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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조선일보]

1. 재벌 집단 청문회, 제도 안 바꾸면 또 하는 날 올 것

6일 국회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 1차 청문회가 열렸다. 재벌 총수 9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28년 전 5공 비리 청문회에 이어 두 번째다. 권력과 모종의 유착이 있었느냐는 의혹을 받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총수들이 한꺼번에 청문회에 불려나온 자체가 개탄할 일이다.



이날 청문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독대해 어떤 혜택이나 대가를 약속하고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받아냈느냐를 밝히는 것이 핵심이었다. 재벌 총수들은 한결같이 대가성은 부인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정부 요청이 있으면 기업이 거절하기 힘든 건 한국적 현실"이라고 했다. 특히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여야 의원들로부터 집중 질문을 받았다. 삼성이 유일하게 최씨 측에 직접 돈을 건네고 딸 정유라의 승마 지원을 한 결과가 됐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죄송하다" "적절치 못한 지원이 있었다"고 수십 번도 더 사과해야 했다. "미래전략실에 부정적인 인식이 있으면 없애겠다"고도 했다. 이날 청문회를 통해 전경련의 해체도 불가피해졌다.



28년 전 총수들이 불려 나올 때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경제 규모는 10배 커졌다. 대한민국 대표 기업들의 규모와 위상은 그 이상으로 커졌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그럼에도 권력이 손 벌리면 기업이 돈 대는 후진적 관행은 28년 전이나 달라진 게 없다. 검찰 공소장에 기업들의 대가성 등 범죄 혐의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공범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다. 정권 탓 하면서 "억울하다"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날 청문회는 세계에 보도됐다.



재벌 총수 집단 청문회는 이게 마지막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이 더 투명하고 선진화돼야 권력이나 비선 실세의 압력에 당당할 수 있다. 기업이 권력을 두려워하는 것은 먼지털기식 표적 검찰 수사와 세무 조사 때문이다. 권력이 검찰과 국세청을 자의적으로 동원할 수 없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정부가 틀어쥐고 있는 수많은 인허가권에 대한 규제 개혁도 필요하다. 기업 약점을 잡고 갖은 청탁을 하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도 사라져야 한다.



2. 文 "탄핵돼도 즉각 하야하라"라니, 권력욕은 거두길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를 만나 탄핵보다는 자진 사퇴를 원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두 사람이 전했다. 새누리당의 '4월 퇴진, 6월 대선' 당론을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지만 여야 합의가 안 돼 아쉽다는 말도 있었다 한다. 그러나 정 원내대표가 대통령 면전에서 9일 탄핵 표결이 불가피하다고 했고, 새누리당 의원들도 그 직후 의원총회에서 의원들 자유투표로 표결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촛불 시위대와 야권은 탄핵을 요구해왔다. 탄핵은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안을 법 절차 위에 올려놓는다는 장점은 있다. 그런데 탄핵 표결을 눈앞에 둔 지금 야당은 "탄핵당해도 하야하라"는 요구를 새로 하기 시작했다. '법대로 하자'고 하더니 그렇게 되니까 '법 필요 없고 내려오라'고 하는 것 아닌가.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그제 국회 앞 연설에서 "탄핵이 의결되면 딴말 말고 즉각 사임해야 한다"고 했다. 이 사태 초기 거국내각을 주장하다가 정치 일정에 따른 퇴진으로 바꾸고 다시 탄핵으로 옮겼다. 이제 즉각 하야를 주장하고 있다.



탄핵안이 가결됐을 때 박 대통령이 헌재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물러나겠다고 스스로 결단할 수는 있다. 그러나 탄핵을 몰아붙이던 사람들이 탄핵 절차를 무시하고 즉각 물러나라고 강요하는 것은 자기모순이자 무법적 발상이다.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이어서 헌법에 따라 탄핵한다더니 자신들은 헌법 절차를 건너뛰겠다는 것이다. 마치 점령군 같은 행태다.



박 대통령이 지금 물러나면 내년 2월 초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누가 봐도 무리한 일정이지만 민주당과 문 전 대표는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야권 내 경쟁자가 부상하자 무책임하고 자극적인 언사를 부쩍 늘리고 있다. 이들이 지금은 민심을 타고 있지만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아일보]

3. 北 해킹당하고도 모르는 軍… 안보 안심할 수 있나

국방부 내부 인트라넷이 해킹당해 일부 군사기밀이 유출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국방부는 9월 발생한 국군사이버사령부 백신중계 서버 악성코드 감염 의혹에 대해 “북한으로 추정되는 해킹세력이 군 내부망에 침투해 여러 건의 군사기밀을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이버 전쟁을 수행하는 본부 격인 국군사이버사령부가 북에 뚫린 것은 2010년 창설 이후 처음이다. 

군은 10월 1일 국회 국방위 소속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서버 해킹 문제를 지적했을 때만 해도 군 내부 인트라넷망과 인터넷이 분리돼 있어 정보 유출 가능성이 없다고 잡아뗐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국방부가 “2년 전 창설된 예하부대 백신중계 서버에 외부망과 내부망(국방망)을 연결하는 랜카드 2개를 통해 해킹용 악성코드가 군 PC에서 기밀을 빼갔다”고 밝힌 것이다. 그동안 ‘망 분리’를 사이버안보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말하던 군이 무려 2년 동안이나 내·외부망이 연결된 것도 몰랐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군은 감염 징후를 알아채고도 두 달여가 지나도 해킹 원점은 물론이고 어떤 기밀이 새나갔는지조차 파악 못하고 있다. 군 수뇌부가 사용하는 컴퓨터 등에서 대북작전 계획 같은 핵심 기밀이 새나갔다면 군사작전까지 전면 수정해야 할 판이다. 물리적으로 분리된 망이 연결된 과정에서 누군가의 의도적인 개입은 없었는지 경위를 명확하게 규명해 엄중 문책해야 한다.

북한 김정은은 사이버 전사를 우리의 10배 수준인 6000여 명으로 늘려 국가 주요 기반시설을 비롯해 정부 언론 금융 등 남한 심장부를 겨냥하는 도발을 하고 있다. 군 내부망까지 적에 뚫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김관진 대통령안보실장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김정은은 며칠 전 포병부대 훈련을 참관한 자리에서 “남조선 것들을 쓸어버려라”고 했다. 이래서야 북이 공격을 해온들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이데일리]

4. ‘탄핵 이후’의 정치 혼란이 더 걱정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표결이 모레로 다가왔지만 그 이후 정치 일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탄핵을 주도하는 야3당과 새누리당 비박계가 탄핵안 가결에 필요한 정족수 계산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뿐 ‘탄핵 이후’에 대해서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탄핵안 통과 여부에 관계없이 국정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되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지금은 탄핵에 집중하고 있다. 탄핵 이후 로드맵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데서도 현재 상황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제 취임 100일을 맞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탄핵 이후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탄핵안이 가결되면 박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해야 한다”는 원론적 수준의 입장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이른 것은 ‘질서있는 퇴진’이 막혀 버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 퇴진 시점을 명확히 밝히면서 거국내각 구성과 그 이후 치러질 대선 일정을 내놓았다면 그나마 정치 혼란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정치 원로들도 ‘4월 퇴진’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퇴진 방안’을 제시해 달라며 공을 국회에 넘겼고, 야당이 이를 거부하면서 물 건너간 상태다. 새누리당 비주류로 구성된 비상시국위원회도 ‘4월 퇴임’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거부당한 카드”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결국 박 대통령으로서는 마지막 대국민담화 기회를 놓친 채 어정쩡한 상황에서 탄핵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막상 담화를 발표한다고 해도 야당이 주장하듯 ‘즉각 퇴진’ 방안이 아니라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습 가능한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정치권이 서로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며 타협을 거부한 탓에 막다른 상황에 처한 것이다.

야당은 ‘대통령 권한대행’과 거국내각에 대해 탄핵안이 처리된 뒤에 논의하자고 하지만 너무 안이한 발상이다. 탄핵이 이뤄진다면 각료임명 방안도 멈추게 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최종 탄핵심판 결정이 나오기까지 국정 공백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탄핵안 표결이 이뤄지기 전에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마땅한 대책도 없이 루비콘강을 건너야 하는 지금 상황이 너무 걱정스럽다.



[경향신문]

5. 재벌총수들의 반성 없는 변명, 뻔뻔한 동문서답·모르쇠

이재용(삼성), 정몽구(현대차), 최태원(SK), 구본무(LG) 등 재벌 총수 9명이 어제 국회 청문회장에 섰다. 총수들이 한꺼번에 불려 나온 것은 1988년 5공비리 청문회 이후 28년 만이다. 대내외 경제가 최악인 상황에서 총수들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돼 청문회장에 나온 것은 본인은 물론 시민들에게도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시민들이 청문회를 주시한 것은 국정농단 의혹을 소상히 밝히고 통렬한 자기반성을 통해 정경유착을 단절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의 이런 기대는 몇 시간 만에 여지없이 배신당했다. 의원들은 이미 알려진 내용을 묻고, 총수들은 알맹이 없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공허한 질문에, 공허한 답변이었다. 총수들은 동문서답·모르쇠·변명으로 핵심을 피해갔다.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에 대해 “청와대의 출연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허창수 전경련 회장)며 강제성은 시인했지만 사업 특혜나 총수 사면 등 대가성 의혹은 부인했다. “사회공헌이든 출연이든 어떤 부분도 대가를 바라고 하는 지원은 없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할당받은 만큼 냈다. 대가성이라는 생각을 갖고 출연한 적이 없다”(최태원 SK회장), “면세점 추가 입찰이나 수사 관련 로비와는 관계없다”(신동빈 롯데 회장)고 주장했다. 

총수들의 이런 답변은 국회에 사전 제출한 자료와도 거리가 있다. 총수들은 지난해 7월과 올해 2월 박근혜 대통령과의 독대 때 “글로벌비즈니스센터 조기 착공 협조”(현대차), “아울렛 의무휴업 확대 우려”(롯데) 등 민원을 요청한 것이 확인된 터다. 이러고도 대가성이 없었다는 것은 뻔뻔한 얘기다. 

이재용 부회장은 재단 출연 외에 정유라의 승마 지원에 별도로 100여억원을 지원한 것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의 대가라는 의혹에 대해 “지원은 실무자들이 결정한 것. 합병은 승계와 관계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는 “합병은 승계의 디딤돌”(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합병에 찬성해달라는 압력이 있었다”(주진형 전 한화증권 사장)는 증언과도 배치된다. 이 부회장은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모르겠다’로 일관했다. 반복된 모르쇠에 “기억력이 좋고 아는 게 많은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겨야 하지 않나”라고 되묻자 “언제든지 훌륭한 분 있으면 경영권을 넘기겠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총수들의 이런 태도는 건강한 재계 생태계 구축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재계는 총수를 청문회장에 불러내는 것 자체가 기업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행위라고 말하지만 무성의한 답변이 되레 기업의 신뢰를 갉아먹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 최태원 회장 등이 전경련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 모금창구인 전경련 해체를 시사했지만 유착의 근절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민심의 분노는 국정농단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시민들은 이 과정에서 재확인된 특권 세습, 불평등, 부정 부패,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 재벌이 있다. 5공비리 청문회 때 재벌 총수들은 정경유착의 단절을 선언하고 대국민 사과 성명까지 냈지만 뒷거래는 계속됐다. 2002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불법 정치자금 820억원을 트럭째 받은 차떼기 사건은 기억에도 새롭다. 2004년 정치자금법이 개정된 이후에도 기부금 명목으로 모금행위는 단절되지 않고 있다. 

시민들이 특히 삼성에 의구심을 갖는 것은 총수 일가를 위해 국민연금이 시민 자산에 손실까지 입혀가며 지원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밑바닥에는 20년 전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은 60억원을 종잣돈으로 주식 편법 운용 등을 통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8조원대의 부를 움켜쥔 금수저의 수법에 대한 좌절감이 깔려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총수 중심의 황제적 경영관행에서 기인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재단 출연금 역시 이사회 의결도 거치지 않고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따지고 보면 권력에 대한 기부금의 최종 수혜자는 재벌총수와 권력에 기댄 비선 실세이다. 지금 시민이 기대하는 것은 평등하게 권리를 갖고 주권을 행사하는 나라다. 시민들은 결코 재벌을 권력에 자릿세 뜯긴 노점상으로 보지 않는다. 이런 인식을 깰지는 재벌의 의지에 달려있다. 회피할 경우 촛불은 재벌을 향할 것이다.



[국민일보]

6. 청와대 무시로 드나들던 ‘보안 손님’ 최순실·차은택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인 최순실과 차은택이 이른바 ‘보안 손님’으로 인정돼 청와대를 손쉽게 출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보안 손님은 대통령 접견객 중 출입증을 패용하지 않고 별도 출입하는 인사를 뜻하는 경호실 내부 용어다. 이들은 청와대 경호실에 따로 보고되지 않아 사실상 별 제재 없이 청와대를 자유롭게 드나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영석 청와대 경호실 차장은 5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위 청와대 기관보고에서 “최순실, 차은택 모두 보안 손님이 맞느냐”는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의 질문에 “맞다”고 답변했다. 그는 이들의 청와대 출입 여부와 관련, “보안 손님에 대해선 출입기록을 (경호실에서) 보고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 차장은 또 “보안 손님은 부속실의 요청으로 지정한다”고 답했다. 이에 박 의원은 “당시 보안 손님의 출입을 주관한 제2부속비서관이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안봉근 전 비서관”이라고 지목했다.

이 차장의 답변은 놀랍다. 부속실이 지정하면 누구든지 보안 손님으로 청와대를 들락거릴 수 있다는 의미다. 최씨와 차씨 이외 외부 인사가 보안 손님 자격으로 의료가방을 들고 청와대를 왕래했다는 사실도 이미 확인됐다. 부속실 한마디면 청와대 경호 업무가 무력화될 수 있다고도 해석된다. 

대통령도 자연인으로서 얼마든지 사적 만남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국가원수에 대한 경호 업무는 24시간 철통같아야 한다. 이는 대통령 경호법에도 명시된 내용이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대통령의 사적 만남 주 대상이 온갖 구설을 낳는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경호실의 통제를 벗어난 개인적 접촉이 결국 대통령을 퇴진 위기로 내몰고 국정을 격랑에 휩싸이게 한 결과를 자초했다. 부속실 관계자의 대통령 경호법 위반과 경호실의 직무유기 여부 등은 앞으로 특검에서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한국경제]

7. 파리기후협약 흔들린다는데 또 한국만 잘난 척하나

정부가 신기후체제에 대응하기 위한 ‘제1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을 내놨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배출전망치(BAU) 대비 37%에 해당하는 3억1500만t을 감축한다는 로드맵이다. 발전부문 6450만t(BAU 대비 19.4%), 산업부문 5640만t(BAU 대비 11.7%) 등 8개 부문에서 2억1900만t을, 국외에서는 9600만t을 감축한다는 세부 목표도 제시됐다. 해당 산업계는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마당에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추가적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가장 많은 감축 목표를 할당받은 발전업계는 말할 것도 없고 철강, 디스플레이, 전기전자업계 등은 긴장하는 분위기다. 정부도 이를 의식했는지 향후 국내 경제 상황이나 국제 기후협약의 변동성 등을 반영해 계획을 수정·보완할 것이라고 밝히고는 있다. 하지만 정부가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할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온실가스 문제에 대응해온 경과를 보면 오히려 그 반대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한국은 의무 감축국이 아닌데도 국제사회에 무리한 감축 목표를 덜컥 제시한 것이 그렇고, 박근혜 정부가 파리협정을 앞두고 당초 시나리오에도 없던 가장 강한 감축 목표치를 약속한 것 또한 마찬가지다. 더구나 지금은 파리협정의 앞날부터가 불투명한 마당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파리협정에 부정적인 데다 WTO 환경상품협정(EGA)마저 불발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서둘러 온실가스 감축을 치고 나오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는 저탄소와 기후변화 이슈, 환경보호 아젠다 등이 여전히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자칫 환경근본주의에 경도돼 강박증을 가지면 경제만 망치기 십상이다.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는 파리협정 등을 지켜보면서 대응해도 늦지 않다.



[파이낸셜뉴스]

8. 해외소비 펑펑… 국내로 돌릴 방안 찾아야부자들이 돈 맘껏 쓸 수 있게 리조트 등 소비산업 키워야 

해외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6일 3.4분기에 가계의 해외소비가 8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16.8% 늘었다고 밝혔다. 증가율이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 통계상의 민간소비 증가율(2.7%)의 6배를 넘었다. 소비자들이 국내에서는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았지만 해외에 나가서는 돈을 펑펑 썼다. 이 같은 소비행태가 내수경기 부진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해외소비가 급증하는 것은 해외여행객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해외여행객은 1930만명을 넘어섰고 이들이 해외에서 지출한 돈은 26조2700억원에 달했다. 올해는 3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경제는 지금 심각한 소비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해외소비를 국내로 돌리면 내수경기를 살리고 일자리 창출에도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정부는 소비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개별소비세 인하나 블랙프라이데이, 임시공휴일 지정 등을 대책으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이는 미래 소비를 앞당겨 쓰는 것이어서 일회성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 근원적인 처방이 되려면 국내 민간소비 총량을 늘려야 한다. 정부는 지난 5월 연휴 때 소비진작을 위해 임시공휴일을 지정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대거 해외여행을 가는 바람에 해외소비만 대폭 늘어나 외국 좋은 일만 시켰다는 지적이 나왔다. 휴가를 받아도 국내에서는 돈 쓸 곳이 없다. 국내에서 벌어 해외에서 쓰는 것이 소비자의 일반적 인식으로 굳어지고 있다.

소비의 해외유출은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점에서 투자유출과 다를 바 없다. 소비를 지키기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개방화 시대에 해외여행 가는 것을 강제로 막을 수는 없다. 그 대신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국내여행을 선택하도록 국내에 돈 쓸 곳을 마련해주는 것은 가능하다.



현행 제도에는 절약이 미덕인 시대에 만들어진 소비억제형 정책수단이 의외로 많다. 골프나 요트, 복합리조트 등에 고율의 개별소비세를 물리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질 높은 소비고객을 해외로 내쫓는 것이 국민경제를 위해 바람직한가. 소비성, 사치성 산업에 대한 세금을 대폭 줄여 부자들이 국내에서 마음껏 돈을 쓰게 해야 한다. 단계적으로 카지노 내국인 출입 등 관광.레저산업에 대한 규제를 대폭 풀고, 관련 세제도 소비 친화적으로 고쳐야 한다.

과거 자본이 부족했던 시대에는 투자에 많은 유인책을 주었다. 지금은 소비가 부족한 시대다. 소비에 다양한 유인책을 줘야 한다.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해외여행과 소비를 국내로 돌리도록 유도하는 정책개발이 시급하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헤럴드경제]

9. 개혁보다 경제 우선을 확인시킨 伊 개헌투표

이탈리아 개헌 국민투표가 부결된 것을 두고 포풀리즘의 확산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미국과 영국을 덮친 포퓰리즘이 이탈리아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오성운동이나 북부리그 등 이탈리아 야당은 대부분 반세계화, 고립주의를 주장하는 포퓰리즘적 성격이 강하고 결과적으로 중도파인 마테오 렌치 총리의 사임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그같은 해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게다가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나 네덜란드 극우정당인 자유당(PVV)을 이끄는 헤이르트 빌더스도 즉각 환영의 반응을 보여 마치 유럽 포풀리즘 극우정당의 연대가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도 있다. 

하지만 이번 이탈리아 개헌투표는 철저히 정권심판의 결과로 보는 게 옳다. 렌치 정권의 경제운용 실패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렌치 정권이 추진한 국민투표는 상원의원 수와 권한 축소, 중앙 정부 권한 강화를 통한 관료주의 청산 등을 목표로 하는 헌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을 묻는 것이었다. 국정운용의 효율성을 위한 조치였다. 그럼에도 60%에 가까운 반대로 부결됐다는 것은 국민이 현 개헌 추진세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간의 국정운영에 대한 냉정한 평가라는 얘기다. 

이탈리아는 정부 부채가 GDP의 130%를 넘어 유로존 국가 중에서 두 번째로 많으며, 은행 부실자산 규모도 엄청나서 3200억 유로(4백조 원)에 달한다. 40억 유로(5조원)가 넘는 구제금융을 은행에 쏟아부었지만 회생은 한참 멀었다. 유로존 회원국의 평균 성장률이 4%를 웃도는 상황에서 이탈리아는 작년 성장률이 0.8%에 불과하다.



경제가 이런 상황이니 실업률은 11% 중반을 넘나들고 청년실업률은 40%에 육박한 상태다. 젊은이들은 한달에 1000유로(125만원) 받는 일자리도 구하기 어렵다. 렌치 정권의 국정운용 특히 경제정책은 거의 실패에 가깝다. 포풀리즘의 승리라기보다는 정권심판으로 보야하는 이유다.

국제금융시장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이탈리아 개헌 국민투표 부결에도 장중 19,274.85까지 상승해 사상 최고치를 다시 썼으며 마감가 기준으로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탈리아 국민투표에 따른 시장 영향이 제한적일뿐 아니라 오히려 향후 들어설 새정권이 누가됐든 지금보다 나쁠 게 없다는 판단인 셈이다. 

국민들에겐 먹고 사는 문제가 최우선이다. 개혁보다 경제가 먼저라는 점을 새삼 일깨워준 이탈리아 국민투표 결과다.


[세계일보]

10. 속수무책으로 번지는 AI 대재앙 총력 대응 나서야

고병원성 조류인플레인자(AI)가 걷잡기 힘들 정도로 번지고 있다. 지난 1일 철원 양계농가의 닭이 H5N6형 고병원성 AI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뒤 영남을 제외한 전국이 AI에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3일까지 도살 처분한 닭·오리는 127개 농가, 383만3000마리에 달한다. 앞으로 305만9000마리를 더 도살 처분하기로 한 만큼 땅에 묻힐 가금류는 688만마리에 이른다. “닭·오리의 씨가 마를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사태는 그만큼 심각하다. 

확산 속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르다. 3일에는 경기도 포천 평택 양평, 4일에는 전북 정읍과 포천 농가에서 AI 의심신고가 또 접수됐다. 지난달 16일 전남 해남에서 처음 발생한 후 20여일 만에 재앙적인 수준으로 변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에도 철새는 AI 감염의 주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철새 이동 경로를 따라 집중 발생한 점을 놓고 보면 타당한 분석이다. 곳곳에서 철새 서식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천안시는 어제 곡교천과 풍서천 일대의 갈대숲을 불태웠다. 하지만 철새만 탓해야 하는지는 자못 의문스럽다. 부실 대응이 화를 키운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AI 발생 초기 정부는 일선의 빗발치는 예산·인력 지원 요청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순실 사태’에 공직기강이 해이해지면서 해야 할 일을 제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새 AI는 급속히 번졌다. 컨트롤타워가 정상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곳곳에서 부실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경북 영주에는 경기 이천 종계장의 종란 10만8000만개가 반입됐다. 이동제한지역 내에 있는 이천 종계장은 이틀 뒤 AI 양성 판정을 받았다. 경북 봉화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동제한 조치는 말뿐이었다.

이런 식으로는 AI확산을 막을 수 없다. 느슨해진 공직기강부터 다잡아야 한다. 현장 책임자는 필요하면 모든 결정을 내리고, 상급 기관은 현장 요구에 따라 예산과 인력, 장비를 전폭 지원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 마비된 국정이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AI 사태는 연례행사가 됐다. 그때마다 주먹구구식 대응을 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된다. 감시망을 더욱 촘촘히 하고, 철새 이동 경로에 있는 국가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AI가 대재앙으로 이어지는 사태를 막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이데일리][특파원의 눈] 트럼프와 채식주의자

한국 작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뉴욕타임스(NYT)가 뽑은 올해 최고의 책 10권에 들었다.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맨부커상을 받은 영향이 크지만 그것만으론 미국의 ‘채식주의자’ 열풍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NYT는 ‘채식주의자’를 두고 “우리를 뒤흔드는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소설이지만 바다 건너 미국인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소설의 주인공 영혜는 어느 날 채식주의자가 된다. 영혜 남편과 가족들은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영혜 아버지는 특히 그랬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끝까지 버티는 영혜에게 아버지는 뺨을 때리고 영혜 입 속에 고기를 구겨 넣는다. “먹어라. 애비 말 듣고 먹어. 다 널 위해 하는 말이다. 그러다 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냐. (중략) 한 번만 먹기 시작하면 다시 먹을 거다. 세상천지에 요즘 고기 안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영혜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그리곤 칼로 자신의 손목을 긋는다. 

채식주의자가 됐다는 건 그저 취향이 달라졌을 뿐이다. 채식을 먹는다는 게 누군가를 해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가족들조차 영혜가 달라졌다는 걸 참아내지 못했다. 가족들은 영혜를 자신들과 똑같은 고기 먹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발버둥을 친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앤 라이스는 ‘채식주의자’를 읽은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언급하며 “멸시받는 자들을 기꺼이 옹호해야 한다”고 썼다. 라이스가 ‘채식주의자’를 정치적 맥락에서 읽었다는 얘기다. 

정치적 올바름은 인종이나 민족, 종교, 성(性) 등에서 차별이 포함된 용어나 표현을 쓰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미국인들은 무슬림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려고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표현도 잘 쓰지 않는다. 채식주의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미국은 채식주의자들의 천국이다. 어디서든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햄버거와 피자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소설 ‘채식주의자’ 속의 폭력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요즘 미국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도전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민자와 다른 피부, 다른 종교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판하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미국인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폭력성이 공공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비영리민권단체 남부빈곤법센터(SPLC)에 따르면 지난 8일 미국 대선 이후 열흘만에 무슬림과 이민자, 성소수자를 상대로 867건에 달하는 희롱과 협박 사례가 보고됐다. SPLC 대표 리처드 코언은 “증오가 전국적으로 창궐하고 있다. 집계된 수치는 실제로 벌어진 혐오행위보다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라고 말했다. 

콜로라도의 한 중학교에서는 백인 학생들이 라틴계 학생들을 향해 “트럼프가 너희들에게 전기 개목걸이를 걸어줄 거야”라고 놀려댔고, 한 무슬림 여성은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다가 백인 남성에게 “운 좋은 줄 알아. 아무도 없었으면 널 쏴 죽였을테니”라는 말을 들었다. 

한인 사회에서도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뒤를 돌아보니 한 백인이 자신을 무섭게 쏘아보고 있더라, 반갑게 인사하는데 자신을 투명인간으로 취급하며 그냥 지나가더라, 주위에서 겪은 사연이 한둘이 아니다. 

지금의 미국을 만든 건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기반이 됐다. 다양성은 미국의 경제와 사회를 자극하는 자양분이었다. 획일화된 미국에서 혁신을 기대하긴 어렵다. 한국소설 채식주의자에 대한 관심은, 역설적으로 다양성이 무너지고 있는 미국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2. [매일신문][매일춘추] 흉터의 지리학

모든 것이 일시적이고, 모든 사람이 그저 지나치기만 하는 경유지로 쇠락해버린 경관을 지나가다 보면, 어딘가 의미 있는 장소를 향한 갈망을 느끼게 되곤 한다. 장소에 관한 이러한 감정은 ‘인간’이라는 종의 본질적인 특징 중 하나다. 이-푸 투안이 ‘토포필리아’라 말한 바와 같이, 인간에게 환경은 깊은 정과 사랑의 대상이자 기쁨과 확실성의 원천이다. 환경은 그것을 경험하는 인간들에게 세계관을 이루는 연결고리가 된다. 

하지만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속도가 군림하게 된 세상에서는 ‘장소의 특별함에 대한 무관심’이 늘어난다. 과잉 이동의 시대에, 장소에 대한 사랑은 마치 구닥다리인 것으로, 심지어 반동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쉽다. 예전에 다녔던 레코드점, 책방 등은 인터넷 사이트와 대형문고에 의해 밀려나고, 그 시절의 기억은 머릿속에서만, 운이 좋으면 그 기억을 공유하는 다른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겨우 살아남는다.



어떤 곳들은 레코드나 책 등으로 어느 정도 기억해낸다지만, 아예 사라져버린 것들은 도통 떠올리기 쉽지 않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곳들처럼, 꿈에서 본 것처럼 흐릿해진다. 그 장소로부터 분리되는 상실감은 우리에게 일종의 상처를 준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곳이자 기억의 축적물인 장소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한 친구는 어릴 적 갑자기 가난해진 집안 사정으로 이곳저곳으로 자주 이사를 다니면서 힘들게 지내야 했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할 틈도 없이 이사를 반복하면서 일종의 의식을 치르게 됐다고 했다. 이사를 가기 전 살던 집 벽이나 바닥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그곳에서의 기억들을 빠짐없이 노트에 적어뒀다고.

하지만 어른이 되고, 기억을 더듬어 다시 찾아간 그 집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사라졌고, 대개 아파트로 바뀌어 있었다. 기억을 이을 단서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왜 자꾸만 오래된 것들에 눈이 머물고, 영상을 통해 그것들이 사라지지 않게 잡아두고 싶었는지 스스로 되묻는 과정에서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그렇게 도달한 곳은 그녀 자신의 기억 속이었다.

상처 한 번 안 난 어른이 없듯이, 이 도시도 그럴 것이다. 상처는 때론 흉터를 남기지만, 그 흉터는 오히려 어떤 상처가 회복된 증거가 된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여러 겹에 걸쳐 쓰인 이 도시는 우리 각자의 그리고 그보다 더 큰 기억과 망각의 텍스트가 된다. 그래서 도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뭉쳐진 원고지들을 한 장씩 한 장씩 벗겨내며 읽고 해독하는 작업이다.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상처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생채기와 통증을 치유하고 아물게 하는 기술이 바로 ‘흉터의 지리학’이다. 앞서 이야기한 그 친구는 어릴 적 잃어버린 기억의 장소들에 대한 상실감에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애도의 방법을 찾아냈다. 그녀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작업에 몰두하는 것도 그 연장 선상에 있다. 자신과 같은 이들이 기억상실증에 빠지지 않는, 기록이 남는 도시를 만들고 싶다는 그녀는 앞으로 또 어떤 층위의 도시를 읽고 해석할까?



3. [서울신문][공희정 컬처 살롱] 공개 방송에 가는 이유

텔레비전만 있으면 7시간이 아니라 석 달 열흘이라도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지낼 수 있을 만큼 난 텔레비전이 재미있다. 세상 어디라도 못 갈 곳 없고,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것도 마음대로다. 이 사람이 지루하다 생각될 때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뭐 독특한 것 없나 싶으면 상상을 뛰어넘는 프로그램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배불뚝이 브라운관 TV가 날렵한 평면 TV로 자리바꿈하는 동안 방송은 HD를 넘어 UHD 시대로 접어들었다. 진화된 기술은 초고화질의 영상과 실감형 음향으로 시청자를 유혹하고, 각종 SNS와 스마트폰 앱 등을 통해 실시간 소통 또한 최첨단을 경험하게 한다. 방송국을 통째로 안방에 들여놓은 듯 시청자는 그저 리모컨 하나만 들고 이리저리 채널 돌려가며 텔레비전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참 좋아 보이는 세상이다. 그런데 ‘가요무대’(KBS)나 ‘웃음을 찾는 사람들’(SBS)과 같은 공개 방송 현장엔 아직도 수많은 시청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들은 왜 방송사 공개홀로 향하는 것일까.

방송사 홍보 담당으로 일하던 때 개국 기념 공개 방송이 있었다. 제작팀만이 아니라 홍보팀에게도 분주한 나날이었다. 장소는 장터. 생방송으로 진행된 방송은 각도의 특산품을 소개하고, 중간중간 초청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상인들과 고객들이 참여하는 이벤트 등으로 진행됐다.

방송 시간은 오후 2시, 관계자는 당일 아침 8시까지 현장 집합이었다. 카메라와 조명 등 방송 장비들의 설치가 시작됐다. 진행자와 초대 손님들은 주어진 대본에 따라 연습을 이어 갔고, 각자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과 동선을 확인했다. 특히 방송사 공개홀이나 스튜디오가 아니라 대중에게 열려 있는 장소였기 때문에 돌발 상황에 대한 대비는 필수였다. 장터 밖에는 앰뷸런스도 대기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때 가장 긴장했을 사람은 총감독이었을 것이다. 100여명에 달하는 공개 방송 제작진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정점에 그가 있었으니까.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실수의 책임은 그의 몫이었다. 돌발 사고에 대한 대응 또한 그의 민첩한 판단력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리허설은 본방송 같았고, 방송 시간이 다가올수록 감독의 눈은 매서워져만 갔다. 끝없는 점검만이 실수를 예방하고 사고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음을 경험상 잘 알고 있는 총감독은 각 담당들로부터 진행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았고, 직접 지시를 내렸다.

실수 없이, 사고 없이 방송은 끝났다. 하지만 보여진 성공과 달리 소소한 실수와 사고는 곳곳에 있었다. 정신을 집중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도 있었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어쩔 수 없는 일도 있었다. 우리는 동일한 실수의 반복은 용납할 수 없다는 각오를 다지며 그날 방송을 정리했다.

현장은 살아 있는 공간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날 것의 소통을 하는 곳, TV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꾸미지 않은 메시지가 오가는 곳이다. 공개 방송 현장에 온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는 당당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이며, 함께 방송을 만들어 가는 시청자의 당연한 행동이다.

오늘도 사람들은 방청권을 신청하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방송국을 향해 간다. 의미 있는 시청자로서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그 무리 안에 나도 있다.



4. [동아일보][황광해의 역사속 한식] 주막(酒幕)

나라가 어수선하다. 1728년(영조 4년) 음력 3월,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다. 영조가 이복형 경종을 게장으로 ‘독살’했다고 믿는 노론 세력의 반란이었다. 한 해 전 7월, 노론 일부가 실각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반란은 충청도 청주를 기점으로 영남 일대로 번졌다. 반란군의 목표는 분명하다. 한양도성의 궁궐이다. 예나 지금이나 집권 세력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권력 핵심으로 향하는 유동인구 통제와 반란 세력의 집결지를 봉쇄하는 것이다. 

난이 일어난 다음 달인 4월 2일, 경기감사 이정제가 보고한다. “(한강의) 송파나루부터 공암나루(서울 강서구 가양동)까지 모든 배들은 강의 북쪽으로 옮겨두고 사사로이 강을 건너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지금의 이른바 주막(酒幕)은 옛날의 관정(關亭)으로서, 적도(賊徒)가 밤에는 주막에서 자고 낮에는 장터에서 모이니, 착실하게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란세력 혹은 수상쩍은 자들이 묵는 곳은 주막이다. 주막은 예전의 관정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관정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만든 역원(驛院)이다. 조선은 공식적으로 각 지역에 역(驛), 원(院), 참(站), 점(店) 등을 두었다. 공적 업무로 지방에 가는 관리들은 주로 지역 관아의 객사(客舍) 등에서 묵었다. 객사가 없는 곳에서는 역참에서 말을 갈아타거나 잠을 잤다. 역은 30리 간격으로 하나씩 세웠다. 역, 원, 참도 없는 산골이나 시골에서는 민가에서 하룻밤을 묵는 수밖에 없었다. 

주막은 주점(酒店)과 다르다. 주점은 공식적이고 주막은 사설기관이다. ‘막(幕)’은 비바람을 가리려, 임시로 지은 가건물이다. 초기의 주막은 ‘가볍게 술 한잔 마시는 가건물’에서 시작되었다. ‘영업신고’를 하지 않으니 세금도 없다. 세금을 걷는 곳은 통제도 쉽다. 중국 한나라 이후부터 중앙정부는 술을 만들거나 파는 곳에 독점권을 주고 세금을 거두었다. ‘각고((각,교)])’제도다. ‘각’은 독점, ‘고’는 술, 술집을 뜻한다. 주점은 공식적이며 세금을 낸다. 초기 주막은 세금을 내지 않는 가건물로 시작하였다. 난전(亂廛)이다. 

1574년 12월(선조 7년) 미암 유희춘(1513∼1577)은 선조와의 경연에서 “경기도의 탄막(炭幕)은 나그네가 숙박하는 곳인데 도둑들이 엄습하여 그 집을 불태웠다”고 보고한다(미암집). 탄막은 주막인데 숙박시설이다. 술도 마시고 잠도 잔다. 

탄막은 땔나무와 숯을 보관하는 곳이다. 이덕무(1741∼1793)는 “점은 주막인데, 술(酒)과 숯(炭)의 발음이 비슷하여 ‘술막(酒幕)’이 숯막(炭幕)이 되었다. 관청의 문서에서도 탄막으로 쓰고 있다”고 하였다. 임진왜란 이전에도 주막은 있었다. 조선후기에는 점, 주점, 주막, 탄막 등 여러 이름으로 나타난다.

조선의 생산능력이 늘어난 17세기 후반 이후에는 유동 인구가 늘어난다. 역참을 이용할 수 없는 양민, 상인들은 주막을 이용한다. 전국에 주막이 급격히 늘어났다. ‘간편하게 술 한잔 마시는 공간’으로 시작한 주막은 점차 술 마시고, 식사하고, 잠도 자는 공간으로 발전한다.  

정조 13년(1789년) 2월 ‘일성록’의 기록. 황해도 신계에 살던 한조이는 남편의 억울한 유배를 풀어줄 것을 호소한다. “남편 이귀복과 저는 길가에 살면서 탄막으로 업을 삼고 있었습니다. 재작년(1787년) 5월, 나그네가 저희 탄막에 와서 아침을 사먹고 있는데 (황해도) 곡산의 기찰 장교가 그를 잡아가고, 남편도 잡아가서 유배 보냈습니다.”

호남의 실학자 존재 위백규(1727∼1798)는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다. 젊은 시절 존재가 과거장에 다닐 때 “주막이나 여관(旅店·여점)을 제외하면 단연코 아는 사람 집에서 유숙하거나 남에게 부탁하거나 인정을 바라는 일이 없었다.



한양도성에 들어오면 반촌(泮村)에 세를 들었다. 시험이 끝나면 바로 말을 타고 왜고개(서울 한강로 부근)를 넘었다”고 했다. 존재는 주막과 여관 모두 ‘검소하게 잠자는 곳’으로 여겼다. 물가 비싼 한양에서는 허름한 곳에 세를 들었다. “술 마시는 걸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30리마다 큰 팻말을 세우고 나무를 심어 잘 가꾼 곳에 주막을 세우자. 나머지 작은 점포들은 술독을 두지 못하게 하자.”(존재집) 술을 막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줄이자는 뜻이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영국 M11 연결도로 항쟁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영국산책’에는 영국의 도로가 “체계적으로 보이는” 체계에 따라 놓여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런던을 중심으로 에든버러로 이어진 A1도로부터 시작해 시계방향으로 A6(런던-칼라일)까지 6개 주간선도로가 영국을 6개로 피자처럼 나누고, 고속도로(M)와 보조간선도로(B)들도 각기 포함된 조각에 따라 번호를 부여 받는다는 이야기. 예컨대 A11도로나 B1065 도로는 ‘1번’ 조각 속의 도로여서 거기서 빠져 나와 시계방향으로 달리면 ‘2번’영역의 경계인 A2도로와 만나게 되는 식이다.



다만 브라이슨이 “체계적으로 보이는”이라 쓴 까닭은 크고 작은 후속 도로들이 잇달아 건설되면서, 영국 지명의 알쏭달쏭한 발음들처럼, 적잖은 예외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번호 순서가 뒤집혀 길을 찾느라 곤란을 겪곤 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브라이슨은 그 체계 속의‘비체계’들이 영국 문화의 한 특징이라고 썼다. 하지만 그도 그 배경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M11’은 잭 리처의 소설 ‘하드웨이’에서 런던의 통근길 교통체증을 대변하는 도로로 언급되는, 영국 1번 조각의 방사선 고속도로다. 런던 동북부 해크니를 지나는 A12번 도로와 M11번을 잇는 연결도로는 60년대에 계획이 시작돼 80년대 말 착공했고, 1999년에야 개통된 진통(陣痛)의 도로로 유명하다. 토지 수용과 주택 철거, 원스테드(wanstead) 인근 녹지 보존 등을 둘러싼 주민들의 저항 때문이었다. 

착공 시점 계획지구 내에는 빈집들이 많았다. 거기 터를 잡은 예술가와 개발반대 운동가들은 ‘원스토니아(Wanstonia)’라는 이름의 자치국가를 표방하며 공권력에 맞섰다. 1993년 12월 7일, 원스테드 조지 그린의 250살 된 밤나무를 살리기 위한 주민과 운동가들의 대립이 절정이었다. 법원으로부터 정식 주소까지 부여 받아 합법적인 주거지로 인정받은 나무를 지키기 위한 대치. 10여 시간에 걸친 공방 끝에 건설국은 나무를 베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고 당일 경찰 비용만 약 50만 파운드가 들었다. 이후로도 싸움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도로는 99년 10월에야 개통됐다. 약 350채의 집과 1에이커 녹지를 수용해 4마일이 채 안 되는 도로를 건설하는 데 10년이 걸린 셈. 공사 비용 2억5,000만 파운드가 들었다. 영국 도로체계의 예외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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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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