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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세계일보]

1.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천막, 왜 법의 잣대 다른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광장에 불법 설치된 탄핵반대 텐트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예고했다. 박 시장은 어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가능한 한 설득해 보고 여러 경고를 하고 그러고도 안 되면 행정 대집행이라든지 허용돼 있는 조치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제 철거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이다. 불법 텐트에 대한 이번 서울시 조치는 어느 때보다 신속하면서도 강경하다. 서울시는 이미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대표 권모씨 등 7명을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발한 상태다.

탄기국 등 보수단체는 지난 1월21일 서울광장에 신고 없이 무단으로 텐트 40여개를 세워 놓고 불법 농성 중이다. 촛불집회에 대항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태극기집회 지휘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자진철거 요청과 행정 대집행 계고장 송부, 광장 무단 사용에 대한 변상금 부과 등 행정조치를 차례로 밟아왔다.

서울광장 불법텐트는 철거되는 게 마땅하다. “서울광장은 우리 시민 모두가 이용을 해야 될 그런 광장”이라는 박 시장 지적은 백번 옳다. 난민촌을 연상시키는 텐트들이 도심 한복판을 차지하는 건 미관상 볼썽사납다. 박 시장의 논리는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텐트 등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세월호 텐트 3개로 시작한 광화문광장의 텐트는 현재 65개로 불어났다. 박 시장은 서울광장 탄핵반대 천막을 광화문 세월호 텐트와 비교하는 시각에 대해 “세월호 천막은 중앙정부까지 서울시에 협조를 요청했던 사안으로, 정치적 조치가 아니라 인도적 조치였다”고 했다. 법 집행자로서 공정성을 잃은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 한쪽에는 예외를 인정하고 다른 쪽엔 단속의 칼날을 들이댄다면 법치는 굴절되게 마련이다. 법치가 아니라 정치일 뿐이다. 백번 양보해 세월호 텐트가 인도적 조치라고 해도 장기간 광장의 한쪽을 점령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3년이 다 된 세월호 텐트는 감싸고 돌면서 한 달 조금 지난 탄기국 텐트는 당장 철거할 듯 나선다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광장을 점거한 세력들도 무엇이 국가와 사회를 위한 길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탄핵 찬반 양측은 그동안 충분히 제 목소리를 낼 만큼 냈다. 이제는 양쪽 모두 광장을 시민에게 돌려주고 헌재의 결정을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



2. 증오와 분열 부추기는 막말 정치인 퇴출시켜야

주승용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어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그동안 소녀상에 대한 일본 폭거에 뒷짐만 지고 있더니 이제 대놓고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고도 했다. 그의 비판은 “한·일 양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합의의 취지와 정신을 진심으로 존중하며 실천해야 한다”는 황 권한대행의 3·1절 기념사를 겨냥한 것이다. 4류 정치인에나 어울리는 부적절한 언행이다.

한·일 양국 정부가 2015년 12월 타결한 위안부 합의는 찬반 논란으로 여태껏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연말 부산 소녀상 설치와 일본의 대사 귀국 조치 등 반발로 한·일 관계는 꽁꽁 얼어붙었다. 실질적인 국정 책임자로선 이런 상황을 감안해 일본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려고 위안부 합의를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합의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고 반대하는 입장에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앞잡이’와 같은 치욕적 언사를 동원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용납될 수 없다.

상대를 향한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는 막말은 중독성과 전염성이 강하다. 또 다른 막말을 부르고 갈등과 분열을 부추긴다. 사회통합을 깨뜨리는 막말의 악순환은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암적 존재다. 친박계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그제 태극기 집회에서 “망나니 특검이 짐을 싸 집으로 가 정말 시원하다”고 했다. 그러자 김성태 바른정당 사무총장은 어제 “망나니 친박들은 태극기를 몸에 둘러서 안 된다”고 응수했다.

최근에는 대선주자들도 막말 대열에 동참하는 모습이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지난달 28일 “지금 민주당 1등 하는 후보는 자기 대장이 뇌물을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비서실장이 그 내용을 몰랐다면 깜이 안 된다”고도 했다. 조직폭력배에게서나 들을 법한 험한 투의 발언으로 문재인 전 대표는 물론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욕보인 것이다.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는 홍 지사의 의도는 뻔하다.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인지도를 올리겠다는 계산이다. 자신의 존재감은 커졌을지는 몰라도 그가 소음을 쏟아낸 우리 사회는 어찌 되겠는가. 유권자들의 자세가 중요하다. 막말 정치인은 지지를 보내지도, 표를 주지도 않아야 한다. 막말 정치인은 정치권에서 반드시 추방해야 할 ‘퇴출 1순위’다.



[중앙일보]

3. 거리의 선동 정치인은 대통령 될 자격 없다

국가는 다양한 성향의 국민들로 이뤄져 있다. 보수나 진보 등 이념적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세대 간에도 생각이 다르고 지역별로 다른 기질을 보일 수 있으며 소득수준에 따라서도 소구하는 바가 상반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결코 우열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이념을 가졌든, 나이가 많든 적든, 어느 지역 출신이든, 재산이 많건 적건 모두가 국가가 굴러가기 위해 꼭 필요한 국가 구성원들이다.

따라서 국가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특정층의 지지를 받는다 해서 그들의 요구에만 매몰돼선 안 된다. 이념과 세대, 지역 간 갈등이 있다면 기꺼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쪽에 가서 설득하고 갈등을 완화시켜야 한다. 그것이 대선 후보들마다 부르짖는 국가 결집이요, 국민 통합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부분의 후보들이 지지층만 편들고 다른 목소리를 외면하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그런 편중을 개선하지 못해 끝내 국민 통합을 이뤄내지 못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성공한 대통령을 갖지 못한 이유가 다른 게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엊그제 3·1절에 보여준 일부 대선주자들의 모습은 실망을 넘어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은 태극기가 둘로 갈린 참담한 3·1절에도 분열을 해소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분노를 부추기는 모습을 보였다. 거의 매번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일에도 광화문 광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어 SNS에 “적폐 청산을 위해 해를 넘기면서까지 촛불을 밝히고 있다”는 글을 올려 사실상 집회 참여를 독려했다. 함께 참석한 이재명 성남시장은 “기각해도 승복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헌법재판소 결정에 불복하겠다는 입장을 숨기지 않는다.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헌재가 탄핵돼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며 시위대의 분노를 조장했다.

대통령 탄핵 여부로 나라가 거의 둘로 쪼개진 지경인 데다 탄핵심판 이후의 재앙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태도는 대선후보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국민들이 반목하건 말건, 국가가 골병이 들건 말건 자신의 대선가도에 유리하기만 하면 된다는 얄팍한 정치 계산만 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국가와 국민 통합을 위해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그런 점이 불안해 반대쪽 진영의 유권자들은 더욱 더 반대 쪽으로 똘똘 뭉치는 것이다. 그러니 대선이 끝나고 나서도 양쪽 진영으로 나뉜 극한 투쟁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가 누누이 주장하듯 시위 불참과 헌재 판결 승복을 선언하고 차분히 결과를 기다리는 게 국가를 위한 태도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유난히 돋보이는 대목이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3·1절 집회에는 참석하지 않고 대신 통합을 역설했다. 이들 후보가 당장은 지지율이 더 낮을지 몰라도 대선후보로서의 자격은 더욱 갖추고 있다는 것을 유권자들은 모르지 않는다.



4. 저출산 고령사회 전담부서부터 만들어야

최근 속속 발표되고 있는 인구통계는 우리의 암울한 미래를 앞서 보여준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겨우 40만 명 턱걸이(40만6300명)에 그쳤고, 혼인건수(28만1700건)와 사망건수(28만1000건)가 비슷해졌다. 올해 인구문제의 관건은 출생아 수 40만 명 지키기가 가능하냐는 것 정도이고, 사망건수가 혼인건수를 추월하고 고령 인구가 유소년 인구의 수를 앞서는 인구지진(Age-quake)은 예고된 대로 진행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올해를 기점으로 저출산·고령사회의 충격이 경제 전반에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해 왔다. 한국경제학회가 올해 처음 개최한 경제정책 세미나에서도 한국 경제 위기의 중요 요인으로 인구 고령화 현상을 논의했다. 이현훈 강원대 교수는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유럽과 북미의 사례를 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10%포인트 증가하면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3.5%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고령화 사회 자체가 경기침체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제 느슨한 인구정책으론 우리나라의 인구 위기를 넘을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최근 차기 정부에 대해 정부조직 안에 인구부총리 혹은 인구부 신설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그동안 저출산·고령화 사회 정책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05년 저출산·고령화 사회 기본법을 제정한 이래 100조원 이상의 예산을 쏟아부었고,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설치했지만 정책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회의 한 번 열리지 않은 해가 있을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낮았고, 총괄부서가 없다 보니 부처마다 끼워넣기식 대책을 내놨다. 다양성은 있었지만 선택과 집중이 되지 않아 효율이 낮아진 것이다.



앞으로 인구문제가 우리 경제와 미래의 발목을 잡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강력하고 효율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독립 부처를 출범시키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향후 5년을 책임지겠다는 대선주자들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5. FTA 재협상, 사드 보복… 한국경제 또 샌드위치 되나

한국에 대한 미국·중국의 경제적 압박이 갈수록 태산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일(현지시간) 의회에 제출한 ‘무역정책 보고서’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USTR은 “2011~2016년 사이 미국의 대한 수출은 12억 달러 줄어든 반면 한국의 대미 수출은 130억 달러 증가했고, 대한국 무역적자는 배 이상이 됐다”며 “이는 미국인들이 기대한 결과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공언해 온 한·미 FTA 재협상을 정부 차원에서 공식화한 셈이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28일 한국산 철강제품인 인동에 대해 예비판정의 두 배가 넘는 8.43%의 반덤핑 관세를 확정하기도 했다. 동맹은 동맹, 무역은 무역이라는 트럼프의 대외정책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우회 보복’도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중국 내 주요 온라인 쇼핑몰들이 잇따라 롯데관 폐쇄와 서비스 계약 해지에 나섰다. 지난달 28일 해킹으로 롯데그룹의 중국 홈페이지가 마비된 데 이어 어제는 중국발로 추정되는 디도스 공격으로 국내 롯데면세점 홈페이지가 3시간여 동안 다운됐다. 방송은 물론 인터넷에서 한국 드라마가 사라지고 연예인과 예술인 공연마저 막힌 상태다. 한국 상품에 대한 세관의 트집 잡기도 날로 심해지고 있다.

한국의 대중 교역 비중은 23%에 이른다. 대미 교역 비중도 12%다. 무역흑자도 주로 두 나라에서 나온다. 양국과의 관계 악화로 수출과 경제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어렵고 힘들어도 설득과 소통을 통해 마찰을 줄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상황 관리가 절실하다.



두 나라를 자극하거나 스스로 과민반응을 보이는 일은 삼가야 한다. 안보와 경제 부처가 긴밀히 협력해 대응 논리를 개발하고 우리 목소리를 전할 창구를 넓혀야 한다. 정치권의 협력과 지원은 필수다. 대선주자들도 한·미, 한·중 관계는 물론 미·중 관계와 세계 정세까지 감안한 고도의 대응전략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서울신문]

6 박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승복하자고 호소해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이제 열흘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지금 상황으로는 둘로 갈라진 여론이 쉽게 합쳐질 것 같지는 않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5일 “최순실의 의견을 듣고 연설문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사과한 이래 두 차례 더 국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검찰과 특검의 대면 조사도 거부한 데다 헌재의 최종 변론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청와대 압수수색도 막았다. 지난달 27일 최종 변론에서는 변호인단이 대신 읽은 의견서를 통해 속내를 드러냈다. 미르·K스포츠재단, 최씨의 인사 개입 등으로 인한 탄핵소추안에 대해 “억울하다”, “모른다”며 국정 농단 자체를 부인했다.

이런 것들로 볼 때 박 대통령의 심정은 알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어쨌든 현재의 탄핵과 국론 분열 상황은 박 대통령이 촉발한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국가의 앞날을 먼저 생각해 쪼개진 여론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게 국가 지도자로서의 도리다. 도리어 지지자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 분열을 조장하는 듯한 행동은 대의가 아니다.

광화문 집회 현장에 나가서 국론 분열이 어떤 상황인지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물론 박 대통령도 TV를 통해 작금의 사태를 봤을 것이다. 탄핵 기각,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은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 “탄핵당하면 내란 상태로 들어갈 것”이라는 등의 섬뜩한 협박과 선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관들마저 위협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일부 의원들은 탄핵을 찬성하는 쪽을 “친북 좌파”, “종북 세력”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박 대통령은 늘 법치를 강조해 왔다. 법치주의란 법의 심판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통령 자신이 임명장을 수여한 재판관들의 심판마저 부정하는 것은 법치주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다. 수사나 재판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피의자나 피청구인에게 보장된 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헌재의 심판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면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고 만다.

박 대통령은 설혹 자신이 헌재의 심판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억울한 심정이더라도 지지자들에게 결과에 승복하자고 호소하고 설득해야 한다. 승복과 무죄 주장은 다른 문제다. 박 대통령의 한마디는 ‘태극기’ 쪽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촛불’ 쪽 지지자들이나 정치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겉으로는 승복을 외치면서 사실은 군중을 선동하는 여야 정치인들도 동조할 것이다. 헌재의 심판 결과와 관계없이 그래도 국민 앞에 마지막 희망을 보여 준 대통령으로 기억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법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잘되는 세상을 소망한’ 대통령으로서의 의무이기도 하다.



7 법 감정 무시한 아동·청소년 성폭행 32% 집유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성폭행을 저지른 범죄자 10명 중 3명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가족부가 2015년 아동과 청소년 대상 성범죄로 확정 판결을 받은 신상 정보 등록 대상자를 분석한 결과다. 성폭행범 733명 가운데 최종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사례는 32.3%나 됐다. 이 수치는 2013년 36.6%였다가 해마다 미미하게나마 감소 추세이기는 하다. 하지만 어린이와 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범죄의 죄질을 고려하면 여전히 용납하기 어려운 처벌 수준이다.

조사에 따르면 성범죄 피해자의 약 23%가 13세 미만이었다. 이 어린 피해자들의 절반 이상이 평소 잘 아는 사람한테서 범행을 당했다. 여러 설문조사에서 아동 성폭행을 우발적인 살인보다 더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는 대답은 변함없이 압도적으로 많다.

아동 성범죄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다. 인간의 삶을 한순간에 송두리째 짓밟는 만행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선진국들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성범죄에 물렁물렁한 처벌을 하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새 양형 기준을 만들기도 했으나, 국민의 법 감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솜방망이 처벌을 지켜본 사람들이 “제 가족의 일이었어도 저런 판결을 했겠나”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재판부에 쏟아붓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연예기획사 대표가 15세 여학생을 수차례 성폭행해 임신하게 했는데도 지난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해 시민사회를 들끓게 한 사건은 최근의 대표 사례다.

아동과 청소년을 노린 성범죄는 해마다 3000건 넘게 발생하고 있다.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자는 취지에서 범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응책이 꾸준히 나오고는 있다. 법으로도 형량의 수위를 높여 놨지만 이전 판례 등을 의식해 소극적인 판결로 마무리되는 사건이 여전히 너무 많다. 재판부의 관대한 처분이 아동 성범죄를 뿌리 뽑지 못하는 큰 패착으로 지적된다.

검찰은 여성과 아동 대상의 폭력 범죄는 초범이라 하더라도 선처하지 않고 기소하기로 했다. 실질적인 반성을 유도하고 추가 범죄를 막기 위한 대책이다. 검찰의 이런 노력만으로 사회적 약자를 유린하는 악성 범죄가 줄어들기는 어렵다. 성범죄만큼은 반드시 엄단하겠다는 의지가 사법부 전반으로 확산돼야 한다.



8 수출 증가세 내수 살릴 밑거름 되길

지난달 수출 실적이 전년 동기보다 20.2% 늘었다고 한다. 5년 만의 가장 높은 증가율로 4개월 연속 상승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상승세가 석 달 이상 지속되면 의미 있는 변화로 본다. 수출만큼은 부진에서 벗어나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우리 경제는 수출과 내수 모두 최악의 곤경에 처해 있었다. 청년실업률이 크게 높아지면서 미래의 희망조차 가물가물해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조차 깊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축(軸)인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은 가뭄의 단비만큼이나 반갑다.

사실 수출은 지난 1월부터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본격적인 상승세에 접어들었는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반도체 수출이 64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낸 데 따른 일시적 반등이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2월 수출 실적은 질적으로도 다르다.



13개 주력 품목 가운데 10개 품목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반도체가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가운데 석유화학이 2014년 10월 이후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부진에 빠져 있던 자동차도 증가세로 전환됐고, 화장품·의약품·농수산식품도 힘을 냈다고 한다.

수출이 반등세를 보일수록 다른 한 축인 내수가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지난 1월 기준으로 수출 증가와 일정 부분 궤를 같이하는 전(全) 산업생산이 1.0% 늘어난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소비를 뜻하는 소매판매는 전달보다 2.2%나 감소한 결과를 보였다. 3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한 것이다. 지난해 11월과 12월에도 각각 0.3%와 0.5%가 감소한 데 이어 1월에는 4배 가까이 확대된 것이다. 수출과 내수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데 경기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다.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에 따른 경제적 요인과 최순실 사태에 따른 사회적 요인이 맞물리면서 경쟁국보다 큰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재계는 움츠러들지 않고 과감하게 추진력을 발휘하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우리 경제를 짊어지고 있다는 책임감을 갖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수출 증가세가 소비 진작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우리 경제에 훈풍이 다시 불도록 특히 대기업이 앞장서야 한다. 미뤄 뒀던 신입 사원 채용 계획을 다시 세우고 투자도 획기적으로 늘리는 모습을 보여 주기 바란다. 그것이 최순실 사태로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찾는 길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9. 중국 의존도 못 줄이면 한국 얕보는 횡포 계속된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이 본격화되고 있다. 예견된 일이다. 시진핑 주석이 공개적으로 '반대'를 밝혔기 때문에 1인 독재 체제의 특성상 상당 기간 보복이 이어질 것이다. 롯데면세점 홈페이지가 중국발(發)로 추정되는 해킹 공격에 다운되고, 중국의 온라인 쇼핑 사이트들은 검색어에서 '롯데'를 차단했다, 한류(韓流)를 규제하는 '한한령(限韓令)'이나 한국산 제품 통관 차별, 전세기·비자 규제 같은 이른바 '준법 보복'도 시작됐다. 공산당 선전기관들은 '단교(斷交)에 준하는 제재'를 주장하며 "한국 기업들을 벌(罰)해서 교훈을 주자"고 불매 운동을 선동하고 있다. 정상적인 국가 관계에선 있을 수 없는 감정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다.


현 지구 상에서 중국은 정치적 목적으로 노골적 경제 보복을 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센카쿠섬 분쟁 상대인 일본에 희토류(稀土類) 수출 중단으로, 반체제 인사에 노벨상을 준 노르웨이엔 연어 수입 금지로 보복했다. 대만·프랑스·필리핀·몽골 등도 비슷한 이유로 중국의 보복을 당했다. 중국의 보복 외교는 이미 악명이 높다.


우리를 향한 사드 보복은 더 집요할 가능성이 있다. 시진핑이 직접 나서 체면이 걸린 데다 단순히 사드 반대를 넘어서 이 기회에 한국을 길들인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손해를 끼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있는 대로 다 건드리겠다고 작정했을 수 있다. 다른 기업도 공격할 것이다. 대국(大國)이지만 삼류에 불과한 국가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이웃을 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중국의 협박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사드 배치는 북핵·미사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취하는 방어적 조치이며 이는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고유한 주권이다. 원칙을 지키면 일시적 곤란을 겪을 수 있으나 결국 옳았던 것으로 판명 나는 법이다. 중국이 이러는 것도 한국을 '원칙 없이 흔들리는 나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두고두고 화근이 된다. 사드 배치를 조속히 완료해 가동해야 한다.


중국의 보복으로 한국 경제가 입을 피해는 상당할 것이다. 그러나 결코 견디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일부 중국 미디어도 지적했듯이 한국 기업을 제재하면 중국에도 손해다. 중국은 한국에서 부품·소재를 들여다 가공해 재수출한다. 중국 안에 설립된 2만3000여개의 한국 기업이 만들고 있는 일자리도 있다. 중국에 오는 외국 여행자 중에도 한국인 비중이 12%로 가장 많다. 중국도 한국에 대한 의존도가 작지 않다.


중국의 보복은 정치적 이유로 무역을 제한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 중국 측은 정부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뻔한 거짓임을 모두가 안다. 국제사회는 중국을 지켜보고 있으며 자신들도 언제든 중국에 당할 수 있다고 느낄 것이다. 중국의 보복은 하면 할수록 스스로에게도 부담이 된다.


중국은 사드가 아니라도 걸핏하면 경제 보복 카드로 위협할 것이다. 한국이 자신들 시장(市場)에 의존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 수출의 25%와 외국 관광객의 47%를 중국에 의존한다. 우리는 이제서야 중국이란 나라에 근본적으로 불투명한 정책과 정치 리스크가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그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


중국 의존도를 지금부터 차근차근 줄여나가야 한다. 연어 수입 제한 보복을 당했던 노르웨이는 유럽연합(EU) 등의 신시장을 개척했다. 일본 역시 중국 비중을 줄이고 동남아·인도 등으로 다변화하는 정책을 폈다. 대만도 마찬가지다. 반면 우리는 2000년 중국산 마늘 분쟁 때 그렇게 당하고도 중국 위주 전략을 수정하지 못했다.


중국 시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더 이상 매력 덩어리는 아니다. 인건비가 급등한 '레드 오션'으로 바뀌었다. 이미 화장품 업계는 중국 대신 중동과 동남아 시장 쪽으로 눈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정부, 기업, 국민 모두가 심각한 '중국 리스크'를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면 한국을 얕보는 중국의 횡포는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다.



[동아일보]

10. 한미 FTA 재검토한다는 미국에 죽은듯 엎드린 정부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검토 방침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USTR는 1일(현지 시간) 공개한 ‘2017년 무역정책 의제’에서 “한미 FTA로 인해 미국의 대한(對韓) 무역적자가 2배 이상 증가했고 이는 미국인이 기대한 결과가 아니다”라며 한미 FTA를 포함한 기존 협상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때부터 예견돼 온 ‘미국 우선주의’의 보호무역 정책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USTR가 한미 FTA ‘재협상’을 직접 언급하거나 당장 재협상을 요구한 건 아니라며 의미를 축소했지만 안일한 대응이다. 336쪽에 이르는 방대한 USTR 보고서를 보면 미국이 FTA재협상 요구안에 대한 검토를 이미 끝냈다고 판단해야 옳다. USTR의 무역정책 의제가 매년 나오는 연례 보고서라 해도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며 무대응 전략으로 나가겠다는 것은 공직자의 자세를 의심케 한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지난달 9일 국회에서 “현재 실무 레벨에서 한미 FTA가 양쪽에 다 윈윈이라는 점을 설득하면서 대응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거짓이었단 말인가. 

유 부총리는 트럼프 정부 출범 전인 1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선제적으로 알리기 위해 방미했으나 당선자 측 관계자를 만나지 못한 채 귀국한 바 있다. 경제 컨트롤타워가 제 역할을 못 해 ‘무대응이 상책’이라는 황당한 방침을 강조하는 게 아닌지 의문이다. 유 부총리가 17, 18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을 만난다 해도 한미 FTA 재협상 문제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할 건지 궁금하다.

미국의 정책 변화를 기화로 한국은 진작부터 서비스업으로 성장 동력을 키우고 노동 개혁으로 인적자원의 이동을 촉진해야 했으나 정부의 무능과 정치권의 발목잡기 때문에 실기(失期)한 측면이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미 FTA 재협상 시 2017∼2021년 수출 손실 269억 달러, 일자리 손실이 24만 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는 이제라도 여러 부처에 흩어진 통상업무를 총괄하는 범정부 조직을 만들어 시나리오별로 치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이 사드 배치 결정으로 한미동맹에 기여한 점을 강조하는 등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야 할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세계일보][이태형의 우주여행] 제2의 지구 어떻게 찾았을까

지난 2월 말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지구에서 약 39광년(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날아가는 거리) 떨어진 작은 별에서 지구와 비슷한 일곱 개의 행성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하나의 별에 제2의 지구가 될 가능성이 있는 행성이 일곱 개나 존재한다는 것은 천문학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대단한 발견이었다. 지구 지름은 태양의 10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수십광년 떨어진 곳에서 어떻게 지구 크기의 행성을 일곱 개나 발견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행성이 지구와 비슷한 환경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태양계 밖에서 지구 크기의 외계 행성을 직접 관측할 수 있는 망원경은 아직 없다. 이번에 발견된 행성은 트라피스트-1이라고 불리는 작고 희미한 별의 둘레를 돌고 있다. 트라피스트-1은 태양 질량의 약 8%밖에 안 되는 붉은색의 작은 별로, 태양보다는 목성 크기에 더 가깝다. 지구에서 볼 때 행성이 별의 앞을 지나게 되면 별빛을 살짝 가리게 된다. 이때 별빛이 흐려지는 정도를 분석하면 행성의 겉보기 크기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별빛이 흐려지는 주기를 측정하면 행성의 공전 주기를 알 수 있다.

별에 가까운 행성일수록 공전주기가 빠르기 때문에 공전주기를 알면 별과 행성의 거리를 계산할 수 있다. 행성의 실제 크기는 행성의 겉보기 크기와 별까지의 거리를 통해 알게 된다. 행성이 움직이는 동안 중심의 별도 행성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흔들린다.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동안 지구가 달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흔들리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행성의 질량이 클수록 별이 흔들리는 정도는 더 커진다. 결국 행성의 질량은 별이 흔들리는 정도를 정확히 분석해 알아내게 된다.

이렇게 밝혀낸 행성의 질량과 크기를 통해 행성의 밀도를 계산하고, 그 밀도를 기초로 행성의 상태를 알아낼 수 있다. 이번에 발견된 행성은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 지구처럼 딱딱한 암석으로 이뤄져 있고, 별로부터의 거리로 봤을 때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온도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행성은 별에 가까운 순서로 b, c, d, e, f, g, h의 알파벳 이름이 붙여진다. 트라피스트-1b가 가장 안쪽의 행성이고 트라피스트-1h가 가장 바깥 행성이다. 

그렇다면 이 일곱 개의 행성이 모두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곳일까. 아직까지 밝혀진 것은 없다. 만약 이들 행성에 대기가 있다면 별빛이 대기를 통과할 때 대기 성분에 의해 빛의 일부가 흡수된다. 따라서 대기를 통과한 별빛의 아주 작은 변화를 분석할 수 있다면 행성 대기 속의 수증기와 산소, 메탄가스 등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허블 우주망원경을 포함한 거대한 망원경이 이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이들 행성에 물과 적당한 대기가 있다고 해도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그곳을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나사의 이번 발표를 통해 우주에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무수히 많고, 그 어딘가에 어떤 형태로든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먼 훗날 인류는 태양계를 벗어나 더 먼 우주로 나아갈 과학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지구에 살아야 하고, 따라서 지구를 최대한 잘 가꾸고 보존해야 한다.



2. [경향신문][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나 자신을 아는 것

“자기 자신을 시험에 부치지 않는 삶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없다.” 소크라테스는 앎과 삶을 일치시키고자 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스스로를 시험에 처하게 하는 것이었을 테다. 이는 그 유명한 델포이 신전의 전언, “네 자신을 알라”의 구체적 지침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를 시험에 처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루소의 말처럼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그렇게 따르기 쉬운 격언이 아니다. 루소는 <고백>을 쓰면서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여러 번 토로한다. 사실 안다고 믿는 자기 자신은 연출되거나 위장된 자기 자신일 확률이 높다. 우리는 우리이길 원하는 나를 나라고 믿는다. 매일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 속에서는 자신을 돌아보기 힘들다.



그러니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어쩌면 스스로 시험을 자초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릇 사람이란 일상의 반복을 행복이라 여기며 지내지 않던가? 과연 누가 굳이 닥치지 않은 위험을 연상하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불편을 상상해서 자신을 고민하려 할까?



영화 속의 많은 주인공들이 삶의 위기에서 출발하는 이유도 아마 여기 있을 것이다. <비긴 어게인>의 남자 주인공 댄(마크 러팔로)도, <러덜리스>의 주인공 샘(빌리 크루덥)도 그렇다. 그들은 삶이라는 항해에서 처참한 난파선이 된 채 관객들과 만난다. 댄은 음악계에서 거의 추방된 상태이고, 샘은 예상치 못했던 아들의 사고로 삶의 중심을 잃어 버렸다. 최근에 개봉한 한국 영화 <싱글라이더>의 주인공 강재훈(이병헌)도 삶의 벼랑 끝에 서 있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남편 그리고 꽤나 성공적인 직장인으로 살았던 그는 그동안 쌓아왔던 삶 전부가 거절되는 시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세 주인공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그들이 성공한 사회인이기 이전에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느새인가 아버지가 가족 내 구성원이 아니라 일종의 직업이 된 것은 아닌가 싶다. 결혼도 선택, 출산도 선택이 된 게 특별한 일이라기보다 보편적 상황이 되었음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어느새, 아버지가 어느 정도 나이가 찬 남성에 대한 일반적 호칭이 아니라 특수한 처지를 가리킬 수 있는 언어가 되었다. 어쩌면, 한 이십년 후쯤이면 길에서 만난 중후한 장년을 무턱대고, “아버님”이라고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싱글라이더>는 아버지라는 직업을 가졌으나 미처 그것을 감지하지 못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증권 회사 지점장으로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중요한 것은 돈과 숫자였다. 얼마나 많은 투자자를 모으고, 얼마나 큰 이익을 얻는지, 숫자로 확인되지 않는 것들은 그에게 무의미하거나 쓸모없는 것에 불과했다.



당연히 가족은 숫자로 환산될 수 없다.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내가 얼마나 필요한지의 문제는 결코 증명 가능한 숫자나 교환 가능한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다.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가치이기에 그에게 가족은 점점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되고 따라서 그다지 생각나지도, 그렇다고 마음이 쓰이지도 않는 대상이 되고 만다. 그는 아버지이긴 했으나 아버지는 아니었던 셈이다. 

결국 삶의 중대한 위기에 봉착하고 나서야 그는 겨우 가족을 둘러본다. 아니 엄밀히 말해 그제서야 겨우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자신의 가치와 의미, 위치를 가족 가운데서 찾아보게 된다. 자아는 발견되어야 소유될 수 있다. 그리고 참 역설적이게도 자아를 갖게 되면 그 순간부터 자아는 요령부득의 못 믿을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의 안락을 위해 최대한 의심의 순간을 미룬다. 그러니 우리는 대개 너무 늦게 자신을 돌아본다. 

나이가 마흔이 넘도록 이십년이 넘게 매달 월경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정확한 날짜를 몰라 허둥지둥하기 일쑤다. 예고된 변화이고 반복된 신체적 반응이지만 아직 그조차도 미지수에 가깝다. 이러다 덜컥 폐경이 온다고 해도 아마도 그때도 나 자신에게 속았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신체도 그런데 영혼과 정신이야 어떨까? 반복도, 패턴도 그렇다고 예고나 지표도 없는 영혼으로서의 나란 얼마나 미지수이던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알 수 없는 게 더 많고, 가장 알 수 없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과연, 나란 사람은 어떤 존재일까? 

나 자신을 알고 싶지만 그것이야말로 늘 만시지탄일 듯싶다. 사람은 살면서 자기 자신을 알아야만 하지만 결국 너무 늦게 자신을 알려 하거나 알고 나면 대개 너무 늦다. 아니 너무 늦은 순간에도 여전히 스스로를 모르는 건 아닐까 싶다. 문학과 영화, 철학이 삶에 어떤 힘을 준다면 그건 다름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위험에 처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편안한 이 삶 속에서 닥쳐서야 느끼게 되는 그런 수동적 위험이 아니라 상상으로 미리 닿아 볼 수 있는 개연적인 위험. 닥치지 않은 위험을 상상해 그 가운데서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만이 지닌 능력이 아닐까? 너무 편안하다면 오히려 불안해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건 우리가 무엇인가 괄호에 넣은 채 잊고 산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3. [한겨레][문화 현장] 곤잘레스-토레스와 로스

벽에 나란히 걸린 두 개의 원형 시계가 정확히 같은 시간, 분, 초를 가리키며 움직인다. ‘무제(완벽한 연인들)’(1987-1990)는 쿠바 태생의 미국 남성 작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가 그의 연인 로스의 투병 기간 동안 만든 작업이다. 두 개의 시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어긋나 서로 다른 시간을 가리키게 될 것이고, 둘 중 하나는 결국 먼저 멈추게 될 것이다. 연인의 죽음과 이별에 대한 작가의 절망과 두려움을 엿볼 수 있다.



다른 작업 ‘무제(로스모어 II)’(1991)는 로스가 죽기 직전의 몸무게인 34㎏만큼의 사탕을 갤러리에 쌓아 놓고, 관객이 가져갈 수 있게 설치해 놓은 것이다. 사탕은 같은 무게만큼 계속 다시 채워진다. 로스모어(Rossmore)는 곤잘레스-토레스와 로스가 함께 살던 아파트가 있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제 거리 이름으로, 문자 그대로 더 많은 로스(more Ross)를 의미한다. 사탕의 포장지는 로스모어 거리의 잔디색으로, 항상 푸른 초록이다. 곤잘레스-토레스의 로스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절절한 그리움이 드러난다.



‘무제’(1991) 역시, 로스와 함께 자고 일어난 빈 침대의 사진을 거리의 빌보드에 크게 설치한 작업이다. 텅 빈 하얀 침대 위에 눌려 있는 베개와 흐트러진 이불이 로스의 부재와 그로 인한 작가의 깊은 상실감을 표현한다.곤잘레스-토레스의 대부분의 작업은 연인 로스에 대한 것으로, 자전적인 요소를 지니지만 자폐적이지 않다. 둘의 시간은 멈췄지만, 시계는 새롭게 맞춰져 관객의 현재에서 다시 돌아간다.



로스는 죽었지만, 그의 몸을 상징하는 사탕은 관객들 입속에서 녹아 그들 몸의 일부로 흡수된다. 두 연인의 침대는 매번 다른 도시의 빌보드판에서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사라지거나 멈추는 작업의 재료들은 죽음의 속성을 닮았지만, 다시 채워지고, 옮겨지고, 새롭게 설치되면서 다시 부활하고 계속 순환한다. 작품의 내용과 형식, 작가의 의도가 잘 맞물려 있어 단단하다. 곤잘레스-토레스의 로스를 향한 깊고 따뜻한 감정은 더 이상 작가 개인의 것에 머물지 않는다. 이들의 사랑은 관객의 현재에서, 개별적 순간으로 경험되고 먹먹히 공감된다.

그런데 곤잘레스-토레스는 동성애자이다. 따라서 그가 그렇게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로스는 동성의 남자 애인이다. 로스는 에이즈로 1991년에 사망했고, 곤잘레스-토레스도 5년 뒤에 죽었다. 작가의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은 작업에 정치적인 의미를 추가한다. 이들의 사랑에 대한 공감은 동성애 관계에 대한 이해의 거리를 좁히고, 이들이 받아온 차별과 소외를 함께 고민하게 만든다. 동성애 차별에 대해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반대 측에 이용당하고 빼앗길 것이 없다. 그래서 더 설득의 가능성을 갖는다.

로스를 향한 곤잘레스-토레스의 시린 그리움 앞에서, 이들의 사랑이 이성 간의 것이 아니라서 거짓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들이 동성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앞에서 느꼈던 공감과 감동이 부정되는가? 그래서 이 연인들은 배척받는 것이 정당하다는 생각이 드는가? 나는 나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둘의 사랑 앞에서 고약한 부정의 말을 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어서 이 지겨운 어두움이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환한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가 생각하는 환한 세상은 나의 가치관만 옳다고 고집부리며 남의 생각과 사랑을 배척하고 차별하는 세상이 아니라, 남의 다름과 감정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 곤잘레스-토레스와 로스가 봤던 하늘의 따뜻한 빛을 ‘무제(환영幻影)’(1991)와 함께 느낄 수 있는 그런 사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차별 금지법에 대해 ‘나중에’라는 대답이 아니라, ‘지금’ 그리고 ‘함께’라는 대답을 듣고 싶다.



4. [매일경제][매경춘추] 그대 앞에 봄이 있다

사무실 창문 바깥으로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겨울 내내 앙상한 몸으로 찬바람을 맞고 있던 나무에 어느새 물이 올라왔다. 새롭게 손을 내민 가지에는 벌써 파릇한 순이 돋아났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새순이 돋기까지 나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만일 나무가 지난겨울의 힘든 시간을 견뎌내지 못했다면 이 봄도 맞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무에서 새로 나온 가지는 인내와 희망의 상징이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랜 경기침체, 청년실업, 양극화에 정국 불안까지 겹쳐 서민들의 삶은 날로 팍팍해지고 있다. 지방행정의 일선에서 그동안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나 양재R&CD특구 조성과 같은 굵직한 현안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올 한 해는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산 정약용은 혹정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고달픈 삶을 체험하고 목민관에게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당부한 바 있다. 다산이 특별히 돌봐줄 것을 당부한 대상에는 양로(養老), 자유(慈幼), 관질(寬疾) 등이 포함된다. 요즘 말로 하면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 지속적인 보호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이들, 신체적으로 제약이 있는 장애인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다산의 당부는 서초구의 여러 정책에 녹아들어 있다. 효도 간호사, 늘봄 발달장애인 카페, 반딧불센터, 모범어린이집, 느티나무쉼터, 안전 어린이공원 사업 등이 그것이다. 점심 저녁시간에는 영세 음식점 앞 주차단속을 하지 않는 것도, 청탁금지법 이후 시름이 가득한 화훼농가를 위해 '1Table1Flower' 운동을 하고 있는 것도 다산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사업들이라고 하겠다. 한 사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다시 창밖의 나무를 바라본다. 긴 겨울을 견딘 나무가 말을 건네는 듯하다. 희망찬 봄을 맞이하려면 추운 겨울을 견뎌내라고. 아무리 힘들어도 서로 보듬고 위로하며 기다리다 보면 봄은 반드시 다시 찾아온다. 나무들이 두 팔을 쭉 뻗고 심호흡을 한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5. [한국경제][천자 칼럼] 라이언 중사

“라이언의 업적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그는 전사이며 영웅이었습니다. 그의 친구, 그의 국가, 우리의 자유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라이언을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대테러 작전 중 전사한 윌리엄 라이언 오언스 중사의 이름을 일곱 번이나 불렀다. 라이언은 최근 예멘에서 알카에다 격퇴 작전을 벌이다 목숨을 잃은 미 해군 특공대원(네이비실). 트럼프는 맏딸 이방카 옆에 앉은 라이언의 부인 캐린을 소개한 뒤 “누구도 제복을 입고 미국을 위해 싸우는 사람보다 용감할 순 없다”며 두 차례나 감사의 뜻을 전했다.

지켜보던 상·하원 의원들과 군 수뇌부, 대법관, 청중 모두가 벌떡 일어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기립박수는 2분 넘게 이어졌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듯 감정을 추스르던 캐린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미국 언론은 “정치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라며 “트럼프가 (진정한) 대통령이 됐다”고 호평했다. 트럼프와 사사건건 충돌했던 공화당 1인자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환상적”이라며 극찬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트럼프는 “우리는 하나의 목적지를 가졌고, 같은 피를 나눴고, 같은 국기에 경례를 한다”며 모두가 하나가 돼 분열의 위기를 극복하자고 호소했다. “이제는 우리의 가슴을 채울 꿈들을 공유하고 희망과 꿈을 행동으로 전환할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66분간의 연설 내내 그는 ‘함께’ ‘통합’이란 단어를 반복했다.

CNN 긴급조사에서 시청자의 78%가 “아주 좋았다”고 답했다. 트럼프의 지지도가 40% 안팎에 머물던 점을 감안하면 두 배로 뛴 셈이다. 국방예산을 10% 늘려야 한다고 역설한 대목에서도 자연스레 호응이 이어졌다. 그가 ‘가짜 뉴스’라고 맹비난한 민주당 성향의 ‘동부 언론’까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모처럼 만의 호평에 트럼프도 자신의 트위터에 “생큐”라며 화답했다.

격변기의 갈등을 ‘감동’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는 그의 정치력을 보면서 우리를 돌아본다. 2002년 제2 연평해전 영결식뿐 아니라 이후 기념식 때도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았던 게 우리다. 2012년이 돼서야 현직 대통령(이명박)이 처음으로 참석했다. 서해교전이라는 표현이 연평해전으로 격상된 것도 그때였다. 그동안 전사자와 가족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의회 연설에서 라이언을 호명하며 “위대한 미국을 함께 만들자”고 호소하는 트럼프가 더욱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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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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