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주요 이슈
■ 해킹, 질식사, 한국수력원자력
■ 한·미·일 3국, 북한 핵·미사일 정보 공유
■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면 과제
■ 북미 사이버 전쟁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해킹, 질식사,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일보 사설-20141229월] 사이버 테러 비상 속 인명사고, 불안 끝없는 원전
자칭 ‘원전반대그룹’이 한국수력원자력에서 빼낸 원전 관련 자료들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원전 3곳의 가동 중단 등을 요구한 지 2주일이 지났다. 다행히 이들이 ‘2차 공격’을 예고한 성탄절 이후 원전 가동과 관련한 이상징후는 나타나지 않았고 추가 자료공개도 없다. 그러나 사건의 실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어서 불안이 가시지 않고 있다.
북한의 연계 가능성이 일찌감치 제기됐으나, 수사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정부합동수사단은 9일부터 나흘 간 퇴직자 명의 이메일을 통해 한수원 전 직원의 3분의 1에 달하는 3,571명에게 악성코드가 담긴 이메일이 발송된 사실 정도만 밝혀냈을 뿐이다. 문제의 악성코드는 파일 파괴와 트래픽 유발, 디스크 파괴 기능만 있었는데, 한수원측의 메일 삭제 조치로 PC 4대만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합수단은 이 악성코드에 자료 유출 기능이 없었던 점 등으로 미뤄 공개된 자료들은 그 이전에 유출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유출 시점은 특정하지 못했다. 유출 경로도 본사 시스템에 대한 직접 해킹, 이메일 악성코드 활용, 내부자 공모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해커의 추가 공격 가능성도 여전하다. 조석 한수원 사장은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회사 내부망에 침투하려는 시도가 감지되고 있지만 방어 조치를 취해 원전 운영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전 안전은 100% 장담한다”고 강조했다. 불필요한 불안감 확산을 막으려는 의도겠지만,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숱한 사건사고가 그렇거니와 특히 원전은 사소한 실수가 끔찍한 재앙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섣부르고 부적절한 언사다.
이 와중에 26일 오후 울산 신고리원전 3호기 건설공사 현장에서 질소가스 누출로 근로자 3명이 질식해 숨지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신고리 3호기는 지난해 케이블 시험성적서 위조 사실이 드러난 뒤 전량 교체 작업을 하느라 준공이 내년 5월로 미뤄졌다. 원전 가동 전인데다 해킹 사태와는 무관한 사고라지만, 평상시도 아니고 모든 원전시설에 대한 비상경계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인명사고가 난 것은 한수원의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이러고도 원전 안전을 100% 장담한다니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그 동안 한수원은 원전과 관련한 각종 비리와 잦은 고장ㆍ사고로 줄곧 도마에 올랐고, 번번이 축소ㆍ은폐 시도로 국민의 불신과 불안을 더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유출된 자료의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위험성을 낮추기에 급급했고, 조석 사장은 어제야 공개석상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수사당국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범인을 잡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한수원의 무사안일주의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는 한 “국가안보 차원에서 있어서는 안 될 심각한 상황”(박근혜 대통령)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경향신문 사설-20141229월] 해킹, 질식사… 바람 잘 날 없는 원전
지난 26일 신고리원전 3호기 건설 현장에서 안전순찰 중이던 노동자 3명이 질식사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한국수력원자력 협력업체인 대길건설과 현대건설 협력업체 KTS솔루션 직원인 이들은 보조건물 지하 2층 밸브룸에 들어갔다가 질소 가스 누출에 따른 산소 부족으로 사망한 것이라고 한다. 최근 해킹 사고와 사이버 공격 위협 등으로 원전에 대한 국민 이목이 그 어느 때보다 집중된 상황에서 이렇게 인명 사고까지 발생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고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두가 알다시피 신고리 3호기는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원전이다. 송전 선로인 밀양 송전탑 건설을 놓고 극심한 갈등을 빚었는가 하면 JS전선이 깔았던 제어케이블 등의 시험성적서가 위조되고 성능 시험에서 불합격 판정이 나와 이들 부품을 전면 교체하느라 준공이 1년가량 늦어지고 있다. 또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수출한 원전의 참조 모델로서 내년 9월까지 가동하지 못할 경우 지체 배상금을 물게 된다고 해서 공기 압박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번 사고는 질소 배관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눗방울 검사에서 확인됐다고 한다. 질소 누출이 배관의 기계적 결함 때문인지 제조나 설치 과정상의 문제인지, 운영 또는 관리상의 잘못인지는 정밀감식을 통해 가려지겠지만 어느 것이든 문제가 심각하다. 원전을 구성하는 수많은 부품 중 어느 하나라도 문제가 있거나 잘못 관리돼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수원이 약 1년에 걸쳐 674㎞에 이르는 안전등급 케이블 전량 교체공사를 한 것도 그런 이유다. 질소 배관의 문제가 인명 사고로 이어진 것은 안전불감증과도 무관할 수 없다.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할 때 산소 농도를 측정하는 등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켰는지, 내년 9월 가동이라는 무리한 일정이 사고를 부추긴 측면은 없는지 등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잇따른 원전 관련 사고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한수원의 대응은 신뢰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사고 원전이 2015년 가동 예정이어서 방사성물질 누출과 관련이 없다” “원전 사이버 공격과 관련이 없다”는 등 파장을 축소하기에 급급해하는 모습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번 사고에 대한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UAE 원전 수출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국내 원전의 안전이다.
■ 한·미·일 3국, 북한 핵·미사일 정보 공유
[중앙일보 사설-20141229월] 한·일 안보 협력, 과거사 문제와 분리해야
한·미·일 3국이 북한 핵·미사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약정(arrangement)을 오늘 체결한다. 현재 한·미, 미·일 간에 군사비밀보호협정이 체결돼 있는 만큼 한·일이 미국을 매개로 관련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정보 공유는 북한 핵·미사일로 국한된다. 약정 체결의 주체도 정부가 아닌 국방(방위) 당국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약정은 한·일 간 군사정보 공유를 위한 낮은 단계의 협력 틀이라 할 수 있다.
한·일이 제한적, 간접적으로 북한 군사 정보를 공유하기로 한 것은 꼬일 대로 꼬인 양국 관계를 상징한다. 우리 정부는 이미 러시아와 정보보호협정을 체결했고 중국에도 정보 공유 약정을 제안해 놓은 상태다. 한·일 양국은 이명박 정부-노다 내각 때인 2012년 북한에 관한 포괄적 군사정보를 공유하는 협정을 체결하려 했으나 우리 측이 국민 정서를 들어 서명 직전에 취소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아베 내각에서도 한·일 관계가 곤두박질쳤지만 3국이 이 약정을 추진한 것은 북핵 위협의 실질적 증대 때문이다.
이번 약정으로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 정찰위성, EP-3 정찰기, 공중조기경보기, 이지스함 등 첨단전력이 수집한 정보를 우리가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일본의 대북 인적 정보도 상당한 수준이다. 북한이 핵무기의 소형화·다종화를 꾀하고, 이동식 발사대를 통해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상황에서 관련 정보 강화는 우리 안보와 직결된다. 그런 사안을 과거사 문제나 국민 정서와 연계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이번 약정은 북한 핵·미사일의 탐지 정보에 관한 것으로, 탐지·식별·결심·타격으로 이어지는 미사일방어(MD)와는 별개라고 국방부는 밝혔다. 정부는 한 치의 오해도 생기지 않도록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 동시에 이번 약정 체결을 한·일 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일본은 오늘 방한하는 외무성 사무차관을 통해 군 위안부 문제에서 진정성 있는 제안을 내놓기 바란다.
[서울신문 사설-20141229월] ‘알레르기 반응’ 보일 것 없는 한·미·일 정보 공유
정부가 오늘 미국·일본과 북한의 핵·미사일 관련 군사정보를 공유하는 국방 당국 간 약정을 체결할 예정이지만 뒷공론이 무성하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일본의 군사 대국화나 중국의 반발 가능성 등을 내세우면서다. 이런 반대 논거를 100% 무시할 순 없다. 그러나 이번 약정은 가시화하지 않은 실(失)만을 강조하기보다 얻게 될 안보상의 득(得)을 균형 있게 짚어 볼 때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본다.
물론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과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꺼림칙해하는 여론도 있다. 아베 정부의 집단자위권 도입에 빌미를 준다는 우려도 그 하나다. 그러나 이번 약정으로 한·일이 공유하는 것은 ‘북한 핵·미사일 정보’에 국한돼 있다. 약정이란 용어가 말하듯 한·미 간 혹은 미·일 간 ‘군사비밀보호협정’에 비해 극히 낮은 단계다. 그런데도 우려가 수그러들지 않는 것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일 수도 있다. 일본의 국수주의적 우경화뿐만 아니라 정부가 자초한 탓도 크다는 얘기다. ‘밀실 추진’ 논란 끝에 포기한 이명박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떠올렸을 때 그렇다.
그러나 이번 약정으로 우리에게 실보다 득이 많다고 본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발등의 불 같은 현실적 위협이라는 차원에서다. 북한이 최악의 경제난으로 재래식 무기보다 비대칭 전력 강화에 부심해 온 건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엔 핵탄두 소형화에다 사전 탐지가 어려운 잠수함 발사 미사일 개발 징후도 포착됐다지 않는가.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개발이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사전·사후 정보는 다다익선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일본이 휴민트(인적정보)는 몰라도 대북 시진트(전자·통신정보)는 우리보다 나은 측면도 있다. 일본이 더 많이 보유한 정찰위성과 이지스함 등으로 추적 중인 북의 핵 실험장과 미사일 기지 정보 등을 기를 쓰고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유사시 북의 대량살상무기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미국도 일본도 아닌 우리다. 그렇다면 정부는 국민에게 3국 약정의 당위성을 진솔하게 설명해야 한다. 일본과의 정보 공유가 국익에 보탬이 된다면 과거사 문제와 분리해 접근하는 게 차선의 선택일 게다. 그 연장 선상에서 보면 중국이 반대할 것이란 이유로 3국 정보 공유를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미국 중심의 대중 견제 체계에 가세한다는 오해를 사서도 곤란하지만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현실적 위협에 손 놓고 있어서야 될 말인가. 북핵 억지에 소극적인 중국의 태도 변화를 견인하기 위해서도 우리의 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임을 당당하게 설득해야 한다.
■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면 과제
[경향신문 사설-20141229월] 당권 아닌 수권의 비전이 필요한 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은 현재 비상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비상체제란 말 그대로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정상적인 야당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요즘 새정치연합에는 비상한 각오도, 특별한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위기의 일상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뭔가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저 다음 당권을 확정하기만 하면 비상체제, 혹은 위기가 끝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과연 새정치연합은 당대표 선출 이후 새로운 야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있는가.
새정치연합은 비상체제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게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한 것도 아니고, 세대교체를 이룬 것도 아니고, 기존 계파 보스들이 환골탈태하는 신선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대신 계파 구조를 온존시킨 채 당권 차지를 위한 경주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이 오늘의 새정치연합이다. 정세균 의원의 당대표 경선 포기가 변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자극제가 되지 않았다. 당의 낡은 구조가 무너지기는커녕 얼마나 견고한지 보여주었을 뿐이다. 김부겸 전 의원을 내세워 리더십 교체를 하려는 당내 일각의 움직임은 어제 그의 불출마 선언으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박지원 의원이 당대표 출마 선언을 했다. 문재인 의원은 오늘 출마 선언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박 의원은 야심찬 공약을 많이 발표했다. 문 의원도 지지 않고 당내 안팎의 시선을 의식한 과감한 공약들을 발표할 것이다. 두 사람의 공약대로, 그들의 의지대로 당이 살아난다면 야당을 위해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당 전체 역량이 바닥난 상황이다. 개인적 의지와 상관없이 대안정당 가능성에 유보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게다가 정동영 상임고문은 다른 선택을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만일 그가 탈당 후 대중적 진보정당을 추진하는 세력에 합류한다면 상황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이는 당대표 출마 선언으로 장밋빛 미래가 펼쳐져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오히려 제1야당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박근혜 정권은 시민들의 신뢰를 잃으면서 지지율이 내려앉고 있다. 이럴 때 제대로 된 제1야당이라면 박 정권을 견제, 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대안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아직 길을 못 찾고 정권의 실정에 고통받는 시민들은 호소할 곳도 기댈 데도 없이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져 있다. 존재감 없는 야당 때문이다. 당대표 선거 이후 이 현실이 나아지리라는 기대감은 아직 생기지 않고 있다. 제1당에는 누가 당권을 차지할 것인가를 넘어선 수권 정당의 비전이 우선이다. 그게 가장 절실하다.
[서울신문 사설-20141229월] 변화와 혁신의 기운 보이지 않는 새정치연합
내년 2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새정치연합이 성큼 당대표 경선 체제에 들어섰다. 어제 비노(비노무현계) 진영의 호남 중진 박지원 의원이 당대표 선거 출사표를 던진 데 이어 친노(친노무현계)의 좌장 격인 문재인 의원이 금명 출마를 선언할 예정이다.
130개 의석을 지닌 제1야당이 반년 가까이 이어진 비상체제를 끝내고 정상적인 당 체제를 갖추게 된다는 점은 정치의 정상화 차원에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의 비상체제를 태동시킨 7·30 재·보궐 선거 참패가 던져 준 메시지를 반추한다면 지금 새정치연합의 모습에 박수를 보낼 수는 없을 듯하다.
무엇보다 새정치연합 당대표 경선이 박·문 두 의원의 ‘2인극’으로 축소된 점이 딱하다. 당의 앞날을 가로막는 ‘공적 1호’로 계파정치가 꼽힌 지 오래이건만 새정치연합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중차대한 정치 여정의 키를 쥔 새 대표를 또다시 계파 대결로 뽑는 운명을 택했다. 지난 21일 중도 성향 소속 의원 30명이 계파 대결 반대를 외치며 이들과 정세균 의원의 경선 불참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으나 결과는 지리멸렬로 귀착됐다. ‘새 인물’로 주목받던 김부겸 전 의원은 대표 경선 불참을 선언하며 주저앉았고,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참패한 정동영 전 최고위원은 탈당을 결심한 채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앞서 7·30 재·보선 패배 후 정계 은퇴 선언과 함께 사실상 당을 떠난 손학규 전 의원의 경우를 포함해 친노와 비노로 나뉜 공고한 계파의 장벽이 이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7·30 재·보선 참패 후 새정치연합은 ‘뼈를 깎는 고통의 쇄신’을 다짐한 바 있다. 계파정치 청산과 더불어 특권 철폐, 정당 혁신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박영선·문희상 비상체제로 이어진 지난 5개월간 새정치연합은 그 어떤 혁신의 모습도 보여 주지 못했다. 선거에서 압승한 새누리당조차 갑론을박의 진통을 겪어 가며 정치인 출판기념회 금지, 선거구획정위원회 독립성 강화 같은 혁신안을 내놓았건만 새정치연합은 지금껏 변변한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어느 한 구석도 비상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친노 좌장과 비노 중진이 벌일 맞대결이 어떤 새정치연합을 만들어 낼지 예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누가 대표가 되고, 어떤 변화를 외치든 새정치연합 내부의 혁신 동력은 갈수록 사그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를 알면서도 고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새정치연합은 진정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
■ 북미 사이버 전쟁
[한겨레신문 사설-20141229월] 북-미 긴장만 높이는 ‘사이버 전쟁’
북한과 미국이 열흘 이상 사실상의 ‘사이버 전쟁’을 벌이고 있다. 양쪽 다 자신이 사이버 공격을 했다고 하지는 않으면서 상대의 공격을 비난하고 있다. 두 나라는 실익도 없이 관계를 더 악화시킬 게 분명한 공방전을 당장 중단하기 바란다.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은 27일 계속되는 인터넷망 불통 사태의 배후로 미국을 지목했다. 북한의 주요 인터넷 사이트들이 23일부터 접속 불량 상태를 나타낸 이후 북한 당국이 공식 반응을 내놓은 것은 처음이다. 북한은 특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열대수림 속에서 서식하는 원숭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겨냥한 암살 시도를 그린 미국 영화 <인터뷰>에 대한 것만큼이나 도발적이다. 북한 당국은 이 영화가 자신의 공개 비난에 힘입어 오히려 인기리에 상영되는 현실을 눈여겨봐야 한다.
앞서 영화 제작사인 소니에 대한 해킹과 테러 위협을 확실한 근거 없이 북한 짓으로 단정한 미국 태도도 문제가 있다. 미국 정부는 소니가 개봉 취소 결정을 뒤집도록 유도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소니가 결국 개봉에 나서자 오바마 대통령이 바로 칭찬 발언을 한 것도 지나치다. 나아가 미국 정부가 직접 북한 인터넷망에 대한 공격을 벌였다면 국제적인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북한이라는 나라 전체의 인터넷망을 차단하려는 것으로, 소니에 대한 해킹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공언한 ‘비례적 대응’에도 어긋난다.
사이버 공격은 특성상 공격자를 확정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 사안에서도 북한과 미국 정부가 직접 공격에 나섰다는 명확한 증거는 나오기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의 악의를 전제하고 공세적으로 대응한다면 사태 악화는 불 보듯 뻔하다. 미국의 사이버 역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더라도 갈등이 계속될 경우 일정한 피해를 피할 수가 없다. 게다가 북한이 다른 수단을 동원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북-미 관계는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다 인권 문제까지 겹치면서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최악의 상태다. 이대로 간다면 북한 핵·미사일 문제도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새 갈등을 추가할 게 아니라 관계 개선의 전기를 마련할 때다.
■ 관련 칼럼
[한겨레신문 칼럼-세계의 창/존 페퍼(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20141229월] 쿠바엔 당근, 북한엔 채찍
북한과 쿠바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왕조적 통치를 하고 있으며 명목상 혁명적 공산주의 국가다. 또 수십년간 미국의 금수 조처로 고통을 받고 있다. 두 나라는 1960년대 상당한 사회·경제적 진보를 이뤘으나 세계경제와 고립되면서 점차 빈곤해졌다.
그러나 최근 두 나라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쿠바는 미국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했다. 반면, 북한은 논쟁적인 영화를 둘러싼 갈등 속에 미국의 블랙리스트 국가로 남아 있다. 미국은 왜 인접해 있는 적국에는 올리브 가지를 내밀면서 지구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적에게는 채찍을 휘두를까?
쿠바와의 긴장완화 작업은 오랫동안 진행돼 왔다. 2001년에 연방 무역법 개정 덕분에, 개별 주들은 쿠바에 농산품 수출을 시작했다. 조지아와 버지니아 같은 주는 2014년 중반까지 46억달러 상당의 닭고기·옥수수·콩을 수출했다. 지난해 가을에 두 나라는 우편 서비스 재개 협상을 시작했다.
두 나라의 화해는 두 가지 이유로 가속화했다. 라울 카스트로 체제하에서 쿠바는 자유화를 시작했다. 경제개혁은 농업부문 정비와 소기업 권장, 정부부문의 축소 등을 포함했다. 정치범도 석방했다. 시민들은 처음으로 외국으로 나가기 위한 출국 비자가 필요하지 않게 됐다. 관련 법이 지난해 1월 시행된 뒤 6개월간 약 25만명이 외국으로 나갔다.
동시에, 미국 내 여론은 쿠바와 관계정상화에 찬성하는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2009년에 미국인의 66%는 쿠바와 외교 관계를 맺는 것을 찬성했고, 5년 뒤에는 더 많은 미국인들이 금수 조처와 여행제한 조처 해제를 지지했다.
달리 말하면, 쿠바와 새로운 관계를 추구하기로 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결정은 쿠바의 주목할 만한 변화와 미국 내 여론의 상당한 전환에 반응한 것이다. 정책적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어려운 결정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캐나다가 도움을 준데다, 러시아와 쿠바가 다시 가까워지려 한 움직임도 오바마 행정부가 지정학적 계산을 바꾸는 한 요인이 됐다.
이런 데탕트에 유일하면서도 중요한 저항은 워싱턴 내에 있다. 의회는 경제 금수 조처의 최종 결정권자인데, 공화당은 새해부터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다. 마코 루비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포함한 공화당 지도부는 화해에 단호히 반대한다.
북한은 쿠바보다도 더 오랜 세월 관계정상화를 기다려왔다. 그러나 북한은 어떤 자유화도 시작하지 않았다. 미국 내에 북한과 기존 관계를 변화시키는 걸 찬성하는 강력한 유권자들도 없다. 사실 북한이 그걸 위해 추진해온 유일한 것은 핵 프로그램이다. 북한은 이것을 미국이 협상에 관심을 갖도록 미끼로 활용했다.
유감스럽게도, 대부분 미국인들에게 북한은 여전히 조롱의 대상이다. 북한은 코미디언 및 영화 제작자들에게 안전한 목표물이 돼 왔다. 가장 최근 사례가 영화 <인터뷰>다. 이 영화는 북한 사람들만큼이나 미국인들을 조롱하는 것이지만, 북한이 최고 지도자 살해 장면을 담고 있는 이 ‘오락물’에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만약에 쿠바 코미디 작품이 오바마 대통령의 암살을 묘사했다고 상상해보라. 두 나라 관계는 즉각 동결될 것이다.
미국 정부는 최근 소니픽처스 해킹과 극장 위협 사건과 관련해 북한을 지목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비례적 대응’을 약속했다. 그러나 연방수사국(FBI)이 제시한 증거는 빈약하다. 해커들은 어느 곳에서든 올 수 있다. 그들은 북한에 동조하지 않지만 의도적으로 북한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만들 수 있다. 소니에 대한 초기의 위협은 <인터뷰>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한 기자에게 보낸 메시지는 명백한 오류를 포함한 한국어 글귀로 끝을 맺는다. 북한은 책임을 부인하면서 미국에 공동조사를 제안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쿠바 사례를 따라 조만간 북한을 인정하는 조처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또 금수 조처를 해제하지 않고, 북한과 협상조차도 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쿠바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특히 범죄 증거가 그렇게 빈약할 때, 북한에 채찍을 휘두르는 걸 중단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 북한과 긴장 속 평화는 데탕트만큼 좋은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전쟁보다는 낫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41229월] '인사 의혹' 여전한 문체부 국민신뢰 못 받아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찰청이 어제 스포츠4대악 신고센터 및 합동수사반을 통해 체육계 비리를 조사한 결과와 제도개선방안을 발표했다. 문체부와 경찰청은 지난 2월부터 스포츠4대악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비리 제보를 직접 접수한 결과 현재까지 269건이 접수돼 118건이 종결됐다고 했다. 정부가 규정한 스포츠4대악은 조직 사유화, 입시 비리, 승부조작과 편파판정, 폭력ㆍ성폭력이다. 합동수사반은 “관련단체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1,000개에 가까운 금융계좌의 40만 건 이상의 거래내역을 분석해 국가대표 지도자와 경기단체 임직원 등이 모두 36억 원 규모의 횡령과 불법자금세탁 등을 적발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종결 118건 중 검찰에 송치한 것이 2건, 검찰에 직접 수사를 의뢰한 것이 2건에 불과하다. 1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밝혀낸 결과치고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김종 문체부 제2차관은 “이와 같은 활동 및 이를 통한 제도개선을 도출하는 것은 역대 정부에서 시도한 적이 없는 일”이라며 “스포츠 비리 척결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자화자찬했다. 보잘것없는 업적을 자랑하는 것이나 역대 정부를 싸잡아 무능하게 몰아가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그의 말대로라면 역대 정권에서 문체부는 스포츠비리 척결을 위한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문체부는 또 개선방안으로 비리 재발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을 위해 4가지 원칙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체육 비리자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제도화하고, 체육단체 재정을 투명화하는 한편, 학교 운동부의 음성적 비용구조를 양성화하고, 전담 수사기구의 상시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인데 구체적인 실천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이러한 불신은 그 동안 문체부가 보여준 인사난맥상 때문이다. 김 차관은 박근혜 정권의 숨은 실세라는 정윤회씨와 청와대의 문체부 인사개입 의혹에 등장하는 핵심인물 중 한 명이다. 김 차관은 정씨 개입으로 문체부 국ㆍ과장이 경질됐다는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폭로성 인터뷰를 통해 청와대 인사개입 창구로 거론된 바 있다. 김 차관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면서 유 전 장관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했다가 얼마 전 법적절차를 취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개인을 둘러싼 의혹 소명보다 문체부 전체 차원에서 해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사안은 개인차원의 문제를 넘어선다. 대통령과 전ㆍ현직 장ㆍ차관이 연루된 사안이다. 먼저 이 문제에 대한 진실규명부터 하는 것이 순서다. 그래야 문체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한국일보 사설-20141229월] 공무원연금개혁 더 이상 뒷걸음질 안 된다
국회는 오늘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개혁특별위원회(특위) 구성안을 처리하고 즉각 활동을 개시할 예정이지만 벌써부터 난항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여야 합의에 따르면 입법권이 부여된 특위는 새누리당이 위원장을 맡되, 위원은 여야 각각 7명의 의원으로 구성키로 했다. 의결 후 100일 동안 활동하고, 1회에 한해 25일간 활동기한을 연장키로 해 사실상 내년 4월 임시국회까지 공무원연금 개혁을 마무리 짓는다는 시간표를 정해 놓은 셈이다. 하지만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선임이 지연되고, 특위 산하 국민대타협기구 구성을 두고 여야 간 이견이 표출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특위 위원 선임이 지연되는 배경은 여야 의원 모두 내심 ‘낙인효과’를 우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국민적 여망과는 별도로 특위 활동을 통해 공무원사회의 ‘공적’으로 찍힐 경우, 차기 총선 등에서 이로울 게 없다는 계산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새누리당 원내 지도부는 특위 위원장으로 주호영 정책위의장이 나서주길 바라고 있지만 고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선뜻 위원으로 나서겠다는 의원도 거의 없는 상태다.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어제까지 강기정 의원을 특위 간사로 정한 것 외엔 위원 인선조차 마무리 하지 못했다.
난항에 빠지기는 내일 구성키로 한 특위 산하 국민대타협기구도 마찬가지다. 여야가 각각 8명(국회의원 2명, 공무원연금 가입 당사자 단체 2명, 전문가 및 시민사회단체 4명)씩 추천하고, 정부가 공무원 4명을 지명해 20명의 위원으로 구성키로 했다. 하지만 공무원노조 측인 ‘공적연금강화를 위한 투쟁본부(공투본)’는 즉각 불참을 시사하며 장외투쟁 입장을 밝혔다. 게다가 새정치연합도 기구 위원 중 여야가 추천키로 한 공무원연금 당사자 단체 2명씩 4명은 공무원단체가 자체 선정토록 하자며 입장을 번복하는 등 기구가 제대로 구성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이미 연내 마무리를 목표했던 정부의 일정표가 한 번 미뤄진 상태다. 여기에 여야가 가까스로 합의한 특위와 국민대타협기구 활동까지 또 다시 표류하면 4월 임시국회 마지노선도 지키기 어렵게 된다. 그런 식으로 자꾸 지연돼 나중에 시간이 촉박해지면, 과거 김대중ㆍ노무현ㆍ이명박 정부 때처럼 ‘무늬만 개혁’에 그칠 수밖에 없어진다. 새누리당은 최근 정부가 군인ㆍ사학연금 개혁 내년 추진 소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당의 부담이 더 커졌다는 불만이지만, 어차피 부담을 각오한 개혁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에서 한 발을 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시선도 고깝지 않다. 여야 모두 멸사봉공의 자세만이 살 길임을 직시하고 특위 활동에 보다 단호하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41229월] ‘재벌 민원’까지 끼워넣은 ‘규제 기요틴 과제’
정부가 28일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민관합동회의를 열어 ‘규제 기요틴(단두대) 과제’ 114건을 확정하고 범정부적으로 폐지 또는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확정한 과제들은 사회·경제적 파급 영향이 클 것으로 보여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대부분 기업 편향적인 성격이 강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갈등을 유발하고 국민 후생을 위협하는 무분별한 규제완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114건은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비롯한 경제단체들이 건의한 것들을 검토한 결과이다. 애초 153건이 들어왔는데, 소관부처가 존치 필요성을 설명하지 못한 경우 일괄 폐지하거나 완화해야 할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규제를 만들거나 집행하는 입법·행정기관의 의견보다 규제 대상인 이해집단의 요구를 더 중시했다는 얘기다. 규제는 필요하면 바꿀 수는 있다. 중복규제는 없애고 기술 발전 등에 따른 규제 여건의 변화도 수시로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절차적 정당성과 타당성에 대한 엄밀한 검증도 없이 완화 일변도로 추진하는 방식은 곤란하다.
규제는 말 그대로 규칙과 제도이며, 비용과 함께 편익도 있다. 따라서 규제개혁을 하려면 비용뿐 아니라 규제 공백 때 발생할 갈등이나 환경 훼손 같은 사회적 비용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 특히 특정 계층이나 집단의 사적 이익을 위한 규제완화는 위험이 뒤따른다. 1990년대 말에 겪은 외환위기, 4월의 세월호 참사가 그 생생한 증거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모든 규제를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는 ‘암 덩어리’로 매도하면서 단두대에 올리듯 단칼에 정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천박한 인식에서 나온 극단적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는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위해 꼭 필요한 규제까지 손댈 모양이다. 특히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지분율 요건을 현행 100%에서 50%로 완화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경제 민주화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활성화를 유도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이렇게 하면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과 이에 따른 경제력 집중 심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모험과 독립성을 핵심 가치로 삼아야 할 벤처기업을 재벌의 그늘 아래서 키우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소유·지배구조의 연결고리를 단순화하자는 지주회사 제도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무차별적인 규제완화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다. 규제완화가 곧바로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면 ‘전봇대 뽑기’로 상징되는 전임 이명박 정부의 기업 친화적 규제개혁이 어떤 성과를 냈는지 묻고 싶다. 제대로 규제개혁을 하려면 국민 의견 수렴과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야 한다. 단두대에 올라가야 할 것은 규제 자체가 아니라 비민주적이고 무모하기까지 한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 방식이다.
[한겨레신문 사설-20141229월]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 선택 아닌 의무
페루 리마에서 14일 폐막한 제2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선진국과 개도국이 모두 참여하는 온실가스 감축목표 제출 지침이 확정됐다. 이로써 내년 12월 프랑스 파리 기후변화회의에서 목표하고 있는 새 기후체제 수립을 위한 국제협상도 급물살을 타게 됐다. 당장 정부는 이번 결정문에 따라 현재의 감축목표보다 강화된 2020년 이후 감축계획을 내년 중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결정문은 기존 감축계획의 ‘후퇴 금지’ 원칙도 명시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미 2020년까지 배출 전망치의 30%를 감축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 온실가스 배출량은 급속한 증가세에 있다. 산업계는 아예 배출 전망치 자체를 하향 조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내년 협상에선 씨도 먹히지 않을 것이 뻔하다.
새 기후체제에서 우리나라는 개도국 혜택은커녕 중국 등과 함께 온실가스 배출량 많고 경제력 있는 나라로서 우선적으로 감축 분담에 참가해야 할 것으로 많은 기후전문가가 전망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7위이고, 올해 추정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3위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국들은 감축계획을 내년 3월까지 제출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제출 시한에 맞춰 9월에 낸다고 한다. 국내 여건이 녹록지 않다고 해서 대학 원서 눈치 접수 하듯이 해선 망신을 살 우려가 크다. 또 감축목표를 산업계와 밀실에서 결정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이 김에 장기 감축계획을 시민사회와 폭넓게 소통하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산업계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방법, 부담을 나누는 방식 등을 협의하자는 것이다. 이미 2050년까지 2005년 대비 온실가스를 50~80% 감축하는 내용이 포함된 기후변화법 제정안이 시민사회 주도로 발의돼 있는 상태다.
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세우는 것은 화석연료에 의존한 지금까지의 에너지정책을 엄중하게 반성할 기회도 될 것이다. 이를 저탄소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비전을 세우는 소중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어렵게 시작한 탄소배출권거래제를 잘 정착시키는 일과 함께 이것이 정부가 내년에 가장 신경 써야 할 기후변화 대응책이다.
[중앙일보 사설-20141229월] 부활한 미국 경제, 우리가 배워야 할 것
미국의 독주 시대가 열리고 있다. 지난 23일 미 상무부는 미국 경제가 올 3분기 5%(연율) 성장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발표된 영국·프랑스의 3분기 성장률 0.7%와 0.3%에 견줘보면 가히 독보적이다. 집값은 오르고 기름값은 떨어졌다. 뉴욕 다우지수는 사상 처음 1만8000을 돌파했다. 소비 심리는 8년 만에 최고다. 지난달 신규 고용은 32만 명으로 3년 만에 최대다. 경기 회복→임금상승→소비 증가→투자 확대의 전형적인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보다 13배 큰 경제 대국의 고성장 비결은, 저성장의 늪에 허덕이는 한국 경제가 꼭 챙겨봐야 할 대목이다.
미국 독주 체제는 세계 경제·정치의 게임의 룰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미국의 유력한 대항마 중국은 성장 둔화 우려 속에 힘이 빠지고 있다. 유로존은 올해 0%대 성장에 머물러 ‘일본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은 아베노믹스가 힘을 못 쓰면서 올해 마이너스 성장을 우려한다. 러시아는 미국이 급격히 금리를 올릴 경우 나라 파산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미국의 셰일 에너지 혁명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사실상 와해시켰다. 미국이 글로벌 경제는 물론 국제 정치의 유일한 게임 메이커로 떠올랐다는 의미다.
미국 고성장의 제1 동력은 소비와 저유가다. 셰일 혁명이 기름값을 낮추자 소비 여력이 늘었고 이게 경제 활력을 되살리는 불쏘시개가 됐다. 여기에 과감하고 유연한 정책 대응이 맞물려 화력(火力)을 키웠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부터 미국 중앙은행은 6년간 4조 달러를 풀었다.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비판과 반론이 많았지만 정부와 통화당국은 흔들리지 않았다. ‘경제 살리기’란 목표를 향해 한 호흡으로 움직였다. 정책마다 부처 간 엇박자 일쑤인 우리 경제가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구조개혁과 창업 시스템도 빼놓을 수 없다. 금융위기 직후 미국은 기업·가계의 부실 털기에 집중했다. 몇 년간 빚을 확 줄인 가계와 기업은 올 3분기 소비(3%)·투자(9%)를 확 끌어올렸다. 제조업 부활은 실리콘밸리의 창업·혁신 시스템이 견인했다. 최첨단 기술이 자본을 끌어들이고 이 자본이 다시 신기술 개발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애플·구글·트위터를 탄생시켰다. 좀비 기업을 빚으로 연명시키고 가계 빚은 더 늘린 우리와는 딴판이다.
또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민정책이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은 ‘고령화되지 않는 유일한 강대국’이다. 유연한 이민정책으로 세계의 젊은 두뇌를 끊임없이 수혈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에 따르면 미국의 올해 중위(中位)연령은 37.6세로 독일(46.1세)·프랑스(40.9세)보다 크게 낮다. 이렇게 몰려든 젊은 두뇌가 실리콘밸리의 창업과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세계 최고의 고령화·저출산 국가이면서도 이민자를 터부시하고 있다. 인구 정책의 근간을 다시 짜야 할 때다.
부활한 미국 경제는 한국에 위기이자 기회다. 생산은 중국, 소비는 미국이란 글로벌 경제의 패러다임이 통째 바뀔 수도 있다. 미국에 대한 수출 증대 효과는 있겠지만 중국 등 다른 나라 경제가 가라앉을 경우 우리 경제가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다. 미국 경제 회생의 노하우는 철저히 받아들이되 미국의 나 홀로 호황이 가져올 파장과 충격은 최소화하는 데 정책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중앙일보 사설-20141229월] 아동 성범죄자가 일 년 새 62%나 늘었다니
지난해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로 인터넷에 개인정보가 공개된 ‘신상정보 등록 대상자’가 2709명으로 1년 새 61.7%나 증가했다는 여성가족부 발표는 충격적이다. ‘몰카’ 등 신종 범죄가 대상에 포함되고 친고죄 폐지, 피해자들의 의식 변화에 따른 적극적 신고로 등록 대상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게 여가부의 분석이다. 하지만 전자발찌나 신상 공개,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등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흉악한 성범죄에 노출되는 아동·청소년의 수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매우 우려된다.
이번 통계에서 적시되진 않았지만 성범죄에 노출되는 아동의 대다수는 취약계층 아동이다. 아동 성범죄의 많은 수(44%)가 범죄자 거주지역에서 발생하고, 이웃 등 아는 사람(친족 제외)에 의한 성폭행이 절반을 넘는 사실에 비춰 볼 때 부모로부터 장시간 방치되는 ‘나홀로 아동’들이 성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하루 한 시간 이상 홀로 또는 초등학생 이하의 아이끼리만 집에 있는 나홀로 아동(13세 미만)은 전체 아동의 30%에 달하는 100만 명 정도라는 게 정부 통계다. 그중의 절반은 하루 3시간 이상 장기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성인이 보호하는 아동에 비해 성추행 등을 당한 비율이 3%포인트 높았다. 이들 대부분이 부모가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는 취약계층 아동인 만큼 사회의 집중적이고 지속적인 보호와 배려가 절실하다.
아울러 아동 성범죄에 대한 법원의 판단도 보다 엄격해져야 한다고 본다. 지난해 강·절도죄의 29.6%만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아동 성범죄의 집행유예는 36.6%에 달했다. 타인의 재산을 강취하는 것 이상으로 아동 성범죄는 중대하다. 피해 아동의 인생 전체를 빼앗고 돌이키기 어렵게 만들 수 있는 중범죄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사설-20141229월] 국정농단 부실수사 이대로 덮을 수 없다
검찰이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비서관에 대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및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는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이른바 ‘십상시 회동’ 문건 유출에 관여하고 이를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지만씨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면서 혐의를 부인했다. 이로써 정윤회씨 문건 파동을 둘러싼 검찰 수사는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을 사법처리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사건의 실체는 오간 데 없이 청와대 주문에 충실한 ‘청부 수사’의 전형이다.
조 전 비서관을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그의 사법처리는 여러모로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는 파문이 불거진 뒤 “문건의 신빙성은 60% 이상”이라고 줄곧 말해왔다. ‘찌라시’라고 규정한 청와대와는 정반대 입장이다. 정씨가 “문고리 3인방과 몇년째 연락조차 없었다”고 한 얘기가 거짓말로 들통난 것도 그의 폭로 탓이다. 이래저래 청와대에 껄끄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고심하던 검찰이 뒤늦게 강공으로 돌아선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청와대 눈 밖에 나면 결코 무사할 수 없다는 낙인효과를 심어준 셈이다.
검찰은 끝났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수사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수사의 본류인 국정농단 의혹은 아직 밝혀진 게 없다. ‘십상시 회동’ 자체가 없었다손 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건 회동 자체가 아니라 비선 실세들이 무슨 일을 꾸몄느냐이다. 정씨를 둘러싼 의혹은 유진룡 전 문화부 장관의 증언에서 보듯 구체적인 사실관계도 어느 정도 나와 있다. 오죽했으면 현정권 실세로 통하는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사칭한 짝퉁이 등장했겠는가. “저 이재만입니다…”라는 거짓전화 한 통에 대기업들이 앞다퉈 취직자리를 내준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번 사건 수사가 용두사미로 전락한 것은 청와대의 책임이 크다. 정치색 짙은 사건을 자체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검찰에 떠넘겨 면죄부를 받고자 했던 게 화근이다. 그렇다고 치부가 감춰지는 것은 아니다. 검찰은 애초 실체적 진실보다 청와대 주문에 충실하면서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자초했다. 성역 없는 수사로 국민의 검찰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 비선 실세들의 국정농단 의혹은 박 대통령의 성공적인 국정 수행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국정조사나 특검을 통해 그 추악한 실상을 밝힐 준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41229월] 정부에 배신당한 ‘장그래’는 누가 책임지나
박근혜 정부 들어 고졸 출신자 채용이 2년째 줄어든다고 한다. 내년 공공기관의 고졸자 채용 규모는 134개 기관에서 1722명으로, 올해 공공기관의 고졸자 채용 규모(1933명)보다 211명이 준다. 올해 고졸자 채용 규모도 이미 지난해(2112명)보다 179명이 줄었으니, 2년 연속 감소하는 셈이다. 내년도 공공기관 전체 신입 사원 채용이 486명이 늘어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은행의 고졸 채용도 지난해 30%나 급감했다. 앞으로 5년 내 고졸 공채를 확대하겠다는 기업이 10곳 중 1곳에 그쳤다는, 전국 651개 기업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도 있다. 이명박(MB) 정부가 공공기관 채용의 20%를 고졸로 뽑고 비중도 차차 늘려서 2016년까지 40%를 채우겠다고 약속한 것과 거꾸로 가고 있다.
고졸자를 우대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말만 믿고 마이스터고나 특성화고에 진학했던 학생들은 졸업할 때가 돼서 정부에 속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듯하다. 지난해 1기 마이스터고 졸업식 때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졸업생들을 격려해 줄 때의 분위기와는 달라도 너무나 달라졌다. 고졸 채용이 크게 준 것은 박근혜 정부의 일자리 정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고용률 70%를 목표로 내건 현 정부 일자리 정책의 초점이 경력단절여성 채용 등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쪽으로 옮겨 가면서 상대적으로 고졸 채용이 줄었다. 정부의 목표가 바뀌다 보니 이명박 정부 때 고졸 취업 우대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공기업, 대기업, 은행권도 슬그머니 발을 빼고 있다. 정권이 교체되면 정책에도 변화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큰 방향이 우리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것이라면 이전 정권에서 추진했던 정책이라고 무조건 폐기하는 건 잘못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대학진학률이 70%를 넘을 만큼 ‘학력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다. 너도나도 대학에 들어가다 보니 대졸 실업자가 늘어나고 결국 인력과 고용 구조가 왜곡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 학력 인플레를 없애고 오로지 실력만으로 대접받는 사회로 가려면 고졸자 채용을 늘려야 한다는 데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박근혜 정부가 대학 정원을 줄이는 등 대학 구조조정에 나서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 정책은 신뢰가 생명이다. 5년도 안 돼 정권의 논리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정책이라면 국민이 어떻게 믿고 따르겠는가.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과 관련된 취업·고용 정책이라면 더구나 일관성이 담보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모든 피해는 애꿎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돌아간다.
‘학력타파’를 지향한 이명박 정부의 고졸 취업 확대 정책은 올바른 방향인 만큼 정권과 무관하게 계승해 나갈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부터 앞장서야 한다. 지금도 고졸 직원 채용 규모가 전체의 20%가 되도록 정부가 공공기관에 권고하고 있다고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공공기관 평가 때 고졸 취업 실적으로 가산점을 주고 있지만, 실적이 저조한 공공기관에는 불이익을 주는 더 적극적인 방법도 검토해 볼 만하다. 공기업이 먼저 고졸 채용을 늘리면 민간기업으로도 확산할 수 있다. 고졸 취업자들이 직장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이끌어 주고, ‘학력’보다는 ‘능력’이 먼저라고 믿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는 일은 오롯이 정부의 몫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29월] "68혁명이 프랑스 망쳤다"는 반성…87체제는 어떤가
‘68혁명’이 프랑스를 망쳤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 프랑스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르 피가로 논설위원을 지낸 에리크 제무르가 쓴 《프랑스의 자살》이 출간 3개월 만에 40만부가 넘게 팔려 나갔다고 한다. 68혁명은 1960년대 유럽사회에서 퍼져가던 사회주의 좌파 사상이 1968년 5월 파리 주요대학에서 대학생들의 시위를 통해 분출된 사건이다. 서구의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 끼친 영향이 크기 때문에 ‘혁명’이란 이름이 붙었다.
당시 학생들은 소위 3M을 외치며 기득권에 맞섰다. 3M이란 마르크스, 마르쿠제, 마오쩌둥이다.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이념적 탁류의 세계적 범람이었다. 이 이념적 탁류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좌편향 세계관으로부터 유래한 것이었다. 근대화 이후 인류문명의 진보를 계몽의 일탈로 규정한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일체의 기존체제를 부정하는 20세기 좌익이데올로기의 정치적 물결을 만들어냈다.
당시 학생들이 애용하던 구호가 ‘절대 일하지 말라’였다. 소르본대학, 르네 데카르트대학 등이 사라지고 그 대신 파리4대학, 5대학 등으로 이름까지 바뀌었다. 이런 사회가 제대로 될 리 없다. 프랑스는 서서히 침몰해갔고 최근 들어 그 속도가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는 1997년 이후 줄어들기 시작했고 2005년 적자를 기록한 이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실업률은 유럽 주요국 가운데 이탈리아 그리스를 제외하고 가장 높아 10.4%(2014년 3분기)나 된다. 350만명에 육박하는 실업자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이때문에 프랑스의 침몰이 단순한 경기적 요소가 아니라는 반성이 일어나게 된것이다.
68혁명에 대한 반성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2007년 취임 당시 “68혁명의 관 뚜껑에 못을 박겠다”며 ‘더 일하고, 더 벌자’는 구호를 걸기도 했다. 그는 “과도한 평등주의 사상으로 자본주의의 도덕적 가치가 훼손됐고 시민정신도 손상됐다”고 의욕을 불태웠지만 프랑스의 추락을 막지는 못했다.
한국도 ‘87체제’ 이후 프랑스 못지않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노동이 정치세력화하는 역주행도 그때 시작됐다. 헌법 119조2항 경제민주화 조항이 들어간 것도 1987년 헌법개정 때다. 이후 정치세력들이 경쟁하듯 무상복지 등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았고 공짜타령을 하는 국민도 늘었다. 종북세력들이 큰소리치며 정치권으로 들어온 것도 87체제의 결과다. 비록 민주화의 가치가 있다하더라도 이제 87체제에 대한 체계적 반성도 필요하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29월] "기초자치단체 90%가 비즈니스 환경 기대치 이하"
서울과 수도권 기초자치단체 10곳 가운데 9곳꼴로 비즈니스 환경이 기업의 기대치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6,2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전국 228개 시군구의 경제활동 친화성을 조사해 도출한 결과다. 기업들을 괴롭히는 고질적인 악성규제로는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공장입지 업종제한과 지자체의 기부·후원·기부채납 등이 주로 꼽혔다.
더 큰 문제는 정치 바람이다. 그동안 정치인이나 다름없는 일부 지자체 공무원들이 기업 활동에 도움이 되는 규제완화보다는 표와 직결되는 민원에만 신경을 써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조사에서 서울·경기·인천권의 총 6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경기 양평만 최상등급인 'S'를 받았을 뿐 대다수가 기업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지방행정의 환골탈태가 요구된다. 무엇보다 B·C·D등급에 머문 지자체는 'S'를 받은 모범 지자체를 거울삼아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기업 하기 좋은 지자체' 1위에 오른 충남 논산의 경우 동양강철 유치에 성공함으로써 1,000억원의 투자와 1,000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해냈다. 경기 양평은 공무원의 친절 마인드를 통해 기업 체감도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고 강원 영월은 신속한 행정처리로 전국에서 공장 짓기에 가장 좋은 지역으로 꼽혔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투자를 가로막는 불필요한 규제를 제거하는 작업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 540조원에 달하는 10대그룹 사내 유보금과 시중에 떠돌고 있는 단기 부동자금 800조원이 시중에 풀려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규제의 빗장을 풀어 돈을 금고에 쌓아만 두고 있는 기업들이 새로운 투자처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익이 날 수 있는 사업이라면 투자하지 말라고 해도 물불 가리지 않는 것이 기업의 생리다. 후진적인 정치와 행정이 기업의 눈을 가리고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을 못 바꾸면 경제 활성화도 기대할 수 없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29월] 올 세수 펑크 13조원… 재정규율 포기했나
정부의 해이해진 '재정 규율'에 개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갈수록 규율이 무너지는 모양새다. 28일 국회 예산정책처는 올해 1∼10월 실적을 바탕으로 국세수입 실적을 재점검한 보고서에서 "올해 국세수입이 기존의 예상을 하회할 것"이라면서 올해의 세수(稅收) 결손(정부 예산 대비 국세수입의 부족분)이 최악의 경우 약 13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월에 추정한 10조원보다 3조원이나 더 많은 액수다. 세수결손 규모가 큰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점차 만성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2년 2조8,000억원을 기록한 세수결손은 지난해 8조5,000억원으로 커졌고 올해 역시 지난해보다 증가세가 가파르다.
예산정책처는 세수결손의 원인을 "내수경기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기업 실적악화가 겹쳤기 때문"으로 분석했으나 과연 내수만 탓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정부가 경제성장률 전망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잡고 예산을 짜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이 반복돼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세계 경기 침체와 내수부진 등을 고려할 때 달성하기 어려우리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올해 경제성장률을 4.1%, 세입은 14조6,000억원 늘어난 216조5,000억원으로 잡았으나 실제 성장률은 3.7% 안팎으로 떨어진 상태다. 내년 예산안 역시 우리나라 간판기업들의 어닝쇼크가 잇따르고 있음에도 올해보다 5조원가량 늘어난 221조5,000억원을 책정해놓았다.
최 경제부총리가 경기부양을 위한다며 확장적 재정운용을 외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정작 주무부처인 재정부는 세수결손을 메우기 위해 각 부처에서 불용예산 확보에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언제까지 이런 웃지 못할 희극을 계속할 생각인가. 장밋빛 전망이 초래한 세수결손은 결국 재정지출 축소와 불용예산 확대를 구조화할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라도 세수 예측과 처방에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29월] 노인요양시설 안전규제 완화만이 정답아니다
정부가 2년마다 실시하던 노인장기요양기관 대상 정기평가를 3년마다 한차례로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장기요양기관의 정기평가 주기를 변경하는 내용의 '장기요양기관 평가방법 고시'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정부는 장기요양기관 부실 운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2009년부터 서비스 수준 향상을 유도하기 위해 정기평가를 실시해왔다.
복지부가 밝힌 규제완화 이유는 평가기관의 부담 완화다. 장기요양급여의 체계적 평가 운영과 기관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주기를 변경했다는 설명이다. 불필요한 규제를 줄여 소비자들이 받는 서비스가 좋아진다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장기요양기관에 대한 규제완화는 성급한 측면이 없지 않다. 급여 부정수급 적발이 적지 않고 시설·인력 미비 등으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의 '2013년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요양시설·양로원 등 노인생활시설에서 발생한 노인학대는 2008년 55건에서 지난해 251건으로 5배가량 급증했다. 올 5월에는 시설미비로 장성요양병원에서 22명이나 죽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일부에서 평가주기를 오히려 '1년마다'로 강화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직접적인 이유다.
장기요양시설에 대한 정부의 평가점수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평가주기 변경은 무작정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국내 노인요양시설은 민간자본이 투입되기 시작한 2008년부터 크게 늘었다. 2007년 641개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4,648개에 달할 정도다. 문제는 이 같은 양적 확대에 걸맞은 서비스 개선 등 질적 성장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섣부른 규제완화에 앞서 상당수 요양시설이 수용시설로 변하고 있는 현실부터 바로잡는 게 우선일 것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세계의 창/존 페퍼(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20141229월] 쿠바엔 당근, 북한엔 채찍
북한과 쿠바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왕조적 통치를 하고 있으며 명목상 혁명적 공산주의 국가다. 또 수십년간 미국의 금수 조처로 고통을 받고 있다. 두 나라는 1960년대 상당한 사회·경제적 진보를 이뤘으나 세계경제와 고립되면서 점차 빈곤해졌다.
그러나 최근 두 나라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쿠바는 미국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했다. 반면, 북한은 논쟁적인 영화를 둘러싼 갈등 속에 미국의 블랙리스트 국가로 남아 있다. 미국은 왜 인접해 있는 적국에는 올리브 가지를 내밀면서 지구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적에게는 채찍을 휘두를까?
쿠바와의 긴장완화 작업은 오랫동안 진행돼 왔다. 2001년에 연방 무역법 개정 덕분에, 개별 주들은 쿠바에 농산품 수출을 시작했다. 조지아와 버지니아 같은 주는 2014년 중반까지 46억달러 상당의 닭고기·옥수수·콩을 수출했다. 지난해 가을에 두 나라는 우편 서비스 재개 협상을 시작했다.
두 나라의 화해는 두 가지 이유로 가속화했다. 라울 카스트로 체제하에서 쿠바는 자유화를 시작했다. 경제개혁은 농업부문 정비와 소기업 권장, 정부부문의 축소 등을 포함했다. 정치범도 석방했다. 시민들은 처음으로 외국으로 나가기 위한 출국 비자가 필요하지 않게 됐다. 관련 법이 지난해 1월 시행된 뒤 6개월간 약 25만명이 외국으로 나갔다.
동시에, 미국 내 여론은 쿠바와 관계정상화에 찬성하는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2009년에 미국인의 66%는 쿠바와 외교 관계를 맺는 것을 찬성했고, 5년 뒤에는 더 많은 미국인들이 금수 조처와 여행제한 조처 해제를 지지했다.
달리 말하면, 쿠바와 새로운 관계를 추구하기로 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결정은 쿠바의 주목할 만한 변화와 미국 내 여론의 상당한 전환에 반응한 것이다. 정책적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어려운 결정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캐나다가 도움을 준데다, 러시아와 쿠바가 다시 가까워지려 한 움직임도 오바마 행정부가 지정학적 계산을 바꾸는 한 요인이 됐다.
이런 데탕트에 유일하면서도 중요한 저항은 워싱턴 내에 있다. 의회는 경제 금수 조처의 최종 결정권자인데, 공화당은 새해부터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다. 마코 루비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포함한 공화당 지도부는 화해에 단호히 반대한다.
북한은 쿠바보다도 더 오랜 세월 관계정상화를 기다려왔다. 그러나 북한은 어떤 자유화도 시작하지 않았다. 미국 내에 북한과 기존 관계를 변화시키는 걸 찬성하는 강력한 유권자들도 없다. 사실 북한이 그걸 위해 추진해온 유일한 것은 핵 프로그램이다. 북한은 이것을 미국이 협상에 관심을 갖도록 미끼로 활용했다.
유감스럽게도, 대부분 미국인들에게 북한은 여전히 조롱의 대상이다. 북한은 코미디언 및 영화 제작자들에게 안전한 목표물이 돼 왔다. 가장 최근 사례가 영화 <인터뷰>다. 이 영화는 북한 사람들만큼이나 미국인들을 조롱하는 것이지만, 북한이 최고 지도자 살해 장면을 담고 있는 이 ‘오락물’에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만약에 쿠바 코미디 작품이 오바마 대통령의 암살을 묘사했다고 상상해보라. 두 나라 관계는 즉각 동결될 것이다.
미국 정부는 최근 소니픽처스 해킹과 극장 위협 사건과 관련해 북한을 지목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비례적 대응’을 약속했다. 그러나 연방수사국(FBI)이 제시한 증거는 빈약하다. 해커들은 어느 곳에서든 올 수 있다. 그들은 북한에 동조하지 않지만 의도적으로 북한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만들 수 있다. 소니에 대한 초기의 위협은 <인터뷰>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한 기자에게 보낸 메시지는 명백한 오류를 포함한 한국어 글귀로 끝을 맺는다. 북한은 책임을 부인하면서 미국에 공동조사를 제안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쿠바 사례를 따라 조만간 북한을 인정하는 조처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또 금수 조처를 해제하지 않고, 북한과 협상조차도 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쿠바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특히 범죄 증거가 그렇게 빈약할 때, 북한에 채찍을 휘두르는 걸 중단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 북한과 긴장 속 평화는 데탕트만큼 좋은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전쟁보다는 낫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주철환(아주대 교수 문화콘텐츠학)-20141229월] 행복은 '성격' 순이다
“종강하셨죠?” 그러나 여유 부릴 계제는 아니다. 성적입력을 마쳐야 한숨 돌릴 수 있다. 광고카피가 기억 속에 나부낀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하지만 가뿐히 짐 꾸릴 수 없는 처지다. 평화는 철조망(웹메일) 너머에 있다. 이번엔 ‘억울한’ 학생의 신문고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제가 왜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대략난감.
실습과목의 운명이랄까. 교수는 다가올 환난에 대비책을 강구했다. “A를 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학칙은 학칙이다. 상대평가 규정을 따라야 한다. 열심히 하고 잘한(성과물이 좋은) 사람은 A, 열심히 안 하고 잘하지도 못한 사람은 C, 열심히 했으나 성과물이 안 좋은 사람, 그리고 성과물이 뛰어나도 결석·지각이 많거나 과제물을 제때 내지 않은 사람은 B.” 문제는 교수의 안목과 기준에 ‘BC클럽 멤버들’이 동의하느냐 여부다.
“무시해 버리세요.” 이건 조언이랄 수 없다.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학생이 교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게 가당한 일인가요?” 대낮토론이 시작된다. “권위에 도전하는 게 아니라 불의에 항거한다고 학생은 생각할 겁니다. 불의가 아니라는 걸 교수는 납득시켜줄 의무가 있죠.” “참 피곤하게 사시네요.” “깔끔하게 살려는 거죠. 이것도 수업의 연장이니까. 사실 권위는 지키는 게 아니라 생기는 거죠. 실낱 같은 권위를 지키려고 버티다가 권위주의자가 되는 거 많이 봤잖아요.”
학생에게 e메일을 보냈다. “평가는 엄격, 엄정, 엄밀해야 한다. 나는 그걸 지키려 노력했다. …네가 불성실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학생들의 성과(창의성·표현력)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미흡했다. 근거를 알고 싶다고 했는데 그러려면 다른 학생들의 과제물을 너에게 모두 보여주어야 한다. 그럴 수도 없지만 설령 그런다고 해도 너와 나의 가치관은 일치하지 않으리라 짐작한다. 교수의 소신과 전문성을 존중해주기 바란다…받아들이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학점 문제로 기분이 잠시 울적할 수는 있어도 사제관계가 흐트러지진 않으리라 믿는다.”
소통 없는 소신은 고통을 낳는다. 종강파티에 나타난 학생은 아무 일 없다는 표정이다. e메일에 담은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그의 환한 얼굴(화난 얼굴이 아니다)을 보면서 행복이 성적과 맞물려 있진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 음악이 나오자 A, B, C 관계없이 즐겁게 합창한다. 행복은 ‘성적’ 순이라기보다는 ‘성격’ 순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석종(논설위원)-20141229월] 비인간적 인격체
팔이 길고 꼬리가 없는 원숭이류를 ‘유인원’이라고 부른다. 오랑우탄·침팬지·고릴라·보노보 등 인간과(科)에 속하지만 사람은 아니다. 특히 오랑우탄과 참팬지는 인간의 유전자 구조와 98% 이상 일치한다. 올해 초 개봉한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은 진화한 유인원 종족과 멸종위기에 처한 인류의 대결을 가상한 영화다. 카리스마 넘치는 침팬지 리더 시저가 유인원 무리를 이끈다. 실제로도 유인원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꾸린다고 한다. 도구를 사용하고 몸짓으로 다양한 의사소통을 한다. 3년 전의 일을 기억할 정도로 지능이 높다. 오랑우탄은 비가 오면 넓은 잎을 꺾어 우산처럼 사용한다.
유인원은 또 ‘감정의 동물’이기도 하다. 침팬지와 오랑우탄들의 사회에도 선악(善惡)이 존재하고 갈등과 반목도 있다. 무리 안에서 일어나는 충돌을 원만히 해결하는 일종의 ‘경찰 조직’도 갖췄다. 키스하고, 껴안는 행위는 영장류만의 공통된 감정 표현 방식이다. 심지어 물물교환 형태의 성매매가 존재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인간의 진화에 대한 잃어버린 고리를 찾기 위한 연구대상, 실험용으로도 자주 선택된다. 의사소통, 문화, 인지력, 나아가 웃음까지 연구대상이 된다. 엘리자베스 헤스의 <님 침스키>는 ‘언어 실험’ 대상이 됐던 침팬지의 실화를 다룬 책이다. 님 침스키는 대저택에 입양돼 인간 아이처럼 가족과 함께 살면서 옷을 입고, 침대에서 자고, 커피를 마시고, 미국식 수화를 배웠다. 하지만 ‘인간으로 길러진 침팬지’는 입양 가족들의 외면으로 다시 동물원으로 돌아가 고통 속에 죽었다. 이런 침팬지가 동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근 아르헨티나 법원이 20년 동안 동물원에 갇혀 살던 29살짜리 오랑우탄에게 “불법적으로 구금되지 않을 ‘법적 권리’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철학적 의미에서 하나의 인격체”라는 변호인 측 주장을 받아들여 오랑우탄을 ‘비인간적 인격체(Non-Human Person)’로 규정했다. 참 절묘한 표현이다. 이제 이 오랑우탄은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이송돼 자유의 몸이 된다. 침팬지보다 ‘인격’이 떨어지는 ‘털 없는 원숭이’는 또 얼마나 많은가.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 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41229월] 맨해튼 집값
집값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에서 평균 수준의 집을 사려면 얼마나 벌어야 할까. 최근 조사에 따르면 연 9만달러(약 9900만원)를 넘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 중에서 가장 비싼 맨해튼은 이보다 더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올해 맨해튼에서 거래된 아파트 평균가격이 168만달러(약 18억5000만원)로 작년보다 16% 뛰었다고 분석했다. 가장 높았던 2008년보다도 10% 비싸니 사상 최고다.
이유는 뭘까. 우선은 ‘돈 풍년’이다. 경제 성장으로 주가가 뛰고 보너스가 많아진 데다 해외 자산가들이 뭉칫돈을 싸들고 몰려든다. 주머니가 두둑해진 만큼 고가주택 매매가 활발해서 2500만달러(약 275억원) 이상 거래가 2008년보다 25% 늘었다. 최고가는 7130만달러(약 784억원)였고, 8000만달러(약 879억4000만원)짜리 계약도 곧 체결될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만성적인 물량 부족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맨해튼에서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올해 분기별 매물이 평균 4900여채에 불과했다. 그 중 40% 이상이 호가 이상에 팔린다. 그러니 월세도 비쌀 수밖에 없다. 원룸 월세는 작은 것이 2000달러(약 220만원)를 넘은 지 오래다. 영화나 TV에서는 근사해 보이지만 30년 이상 낡은 룸이 그렇다. 자동차로 20~30분 떨어진 인근 지역의 소형 아파트도 최소 3000달러(약 330만원) 이상을 줘야 한다.
노른자 자리에 있는 각국 외교공관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재정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프랑스 등은 아예 건물을 내놨다. 관리비 부담이 많은 관저도 마찬가지다. 블룸버그통신은 맨해튼의 집값 신기록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다른 나라 사정도 비슷하다. 통계기관 나이트프랭크에 따르면 지난해 지구촌 집값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가파르게 올랐다. 56개국이 8% 이상 뛰었고 그 중 11개국은 두 자릿수나 치솟았다. 독일 주요 도시도 25%를 기록했다. 베이징 신축 아파트는 9㎡에 180만위안(약 3억2000만원)으로 런던 고급주택과 맞먹는다.
이에 비해 서울은 그나마 숨 쉴 여지가 있다고 한다. 일본 부동산연구소 조사를 보면 도쿄의 고급주택가 아파트를 100으로 놓았을 때 서울은 73.4로 홍콩(212.3)의 3분의 1 수준이다. 타이베이(163.4)와 싱가포르(145.7), 상하이(129.3)보다 낮은 편이다. 그런데도 집값, 전월세를 둘러싼 논쟁은 더 뜨겁다. 그나저나 맨해튼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문성진(논설위원)-20141229월] 클린턴vs부시
"문제는 바로 경제야! 멍청아(It's the economy, stupid)." 미국 제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은 대선 후보 때 당시 백악관 주인이었던 조지 H W 부시의 경제 실책을 꼬집으며 맹공을 퍼부었다. 대선은 클린턴의 승리로 돌아갔다. 부시 재임 4년간 실업률이 급등하고 불황의 골이 깊어진 탓이 컸다. 아무리 그렇다고 현직 대통령에게 '멍청이'라니. 부시는 굴욕감에 치를 떨었고 부인 바버라 여사는 "못난 사람(lesser man)이 선거에서 이겼다"며 혀를 끌끌 찼다.
클린턴 집안과 부시 집안의 맞대결이 2016년 미 대선에서 재연될 분위기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민주당 후보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가운데 부시의 둘째 아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대선 출마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공화당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두 가문의 재대결이 성사된다면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셈이 되나.
현재로서는 클린턴 가문의 승리가 유력해 보인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클린턴 전 장관이 젭 부시 전 주지사와의 가상 대결에서 49%대 34%로 승리했다. 그래도 예단은 금물이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도 1991년 업무수행능력 지지도가 90%에 육박했지만 대선에 임박해서는 '초라한 경제 성적표'가 핫 이슈로 부상하면서 지지도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얼마든지 뒤집기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반면 제41·43대 대통령을 지낸 부시 가문에 대한 미국인의 염증은 젭 부시의 약점이다.
그럼에도 차기 미 대선의 최종 승리는 클린턴 또는 부시 가문 중 하나에 돌아갈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미 국민은 다시 한 번 정치 명문가(名門家) 출신 대통령을 맞게 된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까지 동시에 명문가 국가 원수라는 점이 흥미롭다. 모두가 가문의 영광을 명실상부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경제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임기를 마친 뒤 '멍청이' 소리를 듣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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