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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트럼프 폭풍’ 앞 비탈에 선 한국 경제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우리 경제에 충격파가 겹쳤다. 미국 국익을 앞세워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보호주의 정책이 가시화할 경우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는 결정적인 타격이 될 것이다. 가뜩이나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국정 공백의 장기화로 정책 대응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한·미 FTA의 재협상 문제다. 트럼프 당선인은 한·미 FTA에 대해 “미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살인자”라며 전면 재협상 의사를 밝혀 왔다. 만약 한·미 FTA에 따른 관세양허가 중단될 경우 앞으로 5년간 수출 손실액이 최대 270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일자리도 24만개가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우리 수출이 중국에 이어 미국에 두 번째로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우리 경제를 이끌어오던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이미 뒷걸음질치고 있는 상황이다. 경쟁력을 끌어올리려고 애쓰고 있지만 성과를 쉽사리 장담하기도 어렵다. 현재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조선업과 철강, 석유화학 분야도 형편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법정관리 사태로 세계 해운시장에서 ‘미운 오리새끼’ 신세로 전락한 한진해운의 모습이 상징적이다. 그야말로 우리 경제가 ‘퍼펙트 스톰’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 우리 외환 건전성이 양호한 것은 다행이지만 그 정도로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글로벌 자금흐름 변화와 해외 투자자들의 동향도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와는 별도로 보호주의로 치우치고 있는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경제정책의 골격을 다시 짜야만 한다.

이제 우물쭈물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 시간적 여유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년 1월 출범하고 일련의 정책들을 차례로 밀어붙이게 된다면 이미 그때는 시기를 놓친 뒤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사령탑의 입지조차 불안정하다는 사실부터가 안타깝다. 서둘러 개각을 완료함으로써 트럼프 진영과 접촉할 수 있는 비상 체계를 가동할 필요가 있다.

2. 이러라고 거대 야당 만들어 주었을까

나라꼴이 도대체 어찌 되려고 이러는가. 야권이 기어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을 모양이다. 야3당 대표는 그제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총리 추천’ 제안에 대해 “야권의 분열을 조장하고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꼼수”라는 이유로 일축하고 내일 열리는 촛불집회 참여를 선언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은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장외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그러나 야권 지도자들은 대한민국의 외교·안보·경제에 일대 격랑을 예고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미국 대통령 당선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파묻힐까 봐 “국민은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며 의미를 애써 축소하기에 급급할 뿐이다. 국정이 붕괴 일보 직전이고 우리 외교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대미 관계가 휘청거리는 내우외환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촛불집회에 당력을 집중한다면서도 지도부의 참여 여부는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눈치 정치’도 밉상스럽다.

야권은 자고 나면 새로운 조건을 추가하며 정국 주도권 잡기에만 골몰하는 모양새다. 특검과 거국중립내각을 잇따라 내놨다가 여당이 기꺼이 수용하자 화들짝 거둬들이더니 이번엔 박 대통령의 탈당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사퇴를 요구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어떻게든 국정을 추스르며 수권능력을 입증하기보다는 다수 의석에 기대어 정권을 뒤엎으려는 원초적인 야욕만 드러내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정치를 팽개치고 거리로 뛰쳐나가 촛불을 드는 게 거대 야당의 할 일인지 묻고자 한다. 야권의 이런 행태는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로 어깨가 축 처진 국민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집권에만 눈이 쏠려 국난의 위기도 나 몰라라 하는 야당이 국민 눈에 곱게 보일 리 없다. 최순실 사태를 초래한 박 대통령에 대한 단죄와는 별개 문제다. 박 대통령을 변호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러라고 거대 야당 만들어 준 걸로 아는가”라는 힐난이 세간에 더 이상 번지기 전에 야권은 정치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박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려면 촛불을 들 게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탄핵을 발동하면 그만이다. 그럴 용기가 없다면 당장이라도 여권과 머리를 맞대고 국정을 이끌 새 총리를 추천해야 한다. 총리의 권한과 대통령의 지위는 그때에 가서 논의해도 늦지 않다.

​[서울신문]

3. 농단의 발원지는 결국 박 대통령이었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미르·K스포츠 재단의 대기업 모금을 박근혜 대통령이 “세세하게 지시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에서도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과 관련해 박 대통령의 직접 지시 내용이 담긴 녹음 파일이 발견됐다. 검찰이 확보한 녹음 파일에서 박 대통령은 “(청와대 문건) 자료를 최씨에게 보여 주고 의견을 들으라”고 주문했다.

박 대통령의 조사를 앞둔 검찰이 핵심 물증을 잡기 위해 수사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는 모양새다. 적어도 밖에서 보기에 그림은 그래 보인다. 최씨와 문고리 권력들이 검찰에서 어디까지 입을 열 것인지에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다. 그런 가운데 이들이 모두 자신들의 혐의와 관련해 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줄줄이 인정하고 나오는 상황이다. 정 전 비서관은 최씨의 태블릿 PC에서 청와대 기밀문건이 나왔다고 처음 보도됐을 때만 해도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던 사람이다.

이런 일련의 사실들은 여간 중대한 문제가 아니다. 국가 기밀문서 유출의 몸통이 누구도 아닌 박 대통령 자신이라는 구체적인 증거들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재단들에 들어간 수백억원이 박 대통령이 직접 대기업의 팔을 비튼 결과라는 얘기다. 총수들과의 독대 전에 청와대가 기업의 민원 사항을 먼저 챙겼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다음 주말께 최씨를 우선 기소할 계획이다. 수사 대상에 성역은 없다고 장담한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조만간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헌법상 불소추 특권이 있는 대통령을 수사하는 검찰이 과연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의지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어영부영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줘서 정국 혼란만 부추기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국정농단 연루 의혹을 받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어제서야 자택 압수수색을 했다. 한심한 뒷북 대처에 “집들이 갔냐”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박 대통령은 도덕적 권위와 정상적 통치 능력의 국민 신뢰를 잃었다. 청와대는 부인하지만, 현직에 머물며 검찰의 수사 내용을 보고받는 것으로 국민은 의심하고 있다. 권력의 시녀라는 원성을 더 듣지 않으려면 검찰은 죽어서 다시 살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박 대통령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 방침을 서둘러 마련하라. 공정하고 객관적인 수사가 지상명령이라는 사실은 말할 필요가 없다.

4. 안보 격변 없도록 트럼프측과 적극 접촉해야

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신(新)고립주의를 외교 정책의 ‘키워드’로 내세웠다. 대외적 개입을 줄이고 미국 국내로 눈을 돌리겠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면서 전 세계 분쟁 등에 적극 개입해 왔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은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실익을 거두지 못했다는 게 트럼프 당선인의 생각인 셈이다. 세계의 안보지형, 특히 동북아 안보지형이 ‘트럼프 시대’의 개막과 함께 격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큰 이유다. 우리가 선제적,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선거용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한·미 동맹도 중대한 변화의 기로에 설 가능성이 크다. 그는 직접 한국을 거론하며 ‘안보 무임승차’를 비난한 바 있다. “끔찍하다”는 표현까지 서슴없이 사용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당장 발등의 불로 대두될 것이고, 사드 배치 비용을 요구하는가 하면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내 들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그의 이런 ‘비즈니스 안보’ 구상이 실제 정책으로 현실화된다면 국내의 반미 정서까지 자극해 한·미 동맹 자체가 위협받게 될 것이다. 한·미·일 군사협력 체제의 변화도 불가피해진다.

트럼프 당선인은 ‘아시아 회귀 전략’ 아래 동아시아와 남중국해 등에서 중국을 강력하게 견제해 온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는 다른 길을 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발을 뺀다면 중국, 러시아의 힘은 상대적으로 커진다. 전혀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 당선인의 대북 정책 방향도 우리로선 큰 위기다. 특히 우리를 배제한 채 북핵 선제타격을 감행한다면 민족의 운명은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선제적, 능동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와 협의하면서 중국, 러시아, 일본까지 포함한 4강 외교를 전면적, 주도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커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어제 축하 전화를 건넨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굳건하고 강력한 방위태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한·미 동맹 강화 기대감을 밝히자 “100% 동의한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한반도 정책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일단은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온 셈이다. 하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한·미 동맹 관계의 악화, 동아시아 역학 관계의 급변 등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모두 전략 테이블에 올려놓고 만반의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안보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5. 한미동맹 강조한 트럼프에게 북핵해법 선제적 제시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어제 박근혜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국은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굳건하고 강력한 방위태세를 유지할 것”이라며 “흔들리지 않고 한국과 미국의 안보를 위해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미동맹을 강화·발전시키자는 박 대통령의 말에 “100% 공감한다”고도 했다. 대선 과정에서 한국의 안보 문제와 관련해 적지 않은 우려를 자아냈던 트럼프 당선인이 당선 하루 만에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태도 변화는 대통령으로서의 정책 결정이 선거 캠페인을 할 때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에 비해 신중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낳는다. 어제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정책토론회에서도 트럼프의 외교안보 정책이 후보 시절과는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새로운 외교안보팀이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짤 때까지는 대북 제재와 압박의 동력이 떨어질 수 있을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따라서 우리가 선제적으로 실현 가능한 북핵 해법을 마련해 트럼프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주한미군 철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철회와 같은 과격한 정책을 펼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 하지만 집권 초기엔 큰 성과를 내기 어려운 북핵 문제가 정책의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를 지적해온 그가 실제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의 증액 등을 요구하고 나설 경우엔 미군의 한반도 주둔이 한국에 대한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 한미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트럼프 당선인이 기업인 출신의 현실주의자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실리에 입각한 한미 공조 강화를 추진해야 한다. 튼튼한 한미동맹과 북핵 문제의 해결이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현실적 판단을 트럼프 당선인이 할 수 있도록 정권교체기 대미(對美) 외교에 총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6. 野, 길거리가 아니라 대통령과 회담 테이블에 앉으라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가 어제 서울 홍대입구역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국민의당이 ‘정권 퇴진 운동’을 당론으로 정한 데 이어 더불어민주당도 “국정조사와 별도 특검, 박 대통령의 2선 후퇴, 국회가 추천한 총리에게의 전권 위임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대통령 퇴진 투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재차 밝혔다.

청와대가 영수회담을 열어 박 대통령이 제안한 국회 추천 총리의 구체적 권한 범위를 확정하자고 하는데도 야권이 이를 거부한 채 12일 대규모 촛불시위 직전에 장외 집회를 여는 것은 순서부터 잘못됐다.

지금 국정의 주도권은 국회에 있고,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의 주도권은 야권이 쥐고 있다. 야권이 가야 할 자리는 장외가 아니라 국회이고, 협상 테이블이다. 올 초 박 대통령이 ‘경제 활성화 입법촉구 1천만 서명운동’에 참여했을 때 국민의당 한상진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은 ‘길거리 민주주의’라고 비난했고 민주당 도종환 대변인은 “대통령이 국회를 설득해 막힌 정국을 풀 시간이 없느냐”고 비아냥댔다. 그랬던 정당들이 대통령과 마주 앉기는커녕 길거리로 뛰쳐나가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시위에 참여하는 국민은 하야를 외쳐도 정치인은 정치적으로 풀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것이 바로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이다. 국민의 하야 요구가 거셀수록 야권은 영수회담에 응해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국회 추천 총리의 구체적 권한 범위를 놓고 협상해야 한다. 정치가 가장 필요할 때 정치를 팽개치고 거리로 나서는 정치인이 대통령 될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만에 하나 대통령이 하야한다고 해도 60일 안에 선거를 통해 당선될 자신도 없으면서 혼란을 극대화 장기화하려는 건 아닌가.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내치 외치는 물론이고 군통수권까지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도 납득하기 힘들다. ‘선거를 통하지도 않고 국민이 만들어준 권력을 통째로 탈취하려는 것’이라고 박주선 국회부의장이 지적할 만큼 비민주적 발상이다.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는 이른바 민주화세력이 1987년 민주화의 결실로 탄생한 헌법을 부정하는 발상을 하는 것도 놀랍다. 야권이 위헌적인 요구를 던져놓고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건 국민의 동의를 받기 어렵다.

박 대통령도 가능한 한 최대한의 2선 후퇴를 제안해야 한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는다면 야권은 하야 요구 아닌 헌법적인 퇴출 절차를 시도하는 것이 민주주의 절차에 맞다. 모든 정치적 타협을 시도해본 뒤 그도 저도 안 된다면 마지막으로 탄핵 발의를 하는 것이 혼란을 줄이는 길이다. 기득권에만 매달리는 기성 정치에 대한 분노가 미국에선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표출됐음을 여야 정치권은 알아야 안다.

[세계일보]

7. 내우외환 맞설 강력한 경제리더십 서둘러 구축하라

‘트럼프 충격’은 우리 경제에 전례 없는 메가톤급 악재를 몰고 오고 있다.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며 전면 수정하겠다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보호무역주의 강화, 자유무역체제의 전면 수정은 세계 경제의 틀을 바꿔 놓을 것으로 점쳐진다. 파장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금값과 엔화 가치가 뛰고 멕시코 페소화 가치가 폭락한 것은 불확실성을 보여주는 일례일 뿐이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미국, 영국, 아시아 증시가 10∼15% 추락할 것”이라고 했다. 주요 경제연구기관들은 신흥시장의 주식·외환·실물 경제가 위기에 내몰릴 것이라는 경고를 쏟아낸다.

우리 경제는 ‘퍼펙트 스톰’ 앞에 벌거벗은 채 놓일 가능성이 크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로선 미국의 고립주의가 전염병처럼 확산되면 수출과 관련 산업에서 전방위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대미 수출만 놓고 보더라도 자동차, 철강 등 주력산업은 시퍼렇게 멍들 판이다.

우리 경제는 가뜩이나 깊은 수렁에 빠진 상태다. 경제성장률은 4분기 연속 0%대를 기록했다. 9월 소비는 전월보다 4.5% 줄어 5년7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을 나타냈다. 침몰하는 경제 실상을 말해 주는 지표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악재도 수두룩하다. 조선·해운 위기,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 공공노조의 파업이 모두 그런 부류에 속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 리더십이 무너지면서 경제정책은 방향을 잃고 있다. 어제로 44일째 이어지는 철도노조 파업은 ‘손놓은 정부’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제 경제현안점검회의를 열었다. “필요 시 시장안정 조치를 신속하고 단호하게 취하겠다”고 했다. 그 말이 공허하다. 경제 리더십이 무너져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내년 경제운용계획 하나 짜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경제부총리에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내정한 후 경제 컨트롤타워는 ‘한 지붕 두 수장’의 어정쩡한 공생을 이어가고 있다. 작동하지 않는 경제 컨트롤타워를 두고 목소리만 높인다고 위기대응이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지금 해야 할 일은 강력한 경제 리더십을 다시 구축하는 일이다. 적전 무장해제나 다름없는 지금의 상황이 계속돼선 안 된다. 여야는 어제 경제부총리 내정자의 청문회 개시를 두고 입씨름만 벌였다. 그런 식으로는 밀려드는 경제 쓰나미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시간은 많지 않다. 내년 1월에는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다. 그에 앞서 컨트롤타워를 서둘러 구축하고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위기는 피할 길이 없다.

[매일경제]

8. 감세·인프라 투자 내세운 트럼프노믹스 주목한다

미국 45대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의 경제정책은 앞으로 더 많이 다듬어져야 한다. 아직 구체성과 일관성이 부족한 대목이 많다. 의회와 딜을 해야 하는 대통령 트럼프는 후보 시절보다 더 신중한 정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트럼프노믹스의 큰 뼈대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의 보호무역주의 성향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부분이다. 성장과 일자리 확대를 위한 과감한 감세 정책과 대대적인 인프라스트럭처 투자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트럼프 진영의 기본 인식은 통화정책은 많이 소진됐으므로 성장의 마중물로서 재정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핵심에는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를 떠올리게 하는 파격적인 감세안이 있다. 트럼프는 법인세율을 35%에서 15%로 내리겠다고 밝혔다. 법인세 인상안을 만지작거리는 한국 정치권과 정반대다. 트럼프는 또한 39.6%에 이르는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은 33%로 낮추고 세율 구간도 3단계로 단순화하기로 했다. 상속세는 아예 폐지하려고 한다.

트럼프식 뉴딜정책이라는 1조달러(1150조원) 규모 기반시설 투자도 주목된다. 트럼프는 낙후된 도심을 재개발하고 고속도로와 교량, 터널, 공항, 학교, 병원을 건설해 수백만 명에게 일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러한 정책들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뚜렷한 경기 부양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트럼프 감세가 실현되면 10년간 세수가 7조달러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정부부채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다른 공약 이행 비용까지 감안하면 10년 후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지금(75%)의 두 배에 이른다는 분석도 나왔다. 국채금리 상승이 달러 강세로 이어져 제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감세 효과가 주로 부유층에 돌아가 소비 수요 확대가 제한적인 측면도 있다.

감세로 성장의 활력이 높아지고 결국 세수도 다시 늘어나게 되는 선순환을 만들어내려면 절묘한 정책 믹스가 필요할 것이다. 기반시설 투자도 4차 산업혁명 시대 국가경쟁력 강화에 꼭 필요한 곳에 집중돼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트럼프노믹스는 거대한 실험이다. 우리는 그 성공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

9.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국가 사업으로 만들자

경부고속도로를 지하화하는 방안이 세계적 석학들의 공감대를 얻고 있다. 지난 8일 매일경제, 대한건축학회, 서초구 주최로 열린 '경부고속도로 지하화와 도시혁명' 콘퍼런스에서 니엘 커크우드 하버드대 교수 등 도시설계 분야 전문가들은 경부고속도로 지하화가 교통정체와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성장축으로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는데 귀담아들어야 한다.

한국도시설계학회 등 3개 학회가 콘퍼런스에서 발표한 마스터플랜에는 경부고속도로 잠원IC 북단에서 양재IC 남단까지 6㎞ 구간에 총 20차로의 3층 지하도로를 만들고 여의도공원 3배 규모인 지상부에 공원과 복합문화지구를 조성하면 도시경쟁력이 높아지고 큰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하화 대상 구간은 평소 교통체증, 소음공해, 대기오염 등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많아 어떤 식으로든 환경 개선이 필요한 곳이다. 서초구 설문조사에서도 서울시민 열 명 중 아홉 명이 지하화에 동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하화 사업을 주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 보스턴시가 1991년부터 2007년까지 주요 간선도로를 지하화한 '빅디그' 프로젝트의 성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커크우드 교수는 "완공 후 보스턴에 고용 붐이 일어나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인구 증가율이 미국 평균의 2배인 8%에 달했다"고 밝혔는데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도 이와 유사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는 환경개선과 삶의 질을 높이는 것 외에도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는 만큼 침체된 경기를 살리는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시대를 앞두고 무인차 시험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등 부수 효과도 작지 않다.

다만 일각에서 우려하는 지역 불균형 심화와 공사 기간 중 발생할 민원, 대형 사고 위험, 막대한 재원 조달과 주변 부동산 가격 급등 등이 문제인데 이는 정부와 지자체, 시민·환경단체가 수시로 만나 해법을 모색하면 된다.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는 국토의 효율적 활용과 도시혁명, 신성장동력 확보 등 장점이 많다. 추진 동력을 얻으려면 지자체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 사업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

10. '트럼프노믹스', 기회로 바꿀 수도 있는 위기다

'트럼프 쇼크'로 급락했던 국내 증시는 하루 만에 회복됐다. 미국·유럽 증시는 상승했다. 트럼프가 기업인 출신인 데다 승리 연설에서 성장책을 언급한 것이 작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에서 어떤 정책이 나올지는 불확실하다. 특히 한국에 대한 트럼프의 이해와 지식이 부족하다는 점이 불안 요인이다. 그는 선거운동 중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나 통상 이슈에서 종종 틀린 사실을 언급하곤 했다. 주변에 친한(親韓) 인맥과 한국을 아는 보좌진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가 한국을 모른다는 것은 양면성이 있다. 잘못된 인식을 토대로 대한(對韓) 통상 정책을 편다면 악몽이 된다. 반대로 트럼프 팀에 정확한 실상을 알리고 서로 이익이 되는 윈·윈 모델을 제시한다면 양국 간 경제협력은 강화될 수도 있다.

트럼프가 한국을 모른다는 것은 양면성이 있다. 잘못된 인식을 토대로 대한(對韓) 통상 정책을 편다면 악몽이 된다. 반대로 트럼프 팀에 정확한 실상을 알리고 서로 이익이 되는 윈·윈 모델을 제시한다면 양국 간 경제협력은 강화될 수도 있다. 통상 업무 조직이 산업통상자원부의 일개 파트로 축소돼 있는 실정이다.

예상 못 한 트럼프 쇼크 앞에서 모두가 불안감을 갖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실제 미국이 보호무역 색채를 강화하고 통상 압력 수위를 올릴 가능성이 크다. 잘못 대응했다가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트럼프가 공약을 실천할 경우 한국 경제성장률이 0.3~0.5%포인트 떨어질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한

편으로 '트럼프노믹스'는 한국 경제에 기회인 측면도 없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는 감세(減稅) 등 친기업 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하고 1조달러 규모 인프라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했다. '트럼프판(版) 뉴딜' 정책이 본격화될 경우 건설·방산·제약 분야의 기업들이 사업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트럼프 시대 한·미 경제 관계는 암초가 도사린 바다와 같다. 잘만 헤쳐가면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차분' '냉정' '전략'만 있으면 못 할 것도 없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신문][매일춘추] 질문-현실-답

“지금 노신사를 다시 만나면 뭐라 말씀하실 건가요?”

매일춘추 첫 칼럼에서 10여 년 전 기차에서 만났던 노신사에게 당당히 손녀를 무용인으로 지원하시라고 답한 나에 대해 다시 질문해오는 지인이 많다. 솔직히 면전에서 바로 묻는 그 질문은 당혹스럽고, 난감한 것이 현실이다. 나는 이 당혹스러움을 피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다시 “그 질문을 선생님이 받았다면 어떻게 말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중 부부가 무용을 전공하며, 한 명뿐인 딸도 무용수로 키우고 지금도 무용인들의 스태프로 활동하시는 분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했다.

“자기가 하기 나름 아닐까요?”

엄청나게 많은 말을 함축하고 있는 이 말로 미진한 우리의 대화는 일단 마무리됐다.

그리고 이주일쯤 지났을 때 대학 신입생이 그 글을 읽었다며 지금 선생님은 어떻게 답하실 건가요 하고 또 물어온다.

그렇지만 나는 그 친구에게 자기가 하기 나름 아닐까? 라고 똑 부러지게 답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한 답은 “미래는 아무도 모르지. 가보지 않고 미리 걱정부터 하지 말고 가보고 싶다면 실패를 하더라도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얼버무리며 일등이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왜 나는 이런 대답 정도밖에 할 수 없을까? 불문학을 전공한 나는 무용수로 활동하던 친언니의 코디네이터를 하다가 당시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던 지방의 무용복 세계에 뛰어들었다. 1980년대 당시에는 맞춤복은 점점 사라지고 기성복이 급속한 유행으로 번졌고, 대부분의 의상실이 문을 닫고 있던 터인데도 나는 그때 시작하지 않았는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옷 만드는 것 외엔 별다른 재주나 취미도 없던 나는 부나 명예로는 남과 비교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그 길을 택한 것이었다. 모자란 지식은 현장과 대학원 진학 등으로 채워나가면 되지 하는 자신감 또한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후배들에게 무용이라는 예술세계와 인연을 맺고 평생 자신을 바쳐보라는 말을 하는 데 주저하고 있다. 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싶기도 해서 며칠간 생각해 보았다. 오늘날 무용의 세계는 내가 시작하던 그 시절보다도 확실히 더 어려운 환경임에 틀림없었다. 보다 나은 직업군이 많이 생겨난 것도 원인이겠지만, 무용에 대한 사회의 관심 또한 줄어든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즈음 또 다른 시각에서 무용을 바라볼 때, 이런 상황들은 우리 무용인들이 자초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자 좀 더 스산해지는 느낌이다.

후학들에게 무용을 당당히 권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을 10년쯤 후에는 그려 볼 수 있을까? 쑥스럽지만 거울 앞에 서본다.

2. [동아일보][박성연의 트렌드 읽기]그냥 쉬지 못하는 현대인, 탈출구는 ‘몰입’

요즘 TV 뉴스를 보면 화가 나거나 허탈한 마음이 들어 아예 꺼 둔다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헛헛한 마음은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다. 그런 마음을 파고들어 몇 해 전부터 아이가 아닌 어른들을 위한 컬러북이 인기를 끌고 있다. 색연필로 알록달록 색깔을 채워 나가는 이 컬러북의 인기는 확산 일로다.

미국에서도 2014년에 100만 권 정도 판매되던 이 책이 지난해 1200만 권 팔렸다. 그 종류도 2000종이 넘었다. 어린 시절 놀이하듯 색깔을 칠하는 이 컬러북이 이제는 십자수로 양초, 비누 공예로 확장 중이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 따르면 양초, 비누공예 상품 판매는 같은 기간 39배 이상 급증했다. 구슬을 꿰어 만든 목걸이 팔찌 등의 판매도 크게 늘었다.

앱스토어에서 포켓몬과 함께 입소문을 탄 모바일 게임은 그냥 손가락을 가져다 대기만 하면 끝이다. 현란한 기술도 필요 없다. 화면을 두드리기만 하면 예쁜 바닷속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시장에 내놓은 지 10일 만에 내려받기가 50만 회를 돌파했다.

요즘 인터넷에서 뜨거운 관심을 끌고 있는 영상은 ASMR(자율 감각 쾌락 반응)라는 이름이 붙은 영상이다. 그중에서도 인기 영상은 먹는 소리다. 아이스크림 먹는 소리, 탄산음료 따르는 소리. 이런 소리를 들으면 편안함이 떠올라 잠이 잘 온다는 입소문을 타고 유튜브에만 벌써 570만 개나 되는 영상이 올라와 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불면증 환자는 2010년 29만 명에서 2015년 45만 명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현대인들이 하루에 접하는 정보량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살던 사람이 평생 접한 정보량과 맞먹는다.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 건 당연하다. 휴식이 필요하다. 사람들도 쉬고 싶다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한다. 그런데도 색칠을 하고, 게임을 하고, 자수를 놓고, 영상을 보고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한다. 멈추는 것을 불안하게 여기는 현대인들은 ‘휴식’을 취할 때조차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스스로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이들의 선택은 ‘몰입’이다. 부지런히 손과 발을 움직이더라도 머리는 비울 수 있기에.

3. [세계일보][배연국칼럼] 찢는 자와 붙이는 자

조정의 국론이 둘로 갈라졌다. 청나라와 화친을 하자는 호조판서 최명길의 주화파와 끝까지 싸우자는 예조판서 김상헌의 주전파가 충돌했다.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없으므로 우선 항복해서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게 최명길의 생각이었다. 전쟁으로 죽어가는 백성들이 즐비했지만 그의 외침을 새겨듣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부모의 나라인 명을 받들고 오랑캐를 쳐부수자는 명분론이 득세했다.

시시각각으로 조여드는 적군의 위협에 인조는 결국 최명길의 손을 들어준다. 항복 문서를 작성해야 했지만 나서는 이가 없었다. 최명길이 붓을 들었다. 김상헌은 그 글을 보고는 울면서 찢어버렸다. 최명길은 “나라에 대감과 같이 문서를 찢는 신하도 필요하고, 나처럼 다시 붙이는 신하도 있어야 한다”면서 국서를 다시 주워 모았다. 청의 대군이 남한산성을 에워싼 지 35일째 되는 1637년 겨울의 일이었다.

김상헌은 최명길을 만고의 역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5년 뒤 청나라 감옥에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최명길과 조우했다. 최명길은 명과 힘을 합쳐 청을 치려다 들통나는 바람에 쇠사슬에 묶여 끌려왔다. 최명길은 국왕 몰래 자기 혼자 벌인 일이라며 죽음을 자청했다. 그의 기개를 지켜본 김상헌은 비록 방법이 달랐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선 서로 똑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야 100년 의심이 풀리는구나”라며 최명길과 마음을 주고받았다.

당시 청은 조선을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 군사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도 조선은 망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것은 최명길과 김상헌의 각기 다른 애국심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만약 조선이 결사항전을 선택했더라면 청은 성안의 백성과 신하들을 죽이고 나라까지 접수했을지 모른다. 망국을 모면한 일은 주화파 최명길의 공임이 분명하다. 김상헌의 공 역시 작지 않다.

조선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김상헌 같은 선비와 백성들이 많았다. 청이 조선의 왕실을 없앨 경우 그들이 맞닥뜨릴 다음 상대는 낫과 죽창을 든 백성들이다. 명나라 침략을 앞둔 청으로선 이들의 저항을 막기 위해 한반도에 대군을 계속 남겨둘 수 없는 처지였다. 청이 항복을 받는 차선책을 택한 이유다. 우리 민족이 수많은 외침에도 꿋꿋이 명맥을 이어온 것은 이런 두 개의 애국심이 작동한 덕분이다.

굳이 379년 전 병자호란을 다시 들먹이는 것은 그것이 오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한 까닭이다. 작금의 국정농단 사태는 참으로 부끄럽고 충격적이다. 비설 실세 최순실에게 대한민국이 놀아난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분노가 국정 혼란까지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촛불의 수가 아무리 늘어나도 우리 앞에 놓인 난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두 개의 애국심이 필요하다. 하나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권력자에게 분노의 촛불을 높이 드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국익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국정 혼란을 조속히 수습하는 역할이다. 전자의 애국은 지금 온 나라에 넘치는 반면 후자의 애국은 크게 부족하다.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총리의 추천권을 국회에 넘긴 후에도 강경 투쟁을 고수한다. 대통령의 항복을 압박하며 영수회담조차 뿌리친다. 주말에는 대통령 하야 촛불시위에 동참한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경제·안보의 두 축이 흔들리는 국가 위기 앞에서 정치인들이 거리로 뛰쳐나가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사태 수습에 나서야 할 정치인들이 떼 지어 촛불을 드는 행태는 너무 무책임하다. 분노의 촛불은 광장을 가득 메운 국민만으로 충분하다.

국서를 찢는 자가 있다면 붙이는 자도 있어야 한다. 정치권까지 나서서 국서를 찢고자 한다면 혼란은 누가 수습하는가. 민심에 영합해 최명길의 실리에 고개를 돌린다면 대한민국의 혼돈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덕목은 김상헌의 명분이 아니다. 쉬운 길만 고집하면 국가가 어려워진다.

4. [서울신문][길섶에서] 고구마 단상/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매년 이맘때면 고구마를 한 상자 보내 주시는 분이 있다. 그는 시골집 앞 농지에 고구마를 심었다가 가을걷이가 끝나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지인들에게 선물로 보내곤 했다. 고구마가 다 그게 그것이고, 한 상자 값이야 얼마 되지 않을지언정 편지와 함께 도착한 고구마는 맛을 떠나 너무나 고맙고 정겨운 것이었다.

편지가 한 통 배달됐다. 사연인즉 올해도 고구마를 보내야 하는데 행여나 받는 분이 하찮은 것 때문에 불편을 겪을 것이 우려돼 이렇게 편지만 보낸다는 것이었다.

청탁이나 특권의식과는 아무 관련 없는 고구마지만 최근 시행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일 게다. 고구마 빚을 진 것도 아니면서 편지를 보내 양해를 구하는 그의 배려심이 또한 놀라웠다.

누군가는 최고 권력자의 뒤에 숨어 호가호위하며 국정을 쥐락펴락하고, 기업 오너들을 불러 놓고 수십억원을 뜯어냈다는데…. 국민은 법을 어길까 봐서 몇만원에 몸을 웅크리고, 마음을 주고받는 미덕마저 억누르게 만들다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마틴 루터 킹 시니어

마틴 루터 킹 시니어(Martin Luther King Sr, 1899~1984)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아버지다. 그는 미국 조지아주 침례교회 목사로 아들 못지 않은 흑인 인권운동가였다. 그의 본명은 마이클 킹(Michael King)인데,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에게 감화돼 1934년 개명했다.

조지아 주 스톡브리지에서 태어난 킹 시니어는 지역 흑인 인권운동의 거점이던 에버니저(Ebenezer) 침례교회를 다니며 어려서부터 설교자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교단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녔고, 모어하우스 종교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6년 결혼(Alberta)해 1녀 2남을 낳았다. 킹 주니어는 둘째이자 장남이었다.

킹 시니어의 연설은 대단했다고 한다. 대공황기 교회의 존립 자체가 힘들었던 무렵에도 그는 신도들의 존경을 받으며 교회 살림을 키웠고, 32세에 에버니저 교회 목사가 됐다. 스스로 마틴 루터 킹이라 개명한 건 독일을 다녀온 직후였다. 그는 법적으로 개명하진 않았지만 장남 마이클 킹 주니어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됐다. 킹 시니어는 40년간 에버니저 교회와 남부 흑인 커뮤니티를 이끌며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 애틀란타 지부와 시민정치연맹(CPL) 리더로 활동했고, 애틀란타 종교 방송 WAEC에서 설교하기도 했다.

킹 주니어는 50년 자서전에 “아버지는 내게 단 한 번도 목사가 되라고 말한 적 없었지만, 나는 그를 존경했고 그를 내 생의 모범으로 삼았다”고 썼다. 유년 어느 날 그는 아버지와 함께 구두 가게에 갔다가 자리를 바꿔 앉으라는(백인 자리에 앉지 말라는) 주인의 말에 분노하던 모습을 전하며 킹 주니어는 “아버지는 남부의 시스템(인종 분리ㆍ차별)에 결코 순응한 적 없었다”고 썼다. 백인 경찰이 아버지 차를 세워선 “꼬마야”라고 부른 적이 있었는데, 킹 시니어가 아들을 가리키며 “얘가 꼬마이고 나는 성인이다. 당신이 나를 온당하게 부르기 전까지 나는 당신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구절도 있다.

그는 77년 흑인 괴한이 쏜 총에 아내를 잃었다. 68년 장남 킹 목사의 피격에 이어 차남도 69년 교통사고로 잃었다. 그 시련 속에서도 그는 흑인대학 모어하우스대학 이사회 멤버로 흑인 교육 및 흑인대학 발전에 힘썼고, 76년 지미 카터의 대선을 돕는 등 인권운동에 헌신했다. 그가 1984년 11월 11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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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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