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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조류 인플루엔자에 속수무책인 현실
전국이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강원도 철원군 농장까지 AI가 확산된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이 농림축산식품부의 발표다. 강원도에서도 AI 확진 판정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충격적이다. 이로써 AI는 영남 지역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창궐하고 있는 모양새다. 방역당국이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물론 AI 발생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와 지지난해에도 AI에 따른 피해가 심각했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이번에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H5N6형 바이러스가 지난해 극성을 부린 H5N8형보다 파괴력이나 전파력이 훨씬 강력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28일 충남 천안 지역에서 H5N6형이 처음 확인된 이후 불과 한 달여 만에 전국이 이 바이러스에 뻥 뚫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지금으로써는 영남지역도 안심할 수만은 없다. AI매개체인 겨울 철새가 도래지인 영남으로 계속 날아들고 있는 데다 AI에 걸린 야생조류 분변 찌꺼기가 유입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닭·오리의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AI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면 가금류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살처분한 가금류가 340만 마리 가까이 이른다는 게 방역당국의 설명이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살처분 가금류가 400만 마리를 넘는 것도 시간문제다.
AI의 피해가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지만 근본대책은 없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AI 확산으로 애꿎은 철새를 탓하고 농가의 가금류 살처분과 주변 소독, 차량이동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정부 대책의 전부다. 새떼를 따라 날아서 유입되는 바이러스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제는 총체적 관리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발생 지역에 따라 대응하기보다는 중국 등 아시아 전역을 대상으로 AI 발생 감시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AI 진단과 처방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농가 피해는 물론 지자체의 살처분 매몰비용, 정부 보상비용 등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주는 AI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2. 박 대통령은 정치혼란 더 키워선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 처리가 오는 9일로 다가오면서 여야 정치권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탄핵안이 통과되든, 통과되지 못하든 후폭풍이 드셀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만약 탄핵안이 통과되지 못할 경우 길거리로 몰려나온 촛불 민심이 국회를 향해 쏠리게 될 것이며, 통과된다고 해도 헌법재판소 심리 일정을 감안해 후속 정치 일정을 마련하는 작업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서도 박 대통령이 나름대로 막판 승부수를 띄울 가능성에 대해서는 경계심이 요구된다. 자신의 거취 문제를 국회에 맡기겠다는 취지의 제3차 담화를 통해 탄핵 진용을 흔들었던 효과를 되살리려 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탄핵이냐, 자진사퇴 표명이냐의 갈림길에서 또 다른 엉뚱한 변수를 내놓는다면 ‘꼼수’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 스스로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천명한 만큼 이제는 민의에 순응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다.
박 대통령이 담화를 할 예정이라면 시기를 명확히 못 박아 퇴진 시점을 밝히는 게 옳다. 또 다시 교묘한 조건을 달아 정치 혼란을 가중시킨다면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로서의 마지막 책무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치권에서는 이르면 오늘 중이라도 박 대통령이 대(對)국민담화 형식으로 탄핵 정국에 대한 자신의 의중을 밝힐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게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이 어제 국정조사 증인으로 출석한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임기에 연연하지 않는다”면서 “곧 결단을 내릴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한 점에 주목하게 된다. 박 대통령이 금명간 퇴진 시점을 밝힐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도 박 대통령에게 ‘4월 퇴진’ 당론에 대한 조속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기로 의견을 모음으로써 퇴로는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문제는 탄핵이든 자진사퇴든 그 이후의 정치·사회적 혼란을 어떻게 수습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동안 탄핵추진을 둘러싼 논란 과정에서 심각한 국정공백 사태를 드러냈고, 이런 상태가 더 지속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경제정책 공백이 심각하다. 여야 정치권은 국정이 안정적이고 평화롭게 이양될 수 있도록 서로 지혜를 모아야만 한다.
[서울신문]
3. 동북아 정세 바꿀 트럼프의 아웃사이더 외교
미국과 중국의 외교 관계가 출렁거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가 최근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37년 만에 미국과 대만 정상 간의 직접 대화라는 점에서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지켜진 ‘하나의 중국’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중 관계가 자칫 급랑 속으로 빠져들 경우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에 미칠 심각한 악영향도 피할 수 없다.
미·중 수교는 ‘하나의 중국’이란 기본 전제 속에서 이뤄졌다. 미국이 중국과 수교 조건으로 대만과 단교를 단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미 정계의 아웃사이더로 불렸던 트럼프 당선자는 과거와 다른 외교 안보 접근법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이 자국의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건드리면서 중국을 압박하는 초강수 대만 카드를 꺼내 든 측면이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중·미 관계를 흔들지 말라. 국제사회에 형성된 ‘하나의 중국’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엄중히 경고했다.
문제는 트럼프 당선자가 꺼내 든 ‘대만 카드’가 일회적이고 돌발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한 신고립주의 노선을 토대로 대중 강경책을 고수할 가능성이 크다. 대중 관세를 45%로 인상한다거나 환율 조작국으로 고발할 것을 예고한 상황에서 미·중 관계는 갈수록 험악해질 수 있을 것이다. 내년 1월 차이 총통과의 정상 회동을 검토한다는 보도마저 나오는 상황에서 대외 강경론자들이 속속 트럼프 인수위에 합류하고 있는 것도 우려스럽다.
트럼프 당선자가 미·중 관계를 파탄으로 몰지 않는다고 해도 협상의 명수답게 당분간 중국과의 기싸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미·중 관계가 악화될 경우 한반도에선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삼으려는 중국 내 분위기가 고조될 것이다. 북핵 문제 해법에서 중국의 협력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의미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둘러싼 불협화음도 현실화되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외교 안보 전략을 수립할 것이 확실하다. 한·미 동맹 위주의 4강 외교에 안주해 온 우리 외교로선 새로운 도전일 수밖에 없다. 새롭게 전개되는 미·중 간의 복잡한 외교 전략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에 대비해 우리의 국익 극대화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한다.
4. 기업인만 괴롭힐 ‘최순실 청문회’ 돼서야
‘최순실 일당의 국정 농단 사건’을 파헤치기 위한 국정조사가 핵심 증인의 불출석 등으로 맹탕으로 흐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어제 2차 기관보고에 이어 오늘과 내일 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다. 사안의 심각성과 오는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과 특검의 조사 활동을 앞두고 열리는 시점 등을 고려하면 이번 국정조사는 1988년 ‘5공 청문회’ 이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씨를 비롯해 김기춘·우병우·안종범 등 내일 2차 청문회의 증인으로 채택된 전직 청와대 참모진은 하나같이 증언을 기피해 부실 국정조사를 예고하고 있다. 최씨와 안씨 등은 구속을 이유로 불출석하고, 최씨 일당의 국정 농단을 방조, 묵인한 의혹의 우 전 수석은 아예 출석요구서 자체를 피하는 방식으로 국회를 우롱하고 있다. 김 전 비서실장은 아예 출석요구서가 전달됐는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국가의 공권력을 휘두를 때는 ‘법과 원칙’을 강조하던 이들이 하나같이 법치를 농락하는 자가당착의 처신을 보이고 있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국조특위에서는 이들에 대해 ‘동행명령장’ 발부 운운하지만 증인들이 처벌을 감수하더라도 나오지 않겠다고 버티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 국회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들을 증언대에 세우려는 치열함에 청문회의 성패가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오늘 1차 청문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 9명이 한꺼번에 증언대에 설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청문회는 기업 청문회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핵심 주범들은 정작 청문회에서 빠져나가고 어떤 의미에서는 피해자인 기업 총수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이번 청문회는 우리 국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다. 자료 등을 바탕으로 진실에 접근하는 품격 있는 국조가 돼야 하는 이유다. 더구나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최순실 게이트가 한국 경제의 중대한 결정 지연을 초래한다’는 한국 경제 보고서를 냈다. 이런 상황에서 정경유착의 커넥션은 파헤쳐야 하지만 대기업 총수에 대한 인신 공격이나 반기업 정서를 확산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핵심 증인들을 향해야 할 칼날이 엉뚱하게 총수들을 대상으로 호통치기와 망신주기 등의 구태를 보인다면 본말이 전도되는 청문회가 될 것이다. 국정 농단으로 망가진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청문회가 돼야 한다.
[조선일보]
5. 썰렁한 '무역의 날' 단상에 비친 한국 경제
어제는 제53회 무역의 날이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기념식이 열렸지만 썰렁했다. 나라 안팎 사정이 어두운 데다 탄핵 정국으로 대통령마저 불참했다. 올해 수출의 탑 수상 업체 숫자는 2004년 이후 가장 적다. 2002년 이후 14년 만에 100억불 이상 수출탑을 받는 기업도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무역입국(貿易立國)'은 중규모 개방 경제인 대한민국에 말 그대로 생존 전략이다. 12월 5일을 무역의 날로 정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전에는 수출 1억달러를 돌파한 1964년 11월 30일을 '수출의 날'로 지정해 대통령이 직접 수출 기업과 수출 역군을 포상하고 격려해왔다. 마침내 2011년 12월 5일 우리가 세계 아홉 번째로 무역 규모 1조달러 대열에 오르면서 그 감격의 날을 기념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념비적 성취에 환호한 것도 잠시, '1조달러 무역대국'은 단 4년 유지되고 끝났다. 작년과 올해 2년 연속 1조달러에서 뒷걸음질했다. 수출 5000억달러 기록은 6년 만에 무너졌다. 글로벌 교역이 다 회복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한국 경제의 역동성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중국 등 경쟁국에 밀려 세계 수출 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이 작년 3.46%에서 올해 3.35%로 줄어들었다. 세계 6위까지 올랐던 수출 순위가 올해는 프랑스·홍콩에 밀려 8위로 내려앉을 전망이다.
수출이 어려우면 내수라도 그럭저럭 돌아가야 하는데 나라 안 경기도 싸늘하다. 불황의 한파는 취약 계층부터 가혹하게 덮친다. 임시 일용직 일자리도 줄고, 영세 자영업자 매출도 신통치 않다. 지난 3분기(7~9월)에 하위 10% 빈곤층의 가처분소득이 1년 전보다 무려 16%나 줄었다. 2003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빈곤층 소득이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가난한 사람들 소득이 16%나 줄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별 주목도 받지 못한다. 이들은 한 달 평균 71만7000원, 하루 2만40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다. 경제 활력을 가늠하는 경제성장률이 2%대로 내려앉았는데도 모두가 '그러려니' 하며 방치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안팎으로 위기인데 정부에는 컨트롤타워도 없다. 정치권은 경제가 망가지든 말든 관심도 없다. 대선을 앞두고 세금으로 표 사는 포퓰리즘은 창궐할 것이다. 400조원 수퍼 예산이 편성됐지만 여야 의원들은 쪽지 예산 챙기기에만 바빴다. 경제 활력을 일으킬 법안은 야권과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로 이미 무산됐다. 세계와 경쟁해야 할 기업들은 국내 정치 사건에 휘말려 있다. 노조엔 눈앞의 이익뿐 '내일'이 없다. 이대로면 무역 1조달러의 빛나는 성취는 '한여름 밤의 꿈'처럼 멀어져 갈 것이다.
[동아일보]
6. 빈곤 심해진 한국, 伊 총리 날린 포퓰리즘 피할 수 있나
소득 하위 10%에 속하는 저소득 가구의 3분기 월평균 가처분소득이 71만7000원으로 1년 전보다 16% 감소했다고 통계청이 어제 밝혔다. 소득 감소 폭이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최대 수준이다. 반면 상위 10%에 속하는 고소득 가구의 월평균 가처분소득은 1년 만에 3.2% 늘어난 811만 원이다. 양극화가 한국 사회의 불안 요인으로 대두한 셈이다.
4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167만 원인 점을 감안하면 저소득가구는 가장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힘든 한계상황에 몰렸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빈곤층에 정리해고와 자영업 파산 같은 충격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위 10% 계층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5%로 아시아 22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는 국제통화기금(IMF) 분석은 우리의 분배 구조가 얼마나 편중돼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보조금 같은 땜질 처방으로는 고질병을 고칠 수 없는데도 정부와 정치권의 해법은 늘 판박이다.
국민이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는 상황에서 정권이 어떤 장밋빛 성장 정책을 꺼내 들어도 역풍만 맞을 뿐이다. 4일(현지 시간) 이탈리아에서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것이 좋은 예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저성장 극복과 정치 불안 해소를 명분으로 개헌을 주장했지만 1997년 이래 최고인 13.7%로 치솟은 빈곤율(중위 소득의 50% 미만 가구 비율)에 낙담한 국민은 표로써 정부를 심판했다. 이번 국민투표를 “경제·반부패 개혁에 나서지 않는 렌치 총리의 실정에 대한 심판”으로 몰아 부결로 이끈 야당이 포퓰리즘 정치의 오성운동당이다.
작년 한국의 빈곤율은 이탈리아와 비슷한 13.8%였다. 기획재정부는 현 정부 들어 빈곤율이 감소하고 있다고 자화자찬하지만 빈곤층의 소득 감소 폭이 큰 상황에서 분배가 개선됐다고 느낄 국민은 드물다. 지금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은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적 문제도 동시에 제기하고 있다.
[매일경제]
7. 면세점 불확실성 방치한 국회 무책임하다
국회가 면세점 특허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관세법 개정안'을 무산시킨 것은 별 근거도 없는 의혹에 편승해 산업 경쟁력을 실추시킨 결정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관세법 개정안에는 정부안에 포함됐던 면세점 특허기간 연장 내용이 빠져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공청회 등 업계 의견 수렴을 거쳐 마련한 특허기간 연장은 기약 없이 표류하게 됐다.
앞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특허기간 연장 결정에 최순실 등의 영향력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관련 대목을 뺐다. 국회가 이 같은 의심을 하는 것은 지난해 면세점 선정에서 탈락한 기업들이 올해 박근혜 대통령과의 독대를 통해 재선정과 관련된 청탁을 했다는 의혹에 기반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의혹은 아직 사실로 특정되지 않았을뿐더러 특허기간 연장과는 직접 관련도 없는 것이다. 정부가 특허기간 연장을 결정한 것은 2013년 관세법 개정으로 면세점 특허기간이 10년에서 5년으로 줄면서 온갖 부작용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존 면세점 두 곳이 입찰에서 탈락하면서 직원 수천 명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어야 했다. 신규 면세점 4곳은 단 한 곳 예외 없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 중이며 영업이익률이 -150%까지 떨어진 곳도 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5년짜리 특허권으로는 면세사업 계획을 짜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면세점은 직접 물건을 사서 마진을 붙여 파는 사업으로 초기 투자비용이 매우 크다. 흑자 전환에만 4~5년이 걸려 5년 후 사업권을 회수당하면 망할 수밖에 없는 사업구조다. 특허 유지가 불안정한 상황에선 소신 있는 투자도 어렵고 해외명품 브랜드 유치도 힘들다. 이 때문에 올해 초 정부가 공청회를 통해 의견 수렴에 나섰을 때 업계나 학계, 언론을 막론하고 10년 연장 및 특허갱신제로의 전환을 요구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신규 지정된 면세점일수록 특허기간 연장 목소리가 컸다.
그런 배경을 모를 리 없는 국회가 이제 와서 '최순실 의혹' 운운하며 연매출 12조원으로 세계 최대이자 한류의 첨병인 면세사업을 비토하는 것은 무책임한 보신주의다.
[서울경제]
8. 가입자 확보 비상 걸린 ISA 수익률 높일 방안 고민하라
금융당국이 고사 위기에 몰린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살려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까지 나서 세제혜택 등을 늘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최근에는 금융투자협회에서 저축의식을 키워주자는 취지로 가입 대상을 어린이로 확대하는 ‘주니어 ISA’ 도입 방안을 밝혔다. 이른바 ‘ISA 시즌2’다. 나아가 대학생·주부·미성년자 등까지 가입 대상을 전면 개방하고 가입기간도 영구화하는 ‘시즌 3’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고 한다.
그만큼 ISA가 처한 상황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가입과 해지 현황만 봐도 ISA의 인기가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월 출시 때는 불과 보름 만에 121만명의 가입자를 끌어모았지만 갈수록 급감 추세다. 급기야 불과 8개월 만인 10월에는 해지하는 사람이 가입자보다 많아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0월 신규 가입자는 3만2,000명에 불과한 반면 해지자는 3만5,000명에 달했다.
무리한 할당경쟁이 낳은 부산물인 깡통계좌 문제도 여전하다. 가입액이 1만원 미만인 계좌가 전체의 절반 수준이고 10만원까지 확대하면 70%가량이 ‘무늬만 계좌’인 상태다.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수익률마저 바닥을 기고 있다. 일임형의 경우 최근 3개월 수익률이 마이너스(-0.13%)를 기록하고 있고 누적수익률도 1.5%선에 머물고 있다. 8월에는 수익률 공시 오류가 불거져 ISA 자체에 대한 불신마저 더해졌다.
오죽했으면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현재 상태라면 ISA는 조만간 사장될 것”이라고 했겠는가. 어린이용 상품을 만들어서라도 ISA의 불씨를 살려보려는 당국과 업계의 고민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상품 종류를 이것저것 새로 만든다고 해서 ISA가 활성화되기는 쉽지 않다. 자칫 실속 없는 숫자 늘리기로 깡통계좌만 더 양산할 수 있다. 투자자들이 진정 원하는 게 뭔지를 파악하는 게 먼저 할 일이다. 꾸준한 가입환경 개선과 ISA에 대한 이해를 돕는 상담 및 교육지원, 마케팅 강화 등의 노력 끝에 ISA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영국의 사례를 좀 더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
9. ‘친일 후손들’ 말 듣고 교과서 밀어붙이는 교육부
교육부가 5일 국정 역사교과서의 명백한 사실 오류는 바로잡되 이승만·박정희 미화 등의 지적은 “왜곡”이라며 내년 1월 최종본 발행 계획을 재확인했다. 국민들로부터 이미 탄핵당한 국정교과서를 철회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친일·독재를 미화하고 독립운동을 축소하는 등 문제투성이 교과서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67%가 반대(2일 한국갤럽 여론조사)하는 등 국민적 신뢰를 잃었는데도 여전히 집착하는 교육부의 처사는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게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행태다.
지난달 28일 현장검토본 공개 이후 교육부가 해명을 내놓았으나 여론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각 정권의 공과를 균형있게 서술했다지만 박정희 정권 18년에 10쪽을 할애하면서 6월항쟁 이후 30년 세월은 4쪽으로 줄였으니 양적으로도 편향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또 박정희 ‘권위주의’ 체제를 언급했다지만 그 앞에 안보위기 상황을 잔뜩 적었으니 사실상 ‘불가피했다’는 취지로 합리화 내지 미화한 것이 분명하다.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인하는 ‘대한민국 수립’ 등 뉴라이트 역사관도 그렇거니와, 초고엔 “유신헌법이 민주화 운동의 헌법적 근거가 됐다”는 주장까지 들어 있었다니 교과서라고 이름붙이기도 낯부끄러울 정도의 수준 이하 책이다. 애초 융통성을 발휘하는 듯하던 이준식 교육부 장관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만난 것을 계기로 “철회는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추진을 독려하고 있는 언론이나 필자들이 ‘친일’ 인사들의 후손이란 점은 허투루 넘길 수 없다. <조선일보> 사주였던 방응모는 일제강점기 잡지 <조광>을 통해 징병을 권유하는 등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로부터 친일행위자로 판정받았고 최근 대법원에서도 재확인됐다. 최근 칼럼을 통해 국정교과서 연기는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검은 세력에 대한 백기투항’이라며 강행을 주문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역시 할아버지가 친일행위를 한 것으로 친일규명위 보고서에 기록돼 있다.
교육부는 12일 토론회를 연다지만 국정교과서를 철회할 조짐은 아직 없다. 이 장관 등은 ‘촛불’의 뜻을 거스르고 ‘친일’ 후손들에 휘둘리는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기 바란다.
[한국경제]
10. 환경상품협정 불발…기후변화협약 제동 걸리나
WTO 환경상품협정(EGA)이 결국 타결되지 못했다.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보호라는 명분 아래 2014년 시작된 EGA 협상은 소위 ‘녹색기술’ 이용 제품에 무관세 혹은 5% 이내의 저율관세를 적용하자는 것으로, 올해 타결을 목표로 진행돼 왔다. 한국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등 17개 참가국은 18차례 협상에서 대상 품목을 304개로 줄이는 등 성과를 낸 듯했으나 관심·민감 품목에 대한 국가별 입장 차가 컸다.
주요 협상 품목에는 태양광·풍력·수력 등 신재생에너지 제품을 비롯해 펌프·밸브 같은 수처리 제품, LED조명·고효율 전동기 등 에너지 효율 제품까지 망라돼 있다. 굳이 환경상품이니 녹색기술이란 거창한 카테고리로 포장하지 않아도 기업들이 글로벌 소비자층을 의식해가며 자연스럽게 개발해 보급에 나설 제품들이다. 단지 ‘환경상품’이라며 관세를 없애면 저가 중국 제품의 무차별 범람 같은 문제도 파생될 수 있다.
일괄적으로 관세를 철폐할 경우 나라마다 유불리한 품목이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도 콘덴싱보일러·LED조명·온수기 등은 유리하나 전기류·펌프류 같은 품목은 불리해진다고 한다. 환경상품이나 기후변화 공조라는 환경근본주의적 관점에 쫓겨 새로운 무역 규준을 성급히 도입하려는 논의 자체가 무리였다. 정부가 우리 산업계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한 뒤 향후 일정에 임해야 하는 이유다.
저탄소와 기후변화 이슈, 환경보호 아젠다는 정말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대통령이 파리기후협정 탈퇴 공약을 내건 데 이어 이번에 EGA가 불발된 것은 숙고해볼 일이다. 지구온난화는 과학이 아니라는 그린피스 공동 설립자의 언급도 있었고, 지구온난화가 사기극에 불과하다는 지적까지 과학계 내부에서 나온 판이다. 검증도 안 된 온난화 이슈에서 환경근본주의에 경도돼 마치 국제사회의 모범생이라도 되려는 듯 강박증까지 보인 게 환경부 등 우리 사회 일각의 모습이었다. 온실가스에 대한 과도한 규제도 그렇게 나왔다. 브레이크 걸린 기후변화협약과 EGA를 보면서 환경 조급증에서 조금은 벗어나 보자.
주요 신문칼럼
1. [매일신문][매일춘추] 오페라와 뮤지컬
오페라와 뮤지컬의 차이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오페라의 성악가들은 숙련된 벨칸토 발성으로 음향 시스템의 지원 없이 노래한다. 반면 뮤지컬 가수는 마이크를 활용하여 대중 가수들과 비슷한 창법을 쓴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대사를 처리하는 방식도 다르다. 오페라는 레치타티보(음악적인 낭독)를 사용하지만 뮤지컬은 연극과 동일한 대화 형식이다. 음악과 극의 결합 및 무용, 무대장치, 의상 같은 미술적인 요소 등 모든 장르가 통합되는 종합무대예술이라는 것은 오페라와 뮤지컬이 일맥상통한다.
오페라와 뮤지컬 제작은 대다수 공연기획 업무의 최종 지향점이다. 모든 공연 장르를 한 작품 속에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대 장치들도 다른 공연 종류와 비교하여 복잡하고 미(美)적이다. 두 분야의 영향을 받아 공연장이나 기획사에 몸담게 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카메론 매킨토시와 앤드류 로이드 웨버 같은 세계적인 프로듀서들은 공연 제작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단지 음악을 좋아했던 나를 공연 분야의 길로 이끈 것도 바로 뮤지컬과 오페라다.
개인적으로 프랑스 뮤지컬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대학 시절 ‘지킬 앤 하이드’와 ‘레미제라블’ 등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 찰나에 ‘노트르담 드 파리’는 미국 작품만 알던 나에게 새로운 충격이었다. 낭만적인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 배우들의 폭발적인 가창력은 이 장르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바꿔 버렸다. 출연자들의 노래와 춤 외에도 대사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달리, 송스루(Song-Through, 대사 없이 노래가 계속 이어지는 형식) 진행 방식은 지금까지도 프랑스 뮤지컬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오페라에 대한 관심은 대학 졸업 후 찾아왔다. 평소 국내외 유명 성악가들의 음반을 통해 많은 곡을 접했지만 오페라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 처음으로 관람한 오페라는 베르디의 리골레토였다. 평소 전자 음향에 익숙했던지라 극 초반에는 귀가 답답했다. 하지만 뮤지컬에서 느껴보지 못한 클래시컬한 사운드와 오페라 가수들의 시원한 발성은 이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고딕 양식의 무대세트 또한 나에게는 신세계였다. 그날 이후 결심했다. ‘내 천직은 공연이다.’
오페라와 뮤지컬! 두 장르는 늘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웃는얼굴아트센터는 내년 리모델링 완료 후 뮤지컬과 오페라 시리즈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물론 예산 상황이나 극장의 공간적 한계로 규모 있는 작품을 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작지만 지역민들이 공감하고 쉽게 즐길 수 있는 기획을 구상하고 있다. 언젠가는 대구를 브랜드로 한 멋진 작품을 제작해보는 날도 있지 않을까?
2.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워싱턴포스트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려는 언론 기업들의 몸부림이 눈물겹다. 디지털 파도는 이미 들이닥쳤지만 안정적으로 파도를 타는 보드는 찾기 힘들다. 양질의 차별적 컨텐츠라도 생산할 능력이 있는 곳들은 사정이 낫다. 거기에 변화의 의지와 자본력이 요구된다. 미국 워싱턴D.C의 가장 오래된 신문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의 근년 실험이 주목 받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1877년 12월 6일 4쪽짜리 창간호 1만부를 찍어 부당 3센트로 영업을 시작했다. 자유주의 언론인 스틸슨 허친스가 창간한 친 민주당 신문은 10여 년 뒤 경영난 끝에 매각돼 보수 신문으로 변신하는 등 수 차례 경영주가 바뀔 때마다 신문의 색깔과 위상도 달라지곤 했다. 사교계 소식과 선정적 뉴스에 치중하던 때도 있었고, 친정부적 논조로 영향력을 상실한 적도 있었다.
그 신문이 안정적 기반을 잡은 건 30년대 금융업자 유진 마이어(Eugene Meyer)와 40년대 그의 사위 필립 그레이엄(Philip Graham) 일가 때부터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보도, 독립적인 논조. 그렇게 다져진 전통과 기량이 60년대의 격동기를 거쳐 70년대 ‘워터게이트 사건’의 전투력으로 이어졌고, 비로소 뉴욕타임스와 어깨를 겨루는 전국 신문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2013년 8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하며 “WP는 디지털기업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편집에는 관여하지 않는 대신 기술진 주도의 디지털 혁신을 이끌었다. 다종편집 시스템 ‘밴디토(Bandito)’, 의사 전달ㆍ결정 구조를 디지털화한 ‘웹스케드(Websked), 속보 대응력을 높인 브렉패스트(BreakFast), 구글 협력 모바일 혁신(AMP) 등. ‘Red’라 불리는 베조스 기술군단의 뉴스 컨텐츠 매니징 시스템 아크(Arc)는 캐나다 최대 매체인 ‘Globe and Mail’에 라이선스 계약을 맺기도 했다.
아직 성패는 미지수지만, 현재까지의 성과는 컨텐츠 경쟁력과 자금력, 무엇보다 경영주의 확고한 철학과 추진력 덕이었다. 셋 모두 혁신의 필수 조건이지만, 시동을 건 건 제프 베조스였다. 경쟁지인 뉴욕타임스의 디지털혁신 8원칙 중 변화의 의지를 천명한 제 1항도 “경영진에서부터 시작하는 하향식(Top-Down) 혁신”이었다. 새로운 시도에는 위험과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3. [서울신문][홍태경의 지구 이야기] 역사기록의 활용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말은 정치, 사회 분야뿐만 아니라 과학과 재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길어야 100년 남짓 사는 인간은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일어나는 자연의 다양한 변화를 모두 경험할 수 없다. 이런 자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긴 기간의 관측 자료 분석이 필요하다.
특정 지역에서 발생가능한 최대 지진과 지진 발생 예상 지역과 피해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수백년 이상의 지진 기록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 지진계가 도입된 시기가 1978년임을 감안해 보면 지진계에 기록된 자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방대한 역사기록물이 있다. 특히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에는 1900여회가 넘는 지진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는 진도 8 이상으로 평가되는 지진 피해 기록도 여럿 있다. 서울에서 발생한 지진 기록도 꽤 있다.
중종 13년(1518년) 음력 5월 15일에는 “유시(오후 5~7시)에 세 차례 크게 지진이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치 성난 우레 소리처럼 커서 사람과 말이 모두 피하고, 담장과 성첩이 무너지고 떨어져서, 도성 안 사람들이 모두 놀라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밤새도록 노숙하며 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노인들이 모두 옛날에는 없던 일이라 하였다. 팔도가 다 마찬가지였다”라고 한양에서 발생한 지진을 기록하고 있다.
세 차례 큰 지진이 연쇄적으로 발생했을 뿐 아니라 지진동이 전국적으로 감지될 정도로 강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성첩의 무너짐은 지진동의 크기가 지금껏 우리가 겪은 수준 이상이었음을 시사한다. 또 성난 우레 소리는 단층 운동에 암반이 부서지는 소리로 이곳이 진앙지 인근임을 의미한다.
명종 1년(1546년) 음력 5월 23일 기록은 더 구체적이다.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갔으며 한참 뒤에 그쳤다. 처음에는 소리가 약한 천둥 같았고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집채가 모두 흔들리고 담과 벽이 흔들려 무너졌다. 신시에 또 지진이 일어났다.”
이 기록은 서울에 지진이 발생했을 뿐 아니라 단층 파열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행했음을 의미한다. 또 큰 단층을 따라 연쇄적으로 여진이 발생했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단층 파열과 연쇄 지진은 미국 서부지역과 같이 활성 단층이 잘 발달한 지역에서 목격되는 현상으로 수도권과 같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오래된 암반을 가진 지역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또 강력한 지진동에 의한 피해 정도를 통해 지진 규모를 추정할 수 있다.
지난 9월 12일 규모 5.8의 경주지진에서도 담과 벽이 무너지는 피해가 없었음을 감안해 볼 때 당시 지진동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역사에 남은 지진 피해 기록은 최근 지진 발생 특징과는 차이를 보인다. 최근 지진 기록에 의하면 수도권에서는 지진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1978년 이후 지금까지의 짧은 지진 관측 기록이 특정 지역의 지진 특성을 잘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저평가돼 온 수도권 지역의 지진 재해 가능성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 지역은 지질학적으로 안정되고 매우 단단한 암반으로 평가되는 경기육괴 위에 위치한다. 지진은 오랜 기간 응력 누적이 있어야 발생한다. 최근 수도권 지역에서의 지진이 관측되지 않음은 지각 내 응력이 누적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수도권에 지진을 유발한 단층을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경주 지진의 예에서 보듯이 지표에 단층면을 드러내지 않은 지표 하부 단층일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역사기록이 과학의 영역으로 확장돼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록자의 주관에 따른 취사선택이나 자료 왜곡이 되지 않고 모든 사실이 빠짐없이 정확하게 기록될 때 의미가 있다.
기록이 나중에 어떻게 활용될지는 기록자가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했던 사초 기록자들의 노고가 새삼스레 크게 느껴진다.
4. [서울신문][신통방통 기상] 날씨와 소형항공기/고윤화 기상청장
2013년 11월 서울 삼성동에서 헬기가 고층건물에 부딪혀 탑승자 2명 모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의 주요 원인은 안개에 의한 시정장애였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 따르면 항공기 사고 중 날씨가 직접적 원인이 된 사고는 약 10%에 불과하지만 기상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 사고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밝히고 있다. 그만큼 항공기 사고에서 기상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항공기는 여러 교통수단 중 사고 발생 확률은 가장 적지만 한 번 사고가 발생하면 탑승객의 사망률은 거의 100%에 달한다. 최근 항공산업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항공기 사고도 증가하고 있으며, 그중 소형항공기의 사고 발생률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최근 10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항공기 사고는 총 52건으로 소형 및 회전익 항공기(헬기)의 사고 건수는 39건으로 75%를 차지하고 있다.
소형항공기나 헬기는 주로 고도 3㎞ 이하의 저고도를 운항하는 항공기로 안개, 난류 등 기상현상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저고도에서는 지형지물에 의해 날씨가 수시로 변하고 위험기상이 나타날 경우는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저고도 운항 항공기일수록 기상변화에 더욱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겨울철에는 공기 중에 노출된 물체의 표면에 과냉각된 물방울이나 구름입자가 붙어 얼음막을 만드는 착빙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날개 끝이나 항공기 표면의 착빙은 이륙 전 항공기 조작에 영향을 주게 되고 안정판이나 방향타 등에 착빙이 생기면 조작 방해를 받게 된다. 항공기 표면에 불균일하게 착빙이 생기면 헬기의 회전날개나 프로펠러의 균형을 무너뜨려 떨림현상을 발생시키고 운항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또 엔진 공기흡구의 착빙은 엔진 내부 연소에 필요한 공기 공급을 차단해 엔진 고장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겨울철 운항 시에는 폭설뿐만 아니라 착빙에 관한 예보도 빠짐없이 챙겨야 한다.
실제로 항공기상청을 통해 비행계획 수립과 이착륙 항공기를 위한 공항예보, 이착륙 예보를 발표할 뿐만 아니라 저고도 항공기를 위한 다양한 기상정보를 제공하지만 운항 관계자들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시정’은 지형에 민감하고 매우 국지적인 기상현상으로 촘촘한 관측망을 통해 기상정보 제공이 가능하지만 관측망 확충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항공기 운항을 위한 정확한 기상정보 확보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기상청과 육·해·공군이 갖고 있는 기상자료와 국토교통부, 경찰청, 지방자치단체들에서 운영하는 폐쇄회로(CC)TV 정보를 통합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일 것이다.
5. [동아일보][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 후래자삼배
우리말 보고(寶庫)라는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에 나오는 대목이다. 소설 속 한온이가 황천왕동이에게 연속해서 술잔을 권하는 장면이다. ‘뒤에 오면 석 잔’이라는 건 요샛말로 ‘후래자삼배(後來者三杯)’ 아닌가. 나중에 온 사람은 석 잔을 거푸 마셔야 한다는 뜻이다. 먼저 온 사람들과 술기운을 맞춰주려는 주당들의 배려인지 모르겠다.
후래자삼배를 누가 처음으로 입길에 올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70년이 넘은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 경성(서울)을 배경으로 한 다나카 히데미쓰의 ‘취한 배’(1948년)에 이 말이 나온다. 일본어에도 가케쓰케산바이(驅けつけ三杯)라고 해서 똑같은 말이 있다.
술 따위를 남에게 권하기도 하고 자기도 받아 마시는 모습을 ‘권커니 잣거니’ 또는 ‘권커니 잡거니’라고 한다. 국립국어원이 바른말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언중은 ‘권커니 자커니’ ‘권커니 작거니’도 입길에 올린다.
‘권(勸)하다’와 어미 ‘-거니’를 줄여 쓴 ‘권커니’는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표준어로 삼은 ‘잣거니’는 어딘가 어색하다. ‘잣’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다. ‘잡거니’의 ‘잡’은 ‘술잔을 잡는다(執杯)’는 뜻이 있고, ‘작거니’의 ‘작’은 술잔(爵·酌)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집(執)’도, ‘작(爵·酌)’도 사실인지 아닌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 그렇다면 ‘자커니’가 제격이다. 말의 뿌리가 분명하지 않을 경우에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게 말법이니.
거섶안주는 나물로 차린 초라한 안주를 뜻한다. 이보다 못한 안주도 있다. ‘침안주’다. 침을 안주로 삼아 강술을 마시는 걸 말한다(열에 열, 깡술이라지만 강술이 표준어다). ‘술잔거리’는 술 몇 잔 정도를 사먹을 만한 돈이라는 뜻이다. 춘향전에서 춘향이 자기를 잡으러 온 아전들에게 건네는 돈이 바로 이 술잔거리다. ‘술추렴’은 여러 사람이 술값을 분담하거나, 차례로 돌아가며 술을 내는 것이다.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 있다. ‘술이 가득 차면 전부 빠져나가는 술잔’인데, 욕심을 다스리라는 가르침을 준다.
송년 모임이 시작됐다. 한 해의 묵은 찌끼를 날려 보내려는 주당들의 마음이 바쁠 때다. 자, 거섶안주면 어떻고, 침안주면 또 어떤가. 벗과 나누는 술은 향기롭기만 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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