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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국난 타개를 위한 ‘통 큰 합의’ 절실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합의로 추천하는 인사를 국무총리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어제 국회로 정세균 국회의장을 전격 방문해 10여분 남짓 만난 자리에서다. ‘김병준 총리’ 카드를 엿새 만에 사실상 철회한 박 대통령은 “권한 부여에 대한 논란이 없도록 깔끔히 정리해 달라”는 정 의장의 요청에 “총리가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할 것”이라고 밝혔다.

행정부와 입법부 수장의 회동치고는 매우 짧은 시간에 그쳤지만 오고갈 얘기는 대충 다 나눴다는 점에서 여야 영수회담의 전초전 내지 간접 영수회담이라 할 만하다. 문제는 진짜 영수회담이 언제 열리고, 어떤 수습책을 내놓느냐다. 박 대통령과 정 의장의 회동으로 야권이 내건 영수회담 전제조건은 대부분 충족됐다. 특검은 이미 수용됐고 국정조사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총리 추천권을 국회에 넘기는 것은 실질적인 정권 이양이나 다름없다.

남은 쟁점은 대통령의 지위 문제다. 앞으로 15개월 이상 남은 임기를 ‘식물 대통령’으로 국한하느냐, 아니면 국가원수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인정하느냐를 결정해야 한다. 즉, 국방·외교·통일 정책과 관련한 외치(外治)의 최종 결정권까지는 인정하느냐의 여부다. 야당이 주장하는 ‘2선 후퇴’가 어디까지인지, 박 대통령이 말한 ‘내각 통할’이 어디까지인지가 여전히 불분명하다. 정국 불안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도록 그야말로 ‘깔끔한 정리’가 필요한 대목이다.

이날도 야당 대표들은 박 대통령의 회동 요청을 거부하고 일부 의원은 국회 입구에서 ‘대통령 하야’를 외치며 문전박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박 대통령에게는 굴욕일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라며 자괴할 게 아니라 ‘다 내려놓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최순실 일파에 우롱 당했든, 본인이 국정 농단에 관여했든 더 이상 대통령 직책을 온전하게 수행하기 어려워진 만큼 사즉생의 각오가 요구된다. 그러지 않으면 정국 수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깨달아야 한다.

야권도 박 대통령의 ‘찔끔 사과’만 질책할 게 아니다. 성난 민심에 편승해 반사이익이나 누리려는 안이한 자세로는 수권능력을 결코 입증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 철회가 야당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얘기다.

2. 표류하는 경제사령탑이 걱정된다

임종룡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가 그제 긴급 금융시장 점검회의를 소집했다. 종래 직책인 금융위원장으로서의 임무였지만 사실상 신임 경제 사령탑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정국이 꼬일 대로 꼬인 상태에서 국정 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다는 우려 속에 경제 구원투수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여겨질 만하다.

임 내정자가 진단하는 지금의 경제상황 자체가 그리 간단치 않다. 과거 외환위기가 닥쳤던 1997년이나 2008년의 경우와도 또 다르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 마치 살얼음을 밟는 ‘여리박빙’(如履薄氷)과 같은 처지라는 것이다. 자칫 한 걸음 잘못 내디디면 깊은 물속에 빠져 버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임 내정자가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24시간 살피는 비상체제를 가동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 그런 연유다.

이런 상황에서 임 내정자의 위상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는 자체가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정세균 국회의장과 만나 김병준 총리 내정자의 거취 문제를 국회와 상의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임 내정자에 대한 지명도 철회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현 유일호 부총리와 임 내정자가 서로 권한 행사를 두고 혼선을 빚고 있던 상황이다.

새해 예산안 처리 문제를 포함해 한시가 급한 시기에 이처럼 경제 사령탑이 자꾸 흔들려서는 경제가 더욱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다. 뒤늦게 손을 쓴다고 해도 약발이 제대로 먹힐지 장담하기 어렵다. 임 내정자가 아닌 다른 어느 누가 경제 정책을 총지휘하게 된다 하더라도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해서는 곤란하다. 협상에 임하는 여야 정치권이 이런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만 한다.

임 내정자로서는 일단 행보에 나선 만큼 위상에 구애받지 말고 후임 내정자가 정해질 때까지라도 현안을 챙기겠다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관련부처의 실무 책임자들도 회의에서 논의된 사항을 충실히 지켜가야 한다. 지금은 정치권의 협상에 따라 국정 공백이 더 길어질 수도 있는 비상 시국이다. 그러나 경제만큼은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모든 경제부처 담당자들에게 달린 문제다.

[서울신문]

3. 美 대선 이후 대응책 얼마나 준비됐나

제45대 미국 대통령을 뽑는 투표가 한국 시간으로 어제 오후부터 순차적으로 시작됐다. 당선자의 윤곽은 우리 시간으로 오늘 오후면 드러날 것이라고 한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막판까지도 오차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접전을 펼쳤다.

클린턴 후보의 ‘이메일 스캔들’에 대한 미 연방수사국(FBI)의 수사가 무혐의로 종결되면서 민주당의 재집권 가능성이 다소 커졌다는 관측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판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부동층의 표심이 누구에게 기울었는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누가 돼도 우리 안보와 경제에 미칠 영향은 간단치 않을 것이다.

북한의 잇따른 핵 및 미사일 실험에서 비롯된 동북아의 긴장은 지금 일촉즉발(一觸卽發)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만큼 높아져만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는 “한국은 북한에 맞서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고 선거전 내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국이 주둔 비용을 100% 부담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할 것”이라는 주장도 폈다. 여기에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최근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잇따라 비판하고 있다. 클린턴이 당선된다고 해도 오바마의 온건한 대북 정책이 지속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통상 환경에도 직접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트럼프는 벌써 미국이 체결한 모든 자유무역협정을 전면 재검토하고 재협상하겠다고 천명했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미국의 일자리를 갉아먹는 조약”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온건하다는 클린턴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반대를 공약하는 등 보호주의 성향을 보였다. 클린턴이 공언한 대로 미국산 제품 이용을 의무화하는 ‘바이 아메리칸’ 규정을 강화하면 한국에는 적지 않은 통상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어제 미국이 ‘커레이저스 채널’ 훈련을 7년 만에 재개한 것은 우리 안보 환경이 어떤 국면에 접어들었는지를 상징한다. 한국에 머물고 있는 미국 시민을 주일 미군 기지에 대피시키는 훈련이다. 우리는 지금 최순실 사태에만 함몰돼 미국의 대북 정책 기조의 변화에서조차 소외돼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정부는 그제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미 대선 결과에 따른 부문별 영향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아무리 나라가 어려워도 내일에 대한 준비가 허술해선 안 된다.

4. 경제 컨트롤타워, 더 오래 비워 둬선 안 된다

최순실 게이트가 온 나라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국정 리더십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국정 유린의 실체가 양파 껍질 벗겨지듯 파헤쳐지면서 대통령을 향한 국민의 신뢰는 끝 모를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경제 상황이다. 최근 경제동향에 따르면 9월 소매 판매가 4.5% 감소했고, 설비투자도 2.1% 줄었다.

특히 가계와 기업의 경제 심리가 위축돼 경기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게 문제다. 소비·투자의 위축은 생산 감소로 이어져 실물경제가 중장기적으로 침체될 수 있다. 민간 경제연구소들이 내년 1, 2분기 마이너스 성장까지 내다볼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대외적인 환경은 더 불안하다. 당장 미국 대통령 선거는 결과에 따라 핵폭탄급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승리할 경우 브렉시트의 10배에 이르는 후폭풍이 몰아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더구나 연말엔 미국 금리 인상도 예정돼 있다. 모두 무역과 금융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는 악재들이다. 해외 출장 중이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어제 오후 조기 귀국해 ‘금융경제상황점검회의’를 연 것도 이 같은 상황의 엄중함 때문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그제 금융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24시간 비상상황실을 가동하기로 했다.

문제는 책임 있게 위기 대응을 지휘할 사령탑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최순실 사태 이후 현 경제팀은 동력을 상실했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가 새 총리를 추천하면 받아들이겠다고 하면서 여야와 청와대는 조만간 새 내각 구성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물론 경제부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임 위원장의 입지도 불투명해졌다. 경제 부처 관료들은 위기 대응에 매진하기보다는 누가 새로운 수장으로 올지에 관심을 쏟을 게 뻔하다. 경제팀 컨트롤타워의 공백을 최소화하려면 정치권이 새 내각 구성을 신속하게 추진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총리 인준 후 최우선적으로 경제부처 수장부터 정해야 한다. 폭증한 가계부채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실업 대책, 400조원의 예산안 처리, 긴급한 구조조정 등 현안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미국발 금융·외환 위기 대응책도 시급하다. 여야가 총리와 장관 추천 등을 둘러싸고 정쟁에 빠지면 우리 경제는 회복 불능 상태가 될 수 있다.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

[세계일보]

5. 대기업 덮친 사정한파, 옥석 가리고 본말 살피길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어제 서울 삼성전자 사옥 등 9곳을 압수수색했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최씨 딸 정유라씨에 대한 삼성그룹의 ‘35억원 특혜 지원’ 의혹 수사가 본격화됐다는 뜻이다. 최씨가 배후 조종한 혐의가 짙은 미르·K스포츠재단의 대기업 출연금 774억원을 둘러싼 권력 외압 또는 정경유착 의혹을 파헤치는 사정한파가 매섭게 분다는 뜻이기도 하다.

삼성은 독일에 소재한 컨설팅회사 ‘코레스포츠’에 35억원을 지원했다. 코레스포츠의 바뀐 이름은 최씨 모녀 소유인 비덱스포츠다. 지원금의 총액 규모는 53개 기업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출연금에 비하면 크지 않다. 그럼에도 어제 압수수색은 재계를 얼어붙게 하고 있다. 비탈길의 눈덩이가 구르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검찰은 앞서 700억원대 출연금을 낸 53개 기업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벌이기로 했고, 대기업 총수들도 조사할 수 있다고 했다. 내심 떨지 않을 기업이 드물 것이다.

기업 동정론을 경계하는 여론이 엄존한다. 일방적 피해자로 봐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럼에도 검찰은 유념할 것이 있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은 근본 책임이 박근혜 대통령과 그 측근들에게 있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한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하루아침에 평창 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에게 퇴진 압박을 가할 정도로 권력의 갑질 행각이 무분별하게 저질러졌다. 한진해운의 공중분해, SKT·CJ헬로비전의 합병 무산 경위도 다시 살펴봐야 할 정도다. 박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 7명과 독대해 자금 모금을 독려한 정황도 있다.

출연 기업들은 무소불위의 갑질 행태에 눈치 보기에만 급급했을 것이다. 갑을관계 폐해가 가장 나쁘게 표출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수모를 겪고 갈취를 당한 기업들을 상대로 이번에는 검찰이 나서서 형식논리의 잣대를 들이대며 과도한 압박을 가한다면 기업인들은 수긍하고 반성하기는커녕 ‘이러려고 기업을 했나’ 하는 자괴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국정농단 의혹을 명쾌하게 규명하는 것은 시대적 과제다. 검찰은 당연히 힘을 내야 한다. 그러나 옥석을 가리지 않고 본말을 살피지 못하는 사정한파는 부작용과 역기능이 크다. 정교한 수사를 기대한다.

6. 새누리 친박 지도부 총사퇴해야 마땅

전대미문의 국정 농단 파문 속에 집권 여당의 존재감이 없다. 이번 사태에 선도적으로 책임 지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연일 “나가라” “못 나간다” 입씨름만 벌이고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당 안팎의 사퇴 요구에 그제 “가장 어려움에 처한 대통령을 도울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달라”고 했다가 많은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최순실 사태로 인한 국가 위상의 추락, 국정 공백의 최대 피해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염동열 수석대변인은 어제 박근혜 대통령과 정세균 국회의장 회동 후 야당 협조를 요청하면서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은 청와대와 집권 여당에 있음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국민께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 지도부가 책임지는 모습부터 보이는 게 순서다. 청와대 정무·홍보수석 출신의 이 대표는 비선실세 국정 농단 사태를 방기한 책임이 작지 않다. 이 대표체제는 그동안 박 대통령의 불통 국정을 엄호했던 친박근혜계 인사들이 다수다. 국정 농단 사태에 정치·도의적 책임이 있는 친박 지도부가 사태를 수습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 대표를 비롯한 친박 지도부는 야당과 당내 의원들이 요구하는 대통령 탈당을 거부했다. 김무성 전 대표가 그제 대통령 탈당을 공개 요구하자 친박계 이장우 최고위원은 “김무성 의원을 규탄한다”고 맞섰다. 각계 원로들이 거국중립내각을 대안으로 내놓은 상황에서 대통령 탈당은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시간을 끌어보자는 식이다. 이 대표는 야당이 거부한 김병준 총리 내정자 ‘대타’로 동교동계 인사를 물밑 접촉했다가 국민의당 측의 반발을 자초했다.

친박 지도부의 버티기는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의지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부풀린다. 총리·내각 인사에 개입하고 대통령의 국정 권한 다툼에 대비하려는 의도로 비친다. 친박 진영이 혹시라도 이런 식의 국면 전환 기회를 노리고 있다면 크게 오판하는 것이다. 이미 비박계를 중심으로 지도부 사퇴를 촉구하는 ‘구당 모임’이 추진되고 강석호 최고위원에 이어 나경원 인재영입위원장이 당직을 내놓았다. 당 바깥의 민심이 거센데 내부 분열까지 극심해지면 친박을 포함한 새누리호(號)는 침몰할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오로지 국민’을 내세웠지만 그동안 대통령, 청와대의 뜻에 충실한 ‘심복’에 그쳤다. 대통령 지지율과 함께 뚝뚝 떨어지는 새누리당 지지율이 돌아선 민심을 웅변한다. 대통령의 난국 수습을 돕는 길은 친박 지도부의 총사퇴뿐이다.

[중앙일보]

7. 정치권력 갈취 없애려면 기업도 수사 협조해야

최순실 사건의 후폭풍이 기업으로 향했다. 검찰은 어제 삼성전자 대외협력단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다른 기업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낸 53개 기업을 상대로 전수조사에 나선다는 얘기다. 검찰은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관련 기업 총수를 소환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엄포성 발언이라고 하기에는 검찰의 분위기가 엄중하다. 현직 대통령도 조사하기로 한 마당에 재벌 총수에 대한 소환 조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에 대해 제3자 뇌물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러면 돈을 준 기업은 뇌물공여 혐의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관련 기업들은 사실상 공갈과 협박에 못 이겨 최씨 재단에 돈을 줬다고 주장하지만 시중의 민심은 의구심 투성이다. 돈을 준 배경엔 “우리에게 특혜를 달라”는 암묵적인 요구가 있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이 때문에 관련 기업들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대통령만 되면 제왕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후진적 정치구조 아래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많은 국민은 알고 있다. 선거 때는 ‘차떼기’로 돈을 상납해야 하고, 권력 실세에게는 각종 명목으로 특혜와 이권을 제공해야 기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우리의 어두운 과거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기업엔 위기이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정치권력에 더 이상 돈을 갈취당하지 않으려면 이번에 모든 걸 털고 가야 한다. 특히 재단 설립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를 했던 7대 기업은 고해성사를 하는 심정으로 당시의 상황을 검찰에 소상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대통령을 앞세운 무속인에게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수십억원씩 돈을 뜯겨서야 되겠는가. 검찰 수사를 받고, 총수 일가까지 회사에서 쫓겨나가는 수모를 당하고도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것은 또 다른 권력형 비리를 가능케 해주는 토양이 될 뿐이다.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는 노력만이 분노한 국민의 용서를 구하는 길이다.

​[매일경제]

8. 대통령 맞는 미국…한미동맹 한 치 흔들림 없게 해야

어제 치러진 선거에서 뽑힌 미국의 새 대통령은 국제 정치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주목을 받을 것이다. 미국 내부 정치 지형이 새롭게 짜여지고 대외관계에서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뿐 아니라 대척점에 서 있는 경쟁자들도 새 그림을 그리려 할 것이다. 우리가 미국의 새 행정부 출현에 누구보다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일본, 호주와 함께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3대 동맹국이라는 위상에다 무엇보다 북한의 도발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조시 어니스트 미 백악관 대변인이 지난 4일 '강력한 동맹의 특징은 다른 인물들이 그 나라들을 이끌 때도 영속적이라는 점'이라며 한미동맹에 대해 언급한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거취와 관련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지만 미국 새 대통령으로 누가 당선되더라도 같이 적용되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서울에서 모인 미국의 주한, 주일, 주중 대사들과 만나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비하는 한미 간의 공조가 미 대선 후 새 행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맞는 말이다. 윤 장관의 표현처럼 북한의 위협이 동북아를 넘어 미국에도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만큼 북핵 문제가 한미 양국 대외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다뤄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한미동맹이 절대로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의 설명을 보면 그동안 우리 정부는 미 대선 결과에 관계없이 한미동맹의 토대를 다지기 위해 균형된 노력을 전개해왔다고 한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측이나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측 양 진영 인사들과 지속적인 접촉을 갖고 우리의 외교정책과 입장을 설명해 이해를 증진시켜왔다는 것이니 당연한 행보다.

미국에 한미동맹이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 등 지역 차원을 넘어 그들의 세계 전략 속에서도 왜 중요한지를 각인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미 대선 후 당선자와 회동까지 추진할 만큼 빨리 움직인다. 우리는 비록 국내 정치 상황에 휩쓸려 있더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 박 대통령과 미 당선자 간의 접촉 창구를 확보해 대한민국의 외교안보정책을 확실하게 설명해야 한다.

9. 무차별적 기업비리 수사로의 확대를 경계한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어제 삼성전자 서초동 사옥을 압수수색했다. 대한승마협회 회장인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 사무실뿐 아니라 대외협력단, 미래전략실도 포함됐다. 삼성그룹 심장부인 본사가 압수수색을 당한 것은 2008년 삼성특검 이후 8년 만이다. '최순실 게이트' 파장이 급기야 기업을 덮치기 시작한 것이니 심상치 않다. 검찰은 또 "전담팀을 꾸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낸 기업을 모두 조사하겠다"고 밝혀 기업들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순실 씨가 독일에 설립한 기업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에 280만유로(약 35억원)를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자금은 최씨의 딸 정유라 씨의 말 구입과 전지훈련 등에 사용됐다고 한다. 삼성이 검찰의 첫 번째 타깃이 된 것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204억원을 출연해 53개 기업 중 가장 기여도가 높은 데다 직접 자금을 지원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른 기업들도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정황이 나온 만큼 검찰 수사는 불가피하다.

다만 최순실과 관련된 의혹만을 해소하는 정밀하고 신속한 수사여야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기업 총수들을 줄소환하고 최순실 의혹과 관련 없는 것까지 탈탈 터는 무차별적 기업 비리 수사로 확대되는 것이다. 검찰은 어제 "기업들이 사실에 부합하게 얘기를 하면 좋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총수도 불러 조사할 수밖에 없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기업들은 벌써 다음 수사 대상이 누가 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업들이 서초동만 쳐다보고 불안에 떨고 있어서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지금 한국 경제는 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 '최순실 사태' 파장이 기업 경영활동을 멈춰 서게 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검찰은 포스코그룹과 롯데그룹 수사 때도 기업을 이 잡듯이 뒤지는 '먼지떨이식 수사'를 감행해 빈축을 산 바 있다. 수사권을 남용하거나 장기화하다가는 경제 전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검찰은 기업 수사 때마다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수사'를 언급했는데 이번에야말로 약속을 지켜 경제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매일신문]

10. 시민 안전 위협하는 택시, 사고 감소 대책 급하다

최근 고속도로에서 관광버스 사고가 꼬리를 물고 있는 가운데 택시 사고 또한 대구 도심 교통사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안전공단 대구본부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도심 교통사고 유형을 분석한 결과 전체 사업용 차량 교통사고 1만466건 가운데 60.4%가 택시로 인한 사고로 드러났다. 사망자도 94명으로 비율이 44.1%로 높았다.

이처럼 대구 도심에서 택시로 인한 교통사고가 많은 것은 심각한 교통 정체나 안전 시설물 등 교통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등 구조적인 요인도 있지만 기사들의 안전 의식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다. 신호 위반이나 안전거리 미확보, 난폭`과속 등 택시 운전기사들의 교통법규 위반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간 시간대 신호등이 없는 도로나 점멸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에서 특히 사고가 많이 발생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교통량이 많지 않거나 단속이 거의 없는 도로에서 운전기사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법규마저 무시하고 운행하다 인명 피해를 부르는 것이다.

올 들어 대구에서 발생한 택시 교통사고 때문에 사망한 사람은 모두 11명으로 지난해 7명보다 늘었다. 올해 대구시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가 132명에서 124명으로 줄었지만, 택시 사고 사망자는 늘어 대조를 이룬다. 사고 원인도 안전운전 불이행이 45.1%로 가장 많았고, 안전거리 미확보가 22.4%로 나타났다. 과속(8.5%), 신호 위반(6.4%), 보행자 보호 위반(2.1%)도 빠지지 않는다.

택시가 도심 교통사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시민 안전에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대구시는 난폭`과속 운전 등 상습적으로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운전기사나 안전교육을 소홀히 하는 법인에 대해서는 행정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경찰 등 관계 기관과 택시 사고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안전운전 캠페인 등 홍보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머니투데이][우리가 보는 세상]기이한 ‘아이쿱’ 스캔들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또는 불명예스러운 평판이나 소문을 뜻한다. “대통령 스캔들 때문에 한국이 경제스캔들을 잊었다”고 한 미국 주간지 ‘비즈니스위크’의 지난주 기사처럼, 통상적으로는 스캔들을 일으킨 사람이 주어로 쓰인다. 또, 문제의 핵심이 단어에서 드러난다. 최순실의 미르재단 사유화, 박근혜 정부 국정 개입 의혹은 ‘최순실게이트’라 불린다.

지난 2일, 관행을 벗어난 제목의 기사들이 방송사, 인터넷매체에서 쏟아져나왔다. 경찰이 개인비리로 기업 전직 간부를 구속 수사할 땐, 처음엔 기업명을 익명 처리해주는 게 관행이다. 비리 보도로 기업 브랜드가 입는 타격이 크기에 이 정도의 매너는 기자들도 지켜준다. 그런데 이번 기사들은 달랐다. ‘아이쿱생협 간부가 수산물 납품 대가로 17억 원 챙겨’ 등 제목으로 회사명을 강조했다.

이날 늦은 오후 아이쿱생협사업연합회의 사과문이 전국 180개 매장과 온라인 사이트에 게재됐다. 이틀 후 연합회는 감사부가 사건 진상을 더 명확히 규명해 관리 감독 책임을 묻고 뇌물수수로 조합원들에게 피해가 있었는지 밝히겠다는 등 추가 대책을 발표했다. 부패·비리 방지책 등 인사시스템 혁신방안 마련도 약속했다. 그런데 네 번째 대책이 특이했다. ‘언론은 공정하게 사실을 보도해 주길 바랍니다.’

'사실'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물품 총 책임자 김씨가 17억1000만여 원을 뇌물로 받았다. 그는 배임수재 혐의로 부산 경찰청에 구속됐다. 수산물 납품 계약을 유지하는 대가로 10여년 간 납품액의 3~5.5%를 리베이트로 준 모 가공업체 대표도 함께 구속됐다. 리베이트를 준 다른 도매업체 대표는 불구속 입건됐다.

이 정도 내용이라면 ‘아이쿱’이 아니라 ‘모 생협 간부’라 써야 한다. 왜 이번엔 달랐을까. 부산 경찰청이 회사명을 밝힌 탓일까? 최순실이 모든 보도의 블랙홀이 되어버린 와중에 기자들이 보기엔 ‘모 생협 간부’보다는 윤리적 소비를 모토로 한 ‘아이쿱’이란 브랜드가 제목으로 더 섹시했던 것일까?

아이쿱은 소비의 윤리를 알리며 23만7600여 명의 조합원을 모았다. 지난해엔 친환경, 공정무역, 사회적기업 등 윤리적 생산품을 팔아 5256억 원의 매출을 냈다. 아이쿱 구례자연드림파크는 국회의원, 해외 인사들에게 사회적경제 성공사례로 인기 있는 견학 코스였다.

이 때문에 이번 기사는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 사회적 경제계엔 최순실게이트 만한 충격을 줬다. 더 큰 충격은 임직원과 조합원들이 받았다. 아이쿱 한 간부는 “김 본부장이 몸이 아프다며 9월말에 퇴직했을 때만 해도 사내 평판이 좋은 편이었다”며 “68평 아파트에 살고 외제차가 있다는 건 우리도 보도를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에서 ‘완벽한 이중 생활자’였단다.

아이쿱이 다시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스캔들’ 이후에도 조합원 구매액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연합회는 7일 긴급 이사회에 이어 9일 전국대표자회의를 소집하며 대응책 마련에 부산하다.

어쩌면 이번 일로 더 단단한 조직 기반이 다져질지도 모르겠다. 자사 임직원 사이의 과잉신뢰, 매너에 벗어난 보도가 더 이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일본의 ‘코프 고베’는 2004년 직원 2명이 전표를 위조해 3억9000만 엔을 착복하는 사건이 벌어졌지만 내부제보 등 시스템을 보강해 지금은 해외 생협 직원들의 견학 코스 중 하나가 됐을 정도로 다시 신뢰와 명성을 찾았다.

2. [매일신문][매일춘추] 흔한 풍경과의 우발적인 만남

그곳은 어떤 철거 직전의 창고였다. 건축을 업으로 삼는 그로서는 가장 흔히 보는 풍경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곳에 들어섰을 때 그 창고에는 별자리처럼 퍼져 있는 구멍들이 있었고,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낮의 빛은 캄캄한 공간 곳곳에 부딪히며 마치 우주 한가운데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최초에 별자리를 만들던 이들에게 밤하늘의 별은 가장 흔히 보는 풍경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어느 지루하고 긴 밤을 보내던 양치기 하나가 그 별들 사이에 상상의 선을 그려 넣어 ‘작은곰자리’라고 이름 붙였을 때, 별들은 더 이상 이제까지 봐왔던 수많은 별 중 하나가 아니었다. 이제 하늘은 무뚝뚝한 이정표가 아니라 밤길을 따라 펼쳐진 이야기가 되었다.

사실 인문학은 ‘인간의 무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별자리를 만들던 사람들이 빛나는 작은 점이라 생각하고 선을 그었던 그 별들은 사실 적어도 수만 년 전에 발한 빛이 겨우 그들의 눈에 와 닿은, 까마득한 과거의 잔상이었다. 크기도 다르고 거리도 저마다 다른 그 별들을 이은 건 상상력이라는 강력한 접착제 덕분이었다.

더 이상 유목을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넓은 들판에 누울 기회도 여의치 않은 도시민에게 가장 흔한 풍경은 무엇인가. 그 흔한 풍경 중 하나는 아마도 아파트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골목길일 것이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생활의 대부분은 저 골목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골목은 어둡고 지저분하고 재개발만을 기다리는 버려진 풍경이 되어버렸다. 잘 알려진 몇몇 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골목길은 어느새 과거의 흔적이 되어가고 있다.

몇 년 전 중구의 한옥 현황을 파악하는 조사를 하기 위해 골목 구석구석을 걸어다닌 적이 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한옥들이 백 년 가까이 이어져 오는가 하면, 언제 지어진 건지 예측도 하기 어려운 초가집도 있고,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적산과 한옥 중간 형태의 애매함에도 맞닥뜨렸다. 길을 걷고 사람을 만나는 게 일상인 나에게도 대구 중구 전체 골목을 걷는다는 것은 우발적인 만남의 연속이었다. 사는 이들에겐 불편도 따른다.

아파트와 양옥 중심으로 편제된 법령 등으로 한옥살이는 더욱 까다롭고 귀찮은 일이 되어간다. 하지만 일률화된, 수직화된 삶에 비해 스러져 가는 골목의 삶은 훨씬 더 미래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이어져 왔고 가장 지속 가능성 있는 삶은, 언젠가 통째로 무너질 층층 쌓아올린 삶이 아니라 사방으로 퍼져 조금씩 변해갈 수 있는 유연함에 있다고.

도시가 높이 올라갈수록 골목의 집들은 땅속에 묻혀 버릴 과거가 되겠지만, 그 언젠가 어느 양치기가 최초로 별자리를 만들어 냈듯이 이 골목과 한옥의 아스라한 빛들은 미래의 길잡이가 될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앞으로 이곳에 어떤 무늬를 남기게 될까?

3. [서울신문][공희정 컬처 살롱] 드라마가 현실 같다

최고 시청률 20.2%, 2013년 MBC 연기대상 남녀신인상 수상, 광고 완판. 이야기는 상식의 범주를 벗어났고, 전개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시청자들은 본방 사수의 의리를 지켰고, 드라마는 장안의 화제였다.그

렇게 대단한 드라마는 시작부터 특이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려하는 황마마에겐 시몽, 미몽, 자몽이라는 세 명의 누나가 있었다. 누나들은 남동생이 잠자리에 들면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했다. 주기도문과 반야심경을 한꺼번에 외우는 기괴한 기도는 매일 밤 이어졌다. 집안의 전통 의식 같은 이 기도는 마마가 결혼한 후 올케에게도 따르라는 명이 내려질 정도였다. 동생을 생각하는 누나들의 정성은 갸륵했지만 보통의 시선으론 이해하기 어려웠다.

등장인물들은 맥락 없이 사라졌다. 주연, 조연, 단역까지 서른 명 내외의 인물이 등장하는 드라마에서 열두 명의 인물이 중도에 하차했다. 극 전개상 등장인물이 사망할 수도 있고, 해외나 지방으로 이사를 가기도 하고, 인물 간 관계가 정리돼 퇴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선 줄초상 나듯 줄줄이 사라졌다. 흐름상 중요한 조연이었고, 상당수가 중견 연기자임에도 불구하고 카메오라면 너무 길고, 조연이라면 너무 짧았던 그들의 등장과 퇴장은 어이가 없었다.

한 집안의 아들 삼형제와 그들의 아내가 연달아 미국으로 출국하며 사라지는 것을 시작으로 유체이탈을 경험한 뒤 사망하기도 하고, 자동차를 타고 가다 자는 듯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심지어 여주인공의 애견으로 등장한 ‘떡대’라는 개까지 사망하며 하차했다. 역대급 하차 기록은 드라마 역사상 쉽게 깨질 수 없는 진기록이 됐다.

통상의 의학적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이야기도 있었다. “암세포들도 어쨌든 생명이에요. 내가 죽이려고 하면 암세포들도 느낄 것 같아요.” 암에 걸렸다면 당연히 치료받는 것이 정상일 것인데, 암에 걸린 설설희라는 엔터테인먼트사 대표는 어디가 비정상인지 치료를 거부한다. 특이한 종교를 가졌거나 경제적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암세포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치료 거부 사유는 가히 노벨 평화상감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인 나타샤라는 남자는 맥락 없이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해 이젠 더이상 남자를 좋아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성전환 수술이라도 받았나 싶었는데 산사에 들어가 하루에 천 배씩 두 달 동안 절을 했더니 남자가 됐고, 10만배를 하니 여자가 예뻐 보였다고 한다. 정신 수양만으로 성 정체성을 바꾼 놀라운 기적을 이뤘다.

이쯤 되니 시청자들도 참는 데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50회 연장 방송 이야기다. 당연히 연장 방송 반대 서명 운동이 시작됐고, 6일 만에 8000여명이 서명했다. 제작진은 간신히 30회 연장으로 저지했으나 정신 차리지 못하고 추가 연장을 검토한다는 소문이 돌자 추가 연장 저지 운동을 비롯해 협찬사 상품 불매 운동, 작가 퇴출 운동으로 불이 번져 갔다.

그 유명한 드라마는 2013년 5월부터 12월까지 방송된 ‘오로라 공주’(MBC)다. “쓰는 입장에서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했고, 연출부 의견도 듣고, 심의실 의견도 수용하고, 특히 예민할 수 있는 사안에선 기획자”의 조언까지 들었다는 작가는 이듬해 드라마 한 편을 더 쓴 후 자진 은퇴했다.

4. [동아일보][황광해의 역사 속 한식]숙수(熟手)의 삶

영조 42년(1766년) 8월의 기록. 영조가 영의정 홍봉한(1713∼1778)을 만난다. 홍봉한의 보고다.

“궁궐 안팎의 제사 등에 병, 면, 포탕을 마련합니다. 이때 여인들에게 음식을 준비하게 하는 일이 잦습니다. 도성의 여러 부서도 궁의 잘못된 전례를 따릅니다. 민폐도 심하고 폐단도 많습니다. 고귀한 일에 내력이 불분명하고 정결하지 못한 여인을 여러 숙수(熟手)들과 뒤섞이게 하는 것도 미안합니다. 봉상시의 숙수들은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는데 어찌 병, 면, 탕을 만들지 못하겠습니까? 앞으로 봉상시에서 특별히 신경을 써서 (여인들을 쓰지 말고) 숙수들이 일을 하는 것이 올바른 길입니다. 민폐를 없애는 길이기도 합니다.”

영조의 대답도 간명하다. “몹시 해괴하다. 무례하다. 민폐도 심할 것이다. 엄금하라.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봉상시 해당 관원들의 책임을 무겁게 물을 것이다”(조선왕조실록).

영조와 홍봉한은 사돈지간이다. 홍봉한의 딸이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 홍봉한은 세손(世孫)이었던 정조의 외할아버지다. 영의정, 현직 국왕의 사돈, 세손의 외할아버지가 국왕 독대 자리에서 꺼낸 이야기가 “여인들이 음식을 만지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봉상시는 제사를 도맡는 부서다. 제사 음식, 궁중의 일상적인 음식을 만드는 일은 유교의 법도에 따라 중요한 일이었다. 민간 반가나 상민의 집에서는 여자들이 음식을 만들었지만 궁중이나 관청의 음식은 철저히 남자들의 몫이었다.

음식 만드는 일이나 식재료 장만, 물 떠오는 일도 남자의 몫이었다. 음식은 숙수, 선부(膳夫), 재부(宰夫), 옹인(饔人), 수공(水工), 반공(飯工) 등이 만졌다. ‘부(夫)’는 사내, 남정네다. 선부는 반찬, 재부는 고기, 옹인, 반공은 밥 짓는 일을 맡았다. 한양과 지방의 관청도 마찬가지. 음식 만드는 일에 여자들이 끼어드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태종 13년(1413년) 7월의 기록. 사간원의 상소에 ‘뼈’가 있다. ‘예전부터 가뭄이 오면 국왕도 감선했다. 금주 명령이 있지만 여전히 술 취한 사람이 있으니 금주를 엄격히 시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자면 “국왕인 당신이 술을 마시지 않느냐, 좋은 음식을 먹지 않느냐”는 뜻이다. 서슬 퍼런 국왕이다. 마음대로 보위에 올랐고, 살아 있으면서 하야(下野)했고 외교, 국방권을 가졌다. 재위 13년, 살아 있는 권력자가 변명한다. “감선하는 일이라면 나의 주방에 진실로 별미(別味)가 없는 것을 선부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조선왕조실록). 선부는 천민 남자다. 이름도 각색장노(各色掌奴), 숙수노(熟手奴)였다. ‘노비(奴婢)’의 ‘노’는 남자 종이다.

궁궐에서 음식 만드는 일은 힘들었다. 웬만하면 피하려 했다. 숙련된 숙수는 더 귀했다. 인조 3년(1625년) 3월, ‘숙수 사노(私奴) 천해남’을 두고 부처 간의 갈등이 일어난다. 중국에서 사신이 왔다. 사신 접대는 영접도감의 몫이다. 숙련된 숙수가 없다. 천해남은 숙련된 숙수다. 불행히도 사옹원 소속, 세자궁 파견이다. 영접도감에서 인조에게 건의한다. “중국 사신이 돌아갈 때까지라도 천해남을 영접도감에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조는 허락한다. 나흘 뒤인 3월 27일, 사옹원이 들고 일어선다.

“사옹원 소속 숙수들의 업무가 힘듭니다. 교대로, 밤낮없이 궁궐주방에서 일합니다. 이번에 천해남이 영접도감의 숙수로 명령받았습니다. 왜 하필이면 궁궐에서 힘든 일을 하는 숙수들을 데려갑니까? 천해남과 사옹원 소속 다른 숙수들을 절대 데려가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승정원일기).

사옹원은 식재료 관리, 음식 만드는 일 등을 하는 부서다. 숙수들은 사옹원 소속이었다. 대령숙수(待令熟手)도 잘못 알려졌다. 높은 직책이 아니다. 밤낮 없이 일하는 ‘궁궐주방 5분대기조’다. 역시 남자다.

궁중숙수들은 부업으로 그릇 빌려주는 일도 했다. 정조 14년(1790년), 궁중숙수들은 사기전(砂器廛)과 맞선다. 사기전 상인들은 ‘그릇 빌려주는 세기전(貰器廛)’을 만들고 궁중숙수들을 흡수, 일을 독점하려 한다. 자신들이 그릇 빌려주는 일을 도맡고 이익의 일부를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궁중숙수들은 반발한다. 영조 30년(1754년), 이미 세기전, 궁중숙수들이 각자 그릇 빌려주는 일을 나눠 하도록 결정했다. 이제 와서 세기전이 독점하는 것은 부당하다. 정조는 궁중숙수들의 의견을 따른다(일성록).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저넷 랭킨

1916년 11월 9일 미국 몬태나 주의 저넷 랭킨(Jeannette Rankin)이 미국 최초 여성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힐러리 클린턴의 대통령 선거 투표일로부터 꼭 100년 전이었다.

랭킨은 몬태나가 미국의 주가 된 지 9년 만인 1880년, 교사 어머니와 목수겸 작은 목장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6남매 중 맏딸로 태어났다. 몬태나대학서 생물학을 전공했지만 봉제와 가구 디자인 등 일을 하며 돈을 벌었고 28세 무렵 뉴욕으로 건너가 뉴욕박애학교(콜럼비아대에 편입)를 다녔다. 1900년대 초는 여성 참정권운동 열기로 뜨거웠다. 그는 여성 인권ㆍ참정권 운동에 열성적으로 가담했고, 1914년 11월 몬태나 주 의회가 여성 참정권 허용법안을 통과시킨 뒤 치른 첫 선거에서 그는 하원의원이 됐다.

1차 대전, 윌슨 정부는 독일 잠수함 공격에 미국 선적 루시타니아 호가 침몰하자 고립주의를 포기, 참전을 위한 의회 동의를 요청했다. 1917년 4월 2일, 찬반 투표에서 랭킨은 반대표를 던진 56명(상원 6명 포함) 가운데 한 명이었고, 당연히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는 “나는 내 나라를 지지하지만 전쟁을 지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연방정부가 여성 참정권을 허용한 것은 1919년 수정헌법 19조를 통해서였다. 한 해 전 그 법안은 하원을 통과했으나 상원 반대로 무산됐다. 그 투표에 참여한 유일한 여성도 그였다.

반전 투표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랭킨은 18년 상원의원 선거에 낙선했다. 그는 거리에서 여성 인권ㆍ평화운동을 벌이며 공익로비스트로 활동했다. 그리고 1940년 60세에 다시 하원에 입성했다. 공교롭게 그 때는 2차대전이 한창이었다. 이듬해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루스벨트가 참전을 선언, 의회 동의를 요구했다.

41년 12월 투표에서 상ㆍ하원을 통틀어 참전에 반대한 유일한 의원이 랭킨이었다. 그는 “여성인 나는 전쟁터에 못 나간다. 그리고 나 아닌 그 누구도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반전 투표에는 여성운동 진영에서조차 지나치다는 비판이 일었다고 한다. 그는 이듬해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

다시 거리에 선 랭킨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파병에도 반대했다. 팔순의 그가 ‘저넷 랭킨 여단’이라 불리던 여성활동가들을 이끌고 벌인 60년대 말 반전 시위는 미국 시민이 호응한 거의 유일한 그의 평화 캠페인이었다. 그는 1973년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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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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