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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대북전단 살포 문제

■ 싱가포르 건국 아버지 리콴유 전 총리 타계

■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대북전단 살포 문제

 

[한국일보 사설-2010324화] 전단살포, 남북관계 큰 틀에서 신중히 판단해야

 

천안함 폭침 5주년인 26일을 전후해 대북전단을 살포하겠다고 해서 논란을 빚었던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전단 살포를 당분간 중지하겠다”고 어제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천안함 폭침의 책임을 인정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박 대표는 이달 초 국민행동본부 등 북한인권단체들과 공동으로 전단과 함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암살을 다룬 영화 ‘인터뷰’ 내용을 담은 DVD등을 보내겠다고 밝혔었다.

 

그가 뒤늦게나마 전단살포가 남북관계에 지우는 엄청난 부담을 깨닫고 이를 중단하겠다고 한 것은 잘한 일이다. 누차 지적한대로 전단살포는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무한정 보호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미 지난해 10월 북한이 대북전단 풍선을 향해 고사포 10여발을 발사하고, 이에 우리 군이 대응사격하는 등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바 있다. 북한은 이번에는 “몇 발의 총탄이 아니라 대포나 미사일로 대응할 수 있다”고 했고, 22일에는 “사전경고없이 무차별적인 기구소멸작전에 진입할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북한의 경고가 단순한 협박ㆍ공갈인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파주나 연천 등 북부 접경지역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위해가 닥칠 가능성이 조금이라고 있다면 전단살포는 당연히 중지돼야 한다. 또 일부 시민단체들의 행위로 인해 국가안보와 남북관계 전반에 심대한 파국이 초래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동안 전단살포 문제로 인한 소모적인 논쟁이 컸다. 지난 1월 대북전단 살포는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의 협박을 이유로 국민의 활동을 막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정반대 의견을 냈다. 그러자 지난달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인권위에 의견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북한인권단체 스스로가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위중함을 깨닫고 대승적 차원에서 전단살포를 중단하는 길뿐이다. 박 대표는 이달 초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남북관계 파탄 우려에 “북한이 진짜 포격하면 국제적 문제로 비화할 텐데 북한이 그리하겠느냐”며 무인기를 동원한 살포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무책임한 생각일 뿐더러 실정법에도 위반된다는 점을 고민해야 한다.

 

정부도 ‘표현의 자유’에 기대 소극적으로 대처해온 자세에서 벗어나 강력한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 남북간 긴장고조를 보수층 결집 등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전단살포를 방조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이번을 계기로 전단살포 논란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324화] 근본 해법 필요한 ‘대북전단’ 문제

천안함 침몰 5주년을 맞아 긴장 일로로 치닫던 남북 사이의 대북전단 갈등이 한고비를 넘겼다. 26일 ‘천안함 5주년’을 기해 대대적인 대북전단 살포를 예고했던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23일 전단 살포를 당분간 중단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당분간이 언제까지인지는 모르지만, 천안함 5주년을 계기로 한 최악의 사태는 일단 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다행스런 일이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일부 단체들이 26일을 전후해 전단 50만장과 함께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암살을 다룬 영화 <인터뷰>의 편집분을 담은 영상물을 북쪽으로 날리겠다고 하자, 북쪽은 매우 예민하게 반응했다. 북쪽은 22일 ‘조선인민군 전선부대들의 공개통고’를 내어 모든 타격 수단을 동원하여 무차별적인 기구(풍선) 소멸 작전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남쪽 주민에게 군사적 타격권에서 벗어나 대피하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북쪽은 지난해 10월에도 대북전단 살포용 풍선을 향해 고사총을 발사했고 우리 군도 이에 응사하면서 일촉즉발의 군사 긴장이 고조된 적이 있다. 이번은 당시보다 객관적으로 상황이 더욱 나쁘다. 한-미 군사훈련과 기간이 겹치는데다 개성공단 임금 인상 문제가 불거져 있고, 남북 당국 간의 대화 통로는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작은 불씨가 큰불을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다.

 

정부도 이런 위험성을 인식하고 박 대표를 비롯한 보수 단체 대표들에게 자제를 요청했고 그들도 이를 수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이것으로 대북전단 갈등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박 대표는 천안함 5주기 날까지는 전단 살포를 중단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전단 살포 완전 중단의 전제조건으로 북쪽의 ‘천안함 폭침 도발 인정과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내세웠다. 그간의 북쪽 자세로 보아 앞으로도 전단 살포를 계속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전단 살포 단체들이 그런 조건을 고수하는 한 남북관계의 주도권은 당국자가 아니라 그들이 쥘 가능성이 크다. 언제든지 그들이 북쪽을 자극해 남북관계를 교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 문제를 ‘표현의 자유’로 보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 비난 전단에는 ‘표현의 자유’를 적용하지 않으면서 대북전단에만 적용하는 것도 우습지만, 그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어렵다는 점이 중요하다.

 

 

■ 싱가포르 건국 아버지 리콴유 전 총리 타계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324화] 아시아 네 마리 龍? 싱가포르는 6만달러 선진국이다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 리콴유 전 총리가 어제 향년 91세로 타계했다. 리 전 총리는 불과 37세에 자치령 싱가포르의 지도자로 취임한 이후 50여년 동안 국가를 지도해왔던 국부였다. 독립 당시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430달러에 불과하던 말레이반도의 남쪽 끝 작은 어촌을 지난해 그 130배인 5만6113달러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물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그에게서 조언을 구할 만큼 탁월한 통찰력과 냉철한 판단력을 갖춘 세계의 지도자였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싱가포르는 국가를 오로지 효율성이라는 실용적 관점에서 바라본 리콴유의 의지와 집념이 만든 작품이었다. 산업육성은 물론이고 교육 정치 외교 사회 등 모든 국가전략이 이런 원칙에서 운영됐다. 영어 공용화를 과감하게 시행하고 산업클러스터(집적단지)를 조성했다. 일찌감치 금융과 해운의 국제 허브화에도 나섰으며 해외 기업을 적극 유치하는 개방 정책도 펴나갔다. 노동 유연성과 규제철폐, 낮은 세금정책 등 친기업 정책을 최대한으로 밀어붙인 것도 리콴유였다. 세계 2위의 경제자유도를 기반으로 2013년 해외직접투자(FDI) 유입 규모는 세계 6위를 기록했다. GDP 대비 FDI는 홍콩 아일랜드에 이어 세 번째다. 무엇보다 그는 부패방지와 실력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정부조직을 지속적으로 혁신해 왔다. 지금도 집권여당인 인민행동당(PAP)의 강령 중 하나는 반부패다.

 

물론 리 전 총리를 향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국가주도형 민주주의나 관료형 자본주의라는 독특한 체제는 그의 창안물이다. 민주주의는 유보됐고 권위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그의 지도력이 있었기에 다양한 종교와 인종을 뛰어넘고, 해양과 대륙을 아우르는 아시아의 ‘멜팅존’이 될 수 있었다.

 

지금 싱가포르는 다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바이오 의료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인력과 기업을 끌어들이고 소득세를 인하하는 등 해외 부유층 유치 전략도 펴고 있다. 이미 아시아의 다른 용들과는 차원이 달라졌다. 아시아의 경제 강국이요 개방국가다. 위대한 한 인간이 잠들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324화] '잘 사는 나라' 만드는 길 보여준 리콴유 리더십

 

향년 91세로 23일 영면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길인지 확실하게 보여준 정치 지도자였다. 1965년 그가 말레이시아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에 취임했을 때만 해도 나라 꼴은 말이 아니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400달러에 부존자원은커녕 마실 물조차 부족해 이웃 말레이시아에서 사와야 할 정도로 가난에 찌들고 부패가 진동하는 곳이었다. 그랬던 싱가포르가 그가 퇴임한 1990년 1인당 GDP 1만2,750달러의 강소국으로 환골탈태했다. 지난해 1인당 GDP는 5만6,113달러로 아시아 1위를 기록했다. 전 세계가 '리콴유 리더십'에 관심을 표명하는 배경이다.

 

리콴유 리더십의 요체는 국민의 살림살이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진정 국민의 바람이 무엇인가…그들이 원하는 것은 주택과 의료, 일자리와 학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통치기간 내내 재정 안정화, 서민주택 보급, 해외 투자자금 유치 등에 역점을 둔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 결과 싱가포르는 동서양 항공의 요충지이자 물류 중심지와 금융허브로 굳건한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싱가포르 국민이 리콴유 리더십에 완벽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풍요와 번영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히틀러'로 지칭될 정도로 혹독했던 그의 권위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이룬다. 싱가포르의 국민행복지수는 한때나마 150개국 중 149위로 추락하기까지 했다.

 

리 전 총리는 강력한 리더십을 앞세워 경제 근대화를 이끈 공로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나란히 미국 타임지가 꼽은 20세기 아시아의 20대 인물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한때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함께 주목받았던 한국과 싱가포르 간에 지금은 국가경쟁력에서 큰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철학자 플라톤이 꿈꿔온 현인정치와 민주주의적 정체 사이의 갈등과 고민을 두 나라가 보여주는 듯하다.

 

 

■ 관련 칼럼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허원순(논설위원)-20150324화] 국부(國父)

 

워싱턴DC 교외의 마운트 버넌(Mount Vernon)은 미국인들에게 각별한 곳이다. 국부(國父) 조지 워싱턴의 사저로 미국인들에게는 성지 같은 명소다. 조지 워싱턴이 9~10세 때 그의 부친이 지은 이 대저택이 명명된 사연이 흥미롭다. 당시 본토 영국의 유명한 해군제독 버넌의 이름을 땄던 것이다. 버넌은 조지의 큰형 로렌스 워싱턴의 상관으로 ‘로열 브리티시 네이비’(영국 해군)의 현역 중장이었다. 하지만 워싱턴 가문을 친영파, 친왕파라고 비판하는 미국인은 없다. 국부를 기리는 미국인들의 발길이 끝이질 않으니 외국인 방문객도 적지 않다.

 

워싱턴DC에서 자동차로 한두 시간 동쪽으로 달리면 샬러츠빌이란 소도시가 있다. 버지니아주립대학으로 유명한 이곳에도 몬티셀로라는 고풍스런 대저택이 있다. 그리스 신전풍의 이 고택은 미국의 작은 국부격인 토머스 제퍼슨이 58년간 산 곳이다. 미국 헌법을 기초한 3대 대통령의 다양한 유품들이 잘 전시돼 있다. 어릴 때부터 마운트 버넌이나 몬티셀리를 방문하면서 많은 미국인들은 참된 민주주의 가치와 건국 정신을 산교육으로 배운다.

 

너무나 흔해진 게 공화국이지만 공화국에는 대개 국부가 있다. 프랑스에는 드골이, 중국인들에겐 쑨원(孫文)이 있다. 인도에 네루라면 이집트엔 나세르다. 터키의 초대 대통령 아타투르크(케말 파샤)나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도 그렇게 추앙받는다. 이들 나라는 수도의 관문도 아타투르크 국제공항, 벤구리온 국제공항으로 이름 붙였다.

 

몰락한 공산국가에서조차 그 나름대로 국부는 존재했다. 신격화되고 억지로 상징화된 게 차이점이겠지만 나라를 세운 데는 실패라도 실패의 역사는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기초를 세운 초대 대통령은 동상도 하나 없다. 식민지와 전쟁을 거친 세계 최빈국에 이승만만큼 국제적 경륜과 자유민주의 참가치를 인식한 인물도 없었다는 평가가 이제 조금씩 나오고는 있지만 갈길이 멀다. 그의 사저 이화장(梨花莊)이란 이름이라도 들어본 중·고·대학생이 얼마나 될까.

 

마침 모레(26일) 서울의 한 교회에서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회장 박진) 주최로 탄생 140주년 기념식이 열린다고 한다. 올해가 작고 50주년이지만 우리 사회의 관심이 겨우 이 정도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떠나는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를 보면서 우남(雩南)을 다시 보게 된다. 리콴유와 이별하는 싱가포르 사람들과 우남의 존재 의미에 관심도 없는 한국인들의 차이가 너무 크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324화] 쌓여만 가는 기업유보금, 투자 안 하나, 못하나

 

국내 대기업들이 벌어들인 소득의 활용처를 찾지 못한 채 ‘창고’에 쌓아만 두고 있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어제 재벌닷컴에 따르면 국내 10대 그룹 96개 상장계열사의 지난해 말 사내유보금 총액은 503조9,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37조6,300억원(8.1%)이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기업들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30% 내외 격감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보금이 오히려 증가한 건 기업들이 불황에 위축돼 그나마 번 돈조차 새로운 투자 등에 쓰지 못하고 손에 쥐고만 있었다는 얘기다.

 

이익을 유보금으로 쌓아두기만 하는 보수적 행태는 견고한 실적을 유지하고 있는 핵심 그룹들도 마찬가지였다. 삼성은 18개 상장사 유보금 총액이 196조7,1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1.7%나 증가했고, 현대차도 11개 상장사들이 총 102조1,500억원의 유보금을 쌓아 전년 대비 10.9% 증가했다. 최고 그룹들부터 유보금 쌓기에 몰두하다 보니 납입자본금 대비 유보금 비율을 나타내는 사내유보율도 10대 그룹 평균 1,327.1%를 기록, 1년 전보다 69.4% 포인트 높아졌다.

 

대기업들의 사내 유보 증가는 곧바로 투자 감소로 이어져 경제의 전반적 활력을 떨어뜨린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약 270조원이었던 10대 그룹 사내유보금이 지난해 말 두 배 가까이 폭증하는 동안, 해당 그룹의 실물 투자액은 26조원에서 2013년 7조원으로 75%나 격감했다. 2013년 국내 기업의 해외 M&A 총액이 중국(1,641억달러)에 비해 4분의 1인 414억달러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해외투자에도 적극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국내외 불황 속에서 제대로 된 성장전략을 마련하지 못하고 멈칫거리기만 했다는 얘기다.

 

기업의 막대한 유보금을 가계와 재정에 환류시켜 경제활성화에 활용하려는 게 세계적 추세다. 미국 기업의 해외 유보금 과세 등을 골자로 한 오바마 행정부의 법인세 개혁이 그렇고, 최경환 경제팀이 도입한 우리의 기업소득환류세제 역시 유보금의 선순환을 겨냥했다. 하지만 쥐어짜는 식으론 기업의 적극적 유보금 활용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 유보금이 성장동력으로 최대한 가동되도록 하기 위해 정부는 우선 경제활성화법안의 4월 국회 처리에 주력하는 한편, 노동ㆍ공공ㆍ산업 구조개혁을 통해서도 기업의 장기 성장여건을 조속히 만들어 줘야 한다. 기업 역시 팔짱만 끼고 있다가는 유보금 과세 강화나 법인세 인상 같은 자충수를 초래할 뿐이다. 기업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지금은 유보소득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을 서둘러 찾고 실행해야만 한다.

 

 

[한국일보 사설-20150324화] 친일파가 ‘이달의 스승’? 교육부 제정신인가

 

교육부가 선정한 ‘이달의 스승’ 12명 가운데 8명에 대해 친일 행적 의혹이 제기됐다. 교육부가 국사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에 검증을 의뢰한 결과, 최규동 전 서울대 총장 등 8명에게서 크고 작은 친일 행적이 발견됐다는 결과를 통보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 두 명도 아니고 선정된 인사 대부분이 친일 시비에 휘말렸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스승을 존경하는 풍토 조성을 위해 귀감이 될 만한 교육계 인사를 선정한다며 시작된 사업이 이 모양이다. 이달의 스승이 아니라 ‘이달의 친일파’를 뽑은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지난달 이달의 스승 1호로 선정된 최 전 총장부터 논란이 됐다. 교육부는 그를 ‘민족의 사표, 조선의 페스탈로치’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최 전 총장은 경성중등학교장 시절 일제 관변지에‘죽음으로써 천황의 은혜에 보답하다’라는 제목의 글을 싣는 등 여러 차례 친일 행적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교육부는 이미 전국의 초ㆍ중ㆍ고교 1만2,000곳에 최 전 총장에 대한 교육 자료와 포스터 배포를 마쳤다. 정부세종청사에도 홍보 입간판을 세웠다. 친일인사를 멀쩡한 민족운동가로 둔갑시켜 학생들에게 교육시켰다니 제 정신이라고 볼 수 없다. 교육부는 부실 검증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이달의 스승 대상자 부실 선정은 예고된 사태다. 선정위원들의 편향적 구성과 역사 인식, 주먹구구식 선정 과정이 부실 논란을 자초했다. 퇴직 교장 단체인 한국교육삼락회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국학중앙연구원 관계자 등 주로 보수 성향의 인사들로 위원회가 구성돼 처음부터 객관적인 검증에 한계가 있었다. 문제가 된 최 전 총장의 경우 애초 후보에도 들지 못했으나 교총 초대 회장을 지냈다는 이유로 선정됐다고 한다. 모든 학생들의 본보기로 삼을 스승을 선정한다는 점에서 보수와 진보 구분 없이 이념을 아우르는 인물들로 위원들을 구성했어야 한다. 선정위원회가 2,000명 이상의 후보를 추천 받고도 단 세 차례 회의만으로 12명을 선정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객관성과 공정성은 염두에 두지 않고 위원들 입맛에 맞는 인물을 고르려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교육부는 이번 사태가 일어난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잘못이 드러난 사람에 대해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된 인사 대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난 만큼 이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독립운동가 가운데 교육자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사업과 중복된다는 점에서 굳이 추진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324화] 굴뚝 농성자의 ‘착륙’에 화답할 때다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안 70미터 높이의 굴뚝에서 농성을 벌이던 쌍용차 해고자 이창근(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씨가 23일 땅을 밟았다. 지름 8미터 남짓한 공간에서 칼바람을 이겨내며 겨울을 보냈던 그였기에 일단 ‘무사 착륙’ 소식은 참으로 반갑다. 지난해 12월13일 함께 굴뚝에 올랐던 김정욱(사무국장)씨가 10여일 전에 먼저 내려온 뒤 그가 느꼈을 번민과 외로움은 이해되고도 남는다.

두 해고노동자가 땅에 내려온 것을 계기로, 2009년 정리해고와 점거농성 사태 이후 6년 이상 끌어온 쌍용차 문제도 잘 풀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외환경 변화와 기업 경쟁력을 먼저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경영진과, 하루아침에 일터에서 내몰린 상처를 지닌 해고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올해 1월21일 65개월 만에 재개된 노사 교섭이 여전히 양쪽의 입장이 갈린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하지만 엉킨 실타래를 풀 희망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24일 열리는 쌍용차 정기주주총회에선 법정관리인 자격으로 출발한 이유일 사장이 물러나고 최종식 사장이 경영 지휘봉을 넘겨받는다. 해고자 복직 등 의사결정의 주체가 명확해질 수 있다. 새 경영진이 들어선 이후 양쪽의 교섭에서 하루빨리 소중한 결실이 맺어졌으면 좋겠다. 정리해고 이후 이미 26명의 귀한 목숨을 잃지 않았나.

 

‘평택의 결정’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쌍용차 문제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두 해고자가 목숨을 걸고 굴뚝 위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직접적 계기도, 법의 울타리마저 그들을 내팽개친 데 있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정리해고 무효 확인소송에서 “2009년 정리해고는 적법했다”며 원고가 승리했던 원심을 파기했다. ‘경영상의 필요’라는 명분으로 사실상 해고의 자유를 경영진에 안겨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이달 말로 시한이 잡힌 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의 노동시장 구조개편 작업에서 경영상 해고요건 완화 등 무게 추가 회사 쪽에 더욱 유리한 쪽으로 쏠릴 조짐을 보이는 건 극히 우려스럽다. 법과 제도마저 자신들을 외면할 때, 버림받은 자들은 ‘인간의 땅’이 아닌 곳으로 옮겨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북 구미의 스타케미칼 해고자, 에스케이(SK)브로드밴드와 엘지(LG)유플러스의 인터넷 설치·수리기사 등 인간의 땅이 아닌 곳에 사는 사람이 있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324화] 홍준표, ‘학생 급식’ 할 돈 없다면서 ‘해외 골프’

 

무상급식 지원 중단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미국 출장 중 부인 및 현지 기업인 등과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났다. 경남도는 “골프 비용을 홍 지사가 냈다”며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어물쩍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무상 골프’ 여부에 대한 진상규명을 비롯해 공식 출장에 부인을 대동한 것과 평일 오후에 골프를 즐긴 것의 적절성 여부 등을 철저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홍 지사의 골프가 많은 사람의 공분을 자아내는 것은, ‘돈’ 부족을 이유로 학생들의 밥그릇을 빼앗은 도지사의 ‘흥청망청’이 너무나 이율배반적이기 때문이다. 홍 지사 주장대로 재정이 그렇게 빠듯하다면 도지사가 솔선수범해서 근검절약하는 모습을 보여야 옳다. 그런데 홍 지사는 최근 부산 김해공항에서 김포공항까지 1시간도 채 안 되는 거리를 이동하면서 값비싼 비즈니스석을 이용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호화 골프다. 자신은 특권과 혜택을 맘껏 누리면서 재정난 타령을 하는 염치없는 모습이 역겹지 않을 수 없다.

 

경남도는 해명자료를 내어 홍 지사의 골프가 “비공식 비즈니스”라고 주장하면서 “지사가 골프 비용 400달러를 현금으로 내서 통상자문관(미국 현지 사업가 주아무개씨)에게 결제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부인까지 대동하고 비즈니스를 했다는 설명도 실소를 자아내지만, 이날 골프가 주씨의 요청에 따라 그가 회원으로 있는 골프장에서 이뤄졌다는 점에 비춰볼 때 비용을 홍 지사가 냈다는 말도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경남도의 해명은 주씨가 결제를 한 사실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드러난 상황에서 나온 사후 수습용 알리바이 냄새가 물씬 풍긴다.

 

홍 지사가 부인을 출장지에 대동한 경위도 석연치 않다. 경남도는 부인이 “친지 방문차 로스앤젤레스를 방문중”이었다고 설명했으나, 부인의 출국 시점과 체류지가 어디인지, 항공료와 체류비 등을 무슨 돈으로 치렀는지 등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적지 않은 공무원들이 ‘부부동반 출장’으로 징계를 받은 것을 생각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안이다.

 

홍 지사는 ‘국민의 세금’을 들먹이며 무상급식 중단 필요성을 강변하기에 앞서 ‘국민의 세금’을 흥청망청 쓰는 것부터 사과해야 한다. “학교에 밥 먹으러 가나”라고 묻기 전에 “출장은 부인과 골프 치러 가나”라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 모든 것을 떠나 자라나는 아이들의 밥그릇은 빼앗으면서 자기는 좋은 비행기, 좋은 음식, 호화 골프를 즐기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경향신문 사설-2010324화] 자원외교 청문회 증인 성역 두면 안된다

이명박 정부 해외자원개발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가 파행 위기에 처했다. 청문회의 성패를 좌우할 증인 선정을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는 어제 첫 증인 협상을 벌였으나 결렬됐다. 야당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상득 전 의원,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의 증인 채택을 요구했으나 여당은 전면 거부했다. 새누리당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등 참여정부 인사들을 증인으로 채택하자며 맞섰다. 자원외교의 진상을 밝히려면 꼭 필요한 핵심 증인마저 거부하면서 속 보이는 ‘물타기 증인’으로 청문회를 파행으로 끌려는 작태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자원외교 청문회’의 목적은 명확하다. 천문학적 액수의 세금을 낭비한 이명박 정부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실상과 의혹을 국민 앞에 낱낱이 규명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 다음 정권에서 같은 실패를 막자는 일이다. 그러려면 자원외교를 주도하고 추진한 책임자들의 청문회 증인 출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35조~46조원의 공적 자원이 투입된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는 정권 차원에서 벌인 국책사업이다. 이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 사령탑 구실을 했고, 측근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실무를 주도했다.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전반에 걸쳐 이뤄진 비정상적인 정책 결정과 부실 투자의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선 이들을 청문회에 불러내야 한다. 당시 자원개발 주무 부서인 지식경제부의 장관을 지낸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마찬가지다. 전직 대통령의 증인 채택은 전례가 드문 고도의 정치적 사안이지만, 이 전 대통령도 무작정 성역이 될 수는 없다. 자원외교의 참담한 실상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성과’를 내세웠다. 그의 말대로 ‘자원외교 성과’가 왜곡되었다면, 국민이 지켜보는 청문회에서 당당히 밝혀 의혹을 씻는 게 전직 대통령으로서 떳떳한 자세일 터이다.

 

새누리당이 노무현 정부 핵심 인사들의 무더기 증인 채택을 요구하는 건 ‘자원외교 국정조사’의 본분을 몰각한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 물론 자원외교의 연속성을 감안할 때, 문제가 된 특정 사업의 연원을 추적하기 위해 이전 정부 정책 담당자들을 증인으로 부를 수는 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해외 순방 시 비서실장으로 총괄업무를 수행했다는 이유로 제1야당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하자는 건 치졸한 ‘물타기’ 공세다. 새누리당이 이 전 대통령과 관련 인사들을 감싸며 끝내 진상 규명을 방해할 경우, 두고두고 후과를 남길 ‘괴물 자원외교’는 전·현 정권의 공동 책임으로 남게 될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324화] ‘현실주의 진보’ 강령 채택한 정의당에 주목한다

한국은 거대 양당이 지배하는 정치체제이다. 이념과 노선 차이는 별로 없으면서 격렬한 대결 정치를 하는 현상도 상당 부분 양당체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양당체제는 중도를 지향하는 경향을 띠는 정당 체계라고 한다. 이런 체제에서 정치 지형은 보수화되고 소수자, 배제된 자,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는 잘 대표되지 않는다. 한국 정치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정치적 냉소주의, 정치참여 부재, 정당의 대표성과 책임성 약화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한국 정치의 불건강성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자기 색깔을 지닌 제3의 진보정당이 필요하다. 최소한 원내교섭 단체를 구성하는 진보정당이 존재한다면 기성 정당에 상당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발언권을 지닌 진보정당은 정책 경쟁을 유도하고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정치로 이끌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진보정치 없는 정치’다.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5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정의당이 진보정당을 대표하고 있을 뿐이다. 복지국가라는 시대정신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진보정당의 왜소화는 기형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현실에서 정의당이 어제 3차 정기 당대회를 열고 ‘이념적 진보정치’를 ‘현실주의적 진보정치’로 전환하는 새 강령을 채택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새 강령은 “낡은 이념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는 비정규직의 정당입니다’라는 구호와 출생부터 사망까지 생애 주기별 국가 역할을 규정한 ‘생애주기 강령’도 채택했다. 진보정당은 자기 이념의 선전에 만족하는 운동 단체가 아니다.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현실적인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정당이어야 한다. 따라서 다른 정당보다 더욱 시민들의 삶과 밀착한 의제를 개발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도 진보정치가 공허한 이상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더 나은 방법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보수 우위 체제는 진보정당의 무능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진보적 의제의 부상이 말해주듯 진보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는 높다. 그 욕구를 조직화하지 못한 건 진보정당의 책임이다. 진보정당은 한국 정치구조 탓을 하기 전에 먼저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번 정의당의 신강령 채택이 새로운 진보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기를 기대해 본다.

 

 

[경향신문 사설-20150324화] 4대강 사업 빼닮은 ‘임진강 준설’ 전면 재검토하라

임진강은 마식령 인근에서 발원, 북한 땅을 거쳐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을 따라 254㎞를 흐른 뒤 서해로 빠져나간다. 그로 인해 사람의 접근이 어려워 겨울철새의 천국이자 40여종에 이르는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임진강 하구는 바닷물과 민물이 자연스레 오르내리는 구간이다. 민통선 주민들은 이 드넓은 강 하구 둔치에서 자연스레 드나드는 강물을 밑천 삼아 친환경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국토교통부가 이 자연 생태계의 보고를 대규모 공사판으로 만들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파주 문산 초평도~임진강 하구 사이 14㎞ 구간의 흙·모래 1020㎥를 준설하는 ‘임진강 거곡·마정지구 하천준설 사업’을 강행해온 것이다. 대대적인 준설을 통해 1990년대 큰 홍수 피해를 입었던 문산 등 지역의 수해를 방지한다는 게 목표라고 국토부는 밝혔다. 그러니 자연습지와 모래를 마구 파헤쳤고, 환경단체에서는 농민들 삶의 터전을 빼앗은 ‘5대강 사업’이라는 비난이 터져나왔다. 임진강 하구를 습지보전지역으로 지정한다는 환경부의 방침 또한 무시됐다. 지난 2013년 국무총리실 한국환경정책평가원까지 나서 “지나친 환경 파괴를 일으킨다”면서 ‘불가’ 의견을 냈지만 사업은 강행됐다. 최근에는 국토부가 환경영향평가 검토의견서까지 곡해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나마 환경부가 국토부에 보낸 환경영향평가서에 ‘사실상의 부동의 의견’을 내놓았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제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심상정 의원이 분석한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보면 임진강 준설사업은 타당성을 찾기 어렵다.

 

이미 군남댐과 한탄강댐(완공 예정)이 있는데, 굳이 추가로 준설사업을 벌여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대대적인 준설은 임진강 하구의 농·습지가 머금고 있는 자연적인 홍수조절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예컨대 밀·썰물의 영향이 큰 임진강 하구를 준설하면 강바닥면이 확대된다.

 

그 경우 바닷물과 민물의 혼합이 커지고, 오히려 하천 수위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준설로 인해 생물다양성의 보고와 농민들의 터전이 다 무너진다는 걱정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국토부는 환경부의 ‘사실상의 부동의’ 의견에 다른 꼼수를 부리지 말고, 원점에서부터 사업을 재검토해야 한다. 물론 환경부도 사업의 타당성이 없다면 ‘사실상’이 아닌 ‘분명한 부동의’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20150324화] 바짝 마른 중부, 기후변화·물부족 발등의 불이다

 

157.41m. 이달 22일 기준 소양강댐 수위다. 같은 시점으로는 역대 네 번째로 낮은 수위다. 1997년 156.41m까지 떨어진 이후 18년 만에 최저다. 지난여름 이후 강원도를 비롯한 중부지방에는 기상이변이라고 부를 만큼 강수량이 예년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그 여파가 지금의 소양강댐 수위로 나타난 것이다. 지금의 가뭄 현상은 한강수계 상류인 강원과 충북, 경기북부에서 벌어지고 있다. 충주댐에서는 수위가 내려가면서 일부 지역의 바닥이 드러나기도 했다. 한두 달 뒤가 더 걱정이다. 기상청의 3개월 전망에 따르면 4, 5월에도 메마르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수도권 식수난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지금 중부지방의 봄철 가뭄이 지구온난화의 결과라는 과학적 증거는 아직 없다. 다만 온난화가 지구의 평형 상태를 흔들어 집중호우와 극심한 가뭄이라는 상반된 형태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데 대부분의 기후학자가 동의한다. 지난해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기상 관측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한반도에서 봄철 가뭄일수가 평년보다 커지면서 각종 자연재난이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반도의 지구온난화 진행 속도는 지구 평균보다 빠른 편이다.

 

  다가올 자연재난까지 걱정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이 현재 물 부족 국가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1300㎜로 세계 평균인 715㎜보다 많지만 인구밀도가 높아 1인당 수자원 총량은 세계 평균에 훨씬 못 미친다. 특히 1인당 활용 가능한 수자원량은 1452㎥로, 물 부족국가 기준인 1700㎥에 크게 미달한다. 물 부족 상태를 방치해두면 국민 건강이 위협받고 산업경쟁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의 강수량은 여름에 집중된다. 이를 가두었다가 갈수기에 풀어놓기 위해서는 댐이나 보가 필요하다. 독재정권 시절에 소양강댐 같은 대형 다목적댐이 건설돼 가뭄 조절 기능을 해왔다. 하지만 대형 댐 건설로 인해 주민 이주와 생태계 파괴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 중단된 상태다. 주민 불편과 생태계 파괴가 크지 않은 지역에 중소형 가뭄조절용 댐의 건설을 전향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누수 되는 수자원 역시 촘촘히 관리해야 한다. 노후 수도관으로 인해 연간 5000억원어치의 수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포항 지역에서 보듯 폐수를 걸러 재활용하는 시스템도 늘려야 한다.

 

  3월 23일은 세계 기상의 날이다. 22일은 세계 물의 날이기도 했다. 기후·기상은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이웃 일본은 2050년까지 장기전망에 따라 지구온난화 대책을 수립해놓고 있다. 우리도 장기전망은 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대책과 연계성이 약하다. 좀 더 중장기적 시야를 갖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후·기상 문제의 핵심은 물 관리다. 20~30년 뒤 미래세대가 물 기근에 시달리지 않도록 지금부터 다각적인 수자원 확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324화] 이런 엉터리 위생검사로 불량식품 막을 수 있을까

 

식품위생검사를 엉터리로 한 검사기관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서부지검은 시험성적서를 허위로 발급한 식품위생검사기관 10곳을 적발하고 각 기관 대표이사와 연구원 40명을 구속·불구속 기소했다. 전국 74개 검사기관을 대상으로 최근 3년간 시험성적서 85만 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총 8만3000건이 허위 발급된 것으로 드러났다. 검사 가운데 10%가 엉터리였던 셈이다. 식혜제품에서 기준치를 넘는 세균이 발견되자 식품회사에 그 결과를 알려주고 검체를 바꿔 재검사한 후 ‘적합’ 성적서를 발급한 검사기관도 있었다. 제품 포장을 뜯지도 않고 적합 판정을 내린 사례도 있었다.

 

 부실한 식품위생검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과 2008년에도 검사기관의 30~40%가 허위 성적서를 발급하거나 검사 규정을 위반한 혐의로 적발됐다.

 

  처벌을 해도 이 같은 부실 검사가 되풀이되는 가장 큰 원인은 민간 검사기관이 난립해 덤핑 경쟁을 벌이는 혼탁한 시장 구조 때문이다. 식품업체가 ‘갑’이고 검사기관이 ‘을’인 상황에서 검사기관은 싼 검사 비용으로, 원하는 시험 결과를 낼 수밖에 없다. 일부 업체는 ‘나까마’(중간소개업자)를 고용해 검사 용역을 수주해 오면 수수료의 30% 정도를 수당으로 지급하기도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검사기관 대표들에게 주의를 요청했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지만 과당 경쟁 때문에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식품범죄는 박근혜 대통령이 척결 대상으로 규정한 4대 사회악 중 하나다. 불량식품을 걸러내야 할 검사기관이 불량검사를 한다면 식품범죄는 근절되기 어렵고 식품에 대한 불신만 커질 것이다.

 

  그동안 영세한 검사기관이 부실검사를 낳는다는 지적이 계속됐는데도 검사기관은 2000년 16곳에서 해마다 늘어났다. 식약처가 검사기관 난립의 문제점을 알고도 이를 방조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식약처는 검사기관에 대한 기준과 관리·감독을 강화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부실기관을 퇴출시켜야 한다. 이번에도 미봉책에 그쳐 이 같은 엉터리 검사가 다시 반복된다면 식약처에도 정책 운영과 감독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20150324화] 캠핑장 참변 … 이러고도 세계 캠핑대회 열 수 있나

 

인천 글램핑장의 화재사고는 국내 캠핑장 안전 시스템의 취약성, 민간사업자들의 무신경 등 캠핑 문화의 미성숙함을 드러낸 사고였다. 캠핑장 안전사고의 위험성은 지속적으로 지적됐고, 이에 올 1월 캠핑시설 안전 문제를 규제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시행령이 공포됐지만 현장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했다. 이번 화재는 텐트 안에 각종 생활편의시설을 갖춰 대여하는 글램핑 텐트에서 전기 누전으로 보이는 사고로 발생했다. 글램핑은 불에 약한 천막 안에 각종 전기 기구들이 들어가 있어 화재 발생 가능성이 크지만, 이에 대한 안전 규제가 취약한 틈을 타 민간업자들이 우후죽순으로 만드는 캠핑시설이다.

 

  국내 아웃도어 인구와 산업은 최근 몇 년 사이 관련 안전 규제가 뒤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극적으로 성장했다. 국내 캠핑 인구는 올해 최대 3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캠핑산업도 지난해 6000억원대로 2008년(700억원)보다 9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관련 인프라와 산업의 영세성, 안전의식의 취약함 등으로 안전사고의 위험이 상존했다. 지난해 기준 1800여 개의 캠핑장 중 등록된 시설은 230여 곳에 불과했고, 일부 영세 민간업자들은 상습 침수지구와 산사태 위험 지역에 캠핑장을 차려놓기도 했다. 1월 캠핑장 안전을 규제하는 시행령을 공포했지만 5월 31일까지 유예 기간이어서 여전히 불안한 봄을 맞고 있다.

 

  이번 사고로 당국이 야영장 전수조사를 실시하고는 있지만, 전문가들은 캠핑장 사고는 규제만으론 예방 및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캠핑은 자연과 벗 삼는 활동으로 거칠고 위험하며, 도심과 멀리 떨어져 있어 비상시 소방차나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캠핑족과 야영장 운영자들이 아웃도어 활동의 안전수칙과 비상시 대응 능력까지 완벽하게 익히는 캠핑 문화가 정착되는 것이 최우선이다. 올해 전북 완주에선 ‘세계 캠핑&카라바닝 대회’가 열리는 등 국내 캠핑 규모와 열기는 세계적 수준이다. 이에 걸맞은 높은 시민정신과 안전 시스템의 확충이 뒤따라야 할 때다.

 

 

[중앙일보 사설-20150324화] 지역 비하 넘어 왜곡·선동 댓글도 엄벌해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역감정 조장 행위를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인터넷이나 오프라인에서 특정 지역을 비하하고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댓글이나 발언을 하는 경우 최대 200만 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그러진 현대 정치사가 만들어 낸 지역감정과 이에 따른 지역 분할 구도는 비단 정치에서뿐 아니라 사회 각 영역에 걸쳐 깊고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념과 세대, 계층으로 갈라지는 대립 구도의 바탕에 지역 갈등이라는 공고한 뿌리가 자리하고 있다고도 할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두 차례의 정권 교체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의 지역 분할 구도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대한민국 선거를 관통하는 상수(常數)로 작용하고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를 도입하는 것처럼 선거제도를 바꿔 지역대립 구도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는 있겠으나 사회 저변에 깔린 지역적 편견을 깨지 못하는 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선관위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행위 자체를 적극적으로 억지하겠다고 나선 것은 올바른 현실 진단과 처방이라고 여겨진다.

 

실제로 지금 인터넷과 모바일을 중심으로 오가는 댓글을 보노라면 대체 이들이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인지를 의심케 할 만큼 특정 지역을 비방하고 모욕하는 내용이 넘쳐난다. ‘전라디언’이니 ‘경상디언’이니 하는 표현은 그나마 점잖은 축이고, ‘전라도 홍어’나 ‘경상도 문둥이’ ‘멍청도 핫바지’ 등은 아예 특정 지역 사람들을 총칭하는 일반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문제는 이런 비하 발언들이 단순히 특정 지역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담은 차원을 넘어 다분히 정파적 목적에 따라 의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전라좌빨’이니 ‘영남수꼴’이니 하며 지역과 이념, 정파를 하나로 묶어 상대를 공격하는 표현들이 대표적이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만 봐도 ‘좌익효수’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네티즌이 2011년 1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댓글 3460개의 상당수가 호남을 비하하는 내용이었던 것도 지역 비하의 정파성을 보여 주는 사례다.

 

단속의 기준이나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 소지 등을 놓고 논란이 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는 넘어야 할 과제일 뿐 주저앉을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차제에 지역 비하 댓글 단속을 넘어 근거 없는 사실 왜곡과 선동으로 우리 사회를 갈라 놓는 행위를 근절할 범사회적 운동도 함께 고민할 시점이 됐다고 본다. 지금 우리 사회의 소모적 갈등에는 지역 비하뿐 아니라 근거 없는 괴담과 선동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해외 전문가들까지 참여해 벌인 정부 조사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폭침과 세월호 침몰의 진상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한 배경에는 이런 불순한 의도의 선동도 없지 않다고 할 것이다. 사이버 공간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정보 유통 속도가 날로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려낼 사회적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 종착점은 혼돈과 분열뿐일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324화] 제대로 못할 거면 ‘이달의 스승’ 선정 중단하라

 

교육부가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한 12명 가운데 8명이 친일 의혹이 있는 것으로 그제 드러났다. ‘이달의 스승’은 지난해 8월 황우여 교육부 장관의 지시로 시작된 사업이다. 존경받는 사도상을 정립하기 위해 독립유공자를 선정하듯이 매월 ‘이달의 스승’을 선정하겠다는 취지로, 3억 5000여만원의 홍보 예산이 책정됐다. 최규동씨가 첫 ‘이달(3월)의 스승’으로 선정됐는데 그의 친일 행적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교육부의 부실 검증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최씨는 죽음으로써 일왕의 은혜에 보답하자는 내용의 선동적인 글을 일제 관변 잡지에 썼다.

 

비난이 커지자 교육부는 소속 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와 민간 기관인 민족문제연구소에 후보 12명에 대한 검증을 다시 의뢰했다. 그 결과 김교신, 안창호, 주시경, 이시열 선생을 뺀 나머지 8명에게 친일 행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학 교수 4명, 교사 3명, 교원단체 1명, 퇴직교원 1명 등 9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후보를 선정했는데 이들은 친일인명사전과 언론 보도만을 토대로 검증을 했다. 선정위원회는 애초 2000명 이상의 후보를 추천받고도 세 차례 회의만으로 12명을 졸속으로 선정했다. 이번 사달의 단초를 제공한 교육부의 책임이 크다.

 

선정위원회가 드러난 추가 의혹을 바탕으로 재검증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이대로는 ‘이달의 스승’ 선정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 엉터리 검증을 한 현 선정위원회는 즉각 해체하고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 지금 후보를 다시 선정한다고 해도 또 다른 논란에 휩싸일 뿐이다. 사업을 재개하려면 각계각층의 추천을 받아 능력이 검증된 인사들로 선정위원회를 다시 꾸려야 한다. 선정 절차와 기준도 명확히 해야 한다. 누가 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도록 투명하고 공정하게 심사를 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흠결이 있는 인사는 제외해야 한다. 무엇에 쫓기듯 서둘러 결정할 일이 결코 아니다.

 

친일 논란은 우리 사회의 오래된 아킬레스건이다. 후손들의 명예도 걸려 있는 만큼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공적에 비해 사소한 잘못을 침소봉대해 친일파 낙인을 찍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명백한 친일 행각에 대해서는 어떤 이유에서든 면죄부를 줘서도 안 된다. 친일 인사를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사표(師表)라고 어린 학생들에게 잘못 가르치는 것은 역사에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짓는 일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324화] 천안함 피격 5년…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

 

26일로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한 지 5년이 된다. 백령도에서 해상작전을 수행하다 북한 어뢰 공격으로 장병 46명이 산화했고 이들을 구하려다 한주호 준위가 순직했다. 천안함 폭침 사건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의 사건이다. 천안함 생존 용사들과 유족들의 가슴속 상처와 고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호국보훈협회가 천안함 생존 용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뷰 및 대면조사에 따르면 이들 대부분은 사건 5년 후에도 여전히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나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이 “살아가는 게 힘들다”며 정신과 치료를 받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외부 사람들과의 접촉도 꺼리고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악몽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주변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자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보내기는커녕 ‘경계에 실패한 패잔병’으로 취급하는 이들도 있다니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천안함 생존 용사 중 심각한 부상으로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3명을 제외하고는 국가로부터 지원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니 안타깝기만 하다.

 

생존 장병과 유가족들을 더 괴롭히는 것은 천안함 폭침 이후 5년이 지났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천안함은 조작된 사건”, “북한의 소행이 아니다” 등의 실체 없는 음모론과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건 초기 트위터와 정치권 등을 통해 확산된 설(說)들은 지금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천안함 피격 사건은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증폭시키며 국론 분열을 일으키는 단골 소재가 되고 있다.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이들은 먼저 평택 제2함대에 전시된 두 동강 난 천안함 선체를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런데도 누구보다 안보 태세에 전념해야 할 군인들의 방산 비리가 툭하면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에 이어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이 통영함 비리 연루 혐의로 구속됐다. 통영함은 다름 아닌 천안함 폭침 이후 해저 침몰선 탐색 인양을 위해 도입한 것이다. 천안함 용사 46명의 영령 앞에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북의 기습적인 군사 도발에 조국의 바다를 지키다 세상을 떠난 병사들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는 이들만이 그들이 목숨과 맞바꾼 자유와 평화를 누릴 자격이 있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324화] 삼성 M&A 목록에서 국내기업이 눈에 띄지 않는 이유

 

삼성전자의 성장 전략이 그린필드에서 개방형 포용 전략으로 급전환하고 있다. 삼성페이 결제를 위해 미국의 신생 모바일 서비스 업체 루프페이를 사들였는가 하면, 사물인터넷(IoT) 주도권을 겨냥해 미국 플랫폼 업체 스마트싱스를 인수한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이재용 체제 10개월간 공식 발표한 M&A만 이미 8건이다. 대상도 기업 간 거래(B2B)나 소프트웨어·플랫폼 등 신사업에 집중되는 점도 눈에 띈다.

 

삼성전자의 M&A 시도는 앞으로 더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선 경영진이 이구동성으로 독자기술만으로는 발 빠른 혁신이 어렵다며 M&A를 강조하고 있다. “외부의 기술과 아이디어에 더 개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손영권 전략혁신센터 사장), “혁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전략이 삼성 내에서 확산되고 있다”(데이비드 은 삼성 글로벌혁신센터 수석부사장)는 언급들이 이를 말해준다.

 

여기에 삼성이 경쟁을 벌이는 애플, 구글 등이 자고나면 M&A건을 하나씩 터뜨리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사업에 도움이 되는 업체가 있다면 국내, 해외 구분하지 않고 M&A를 추진할 것”(김현석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이라는 발언은 삼성의 다급함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지난 8개월간 삼성전자가 발표한 8건의 M&A는 그 대상이 모두 해외기업이었다. 물론 국내기업이 하나도 없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국내에는 기술력 있는 기업들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설사 그런 기업이 나타난다고 해도 M&A가 외국에서만큼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도 지적해야 마땅하다. 삼성이 소규모 기술기업에 대한 M&A에 나서면 당장 문어발 경영이요 기술탈취라는 비판이 튀어나온다. 게다가 내부거래다 뭐다 해서 대기업의 계열사 확장에 온갖 규제로 불이익을 주는 것도 M&A에는 악조건이다. 이런 규제의 굴레 속에서는 정상적인 M&A시장이 형성되기 어렵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유망 스타트업들을 대기업이 인수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나.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324화] 한국경제가 '40 - 50클럽' 고지에 오르려면

 

지난해 말 현대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올해 안에 3만달러를 돌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해가 2만8,000달러로 추산되는 만큼 올해 3만달러 돌파는 확실해 보인다. 올해를 기점으로 우리가 선진강국의 상징인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명)에 가입하는 것은 자축해야 마땅하지만 그렇다면 '40-50'클럽은 어떨까.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경제여건을 생각하면 갈 길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연중기획 '비욘드 코리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전문가들의 57%는 올 성장률을 3%대 초반으로 예상해 정부 전망치(3.8%)와 큰 차이를 보였다. 전문가의 우울한 예상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저출산·고령화·저성장의 3각 파도에 휩쓸리면서 40-50클럽 가입은커녕 30-50클럽에서 탈락할 수도 있음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5년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골든타임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무엇보다 성장잠재력 확충에 성공해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의 도약에 성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40-50클럽에 들어가기 위해 구조개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당장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구조개혁 과제를 성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노동 유연성을 높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를 해소해 고용의 숨통을 틔우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작금의 노사정협의 참가자들이 이런 관점을 공유해야 하는 이유다.

 

도약과 좌절의 갈림길에 선 우리 경제가 참조해야 할 또 다른 사항은 독일과 일본의 정책선택 과정이다. 그것은 달리 말해 국가 지도자 리더십의 차이이기도 하다. 일본이 지난 20여년간 경제정책 혼선과 지도자의 리더십 표류로 퇴보의 길을 걸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비욘드 코리아를 성공시키려면 우리에게 요구되는 신성장 모델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는 지도력을 구비해야 한다. 과연 우리는 이를 실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324화] 일본에 추월당한 관광객 유치, 한류만으로 안된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비상등이 켜졌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올 2월까지 4개월 연속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방한(訪韓) 외국인 관광객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넉 달 전 일본에 5만명 차이로 첫 역전을 허용하더니 지난달에는 방일(訪日) 관광객이 139만명인 반면 우리는 105만명에 그쳤다.

 

문제는 이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일본은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 개최를 호재 삼아 범정부 차원에서 관광산업 진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같은 일본의 정책추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연간 관광객 유치실적에서 2008년 이후 7년 만에 일본에 추월당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일본과 우리의 관광산업 정책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이렇게 된 연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은 2003년에 이미 관광산업 육성전략이라는 청사진을 만들고 2006년에 관광입국추진 기본법을 제정했다. 10여년 전부터 긴 호흡으로 관광산업 육성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에는 엔저와 중일 정상회담에 힘입어 규제를 대폭 풀면서 중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일본 정부가 일회성이 아닌 지속 가능한 관광객 유치를 위해 노력해온 결과다.

 

우리 정부의 관광객 유치 노력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 1,400만명 돌파에 이어 2017년에는 2,000만명을 넘어선다는 당찬 계획을 세울 정도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한류와 쇼핑에 기댄 관광 인프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일본에 역전당한 한국 관광의 현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방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제기하는 불만이 쇼핑 말고는 딱히 할 게 없다는 것이다. 체계적인 전략 수립을 통해 다양한 관광상품·서비스를 개발해야 외국인 관광객 2,000만명 시대를 열 수 있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사드는 적의 미사일을 격추하기 위해 만든 미사일방어 체계 가운데 하나로 미국은 북한 핵무기의 위협에서 주한미군 기지를 보호하기 위해 한반도 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기존의 패트리엇 미사일을 이용한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로는 떨어지는 미사일을 단 한 번만 요격할 수 있어 방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즉 KAMD는 한국을 겨냥한 북한 미사일이 목표물을 향해 낙하하는 마지막 단계인 40㎞ 이하의 낮은 고도에서 요격하는 체계로 목표물에 가까이 와야만 요격이 가능하다. 그러나 고도 40∼150㎞에서 요격할 수 있는 사드가 배치되면 적 미사일에 대해 2회 공격이 가능해진다. 사드로 요격하지 못한 미사일을 패트리엇이 다시 요격할 수 있어 그만큼 방어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한편 북한의 핵·미사일이 한반도에서 비행 가능한 공간은 사거리 800㎞ 이하, 고도 250㎞인데 레이더 탐지와 요격미사일의 비행시간을 고려하면 요격 가능 공간은 사거리 400㎞ 이하, 고도 250㎞ 이하다. 사드의 요격 가능 공간은 사거리 200㎞, 고도 150㎞ 이하로 사드가 배치되면 요격 가능공간이 늘어나 적 미사일 요격 성공률이 훨씬 높아질 수 있다. 성능이 좋은 만큼 사드 1포대의 가격은 1조원대에 이르러 우리나라 국방 예산으로는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 돈으로 구입하는 ‘도입’이 아니라 미국의 예산으로 ‘배치’하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중국이 반발하는 이유는 요격체계보다는 미사일과 함께 들어오는 X밴드 레이더 때문이다. 그러나 사드는 아직 군사적으로 실전에서 검증되지 않은 무기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사드 배치 문제는 군사·외교·안보·경제 등 다양한 분야와 여러 인접 국가의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중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종합적인 검토와 신중한 협의를 통해 국익을 최우선으로 선택해야 할 중대한 국가적 과제다. 정파적 이해 관계나 이념적 대결 수단으로 삼아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이유다.

 

 

[중앙일보-사설 속으로/김기태(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20150324화] 오늘의 논점 "사드 체계 한국 배치 논란"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 <2015년 3월 12일 34면>

당·청의 사드 공론화 엇박자 … 국민은 혼란스럽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원내 지도부가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 공론화(公論化)를 놓고 엇박자를 내고 있다. 청와대는 어제 사드 문제에 대해 “미국의 요청이 없었기 때문에 협의도 없었고 결정된 것도 없다”고 말했다. 여당 원내지도부가 다음주 당·정·청 정책조정협의회와 이달 말 정책 의총을 통해 사드 공론화에 나서겠다고 예고한 데 대해 선을 그었다.

 

  사드 문제의 공론화가 한·미 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사이에서 외교적 입지만 줄일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고 한다. 이 문제를 놓고는 여당 내에서도 미묘한 온도 차가 감지된다. 친박계 의원들은 사드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공론화에는 부정적이다. 유승민 원내대표와 원유철 정책위의장은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를 넘어 한국군의 도입 필요성도 주장하고 있다.

 

  사드 문제 공론화를 두고 당·청에서 두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유감이다. 청와대 입장대로라면 공론화는 공론(空論)만 될 것이고, 국민만 혼란스러울 뿐이다. 당·청 간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점도 일러준다. 사드는 주한미군이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처를 위해 본국에 배치를 요청한 무기 체계다.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방어용이다. 미 행정부가 한반도 배치를 결정하려면 사전에 한·미 간 협의를 거쳐야 한다. 중국은 이를 두고 각급 대화 채널을 통해 우리 정부에 우려를 표시해왔다. 요격 대상 탄도미사일 탐지 레이더가 중국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 만큼 의사결정 과정은 냉철하고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외교안보 사안이 의총에서 공론화돼 찬반 의견이 그대로 공개되면 자칫 내부 갈등만 증폭되고 외교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 사드 문제는 우리의 국익과 안보의 관점에서 결정하면 될 일이다. 안보 문제가 정치화되면 불필요한 논란만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정부 당시 주한미군 재배치를 비롯한 한·미 동맹 재조정 작업이 정치 쟁점화되면서 한·미 간에 신뢰가 손상된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드 문제의 주무 부서인 국방부의 대응도 문제가 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국회에서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현재 필요한 상황”이라고 하면서 전략적 모호성 전략이란 말이 무색해졌다. 미·중의 이해가 충돌하는 사안에 대해 정부가 눈치만 본다는 인상만 심어줬다. 군사 주권이 걸린 문제에서 스스로를 옭아매는 듯한 자세는 곤란하다.

 

  정부는 미국이 요청해왔을 경우 의사결정 과정, 북핵 대처에 대한 사드의 효과와 한계 등에 대해 의연하게 설명해야 한다. 사드는 국민적 관심사가 된 지 오래다. 그런 과정이 있어야 안보 정책에 대한 오해가 사라져 국민이 믿고 따른다. 군사 주권, 안보 문제에선 당당해야 하고 외교적 문제에선 주도면밀해야 한다.

 

 

한겨레 <2015년 3월 12일 31면>

어지러운 ‘사드 논란’, 미적대는 정부 탓 크다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 체계를 우리나라에 배치할지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어지럽게 진행되고 있다. 제때 입장 정리를 하지 못하고 좌고우면하는 정부 책임이 크다. 정부는 빨리 명확한 거부 뜻을 밝혀 논란을 마무리하기 바란다.

 

  ‘사드 문제 공론화’ 여부를 두고 청와대와 새누리당 사이에, 그리고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설전을 벌이는 것은 그 자체로 볼썽사납다. 부적절한 정책결정 과정의 폐해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을 가중시킨 것은 무엇보다 유승민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다. 이들이 15일 당정청 정책조정협의회와 이달 말 정책의총 등을 통해 사드 문제 공론화에 나서겠다고 한 의도는 분명하다.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정부를 압박해 사드를 우리나라에 배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대사 피습 분위기’를 활용해 핵심 외교안보 전략과 관련된 사안을 정략적으로 밀어붙이려는 행태다.

 

  청와대가 11일 공론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낸 것은 나름대로 일관성이 있다.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의 말처럼 “동북아 각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몰고올 사안을 고도의 전문성이 뒷받침되기 어려운 의총에서 자유토론으로 결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가 “(미국의 사드 배치) 요청이 없었기 때문에 협의도 없었고 결정된 것도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는 미국의 움직임을 봐서 결론을 내리겠다는 비주체적인 태도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사드의 해외 배치와 수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사드는 미국이 세계적인 미사일방어(엠디) 체계의 하나로 개발한 값비싼 장비다. 우리나라에 배치된다면 일차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미·중 군사대결의 최전선이 되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느끼는 위협감은 이들이 이미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반대 뜻을 밝힌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일부에서는 사드가 북한만을 겨냥한 것임을 잘 설명하면 된다고 하지만 이는 ‘사냥용 공기총은 흉기가 아니다’라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또한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는 결국 우리나라에 대한 구입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로 대응하며 미국의 엠디 체계에는 가입하지 않는다고 밝혀왔다.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되면 이 말이 모두 거짓이 된다. 이제 소모적인 사드 논란을 끝낼 때가 됐다.

 

■ 논리 vs 논리

 

중앙, 당·청 정책 혼선에 초점 vs 한겨레, 사드 한반도 배치 반대

 

<단계1> 공통 주제의 의미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지난 11일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이 사드 문제에 관해 “정부의 입장은 3NO(NO Request, NO Consultation, NO Decision)”라고 밝힌 이후 이를 둘러싼 공방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요청이 없었기 때문에 협의도 없었고 결정된 바도 없다는 것인데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국회에서 “국방부로서는 전략적 모호성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답변한 내용과 같은 입장이다. 반면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유승민 원내대표와 원유철 정책위의장은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공론화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 같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공론화’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 표명에 중앙과 한겨레가 한목소리로 비판적이다.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서는 분명한 견해차를 나타내고 있다. 사설 제목에서부터 중앙은 “당·청의 사드 공론화 엇박자…국민은 혼란스럽다”로 당과 청와대의 갈등 양상 자체에 주목한 반면, 한겨레는 “어지러운 ‘사드 논란’, 미적대는 정부 탓 크다”로 정부의 책임을 보다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

 

 <단계2> 문제 접근의 시각차

 

  중앙은 사드를 우리나라에 배치할지 여부 자체보다는 이 문제의 공론화를 둘러싼 정책 결정 과정의 혼선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한겨레는 제때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는 정부의 책임을 지적하면서 정부가 빨리 ‘명확한 거부 뜻’을 밝히라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아울러 중앙은 사드 문제 공론화를 두고 당·청 간 두 목소리가 나오는 것 자체가 유감이라는 입장이다. 이런 모양새가 바로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의사결정 과정이 냉철하고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고 사드 문제는 우리나라의 ‘국익과 안보의 관점’에서 결정하면 될 일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안보 문제가 정치화되면 불필요한 논란만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덧붙이고 있다. 반면 한겨레는 공론화를 둘러싼 당·청 간 갈등 양상을 지적하면서도 사드의 한반도 배치 자체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나타내는 데 보다 역점을 두고 있다. 유승민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정부를 압박해 사드를 우리나라에 배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며 “‘미국대사 피습 분위기’를 활용해 핵심 외교안보 전략과 관련된 사안을 정략적으로 밀어붙이려는 행태”라고 지적하고 있다.

 

 <단계3> 시각차가 나온 배경

 

  사드를 우리나라에 배치하는 문제는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중국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외교 문제로 번지고 있다. 이에 대해 중앙은 ▶사드는 주한미군이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처를 위해 본국에 배치를 요청한 무기 체계로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방어용’이라는 점과 ▶미 행정부가 한반도 배치를 결정하려면 사전에 한·미 간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두고 중국이 요격 대상 탄도미사일 탐지 레이더가 중국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고는 있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는 않는다. 이에 반해 한겨레는 보다 분명하게 중국의 입장을 설명한다. “사드는 미국의 세계적인 미사일방어(엠디) 체계의 하나로 개발한 값비싼 장비로 우리나라에 배치된다면 일차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가 미·중 군사대결의 최전선이 된다는 점까지 지적하면서 사드가 북한만을 겨냥한 것임을 잘 설명하면 된다고 하는 일부의 주장은 ‘사냥용 공기총은 흉기가 아니다’라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는 예까지 들고 있다. 사드 문제에 대한 중앙 사설의 결론은 “정부는 미국이 요청해왔을 경우 의사결정 과정, 북핵 대처에 대한 사드의 효과와 한계 등에 대해 의연하게 설명해야 하고 그래야 안보 정책에 대한 오해가 사라져 국민이 믿고 따른다”는 것이다. 군사 주권과 안보 문제는 당당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한겨레는 그동안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한국형 미사일방어 체계로 대응하며 미국의 엠디 체계에는 가입하지 않는다고 밝혀왔다는 점을 들어 만약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되면 그동안 해 온 말이 모두 거짓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겨레신문 칼럼-기고/구인회(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교수)-20150324화] 시험관 시술, 윤리를 검토할 때다

 

올해는 우리나라에서 시험관아기 시술이 시작된 지 30년째로 기술로는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기술로 태어난 아기에게 유발될 수 있는 장기적 영향 등에 관해 현재 알려진 바가 없다. 이제 불임이나 난임 부부들에게 희망이 된 이 기술의 사회윤리적 문제에 대해 검토해볼 때이다.

 

시험관아기는 난자와 정자를 체외수정하여 2~6일간 시험관에서 키워 자궁에 이식하여 임신이 되도록 돕는 것을 말한다. 시술 과정에서 생성된 배아는 착상 전 진단을 통해 유전적으로 정상이라는 진단이 나온 배아만 선별적으로 이식하고, 발달 정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등급에 따라 자궁에 이식되는 배아가 있고, 동결 보존되는 배아가 있다. 그밖의 다른 배아는 연구에 이용되거나 버려지기도 한다.

 

2012년 보건당국이 집계한 시험관아기 시술 건수는 4만8238건으로 국비 지원 전인 2005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그 이유는 비용이 일회 삼사백만원 정도여서 일부 병원은 자연임신 가능성이 있는 부부까지 시술을 권유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더구나 불임이 아닌데도 연이은 출산과 육아가 부담스러워 쌍둥이를 낳으려는 여성들과 독신자까지 시험관아기 시술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호르몬제를 이용한 과배란을 통해 한번에 10개 안팎의 난자를 채취하기 때문에, 과배란 과정에서 복수가 차고 소변이 안 나오는 등 여성에게 위험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또한 배란유도제는 폐경을 촉진시키며, 암을 발생시키고, 태아의 선천성 기형을 일으킨다는 경고도 있다.

 

한 국제 공동연구에 따르면 1개의 배아만 이식하도록 하는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아기 같은 보조생식술로 임신된 아기들의 조산이나 사산, 조기 사망, 저체중 비율이 지난 20년간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국내에선 시험관아기 시술 중 임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또는 부부가 쌍둥이를 원하기 때문에 일부러 배아를 여러개 이식하는 경우가 많다. 다태 임신의 경우 자연유산, 조산, 미숙아, 발육부전, 출산 전후의 산파적 합병증이 증가하기 때문에 선택적인 태아 감수술을 감행하게 된다. 이는 태아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여성의 건강에 위해를 가하게 된다. 여성의 몸은 출산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시 험관아기 시술은 불임부부들에게 아기를 가질 수 있게 하여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로 시행하지만, 생명을 통제와 조작 가능한 것으로 전락시켜 인간 존엄성을 훼손한다. 더구나 시술과정에서 등급이 매겨지고, 연구에 이용되거나 버려지는 배아는 함부로 실험에 이용하거나 죽여도 되는 대상이 아니라 보호해야 하는 온전한 초기 인간 생명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난자나 정자의 공여, 대리모를 통한 임신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몸매 관리를 위해 혹은 사회 활동으로 시간여유가 없는 여성들이 자신을 대신하여 아기를 낳아줄 여성을 찾는 경우도 있다니, 인간 생명은 더 이상 하느님의 선물이 아닌 선택의 대상이 되었다.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고려할 때, 정부는 시험관 시술을 위한 국비 지원보다는 이제 불임과 난임 예방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난임의 근본 원인이 되기도 하는 스트레스와 심리 정서적 불균형을 없앨 수 있도록 상담 기회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신생식 기술의 위험성에 대한 이해와 경각심을 높이는 홍보도 필요하다. 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출산이 과연 진정으로 태어날 아기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도록 계몽해야 한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민아(논설위원)-20150324화] 아시아적 가치, 한국적 민주주의

91세를 일기로 타계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생전에 ‘아시아적 가치’를 주창했다. 1994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실린 ‘문화는 숙명이다’라는 인터뷰에서 리 전 총리는 아시아의 문화적 특수성을 들어 “서구적 의미의 민주주의는 동아시아에 부적합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8개월 후 같은 잡지에 ‘문화는 숙명인가?’란 반박문을 싣고 정면 비판했다. 그는 아시아에도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철학적 전통이 있다면서 맹자의 왕도정치와 동학의 인내천 사상을 예로 들었다. 결론은 “아시아에서도 민주주의는 필연”이라는 것이었다.

 

리 전 총리의 ‘독특한’ 민주주의관은 그가 남긴 어록에서도 드러난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민주주의는 신생 개발도상국에 좋은 정부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여론조사나 인기투표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런 지도자는 약한 지도자다” “언론의 자유는 싱가포르의 통합과 정부의 우선순위 아래 종속돼야 한다” 등이 그것이다. ‘문제적 인물’ 리콴유는 이러한 신념으로, 싱가포르를 번영하는 도시국가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싱가포르 시민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2012년 미국 갤럽이 발표한 조사결과를 보면, 세계 148개국 국민 중 행복감을 느끼는 비율에서 싱가포르는 꼴찌를 기록했다. 껌 씹는 일조차 간섭받는 나라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일은 쉽지 않을 터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9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리 전 총리의 국장에 참석한다. 박 대통령이 해외 정상급 지도자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앞서 박 대통령은 “애통함을 금치 못한다”는 성명도 냈다. 박 대통령이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리 전 총리와 인연을 맺어온 점을 감안하면 이해할 만하다. 다만 걸리는 대목은 있다. 박 전 대통령 또한 유신을 선포하며 ‘한국적 민주주의 토착화’라는 기괴한 명분을 내세웠다. 배불리 먹는 일이 중요하고, 그러려면 민주주의 같은 가치는 사치에 불과하다는 논리였다. 박 대통령이 리 전 총리를 애도하며 ‘그때 그 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일은 없기 바란다. 한때 박정희의 시대가 있었다. 리콴유의 시대도 있었다. 이제 그 시대는 저물었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엄을순(문화미래이프 대표)-20150324화] 우리 몸을 부탁해

 

지난주, 쇼핑몰에 들렀다가 망신만 당했다. 디자인은 섹시한데 크기는 아동복. 궁금해서 점원에게 물었다. ‘요즘은 애들도 이런 섹시한 티셔츠를 입나요?’ 어른용이란다. 44사이즈냐 물으니 프리사이즈란다. 신축성도 없던데 프리는커녕 열 명 중 두어 명쯤 맞으려나. 그렇다면 우리나라 젊은 여성 80% 이상이 오버사이즈란 말? 젊은 여성의 70~80%는 자기가 비만이라 생각한다던데 그 통계의 배경이 어쩌면 이 작은 옷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44사이즈. 과연 바람직한 체형인가.

 

 프랑스에서는 지금 말라깽이 모델 퇴출 법안이 한창 추진 중이라는데.

 

 9년 전께, 체질량지수 18(키 1m75㎝, 몸무게 56㎏가량) 이하인 모델의 패션쇼 출연을 금지시킨 스페인을 시작으로 이탈리아·영국·브라질·이스라엘·미국, 이젠 프랑스까지도 동참한 셈이다.

 

  사실 말라깽이 모델을 퇴출하기 시작하게 된 이유는 거식증 같은 섭식장애 때문이다. 2007년 프랑스의 모델 이사벨 카로가 거식증의 위험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촬영한 뒤 사망하면서 거식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 후 계속 말라깽이 모델 퇴출운동은 일어나고 있지만 ‘선명하게 드러난 갈비뼈와 앙상한 팔다리에 퀭한 눈동자의 모델들’이 아직도 유명 패션쇼에서 캣워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말라깽이에게 입혀놓은 옷에 사람들이 더 열광하기 때문이라는 디자이너의 변명. 디자이너 책임인지 그런 옷을 선호한 대중 탓인지. 어쨌거나, 디자이너들이 먼저 현실적인 사이즈의 옷을 유행시키면 어떨까. 처음엔 낯설어도 차차 미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을까.

 

  ‘개미 허리와 앙상한 팔다리’가 젊은 여성의 이상적인 체형이라면 문제는 크다. 그렇게 몸을 만들려고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하면 건강은 물론 자신감도 잃고 성격 형성에도 문제가 생길 게다.

 

  ‘쭉쭉빵빵’. 시원스러운 모습의 소녀시대 광고 전단을 봤다. 절묘하게도 9명의 다리가 똑같다. 컴퓨터의 농간은 아닌지 궁금하다. 화제가 된 클라라의 화보 사진 또한 묘하다. 몸은 앙상하게 갈비뼈 자국이 선명한데 가슴과 엉덩이는 애마부인 수준이다. 죽을 만큼 운동을 했는지 성형인지 아님 컴퓨터의 농간인지는 몰라도 확률은 비현실적이다.

 

 연예인 광고 사진에 ‘절대 따라 하지 마세요. 성형 혹은 컴퓨터로 연출한 사진임. 자칫하면 부작용 등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음’ 뭐 이런 거 하나쯤 덧붙이면 어떨까 싶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허원순(논설위원)-20150324화] 국부(國父)

 

워싱턴DC 교외의 마운트 버넌(Mount Vernon)은 미국인들에게 각별한 곳이다. 국부(國父) 조지 워싱턴의 사저로 미국인들에게는 성지 같은 명소다. 조지 워싱턴이 9~10세 때 그의 부친이 지은 이 대저택이 명명된 사연이 흥미롭다. 당시 본토 영국의 유명한 해군제독 버넌의 이름을 땄던 것이다. 버넌은 조지의 큰형 로렌스 워싱턴의 상관으로 ‘로열 브리티시 네이비’(영국 해군)의 현역 중장이었다. 하지만 워싱턴 가문을 친영파, 친왕파라고 비판하는 미국인은 없다. 국부를 기리는 미국인들의 발길이 끝이질 않으니 외국인 방문객도 적지 않다.

 

워싱턴DC에서 자동차로 한두 시간 동쪽으로 달리면 샬러츠빌이란 소도시가 있다. 버지니아주립대학으로 유명한 이곳에도 몬티셀로라는 고풍스런 대저택이 있다. 그리스 신전풍의 이 고택은 미국의 작은 국부격인 토머스 제퍼슨이 58년간 산 곳이다. 미국 헌법을 기초한 3대 대통령의 다양한 유품들이 잘 전시돼 있다. 어릴 때부터 마운트 버넌이나 몬티셀리를 방문하면서 많은 미국인들은 참된 민주주의 가치와 건국 정신을 산교육으로 배운다.

 

너무나 흔해진 게 공화국이지만 공화국에는 대개 국부가 있다. 프랑스에는 드골이, 중국인들에겐 쑨원(孫文)이 있다. 인도에 네루라면 이집트엔 나세르다. 터키의 초대 대통령 아타투르크(케말 파샤)나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도 그렇게 추앙받는다. 이들 나라는 수도의 관문도 아타투르크 국제공항, 벤구리온 국제공항으로 이름 붙였다.

 

몰락한 공산국가에서조차 그 나름대로 국부는 존재했다. 신격화되고 억지로 상징화된 게 차이점이겠지만 나라를 세운 데는 실패라도 실패의 역사는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기초를 세운 초대 대통령은 동상도 하나 없다. 식민지와 전쟁을 거친 세계 최빈국에 이승만만큼 국제적 경륜과 자유민주의 참가치를 인식한 인물도 없었다는 평가가 이제 조금씩 나오고는 있지만 갈길이 멀다. 그의 사저 이화장(梨花莊)이란 이름이라도 들어본 중·고·대학생이 얼마나 될까.

 

마침 모레(26일) 서울의 한 교회에서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회장 박진) 주최로 탄생 140주년 기념식이 열린다고 한다. 올해가 작고 50주년이지만 우리 사회의 관심이 겨우 이 정도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떠나는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를 보면서 우남(雩南)을 다시 보게 된다. 리콴유와 이별하는 싱가포르 사람들과 우남의 존재 의미에 관심도 없는 한국인들의 차이가 너무 크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정상범(논설위원)-20150324화] 서울둘레길

 

지난주 말 모처럼 초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아차산 둘레길을 찾았다. 새 봄을 맞아 둘레길 주변에는 진달래가 한껏 꽃망울을 머금은 채 봄을 터뜨릴 채비를 하고 있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부드러운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올랐다. 탁 트인 전경에 한강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왔다. 정상을 지나 9부 능선에 자리 잡은 전망대에 오르니 우뚝 솟은 강남의 제2롯데월드는 물론 서울의 너른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삼국시대에 고구려와 백제·신라가 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혈투를 벌였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친구들은 수도인 서울 가까이에 커다란 강이 흐르고 북한산 같은 명산이 들어서 있다는 것을 보고 놀라곤 한다. 인구 1,000만명이 넘는 메트로폴리스 가운데 서울을 제외하면 설렁설렁 걸어서 갈 만한 산을 찾기 쉽지 않은 탓이다. 서울의 크고 작은 산줄기를 시계방향으로 이어 만든 서울둘레길도 새로운 자랑거리다. 8개 코스, 157㎞에 이르는 만만찮은 길이지만 큰 부담 없이 걷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창포원에서 시작한 대장정은 수락산∼불암산의 1코스를 지나 용마~아차산 코스와 대모~우면산 코스를 거쳐 북한산 기슭에서 막을 내린다. 화려한 도시와 다소곳한 자연이 어우러진 서울만의 독특한 트레일이다. 서울둘레길에는 곳곳에 휴대폰 충전기가 깔려 있고 완주를 기념하는 스탬프도 찍어준다니 둘레길의 화려한 변신이라고 할 만하다.

 

서울경제신문이 지난주 말 아차산 코스에서 가진 '제1회 서울둘레길 달팽이 마라톤 행사'가 500여명의 시민이 참석하는 대성황을 이뤘다. 달팽이 마라톤은 서울둘레길 코스에서 매달 최적의 코스를 선정해 계절의 풍미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다. 서울둘레길을 걸으면서 선물도 받고 역사 공부도 곁들인다면 이보다 좋은 건강 챙기기가 없을 듯하다. 올봄에는 장롱에 처박았던 등산복을 꺼내 입고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서울둘레길을 걸으며 자연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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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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