프게 새겨야 한다.
백서의 목소리는 한마디로 집약된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느라 책임지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설문 응답자의 76%가 지휘관리 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메르스 대응의 정부 컨트롤타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못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대목이다. 불요불급한 보고를 요구했으면서도 보고 체계가 명확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결코 메르스 사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일관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하면서 정보 소통에 소극적인 정부의 태도는 국민 불신을 배가시켰다. 정부가 앞으로의 위기 상황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정부의 반성을 토대로 제2의 메르스 사태를 예방하자는 것이 백서 발간의 취지다. 그런데도 일선 의료기관의 응급실 감염 예방 태도는 언제 위기가 있었냐는 듯 안이해지고 있으니 걱정스럽다. 방문객 출입 통제 등 권고 수칙 이행률이 최근 몇 달 새 큰 폭으로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의료 현장과 시민의 자세가 함께 변하지 않고서는 백서가 백 권이 나온들 헛일이다.
2. 국회의원 ‘김영란법’ 예외 고수, 저항 두렵지 않나
‘김영란법’ 합헌 결정 이후 후폭풍이 거세다. 법 적용 대상에서 국회의원을 사실상 뺀 데 대한 논란은 더 커졌다. 법 시행 전으로 접대를 당기려는 갖가지 꼴불견 행태들이 춤을 춘다. 주무 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는 서둘러 시행령을 법제 심사에 넘겼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 등 일부 부처들이 강력 반발하면서 식사와 선물, 경조사비 상한액인 이른바 ‘3·5·10룰’이 온전히 시행될지는 미지수다.
국민들은 부정청탁과 관련해 국회의원을 예외로 하는 조항을 김영란법에 둔 점에 대해 몹시 의아해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민원인들의 청탁이 잦은 대표적인 공직자이기 때문이다. 민간인인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에까지 엄정한 잣대를 들이댄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국회의원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의원들은 요지부동이다.
한 언론사가 김영란법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 소속 여야 의원 24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응답자 19명 중 10명이 예외 조항을 없애는 데 반대했다. 6명만이 법 개정에 찬성했다. 반면 시민단체와 변호사, 상급노조도 적용 대상에 넣어야 하느냐는 질문엔 10명이 찬성했다. 공공성이 높은 직군이라는 것이다. 공공성 측면에서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보다 더 강한 직업은 없다. 양심이고 논리고 다 팽개치면서 법 위에 군림하려는 몰염치가 놀랍다.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허수아비로 여기지 않는다면 이럴 수 없다고 본다.
김영란법이 합헌 결정을 받긴 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권익위는 헌재 결정 하루 만인 지난 29일 법제처에 김영란법 시행령에 대한 법제심사 요청서를 보냈다고 그제 밝혔다. 시행령은 법제처 심사와 차관회의, 국무회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그러나 농식품부 등이 식사·선물 금액 기준 조정을 위해 시행령을 정부입법정책협의회에 상정할 것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럴 경우 3·5·10룰이 국무조정실의 조정으로 바뀔 수도 있다. 시행이 며칠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혼란이 극심해질까 우려된다.
권익위는 물론 검찰, 경찰은 김영란법 시행 전후 혼란이 빚어지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권익위는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직종별 매뉴얼을 제작해 다음달 발간할 예정이다. 다만 농식품부 등 타 부처의 요구대로 선물 등의 상한액이 조정될 경우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청탁 금지 기준의 핵심인 ‘업무 관련성’에 애매한 경우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경찰의 자의적 판단을 줄이기 위해 촘촘하면서도 분명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엄밀한 수사 원칙도 세워야 한다. 수사 착수나 처벌이 상황에 따라 들쑥날쑥하면 표적 수사나 공정성 논란이 일 수 있다. 벌써 김영란법이 검찰의 힘만 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반부패법이 공정성을 의심받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김영란법을 외면하는 정치권과 법을 집행할 행정·수사 당국이 항상 새겨야 할 대목이다.
3. 여야 대표 선거, 큰 그림은커녕 黨 절박감조차 없다
원내 제1, 2당인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예상치 못했던 참패를 당했고, 야당 맏형인 더민주는 전통의 텃밭인 호남을 신생 정당인 국민의당에 내주는 치욕을 맛봤다. 돌아선 민심을 하루속히 되돌리지 못하는 한 새누리당은 정권 재창출 희망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더민주가 총선 때의 ‘1석 승리’에 안주한다면 정권 교체는 일장춘몽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두 당 앞에 놓인 진땀 나는 숙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양당의 대표 선거에서는 그런 절박감이 읽히지 않는다.
이정현·이주영·한선교·정병국·주호영 후보 등 범친박 3명과 비박 2명 간의 5파전으로 확정된 새누리당의 대표 경선은 계파싸움으로 일관하고 있다. TV 토론에서도 총선 패배 책임 공방에만 몰입했을 뿐 국민적 공감대를 자극할 정책이나 비전은 내놓지 못했다. 계파 실력자들이 뒤로 빠진 채 고만고만한 후보들끼리 ‘대리전’을 치르고 있으니 애당초 흥행은 언감생심이다. 원내대표라도 지낸 후보가 한 명도 없어 ‘사무총장급 대표 선거’라는 조롱까지 나오고 있지 않은가. 이런 식이라면 누가 되더라도 당내 리더십조차 제대로 세우기 어려울 지경이다.
추미애·송영길·김상곤·이종걸 후보가 나선 더민주의 대표 경선은 대여(對與) 선명성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후보들은 지난 대선의 공정성을 재론하거나 박근혜 정권을 과격하게 성토하고 나섰다. 정권 교체를 노리는 수권정당임을 확인시켜 줄 정책이나 비전 경쟁은 실종됐다. 이 후보를 제외한 3명의 후보가 ‘이래문’(이래도 저래도 문재인)으로 차별이 안 되니 전통적 야권 지지층에 호소하기 위해 청와대 및 여당과 각을 세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당 내부에서조차 ‘도로 운동권당’이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겠는가.
이번에 선출되는 두 당의 차기 대표들은 대선 구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내년 대선에서 자당 후보를 반드시 당선시켜야만 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게 된다. 탁월한 리더십으로 국민을 감동시킬 만한 정책과 비전을 개발해 제시함으로써 대선 후보를 더욱 빛나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두 당의 대표 후보들에게서는 그런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하다못해 내년 대선을 어떤 전략으로 치를지에 대한 절박한 고민도 엿볼 수 없다. 정권 재창출이든 정권 교체든 선택은 당원이 아닌 국민이 한다. 두 당의 대표 후보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만 한다.
[동아일보]
4. 조계종, 푸른 눈 현각 스님의 비판 뼈아프게 새겨야
미국 하버드대 출신 ‘푸른 눈의 수행자’ 현각 스님이 조계종을 비판하며 개혁을 촉구했다. 현재 그리스에 머물고 있는 그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달 중 마지막 한국 방문 계획을 밝히고 “앞으로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만 활동하겠다”고 적었다. 현각 스님은 “(조계종 승려로) 25년 살아보니 외국인 스님들은 오로지 조계종의 데커레이션(장식)”이라며 “한국의 선불교를, 누구나 자기 본래의 성품을 볼 수 있는 열린 그 자리를 그냥 기복 종교로 항복시켰다”고 비판했다.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인 현각 스님은 미국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조계종 화계사 숭산 스님을 만나 1992년 출가했다. 숭산 스님은 약 50명의 외국인 지식인을 출가시켰고 그중에서도 현각은 가장 잘 알려진 스님이다. “내 전생이 한국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 사랑이 남달랐던 현각 스님이 한국의 조계종에 대해 돈으로 복을 사는 기복신앙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해 불교계 안팎에 충격이 크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 발언이 조계종에 대한 결별 선언으로 해석되자 어제 한 언론에 영문 e메일을 보내 “조계종을 떠난다고 한 적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조계종의 교육은 달마의 가르침과 기술에 대한 독특하고 귀중한 그릇”이라면서도 “불행히도 정치와 돈과 극단적으로 완고한 민족주의 때문에 현재 조계종의 방향은 그 기술을 세계에 전하는 귀한 기회를 놓치고 있다”며 한국 승려와 불자들의 개혁을 촉구했다.
현각 스님의 불만은 그가 원장을 맡았던 화계사 국제선원(외국인행자교육원)이 3월 문을 닫은 것과도 관련이 있다. 조계종은 “외국인행자교육원을 폐쇄하고 은사 스님이 직접 가르치는 교육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조계종의 낡은 관행에 반발하는 외국인 승려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조계종 지도부 사이의 알력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조계종은 현각 스님이 던진 ‘기복=$, 슬픈 일’이란 표현을 죽비소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조계종 역사에 처음 등장한 외국인 승려의 비판을 낡은 관행 개선의 계기로 삼지 못하면 조계종은 세계화는 고사하고 우물 안 개구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
5. 꼼수로 출자회사 늘린 公기관… ‘공공개혁’은 헛소리였나
공공기관들이 박근혜 정부 들어 자회사를 149개나 설립해 방만 경영으로 부실을 키운 사실이 드러났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어제 발표한 ‘공공기관 출자회사 운영 실태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기관들이 정부와 사전협의 의무를 어기고 무분별하게 출자회사를 세워 매년 적자가 쌓이는데도 정부는 아예 감독을 하지 않고 있다. 이들 출자회사에 은밀하게 재취업한 퇴직 임직원들이 지난 5년간 213명이나 될 정도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공기관들의 낮은 생산성과 비효율적 경영, 과도한 임금 및 복지 등 도덕적 해이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선진국에선 국영기업 민영화 등 공공개혁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데 노무현 정부 5년간 공공기관이 260개에서 305개로 되레 늘었다. 2009년 공기업 총부채가 213조 원으로 사상 처음 200조 원을 넘어서자 정부는 공공기관 출자회사의 48%(131개) 정리 방안까지 발표했다.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지 않아 ‘관리 사각지대’에 있는 출자회사가 모기업 방만 경영을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번 평가 결과 74개 공공기관이 소유한 출자회사가 560개로 2009년 말(330개)보다 230개나 늘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수치상으로 신설된 출자회사는 302곳이지만 그나마 일부가 통폐합 또는 매각됐다. 한국가스공사는 ‘해외 진출’을 명분으로 2010년 725만 달러(약 81억 원)를 들여 우즈베키스탄 압축천연가스(CNG) 충전소를 세웠으나 최근 5년 동안 적자를 내고 있다. 중소기업유통센터가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2015년 설립한 공영홈쇼핑은 그해 190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내 중소기업유통센터의 손실로 고스란히 옮겨진 형편이다.
이처럼 출자회사가 난립하고, 상당수는 경영부실로 적자가 나는데도 정부 부처나 국회는 제동을 걸지 않고 있다. 현행 공공기관 체제가 관료, 정치인, 공공기관 임직원의 이익이 한데 엮인 거대한 카르텔 구조인 까닭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부채 감축, 임금피크제 도입 등 과거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공공기관들이 완료해 가고 있다”며 공공기관장들을 칭찬했다. 공공기관들이 출자회사를 통해 뒤로 부실을 쌓아둔 실정을 알고도 칭찬한 것인지 궁금하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주말 강원 평창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최고경영자 하계포럼에서 “노동개혁이 가장 중요한데 답답하다”고 했다. 그는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경직된 노동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었겠지만 정작 공공개혁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현실에는 눈을 감고 있다. 출자회사로 비대화를 꾀하는 공공기관 감시의 사각지대를 없애지 않고는 공공개혁의 진의를 의심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데일리]
6. 항공기 대형참사 터져야 정신 차리려나
국적 항공사들의 항공기 사고가 최근 빈발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지난 29일 일본 나리타에서 출발해 제주공항에 착륙하던 대한항공기의 앞바퀴 타이어가 활주로에서 완전히 파손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항공기가 활주로를 벗어나거나 전복되지 않아 승객과 승무원 157명 중 다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자칫 인명 피해를 동반한 대형 참사로 이어졌을지도 모를 아찔한 순간이었다.
걱정은 올해 들어 국적 항공사들의 고장이나 사고가 잦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항공은 불과 두 달 전인 지난 5월에도 일본 하네다공항을 이륙하려던 항공기의 왼쪽 엔진에서 불이 나 탑승자 319명이 비상 탈출하는 사고를 냈다. 올해 1월에는 김포에서 상하이를 향해 이륙했던 아시아나 항공기가 이륙 후 바퀴가 접히지 않는 바람에 회항하는 소동을 빚었다. 이래서야 어디 항공기를 마음 놓고 탈 수 있겠는가.
저비용 항공사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진에어 여객기가 운항 중 유압시스템 이상으로 일본 간사이공항에 긴급 착륙하는 사고가 있었다. 진에어는 1월에도 필리핀 세부에서 부산으로 오는 여객기의 출입문을 제대로 닫지 않고 이륙했다 회항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엔 김포를 떠난 제주항공 여객기가 기내 압력조절장치 이상으로 급강하해 비상착륙했다. 불길한 조짐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국이다.
잦은 항공기 사고를 가벼이 넘겨선 안 된다. 인명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방심할 일이 결코 아니다. 대형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또는 우연히 발생하는 게 아니다. 이전에 작은 기체 결함 등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나타난다는 ‘하인리히 법칙’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항공 당국과 항공사 모두 항공기 안전관리에 구멍이 뚫려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사고 원인을 명확하게 밝혀 비슷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한항공에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모든 항공사들의 안전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해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 번 일깨울 필요가 있다. 항공사들은 스스로 항공기 정비와 운항체계, 안전의식에 허점은 없는지 살펴야 함은 물론이다. 빈발하는 사고가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도록 미리미리 경계해야 한다.
7. 세제개편안 '생색내기' 논란 벗어나려면
정부가 최근 내놓은 올해 세제개편안은 침체 국면에 빠진 한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지를 내비쳐 높이 평가할 만하다. 서민과 중산층의 세금 부담은 줄이고 기업이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과세 평형성을 높이고 안정적인 세입기반을 확보해 국가경제 성장동력을 확충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정부 방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둘째·셋째의 출생·입양 세액공제액 확대가 대표적인 예다. 정부는 자녀가 1명 있는 근로소득자가 둘째를 출산하면 현행 30만원인 출생·입양 세액공제액을 50만원으로, 셋째 아이를 낳으면 70만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치솟는 육아비용은 차치하더라도 출생이 일생에 한 번뿐인 점을 감안할 때 세액공제를 몇십만원 더 받겠다고 아이를 더 낳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소득세 과세 체계에 드러난 문제점을 그대로 둔 점도 보완해야 할 대목이다. 2014년 근로소득세 납세 대상자 1669만명 가운데 거의 절반인 802만명이 세금을 한 푼도 안 내 면세자 비율이 48.1%에 달한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데에는 정부가 2013년 세액공제를 도입할 때 면세자 기준을 과도하게 낮춰 기존 납세자 상당수가 면세자로 처리된 데 따른 결과다. 세금을 내지 않는 근로자가 전체 납세대상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것은 조세 원칙은 물론 헌법에 명시된 국민개세주의(皆稅主義)를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경제가 주춤하고 있는 사이에 복지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재정건전성을 나타내는 관리재정수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자비율이 2.4%나 됐다. 관리재정수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재정의 적자 기조가 자칫 고착화할 위험마저 보이고 있다. 정부가 조세 형평의 원칙을 엄수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국민개세주의에 입각해 세원을 넓히고 공평 과세를 통해 세수를 증대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급증하는 복지 수요에 발맞춰 조세 부담을 조절하는 균형자 역할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매일경제]
8. 어린이 안전사고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적용해야
지난달 29일 전남 광주에서 네 살 어린이가 유치원 통학버스에 7시간 넘게 갇혀 있다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이는 최고 35.3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 냉방 장치가 꺼진 버스에 방치됐다. 5년 전에도 경남 함양에서 폭염 속에 7시간 동안 어린이집 차 안에 갇혀 있던 다섯 살 난 어린이가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지난달 광주에서는 차 안에서 혼자 잠들어 있던 여자 아이가 2시간 만에 발견되기도 했다.
한여름 바깥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가면 차 안 온도는 90도를 넘는다. 아이 혼자 차 안에 방치하는 것은 살인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어른들의 안전불감증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으니 참으로 큰일이다.
어린이 안전 지침이 없는 것도 아니다. 4년 전부터 어린이 등·하원 시간 기록, 통학버스 운영자와 운전자에 대한 안전교육이 의무화됐다. 어린이들이 통학버스에 방치되지 않도록 맨 뒷자리까지 반드시 확인하도록 교본에도 나와 있다. 문제는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인솔 교사는 내부를 제대로 둘러보지 않았고 유치원에서는 출석 체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 어린이 10만명당 3명 정도가 각종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최근 5년간 차 안 방치 등 통학 차량 사고로 숨진 어린이만 40명이다. 반복되는 어린이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충격요법이 필요하다. 현행법상 어린이를 차 안에 방치할 경우 최대 5년 이하의 금고나 20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지만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다. 앞으로는 고의성이 없더라도 처벌 강도를 높여야 한다.
전국 민간 어린이집은 3만7000곳이 넘는다. 영세하다는 이유로 외주업체에 통학버스 운행을 맡기거나 인솔 교사를 배치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안전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상시 점검하고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해 안전에 소홀한 어린이 시설은 과감하게 퇴출시켜야 한다.
[중앙일보]
9. 대화와 타협보다 물리적 충돌로 치달은 이화여대
교내 갈등에 경찰까지 끌어들인 이화여대 사태는 지성의 전당인 대학이 이성적 대화보다 거친 물리력을 앞세우는 반지성적 문제해결 방식으로 치달아 착잡함을 느끼게 한다. 이번 갈등은 학교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평생교육 단과대학 신설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교육부가 지원하는 ‘미래라이프대학 사업’에 이대가 추진 대학으로 선정되면서 단과대 신설에 나선 것이다. 추가 정원을 뽑아 기존 입학 정원은 유지하면서 직장인들의 라이프 사이클에 맞는 학사일정이 진행되는 단과대다. 이런 평생교육 단과대학은 고등교육의 기회 확대와 평생교육 사이클을 만든다는 국가 교육이념에 부합하는 모델이다.
문제는 이런 단과대 소식에 학생들이 ‘돈벌이’ ‘학위 장사’로 반응할 정도로 대학과 학생 간의 신뢰가 무너졌다는 점이다. 총학생회는 이번 사업이 교육부에서 30억원을 지원받는다는 점에서 학교가 돈벌이를 위해 설립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표명했다. 학생들이 질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고, 학교는 교육의 질을 높이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한데 국내 명문사학이 학생들로부터 교육의 질을 의심받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건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학교 스스로 반성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학교와 학생의 반지성적 문제 해결 방식이다. 학생들은 대화와 타협의 노력과 사회적 공기로서 대학의 역할이나 미래형 대학의 갈 길이라는 비전에 대한 고민보다 물리력을 앞세운 점거농성 방식을 택했다. 이에 맞서 총장은 경찰을 불러들였다. 대학 내에 공권력을 끌어들이는 것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도 보기 드문 일이었다. 명분도 변명도 찾기 어려운 행위다. 이로써 이대 사태는 ‘이화여대’라는 브랜드 가치를 믿고 지성적 대화로 문제 해결에 이르는 모습을 기대하는 국민을 실망시키며 새로운 갈등 국면으로 증폭되고 있다. 나름 명분이 있는 사업을 둘러싸고도 소통보다 물리적 충돌로 치닫는 명문사학의 모습에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다.
10. ‘음주운전 경찰청장' 검증 제대로 한 건가
이철성 경찰청장 내정자가 23년 전 음주운전으로 처벌 받은 사실이 언론 보도로 드러났다. 그가 경찰 간부 지위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진경준 검사장 사건으로 공직자들의 도덕성이 쟁점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경찰청장 인사 검증이 부실하게 이뤄졌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내정자는 강원경찰청에 근무하던 1993년 음주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를 내 벌금 100만원의 처분을 받았다. 당시 그는 휴무일 점심시간에 직원들과 술을 마신 뒤 개인 차량을 운전하다 사고를 냈다고 한다. 그는 또 2005년 부인 명의로 강원도 횡성군의 대지를 매입해 2층짜리 건물을 신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내정자 가족이 이곳에 주민등록을 둔 적이 없다”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 이 내정자가 정선경찰서장 재직 중 얻은 개발 정보로 부동산을 샀다는 것이다.
이 내정자는 “23년 전의 일이지만 경찰공무원으로서 음주운전을 한 데 대해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부적절한 처신에 거듭 사죄드린다”고 했다. 부동산 의혹의 경우 추후 청문회에서 사실 여부가 가려지겠지만 음주운전은 그 자체만으로 경찰청장 자격을 문제 삼을 수 있는 사안이다. 음주운전 단속을 하는 경찰의 총수가 음주운전 사고로 벌금형을 받았던 전력이 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82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해 89년 간부후보생 시험을 거쳐 경찰 간부의 길을 걸어온 이 내정자가 음주운전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 몰랐을 리 없지 않은가.
이 내정자 논란을 계기로 고위직 인사 검증을 맡고 있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진 검사장 인사 검증 실패에 처가 부동산 거래 의혹까지 불거진 우 수석이 이 내정자를 제대로 검증했는지 의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휴가 중이던 지난달 28일 경찰청장 내정 발표를 하면서 당분간 우 수석 체제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런 부실 검증 논란을 대체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주요 신문칼럼
1. [한겨레][김곡의 똑똑똑] 터치
만진다는 것, 즉 터치는 소통, 접속, 인지 따위의 현학적인 개념들로는 참으로 다 설명해내기가 어려운 말이다. 그딴 말들로 다 설명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터치에는 여전히 해명되지 않은 어떤 신비한 잉여작용들이 남는다. 개인적인 사례 중 으뜸은, 얼마 전 밥을 먹다가 마침 앓고 있던 충치를 반찬이 건드리는 바람에 까무러쳤던 경우다(깍두기가 충치의 협곡과 정확히 도킹되어 고통은 끝장이었다). 정말이지 차라리 죽고 싶은 고통이었다. 아내가 와서 슬며시 안아주고, 그로 인해 고통이 꼬리를 내리기 전까진. 또 하나의 부끄러운 사례는 담배를 끊었던 2년 전이다. 담배를 끊으니 입도 심심하고 손가락도 심심하고 해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아무 모서리나 만지던 해괴망측한 버릇이 생겼다. 만짐의 공핍을 정말 만짐으로 채우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까? 아내의 포옹이 내 충치의 반란을 누그러뜨렸던 바로 그 신비로운 방식처럼?
물론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충치의 고통을 정말로 제거한 것은 다음날 당신이 찾아간 치과 의사 선생님의 정밀한 과학이고, 무엇보다도 모서리나 만지던 일시적인 버릇은 다시 담배를 피우면서 사라질 심리적 증상이었을 것이란 반론들이 그것이다. 맞는 말이나, 반만 맞는다. 왜냐하면 충치의 고통을 영원히 제거한 것도 의사 선생님의 ‘터치’였으며, 모서리 촉각을 흡연에 다시 투항하게 한 것도 역시 니코틴과 폐의 ‘터치’였을 테니까 말이다. 터치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도, 그리고 서로에 대해 승리하고 패배하고 승복하고 다시 개기는 것도 터치끼리다.
난 터치의 이 신비한 힘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과학자들은 호르몬과 신경물질의 변화일 뿐이라고, 심리학자들은 생체자극을 통한 환영 같은 심리적 변화일 뿐이라고 대답하면 속은 편하시겠지만. 하지만 그들 역시 반만 옳다면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치는 우리의 삶에서 정말로 작동하는 실재임을 잊고 있기 때문이리라.
터치의 힘은 단지 호르몬도, 단지 심리도 아니라, 그 둘 중간쯤 어딘가를 가로지르는 놈, 다름 아닌 몸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몸은 우리가 생을 살아내며 자주 잊곤 하는 요소지만(특히 한국처럼 몸을 ‘은따’시키는 유교적 질서 아래에선), 실상 몸은 소통의 중심이고 모든 자극과 신호들의 중앙교환국이다. 몸은 진정한 지식의 저장폴더다. 그렇다면 터치는 진정한 지식의 산출이다. 가장 진정한 지식이란 감각과 그 변화의 패턴, 즉 정서에 다름 아니다. 고통스러워하던 나를 어루만지던 나의 아내가 나에게 준 것은, 단지 신경물질도 심리적 환영도 아니다. 그것은 어떤 지식이었고, 진정 내 몸을 해결하는 지식이었다. 사실 모든 소통의 근원은 터치다. 왜냐하면 모든 발신자와 수신자의 원형은 몸이기 때문이다. 원격으로도 익명으로도 소통하는 디지털 시대에 웬 몸 타령, 터치 타령이냐고? 사실 디지털의 ‘digit’도 손가락을 뜻한다. 디지털도 손가락 터치에서 온 놈이다.
마지막 변론을 ‘터치의 귀환’으로 대신하련다. 요새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다. 그것 역시 터치를 잃기 쉬운 이 시대에 맛이야말로 가장 공감되는 터치이기 때문이리라. 터치가 돌아오고 있다. 물론 이 터치를, 터치할 수 없는 티브이 스크린으로 대리하고 있음은 슬픈 일이다. 충치가 다 나았다. 아내와 함께 외식하러 나가련다. 진짜 터치를 위해. (깍두기 콜.)
2. [매일경제]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드라마 ‘태풍이 지나가고’
늘 개봉 전부터 필자를 설레게 만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 신작 ‘태풍이 지나가고’ 역시 기다림의 대상이었다. 개봉 전 먼저 만나본 영화. '역시나' 좋았다.
궁극적으로 '사랑'을 말해오는 감독은,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가족애'를 풀어낸다. 사실 그는 늘 '가족애'를 말해왔다.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해 늘 탐구해왔다. 그와 동시에 '죽음'에 대한 성찰도 꾸준히 해왔다. 이번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두 요소 모두 들어있다.
특히, 2013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이후에 발표된 세 작품은 '가족'의 탐구에 집중을 가한다. 2015년에 발표한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그랬고, ‘태풍이 지나가고’도 마찬가지다. 감독의 전작들이 늘 그래왔으나 특히 최근 세 작품들을 보면,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 흩어져 있다. 심지어 구성원들은 '가족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의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혈연 이상의 끈끈한 가족애를 발휘한다. 여기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휴머니즘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휴머니즘. 이것이 감독의 인기 비결이다.
‘태풍이 지나가고’의 료타네 가족들 역시 흩어져있다. 명작가를 꿈꾸는 사설탐정인 료타는, 부인과 헤어진 상태다. 아들과는 한 달에 한 번 만난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지난 결혼생활에 후회와 그리움이 가득한 료타. 그는 전 부인과 아들의 일상을 엿보기까지 한다. 태풍이 휘몰아치려는 날, 료타네 가족은 료타의 어머니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과연 이들의 관계는 회복될 수 있을까?
영화는, 가족의 부재와 상실을 통해 '현재에 충실할 것'을 강조한다. 료타는 가족 관계 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그다지 원만하지 않다. 이는 료타를 둘러싼 모든 생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소홀했던 그는 살아생전 아버지의 생활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누나와의 관계도 석연치 않다. 아직 철 들 날이 머나먼 듯 보이는 료타. 그는 태풍을 맞고, 그것을 지나 보낸 이후 무언가 '깨닫게' 된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로 그 메시지! '있을 때 잘 하자'는 메시지는 우리 모두다 익히 '들어와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앎을 실천에 옮기는 데는 한없이 서툴다. 마치 료타처럼 말이다. 우리는 사랑했던 이를 잃고 난 후에야 후회한다. 곁에 있을 때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한들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사랑했던 연인이 재회하고 이혼했던 부부가 재결합하기도 경우는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죽음'에 이르렀다면, 어떠한 수를 쓰더라도 후회를 메울 수 없다. 죽음은 이별의 극단적인 상황이다. 그래서 '현재의 소중함'을 전달하는 책이나 영화 등에서는 늘 죽음이라는 소재가 동반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좋은 '삶'을 위한 동기부여에는 죽음이 뒤따른다. 죽음을 염두에 둔다면, 현재에 충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료타는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을 잃었다. 뒤이어 또 다른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도 이별할 날이 올 것이다. 삶의 중요한 메시지를 깨달은 그와 우리는 이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태풍은 타격이 큰 천재지변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많은 것들을 앗아간다. 죽음, 관계의 상실은 태풍 후에 남겨진 슬픈 결과들이다. 물론, 태풍 이후 사람은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것들을 잃기 전에 그것들을 꽉 잡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있을 때 잘 하자, 후회하지 말고'. 이 가르침을 전해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3. [동아일보][표정훈의 호모부커스]여행과 독서
“제게 진짜 여행은 독서입니다. 연주 여행을 하도 많이 하니까 제게 여행이란 일처럼 다가오기 마련이죠.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도 무덤덤하게 몸만 이곳저곳 다닐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 책을 읽으면 그게 더 진실한 여행처럼 느껴집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말이다. 김영란 전 대법관도 여행 독서에 일가견이 있다.
“여행 갈 때면 책을 무척 신중하게 고릅니다. 짐도 싸기 전부터 어떤 책을 갖고 갈 건지, 그 책이 3박 4일짜리 여행에 적합한지 1박 2일짜리 여행에 적합한지 고민합니다. 가지고 간 책을 여행 도중에 다 읽어버리면 금단 증상이 나타나니까요.”(‘책읽기의 쓸모’)
소설책 갖고 여행 떠나는 서양 풍습이 우리 땅에 들어온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이효석의 장편 ‘화분’(1939년)에 나온다. ‘피곤은 했어도 긴 날이어서 초저녁부터 침실로 들어가기도 멋쩍은 판에 객실에 불을 켜놓고 이곳저곳에 앉아 소설책에 정신을 팔기 시작했다. 다 각각 몇 권씩의 소설책들을 지니고 왔던 것이 다행이어서….’
여행 중 독서, 특히 열차 안 독서는 무료함을 달래는 데 제격이다. 북한이라고 예외는 아닌가 보다. 2013년 자유아시아방송에 소개된 한 북한 주민의 말이다. “무산행 열차가 며칠 연착됐지만 차 안에서 소설책 보면서 심심치 않게 돌아왔어요. 평양역에서부터 소설책 배낭을 가지고 오른 한 여성이 외쳤어요. ‘책 보고 싶은 사람은 다 모이시오!’ 열차가 자주 연착되자 책대여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바야흐로 휴가 여행의 절정기다. 작년에 모 호텔 예약 사이트가 사람들이 여행 중 호텔 침대에서 하는 행동을 조사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9%가 책을 읽는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 전 세계 여행객들 중 가장 낮은 비율이다. 하위권은 멕시코 25%, 홍콩 27%였으며 스웨덴이 60%로 1위를 차지했고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순이었다. 한국인 여행객 대다수는 호텔에서 TV 시청이나 웹서핑을 즐긴다고 답했다.
“책 만 권을 읽어 신령스러운 경지와 비로소 통할 수 있고, 만 리를 여행하여 마침내 세상사를 제대로 따질 수 있으리.” 중국 북송시대 소동파의 말이다. 조선의 서거정(1420∼1488)도 독서와 여행을 함께 강조한다. “만 권 책을 읽어 근본을 튼튼히 하고, 세상을 유람하여 실천 능력을 기른 뒤에 비로소 큰일을 할 수 있다.” 갖고 가는 물건이 아니라 함께 가는 친구, 여행의 반려 책 한 권을 챙기자.
4. [동아일보][횡설수설/한기흥]태극기 아래 첫 금메달
‘처음’이란 말은 두근거림과 설렘을 동반한다. 오랜 염원을 이룬 ‘집단의 기억’ 속에서라면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해진다. “1976년 8월 1일 오전 10시 양정모 선수의 늠름한 목줄기에 금메달의 영광이 드리워지고 사상 처음으로 애국가가 장엄하게 세계만방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자랑스러운 태극기가 몬트리올 하늘에 휘날리자 모두는 제어할 수 없는 감격에 북받쳐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건국 후 첫 올림픽 금메달 소식을 전한 40년 전 본보 8월 2일자 1면 톱기사는 흥분 그 자체였다.
‘게임의 룰’이 역시 중요했다. 양정모는 마지막 경기에서 몽골의 오이도프에게 8-10으로 졌다. 하지만 결승 리그에 오른 선수 3명이 맞대결해 벌점 적은 선수가 우승하는 시스템 덕에 금메달을 땄다. 양정모는 벌점 3점, 오이도프는 4점, 미국의 존 데이비스는 5점.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은 일장기를 달았으니 몬트리올 쾌보에 온 나라에 난리가 날 만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또 다른 양정모를 육성할 한국체육대학교 설립을 지시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규정엔 금메달은 ‘순도 1000분의 925 이상’의 순은으로 만들고 6g 이상의 순금으로 도금하게 돼 있다. 리우데자네이루 여름올림픽 금메달도 494g의 은에 6g의 금박을 씌운 것으로 원가는 70만 원 정도. 실제 성분은 금, 은메달이 큰 차이 없으니 진짜 금인지 확인하려고 깨물어 보는 선수들이 허탈할까. 흘린 땀에 따라 달라지는 메달의 의미는 단순한 금전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데….
리우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단은 금메달 10개 이상, 종합 순위 10위 이내가 목표다. 그간 여름올림픽에서 거둔 메달은 금 81개, 은 82개, 동 80개. 남의 잔치인 올림픽에서 우린 언제나 금메달을 따보나 마냥 부러워했던 시절을 되돌아보면 격세지감이 든다. 양정모의 고향 부산 동광동 40계단 앞에선 금메달 획득 40주년 행사가 오늘 열린다. 그가 이를 악물고 뛰어 오르내린 그곳에서 국민의 환희가 영글었다.
5. [동아일보][박윤석의 시간여행]화재도 일으켰던 폭염, 그 끝에 태풍도 몰려와
삼복더위가 절정으로 치닫는 8월 5일이었다. 열기 후끈한 서울의 초저녁에 정체 모를 악취가 진동했다. 서울의 낮 기온은 36.7도까지 올라 10년 이래 최고를 기록한 날이었다. 1929년이었다.
10년 전의 최고기온이란 1919년 8월 1일에 관측된 37.5도를 말한다. 3·1운동 투옥자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서대문형무소의 감방 속에서는 똥통이 끓는다고 작가 심훈이 술회한 기미년 8월의 그 폭염.
1929년의 서울 시가에 퍼진 고약한 냄새의 정체는 유황이었다. 그 진원은 동쪽 광희문 밖 신당리로 밝혀졌다. 거기 경성부청 수도과 분실창고에 보관 중인 화공 약품들이 폭발하면서 누출된 가스였다. 수도 가설 공사에 쓰이는 유황과 초산 등 유독물질이 연일 치솟는 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린 것이었다.
저녁 7시. 창고 한 곳에서 불꽃이 일어나면서 바로 지붕이 터져나가고 불길이 건물 전체를 휩쌌다. 경성 전역의 소방대가 출동하여 겨우 불을 껐을 때는 창고 한 채가 전소되고 또 한 채를 반쯤 태운 뒤였다. 그 1시간 반 동안 맹독성 기체가 서울을 뒤덮은 것이었다.
‘작열하는 햇발은 땅덩어리를 태워버리려는 듯이 뜨거워 실내의 유황이 자연 발화하여 더운 세상에 더운 화재를 일으키고, 병원마다 일사병 환자가 넘치고, 구루마를 끌던 말과 소가 더위를 먹고 여기저기 자빠지는 등 참극이 연출되었다. 오는 13일이 말복이니 장차 얼마나 더 더우려는가.’(동아일보 1929년 8월 7일자)
20여 일간의 가뭄으로 전국의 농작물은 초토화된 상태였다. 천수답은 이미 마른 지 오래고 저수지마저 일부 바닥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이 모양으로 5, 6일만 가뭄이 더 계속되면 전국의 농작물은 거의 전멸”이라고 총독부 농무과장은 걱정했다. 경상남도의 피해가 특히 심하다고 했다.
‘벌겋게 단 화로같이 뜨거운 세상에서 다만 바라는 것은 비.’ ‘앞으로도 언제나 비가 올는지 알지 못한다.’
이러한 기사 제목들 사이로 경성측후소 관계자의 말이 실렸다.
“동해에 자리를 잡고 있는 고기압은 아직도 움직일 생각도 없는 모양이오. 얼마 전 양자강 방면으로부터 온 저기압은 동북으로 진행하는 중이므로 북조선에는 약간 희망이 있을 뿐이오. 남조선은 여전히 개어 있어 언제나 비가 올는지 알 수가 없소.”(8월 7일자)
그리고 열흘쯤 지나 희소식이 들려왔다. 멀리 남태평양으로부터 태풍이 일어 장차 한반도로 접근할 것이라는 예보였다.
‘지난 7일 필리핀 북부 루손 섬에서 생겨난 태풍은 8일 대만 서남 해상에 나타나 11일 대만을 횡단하면서 돌연 방향을 고쳐 북서로 나아가 14일에는 중국 상해의 동남쪽 항주에 접근해 거기서 어름어름하고 있었다. 온 조선이 낙망도 하고 한편으로 기대도 하고 있었는데 15일 아침 태풍은 결연히 그곳을 떠나 조선쪽인 동북으로 출발을 했다고 한다.’(8월 16일자)
태풍은 무섭지만 가뭄과 더위가 더 무서운 것이었다. 태풍 예보는 이어진다.
‘지금은 한 시간에 10킬로 내지 15킬로의 더딘 걸음이나 한 번 바다 위로 나오면 매우 빠를 것이고 더욱이 몽고 방면의 고기압으로 이 태풍은 꼭 조선에 올 것이 틀림없다는데, 그때가 되면 강한 동풍이 불고 큰비가 내려서 넉넉히 장기간의 가뭄 피해를 걷어낼 수 있으며 더위도 끝낼 것이라.’
늘 그렇듯 이번에도 폭염 뒤에 태풍과 홍수 피해가 또 잇따를 것이다. 87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연의 순리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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