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8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야당 역할론’, 국가 안보 훼방놓자는 건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싸고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터져 나오는 파열음이 심상찮다. 오늘 방중을 강행하는 당내 초선의원 6명에 대해 우상호 원내대표는 “칭찬하지는 못할망정 정치논쟁으로 삼아선 안 된다”며 감싸고 나섰으나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중국에 이용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총선 승리 이후 그런대로 순항하던 더불어 지도부가 사드 문제로 엇박자를 내며 충돌하는 양상이다.
그동안 더민주는 김 대표 주도로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 입장을 정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당내에서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차기 당권주자들도 동조하면서 반대 당론이 공식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김 대표조차 대안 없이 반대만 일삼던 과거 야당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도로 민주’에 대한 우려를 노골적으로 드러낼 정도다.
민주국가에서 각 정당이 어떤 당론을 채택하느냐 하는 것은 자기들의 자유다. 그러나 국가안보가 걸린 문제에서 몽니를 부려선 안 된다. 당리당략에 앞서 국익을 먼저 따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 방중단에 포함된 김영호 의원의 ‘야당 역할론’이 어처구니없게 들리는 것도 그래서다. 여당이 못하는 한·중 우호관계의 다리 역할을 야당이 떠맡겠다는 것이니, 지금이 너도나도 나서서 중구난방 외교를 펼칠 때란 말인가. 안보외교를 정부 따로, 야당 따로 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공연한 침소봉대로 중국이 자신들의 방중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우려가 커졌다며 오히려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에 화살을 돌린 김 의원의 주장은 중국 관제언론의 논리와 똑같다. 이미 중국 언론들은 이들의 방중 방침을 대서특필하며 사드 반발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오죽하면 사드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한 국민의당마저 사드 반대 공조와 더민주 의원들 방중은 전혀 별개라며 비판의 날을 세우겠는가.
중국은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한국 인사들의 기고나 인터뷰를 관제 언론에 게재하며 남남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야당의원들마저 집단으로 중국의 선전 술책에 놀아나는 우를 범해선 곤란하다. 적어도 수권정당임을 자임하는 제1야당이라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더욱이 이들의 방중을 놓고 칭찬을 바란다면 철부지일 뿐이다.
2. 에어컨 놔두고 선풍기 틀어야 하는 현실
아침부터 푹푹 찌는 한여름의 폭염보다 더 겁나는 게 전기요금이라고 한다. 주택용 전기요금 체계가 누진제로 돼있어 전기를 평소보다 조금만 더 사용해도 요금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집안에 에어컨을 갖추고 있더라도 요금 걱정에 마음대로 틀지 못하는 이유다. 흘러내리는 비지땀을 부채와 선풍기로 버티면서 공연히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현재 적용되는 요금 누진율이 전기 사용량에 따라 가파르게 늘어난다는 게 문제다. 6단계로 시행되는 누진제의 최고구간 요금이 최저구간에 비해 무려 11.7배나 된다. ‘전기요금 폭탄’이라는 표현이 결코 지나치지 않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찜통더위가 이어지면서 이러한 누진제를 손봐야 한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올해도 소비자들의 누진제 폐지 청원이 시작됐다고 한다.
물론 현행 누진체계가 나름대로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당초 저소득층의 요금 부담을 줄이고 고소득층에 대해서는 전기 사용을 억제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전기 요금을 통해 소득 재분배 효과를 낸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금 체계가 2007년 도입된 이래 10년 가까이 흘렀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그동안 전력사용 행태가 크게 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에게 여전히 더위를 참도록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다.
시내 대형상가마다 에어컨을 펑펑 틀어놓은 채 문을 열어놓고 손님을 받는 상점들과도 비교가 된다. 산업용 전기요금에는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전기를 마음대로 써도 되고 집안에 있는 사람들은 요금폭탄을 감수해야 한다는 자체가 구시대적 발상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문을 열어놓고 손님을 받는 상점에 대해 단속활동을 벌이다가 올해는 묵인하는 듯한 당국의 태도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제는 전기요금 체계를 바꿀 때가 됐다. 전기요금이 물가와 가계경제, 신재생 에너지사업 등 여러 분야에 얽혀 있기 때문에 쉽게 개편할 수 없다는 주장은 핑계일 뿐이다. 누진제를 유지하더라도 가구당 전력소비가 늘어난 데 맞춰 누진구간 및 누진 배율의 조정이 필요하다. 무더운 날씨에도 전기요금 걱정에 에어컨을 켜지도 못하고 집안에 그냥 모셔둬야 하는 상황만큼은 개선돼야 할 것이다.
[매일신문]
3. 거대 야당, 경기 살리자는 추경안마저 정쟁 대상 삼나
구조조정 지원과 일자리 만들기, 민생안정 등을 위한 11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 처리가 벽에 부딪히고 있다. 여야는 당초 오는 12일을 처리 시한으로 합의했지만, 아무리 빨라도 오는 20일 전후로 처리가 미뤄질 수밖에 없게 됐다. 그 이유는 야당이 여야의 의견이 엇갈리는 현안을 자신들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처리해야만 추경안 통과에 협조할 수 있다고 고집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권 3당은 지난 3일 ‘청와대 서별관회의’ 청문회 개최, 누리과정에 대한 정부 재정 투입, 세월호특별조사위 활동기간 연장,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사드`검찰개혁특별위원회 설치 등 8개 사안에 공조하기로 합의했었다. 야당은 이들 8개 항을 추경안 처리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19대 국회에서 지겹도록 보았던 ‘끼워넣기’ 전술이 도지는 형국이다.
이들 8개 항을 놓고 여야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조속한 처리가 필요한 것도 분명히 있다. ‘공수처’ 신설이나 검찰개혁특별위원회 설치, 청와대 서별관회의 청문회 등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현안들은 별개로 다루어야 할 사안이지 추경안 심사와 연결시킬 것이 아니다. 추경안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추경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것은 ‘다수의 횡포’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이번 추경이 야당이 먼저 제안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 놓고 8개 항의 선결을 내세워 추경안 심사를 지연시키는 것은 추경안을 정쟁화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4`13 총선에서 민심이 ‘여소야대’를 만들어 준 것은 여야가 대화하고 타협해서 ‘협치’를 하라는 것이지 이렇게 머릿수의 우위를 내세워 제멋대로 하라고 한 것이 아님을 야당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번 추경은 속도가 생명이라고 한다. 경기둔화세를 멈추려면 속전속결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야당은 추경안과 관계없는 사안을 내세워 추경안 처리를 늦출 일이 아니다. 그런 구태의연한 ‘야당질’은 야당이 입만 떼면 강조하는 민생을 오히려 어렵게 할 뿐이다.
[서울신문]
4. 현 경영진 비리 드러난 대우조선, 지원 명분 없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영 비리가 갈수록 가관이다. 도대체 부패의 검은 사슬이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말문이 막힌다. 전 경영진의 비위와 부실운영도 기가 막힌데 쇄신 플랜을 가동한다기에 믿었던 현 경영진조차 조직적인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 회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 김열중 부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연일 조사했다. 이런 정신 나간 조직에 공적자금을 이미 3조원이나 밀어 넣었으니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는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김 부사장은 지난 1~3월 작성한 사업보고서에서 지난해 영업손실 규모를 1200억원가량 축소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손실 규모를 속여 회사의 적자 폭이 전체 자본금의 절반을 넘지 않도록 회계 조작을 했다. 적자가 자본금의 50%를 넘으면 증시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채권단의 지원도 받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이런 분식회계를 한 것이다. 검찰은 정성립 사장도 조만간 소환 조사할 계획이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사실상 공기업이나 다름없는 회사가 비리 소굴로 전락했는데도 피 같은 세금을 뭉텅이로 밀어 넣어 주고 있는 꼴이다.
지금까지 검찰은 노무현·이명박 정권이 선임한 남상태·고재호 전 사장의 비리와 분식회계를 집중 수사해 왔다. 현 경영진의 비리까지 더해지면 2006년 이후 대우조선은 조직적 비리 속에서 10년을 한결같이 허우적거렸다는 얘기다. 이 지경인데도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니 더욱 개탄스럽다. 대우조선을 관리해야 했던 산업은행은 꼬박꼬박 배당금을 챙겨 주고 눈먼 낙하산 자리만 만들어 주면 감독할 의지도 없었다. 이런 난파선 수준의 회사에 지원 결정을 내린 정부도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책임 소재에 관해서는 구린 입조차 떼지 않으니 검찰이 과연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나 있을지 의문스럽다.
아무리 절박한 사정이 있더라도 비리 난장판인 회사에 혈세를 계속 퍼줄 수는 없다. 국민 정서를 살핀다면 정부는 최악의 경우 대우조선 회생 카드를 접을 각오까지 해야 할 것이다. 엄중한 수사를 하는지 검찰의 칼끝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까닭이다. 검찰은 곤두박질친 위신을 추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5. 포퓰리즘의 산물 48% 면세자, 국회가 책임지라
과다한 근로소득세 면세자 축소 문제가 ‘뜨거운 감자’다. 2014년 기준으로 근소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은 면세자 비율이 48.1%에 이르면서 조세 왜곡 현상을 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다. 여야 3당 모두 그 당위성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증세에 가장 적극적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경제통인 최운열 의원이 지난주 “근로소득자 중 48%가 근소세를 납부하지 않는 것은 비정상적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근로자 면세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0% 포인트 높다면 공평과세의 원칙에 어긋날뿐더러 늘어가는 복지 예산을 충당하기도 어렵다. 선거를 앞두고 늘 무원칙한 세금 감면 조치를 남발했던 정치권이 자신의 원죄를 깨닫고 결자해지할 때다.
그런데도 여야 3당이 또 차기 대선에서 표를 의식해 주저하고 있는 게 문제다. 면세자 비율을 낮춰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서로 ‘고양이 목에 방울은 네가 달아라’는 식이기 때문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소비 위축이 심각한 현 상황에서는 무리라는 핑계를 대고 있다. 제1야당인 더민주는 “정부가 먼저 면세점(상향)과 관련한 대안을 가져와야 한다”며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2013년 정부가 근로자 연말정산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꾸는 과정에서 연봉 3450만원 이상의 세액 부담이 다소 늘자 “중산층에 세금 폭탄” 운운하며 ‘융단 폭격’을 하더니 이제 안면을 싹 바꾼 형국이다.
물론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부의 재분배 기능에 초점을 맞춘 조세 정책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민주가 마련한 세법 개정안대로 연봉 5억원 이상 과세표준을 새로 정해 세율 41%를 적용하더라도 늘어나는 세수는 연 6000억원 정도라고 한다. 부자를 혼내 생색을 내는 의미 이상의 복지 재원 조달 효과는 없는 셈이다. 국민의당 김성식 정책위의장이 언급한 대로 “고소득층에 대해 증세를 추진하는 데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포퓰리즘 차원서 남발한 조세 감면 거품부터 걷어내야 할 이유다.
현재 근로자 중 48%, 다시 말해 2명 중 1명꼴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면? 이는 조세 정의의 실종이라는 원론을 넘어 장기적으로 국민경제의 건강을 해치는 영양제 주사만 과잉 처방하는 꼴일 게다. 이는 역으로 국민개세주의 원칙에 따라 세원은 넓히고 세율 인상은 적정선을 지켜야 할 근거다. 그래야만 장기적으로 중산층을 두껍게 하는 경제 체질 개선과 복지 재원 확보를 위한 안정적 세수기반을 구축할 수 있음을 여야는 유념하기 바란다.
[동아일보]
6. 국회, 낡은 생각을 바꿔 제할일 찾아라
혹독한 무더위다. 카페, 은행, 도서관으로 피난 가는 사람도 많다. 주택용 전기요금 체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부조리다.
오직 주택용에만 적용되는 징벌적 요금 체계는 전력이 부족하던 시절, 가정에 근검절약을 강요하고, 전력 소모가 많은 가전제품이 별로 없던 시대의 유물이다. 산업용보다도 더 저렴한 주택용 1단계 요금은 복지제도가 빈약하던 시대의 복지 수단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런 전기요금 체계를 정당화하던 모든 조건이 변했다. 당연히 언론과 국회 상임위 등에서 오래전부터 지적해 왔지만 꿈쩍하지 않는다. 기득권을 잃는 집단의 반발을 견뎌 낼 소신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전기요금은 정치와 정부가 통제하는 수많은 가격의 하나다. 여기서 보여준 부조리와 무능, 무책임은 거의 모든 정부 통제 가격에서도, 국가 규제와 예산에서도 반복된다. 의료 수가, 철도·지하철 요금, 공무원 임금·연금, 진흥·육성 명목의 예산 등에는 오래전에 유효기간이 끝났지만 기득권 집단의 반발이 무서워 손을 못 대는 부조리가 많다. 특히 국회가 권한을 주로 상대 견제, 저지용으로 사용하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못 해도, 남이 하고 싶은 것은 확실히 막아낼 수 있는’ 비토권만 비대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기업인들이 “13억 중국은 안 되는 게 없고, 5000만 한국은 되는 게 없다”고 통탄하는 이유다.
한국 정치는 있어야 할 곳에는 없고, 없어도 될 곳에는 있다. 국회의원의 임무를 아예 정부가 차려온 밥상 앞에서 반찬 투정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의원도 많다. 집안 살림 형편, 식재료 수급 사정, 식구의 영양 상태 등을 고려하여 법령, 정책, 예산과 같은 식단의 기준과 원칙을 내놓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라는 생각 자체가 없다.
간절한 소명의식과 준엄한 책임의식은 없는데, 대통령과 행정부에 비해 국회의 권한이 적다면서 권한 확대 요구는 질기게 한다. 하지만 이미 쥐고 있는 입법, 예산, 감사 등 거대한 권한은 제대로 사용하지도, 위임하지도 않고 그냥 썩힌다. 협치는 원래 여야 간 협력은 기본이고, 핵심은 그 권한을 가장 잘 쓸 수 있는 단위를 구성하여 권한 자체를 위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협치 개념 역시 축소되고 변질되었다.
정치와 정부가 유능해지려면 국회의원과 관료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유능한 국회의원과 관료를 선출·선발하고, 정당의 정책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다당제까지 추가해도 여전히 부족하다.
핵심은 자신이 관여해 결정할 사안과 그렇게 하면 안 될 사안을 구분하는 것이다. 국회나 정부나 자신이 비록 법적인 결정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보다 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단위를 구성하여, 숙의를 통해 나온 권고안에 대해 가부만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예컨대 국회의원과 정당이 핵심 이해관계자인 선거제도, 헌법 개정 등은 추첨으로 선발된 보통 시민 300명의 원탁·숙의 테이블에 권고안 작성을 의뢰하고, 국회는 가부만 판단하는 식이다.
전기요금, 의료 수가, 공무원 임금 및 연금도, 더 나아가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노동, 공공, 금융, 교육, 규제, 지방자치제도 개혁 방안도 공공성, 중립성, 전문성을 담아내는 기구를 여야 합의로 구성하여, 그 숙의 결과에 대해 가부만 판단하는 식으로 처리할 수 있다. 물론 이 기구는 여야 일방의 확실한 대변자, 나팔수 노릇을 할 전문가를 배제하는 상호 제척권 행사를 통해 구성되어야 한다. 진짜 내려놓을 국회의 기득권은 제대로 행사하지도 못하면서 움켜쥐고 있는 권한이다. 진짜 발휘할 지혜는 자신이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분별하는 것이다.
[중앙일보]
7. 새로운 한·러 관계 열 정상회담을 기대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달 2∼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되는 제2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결론부터 말해 잘한 결정이며, 이번 회담을 계기로 보다 가깝고 실질적으로 협력하는 새로운 한·러 관계를 기대해 본다.
사실 우리는 한반도 주변 4강 중 러시아를 비교적 소홀히 대해 온 측면이 없지 않다. 문화적 이질감이 다소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의 갈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우리의 외교적 여력이 부족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러시아의 전략적 가치는 우리에게 더욱 크게 다가온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러시아는 북한의 핵 도발과 이로 인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결정으로 꼬인 한·중 관계의 비상구가 될 수 있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있긴 하지만 러시아는 북한의 핵 무장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중국에 비해 훨씬 비판적인 입장이다.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에 대처한 우리의 불가피한 선택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다면 충분히 협조를 얻어낼 수 있다. 러시아가 전향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발 수위도 낮아질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중요성도 안보 문제에 못지않다. 러시아 정부는 최근 극동 지역을 개발하는 신동방정책을 최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의 대러 제재로 유럽 쪽 통로가 막힌 상황에서 극동에서 활로를 찾으려는 푸틴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발현된 것이 곧 동방경제포럼이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 일대 15개 항구를 자유항으로 지정하고, 10개 선도개발구역(TOR)까지 열어 한국과 일본 등의 투자를 기다리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번 포럼에 참석하는 것도 이 지역의 잠재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관심은 지나칠 정도다. 이 지역을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의 출발지로 선포한 중국은 훈춘까지 완공된 철도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중국 지린성 당국은 2018년을 목표로 자루비노항을 연간 물동량 처리능력 6000만t 규모의 다목적 항만으로 공동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진출이 활발하다 보니 극동러시아의 먹거리는 이미 중국 농산물이 장악한 상태다. 위기감을 느낀 러시아는 한국과 일본에 손을 뻗고 있다.
우리도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단독 또는 합작투자를 통해 극동러시아의 지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극동러시아 투자는 궁극적으로 북한과 상생을 위한 출구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은 북한 도발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었지만 제재 국면이 해소된다면 중단된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재개해 나진을 동북아 교역 허브로 만들고, 극동러시아 가스관을 유치해 중·일·러·남·북이 참여하는 동북아 에너지 거점도시로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매일경제]
8. 연일 살인적 폭염, 정부 제대로 된 안전대책 세워라
연일 계속되는 찜통 더위로 온열질환자가 급증하고 가축과 농작물 피해가 확산되고 있지만 정부의 안전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달 22일부터 어제까지 서울에는 열대야 현상이 15일이나 이어졌다. 지난해 같은 기간 열대야 발생일수가 5일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기록적 폭염이다. 광복절인 15일까지 무더위가 계속될 것이라고 하니 걱정이다.
인명과 재산 피해도 커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5월 23일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가동한 이후 이달 5일까지 열사병과 열탈진 등 온열질환자가 1016명에 달했고, 이 중 1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폭염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지난달 말 이후 발생했다.
이처럼 폭염 피해가 심각한데도 정부의 안전대책이나 구호활동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국민안전처는 올해 폭염이 관측 이래 최고 수준이며 재난에 준해 관리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주의보·경보 발령에 그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도 예방 수칙만 공지할 뿐 실효성 있는 안전대책은 전무하다. 이는 폭염이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상 자연재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이다. 단순한 자연 현상이기 때문에 정부의 피해 대책이나 보상책 마련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법과 제도를 보완해서라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일반 가정의 냉방비 부담을 완화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현재 6단계로 돼 있는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누진제는 말 그대로 전기를 많이 쓸수록 요금단가가 가파르게 높아지는 구조를 말한다. 가정용 전기요금은 1단계에서는 킬로와트시(kwh)당 60.7원이지만 6단계에서는 709.5원으로 11.7배가 올라간다.
전기요금이 무서워 찜통 더위에도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는 가정이 적지 않다고 하니 전체 전기요금 체계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누진구간이나 배율을 일부 재조정할 필요는 있다. 앞으로도 폭염 피해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부는 폭염을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닌 재난이라는 관점에서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하길 바란다.
[세계일보]
9. 야당 의원 6명의 중국 방문을 온 국민이 주시한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6명이 오늘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김영호 박정 신동근 소병훈 김병욱 손혜원 의원은 2박3일 일정으로 베이징을 방문해 한·중 학자좌담회 등에 참석한다고 한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와 관련해 의견을 듣는다는 게 방문 목적이다. 방중을 기획한 베이징대 출신 김영호 의원은 중국에 경제적 보복 자제 요구를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하기 어려운 일에 야당 의원들이 나서 준다면 바람직한 의원외교 활동이다.
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의원들의 방중 목적과 의지와 상관없이 중국에 이용만 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관영매체들의 보도 행태를 보면 야당 의원들이 어떤 대접을 받을지도 짐작이 간다. ‘한국 때리기’에 앞장서고 있는 중국 환구시보는 야당 의원들의 중국 방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더민주가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있고 방중하는 의원들은 사드에 대한 중국 측 입장을 듣길 바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는 어제 야당 의원들의 중국 방문 계획 재검토를 촉구했다. 앞서 새누리당도 ‘굴욕외교’, ‘사대외교’라는 거친 표현까지 쓰면서 이들의 중국 방문을 비난했다. 손혜원 의원은 곳곳에서 걱정과 비판이 쏟아지자 “우리가 중국에 나라라도 팔러 간답니까”하고 발끈했지만 그렇게 보는 시각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한·중 관계가 사드 문제로 악화되고 있는 민감한 상황에서 야당 의원들의 중국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이 중국 입장을 옹호하고 한국의 결정을 반대하는 중국 측의 선전선동에 이용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중국 언론에서 사드에 반대하는 한국 의원들이 왔다고 보도할 것이 아니냐”고 우려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국민 대표인 의원들의 활동에 국익이 걸려 있다. 국가 위신을 추락시키고 미국 일본 등 국제사회에도 잘못된 신호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국의 외교적 공세에 악용되는 일도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된다. 가능하다면 출국하기 전이라도 마음을 바꿔 방중을 취소하는 결단을 보고 싶다. 의원들의 중국 방문은 대단히 경솔한 결정이고 취소해야 한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가야겠다면 말과 행동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온 국민이 의원 6명의 말과 행동에 주시하고 있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 자칫 ‘조공외교’라는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대한민국의 국민대표로서 언행에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매일신문]
10. 동해안 원전의 유해물질 배출, 원전 불신 키우는 화근 된다
경주 신월성 1`2호기와 부산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온배수 거품 제거제(소포제)로 쓰이는 유해물질인 ‘디메틸폴리실록산’을 바다로 배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실은 해양경찰이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가 이 물질을 지난 2011년부터 5년 동안 500t가량 배출한 것으로 보고 최근 수사에 나서면서 밝혀졌다. 이들 시설을 관리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소포제 사용을 즉각 중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수원의 신뢰는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원전시설 등 발전시설은 전기생산 과정에서 생기는 열을 식히는 데 바닷물을 쓴다. 이들 시설이 경주를 비롯한 동해안 지역에 집중적으로 들어선 까닭이다. 또 발전소는 열을 식히고 따뜻해진 바닷물을 다시 바다로 내보낸다. 이런 과정에서 거품이 생긴다. 문제는 거품을 없애기 위해 유해물질로 분류된 ‘디메틸폴리실록산’을 쓰고 바다로 흘려보낸 사실이다. 해양자원과 해양환경을 해치는 것은 물론, 인간의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는 유해물질인데도 말이다.
또 다른 궁금증은 거품 제거 장치를 이용하면 소포제를 쓰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유해물질을 쓴 이유다. 이들 시설과 달리 한울원전과 한빛원전, 월성원전 1`2발전소(월성 1`4호기)는 거품 제거 장치를 쓴 탓에 아예 소포제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를 비교하면 의문 제기는 마땅하다. 비록 한수원이 조치를 했다지만 원전시설 운영과 체계적인 관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업무를 두고 원전시설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한 것과 다름없다.
한수원의 뒤늦은 소포제 사용 중단 조치도 문제가 불거진 뒤 이뤄진 만큼 신뢰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하다. 수사가 없었다면 계속적인 유해물질의 바다 배출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원전의 안전한 가동은 절대적이다. 원전시설로 인한 바다의 생태계 파괴 방지와 주변 주민들의 안전확보도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다. 한수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유해물질 소포제 사용량, 배출량의 파악과 함께 재발 방지에 나서야 한다. 유해물질 사용의 철저한 점검과 관리 강화도 필요하다. 원전시설에 대한 불신의 화근을 없애고 신뢰 회복을 위한 한수원의 각성이 절실한 때다.
주요 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경영칼럼] 국가브랜드 재정립한 뉴질랜드 성공스토리
2010년 10월 미국의 패션 브랜드 갭(GAP)은 전통적인 글씨체의 로고를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새 로고가 발표되자마자 소비자들의 혹독한 비난이 쏟아졌다. 전화, 이메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전 디자인이 훨씬 낫다’ ‘아마추어가 대충 만든 것 같다’는 등 거침없는 항의가 이어졌다. 결국 갭은 로고 변경과 관련된 모든 계획을 철회했다.
기업이 부딪히는 소비자의 실망과 질책은 애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브랜드 로고, 슬로건을 바꾸는 데 아무 반응이 없다면 그만큼 무관심하다는 이야기다.
도시나 국가 브랜딩도 마찬가지다. 새로 선보인 국가 브랜드에 대한 국민의 싸늘한 반응은 국가를 향한 애정과 소속감의 얕은 수준을 보여준다. 국민과 기업, 다양한 조직의 열망을 제대로 드러낼 때 국가 브랜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커진다. 그런 면에서 뉴질랜드의 브랜드 전략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1999년 시작된 ‘100% 순수 뉴질랜드(100% Pure New Zealand)’ 캠페인은 뉴질랜드가 관광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자연환경을 체험할 수 있다는 가치를 전파해 해외 관광객 53%, 와인 수출액 7배 증가라는 성과를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안홀트-GfK, 퓨처브랜드 같은 국가 브랜드 평가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2013년부터는 존 키 뉴질랜드 총리의 주도 아래 국가 브랜드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뉴질랜드 스토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뉴질랜드가 매력적인 관광지일 뿐 아니라 얼마나 선진적인 기업 경영 환경을 제공하는지, 무역 대상국으로 얼마나 경쟁력을 지니는지를 알리는 데 중점을 뒀다. 홈페이지, SNS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직접 겪은 뉴질랜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프리미엄 유기농 차를 재배·판매하는 질롱(Zealong), 세계적인 럭셔리 요트 제조회사 맥멀린앤드윙(McMullen&Wing), 영화 ‘반지의 제왕’을 제작한 파크로드포스트(Park Road Post) 등의 사례도 소개된다.
뉴질랜드 스토리의 근간에는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 ‘뉴질랜드다움(New Zealandness)’이 깔려 있다. 뉴질랜드다움의 핵심 가치는 국민, 기업, 자연에 대한 국가의 책임감을 표현하는 ‘카이티아키(Kaitiaki·수호자를 뜻하는 마오리족 용어)’, 신뢰와 겸손을 중시해 함께 일하기 좋은 뉴질랜드인의 ‘진정성(integrity)’, 창조적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자원의 풍부성(resourcefulness)’으로 요약된다. 전 세계 경영자들이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경영 무대로서 뉴질랜드의 경쟁력을 강조한 것이다.
뉴질랜드 토종 양치식물의 잎 모양을 응용한 ‘펀마크(FernMark)’도 제작해 정책 활동은 물론 기업 마케팅, 스포츠 행사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다. 뉴질랜드 정부는 펀마크 허위 사용과 오용을 방지하기 위해 상표를 등록해 파트너를 엄선하는 라이선싱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국가 브랜드 상징물에 대한 엄격한 보호와 관리는 그만큼 개인과 조직이 뉴질랜드에 소속돼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는 효과를 창출한다.
기업이든 국가든 브랜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유행하는 문구, 눈에 띄는 디자인을 찾기보다 변하지 않는 본질적 특성을 독창적인 스토리로 풍부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일방적인 스토리텔링이 아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공감하고 동참하도록 협조를 구해야 한다. 충성고객이 중시하는 핵심 가치를 잊고 디자인 트렌드만 좇아 실패했던 갭, 다양한 구성원의 진정성 있는 스토리를 담아 브랜드 리포지셔닝에 성공한 뉴질랜드가 주는 교훈들이다.
2. [연합뉴스]<김종현의 풍진세상>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
대지를 태울듯한 불볕더위의 여름 극장가에서 두 영화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
인천상륙작전은 평론가와 언론이 '철 지난 반공영화'라고 혹평했음에도 관객들이 쇄도했다. 덕혜옹주도 스토리의 흡인력과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에 힘입어 호응이 뜨겁다.
재미있는 건 정치권의 반응이다. 여권 지도부는 인천상륙작전, 야권은 덕혜옹주를 감상했다고 한다. 각자 코드에 맞는 영화를 보고 정치적 메시지를 전했다.
여당 원내대표는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 속에서 굳건한 한미 동맹의 유지와 만반의 대비 태세가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했다.
야당 원내대표는 위정자들이 제대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해 식민지배의 나락에 떨어지면 결국 고통은 국민이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여야 지도부가 바쁜 시간을 쪼개 영화를 감상하고 교훈을 얻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 정치는 너무 삭막하다. 상소리와 파열음이 난무하는 정치는 품격 잃은 이전투구일 뿐이다. 국회의원들이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많이 둔다면 거칠기 짝이 없는 정치 언어도 한결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인천상륙작전은 적의 침략을 받아 기울어진 전세를 뒤집기 위해 유엔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주도한 작전에서 산화한 이름없는 영웅들의 이야기이다. 덕혜옹주는 몰락한 조선 왕조의 딸로 태어나 어린나이에 강제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제의 내선일체(조선의 일본화) 정책에 따라 지방 백작과 정략결혼 했으나 정신이상 증세를 일으켜 불행하게 삶을 마감했다. 두 영화의 내용은 다르지만 맥락은 같다. 나라를 잘못 타고난 젊은이들의 비극적 서사라는 점이다.
덕혜옹주는 황녀라고 하지만 일제 강점기인 1912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대한제국의 황제에서 나라를 강탈당하면서 전직 왕으로 전락한 고종의 딸일 뿐이다. 권력을 거세당한 채 뒷방으로 물러난 왕의 금지옥엽이었기에 이미 태어나는 순간 굴곡진 일생이 준비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덕혜옹주 불행의 연장선에 인천상륙작전이 있다. 외세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은 일본 군국주의의 패망으로 1945년 8월 15일 벼락처럼 떨어진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곧바로 주변 강대국의 개입으로 팔다리가 찢기듯 좌우 두 나라로 갈려야 했다. 급기야 북의 남침으로 동족상잔이 빚어졌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선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해야 했다. 영화는 그 작전에 투입된 한국 해군 첩보부대원들의 헌신적 활약과 장렬한 최후를 그렸다.
두 영화는 모두 8월 15일을 겨냥한 애국 마케팅이다. 덕혜옹주에서 덕혜는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지만 창덕궁 낙선재에서 남긴 사실상의 유서가 "대한민국 우리나라"였다. 인천상륙작전에서 첩보부대 책임자였던 장학수 대위는 숨을 거두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와 조국에 대한 책임을 강조했다.
국권을 상실한 나라는 덕혜옹주를 지켜주지 못했다. 힘이 없는 나라는 젊은이들을 강자의 노예나 전쟁의 제물로 바쳐야 한다. 나라를 잃어버린 황녀나 징용으로 끌려간 백성, 이념이 다른 적의 손에서 국토를 지키겠다고 목숨을 내놓은 젊은이들은 시대의 희생자들이다. 나라의 안위가 경각에 달렸을 때 국가는 젊은이들에게 피를 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위기가 오지 않도록 국가 경제나 안보를 단단하게 다져놔야하는 건 국가의 책임이다.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나이에 어울리는 삶과 꿈을 주지 못하고 목숨을 요구해야 한다면 그 건 이미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우리의 현실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정치도, 경제도, 안보도 겉돌고 있는 느낌이다. 여야 정치인들은 4ㆍ13 총선 이후 협치를 공언했지만, 헛소리가 됐다. 경제는 추진력이 고갈돼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둘러싼 격심한 국론 분열에서 보듯 안보에서는 제 앞가림도 못 하고 있다.
우리의 힘이 국권을 잃은 1910년이나 6ㆍ25가 발발한 1950년에 비해 경이적으로 커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역학이나 내부 분열은 우리의 자생력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여야 대표는 두 영화에서 각각 굳건한 안보와 국가 리더십의 절실함을 읽었다. 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가 부실하면 나라가 바로 서기 어렵다. 부국강병은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 추진이 가능하다. 강한 지도력은 국민적 지지에서 나온다. 헌신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몸을 사리면 국가는 쇠락한다.
북한은 미사일을 펑펑 쏘아 올리고, 중국은 사드 보복을 해대겠다고 기관지들을 총동원해 연일 협박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이고 있다. 공격용도 아닌 방어용 무기 체계 하나에 이렇게 나라가 흔들려서야 진짜 안보 위기가 닥쳤을 때는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우리의 오늘이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을 묻고 있다.
3. [서울신문][이현청 교육산책]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한국의 젊은이들이여, 미안하다. 오죽하면 ‘흙수저’를 이야기하고 ‘오포세대’, ‘칠포세대’ 심지어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팔포의 세대’가 되었는가 생각할 때,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다. 그들의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 절망이 어느 정도인지, 치유책은 없는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 젊은이들에게 안타까움과 함께 감히 조언하고 싶다. 포기는 새로운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어느 시대든 젊은이들에게 큰 희망은 있었지만, 가시적인 해답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알기 원한다. 아버지 세대가, 아버지의 아버지 세대가 그러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단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아버지 시대와는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안다. 세기적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지식정보화사회를 넘어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과 산업구조와 직업의 대변혁에 따라 기존 직업지도의 커다란 변화가 이루어지고 예측 자체조차 어렵다는 것도 안다.
또 하나는, 인공지능(AI)의 확산으로 인간의 직업이 인공지능 로봇이나 지능형 콘텐츠에 뺏기고 직업이 줄어드는 ‘직업 없는 사회’가 확산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 이보다도, 절대적 빈곤감보다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서로 비교하면서 아파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도 젊은이에게는 젊다는 특권이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젊은이에게는 도전의 기회, 재생의 기회, 학습의 기회, 창조의 기회 등이 나이 든 사람들보다 많다는 점을 기억하기를 원한다. 선진국의 경우 환경은 다르지만 30대에 백만장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기 바란다.
미국 UCLA 대학 앳킨슨 교수가 젊은이의 고뇌를 “꿈과 영웅이 죽어갔을 때”라고 표현했듯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꿈도 영웅도 죽어간 이 시점에 절망만 쌓여 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희망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할 때인 것은 분명하다. 직업이 최대의 청년복지라는 것을 안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감히 말한다. 21세기는 어디서 사느냐,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젊은이들의 고민을 이민이 해결하는 것도, 직업이 해결하는 것도 아니다. 아픔 속에서도 세상을 다시 보는 기회와 한국에 있는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 미래를 꿈꾸는 새로운 비전이 될 것이다.
21세기는 무한도전의 세기이다. 변화가 변화를 낳고, 창조가 창조를 낳고, 도전이 새로운 도전을 낳는 세기이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아르바이트를 서너 군데 뛰어도 88만원 세대밖에 되지 않는 그 절망이, 세계로 도전하는 도전의 세기가 될 수도 있으며 암흑같이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도, 새로운 길을 향해 달릴 수 있는 미래가 될 수 있다. 좌절과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에게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만이 없는 길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현실의 아픔이 너무 크기에 미래를 향해 감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내가 처한 환경을 들여다봤을 때, 절망밖에는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거듭 말하거니와 21세기가 젊은이들에게는 최대 위기의 세기이지만, 그와 함께 도전의 세기이고, 기회의 세기라고 하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그래도 세계 강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미래의 주역들이고 세계 곳곳을 누비는 한류의 자부심도 함께 가질 수 있는 기둥들이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세대가 되기를 바란다.
젊음은 잠깐이다. 긴 듯하지만 길지 아니하고, 할 수 있는 듯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아름다워지기 원하나 아름다워지기 어려운 시기이기도 하다. 젊음은 자기 안에 영원히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아픔의 세대인 한국 젊은이들이 희망을, 자그만 불빛 같은 희망을 잃지 말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인생을 살아 보면 누구에게나 반드시 때가 주어지고 그때에 꾸준히 준비해 온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라 했지만 아픔을 지우고 살아야 청춘인 것이다.
4. [동아일보][박윤석의 시간여행]암울했던 80년 전 올림픽
8월 8일 오후 올림픽촌. 세 선수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마라톤이 열리기 전날이었다. 1936년의 베를린이었다. 마라토너 손기정과 두 동료였다. 사토 코치는 “세 선수 모두 컨디션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말했다. 연습 후 세 국가대표는 코치를 가운데 두고 잔디밭에 둘러앉아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는 국과 스키야키로 영양 공급을 마침으로써 9일의 전투 준비는 만사 OK, 기다리는 것은 오늘 오후 3시의 출발뿐.’ 일본 통신사의 특파원이 보낸 기사가 조선과 일본의 신문에 실렸다(동아일보 1936년 8월 10일자 호외).
베를린으로부터의 급보가 날아든 서울은 심야였다.
‘9일 오후 3시(조선 시간 오후 11시)에 올림픽 경기장을 출발한 마라톤에서 우리 대망의 손기정 군은 30여 나라 56명의 선수를 물리치고 당당 우승을 하였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비를 맞으며 신문사 정문 앞에 운집해 기다리던 군중들은 시시각각 들어오는 소식들을 전해 들었다. 호외가 제작되는 시간이었다. 신문사 안에는 체육계 및 각계 인사들이 모여 현지 소식을 청취하는 중이었다. 다음 날 신문은 이렇게 썼다.
‘우리의 손기정은 이겼다. 조선은 너무나 오랫동안 숨어 살았다. 또 너무나 오랫동안 기운 없이 살았다. 손기정 남승룡 두 용사는 시드는 조선의 자는 피를 끓게 하였고 가라앉은 조선의 맥박을 뛰게 하였다. 한 번 일어서면 세계도 손안의 것이라는 신념과 기백을 가지도록 했다.’
그날 새벽에 받아 본 호외 뒷면에 작가 심훈은 즉흥시를 썼다.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깊은 밤 전승(戰勝)의 방울 소리에 터질 듯 찢어질 듯/침울한 어둠 속에 짓눌렸던 고토(故土)의 하늘도/올림픽 횃불을 켜든 것처럼 화다닥 밝으려 하는구나’
아돌프 히틀러 총통의 개막 선언으로 시작된 올림픽이었다. 당시 일본은 메달 순위에서 8위였다. 일본의 금메달 6개 중 하나와 동메달 8개 중 하나는 한국인이 획득한 것이었다.
머나먼 고국의 환호와는 대조적으로 시상대에 선 사진 속 손기정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침울해 보이기조차 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가 될지도 모를 이야기를 손기정은 8개월 전에 한 바 있다. 1935년 11월에 도쿄에서 열린 올림픽 선발전에서 이미 세계 기록을 경신하고 난 뒤였다.
“초인적 신기록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피곤할 대로 피곤한 몸으로 동경의 그라운드 한 구석에서 수많은 사람 속에 둘러싸여 환호와 갈채를 받던 그 순간, 나는 어쩐지 마음 한 구석에 서운하고 쓸쓸한 생각이 일어나며 나도 모르게 저절로 눈물이 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많은 기자들이 와서 감상을 말하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인을 받아가기도 하고 카메라를 돌리기도 하였습니다. 더없는 영광이요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군중들 가운데 나는 한 사람의 조선말 하는 사람을 못 만나 보았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쓸쓸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월간 ‘삼천리’ 1936년 1월호)
그로부터 80년이 흐르는 동안 한국은 독립을 쟁취한 뒤 올림픽도 개최하고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도 배출했다.
5. [동아일보][표정훈의 호모부커스]자서전
‘뉴욕제과점은 우리 삼남매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필요한 돈과 어머니 수술비와 병원비와 약값만을 만들어내고는 그 생명을 마감할 처지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며칠에 한 번씩 팔지 못해서 상한 빵들을 검은색 봉투에 넣어 쓰레기와 함께 내다버리고는 했다. 예전에는 막내아들에게도 빵을 주지 않던 분이었는데.’
김연수의 자전적(自傳的) 단편 ‘뉴욕제과점’의 일부다. 작가 김연수는 실제로 ‘김천 역전 뉴욕제과점 막내아들’이었다.
김원일의 자전적 장편 ‘마당 깊은 집’에서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가족의 생계를 잇는다. 김원일은 이 작품을 “나의 어머니의 바느질 이야기”라고 말하면서 어머니의 말씀을 추억했다. “일아! 내 눈 어두버져 바느질도 몬하게 되믄, 그때는 집안 장자인 니가 우리 식구 먹여 살리야 된데이.”
우리 역사에서 문학적 자서전이자 회고록의 백미로 손꼽히는 작품은 정조의 생모이며 사도세자의 빈,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閑中錄)’이다. 정사(正史)를 보조하는 사료적 가치도 지니지만 소설로 볼 수도 있을 만큼 생동감과 박진감이 있다. 역사학과 국문학이 공유하는 대표적인 텍스트다. 특히 1762년 7월 사도세자가 부왕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세상을 떠난 임오화변(壬午禍變)을 자세히 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페인의 작가이자 철학자 미겔 데 우나무노는 “모든 소설은 자서전”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바탕으로 “모든 소설은 자서전적이며 모든 자서전은 소설적 허구”라는 말도 생겼다. 이청준 소설 ‘자서전들 쓰십시다’에서 자서전 대필로 먹고사는 주인공이 이렇게 말한다. “늘 과거를 미화하고 과장하려는 사람의 습성 때문에 기술(記述)의 공정성을 잃기 쉽다는 게 자서전 집필의 일반적인 해로움입니다.”
그 해로움을 극복한 것으로 평가받는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은 자서전을 문학 장르로 확립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루소는 과장이나 미화를 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표명했다. “나는 결코 전례가 없었고 앞으로도 모방할 사람이 없을 일을 구상하고 있다. 나와 같은 인간들에게 한 인간을 완전히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여주려 하는데, 그 한 인간은 바로 나다.”
자서전 쓰기 강좌와 교육 프로그램, 자서전 쓰기 대회와 공모전이 성황이다. “내 인생을 책으로 쓰면 대하소설이 될 것”이라는 사람도 많다. 대하소설 분량이든 단편 분량이든 숨김없이 솔직하게, 거짓이나 꾸밈없이 정직하게 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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