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후임 총리 인선 ■ 누리과정 지원금 제도 기어이 사단, 벼랑 끝에 선 아동복지 ■ 국회의원 백지신탁 0건 ■ 세월호 참사 1주년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후임 총리 인선
[경향신문 사설-20150428화] 후임 총리, ‘수첩’과 ‘진영’ 벗어나 물색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이완구 총리 사표를 수리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연루된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지 일주일 만이다. 부정부패 문제로 이 총리가 취임 70일 만에 낙마함에 따라, 출범 2년여밖에 안된 정부에서 여섯 번째 총리를 찾아야 하는 기막힌 광경이 벌어지게 됐다. ‘총리 부재’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총리직을 대행하는 비정상적인 국정 운영도 최소 한달 이상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이 총리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가타부타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완구 사태’로 빚어진 나라의 혼란과 국정의 난맥에 대해 임명권자로서 응당 사과부터 했어야 마땅하다.
이제 국정을 정상 궤도로 돌려놓기 위해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새 총리 인선이다. 박 대통령은 새 총리 인선을 국정의 혼선을 수습하고 정권의 분위기를 일신하는 전기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아야 한다. 도덕성이 새 총리 인선의 최우선 기준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박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후보자 5명 가운데 3명은 청문회에 서 보기도 전에 낙마했고, 한 명은 ‘최단명 총리’란 불명예 기록을 남겼다. 거듭된 ‘총리 인사 실패’가 낡은 수첩에 얽매여 내 사람을 고집해 도덕성 기준을 무시·간과하면서 빚어졌음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이번에도 총리 후보자가 도덕성에 걸려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진퇴 논란에 휩싸이고 낙마 지경에 몰리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면 박 대통령은 심각한 레임덕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인사청문회 통과만을 우선해 현직 각료나 친박계 정치인 등을 물색하는 것은 또 다른 실패를 예비하는 길이기 십상이다. 다분히 정치공학의 산물인 특정 지역 총리론도 마찬가지다. 둘 다 ‘이완구 총리 실패’가 보여주는 바다. 인사청문회 관문을 걱정하지 않고, 도덕성과 통합·소통 마인드 등 현 상황에서 요구되는 총리 자질을 갖춘 인물을 찾으려면 인재 폭을 넓혀야 한다. 박 대통령이 ‘수첩’ 밖으로 나와서, ‘진영’의 틀을 벗어나 폭넓게 사람을 구하는 변화를 보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야권에도 총리후보자 천거를 요청하는 등 발상의 전환도 불사해야 한다. 이번 총리 지명 결과가 박 대통령의 변화 여부를 판단하고, 남은 임기의 성패를 가름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더 이상 박 대통령에게 실패의 교훈을 학습할 기회는 남아 있지 않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8화] 귀국 이후 박 대통령이 해야 할 일
박근혜 대통령이 9박12일간의 남미 순방을 마치고 27일 새벽 귀국했다. 박 대통령은 건강이 좋지 않아 하루 이틀 공식 일정을 잡지 않을 것이라 한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만성피로 때문에 생긴 위경련으로 인한 복통이 주 증상”이라고 말했다. 멀고 먼 국가들을 순회한데다 반갑지 않았을 국내 소식 때문에 몸과 마음 모두 고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느끼는 것보다 더한 피로와 몸살을 지금 국민이 앓고 있다. 대통령 순방기간 중에 국무총리는 사의를 표명했고 국정은 사실상 중단 상태였다. 대통령은 자신이 없는 동안 국내에서 숱한 의혹과 비판이 제기되는 걸 부담스러워했겠지만, 반대로 국민은 중요한 현안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 1주기에 굳이 멀리까지 날아간 대통령이 미덥지 않았을 것이다. 이 간극은, 현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성완종 리스트’의 초점을 흐리는 듯한 “정치개혁 차원에서 (여야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는 발언으로는 결코 메울 수 없다.
성완종 파문을 제대로 수습하고 신뢰를 회복하려면 우선 박 대통령 스스로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이번 파문의 본질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국무총리와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경남도지사 등 현 정권의 핵심 실세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다. 그 자금의 상당액은 과거 박 대통령의 경선·대선 캠프로 흘러갔다고 성 전 회장은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나는 관계없다’는 식으로 제3자처럼 행동할 게 아니라, 최소한 핵심 측근들이 이번 사건에 다수 연루된 데 대해 국민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리고 검찰 수사가 성완종 리스트의 본질을 벗어나 물타기식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박 대통령이 정치적 꾀를 내어 곤란한 국면을 모면하려 한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버릴 것이다.
박 대통령이 귀국 당일에 이완구 총리의 사표를 수리한 건,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건, 국민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이를 찾아 후임 총리로 지명하는 일이다. 이제까지 박 대통령은 자신이 잘 아는 인사들 중에서만 사람을 골라 써왔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좁은 인재풀을 고집하는 박 대통령 태도가 총체적 국정 난맥의 주요 원인임을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다. 이런 탓에 현 정부에서 유난히 총리 지명자들의 낙마가 끊이지 않았다. 아울러 국내외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남미 순방을 계획한 외교 라인에도 책임을 묻는 게 마땅하다. 국내 문제 때문에 외교 현안을 뒤로 미룰 일은 아니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중·일 정상이 회동한 ‘반둥회의 60주년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를 놔두고 멀리 남미 순방 일정을 잡은 것은 중대한 외교 실책이다. 이런 잘못을 방치해서는 국정 운영이 계속 삐걱댈 수밖에 없다.
■ 누리과정 지원금 제도 기어이 사단, 벼랑 끝에 선 아동복지
[한국일보 사설-20150428화] 관련기관 떠넘기기에 벼랑 끝 선 아동복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핵심 복지 공약으로 관심을 끌어온 누리과정 지원금 제도가 기어이 사단이 났다. 예산 배정을 둘러싸고 중앙 정부와 시도 교육청의 떠넘기기식 힘겨루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관련 예산 미확보를 이유로 집행을 중단하는 지자체가 속출, ‘보육대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누리과정 지원은 어린이집을 다니는 3~5세 아동 한명당 29만원, 이중 22만원은 부모에게 바우처 형태로, 7만원은 어린이집에 직접 지원토록 하는 제도다. 하지만 전북도와 강원도는 25일 결제해야 할 누리과정 운영비 15억4,000만원, 강원도는 11억원의 예산 집행을 하지 못했다. 관련 예산을 확보, 일선 지자체에 내려 보내야 하는 교육청이 ‘어린이집은 교육청이 아닌 지자체 소관’이라며 4월부터 예산 책정을 거절한 까닭이다. 두 지자체가 내달 10일까지 집행해야 할 돈이 90억원에 달해 2차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추후 집행이 늦어진다면 학부모의 보육비 부담이 가중되고, 어린이집 교사의 월급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 앞서 광주와 인천 교육청 등 일선 지자체가 비슷한 입장에 처했다가 시와 구로부터 긴급 처방을 받고 위기를 넘겼으나, 추가 예산 확보를 둘러싸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기획재정부가 지난 해 9월 2015년 국가예산안에서 누리과정을 비롯한 교육 복지 예산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떠넘긴 것이 발단이 됐다. 이에 일선 교육감은 “가뜩이나 어려운 교육재정을 파탄으로 모든 처사”라며 예산 책정에 난색을 표했다. 이 과정에서 “5세까지 아이 기르는 비용은 국가에서 지원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포퓰리즘 논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4월 국회에서 지방채 발행을 위한 지방재정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해결될 것이라는 정부의 안이한 사고도 문제를 키우는 데 한 몫 했다. 그나마 이런 시기를 위해 지난 해 막판에 확보한 목적예비비 5,064억원도 성완종 리스트 국면에 따른 식물국회 지속으로 집행이 중단되고 있다. 여야는 정쟁을 중단하고 관련 예산 통과에 서둘러야 한다. 정부도 교육복지 관련 예산을 둘러싼 관련 기관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방관하지 말고 체계적인 예산 집행이 가능한 시스템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428화] '보육대란' 누군가는 부담해야 해결된다
강원도와 전북도에서 어린이집에 주는 누리과정(3~5세) 지원금이 처음으로 중단됐다. 다음달엔 인천·충북도 지원금이 끊길 판이라고 한다. 다음달 예산이 고갈되는 경기도교육청도 한 달짜리 긴급 ‘땜빵’ 예산을 마련하고 있다. 지원금이 끊긴 어린이집이 문을 닫게 되면 전국적으로 ‘보육대란’이 확산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누리과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으로 만 3~5세 유아들의 학비와 보육료를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누리과정은 부담 능력과 재원 조달 방안은 생각하지 않고 급하게 전면 실시하는 바람에 심각한 재원 부족 사태를 맞고 있다. 올해 필요 예산은 3조9000억원이지만 1조8000억원이나 모자란다.
여야 원내대표는 지방채를 발행해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키로 하는 지방재정법 개정안을 4월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여야의 의견 차이로 아직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여야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진영 논리에 따라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지원에 대한 입장이 갈라지는 것도 문제다. 진보 성향인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누리과정 지원을 위해 지방채도 발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무상보육은 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던 만큼 지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보수 성향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최근 무상급식 예산을 중단해 경남교육청의 반발을 샀었다. 보육료 지원을 중단하면 그 피해는 저소득층에 집중된다. 돈을 못 내는 가난한 집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쫓겨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면 교육청이 일단 지방채를 발행해서라도 누리과정 예산을 끊어선 안 된다.
그러나 지방채로 누리과정을 지원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빚을 내서 돌려 막는 식으로는 불어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정부와 정치권은 무상보육이든, 무상급식이든 큰 틀에서 지속 가능한 대안을 다시 짤 필요가 있다. 혜택만 선전할 게 아니라 누군가 비용 부담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을 설명하고,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8화] 어린이집 지원 중단, 중앙 정부가 책임져야
처음으로 3~5세 어린이집 운영비 지원 중단 사태가 현실화됐다. 강원도와 전북도가 4월분 어린이집 운영비 지원을 끊은 것이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지원금은 보육료와 운영비로 나뉘는데, 2개 도는 이 가운데 운영비를 지불 시한인 엊그제까지 지급하지 않았다. 특별한 상황 변화가 없는 한 다음달 11일이 지불 시한인 보육료는 지급이 어려울 듯싶다. 다른 광역 시·도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사태가 전국적인 보육대란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어린이집 원장들은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운영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이것이 아이를 낳기만 하면 국가가 키워준다는 나라의 현주소다.
2개 도의 어린이집 운영비 지원 중단 사태는 중앙 정부와 지역 교육청 간 물고 물리는 책임 공방 끝에 발생했다. 외견상 해당 지역 교육청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지원금을 도청에 보내지 않은 것이 직접적 원인이다. 이들 교육청은 올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3개월치만 편성해 지난달까지 모두 소진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교육청이 영·유아를 볼모 삼아 몽니를 부리는 형상이다. 그러나 교육청의 어린이집 지원 중단이 중앙 정부가 약속한 국고 지원이 시행되지 않은 데 따른 조치임을 감안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정부는 지난달 누리과정 예산 부족분 1조8000억원 가운데 우선 국고 예산 5064억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여야가 국고 지원과 지방채 발행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지방재정법 개정을 동시에 처리키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지방재정법 개정 작업이 지지부진하자 특별한 이유 없이 국고 지원을 미루고 있다. 정치적 문제로 영·유아와 학부모들이 엉뚱하게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국고 5064억원이 집행된다고 해서 당장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방재정법 개정과 지방채 발행 작업이 순조롭게 이뤄질지 의문인 데다 다행히 그 관문을 넘는다 해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여전히 4600억원가량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앙 정부가 나서는 길밖에 없다. 어린이집 지원은 국가 미래를 위한 중요한 투자다. 출산율과 여성의 사회참여 유도와도 밀접히 연계돼 있다. 국가적 차원의 사업이니 중앙 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순리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의 어린이집 보육 지원 책임론을 여러 차례 약속한 것을 상기하기 바란다.
■ 국회의원 백지신탁 0건
[한국일보 사설-20150428화] 유명무실한 공직자 백지신탁제도 개선해야
19대 국회 들어 국회의원이 이른바 ‘백지신탁’을 한 주식이 처분된 예가 한 것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새누리당 박덕흠(기재위)ㆍ새정치민주연합 김영환(정무위) 등 7명의 의원이 본인과 배우자 등 이해관계인의 보유주식을 백지신탁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지금까지도 처분은 전혀 이뤄지지 않아 2005년 도입된 백지신탁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졌다. 최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백지신탁 제도의 허점을 활용, 기업과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직무를 최대한 활용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이 더하다.
공직자윤리법은 국회의원과 정무직 공무원, 4급 이상 일반직 공무원 등 재산공개 대상자가 본인 및 배우자, 직계 존ㆍ비속 등 이해관계인을 합친 보유주식 총 가액이 3,000만원을 넘으면 해당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하도록 했다. 공직자가 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직위를 이용하는 공익과 사익의 충돌, 즉 이해충돌을 막기 위한 제도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은 자신과 이해관계인이 합계 3,000만원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기업의 직무와 관련성이 있는 상임위 배정을 피하거나, 직무관련성 심사에 걸린 해당 주식의 백지신탁 계약을 하도록 돼 있다. 또 그 경우 수탁기관은 원칙적으로 신탁계약 체결 60일 이내에 주식을 처분하되, 관련 정보 일체를 신탁 공직자에게 알리지 못한다.
언뜻 이만하면 공직자의 이해충돌을 막을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의원 7명의 백지신탁 주식이 일절 처분되지 않는 등 현실의 허점이 숱하다. ‘60일 내 처분’은 원칙일 뿐, ‘1회 30일 이내’로 사실상 무한 연장이 가능하다(공직자윤리법 제14조의 4 제2호의 단서조항).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이라는 조건은 실제로 처분되지 못한 상황 앞에 무력하다. 백지신탁 주식 대부분이 비공개 주식이어서 처분이 쉽지 않다는 게 표면적 이유다. 그러나 비공개 주식도 활발히 거래되는 시장현실로 보아 ‘강제 매각’ 규정이 없어 수탁기관이 시장에 관련정보를 알리는 등의 처분 활동에 소극적인 것이 실제 이유다. 또 다른 허점은 성 전 회장이 보여줬다. 그는 지난해 6월 의원직을 상실할 때까지 경남기업 대주주 지위를 유지한 채 19대 국회 정무위원으로 활동하며 피감 금융당국을 주무르다시피 했다. 정무위 배정 직후 인사혁신처 산하 백지신탁심사위원회가 직무관련성을 인정해 경남기업 주식의 매각이나 백지신탁을 결정했지만, 그는 행정소송을 통해 시간을 벌었다. 이런 ‘꼼수’는 18대 국회에서도 복수 사례가 있었지만, 아직 근절책이 마련되지 못했다.
껍질만 남은 백지신탁 제도의 취지를 되살리려면 이런 허점을 메울 법개정이 시급하다. 아울러 그때까지는 공직자윤리위와 주식백지신탁심사위가 현행 법령이라도 최대한 엄격히 해석ㆍ적용하려는 자세부터 가다듬길 촉구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8화] 의원 백지신탁 0건… 국회 시계 거꾸로 가나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의 보유주식 백지신탁 규정은 의원 재직시 보유주식 등의 가격에 영향을 줄 정책을 입안하거나 법을 집행하지 못하게 막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19대 국회 출범 이후 의원의 백지신탁 주식을 매각한 사례가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이 제도가 사실상 형해화하고 있다. 게다가 국회는 한술 더 뜨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 이후 백지신탁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 여론이 높음에도 오히려 이 제도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손질하려는 태세다.
19대 국회가 개원한 2012년 5월 이후 본인·가족 보유주식을 백지신탁한 의원은 7명으로 이들이 맡긴 주식은 현재까지 모두 매각되지 않고 있다. 소속 상임위와 관련된 주식을 보유한 의원은 이를 백지신탁하고 이 주식은 수탁기관이 60일 이내에 팔도록 돼 있다. 그러나 매각되지 않으면 계속 기한을 연장할 수 있어 의원이 주식을 사실상 보유한 채 해당 상임위에서 활동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좋은 예다. 그는 2012년 정무위에 배속된 후 지난해 6월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할 때까지 정무위원으로 활동했다. 성 회장이 굳이 정무위를 고집한 것은 경남기업에 대출 특혜를 주도록 정무위 감사 대상인 금융당국을 압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제가 심각한데도 정작 제도 강화에 나서야 할 국회는 거꾸로 완화 쪽으로 방향을 틀려 하고 있다.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보면 고위공직자가 재임 기간에 본인 보유 주식을 금융기관에 보관하고 퇴임 후 돌려받는 백지관리신탁 제도로 바뀌어 있다. 물론 현 제도가 유능한 기업인의 공직 진출을 어렵게 한다는 해석도 있지만 당초의 제도 도입 취지를 생각하면 퇴임 후 주식을 다시 소유하는 백지관리신탁은 자칫 제도 자체를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여야는 이번 기회에 의원의 사익을 위한 상임위 활동을 원천적으로 막을 대책을 내놓기 바란다.
■ 세월호 참사 1주년
[사설 속으로-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20150428화] 한겨레·중앙일보, ‘세월호 참사 1주년’ 사설 비교해보기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함께 구성한 지면으로 두 언론사의 사설을 통해 중3~고2 학생 독자들의 사고력 확장에 도움이 되도록 비교분석하였습니다.
[한겨레 사설] 상처를 치유하긴커녕 후벼파는 정부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년이 된 날이다. 그로부터 1년, 3년, 또는 10년 식으로 햇수가 바뀌어 같은 그날을 기리는 이유는, 그에 맞춰 사건의 의미를 새롭게 기억하기 위함이다. 고통스러운 사건일 경우, 사건의 원인과 책임을 밝히고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의지를 다지는 게 더욱 필요하다. 그날에 맞춰 행사를 하는 것은 기억의 공감대를 만들어내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노력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들렀다. 그러나 헌화나 분향을 하지 못하고 방파제 중간에 서서 대국민 발표문을 읽는 데 그쳤다. 대통령의 일정에 걸맞은 추념 행사는 마련되지 않았다. 희생자 유족과의 만남을 포함한, 제대로 된 행사를 청와대는 처음부터 준비하지 않았다. 외국 방문을 위한 오후 출국 일정을 고정해둔 상태에서, 세월호 비극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고 체면치레를 꾀하려는 인상이 물씬 풍겼다.
이날 아침 이완구 국무총리는 경기도 안산의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았다가 희생자 유족들한테 가로막혔다. 총리는 국무위원을 대표하여 움직이는 사람으로서 그 일정의 의미가 가볍지 않다. 그런데도 총리 쪽은 유족들한테 일정도 미리 알리지 않았으며, 현장에서 이렇다 할 메시지를 내놓지도 않았다. 대신에 정부는 국민안전처 주관으로 경찰과 군인, 소방관, 공무원 등을 불러 모아 ‘국민 안전 다짐대회’라는 홍보성 행사를 열었다. 연관된 전시회에 세월호 참사 사진은 한 장도 없고, 대신 구명조끼와 잠수복, 잠수 헬멧 등을 죽 늘어놓았다고 한다. 정부의 움직임에선 세월호 1주년을 기억하겠다는 진정성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체면치레와 책임 회피, 소소한 홍보에나 관심을 두고 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희생자 유족 모임은 이날 오후로 잡았던 합동 추모식을 취소했다. 정부에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철회와 선체 인양 선언을 요구하다,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내린 결정이다. 유족들이 숨진 이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1주기 추모 행사조차 제대로 열지 못하게 되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과연 우리 사회가 참극의 교훈을 얻고 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1년을 맞아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한 각오를 다지는 것은 남은 자들의 책무다. 이를 위한 사회적 노력으로서 진정성 있는 추념 행사는 반드시 필요했다. 정부는 세월호 상처를 치유하기는커녕 기억하는 데도 참으로 인색했다.
[중앙일보 사설] 세월호 1년… 아직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세월호 1년. 이 순간 가장 참담한 것은 ‘통한의 반성문’밖에 쓸 게 없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에도 이미 무능하고, 병들어 있었다. 생명이 없는 돈을 위해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버리는 업자, 집단 이익을 챙기며 공공의 이익은 외면한 관료, 무사안일에 빠진 정부, 리더십의 부재…. 우리 사회의 도덕지수는 최악이었다. 총체적으로 무능한 국가는 비스듬히 기운 상태에서 서해안을 떠다니던 ‘세월호’의 침몰을 막을 수 없었고, 304명의 생명을 수장(水葬)시키고 말았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불행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외면했던 적폐(積弊)를 직시하게 됐다. 기대 이하인 국가의 실력과 수준을 목도하며, 정부·정치권·국민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질 것’이라고 다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장하게 ‘국가개조’를 약속했다. 세월호는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야 한다는 주문을 남겼다.
지난 1년간 우리는 이 과제를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을까. 본지가 세월호 1년을 맞아 실시한 ‘국민 안전의식’ 여론조사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다. 시민 10명 중 6.5명이 ‘안전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수습책으로 국가조직 개편, 관피아 철폐 등 10대 개혁과제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해경이 해체되고 국민안전처가 만들어졌고, 세월호 3법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여기에 전문가들이 매긴 점수는 평균 58.8점이다. 낙제점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리더십은 행정부 조직만 바꿨을 뿐, 무능과 타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눈물 속에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며 잊지 않겠다던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유족들에게 “언제든 찾아오라”던 대통령의 말은 빈말이 됐다.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따라 세월호를 이용했고, 때로는 희생자들을 적대시하며 갈등을 부추겼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 것’이라며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정치인들의 경박함이 릴레이하듯 이어졌다.
형편없이 낮은 시민의식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공감과 배려로 아픔을 치유하고 집단적 기억으로 승화시키려는 성숙한 의식이 부족했다. 물론 많은 자원봉사자가 유족과 실종자 가족을 도왔고, 함께 슬퍼하긴 했다. 그러나 정부의 무능과 리더십의 부재 속에 보낸 불신의 1년 동안 사회는 분열됐다. 단식하는 유족 앞에서 피자 파티를 열고, 유족을 희롱하고, 돈을 뜯어내려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비상식이 판을 쳤다. 또 일부는 증오심을 부추기는 선동에 가담했다.
우리 사회의 ‘공감능력’은 낮았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으로서의 정의(justice)를 ‘공감(sympathy)’이라고 했다. 공감은 타인에 대한 연민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상대의 입장이 되어 그 감정을 자기 일처럼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개인의 삶에서든 공적 활동에서든 아무리 이성적 판단을 해야 할 때라도, 공감을 바탕으로 한 도덕적 판단이 발휘돼야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희생자와 가족들의 슬픔에 공감하고, 함께 상처를 치유하려고 노력하는 게 진정한 시민정신이다. 지난 1년의 혼란과 갈등에는 시민들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앞으로 1년 후 우리 사회는 더 나아질까. 지금 상태론 난망(難望)이다. 집권 세력은 이미 ‘세월호 망각’의 늪으로 빠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 남미 순방을 떠나고,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이미 미국으로 떠났다. 다른 관계 부처 장관들도 해외 출장이나 국회 일정 등으로 대부분 추모 행사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출범한 국민안전처는 오늘 ‘제1회 국민안전의 날 국민안전 다짐대회’라는 행사를 치른다. 경찰은 유족과 시민들이 연다는 추모집회에 ‘차벽을 설치하겠다’고 미리 엄포를 놓았다. 정부가 ‘세월호는 이제 그만 잊으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발신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일을 잊으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 세월호 참사는 슬픔에 공감하고, 충분히 애도하고, 함께 치유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미래지향적 노력으로 극복하고 승화해야 하는 일이다. 정부와 정치권, 우리 사회는 ‘세월호’에 대해 진정으로 잘못했다. 이런 잘못을 반성하고 바른길로 나아가도록 채근할 수 있는 세력은 시민이다.
우리는 세월호의 비극을 통해 국가가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줄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님을 뼈저리게 알게 됐다. 그러기에 탐욕의 절제라는 교양을 갖추고, 공동체의 문제 해결에 일상적으로 참여하는 책임 있는 시민을 키우는 노력이 절실하다. 그래야 시민 없는 민주주의의 허점을 파고든 부조리와 적폐를 근본적으로 씻어낼 수 있다. 70년 전 광복과 더불어 미국에 의해 주어진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존재가 절실하다. ‘공짜 민주주의’로는 세월호의 비극을 멈출 수 없다. 그것이 1년 전의 참극이 우리 공동체에 던지는 엄중한 명령이다.
--------------------------------------------------------------------------------
[논리 대 논리]
한겨레 “정부, 추념행사 진정성 보였어야”…중앙 “시민정신 부족함도 드러나”
단계 1 공통 주제의 의미
지난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세월호가 가라앉는 장면은 여전히 선명하고 너무나 고통스럽다. 그날 304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시청한 국민 모두가 목격자의 삶을 살고 있다.
언론에서는 ‘그 후 1년’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겨레는 정부에 대한 유족의 불신이 쌓여 1주기 추모 행사조차 제대로 열리지 못한 일을 다루었다. 추모는 기억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팽목항에 들렀지만 헌화나 분향도 못하고 돌아왔다. 한겨레는 최근에도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둘러싸고 유족과 대립각을 세우는 정부가 당일의 추모행사마저 진정성 없이 치르려 했던 점을 비판하였다.
한편, 중앙은 ‘통한의 반성문’을 썼다. 그 후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중앙의 진단이다. 반성을 위해 점검한 대상은 정부, 정치권, 시민 모두다. 우선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하여 희생자의 아픔을 보듬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일부 정치인들도 희생자를 적대시하면서 유족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일부 시민들에 대해서도 유족을 희롱하는 몰상식한 행동을 비판하면서 사회 분열의 책임을 물었다. 과거를 반성한 중앙은 앞으로의 대책을 주문하였다. 정부와 정치권에게는 잊으라는 강요를 멈추라 하였고, 시민들에게는 애도의 마음과 공동체를 위한 성숙한 자세를 주문했다.
단계 2 문제 접근의 시각차
두 사설은 공통적으로 ‘기억’이 공감과 애도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만 잊으라’는 정부의 주문은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는 데 필요한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인간은 이성이 받아들여야 감정도 수습된다. 유족들은 왜 그러한 일이 있어났는가를 정확히 알고 싶어한다. 누군가가 밉더라도 그렇게 된 사연이 있음을 알고 나면 마음의 정리가 시작되듯,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감정은 이성의 맥락 안에서 작동한다. 사건의 진상 규명이 자꾸 지연되거나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오면 그 사건은 계속해서 현재진행형으로 남는다. 세월호 참사 1주년 시점에서, 상처를 후벼판다는 한겨레의 비판과 아직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중앙의 진단은 모두 적절하다. ‘기억의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 수습의 첫 단계다.
단계 3 시각차가 나온 배경
두 사설은 정부의 대처에 대한 비판은 비슷했으나 문제상황을 들여다보는 초점은 달랐다. 한겨레는 유족과 정부의 관계에 주목하였고, 중앙은 사회 전반에 걸쳐 드러난 문제점 확인에 초점을 두었다. 이것은 현안 문제를 중심으로 보느냐, 장기적인 목적을 두고 보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한겨레가 정부의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및 선체 인양과 관련한 유족들의 불신에 집중하는 것도 현안 문제의 해결을 최우선으로 보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하려면 지금 지나는 길목이 중요하다. 또한, 장기적인 목적을 두고 본다면 문제 상황을 복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중앙은 정부의 무능 못지않게 ‘형편없이 낮은 시민의식’을 질타하는 데도 상대적으로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각 주체의 책임을 두루 살펴 국가공동체의 관점에서 문제해결을 촉구한 것이다. 장기적인 목적도 현안 문제의 대응도 모두 중요하다. 다만, 1주년이 된 ‘그날’의 특별한 의미를 염두에 둔다면 유족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사건 자체의 조속한 해결에 초점을 두는 쪽이 우선순위에서 앞설 것이다.
[키워드로 보는 사설]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세월호 3법’으로도 불리는 세월호특별법은 사고 후 205일이 지난 시점인 지난해 11월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참사의 진상규명과 배·보상을 위한 특별법, 국민 안전을 위한 정부 개편의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범죄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법(유병언법)의 3가지다. 지난 3월27일, 해양수산부는 그 중 참사의 진상규명과 배·보상을 위한 특별법의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담은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시행령안이 발표되자 유족은 즉각 반발하고 폐기를 요구했다. 가장 문제가 된 정부안의 내용은 특별조사위원회의 주요 보직에 공무원이 임명되도록 한 점이다. 해양수산부는 부처간의 업무 중복을 조정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시각이지만 유족들은 조사 대상자가 조사 주체가 되면 정확한 진상규명에 어려움이 생길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시행령안은 특조위의 인원을 특별법에서 정한 120명 내외가 아니라 90명으로 제한하였고, 진상규명의 대상도 ‘정부의 진상조사 결과에 대한 분석과 조사’로 한정하였다. 정부는 진상규명의 속도와 효율성, 비용 등을 주요 이유로 들고 있지만, 유족과 시민사회는 제대로 된 진상조사의 의지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0일, 해양수산부 장관은 시행령 수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추천 도서]
통치론
존 로크 지음, 강정인·문지영 옮김
까치글방 펴냄, 2007년
존 로크에 따르면, 근대 국가는 시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일차적 임무로 삼는다. 정부의 막강한 권력은 개인의 동의로부터 나오므로 정부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시민을 위해서만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대형 참사가 제도의 허점과 관료의 부패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면 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물어야 한다.
위기의 국가
지그문트 바우만, 카를로 보르도니 지음, 안규남 옮김
동녘 펴냄, 2014년
현대 국가는 복잡한 내·외부 사정으로 인해 모든 위기 상황을 적절히 관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근대 국가가 권력과 정치를 모두 가진 강한 국가였던 데 비해 현대 국가에서는 권력과 정치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고 바우만은 주장한다. 현대 국가는 관리하고 조절하는 기능이 약화되어 책임은 지지 않고 힘을 행사하는 통치만 강화되었다는 진단이다. 국가공동체가 제 기능을 되살리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볼 때다.
■ 세월호 관련 사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8화] 특조위원장 농성까지 부른 정부의 ‘세월호 몽니’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참사 발생 이후 6개월도 더 지난 지난해 11월7일이었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조직·활동 등 세부 내용을 규정하는 시행령안은 그로부터 다시 다섯달 가까이 흐른 3월27일에야 입법예고됐다. 그나마 유가족과 특조위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어서 철회 요구가 빗발쳤다. 정부의 버티기로 또 한 달이 갔다. 급기야 이석태 특조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며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정부는 왜 이리도 유가족의 애를 태우는가. 요구하지도 않은 배·보상 금액은 서둘러 발표하더니 선체 인양 결정은 세월호 수색 중단 이후 5개월이 지나서야 나왔다. 아들딸의 주검조차 거두지 못한 유가족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결정 시점을 앞당길 수 있었고, 막판까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행령안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더 막무가내다. 인양 여부처럼 기술적 검토가 필요한 사안도 아니고 정치적 결단만 있으면 당장 해결할 수 있는데도, 촌각이 아까운 유가족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시간만 보내고 있다.
합리적인 판단 잣대로는 이해하기 힘든 정부의 이런 태도 탓에 세월호 1주기를 맞은 민심이 들끓는 것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참사 1주기는 정부가 유가족을 위로하며 온 나라가 함께 애도하는 시간이 됐어야 맞다. 하지만 유가족은 아직도 거리에서 정부를 향한 외침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 외침의 내용이 특별한 것도 아니다. 세월호특별법의 취지에 맞게 특조위가 독립적인 진상규명을 해나갈 수 있는 시행령을 만들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이다. 주요 조사 대상인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특조위 업무를 총괄하고 조사 범위를 정부 조사 결과에 대한 검토 수준으로 묶어두는 지금의 시행령안은 누가 봐도 특조위를 ‘관제기구’로 전락시킬 게 뻔하다. 시행령 문제에 대해 “자녀를 졸지에 잃은 부모님의 아프고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모든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의 말도 정부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석태 위원장은 특조위 활동마저 중단한 채 5월1일까지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30일에는 정부 차관급회의에서 시행령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주를 넘기지 말기 바란다. 박 대통령의 결단은 한시라도 빠를수록 좋다. 정부가 진상규명 의지를 조금이라도 간직하고 있다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 세월호 관련 칼럼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엄을순(문화미래이프 대표)-20150428화] 세월호 인양, 가슴 열고 따져보자
예전에 살던 신당동 아파트에는 주차공간이 ‘널널’했다. 2동이 기역 자로 놓인 아파트 앞에 20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지상 주차장과 바로 옆 지하 3층짜리 주차장 건물. 아파트로 연결된 엘리베이터도 없는 주차장 건물은 늘 텅 비었지만 지상 주차장은 언제나 만원이다. 스무 대를 세울 수 있는 지상 주차장 중 여섯은 장애인 전용. 2동 건물에 장애인은 한 명도 살지 않아 장애인 손님용인 셈이다. 대부분은 비어 있다. 그것도 출입구 가장 가까운 곳이 말이다.
차에서 짐을 잔뜩 꺼내들고 헉헉거리며 주차장 계단을 오르는 사람마다 그곳을 바라보며 아파트로 들어간다. 첨엔 슬쩍슬쩍 불법 주차를 많이들 했지만 비워 놓는 것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방식이란 걸 알게 되면서 다들 텅텅 비워둔 채 잘도 지켰다. 어쩌다 쓰기 위해 저 많은 공간을 비워 놓는 것. 경제이론과는 맞지 않는다. 투자에 비해 얻는 게 형편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머리로 계산하기 힘든 게 얼마나 많던가. 약자를 위해 자리를 늘 남겨두겠다는 마음가짐. 그건 더불어 같이 잘 살자는 약속이자 상징이다.
드디어 세월호를 인양하기로 했다. 여러 이유 중에 실종자 시신 찾는 목적이 제일 클 게다. 긴 인양 기간과 1000억원이 넘는 비용, 거기다가 여러 변수까지 있어 선체를 고스란히 인양하는 게 힘들 수도 있다고 한다. ‘이 불경기에 시신 찾는다고 그 돈 들이는 건 비효율적이니 이미 돌아가신 사람은 가슴에 묻으라’며 인양을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들인 것에 비해 얻게 되는 것을 굳이 따지자면 틀린 말도 아니다. 인양하는 행위, 그 자체가 주는 의미를 무시한다면 말이다.
요즘은 광고할 때도 의미가 중요하다. 물건을 보여주며 드러내놓고 하는 뻔한 광고보다 상품 대신 회사 이미지를 통해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데 의미를 둔다. 그래서인가, 가끔은 도대체 뭘 팔겠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회사의 좋은 이미지가 가슴에 남았다? 그럼 대박이다. 세월호 인양, 비록 돈도 많이 들고 복병 변수까지 있지만 계산은 머리보다 가슴을 열고 따져보자.
많은 돈과 노력과 시간을 들이면서까지 세월호를 통째로 인양하는 그 행위는 9명의 실종자 가족과 희생자와 나아가 온 국민 모두, 그때 입은 상처가 아직도 쓰리고 아프다는 것. 앞으로는 그런 끔찍한 일이 두 번 다시 되풀이되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온 국민의 반성이자 다짐. 이 두 가지를 상징하는 커다란 의미가 되니까 말이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사설-20150428화] 국민들은 대통령의 진솔한 사과를 듣고 싶어 한다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어제 새벽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 앞에는 국정 과제들이 쌓여 있다. 박 대통령은 식물총리였던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의를 수용했지만, 제대로 된 새 총리를 지명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를 비운 10여일 동안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된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공무원연금 개혁이나 노동구조 개혁 문제는 여전히 해답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 놓여 있다.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열린 반둥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정상회담을 갖는 등 동북아 정세 역시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형국이다. 순방 중 과로로 건강이 상한 박 대통령은 어느 하나도 마음 편하게 다룰 사안이 없다.
박 대통령이 화급을 다툴 문제는 무엇보다 성완종 파문을 하루빨리 잠재우고 국정의 정상화를 이루는 일이다. 이번 사태는 현직 국무총리와 현 정권의 전·현직 비서실장은 물론 이른바 친박 실세 등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다. 힘겨운 청문회를 거쳐 어렵사리 임명한 총리가 사실상 역대 최단명 재임이라는 오명 속에 퇴진하게 됐다. 아직까지 확실한 증거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자칫 정권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권력형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무한 책임을 지는 자리다. 자신은 아무리 떳떳하고 잘못이 없다고 하더라도 총리가 사퇴할 정도로 측근에 문제가 있다면 대통령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지난 12일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엄정히 대처해야 한다”고 밝힌 대목이나 “정치개혁 차원에서 엄정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발언은 국민들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동떨어져 있다. 세월호 사태나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 당시에 보였던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이 이번에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는 것이 상당수 국민들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지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검찰의 ‘물타기 수사’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대통령 주변 인물들이 대거 불미스러운 일에 이름이 거론된 것만으로도 먼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엄정 수사를 지시하는 것이 순리다. 청와대와 여당에 대한 지지율은 동반 하락하고 있다. 야당의 속성상 당연한 일이지만 야당의 공세 수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여당 내에서도 박 대통령의 진솔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조차도 “국민은 대통령의 정직한 목소리를 듣기를 원한다.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진솔한 말씀을 기대한다”며 공개적으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성완종 파문에 따른 민심의 이반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은 사과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성완종 파문이 국정 현안을 모두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 겸허한 마음으로 진솔한 대국민 사과를 한 뒤 시급한 국정 현안의 처리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한국일보 사설-20150428화] 5ㆍ24 후 첫 대북 비료지원, 남북관계 안정화 계기로
5ㆍ24 대북제재 조치 이후 5년 만에 대북 비료지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통일부는 어제 재단법인 에이스 경암(이사장 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이 신청한 온실 설치용 비닐과 파이프 등 농자재, 비료 15톤 등 2억 원 상당의 인도적 대북지원 물품 반출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안 이사장 등 재단관계자 7명은 오늘 지원물자를 싣고 경의선 육로를 통해 방북, 안 이사장 고향인 사리원 지역에서 텃밭과 온실조성 작업을 돕고 내달 2일 돌아올 예정이다.
지난 24일 한미연합 독수리훈련 종료에 맞춰 이뤄진 대북 비료지원 허용은 그간 경색을 면치 못했던 남북관계에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모은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독일 방문 중 발표한 드레스덴선언에는 북한 주민생활 향상을 위한 복합농촌단지 조성사업 지원 등이 포함돼 있다. 이번 대북 농자재 및 비료지원 허용은 그와 맥락이 닿아있다고 봐야 한다. 정부는 앞으로도 북한주민 생활에 도움이 되고 지원의 투명성이 확보되는 인도적 지원을 늘려나갈 방침이라고 한다.
대북지원 실적이 없는 단체들도 인도적 지원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문턱을 낮춘 것도 같은 흐름으로, 민간단체의 대북지원을 활성화를 염두에 둔 조치다. 내달 하순에는 정부 지원 아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방북이 추진되고 있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이 여사의 방북지원 의사를 밝혔었다. 모처럼 남북관계에 훈풍이 도는 분위기여서 여간 반갑지 않다. 이런 계기를 잘 살려서 보다 안정적인 교류협력과 화해로 이어나가길 기대한다.
물론 전망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탈북자 단체의 기습적인 대북전단 살포 등 돌발 변수가 적지 않고 개성공단 최저임금 협상, 5ㆍ24조치 해제 등의 난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이 끝난 후에도 “대화는 꿈도 꾸지 말라”며 여전히 대결적 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비료지원 등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반짝 했다가 돌발 악재에 의해 또다시 걷잡을 수 없는 긴장상태로 되돌아 갔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한껏 높아졌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일이 잦으면 국민들의 대북 피로도만 높아지고 남북 당국간에도 불신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단발적ㆍ일시적 남북관계 호전은 득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다. 따라서 연례적인 군사훈련이나 돌발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남북관계 구축이 필요하다. 하늘만 쳐다보는 천수답 농사가 아니라 가뭄이나 큰 비에도 끄떡 없는 관계농사처럼 남북관계도 안정적 기반을 만들어 가야 한다.
미ㆍ중 패권경쟁 심화와 미ㆍ일 밀착 강화 등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도 남북관계의 안정적인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성완종 리스트로 초래된 위기 수습이 다급하겠지만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8화] 총파업 엄정 대처보다 시급한 사회적 대화
민주노총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선 방안에 반발해 24일 총파업을 강행했고, 이에 정부는 엄정 대처 방침을 밝혔다. 이처럼 노-정 갈등이 격화하는 사이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층이나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때야말로 해법을 찾기 위한 사회적 대화가 절실하다.
21일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가 마련한 노동 전문가 좌담회에서는 노사정 간에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의제부터 사회적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한목소리로 나왔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 청년실업 극복 방안 같은 의제들은 물론 최저임금 인상도 정부 스스로 재계에 요구해온 만큼 충분히 최우선 과제로 다룰 수 있다.
성공적인 사회적 대화를 위해서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노동시장 구조개편 논의가 파행으로 치닫게 된 과정을 되짚어봐야 한다. 지난해 연말부터 어렵게 시동을 건 노사정위 논의가 최근 끝내 결렬된 데는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상대방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의제부터 타협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데, 정부는 노동계가 받아들이기 힘든 무리한 요구에 집착했다.
정부는 말로는 비정규직을 위한다고 했지만 실제 밀어붙이려는 대책은 고용 유연화를 명분으로 일반해고 절차 완화 등 정규직 일자리를 불안케 하는 내용들이었다. 비정규직의 처우와 임금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정규직 고용 유연화를 먼저 추진한다면 노동의 하향 평준화만 초래할 뿐이다. 정규직 고용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내수 경기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노동계를 대표하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도 반성할 대목이 있다. 조직화된 정규직 노동자의 이익을 지키려고 비정규직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은 양대 노총이 겸허히 뒤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청년실업과 노동시장의 불평등 심화 등은 노사정 어느 일방의 힘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다. 경제 활력을 되찾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려면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사정 대타협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8화] 국회의원들, ‘돈 욕심’ 오해받지 않도록 처신해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국회의원 시절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고비마다 금융권을 통해 각종 지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신문이 성 전 회장이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2년 동안의 국회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경남기업의 자본잠식 및 긴급자금 요구 시점에 “건설업계에 대한 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의정활동을 자신의 사익과 연관시켰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그는 이러한 정무위 활동을 기반으로 경남기업의 3차 워크아웃 당시 금융감독원 고위층이 채권단에 압력을 넣어 부당 지원을 이끌어 냈다.
사업체를 가진 의원들의 의정활동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관련 상임위 활동이다. 성 전 회장처럼 죽어 가는 사업체를 회생시킬 정도로 국회 상임위의 위력은 대단하다. 국회가 의원 자신이 운영에 관여하는 기업 활동에 관련된 상임위 횔동을 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하지만 권고는 강제 조항이 아니기에 의원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재판으로 시간을 끌 경우 해당 상임위 활동을 금지할 수 있는 방안이 현재로서는 없다. 모 의원은 건설·물류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데, 해당 업무를 관장하는 국회 국토위 간사를 맡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른 의원도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전에 운영하는 기업체를 정리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오너로서 관련 상임위에서 활동하며 공기업과 ‘공생’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이 공기업으로부터 일감을 수주받고, 대신 국회에서 그 공기업에 대한 ‘방패막이’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의원이 소유한 기업의 주식 문제다.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인정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3000만원 상당 이상의 보유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 신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주식이 팔리지 않을 경우 주가가 계속 오르더라도 해당 의원이 기업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임위에서 활동하는 것을 금지할 방법이 없다.
의원들이 지역 개발을 내걸고 세금으로 자신의 땅 인근에 도로를 개설해 지가 상승으로 큰 이득을 보는 것도 막아야 한다. 의정 활동을 빙자한 의원들의 축재를 막으려면 정치개혁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 ‘김영란법’에서 빠진 ‘이해출동 방지 규정’을 되살려 의원들이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법안이나 예산을 심의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관련 상임위에서의 활동도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8화] 세계의 지붕 네팔의 지진 참사… 우리는 안전한가
리히터 규모 7.8의 강진이 할퀸 네팔에 연일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참상이 이어지고 있다. 수색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참사 사흘째 사망자 수가 4000명에 육박했다. 부상자만 해도 7000여명에 이른다. 현장의 국제구호기구 관계자들에 따르면 주민 1000여명이 사는 마을이 통째로 산사태로 묻혀 버린 곳도 있다. 도로와 통신망이 끊겨 구조대원들의 접근이 어려운 만큼 시간이 갈수록 사상자는 급속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네팔 재해 당국자의 말을 인용한 외신들은 향후 사망자가 1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도 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한뜻으로 네팔 참사에 구원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재난구호팀, 국제의료진이 신속히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우리 정부도 긴급 지원금에 이어 구호선발대를 현장에 파견했다. 현재로선 질병의 확산을 막는 일도 급선무다.
정부 차원의 공공외교를 적극 펼치는 한편으로 우리는 이번 참사를 다시 없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딴 세상의 일이 아니라 언제든 우리 앞에 닥칠 천재지변일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시간이 있었음에도 안전에 대비하지 못했다면 향후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경고는 계속 있어 왔다. 한반도에 올 들어서만 규모 2.0 이상의 지진이 13차례 있었다. 진도 5.0 이상의 지진도 꾸준히 늘고 있다. 내진설계를 비롯한 지진 대비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귓등으로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내진설계가 되지 않은 부실 주택들이 태반이었던 탓에 네팔 참사 규모가 더 심각해졌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토교통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내진설계 적용 대상인 전국의 공동주택 30만 7000여동 가운데 규정에 부합한 건물은 약 60%(18만 5000여동)에 불과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10개동 가운데 4개동은 불의의 사태에 견딜 능력이 애당초 전혀 없다는 얘기다. 국내 건축물의 내진설계는 2005년부터 높이 3층 이상, 총면적 1000㎡ 이상에 모두 적용하도록 강화됐다. 문제는 법이 도입되기 이전의 민간 건축물에는 이를 강제할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민간 건물이 내진설계를 보강하면 재산세와 취득세 등이 감면되는 혜택을 주고 있지만 별반 실효가 없다고 한다. 이런 인센티브가 있는 줄도 모르는 건물주도 수두룩할 것이다. 적극적인 제도 보완과 함께 기왕에 마련된 정책이라도 당국은 당장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홍보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8화] 스타트업 기업까지 中 선전으로 떠나고 있다
중국 경제특구 선전이 제2의 실리콘밸리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일본이나 한국은 물론 미국 벤처기업까지 선전으로 몰려들고 있다. 최근엔 스타트업들도 가세하고 있다고 한다. 인구 1000만 도시에 기업 수가 곧 100만개를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선전증권거래소의 하루 거래액은 100조원이 넘는다. 상장된 벤처도 4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었다. 벤처기업만이 아니다. 세계 유수의 금융회사도 일찌감치 선전에 둥지를 틀고 다양한 금융상품을 내놓고 있다. 엄청난 자금이 몰려든다고 한다. 대기업들은 벤처의 기술과 노하우를 배우려 안간힘을 쓴다. 반도체 기업 퀄컴은 아예 선전에 글로벌 본부를 두었고, 일본의 도요타나 혼다는 신입사원 연수를 이곳에서 한다. 창업천국 선전의 비상이 놀랍다.
선전은 계획 클러스터로 세워진 중국 개혁개방의 아이콘이었다. 중국 성장을 위해선 일부 지역의 일부 사람이 먼저 부자가 돼야 한다는 덩샤오핑식 선부론(先富論)의 배경이 된 도시다. 30년 동안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무려 30%에 이르고, 도시 경쟁력도 상하이에 이어 2위다. 불모의 땅에서 이룬 성과였다. 하지만 선전은 외자를 유치하고 가공무역을 통해 발전하던 도시였다. 이런 모델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한계를 IT 창업으로 돌파했다. 세계 IT기업들의 생산기지로 축적했던 제조 인프라 역량에서 창업의 기운이 싹 튼 것이다. 선전에는 부품가게들이 즐비하고 실험공방도 많이 마련돼 있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다. 실리콘밸리가 소프트웨어의 클러스터라면 선전은 하드웨어의 클러스터인 셈이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완화가 선전의 역량을 획기적으로 키웠다. 회사 설립에 필요한 최저자본금을 없애고 영업허가증 발표절차를 간소화했다. 기업에 필요한 일이면 언제든지 도와주는 시스템을 갖췄다. 한국에서 1년 걸릴 일을 2개월 만에 해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국의 창업기업들이 선전행을 택하고 있다. 시장경제가 일궈낸 산물이다. 사물인터넷(IoT) 시대에 선전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이런 사태를 보고만 있을 것인지.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8화] 금융을 왜 자꾸 복지로 만들려 하나
금융감독원과 신용회복위원회가 대학생 및 저소득 청년층을 위한 저금리 생활자금 대출을 신설했다. 생활자금이 필요할 경우 신용회복위 보증을 통해 은행권에서 연 4.5~5.4% 금리로 최대 800만원까지 빌릴 수 있게 했다. 최장 4년 거치, 5년 분할상환 조건이다. 또 연 15% 이상 고금리 대출을 받은 대학생 및 청년층에도 같은 금리로 최대 1000만원까지 대출을 전환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가뜩이나 높은 청년실업률에 저축은행 등에서 빌린 고금리 대출로 이중고를 겪는 청년들의 어려움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런 점에서 은행문을 두드리기 어려운 젊은이들의 고충을 저리 융자를 통해 덜어주자는 취지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국민의 최소한 삶의 질 유지를 위한 복지와 금융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냉정한 신용평가와 철저한 위험관리가 금융업의 본질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금융정책을 보면 금융을 복지로 만들려고 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수익공유형 모기지가 그렇고 안심전환대출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이제 대학생 청년들에게도 복지금융을 베풀어 주겠다는 것이다. 모두가 하나같이 시장경제 원칙이나 자율, 자기책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는 것도, 금리를 정하는 것도 모두 차입자와 금융회사의 자율적 선택이다. 금융회사는 선별작업을 통해 이익을 낸다. 자율이기 때문에 그 결과도 본인의 몫이다.
정부가 시시콜콜 금융에 간섭하려 드는 것은 무엇보다 오래된 관치금융 폐습 때문이다. 금융을 정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다. 그러나 효율성과 자기책임성을 무시한 시장개입은 반드시 부작용과 도덕적 해이를 부른다. 시장신뢰는 무너지고 ‘버티면 된다’는 식의 인식이 퍼지면서 서민금융은 타락하고 만다. 금융은 복지가 아니며 포퓰리즘의 대상이 돼서도 안 된다. “서민에게 저금리로”라는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국 그 부담은 국민 세금으로 돌아온다. 늘 그렇듯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8화] 외국인 투자까지 내쫓는 배출권거래제
외국인 투자기업들이 올해 1월부터 시행된 배출권거래제로 인해 국내 투자에 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환경부로부터 배출권 할당량을 통보받은 525개 기업 가운데 외국계 40여개사를 대상으로 확인한 결과 드러난 사실이다. 입만 열면 외국인 투자유치를 외치는 정부가 이런 상황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A사는 유럽 본사가 추진하던 9000억원대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 유치에 차질을 빚었다고 한다. 신제품 개발을 위해서는 전력사용량 급증이 예상되는데 한국에서는 유럽과 달리 간접배출 규제로 인해 전기 사용량이 많은 경우 배출권의 추가 구매가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배출권 비용 부담으로 투자의지도 꺾였다. B사는 2000억원 규모의 생산라인 신·증설계획을, C사는 20억원 규모의 신규설비 투자계획을 보류했다는 것이다.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할 마땅한 수단을 찾지 못한 D사는 연매출 6000억원 규모의 생산물량 확대를 포기해야 할 판이고, E사는 아예 생산물량 일부를 중국으로 넘겼다고 한다. 외국인 투자기업이 온실가스 감축과 배출권거래제로 인해 겪는 실상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환경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하기야 배출권 할당량이 턱없이 적다며 늘려달라는 국내 기업들의 하소연에도 마이동풍으로 일관하는 환경부가 아닌가. 이대로 가면 국내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국기업들까지 고사당하기 딱 좋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중·일만 놓고 봐도 한국의 온실가스 규제 강도가 제일 심하다. 202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2년 배출실적과 비교하면 일본은 3.2% 감축이고 중국은 47% 초과 배출이 가능한 데 비해 한국은 10.1% 감축이다. 여기에 한국만 배출권거래제를 강제적으로, 그것도 전국 단위로 하고 있다. 할당량 대비 초과배출에 대한 과징금도 3국 중 가장 많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기업이 뭘 보고 한국에 남으려 하겠나. 국내 기업, 외국기업 할 것 없이 다 떠나면 누가 책임질 건가.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8화] 금융 사기꾼은 뛰는데 금감원은 제자리걸음
꽃집과 쌀집·금은방 등이 금융사기범들의 새 표적이 되고 있다고 금융감독원이 27일 경고했다. 꽃집 등에 100만원어치를 주문한 뒤 500만원을 입금하고 차액 400만원을 현금으로 되찾아가는 식으로 사기를 친다는 것이다. 해당 점포 주인의 계좌는 꼼짝없이 대포통장으로 지목돼 갑자기 계좌가 정지되는 심대한 피해를 당하게 된다. 대포통장 단속이 강화되자 이를 회피하기 위해 등장한 금융사기의 새로운 유형이다.
금감원은 "물건 가격을 과도하게 넘어서는 금액이 입금됐다면 금융사기를 의심해야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실제로 금융사기꾼들의 수법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만큼 금융소비자의 자구노력이 요구된다. 이날 예시된 사례에서 보듯이 사기꾼들은 금융기관에서 신규 통장 발급 절차가 까다로워지자 기존 상거래 계좌에 더 많은 돈을 송금해 차액을 현금으로 받는 수법을 썼고 이를 알 까닭이 없는 상인들은 대포통장을 제공한 공범으로 몰려 금융거래가 제한되는 피해를 보게 됐다.
문제는 소비자의 자구노력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신종 금융사기가 이 정도면 꽃집·쌀집 주인뿐 아니라 누구도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다. 이 지경이 되도록 금융당국은 뭘 했는지 의문이다. 그러고도 가뜩이나 신종 금융사기로 불안한 판국에 "공범으로 몰려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엄포나 놓고 있다. 소비자의 권익을 튼튼히 지켜야 할 금감원이 제 도리는 다하지 않고 불안만 가중시키는 꼴 아닌가.
금융사기는 최근 금감원이 근절을 다짐한 '금융 5대악' 중에서도 핵심과제였다. 하지만 이후 스미싱·대출사기·대포통장 등의 피해가 줄었다는 얘기는커녕 오히려 금융 5대악을 구실로 삼은 금융사기가 등장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불과 1년 전 금감원 간부가 KT ENS 협력업체들이 벌인 대출 사기사건에 연루돼 망신을 자초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동안 금감원은 얼마나 달라졌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8화] 유럽 최대은행 HSBC, 세금 무서워 본사 옮기겠다는데
유럽 최대 은행인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런던 본사를 다른 나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외신들은 HSBC 경영진이 새로운 본사 소재지를 물색하라는 이사회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본사 이전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사업 부문 분리 방안까지 거론된다고 전하고 있다.
HSBC가 본사 이전을 추진하는 것은 영국 정부의 과도한 세금과 금융사에 대한 규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HSBC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세가 도입되면서 향후 3년간 전체 순익의 11%에 달하는 45억달러의 세금을 물어야 한다. 반면 본사를 옮기면 70%의 절세효과를 볼 수 있다니 주주들로서는 왜 영국 정부에 꼬박꼬박 세금을 갖다 바쳐야 하는지 의문을 갖기 마련이다. 더욱이 영국 정치인들은 다음달 7일 총선을 앞두고 한 표라도 더 얻겠다며 은행부담금 같은 세금을 대폭 올리고 규제 강도를 조이겠다는 선심성 공약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이처럼 정치적 리스크가 높아지자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등 다른 기업들까지 본사를 이전하라는 주주들의 거센 압력에 시달리는 실정이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이제 기업들의 국적이나 소재지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지도자들이 아무리 애국심에 호소하더라도 기업들은 언제라도 이익을 좇아 옮겨가게 마련이다. 기업을 때리고 세금을 무겁게 매길수록 국민에게 돌아오는 몫이 줄어드는 게 냉혹한 경제 현실이다. 한국 대기업 중에서도 외국인 주주 비율이 50%를 훌쩍 넘은 곳이 많다. 툭하면 법인세를 올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불필요한 규제만 양산한다면 주주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조세나 규제 남발 등 경제의 불확실성이다. 기업들이 이런저런 외풍에 흔들리니 외국 투자가들 사이에 저가 매력을 제외하면 한국 증시에 투자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는 푸념이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중앙일보 사설-20150428화] 기업인 출신 의원들의 수상한 행태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기업과 정치가 야합해 국민의 고혈을 빨아먹고, 나라를 망친 대표적 사례다. 성 전 회장은 정파를 초월해 권력 실세들에게 줄을 대는 한편 국회의원 배지를 무기로 국세청·금융감독원 등을 마음껏 주물렀다. 그 결과 1조3000억원의 빚을 진 경남기업에 신한·농협·국민 등 굴지 은행들이 앞다퉈 자금을 지원했다. 지금 이 은행들이 회수할 수 있는 돈은 20%도 안 된다. 남은 부채 1조원은 혈세로 메워야 한다. 이런 특혜가 가능했던 건 성 전 회장이 국회의원, 그중에서도 금융 당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정무위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성 전 회장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국회에 똬리를 틀고 있는 정치와 돈의 검은 고리는 수없이 많다. 새누리당 주영순 비례의원이 대주주였던 철강업체 에이치앤철강은 주 의원이 금배지를 단 지 3년 만에 매출이 2배, 순익이 15배나 뛰었다고 한다. 2011년 이래 철강재 가격이 하락해온 것을 볼 때 이례적인 성장세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상직 의원이 대주주와 회장을 지낸 이스타항공도 같은 기간 매출이 2배 이상 늘었고, 흑자로 전환됐다. 이 의원은 지난 1년간 지역구인 전주·완산보다 이스타항공 등 자신이 소유했던 업체들과 관련 있는 새만금·군산 관련 발언을 더 많이 했다.
이들은 의원이 된 뒤 지분을 정리했고 경영에도 손을 끊었다고 했지만 실은 아들이나 형에게 운영권을 넘겨 오너십을 유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정리했다는 주식도 여전히 이들 손에 있다. 공직자가 직무 관련 주식을 3000만원 이상 보유할 경우 주식을 백지 신탁하고 60일 안에 처분하도록 돼 있지만, 주식이 팔리지 않으면 보유 기간을 제한 없이 연장할 수 있는 예외 규정 덕분이다. 이 규정을 이용해 19대 국회에서 회사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하면서 그 업체와 관련된 상임위에서 활동하는 의원이 7명이나 된다. 만일 이들 의원이 해당 업체에 특혜를 주겠다고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관계 부처가 제출한 법안 심의를 미루며 골탕을 먹이거나, 해당 업체와 무관한 사안을 계속 추궁하면 눈치 빠른 공무원들은 알아서 ‘협조’하기 마련이다. 성 전 회장은 의원 재직 시절 바로 이런 방식으로 부도 직전의 경남기업을 연명시켰다.
성완종 사태 같은 스캔들이 터지면 의원들은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부패의 뿌리를 뽑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그런 법안의 말미에 온갖 예외규정을 둬 부패 정치인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다. 의원 주식 백지 신탁이나 이해 관계 상임위 활동 금지 규정이 솜방망이가 된 건 그 때문이다. 국회가 제2의 성완종 사태를 막으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김영란법’에서 빠진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조항부터 되살려야 한다. 또 의원 입법과 상임위 배정은 국민들이 참여한 독립기관의 모니터링을 거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 사설-20150428화] 성완종 두 번의 사면, 당사자들이 나서 진실 밝혀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두 차례의 특별사면을 받은 걸 둘러싼 여야 공방이 거칠어지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12월 31일의 두 번째 특사는 형(刑)이 확정된 지 한 달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데다 당시 정성진 법무부 장관이 여러 차례 반대해 사면 대상자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과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청와대 만찬 회동(12월 28일) 이후 사면이 확정됐으니 배후 의혹이 불붙기 마련이다.
노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와 이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 간에 이른바 ‘형님 채널’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사자들은 이를 부인했지만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여전히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 세력이 주도했다는 주장과, 이명박 당선인 측의 의사가 반영된 특사였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새누리당은 “노무현 청와대가 특사를 주도한 명백한 증거가 있다”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전모를 밝히라고 압박하고 있다. 문 대표는 “야당에 대한 물귀신 작전”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양측 모두 실체적 진실을 궁금해하는 국민들의 요구는 외면한 채 흠집내기식의 정치 공방만 벌이고 있다.
보통사람들에겐 하늘의 별 따기인 특별사면을 성 전 회장이 같은 정권에서 두 차례나 받았다는 건 아무래도 정상적인 일은 아니다. 사면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하더라도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특사에 관여했는지, 이 과정에서 로비는 없었는지와 같은 의혹을 품게 되는 건 당연하다. 물론 이번 사건의 본질은 불법 정치자금을 줬다는 ‘성완종 메모’의 진위를 밝히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수사 물타기”라는 야당의 반발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의혹이 불거진 이상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국정조사 운운하며 시간을 끌기보다 당시 사면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사람들이 나서 스스로 진상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현 정권의 실세들이 연루됐다는 ‘성완종 8인 리스트’의 진실을 캐는 작업도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유레카/박찬수(논설위원)-20150428화] 사전투표
1994년 미국 테네시주는 부재자투표를 대체하는 새로운 사전투표(early voting) 제도를 도입했다. 부재자투표는 미리 신고를 한 부재자만 선거일 이전에 투표할 수 있지만 사전투표는 누구든지 투표를 할 수 있었다. 테네시주의 결정은 선거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후 ‘투표는 선거일에 하는 것’이란 개념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뒤 사전투표제를 채택한 주는 계속 늘어나 2014년 중간선거 때엔 50개 주 가운데 36개 주에서 이 제도를 실시했다. 사전투표를 한 유권자 비율은 2000년 대통령선거 때는 전체의 16%에 불과했지만 2004년엔 22%, 2008년 대선 때엔 30.6%로 증가했다.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 정도가 사전투표를 한 셈이다.
사전투표제가 급속히 확산한 데엔 손쉽게 투표할 수 있게 함으로써 유권자들의 선거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뉴욕 타임스>는 사전투표제 논란이 한창이던 2008년 사설에서 “투표를 하루에, 그것도 15시간 안에 하라는 건 펀치로 기표용지에 구멍을 내던 과거 방식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요구”라며 이 제도를 지지했다.
논란은 여전히 있다. 그중 하나는 ‘사전투표제가 공화, 민주 양당 중 누구에게 유리한가’라는 점이다. 젊은층과 흑인·히스패닉·아시안 등 비백인계 지지를 많이 받는 민주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 예상이었다. 그러나 2014년 중간선거 때 사전투표 성향을 간접 분석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조지아·노스캐롤라이나에선 민주 성향 유권자들이 많이 참여했지만, 콜로라도와 플로리다에선 공화 성향 유권자들이 오히려 더 많이 사전투표소를 찾았다.
우리나라에선 2013년 4·24 재보궐선거에서 처음으로 사전투표가 도입됐다. 29일 열리는 4곳의 국회의원 재보선 사전투표도 지난 주말 실시됐다. 투표율은 평균 7.6%다. 사전투표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치참여 확대다. 전체 투표율이 올라야 사전투표도 의미가 있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엄을순(문화미래이프 대표)-20150428화] 세월호 인양, 가슴 열고 따져보자
예전에 살던 신당동 아파트에는 주차공간이 ‘널널’했다. 2동이 기역 자로 놓인 아파트 앞에 20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지상 주차장과 바로 옆 지하 3층짜리 주차장 건물. 아파트로 연결된 엘리베이터도 없는 주차장 건물은 늘 텅 비었지만 지상 주차장은 언제나 만원이다. 스무 대를 세울 수 있는 지상 주차장 중 여섯은 장애인 전용. 2동 건물에 장애인은 한 명도 살지 않아 장애인 손님용인 셈이다. 대부분은 비어 있다. 그것도 출입구 가장 가까운 곳이 말이다.
차에서 짐을 잔뜩 꺼내들고 헉헉거리며 주차장 계단을 오르는 사람마다 그곳을 바라보며 아파트로 들어간다. 첨엔 슬쩍슬쩍 불법 주차를 많이들 했지만 비워 놓는 것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방식이란 걸 알게 되면서 다들 텅텅 비워둔 채 잘도 지켰다. 어쩌다 쓰기 위해 저 많은 공간을 비워 놓는 것. 경제이론과는 맞지 않는다. 투자에 비해 얻는 게 형편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머리로 계산하기 힘든 게 얼마나 많던가. 약자를 위해 자리를 늘 남겨두겠다는 마음가짐. 그건 더불어 같이 잘 살자는 약속이자 상징이다.
드디어 세월호를 인양하기로 했다. 여러 이유 중에 실종자 시신 찾는 목적이 제일 클 게다. 긴 인양 기간과 1000억원이 넘는 비용, 거기다가 여러 변수까지 있어 선체를 고스란히 인양하는 게 힘들 수도 있다고 한다. ‘이 불경기에 시신 찾는다고 그 돈 들이는 건 비효율적이니 이미 돌아가신 사람은 가슴에 묻으라’며 인양을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들인 것에 비해 얻게 되는 것을 굳이 따지자면 틀린 말도 아니다. 인양하는 행위, 그 자체가 주는 의미를 무시한다면 말이다.
요즘은 광고할 때도 의미가 중요하다. 물건을 보여주며 드러내놓고 하는 뻔한 광고보다 상품 대신 회사 이미지를 통해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데 의미를 둔다. 그래서인가, 가끔은 도대체 뭘 팔겠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회사의 좋은 이미지가 가슴에 남았다? 그럼 대박이다. 세월호 인양, 비록 돈도 많이 들고 복병 변수까지 있지만 계산은 머리보다 가슴을 열고 따져보자.
많은 돈과 노력과 시간을 들이면서까지 세월호를 통째로 인양하는 그 행위는 9명의 실종자 가족과 희생자와 나아가 온 국민 모두, 그때 입은 상처가 아직도 쓰리고 아프다는 것. 앞으로는 그런 끔찍한 일이 두 번 다시 되풀이되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온 국민의 반성이자 다짐. 이 두 가지를 상징하는 커다란 의미가 되니까 말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석종(논설위원)-20150428화] 나이 차별
요즘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서열을 정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나는 82년생인데요.” “나는 빠른 83인데….” 얼마 전 외국인 패널들이 출연하는 ‘비정상회담’에서는 ‘한국식 엄격한 서열문화 필요 여부’를 안건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터키인 아네스는 “한국에는 기껏해야 5분, 10분 차이인 쌍둥이 간에도 형, 동생이 있는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문화를 잘 아는 출연자들은 “띠동갑 형님” “막내가 해라” 같은 말을 스스럼없이 쓴다.
한국인은 처음 만나면 자연스레 상대방의 나이를 묻는다.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유교 전통 속에 살아온 우리에게는 여전히 나이가 훈장이고 벼슬이다. 연장자는 어디서든 상석에 앉고 쉽게 말을 놓는다. 반면 연장자에게 반말을 했다가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많다. “어디서 반말이야?”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두 20대 여성 연예인의 폭언과 반말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세 살 어린 후배 연예인의 반말 섞인 말투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한 것이다.
때로는 반말이 하대(下待)가 아니라 친근함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당신’은 원래 예사높임체이지만 상대방을 낮잡아 부를 때도 쓴다. 외국인들은 한국어의 이런 미묘한 차이와 나이·계급에 따른 서열문화가 가장 적응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런 서열 의식이 군대식 권위주의의 ‘상명하복’ 개념과 결합돼 한국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일을 숱하게 겪었다.
최근에는 교수가 학생에게 강의와 관련 없이 공개적으로 나이를 물은 것이 인격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고 한다. 모 대학 신학대학원 교수가 강의시간에 50대 여성 학생에게 “나이가 얼마입니까?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습니까? 심히 걱정됩니다”라고 말한 것이 만학도에게 모욕감을 줬다는 것이다. 해당 교수는 “향후 진로 등에 대해 조언을 해주기 위한 질문이었다”고 진술했지만, “나잇값도 못한다”는 말로 들렸을 게 뻔하다. 100세 시대에 50대의 공부를 타박한 것도 문제인 데다 연장자의 권위와 체면까지 무시했으니 참 ‘개념 없는’ 교수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구본영(논설고문)-20150428화] 국민행복지수의 역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는 소식에 오래전에 봤던 미국 영화가 생각났다. 테네시 윌리엄스 원작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다. 영화는 어차피 다 채워질 순 없는 욕망을 좇는 사람들이 다다르는 종착역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여주인공(비비안 리)은 결국 미친 사람으로 몰려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는 비극을 맞았다는 기억이 난다.
며칠 전 유엔이 발표한 ‘2015년 세계 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이 세계 158개 나라 중 47위를 차지했다. 스위스가 가장 행복한 나라로 자리매김했고, 아이슬란드와 덴마크가 2, 3위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가장 불행한 나라는 토고가 꼽혔고, 기아와 질병, 그리고 내전으로 신음하는 부룬디·시리아·베냉·르완다 같은 국가들의 행복도가 낮았다. 여기까지는 수긍이 갔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15위권인 한국이 47위라니! 물론 소득이 높아지는 것과 정비례해 행복감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이론도 있긴 하다.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그렇다고 해도 경제대국 일본조차 46위에 그친다니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하긴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세계 행복의 날’(3월 20일)에 즈음한 조사에서는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바닥권이었다. 143개국 중 118위였으니 말이다. GDP와 건강수명, 부패, 자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유엔 행복지수에 비해 다분히 주관적인 갤럽 조사에서 한국인들의 행복감은 훨씬 낮게 나온 셈이다. 반면 파라과이, 과테말라 등 GDP가 높지 않은 중남미권 국민들의 행복도는 높았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키르기스스탄은 국민소득이 겨우 1000달러를 넘긴 나라다. 그런데도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선 우리보다 출산율은 높고 자살율은 낮다고 한다. 우리가 그간 안분지족(安分知足)이란 전통적 미덕을 잊고 살고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한 사회가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를 타고 질주하려는 사람들로만 넘쳐난다면? 결과는 뻔하다. 구성원들은 늘 욕구 불만에 시달리며 주관적 행복감도 낮을 수밖에 없을 게다. 어쩌면 성 전 회장의 비극도 이런 토양에서 배태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일 기업을 키우고 살리려는 과정에서 절제를 모르는 정치권과 ‘거래’를 한 흔적의 일부가 ‘성완종 리스트’로 나타난 게 사실이라면.
이웃 일본의 경우 ‘달관 세대’(사토리 세대)까지 출현했단다. 낮은 보수의 비정규직 일자리지만 중저가 옷에 햄버거를 먹는 데 만족하는 ‘욕망 없는 젊은 세대’의 등장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성장을 포기하고 빈곤했던 과거로 돌아가자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국가가 물질적 풍요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인권, 복지와 안정감 등 내면적 가치를 종합한 ‘삶의 질’ 지표라도 제시해야 할 듯싶다. 21세기를 사는 국민들이 새로운 나침반으로 삼도록….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428화] 토크 파티
로마 시내의 팔라티노 언덕과 카피톨리노 언덕 사이에 넓은 평지가 있다. 원래 습지였는데 바닥을 메웠다. 이곳에서는 옛날부터 공공집회가 자주 열렸다. 시민들이 모여 자유롭게 연설하고 토론하는 이 광장의 이름은 포룸 로마눔(Forum Romanum)이었다. 오늘날의 포럼(forum)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공중토론의 한 형식인 심포지엄(symposium)도 비슷하다. 그리스어로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을 뜻하는 심포시아(symposia)와 향연을 의미하는 심포시온(symposion)에서 심포지엄이 나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학술 토론회나 특정 테마를 놓고 여러 명이 견해를 밝히는 방식인데, 모두 지식과 문화를 매개로 하는 고품격 모임이다. 유럽의 살롱과 카페 문화도 이런 대화의 연장선에서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도 당대 지식과 교양의 향연은 여러 모임에서 꽃을 피웠다. 다산 정약용이 15명의 동인과 함께한 ‘죽란시사(竹欄詩社)’는 1년에 일곱 차례 정기 모임을 가졌다. 살구꽃이 필 때, 복숭아꽃이 필 때, 참외가 익을 때, 서늘한 바람이 불어 서쪽 못에 연꽃이 필 때, 국화가 필 때, 겨울에 큰 눈이 올 때마다 모두 모였다니 참 낭만적이다.
현대에 와서도 이런 모임은 형태를 달리하면서 면면히 이어진다. 미디어 발달에 따라 방송에서 진행하는 토크 쇼와 토크 콘서트도 등장했다. 보통 어떤 화제에 대해 학식이 풍부하거나 견문이 넓은 사람들이 출연해 이야기를 나누지만, 최근엔 취업난 시대의 신풍속도를 반영한 ‘승무원 채용 특강 토크 콘서트’까지 등장했다. 병무청장과 함께하는 ‘신나는 병무 토크 콘서트’도 흥미롭다. 삼성그룹 ‘열정락서’의 인기 또한 대단하다.
지난 주말 밤에 열린 ‘정규재tv 토크 파티’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주제와 봄밤의 정감있는 대화로 큰 주목을 받았다. 꽃바람이 살랑대는 야외정원에서 파독 간호사의 체험담과 한국 경제의 성장사를 듣는 사람들의 눈빛은 특별히 반짝였다. 동토의 땅에서 탈출한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과 지구촌 자전거 여행가, 먼 도시에서 온 20대 커플, 해외 교포 등의 표정도 각별했다. 공항에서 곧바로 달려온 참가자까지 있었다.
SNS 후기도 재미있다. “처음엔 아들과 둘이 참석했다가 이번엔 남편과 셋이 왔습니다. 남편 눈치 슬쩍 보면서 물어보니 아주 좋았다고 하네요.” “동아리 친구 7명이 같이 왔는데 젊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서 놀랐습니다.” “여름 꽃밭에서도 또 해요.”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임석훈(논설위원)-20150428화] 인도판 금모으기
중국인의 '금(金) 사랑'은 유별나다. 지난해 중국에서 소비된 금은 약 1,200톤. 세계 최대다. 전 세계에서 쓰이는 금 가운데 25% 이상이 중국에서 팔린 셈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세계 1위 자리를 계속 유지했던 것은 아니다. 불과 3년 전인 2012년까지만 해도 '넘버2'였다.
지난 수십년간 금 소비 선두 자리를 지켜온 나라는 놀랍게도 인도다. 인도 사람들의 금에 대한 집착도 중국인 못지않다. 돈을 모으면 은행에 저축하기보다 부와 건강의 상징인 금을 사모으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계층일수록 금을 좋아해 7억명에 달하는 농촌 거주자들이 전체 금 수요의 3분의2를 차지한다고 한다. 대부분이 힌두교도인 이들은 신앙의 표시로 금 장식품을 만들어 평생 간직하거나 힌두교 사원에 공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연유로 사원들이 보유 중인 금은 2,500~3,000톤에 이르는 걸로 추산된다. 인도의 연간 금 수입량(800~1,000톤)의 3배다. 이 많은 금들이 원활하게 유통되면 경제에도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게 문제다.
사원으로 들어간 금은 통상 여신상(像) 도금 등에 쓰이다 보니 다시 시장에 나오는 게 적을 수밖에 없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니 수입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지사. 인도 무역적자의 30%가 금 수입 때문이라고 한다. 요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사원이나 장롱 속에 있는 금을 유턴시키려고 애쓰는 이유를 알 만하다.
인도 정부는 금을 은행에 맡기면 높은 이자를 주는 상품을 만드는 등 금 모으기에 한창이다. 모디 총리의 간곡한 호소에 유명 힌두교 사원 '마할락슈미'에서는 여신상 등에서 떼 낸 시가 730억원 상당의 금 158㎏을 내놓았다고 한다. 나라 경제를 부강하게 만들려는 마음은 종파를 초월하는 모양이다. 최근 경제사정이 가장 낫다는 인도가 이렇게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데 안팎 악재에 직면한 우리는 '힘'조차 모으지 못하고 있다.
'뉴스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년 5월 6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0) | 2015.05.06 |
---|---|
2015년 4월 29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0) | 2015.04.29 |
2015년 4월 27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0) | 2015.04.27 |
2015년 4월 23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0) | 2015.04.23 |
2015년 4월 22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0) | 2015.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