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홍준표 지사의 변명과 처신 ■ 상지대 사태 ■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의 파장 ■ 공무원연금 개정안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명시 연계 관련 대립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홍준표 지사의 변명과 처신
[한국일보 사설-20150513수] 홍준표의 처신, 뽑아 준 도민에 부끄러워서라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법망을 빠져나가려 기를 쓰는 모습이 연민의 정을 불러 일으킬 지경이다. 홍 지사는 기자회견 등을 통해 2011년 당대표 경선 당시 기탁금 1억2,000만원의 출처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국회에서 받은 국회대책비 일부를 아내에게 생활비로 건넸고, 아내는 이를 비자금으로 조성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혔다. 홍 지사는 “변호사를 하는 유명한 판ㆍ검사 출신들은 10억~20억 원씩 벌었다”며 “집사람이 이때부터 나 몰래 별도 현금을 모아 두었다”고 했다. 그는 또 “2008년 여당 원내대표 시절 나온 대책비도 활동비로 쓰고 남은 돈을 생활비로 줬다”며 “아내가 2004년 8월부터 시중은행 대여금고에 이런 돈을 모아온 모양인데, 그 돈이 3억 원 가량”이라고 덧붙였다.
홍 지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영락없이 공금횡령이다. 또 배우자 명의의 예금을 재산등록에서 누락한 것은 공직자윤리법 위반이다. 반대로 거짓말이라면 오히려 성 전 회장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는 셈이 된다. 얼핏 보면 딜레마에 빠진 것 같다. 하지만 검사 출신인 그가 이 정도를 모를 리가 없다는 게 상식이다. 당장 위험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피해 차라리 입증이 어려운 횡령죄나 공소시효(6개월)가 지난 공직자윤리법 위반으로 도덕적 망신을 당하는 쪽을 선택했다고 보는 게 설득력이 있다.
홍 지사의 이해할 수 없는 처신은 이뿐이 아니다. “(한나라당 때인)17대 총선 공천심사위원 시절 영남지역 의원이 국회 사무실로 찾아와 공천헌금 5억 원을 제시했다”며 “나중에는 20억까지 준다고 해서 그날 바로 그를 공천에서 탈락시켰다”는 것이다.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 홍 지사에게 전달했다는 1억 원은 대수로운 액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새누리당에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 대표까지 지낸 사람이 제 살자고 물귀신처럼 당을 끌고 들어간다는 불만이 끓는다.
홍 전 지사는 한때 이탈리아의 부정부패 척결운동인 마니풀리테(Mani puliteㆍ깨끗한 손)를 주도한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에 비견돼 ‘한국판 피에트로 검사’로 불린 적도 있다. 그토록 당당해 보였던 그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부인과 당을 끌어들이며 구명에 전전긍긍하는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코너에 몰린 홍 지사를 위해 측근이 노골적으로 증거인멸과 회유를 시도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아무리 지역주민들에게만 책임을 지는 선출직이어도 이 정도면 어떤 기준으로 봐도 공직자 감으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사법 판단 이전에 그는 이미 정치적 생명을 스스로 끊었다.
[서울신문 사설-20150513수] 홍준표 지사의 변명, 구질구질하지 않은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자금 1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 때 낸 기탁금 1억 2000만원의 출처를 ‘아내의 비자금’이라고 밝혀 의혹과 논란을 더 증폭시키고 있다. 아내를 내세워 검찰 수사의 예봉을 피하려는 시도가 곱게 보이지 않는 데다 홍 지사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공직선거법 위반이나 공직자윤리법 등 자잘한 혐의를 인정하며 여론을 호도하려고 시도하는 듯 보이는 탓이다.
홍 지사는 엊그제 대표 경선 후보 기탁금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에서 “11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며 번 돈과 2008년 원내대표 시절 국회운영위원장을 겸하면서 매월 국회대책비로 나온 돈 4000만~5000만원 중 쓰고 남아 생활비로 준 돈 일부를 집사람이 나 몰래 모아 은행의 대여금고에 넣어 둔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의 비자금’이라는 홍 지사의 해명이 공금횡령 혐의나 공직자선거법 위반을 시인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자 홍 지사는 다시 해명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국회대책비 중에는 직책수당 성격의 돈이 있고, 그 직책수당 성격의 돈 중 일부를 집사람에게 가끔 모자란 생활비로 주었다”면서 “이를 두고 마치 예산 횡령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변명했다. 국회대책비는 원내대표의 포괄적 처분권을 인정하기 때문에 ‘공금횡령’을 제기하기 어려워 윤리적인 비난의 대상일 뿐이다. 홍 지사는 재산신고 누락을 인정하며 벌을 받겠다는데 공직선거법상 공소시효 6개월이 지났다.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이라 지푸라기라도 움켜잡고 홍수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심정을 이해하지만 여당 대표까지 지낸 그가 구질구질하게 보이는 변명을 한 탓에 TV 드라마 ‘모래시계’를 통해 쌓았던 청렴하고 강직한 검사는 물론 서민적인 이미지조차 모두 사라지고 있다. 군색한 해명은 조리도 잘 맞지 않는다. 생활비가 모자랄 때 줬다는데 ‘아내의 비자금’은 3억원이나 된다. 은행원 출신인 그의 아내가 이자수익을 포기하고 은행의 대여금고에 넣어 둔 것도 의아하다. 대여금고는 인출명세나 조회열람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3억원이 혹시 ‘검은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게 ‘합리적 의심’이다. 한번 거짓말을 하면 계속 꼬일 수밖에 없다. 홍 지사는 차분하게 검찰 수사를 받고 법정에서 진위를 가리기 바란다.
■ 상지대 사태
[한겨레신문 사설-20150513수] 상지대 사태, ‘임시이사 파견’ 불가피하다
사학비리의 대표적 인물인 김문기 총장을 해임하라는 교육부의 요구를 상지대 재단이 거부했다. 교육부가 김 총장의 해임을 못박아 요구했는데도 재단 쪽은 총장 자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정직 1개월의 징계 결정으로 교육부에 맞섰다. 비리 주역인 김 총장은 해임하되 김씨 일가 지배구조의 근간인 이사회는 유지시켜 준다는 교육부의 어설픈 타협책조차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른 데는 김씨와 재단 쪽의 안하무인을 방치하고 조장한 교육부 책임이 크다. 부정입학 등 사학비리 탓에 1993년 퇴출당했던 김씨가 21년 만인 지난해 8월 총장으로 복귀한 뒤 학내 구성원들의 거센 반발로 학교운영이 파행을 겪을 때 교육부는 한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교육부가 뒤늦게 상지대에 대한 특별종합감사를 벌인 뒤인 지난해 말에도 상지대 재단은 김씨 복귀에 반대한 교수들을 파면하고 징계하는 등 학내 비판세력 탄압을 계속했다. 교육부가 감사결과를 통보하면서 총장 해임을 요구한 다음날인 3월11일 재단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김씨 장남 등 김씨 쪽 신임 이사 3명의 임원 취임 승인을 교육부에 신청했다. 이미 김씨 쪽 이사 5명을 추인했던 교육부는 이들 3명을 또 승인했다. 비리 사학의 족벌경영과 세습을 용인했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행보였다. ‘잘못된 신호’가 계속된 탓에 상지대 재단이 교육부의 총장 해임 요구를 무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는 비리 사학을 정상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은 이제 분명해졌다. 비리를 밥 먹듯 저지르고 분규를 유발해 학교를 파행으로 몰아넣은 김씨를 총장으로 선임하고 그 자리를 지키도록 한 장치는 이사회다. 김씨 쪽 일색인 이사회를 그대로 두고서는 상지대 사태를 해결하기 어렵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상지대 재단이 총장 해임 요구에 불응하면 임원 취임 승인 취소(이사 해임) 처분을 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부는 징계 재심의 요구로 또다시 시간을 허송할 게 아니라, 재단 이사진을 전원 해임하고 즉각 임시이사를 파견해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513수] 교육부의 김문기 총장 해임 요구 면피용이었나
상지대 학교법인인 상지학원이 김문기 총장에 대해 정직 1개월의 솜방망이 징계를 결정했다고 한다. 교육부가 지난 3월10일 특별종합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교육용 기본재산 부당 관리, 직원 부당 채용, 학생 수업관리 부실 등을 이유로 김 총장 해임을 요구한 처분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사실상 ‘김문기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상지대 교수와 학생의 반발은 물론 교육부의 처분마저 무시하고 그런 배짱을 부릴 수 있다는 게 놀랍다.
김 총장이 지난해 8월 복귀한 뒤 상지대가 교육부의 요구를 묵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학교 안팎에서 김 총장 퇴진 요구가 들끓는 가운데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수차례 사퇴를 압박했음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던 터다. 교육부의 대학 정상화 방안 제출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김 총장을 청문회 증인으로 불렀을 때도 두 차례 모두 출석을 거부했다. 결국 교육부는 특별종합감사를 실시해 김 총장 해임 요구 처분을 하기에 이르렀고, 상지대 재단은 이마저 무시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문제는 상지대가 교육부의 처분에 콧방귀를 뀔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 책임이 바로 교육부에 있다는 점이다. 총장 해임 의결 권한은 재단 이사회에 있는데, 교육부가 김 총장 세력의 이사회 장악을 용인했기 때문이다. 상지대는 교육부의 감사 결과 통보 다음날인 지난 3월11일 이사회를 열어 김 총장의 장남 김성남씨 등 3명을 신임 이사로 선임하고 교육부에 승인을 신청했다. 교육부는 김 총장의 영향력 아래 있는 이들의 임원 취임을 승인했다. 실질적으로는 사학의 족벌경영체제를 용인해 놓고 겉으로 김 총장 퇴진 요구 등 ‘시늉’만 한 꼴이다.
교육부는 상지대 재단에 김 총장에 대한 징계 재심의를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모양이다. 재단 이사회를 김 총장 세력이 장악한 데다 이제까지 취해온 태도로 봐서 이는 아무 실익이 없는 조치가 될 게 뻔하다. 사립학교법은 교육부의 총장 징계 요구에 불응하는 사학에 대해서는 이사 승인을 취소하고 임시 이사를 파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바로 상지대의 지금과 같은 사태에 해당하는 조항이다. 새 총장과 이사진을 공공성을 갖춘 인물로 구성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교육부는 더 이상 시늉만 해서는 곤란하다. 상지대가 족벌체제에서 벗어나 정상화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의 파장
[한겨레신문 사설-20150513수] 냉정 자세 필요한 북의 ‘SLBM’ 사태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의 파장이 길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열어 대응책을 점검했다. 최윤희 합참의장도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과 회동했으며, 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다음주 서울 방문 때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북한의 동향을 엄중하게 분석하고 대응책을 점검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북한의 행동을 과대해석하는 일부의 움직임은 우려스럽다. 북한 군사동향의 실체와 의도를 냉정하게 읽지 못하고 즉흥적으로 어느 한쪽으로 확 쏠려가는 것은 안보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군당국에 따르면 북한의 시험발사는 실제 미사일이 아니라 모의탄을 물 위로 150미터쯤 솟구치도록 한 사출시험 수준이라고 한다. 실제 전력화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고 시간도 꽤 필요하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미국의 여러 군사전문가도 모의탄 1발 쏜 것을 두고 실전 배치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견해다. 킬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가 한계에 부닥쳤다는 주장은 기본적으로 성급하다. 상황을 오도할 위험이 크다.
일각에선 북한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을 시험했으니 우리도 잠수함 전력을 늘리자고 주장한다. 대잠수함 헬기를 대거 확충하자거나, 심지어 우리도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여 맞서자고 한다. 북한이 위협을 늘린다면 우리도 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이 특정한 무기체계를 갖고 시위를 벌인다고 그때마다 북한이 손가락질하는 방향으로 춤을 추어선 안 된다. 안보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고 막대한 군사비만 낭비할 따름이다. 안보의 기본은 상대의 도발 형태별로 대응하는 게 아니라 총체적 억제력을 유지함으로써 상대의 도발 의지 자체를 꺾는 것이다.
어 느 나라든 미사일 같은 군사자원 개발은 숨기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북한은 설익은 기술 수준에서 시험발사 장면을 공개하고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아마도 무력 과시를 통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거나 북한 주민들의 자신감을 고취하는 등의 대내외적 선전 의도가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가 단절된 지난 몇년 새 북한이 이런 식으로 도발적 행동을 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 이번 사출시험을 두고 갑자기 무슨 큰일이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면 북한 강경세력의 무력시위 의도에 말려드는 효과만 가져올 수도 있다.
최고의 안보전략은 역시 강력한 대북 억제력을 유지하되 남북관계를 대화로 풀어나가는 것이다.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와 한반도 현안들이 풀려나간다면 북한도 군사적 위협 필요성을 덜 느낄 것이다. 6·15 공동행사를 비롯해 남북 사이에 약간의 사회문화 교류가 움트려는 참이다. 나아가 경제협력과 정치·군사적 주제로까지 남과 북이 대화 범위를 넓히는 게 시급하다. 혹시라도 북한의 행동을 빌미잡아 기존 대화의 흐름을 중단시키려 한다면 그거야말로 안보를 해치는 나쁜 선택이 될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513수] 北 SLBM 실체 파악 후 제대로 대책 세워라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소집해 최근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 시험과 서해 ‘조준타격’ 도발 위협 등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했다. 박 대통령이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주재한 것은 지난해 5월 북한군의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의 포격 이후 1년 만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은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의 안정을 저해하는 심각한 도전”이라고 평가한 뒤 철저한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최윤희 합장의장도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과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했고 오는 17일 방한하는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도 SLBM 위협을 논의한다.
북한의 SLBM 실전 배치가 가져올 안보 전략상의 파장을 감안하면 다각적인 대책 논의는 적절하다.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SLBM을 사전에 탐지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 당국이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구축 중인 ‘킬 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이런 맥락에서 국방부는 2016~2020년 국방중기계획에서 대잠초계기 등 추가 소요를 판단해 반영할 계획이며 KAMD와 킬 체인 개념을 확대하면서 북한의 수중 잠수함의 이동경로를 탐지하는 첨단 장비의 성능도 높인다는 방침이다.
북한의 SLBM 개발 추이를 면밀히 평가해 철저한 대응 능력을 갖춰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처사다. 북한의 이번 사출 시험이 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한 모든 발사체 사용을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695호와 2094호 등을 위반한 만큼 미국 등 관련국들과 정보 및 기술적 판단을 진행해 실체를 밝히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북한의 SLBM 사출 시험 한 번에 우리가 평정심을 잃는다면 북한의 전략에 말려드는 꼴이다. 과대 포장과 선전에 능란한 북한은 이번 SLBM 사출 시험 장면을 크게 부각시켜 우리의 혼란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
미국의 북한 군사전문가들은 “북한 SLBM은 떠오르는 위협 수준에 불과하며 모의탄이 불과 150~200m 정도 날아간 것은 연료용이 아니거나 점화에 실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SLBM 개발을 위해서는 연구-시험-개발-평가 등 고도의 기술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하며 북한이 SLBM을 발사할 수 있는 3000t급 이상의 잠수함조차 아직 보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방부 역시 SLBM 자체의 완전 개발에는 4~5년은 걸린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북한이 4~5년 뒤 완전 개발한 뒤에는 우리의 대책은 있는가. 3000t급 잠수함을 보유한 뒤에는 또 어찌할 것인가. 사안을 과대 평가해선 안 되지만, 지나치게 평가절하해서도 안 된다. 북한의 위협을 지나치게 부풀리는 것도 물론 문제이지만, 상대를 우습게 보는 안이한 대응은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대북 군사·정보 라인을 가동해 북한의 군사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군과 정부는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 공무원연금 개정안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명시 연계 관련 대립
[중앙일보 사설-20150513수] 공무원연금법 불발에 왜 민생 법안이 희생양 되나
여야가 어제 ‘원포인트 국회’를 열었지만 달랑 법안 3개만 통과시키고 도로 문을 닫았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명시’를 연계하는 것을 둘러싼 여야 대립이 다른 50여 개의 민생 법안을 희생시킨 것이다. 당초 협상 대상도 아니었던 국민연금을 연계시킨 것도 황당한데 이젠 아무 관련 없는 다른 민생 법안들까지 공무원연금과 연계시킨 꼴이니, 이러고도 국회가 민생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본회의 문턱에서 발목이 잡힌 법안들은 학자금을 빌린 대학생들이 원리금을 손쉽게 갚을 수 있도록 하는 취업후학자금상환특별법 개정안, 담뱃갑에 흡연 경고그림을 의무적으로 넣도록 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것들이다. 해당 상임위에서 여야 협의를 거쳤거나 법사위를 통과한 비쟁점 법안들이다. 그런데도 공무원연금법 처리 불발의 ‘볼모’ 신세가 돼버렸다.
이제 국회는 최소한의 양심과 상식도 작동하지 않는 ‘불능 국회’란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더욱이 야당이 3건의 안건 처리에 동의하면서 새누리당에 ‘그 정도라도 고마운 줄 알라’는 취지로 말했다니 놀랍고도 어처구니가 없다. 국회가 법안을 처리하는 건 본연의 임무이자 의무다. 민생 법안을 흥정과 거래의 대상으로 여기고, 마치 시혜를 베푸는 듯 착각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이런 사고의 함정에 빠져 있으니 툭하면 국회 보이콧이요, 법안 발목 잡기가 습관처럼 반복되는 게 아닌가.
어제 본회의는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선 새로 출범한 이종걸 원내대표 체제가 ‘첫선’을 보인 시험대이기도 했다. 이 원내대표는 과거 독설과 막말 발언으로 물의를 빚으며 강경 이미지가 부각됐다. 그런 만큼 이번 공무원연금법 처리가 이미지를 바꿀 좋은 기회였는데도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연계에 반대하는 당내 온건파의 요구도 묵살했다. 그제 비공개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선 “이대로 가다간 전투에선 이길지 몰라도 전쟁에선 진다”(추미애 최고위원)거나 “우리가 바깥 여론을 너무 모른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높이는 걸 국민들은 좋아하지 않는다”(김춘진 보건복지위원장)며 궤도 수정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야당이 계속 앞뒤가 꽉 막힌 강경 일변도로 나간다면 어떻게 수권 정당의 면모를 갖출 것이며, 다가올 총선과 대선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싶다. 문재인 대표가 강조하는 ‘경제 정당’ ‘민생 정당’도 한갓 쇼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국회가 이 지경이면 박근혜 대통령이라도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유체이탈’ 화법을 접고 국회를 적극적으로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사태를 꼬이게 한 데는 청와대의 책임도 적지 않다. “염치없는 일” “시한폭탄이 터질 수밖에 없다”며 공무원연금 개혁을 압박만 할 게 아니라 야당을 설득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3수] 새누리당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오류 인정하라
5월 국회가 시작됐지만 여야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 문제로 연일 티격태격이다. 무엇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50% 인상’을 원칙이라 하며 열흘째 한발짝도 물러서질 않으니 참으로 딱하다. 새누리당의 태도가 조금 변하고 있는 것이 그나마 주목된다. 특히 김무성 대표는 “공무원연금특위의 활동범위는 공무원연금과 관련된 것이어야 하고, 합의도 그것에만 이뤄져야 하는데 다른 걸 들고나와서 문제가 생겼다”고 시인했다. “월권이란 말이 맞다”고도 했다.
잘못된 합의의 절반은 엄연히 집권여당 몫이다. 그런 합의안을 발표한 것도 김무성 문재인 두 대표였다. 실무협상팀의 잘못으로 돌려버리며 여론전 펴듯이 해선 안 될 일이다. 김 대표가 그나마 오류를 인정한 것도 여론의 비판이 혹독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무부처 장관까지 국회에서 “정부가 마술사도 아니다. 재원이 없다”며 작정하고 야당의 주장을 ‘은폐마케팅’이라 맞받아치자 궤도수정에 나선 분위기다.
새누리당은 여론의 눈치나 보며 어물쩍 넘어가려 해선 안 된다. 엄연한 여야 합의였다. 국회 규칙의 부칙에 추가하는 첨부서류라는 꼼수로 적당히 처리하려던 사안이다. 지금이라도 ‘50% 인상 합의는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방향으로 당의 공식입장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는 게 맞다. 향후 65년간 물경 1702조원이 더 필요한 결정을 더듬수로 적당히 되돌리려다가는 후유증만 남길 수 있다. 어제 국무회의에서 대통령도 “국민연금 관련 사항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사회적 논의를 통해 신중히 결정하자”고 말하지 않았나.
새누리당은 공무원연금 개혁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공무원연금 개혁에 나섰던 것은 재정적자를 더는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도외시한 어떤 모수조정도 겉돌 수밖에 없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시늉만 낸 채 국민연금을 끌어들여 포퓰리즘으로 내달린다면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하루빨리 오류를 인정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공무원연금을 제대로 개혁하고 국민연금 재정구조의 장기 건전성을 달성할 수 있는 ‘원점의 개혁 정신’이 필요하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0513수] 국회 문 열고도 '공무원연금' 손조차 안 대다니
혹시나 했던 12일 국회는 역시나 실망스러웠다. 여야는 이날 국회 본회의를 열어 연말정산 환급을 위한 소득세법 개정안과 누리과정 지원을 위한 지방재정법, 상가권리금 보호를 위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등 3개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은 논의조차 안 했다. 국가 미래가 걸린 핵심 의제는 외면한 채 당장의 급한 불만 끄는 것으로 국회의 도리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한시가 급한 공무원연금 개혁인데 여야는 강경대치에 시간만 끌고 있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 자칫 5월 국회를 넘기고 영영 공중에 떠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이 이번에 안 되면 시한폭탄이 터지고 말 것"이라고 걱정했다. 단순 엄포가 아니라 국민도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여야는 직시해야 한다.
이런 식이라면 19대 국회는 '구제불능'의 오명을 벗기 어렵다. 이날 국회가 본회의를 열고도 달랑 3개 법안만 처리한 것은 명백한 면피성 행위다. 법사위를 통과한 나머지 63개 법안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28일 본회의에서마저 법안 통과가 무산되면 5월 국회에는 '낙제' 낙인이 찍히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국회가 경제 활성화법 처리까지 지연시키고 있다. 그런 국회를 국민이 용서할 수 있겠나. 4월 국회에서도 통과가 유력했던 크라우드펀딩법·하도급거래공정화법·산업재해보상법 등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 불발과 함께 상정이 무산됐다. 야당은 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긴요한 법안들을 볼모로 삼는 구태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 바란다. 대통령과 여당도 경제 활성화법 처리와 공무원연금 개혁이 투 트랙으로 막힘 없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 활성화에 꼭 필요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관광진흥법 등이 여전히 소관 상임위원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현실이 야당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513수] 고교 한국 근현대사 비중 축소 방안 재고해야
정부가 2018학년도부터 사용할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근현대사 비중을 현행 50%에서 40%로 줄이는 방향으로 개정작업에 나선다고 한다. 국무총리실 산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어제 연세대에서 개최한 ‘역사와 교육과정 공개 토론회’에서 발표한 ‘2015 역사과 교육과정 시안’에서 이런 견해를 제시했다. 이 시안은 현재 중학교 1학년이 고등학생이 되는 2018학년도부터 정식 교재로 채택된다.
시안은 고교 한국사를 정치사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짜고,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사실과 내용은 경제, 사회, 문화사 등을 통해 학습량이 과도하지 않은 수준에서 포함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현행 한국사 교과에서 근현대사 비중이 과다하다는 의견을 반영, 전근대사와 근현대사 비중을 5대5에서 6대4 비중이 되도록 조정했다. 현행 고교 교과서 ‘우리 역사의 형성과 고대국가발전’이라는 대단원 중에서 ‘고대 국가의 발전’을 따로 떼어내 별도의 대주제로 삼은 것이 대표적이다. 평가원은 2017학년도부터 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으로 책정되는 것을 계기로 그간 여러 논란과 지적이 많았던 한국사 부분의 손질이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시안은 근현대사 교육을 강화하는 세계적 흐름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학계와 교육현장에서도 학생들이 피부에 와 닿는 근현대사에 더 높은 관심과 흥미를 보인다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게다가 교육부는 2005년 11월 “일본, 중국의 역사 왜곡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내적 역량 확보”를 위해 고교 근현대사 교육을 강화하겠다고까지 발표하지 않았던가. 중국은 1990년대 초 전일제 중고교 역사 교과요강을 발표한 이후 근현대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일본도 일본인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자국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며 2016년 학습지도요령 전면 개정에 맞춰 일본사와 세계사를 통합한 근현대사를 별도 교과과목으로 신설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 해 근현대사와 관련, 정부의 통일적 견해에 입각해 기술해야 한다는 검정 기준을 마련,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의 증거가 없다”, “독도는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을 기정 사실화한 교과서 제작에 나서고 있는 마당이다.
정부가 근현대사 교육을 축소하려는 의도를 두고 이념 논쟁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다소의 이념논쟁이 있을지언정 역사문제는 정면 돌파하는 것이 정도다. 근현대사 교육 부실로 일본군 위안부나 독도 문제를 두고 논리적인 대응마저 어려워지는 사태가 빚어진다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시안이 최종판이 아닌 만큼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정된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한국일보 사설-20150513수] 내홍 격화하는 제1야당, 벼랑 끝 문재인 리더십
정청래 최고위원의 공갈 막말을 둘러싼 새정치민주연합 내부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비노(非蘆)계에 속하는 김동철 의원(광주 광산갑)은 어제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발언을 통해 정 최고위원에 대한 출당조치를 문재인 대표에게 요구했다. 문 대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다른 의원들과 함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앞서 비노성향 당원들은 정 최고위원을 당 윤리심판원에 제소했다. 윤리심판원의 징계는 당적 박탈부터 당원자격정지 등의 중징계가 포함돼 있다. 문 대표가 갈등 수습을 위한 특단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면 당이 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 최고위원의 막말에 반발해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주승용 의원은 그제 정 최고위원이 그의 지역구인 여수까지 찾아가 사과했지만 사퇴의사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당내 비노계 인사들은 하나같이 문 대표가 뼈를 깎은 혁신을 하고, 친노 단어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은 하면서도 구체적인 방안이나 행동으로 옮기는 게 없다고 비판한다. 최근 문 대표를 만났던 김한길 전 대표가 11일 페이스북을 통해“문 대표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전 대표는 문 대표가 공갈 발언에 대한 정 최고위원의 사과만 있으면 상황이 수습될 것처럼 말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비켜가는 것이라고 했다. 친노 패권주의 청산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라는 압박이다. 물론 김 전 대표 등 당내 중진들이 현 단계에서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건 아니다. 분당 등 야당 분열을 경계하는 기류도 강하다. 하지만 친노 패권주의에 대한 가시적 조치가 없으면 비주류 의원들이 탈당 등의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내 4선 이상 중진의원들이 이날 긴급모임을 갖고 문 대표에게 당 운영 방식에 대해 강한 경고를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광주 서을에서 당선된 천정배 의원발 신당 움직임은 잦아들었지만 당내 분열이 격화되면 상황은 또 달라질 것이다.
당이 내부갈등으로 지고 새니 공무원연금개혁 문제나 민생 현안 등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견제 등 제1야당의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이종걸 원내대표가 이날 국민연금 세금 폭탄론 등과 관련해 새누리당과 정부를 향해 날을 세웠지만 전혀 힘이 실리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도는 올라가는데, 야당의 지지도는 계속 뒷걸음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가다간 제1야당의 존재는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정권교체도 언감생심이다. 문 대표는 친노 계파의 한 수장을 넘어 제1 야당의 대표로서 당내 갈등을 수습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한겨레신문 사설-20150513수] 문제 많은 연말정산 환급법 통과
연말정산 환급을 위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1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직장인 638만명이 이달 월급날에 모두 4560억원의 세금을 돌려받게 됐다. 1인당 7만1000원꼴이다. 이미 낸 세금을 환급받는 사람들이야 기분 좋은 일이겠지만 나라경제 전체로는 문제가 많다. 소급입법의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데다 소득 재분배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소득세법 개정은 1월의 ‘연말정산 파동’이 계기가 됐다. 지난해 근로소득과 납부세액을 정산한 결과, 추가로 세금을 내야 할 사람들이 불만을 쏟아냈다. 뚜렷한 근거도 없는 가운데 ‘세금폭탄론’ 등이 힘을 발휘할 정도였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이에 놀란 나머지 정부를 압박해 각종 공제를 확대하거나 신설하도록 만들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도 부분적으로 가세했다.
하지만 연말정산이 마무리된 뒤 정부가 세금 부과 내용을 분석해 보니 ‘세금폭탄론’ 등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상위 9%인 연소득 7000만원 이상 계층의 경우 세부담이 1인당 평균 109만원, 7000만~5500만원 계층은 3000원이 늘었다. 반면 5500만원 이하 계층은 3만1000원이 줄었다. 5500만원 이하도 부담이 늘어난 경우가 적지 않지만 금액 자체는 소액이다. 정부가 2013년 소득세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밝힌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고소득층에게 유리한 몇몇 소득공제 제도를 세액공제 제도로 바꿔 세부담의 형평성 등을 높이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그런데도 소득세법이 이번에 다시 개정되면서 이런 취지가 훼손되어 유감이다. 정부가 2013년 개정안에 대해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했더라면 피할 수도 있었던 일이라 여겨져 더욱 그렇다.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방침에 눌려 그러지를 못했다. 소득세법 개정으로 어찌됐든 세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올해도 지난 3년간과 마찬가지로 세수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고, 소득과 자산 불평등은 이미 심각한 상태다. 또한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복지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그런 만큼 세법 손질을 서둘러야 한다. 여야는 4일 법인세를 포함한 세수 확충 방안에 대해 6월 임시국회에서 논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본격적인 세제개편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세법에 대한 신뢰를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
[경향신문 사설-20150513수] 최경환·문형표 장관, 세대 갈등 부추기는 의도 뭔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는 발언을 잇따라 내놨다. 최 부총리는 그제 기자간담회에서 “다른 나라에서는 정년연장할 때 청년층이 반발해서 혼란을 많이 겪었는데, 우리 청년들은 목소리를 별로 안 낸다”고 말했다. “내년에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서 내후년까지 3년 동안 청년고용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도 했다. 앞서 며칠 전에는 문 장관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과 관련해 “세대 간 도적질”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두 장관의 발언은 사실과도 다르고 기성세대에 대한 청년층의 적개심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적절하고 무책임하다. 사회 통합의 의무가 있는 두 장관이 갈등을 조장하는 의도를 묻고 싶다. 시행 중인 정년연장법 반대 운동이라도 벌이자는 것인가. 아니면 노인세대를 청년들의 공적으로 삼자는 말인가. 최 부총리의 ‘청년층 반발’ 발언은 2010년 프랑스를 달군 사르코지 정부의 연금 개혁 반대 시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연금 수급 시기를 2살 늦추고 정년을 2년 연장하는 내용의 연금 개혁이 시위 촉발의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가 친기업 정책으로 재정이 파탄 나자 그 책임을 국민에게 미룬 것이 더 큰 시위 요인이었음이 드러났다.
정년이 연장되면 신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럼에도 청년실업의 근본 원인은 정년연장보다 정보통신기술 시대의 고용 없는 성장과 경기불황, 잘못된 경제정책에 있다는 것은 정설화돼 있다. 정년 때문에 청년고용 대란이 일어난다니 경제정책 책임자답지 않은 말이다. 노인세대가 청년세대의 몫을 훔친다는 의미의 문 장관의 ‘세대 간 도적질’ 발언도 막말 수준이다.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협력해 노인세대를 부양하는 세대 간 연대의 성격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문 장관은 나아가 국민연금을 현재 방식대로 운용하더라도 2060년이면 기금이 고갈되므로 그 전에 수를 내야 한다는 현실도 무시했다. 보험료를 올리든지 그해에 걷어 바로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든지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연금 대란으로 이어질 것임을 전문가인 문 장관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정년연장이나 국민연금으로 세대 간 갈등이 표면화되지도 않은 마당에 두 장관이 세대 간 갈등을 거론한 것은 다른 꿍꿍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실업의 책임을 회피하고 여야의 공적 연금 강화 합의를 무력화하려는 의도 아닌가. 그러나 그런 꼼수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두 장관은 국민을 선동하고 분열시키는 발언을 사과하고 자숙하기 바란다.
[경향신문 사설-20150513수] 고소득자 대출금리 낮춰준 게 가계부채 대책이라니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안심전환대출 분석 결과가 어제 나왔다. 당초 예상대로 고소득자는 물론이고 신용등급 상위계층이 수혜를 입으면서 정부가 말해왔던 서민 가계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가 무색해졌다.
금융위원회가 어제 내놓은 안심전환대출 분석 결과에 따르면 대출 실행분 32만건 중 1억원 이상 소득자가 전체의 5.1%를 차지했다. 이는 안심전환 대출자 중 1만6000명이 연간 1억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고소득자라는 의미다. 이 가운데는 연봉 5억4000만원을 받는 이용자도 있었다. 수혜자 중 신용등급 1등급 이상인 사람이 절반에 가깝고, 2~3등급도 38.4%나 됐다. 6억원 이상 주택을 보유한 사람도 상당수로 집계됐다. 반면 통상 저신용자로 분류된 6등급 이하는 고작 2.8%에 그쳤다. 이 정도면 가계부채 대책이라기보다 ‘가진 자들을 위한 지원책’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안심대출은 변동금리로 이자만 내고 있던 만기 일시상환 대출을 고정금리·원리금 균등 상환으로 바꿔주는 상품이다. 금리가 통상보다 1%포인트 정도 낮고 중도상환 수수료마저 없앤 파격적 조건인 데다 소득 제한도 두지 않아 애초부터 형평성 논란을 낳았던 터다. 금융위는 전체 대출자 평균소득이 4000만원이라는 점을 들어 특정 계층을 지원하는 대책은 아니라며 안심전환대출로 고정금리에 분할상환 대출이 전체의 30%로 개선되면서 가계부채의 위험도가 낮아졌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변동금리·만기 일시상환 대출자가 여전히 대다수인 70%에 달하는 데다 가계부채의 뇌관이 저소득층이고, 정작 이들을 위한 대책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전인수식 해석에 불과하다.
기실 정부의 낙관론은 부동산 경기와 저금리 중 하나만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붕괴될 만큼 취약하다. 1100조원에 육박한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뇌관이라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저소득층 대출자의 상당수는 1·2금융권에 채무를 지고 있는 다중채무자다. 생활비 마련 목적의 대출이 상당수로 대출 총액의 절대 액수는 크지 않더라도 훗날 금리가 올라가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게 되고 이는 금융시장 전체로 확대되면서 경제 회복에도 악영향을 끼칠 게 뻔하다. 저소득층 가계부채 문제를 방치할 경우 한국 경제가 더 큰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더 늦기 전에 저소득층의 소득 개선 노력과 정책금융 강화, 채무구조 개선 등의 방안이 나와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513수] 北 개성공단을 문 닫게 하려는가
북측의 일방적인 임금 인상 요구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개성공단에서 태업과 잔업 거부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월 말 느닷없이 “3월분 임금부터 기본급을 기존의 70.35달러에서 5.18% 올린 74달러로 산정해 지급하라”고 우리측에 통지문을 보낸 북측이다. 상식에서 벗어난 요구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태업과 잔업 거부를 위협하더니 4월 임금 지급 시점에 맞춰 명분 없는 실제 행동에 들어간 것이다. 사업이 또다시 제동이 걸리지 않을까 우려하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을 볼모로 우리측에 백기투항을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상호 신뢰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상도의(商道義)조차 무시하는 행태를 용인하는 사업 파트너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앞서 정부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북측의 임금 인상 요구에 따르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원칙이 한번 무너지면 다음에는 봇물 터지듯 온갖 무리한 요구가 잇따르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입장에서도 북측의 요구를 수용하면 당장은 공장 가동에 지장이 없겠지만, 무리한 요구가 이어질 수밖에 없으니 수익성이 악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럼에도 몇몇 입주 기업이 지난달 북측 요구대로 기존 임금을 납부하고, 차액의 연체료 지불을 약속하는 담보서를 제출한 것은 주문받은 상품 생산을 위한 정상 가동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가 어느 때보다 강경한 대응을 천명한 것은 당연하다. 통일부 대변인은 그제 “북한의 부당한 행태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북측은 연장 근무를 거부하거나 태업을 위협하는 행동으로 기업을 압박하는 행태를 즉각 중단하고 임금 문제 해결을 위해 진지한 자세로 남북 간 협의에 임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어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북측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을 남측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 예치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북측은 이 같은 상황 변화를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재론할 것도 없이 우리에게 개성공단이란 남북 화해의 상징적 공간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의미를 공유해야 마땅한 북측이 개성공단을 단순히 남측을 수세로 몰아가면서 경제적 실리를 챙기는 수단쯤으로 여긴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문제는 북측의 부당한 압박이 이미 우리로 하여금 그 상징성마저 내려놓고 싶을 만큼 이미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것이다. 북측이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공간이라면 우리도 집착할 이유는 없다. 북측은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513수] 청년 고용대란 막는 데 정권 운명 걸어라
“내년에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서 이미 ‘청년 고용 절벽’이 나타나고 있다. 내후년까지 3년 동안 청년 고용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경제팀 총수가 국가적 위기상황을 제대로 인식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최 부총리가 그제 내놓은 대책으로 청년 고용대란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가 청년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 대해 재정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교과서적 대응이다. 문제는 역대 정권이 지난 20여 년간 청년 일자리사업에 예산을 써왔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인턴제 등 청년 일자리사업에 참여한 젊은이들의 재취업률은 15%에 그쳤다. 해외취업 연수사업도 글로벌 기업에 취업하기보다 국내 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스펙’ 쌓기용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한 정부는 공공 부문부터 임금피크제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내년 3000개의 청년 일자리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공기업 임금피크제를 민간 기업으로 확대하지 않는 한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임금피크제 도입, 임금체제 개편 등 정년 연장에 맞춘 개혁안들이 노사정 합의 결렬로 물 건너갔다. ‘발등의 불’인 청년 실업을 사회적 합의로 풀어나가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뾰쪽한 방도가 없다는 게 불편한 현실이다. 현재로선 청년 고용을 촉진할 수 있는 미완의 합의안부터라도 적극 시행해야 한다. 노사정 협의 과정에서 의견 접근을 이룬 부분이라도 ‘노동시장 구조 개선 플랜B’로 착실히 진행시키는 게 중요하다. 또한 1조4000억원에 불과한 청년고용 예산을 대폭 늘리고, 교육과 연수가 실제 취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청년 고용 지원사업의 효율성을 확 끌어올려야 한다. ‘듀알레 시스템(일·학습 병행제)’ 등을 통해 청년 일자리 늘리기에 성공한 독일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청년 일자리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나라의 운명이 걸린 과제다. 청년들이 꿈과 희망을 잃고 거리로 몰려 나왔던 2~3년 전 남유럽의 악몽을 잊어선 안 된다.
[중앙일보 사설-20150513수] 아무도 모르는 ‘묻지마’식 국회 대책비라니 …
여당 원내대표는 세비와 별도로 매달 4000만원가량을 ‘국회 대책비’ 명목으로 지급받는다. 겸직하는 운영위원장 활동비로 매달 1700만원을 받는다. 또 직책수당으로 매달 600만원, 국회의장에게서 매달 500만원을 각각 지원받는다. 여기에 분기별로 2000만원이 지원금으로 지급된다. 이를 합치면 여당 원내대표가 세비와 별도로 받는 돈은 연간 4억1600만원에 달한다.
전부 국민의 피와 땀이 어린 혈세다. 하지만 이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는 원내대표 본인 외엔 아무도 모른다. 영수증 처리가 필요 없는 ‘특수활동비’이기 때문이다. 국회에는 이런 눈먼 돈이 연간 90억원 가까이 넘쳐난다. 원내대표에게 지급되는 대책비는 18개 상임위원회 지원과 의정 활동 등에 쓰이도록 돼 있다. 받는 사람 마음대로 써도 되게끔 사실상 무제한의 자유를 준 것이다. 정보기관도 아닌 국회가 이런 특수활동비를 매년 수십억원씩 쓰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여야의 담합으로 대책비 예산이 삭감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감사원이나 선거관리위원회도 그 사용내역을 감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국정감사 칼자루를 쥔 국회가 겁나서다. 언론이 대책비 사용 내역 공개를 요구해도 국회는 외면하기 일쑤였다.
여야는 대책비가 원내대표의 ‘정치행위’에 쓰이는 돈이어서 공개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홍준표 경남지사는 “2008년 원내대표 시절 매달 대책비 4000만~5000만원의 일부를 부인에게 생활비로 줬다”고 밝혔다. 눈먼 돈임을 악용해 개인 용도로 쓴 실례가 전직 원내대표 입으로 확인됐는데도 ‘정치행위’라는 핑계로 공개를 거부하는 게 말이 되는가.
우리는 2013년 1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헌법재판관 시절 특정업무경비를 카드대금 결제 등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의혹에 휘말린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인사청문회장에서 여야 의원들은 “경비 사용 내역을 낱낱이 공개하라”고 맹공한 끝에 그를 낙마시켰다. 그랬던 사람들이 전직 원내대표가 사적 이용 사실을 실토한 국회 대책비 내역을 공개하라는 요구엔 꿀 먹은 벙어리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3수] 화끈한 투자 촉진만이 원·엔 환율 바로잡는다
정부가 해외투자 활성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엊그제 “경상수지 흑자가 많이 쌓이고 있기 때문에 외국 주식과 외국 기업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해외투자를 촉진하려 한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이에 따라 규제완화나 세제 인센티브를 포함한 종합적인 해외투자 활성화 대책을 다음달 발표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해외투자 촉진책을 내놓겠다는 가장 큰 이유는 환율 때문이다. 경상수지가 37개월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가면서 원화는 최근 지속적인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3월 한때 달러당 1136원까지 올랐지만 이후 속절없이 하락, 4월 말에는 1060원대까지 떨어졌다. 요 며칠 사이 1090원대를 회복했지만 추세적 하락세가 꺾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원·엔 환율은 더 심각하다. 엔 약세를 유도하는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원·엔 환율은 7년 만에 900원 선이 붕괴됐다. 어제는 910원대까지 반등했지만 다시 900원을 밑도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이렇다 할 환율대책을 내놓지 않던 기재부가 그나마 환율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긍정적이다. 하지만 외국 기업을 인수하거나 해외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 대책이라면 실망이다. 세제혜택, 규제완화 등을 내걸면서 달러 유출을 꾀할 일인지부터가 의문스럽다. 해외투자는 많아서 문제일 뿐 적어서 문제인 상황도 아니다. 해외투자에 대한 정부 정책방향이 오락가락하는 것도 문제다. 이명박 정부와 달리 현 정부는 해외투자 혜택을 계속 줄여왔다. 특히 지난해 세법개정으로 올해부터 간접외국납부세액 공제 대상이 크게 축소됐다. 국내 투자를 유도해 내수를 살린다는 취지였다. 그러던 정부가 방향을 180도 틀어 해외투자를 독려하겠다고 나섰으니 어리둥절하다.
해외투자든 국내투자든 정부는 기업들이 자유롭게 뛸 수 있게 규제를 확실하게 풀면 된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온갖 투자를 다 막아놓고 국내외 균형 환율을 바랄 수는 없다. 정부가 굳이 할 일이 있다면 해외자원개발 등일 텐데 이는 국회와 사정당국이 꽁꽁 틀어막고 있지 않은가.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3수] 서울대의 외국인 中企인재 육성 계획을 지지한다
서울대가 중견·중소기업 취업을 조건으로 외국인 석·박사 유학생 교육을 추진한다고 한다. 정부와 기업이 지원하는 조건으로 이들이 학위를 받은 뒤에는 5~6년간 중견·중소기업에 의무적으로 일하도록 한다는 방안이다. 국내 공대 졸업생들이 수도권과 대기업을 선호하면서 중견·중소기업이 겪는 만성적인 R&D 인력난을 해소해 보자는 취지다. 사실 수도권으로부터 일정 거리를 벗어나면 연구인력을 뽑을 수 없다는 ‘R&D 남방한계선’이 계속 북상하면서 웬만한 기업은 연구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고 있다. 중견·중소기업 취업과 연계한 서울대의 외국인 유학생 선발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국내에서 연구인력을 구하지 못하면 결국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석·박사급 연구인력이 전무하다는 어떤 기업은 필리핀에까지 갔었다고 한다. 외국에서라도 인력을 구해올 수 있다면 그나마 낫다. 대부분의 중견·중소기업은 연구인력 부족으로 연구개발 자체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중견·중소 부품·소재기업의 연구개발 역량이 떨어지면 대기업의 경쟁력 또한 약화된다. 오죽하면 삼성 등 일부 대기업이 자구적 차원에서 협력사 취업을 전제로 외국인 채용에 직접 나서겠나. 서울대에 중견·중소기업 취업과 연계한 외국인 유학생 선발을 요청한 것도 바로 대기업이라고 한다.
미국은 이민개혁 행정명령으로 과학·기술·공학·수학분야 외국인 유학생 비자 발급을 대폭 확대했다. 한국은 국내에서 공부한 외국인 고급인력마저 놓치는 상황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 가운데 전문인력 비율은 3.2%에 불과하다. 단순노동인력 중심의 기존 외국인 유입정책을 대대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 국적 등 인센티브 제공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정부의 저출산 대책도 재고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2013년 합계출산율이 1.19명으로 2002년 1.17명 수준으로 회귀한 게 이를 말해준다. 차라리 저출산 예산을 이민정책으로 돌리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13수] 해외 두뇌가 갈수록 한국을 꺼리는 이유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 인력의 32%가 저임금 단순기능직이 인력의 비중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가 나왔다. 전문인력이 외국인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10년 사이 3.5%에서 3.2%로 떨어졌으며 그나마 교수· 과학기술 전문가 등 창조적 고급두뇌는 2013년 현재 2만5,000여명에 머무르는 등 해마다 감소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해외 고급두뇌가 한국을 꺼리는 것은 단순유치에만 급급할 뿐 정주할 만한 사회문화적 인프라를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마다 골드카드나 포인트시스템 등 우대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규정이 복잡한데다 혜택도 적다 보니 외국인들이 외면하고 있다. 대기업들도 앞다퉈 인재 채용에 나서고 있지만 경직된 조직문화와 연공서열 위주의 인사제도 등 장벽에 막혀 있다. 외국인들이 마음 놓고 다닐 만한 국제학교나 외국 영리병원 개설조차 견고한 기득권에 가로막혀 갑론을박을 벌이는 게 우리의 현주소다. 이러니 이명박 정부 시절 7,000억원을 들여 영입한 해외두뇌의 86%가 짐을 싸고 국내 대기업들마저 '외국인 임원의 무덤'이라는 불명예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세계 각국은 일찍이 해외두뇌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인재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숙련 근로자와 기업인, 화학·공학 전공자 등에 대한 비자 발급을 확대했으며 싱가포르도 저학력 노동력 유치에서 벗어나 바이오·화학·전자 분야의 고급인력 유치에 나서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서울대가 외국인 유학생을 매년 100명씩 선발해 중견·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 분야에 투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선 것은 고무적이다. 이제는 단순인력 중심의 이민정책에서 벗어나 고급인력 위주로 이민정책의 틀을 새롭게 바꿔야 할 때다. 저출산·고령화 시대를 맞아 해외두뇌를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해야 창조경제가 빛을 발할 수 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13수] 중견기업 옭아매면 신성장동력 영원히 못 찾는다
'9988'이란 단어가 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수가 전체의 99%이고 종사자 수가 88%에 달한다는 뜻이다.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중소기업이 압도적인 상황은 사실 좋은 게 아니다. 후진국일수록 영세사업자와 중소기업이 많으며 경제가 발전할수록 이 비율은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독일처럼 중소기업 비중이 90%, 종사자 비중이 80% 정도 되는 '9080' 사회가 돼야 경제가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크고 중견기업이 중소기업을 인수합병(M&A)해 사업과 고용을 흡수해야 한다. 중견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 방향도 이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정작 현실을 보면 지원과 규제가 엇박자를 내며 오히려 중견기업을 고사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재지정된 '주조' 품목이다. 서울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미래 신성장동력이 될 주조 등 공정기술을 뿌리기술로 지정하고 중소·중견 뿌리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동반성장위원회가 2월 주조를 중기적합업종으로 재지정하면서 중견기업의 진입을 막았다. 한쪽에서는 지원한다면서 다른 쪽에서는 규제를 들이대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한단 말인가. 절반이 넘는 중견기업이 기업소득환류세제 적용 대상이 되는 것도 문제다. 중견기업은 당연히 대기업으로 성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대규모 투자도 해야 한다. 많은 중견기업이 사내유보금을 열심히 쌓는 게 이 때문인데 여기에 과세한다니 정부가 나서 성장 사다리를 걷어차는 꼴이다.
중소기업은 고용 여력이 없고 대기업은 해외에서 고용을 늘린다. 우리 경제의 현안인 일자리를 창출할 주역은 중견기업이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고용을 늘리면서 회사를 키워나갈 때 미래를 책임질 신성장동력 산업도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정부는 중견기업 육성정책을 전면 손질하기 바란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한겨레 프리즘/김양중(의료전문기자)-20150513수] 복지 확대 방해하는 이유
국민연금공단의 통계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민연금 가입자 가운데 직장 가입자의 한달 평균 소득은 약 236만8000원이다. 연금보험료율은 1998년부터 소득의 9%이기 때문에 직장 가입자가 내야 할 보험료는 한달 평균 21만3120원이다. 하지만 실제로 직장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는 이의 절반인 10만6560원이다. 나머지 절반은 기업이 부담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에서 지금 내는 보험료를 소득의 9%에서 10.01%로 올리고 대신 노후에 받는 연금은 직장 다닐 때 소득의 40%에서 50%로 올리자는 안이 논의되고 있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100만원 벌던 사람이라면 보험료를 4만5000원 내다가 이보다 5050원이 많은 5만50원을 내야 한다. 대신 40년 동안 보험료를 냈다고 가정할 때 노후에는 40만원보다 10만원이 많은 50만원을 받게 된다.
노후를 대비해야 하는 직장인이라면 이를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은 사정이 다르다. 지난해 기준 직장 가입자의 보험료는 총 29조원이고 이 가운데 14조5000억원을 기업 쪽이 부담했다. 국회에서 논의한 대로 10.01%로 보험료율을 올리면 약 1조6000억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 이 돈은 직장인의 월급이 오르면 해마다 같이 올라갈 것이다.
지난 1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 발표를 하루 앞두고 이를 취소하면서 올해 안에는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당시 발표될 예정이었던 부과체계 개편안의 핵심은 소득이나 재산이 많지만 피부양자로 등록돼 있거나 직장인 가운데 월급 이외의 추가 종합소득이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보험료를 더 내게 하는 것이었다. 대신 ‘세 모녀’처럼 소득이 거의 없는 이들의 보험료는 줄여주는 안이었다. 보험료 부과체계가 공평해야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위해 보험료를 올리더라도 불만이 덜할 것이다. 전체 병원비 가운데 건강보험에서 내주는 돈의 비율이 60%대 초반으로 주요 국가의 평균 수치인 약 80%에 견줘 크게 낮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제조건은 ‘공평한 부과 체계’일 것이다. 이 문제를 두고 국회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데, 실제 정책으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이 정부가 부자들의 눈치를 보다가 미뤘기 때문이다.
올해 1월부터 담뱃세가 한갑당 2000원이 올랐다. 정부는 금연을 유도해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담뱃세를 올렸다고 했다. 최근 정부가 밝힌 바를 보면 올해 1~4월 담배를 팔아 거둬들인 세금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100억원가량 많았다. 물론 담배 판매량은 정부 예상치보다 감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난달 수치부터 드러나고 있다. 바라지는 않았지만, 담뱃세를 2000원 올릴 때 세수 수입이 가장 클 것이라는 조세정책연구원의 예측이 맞아들어가고 있다. 상대적으로 흡연율이 높고 담배 끊기가 힘든 저소득층의 세금 부담이 늘 것이라는 전망도 맞아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명박 정부 시절에는 기업들의 법인세율을 3%포인트 내렸다. 한국재정학회가 지난 3월 연 ‘재정안정을 위한 복지개혁과 증세’라는 제목의 정기 학술대회에서는 법인세율의 인하가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수입 증대에 기여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1일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긴급현안보고에서 복지부는 ‘복지방해부’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왜 복지 확대를 방해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복지가 확대되면 돈 많이 버는 기업과 부자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기업 법인세율 인하는 박근혜 정부에서 복지 확대 방해로 나타나고 있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이기환(논설위원)-20150513수] 알제의 여인들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종종 모방작가라는 소리를 듣는다. 디에고 벨라스케스(17세기)와 외젠 들라크루아·에두아르 마네(이상 19세기)의 작품들을 ‘모방한’ 연작시리즈를 냈으니 말이다. 모든 사물과 사람을 게걸스럽게 집어삼켜 소화하는 작가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물론 그는 “천재성은 나이가 들면서 사라지므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응수했다. 엊그제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사상 최고가(약 1968억원)에 낙찰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Les Femmes d’Alger)’이 그런 작품이다. 18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대표주자인 들라크루아(1789~1863)의 동명작품을 패러디했다.
1832년 알제리를 방문한 들라크루아는 이슬람 여성들만의 공간인 ‘하렘’을 구경하고 ‘알제의 여인들’을 완성했다. 하렘은 원래 이슬람 여성들의 육아와 가사를 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들라크루아는 한껏 치장한 이슬람 여성들이 남성들을 기다리는 곳으로 그렸다. 이 작품을 계기로 동방의 풍속은 낭만주의 회화의 주요 주제로 자리매김됐다.
1955년, 74살의 노인인 피카소는 ‘알제의 여인들’ 원작을 재해석한 연작시리즈 15점을 완성했다. 이 그림을 재해석한 계기가 있었다. 들라크루아의 그림 오른쪽에 등장하는 물담배를 피우는 여인이 피카소의 마지막 반려자인 자클린 로크(1926~1986)를 놀라울 정도로 빼닮았던 것이다. 하지만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은 들라크루아의 그것과 완전히 달랐다. 이번에 경매 최고액을 경신한 작품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풍만한 가슴과 노골적인 엉덩이에 모로 누워 두 다리를 꼰 여인이 있는가 하면, 가슴을 드러낸 채 성녀(聖女)처럼 무표정한 여인도 있다. 피카소는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성(聖)과 속(俗)’으로 완전히 재해석한 것이다.
“화가는 다른 화가 작품 중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들을 직접 그려 수집을 완성하는 수집가다. 나도 처음에 그렇게 시작했다. 그러다 나중에 다른 것이 되었지만….” 요컨대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라는 피카소의 말이다. 피카소의 비서였던 하이메 사바르테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피카소는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누구도 흉내내지 않았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구본영(논설고문)-20150513수] ‘대포’ 최고위원의 오폭/구본영 논설고문
오래전 국제부 일선 기자로서 이라크전을 취재하던 때다. ‘프렌들리 파이어’(friendly fire)란 일상에서 잘 안 쓰는 절묘한 영어 표현을 접했다. 우리말로 오폭(誤爆), 또는 오인 사격으로 새겨진다. ‘적이 아닌, 친구를 향해 쏜다’는 뜻이다.
전장 아닌 정치판에서도 오폭은 일어나는 건가.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의 거친 언사가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4·29 재·보선에서 참패한 이후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한 박주선 의원 등 동료에게 돌직구를 날리면서다. 특히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한 “사퇴할 것처럼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는 막말이 부메랑이 됐다. 문재인 대표를 보호하려는 나름의 충정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당 내홍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급기야 당내 비노(非) 성향 당원들이 그를 당 윤리심판원에 제소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그의 막말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재작년에는 국가정보원의 댓글 대선 개입을 비판하면서 “바뀐 애는 방 빼, 바꾼 애는 감방으로”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박근혜 대통령을 ‘바뀐 애’로 패러디해 하야를 요구한 셈이지만, 열성 지지층 결집 이상의 정치적 효과는 없었다. 올 전당대회에서 그는 “새누리당 정권을 향해 포문을 여는 최전방 공격수가 되겠다”고 공언하면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대포’ 최고위원으로서 쏴댄 ‘말 폭탄’의 효험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자살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메모에서 3000만원을 받은 혐의가 제기된 이완구 전 총리에게 “자진 사퇴하라”고 직격탄을 날려 낙마시키는 전과를 올리는 듯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을 ‘꼬꼬댁’으로 비하하며 “박근혜 정권도 끝났다”며 치고 나갔지만 새정치연합은 재·보선에서 전패했다.
개별 유권자들은 달콤한 선심이나 선동에 휘둘릴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유권자의 총합으로서 국민은 언제나 현명하다고 봐야 한다. 자기 편에는 관대하면서 상대에게만 융단 포격을 한다면 국민인들 감동할 리 없다. 국민의 눈에 이완구 전 총리의 초라한 퇴장만 비쳤겠나. 2심에서 9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판결을 받은 한명숙 전 총리가 금배지를 달고 활보하는 장면도 어른거렸을 법하다. 성완종 파문에도 불구하고 재·보선에서 정권심판론이 먹히지 않은 까닭일 게다.
동서고금을 통해 금도 잃은 표현이나 논리의 비약이 오래 통한 적은 없다. 링컨 대통령의 정적이 미 의회에서 막말을 퍼부은 적이 있다. “두 얼굴을 가지고 거짓말을 한다”며 링컨을 이중인격자로 몰아세웠다. 하지만 링컨이 “제가 두 얼굴을 가졌다면 이런 볼품없는 얼굴로 나왔겠습니까”라고 뼈 있는 위트로 응수하자 그의 정적이 외려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정치적 설득력은 신랄히 비판하더라도 상대에 대한 예의와 객관적 사실에 기반할 때 확보될 수 있다. 균형감을 잃은 막말은 상대를 거꾸러뜨리기보다 자신을 해치기 십상이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영희(문화스포츠부문 기자)-20150513수] 강아지똥과 민들레
권정생(1937~2007)의 동화 『강아지똥』은 하찮고 쓸모없다 천대받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참새도 닭도 “에그, 더러워” 피해가던 강아지똥이 자신을 알아주는 민들레를 만나 거름이 돼 예쁜 꽃으로 피어난다. 작가 권정생 역시 강아지똥 같은 삶을 살았다. 일본 도쿄에서 빈민 생활을 하다 10대에 한국으로 왔지만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 허드렛일을 하거나 걸식을 하며 전국을 떠돌았다. 1967년 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안동의 한 교회에 정착해 종지기로 일하며 글을 썼다. 스무 살에 결핵에 걸려 평생을 홀로 투병했다. 외롭고 고단한 삶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에게도 민들레가 있었다. 권정생이 서른여섯 살에 처음 만난 아동문학가 이오덕(1925~2003) 선생이다. 최근 출간된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라는 책에는 열두 살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이 30년간 주고받은 편지가 담겨 있다. 겨울날 교회 문간방에서 이오덕을 처음 만난 후 권정생은 “일평생 처음으로 마음 놓고 제 투정을 선생님 앞에 지껄일 수 있었습니다”라고 쓴다. 이오덕 선생은 가난한 후배에게 7000원을 부치며 “우선 급한 대로 양식과 연탄 같은 걸 확보하십시오”라고 말하고 그의 글을 알리기 위해 출판사를 떠돈다. “제가 쓰는 낙서 한 장까지도 선생님께 맡겨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이오덕을 신뢰한 권정생은 아픈 몸을 추스르며 계속 글을 썼다.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이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세상을 살 만큼 살아본 나이에 만났지만 두 사람이 나눈 우정은 순수하고 맑았다. 하나의 생명이 하나의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 진심으로 아끼고 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어린이날이 있는 5월, 때마침 이오덕·권정생과 하이타니 겐지로 등 한·일 동화작가 3인의 삶과 문학을 조명하는 전시가 서울시청에 있는 서울도서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아이처럼 살다’다.
전시를 돌아보며 ‘동심(童心)’에 대해 생각했다. 최근 ‘잔혹동시’ 논란에서도 핵심이 됐던 그 동심이다. 어린아이의 마음이란 내용이 아니라 어떤 ‘태도’가 아닐까. 아름답고 건강한 것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건 아름답다고, 추한 건 추하다고 계산 없이 고백할 수 있는 마음. 내게 어떤 득실이 있는지 따지지 않고 누군가를 한껏 그리워하며 나를 내어줄 수 있는 태도. 이오덕 선생이 안동을 지날지 모른다는 소식에 “혹시 만나 뵐까 싶어 버스 정류소에서 서성거려 보았습니다”라고 쓴 권정생 선생의 수줍은 고백처럼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513수] 잠수함 대전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소설 해저 2만 리를 쓴 것은 1869년이었다. 벌써 146년 전에 그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잠수함을 만들어내고 ‘노틸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로부터 85년이 지난 1954년, 미국은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을 진수하면서 이를 ‘SSN-571 노틸러스’로 명명했다. 19세기 소설의 상상이 20세기 핵잠수함으로 이어진 셈이다.
잠수함은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진화를 거듭했다. 1차 대전 개전 때부터 독일의 U-21이 영국 순양함 패스파인더를 격침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하더니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해저의 최종병기’로 이름을 날렸다. 처칠 영국 총리가 “전쟁 기간 중 나를 두렵게 한 것은 오직 U보트에 의한 공포였다”고 회상할 정도였다. ‘특전 U보트’나 ‘크림슨 타이드’ 등 잠수함을 다룬 영화도 세계적인 인기를 모았다.
잠수함 종류는 추진 방식에 따라 원자로를 사용하는 핵추진 잠수함과 재래식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디젤 잠수함으로 나눈다. 임무에 따른 구분으로는 탄도미사일 발사 잠수함(SSBN)과 공격형 원자력 잠수함(SSN), 순항 미사일 원자력 잠수함(SSGN)이 있다. 지금이야 첨단 기술 덕분에 내부 환경이 많이 좋아졌지만 예전엔 ‘지옥의 찜통’으로 불렸다. 엄청나게 더운 데다 햇볕이 없고 통풍도 안 되는 밀폐공간이었기에 승조원들의 고생은 말할 수 없었다.
그런 고통을 해결해준 것은 원자력이었다. 원자로에서 나오는 전기로 바닷물을 분해해 산소를 얻고, 첨단 정화장치를 돌림으로써 맑은 공기를 얻을 수 있었다. 엄청난 크기의 연료탱크가 필요없으니 그만큼 신선한 식량과 편의시설도 더 갖추게 됐다. 작전지속 시간도 크게 늘어났다.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를 계기로 동북아 바다 속 잠수함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북한은 잠수함과 잠수정 70여척을 갖고 있다. 중국은 신형 디젤잠수함과 핵잠수함 등 65~70척, 일본은 18척, 러시아는 64척을 운용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6번째로 잠수함사령부를 창설했지만, 보유 잠수함은 아직 13척에 불과하다.
우리 해역에서는 이미 주변국들의 잠수함 대결이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수심이 깊은 동해는 잠수함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각국의 물밑 경쟁이 치열한 곳이라니 걱정스럽다. 동북아의 복잡한 영토분쟁과 군사력 확장 분위기를 감안해 대형 잠수함 확보 전략을 앞당겨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온종훈(논설위원)-20150513수] 흡연과 폐암
전 세계에서 공익적 차원의 금연 운동을 최초로 시도한 것은 나치 독일이었다. 이전에도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 담배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나치당이 전개한 것만큼 강력하지도 성공적이지도 못했다. 아돌프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지도자들은 흡연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으며 금연법을 제정하고 공공장소에서의 흡연 금지, 담배 광고와 판매 제한 등 현대적 금연 정책의 대부분을 만들고 시행했다.
이 시기 담배의 유효성에 관한 연구도 크게 진전됐다. 젊은 시절 하루 40개비 이상을 피던 애연가였다가 금연으로 돌아선 히틀러가 적극 지원한 예나대의 '담배의 위험성에 관한 연구회'는 당시 세계적으로도 가장 영향력이 있는 반(反)담배 연구소였다. 나치의 경제적 지원을 받은 역학 조사와 연구가 곳곳에서 이뤄져 흡연 여성의 모유에 니코틴이 함유돼 유해하다는 것과 흡연이 심근경색 등 심장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담뱃갑 경고 문구로 익숙한 흡연과 폐암의 관계도 이 당시 규명됐다. '실험 역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란츠 H 뮐러는 1939년 증례 대조 연구를 통해 흡연자가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뮐러는 자동차 배기가스, 공장 매연 등 오염물질 못지않게 흡연이 폐암 발생에 영향이 크다는 점을 밝혀냈다. 나치의 강력한 금연정책은 초기에는 효과를 보지 못하다가 1939년 2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 패전 직전까지는 큰 효과를 봤다. 그러나 패전 후 미국 담배회사의 진출과 담배 밀수가 성행하며 전쟁 이전 이상으로 독일인의 담배소비는 급증한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11일 "흡연과 폐암 등 질병 사이에 '필연적' 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폐암 환자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담배 제조와 판매를 허용하는 담배사업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정의 주요 근거다. 담배에 대해 "흡연자 스스로 결정할 수 없을 정도로 의존성이 높지 않다"고 밝혔지만 이 판결로 담배소비가 다시 증가할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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