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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서울신문]
1. '전인권 적폐' 공격, 'DJ 골로 보내' …막가는 대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그나마 그 과정에서 이념과 지역감정이 많이 옅어졌다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대선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대선 후보와 각 당 캠프 및 지지자들이 막말과 색깔론, 지역감정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다시 구태의 정치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유권자 수준을 얕잡아 본 네거티브 공세일 뿐이다.
가수 전인권씨는 그제 자신의 공연을 홍보하는 자리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미국 애플사의 설립자인 스티브 잡스에 비유하며 칭찬했다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지지자들로부터 몰매를 맞고 있다. 전씨는 “안철수란 사람도 잡스처럼 완벽증을 갖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얘기가 안 통할 수는 있지만 나쁜 사람은 될 수 없다”고 했다. 문 후보를 비난한 것도 아니고 안 후보를 대놓고 지지하자고 선동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른바 ‘문빠’들은 “적폐 세력 전인권의 공연 예매를 취소하겠다”,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나” 등 ‘문자폭탄’을 날리고 있다. 내 편이 아니면 적폐세력이라는 위험천만한 아집에 빠진 행태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다.
전씨는 지난해 11월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촛불집회에서 절절하게 애국가를 불러 감동을 줬다. 그는 촛불과 태극기 간의 충돌을 우려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박사모가 한 대 때리면 그냥 맞으세요”라고 외쳐 평화적 시위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를 칭송하던 이들 중에는 ‘문빠’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전씨를 불과 넉 달 만에 ‘적폐’라고 패대기칠 수 있나. 이러니 극성스러운 ‘문빠’가 반문 정서를 확산시키는 주범이라는 얘기가 나올 법도 하다.
선거판을 흐리게 하는 퇴행적 언행들은 다른 캠프도 마찬가지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17일 전주 유세에서 “문재인은 대북 송금 특검을 해서 김대중 대통령을 골로 보냈다”며 호남 홀대론을 제기했다. 호남을 볼모로 하는 지역정치에 기대어 표 구걸을 하는 것이 안철수 후보의 새 정치 철학은 아닐 것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막말 전도사’라고 불릴 정도로 하루 걸러 막말을 하고 있다. 17일 대구 유세에 나선 그는 “대구·경북은 보수우파의 상징”이라며 “선거에서 지면 낙동강에 빠져 죽겠다”며 지역감정을 조장했다. 그제 부산 유세에서는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사실상 대북 정책에 한해서 대통령은 김정은”이라고 ‘색깔론’까지 들고나왔다. 아무리 보수표 결집이 급했다고 이런 시대착오적이고 이념적인 공세가 먹힐 것으로 생각하는 그가 딱할 뿐이다.
여전히 선뜻 찍을 후보가 없다고 고민하는 부동층 유권자가 많은 것은 이런 저급한 정치 행태를 보이는 후보들에 대한 극도의 실망감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상대 후보들을 흠집 내는 데만 열을 올리는 것은 스스로 표를 갉아먹는 자해 행위임을 직시하길 바란다.
2. 사법개혁 당위성 확인한 진상조사위 발표
법원행정처가 진보성향 법관들의 사법개혁 움직임을 부당하게 견제하려 했다는 의혹이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는 그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학술대회의 연기와 축소 압박을 가한 점은 적정한 수준과 방법의 정도를 넘어서는 부당한 행위”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의 조직적 관여를 부인했고 ‘사법부 블랙리스트’의 존재 의혹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추단하게 하는 다른 어떠한 정황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일각에선 부실 조사 논란도 일고 있다.
진상조사위는 사태의 발단이 된 판사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 축소를 지시한 당사자는 대법원 고위 간부인 이모 상임위원으로 확인됐고 이를 근거로 법원행정처가 조직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상임위원은 행정처 차장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학술대회 연기와 축소의 필요성을 논의했고 여기서 결정된 내용이 실제로 집행됐다고 한다. 적지 않은 판사들이 어제 내부 통신망 등을 통해 조직적 개입이 없었다는 조사위 발표에 의문을 제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연구회가 전국의 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작하자 법원행정처가 중복 가입 학회를 자동 탈퇴시키겠다고 공지한 것은 객관적 사실이며 이 책임을 특정인에게 떠넘기는 것 자체가 꼼수라는 지적도 많다. 그동안 일선 판사들 사이에선 게시판 글이나 판결 등을 분석해 법관 인사나 연수자 선발 때 활용한다는 설이 무성했지만 이번 조사에서도 이런 의혹까지 해소하지 못했다.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자유로운 학술 활동을 견제한 것은 진상조사위가 지적했듯 사법행정권의 남용이 아닐 수 없다. 헌법상 보장된 학문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사법부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판사는 법률에 규정한 대로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껏 판결해야 한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 사법 신뢰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33위다.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거세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민주적 운영 방안을 포함한 사법제도 개혁 논의가 공론화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국민이 신뢰하지 못하는 사법 시스템은 결국 국가 존립 자체를 뒤흔드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선일보]
3. 국민에 해야 할 말은 일절 않고 '준다'고만 하는 후보들
대선이 20일 앞으로 다가온 19일에도 각 후보가 '무엇 무엇 해주겠다'는 공약 행진을 이어갔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부당한 강제 퇴직을 막는 법을 만든다는 등의 '5060 일자리' 공약을 발표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한국노총을 찾아 "비정규직을 대폭 줄이고 중소기업의 임금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듣기 좋은 얘기다. 그러나 두 유력 후보는 노동 개혁이나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 활성화처럼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진짜 필요한 과제들은 말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 적도 거의 없다. 다른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후보가 기초연금을 올리고 아동수당을 도입한다는 등 수조, 수십조원이 필요한 복지 공약들을 하루가 멀다고 내놓으면서 일시적으로 고통스럽더라도 나라의 미래와 경제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쓴소리는 없고 입만 열면 오로지 '해준다' '해준다'뿐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세계 모든 나라가 천국이 됐을 것이다.
지금 경제를 살리고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구조 개혁이다. 노동과 공공부문·금융 등의 낡은 제도와 관행을 고치고 부실화된 좀비 기업들을 정리해 새로운 산업의 싹이 트도록 해야 한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해 집단이 반발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은 조금 많은 숫자가 반대하면 거의 무조건 입을 닫거나 영합한다.
국회에 발목 잡혀 있는 노동 개혁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후보도, 노동계 반발로 벽에 부닥친 공기업·금융계 성과급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후보도 거의 없다. 13조원의 국민 세금을 지원받아 연명하는 대우조선의 노동자들에 대해 임금·인원 감축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분담하라는 당연한 말도 하지 않는다.
문 후보는 81만개의 공공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면서도 재원 대책에 대해선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국가 부채를 더 늘리든지 세금을 더 걷든지 둘 중의 하나일 테지만 문 후보는 입을 다물고 있다. 안 후보는 교육혁명을 10대 공약 중 하나로 내걸면서도 가장 시급한 대학 구조조정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반발이 있기 때문이다.
미세 먼지 문제가 심각해지자 각 후보는 석탄 발전 감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문 후보는 30년 이상 석탄발전소를 가동 중단하겠다고 했고, 안 후보는 석탄발전 쿼터제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결국 석탄 발전을 줄이는 만큼 원자력 발전을 늘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안 두 후보는 원전도 줄여가겠다고 한다. 유권자 귀에 쓴 소리는 하지 않으려다 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자기모순에 빠져들고 있다.
모든 후보가 4차 산업혁명을 일으키겠다고 한다. 그러려면 규제 개혁이 필수다. 온갖 규제 때문에 드론·자율주행차·원격의료 같은 4차 산업혁명 분야의 비즈니스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낡은 규제를 풀기 위한 규제프리존특별법이나 의료법 개정안, 인터넷 전문은행 특례법 등이 국회에 발목 잡혀 있으나 이 법안들을 통과시키겠다는 말을 하는 후보를 보기 힘들다. 이 역시 이해 집단들의 반발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후보가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기업 활동을 일으킬 방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대신 대기업을 옥죄는 새로운 규제들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국내에선 대기업이라도 글로벌 시장에선 약자(弱者)에 불과하다. 재벌 오너의 전횡은 막아야 하지만 대기업들을 글로벌 경쟁에서 불리하게 만드는 한국식 규제는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후보가 대기업 때리기에만 열중하고 친(親)기업 정책은 말하지 않는다. 당장 머릿수 많은 쪽만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통스러워도, 그래서 선거에 손해 보더라도 국가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은 하겠다'는 후보가 단 한 명 없는 것은 유권자들이 그런 후보를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나라의 장래는 유권자 손에 달린 것이다.
4. 시진핑 "한반도는 中의 일부였다" 이게 中의 對韓 인식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실질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한 말인데 정확한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떤 맥락에서 이런 말이 나왔는지도 확실치 않다. 하지만 많은 중국인이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은 2002년부터 5년간 '역사공정'이라는 국가사업을 통해 인접 국가 역사를 모두 중국사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한반도에 대해서도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했다. 중국인들의 이런 인식에는 20세기 이후 아시아에서 벌어진 엄청난 변화와 현실에 대한 반감과 인접 국가에 대한 전근대적 패권 의식이 담겨 있다.
중국은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국의 설명은 들으려 하지도 않은 채 무조건 거부하고 있다. 더 강력한 일본의 사드 레이더에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용도 자체가 다른 한국 사드만 물고 늘어지고 있다. 이제는 치졸한 보복까지 한다. 결국 사드 자체가 아니라 이 기회에 한국을 길들이고 한·미 동맹에서 조금씩 떼어놓겠다는 것으로밖엔 볼 수 없다. 그 뿌리에 '한반도가 중국의 일부였다'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내용을 밝힌 것을 보면 그가 한국과 한반도 역사에 무지(無知)하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런 미·중 두 나라 정상이 작지 않은 타국에 대해 왜곡된 사실을 주고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똑바로 뜨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동아일보]
5. “한국이 中 일부였다” 시진핑 인식, 한중관계 걸림돌 될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정상회담에서 “한국(Korea)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용납할 수 없는 발언이다. 시 주석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해도 용납할 수 없고,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의 발언을 그대로 받아들여 인정했다고 해도 용납할 수 없다.
시 주석이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 주석은 2014년 서울대 강연에서 ‘바다 건너 제주도로 간 서복(徐福)’을 예로 든 적이 있다. 서복은 중국 진나라 진시황 때 불로초를 찾아 동방으로 갔다는 인물로,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온다. 서복이 제주도에 갔다는 건 전설에나 나오는 얘기다. 그러나 시 주석은 2006년 저장 성 서기로 있을 때 제주도를 방문한 이후 서복을 실존 인물로 여기는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다. 서복 이래 한반도가 중국의 일부였다고 여긴다면 큰 착각이다.
전근대(前近代) 시대 중국과 주변국은 조공(朝貢)관계를 맺고 있었다. 조공관계는 동아시아 역사에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보면 중국과 주변국이 마치 제국과 식민지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양에서 주권국의 외교관계와 다를 바 없다는 게 역사학계의 통설이다. 서구 강대국과 약소국에는 힘의 차이에 따른 불평등한 관계가 있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강대국이 약소국을 식민지처럼 부릴 수 없었다. 조공관계가 그랬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의 말만 듣고 중국과 한국이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에 있었던 것처럼 여기고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면 미국 대통령으로서 자질이 의심스럽다. 외교부는 어제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지난 수천 년간 한중관계의 역사에 있어 한국이 중국의 일부가 아니었다는 점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논평하는 데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외교 경로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된 역사 인식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수당(隋唐) 시절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참패한 이후 한반도 거주민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다. 그래서 고려 시대에도 조선 시대에도 중국의 일부로 삼지 않고 주변국으로 놔두고 조공관계에 묶어둔 것이다. 이제 보니 시 주석의 잘못된 역사 인식이 오늘날 북핵 해결과 남북통일에 장애가 되고 있지 않나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데일리]
6. 한반도 급파했다던 칼빈슨호 오긴 오나
북한의 도발 위협에 맞서 지난주 초 한반도로 향했다던 미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이제야 동해를 향해 출발한다고 한다. 지난주까지도 호주군과 훈련을 위해 반대쪽인 호주 해상으로 이동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가능성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태양절’(15일)에도 한반도에서 4800㎞나 떨어진 인도네시아 해역에 있었다고 한다. 10여일이 지나도록 우리 국민들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미국 군사 당국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미 태평양사령부가 지난 8일 칼빈슨호의 한반도 해역 이동 발표 때만 해도 상황은 긴박했다. 미국의 북한 선제타격론이 불거지면서 그야말로 당장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분위기가 흉흉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트럼프 행정부의 ‘거짓말’에 놀아나 소동을 벌인 꼴이 됐다. 미국은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앞뒤 사실 관계를 명확하게 해명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도 입장을 밝혀야 한다. 알면서도 말을 안 했다면 국민을 속인 것이고, 애초부터 몰랐다면 양국 군사정보 교류에 구멍이 뚫렸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한·미동맹 관계에 이상 징후가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는 터다. 며칠 전에도 사드 배치 시점을 놓고 혼선이 벌어졌다. 북핵 해법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미·중 빅딜설’의 실체도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동맹국으로부터 관련 정보를 신속·정확하게 제공받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한반도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나온 펜스 미 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주장도 시기적으로 동맹 가치를 훼손하는 부적절한 처사다.
펜스 부통령은 방한 중에 ‘코리아 패싱’은 없을 것이라며 ‘굳건한 한·미 동맹’을 거듭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행동과 실천이다. 동맹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어느 한쪽의 약점을 틈타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식이라면 바람직한 동맹관계라고 보기 어렵다. 미국이 진정한 동맹국이라면 북핵 위기에 처한 우리 고민에 우선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대북 정책을 어떻게 추진하고 있는지 협의하는 것이 정상적인 관계다. 한반도로 급파했다던 칼빈슨호가 왜 지금에서야 이동을 시작했는지부터 밝혀야 한다.
[세계일보]
7. 미·중 북핵 공조 반갑지만 ‘한국 소외’ 없도록
미 항모 칼빈슨호가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한반도로 향하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워싱턴포스트는 미 해군이 지난 15일 공개한 사진 분석 결과 칼빈슨호가 싱가포르 남쪽 순다해협에 있으며 뱃머리가 인도양 쪽을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국방부는 그제야 “칼빈슨호는 호주 북서쪽 해상에 있다”며 “24시간 내에 동해를 향해 항해할 계획”이라고 했다.
칼빈슨호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고 문제될 것은 없다. 한반도에 급파할지 말지는 전술적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칼빈슨호의 움직임은 미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징후와 중국의 움직임 등 한반도 안보 변수와 민감하게 얽힌 사안이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는지 여부다. 몰랐다면 한·미 공조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이다. ‘4월 북폭설’까지 퍼질 만큼 한반도의 긴장 수위는 어느 때보다 높다.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고서야 위기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북핵 대응에서 소외된 것은 아닌지 우려를 하게 된다.
그런 우려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중국은 다음달 14∼15일 열리는 일대일로 국제협력정상회의에 우리나라를 초청하지 않았다. 이 회의에는 주요 20개국(G20) 정상과 110개국 각료급 인사가 참석한다. ‘옹졸한 중국’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미·중의 공조에도 불구하고 사드 보복 철회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제 “중국이 북한 문제에 협력하는데 중국과 무역전쟁을 해야 하느냐”고 했다. 중국 외교부는 어제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했다”고 했다. 미·중의 교감을 말해 주는 맞장구다. 우리에 대한 미국 태도는 다르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그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과 중국을 대하는 미국의 온도차가 느껴진다. 이런 움직임은 자칫 한반도 위기관리에 대한 주도권을 잃은 채 안팎곱사등이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한반도가 강대국의 놀음판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북핵 위기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중대 변수다. 북한뿐 아니라 미·중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로 문제 해결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미·중의 눈치나 보며 시혜를 구한다면 구한말과 같은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8. ‘오염 범벅’ 미군기지, 美에 원상회복 요구해야
서울 용산 미군기지 지하수에서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환경기준치의 162배를 초과해 검출된 사실이 뒤늦게 공개됐다. 환경부가 그제 밝힌 ‘녹사평역 인근 용산기지 내부 1차 지하수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14개 관측정 가운데 벤젠이 기준치보다 20배 이상 검출된 곳은 4곳이었다. 크실렌, 톨루엔, 에틸벤젠 등 신경독성 등을 일으키는 다른 유해물질도 기준치보다 최고 3배 넘게 나왔다.
한·미 양국은 2015년 5월 용산 기지의 환경오염을 조사했으나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환경부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환경 조항을 근거로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소송을 제기해 이기면서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만시지탄이다.
서울 녹사평역 오염은 2001년 지하수에서 벤젠 등 석유물질이 대량 검출되면서 사회문제로 비화됐다. 하지만 주한미군의 비협조로 기지 내 조사가 이뤄지지 않다가 기지 반환을 앞두고 조사가 실시됐다. 미군이 기지 내 기름 유출사고를 우리 정부에 제대로 알리지 않고 방치하는 바람에 누수된 유류가 지하수를 타고 퍼져 피해 지역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군이 화학물질 등 유해폐기물을 매립하면서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주변 토지와 지하수를 오염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주한미군은 2012년 환경관리기준(EGS)을 개정하면서 유류로 오염된 토양처리기준(TPH) 조항을 삭제해 우리 정부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은 이를 근거로 기지 반환 때 오염을 정화하지 않고 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에 제대로 항의조차 못했다고 한다. 미군의 눈치를 보느라 저자세로 일관했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는 반환될 지역이 오염됐다면 주한미군에 당당히 원상회복을 요구해야 한다. 촉박한 용산 기지 이전 일정으로 인해 미군 측에서 단시일 내 복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향후 우리가 복구한 뒤 미군에게 청구서를 내미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미군도 체류국의 정당한 요구를 수용해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오염기지를 그대로 반환할 경우 한국인들에게 미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킬 우려가 높다.
발암물질 검출 지역은 향후 생태공원이 예정된 지역이다. 미군은 한국 국민이 용산 미군기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매일신문]
9. ‘빈익빈 부익부’ 위화감 조성하는 해외 수학여행
학생들에게 현장학습 기회와 추억을 제공하기 위해 대부분의 학교들이 수학여행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학교에서는 과도한 비용이 드는 해외 수학여행을 강행해 학부모에게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 더구나 저소득층 가정과 학생들에게 해외 수학여행은 ‘추억’보다 ‘상처’를 남기는 학교 행사가 되고 있다.
대구 수성구의 한 사립 고교는 학생 475명과 교직원 등 모두 494명을 대상으로 3박 4일 일정의 수학여행을 보내기로 했는데, 학생 일 인당 비용이 오사카 115만원, 후쿠오카 105만원, 대만 95만원으로 책정돼 원성을 사고 있다. 숙소 등급과 식사의 질, 세부 프로그램에 따라 비용이 달라질 수 있지만, 유사 패키지 여행 상품이 70만~80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비수기인 6월에 494명이 단체여행을 가는 만큼 더 낮출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수학여행의 양극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5년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학생 일 인당 수학여행비가 가장 높은 고교와 가장 낮은 고교는 각각 448만원`2만5천원으로 격차가 무려 179배나 됐다. 상위 10개교와 하위 10개교의 평균 수학여행비도 232만원과 4만2천원으로 이 역시 55배 차이가 났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주춤했던 해외 수학여행을 재개하는 학교들도 늘어나고 있다. 학부모로서는 비용 부담이 크지만 자녀가 차별을 받을까 걱정돼 울며 겨자 먹기로 참가하는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저소득층의 처지다. 저소득층에 10만~20만원 안팎의 수학여행비 보조금을 지원하는 지자체와 교육청`학교가 일부 있지만 이 금액으로는 해외는커녕 제주도도 못 보낸다.
교육 당국은 그래도 수학여행을 주저하는 저소득층 학생에 대한 수학여행 경비 지원액을 더 늘려야 한다. 교육청은 가이드라인을 정해 적정 수학여행 경비 책정과 집행을 관리`감독할 필요가 있다. 학교들도 무턱대고 고비용 해외 수학여행을 고집하기보다 교육`체험 효과가 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
10. 책을 읽지 않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
23일은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 책의 날’이다. 성인 호르디 축일과 대문호 세르반테스의 사망일이 겹치는 이날,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장미를, 여자는 남자에게 책 한 권을 선물하는 풍습에서 비롯됐다. 한국에서는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등에 초콜릿, 사탕 따위를 선물할 뿐, 책을 선물하는 풍경은 보기 어렵다.
어딜 가더라도 책을 펴든 사람은 없고, 머리 숙인 채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사람만 가득하다. 스마트폰으로 채팅이나 게임을 하거나 연예`스포츠 기사를 보는 것이 전부지만, 저마다 진지하기 짝이 없다. 몇 년 전부터는 지하철`버스에서 책이나 신문을 보는 사람조차 보기 어려워졌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자 지식의 보고’라는 말은 구닥다리 유물이나 흘러간 옛노래처럼 느껴지는 시대다. 책을 기피하는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의 참담한 현실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5년 전국 성인 65.3%가 1년 동안 1권 이상의 책을 읽었고, 평균 9.1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성인들의 독서량은 2010년 이후 매년 감소해 전 세계 192개국 중 166위 수준으로 아프리카 국가보다 못하다. 흔히 ‘문화 강국’이나 ‘노벨상’을 언급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나라에서 이를 기대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독서량은 문화 수준의 척도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국가의 미래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매일신문 19일 자 6면에 소개된 박시철 씨 가족 사례는 책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보여준다. 이 가족은 지난해 2천905권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가족 1인당 평균 581권을 읽었다고 하니 놀랍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고, 책 읽기와 도서관 프로그램을 통해 영어를 익히게 했고, 영재교육원에도 입학시켰다고 한다.
책 읽기는 일종의 습관이다. 그 습관을 어릴 때부터 길러줘야 생각하는 힘이 커진다. 자녀에게 책 읽는 습관을 갖게 하는 것은 부모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수불석권(手不釋卷)은 못 하더라도,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가짜 같은 진짜, 진짜 같은 가짜의 진실
세상에는 가짜 아니면 진짜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대종을 이룬다. 사랑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미술품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미술품 진위 문제는 원본도 보지 못한 채 진위를 말하는 자칭 전문가들까지 나타나 사람들을 블랙홀로 빨아들인다. 이런 세태 속에서 그림 감정을 업으로 살아온 버질(제프리 러시)이 정체 모를 여인 클레어(실비아 휙스)를 만나 미스터리한 밀고 당기기 끝에 사랑에 골인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자신이 평생을 모아온 미술관을 능가하는 그림들을 모두 잃고 마는 영화 ‘베스트 오퍼’(2013)는 진짜와 가짜란 모두 자신의 믿음에 달렸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수작이다.
영화 제목인 베스트 오퍼는 경매에서 진정 마음에 드는 물건이나 작품을 만났을 때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지불할 수 있는 최고가를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글쎄 세상 사람 중 몇이나 평생에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버질은 미술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감식안으로 감정 분야의 독보적 존재이자 세기의 경매진행사이다. 결벽증이 있는 버질의 유일한 취미는 아마추어 화가이자 친구인 빌리(도널드 서덜랜드)를 시켜 경매를 통해 여성의 초상화를 낙찰받아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방에 모셔두고 혼자 즐기는 것이다.
그의 컬렉션은 초상화미술관을 능가한다.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어린 소녀의 초상’, 프랑스 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의 ‘비너스의 탄생’, 보카치오 보카치노의 ‘집시소녀’, 알브레히트 뒤러의 ‘엘스베트 투허의 초상’을 비롯해 라파엘, 티치아노, 브론치노, 모딜리아니, 르누아르 등이 망라돼 사조별로 각각 여성들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비교가 가능할 정도이다.
이런 세기의 명화들은 영화를 통해 예술품의 진위를 사랑과 대비시키려는 감독의 속셈의 산물이다. 감독은 그림과 오늘날 로봇의 전신이라 할 18세기 자동인형 ‘오토마톤’을 등장시켜 사랑과 예술 그리고 인생에 대한 절묘한 비유를 통해 제아무리 뛰어난 눈을 가졌다 할지라도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에 등장하는 많은 초상화들도 사실은 ‘눈속임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류의 그림은 인간의 눈의 한계를 최대한 이용한다. 매우 정밀하게 그려져 실제로 사물이 있는 것처럼 현혹시킨다. 관객들은 진짜인 줄 알았다가 속았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요즘 난무하는 트릭아트도 이런 류다.
하지만 장 보드리야르 같은 이는 눈속임 그림을 ‘낯설음’이며, ‘아이러니한 모조물’이라고 보았다. 그저 사물과 똑같이 그려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그 그림이 전에는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라는 말이다. 과거 재현의 시각으로 본 눈속임이 아니라, 사물이 가지고 있는 관념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눈속임 회화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타인과의 관계를 애써 무시했던 버질에게 클레어는 유산으로 받은 오래된 빌라와 그곳의 가구, 미술품, 조각상 등을 경매에 위탁하겠다며 접근한다. 어릴 때부터 은둔했다는 클레어에게 버질은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 같은 듯 다른 두 외톨이는 교감한다. 두 사람의 사랑이 절정을 향해 달릴 즈음 친구 빌리는 경매에서 놓쳤던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어린 소녀의 초상’을 되찾아온다. 북유럽 르네상스 시대 인물화의 대표작으로 미술사학자 조엘 업턴이 “검은 벨벳 쿠션 위에 놓인 유백색의 진주를 닮았다”고 평한 작품이다. 주인공이 관객을 바라보는 특이한 초상이다.
어느 날 클레어는 스스로를 감금했던 자신의 집을 보여주고 버질은 여기서 나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클레어는 마치 풀리지 않는 거미줄에 걸린 것 같다고 답한다. 물론 영화의 결말을 보면 버질이 거미줄에 걸린 셈이지만.
그 후 버질은 경매를 진행해야 하는 일정에도 불구하고 반지를 사들고 클레어의 집을 찾지만 그녀는 집에 없다. 부랴부랴 경매장으로 돌아와 실수를 연발하며 경매를 마친 버질은 사라진 클레어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뛴다. 그 와중에 빌리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이에 빌리는 “인간의 감정은 예술과 같아 위조할 수 있지. 보기엔 진품과 똑같아. 하지만 위조이고, 모두를 속일 수 있지. 기쁨, 고통, 증오, 병, 회복, 심지어 사랑도”라고 귀띔(?)한다.
사라진 클레어 걱정에 여인의 초상화가 걸린 방에서 상념에 잠겨 있던 버질은 클레어가 집안 비밀의 방에 있을지 모른다는 전화를 받는다. 버질은 집으로 뛰어가 클레어를 발견하고 처음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그녀를 찾았다가 괴한들로부터 테러를 당하고 클레어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실려가 살아난다. 이 사건을 계기로 클레어는 세상 밖으로 나오고, 버질은 클레어를 초대해 자신의 결벽증을 고백하면서 그동안 바보처럼 살았다며 평생 모은 여인들의 초상화로 가득한 비밀의 방으로 안내한다.
클레어 빌라의 경매 도록이 만들어지고 경매일을 기다릴 무렵 돌연 클레어가 경매를 취소한다. 은퇴를 결심한 버질의 마지막 경매에서 빌리가 인사를 건네며 그림을 한 점 선물한다.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지만 클레어는 친구들과 외출한 상태. 빌리가 선물한 그림을 가져다 두려고 비밀의 방으로 간 버질은 텅 빈 방을 발견한다. “모든 위조품에는 진품의 미덕이 숨어 있다. 전적으로 동의해요. 당신이 그리울 거예요”라는 기계음만 반복되는 오토마톤만 남아 있다. 급하게 클레어의 집으로 향하지만 아무도 없다. 집 앞 카페의 왜소증환자는 자신의 이름이 클레어라며 저 집은 오랫동안 비어 있던 집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이렇게 끝에 가서야 또 다른 복선을 드러낸다. 클레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빌리가 준 그림에서 그의 사인을 발견하면서 그제야 속았음을 알아챈다. 버질은 신고를 위해 경찰서를 찾지만 곧 돌아서서 클레어와의 행복했던 날들을 회상하며 프라하로 떠난다. 전에 그녀가 말했던 카페에서 그녀를 기다릴 심산으로. 우리는 빌리처럼 가짜라고 알지만 진짜이길 원하는 마음이 워낙 커 알면서도 스스로 속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치 눈속임 그림처럼. 그래서 사기당할 사람은 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는 모양이다. 이번 대선엔 이런 과도한 믿음에서 벗어나 후보를 감정해 보자.
2. [매일경제][매경 프리미엄] 짐 자무쉬, 그만의 스타일이 가득 배인 영화 '미스터리 트레인'
‘미스테리 트레인’은 미국 테네시 주 멤피스를 배경으로 한 세 개 에피소드가 모인 옴니버스 영화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요코하마에서 멀리'. 엘비스 프레슬리를 찾아 멤피스를 찾은 일본인 커플 '준'과 '미츠코'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 커플이 바라보는 생경하고도 매력적인 도시 멤피스의 풍경들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단편들이 관객들에게 의외의 유머를 선사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유령'이다. 주인공 '루이사'는 비행기 운항 문제로 예상치 못하게 멤피스에 발이 묶인다. 루이사에게 멤피스의 하루는 영화 제목처럼 미스테리 그 자체다. 그녀의 발 닿는 곳곳마다 사람들은 그녀를 속여 돈을 뜯어낸다. 더할 나위 없이 고단한 그녀의 하루는 밤 늦도록, 아니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진다. 모텔에서 낯선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 루이사는 자신이 전해들은 엘비스 프레슬리 이야기를 낯선 여자에게 들려준다. 그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루이사는 다음날 새벽 엘비스 프레슬리의 유령을 보게 된다.
마지막 에피소드 '로스트 인 스페이스'는 앞선 단편들에서의 의문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앞선 두 에피소드에서의 공통점은 총소리로 종결된다는 것. 이 총소리에 대해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는다. 하지만 이 총소리는 큰 사건의 범인들과 연관돼 있다. 주인공들의 영향으로 필자 역시 총소리에 크게 집중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에피소드는 예상하지 못한 큰 반전으로 다가왔다. '로스트 인 스페이스'의 주인공은 두 명의 백인 남자들과 한 명의 흑인 남자다. 이들이 벌이는 예측 불가한 사건은 서스펜스와 유머라는 오묘한 조합으로 관객들에게 다양한 매력을 어필하기에 충분하다.
멤피스라는 도시 속 한 모텔을 찾은 다양한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그려낸 영화 ‘미스테리 트레인’. 제목만큼이나 영화 속 캐릭터들은 미스테리 그 자체다. 짐 자무쉬의 영화들에서는 사건보다 독특한 캐릭터들이 인상적인데, 이 영화 역시 그렇다.
결국 여느 옴니버스 작품들처럼 ‘미스테리 트레인’ 속 캐릭터와 사건들 역시 일정 부분 연관성이 있다. 연결고리가 전혀 없을 것 같은 인물들은 저마다의 '멤피스 추억'을 안고 각자의 목적지로 향한다. 여행의 끝에 선 인물들은 나름의 감정이 있을 테다. 그들의 여행을 지켜본 관객들 역시 간접 경험을 통해 인생의 일부를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짐 자무쉬의 영화들을 볼 때마다 여행에 대한 욕구가 솟구친다. 물론 그가 여행을 소재화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외에도 새로운 경험을 자극하는 음악, 미술 등의 예술적 요소들이 여행욕구를 부추긴다.
세상의 모든 개별적인(다양한) 이야기들을 한 가지의 열매로 엮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이야기꾼, 짐 자무쉬. 그의 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는 '짐 자무쉬 특별전 - All About Jim Jarmusch'가 오는 20일부터 진행된다. 재치 있는 이야기와 독창적인 스타일의 영화를 만나보고 싶었던 관객이라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3. [매일경제][매경프리미엄] 브라질은 바나나를 닮았다
휜 바나나의 모양은 브라질을 닮았다. 농장에서 넓은 잎의 바나나 나무들이 서로 엉켜서 자라는 모습은 여러 인종이 싸우지 않고 사는 브라질 같다. 여러 갈래로 시원스럽게 뻗은 바나나 나무의 큰 줄기와 우산만큼 큰 잎은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평화롭게 자란 모습이다. 인공적인 도움이 없이 한 뿌리의 나무에서 일 년에 세 번씩 수확할 수 있고 한 송이에 수십 개의 바나나가 알알이 커가는 모습은 풍요한 브라질의 상징이다. 척박한 땅과 혹독한 날씨를 극복하고 자란 광야의 가시 돋힌 잔목과는 애초부터 신분이 다르다.
바나나는 브라질 사람들을 닮았다. 겉과 속의 색이 크게 다르지 않다. 겉이 검게 변해도 속은 본래 그대로이다. 가시 돋힌 파인애플보다 안팎이 모두 부드럽다. 겉은 노란색 고무처럼 질겨 보여도 안은 한없이 부드럽다. 칼 없이 손으로 쉽게 껍질을 벗겨 먹을 수 있고, 씨와 심도 없어서 먹기에도 편하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게 친절을 베푸는 브라질 사람 같다. 바나나 킥을 잘 차는 브라질 축구는 세계 최고이다.
노란색은 브라질의 색이다. 브라질은 국기 한가운데 일찌감치 금을 상징하는 노란색을 넣었다. 국가대표 축구팀의 노란색 유니폼은 삼바축구의 상징이다. 화려한 삼바 축제에서도 노란색 옷과 치장이 가장 많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진 사탕수수밭도 커가면서 점차 누렇게 변색된다.
브라질 사람들은 흔한 바나나를 좋아한다. 시골에서 바나나는 한 송이에 1,000원도 안되기 때문에 브라질에서는 아주 값싼 것을 말할 때 “바나나 값이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브라질은 유럽계, 아프리카계, 원주민계, 아시아계, 중동계 등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었지만 바나나는 누구나 좋아하는 사회통합의 과일이다.
황량한 사막의 중동에서 말린 대추야자가 요긴한 에너지원이라면 브라질에서는 바나나 농축 젤리, 말랭이가 있다. 아침 식사에서도 바나나는 빠지지 않는다. 비타민도 풍부하고 포만감을 느끼게 해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애용식품이다. 튀기거나 삶은 바나나 요리는 브라질 뷔페에서 필수다.
바나나는 웃음을 주는 과일이다. 70년대 한국의TV 코미디 프로에서 코미디언들이 서로를 넘어뜨리기 위한 수단은 바나나 껍질이었다. 상파울루의 공원에는 작은 원숭이들을 사람의 손바닥, 어깨, 머리까지 유인하기 위해 손가락보다 조금 큰 바나나가가 핵심 수단이다. EU는 비정상적 재배를 막기 위해 판매용 바나나는 너무 휘어지면 안되고 4개 이상 달린 송이여야 한다는 규정을 갖고 있는데 영국은 EU 탈퇴를 선언하면서 “이젠 영국인 스스로 시중에 파는 바나나 각도를 결정할 수 있게 됐다.” 고 기뻐하기도 했다.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말도 있다. 바나나 등 1차 산품을 수출하여 먹고 사는 가난한 중남미 나라를 일부 선진국들이 폄하하는 말이다. 바나나가 나지 않는 나라가 바나나를 조롱할 자격은 없다.
4. [경향신문][문화와 삶] 클래식 음악의 앞날
따뜻한 봄날이 오면 만개한 꽃들만큼이나 여러 공연장에서 음악회가 한창이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각자의 취향에 따라 원하는 음악회를 골라 다닐 수 있을 만큼 주제와 내용도 다양하다. 탄탄한 팬층을 보유한 개성 있는 젊은 연주자들 덕에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는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리는 듯 보인다.
이런 국내 상황과 달리 이미 최고 전성기를 맛본 유럽과 미국의 클래식 음악 시장은 오래전부터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젊은층이 유입되지 않는 클래식 청중의 고령화, 부유층을 위한 음악이라는 인식을 타파하는 것이 시급했다. 2002년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 필에 부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이 청소년 프로젝트였음은 잘 알려진 얘기다.
안무가 로이스터 말둠과 함께 베를린의 청소년 250명을 데리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무대에 올린 건 그중 하나다. 소외계층 아이들이 5주간의 연습 과정에서 겪는 변화를 담담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 <리듬 이즈 잇>은 클래식 음악이 어떤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무상 음악교육의 성공 사례인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19세기 유럽 근대사회의 산물인 음악회장 문화는 20세기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공연과 음반 산업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르러 클래식 음악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고,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자구책을 모색해야 했다.
베를린 필은 ‘디지털 콘서트홀’을 열어 전 세계 클래식 음악 팬들을 끌어들이고, 유명 오페라 공연들은 영상으로 제작되어 극장에서 상영되며, 심지어 젊은이들이 가는 클럽에서 클래식 음악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소셜미디어가 음악가와 청중의 소통을 더욱 친밀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클래식 음악의 존재방식은 시대에 맞게 변모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2016년 봄 뉴욕대학교의 국제 고등연구소는 세계 음악계 주요 인사 22명이 참여하는 ‘클래식 음악의 미래’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휘자이자 작곡가 에사 페카 살로넨,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 작곡가 진은숙 같은 음악가와 세계 주요 음악단체장, 교육기관장, 학자와 비평가 그룹이 3년간 클래식 음악의 현주소를 다각도로 진단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할 것이라 한다. 미래를 예측할 순 없겠지만 클래식 음악이 처한 현재 모습을 성찰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중요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오랫동안 쌓여 온 폐단을 없애고 공정하고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요구가 절박하게 대두되고 있는 때에 클래식 음악계는 어떠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해방 이후 50년간 클래식 음악은 줄곧 주류사회의 지배 문화로 특권을 누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역량 있는 음악가들이 대거 등장하며 향유층도 넓어졌다. 온갖 비리와 부조리가 만연한 가운데에도 기본과 상식을 지키며 힘든 음악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최근 들어 흥미롭고 유의미한 기획과 완성도 높은 연주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단체와 음악가들이 늘어가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우호적이지 않음은 여전히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그들만의 리그’로 비치기 때문일 것이다.
클래식 음악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마련될 수 있을까? 음악을 통한 공감과 설득이 가능한 순간은 그 음악을 하는 인간에게서 열정과 진심이 전해질 때이다. 그런 순간은 서울의 대형 공연장에서만이 아니라 섬마을의 회관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은 과거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감성을 담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창작곡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클래식 음악의 앞날이 어떠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음악이 누군가에게는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데 위로와 용기가 되기도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모르그 가의 살인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모르그 가의 살인(The Murders in the Rue Morgue)’이 1841년 4월 20일 그가 부주간으로 일하던 ‘그레이엄스 매거진(Graham’s Magazine)’에 발표됐다.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의 철학콩트 ‘자디그Zadig’(1747) 등을 앞세우는 이들도 이도 있지만, 다수는 ‘모르그’를 본격 근대 추리소설의 효시로 꼽는다. 포의 탁월한 추론가(탐정) 오귀스트 뒤팽(Auguste Dupin)이 그 작품을 통해 데뷔했고, 추리소설의 원형적 서사 기법이 또 거기서 탄생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가 활약하던 19세기 말 이전, 그러니까 탐정이란 말 자체가 거의 쓰이지 않던 시절의 뒤팽은 전문 탐정이라기보다는 지적 퍼즐 풀이에 심취한 추론가다. ‘모르그’의 명문장 중 하나로 꼽히는 도입부의 이런 문장, “제대로 추론했는지보다 정확하게 관찰했는지에 따라 손에 쥐는 정보에는 수준 차이가 생긴다.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은 무엇을 관찰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분석가는 자신에게 어떤 한계도 두지 않는다. (카드 게임을 할 경우) 게임 자체가 목적이라 할지라도, 게임 외적인 것이 주는 정보를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같은 문장은 당대의 과학 정신이 압축돼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포는 앞서 ‘낸터킷의 아스 고든 핌의 이야기’(1838) 등을 통해 SF소설 기법을 구사하기도 했다.
두뇌 천재들이 흔히 그렇듯, 뒤팽은 은둔적이고 사교적이지도 못하다. 그런 그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화자 ‘나’와 친구가 돼 우연히 신문을 통해 알게 된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 추리를 시작하고, 그의 불친절한 추리 여정을 화자가 관찰자로서 해설해주는 기법은 홈즈와 왓슨의 파트너십으로 이어졌다.
포는 미국 최초의 전업작가 중 한 명이기도 했다. 태어난 이듬해 아버지가 집 나가고 이듬해 어머니까지 숨지면서 고아가 된 그는, 부유한 상인 부부에게 사실상 입양됐지만, 청소년기부터 내내 양부모와 불화하며 대학(버지니아대)도 중퇴했다. 그는 잡지에 시와 산문을 기고해 원고료로 먹고 살았고, 내내 가난했고, 말년까지 공무원이 되고자 지인들에게 청탁을 하고 다녔다. 아마도 그는 스스로를 무직자로 여겨, 자신이 험난한 전업 작가의 첫 길을 여는 중이란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주요신문사설
[서울신문]
1. '전인권 적폐' 공격, 'DJ 골로 보내' …막가는 대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그나마 그 과정에서 이념과 지역감정이 많이 옅어졌다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대선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대선 후보와 각 당 캠프 및 지지자들이 막말과 색깔론, 지역감정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다시 구태의 정치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유권자 수준을 얕잡아 본 네거티브 공세일 뿐이다.
가수 전인권씨는 그제 자신의 공연을 홍보하는 자리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미국 애플사의 설립자인 스티브 잡스에 비유하며 칭찬했다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지지자들로부터 몰매를 맞고 있다. 전씨는 “안철수란 사람도 잡스처럼 완벽증을 갖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얘기가 안 통할 수는 있지만 나쁜 사람은 될 수 없다”고 했다. 문 후보를 비난한 것도 아니고 안 후보를 대놓고 지지하자고 선동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른바 ‘문빠’들은 “적폐 세력 전인권의 공연 예매를 취소하겠다”,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나” 등 ‘문자폭탄’을 날리고 있다. 내 편이 아니면 적폐세력이라는 위험천만한 아집에 빠진 행태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다.
전씨는 지난해 11월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촛불집회에서 절절하게 애국가를 불러 감동을 줬다. 그는 촛불과 태극기 간의 충돌을 우려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박사모가 한 대 때리면 그냥 맞으세요”라고 외쳐 평화적 시위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를 칭송하던 이들 중에는 ‘문빠’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전씨를 불과 넉 달 만에 ‘적폐’라고 패대기칠 수 있나. 이러니 극성스러운 ‘문빠’가 반문 정서를 확산시키는 주범이라는 얘기가 나올 법도 하다.
선거판을 흐리게 하는 퇴행적 언행들은 다른 캠프도 마찬가지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17일 전주 유세에서 “문재인은 대북 송금 특검을 해서 김대중 대통령을 골로 보냈다”며 호남 홀대론을 제기했다. 호남을 볼모로 하는 지역정치에 기대어 표 구걸을 하는 것이 안철수 후보의 새 정치 철학은 아닐 것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막말 전도사’라고 불릴 정도로 하루 걸러 막말을 하고 있다. 17일 대구 유세에 나선 그는 “대구·경북은 보수우파의 상징”이라며 “선거에서 지면 낙동강에 빠져 죽겠다”며 지역감정을 조장했다. 그제 부산 유세에서는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사실상 대북 정책에 한해서 대통령은 김정은”이라고 ‘색깔론’까지 들고나왔다. 아무리 보수표 결집이 급했다고 이런 시대착오적이고 이념적인 공세가 먹힐 것으로 생각하는 그가 딱할 뿐이다.
여전히 선뜻 찍을 후보가 없다고 고민하는 부동층 유권자가 많은 것은 이런 저급한 정치 행태를 보이는 후보들에 대한 극도의 실망감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상대 후보들을 흠집 내는 데만 열을 올리는 것은 스스로 표를 갉아먹는 자해 행위임을 직시하길 바란다.
2. 사법개혁 당위성 확인한 진상조사위 발표
법원행정처가 진보성향 법관들의 사법개혁 움직임을 부당하게 견제하려 했다는 의혹이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는 그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학술대회의 연기와 축소 압박을 가한 점은 적정한 수준과 방법의 정도를 넘어서는 부당한 행위”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의 조직적 관여를 부인했고 ‘사법부 블랙리스트’의 존재 의혹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추단하게 하는 다른 어떠한 정황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일각에선 부실 조사 논란도 일고 있다.
진상조사위는 사태의 발단이 된 판사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 축소를 지시한 당사자는 대법원 고위 간부인 이모 상임위원으로 확인됐고 이를 근거로 법원행정처가 조직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상임위원은 행정처 차장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학술대회 연기와 축소의 필요성을 논의했고 여기서 결정된 내용이 실제로 집행됐다고 한다. 적지 않은 판사들이 어제 내부 통신망 등을 통해 조직적 개입이 없었다는 조사위 발표에 의문을 제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연구회가 전국의 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작하자 법원행정처가 중복 가입 학회를 자동 탈퇴시키겠다고 공지한 것은 객관적 사실이며 이 책임을 특정인에게 떠넘기는 것 자체가 꼼수라는 지적도 많다. 그동안 일선 판사들 사이에선 게시판 글이나 판결 등을 분석해 법관 인사나 연수자 선발 때 활용한다는 설이 무성했지만 이번 조사에서도 이런 의혹까지 해소하지 못했다.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자유로운 학술 활동을 견제한 것은 진상조사위가 지적했듯 사법행정권의 남용이 아닐 수 없다. 헌법상 보장된 학문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사법부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판사는 법률에 규정한 대로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껏 판결해야 한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 사법 신뢰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33위다.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거세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민주적 운영 방안을 포함한 사법제도 개혁 논의가 공론화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국민이 신뢰하지 못하는 사법 시스템은 결국 국가 존립 자체를 뒤흔드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선일보]
3. 국민에 해야 할 말은 일절 않고 '준다'고만 하는 후보들
대선이 20일 앞으로 다가온 19일에도 각 후보가 '무엇 무엇 해주겠다'는 공약 행진을 이어갔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부당한 강제 퇴직을 막는 법을 만든다는 등의 '5060 일자리' 공약을 발표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한국노총을 찾아 "비정규직을 대폭 줄이고 중소기업의 임금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듣기 좋은 얘기다. 그러나 두 유력 후보는 노동 개혁이나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 활성화처럼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진짜 필요한 과제들은 말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 적도 거의 없다. 다른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후보가 기초연금을 올리고 아동수당을 도입한다는 등 수조, 수십조원이 필요한 복지 공약들을 하루가 멀다고 내놓으면서 일시적으로 고통스럽더라도 나라의 미래와 경제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쓴소리는 없고 입만 열면 오로지 '해준다' '해준다'뿐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세계 모든 나라가 천국이 됐을 것이다.
지금 경제를 살리고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구조 개혁이다. 노동과 공공부문·금융 등의 낡은 제도와 관행을 고치고 부실화된 좀비 기업들을 정리해 새로운 산업의 싹이 트도록 해야 한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해 집단이 반발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은 조금 많은 숫자가 반대하면 거의 무조건 입을 닫거나 영합한다.
국회에 발목 잡혀 있는 노동 개혁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후보도, 노동계 반발로 벽에 부닥친 공기업·금융계 성과급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후보도 거의 없다. 13조원의 국민 세금을 지원받아 연명하는 대우조선의 노동자들에 대해 임금·인원 감축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분담하라는 당연한 말도 하지 않는다.
문 후보는 81만개의 공공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면서도 재원 대책에 대해선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국가 부채를 더 늘리든지 세금을 더 걷든지 둘 중의 하나일 테지만 문 후보는 입을 다물고 있다. 안 후보는 교육혁명을 10대 공약 중 하나로 내걸면서도 가장 시급한 대학 구조조정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반발이 있기 때문이다.
미세 먼지 문제가 심각해지자 각 후보는 석탄 발전 감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문 후보는 30년 이상 석탄발전소를 가동 중단하겠다고 했고, 안 후보는 석탄발전 쿼터제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결국 석탄 발전을 줄이는 만큼 원자력 발전을 늘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안 두 후보는 원전도 줄여가겠다고 한다. 유권자 귀에 쓴 소리는 하지 않으려다 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자기모순에 빠져들고 있다.
모든 후보가 4차 산업혁명을 일으키겠다고 한다. 그러려면 규제 개혁이 필수다. 온갖 규제 때문에 드론·자율주행차·원격의료 같은 4차 산업혁명 분야의 비즈니스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낡은 규제를 풀기 위한 규제프리존특별법이나 의료법 개정안, 인터넷 전문은행 특례법 등이 국회에 발목 잡혀 있으나 이 법안들을 통과시키겠다는 말을 하는 후보를 보기 힘들다. 이 역시 이해 집단들의 반발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후보가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기업 활동을 일으킬 방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대신 대기업을 옥죄는 새로운 규제들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국내에선 대기업이라도 글로벌 시장에선 약자(弱者)에 불과하다. 재벌 오너의 전횡은 막아야 하지만 대기업들을 글로벌 경쟁에서 불리하게 만드는 한국식 규제는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후보가 대기업 때리기에만 열중하고 친(親)기업 정책은 말하지 않는다. 당장 머릿수 많은 쪽만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통스러워도, 그래서 선거에 손해 보더라도 국가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은 하겠다'는 후보가 단 한 명 없는 것은 유권자들이 그런 후보를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나라의 장래는 유권자 손에 달린 것이다.
4. 시진핑 "한반도는 中의 일부였다" 이게 中의 對韓 인식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실질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한 말인데 정확한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떤 맥락에서 이런 말이 나왔는지도 확실치 않다. 하지만 많은 중국인이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은 2002년부터 5년간 '역사공정'이라는 국가사업을 통해 인접 국가 역사를 모두 중국사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한반도에 대해서도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했다. 중국인들의 이런 인식에는 20세기 이후 아시아에서 벌어진 엄청난 변화와 현실에 대한 반감과 인접 국가에 대한 전근대적 패권 의식이 담겨 있다.
중국은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국의 설명은 들으려 하지도 않은 채 무조건 거부하고 있다. 더 강력한 일본의 사드 레이더에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용도 자체가 다른 한국 사드만 물고 늘어지고 있다. 이제는 치졸한 보복까지 한다. 결국 사드 자체가 아니라 이 기회에 한국을 길들이고 한·미 동맹에서 조금씩 떼어놓겠다는 것으로밖엔 볼 수 없다. 그 뿌리에 '한반도가 중국의 일부였다'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내용을 밝힌 것을 보면 그가 한국과 한반도 역사에 무지(無知)하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런 미·중 두 나라 정상이 작지 않은 타국에 대해 왜곡된 사실을 주고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똑바로 뜨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동아일보]
5. “한국이 中 일부였다” 시진핑 인식, 한중관계 걸림돌 될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정상회담에서 “한국(Korea)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용납할 수 없는 발언이다. 시 주석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해도 용납할 수 없고,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의 발언을 그대로 받아들여 인정했다고 해도 용납할 수 없다.
시 주석이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 주석은 2014년 서울대 강연에서 ‘바다 건너 제주도로 간 서복(徐福)’을 예로 든 적이 있다. 서복은 중국 진나라 진시황 때 불로초를 찾아 동방으로 갔다는 인물로,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온다. 서복이 제주도에 갔다는 건 전설에나 나오는 얘기다. 그러나 시 주석은 2006년 저장 성 서기로 있을 때 제주도를 방문한 이후 서복을 실존 인물로 여기는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다. 서복 이래 한반도가 중국의 일부였다고 여긴다면 큰 착각이다.
전근대(前近代) 시대 중국과 주변국은 조공(朝貢)관계를 맺고 있었다. 조공관계는 동아시아 역사에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보면 중국과 주변국이 마치 제국과 식민지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양에서 주권국의 외교관계와 다를 바 없다는 게 역사학계의 통설이다. 서구 강대국과 약소국에는 힘의 차이에 따른 불평등한 관계가 있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강대국이 약소국을 식민지처럼 부릴 수 없었다. 조공관계가 그랬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의 말만 듣고 중국과 한국이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에 있었던 것처럼 여기고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면 미국 대통령으로서 자질이 의심스럽다. 외교부는 어제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지난 수천 년간 한중관계의 역사에 있어 한국이 중국의 일부가 아니었다는 점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논평하는 데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외교 경로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된 역사 인식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수당(隋唐) 시절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참패한 이후 한반도 거주민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다. 그래서 고려 시대에도 조선 시대에도 중국의 일부로 삼지 않고 주변국으로 놔두고 조공관계에 묶어둔 것이다. 이제 보니 시 주석의 잘못된 역사 인식이 오늘날 북핵 해결과 남북통일에 장애가 되고 있지 않나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데일리]
6. 한반도 급파했다던 칼빈슨호 오긴 오나
북한의 도발 위협에 맞서 지난주 초 한반도로 향했다던 미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이제야 동해를 향해 출발한다고 한다. 지난주까지도 호주군과 훈련을 위해 반대쪽인 호주 해상으로 이동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가능성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태양절’(15일)에도 한반도에서 4800㎞나 떨어진 인도네시아 해역에 있었다고 한다. 10여일이 지나도록 우리 국민들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미국 군사 당국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미 태평양사령부가 지난 8일 칼빈슨호의 한반도 해역 이동 발표 때만 해도 상황은 긴박했다. 미국의 북한 선제타격론이 불거지면서 그야말로 당장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분위기가 흉흉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트럼프 행정부의 ‘거짓말’에 놀아나 소동을 벌인 꼴이 됐다. 미국은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앞뒤 사실 관계를 명확하게 해명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도 입장을 밝혀야 한다. 알면서도 말을 안 했다면 국민을 속인 것이고, 애초부터 몰랐다면 양국 군사정보 교류에 구멍이 뚫렸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한·미동맹 관계에 이상 징후가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는 터다. 며칠 전에도 사드 배치 시점을 놓고 혼선이 벌어졌다. 북핵 해법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미·중 빅딜설’의 실체도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동맹국으로부터 관련 정보를 신속·정확하게 제공받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한반도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나온 펜스 미 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주장도 시기적으로 동맹 가치를 훼손하는 부적절한 처사다.
펜스 부통령은 방한 중에 ‘코리아 패싱’은 없을 것이라며 ‘굳건한 한·미 동맹’을 거듭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행동과 실천이다. 동맹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어느 한쪽의 약점을 틈타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식이라면 바람직한 동맹관계라고 보기 어렵다. 미국이 진정한 동맹국이라면 북핵 위기에 처한 우리 고민에 우선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대북 정책을 어떻게 추진하고 있는지 협의하는 것이 정상적인 관계다. 한반도로 급파했다던 칼빈슨호가 왜 지금에서야 이동을 시작했는지부터 밝혀야 한다.
[세계일보]
7. 미·중 북핵 공조 반갑지만 ‘한국 소외’ 없도록
미 항모 칼빈슨호가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한반도로 향하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워싱턴포스트는 미 해군이 지난 15일 공개한 사진 분석 결과 칼빈슨호가 싱가포르 남쪽 순다해협에 있으며 뱃머리가 인도양 쪽을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국방부는 그제야 “칼빈슨호는 호주 북서쪽 해상에 있다”며 “24시간 내에 동해를 향해 항해할 계획”이라고 했다.
칼빈슨호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고 문제될 것은 없다. 한반도에 급파할지 말지는 전술적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칼빈슨호의 움직임은 미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징후와 중국의 움직임 등 한반도 안보 변수와 민감하게 얽힌 사안이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는지 여부다. 몰랐다면 한·미 공조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이다. ‘4월 북폭설’까지 퍼질 만큼 한반도의 긴장 수위는 어느 때보다 높다.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고서야 위기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북핵 대응에서 소외된 것은 아닌지 우려를 하게 된다.
그런 우려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중국은 다음달 14∼15일 열리는 일대일로 국제협력정상회의에 우리나라를 초청하지 않았다. 이 회의에는 주요 20개국(G20) 정상과 110개국 각료급 인사가 참석한다. ‘옹졸한 중국’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미·중의 공조에도 불구하고 사드 보복 철회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제 “중국이 북한 문제에 협력하는데 중국과 무역전쟁을 해야 하느냐”고 했다. 중국 외교부는 어제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했다”고 했다. 미·중의 교감을 말해 주는 맞장구다. 우리에 대한 미국 태도는 다르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그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과 중국을 대하는 미국의 온도차가 느껴진다. 이런 움직임은 자칫 한반도 위기관리에 대한 주도권을 잃은 채 안팎곱사등이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한반도가 강대국의 놀음판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북핵 위기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중대 변수다. 북한뿐 아니라 미·중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로 문제 해결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미·중의 눈치나 보며 시혜를 구한다면 구한말과 같은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8. ‘오염 범벅’ 미군기지, 美에 원상회복 요구해야
서울 용산 미군기지 지하수에서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환경기준치의 162배를 초과해 검출된 사실이 뒤늦게 공개됐다. 환경부가 그제 밝힌 ‘녹사평역 인근 용산기지 내부 1차 지하수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14개 관측정 가운데 벤젠이 기준치보다 20배 이상 검출된 곳은 4곳이었다. 크실렌, 톨루엔, 에틸벤젠 등 신경독성 등을 일으키는 다른 유해물질도 기준치보다 최고 3배 넘게 나왔다.
한·미 양국은 2015년 5월 용산 기지의 환경오염을 조사했으나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환경부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환경 조항을 근거로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소송을 제기해 이기면서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만시지탄이다.
서울 녹사평역 오염은 2001년 지하수에서 벤젠 등 석유물질이 대량 검출되면서 사회문제로 비화됐다. 하지만 주한미군의 비협조로 기지 내 조사가 이뤄지지 않다가 기지 반환을 앞두고 조사가 실시됐다. 미군이 기지 내 기름 유출사고를 우리 정부에 제대로 알리지 않고 방치하는 바람에 누수된 유류가 지하수를 타고 퍼져 피해 지역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군이 화학물질 등 유해폐기물을 매립하면서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주변 토지와 지하수를 오염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주한미군은 2012년 환경관리기준(EGS)을 개정하면서 유류로 오염된 토양처리기준(TPH) 조항을 삭제해 우리 정부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은 이를 근거로 기지 반환 때 오염을 정화하지 않고 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에 제대로 항의조차 못했다고 한다. 미군의 눈치를 보느라 저자세로 일관했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는 반환될 지역이 오염됐다면 주한미군에 당당히 원상회복을 요구해야 한다. 촉박한 용산 기지 이전 일정으로 인해 미군 측에서 단시일 내 복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향후 우리가 복구한 뒤 미군에게 청구서를 내미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미군도 체류국의 정당한 요구를 수용해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오염기지를 그대로 반환할 경우 한국인들에게 미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킬 우려가 높다.
발암물질 검출 지역은 향후 생태공원이 예정된 지역이다. 미군은 한국 국민이 용산 미군기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매일신문]
9. ‘빈익빈 부익부’ 위화감 조성하는 해외 수학여행
학생들에게 현장학습 기회와 추억을 제공하기 위해 대부분의 학교들이 수학여행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학교에서는 과도한 비용이 드는 해외 수학여행을 강행해 학부모에게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 더구나 저소득층 가정과 학생들에게 해외 수학여행은 ‘추억’보다 ‘상처’를 남기는 학교 행사가 되고 있다.
대구 수성구의 한 사립 고교는 학생 475명과 교직원 등 모두 494명을 대상으로 3박 4일 일정의 수학여행을 보내기로 했는데, 학생 일 인당 비용이 오사카 115만원, 후쿠오카 105만원, 대만 95만원으로 책정돼 원성을 사고 있다. 숙소 등급과 식사의 질, 세부 프로그램에 따라 비용이 달라질 수 있지만, 유사 패키지 여행 상품이 70만~80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비수기인 6월에 494명이 단체여행을 가는 만큼 더 낮출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수학여행의 양극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5년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학생 일 인당 수학여행비가 가장 높은 고교와 가장 낮은 고교는 각각 448만원`2만5천원으로 격차가 무려 179배나 됐다. 상위 10개교와 하위 10개교의 평균 수학여행비도 232만원과 4만2천원으로 이 역시 55배 차이가 났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주춤했던 해외 수학여행을 재개하는 학교들도 늘어나고 있다. 학부모로서는 비용 부담이 크지만 자녀가 차별을 받을까 걱정돼 울며 겨자 먹기로 참가하는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저소득층의 처지다. 저소득층에 10만~20만원 안팎의 수학여행비 보조금을 지원하는 지자체와 교육청`학교가 일부 있지만 이 금액으로는 해외는커녕 제주도도 못 보낸다.
교육 당국은 그래도 수학여행을 주저하는 저소득층 학생에 대한 수학여행 경비 지원액을 더 늘려야 한다. 교육청은 가이드라인을 정해 적정 수학여행 경비 책정과 집행을 관리`감독할 필요가 있다. 학교들도 무턱대고 고비용 해외 수학여행을 고집하기보다 교육`체험 효과가 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
10. 책을 읽지 않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
23일은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 책의 날’이다. 성인 호르디 축일과 대문호 세르반테스의 사망일이 겹치는 이날,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장미를, 여자는 남자에게 책 한 권을 선물하는 풍습에서 비롯됐다. 한국에서는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등에 초콜릿, 사탕 따위를 선물할 뿐, 책을 선물하는 풍경은 보기 어렵다.
어딜 가더라도 책을 펴든 사람은 없고, 머리 숙인 채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사람만 가득하다. 스마트폰으로 채팅이나 게임을 하거나 연예`스포츠 기사를 보는 것이 전부지만, 저마다 진지하기 짝이 없다. 몇 년 전부터는 지하철`버스에서 책이나 신문을 보는 사람조차 보기 어려워졌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자 지식의 보고’라는 말은 구닥다리 유물이나 흘러간 옛노래처럼 느껴지는 시대다. 책을 기피하는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의 참담한 현실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5년 전국 성인 65.3%가 1년 동안 1권 이상의 책을 읽었고, 평균 9.1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성인들의 독서량은 2010년 이후 매년 감소해 전 세계 192개국 중 166위 수준으로 아프리카 국가보다 못하다. 흔히 ‘문화 강국’이나 ‘노벨상’을 언급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나라에서 이를 기대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독서량은 문화 수준의 척도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국가의 미래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매일신문 19일 자 6면에 소개된 박시철 씨 가족 사례는 책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보여준다. 이 가족은 지난해 2천905권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가족 1인당 평균 581권을 읽었다고 하니 놀랍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고, 책 읽기와 도서관 프로그램을 통해 영어를 익히게 했고, 영재교육원에도 입학시켰다고 한다.
책 읽기는 일종의 습관이다. 그 습관을 어릴 때부터 길러줘야 생각하는 힘이 커진다. 자녀에게 책 읽는 습관을 갖게 하는 것은 부모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수불석권(手不釋卷)은 못 하더라도,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가짜 같은 진짜, 진짜 같은 가짜의 진실
세상에는 가짜 아니면 진짜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대종을 이룬다. 사랑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미술품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미술품 진위 문제는 원본도 보지 못한 채 진위를 말하는 자칭 전문가들까지 나타나 사람들을 블랙홀로 빨아들인다. 이런 세태 속에서 그림 감정을 업으로 살아온 버질(제프리 러시)이 정체 모를 여인 클레어(실비아 휙스)를 만나 미스터리한 밀고 당기기 끝에 사랑에 골인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자신이 평생을 모아온 미술관을 능가하는 그림들을 모두 잃고 마는 영화 ‘베스트 오퍼’(2013)는 진짜와 가짜란 모두 자신의 믿음에 달렸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수작이다.
영화 제목인 베스트 오퍼는 경매에서 진정 마음에 드는 물건이나 작품을 만났을 때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지불할 수 있는 최고가를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글쎄 세상 사람 중 몇이나 평생에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버질은 미술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감식안으로 감정 분야의 독보적 존재이자 세기의 경매진행사이다. 결벽증이 있는 버질의 유일한 취미는 아마추어 화가이자 친구인 빌리(도널드 서덜랜드)를 시켜 경매를 통해 여성의 초상화를 낙찰받아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방에 모셔두고 혼자 즐기는 것이다.
그의 컬렉션은 초상화미술관을 능가한다.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어린 소녀의 초상’, 프랑스 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의 ‘비너스의 탄생’, 보카치오 보카치노의 ‘집시소녀’, 알브레히트 뒤러의 ‘엘스베트 투허의 초상’을 비롯해 라파엘, 티치아노, 브론치노, 모딜리아니, 르누아르 등이 망라돼 사조별로 각각 여성들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비교가 가능할 정도이다.
이런 세기의 명화들은 영화를 통해 예술품의 진위를 사랑과 대비시키려는 감독의 속셈의 산물이다. 감독은 그림과 오늘날 로봇의 전신이라 할 18세기 자동인형 ‘오토마톤’을 등장시켜 사랑과 예술 그리고 인생에 대한 절묘한 비유를 통해 제아무리 뛰어난 눈을 가졌다 할지라도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에 등장하는 많은 초상화들도 사실은 ‘눈속임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류의 그림은 인간의 눈의 한계를 최대한 이용한다. 매우 정밀하게 그려져 실제로 사물이 있는 것처럼 현혹시킨다. 관객들은 진짜인 줄 알았다가 속았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요즘 난무하는 트릭아트도 이런 류다.
하지만 장 보드리야르 같은 이는 눈속임 그림을 ‘낯설음’이며, ‘아이러니한 모조물’이라고 보았다. 그저 사물과 똑같이 그려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그 그림이 전에는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라는 말이다. 과거 재현의 시각으로 본 눈속임이 아니라, 사물이 가지고 있는 관념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눈속임 회화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타인과의 관계를 애써 무시했던 버질에게 클레어는 유산으로 받은 오래된 빌라와 그곳의 가구, 미술품, 조각상 등을 경매에 위탁하겠다며 접근한다. 어릴 때부터 은둔했다는 클레어에게 버질은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 같은 듯 다른 두 외톨이는 교감한다. 두 사람의 사랑이 절정을 향해 달릴 즈음 친구 빌리는 경매에서 놓쳤던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어린 소녀의 초상’을 되찾아온다. 북유럽 르네상스 시대 인물화의 대표작으로 미술사학자 조엘 업턴이 “검은 벨벳 쿠션 위에 놓인 유백색의 진주를 닮았다”고 평한 작품이다. 주인공이 관객을 바라보는 특이한 초상이다.
어느 날 클레어는 스스로를 감금했던 자신의 집을 보여주고 버질은 여기서 나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클레어는 마치 풀리지 않는 거미줄에 걸린 것 같다고 답한다. 물론 영화의 결말을 보면 버질이 거미줄에 걸린 셈이지만.
그 후 버질은 경매를 진행해야 하는 일정에도 불구하고 반지를 사들고 클레어의 집을 찾지만 그녀는 집에 없다. 부랴부랴 경매장으로 돌아와 실수를 연발하며 경매를 마친 버질은 사라진 클레어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뛴다. 그 와중에 빌리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이에 빌리는 “인간의 감정은 예술과 같아 위조할 수 있지. 보기엔 진품과 똑같아. 하지만 위조이고, 모두를 속일 수 있지. 기쁨, 고통, 증오, 병, 회복, 심지어 사랑도”라고 귀띔(?)한다.
사라진 클레어 걱정에 여인의 초상화가 걸린 방에서 상념에 잠겨 있던 버질은 클레어가 집안 비밀의 방에 있을지 모른다는 전화를 받는다. 버질은 집으로 뛰어가 클레어를 발견하고 처음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그녀를 찾았다가 괴한들로부터 테러를 당하고 클레어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실려가 살아난다. 이 사건을 계기로 클레어는 세상 밖으로 나오고, 버질은 클레어를 초대해 자신의 결벽증을 고백하면서 그동안 바보처럼 살았다며 평생 모은 여인들의 초상화로 가득한 비밀의 방으로 안내한다.
클레어 빌라의 경매 도록이 만들어지고 경매일을 기다릴 무렵 돌연 클레어가 경매를 취소한다. 은퇴를 결심한 버질의 마지막 경매에서 빌리가 인사를 건네며 그림을 한 점 선물한다.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지만 클레어는 친구들과 외출한 상태. 빌리가 선물한 그림을 가져다 두려고 비밀의 방으로 간 버질은 텅 빈 방을 발견한다. “모든 위조품에는 진품의 미덕이 숨어 있다. 전적으로 동의해요. 당신이 그리울 거예요”라는 기계음만 반복되는 오토마톤만 남아 있다. 급하게 클레어의 집으로 향하지만 아무도 없다. 집 앞 카페의 왜소증환자는 자신의 이름이 클레어라며 저 집은 오랫동안 비어 있던 집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이렇게 끝에 가서야 또 다른 복선을 드러낸다. 클레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빌리가 준 그림에서 그의 사인을 발견하면서 그제야 속았음을 알아챈다. 버질은 신고를 위해 경찰서를 찾지만 곧 돌아서서 클레어와의 행복했던 날들을 회상하며 프라하로 떠난다. 전에 그녀가 말했던 카페에서 그녀를 기다릴 심산으로. 우리는 빌리처럼 가짜라고 알지만 진짜이길 원하는 마음이 워낙 커 알면서도 스스로 속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치 눈속임 그림처럼. 그래서 사기당할 사람은 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는 모양이다. 이번 대선엔 이런 과도한 믿음에서 벗어나 후보를 감정해 보자.
2. [매일경제][매경 프리미엄] 짐 자무쉬, 그만의 스타일이 가득 배인 영화 '미스터리 트레인'
‘미스테리 트레인’은 미국 테네시 주 멤피스를 배경으로 한 세 개 에피소드가 모인 옴니버스 영화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요코하마에서 멀리'. 엘비스 프레슬리를 찾아 멤피스를 찾은 일본인 커플 '준'과 '미츠코'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 커플이 바라보는 생경하고도 매력적인 도시 멤피스의 풍경들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단편들이 관객들에게 의외의 유머를 선사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유령'이다. 주인공 '루이사'는 비행기 운항 문제로 예상치 못하게 멤피스에 발이 묶인다. 루이사에게 멤피스의 하루는 영화 제목처럼 미스테리 그 자체다. 그녀의 발 닿는 곳곳마다 사람들은 그녀를 속여 돈을 뜯어낸다. 더할 나위 없이 고단한 그녀의 하루는 밤 늦도록, 아니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진다. 모텔에서 낯선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 루이사는 자신이 전해들은 엘비스 프레슬리 이야기를 낯선 여자에게 들려준다. 그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루이사는 다음날 새벽 엘비스 프레슬리의 유령을 보게 된다.
마지막 에피소드 '로스트 인 스페이스'는 앞선 단편들에서의 의문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앞선 두 에피소드에서의 공통점은 총소리로 종결된다는 것. 이 총소리에 대해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는다. 하지만 이 총소리는 큰 사건의 범인들과 연관돼 있다. 주인공들의 영향으로 필자 역시 총소리에 크게 집중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에피소드는 예상하지 못한 큰 반전으로 다가왔다. '로스트 인 스페이스'의 주인공은 두 명의 백인 남자들과 한 명의 흑인 남자다. 이들이 벌이는 예측 불가한 사건은 서스펜스와 유머라는 오묘한 조합으로 관객들에게 다양한 매력을 어필하기에 충분하다.
멤피스라는 도시 속 한 모텔을 찾은 다양한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그려낸 영화 ‘미스테리 트레인’. 제목만큼이나 영화 속 캐릭터들은 미스테리 그 자체다. 짐 자무쉬의 영화들에서는 사건보다 독특한 캐릭터들이 인상적인데, 이 영화 역시 그렇다.
결국 여느 옴니버스 작품들처럼 ‘미스테리 트레인’ 속 캐릭터와 사건들 역시 일정 부분 연관성이 있다. 연결고리가 전혀 없을 것 같은 인물들은 저마다의 '멤피스 추억'을 안고 각자의 목적지로 향한다. 여행의 끝에 선 인물들은 나름의 감정이 있을 테다. 그들의 여행을 지켜본 관객들 역시 간접 경험을 통해 인생의 일부를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짐 자무쉬의 영화들을 볼 때마다 여행에 대한 욕구가 솟구친다. 물론 그가 여행을 소재화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외에도 새로운 경험을 자극하는 음악, 미술 등의 예술적 요소들이 여행욕구를 부추긴다.
세상의 모든 개별적인(다양한) 이야기들을 한 가지의 열매로 엮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이야기꾼, 짐 자무쉬. 그의 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는 '짐 자무쉬 특별전 - All About Jim Jarmusch'가 오는 20일부터 진행된다. 재치 있는 이야기와 독창적인 스타일의 영화를 만나보고 싶었던 관객이라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3. [매일경제][매경프리미엄] 브라질은 바나나를 닮았다
휜 바나나의 모양은 브라질을 닮았다. 농장에서 넓은 잎의 바나나 나무들이 서로 엉켜서 자라는 모습은 여러 인종이 싸우지 않고 사는 브라질 같다. 여러 갈래로 시원스럽게 뻗은 바나나 나무의 큰 줄기와 우산만큼 큰 잎은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평화롭게 자란 모습이다. 인공적인 도움이 없이 한 뿌리의 나무에서 일 년에 세 번씩 수확할 수 있고 한 송이에 수십 개의 바나나가 알알이 커가는 모습은 풍요한 브라질의 상징이다. 척박한 땅과 혹독한 날씨를 극복하고 자란 광야의 가시 돋힌 잔목과는 애초부터 신분이 다르다.
바나나는 브라질 사람들을 닮았다. 겉과 속의 색이 크게 다르지 않다. 겉이 검게 변해도 속은 본래 그대로이다. 가시 돋힌 파인애플보다 안팎이 모두 부드럽다. 겉은 노란색 고무처럼 질겨 보여도 안은 한없이 부드럽다. 칼 없이 손으로 쉽게 껍질을 벗겨 먹을 수 있고, 씨와 심도 없어서 먹기에도 편하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게 친절을 베푸는 브라질 사람 같다. 바나나 킥을 잘 차는 브라질 축구는 세계 최고이다.
노란색은 브라질의 색이다. 브라질은 국기 한가운데 일찌감치 금을 상징하는 노란색을 넣었다. 국가대표 축구팀의 노란색 유니폼은 삼바축구의 상징이다. 화려한 삼바 축제에서도 노란색 옷과 치장이 가장 많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진 사탕수수밭도 커가면서 점차 누렇게 변색된다.
브라질 사람들은 흔한 바나나를 좋아한다. 시골에서 바나나는 한 송이에 1,000원도 안되기 때문에 브라질에서는 아주 값싼 것을 말할 때 “바나나 값이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브라질은 유럽계, 아프리카계, 원주민계, 아시아계, 중동계 등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었지만 바나나는 누구나 좋아하는 사회통합의 과일이다.
황량한 사막의 중동에서 말린 대추야자가 요긴한 에너지원이라면 브라질에서는 바나나 농축 젤리, 말랭이가 있다. 아침 식사에서도 바나나는 빠지지 않는다. 비타민도 풍부하고 포만감을 느끼게 해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애용식품이다. 튀기거나 삶은 바나나 요리는 브라질 뷔페에서 필수다.
바나나는 웃음을 주는 과일이다. 70년대 한국의TV 코미디 프로에서 코미디언들이 서로를 넘어뜨리기 위한 수단은 바나나 껍질이었다. 상파울루의 공원에는 작은 원숭이들을 사람의 손바닥, 어깨, 머리까지 유인하기 위해 손가락보다 조금 큰 바나나가가 핵심 수단이다. EU는 비정상적 재배를 막기 위해 판매용 바나나는 너무 휘어지면 안되고 4개 이상 달린 송이여야 한다는 규정을 갖고 있는데 영국은 EU 탈퇴를 선언하면서 “이젠 영국인 스스로 시중에 파는 바나나 각도를 결정할 수 있게 됐다.” 고 기뻐하기도 했다.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말도 있다. 바나나 등 1차 산품을 수출하여 먹고 사는 가난한 중남미 나라를 일부 선진국들이 폄하하는 말이다. 바나나가 나지 않는 나라가 바나나를 조롱할 자격은 없다.
4. [경향신문][문화와 삶] 클래식 음악의 앞날
따뜻한 봄날이 오면 만개한 꽃들만큼이나 여러 공연장에서 음악회가 한창이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각자의 취향에 따라 원하는 음악회를 골라 다닐 수 있을 만큼 주제와 내용도 다양하다. 탄탄한 팬층을 보유한 개성 있는 젊은 연주자들 덕에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는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리는 듯 보인다.
이런 국내 상황과 달리 이미 최고 전성기를 맛본 유럽과 미국의 클래식 음악 시장은 오래전부터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젊은층이 유입되지 않는 클래식 청중의 고령화, 부유층을 위한 음악이라는 인식을 타파하는 것이 시급했다. 2002년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 필에 부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이 청소년 프로젝트였음은 잘 알려진 얘기다.
안무가 로이스터 말둠과 함께 베를린의 청소년 250명을 데리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무대에 올린 건 그중 하나다. 소외계층 아이들이 5주간의 연습 과정에서 겪는 변화를 담담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 <리듬 이즈 잇>은 클래식 음악이 어떤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무상 음악교육의 성공 사례인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19세기 유럽 근대사회의 산물인 음악회장 문화는 20세기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공연과 음반 산업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르러 클래식 음악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고,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자구책을 모색해야 했다.
베를린 필은 ‘디지털 콘서트홀’을 열어 전 세계 클래식 음악 팬들을 끌어들이고, 유명 오페라 공연들은 영상으로 제작되어 극장에서 상영되며, 심지어 젊은이들이 가는 클럽에서 클래식 음악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소셜미디어가 음악가와 청중의 소통을 더욱 친밀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클래식 음악의 존재방식은 시대에 맞게 변모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2016년 봄 뉴욕대학교의 국제 고등연구소는 세계 음악계 주요 인사 22명이 참여하는 ‘클래식 음악의 미래’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휘자이자 작곡가 에사 페카 살로넨,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 작곡가 진은숙 같은 음악가와 세계 주요 음악단체장, 교육기관장, 학자와 비평가 그룹이 3년간 클래식 음악의 현주소를 다각도로 진단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할 것이라 한다. 미래를 예측할 순 없겠지만 클래식 음악이 처한 현재 모습을 성찰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중요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오랫동안 쌓여 온 폐단을 없애고 공정하고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요구가 절박하게 대두되고 있는 때에 클래식 음악계는 어떠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해방 이후 50년간 클래식 음악은 줄곧 주류사회의 지배 문화로 특권을 누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역량 있는 음악가들이 대거 등장하며 향유층도 넓어졌다. 온갖 비리와 부조리가 만연한 가운데에도 기본과 상식을 지키며 힘든 음악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최근 들어 흥미롭고 유의미한 기획과 완성도 높은 연주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단체와 음악가들이 늘어가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우호적이지 않음은 여전히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그들만의 리그’로 비치기 때문일 것이다.
클래식 음악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마련될 수 있을까? 음악을 통한 공감과 설득이 가능한 순간은 그 음악을 하는 인간에게서 열정과 진심이 전해질 때이다. 그런 순간은 서울의 대형 공연장에서만이 아니라 섬마을의 회관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은 과거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감성을 담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창작곡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클래식 음악의 앞날이 어떠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음악이 누군가에게는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데 위로와 용기가 되기도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모르그 가의 살인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모르그 가의 살인(The Murders in the Rue Morgue)’이 1841년 4월 20일 그가 부주간으로 일하던 ‘그레이엄스 매거진(Graham’s Magazine)’에 발표됐다.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의 철학콩트 ‘자디그Zadig’(1747) 등을 앞세우는 이들도 이도 있지만, 다수는 ‘모르그’를 본격 근대 추리소설의 효시로 꼽는다. 포의 탁월한 추론가(탐정) 오귀스트 뒤팽(Auguste Dupin)이 그 작품을 통해 데뷔했고, 추리소설의 원형적 서사 기법이 또 거기서 탄생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가 활약하던 19세기 말 이전, 그러니까 탐정이란 말 자체가 거의 쓰이지 않던 시절의 뒤팽은 전문 탐정이라기보다는 지적 퍼즐 풀이에 심취한 추론가다. ‘모르그’의 명문장 중 하나로 꼽히는 도입부의 이런 문장, “제대로 추론했는지보다 정확하게 관찰했는지에 따라 손에 쥐는 정보에는 수준 차이가 생긴다.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은 무엇을 관찰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분석가는 자신에게 어떤 한계도 두지 않는다. (카드 게임을 할 경우) 게임 자체가 목적이라 할지라도, 게임 외적인 것이 주는 정보를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같은 문장은 당대의 과학 정신이 압축돼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포는 앞서 ‘낸터킷의 아스 고든 핌의 이야기’(1838) 등을 통해 SF소설 기법을 구사하기도 했다.
두뇌 천재들이 흔히 그렇듯, 뒤팽은 은둔적이고 사교적이지도 못하다. 그런 그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화자 ‘나’와 친구가 돼 우연히 신문을 통해 알게 된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 추리를 시작하고, 그의 불친절한 추리 여정을 화자가 관찰자로서 해설해주는 기법은 홈즈와 왓슨의 파트너십으로 이어졌다.
포는 미국 최초의 전업작가 중 한 명이기도 했다. 태어난 이듬해 아버지가 집 나가고 이듬해 어머니까지 숨지면서 고아가 된 그는, 부유한 상인 부부에게 사실상 입양됐지만, 청소년기부터 내내 양부모와 불화하며 대학(버지니아대)도 중퇴했다. 그는 잡지에 시와 산문을 기고해 원고료로 먹고 살았고, 내내 가난했고, 말년까지 공무원이 되고자 지인들에게 청탁을 하고 다녔다. 아마도 그는 스스로를 무직자로 여겨, 자신이 험난한 전업 작가의 첫 길을 여는 중이란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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