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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박상옥 대법관 인준안 국회 강행 처리

■ 역사 왜곡 아베 총리에 대한 세계 역사학자들의 경고

■ 국무회의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의결

■ 공무원연금 개혁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 성완종 리스트 수사, 홍준표 경남지사 소환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박상옥 대법관 인준안 국회 강행 처리

 

[한국일보 사설-20150507목] 박상옥 대법관 인준안, 강행처리밖에 길 없었나

 

박상옥 대법관후보자 국회 임명동의안이 어제 정의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통해 국회 본회의에서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에 의해 단독으로 처리됐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의원들은 여당의 단독처리 강행에 항의해 임명동의 반대토론만 하고 전원 본회의장에서 퇴장했다. 2012년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강화한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래 국회의장 직권상정에 의한 의안 단독처리는 처음이다.

 

박 대법관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100일 만에 가결돼 신영철 전 대법관 퇴임 후 83일 동안 이어져온 대법관 장기공백상태는 일단 해소됐다. 그러나 전력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극심했던 박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 단독처리는 두고두고 후유증을 남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논란과 절차상 하자를 안고 임명된 그가 사법정의와 인권수호 최후 보루인 대법원에서 대법관으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 후보자 임명동의안 단독 처리는 향후 국회운영과 관련해서도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우선 이 사안이 국회의장 직권상정 요건에 맞는지부터 논란거리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본회의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 등으로 제한해 놓고 있다. 박 후보자 임명동의안 등 인사에 관한 사항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임명동의안 처리 지연에 의한 대법관 공백상태 장기화 부담이 컸겠지만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은 국회법 위반이자 여야 합의정신에 어긋나는 처사다.

 

이런 식으로 국회의장 직권상정 요건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국회선진화법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걸핏하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통한 의안처리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 운영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없지 않으나 그간 물리적 충돌 없이 여야 합의에 의한 의안처리 장치로 기능해온 게 사실이다. 이번 사태는 국회선진화법의 그런 역할에 타격을 줬다고 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야당의 전략부재와 졸속대응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새정치연합은 우여곡절 끝에 박 후보자에 대한 국회인사청문회가 열렸을 때 여러 의혹과 문제점을 제기했지만 낙마시킬 만한 결정적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청문보고서를 채택하고 표결로 반대하는 수순을 택하는 게 현명했다. 결과적으로 임명동의안 가결을 저지하지도 못하고, 국회의장 직권상정에 의한 여당 단독 의안처리의 선례만 남기게 됐다. 게도 구럭도 잃은 꼴이다. 야당은 막연한 명분에 집착해 중요한 실리를 놓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07목] 민주주의 모욕한 박상옥 대법관 인준

 

국회가 6일 본회의에서 야당이 표결에 불참한 가운데 여당 단독으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처리했다.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 수사 검사팀의 일원이었던 박 후보자를 두고는 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기는 많은 국민은 물론 법원 내부에서조차 ‘자격 미달’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힘의 우위를 앞세워 밀어붙였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뚜렷한 전략도 없이 갈팡질팡하며 시간만 끌었다. 그 결과, 꽃다운 대학생을 고문해 죽인 야만적이고 반인간적인 사건에 관여했던 인물이 인권의 최후 보루라 할 대법관의 자리에 앉는 역설적이고 기막힌 현실이 우리 앞에 나타나고 말았다.

 

박상옥 파동은 국회 인사청문회나 인준 표결 등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울에 불과한지도 확실히 보여주었다. 여당은 인사청문회법을 내세워 야당을 압박했으나, 실제 청문회 내용을 보면 임명 강행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법무부는 박종철씨 사건 수사 자료 제출을 거부함으로써 국회의 권능과 인사검증권을 철저히 무시했고, 새누리당 의원들은 박 후보자의 변호인 노릇을 하기에 바빴다. 이런 미흡한 인사청문회 때문에 아직 인사청문경과보고서도 채택되지 않은 상태다. 박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강행처리는 표면상 법에 정해진 절차 준수라는 외양을 하고 있으니 실제로는 절차적 정당성마저 온전히 지켜지지 않은 우격다짐 인사인 것이다.

 

다수 의석을 앞세워 밀어붙이기로 일관한 새누리당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무대책은 호되게 비판받아 마땅하다. 야당은 애초 특별한 전략도 없이 인사청문회 개최를 거부하다가 여당과 보수세력들의 공세에 밀려 인사청문회 개최에 합의했으나, 후속 대책은 아무것도 없었다. ‘철저한 검증으로 낙마시키겠다’는 공언은 한낱 허언으로 끝났고, 그 뒤에도 아무런 정치력이나 협상력도 발휘하지 못한 채 시간만 끌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표결에 불참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는 투다. 야당이 여당에 끌려다니는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머리도 뒷심도 없는’ 야당의 모습이 참으로 한심하다.

 

이번 박상옥 대법관 인준 강행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길이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 무능한 검사, 외압에 굴복하고 권력과 타협한 검사’(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를 대법관 후보로 제청한 양승태 대법원장이나 정치권 모두 저세상에 있는 박종철씨의 영령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중앙일보 사설-20150507목] 공백 메운 대법원, 한명숙 사건 속도 내야

 

박상옥 대법관 임명동의안이 6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야당 의원들이 모두 빠진 가운데 여당 단독으로 투표가 이루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이날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박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 상정 연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정 의장은 “야당이 끝까지 협조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의장으로서 단호하게 결정해야 된다”며 직권상정 철회 요청을 거부했다. 박 대법관 후보 임명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의지를 표시한 것이다.

 

 박 대법관 후보 임명이 지연되면서 지난 2월 17일 퇴임한 신영철 전 대법관 자리는 80일째 공석 상태다. 신 전 대법관이 속했던 대법원 2부는 원래 4명이 해야 하는 재판을 3명(이상훈·김창석·조희대 대법관)이 진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2부에 배당된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전 국무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사건과 이재현 CJ회장의 횡령·탈세 사건 등 중요한 사건들의 선고가 미뤄지고 있다. 특히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은 2013년 9월 2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이후 대법원에서 1년8개월 동안 머물러 있다.

 

  사실 박상옥 대법관 임명이 늦어지기 전에도 한 전 총리 사건은 늑장 처리 논란에 휩싸였었다. 한 총리가 불구속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평균 8개월인 상고심 처리기간에 비해 선고가 상당히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이 박 대법관 후보 임명에 계속 시비를 걸었던 이유도 한 전 총리 사건 선고를 최대한 지연하기 위한 시도라는 해석도 나왔다.

 

  한 전 총리의 혐의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9억여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이다. 증거의 신빙성 등 사실관계를 놓고 다툼이 있겠지만 법리적으로는 그리 복잡한 사안이 아니다. 법률심인 대법원에서 이렇게 오래 시간을 끌 사건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법조계에서 재판은 신속하게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하는 말이다. 대법원은 대법관 구성이 마무리된 만큼 한 전 총리 사건 등 지연된 재판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처리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507목] ‘박상옥 인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고, 헌법 정신에 대한 배반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검찰 수사팀의 일원이었던 인물이 기어코 인권의 최후 보루인 대법관에 앉았다. 새누리당은 어제 정의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동원, 야당이 불참한 가운에 임명동의안을 단독 표결 처리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축소에 연루된 박 후보자가 정상의 절차마저 거치지 않고 ‘반쪽 대법관’에 오른 셈이다.

 

‘박종철 사건’은 민주화를 요구한 젊은이를 고문해 죽인 국가권력의 야만적 폭력이다. 이 사건에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이 대법관에 오른다는 건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기는 많은 국민들은 물론 법원 내부에서마저 반대 목소리가 높았던 이유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힘을 앞세워 밀어붙이기로 일관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대책 없이 시간만 끌다 ‘박상옥 대법관’ 탄생을 방조했다.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축소하는 데 협력 순응한 검사가 6월항쟁으로 탄생한 민주헌법하의 대법관이 되는 절대 안될 일”(서울중앙지법 박노수 판사)이 현실로 벌어지는 기막힌 상황을 목도하게 됐다.

 

박 후보자는 그간 재판기록과 관계자 증언을 통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은폐에 관여된 증거와 구체적 정황이 드러났다. 은폐·축소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더라도 방관하거나 순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법관으로서 자격 미달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박 후보자가 최소한의 반성과 자책의 모습도 보이지 않은 채 무책임한 변명으로 일관해온 점이다. 박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에 대해 “부끄럽지 않다”거나 “지시에 따라 했을 뿐이다”라고 강변했다. 이토록 인권 감수성과 민주주의 인식이 결핍된 인물이 우리 사회 최후의 양심과 정의의 상징이어야 할 대법관 후보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불행이다.

 

박상옥 대법관 인준 강행은 인권과 민주주의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할 사법정의를 허무는 일이다. 박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 치사’를 묵인 내지 방조한 것처럼 국회가 사법 신뢰를 붕괴시키는 방조자가 된 것이다. 애초 박 후보자 문제는 독재의 폭압에 맞서 민주주의를 일궈낸 우리 사회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한국 민주화의 분수령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담당 검사로 축소·은폐 의혹을 받고 있는 박 후보자가 대법관에 오른 것은 그래서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다. 그를 대법관 후보로 제청한 양승태 대법원장, 힘으로 임명동의안을 통과시킨 새누리당이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역사 왜곡 아베 총리에 대한 세계 역사학자들의 경고

 

[한국일보 사설-20150507목] 세계 저명 사학자들의 위안부 왜곡 중단 성명

 

에즈라 포겔(하버드대)ㆍ브루스 커밍스(시카고대) 교수를 비롯한 세계적 역사학자 187명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왜곡의 중단 및 사실 인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과 유럽, 호주 등지에서 동양근ㆍ현대사나 일본사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자랑해 온 이들이 입을 모아 일본의 역사왜곡을 지탄하고 나선 것은 처음으로, 지구촌 지식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부를 전망이다.

 

이들은 그제 ‘일본의 역사가들을 지지하는 공개서한’이라는 성명을 통해 “수많은 여성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붙잡혔고, 끔찍한 야만 행위의 제물이 됐다는 증거는 분명하다”며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일관성 없는 기억의 영향을 받았더라도 이들이 제공한 전체 기록은 설득력이 있고, 공식문서와 병사 등의 증언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 성명을 외교 경로를 통해 일본 정부에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2월 초 미 역사협회(AHA) 소속 역사학자 19명이 성명을 통해 미국 역사교과서의 위안부 관련 기술을 수정하려던 일본 정부의 시도를 규탄한 바 있다. 당시에 비해 이번 집단성명은 참여학자들의 숫자가 크게 늘어난 데다 쟁쟁한 권위자들이 대거 포함됐다. 구미의 손꼽히는 일본 전문가들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지적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 특히 역사 왜곡에 앞장서 온 일본 관변 보수학계와 보수 언론에 보낸 공개 경고라고도 할 수 있다.

 

이번 집단성명과 2월의 AHA 성명 모두가 일본 진보사학계에 강한 연대 의식을 표한 것도 눈길을 끈다. 아베 총리 집권 이후 일본의 역사 정당화 및 과거사 그늘 지우기를 위한 보수학계의 목소리가 커짐과 동시에 일본의 진보사학계는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외쳐왔다. 지난해 12월 역사학연구회를 비롯한 일본 역사학계의 4개 진보학회는 위안부 문제의 왜곡 시도를 비판한 역사학연구회의 성명을 계기로 ‘4자 협의회’를 구성, 일본 정부와 보수파의 역사 왜곡을 세계에 알리고 밖으로부터의 영향력 행사를 요청하는 활동을 해왔다. 이번 공동성명은 이들의 노력이 거둔 결실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번 성명이 일본 정부나 보수파의 역사인식 자체에 어떤 변화를 부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길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가 ‘종전 70주년 총리 담화’등 공식 언행에서 지금까지 예상보다는 다소 진전된 역사인식을 담을 가능성은 있다.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은 물론이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언급도 빠뜨리기 어렵게 됐다. 일본 정부는 한중 양 국민과 세계의 지식인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해야만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07목] 아베 총리에 대한 세계 역사학자들의 경고

 

지구촌의 저명한 역사학자 187명이 6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군대위안부 문제에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말고 정면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또 일본의 식민지배 및 전시 침략 행위와 관련해 아베 총리의 ‘더 대담한 행동’을 촉구했다. 일본은 지구촌의 지성을 대표하는 이들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들의 성명은 아베 총리의 4월29일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 이후 일고 있는 역풍을 총정리하는 성격을 갖는다. 일본학을 전공하거나 일본 문제를 연구한 각국의 권위있는 역사학자들이 뜻을 모은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려고 한국과 중국의 역사학자들을 서명자 명단에서 제외한 것도 눈에 띈다. 2월 미국역사협회 소속 역사학자 20여명이 발표한 성명이 ‘예비 경고’였다면 이번 성명은 ‘최후통첩’이라고 할 수 있다.

 

성명에서 밝힌 대로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수많은 자료와 증언에 의해 역사적 사실로 확정된 야만적 행위다. “20세기에 있었던 수많은 전시 성폭력과 군 주도의 성매매 사례 중에서도 위안부 제도는 방대한 규모와 군 차원의 조직적 관리, 그리고 일본에 점령됐거나 식민지배를 받았던 지역의 어리고 가난하며 취약한 여성을 착취했다는 점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아베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최소한으로 기술된 미국 등 외국 교과서의 위안부 관련 내용까지 바꾸려고 시도해왔다. 성명에 참가한 이들이 아니더라도 일본의 이런 행태를 용납할 역사학자는 없다. 위안부 문제의 핵심에는 평등권과 여성의 존엄이라는 문제가 있으며, 이의 해결은 일본과 동아시아, 지구촌에서 양성평등을 위한 역사적인 발걸음이 될 거라는 성명의 지적도 전적으로 타당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 정부의 명확한 행동이다. 아베 총리는 이제까지 ‘역사는 역사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해왔다. 하지만 이번 성명에서 보듯이 세계 역사가들은 이미 위안부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정리된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제까지 부인해온 과거 잘못을 흔쾌하게 인정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위안부 문제를 풀지 않은 채 일본이 국제사회의 지도국이 될 수는 없다. 또한 미-일 동맹이 아무리 강화되더라도 미국이 위안부 문제를 대신 해결해줄 수는 없다. 아베 총리는 한-일 국교정상화 50돌(6월22일), 종전 70돌(8월15일) 등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지 말아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507목] “아베는 군 위안부 부정 말고 역사를 직시하라”

 

전 세계 역사학자 187명이 어제 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향해 정면으로 경고장을 날렸다. 알렉시스 더든 미 코네티컷대 교수·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명예교수·피터 두스 스탠퍼드대 교수·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 등은 성명을 통해 “군 위안부들에게 있었던 일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일은 피해자들을 모독하는 것”이라며 “수많은 여성이 자신의 의지에 반해 붙잡히고 끔찍한 야만 행위를 겪었다는 증거는 분명하며…이 여성들의 이송·관리에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증명하는 수많은 자료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아베 총리가 미 의회 합동연설에서 인권과 인간 안보의 중요성을 언급했다”고 상기시키며 “이제 아베 총리가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베 총리는 방미 때 군 위안부를 ‘인신매매의 희생자’라 언급했다. 하지만 주어(主語)가 빠지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가 일말의 도덕적·법적 책임을 느낀다면 “일본군에 의한 인신매매”라고 표현하는 게 최소한의 예의다. 아무리 상호 이해관계에 따라 미·일이 밀착해도 역사적 진실까지 뒤집을 수는 없다. 수많은 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전쟁터에서 착취당한 사실은 결코 바뀌거나 지워지지 않는다.

 

  아베 총리는 전 세계의 진실과 양심에 맞서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다. 그는 “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여부는 역사학계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지난해 일본 최대·최고 권위 역사학연구회는 “일본군의 관여 아래 강제 연행된 위안부가 존재한 것은 확고한 사실”이라 답했다. 이번 세계 역사학자들의 공동성명도 여기에 대한 메아리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이런 국내외 학자들의 양심적 목소리를 깡그리 무시한 채 역주행을 거듭하고 있다. 과연 언제까지 과거와 진실을 부정하며 아무런 사과 없이 어물쩍 넘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아베 총리는 역사 문제를 역사 전쟁으로 바꿔놓았다. 그가 계속 역사 왜곡을 고집한다면 그 앞에는 전 세계의 역사학계와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사설

 

[서울신문 사설-20150507목] 징용시설 세계유산 등재에 ‘친서’ 로비 나선 아베

 

조선인 강제징용 현장이 포함된 산업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본이 전방위 외교 로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등재 자격 논란이 들끓는 와중에 아베 신조 총리가 등재 심사를 맡은 관계국들에 친서까지 보내 지원을 호소하고 나섰다. 다음달 말 최종 심사를 앞두고 시비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총리가 작정하고 ‘등재 굳히기’에 팔소매를 걷어붙인 모양새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산하 민간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메이지(明治)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23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도록 유네스코에 권고했다. 23곳 중에는 나가사키조선소와 야하타제철소 등 태평양전쟁 중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된 산업시설 7곳이 포함됐다. 일본의 등재 작업은 치밀하게 전개됐다. 문제의 산업시설들을 ‘산업 근대화의 유산’이란 허울을 씌워 등재 신청한 뒤 시비가 이어지자 그 유산 가치를 한·일 강제병합 이전까지로 한정 짓는다는 대응 논리를 들이댔다.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전에 들어선 시설인 만큼 강제 징용과는 별개로 봐야 한다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주장이다.

 

전례로 봤을 때 ICOMOS의 등재 권고는 ‘다 된 밥’을 의미한다. 다음달 말에 있을 제39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최종 결정되는 공식적인 수순만 남겨 뒀다고 보면 된다. 일본 내부에서도 이는 기정사실로 굳어진 분위기다. 문제의 산업시설이 있는 섬 주변으로 내국인 관광객들이 연일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 정부는 뒤늦게야 수습에 나서는 척하고 있다. 두 나라 외교 당국자가 조만간 만나 세계유산 등재 시 징용 사실 기재 등의 쟁점을 협의해 보겠다고 한다. 지금 와서 승산 있는 얘기가 아닐 게 뻔하다. 이번 등재 건은 갑자기 불거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2012년부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다. 이 지경이 되도록 외교부는 뭘 했는지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뒷북 외교’를 들먹이는 것도 입이 아프다. 등재를 없었던 일로 돌릴 수 없다면 남은 카드는 하나다. 유대인 학살 현장인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처럼 일본 징용시설도 ‘부(負)의 유산’으로 등재시켜야 한다. 반인간적 범죄 행위를 상징하는 반면교사의 유산으로 남겨야 한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옷 벗을 각오로 이번 등재 건에 매달려야 할 것이다.

 

 

■ 국무회의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의결

 

[한국일보 사설-20150507목] 세월호 시행령, 대통령 재가 미루고 재협의토록

 

세월호 특위와 유가족이 전면 폐기를 주장해온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 끝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진상규명 주체와 피해자 측의 의견을 무시한 채 정부가 시행령을 강행 처리한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 지 의문이고, 또 그렇게 나온 결과를 얼마나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을지도 걱정스럽다.

 

당장 세월호 특위와 유가족은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시행령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석태 특위위원장은 “특별법이 특위에 부여한 권한을 활용해 ‘허수아비 시행령’에 구애 받지 않는 독자적인 위원회 규칙을 제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시행령이 모법인 특별법을 위배한 만큼 출범을 늦추고 자체적인 시행령을 만든 뒤 활동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시행령 논란의 핵심은 세월호 특별법에 명시된 특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제대로 보장돼 있느냐다. 정부가 내놓은 수정안은 공무원이 특위 운영을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한 독소조항이 그대로 남아있다. 특위 무력화 논란의 핵심 사항인 기획조정실장의 실무부서 총괄기능은 놔두고 명칭만 행정지원실장으로 바꿨다. 실장을 해양수산부가 아닌 다른 부처에서 파견토록 했을 뿐 공무원이 맡도록 한 것도 고쳐지지 않았다. 진상규명의 핵심 역할을 맡을 조사1과장 자리도 공무원에게 맡겼다. 조사대상이 될 수 있는 공무원이 칼자루를 쥐겠다는 것을 누군들 수긍할 수 있겠는가.

 

세월호 특위 업무 범위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정부 조사자료 분석’으로 그대로 국한시킨 것도 논란이다. 세월호 특별법 5조에는 특위 업무를 ‘원인규명’과 ‘구조ㆍ구난 작업과 정부 대응의 적정성에 대한 조사’로 규정했다. 이 것만 봐도 시행령이 모법의 취지는 물론 핵심 내용까지 위배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본질적인 문제점은 그대로 놔두고 일부 지엽적인 사항만 손본 수정안을 내놓고도 특위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정부의 당당한 태도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선포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1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달 15일 세월호 현안점검 회의에서“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른 시행령을 원만하게 해결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세월호 특위와 유가족과의 협의를 통해 갈등 없이 처리하라는 주문이었다. 국무회의를 통과한 시행령은 조만간 대통령의 재가를 거치면 최종적으로 확정된다. 박 대통령은 당시의 발언이 세월호 1주기를 넘기기 위한 생색내기용이 아니었음을 보여줘야 한다. 시행령 재가를 미루고 세월호 특위와 다시 협의를 거치도록 지시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결단을 바란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07목] 정부 시행령 강행, ‘세월호특조위 고사’ 노리나

 

온갖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가 6일 국무회의에서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의결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바로 시행한다지만 반대와 거부는 여전하다. 유족들은 시행령 즉각 폐기를 요구했고,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시행령이 모법인 특별법에 위반된다며 시행령 재개정과 함께 별도의 위원회 규칙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갈등이 계속되면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또 한참 미뤄지게 됐다.

 

정부가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조사 대상인 정부가 되레 조사 과정을 장악하고 조사 범위도 정부의 기존 조사 결과를 검토하는 것으로 한정한 정부 시행령안에 대해선 처음부터 반대가 거셌다. 도둑이 매를 든 격이라거나 특조위의 발목을 묶으려 한다는 말들이 많았다. 그래서 시행령안을 일부 고쳤다지만 문제점은 그대로였으니 시늉뿐인 수정이었다. 특조위의 독립성과 실효성을 훼손해 결국 허수아비로 만드는 장치는 별로 바뀌지 않았고, 특별법 내용을 시행령이 타당한 근거도 없이 축소하고 왜곡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수정안의 차관회의 통과 뒤 유족과 특조위가 더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시행령 처리를 강행했다. 유족들의 뜻은 끝내 수렴하지 않았고 특조위와는 협의는커녕 정반대 방향으로만 내달렸다. 일을 되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일부러 어깃장을 놓는 듯하다. 왜 이토록 기를 쓰고 진상규명을 훼방하려는 것인지 그 의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대로라면 진상규명이나 성역 없는 조사는 불가능하다. 어떻게든 정부의 간섭과 통제를 벗어나 독립적인 조사를 하려는 특조위와, 시행령의 좁은 틀 안에 특조위 활동을 제한하려는 정부 사이의 삐걱거림이 이어질 것이다. 제대로 된 조사를 하기도 전에 특조위가 좌초하거나 표류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에선 벌써 시행령 확정으로 특조위 활동이 시작돼 11월1일로 활동을 마치게 된다는 셈법이 나온다. 진상규명에는 손 놓은 채 시간만 가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그렇잖아도 정부는 특조위에 일체의 예산배정을 하지 않고 있다. 특조위가 올해 초 이미 소요 예산을 요청했는데도 여전히 모르는 체다.

 

박 대통령과 정부는 이런 치졸한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직후 우리 사회 모두의 다짐대로 진상규명을 통해 다시는 비극이 없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특조위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먼저다. 잘못된 시행령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 공무원연금 개혁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중앙일보 사설-20150507목] 공무원연금 개혁도 소화 못한 한심한 대한민국

 

어제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가 결국 무산됐다. 공무원연금을 개혁할 능력이 안 되는 정치권이 더 엄청난 국민연금에 발을 잘못 들여놓는 바람에 엉망진창이 됐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물 건너간 것을 넘어 엉뚱하게 국민연금마저 들쑤셔 신뢰의 위기까지 자초했다.

 

  우리 사회는 이번에 밑천의 바닥을 드러냈다. 청와대는 비평만 늘어놓았고 여야는 이해당사자인 공무원단체를 협상에 끌어들이는 바람에 시종일관 끌려다녔다. 여야는 노장년층의 표를 의식해 그들의 노후와 기득권 유지에만 신경을 쏟았을 뿐, 앞으로 닥쳐올 부담은 청년층과 미래 세대에 몽땅 떠넘겨 버렸다. 여기에 자극받은 20·30세대가 국민연금에서 대거 이탈하지 않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여야는 이달 중순 원 포인트 국회를 추진할 모양이다. 이제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같은 말도 안 되는 문구는 잊어야 한다. 오로지 공무원연금 개혁에만 집중해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 배운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그래야 정치권이 이번의 실패를 제대로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그간 도마에 올랐던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요한 것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졸속 개혁으로 인해 거들떠보지도 못했던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이 최우선 검토 대상이 돼야 한다. 지급률을 1.9%에서 1.7%로 0.2%포인트밖에 깎지 못해 재정 절감 효과가 당초보다 84조원이나 줄어든 점도 손봐야 한다. 지급률을 20년에 걸쳐 서서히 깎도록 꼼수를 부리는 바람에 40대 중반 이상의 공무원들이 빠져나가게 설계한 것도 바로잡는 게 맞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여야 정치권이 마음대로 정할 사안이 아니다. 나라의 미래와 2113만 명 국민의 노후가 달린 일이다. 2060년 기금 고갈을 전제로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되 보험료는 1%포인트만 올리겠다는 야당의 주장은 소가 웃을 일이다. 적립금을 당겨 쓴 뒤 그때 가서 필요한 만큼 매년 보험료를 걷는 부과 방식으로 가자는 뜻인데, 현재 9%의 보험료에도 허덕이는 국민들이 25%의 보험료를 감당할 수 있을까. 후손들에게도 볼 낯이 없다. 국민연금에 손대려면 국민 동의를 먼저 구하고 엄중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이번 사태는 정치권이 어설프게 연금 개혁에 손을 댔다가는 어떤 재앙을 맞는지, ‘연금의 정치화’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표를 계산하느라 공무원단체에 휘둘리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도 깨닫게 해줬다. 원 포인트 국회까지 짧은 시간에 문제점을 보완하되 그게 미흡하다면 공무원단체를 뺀 논의기구를 만들어 근본적 개혁안을 마련하는 게 낫다. 행여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수치를 40%와 50% 사이 적당한 지점에서 야합하려고 들지 말라.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다.

 

 

[서울신문 사설-20150507목] 국민연금 갑론을박 중단하고 공론화 나서야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소득 대비 연금지급액)을 놓고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마련하면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기로 한 합의 내용을 둘러싼 논란이다. 논란의 핵심은 ‘소득대체율을 10% 포인트 더 올리면 연금 보험료를 얼마나 올려야 하느냐’는 문제다. 연금을 더 받으려면 보험료를 더 내는 것은 당연한데 지금보다 두 배가량 올려야 한다는 주장과 단 1% 포인트만 인상하면 되니 큰 부담이 없다는 주장으로 엇갈린다.

 

재삼 강조하는 것은 정치권이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만들면서 국민연금을 연계시키고 구체적인 숫자까지 명시한 것은 권한의 한계를 벗어났다는 점이다. 두 연금은 다 같이 개혁 대상인 공적 연금이지만 문제의 본질은 다르다. 적자를 낸 지 오래된 공무원연금은 매년 예산에서 수조원을 보전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 공무원연금의 개혁 취지는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를 바꿔 재정 부담을 줄이자는 데 있다. 공무원연금과 달리 적게 내고 적게 받는 국민연금은 고갈에 대비해 두 차례의 개혁을 통해 소득대체율을 40%로까지 낮춰 놓은 상태다.

 

두 연금이 놓인 상황이 다른 만큼 접근 방식도 달라야 한다. 국민연금은 일찍 고갈될 경우 세금으로 보전할 수 없는 규모이기 때문에 매우 정교한 연금정책으로 미래의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 물론 소득대체율 40%로는 ‘용돈’에 불과하다고 할 정도로 생계비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말하자면 고갈 시기 연기와 노후 보장이라는 두 가지 가치 중에서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둘 것인지 심도 있는 논의가 따라야 한다. 그런 것을 개혁 같지도 않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하면서 국민연금 문제를 타협의 도구로 사용하는 등 졸속 처리한 것은 잘못돼도 매우 잘못됐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국회 통과는 논외로 하고 이 시점에서 국민연금 개혁에 대해 백가쟁명식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대체율과 보험료 인상에 대한 견해가 중구난방으로 나오듯이 국민연금 개혁은 공무원연금보다 더 복잡하고 따져 봐야 할 점이 많다. 정치인 몇 사람이 가입자들의 부담이 얼마나 늘지에 대한 얕은 지식만 갖고 시혜를 베풀 듯 정쟁을 벌일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공무원연금에서도 보았듯이 적게 내고 많이 받을 수 있는 연금은 없다. 누군가 져야 할 부담은 덮어 놓고 무조건 더 주겠다는 감언이설에 넘어갈 어리석은 국민이 아니다.

 

현재의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체율을 높이면 미래세대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고 세대 갈등을 촉발할 것도 너무나 뻔하다. 대체율을 40%로 유지할 것인지, 5% 포인트든 10% 포인트든, 아니면 20% 포인트든 얼마나 올릴 것인지를 논의하는 사회적 합의, 즉 공론화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더 세밀한 재정 추계도 해 봐야 하고 가입자들이 부담을 얼마나 더 해야 하는지도 살펴서 동의를 구해야 한다. 수십 년 이후의 경제 상황을 예측하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추정 가능한 미래상을 그려 놓고 국민연금을 어떻게 개혁해야 할지 지금부터 찬찬히 논의해 나가야 한다.

 

 

■ 성완종 리스트 수사, 홍준표 경남지사 소환

 

[경향신문 사설-20150507목] 홍준표 소환, ‘성완종 리스트’ 수사의 시작일 뿐

 

홍준표 경남지사가 ‘성완종 리스트’ 8인 중 처음으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특별수사팀은 성 전 회장에게서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홍 지사를 내일 소환키로 했다. 앞서 ‘자금 전달자’로 지목된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은 이미 4차례 조사를 받았다. 윤 전 부사장은 ‘아내가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국회에 가서 1억원이 담긴 쇼핑백을 전달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검사 시절 얻은 ‘거악 척결’ 이미지를 자산으로 정계에 진출한 홍 지사가 피의자로 검찰에 불려가는 처지가 되었으니 아이러니다.

 

성 전 회장은 생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1년 홍 지사가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나왔을 때 그 캠프에 있는 측근을 통해 1억원을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윤 전 부사장이 이를 사실상 시인하자 홍 지사 주변 인사들은 윤 전 부사장을 회유하려 시도했다. 그 사이 홍 지사는 “성 전 회장의 메모는 반대심문권이 보장돼 있지 않아 증거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등 법리논쟁을 펼쳤다. 어제는 “윤승모씨는 성 전 회장의 로비 창구다. 심부름을 이것만 했겠느냐. 대선, 총선 때도 똑같이 심부름했을 것”이라며 물귀신 작전을 폈다.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보기 딱하다.

 

검찰이 ‘리스트 8인’ 중 홍 지사를 첫 소환자로 지목한 것은 자금 전달자의 일관된 진술 때문일 것이다. 물증을 찾기 어려운 불법 정치자금 사건치고는 난도가 낮은 사건이라 볼 수 있다. 게다가 홍 지사는 경남지역 무상급식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면서 시민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터다. 그를 우선 수사 대상으로 삼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거기서 끝나선 안된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리스트에 오른 나머지 7인도 모두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특히 불법 대선자금 수수 의혹은 검찰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최근 대선자금 수사의 실마리가 될 만한 새로운 진술도 나오지 않았는가. 경남기업의 ‘금고지기’였던 한장섭 전 부사장은 “2012년 대선 직전 성 전 회장이 2억원을 새누리당 선대위 관계자 김모씨에게 전달했다고 들었다”는 진술을 했다고 한다. 앞서 성 전 회장도 경향신문에 “2012년 홍문종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조직총괄본부장에게 2억원을 줬다”고 밝힌 바 있다. 한 전 부사장이 털어놓은 정황은 성 전 회장 발언보다 구체적이다. 검찰의 의지만 있다면 수사 단서는 충분하다. 검찰은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엄정하게 수사하기 바란다.

 

 

[서울신문 사설-20150507목] 8일 검찰에 소환되는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홍준표 경남지사가 내일 오전 10시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다. 피의자 신분이다. 한나라당 대표 최고위원 경선을 앞둔 2011년 6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한테서 1억원을 받은 혐의다. 혐의가 입증되면 홍 지사는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 중 최초로 사법 처리가 된다.

 

검찰은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성 전 회장의 측근인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네 차례에 걸쳐 조사해 구체적인 정황도 파악했다. 윤 전 부사장은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국회의원 회관 지하 주차장에서 내린 뒤 홍 지사의 에쿠스 승용차에 홍 지사와 함께 타 1억원이 든 쇼핑백을 건넸다. 동석했던 나경범(현 경남도 서울본부장) 당시 수석보좌관이 쇼핑백을 들고 홍 지사의 사무실로 올라갔다”고 진술했다. 윤 전 부사장의 부인도 “남편이 홍 지사 측에 1억원을 전달한 날 국회의원 회관까지 차로 태워다 줬는데 남편이 돈이 든 쇼핑백을 챙겨 가는 것을 봤다. 남편이 돌아왔을 때 쇼핑백은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시간과 장소, 돈을 전달한 대상 등 구체적인 정황이 나오는 등 증거가 충분해 검찰은 홍 지사를 기소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홍 지사는 여전히 금품수수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어제는 기자들을 피해 오던 태도에서 벗어나 지사 집무실에서 즉석 간담회까지 가지며 검찰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홍 지사는 “검찰이 유일한 증인인 윤씨를 한 달 동안 통제 관리하고 10여 차례 조사하면서 진술 조정을 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비난했다. 이어 “검찰이 일방적 주장을 언론에 흘리고 언론이 마치 기정사실화해 혐의가 있는 것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보여 설명을 드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지사는 검찰에 나가서도 이러한 주장을 펴겠지만, ‘올인’에 나서야 할 만큼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돈을 받은 사실이 확인된다면 정치생명은 사실상 끝난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황태자였던 박철언 전 의원을 구속하는 등 부패와 싸웠던 청렴한 ‘모래시계 검사’의 이미지도 무너진다. 검찰도 절박한 건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에 대해 특검 도입을 요구하는 여론은 처음부터 거셌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 중 첫 번째로 소환한 홍 지사의 혐의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면 특검 도입 여론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 홍 지사와 윤 전 부사장 가운데 적어도 한 명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윤 전 부사장의 말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검찰은 확실한 증거를 토대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

 

 

■ 관련 칼럼

 

[한겨레신문 칼럼-정석구 칼럼/정석구(편집인)-20150507목] 핵심은 박근혜 대선자금이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내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다. 검찰의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이 발족한 지 거의 한달 만이다. 수사 속도가 느린 것 같아 답답하지만 일단 검찰 수사가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됐다. 홍 지사의 사법처리 여부가 앞으로의 수사 판도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 중 홍 지사가 왜 첫번째로 꼽혔을까. 돈 전달자의 구체적인 증언이 나오는 등 혐의를 입증하기가 쉬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홍 지사는 학교 무상급식 철회로 여론의 지탄을 받으면서 정부여당에 부담을 안겨주었다. 검찰로서는 박근혜 정권의 골칫덩이가 된 홍 지사를 사법처리하는 데 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홍 지사가 “이번에는 (바둑판의) 팻감으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둔 것이리라.

같 은 논리로 보면, 두번째 대상은 이완구 전 총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청문회 과정에서부터 온갖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논란이 되자 새누리당마저 자진 사퇴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이미 버린 카드인 셈이다. 검찰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울 수밖에 없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은 검찰의 수사 의지와 역량에 달려 있겠지만 일단 두 사람에 대한 수사까지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검찰이 2차로 넘어야 할 관문은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 3명이다. 만만치 않다. 성 회장의 메모나 녹취만으로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 수사 과정에서는 외부의 입김도 들어올 것이다. 검찰이 대선배인 김기춘 전 실장의 벽을 과연 넘을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다. 성 회장이 김 전 실장에게 10만달러를 주었다는 진술이 있어 검찰이 의지만 보인다면 사법처리가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이병기 현직 비서실장은 더 높은 장벽이다. 이 실장은 국회 답변에서 “박 대통령이 ‘(리스트에) 이름이 났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셨고 ‘전혀 금전 관계가 없다’고 답변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이를 믿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결백을 보증했다고 밝힌 셈이다. 만약 박 대통령이 특유의 어조로 “이 실장은 돈 받은 적 없다고 하던데요!”라고 한마디라도 하면 검찰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상 수사 지침을 내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3관문은 박 대통령의 대선자금과 관련된 것이다. 성 회장은 쪽지에 ‘부산시장 2억, 홍문종 2억, 유정복 3억’이라고 구체적 액수까지 적어놓았다. 이들은 2012년 박근혜 선거운동본부의 당무조정본부장, 조직총괄본부장, 직능총괄본부장을 각각 맡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미 국가정보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불법 선거개입이 확인된 마당에 이들에게 불법 자금이 흘러들어간 게 확인되면 박 대통령은 불법으로 얼룩진 선거를 통해 당선된 ‘불법 대통령’이 된다. 대통령으로서의 정통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이 대목에 대한 수사가 갖는 의미는 막중하다.

 

박 대통령이나 새누리당 모두 겉으로는 철저 수사를 통한 정치개혁을 말하고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없다. 책임져야 할 사건 당사자들이 마치 남의 일인 양 말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영리한 검찰이 모를 리도 없다. 검찰이 이에 기대어 1관문만 넘은 채 유죄 입증이 어렵다는 교묘한 법리를 들이대며 2관문 언저리에서 머뭇거리거나 칼날을 야당 쪽으로 돌린다면 정치검찰이란 오명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문무일 특별수사팀장은 이번 수사를 하면서 그동안 검사로서 가져왔던 양심을 잃지 않고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김진태 검찰총장도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 말이 빈말이 안 되려면 성완종 리스트의 핵심인 박 대통령 대선자금까지 파헤쳐 드러내야 한다. 문 팀장으로서는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건 어차피 검사로서는 마지막 수사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다. 그가 즐겨 쓰는 말대로 ‘명징하게’(깨끗하고 맑게) 검사 생활을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경향신문 사설-20150507목] 또 일방통행식 규제완화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3번째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주재했다. 규제는 ‘암 덩어리’ ‘원수’ ‘단두대에 보내야 한다’는 등의 섬뜩한 표현에서 느껴졌지만 여당의 재·보선 승리 이후 첫 이벤트를 규제개혁으로 잡은 것을 보면 그 집요함이 놀라울 정도다. 물론 대통령의 규제개혁 취지와 의지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불합리한 제도와 규제를 없애는 것을 반대할 까닭은 없다. 나쁜 규제를 없애 경제활성화의 촉매로 쓰겠다는 의도 역시 틀리지 않다. 하지만 늘 문제는 사회적 논란이 되는 사안을 경제활성화란 이름으로 버무린 채 일방통행으로 진행하는 데 있다. 기업 비용부담을 덜어준다며 선령 규제를 푼 게 세월호 사고의 단초가 됐고, 인천 강화도 글램핑장 화재 역시 개발제한구역에 야영장 설치를 늘리도록 규제를 푼 결과라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회의에서는 30만㎡ 이하 개발제한구역 해제 권한을 시·도지사에게 위임하고 지역특산물 판매, 체험시설과 마을 공동으로 숙박·음식·체험 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규제완화책이 발표됐다. 주민 불편 해소를 우선하며 2년 내 개발되지 않을 경우 개발제한구역으로 환원돼 난개발이 없을 것이라지만 표를 의식한 지자체장들이 주민과 기업들의 해제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데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그간의 규제 완화 성과로 온라인 쇼핑이 쉬워졌다고 시연했지만 결제시스템 완화 한편으로 국민들이 걱정하는 보안시스템은 어떻게 강화됐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입법권 경시는 또 다른 문제다. 박 대통령은 어제 의원입법을 규제 양산의 주범으로 몰며 국회에 불편한 감정을 내비쳤다. 지난 2월 ‘불어터진 국수’ 운운하며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게 국회의 경제활성화법 처리가 늦어진 데 따른 것처럼 얘기했던 것과 다르지 않은 독선이 느껴진다. 되풀이 얘기하지만 첨예한 사안일수록 부작용과 사회적 비용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우선돼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투자와 일자리를 얘기하며 규제 완화를 추진했지만 경제활성화 대신 기업 사내유보금 증가, 땅 보유 확대로 이어졌던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지금 시급한 것은 벼랑에 몰린 서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지 결과도 확실치 않은 기업들의 민원 해결이 아니다. 지속적인 규제 완화와 경제활성화 정책으로 서민들의 삶이 나아졌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07목] 재산권 침해하는 상가 임대차보호법이 초래할 결과들

 

소위 권리금 보호법인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어제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다음달부터 임대인은 임차인이 새로운 임차인으로부터 권리금을 받는 것을 방해하지 못한다. 임대인이 방해할 경우 임차인은 임차종료 후 3년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지난해 2월 박근혜 대통령이 “상가권리금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고 밝힌 지 1년3개월 만에 법률안이 통과됐으니 정부와 국회가 이 문제에 관한 한 ‘같은 시각’인 셈이다. 표가 적은 임대인이 아니라 표가 더 많은 임차인을 겨냥한 정치권의 포퓰리즘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억울한 임차상인을 보호하고 횡포를 부리는 임대인을 규제하자는 것은 자연스런 감정이다. 그러나 건물주와 입주상인의 권리관계는 법으로 쉽게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권리금의 시장가치 평가는 훨씬 복잡하다. 권리금은 그 매장의 가치를 높게 보는 새로운 임차인이 리스크를 안고 지급하는 것일 뿐이다. 장사가 잘되는 매장에서 임대인이 임차인을 내쫓고 직접 매장을 운영하는 ‘권리금 약탈’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지만, 대부분 임대인은 매장의 권리금이 올라가면서 자신의 건물 가치가 높아지는 것을 더 선호한다.

 

문제는 권리금 보호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 요인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재개발, 재건축 과정에서 분쟁은 필수적이다. 건물주는 상인 간 권리금 거래에서 아무런 실질적인 이득을 본 것이 없다. 때문에 재산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임대와 임차는 관습과 상거래 관행, 신의칙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모든 신뢰 관계를 법으로 규정하자고 나서면 그 법률의 수만큼이나 많은 편법이 생겨나고 결국 법은 파괴되고 만다. 더구나 이런 종류의 보호법은 부작용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예외를 만들어내면서 서서히 누더기로 변해간다. 언제나 그렇지만, 단순히 희망사항을 나열할 뿐인 수많은 소위 ‘그랬으면 좋겠다’법들은 당초 목표와 달리 큰 후유증을 낳는다. 상가 자산가치의 하락이나 상거래 위축은 상가 임대차보호법이 가져올 필연적 결과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07목] 채권금리 급등, 양적완화 거품 터지는 신호탄인가

 

금융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최근 10여일 사이 채권금리가 급등(채권 가격 급락)하더니 사상 최고치 달성 기대가 높던 주식시장마저 상승세가 크게 꺾였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달 20일 연 1.693%를 바닥으로 이후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올라, 어제는 연 1.969%까지 올랐다. 10년물, 30년물 등 장기물 금리는 더 빠르게 오르고 있다.

 

채권금리가 오르는 직접적 원인은 미국 독일 등 해외 채권금리의 상승이다. 지난주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는 연 0.37%로 0.22%포인트, 미국은 연 2.11%로 0.21%포인트 올랐다. 블룸버그통신은 메릴린치채권지수를 인용, 글로벌 채권시장 시가총액이 지난 1주일간 3400억달러 증발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해외 금리가 오르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경기 회복, 국제유가 반등 등을 꼽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의 1분기 성장률은 당초 예상과 달리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으로 예상된다. 유가도 아직 추세적 상승세로 돌아섰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저금리와 양적 완화로 풀린 자금이 몰리던 채권시장이 이제는 상투를 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더 설득력이 있다. 얼마 전 끝난 밀컨 콘퍼런스에서 조슈아 해리스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창업자는 “거의 모든 자산가격이 지나치게 고평가돼 있다. 채권시장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헤지펀드 브레번 하워드의 창업자 하워드도 최근 채권시장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채권금리 급등은 주식시장에도 악재일 수밖에 없다. 지난달 말 세계 증시 시가총액(74조7000억달러)은 전 세계 GDP를 넘어섰다. ‘IT 버블’ 때인 1999년,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 이어 세 번째다. 거품이 곧 터진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코스피지수는 어제도 1.3% 하락, 지난달 23일 고점 대비 3.2% 떨어졌다. 미국 일본 증시 역시 4월 말 고점 대비 3% 안팎, 독일과 중국은 각각 8.5%, 7.5%나 급락했다. 양적 완화와 저금리라는 비(非)전통적 변칙이 빚어낸 거품이 이제 막 터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07목] 한국 근로자 세후 소득이 OECD 6위라는 놀라운 사실

 

물가를 감안한 구매력 기준으로 한국 근로자의 평균임금이 지난해 4만6664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14번째라고 한다. 특히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떼고 근로자가 손에 쥐는 세후 순소득은 4만421달러로 순위가 6위로 껑충 뛴다. 한국보다 높은 나라는 스위스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호주 네덜란드뿐이다. 미국 일본 독일 스웨덴 등 대다수 OECD 국가들이 한국보다 낮다. 한국은 물가가 싼 편이고, 세금·사회보험료(사업주 부담분 포함) 합계도 21.5%로 OECD 평균(36.0%)보다 훨씬 낮기 때문이다.

 

물론 이 통계는 5인 이상 사업체 정규직 기준이어서 근로자 간 임금격차 등 실상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국내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62.2%에 불과하다. 노사정위원회 임금보고서에 따르면 저임금 근로자(중위임금의 3분의 2 이하) 비중은 25.1%로 미국 다음으로 높다. 하지만 근로자 세후 순소득은 어느덧 웬만한 선진국보다 많은 수준이 됐다. 통상임금 확대, 근로시간 단축으로 더 오를 것이다. 지난 5년간 인건비가 50% 이상 올라 노동비용이 일본 수준이 됐다는 GM 측의 불평이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니다.

 

그동안 근로자는 ‘유리알 지갑’이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왔다. 정치권이 각종 세금감면을 지속적으로 늘려온 배경이다. 그러다 보니 근로자 임금에서 차지하는 소득세 비중이 4.6%로 칠레(0%) 다음으로 낮다. OECD 평균(15.6%)에 비해선 3분의 1에 불과하다. 근로자의 48.0%는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도 된다. 세금은 덜 떼고 임금 격차와 하후상박만 강조하다 조세체계가 엉망이 된 결과다.

 

흔히 복지국가의 모델로 북유럽 선진국들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북유럽 국가 근로자들이 임금에서 떼는 소득세가 한국 근로자의 4~7배에 달한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는 한국 사회다. 정치권의 무상공약은 반기면서 세 부담 늘어나는 것은 기피한다면 이율배반이요 모순이다. 두 차례 세금파동의 결과 앞으로 근로자 증세는 말도 못 꺼낼 나라가 됐다. 포퓰리즘 정치가 국민 의식까지 무너뜨리는 중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0목] 금리 조정폭 '마이크로스텝' 검토할 만하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조정폭인 25bp(1bp=0.01%포인트)에 대한 회의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저금리 시대를 맞으면서 논의가 한층 가열되는 양상이다. 6일 서울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최근 한은에서는 해외 중앙은행의 금리조정폭과 영향 등을 담은 기초자료 조사에 착수했을 뿐 아니라 금융통화위원들 사이에서도 보폭 축소를 주장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베이비스텝'으로 지칭되는 25bp의 조정폭은 옳다 그르다 일도양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무엇보다 현행 경제 시스템이 25bp 조정을 전제로 짜여 있어 급격히 변경하기에는 난점이 있다. 한은이 1999년 금리목표제를 도입한 후 줄곧 베이비스텝을 불문율처럼 유지해온 것도 이 원칙이 흔들릴 경우 오히려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울 우려가 있어서였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금리 1%대 시대인 지금은 상황 변경의 이유가 보다 뚜렷해졌음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베이비스텝을 탈피해 10bp로 보폭을 조정한 것도 저금리 현실을 반영한 선택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더구나 베이비스텝도 1990년대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100bp의 조정폭을 4등분해 경기대응 능력을 높이자는 아이디어에서 나온 게 아닌가. 20년 전 고금리 시대에 미국에서 정해진 것이 25bp의 스텝이라면 이제는 우리 현실에 맞는 스텝이 무엇인지 스스로 따져볼 때가 됐다. 물론 현행 베이비스텝으로도 경기조절 효과가 충분하다면 유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25bp가 베이비스텝이 아니라 '자이언트스텝'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 지 이미 오래인 만큼 한은은 '마이크로스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07목] 그린벨트 해제 권한, 난개발 방지책과 같이 가야

 

정부가 6일 제3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내놓은 규제개혁 과제는 양에 초점을 맞춘 기존 규제개혁과 달리 기업과 국민이 효과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규제 완화에 중점을 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표적인 것은 은행이 핀테크 기업에 출자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핀테크가 창의와 혁신에 바탕을 둔 비즈니스 모델들을 쏟아내며 기존 금융질서를 뒤흔들고 있는데도 정작 우리는 금융과 산업 자본을 분리하는 금산분리 원칙에 얽매여 투자도 못한 채 뒷짐만 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금융지주회사법과 은행법상의 금융회사가 업무수행과 관련 있는 회사에 출자할 수 있다는 규정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은행의 핀테크 투자를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세계 핀테크 산업 흐름에 적극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규제비용총량제 시범사업을 확대하는 점도 눈에 띈다. 규제비용총량제는 새로운 규제를 만들 때마다 그에 상당하는 기존 규제를 폐지·완화해 규제비용의 총량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규제개혁 효과를 극대화하는 기본 전제였다.

 

걱정스러운 대목은 30만㎡ 이하의 중소 규모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시도지사에게 넘겨준다는 점이다. 그린벨트 내 주민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입지 규제를 대폭 푼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무분별한 개발을 막을 정부 차원의 대책이 사전에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린벨트 해제 권한만 시도지사에게 준 것은 잘못이다. 그렇지 않아도 임기 중 다양한 개발사업을 벌이려 하는 지자체장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될까 우려된다. 난개발의 책임을 후임에게 지울 수는 없지 않나.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07목] "젊은 세대를 위한 나라는 없다"

 

"청장년 세대는 갈수록 빈곤해지고 연금생활자들은 상대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얼마 전 '젊은 세대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제목의 글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FT는 자체 조사 결과 평균 연금생활자들은 빠른 소득증가를 누리지만 청장년 세대는 지난 35년간 상대적인 풍요의 자리에서 보통을 훨씬 밑도는 쪽으로 밀려났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자원 재분배에 나서지 않고 전 세대에 공정하게 혜택을 부여하지 않으면 젊은 층은 세대 간 사회계약의 파기를 원할 수도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같은 결론은 단순히 경고 차원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2011년 국민연금 납부율은 48.6%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20∼24세 납부율은 25%에 불과하다. 연금을 내봤자 결국 손해 볼 게 뻔하다는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반면 연금을 수령하는 노인층은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일본의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현 추세라면 2040년에 국민연금이 고갈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렇게 되면 20∼30대 젊은 세대는 연금을 납부하고도 나중에는 아예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대폭 줄어든 연금액만 수령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판박이로 가고 있다.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에 합의했다지만 이 역시 젊은 세대에 피해가 쏠리도록 설계돼 있다. 현재 연금 수령자나 50대 이상은 아무 피해도 없이 자신의 납부액보다 거의 3배나 많은 연금을 받는다. 결국 차액은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고 이 같은 재정적자분은 내년부터 70년 동안 1,238조원에 이른다. 이렇게 오르는 세금은 누가 부담하나. 후세대가 짊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만 혜택에서 소외된다는 지적을 의식한 여야 정치인들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현재의 40%에서 50%로 올리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대신 보험료율을 지금보다 20% 이상 높여야 한다는 지적에는 묵묵부답이다. 온전히 젊은 세대의 몫이니 국회의원 자기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국회의 젊은 세대 무시는 이뿐만이 아니다. 노총과 공무원집단에 대한 눈치 보기와 인기영합에 정신을 팔다 보니 정작 통과돼야 할 경제 활성화 법안들은 철저히 외면해버렸다. 2020년까지 35만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효과가 기대되는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은 여전히 이익집단의 반대에 직면해 있다. 노동개혁, 공무원연금 개혁법안도 마찬가지다. 국회는 지금 온갖 이익집단의 해우소로 전락하고 있다. 조직화하지 않는 젊은 세대만 희생양으로 내몰릴 뿐이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정석구 칼럼/정석구(편집인)-20150507목] 핵심은 박근혜 대선자금이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내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다. 검찰의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이 발족한 지 거의 한달 만이다. 수사 속도가 느린 것 같아 답답하지만 일단 검찰 수사가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됐다. 홍 지사의 사법처리 여부가 앞으로의 수사 판도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 중 홍 지사가 왜 첫번째로 꼽혔을까. 돈 전달자의 구체적인 증언이 나오는 등 혐의를 입증하기가 쉬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홍 지사는 학교 무상급식 철회로 여론의 지탄을 받으면서 정부여당에 부담을 안겨주었다. 검찰로서는 박근혜 정권의 골칫덩이가 된 홍 지사를 사법처리하는 데 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홍 지사가 “이번에는 (바둑판의) 팻감으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둔 것이리라.

같 은 논리로 보면, 두번째 대상은 이완구 전 총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청문회 과정에서부터 온갖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논란이 되자 새누리당마저 자진 사퇴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이미 버린 카드인 셈이다. 검찰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울 수밖에 없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은 검찰의 수사 의지와 역량에 달려 있겠지만 일단 두 사람에 대한 수사까지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검찰이 2차로 넘어야 할 관문은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 3명이다. 만만치 않다. 성 회장의 메모나 녹취만으로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 수사 과정에서는 외부의 입김도 들어올 것이다. 검찰이 대선배인 김기춘 전 실장의 벽을 과연 넘을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다. 성 회장이 김 전 실장에게 10만달러를 주었다는 진술이 있어 검찰이 의지만 보인다면 사법처리가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이병기 현직 비서실장은 더 높은 장벽이다. 이 실장은 국회 답변에서 “박 대통령이 ‘(리스트에) 이름이 났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셨고 ‘전혀 금전 관계가 없다’고 답변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이를 믿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결백을 보증했다고 밝힌 셈이다. 만약 박 대통령이 특유의 어조로 “이 실장은 돈 받은 적 없다고 하던데요!”라고 한마디라도 하면 검찰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상 수사 지침을 내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3관문은 박 대통령의 대선자금과 관련된 것이다. 성 회장은 쪽지에 ‘부산시장 2억, 홍문종 2억, 유정복 3억’이라고 구체적 액수까지 적어놓았다. 이들은 2012년 박근혜 선거운동본부의 당무조정본부장, 조직총괄본부장, 직능총괄본부장을 각각 맡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미 국가정보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불법 선거개입이 확인된 마당에 이들에게 불법 자금이 흘러들어간 게 확인되면 박 대통령은 불법으로 얼룩진 선거를 통해 당선된 ‘불법 대통령’이 된다. 대통령으로서의 정통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이 대목에 대한 수사가 갖는 의미는 막중하다.

 

박 대통령이나 새누리당 모두 겉으로는 철저 수사를 통한 정치개혁을 말하고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없다. 책임져야 할 사건 당사자들이 마치 남의 일인 양 말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영리한 검찰이 모를 리도 없다. 검찰이 이에 기대어 1관문만 넘은 채 유죄 입증이 어렵다는 교묘한 법리를 들이대며 2관문 언저리에서 머뭇거리거나 칼날을 야당 쪽으로 돌린다면 정치검찰이란 오명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문무일 특별수사팀장은 이번 수사를 하면서 그동안 검사로서 가져왔던 양심을 잃지 않고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김진태 검찰총장도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 말이 빈말이 안 되려면 성완종 리스트의 핵심인 박 대통령 대선자금까지 파헤쳐 드러내야 한다. 문 팀장으로서는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건 어차피 검사로서는 마지막 수사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다. 그가 즐겨 쓰는 말대로 ‘명징하게’(깨끗하고 맑게) 검사 생활을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상언(사회부문 차장)-20150407목] 할아버지 세대의 파탄

 

‘젊은이들이 노년층에 인질로 사로잡혀 있다. 이제 상황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여 노년층은 자녀들에게 외상을 지고 살게 됐다. …베이비붐 세대는 퇴직연령에 접어들며 사상 전례 없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즉 전후 처음으로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외상을 지고 살게 된 것이다. 다음 세대에게 부채와 채무 이행에 대한 부담을 떠넘긴 것이다.’

 

  ‘잔인할 정도로 아이러니한 것은 베이비붐 세대는 아동의 권리, 자신의 인격과 자율에 대한 존중을 떠받들면서도 자신이 감당할 용기가 없는 희생은 후대에게 물려준 것이다. …젊은이들은 엄청난 액수의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 베이비부머들은 책임을 회피하는 ‘부도 낸 할아버지’가 됐다. …젊은이들은 젊기 때문에 당할 뿐이다.’

 

  2009년에 출판된 『Le papy-krach』라는 책의 서문에서 발췌한 글이다. ‘부도 낸 할아버지’쯤으로 번역이 가능하다. 한국어 번역본에는 『세대 간의 전쟁』(박은태·장유경 옮김, 경연사)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레지옹 도뇌르(프랑스 정부의 최고 훈장)를 받은 르몽드 논설위원 출신인 저자 베르나르 슈피츠는 프랑스 기성세대를 ‘도덕적 파산자’로 규정한다. 공적 연금, 건강보험 등으로 인해 정부를 엄청난 빚더미 위에 올려놓고 후세에게 그 책임을 미루는 어른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부도 낸 할아버지는 프랑스 혁명의 3대 정신인 자유·평등·박애와는 거리가 멀다. 먼저 자유와 거리가 멀다. 젊은이들은 위 세대가 초래한 일의 결과를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등과도 거리가 멀다. 평등의 가치와는 반대로 세대 간의 불평등이 조장되기 때문이다. 또한 박애와도 거리가 멀다. 기득권 보호를 위한 대립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5년 전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지리적·시간적으로 거리가 꽤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그 일이 우리의 현실로 닥쳐왔다. 할아버지 세대인 여야 대표가 지난 2일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부당함은 자명하다. 당사자인 공무원이 반발하지 않는 것, 공무원을 비롯한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정치인들이 문제 삼지 않는 것만 봐도 결코 개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슈피츠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혁할 능력을 인정받는 정치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고 썼다. 그런데 불행히도 프랑스나 우리나라나 그런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불행하게도 그들은 할아버지·아버지 세대가 지금 얼마나 나쁜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를 잘 모른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이기환(논설위원)-20150507목] 부(負)의 유산

 

유네스코 등재 세계유산(1007건) 가운데 절대 다수는 영원히 기억해야 할 인류의 자랑스러운 유산들이다. 하지만 절대 반복돼서는 안될, 그래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유산들도 있다.

 

이른바 ‘부(負)의 유산(Negative heritage)’이다. 대표적인 ‘부의 유산’은 아우슈비츠 수용소(1979년 등재)이다. 나치의 집단학살과 반인간적 범죄행위의 증거라는 게 등재 이유였다. 세네갈의 고레섬(1978년)과 마셜제도의 비키니섬(2010년)도 ‘부의 유산’들이다. 고레섬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노예무역’이 번성했던 곳이다. 냉전시대 핵실험지로 악명을 떨친 비키니섬은 인류가 핵시대로 본격적으로 접어들었음을 확인시켜 준 ‘부의 유산’이다. 히로시마 원폭돔(1996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는 유의해야 한다. 일본이 등재신청을 하면서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가해자임을 싹 빼고 미국이 만든 파괴적인 무기(원폭)의 피해자라는 점만 강조한 것이다. 중국과 미국이 앙앙불락했지만 이미 늦었다. 다만 중국·미국은 세계유산 홈페이지의 유산목록에 ‘가해자인 일본의 원폭돔 유산등재에 반대의사를 표시한다’는 성명서를 게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번에도 일본은 같은 수를 썼다. 조선인 강제징용자의 피가 묻은 시설물들을 ‘메이지시대 산업혁명유산군’의 이름으로 등재신청한 것이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등재권고까지 받았으니 세계유산총회(6월28일·독일 본)에서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등재권고를 받고 총회에서 등록보류 및 취소된 예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혹 일본과 협의해 ‘부의 유산’ 개념을 첨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과거사를 가리는 데 급급한 일본이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방안은 뭘까. 공식문서에 첨부시키지는 못해도 세계유산 최종 결정 때 ‘조선인 징용’ 사실을 발표문에 넣도록 외교력을 집중하면 어떨까. 중국과 미국이 히로시마 원폭돔 등재 때했던 것처럼 유네스코 홈페이지에 ‘반대 흔적’을 남기는 것도 궁여지책이다. 이달 말 열릴 한·일 간 양자회담을 지켜봐야겠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뒷북 외교’의 대가, 참 혹독하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박홍환(논설위원)-20150507목] 티셔츠 자판기

벤딩머신(자동판매기)의 천국 일본에서는 그야말로 거의 모든 생활용품을 자판기를 통해 살 수 있다. 음료 및 커피 자판기는 기본이고 라면 자판기, 속옷 자판기, 우산 자판기까지 없는 게 없다. 오죽하면 자판기에서 전철표를 끊어 자판기 같은 전철을 타고 출근한 뒤 자판기처럼 일하고, 점심은 라면 자판기와 커피 자판기로 해결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까.

 

기원전 215년 무렵 고대 이집트 신전의 성수(聖水)샘 앞에 새로운 ‘물건’이 등장했다. 경화(硬貨), 즉 금속 동전을 넣으면 성수(聖水)가 흘러나오도록 고안된 장비다. 동전의 무게에 의해 평형추의 균형이 깨져 성수가 나오는 밸브가 열리고, 일정 시간 후 평형추가 균형을 되찾으면 밸브가 닫히는 원리였다고 한다. 이는 인류 최초의 자판기로 기록돼 있다.

 

자판기는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시대가 열리고, 무엇보다 인건비 상승 등으로 새로운 유통혁명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24시간 무인판매 시스템이라 노동력이 필요 없고, 현금 판매로 자금 회전이 빠른 데다 자투리 면적을 이용할 수 있어 그야말로 일석다조의 효자기계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들로서도 간편하게 자기 주변에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당연히 폭발적인 히트로 이어졌다.

 

국내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승차권 자판기, 담배 자판기, 커피 자판기, 음료 자판기 순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도입 초기 자판기 옆에는 관리자 또는 동전 교환원이 앉아 있었다니 자판기답지 않은 자판기였던 셈이다. 지금은 커피 자판기만 해도 이른바 ‘다방식 커피’뿐 아니라 최고급 원두커피까지 소비자들이 취향대로 고를 수 있도록 한층 세분화됐다.

 

최근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서는 티셔츠 자판기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독일 베를린 시내 광장에 ‘티셔츠 한 장, 단돈 2유로(약 2400원)’라는 문구가 적힌 자판기가 설치되자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하지만 자판기에 돈을 넣고 사이즈를 고르려 하자 모니터에서 충격적인 영상이 흘러나온다. 방글라데시의 한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소녀 마니샤를 포함해 현지 수백만 명의 소녀들이 값싼 티셔츠를 만들며 받는 돈이 시간당 13센트(약 140원)에 불과하고 하루 16시간 이상 일한다는 내용이다. 영상은 이어 “아직도 2유로짜리 티셔츠를 사고 싶은가요?”란 자막을 내보내고, 실제 구매할 건지 아니면 2유로를 기부할 건지 묻는다.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싼값에 물건을 구입하길 원하지만 그 가격을 맞추기 위해 열악한 환경의 제3세계 노동자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티셔츠 자판기 이벤트의 메시지다. 자판기의 홍수, 무감각한 소비의 이면에 또 어떤 비극적인 현실이 숨겨져 있을지 오싹할 따름이다. 지금부터라도 생각하는 소비를 시작하자.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507목] 적정 음주량?

 

한국인의 적정 음주량은 1주일에 소주 2병 이하라는 지침이 나왔다. 대한가정의학회 알코올연구회가 우리나라 사람의 체질에 맞춰 연구한 결과라고 한다. 알코올 용량으로 따져 생맥주(500mL) 8잔, 막걸리(250mL) 8사발 분량이다.

 

여태까지는 마땅한 대안이 없어 ‘주당 국제 표준 잔(한 잔은 알코올 14g)으로 14잔(196g)이 적절하다’는 미국 국립보건원 기준을 따랐던 모양이다. 14g짜리 한 잔은 소주 90mL(4분의 1병)이고, 14잔이면 3.5병에 해당한다. 우리는 몸집이 작아 3분의 2 정도인 소주 2병(112g)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가이드라인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선 발표기관마다 기준이 제각각이고 수치도 다르다. 몇 년 전 한국건강증진재단이 세계보건기구(WHO)와 의학계 자문을 거쳐 내놓은 저위험 음주 가이드라인은 1주일에 소주 5잔, 맥주 4잔이었다. 여성은 그 절반이었다. 20년 전인 1996년 복지부가 제시한 적정 음주량은 소주 3잔, 맥주 3잔이었고 여성은 그 3분의 2였다.

 

세계보건기구의 저위험 음주량은 맥주 5.6잔(여성 2.8잔)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를 기준으로 지난해 한국인 평균 음주량이 맥주 6.5잔(여성 4.7잔)이나 된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 건강측정평가연구소도 술 때문에 약 11.1개월의 건강수명이 단축된다며 잔뜩 겁을 줬다. 영국 왕립공중보건학회는 와인 한 잔 열량이 파운드케이크 한 조각과 같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런 숫자들이 ‘어리석은 공포’를 조장할 뿐이라는 지적도 많다. 과체중일수록 사망률이 높다는 통념은 2013년 미국 국가보건통계청의 조사 결과 뒤집어졌다. 과체중인 사람의 사망 확률이 되레 6% 낮다는 것이다. 노스웨스턴대 연구팀도 과체중 당뇨 환자가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오래 살고 사망률이 절반 이하였다고 보고했다. ‘비만의 역설’이다. 고혈압 기준을 1900년대 초 ‘160, 100 이상’에서 1974년 ‘140, 90’으로 낮춘 결과 환자가 3배 늘었던 사례도 비슷하다.

 

물론 지나친 음주는 나쁘다. 그러나 뭐든지 계량화하려는 ‘숫자 인간’들의 사고 방식도 별로 좋아보이진 않는다. 그러면 술의 정신적 영향은 어떻게 수치화할 것인가. 영국에 철도가 처음 등장했을 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성명서가 생각난다. 당시 영국의사협회는 ‘마차에 비해 철도는 너무 빨라서 구토나 메스꺼움, 정신병까지 유발할 수 있으니 가능하면 기차를 타지 않기 바란다’고 전 국민에게 권고(?)했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임석훈(논설위원)-20150507목] '독수리표' 베이비

 

지난 3월 초 미국 합동수사국 요원들이 로스앤젤레스와 오렌지 카운티 등의 호화주택 20여곳에 들이닥쳤다. 모두 중국인 임산부 호텔로 알려진 곳이다. 급습 이유는 원정출산 브로커 소탕. 중국 임산부의 미국 원정출산이 유행처럼 번진 것은 2010년대 들어서다. 대기오염과 식품안전 문제가 심각해지는 와중에 반부패 드라이브까지 겹치면서 부유층을 중심으로 원정출산 붐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좋은 교육환경에서 공부시키려는 부모들의 욕망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미국에서 아기를 낳은 중국인은 연간 1만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미국에서 태어나는 원정출산 신생아, 이른바 '독수리표 베이비'가 한 해 4만명 정도니 넷 중 한 아기가 중국계인 셈이다. 5,000명 수준인 한국계에 비하면 2배가량 많다.

 

한국·타이완·터키 등지에서 온 임산부의 원정출산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잊을 만하면 재벌가나 연예인·부유층의 원정출산 논란이 불거지곤 한다. 미국 원정출산 최고 선호지는 LA 인근. 어바인시의 경우 2013년 이후 아시아 출신 임산부 400명 이상이 원정출산 했다는 집계까지 있을 정도다.

 

사이판·괌·하와이도 인기 지역이다. 미국 원정출산 비용은 최소 1인당 6만~7만달러로 전해진다. 알선비 5만달러, 현지 출산비 1만달러에다 항공료·비자 연장에 들어가는 돈을 포함한 게 그렇다. 미국 수사당국에 적발된 브로커 집단은 최대 8만달러를 알선료로 챙겼다니 이 경우에 총비용은 10만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1억원을 훌쩍 넘을 것 같다.

거금(巨金) 낭비와 단속 위험에도 원정출산이 끊이지 않는 것은 미국 영토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시민권을 주는 자동시민권제 때문. 원정출산을 부추기는 원흉으로 지목된 이 제도를 없애자는 법안이 최근 미국 상하원에 동시 발의됐다는 소식이다. 연방의회에서 청문회까지 열렸다니 폐지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모양이다. 원정 출산이 곧 막을 내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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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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