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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연합뉴스]
1. 일본 총리 특사의 부적절한 언행 아쉽다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의 특사로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이 방한 중이다. 니카이 특사는 총 360명에 달하는 대규모 특사단을 이끌고 와 나흘간의 일정을 소화 중이다. 12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아베 총리의 친서를 직접 전달하고 한일관계 발전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말 문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아베 총리를 접견한 데 따른 답방 차원에서 이뤄졌다.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보내는 친서를 전달하는 자리에서 니카이 특사에게 "한국은 상당히 중요한 이웃"이라며 정상회담 성사를 당부했다고 한다. 니카이 특사의 방한이 위안부 합의 등 과거사 문제를 놓고 경색된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되길 바란다.
일본 집권 자민당 내 실질적인 이인자인 니카이 특사는 당내에서 대표적인 지한파 정치인으로 알려졌다. 강경 우익 성향 인사들이 득세한 상황에서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목소리를 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1월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문제로 나가미네 야스마사(長領安政) 주한 일본대사가 소환되자 조기 귀임을 촉구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도 그래서 니카이를 특사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어수선한 한일관계를 정리하고 관계개선의 계기를 만들 적임자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니카이의 입에서 연일 특사답지 못한 가벼운 발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방한 첫날인 10일 전남 목포를 방문해 우리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한 줌의 간계를 꾸미는 일당은 박멸을 해가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걸핏하면 양국을 멀리 떨어뜨리려고 하는 세력이 한국에도, 일본에도 있다"면서 한일우호 관계를 호소하는 문맥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간계를 꾸미는 일당'이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주장하는 한국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는 9일 SBS와의 인터뷰에서도 "돈도 지불했는데 처음부터 재협상하자는 그런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이 일본 총리의 특사로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망각한 처사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니카이 특사의 신중하지 못한 발언에 대해 일본 언론도 비판하고 나섰다. "표현이 과격했다.", "양국 현안을 고려할 때 파문을 불러올 수 있다" 등등 우려 섞인 반응을 쏟아냈다. 한일 양국은 북한 핵·미사일 대처를 비롯한 주요 현안에서 그 어느 때보다 공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양국관계 개선을 가로막고 있는 위안부 합의 재협상은 과거사와 국민 정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여간해선 풀기 어려운 문제다. 국내 정치만 보고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내면 해법은 더 멀어지기 쉽다. 니카이 특사가 아베 총리의 주문대로 한일 정상 간 교류와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가 가능하도록 하려면 상대방 국민을 더 배려하고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한겨레]
2. '강경화 낙마' 밀어붙이는 국민의당의 착각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 3명의 거취 문제가 이번주 초 분수령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국회 시정연설 전에 야당 지도부와 만나, 세 후보자의 청문보고서 채택을 도와달라고 요청할 방침이다. 그러나 지금 분위기론 야당이 인선 절차에 협조할지 몹시 불투명하다. 인수위도 없이 출범한 새 정부의 고위직 인사가 야당 반대에 꽉 막혀 있는 걸 보는 국민들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통해 공직 후보자의 적격, 부적격 여부를 판단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기준은 당리당략이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야당들이 세 후보자의 청문보고서 채택을 미루거나 거부하면서 ‘최소한 한명 낙마’를 주장하는 건 옳지 않다.
국회는 지난주에 김이수·김상조 두 후보자의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할 계획이었지만 돌연 연기했다. 한 사람을 낙마시키려 나머지 두 사람의 청문보고서를 야당이 움켜쥐고 있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공직 인선이 무슨 저잣거리 흥정도 아니고, 만약 문제가 있다면 셋 다 낙마시켜야지 누굴 조건으로 누굴 통과시켜 주겠다는 발상이 말이 되는가 싶다.
‘논란의 핵’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뿐 아니라 국민의당까지 한목소리로 강 후보자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강 후보자는 민간의 연안 여객선 선장으로선 맞을지 모르나 전시 대비 항공모함 함장은 아니다. 대통령은 빨리 자진사퇴시키라”고 요구했다.
군부독재 시절의 민정당 후예인 자유한국당이야 그렇다 치자. 김대중 정부 시절 집권세력이었다고 자부하는 국민의당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 데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기구 경험이 풍부할 뿐 아니라 전직 외교장관 10명이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하는 사람을 연안 여객선 선장이라 하면, 도대체 국민의당이 생각하는 항공모함 함장은 누구인지 묻고 싶다.
국민의당에서도 박지원, 정동영 의원 같은 이들은 강경화 후보자를 동의해주자고 말한다. 그런데 수도권과 호남의 일부 소장 의원들이 ‘야당으로서 존재감’을 주장하며 낙마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한다. 국민의당이 존재감을 발휘하는 게 다당 체제에선 분명 의미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첫 여성 외교부 장관을 낙마시키는 데서 그 존재감을 찾겠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경향신문]
3. 집배원들의 잇단 과로사 이대로 둘 수 없다
장시간 노동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집배노동자들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8일 오전 경기 가평우체국 소속 용모 집배원이 우체국 휴게실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지만 뇌출혈로 사망했다. 용 집배원은 전날 늦은 시간까지 비를 맞으며 일했고, 다음날에도 오전 6시쯤 출근해 출장준비를 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가평우체국에서는 지난해 12월 이후 6개월간 집배원 3명이 잇달아 사망했다. 동료들은 인력부족과 하루 평균 11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과로사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달 22일에는 대구달서우체국 소속 김모 집배원이 1t 화물차와 충돌해 사망했다. 당시 김 집배원은 자신의 구역이 아닌 다른 구역으로 ‘겸배’를 가다 사고를 당했다. ‘겸배’란 업무 중 결원이 발생했을 때 다른 집배원들이 배달 몫을 나눠 하는 것을 말한다.
집배원들은 하루 2000건의 우편물과 택배를 처리하고, 시골에서는 100㎞ 넘게 오토바이로 달린다. 배달 일을 마치면 우체국으로 돌아가 다음날 배달할 우편물을 밤늦게까지 분류하는 집배원들은 과로사로 숨지는 사례가 많다. 집배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집배원 사망사고 9건 중 7건이 과로사였다. 올 들어서도 집배원 11명이 과로·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노동자운동연구소에 따르면 집배원들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888시간에 이른다. 일반 노동자의 2267시간보다 600시간 이상이나 많다.
민주노총·한국노총 등이 매년 선정하는 ‘최악의 살인기업’ 명단에 오르는 우정사업본부의 산업재해율은 일반 노동자의 2배가 넘는다. 일반 노동자 재해율은 0.5%인 데 반해 우정사업본부는 1.03%에 이른다. 특히 ‘토요 택배’로 집배원의 노동여건은 더욱 열악해졌다. 우정사업본부는 2014년 집배원 토요 휴무제를 실시했지만, 1년2개월 만에 토요 택배를 다시 시행했다.
집배원들의 고용 구조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공무원과 공무원이 아닌 정규직, 특수고용직, 간접고용 비정규직, 직접고용 비정규직 등이 있다. 그중 공무원이 아닌 정규직은 민간자본이 만든 별정우체국에서 일하는 집배원이고, 특수고용직은 ‘재택 집배원’으로 우체국으로 출근하지 않고 중간에서 우편물을 받아 배달하는 집배원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원들의 장시간 노동, 상시적 위험, 불안정한 고용구조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집배원들의 ‘죽음의 행렬’이 끝난다.
[매일경제]
4. 악플러에 5년 서고한 법원, 허위비방 인터넷 문화 경종 되길
남을 허위 비방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50대에게 서울중앙지법이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거짓과 중상이 넘쳐나는 인터넷 문화에 경종이 됐으면 한다.
피고인 이 모씨는 국내 최대 규모 장학재단 설립자인 삼영화학 이종환 명예회장을 명예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회장은 사재 3000억원을 출연해 교육재단을 세우는 등 평생 교육사업에 8000억원을 내놓은 인물이다. 그러나 이씨는 '가짜 기부천사 이 회장은 아침저녁으로 일본 군가를 부른다' '일생을 공금 횡령으로 살았다' 등 수십 가지 음해성 글을 남의 아이디로 만든 블로그에 유포했다. 이 중에는 이 회장을 성폭행범으로 묘사한 대목도 있다.
이 회장 측 고소로 재판을 받게 된 이씨는 일반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는데 이것이 자승자박이 됐다.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한 데 비해 배심원 다수가 '징역 5~7년'을 주장했고 법원이 이를 수용해 5년을 선고한 것이다. 명예훼손 혐의에 5년이 선고된 것이나 구형보다 선고 형량이 늘어난 것은 이례적이다.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에서 행해지는 인격말살 행위에 대해 검찰보다 일반인의 시선이 더 엄격했던 것이다.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에서는 특정인을 겨냥한 말초적 비방들이 빛의 속도로 유통되고 확대 재생산된다. 간혹 연예인 또는 사회적 유명인사가 소송을 걸어 알려지는 경우 외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인격적 살인이 행해지고 있다. 특히 다수가 악플 형태로 행하는 폭력 앞에서 개인은 철저히 무력한 존재다. 일일이 대응하기엔 그 수가 너무 많고 이를 처벌할 법적 잣대는 너무 무르다.
최근 모 치킨 프랜차이즈 회장에 의해 강제로 호텔방에 끌려갈 위기에 처했던 여성을 구했던 주부 일행은 그 다음날 인터넷에서 '꽃뱀 사기단'으로 매도당해야 했다. 그중 한 여성은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모은 악플 캡처본만 A4 98쪽 분량"이라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인간의 이성은 익명성과 다중이라는 공간 속에서 쉽게 무장해제되곤 한다. 그러나 심심풀이 댓글이 특정인에겐 평생의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인터넷 명예훼손에 대해 법은 보다 엄격해지고 개인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5. 일자리 추경서 공무원 증원 예산 80억 빼고 통과시키자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 국회에서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한다. 일자리 문제의 심각성과 추경의 필요성을 적극 설명하며 국회 통과를 요청할 예정이다. 야당은 이번 추경이 자연재해, 대량실업 등 국가재정법에 명시된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 데다 일자리 창출 실효성도 의문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1분기 경제성장률(1.1%) 상승 등 경제 상황이 호전되고 있는 점을 들어 추경이 필요한 타이밍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야당은 재정건전성 훼손을 문제 삼고 있어 국회 통과는 큰 진통이 예상된다.
총 11조2000억원 규모의 추경 가운데 하반기 경찰, 소방관, 교사 등 공무원 1만2000명을 추가로 뽑는 예산이 포함됐다. 문 대통령의 공공 일자리 창출의 출발점이라고 하지만 지속적으로 발생할 공무원 인건비 지출을 일회성 추경에 넣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야당의 가장 큰 반대가 있는 것도 이 대목이다.
추경은 부득이한 사유로 돈을 쓸 데가 생겼을 때 응급처치를 하는 용도다. 항구적으로 돈이 들어가는 공무원 증원 비용을 끼워넣는 것은 추경 취지에 맞지 않는다. 한번 자리 잡은 예산은 계속되기 마련이니 더욱 그렇다. 1만2000명 합격자 발표는 12월에 가서야 나기 때문에 올해는 사실상 인건비 부담이 없을 전망이다. 그래서 추경에는 시험·교육훈련 비용으로 80억원이 반영됐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부담이 커질 게 뻔하다. 기획재정부는 1만2000명 중 국가직 4500명 채용에 연간 1200억원, 지방공무원 7500명에 2300억원 등 45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렇게 경직적인 사업은 일반 예산에 편성해 정식 국회 심의를 받는 게 옳다. 정부는 추경을 마중물 삼아 11만개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득 주도 성장을 이루겠다는 계획이다. 이 항목 때문에 새 정부 제1 경제정책인 추경이 야당의 집중 공격을 받는 것보다 공무원 증원 부분만 빼고 일자리 추경을 재편성하면 어떨까 싶다. 총 11조2000억원 규모 예산에서 80억원만 빼면 된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5년간 공무원 일자리 17만4000개 창출을 공약했는데 공무원 증원에 따른 재정 부담과 공무원이 더 생김으로써 얻는 국민적 편익을 면밀히 따져서 국민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서울신문]
6. 경제 민주주의, 고통 분담이 필수 전제 조건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6·10 항쟁 30주년을 맞아 경제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문 대통령은 “6월 항쟁으로 성취한 민주주의가 모든 국민의 삶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구체적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며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를 새로운 과제로 선언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경제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지만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을 해소하는, 경제 민주주의가 구현되지 않고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유명무실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사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경제적 불평등과 소득 분배의 불균형, 청년 실업 등을 방치한 민주주의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문 대통령이 경제적 차원의 불평등을 국가를 흔드는 위기적 요인으로 지목한 것이나 “일자리 위기를 근본 원인이자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동안 통용된 ‘경제 민주화’ 대신 굳이 경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완성할 최후의 과제가 경제 민주주의라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이 궁극적으로 국가의 존립마저 흔든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확인된 역사적 사실이다. 현 정부가 경제 민주주의를 새로운 도전이자 과제로 선언한 것은 도도히 흐르는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을 제대로 짚은 것이지만 우리가 성취한 정치적 민주주의만큼이나 어렵고 험난한 길이 놓여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5년 전 당선자 신분으로 중소기업인들과 만나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혀 국민들의 박수를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자신의 대선 공약인 경제 민주화는 재계의 조직적인 반대와 정권의 실천 의지 부족으로 1년도 안 돼 좌초됐다. 이명박 정부 역시 서민 경제를 앞세워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을 부르짖었지만 일회성 정치적 구호로 막을 내렸다. 현 정부 초기부터 일자리 창출 등을 둘러싸고 재계와 마찰을 빚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 민주주의 실천 과정에서 정부의 공정하고 엄격한 법 집행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경제적 기득권을 거머쥔 대기업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대기업들이 불공정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공정거래법 등 관련법을 강화해 엄정하게 집행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경제 민주주의가 현실에 착근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의지만으로 어렵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계 등 우리 사회 구성원인 경제주체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관건이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경제 기득권을 거머쥐고 있는 대기업들이 스스로 고통 분담에 나서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정부 역시 재벌과 대기업을 개혁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함께 가야 할 동반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계 등 모든 경제 주체들이 동참해야 경제 민주주의의 꽃은 피어날 수 있다.
7. 5개 부처 장관 인선 … 靑·與·野 협치 초심 살리길
문재인 대통령이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을 지명하는 등 5개 부처 장관과 국세청장 등 차관급 4명의 인선을 단행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이제 11개 부처 장관의 인선만 완료됐다. 먼저 완료된 장관 후보자 6명도 아직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해 국정운영에 지장을 받고 있다. 특히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등은 위장전입 등의 문제로 야권의 강력한 사퇴 요구에 직면해 있다.
대통령, 청와대 참모들과 함께 국정을 이끌어야 할 장관 인선이 늦어지는 이유는 인수위 없이 바로 새 정부가 출범한 탓이기도 하지만 능력을 겸비한 완벽한 ‘도덕군자’를 찾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탈세, 위장전입, 논문 표절에 해당하는 인사는 고위공직자로 임명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서 이 기준에 걸리지 않는 인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새로 지명된 후보자들은 이미 하마평에 나왔던 인물들로 능력과 개혁 의지에는 큰 하자가 없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도덕성 측면에서 야당과 일반 국민의 높은 기준을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음주운전,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위장전입 사실이 있다고 청와대는 미리 밝혔다.
어느 정도 해명이 되는 사안임을 확인한 듯하지만 새로 지명된 장관 5명이 야당과 언론의 검증을 통과할 수 있을지도 쉬 장담하기 어렵다. 한·미 정상회담 일정도 잡혀 있고 외교·안보, 경제 문제 등에서 현안들이 산적해 있는데 ‘인사절벽’에 가로막혀 있으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난감한 상황을 돌파하려면 ‘대탕평 인사’에서 답을 찾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탕평 인사를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새 정부의 개혁 의지를 잘 이해하고 추진할 수 있는 인사를 최우선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당장 개혁이 급하지 않은 일정 분야는 야권에도 문을 열어 인력의 풀을 키우면 도덕성 기준을 맞추기도 쉬울 것이고 야권의 반발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대통령에게도 볼 수 없었던 소통을 보여주며 문 대통령은 지금 사상 최고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인사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서 정상적인 국정을 앞당기지 못하면 추진 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야권도 당리당략에 집착해 발목 잡기에 급급하다간 대한민국의 회생에 재를 뿌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청·여·야 모두 협치의 초심을 잊지 말기 바란다.
[조선일보]
8. 대통령 첫 국회 연설, 인사 난맥 푸는 기회로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 국회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에 대한 시정(施政)연설을 한다. 취임 후 34일 만에 하는 첫 국회 연설이다. 취임 후 가장 이른 시일 안에 하는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이라고 한다. 그만큼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문 대통령에게는 추경도 중요하지만 얽혀 있는 인사(人事) 문제를 푸는 것이 더 시급한 실정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야(野) 3당이 모두 '부적격' 입장을 정해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보고서도 채택되지 못한 채 발이 묶여 있다. 문 대통령은 "100% 흠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최선을 다해 국회를 설득하겠다"고 했다.
결국 대통령이 야당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대선 때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들의 공직 인사 배제를 공약했다. 하지만 여러 장관 후보자에게 이런 의혹들이 불거졌다. 앞으로 다른 장관 후보들에게서도 이런 문제가 연발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연설 전 여야 지도부와 만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자리에서부터 허심탄회한 자세로 솔직하게 이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
인사 문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근본적으로는 민주당이 야당 시절 혹독하게 정부 인사를 물고 늘어졌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반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문 대통령과 새 정부가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성찰하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으면 야당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다. 어쩌면 이것이 문제를 푸는 열쇠일 수 있다.
장관 후보자들은 국회 동의가 없어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 만약 문 대통령이 의례적으로 야당 협조를 구하는 모양만 취하고, 장관 임명을 밀어붙인다면 여야는 충돌로 갈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6·10' 30주년 기념사에서 "양보와 타협, 포용하는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고 했다. 첫 시정연설을 '야당 설득에 노력했다'는 보여주기식 명분 쌓기로 삼을지, 진정한 타협의 기회로 활용할지는 문 대통령에게 달렸다.
[중앙일보]
9. '진보 개혁'을 선명하게 예고한 5부 장관지명
어제 문재인 대통령은 김상곤 사회부총리 후보자를 포함해 5명을 장관으로 지명하면서 진보적 대전환을 예고했다. 보수 정권 때 같으면 큰 뉴스가 됐을 법한 해군참모총장 출신인 송영무씨의 국방부 장관 내정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될 정도로 이번 인사는 색깔이 뚜렷하고 파격적이었다.
지난달 30일 검증 장벽을 우회하기 위해 경제장관 등 후보자 4명을 현역 국회의원으로 지명했던 조심스러움에서 탈피한 흔적이 역력하다. 인사 난맥에도 불구하고 80% 안팎의 국정 지지율이 문 대통령과 청와대에 자신감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그러나 변화와 개혁의 방향엔 이의가 없으나 속도와 방식,조건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경기도 교육감 시절 무상급식·혁신교육·학생인권조례로 이념 논란을 주도한 주인공이다. 그가 고인 물의 학교 환경에 개혁의 바람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교육부 장관가 될 경우 일개 광역자치단체를 넘어서 나라 전체의 백년대계를 좌우하는 의사결정자가 되는 것이다. 각별한 신중함이 요구된다.
김상곤 후보자가 평소 밝혀온 교육 구상엔 자사고·특목고의 폐지, 수능시험 절대평가 같이 교육 현장과 학생·학부모의 이해관계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을 혁명적 사안이 수두룩하다. 그런 만큼 충분히 여건을 다져놓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여간 크지 않을 것이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비검사, 비판사, 비사법고시 출신으로 최초의 '문민 법무장관'이란 칭호를 붙이기에 손색이 없다. 안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 때 국가인권위원장으로 발탁됐으나 당시 정부의 '인권 경시' 경향을 비판하면서 임기 중 사퇴할 정도로 소신이 뚜렷했다.
대중적 평판이 높은 학자로 철학과 주장이 이상주의적이어서 검찰 개혁의 적임자일 수 있다. 하지만 2000명 이상의 전국 검사들을 상대로 괴물화된 검찰조직의 권력 지향성을 적법하게 해체하고 안정화시킬 감각과 능력이 있는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국회 청문회가 반드시 검증해야 할 부분이다.
안 후보자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함께 문재인 대표의 민주당 시절 당 혁신위원장 물망에 오를 만큼 이념적으로 코드가 일치하는 인물이다. 대통령·법무장관·민정수석이 정치·이념적으로 너무 같은 색이면 국가 사정(司正) 역량이 균형성을 잃고 집단사고의 폐해에 빠질 수 있다. 더구나 안·조 두 사람 모두 같은 직장(서울대 로스쿨 교수)에서 근무해 ‘연정(연세대 정치학과) 라인’에 이어 ‘서법(서울대 법대) 라인’의 우려를 벌써부터 낳고 있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환경부가 앞으로 ‘수량·수질 관리의 일원화’라는 비대한 권력을 쥐게 될 텐데 너무 큰 모자가 되지 않도록 권한 행사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청와대는 ‘4대강 재자연화’를 강조하고 있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이념화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 않도록 환경부가 중심을 잡아야 할 것이다.
[매일신문]
10. 사시사철 발생하는 AI … 토착화 가능성에 대비해야
지난 3일 제주에서 처음 의심 신고가 접수된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소규모 농가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정부는 전국의 살아있는 가금류의 유통을 12일 0시부터 2주간 전면 금지하는 등 AI 확산 차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나 이번에 발생한 AI는 예사롭지가 않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AI는 날씨가 추운 계절에 발생한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국내에서 발견된 AI 바이러스는 고온과 습도에 약해 겨울과 봄에 걸쳐 확산되다가 여름이 되면 숙지는 현상을 되풀이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014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여름철에 AI가 발생해 큰 피해를 낸 데 이어, 이달 들어 고병원성 AI가 발생해 ‘여름철=AI 안전시기’라는 등식이 이제 깨지고 있다.
AI의 여름철 발생에 더 긴장해야 하는 이유는 이 바이러스의 토착화 가능성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내 AI의 원인으로 철새 등이 꼽혔지만, 예전에 유입된 AI 바이러스가 방역 활동에도 불구하고 근절되지 않은 채 국내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가 이번에 발병한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름철에 AI가 발생했다는 것은 중`소규모 농가와 종계 농장 간의 ‘순환 감염’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의 AI 방역체계가 순환 감염 대응 능력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만일 AI가 토착 전염병으로 변이됐다면 100% 살처분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선택은 AI 방역에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AI 바이러스 토착화로 의심될 만한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해야 한다. AI가 가금류 가축은 물론이고 사람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이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베트남 등 동남아국가처럼 AI가 토착화됐다면 살처분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 가금류 백신의 제한적 사용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을 정부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일단 단기적 대응에 총력을 기울여 이번의 AI 확산을 차단하되, 장기적으로는 관행과 기존의 접근 방식을 벗어난 근본적 해결책도 함께 강구해야 할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씨줄날줄] 美 탄핵열차
미국의 정치사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발의된 것은 모두 3번이다. 1868년 민주당 출신 앤드루 존슨 대통령이 대통령 인사권을 제한하는 관직보유법(Tenure of Office Act)을 위반한 것이 첫 번째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돼 직무가 정지됐다가 그해 연말 상원에서 근소한 차이로 기각돼 대통령으로 복귀한 적이 있다.
두 번째는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단이 됐다. 1974년 공화당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상원에서 탄핵안 통과가 유력시되자 표결 직전 스스로 하야했다. 세 번째는 백악관 인턴이었던 르윈스키 스캔들이다. 1998년 클린턴 대통령은 “부적절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고 증언했다가 거짓으로 드러나 탄핵 소추안이 발의됐다. 하원에서 통과됐으나 상원에서 부결돼 극적으로 살아났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집권 2기 당시 불법 이민 방조 등으로 야당의 탄핵 위협에 직면한 적이 있다.
미국 전체가 다시 탄핵 논란에 휩싸여 있다. 미 대선 중 트럼프 선거 캠프의 ‘러시아 내통’ 의혹이 꼬리를 물었고 대통령 취임 이후 당시 코미 국장이 이끄는 연방수사국(FBI)이 수사에 착수했다.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낙마시킬 정도로 수사 강도가 높아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돌연 ‘직무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코미 국장을 전격 해임했다. 당시에도 수사의 칼날을 피하려는 꼼수라는 시각이 많았다.
해임당한 코미 전 국장이 최근 청문회장에서 “트럼프가 ‘러시아 스캔들’ 수사 중단을 위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메가톤급 폭탄을 터뜨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이를 부인했고 코미 전 국장을 ‘기밀유출’로 역공하면서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지는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 주장이 거짓이라면 사건 은폐를 강압한 사법방해죄가 성립한다.
성 추문에 휘말렸던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모두 사법방해죄로 탄핵 소추를 당했다. 사법방해죄란 피의자가 수사기관에서 조사 또는 수사를 받으면서 거짓말을 하는 행위를 말한다. 한국 형법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미국에선 중요한 범죄다.
이런 이유로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가 탄핵 열차에 올라탔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지금 법치주의가 흔들리는 위기를 맞았다. 먹고사는 문제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택했던 트럼프 지지자들은 혼란스러울 것 같다. 무혈 시민혁명인 촛불시위로 대통령을 탄핵시킨 우리로서는 이번 사태의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2. [매경이코노미][편집장 레터] '안아키' 사태 일으킨 불신과 두려움
최근 ‘안아키’가 화제다.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의 줄임말이란다. 얼핏 뭐가 문제인가 싶지만, ‘아동학대’란 단어와 이어지면서 논란이 됐다.
극단적 자연주의 치료로 알려진 안아키 카페 운영자는 한의사다. 수두백신을 맞히는 대신 수두파티(수두에 걸린 아이와 함께 놀게 함으로써 같이 수두에 걸리게 하는 것)를 통해 자연스레 면역력을 얻자 하고,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에게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라주는 대신 소금물로 씻기고, 햇볕을 쪼이고, 해당 부분을 긁어내어 딱지를 지게 하면 저절로 낫는다는 식의 처방을 내렸다.
카페 회원이 6만명에 달하면서 안아키 방식대로 했다가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이도 여럿 나왔고, 설상가상 의학계에서 ‘비과학적인 치료 방식으로 대중을 호도한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가 이 카페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수사의뢰한 후 카페는 폐쇄됐지만, 한의학계는 한의학계대로 이번 사태가 전 한의학계로 불똥이 튈까봐, 양의학계는 양의학계대로 이번 사태로 인해 양의학에 대한 불신이 커질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왜 요즘 같은 첨단과학의 시대에 ‘안아키’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었을까. 일반인의 의학계의 ‘과잉진료’에 대한 불신과 ‘약의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은 상당하다. 이 불신과 두려움이 바로 ‘안아키’를 성장시킨 자양분이었을 터다.
물론 ‘안아키’의 세세한 각론은 지적할 수 있다. 특히 백신에 대한 인식이 그렇다. 지난해 말 번역본이 나와 한국에서도 돌풍을 일으킨 ‘면역에 관하여’는 미국의 논픽션 작가 율라 비스가 두 아이를 키우면서 면역에 관해 공부하고 사유해낸 결과물을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집단의 면역에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웃들에게 건강을 빚지고 있다”고 단언했다. ‘자신은 백신을 맞았지만 미접종자가 많은 동네에서 사는 사람이, 자신은 맞지 않았지만 접종자가 많은 동네에서 사는 사람보다 홍역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그 근거다.
백신의 효용은 인정하면서도 백신을 맞히면서 ‘찜찜한’ 느낌을 갖는 부모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미국 전국 여론조사에서 응답한 부모의 4분의 1이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가설을 믿는다고 답변했다. 미켈 보쉬 야콥슨 워싱턴대 교수가 하버드의대 교수 등 세계적인 의학 전문가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거쳐 완성해낸 책 ‘의약에서 독약으로’를 보면 그 찜찜한 느낌이 실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해마다 유럽에선 약 20만명이 의약품 부작용으로 사망한다. 약물의 과다 사용은 수돗물까지 오염시켜 프로작, 항생제, 항암치료제, 내분비계 교란물질 등이 수돗물에서 다량으로 검출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얼마나 안일하게 약을 복용하고 있는가. 건강 공포심을 자극하는 예방의학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라고 야콥슨 교수는 소리친다.
작금의 ‘안아키’ 사태를 현대의학의 성과를 무시하는 ‘무식한(?)’ 부모들의 잠시 잘못된 선택이라 치부하는 대신 왜 이렇게까지 불신의 늪이 깊어졌을까를 고민하다 보면 답은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최근 안면동통으로 관련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라는 의사를 만났는데 턱 근육의 문제 같다며 근육완화제를 처방해줬다. 약 처방전을 내미니 약사는 “이게 향정신성의약품이란 건 알고 있나” 물었다. 처방받은 약은 졸피뎀과 유사한 성분의 신경안정제이고 근육완화는 신경안정제의 부수적인 효능 중 하나일 뿐이며 수면제로서의 역할도 하지만 부작용은 얕은 수면 상태에 들어 오히려 가수면 상태에서 고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 약은 ‘간질 치료제’로 유명한 약품이었다.
이 같은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의학의 권위를 부정하는 제정신이 아닌 부모’라며 몰아칠 수 있을까. 이번 사태가 의약업계 굳건한 정보의 비대칭성 구도를 깨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3. [국민일보][한마당] 기후변화와 스포츠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평균기온은 산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 중반 이후 0.85도 상승했다. IPCC는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 추세가 계속되면 2100년엔 지구 온도가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최대 4.8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세계 지도자들도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문제는 행동으로 옮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강화하면 자국의 경제 성장이 악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급기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일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기후변화는 스포츠에도 영향을 미친다. 동계 스포츠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2014년 2월 동계올림픽이 열린 러시아 소치는 ‘더위’로 애를 먹었다. 기온이 영상 15도를 웃돌아 눈이 녹는 바람에 스키 선수들이 당황하기도 했다.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 일부 종목이 원활하게 치러지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과거 40년 동안 대관령 지역의 기온이 크게 올랐다. 1980년대 평균 최저기온은 영하 11도였는데 2000년대엔 영하 9.4도로 높아졌다.
평균기온은 영하 6도에서 영하 3.9도로 올랐다. 적설량도 감소하는 추세다. 1970년대 52.2㎝였던 적설량은 2000년대 들어 무려 26.9㎝로 감소했다. 세계 기후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로 2080년에는 동계올림픽을 개최할 도시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환경운동가 레스터 브라운 지구정책연구소 소장은 “기후위기에 빠진 인류를 위해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80%를 줄여야 한다”며 “기후변화는 스포츠로 따지면 관람 스포츠가 아니라 참여 스포츠”라고 지구촌 사람들에게 호소했다. 자국 이기주의와 성장논리에 빠진 정치인들과 기업가들에 지구의 미래를 맡기는 것은 너무 위험해 보인다.
4. [중앙일보][이달의 예술] 예술이 삶에 얼굴을 내밀 때
지난 몇 주간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서울로 7017의 개장에 맞춰 설치됐던 ‘슈즈트리’를 둘러싼 논란 덕이다. 헌 신발 3만여 켤레를 매달아 놓은 작품은 불결함과 악취에 대한 우려를 낳으며 인터넷을 달궜다. 예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쪽은 대중의 몰이해를 탓했고, 작품 선정 과정의 적절성과 공공미술의 역할을 따지는 목소리는 세금을 낭비한 “흉물”이라는 격앙된 비난에 묻혔다.
각기 다른 취향과 가치관을 가진 모두를 만족시키는 작품은 없다. 하지만 공공미술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 못지않게 관람 주체인 공동체의 의견과 참여가 중요하다.
성북예술창작터가 진행하는 ‘성북예술동’ 프로젝트는 지역공동체와 예술가의 협업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예술인 조합 아트플러그, 예술마을 동네모임과 함께 ‘살랑대는 예술 군도’(6월 15일까지)를 기획했다. 성북동을 중심으로 미술기관과 문화거점, 예술가 작업실 등 섬처럼 흩어진 예술 공간을 연결하는 전시와 투어 로 구성된 주민 참여 프로그램이다. 발품을 팔면 동네 구석구석이 모두 미술관이다.
성균관대 후문에서 성북동으로 넘어오는 성북로 31길의 무허가 건물은 전시장이 되었다. 건물 밖 아카시아 숲과 연결된 공터에도 작품이 놓였다. 삼계탕을 팔던 ‘성 너머 집’ 터엔 박지인의 ‘아카시아 핑크’가 있다. 스티로폼과 합판으로 만든 가벽에 주변에서 발견한 폐품을 연결해서 ‘핫핑크’로 도색했다.
들풀이 우거졌던 공터는 긴장감 넘치는 공간으로 변했다. 새떼를 쫓기 위해 사용하는 알루미늄 허수아비도 예술이 됐다. 홍장오의 ‘72구역’을 채운 허수아비들은 바람과 빛을 동원해서 마을의 장승처럼 공터를 수호한다. 한양도성길 아래 빈집엔 조각이 놓이고 화장실에도 그림이 걸렸다. 인근 한성대 학생들과 지역작가 최병석의 ‘포스트 스튜디오’ 전시다.
기대하지 않던 장소에서 마주치는 예술은 경이롭다. 사람들은 “이게 뭐지?” 하며 다가간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도 보물찾기 하듯 호기심에 차 이곳저곳을 탐색한다. 무심코 지나던 공터와 폐가에 들어선 낯선 작품은 익숙한 삶을 예술로 바꾼다.
예술생태계 형성을 위한 노력은 성북구와 예술가, 주민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성북예술동’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이웃집 예술가’는 벽화나 간판 제작 등 주민의 예술적·디자인적 필요를 작가와 함께 해결하는 주민 주도형 공공미술을 실천했다. 카페와 꽃집, 경찰서가 예술에 자리를 내주었다. 작가는 동네 모임에서 작업을 설명하고 주민들은 마실 다니듯 예술을 누렸다. 예술과 삶 사이에 교집합이 생길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술에 마음을 연다. 공통분모를 늘리는 데는 쌍방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공공미술이 공동체를 위한 미술로 진화하는 방식이다.
5. [서울경제][만파식적] '헝(Hung) 의회'
영국인들은 1970년대 말을 ‘불만의 겨울(Winterof Discontent)’이라고 부른다. 제임스 캘러헌 총리가 1978년 재정위기를 극복하고 인플레를 잡기 위해 임금 인상을 5%로 제한했으나 이에 반발한 노조가 총파업으로 대응하면서 사회가 들끓던 암울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숙원이던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이 연초 정식 발효됐으나 곧바로 몰아닥친 경제 불황과 사회 불안은 이 시절을 겪은 영국인에게 ‘트라우마’다. 여러 분석이 있지만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1974년의 총선 이후 전개된 정치 불안이 지목됐다.
1974년 총선 후 출현한 것이 ‘헝 의회(HungParliament)’다. 사실상 양당제인 영국에서 어느 당도 과반을 점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20세기 초인 1929년 한 차례 경험이 있었으나 이미 오래전 일이라 영국 국민들은 초유의 상황에 크게 당황했다. 최다 득표를 한 노동당이 연정 형태로 총리를 맡았으나 불과 8개월 만인 10월 조기총선을 실시한다. 결과는 절반을 간신히 넘긴(2석) 노동당의 승리였다. 불만의 겨울 동안 위태위태하게 국정을 운영한 캘러헌 총리는 1980년 총선에서 대패함으로써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에게 총리직을 넘긴다.
다음으로 영국에서 헝 의회가 출현한 것은 2010년. 이번에는 집권 노동당을 보수당이 간신히 이겼지만 과반 확보에 실패한다. 여기서 3당인 자유민주당과의 연정으로 총리가 된 사람이 데이비드 캐머런이다. 캐머런 총리는 첫 임기 동안 헝 의회를 막기 위해 ‘고정임기 의회법’ ‘조기해산권 의회 동의’ 등 관련 법을 개정한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과 그는 연임에 성공한다. 그런 캐머런이 지난해 7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국민투표 패배 책임을 지고 사임했고 후임이 같은 당의 테리사 메이 총리다.
지난주 실시된 영국 조기총선에서 집권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헝 의회의 출현이 불가피한 가운데 메이 총리는 일단 사퇴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가 추진하는 ‘하드 브렉시트’ 등의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면서 시장에서 파운드화가 급락하고 있다. 헝 의회 등 소수파 정권과 정치의 불안은 영국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주요신문사설
[연합뉴스]
1. 일본 총리 특사의 부적절한 언행 아쉽다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의 특사로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이 방한 중이다. 니카이 특사는 총 360명에 달하는 대규모 특사단을 이끌고 와 나흘간의 일정을 소화 중이다. 12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아베 총리의 친서를 직접 전달하고 한일관계 발전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말 문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아베 총리를 접견한 데 따른 답방 차원에서 이뤄졌다.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보내는 친서를 전달하는 자리에서 니카이 특사에게 "한국은 상당히 중요한 이웃"이라며 정상회담 성사를 당부했다고 한다. 니카이 특사의 방한이 위안부 합의 등 과거사 문제를 놓고 경색된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되길 바란다.
일본 집권 자민당 내 실질적인 이인자인 니카이 특사는 당내에서 대표적인 지한파 정치인으로 알려졌다. 강경 우익 성향 인사들이 득세한 상황에서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목소리를 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1월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문제로 나가미네 야스마사(長領安政) 주한 일본대사가 소환되자 조기 귀임을 촉구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도 그래서 니카이를 특사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어수선한 한일관계를 정리하고 관계개선의 계기를 만들 적임자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니카이의 입에서 연일 특사답지 못한 가벼운 발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방한 첫날인 10일 전남 목포를 방문해 우리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한 줌의 간계를 꾸미는 일당은 박멸을 해가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걸핏하면 양국을 멀리 떨어뜨리려고 하는 세력이 한국에도, 일본에도 있다"면서 한일우호 관계를 호소하는 문맥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간계를 꾸미는 일당'이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주장하는 한국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는 9일 SBS와의 인터뷰에서도 "돈도 지불했는데 처음부터 재협상하자는 그런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이 일본 총리의 특사로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망각한 처사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니카이 특사의 신중하지 못한 발언에 대해 일본 언론도 비판하고 나섰다. "표현이 과격했다.", "양국 현안을 고려할 때 파문을 불러올 수 있다" 등등 우려 섞인 반응을 쏟아냈다. 한일 양국은 북한 핵·미사일 대처를 비롯한 주요 현안에서 그 어느 때보다 공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양국관계 개선을 가로막고 있는 위안부 합의 재협상은 과거사와 국민 정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여간해선 풀기 어려운 문제다. 국내 정치만 보고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내면 해법은 더 멀어지기 쉽다. 니카이 특사가 아베 총리의 주문대로 한일 정상 간 교류와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가 가능하도록 하려면 상대방 국민을 더 배려하고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한겨레]
2. '강경화 낙마' 밀어붙이는 국민의당의 착각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 3명의 거취 문제가 이번주 초 분수령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국회 시정연설 전에 야당 지도부와 만나, 세 후보자의 청문보고서 채택을 도와달라고 요청할 방침이다. 그러나 지금 분위기론 야당이 인선 절차에 협조할지 몹시 불투명하다. 인수위도 없이 출범한 새 정부의 고위직 인사가 야당 반대에 꽉 막혀 있는 걸 보는 국민들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통해 공직 후보자의 적격, 부적격 여부를 판단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기준은 당리당략이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야당들이 세 후보자의 청문보고서 채택을 미루거나 거부하면서 ‘최소한 한명 낙마’를 주장하는 건 옳지 않다.
국회는 지난주에 김이수·김상조 두 후보자의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할 계획이었지만 돌연 연기했다. 한 사람을 낙마시키려 나머지 두 사람의 청문보고서를 야당이 움켜쥐고 있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공직 인선이 무슨 저잣거리 흥정도 아니고, 만약 문제가 있다면 셋 다 낙마시켜야지 누굴 조건으로 누굴 통과시켜 주겠다는 발상이 말이 되는가 싶다.
‘논란의 핵’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뿐 아니라 국민의당까지 한목소리로 강 후보자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강 후보자는 민간의 연안 여객선 선장으로선 맞을지 모르나 전시 대비 항공모함 함장은 아니다. 대통령은 빨리 자진사퇴시키라”고 요구했다.
군부독재 시절의 민정당 후예인 자유한국당이야 그렇다 치자. 김대중 정부 시절 집권세력이었다고 자부하는 국민의당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 데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기구 경험이 풍부할 뿐 아니라 전직 외교장관 10명이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하는 사람을 연안 여객선 선장이라 하면, 도대체 국민의당이 생각하는 항공모함 함장은 누구인지 묻고 싶다.
국민의당에서도 박지원, 정동영 의원 같은 이들은 강경화 후보자를 동의해주자고 말한다. 그런데 수도권과 호남의 일부 소장 의원들이 ‘야당으로서 존재감’을 주장하며 낙마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한다. 국민의당이 존재감을 발휘하는 게 다당 체제에선 분명 의미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첫 여성 외교부 장관을 낙마시키는 데서 그 존재감을 찾겠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경향신문]
3. 집배원들의 잇단 과로사 이대로 둘 수 없다
장시간 노동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집배노동자들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8일 오전 경기 가평우체국 소속 용모 집배원이 우체국 휴게실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지만 뇌출혈로 사망했다. 용 집배원은 전날 늦은 시간까지 비를 맞으며 일했고, 다음날에도 오전 6시쯤 출근해 출장준비를 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가평우체국에서는 지난해 12월 이후 6개월간 집배원 3명이 잇달아 사망했다. 동료들은 인력부족과 하루 평균 11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과로사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달 22일에는 대구달서우체국 소속 김모 집배원이 1t 화물차와 충돌해 사망했다. 당시 김 집배원은 자신의 구역이 아닌 다른 구역으로 ‘겸배’를 가다 사고를 당했다. ‘겸배’란 업무 중 결원이 발생했을 때 다른 집배원들이 배달 몫을 나눠 하는 것을 말한다.
집배원들은 하루 2000건의 우편물과 택배를 처리하고, 시골에서는 100㎞ 넘게 오토바이로 달린다. 배달 일을 마치면 우체국으로 돌아가 다음날 배달할 우편물을 밤늦게까지 분류하는 집배원들은 과로사로 숨지는 사례가 많다. 집배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집배원 사망사고 9건 중 7건이 과로사였다. 올 들어서도 집배원 11명이 과로·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노동자운동연구소에 따르면 집배원들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888시간에 이른다. 일반 노동자의 2267시간보다 600시간 이상이나 많다.
민주노총·한국노총 등이 매년 선정하는 ‘최악의 살인기업’ 명단에 오르는 우정사업본부의 산업재해율은 일반 노동자의 2배가 넘는다. 일반 노동자 재해율은 0.5%인 데 반해 우정사업본부는 1.03%에 이른다. 특히 ‘토요 택배’로 집배원의 노동여건은 더욱 열악해졌다. 우정사업본부는 2014년 집배원 토요 휴무제를 실시했지만, 1년2개월 만에 토요 택배를 다시 시행했다.
집배원들의 고용 구조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공무원과 공무원이 아닌 정규직, 특수고용직, 간접고용 비정규직, 직접고용 비정규직 등이 있다. 그중 공무원이 아닌 정규직은 민간자본이 만든 별정우체국에서 일하는 집배원이고, 특수고용직은 ‘재택 집배원’으로 우체국으로 출근하지 않고 중간에서 우편물을 받아 배달하는 집배원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원들의 장시간 노동, 상시적 위험, 불안정한 고용구조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집배원들의 ‘죽음의 행렬’이 끝난다.
[매일경제]
4. 악플러에 5년 서고한 법원, 허위비방 인터넷 문화 경종 되길
남을 허위 비방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50대에게 서울중앙지법이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거짓과 중상이 넘쳐나는 인터넷 문화에 경종이 됐으면 한다.
피고인 이 모씨는 국내 최대 규모 장학재단 설립자인 삼영화학 이종환 명예회장을 명예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회장은 사재 3000억원을 출연해 교육재단을 세우는 등 평생 교육사업에 8000억원을 내놓은 인물이다. 그러나 이씨는 '가짜 기부천사 이 회장은 아침저녁으로 일본 군가를 부른다' '일생을 공금 횡령으로 살았다' 등 수십 가지 음해성 글을 남의 아이디로 만든 블로그에 유포했다. 이 중에는 이 회장을 성폭행범으로 묘사한 대목도 있다.
이 회장 측 고소로 재판을 받게 된 이씨는 일반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는데 이것이 자승자박이 됐다.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한 데 비해 배심원 다수가 '징역 5~7년'을 주장했고 법원이 이를 수용해 5년을 선고한 것이다. 명예훼손 혐의에 5년이 선고된 것이나 구형보다 선고 형량이 늘어난 것은 이례적이다.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에서 행해지는 인격말살 행위에 대해 검찰보다 일반인의 시선이 더 엄격했던 것이다.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에서는 특정인을 겨냥한 말초적 비방들이 빛의 속도로 유통되고 확대 재생산된다. 간혹 연예인 또는 사회적 유명인사가 소송을 걸어 알려지는 경우 외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인격적 살인이 행해지고 있다. 특히 다수가 악플 형태로 행하는 폭력 앞에서 개인은 철저히 무력한 존재다. 일일이 대응하기엔 그 수가 너무 많고 이를 처벌할 법적 잣대는 너무 무르다.
최근 모 치킨 프랜차이즈 회장에 의해 강제로 호텔방에 끌려갈 위기에 처했던 여성을 구했던 주부 일행은 그 다음날 인터넷에서 '꽃뱀 사기단'으로 매도당해야 했다. 그중 한 여성은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모은 악플 캡처본만 A4 98쪽 분량"이라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인간의 이성은 익명성과 다중이라는 공간 속에서 쉽게 무장해제되곤 한다. 그러나 심심풀이 댓글이 특정인에겐 평생의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인터넷 명예훼손에 대해 법은 보다 엄격해지고 개인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5. 일자리 추경서 공무원 증원 예산 80억 빼고 통과시키자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 국회에서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한다. 일자리 문제의 심각성과 추경의 필요성을 적극 설명하며 국회 통과를 요청할 예정이다. 야당은 이번 추경이 자연재해, 대량실업 등 국가재정법에 명시된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 데다 일자리 창출 실효성도 의문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1분기 경제성장률(1.1%) 상승 등 경제 상황이 호전되고 있는 점을 들어 추경이 필요한 타이밍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야당은 재정건전성 훼손을 문제 삼고 있어 국회 통과는 큰 진통이 예상된다.
총 11조2000억원 규모의 추경 가운데 하반기 경찰, 소방관, 교사 등 공무원 1만2000명을 추가로 뽑는 예산이 포함됐다. 문 대통령의 공공 일자리 창출의 출발점이라고 하지만 지속적으로 발생할 공무원 인건비 지출을 일회성 추경에 넣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야당의 가장 큰 반대가 있는 것도 이 대목이다.
추경은 부득이한 사유로 돈을 쓸 데가 생겼을 때 응급처치를 하는 용도다. 항구적으로 돈이 들어가는 공무원 증원 비용을 끼워넣는 것은 추경 취지에 맞지 않는다. 한번 자리 잡은 예산은 계속되기 마련이니 더욱 그렇다. 1만2000명 합격자 발표는 12월에 가서야 나기 때문에 올해는 사실상 인건비 부담이 없을 전망이다. 그래서 추경에는 시험·교육훈련 비용으로 80억원이 반영됐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부담이 커질 게 뻔하다. 기획재정부는 1만2000명 중 국가직 4500명 채용에 연간 1200억원, 지방공무원 7500명에 2300억원 등 45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렇게 경직적인 사업은 일반 예산에 편성해 정식 국회 심의를 받는 게 옳다. 정부는 추경을 마중물 삼아 11만개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득 주도 성장을 이루겠다는 계획이다. 이 항목 때문에 새 정부 제1 경제정책인 추경이 야당의 집중 공격을 받는 것보다 공무원 증원 부분만 빼고 일자리 추경을 재편성하면 어떨까 싶다. 총 11조2000억원 규모 예산에서 80억원만 빼면 된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5년간 공무원 일자리 17만4000개 창출을 공약했는데 공무원 증원에 따른 재정 부담과 공무원이 더 생김으로써 얻는 국민적 편익을 면밀히 따져서 국민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서울신문]
6. 경제 민주주의, 고통 분담이 필수 전제 조건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6·10 항쟁 30주년을 맞아 경제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문 대통령은 “6월 항쟁으로 성취한 민주주의가 모든 국민의 삶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구체적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며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를 새로운 과제로 선언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경제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지만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을 해소하는, 경제 민주주의가 구현되지 않고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유명무실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사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경제적 불평등과 소득 분배의 불균형, 청년 실업 등을 방치한 민주주의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문 대통령이 경제적 차원의 불평등을 국가를 흔드는 위기적 요인으로 지목한 것이나 “일자리 위기를 근본 원인이자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동안 통용된 ‘경제 민주화’ 대신 굳이 경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완성할 최후의 과제가 경제 민주주의라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이 궁극적으로 국가의 존립마저 흔든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확인된 역사적 사실이다. 현 정부가 경제 민주주의를 새로운 도전이자 과제로 선언한 것은 도도히 흐르는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을 제대로 짚은 것이지만 우리가 성취한 정치적 민주주의만큼이나 어렵고 험난한 길이 놓여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5년 전 당선자 신분으로 중소기업인들과 만나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혀 국민들의 박수를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자신의 대선 공약인 경제 민주화는 재계의 조직적인 반대와 정권의 실천 의지 부족으로 1년도 안 돼 좌초됐다. 이명박 정부 역시 서민 경제를 앞세워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을 부르짖었지만 일회성 정치적 구호로 막을 내렸다. 현 정부 초기부터 일자리 창출 등을 둘러싸고 재계와 마찰을 빚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 민주주의 실천 과정에서 정부의 공정하고 엄격한 법 집행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경제적 기득권을 거머쥔 대기업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대기업들이 불공정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공정거래법 등 관련법을 강화해 엄정하게 집행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경제 민주주의가 현실에 착근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의지만으로 어렵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계 등 우리 사회 구성원인 경제주체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관건이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경제 기득권을 거머쥐고 있는 대기업들이 스스로 고통 분담에 나서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정부 역시 재벌과 대기업을 개혁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함께 가야 할 동반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계 등 모든 경제 주체들이 동참해야 경제 민주주의의 꽃은 피어날 수 있다.
7. 5개 부처 장관 인선 … 靑·與·野 협치 초심 살리길
문재인 대통령이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을 지명하는 등 5개 부처 장관과 국세청장 등 차관급 4명의 인선을 단행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이제 11개 부처 장관의 인선만 완료됐다. 먼저 완료된 장관 후보자 6명도 아직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해 국정운영에 지장을 받고 있다. 특히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등은 위장전입 등의 문제로 야권의 강력한 사퇴 요구에 직면해 있다.
대통령, 청와대 참모들과 함께 국정을 이끌어야 할 장관 인선이 늦어지는 이유는 인수위 없이 바로 새 정부가 출범한 탓이기도 하지만 능력을 겸비한 완벽한 ‘도덕군자’를 찾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탈세, 위장전입, 논문 표절에 해당하는 인사는 고위공직자로 임명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서 이 기준에 걸리지 않는 인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새로 지명된 후보자들은 이미 하마평에 나왔던 인물들로 능력과 개혁 의지에는 큰 하자가 없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도덕성 측면에서 야당과 일반 국민의 높은 기준을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음주운전,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위장전입 사실이 있다고 청와대는 미리 밝혔다.
어느 정도 해명이 되는 사안임을 확인한 듯하지만 새로 지명된 장관 5명이 야당과 언론의 검증을 통과할 수 있을지도 쉬 장담하기 어렵다. 한·미 정상회담 일정도 잡혀 있고 외교·안보, 경제 문제 등에서 현안들이 산적해 있는데 ‘인사절벽’에 가로막혀 있으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난감한 상황을 돌파하려면 ‘대탕평 인사’에서 답을 찾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탕평 인사를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새 정부의 개혁 의지를 잘 이해하고 추진할 수 있는 인사를 최우선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당장 개혁이 급하지 않은 일정 분야는 야권에도 문을 열어 인력의 풀을 키우면 도덕성 기준을 맞추기도 쉬울 것이고 야권의 반발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대통령에게도 볼 수 없었던 소통을 보여주며 문 대통령은 지금 사상 최고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인사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서 정상적인 국정을 앞당기지 못하면 추진 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야권도 당리당략에 집착해 발목 잡기에 급급하다간 대한민국의 회생에 재를 뿌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청·여·야 모두 협치의 초심을 잊지 말기 바란다.
[조선일보]
8. 대통령 첫 국회 연설, 인사 난맥 푸는 기회로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 국회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에 대한 시정(施政)연설을 한다. 취임 후 34일 만에 하는 첫 국회 연설이다. 취임 후 가장 이른 시일 안에 하는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이라고 한다. 그만큼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문 대통령에게는 추경도 중요하지만 얽혀 있는 인사(人事) 문제를 푸는 것이 더 시급한 실정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야(野) 3당이 모두 '부적격' 입장을 정해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보고서도 채택되지 못한 채 발이 묶여 있다. 문 대통령은 "100% 흠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최선을 다해 국회를 설득하겠다"고 했다.
결국 대통령이 야당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대선 때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들의 공직 인사 배제를 공약했다. 하지만 여러 장관 후보자에게 이런 의혹들이 불거졌다. 앞으로 다른 장관 후보들에게서도 이런 문제가 연발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연설 전 여야 지도부와 만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자리에서부터 허심탄회한 자세로 솔직하게 이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
인사 문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근본적으로는 민주당이 야당 시절 혹독하게 정부 인사를 물고 늘어졌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반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문 대통령과 새 정부가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성찰하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으면 야당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다. 어쩌면 이것이 문제를 푸는 열쇠일 수 있다.
장관 후보자들은 국회 동의가 없어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 만약 문 대통령이 의례적으로 야당 협조를 구하는 모양만 취하고, 장관 임명을 밀어붙인다면 여야는 충돌로 갈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6·10' 30주년 기념사에서 "양보와 타협, 포용하는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고 했다. 첫 시정연설을 '야당 설득에 노력했다'는 보여주기식 명분 쌓기로 삼을지, 진정한 타협의 기회로 활용할지는 문 대통령에게 달렸다.
[중앙일보]
9. '진보 개혁'을 선명하게 예고한 5부 장관지명
어제 문재인 대통령은 김상곤 사회부총리 후보자를 포함해 5명을 장관으로 지명하면서 진보적 대전환을 예고했다. 보수 정권 때 같으면 큰 뉴스가 됐을 법한 해군참모총장 출신인 송영무씨의 국방부 장관 내정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될 정도로 이번 인사는 색깔이 뚜렷하고 파격적이었다.
지난달 30일 검증 장벽을 우회하기 위해 경제장관 등 후보자 4명을 현역 국회의원으로 지명했던 조심스러움에서 탈피한 흔적이 역력하다. 인사 난맥에도 불구하고 80% 안팎의 국정 지지율이 문 대통령과 청와대에 자신감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그러나 변화와 개혁의 방향엔 이의가 없으나 속도와 방식,조건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경기도 교육감 시절 무상급식·혁신교육·학생인권조례로 이념 논란을 주도한 주인공이다. 그가 고인 물의 학교 환경에 개혁의 바람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교육부 장관가 될 경우 일개 광역자치단체를 넘어서 나라 전체의 백년대계를 좌우하는 의사결정자가 되는 것이다. 각별한 신중함이 요구된다.
김상곤 후보자가 평소 밝혀온 교육 구상엔 자사고·특목고의 폐지, 수능시험 절대평가 같이 교육 현장과 학생·학부모의 이해관계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을 혁명적 사안이 수두룩하다. 그런 만큼 충분히 여건을 다져놓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여간 크지 않을 것이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비검사, 비판사, 비사법고시 출신으로 최초의 '문민 법무장관'이란 칭호를 붙이기에 손색이 없다. 안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 때 국가인권위원장으로 발탁됐으나 당시 정부의 '인권 경시' 경향을 비판하면서 임기 중 사퇴할 정도로 소신이 뚜렷했다.
대중적 평판이 높은 학자로 철학과 주장이 이상주의적이어서 검찰 개혁의 적임자일 수 있다. 하지만 2000명 이상의 전국 검사들을 상대로 괴물화된 검찰조직의 권력 지향성을 적법하게 해체하고 안정화시킬 감각과 능력이 있는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국회 청문회가 반드시 검증해야 할 부분이다.
안 후보자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함께 문재인 대표의 민주당 시절 당 혁신위원장 물망에 오를 만큼 이념적으로 코드가 일치하는 인물이다. 대통령·법무장관·민정수석이 정치·이념적으로 너무 같은 색이면 국가 사정(司正) 역량이 균형성을 잃고 집단사고의 폐해에 빠질 수 있다. 더구나 안·조 두 사람 모두 같은 직장(서울대 로스쿨 교수)에서 근무해 ‘연정(연세대 정치학과) 라인’에 이어 ‘서법(서울대 법대) 라인’의 우려를 벌써부터 낳고 있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환경부가 앞으로 ‘수량·수질 관리의 일원화’라는 비대한 권력을 쥐게 될 텐데 너무 큰 모자가 되지 않도록 권한 행사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청와대는 ‘4대강 재자연화’를 강조하고 있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이념화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 않도록 환경부가 중심을 잡아야 할 것이다.
[매일신문]
10. 사시사철 발생하는 AI … 토착화 가능성에 대비해야
지난 3일 제주에서 처음 의심 신고가 접수된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소규모 농가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정부는 전국의 살아있는 가금류의 유통을 12일 0시부터 2주간 전면 금지하는 등 AI 확산 차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나 이번에 발생한 AI는 예사롭지가 않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AI는 날씨가 추운 계절에 발생한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국내에서 발견된 AI 바이러스는 고온과 습도에 약해 겨울과 봄에 걸쳐 확산되다가 여름이 되면 숙지는 현상을 되풀이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014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여름철에 AI가 발생해 큰 피해를 낸 데 이어, 이달 들어 고병원성 AI가 발생해 ‘여름철=AI 안전시기’라는 등식이 이제 깨지고 있다.
AI의 여름철 발생에 더 긴장해야 하는 이유는 이 바이러스의 토착화 가능성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내 AI의 원인으로 철새 등이 꼽혔지만, 예전에 유입된 AI 바이러스가 방역 활동에도 불구하고 근절되지 않은 채 국내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가 이번에 발병한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름철에 AI가 발생했다는 것은 중`소규모 농가와 종계 농장 간의 ‘순환 감염’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의 AI 방역체계가 순환 감염 대응 능력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만일 AI가 토착 전염병으로 변이됐다면 100% 살처분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선택은 AI 방역에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AI 바이러스 토착화로 의심될 만한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해야 한다. AI가 가금류 가축은 물론이고 사람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이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베트남 등 동남아국가처럼 AI가 토착화됐다면 살처분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 가금류 백신의 제한적 사용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을 정부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일단 단기적 대응에 총력을 기울여 이번의 AI 확산을 차단하되, 장기적으로는 관행과 기존의 접근 방식을 벗어난 근본적 해결책도 함께 강구해야 할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씨줄날줄] 美 탄핵열차
미국의 정치사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발의된 것은 모두 3번이다. 1868년 민주당 출신 앤드루 존슨 대통령이 대통령 인사권을 제한하는 관직보유법(Tenure of Office Act)을 위반한 것이 첫 번째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돼 직무가 정지됐다가 그해 연말 상원에서 근소한 차이로 기각돼 대통령으로 복귀한 적이 있다.
두 번째는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단이 됐다. 1974년 공화당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상원에서 탄핵안 통과가 유력시되자 표결 직전 스스로 하야했다. 세 번째는 백악관 인턴이었던 르윈스키 스캔들이다. 1998년 클린턴 대통령은 “부적절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고 증언했다가 거짓으로 드러나 탄핵 소추안이 발의됐다. 하원에서 통과됐으나 상원에서 부결돼 극적으로 살아났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집권 2기 당시 불법 이민 방조 등으로 야당의 탄핵 위협에 직면한 적이 있다.
미국 전체가 다시 탄핵 논란에 휩싸여 있다. 미 대선 중 트럼프 선거 캠프의 ‘러시아 내통’ 의혹이 꼬리를 물었고 대통령 취임 이후 당시 코미 국장이 이끄는 연방수사국(FBI)이 수사에 착수했다.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낙마시킬 정도로 수사 강도가 높아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돌연 ‘직무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코미 국장을 전격 해임했다. 당시에도 수사의 칼날을 피하려는 꼼수라는 시각이 많았다.
해임당한 코미 전 국장이 최근 청문회장에서 “트럼프가 ‘러시아 스캔들’ 수사 중단을 위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메가톤급 폭탄을 터뜨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이를 부인했고 코미 전 국장을 ‘기밀유출’로 역공하면서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지는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 주장이 거짓이라면 사건 은폐를 강압한 사법방해죄가 성립한다.
성 추문에 휘말렸던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모두 사법방해죄로 탄핵 소추를 당했다. 사법방해죄란 피의자가 수사기관에서 조사 또는 수사를 받으면서 거짓말을 하는 행위를 말한다. 한국 형법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미국에선 중요한 범죄다.
이런 이유로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가 탄핵 열차에 올라탔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지금 법치주의가 흔들리는 위기를 맞았다. 먹고사는 문제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택했던 트럼프 지지자들은 혼란스러울 것 같다. 무혈 시민혁명인 촛불시위로 대통령을 탄핵시킨 우리로서는 이번 사태의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2. [매경이코노미][편집장 레터] '안아키' 사태 일으킨 불신과 두려움
최근 ‘안아키’가 화제다.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의 줄임말이란다. 얼핏 뭐가 문제인가 싶지만, ‘아동학대’란 단어와 이어지면서 논란이 됐다.
극단적 자연주의 치료로 알려진 안아키 카페 운영자는 한의사다. 수두백신을 맞히는 대신 수두파티(수두에 걸린 아이와 함께 놀게 함으로써 같이 수두에 걸리게 하는 것)를 통해 자연스레 면역력을 얻자 하고,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에게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라주는 대신 소금물로 씻기고, 햇볕을 쪼이고, 해당 부분을 긁어내어 딱지를 지게 하면 저절로 낫는다는 식의 처방을 내렸다.
카페 회원이 6만명에 달하면서 안아키 방식대로 했다가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이도 여럿 나왔고, 설상가상 의학계에서 ‘비과학적인 치료 방식으로 대중을 호도한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가 이 카페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수사의뢰한 후 카페는 폐쇄됐지만, 한의학계는 한의학계대로 이번 사태가 전 한의학계로 불똥이 튈까봐, 양의학계는 양의학계대로 이번 사태로 인해 양의학에 대한 불신이 커질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왜 요즘 같은 첨단과학의 시대에 ‘안아키’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었을까. 일반인의 의학계의 ‘과잉진료’에 대한 불신과 ‘약의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은 상당하다. 이 불신과 두려움이 바로 ‘안아키’를 성장시킨 자양분이었을 터다.
물론 ‘안아키’의 세세한 각론은 지적할 수 있다. 특히 백신에 대한 인식이 그렇다. 지난해 말 번역본이 나와 한국에서도 돌풍을 일으킨 ‘면역에 관하여’는 미국의 논픽션 작가 율라 비스가 두 아이를 키우면서 면역에 관해 공부하고 사유해낸 결과물을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집단의 면역에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웃들에게 건강을 빚지고 있다”고 단언했다. ‘자신은 백신을 맞았지만 미접종자가 많은 동네에서 사는 사람이, 자신은 맞지 않았지만 접종자가 많은 동네에서 사는 사람보다 홍역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그 근거다.
백신의 효용은 인정하면서도 백신을 맞히면서 ‘찜찜한’ 느낌을 갖는 부모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미국 전국 여론조사에서 응답한 부모의 4분의 1이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가설을 믿는다고 답변했다. 미켈 보쉬 야콥슨 워싱턴대 교수가 하버드의대 교수 등 세계적인 의학 전문가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거쳐 완성해낸 책 ‘의약에서 독약으로’를 보면 그 찜찜한 느낌이 실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해마다 유럽에선 약 20만명이 의약품 부작용으로 사망한다. 약물의 과다 사용은 수돗물까지 오염시켜 프로작, 항생제, 항암치료제, 내분비계 교란물질 등이 수돗물에서 다량으로 검출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얼마나 안일하게 약을 복용하고 있는가. 건강 공포심을 자극하는 예방의학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라고 야콥슨 교수는 소리친다.
작금의 ‘안아키’ 사태를 현대의학의 성과를 무시하는 ‘무식한(?)’ 부모들의 잠시 잘못된 선택이라 치부하는 대신 왜 이렇게까지 불신의 늪이 깊어졌을까를 고민하다 보면 답은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최근 안면동통으로 관련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라는 의사를 만났는데 턱 근육의 문제 같다며 근육완화제를 처방해줬다. 약 처방전을 내미니 약사는 “이게 향정신성의약품이란 건 알고 있나” 물었다. 처방받은 약은 졸피뎀과 유사한 성분의 신경안정제이고 근육완화는 신경안정제의 부수적인 효능 중 하나일 뿐이며 수면제로서의 역할도 하지만 부작용은 얕은 수면 상태에 들어 오히려 가수면 상태에서 고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 약은 ‘간질 치료제’로 유명한 약품이었다.
이 같은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의학의 권위를 부정하는 제정신이 아닌 부모’라며 몰아칠 수 있을까. 이번 사태가 의약업계 굳건한 정보의 비대칭성 구도를 깨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3. [국민일보][한마당] 기후변화와 스포츠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평균기온은 산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 중반 이후 0.85도 상승했다. IPCC는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 추세가 계속되면 2100년엔 지구 온도가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최대 4.8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세계 지도자들도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문제는 행동으로 옮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강화하면 자국의 경제 성장이 악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급기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일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기후변화는 스포츠에도 영향을 미친다. 동계 스포츠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2014년 2월 동계올림픽이 열린 러시아 소치는 ‘더위’로 애를 먹었다. 기온이 영상 15도를 웃돌아 눈이 녹는 바람에 스키 선수들이 당황하기도 했다.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 일부 종목이 원활하게 치러지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과거 40년 동안 대관령 지역의 기온이 크게 올랐다. 1980년대 평균 최저기온은 영하 11도였는데 2000년대엔 영하 9.4도로 높아졌다.
평균기온은 영하 6도에서 영하 3.9도로 올랐다. 적설량도 감소하는 추세다. 1970년대 52.2㎝였던 적설량은 2000년대 들어 무려 26.9㎝로 감소했다. 세계 기후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로 2080년에는 동계올림픽을 개최할 도시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환경운동가 레스터 브라운 지구정책연구소 소장은 “기후위기에 빠진 인류를 위해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80%를 줄여야 한다”며 “기후변화는 스포츠로 따지면 관람 스포츠가 아니라 참여 스포츠”라고 지구촌 사람들에게 호소했다. 자국 이기주의와 성장논리에 빠진 정치인들과 기업가들에 지구의 미래를 맡기는 것은 너무 위험해 보인다.
4. [중앙일보][이달의 예술] 예술이 삶에 얼굴을 내밀 때
지난 몇 주간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서울로 7017의 개장에 맞춰 설치됐던 ‘슈즈트리’를 둘러싼 논란 덕이다. 헌 신발 3만여 켤레를 매달아 놓은 작품은 불결함과 악취에 대한 우려를 낳으며 인터넷을 달궜다. 예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쪽은 대중의 몰이해를 탓했고, 작품 선정 과정의 적절성과 공공미술의 역할을 따지는 목소리는 세금을 낭비한 “흉물”이라는 격앙된 비난에 묻혔다.
각기 다른 취향과 가치관을 가진 모두를 만족시키는 작품은 없다. 하지만 공공미술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 못지않게 관람 주체인 공동체의 의견과 참여가 중요하다.
성북예술창작터가 진행하는 ‘성북예술동’ 프로젝트는 지역공동체와 예술가의 협업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예술인 조합 아트플러그, 예술마을 동네모임과 함께 ‘살랑대는 예술 군도’(6월 15일까지)를 기획했다. 성북동을 중심으로 미술기관과 문화거점, 예술가 작업실 등 섬처럼 흩어진 예술 공간을 연결하는 전시와 투어 로 구성된 주민 참여 프로그램이다. 발품을 팔면 동네 구석구석이 모두 미술관이다.
성균관대 후문에서 성북동으로 넘어오는 성북로 31길의 무허가 건물은 전시장이 되었다. 건물 밖 아카시아 숲과 연결된 공터에도 작품이 놓였다. 삼계탕을 팔던 ‘성 너머 집’ 터엔 박지인의 ‘아카시아 핑크’가 있다. 스티로폼과 합판으로 만든 가벽에 주변에서 발견한 폐품을 연결해서 ‘핫핑크’로 도색했다.
들풀이 우거졌던 공터는 긴장감 넘치는 공간으로 변했다. 새떼를 쫓기 위해 사용하는 알루미늄 허수아비도 예술이 됐다. 홍장오의 ‘72구역’을 채운 허수아비들은 바람과 빛을 동원해서 마을의 장승처럼 공터를 수호한다. 한양도성길 아래 빈집엔 조각이 놓이고 화장실에도 그림이 걸렸다. 인근 한성대 학생들과 지역작가 최병석의 ‘포스트 스튜디오’ 전시다.
기대하지 않던 장소에서 마주치는 예술은 경이롭다. 사람들은 “이게 뭐지?” 하며 다가간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도 보물찾기 하듯 호기심에 차 이곳저곳을 탐색한다. 무심코 지나던 공터와 폐가에 들어선 낯선 작품은 익숙한 삶을 예술로 바꾼다.
예술생태계 형성을 위한 노력은 성북구와 예술가, 주민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성북예술동’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이웃집 예술가’는 벽화나 간판 제작 등 주민의 예술적·디자인적 필요를 작가와 함께 해결하는 주민 주도형 공공미술을 실천했다. 카페와 꽃집, 경찰서가 예술에 자리를 내주었다. 작가는 동네 모임에서 작업을 설명하고 주민들은 마실 다니듯 예술을 누렸다. 예술과 삶 사이에 교집합이 생길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술에 마음을 연다. 공통분모를 늘리는 데는 쌍방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공공미술이 공동체를 위한 미술로 진화하는 방식이다.
5. [서울경제][만파식적] '헝(Hung) 의회'
영국인들은 1970년대 말을 ‘불만의 겨울(Winterof Discontent)’이라고 부른다. 제임스 캘러헌 총리가 1978년 재정위기를 극복하고 인플레를 잡기 위해 임금 인상을 5%로 제한했으나 이에 반발한 노조가 총파업으로 대응하면서 사회가 들끓던 암울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숙원이던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이 연초 정식 발효됐으나 곧바로 몰아닥친 경제 불황과 사회 불안은 이 시절을 겪은 영국인에게 ‘트라우마’다. 여러 분석이 있지만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1974년의 총선 이후 전개된 정치 불안이 지목됐다.
1974년 총선 후 출현한 것이 ‘헝 의회(HungParliament)’다. 사실상 양당제인 영국에서 어느 당도 과반을 점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20세기 초인 1929년 한 차례 경험이 있었으나 이미 오래전 일이라 영국 국민들은 초유의 상황에 크게 당황했다. 최다 득표를 한 노동당이 연정 형태로 총리를 맡았으나 불과 8개월 만인 10월 조기총선을 실시한다. 결과는 절반을 간신히 넘긴(2석) 노동당의 승리였다. 불만의 겨울 동안 위태위태하게 국정을 운영한 캘러헌 총리는 1980년 총선에서 대패함으로써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에게 총리직을 넘긴다.
다음으로 영국에서 헝 의회가 출현한 것은 2010년. 이번에는 집권 노동당을 보수당이 간신히 이겼지만 과반 확보에 실패한다. 여기서 3당인 자유민주당과의 연정으로 총리가 된 사람이 데이비드 캐머런이다. 캐머런 총리는 첫 임기 동안 헝 의회를 막기 위해 ‘고정임기 의회법’ ‘조기해산권 의회 동의’ 등 관련 법을 개정한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과 그는 연임에 성공한다. 그런 캐머런이 지난해 7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국민투표 패배 책임을 지고 사임했고 후임이 같은 당의 테리사 메이 총리다.
지난주 실시된 영국 조기총선에서 집권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헝 의회의 출현이 불가피한 가운데 메이 총리는 일단 사퇴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가 추진하는 ‘하드 브렉시트’ 등의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면서 시장에서 파운드화가 급락하고 있다. 헝 의회 등 소수파 정권과 정치의 불안은 영국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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